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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 나상현, 성추행 가해자였다…“옆자리 女 허벅지 만져” 폭로에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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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나상현, 성추행 가해자였다…“옆자리 女 허벅지 만져” 폭로에 사과

      나상현 SNS 캡처 나상현씨밴드의 나상현이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나상현은 23일 자신의 SNS 계정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나상현은 “입장 표명이 늦어진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과거 저의 행동으로 인해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겪으셨을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과거 음주 후의 구체적인 정황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 상황에서 작성자 분께 상처를 드리게 되었다”며 “당시 사과를 직접 전하지 못한 점도 매우 죄송스럽다. 늦었지만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리고 싶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개인 메시지로라도 사과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어 “약 3, 4년 전 음주 상태에서의 언행을 지적받고 크게 반성한 뒤, 주변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앞으로도 이와 관련한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더 깊이 반성하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나상현은 “이번 일로 마음 쓰신 모든 분들께도 사과드린다”며 “제가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들을 다시 돌아보며, 이를 행동으로 지켜내기 위한 명확한 기준을 만들고 노력하겠다”고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앞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나상현한테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과거 나상현이 음주 자리에서 여성의 허벅지를 만졌다고 주장했다. 상대가 만취한 듯 보이면 손을 그대로 두고, 불쾌감을 드러내면 “실수였다”고 얼버무리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커지자 나상현은 사과문을 게재하며 입장을 밝혔다. 이하 나상현 전문 나상현 SNS 캡처

      서형우 온라인기자 2025.05.23 09:44

    • [종합] ‘쌍욕하는 父=개’ 발언 이호선 “모두의 생각…가해자 공감 불가” (옥문아)

      연예

      [종합] ‘쌍욕하는 父=개’ 발언 이호선 “모두의 생각…가해자 공감 불가” (옥문아)

      KBS2 예능 ‘옥탑방 문제아들’ 이호선 교수가 ‘이숙캠’에서 날린 독설에 대해 언급했다. 22일 방송된 KBS2 예능 ‘옥탑방 문제아들’ (이하 ‘옥문아’)에는 JTBC 부부예능 ‘이혼 숙려 캠프’에서 활약 중인 이호선 교수와, 박민철 변호사가 출연했다. 이날 두 사람은 ‘이숙캠’ 출연 이후 인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먼저 이호선은 “조금 실감한다. 사진 찍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내가 쓴 책을) 사서 들고 다니다가 마주쳤을 때 사인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갑자기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은 없었나’라는 질문에는 “KTX를 탔는데 옆자리 앉은 승객이 ‘교수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더라. 그렇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상담을 해드렸다. 2시간 내내”라고 털어놨다. 이를 들은 패널들은 ‘정말 난감했겠다’ ‘어떡하냐’며 걱정하면서도 “그분은 진짜 행운아다”라며 부러워했다. KBS2 예능 ‘옥탑방 문제아들’ 이에 송은이는 “오늘도 두 분을 어렵게 모셨다. 두 분이 상담하고 싶어도 바빠서 못하는 정도라고 하더라”라고 이야기했다. 이호선은 “지금 상담이 내년까지 밀려있다. 나는 주 2회 이틀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상담하는데 내년 8~9월까지 꽉 차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들은 김숙이 “내년 8~9월이면 그 전에 고민이 해결될 수도 있겠다”고 하자, 이호선은 “그래서 이미 없어져서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다행이다”라고 전했다. 또 이호선은 ‘이혼 숙려 캠프’ 방송에서 출연진을 향해 ‘나는 눈물을 안 믿는 사람이다’ ‘누워서 토하는 사람은 누워서 X싼다’ ‘쌍욕 하는 아버지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냥 개다’ 등의 독설을 날린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호선은 “우리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상담하다 보면 공감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에게 ‘얼마나 힘드셨으면 폭력을 행사하셨어요?’라고 묻는 건 말이 안 된다. 문제는 문제고 아픔은 아픔이다. 경우에 따라 문제에 아픔을 집어넣어 문제를 아픔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건 용납할 수도 없고 공감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냉철하게 말했다. 이를 들은 주우재는 격하게 공감하며 이호선에 대해 “위인이시네요”라고 전했다.

      장정윤 온라인기자 2025.05.23 07:57

    • 이호선 ‘이숙캠’서 독설 뱉는 이유 “가해자, 공감할 수 없어” (옥문아)

      연예

      이호선 ‘이숙캠’서 독설 뱉는 이유 “가해자, 공감할 수 없어” (옥문아)

      KBS2 예능 ‘옥탑방 문제아들’ 이호선 교수가 자신의 상담 소신을 전했다. 22일 방송된 KBS2 예능 ‘옥탑방 문제아들’ (이하 ‘옥문아’)에는 JTBC 부부예능 ‘이혼 숙려 캠프’에서 활약 중인 이호선 교수와, 박민철 변호사가 출연했다. 이날 이호선 ‘이혼 숙려 캠프’에서 ‘이혼 숙려 캠프’에서 출연진을 향해 ‘나는 눈물을 안 믿는 사람이다’ ‘누워서 토하는 사람은 누워서 X싼다’ ‘쌍욕 하는 아버지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냥 개다’ 등의 독설을 날린 이유에 대해 전했다. 이호선은 “상담하다 보면 공감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에게 ‘얼마나 힘드셨으면 폭력을 행사하셨어요?’라고 묻는 건 말이 안 된다. 문제는 문제고 아픔은 아픔이다. 경우에 따라 문제에 아픔을 집어넣어 문제를 아픔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건 용납할 수도 없고 공감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냉철하게 말했다. 이를 들은 주우재는 격하게 공감하며 이호선에 대해 “위인이시네요”라고 전했다.

      장정윤 온라인기자 2025.05.22 21:32

    • 오요안나 괴롭힘 가해자, 결국 MBC 퇴출

      연예

      오요안나 괴롭힘 가해자, 결국 MBC 퇴출

      지난해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 MBC 방송화면 고 오요안나를 괴롭힌 의혹을 받는 기상캐스터가 직장을 떠났다. MBC는 오요안나에 대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기상캐스터 A씨와 지난 20일 계약을 해지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실시간 특별근로감독 결과다. 노동부는 오요안나가 MBC 재직시절 직장 내 괴롭힘 피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노동부는 오요안나가 선배 기상캐스터로부터 업무상 필요성을 넘어선 반복적 비난과 공개적 모욕 등 괴롭힘을 당했다고 봤다. 일례로 오요안나가 2022년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기상캐스터 특집에 출연하게 됐을 때 선배 기상 캐스터가 “네가 유퀴즈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느냐”고 공개 비난한 것을 지목했다. 다만 노동부는 고인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근로기준법에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될 경우 사용자는 가해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A씨에 대한 계약해지는 근로기준법상 조치가 아닌 MBC의 자체적인 판단인 것이다. MBC는 지난 19일 입장을 내고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조직문화 개선, 노동관계법 준수를 경영 최우선 과제로 올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오요안나는 지난해 9월 사망했다. 고인은 2021년 MBC 공채 기상캐스터로 입사해 평일·주말 뉴스 날씨를 진행해왔다. 이후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담긴 고인의 유서가 뒤늦게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해당 유서에는 특정 기상캐스터 2명으로부터 받은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유서에도 고인이 ‘유퀴즈’ 섭외를 받자 한 동료가 “나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냐”며 비난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뿐 아니라 먼저 입사한 동료 기상캐스터가 오보를 낸 후 고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일이 일었고 또 다른 기상 캐스터는 고인과 같은 프리랜서임에도 고인을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로 퇴근 시간이 지나고 회사로 호출해 1시간 이상 퇴근을 막기로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선명 기자 2025.05.22 08:04

  • 주간경향

    • ‘압구정 롤스로이스’ 가해자 징역 10년 확정

      사회

      ‘압구정 롤스로이스’ 가해자 징역 10년 확정

      대법원 전경. 경향신문자료사진 약에 취해 차를 몰다가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의 운전자에게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1월 20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모씨(28)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신씨는 지난해 8월 2일 오후 8시 10분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역 인근 도로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운전하다가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을 다치게 하고 구호 조치 없이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뇌사에 빠진 피해자는 지난해 11월 25일 사망했고 신씨의 혐의는 도주치상에서 도주치사로 변경됐다. 1심은 신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2심에서는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 2심에서는 운전자가 현장에서 고의로 도주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못했다며 도주치사·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위험운전치사·도로교통법상 약물운전 등 2가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면서 형이 절반으로 줄었다. 2심 재판부는 사고 당시 신씨가 현장을 3분 정도 이탈했다가 돌아왔지만, 약 기운에 취해 휴대전화가 차 안에 있는 것을 잊고 그것을 찾으러 갔다 온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점과 돌아와서 사고를 인정한 점 등을 볼 때 도주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의 판단이 맞는다고 보고, 검찰과 피고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은 신씨가 사고 이후 숨거나 도주하려는 행동을 한 바 없고 당시 사고 현장에는 경찰 차량이 도착해 있는 상황이었던 점, 경찰관에 의해 체포될 당시 자신이 사고운전자임을 인정한 점 등을 들어 도주치사·사고 후 미조치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이 맞는다고 봤다. 신씨는 이와 별개로 향정신성의약품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도 별도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다.

      홍진수 기자 2024.11.20 14:12

    • [오늘을 생각한다]‘가해자 서사’라는 곤란함

      오피니언 오늘을 생각한다

      [오늘을 생각한다]‘가해자 서사’라는 곤란함

      지난 8월 11일 백화점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날 피해자의 유족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말에 주목해달라”고 호소했다. 가해자 서사의 과잉을 경계하라는 원칙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 가해자에게 온정적 이입을 유발하는 묘사 혹은 특별한 존재로 악마화하는 묘사들은 사건을 가해자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피해자를 소외시킨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방식의 서술이 문제를 개인화시켜 범죄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은폐하고 재발 방지 의지를 반감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이라도 각자의 ‘이야기’는 존재한다. 범죄자에게 동기를 묻는 것은 현대 형법의 기초 원리이기도 하다. 범죄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해자의 이야기가 검토돼야 한다. 이러한 문명적 원칙은 얼핏 가해자 서사의 경계라는 또 다른 원칙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1963년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전 세계 유대인들의 격렬한 비난에 부딪혔다. 유대인 학살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해 법정에 세운 이스라엘 측 검사는 아이히만을 ‘도착적 가학적 음란증 환자’로 묘사했다. 하지만 아렌트의 눈에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얼간이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법정은 아이히만의 범죄를 유대 민족을 향한 범죄로 보았지만, 아렌트는 이 범죄를 유대인에 몸에 가해진 인류 보편에 대한 범죄로 보았다. 유대인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아렌트의 주장은 유대인들의 원한감정과 복수심을 곤경에 빠뜨렸다. 홀로코스트 피해자 입장에서 나치는 가장 사악한 악마의 현신과도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외국인이 나타나 나치는 악마가 아니며 아이히만은 여러분과 같이 근면 성실한 직장인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니 그들의 심정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 유대인 학자는 그런 아렌트를 향해 “유대인에 대한 사랑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렌트-유대인 논쟁은 가해자의 서사를 둘러싼 난감함을 잘 보여준다. 아렌트 역시 아이히만이 괴물이라 믿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참혹한 범죄자의 이야기로부터 ‘악의 평범성’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이끌어냈다. 아렌트의 통찰은 인류사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지만, 동시에 유대 세계와의 논쟁을 통해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큰 인간적 불편함을 가져다주는지도 함께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가해자 서사를 둘러싼 문제의 핵심이 그 안에서 무엇을 바라보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끔찍한 범죄자가 우리와 전혀 다른 종류일 것이라는 생각은 안도감과 위로를 준다. 하지만 범죄의 타자화는 그 사건이 피해자에 대한 범죄일 뿐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가해자의 어떤 ‘이야기’에 주목하는가? 그것들의 사회적 의미를 외면한 채 가해자의 특징(얼굴)에 주목하는 사회는 지금보다 얼마나 더 안전해질 수 있을까?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2023.08.18 10:47

    • 사회 표지 이야기

      “성인지감수성 없는 판사와 제 역할 못 하는 검사, 가해자 온정주의 불러”

      ㆍ성폭력 사건 방청연대 통해 사법시스템 피해자 소외 비판…‘연대자D’ 인터뷰 디지털 성폭력 사건을 담당한 한 공판검사는 디지털 자료의 기본단위인 jpg, mp4, KB 등의 의미도 몰랐다. 한 1심 판사는 성폭력 범죄로 기소된 피고인의 감형 이유로 ‘고도비만’을 들었다. ‘무슨 아줌마를 여자로 본다고…’ 경찰은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러온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출간된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동녘)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현 사법시스템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 책의 지은이인 ‘연대자D’는 지난 10년간 전국의 수많은 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사법시스템을 감시하고 비판해왔다. 그 자신 또한 성폭력 피해자이면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힘든 고통의 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그는 지금의 사법시스템이 성폭력 피해자를 배제·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사법시스템 변화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법원도 인터뷰·강연 등을 요청하며 피해자로서 연대자로서 사법시스템을 비판해온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9일 화상으로 ‘연대자D’를 만났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난 10년간 성폭력 피해자들 곁에서 연대 활동과 사법시스템 감시 활동을 해왔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형사사법 절차를 통해 본인의 피해를 인정받고 회복해 일상을 다시 만들어 나가려는 선택을 한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법대로’라는 선택지는 많은 걸 잃어버리게 한다. 내가 당사자인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배제되고 소외되는 경험이 고통스러웠다. 피해자인데도 당사자가 되지 못했고, 사법시스템에 대한 무지에서 생기는 억울함이 있었다. 혼자 그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내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다른 피해자들은 이러한 고통을 덜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사이다 같은 해결책을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어느 길로 가야 그나마 덜 고통스럽고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지 길 안내를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법시스템 전반에 대한 비판과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으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있나. “피해자와 일 대 일 직접 연대를 할 때는 수사·재판 전 과정에 대해 조력을 하고 대응전략을 논의한다. 먼저 피해자가 ‘법대로’를 선택하면 준비 단계에서 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준다. ‘지연 고소(피해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고소하는 것)를 할 때는 준비 없이 혼자 수사기관에 가지 말고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세요’, ‘기록과 녹음을 생활화하세요’ 같은 것들이다. 단계별로 증거자료를 수집해야 할 때, 기관상담을 해야 할 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한다. 변호사 선임 시 변호사와 어떻게 협업하면 좋을지, 고소장 작성과 제출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진술 과정에는 무엇이 필요하고 인권침해가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전 과정에 대한 대응방법을 함께 고민하며 신뢰관계인으로 수사기관 및 법원에 동석한다.” -흔히 형사재판에서 검찰이 피해사실을 적극적으로 입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성폭력 피해자가 증거를 찾고 검사를 설득하는 등 하나하나에 다 개입해야 유죄 입증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대개 피해자들은 입증책임이 있는 검사가 사건과 피해자에 대해 충분히 알아본 후 재판에 임하리라고 기대한다. 실제 재판에서는 그러나 공판검사가 피해자의 상황이나 상태에 대해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건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로 법정에 출석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사건은 물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사건과 물적 증거 없이 피해자 진술로 가야 하는 사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예컨대 디지털 성폭력은 물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이런 사건은 범죄를 입증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조차 검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 내가 연대한 한 디지털 성폭력 사건에서 공판검사는 디지털 자료의 기본단위인 jpg, mp4, KB 등의 의미도 몰라 피해자들이 유죄 입증을 위해서 디지털 매체와 환경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한편 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직접 증거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도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피해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검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물적 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피해자의 개입 없이 온전히 피해를 인정받기란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잘 알려진 안희정 성폭력 사건, 조덕제 성폭력 사건도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었다. 이 사건들은 피해자가 절차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면서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그렇다면 공판검사나 재판부가 피해자들의 개입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부족한 상태이다 보니 당사자도 아닌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이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에 판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판사 뒤에는 검사가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 공소장 변경이나 보완 수사 요구 등 범죄 입증을 위해 검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만,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심지어 결과가 나와도 항소를 포기한다. 유사한 범죄인 n번방 사건과 박사방 사건의 형량을 비교해보자. n번방 사건 범죄자들의 평균 형량은 7.9년인데 박사방 사건 범죄자들의 평균 형량은 14.3~14.8년으로 2배 가까이 된다. 그나마 34년형을 받은 문형욱(n번방 운영자)이 검거되기 전에 재판이 진행됐던 5명의 공범은 실제로 성폭력을 저질렀음에도 평균형량은 3.2년밖에 안 된다. 이유는 검찰이 항소를 안 해서다.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그제야 검찰이 항소하기 시작했다. n번방 사건 이후에 드러난 박사방 사건의 형량이 2배 가까이 늘어난 이유다. 성범죄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는 사례가 정말 많다. 그러면 불이익 변경금지 원칙에 의해 항소심에서는 1심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다. 판사들이 정상참작 감경을 적용하면서 ‘고도비만’을 유리한 정상(감형 이유)으로 판결문에 적시해 논란이 됐던 사건이 있었다. 1심 판사는 아동청소년 음란물(성착취물) 제작 배포 및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피고인의 형량을 ‘고도비만 등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인터넷상에서 타인과 교류하던 중 경솔한 판단으로 사건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는 사유로 감경했다. 이 사건 또한 피고인은 항소했는데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2심은 ‘피고인이 스스로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있다고 해서 경위에 참작할 바가 없다’고 1심 판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검사가 항고를 포기하면서 1심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었다.” -솜방망이 처벌에는 판사의 정상참작 감경 또한 문제로 보인다. “정상참작 감경의 작동 원리를 보자. 형은 법정형-처단형-권고형-선고형의 단계를 밟아 정해진다. 법정형은 법률 조항에 규정한 형벌이고 처단형은 법정형에서 형벌의 종류를 선택한 후 이를 토대로 법률상 가중, 법률상 감경, 재판상 감경을 적용한 형이다. 정상참작 감경은 처단형을 정할 때 활용하는 재판상 감경으로 재판부 ‘재량’으로 법정형 하한을 절반으로 깎을 수 있다. 권고형은 양형기준에 따른 형량이고, 선고형은 처단형과 권고형을 모두 고려해 최종적으로 피고인에게 선고하는 형이다. 일례로 2018년에 남자 대학생이 부산대 여자기숙사에 침입해 여학생을 성폭행하려다 주먹을 휘둘러 다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경우 법정형의 하한은 징역 10년이었다. 이 건의 경우 절반을 깎아내도 집행유예(징역 3년 이하)가 안 나온다. 그러자 재판부는 법률상 감경 요소인 심신미약(음주로 인한 블랙아웃) 감경을 먼저 적용한다. 절반이 깎여 5년이 나왔다. 여기에 다시 정상참작 감경을 적용해 2년 6개월이 나오게 됐다. 여기에 양형기준인 3~9년을 적용해 최종 선고형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돼 가해자는 풀려났다. n번방 사건에서 징역 3년이 나온 공범들도 100% 정상참작 감경이 적용됐다.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인 공분을 불러오자 이들과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박사방 공범은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박사방 사건에서는 정상참작 감경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박사방 사건에 형법 제114조 범죄단체 등의 조직 같은 추가적인 범죄명이 적용된 점도 있지만, 유사하거나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이렇게 형량의 차이가 나는 것은 정상참작 감경 때문이다. 부당 감형(꼼수 감형) 시도에 힘을 싣는 게 판사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하는데, 꼼수를 판결문에 반영하면 가해자들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박사방 사건의 강훈이 왜 장기기증 서약을 한다고 했겠나. 2016년 한 건강검진센터의 대장내시경 센터장이 환자들을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1심에서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이 깎였는데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3000만원을 기부했다는 이유에서다. 특별한 기준 없이 고도비만, 학업 스트레스, 코로나19 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정상참작 감경 등이 적용돼 가해자들이 선처받고 있다.” -왜 이렇게 감경해주나. “흔히 ‘피해자의 눈물이 있어야 유죄’라는 말을 하는데, 성폭력 재판에서는 ‘피고인의 눈물로 무죄나 감형’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판사들이 피고인에게 과몰입하는 셈이다. 피해자는 법정에 보이지 않는데 피고인은 계속 눈에 보이고 볼 때마다 읍소를 하니까. 공판검사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피해자 변호사도 증인신문 이외에는 재판에서 보기 어렵고, 나온다 하더라도 공판 참여에 제한이 있다. 재판이 길게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판사가 피고인 측에 라포(상호 신뢰)를 형성하기 훨씬 더 쉬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양형조건이 피고인 위주로 구성돼 있다 보니 판사들은 ‘피고인의 반성’, ‘사회적 유대관계’ 등 피고인의 상황과 사정에 온정적 시각을 갖게 되고,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집착하게 된다.” -형사재판 절차의 문제인가. “형사재판에는 검사와 피고인의 당사자성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절차 참여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헌법상 재판 절차에 피해자의 참여가 권리로 보장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피해자는 재판 과정에서 배제·소외되고 있다. 일본이나 독일은 강력 범죄의 경우 피해자나 유족들이 직접 나와 신문할 수 있고 양형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다. 우리는 피해자 변호사의 의견진술도 상당히 제약돼 있는데, 다른 국가는 원고에 준하는 위치로 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심지어 스웨덴은 피해자가 원고의 위치에서 검사와 같이 있다.” -법원은 성인지감수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대로 법원은 피해자들이 왜 그렇게 예민한지 묻는다. “법원에서는 피해자들이 왜 죽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대해 전혀 파악을 못 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을 예민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판사들에게 수사·재판 경험이 없는 피해자, 수사 경험만 있는 피해자, 재판 경험까지 있는 피해자로 나눠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여줬다. 피해자들이 판사들 앞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알도록 했다. 법원에 증인지원절차가 만들어진 게 2012년이다. 2011년에 성폭력 피해자가 증인신문을 거친 후 모멸감을 느껴 자살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나 역시 수사·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증후군(PTSD) 진단을 받았다. 지능지수가 30이나 떨어질 만큼 인지체계와 언어체계가 망가졌다. 판사들에게 피해자가 이런 단계를 거쳐야만 당신들을 만날 수 있는데 어떻게 예민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말한다. 성인지감수성은 용어 자체가 감수성이라 감정으로 파악되는 지점이 있지만, 사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능력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사건마다 피해자가 놓여 있는 상황 상태 등을 고려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저절로 길러지는 게 아니라 노력을 해야 한다. 관련 교육이나 훈련이 법원에서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보니 상당수 판사의 성인지감수성은 처참한 수준이다. 제대로 된 판결은 판사 개인의 역량에 기대야 하는 형국이다.” -경찰수사 문제도 지적했다. “검경수사권 조정 전인 2020년까지 나는 지연 고소를 결심한 피해자들에게 고소장 접수는 검찰에 하도록 권했다. 경찰은 접수 단계부터 다양한 이유를 들어 고소장을 반려·거부하면서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긴다. 반면 검찰에 접수하면 제출만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그 단계에서 겪어야 하는 추가 피해는 없었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여성 대상의 폭력 및 살인사건은 경찰 단계에서 수사 종결을 할 수 있게 됐다. 피해자들이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면 경찰은 고소장 접수를 반려하거나 고소취하를 유도한다. 방식은 다양하다. 예컨대 가해자의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디지털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오라고 한다. ‘고소장 쪼개기’로 고소취하를 유도하거나 수사를 지연할 때도 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한명이더라도 연관된 범죄가 여럿인 경우가 많다. 고소장을 범죄별로 쪼개라고 하면서 여성청소년계에 가서는 성범죄 관련 진술을 하고 사이버수사대에 가서는 명예훼손 등을 진술하는 등 동일한 내용의 조사를 수차례 감당하게 한다. 어렵게 고소장이 접수된다고 해도 수사는 지연되고 경찰의 법리적 검토 능력도 떨어져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검사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법리적인 검토나 보완 수사를 꼼꼼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수사와 공소 유지를 위해 검사와 경찰이 협력해야 하는데 협력이 안 되다 보니까 결국 유무죄에 대한 판단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성범죄 변호는 하나의 시장이 됐다. “전문 법인이 연결된 인터넷 카페 등에서 반성문, 기부자료 등 성범죄 감형 자료리스트를 공유하고 심지어 교육기관 등과 연계해 돈벌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판사들은 그 같은 감형자료가 양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판결문에 유리한 정상(형을 감경하는 요소)에 반성문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게 되면 일반인들은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고 보게 된다. 이들 법인의 또 다른 세일즈 포인트는 피해자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 증인 신문이나 결심 공판 최후 변론 등에서 피해자를 난도질해 버린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의뢰인인 피고인의 입맛에 맞게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변론함으로써 만족감을 주면, 패소하더라도 피고인들이 불만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법리적인 검토 능력도 떨어지는 데다가 검찰과 경찰이 상호 협조를 제대로 안 하는 상황에서 가해자 측의 피해자 공격이 심해지다 보니 결국 피해자도 법률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방청연대 활동을 해왔다. 시민들의 감시로 달라질 수 있나. “단순히 인상비평을 하는 차원으로 모니터링을 하게 되면 재판부도 아무런 변화나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형사재판 절차에 대한 교육을 병행하면서 방청연대 활동을 해오고 있다. 단순히 판사나 검사의 태도나 언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절차별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체크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배포했다. 예를 들면, ‘모두 절차에서 공판검사가 공소장 요지를 낭독하기 전 재판부가 피해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을 삼가라는 요구를 미리 합니까’ 같은 것이다. 절차별 체크리스트로 모니터링을 하면 재판 일시, 장소, 재판부, 공판검사 등에 대한 분석을 구체적인 자료를 토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와서 재판을 보면서 뭔가를 적는 과정 자체가 감시 효과가 확실히 있다. 재판부도 방청객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와 사법시스템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마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다가 ‘디’라는 닉네임으로 바꿨다. 연대자D라고 할 때의 D는 알파벳 D가 아니라 우리말 형용사의 연결어미다. ‘순하디순한’, ‘강하디강한’ 할 때의 ‘디’다. 처음에는 내 역량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더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자리까지 온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거쳐 닉네임에 걸맞은 형태의 연결과 가교역할까지 연대자로서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려고 한다.”

      박송이 기자 2023.05.12 14:56

    • 사회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4)가해자-피해자 도식을 넘어

      한국에서는 인간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전체가 ‘가해자 vs 피해자’라는 도식으로 환원된다. 이 도식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학교 폭력,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아동 학대같이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직접적 폭력은 물론 노동 사고, 대규모 참사, 전쟁 범죄, 식민주의적 착취같이 개인적 수준을 벗어난 사건에도 적용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객관적 구조의 실종 폭력 사건에는 당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지만, 사건 전체를 이 두 행위자 사이의 상호관계로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건은 폭력을 용인하거나 방조하는 객관적 구조와 환경 아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교 폭력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학교라는 폐쇄적 사회관계, 교육 제도가 만든 폭력적 구조, 사회경제적 불평등, 괴롭힘과 학대를 사회적 관계의 하나로 활용하는 가학적 문화 등이 개입된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오로지 사람의 형태로 구현된 요소에만 집중한다. 즉 비인격적 구조와 환경을 시야에서 지우고, 사건의 모든 요소를 인격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 도식에서 정의(justice)는 두 행위자 간의 부채 관계를 청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보상하거나, 피해자의 고통에 상응하는 고통을 되돌려받는 방식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정의 구현은 늘 복수극의 형식으로 실현된다. 폭력의 구조나 환경을 어떻게 바꿀지는 핵심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의 형태가 아니고, 그 자체로 처벌이나 복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오로지 복수극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는 인격적 요소만을 다룬다. 이 도식은 복수극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폭력 역시 그에 따라 처리된다. 학교 폭력의 대응책은 폭력적 구조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학폭 가해자가 되면 대학에 못 간다’는 규칙을 세우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폭력이 발생하면, 조직의 문제는 그대로 두고 가해자만 적당히 잘라낸다. 물론 이런 식의 제재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고, 설사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했다고 해도 폭력적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결국 폭력은 재생산되고, 또 다른 사건이 뒤를 잇는다.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사이다 복수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규모 참사는 가해자 없이 피해자만 있는 사건이다. 피해자가 죽고 다친 원인은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은 책임자와 조직,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한 안전 시스템에 있지만, 이것들을 가해자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사건을 가해자-피해자 도식으로 접근하면 엉뚱한 결과가 초래된다. 누군가는 가해자가 없으니 피해자도 없다고 주장한다. 죽은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운 없이 사고를 당한 개인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안전 담당자들을 가해자의 자리에 올려놓으려 한다. 두 경우 모두 ‘가해자 없는 피해자’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규모 참사의 핵심은 구조, 시스템, 환경 같은 비인격적 실체 때문에 죽음의 위험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있다. 담당자의 과실은 단순히 인간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안전 시스템의 구성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참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한다. 놀랍게도 한국은 한일관계 역시 이러한 도식으로 접근해왔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단순히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했는지 아닌지에 있지 않다. 전후 유럽의 문제는 가해국과 피해국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탈나치화(denazification)를 실현하고 파시즘과 결별한 새로운 유럽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전쟁 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에 사과와 배상은 이러한 질서를 위한 중간 단계일 뿐이다. 일본의 문제는 단순히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 및 제국주의와 결정적으로 결별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한국은 어떻게 반파시즘적, 반제국주의적, 평화적 동아시아 질서를 수립할 것인지에는 별 관심이 없고, 가해국과 피해국의 상호관계에만 집중한다. 반성, 사죄, 배상은 일본에 요구해야 할 최소치다. 최대치의 요구를 위해서는 가해자-피해자 도식에서 벗어나 객관적 국제 질서를 사고해야 한다. 공동체의 실종 누군가는 이 칼럼을 보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냐?”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실제로 가해자 입장에서는 이 칼럼이 반가울 것이다. 자신에 대한 증오와 공격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가 좋아하든 말든,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에 갇힌 사람의 눈에는 오로지 행위자들만 보인다. 폭력을 용인하는 구조와 환경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사건 처리를 위한 제도와 공동체의 역할도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폭력적 사건이 발생하면 모든 문제를 가해자 진영과 피해자 진영의 대결로 몰고 간다.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가해자는 처벌을 받거나 받지 않을 수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기도 한다. 피해자 진영이 가해자 진영을 압도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다. 이것이 실제로 학교 폭력이 다뤄지는 방식 아닌가? 유명인이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것이 밝혀져 대중의 분노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해자에게 반성과 사죄를 요구할 다른 방법이 있는가? 인간을 향한 폭력은 공동체의 규범을 위반한 것이므로 모든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개입할 의무가 있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에는 이러한 공동체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3자는 공동체의 시민이 아니라 관전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지지하고 가해자를 비난할 뿐이다. 이러한 도식은 가해자에게 불리하고 피해자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피해자의 침묵을 요구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피해자는 자신을 지지해 줄 제3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피해 사실 자체를 폭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지지자들은 변덕이 매우 심해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공격의 화살을 피해자에게 돌린다. 이것이 지금 한국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 아닌가?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국가기구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며,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정당한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가해자의 죗값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행위자들이 놓여 있는 구조와 환경을 문제 삼고 객관적 규범에 따라 폭력을 다루지 않는 한, 그 죗값을 받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2023.03.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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