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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몰래 세상 돕는 ‘김장하 바이러스’…감염자가 100명, 1000명”

      책 <줬으면 그만이지>·다큐 <어른 김장하> 참여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인터뷰 <어른 김장하>에 출연한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 네이버 영화 “책이 나오고 난 뒤, ‘우리도 김장하 선생님한테 도움을 받았는데, 책에는 반영이 안 됐다’며 뒤늦게 제보를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하나하나 다시 정리하고 있는데, 그것만 해도 책 한 권이 더 나올 정도다.”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의 말이다. 김 전 국장은 김장하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피플파워)를 쓰고, 2023년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받은 <어른 김장하>(김현지 PD) 제작에도 참여했다. <어른 김장하>는 지난 11월 15일 영화로도 개봉해 현재 전국에서 상영 중이다. 김장하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60여 년 동안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했다. 남성당 한약방은 한때 약방을 찾는 손님들로 길거리 노천시장이 형성될 만큼 문전성시를 이뤘다. 김장하 전 이사장은 한 달에 단 하루만 쉬어가며 번 돈을 지역의 돈 없는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장학금으로 내주고, 지역 시민사회단체에 후원금으로 보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자동차도 없이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좁고 낡은 집에서 살며 안감이 다 헤질 때까지 옷을 입었다. 김 전 국장은 장학생 숫자가 “10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4년에는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했고, 1991년에는 학교를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김 전 이사장은 퇴임 인사말에서 명신고를 설립한 이유에 대해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이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은 김장하 선생의 나눔에는 ‘진주정신’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고 짐작했다. 김 전 국장은 “김장하 선생이 쓴 ‘진주정신에 관한 소고’라는 글에서 선생은 진주농민항쟁(1862년), 형평운동(1923년), 조선시대 남명 조식 선생의 실천적인 학문 정신 등을 강조하며 진주정신을 주체, 호의(好義), 평등 이 세 가지로 제시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가 심화하는 일련의 정치적 흐름 속에서 우리 진주시민들이 전통적인 진주정신을 잃어버리고 주체, 호의, 평등 정신을 살려내고 있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것 같다”라며 “그 정신을 되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장학금 지원이나 시민사회단체 후원 등은 ‘진주정신’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의 실현이기도 했다는 추측이다. 김 전 이사장은 숱하게 많은 사람을 도왔지만, 간섭하지 않았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김장하 장학생인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2019년 후보자 청문회 자리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김 전 이사장의 오랜 친구는 그의 인생을 ‘무주상보시’로 설명했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푼다는 뜻이다. 김 전 국장은 “대가 없는 나눔, 간섭 없는 지원, 바라는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보시 이런 걸 실천해온 사람이 김장하였다”고 말했다. 김장하 이사장의 삶을 7년 동안 취재해온 김주완 전 국장은 자신이 해온 나눔과 지원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는 김 전 이사장을 대신해 진주 지역의 많은 인물을 만나며 증언을 들었다. 그는 취재 과정을 통해 ‘100명의 김장하, 1000명의 김장하’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장하 전 이사장을 만난 후, 그의 삶을 닮고 싶고 그의 뜻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려고 하는 “‘김장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다. -김장하 전 이사장의 삶을 조명한 책 <줬으면 그만이지>와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 많은 사람이 감동을 표하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의 삶이 왜 반향을 일으킨다고 보는가. “김장하 선생의 삶이 알려지면서 진주에 여행 오는 사람도 늘었다. 남성당 한약방을 둘러보고 선생이 강조했던 진주형평운동(1923년부터 일어난 신분해방운동)의 유적지들을 돌아보고 가더라. 한약방 옆에서 자전거포 하는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셔터 내려진 한약방 앞에서 사진 찍고 가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고 한다. 김장하 선생의 삶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그동안 어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 사회에 굉장히 만연하지 않았나. ‘어른’은 사실 좋은 뜻인데 ‘어른’ 하면 ‘꼰대’라는 등식이 생길 정도다. 그러다 보니 세대 간 갈등도 첨예화되고, ‘노인’ 하면 즉각적으로 어버이연합의 ‘태극기부대’, ‘엄마부대’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사실 ‘어버이’, ‘엄마’라는 말은 굉장히 포근한 말인데도 본래의 의미가 사라졌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대에 진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을 만나니까 사람들이 그만큼 반가웠던 것 같다. 어른과 ‘꼰대’를 동일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어른’에 대한 갈망, 기다림 같은 것들이 은연중에 있었던 듯하다.” <줬으면 그만이지> 표지/ 피플파워 -2015년부터 7년간 김장하 전 이사장을 취재했다. “사실 ‘김장하’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91년이다.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한다는 뉴스를 통해서였다. 그때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꾸준히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한 건 2015년 3월이었다. 2015년 2월에 포털 다음 ‘뉴스펀딩’을 통해 ‘시대의 어른’ 다섯 분을 소개했는데 그 다섯 분 가운데 김장하 선생도 있었다. 김장하 선생에게 허락받지 않고 쓴 글이었다. 그후에 선생을 찾아뵙고 허락도 없이 글을 썼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크게 화를 내실까봐 두려웠는데, ‘이미 써버린 걸 어떡하냐’고 하시고는 말았다. 그러면서 김장하 선생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선생에 대한 취재와 기록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돌았다. 선생과 가깝게 지내던 이들도 선생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워낙 완강하게 싫어하시니 엄두를 못 내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이참에 ‘김주완 기자가 김장하 선생을 취재할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도와주자’는 이야기가 암묵적으로 나왔다. 이분들이 김장하 선생이 참석하는 모임이나 밥 먹는 자리에 나를 끼워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선생과도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른’ 하면 ‘꼰대’라는 등식이 생길 정도다. ‘노인’ 하면 ‘태극기부대’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진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을 만나니까 사람들이 그만큼 반가웠던 것 같다. ‘진짜 어른’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영어 제목이 ‘A man who heals the city’(도시를 치유하는 사람)이다. 김 전 이사장의 삶이 지역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보나. “우리나라 도시들의 특징이 익명성이 강하고, 파편화돼 있다. 그에 반해 진주는 공동체가 살아 있는 도시다. 물론 진주도 고령화가 심하고 보수적이긴 하지만 시민사회 또한 탄탄하게 살아 있다. 또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 또한 활발한 편이다. 전문예술법인 극단현장도 진주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상근 단원만 10명이 넘고, 공연 횟수는 800회가 넘는 전국구 극단이다. 서울의 유명한 극단들과 견줘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공연하러 다니는 예술공동체 ‘큰들’은 산청군에 마당극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진주의 문화예술적인 특성이 김장하 선생 한 분 덕분에 이루어진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밑바탕에는 선생의 대가 없는 지원이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수많은 단체가 지원을 받았다.” -책을 보면 진주신문을 비롯해 <친일인명사전> 편찬, 진주환경운동연합 등 정치를 제외한 모든 분야의 수많은 단체에 지원했다. “책이 나오자 선생을 평소에 잘 알고 있던 분들도 ‘이 정도였는지는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도 내가 도움을 받았고, 내가 소속된 단체가 도움을 받았다는 것 정도까지만 알지 어디까지 지원의 손길이 미쳤는지는 구체적으로 몰랐다. 선생이 스스로 말씀을 안 하니까. 책을 보고 ‘우리도 김장하 선생님한테 도움을 받았는데, 책에는 반영이 안 됐다’며 뒤늦게 제보를 하는 분도 굉장히 많다. 하나하나 다시 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것만 해도 책 한 권이 더 나올 정도다. 하나만 예로 들면, 행정고시 출신인 하승철 하동군수가 젊은 나이에 동장으로 재직할 때이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범죄피해자지원제도가 없었다. 관내에 부모가 범죄 피해를 당한 집이 있었는데, 그 자녀가 당장 살 곳이 없어진 상황이었다. 동장 입장에서 지원해줄 제도적 장치도 없고 끌어올 예산이 없어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한 직원이 남성당 한약방을 찾아가면 무슨 방법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한약방에 찾아갔더니 딱한 사정을 듣고 피해자의 자녀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전세로 바로 구해줬다. 빌려준 게 아니라 전세금을 그냥 준 것이다. 그런 일들이 끊임없이 제보로 들어오고 있다.” -국가 제도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이 미비한 상황에서 한 개인이 이를 보완하는 역할까지 한 것 같다. “지금은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라 젊은 사람들은 학교를 설립한 의미에 대해 잘 이해를 못 한다. 굳이 1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학교를 설립해 국가에 헌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1980년대는 학생 수는 엄청 늘어나는데, 학교가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한 교실에 수용되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콩나물 교실’이라고 불렸고, 그나마 수용하지 못해 2부제 수업을 할 때였다. 그 당시 진주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시험인 연합고사를 치면, 진주뿐만 아니라 그 인근에 있는 학생들도 지원했다. 해마다 수천명이 연합고사에 떨어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외곽에 있는 고등학교로 가야 했다. 학교 설립은 그 당시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교육 수요를 대신 감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에 이미 여성 운동 분야에까지 지원했다. 1996~2000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진주지부 이사장을 맡으면서 가정폭력 피해여성 보호시설인 ‘내일을여는집’ 설립을 지원했다. 책에 수록된 내일을여는집 사회복지법인의 정행길 한울타리 이사장의 다음 말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그런 인식(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편견)이 경상도 남자는 더했는데, 김장하 이사장님은 ‘여성도 인간이다’ 거기서부터 출발을 하시더라고요. 너무나 놀라운 일이죠. 사람은 다 인간이고, 인간이면 똑같이 대접받아야 하고, 우리가 그런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 우리 상담소는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변론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거든요. 그걸 활용해 여성도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주자, 이사장님은 딱 그런 자세였어요. 참 드문 분이셨죠.” “그렇다. 선생은 정치인들에게는 지원을 안 했지만, 어떻게 보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단체들은 지원을 해왔다. 사실 나는 ‘선생께서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분이라고 해도 그 연세, 그리고 경상도 남자라는 특성으로 여성관에 대해서는 가부장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지레짐작으로. 만약에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이해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또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취재하는 과정에서 지레짐작이 완전히 깨졌다. 선생은 이미 그 시절에 호주제 폐지에도 동참하며 거리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전부 여성들 사이에서 선생 혼자 남자로, 그것도 나이 지긋한 남자로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걸 보면서 내 생각이 완전히 깨졌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김장하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네이버 영화 -1992년부터 2004년까지 형평운동기념사업회 회장과 이사장직을 맡았다. 지역 단체를 주로 뒤에서 돕는 편이었고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 김 전 이사장에게 이례적인 일이었다. 형평운동은 무엇인가. “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백정해방운동, 계급철폐운동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전국단위의 운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태동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거친다. 형평운동은 진주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했다. 진주의 역사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형평운동의 기본사상이 평등이다. 1992년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선생이 앞장서서 설립하면서 구두로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과거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 그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지금도 잔존하는 차별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남녀 간의 차별, 빈부의 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등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했다. 모든 분야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평등정신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선생이 여성 문제에 대해서도 일찍이 그런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진주’라는 공간과 지역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다. “짐작이긴 한데, 선생이 ‘진주정신에 관한 소고’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선생은 진주농민항쟁(1862년), 형평운동(1923년), 조선시대 남명 조식 선생의 실천적인 학문 정신 등을 강조하며 진주정신을 주체, 호의(好義), 평등 이 세 가지로 제시했다. 이 세 가지가 진주의 역사적 전통인데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일련의 정치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 진주 시민들이 전통적인 진주정신을 잃어버리고 주체, 호의, 평등 정신을 살려내고 있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정신을 되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또한 짐작이지만 그런 연장선상에서 형평운동기념사업회도 만들고, 그 세 가지 정신에 부합하는 단체들에도 지원하셨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저 단체가 좋아 보이거나 지인이 부탁해서 지원해준 차원이 아니라 ‘진주정신’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 내지는 바람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원을 하신 것 같다.” “선생은 단체에 지원을 하든 개인에게 장학금을 주든 일체 간섭이 없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 이런 당부나 훈계조차 들어본 사람이 한명도 없다. 남에 대한 우월의식이나 콤플렉스가 전혀 없었다.” -뜻이 강할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선생은 단체에 지원을 하든 개인에게 장학금을 주든 일체 간섭이 없었다. ‘너,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 이런 당부나 훈계조차 들어본 사람이 한명도 없다. 명신고를 운영할 때도 교장선생님이나 교사들에게 ‘이런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교사가 돼야 한다’ 주문을 한 적이 없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사람 중에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나만큼 노력을 안 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이가 많다. 김장하 선생도 가난한 집안환경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에겐 그런 콤플렉스가 전혀 없었다. 얼마나 스스로 수양을 하면 저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김 전 국장은 30여 년 전 김장하 전 이사장의 존재를 알고 그 영향을 받아 자동차를 사지 않았다고 했다. 책에 나오는 주변 분들 모두 한결같이 조금이라도 김 전 이사장의 삶을 닮으려고 하고, 또 김 전 이사장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차를 사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검찰에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 기자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초반, 지역신문 기자 월급으로는 자가용 승용차를 모는 건 아무리 따져봐도 타산이 맞지 않았지만, 너도나도 차를 사는 분위기였다. 알고보니 당시만 해도 명절을 비롯한 이런저런 기념일들에 기자실로부터 ‘촌지’가 나왔던 것이다. 규모가 작은 지역 언론사일수록 검찰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는 어렵다. 또 그러기에는 약점이 많았다. 검찰의 정보라인은 언론사 사주의 비리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어디 가서 돈을 받았는지 수집하고 있었을 터였다. 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권력기관에 약점 잡힐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가 김장하 전 이사장의 존재였다. 돈이 그렇게 많아도 평생을 차 없이 살며 남을 돕는 분도 있는데, 나는 김장하 선생처럼 돈으로 사람들을 도울 순 없지만, 적어도 떳떳하지 못한 돈을 받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들, 또 김장하 선생을 아는 분들은 모두 각자 자기 자리에서 선생을 가슴에 품고 선생만큼은 아니더라도 선생처럼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는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2021년 타계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등 지역사회의 숨은 어른들을 발굴해 취재해왔다. 여기에 대한 남다른 소명의식이 있나. “우리 주변을 찾아보면 훌륭한 어른들이 많다. 단지 우리가 찾지 않을 뿐이다. 또 어른이라고 할 만한 분들은 김장하 선생처럼 스스로 잘 나서지를 않는다. 돈을 많이 벌어 훌륭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훌륭한 삶을 살아오신 어른이 굉장히 많다. 김장하 선생과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정말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어른들을 계속 찾아서 취재하고 있다. 오히려 어른이라고 불리기 어려운 이들이 뭔가를 뻥튀기하듯 부풀려 부각하려고 해서 ‘진짜 어른’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언론이 그러한 어른들을 안 찾아서 그렇다. 얼마 전 모 대기업 회장이 초등학교 동창 등 고향 사람들에게 1억원씩 보내 화제가 되지 않았나. 포털에 몇 날 며칠씩 기사가 돌아다니던데 기업에서 홍보하는 내용은 그렇게 크게 쓰면서, 본인을 내세우지 않고 지역에서 묵묵히 역할을 해온 어른들은 찾아서 보도하지 않는다.”

      박송이 기자 2023.11.17 16:10

    • 사회

      백화점 집단감염의 비밀, ‘후방’에 있다

      ㆍ고객에겐 보이지 않는 열악한 직원공간에서 바이러스 확산… 확진자 나와도 ‘쉬쉬’ 코로나19 집단감염엔 방역당국이 강조하는 공통점이 있다. 밀폐·밀접·밀집의 ‘3밀 환경’이다. 감염병 확산 속에서도 이런 환경을 유지한 일터들은 바이러스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각각 150명대의 집단감염이 발생한 콜센터(구로구 코리아빌딩), 물류센터(쿠팡 부천 물류센터)가 대표 사례다.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8일간 휴점했던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 지난 7월 13일 영업을 재개했다. 입장객은 QR코드 등을 이용해 출입 기록을 남기고 체온을 체크한 뒤 입장했다./연합뉴스 올해 4차 대유행 국면에서는 백화점이 바이러스의 새로운 먹잇감이 됐다. 지난 3주간 서울 내 백화점을 통해 감염된 이들은 160명. 그중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발 확진자는 147명이었고 판매직원이 약 70%를 차지한다. 일견 쾌적해 보이는 백화점의 방역에 왜 구멍이 뚫린 것일까. 그리고 왜 피해는 주로 직원들에게 집중됐을까. 고객에겐 보이지 않는 ‘후방’ 백화점의 판매직원 동선은 철저히 고객 눈에 띄지 않게 짜여 있다. 이들은 ‘후방’으로 불리는 협소한 구역 안에서 이동하고, 쉬고 식사한다. 휴게실이 비좁아 상당수가 창고나 비상용 계단에서 지친 몸을 달랜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는 출퇴근, 식사시간엔 “두어 번은 그냥 보내야 할 정도”(서울의 한 백화점 직원 A씨)로 꽉 찬다고 한다. 대다수의 백화점은 직원 탈의실(라커룸)도 한개씩만 두고 있어 수백명이 같은 시간에 몰릴 수밖에 없다. 백화점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5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응한 한 백화점 노동자는 고객에게 멱살잡이를 당한 후 쉴 곳조차 찾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어디 가서 실컷 울고 나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백화점 내 직원 휴게실은 이 망가진 영혼 하나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중략) 차가운 비상용 계단에 앉아 1시간을 쉬지도 않고 소리도 못 내고 울었습니다.”(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의뢰해 진행한 ‘유통업 서비스판매 종사자 건강권 실태조사’, 2016년) 당시 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73개 백화점의 휴게실 수용가능 인원은 백화점 한곳당 21명이었다. 중간규모 백화점에 대개 2000명 안팎의 판매직원이 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백화점의 판매직원 동선은 철저히 고객의 눈에 보이지 않게 짜여져 있다. 직원들은 ‘후방’이라고 불리는 공간에서 움직이는데, 휴게실이 매우 협소해 창고 등으로 내몰릴 때가 많다./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조합 제공 협소한 백화점 ‘후방’은 결국 바이러스의 공격 대상이 됐다. 방역당국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지하 식품관 직원 창고와 라커룸 등이 집단감염 진원지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백화점은 지난 7월 13일부터 라커룸 개보수에 착수하고, 직원 휴게공간을 새로 만들었다. 이제야 직원공간을 일부 손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종일 서서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백화점 직원들에게 적정 휴게공간은 ‘필수’지만 정부와 백화점들은 그간 이 사안을 모른 척하다시피 했다. 김종진 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당시 인권위는 실태조사를 하고도, 휴게공간 확대를 권고사항에서 제외시켰고 정부도 강제성이 없는 휴게시설 가이드라인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벌어지자 백화점 측은 “비좁은 휴게실의 소파를 띄엄띄엄 배치하는 수준”(A씨)으로 대응했다. 직원들은 쉴 곳을 찾아 창고 등으로 더욱 내몰렸다. 거대한 유동인구(고객)와 3밀의 환경(직원공간)에 동시에 노출돼온 백화점 직원들이 “집단감염은 예견된 사고”(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조합)였다고 말하는 이유다. 백화점 집합금지는 없다 그간 백화점의 코로나19 방역은 주먹구구였다.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해당 매장만 폐쇄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층 전체를 폐쇄하는 곳도 있었다. 심지어 확진사례가 나와도 ‘쉬쉬’ 하는 백화점들이 많았다. 서울의 한 백화점 직원 B씨는 “보름 전쯤 백화점 측이 사내 방송으로 지하 1층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알렸는데 어느 매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면서 “확진자가 직원이었는데, 직원공간을 함께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지금까지도 동선을 모른다”고 했다. 백화점 노조는 “부산, 서울 등의 일부 백화점에선 확진자가 나와도 아예 공지조차 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조합 회원이 7월 19일 서울시청 앞에서 백화점 직원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1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박민규 기자 정부의 ‘거리 두기 체계 완화’는 백화점의 헐거운 대응을 부채질했다. 올 6월까지 시행됐던 과거 거리 두기 지침에는 전국유행 단계인 ‘3단계’ 때 “백화점 등 대규모 점포 집합금지” 조치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7월부터 적용된 새로운 체계에서 백화점은 아무리 단계가 높아져도 ‘집합금지’는 물론 ‘인원 제한’ 등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 4단계 때 ‘밤 10시 이후 운영제한’이 적용되지만 8시에 문을 닫는 백화점엔 의미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백화점뿐 아니라 대부분의 다중이용시설이 (4단계 때에도) 집합금지에서 제외됐다”면서 “백화점 식품관 등은 필수시설로 봐야 한다는 판단도 있어서 과거 체계로도 (최고 단계에서) 집합금지는 시행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 방역을 둘러싼 혼선은 집단감염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서울시는 서울 내 백화점 전 직원 12만8000여명에 코로나19 선제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실효성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백화점 측과 입점 협력업체들이 직원들에게 ‘개인 휴가를 이용하라’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C씨는 “애초 서울시가 약 한달이라는 기간을 준 것 자체가 탁상공론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단기간 문을 닫고 한꺼번에 검사를 받아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C씨가 일하는 백화점에선 ‘개인 휴무일에 코로나19 검사를 받거나 연차를 쓰라’는 공지가 내려왔다고 한다. 그간 백화점들이 방문자 기록을 소홀히 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선 출입기록 미작성 고객이 많아 코로나19 검사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자 산업통상자원부는 뒤늦게 ‘QR코드’, ‘안심콜’과 같은 출입기록제도를 일부 백화점에 시범 도입했다. 출입기록제도가 정식 도입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집단감염이 일어났건만 백화점에 제대로 된 제재를 할 수가 없다는 점을 두고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의 4단계는 과거의 2단계만도 못한 수준”이라면서 “방역당국이 ‘개인 간 거리 두기’에만 집착하고 있다. 호텔, 쇼핑몰의 교차지점에 놓여 있는 백화점 등에 사람이 모여드는 문제엔 제대로 된 조치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왜 백화점 방역에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마저 쉽지 않은 것일까.

      송윤경 기자 2021.07.23 15:04

    • 경제 우리가 모르는 인도

      [우리가 모르는 인도](4)코로나 감염 대국에서 백신 제조 대국으로

      2020년 12월 22일 기준, 인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수는 1010만명으로, 전체인구의 0.8%가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망자수 14만6000명, 완치자 966만명으로 사망률 1.5%를 나타내고 있는데, 2020년 9월 중순 일일 확진자수가 9만6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12월 일일 확진자는 2만명대로 줄어들며 신규 발생률은 둔화되고 있습니다. 인도 뉴델리 지역에 마련된 코로나19 치료센터 / AFP 연합뉴스 인도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시점부터 봉쇄령을 내렸는데, 확산을 막으려는 이유도 있지만 애초에 열악한 자국의 보건 인프라를 고려해 ‘확산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의 이동, 경제적 타격을 고려한 점진적 봉쇄령 해제, 농민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농민시위 등이 반복됐지만 ‘급속한 확산 방지’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습니다. 확산을 최대한 늦추려 했던 것은 가능한 모든 해결책을 찾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도는 일찍부터 백신 개발과 확보에 발 빠르게 움직여왔고, 현재까지 자체개발 백신 후보 3개, 해외 백신 4개를 확보해 1월부터 3억명 접종을 목표로 백신 공급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인도가 지금까지 확보한 백신 물량은 16억도즈로 인구의 60%를 커버할 수 있는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발 빠른 확보와 생산 어떻게 가능했나? 그렇다면 인도는 어떻게 이렇게 발 빠르게 백신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요? 인도는 전 세계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수출물량의 2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제네릭 의약품 공급국가입니다. 시장 전체 매출의 95%가 수출입니다. 2019년 수출액은 193억 달러로 전년 대비 9.4% 증가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백신 분야의 경우 전 세계 수요의 50%, 미국 수요의 40%, 영국 의약품 전체의 25%를 공급하고 있고, 유네스코에도 50~60% 이상의 가장 큰 물량을 공급하는 국가입니다. 세계 12대 생명공학 국가 중 하나이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3위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다음으로 세계 최대의 재조합 B형간염 백신 생산국이라는 잠재력도 있습니다. 이렇게 제약 및 생명공학 분야에서 나름대로 기반을 구축해온 인도였기에 코로나19 백신의 대량 생산이 논의되던 7~8월부터 여러 글로벌 제약사와 본격적으로 협력해 전 세계 백신 공급국으로 기반을 다지게 됐습니다. 우선 인도가 확보한 백신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외 개발 백신으로는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미국의 노바백스,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미국의 베일러 의과대학이 다이나백스와 협력해 개발 중인 백신, 화이자 백신이 있습니다. 자국 개발 백신으로는 카딜라의 ZyCov-D, 바라트 바이오테크사의 코백신 등 총 7개의 후보 백신이 임상 허가를 받았습니다. 현재까지 개발된 해외 후보 백신 중 아스트라제네카, 스푸트니크V, 화이자 백신 3가지는 총 16억도즈를 사전 주문해 자국 공급용으로 확보했는데, 인도 정부는 13억 인구의 60%에 해당하는 최소 9억명이 백신을 접종하고 나머지 백신은 전 세계 가난한 국가에 공급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제조한 해외기업의 백신은 사전주문량 이상을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고, 나머지 생산물량은 WHO가 주도하는 코백스 시설로 보낼 예정입니다. 인도 정부는 코백스에 1500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 했으나 향후 백신 생산국으로서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에 수출할 것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인도에 가장 적합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월 말까지 총 2억도즈가 접종될 예정이며, 이를 제외한 나머지 생산량의 50%는 저소득 및 중간 소득 국가에 공급하되 1회 투여 단위당 3달러로 가격을 제한했습니다. 1월에 실시할 첫 번째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의료계 종사자, 경찰, 자원봉사자, 취약계층 등 총 3억명으로 면역력을 갖기 위해 2회 접종이 필요하므로 총 6억회 투여분이 공급됩니다. 8월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완료할 예정입니다. 7개의 백신 후보, 16억도즈 백신 확보 인도는 60년 전 대대적인 소아마비 백신 접종 캠페인을 해온 경험을 비롯해 연간 5500만명을 접종하는 방대하고 체계화된 예방접종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8개월 이내에 3억명을 접종해야 하는 이번과는 그 규모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에 대내외적으로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도 정부는 인도의 선거시스템을 기반으로 구역별 투표소 형태의 백신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즉 2019년 총선에서 9억명의 유권자에게 적용됐던 홍채 및 지문정보를 기반으로 한 아다르(Aadhaar)카드로 신원을 확인하고, 투표 대기를 위해 쓰였던 프로세스 등을 백신 접종 시스템에 적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백신과 접종자 간의 추적이 가능하도록 디지털 플랫폼인 Co-WIN(Covid Vaccine Intelligence Network)을 활용해 백신의 접종 및 부작용 모니터링 등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1일 100~200명이 접종할 수 있도록 2만9000개 지역에 8만개 이상의 콜드체인 장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코로나19로 세계 2위의 감염국이라는 위기를 맞았지만, 기존에 제네릭 의약품 및 백신 제조 경험을 십분발휘해 ‘전 세계의 약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의약품을 저렴하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인도가 현재 백신 제조의 글로벌 허브로 주목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코로나19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인도는 팬데믹의 희망인 ‘백신’ 공급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걸까요? 이미 20개국을 대상으로 백신 외교를 펼치고, 정부는 전례 없던 빠른 행정으로 긴급승인을 비롯한 관련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며, 코로나19가 인도 정부에 최우선으로 효과적인 백신을 투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유진은 화학산업 컨설턴트로 일하다 삶의 전환점을 인도에서 찾게 된 것을 계기로 2009년부터 인도 뭄바이에서 살았다. 인도의 문화와 산업을 비즈니스와 통합하는 큐레이팅 스타트업 회사를 운영하며 현재는 국내에 머물고 있다.

      한유진 스타라진 대표 2021.01.04 15:40

    • 문화/과학 신간

      [신간]감염병과 사회 外

      ㆍ“감염병 종식 믿음”은 큰 오류 <감염병과 사회> 프랭크 M. 스노든 지음·이미경, 홍수연 옮김 문학사상사·2만7000원 2013년 말, 아프리카 기니에 살던 한 꼬마가 집 근처의 속이 빈 나무에서 놀고 있었다. 숲이 대규모로 개발되면서 갈 곳을 잃은 과일박쥐가 둥지로 삼은 곳이다. 불행히도 아이는 숨 쉬다 박쥐 배설물에서 나온 에볼라 바이러스를 들이마셨다. 도시화는 아프리카의 에볼라 유행에 이렇게 영향을 줬다. 코로나19 대유행에는 세계화 현상이 더해졌다. 코로나19는 항공 여행으로 연결된 지역 간에 전파됐다. 중국과 교류가 활발했던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한 이유다. 이 지역은 이탈리아 경제·산업 중심지로 대기오염이 심했는데 이는 코로나19의 중증도와 치명도를 높였다. 모두 감염병은 사회적 현상이라는 방증이다. 페스트 이후 감염병과 사회적 변화의 연관성을 조명한 이 책에서 저자는 감염병을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출간된 책이라 “20세기의 가장 큰 오류는 감염병이 종식되었다는 믿음”이라는 경고는 더 통찰력이 있어 보인다. ▲문재인 이후의 교육 | 이범 지음·메디치미디어·1만6000원 한국은 코로나19로 모든 초·중·고교에 원격교육을 도입했다. 저자는 이런 보편적 원격교육에 창의성과 유연성을 더한 ‘K에듀’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를 위한 3대 원칙으로 교사의 자율성, 콘텐츠 다양성, 보편적 접근권 보장을 들었다. 교사 개인으로서 교과서 집필은 물론 선택도 불가능한 ‘교권’ 바닥 상태를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했다. 교육 과정을 지나치게 세세히 규정해 창의적 수업과 평가를 방해한다고 말했다. 공동입학제로 입시경쟁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배움은 떠나야만 가능하다 | 김우인 지음·열매하나·1만4000원 대안학교 학생이 생태적 교육을 고민하는 대안학교 교사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저자는 억압적인 조직문화, 학력과 경제력으로 남을 평가하는 사회를 벗어나 지구 곳곳의 생태마을로 향한다. 생태마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 그들과 오간 대화를 정리했다. ▲능력주의와 불평등 | 홍세화 외 지음·교육공동체벗·1만4000원 입시경쟁과 학벌차별, 엘리트 특권 의식의 근간에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저자들은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능력주의의 작동 방식과 해악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한다. 능력주의가 차별과 혐오의 논리로 작동하며 특권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한다. ▲푸도폴리 | 위노나 하우터 지음·박준식, 이창우 옮김 빨간소금·2만5000원 푸도폴리는 먹거리 독점을 뜻한다. 저자는 농민이 건강한 농산물을 기르지 못하고 식료품점에서 소비자의 선택이 제한되는 이유로 대기업의 먹거리 생산 통제를 들었다. 농업정책이 농업 대기업을 지원하고 독립적인 농민과 업체를 몰아내는 데 악용됐다고 고발한다.

      주영재 기자 2020.12.04 14:23

    • 정치 시사 2판4판

      [시사 2판4판]3차 감염

      미래통합당 일부에서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 논란이 역풍을 맞고 있다. ‘세상이 뒤집힐 만한 증거’라고 공언했지만, 특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극우 유튜브발 의혹은 뚜렷한 증거 없이 ‘설(說)’만 양산하고 있다. 의사 어떻게 오셨나요? 학생 밤에 잠이 안 옵니다. 의사 언제부터 그렇지요? 학생 4월 15일 시험을 치르고 난 뒤부터 그렇습니다. 의사 무슨 생각에 잠이 안 옵니까? 학생 내가 다른 애들보다 성적이 낮을 리가 없어요. 누가 시험 성적을 조작했을 거예요. 의사 어떻게 그렇게 믿고 있지요? 학생 세상이 뒤집힐 만한 증거가 있다고 어떤 분이 말씀하셨어요. 의사 인천에서 온 그분 말이지요? 학생 네. 의사 그분은 유튜브발 2차 감염자로 지금 입원 중입니다.

      ·윤무영 그림·성덕환 2020.05.15 16:55

    • [취재 후]감염병에 대한 ‘마음 방역’

      사회 취재 후

      [취재 후]감염병에 대한 ‘마음 방역’

      코로나19 국면에서 유효한 방역은 사실상‘물리적 거리 두기’가 유일합니다. 이 캠페인 덕분에 두 달 사이 일터의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가 활성화됐습니다. 누군가는 코로나19 덕분에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았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합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모든 일터에서 물리적 거리 두기가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임금 서비스 직종 종사자들은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며 일합니다. 이른바 감염병 취약 계층입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에 따르면 감염병에 대한 위험은 임금 수준이 낮을수록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감염에 대한 불안감에 더해‘나는 보호받지 못하는 집단에 속한 사람’이라는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런 감정이 뒤섞여 우울증으로 나타납니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우울증‘코로나 블루’입니다. 일감이 끊긴 이들도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일단 일터에서 밀려나 추락하고 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공포감마저 듭니다. 현장에서 코로나 심리상담 서비스를 하는 전문가들은 현재 상담사례 대부분이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생계 불안에 대한 것들이라고 말합니다. 장애인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은 더 큽니다. 물리적 거리 두기로 지원 서비스가 중단되면 홀로 고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확진되거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될 경우 활동지원사의 발길도 끊깁니다. 당장 먹고 씻고 자는 일부터 막막해집니다. 취재 중 알게 된 한 중증장애인은“코로나19 이후 극단적인 생각을 자주 한다”며 불안한 심리 상태를 호소했습니다. 코로나 블루의 근본 원인은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됩니다. 코로나 국면이 장기화될수록 취약 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불안감이 사회구성원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감염병에 대한 방역만큼이나‘마음 방역’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마음 방역은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넓고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있다면 마음 방역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얘기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더 탄탄한 사회 안전망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메르스를 겪은 뒤 체계적인 감염병 방역 체계를 만들어냈듯이 말입니다.

      반기웅 기자 2020.04.06 15:15

    • 사회 법률 프리즘

      [법률 프리즘]종교의 자유보다 감염병 예방이 우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유행이다. 학교와 유치원은 언제 개학할지 불분명하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회합은 없어지다시피 했다. 게다가 이번 코로나19 확진자의 대부분이 신천지 집회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여 종교 집회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한국 천주교는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를 중단했고, 조계종을 비롯한 많은 불교 종단들, 많은 개신교회도 법회와 예배를 중단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정부가 예배 등의 중단을 요청하는 것이 종교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예배 등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법적·철학적 기반은 무엇일까.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지난 3월 2일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평화의궁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도들에게 보내는 특별 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연합뉴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제49조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과 지자체장은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흥행·집회·제례 또는 그 밖의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해야 한다. 문언상 재량행위가 아니라 기속행위라 지자체장 등은 제한할 의무가 있다. 이 법이 종교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을까? 종교보다 공공보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종교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으로 이어지는 핵심적인 기본권이라는 점에서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종교의 자유가 기본권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종교의 자유에는 ‘종교를 가질 권리’뿐 아니라 ‘종교를 가지지 않을 권리’도 포함된다. 서양 중세 시절, 종교의 자유는 기본권이 아니었다. 종교의 자유를 최초로 명시한 헌법은 ‘권리장전’으로 불리는 미국의 수정헌법인데 가장 첫 번째 기본권으로 종교의 자유가 명시된다. 누구나 자유롭게 종교를 가지고 종교 행위를 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막거나 장려할 수 없다는 내용의 수정헌법 제1조는 원래 종교인의 정치적 권위를 부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면이 크다. 하지만 결국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권의 어머니가 됐다. 반면 유럽에서 종교의 자유란 정교분리의 맥락이 강하다. 종교전쟁을 겪고, 종교 권력과 투쟁하면서 만들어진 유럽의 근대 국민국가는 국가와 민주주의를 하나의 ‘시민 종교’로 삼고,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종교적 표현은 공적 영역에서 철저히 금지한다. 이슬람 여성이 ‘부르카’를 착용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종교의 자유 이름으로 허용되고, 프랑스에서는 종교의 자유로 금지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결국 헌법은 종교가 국가 공동체의 틀 안에 있을 때, 그리고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 제한할 수 있는’ 조건에서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현재와 같이 공공보건의 위협이 되는 경우라면 종교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는 필요한 범위만큼 제한될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하루 전,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에게 죄송하다’면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갖고, 국가와 사회를 뛰어넘는 능력을 가졌다는 교주조차 국가와 헌법, 그 근본이 되는 국민 다수의 결단 아래에서는 한 명의 국민에 불과함을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소속 변호사 2020.03.06 14:32

    • [편집실에서]감염병과 가짜뉴스

      오피니언 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감염병과 가짜뉴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가 번성하던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비롯한 펠로폰네소스 동맹 도시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 후 2년째인 기원전 431년, 아테네에 불청객이 덮쳤습니다. 바로 역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열에 시달렸고, 혀와 목구멍에는 피가 맺혔습니다. 구토와 설사가 끊이지 않았고, 몸엔 부스럼과 궤양이 번졌습니다. 거리 여기저기서 벌거벗은 채 뛰쳐나와 극심한 갈증을 호소하며 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쓰러졌습니다. 시내 곳곳에 시체들이 널렸고, 그것을 뜯어먹기 위해 짐승과 새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최악의 역병은 2년간 창궐했고,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습니다.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웠던 아테네의 황금기를 끝낸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역병이었습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이 역병의 참상은 인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2020년 새해 초부터 새로운 감염병 하나가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1월 30일 현재 중국에서만 7827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도 170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유럽·호주 등 확진자가 발생한 나라만 20개국에 이릅니다. 각국의 철저한 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의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등을 겪으면서 국가의 방역 시스템은 상당 부분 개선되고 발전했지만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에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병의 위협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와중에 판치고 있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입니다. 의학의 발달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통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런 가짜뉴스 등을 급속하게 퍼뜨리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늘었다’느니 ‘OO에는 가지 말라’는 식의 가짜뉴스를 SNS에 올려 불안을 증폭시키는 겁니다. ‘신종 코로나가 박쥐를 먹는 중국인의 기상천외한 식습관에서 유래했다’거나 ‘중국이 비밀리에 생물학무기를 개발하다가 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등의 황당한 주장도 나돕니다. 감염병을 저급한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중국인에 대한 입국정지’, ‘중국 관광객의 송환’ 등을 주장하며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했지만 인간은 이를 정복하며 세대를 이어왔습니다. 미생물의 존재를 발견하고, 백신과 치료약이 등장하면서 하나하나 극복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언젠가 인류의 반격에 꼬리를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감염병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틈탄 가짜뉴스와 음모론은 더욱 활개를 칠지 모릅니다. 이런 행태들은 감염병 이상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감염병이 나타난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장면들은 한 사회의 보건시스템뿐 아니라 그 사회의 이성과 합리성의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입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2020.02.03 16:34

    • 사회 법률 프리즘

      [법률 프리즘]감염병 비상, 장애인을 위한 매뉴얼은 없다

      우한 폐렴으로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설 연휴까지 중국의 감염자는 3000여 명, 사망자는 80명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도 네 번째 감염자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가 확산되던 시기에 스산했던 사회의 풍경이 생각난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쏟아지던 공포와 비난의 눈길이 너무 따가워 마스크가 눈빛도 걸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또 여러 걱정이 들었다. 지난 1월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네 번째 확진자가 치료 중인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에서 병원 관계자가 닫힌 문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권도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중국 우한시가 봉쇄되기 전에 500만 명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 중 일부는 입국 시 검역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하고 잠복기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난 뒤에야 감염 사실이 알려졌다. 감염병의 확산이 문제될 때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질책도 매섭다. 예방백신도, 치료제도 특별히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최대한 감염병을 관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언론은 괴담이나 특정 국가와 사람에 대한 혐오보다는 정부의 대책, 감염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불안을 최소화하고 스스로 조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감염병 관리 시 우선 고려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특히 활동지원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들이 그렇다. A씨는 메르스 사태 때 평소 신장 투석을 받던 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다. 메르스 관리대책본부가 활동지원사의 출입까지 통제시켜 A씨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식사·목욕 등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견디지 못해 병원에 입원하려고 했으나 입원도 거부당했다. A씨는 정부를 상대로 장애인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3년이 넘도록 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감염병예방법상 제4군 감염병에 해당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감염병 예방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을 작성해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제2차 감염병 예방관리 기본계획(2018~2022년)과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에 장애인을 고려한 대응은 찾아볼 수 없다. 제5차 장애인 정책종합계획(2018~2022년)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사회 삶이 가능토록 복지·건강 서비스 지원체계를 개편한다’는 전략은 있지만, 그에 맞는 대책이 없어 감염병이 확산될 때 장애인들은 질병에 걸리지 않아도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국가의 정책은 장애인을 포함한 취약계층에 대한 고려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을 잘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인조차 배제되지 않을 정도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는 정부라면 대다수 비장애인 시민을 위한 정책은 더 잘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2020.02.03 16:32

    • [건강설계]사랑하는 이에게 성병 감염이 된다면

      건강 건강설계

      [건강설계]사랑하는 이에게 성병 감염이 된다면

      오래전에 할아버지가 각종 성병을 옮기는 바람에 젊은 시절 안 앓아본 성병이 없었던 할머니 한 분이 매해 ‘종교의식처럼’ 병원을 찾아 성병검사와 항생제 처방을 달라고 떼를 쓰시는 바람에 아주 난감했던 적이 있다. 매독, 임질, 사면발니 등 온갖 질환에 늘 약국, 병원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고열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으며 후유증으로 허리와 골반이 항상 아프다고 하셨다. 너무 심하게 염증을 앓다보니 50대에 자궁을 적출했는데 정확한 병명조차 모르셨다. 너무 아파서 적출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성병이 불치의 병이고 여전히 성병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면서 젊은 시절 한참 고생할 때 출산한 두 딸도 매독, 임질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도 하루에도 몇 번씩 뒷물을 하고 매번 검사를 받으러 오지만 결과는 항상 깨끗하다. 오히려 너무 씻어대다보니 곰팡이 질염이 생기기도 한다. 두 딸의 속옷을 매번 검사하니 딸들과도 사이가 틀어졌다. 딸들의 속옷을 검사하여 분비물이 조금 묻어 있기만 하면 병원에 와서 딸들의 약을 달라고 조르셨다. 아예 딸들을 병원에 데리고 와서 반강제로 검사를 시킨 적도 있었다. 매년 잘 설명을 드리고 안심시켜드리니 내원 빈도가 줄다가 어느 순간 병원에 오질 않으시자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진다. 문득 이 할머니가 생각난 이유는, ‘자신은 유레아플라즈마 골반염이 낫지 않는다’고 믿는 H 여사 때문이다. 그녀는 오래전 감염 후 크게 고생하고 내성으로 치료가 길어졌으나 이후 균 음성을 확인하고 통증, 빈뇨 등 동반증상도 호전인데 분비물만 늘어나면 유레아플라즈마 재발이라고 생각한다. 균이 검출이 되지 않음을 정밀검사를 해서 알려줘도 믿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다니며 또 검사를 하는 듯했다. 심한 증상을 유발한 남편을 원망하며 2년 전부터는 부부관계도 안하고 있다. 한동안 병원에 오지 않다가 최근 불안증으로 정신과 약제의 도움을 받기에까지 이르렀고, 다시 ‘유레아플라즈마 포비아(공포)’가 시작되었다. 남녀가 만나 서로 위로와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상처와 증오를 남기기도 한다. 성병이 전염되어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정상적인 의식을 좀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랑하면서 성관계로 인한 질병을 넘겨주어 배신감에 상대를 아프게 하지 말자.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글·김경희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대표원장 2018.11.26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