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환경파괴 비판받았는데···경북 산불 확산 막은 ‘이것’... 경제다, 풍력산업 활성화와 국내 제조업 육성을 위한 토론회’에서 처음 알려졌다. 지난달 말 경북 산불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갔다면 영덕군 영해면과 양양 읍내까지 번질 수 있었으나 Y3 능선에서...
주영재 기자 2025.04.19 07:00
사회
환경파괴 비판받았는데···경북 산불 확산 막은 ‘이것’... 경제다, 풍력산업 활성화와 국내 제조업 육성을 위한 토론회’에서 처음 알려졌다. 지난달 말 경북 산불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갔다면 영덕군 영해면과 양양 읍내까지 번질 수 있었으나 Y3 능선에서...
주영재 기자 2025.04.19 07:00
사회
‘경북 산불’ 이재민 임시주택 첫 입주···다음달 말까지 공급완료 목표... 모습. 연합뉴스 ‘경북 산불’로 주거지를 잃은 이재민들이 임시주택에 처음으로 입주했다. 18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이날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권정생 어린이문학관 부지에 설치된 모듈러주택에...
백경열 기자 2025.04.18 12:51
정치
이재명 “대구·경북은 제 뼈와 살과 피 만들어줘···재도약 이끌겠다”... 후보 이재명이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신화, 대구·경북의 재도약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대구·경북에 이차전지 산업벨트와 미래형 자동차 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김한솔 기자 2025.04.18 11:18
과학·환경
[속보]화마가 할퀸 ‘10만㏊’…경북 역대 최악 산불 피해... 대형산불의 전체 피해면적이 10만4000㏊로 잠정 파악됐다고 18일 밝혔다. 이 가운데 의성 등 경북 5개 시군에서 발생한 산불의 잠정 피해면적만 9만9289㏊에 이른다. 시군별로는 최초 산불이...
이종섭 기자 2025.04.18 10:00
생활
테팔, 경북 산불 피해 아동 가정에 1억 6000만원 상당 무선청소기 지원데잉 주방·가전 리딩 브랜드 테팔은 경상북도 산불 피해 아동 가정을 돕기 위해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을 통해 약 1억 6000만원 상당의 무선청소기 500대를 전달했다고 18일 전했다. 테팔은 경북 지역 이재민들이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가전 제품이 구비되지 않은 임시 거처에서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경북 안동시, 영덕군, 영양군, 의성군, 청송군의 아동양육시설과 마을회관 등에 무선청소기 500대를 긴급 지원했다. 테팔은 지난 2010년부터 15년 동안 초록우산과 함께 취약계층 아동을 지원해 왔으며, 2020년 전남 곡성 태풍·호우, 2022년 경북·강원 산불 구호에도 참여하며 피해 주민의 일상 회복을 도운 바 있다. 또한, 2023년부터는 생활 필수품으로 구성된 ‘함께서기 키트’를 제작해 독거노인과 자립준비청년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그룹세브코리아 류경우 대표는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고 큰 어려움을 겪고 계신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라며 “이번 지원이 일상 회복에 작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초록우산 신정원 사회공헌협력본부장은 “테팔의 따뜻한 나눔이 산불 피해를 입은 아동 가정의 일상회복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며 “피해 아동과 가족들이 안정적인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봉석 기자 2025.04.19 06:22
생활
(사)한국태양광공사협회, 경북 산불 피해 복구 성금 1800만원 기부회원사들의 따뜻한 정성 모아 재난 극복에 힘 보태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업계로 자리매김 할 것 사진제공|한국태양광공사협회 (사)한국태양광공사협회(회장 안병준)는 최근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 총 1800만 원의 성금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부는 협회 소속 회원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모금한 결과로,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작게나마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자 마련됐다. 기부금은 산불 피해 지역 주민들의 생계 지원과 임시 주거 제공, 주택 및 생활 기반 복구 등에 사용될 예정이며,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전달 및 집행된다. 협회는 이번 산불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태양광 업계가 지역사회와의 유대와 상생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안병준 회장은 “회원사 여러분들의 뜻을 하나로 모은 이번 기부가, 비록 성금은 작을지라도 피해를 입은 이웃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기를 바란다”며 “태양광 업계 역시 국민의 삶과 함께하는 산업임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협회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나눔과 공헌의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이번 기부를 통해 한국태양광공사협회는 기술 표준화와 산업 발전을 넘어, 공공성과 연대,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업계의 모범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한편, 한국태양광공사협회는 태양광 시공 및 개발사의 기술력 강화와 시공 품질 향상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로, 우수시공인증제도 및 시공 전문가 양성 교육을 통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태양광 산업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석봉 기자 2025.04.11 19:59
연예
[종합] 유퀴즈, ‘피해액 1조원’ 경북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조명했다tvN 제공.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대한민국 사상 최대 규모 산불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며 국민을 지켜낸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의 노고를 조명하며 의미를 더했다. 지난 9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연출 곽청아 홍진주, 작가 이언주)’ 288회 ‘필사의 사투’ 편에서는 각자의 영역에서 필사의 사투를 벌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개돼 관심을 모았다. 국내 최초 익명의 사이버 레커를 잡은 정경석 변호사와 배우 문가영, 절약의 달인 곽지현 그리고 산불재난특수진화대 김우영, 강민성 대원이 유재석, 조세호와 만나 다채로운 토크를 나눴다. 이날 방송은 tvN 타깃인 남녀 2049 시청률에서 지상파 포함 전채널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 그중에서도 사상 최악의 산불 현장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였던 ‘국민 영웅’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대원들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3월 영남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서울 면적 약 80%에 달하는 국토를 태우며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재난으로 기록된 바. 대비 이재민 약 3만 7천여 명, 피해액 약 1조 원에 달하며, 생태계 복구까지는 약 100년 이상 걸린다. 김우영, 강민성 대원은 역사상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이번 산불 현장에서 약 20kg의 호스를 끌고 불의 최전선 속으로 가장 먼저 뛰어든 영웅들이었다. 두 사람은 머리카락과 눈썹이 타들어가는 1,200도의 어마어마한 열기 속에서 호스 물을 몸에 부어가며 불 바람과 맞서 싸운 공포의 순간들을 털어놨다.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닌 사투의 현장도 공개돼 감명을 더했다. 지옥 같았던 213시간 34분이 지나고 주불 진화는 모두 마무리가 됐지만, 산불 대응 과정에서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다. 대원들은 산불 진화 중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인을 추모하며 “죄송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저희도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남 일이 아니다. 희생이 헛되지 않게 저희가 그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아 그분들 몫의 배가 될 때까지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는다”라고 사명감을 전했다. 두 사람은 퀴즈를 맞혀 받은 상금을 경북 산불 피해 성금으로 기부했다. tvN 제공. ‘필사의 사투’를 벌이는 또 다른 출연진의 이야기도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날 방송에는 아이브 멤버 장원영과 관련해 악의적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린 사이버 레커를 잡은 장경석 변호사가 출연, 가짜뉴스 악플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 일본 법까지 파고든 불굴의 집념 끝에 사이버 레커를 법정에 세운 검거의 과정과 함께 해당 사이버 레커가 유튜버 채널 수입으로 빌라를 구입한 사실을 공개하며 “사실상 범죄 수익이다. 이제 해당 수익을 다 추징하고 별도로 손해 배상 의무도 지고, 벌금도 내게 됐다. 걸리면 패가망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tvN 제공. 그런가 하면 ‘절약의 달인’ 곽지현 자기님은 남다른 짠테크 노하우로 절약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최저 임금이었던 월급 152만 원으로 24세에 1억을 모으고, 26세에 자산 2억을 달성한 여정과 함께 앱테크 등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절약 비법을 공개해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tvN 제공. 20년 차 배우 문가영은 5살에 독일 길거리에서 아동복 광고 모델로 캐스팅 된 일화를 비롯해 치열했던 아역배우 시절과 ‘기다림’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전해 여운을 안겼다. 한편, 다음 주 방송에서는 극과 극을 연기하는 배우 박해준, 심폐소생술로 엄마를 살린 10살 정태운 학생, 영화 ‘승부’의 실제 주인공이자 세계적인 바둑 천재 조훈현의 출연이 예고돼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45분에 방송된다.
강신우 온라인기자 2025.04.10 10:20
축구
프로축구연맹 ‘급여 1% 기부 캠페인’, 경북 산불 이재민 3000만원 기부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프로축구연맹(총재 권오갑)이 지난달 발생한 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를 위해 경북, 경남, 울산 지역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각 1000만 원씩 총 3000만 원을 기부했다. 연맹은 10일 “이번 산불은 특히, K리그 구단 연고지가 있는 포항, 울산, 경남 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해당 지역 주민들의 어려움에 깊은 위로를 전하며, 피해 복구와 일상 회복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기부에 동참했다”고 설명했다. 기부금은 각 지역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산불 피해 복구 및 이재민 구호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연맹은 2019년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 2023년 충북 청주 집중호우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아픔을 나누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이번 기부금은 연맹 임직원, K리그 심판 등 리그 구성원이 매월 급여의 1%를 기부하는 ‘급여 1% 기부 캠페인’을 통해 마련됐다.
김세훈 기자 2025.04.10 09:58
정치
“산불 난리인데 경북지사가 시장에 왜 오나”대선판 가버린 단체장들…당선보단 잿밥에 관심도 지난 4월 15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둘러보고 있다. 이호준 기자 “임기 안 채우는 사람은 앞으로 출마 자격을 박탈했으면 좋겠습니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김진명씨(59)는 “TK에 뭐 맡겨놓은 것도 아니고 아무나 왔다가 그만둬도 되는 곳이냐”며 혀를 찼다. 옆에 있던 일행도 “홍준표는 저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런다”며 “국회의원이나 하지 왜 시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거들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된 뒤 광역단체장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4월 16일 기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광역단체장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홍준표 전 대구광역시장,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등 4명이다. 출정식 전날 돌연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김영록 전남지사 등 출마를 저울질하다 최종 포기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당초 이번 대선에서 출마를 예고했던 광역단체장은 10명 가까이 된다. ■대선마다 반복되는 지자체장 출마 러시 국민의힘의 경우 유정복 시장과 홍준표 전 시장, 이철우 도지사가 지난 4월 16일 1차 경선 진출자에 포함되면서 이들은 4월 22일 2차 경선 진출자 4명이 가려질 때까지 경선 레이스를 지속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2차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은 경우 5월 1~2일 당원투표 및 국민 여론조사를 진행해 같은 달 3일 전당대회에서 최종 대선후보를 결정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선에 출마하려는 공직자는 대통령선거일 30일 이전까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대선이 열리는 6월 3일에서 30일을 역산하면 단체장들은 적어도 5월 4일까지는 사퇴를 해야 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리는 5월 3일은 공직 사퇴 시한을 하루 앞둔 날로, 사실상 현직 단체장들이 아무런 장애 없이 경선을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후보자들로선 법으로 보장된 피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지만, 단체장들의 출마 러시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진다. 지역의 대통령인 도백들이 임기 중 더 많은 권력을 쥐겠다며 도정과 시정을 팽개치고 선거판으로 뛰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5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 / 이호준 기자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지만 국민의힘 경선에서 보듯이 적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단체장이 업무에서 손을 놓게 된다.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행정은 부시장이나 부지사에게 형식적으로 위임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가 동시에 경선에 뛰어든 TK 지역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았다. 지난 4월 15일 서문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산불이 나가지고 다 죽겠다고 하는데 이철우 도지사가 출마한다고 며칠 전에 시장에 왔다고 하더라”면서 “산불이 났는데 경북도지사가 대구에 왜 오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상인은 “공항 이전이니 통합이니 뉴스는 실컷 나왔는데 3년 동안 아무것도 된 게 없다”면서 “저러고 다음에 또 (지방)선거에 나올 거 아니냐. 인물 참 없다”고 답답해했다. ■휴가 내고 참여 ‘현직 프리미엄’까지 대통령선거가 임박해서 자치단체장들이 대권 레이스에 뛰어드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현직 시·도지사는 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할 수 있고, 선거운동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행정부지사가 도지사 역할을 대행할 수 있다. 때문에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와 김관용 경북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무려 6명의 지자체장이 사퇴하지 않고 각 당에서 치러지는 경선에 참여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1년 제20대 대선 경선에서도 경기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가, 민주당 최종 후보로 확정된 뒤에야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한 결정을 두고 당시에도 “양심의 문제”(이낙연 전 총리), “마음이 콩밭에 있다”(이상민 전 민주당 의원) 등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경선을 위한 사퇴냐, 도지사직 유지냐를 두고 선택하라면 경선을 포기하겠다”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역시 이번 조기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김문수 전 장관도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출마하면서 경기도지사직을 유치한 채 경선을 치러 같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 4월 11일부터 시장 대행체제로 전환된 대구시 산격청사 정문 모습 / 이호준 기자 이번에 경선에 나서는 광역단체장들의 경우 경선에서 탈락하든, 본선에 진출한 뒤 탈락하든 위험 부담이 거의 없다. 휴가를 내고 경선에 참여한 뒤 탈락하면 그대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고, 본선에 진출해 낙선하더라도 자신을 대체할 보궐선거가 치러지지 않는다. 공직선거법상 보궐선거는 4월과 10월 두 번 열리는데 4월 보궐은 시기가 지났고, 10월이면 제9회 지방선거가 열리는 내년 6월 3일까지 1년이 채 남지 않기 때문에 10월 보궐선거도 열리지 않는다. 보궐에서 새로운 ‘현직’이 탄생하지 않는 만큼 사실상 ‘현직 프리미엄’을 잃지 않는다. 대구시의 경우 홍 전 시장의 사퇴로 지난 4월 11일부터 김정기 행정부시장의 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됐다. 대구시는 앞으로 내년 지방선거가 열리는 6월 3일까지 1년 넘게 권한대행이 시 살림을 맡아 운영하게 된다. 휴가를 내고 경선에 나선 단체장들 역시, 본선 진출 시 해당 지자체는 권한대행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시민과 도민들 입장에서는 최소 몇 주에서 최장 1년여까지 사실상의 행정 공백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단체장들의 선거 활동은 휴가 기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선 출마 시 출마 선언 전부터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를 피하기 어려운 데다 정무직들의 사임과 인사, 포퓰리즘 행보 등 행정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주게 된다. 반면 출마 단체장들은 경선, 본선에 나가 낙선하더라도 피해가 거의 없다. 당초 역대급 출마 러시가 예고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적지 않다. 경선 기탁금 1억원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당 안팎의 인지도 강화는 물론 단체장 연임용 경력과 ‘대선주자’라는 간판을 대가로 얻을 수도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차제에 광역단체장들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단체장 직을 사퇴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8개 시민사회단체들로 이뤄진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단체장 직 사퇴를 하지 않고 대선에 출마한 단체장들은 직을 이용해 내년 지방선거 재출마를 하기 위한 사전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다면 단체장 직을 바로 사임하거나 내년 지방선거 불출마를 약속하고 대선에 뛰어드는 것이 도리”라고 지적했다.
이호준 2025.04.21 06:00
사회
경북 산불 산림피해, 산림청 발표의 ‘2배’···9만여ha지난달 31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서 한 농민이 검게 그을린 묘목들 옆에서 마늘밭을 일구고 있다. 의성|권도현 기자 경북 산불 산림피해 규모가 당초 산림청이 추산한 것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표된 산불영향구역보다 실제 조사결과 피해 규모가 대폭 늘어난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산림청의 진화 선언 때 피해규모 추산 자체가 엉터리였다는 전문가 지적도 나온다. 17일 각 지자체와 당국 등에 따르면 산림청을 포함한 정부 기관 합동 조사 결과 경북 5개 시·군을 휩쓴 산불 피해 규모는 9만㏊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 이후 지금까지 이번 산불 영향구역이 4만5157㏊라고 발표해 왔다. 실제 피해 규모가 발표 수치의 2배 수준인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역대 최악으로 불렸던 2000년 동해안 산불 산림 피해면적의 4배에 달하는 것이다. 산불영향구역은 화재 현장에 형성된 화선 안에 포함된 면적으로 진화가 완료된 뒤 확인하는 피해면적과는 개념이 다르다. 진화가 완료된 뒤 타지 않은 부분은 산불영향면적에는 포함되지만 피해면적에는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통상 영향면적이 실제 피해면적보다 넓게 잡힌다. 하지만 이번 산불의 경우 조사결과 실제 피해면적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산불 피해 면적이 2배나 큰 것으로 나타나면서 산림청의 피해규모 추산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산불영향구역이 4만5000㏊였는데 피해 면적이 9만㏊로 증가하는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며 “산림청이 기본적인 것부터 엉터리로 발표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림 당국은 조만간 산림 피해 면적을 확정해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주영 기자 2025.04.17 11:20
문화/과학 정태겸의 풍경
[정태겸의 풍경](84) 경북 영천 만불사-이 시대에 전통이란 무엇인가?절 안으로 들어서서야 깨달았다. 한 달 뒤가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걸. 한 달이나 남았지만, 절집은 분주했다. 머리 위로 빼곡하게 색색의 연등이 줄을 맞춰 달려 있고, 겨우내 움츠렸던 경내를 정리하고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경북 영천의 만불사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 방문은 처음이었다. 절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이곳이 다른 사찰과 매우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통의 방식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이곳만의 미감으로 지어 올렸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손뼉을 쳐주고 싶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런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사찰은 전통 사찰대로 오래 이어온 풍모를 가꿔야 하지만, 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어쩌면 ‘전통’이라는 단어에 갇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림도, 건축도, 조형물도 ‘옛’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꼼짝을 못 하는 것처럼. 굴레에 갇힌 듯 예전 것만 답습할 뿐.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만난 만불사는 신선하기까지 했다. 낯선 사찰의 모습을 한 이곳에서도 해 질 무렵이 되자 종각의 실루엣에서 전통적인 면모가 슬쩍 드러났다. 우리 시대에 전통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저물녘 풍경에서 어쩌면, 그 답을 엿본 것은 아닐지.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2025.04.09 06:00
문화/과학 정태겸의 풍경
[정태겸의 풍경](74)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왕자 탯줄 묻어…태교 명소로 각광성주라는 동네는 참 낯설다. 참외 말고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나마 ‘언택트 성지’라는 수식어로, 찾는 이가 많지 않아 도리어 좋은 여행지로 포장돼 알려진 편이다. 처음 경북 성주를 찾았을 때 내 느낌은 그랬다. ‘이런 곳을 왜 몰랐을까.’ 세종대왕이 자손의 탯줄을 모아서 태실을 만들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조선 왕조가 왕가의 탯줄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으며, 구태여 스스로 찾아보는 이도 없다. 세종대왕자 태실을 찾은 후 알게 된 것이 일제의 또 다른 만행이다. 조선의 왕가는 전국의 길지 중 길지를 골라 54기의 태실을 만들었는데, 이걸 일제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한데 모아 버렸다는 것. 이제는 태봉산이니 태봉리 같은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세종대왕자 태실이 고스란히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게 반가운 건 그래서다. 선석사라는 사찰 곁, 태봉의 정상부에 태실은 자리하고 있다. 주차하고 조금만 걸으면 금방이다. 온종일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고, 여기에 19개의 태실이 조성돼 있다. 어느 곳을 봐도 주변이 훤히 내다보이는 위치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당인 그곳. 따스한 볕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기에 기분이 좋은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2024.10.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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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강원·경북 산불 성금 1억 기부배우 김희선이 강원·경북 산불 피해지역 이재민과 소실된 산림재건 지원을 위해 성금 1억원을 기탁했다. 힌지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희선이 강원·경북 산불 피해지역 이재민과 소실된 산림재건 지원을 위해 대한적십자사에 성금 1억원을 기탁했다. 김희선은 “예기치 못한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산림재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기부하게 됐다”며 “어려움을 겪는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 산불로 소실된 산림이 조속히 복원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성금은 산불 피해가 발생한 강원, 경북 등 지역 적십자 지사를 통해 이재민의 임시주거시설 지원과 피해지역 산림 재건복구활동에 사용된다. 앞서 그는 코로나19 극복 성금 및 소아암 환우, 학대 피해 아동 및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마스크 기부를 비롯해 도움이 필요한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며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서왔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강원·경북 산불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성금모금을 실시하고 있다. 자동응답전화(060-707-1234), 계좌송금(우리은행 1006-401-507754), 문자기부(#7079-8179, 1건 2천원) 등으로 기부할 수 있으며 자세한 정보는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김희선
김지윤 기자 2022.03.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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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송지영 부부의 속사정&경북 봉화 이사 계획ㆍ1년 전 언론 첫 부부 인터뷰 이후 본지와 다시 만났다 계절이 네 번 바뀌고 나서야 부부는 뜨겁게 재회했다. 한 평짜리 어두컴컴한 방에서 외로운 싸움을 버텨낸 남편은 “나는 더 이상 가벼운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고, 홀로 두 자녀를 돌보며 눈물조차 다 말라버릴 정도로 퍽퍽했던 시간을 견뎌낸 아내는 이제 그 누구보다도 씩씩하고 강한 여자가 됐다.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에 가슴을 치는 날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 시간마저 감사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를 갖게 됐다는 정봉주·송지영 부부를 만났다. 법원의 실형 선고 이후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지난 2011년 12월 초, 부부가 첫 인터뷰에 나섰던 그때만 해도 정봉주(54) 전 의원은 더 이상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는 인기 팟캐스트 방송 프로그램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 출연해 굵직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거침없는 폭로전을 이어가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팬클럽 회원 수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만큼 인터뷰 내내 정 전 의원은 자신감이 넘쳤고, 아내 송지영씨(51)도 무척이나 뿌듯하고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보름 뒤, 그들은 전혀 다른 현실에 부딪혔다. 정봉주 전 의원이 BBK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해 허위 사실 유포죄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된 것이다. Q 오랜만에 다시 뵙네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2개월 전에 뵀죠. 그때 인터뷰를 마치면서 부인께서 “언제 또 무슨 일이 터질까봐 늘 조마조마하다”라고 했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송지영 맞아요.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으니까 정말 일이 터져버린 거죠. 정봉주 아내가 고생 많이 했어요.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아직도 저녁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울어요. 제가 맘고생 많이 시켰어요. Q 실형 선고 소식을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정봉주 수감 기간 내내 독방을 사용했는데, 그 방 크기가 엄청 작아요. 폭은 양팔을 다 뻗지 못할 정도고 이불을 펴고 누우면 위아래로 각각 30cm 정도씩 남는 길이예요. 공황장애나 폐쇄공포증에 걸리기 십상이죠. 그래서 저는 실형 선고를 받은 그날부터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며칠 동안 집에서 미리 감옥에서 자는 연습을 좀 했어요. 저랑 아내는 평소에도 서로 살을 안 대고는 못 자는 스타일인데, 제가 조그마한 파우더룸 바닥에 누워 쭈그리고 자니까 아내가 다가오더라고요. 그때마다 아내에게 오지 말라고, 침대에 가서 얼른 혼자 자라고 했어요. 솔직히 실형 선고를 받고 나서부터는 가족 걱정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감옥에 들어가서 저 스스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것에만 집중했죠. Q 아내 입장에서는 여러 번 마음이 무너져내렸을 것 같아요. 어떻게 참으셨나요? 송지영 저도 각오를 단단히 했어요. 큰일도 큰일이지만, 이게 마냥 슬퍼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러면 더욱 못 견디겠더라고요. 울지 말자고 결심하고 마음을 강하게 먹었어요. 남편이 구속되던 날 검찰청 앞에서 딱 한 번 울었던 거 빼고는 한동안 울지 않았어요. 심지어 남편이 구속된 다음날 제가 하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인 일과 관련해 부산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출장을 떠나고 주어진 일을 했어요. 사람들 앞에서도 힘든 내색을 전혀 안 했고요. 제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평소처럼 행동을 하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Q 두 분 모두 서로의 앞에서는 눈물을 참 많이 참으신 것 같아요. 정봉주 1월 말 즈음에 첫 면회가 있었어요.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죠. 아내와 처제, 보좌관이 왔더라고요. 보좌관 앞에서 의원인 제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아내의 얼굴을 보니까 한동안 참았던 눈물이 순간적으로 펑 터지더라고요. 너무 쪽팔려서(?) “아, 왜 자꾸 눈물이 나오지” 하면서 열심히 눈물을 닦았어요.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다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마음을 강하게 먹었고요. 송지영 저도 마음을 꽉 붙잡으며 씩씩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남편이 구속될 당시 입고 있던 옷, 코트, 구두, 벨트 같은 옷가지가 집으로 도착하던 날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혼자 그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보는데 희한하게도 신발을 보니 참 슬프더라고요. 그래서 신발을 끌어안고 정말 크게 소리 내면서 울었어요. 남편이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신발을 벗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정봉주 나중에 아내가 그때 이야기를 편지에 적었더라고요. ‘짐승이 울부짖듯 울었다’라고 표현한 걸 읽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어요. 그런 말을 일찍 하면 제가 감옥 안에서 마음 약해질까봐 참고 참았다가 뒤늦게 털어놓은 거죠. 제가 사실 일부러 아이들 편지도 초반에는 절대 보내지 말라고 했거든요. 제가 무너질 것 같아서요. 그래서 아이들 편지도 6, 7개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받았어요. 아이들과 면회도 그 후에야 했고요. Q 아버지의 수감 소식을 들었을 때 자녀분들의 충격이 꽤 컸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정봉주 작년에 큰아들이 중학교 3학년, 둘째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워낙 일찍 철이 들어서 그다지 큰 상처를 받지는 않았어요. 아이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아빠가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알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왔거든요. 정치인 아빠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항상 어디에서든지 예의 바르게 행동해요. 물론 그런 생활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지는 모르죠. 그래도 참 착해요. 제가 수감되고 나서도 주위 사람들이 “너희 아빠 요즘 뭐 하시냐”라고 물으면 정말 아무렇지 않게 “우리 아빠 감옥에 있는데요”라고 했대요. 나중에 면회 왔을 때도 엄청 밝았어요. “아빠, 여기가 교도소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송지영 둘째 아이는 집에서 몇 번 운 적이 있어요. 남편을 보내고 한참 뒤 어느 날 아침에 “아빠가 꿈에 나타나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꼭 안아줬다”라면서 식탁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또 한번은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집에 누워 있었는데 제 곁으로 오더니 양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빠가 무척 보고 싶다”라며 울더라고요. 그 때 딸아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웬만하면 그런 분위기를 절대 안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딸이 저를 위로하고 제 등을 다독여주더라고요. 남보다 일찍 철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요. 지구 1+1/4바퀴와 맞먹는 소통의 거리 정봉주 전 의원은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2011년 12월 26일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고, 해를 넘겨 1월 17일에는 충남 홍성교도소로 이감됐다. 교도소 생활을 시작한 지 20여 일 만에 갑자기 지방으로 옮겨 가게 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의 지지자들은 더 단단하게 결집했다. 비록 선거법상 향후 10년간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 사실이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정치인 정봉주의 심장을 뻥 뚫어버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는 가족과 팬들의 위로와 격려에 힘을 얻고 답답한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Q 부인께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꼬박꼬박 면회를 가셨다면서요. 정봉주 어떤 수학자께서 제 아내가 저를 만나기 위해 서울과 홍성을 오간 거리를 수학적으로 계산해주셨는데, 그게 무려 지구를 1+1/4바퀴 도는 거리와 맞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정말로 매주 두세 번씩은 꾸준히 왔다 갔거든요. 남편인 제가 생각해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기본적으로 저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서 그런 거겠지만, 아무래도 갇혀 있는 삶에 대한 안타까움도 커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송지영 가뜩이나 호기심도 많고, 주변 일들 하나하나에 관심도 많은 사람인데 감옥 안에서 얼마나 바깥세상 일들이 궁금하고 신경 쓰일지 제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남편이 더욱 안쓰러웠어요. 그래서 제가 이 사람을 조금이라도 덜 답답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자꾸만 먼 길을 달려가게 됐고요. Q 편지도 자주 주고받으셨어요? 송지영 요즘은 교도소가 좋아져서 인터넷으로도 편지를 보낼 수 있어요. 법무부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오후 4시 안에 이메일을 써서 보내면 당일에 바로 남편이 편지를 받아볼 수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그걸 몰라서 계속 손으로 편지를 써서 부쳤거든요. 정봉주 아내가 저의 비서 역할을 완벽하게 해줬어요. 덕분에 몸은 갇혀 있어도 답답하지가 않더라고요. 게다가 제 팬클럽 ‘미권스(정봉주와 미래 권력들)’ 회원들이 그날 기사들을 취합한 것과 SNS 내용, 주요 이슈 키워드를 정리해서 보내주고 심지어 팬클럽에 올리는 글에 대한 댓글까지 모두 뽑아서 보내줬거든요. 그 덕분에 안에서 밖의 정치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었어요. 바빠서 신문도 잘 안 읽고 넘어가는 현직 국회의원들보다도 오히려 제가 현실을 더 객관적으로 ‘빠삭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거죠(웃음). Q 그동안 부인께서 가장 역할을 맡아 한창 크고 있는 두 자녀를 혼자 책임지면서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송지영 맞아요. 면회를 자주 다니면서 남편의 비서 역할을 하고, 아이들까지 돌봐야 하다 보니 제 일을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남편이 수감 전에 썼던 책에서 나오는 인세와 예전에 조금 벌어놨던 돈을 쓰면서 최소한의 생활비로만 살았죠. 그런데 사실 따져보면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계에 기초가 되는 비용 등을 제외하고는 돈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어요. 남편을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쌀이나 된장을 보내주고, 아이들의 생일이면 꽃다발과 케이크 선물도 챙겨주셨거든요. 설날에는 떡국 끓여 먹으라고 떡을 보내주시기도 했고요. 그래서 정말 적은 생활비로도 버틸 수 있었어요. 다만 남편의 면회 비용으로 한 달에 기본 2백만원 이상은 들었어요. 밥값과 자동차 기름값이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그 돈도 남편 팬클럽 회원분들이 모금을 해서 마련해주셨어요. 그분들 아니었으면 어떻게 감당했을지 상상이 안 돼요. 정말 감사해요. 정봉주 지지자들의 힘이 정말 컸어요. 특히 ‘미권스’ 회원들이요. 면회를 신청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아서 하루에 5명씩 면회 신청자를 받기까지 했죠. 경쟁률이 치열했어요. 제주도에서 몇 번이나 찾아오시는 분도 계셨고요. 팬클럽 회원들 중에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있지만 비정규직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도 많아요.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저를 찾아와 영치금까지 넣어주시는 걸 보면서 정말 울컥했어요. 한번은 3만원의 영치금과 함께 편지 한 통이 왔어요. 한진중공업 하청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에게 3만원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잘 아는데, 그 귀한 돈을 제게 보내시면서 편지에다가 “그곳에 계시는 의원님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의원님이 저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쓰셨더라고요. 그걸 읽으면서 정말 하염없이 울었어요. 옥석 가려내고 ‘몸짱’으로 거듭나게 한 ‘홍성 불가마’ 지난 9월 가석방 예비 심사에서 모범수에 해당하는 S1 등급을 받았지만 법무부는 정봉주 전 의원의 가석방을 불허했다. “정치인 최초로 만기 출소라는 진기록까지 세웠다”는 정봉주 전 의원은 1년의 시간을 결코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도자기에 비유한다. 뜨거운 불 속에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도자기는 더 고운 질감과 빛깔을 만들어내듯, 그 역시 자신의 내외적인 불순물을 걸러내고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준 홍성교도소를 ‘홍성 불가마’라고 부르며 뜨거웠던 지난 시간을 기억한다. Q 수감생활로 인해 잃은 것도 많았을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힘드셨나요? 정봉주 아마도 이런 기회가 없었으면 주변 사람들 중에 옥석을 가리지 못했을 거예요. 감옥에 있으면서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은 적은 겨드랑이 밑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점이에요. 송지영 남편이 갇혀 있는 동안 측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거든요. 당연히 교도소 들어가기 전에는 남편 곁을 지켰는데, 수감되고 나니까 남편이 이뤄놓은 작은 것들을 마치 자신들의 권력으로 생각하고 좋지 못한 행동들을 하더라고요. 배신감이 컸죠. 믿었던 사람과의 인연을 잘라내야 했고요. 남편도, 저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참아내야 했어요. 저는 진심으로 남편의 수감생활이 가슴 아프지만,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는 오히려 ‘만약에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정치인으로서 이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큰일 났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 덕분에 이제는 사람 보는 눈이 생겼어요. 정봉주 믿었던 사람들이 아내에게 폭언을 하고 무시하기까지 했어요. 당연히 저보다 아내가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었죠. 오랫동안 깊이 믿어왔던 사람이 내게 등을 돌리고 탐욕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살아온 삶에 대한 자괴감이 심했어요. 그 와중에 아내가 혼자서 제 일을 다 해내는 걸 보는 게 고통 중의 고통이었고요. 한번은 너무 열이 받아서 저희 부부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향한 분노의 편지를 썼어요. 다음날 그 편지를 다시 읽은 뒤 찢어버렸지만요. 그런 식으로 감정을 삭인 거죠. ‘에휴, 이게 결국 인간사이고 그냥 내가 이 감정을 접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면서 썼다가 찢어버린 편지가 수십 통이에요. 그러면서 분노를 받아들이고 다시 정제된 감정을 되찾는 것도 큰 공부가 됐어요. 그래도 덕분에 주위에 있는 사람과 큰일을 할 때 이 사람이 나와 손을 잡아도 되는 동지인지 아닌지 확실히 가려낼 수 있게 됐어요. 송지영 저도 그랬어요. 주변 사람들의 악행을 글로 남겨놨어요. 미리 보여주면 감정만 더 상할 거 같아서 혼자 간직하고 있다가 남편이 출소하고 나서야 보여줬죠. 정봉주 뒤늦게 깨닫고 보니 저는 그동안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아왔더라고요. 야단치고 가르치지 못할 거면 그냥 내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요. 정치라는 건 귀한 도자기 하나를 빚어서 거기에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담아 국민에게 잘 먹여야 하는 건데, 아무래도 불순물이 들어간 도자기는 음식을 제대로 담기도 전에 쉽게 깨지게 마련이죠. 그런 점에서 볼 때 홍성교도소에서 보낸 시간은 제가 정치를 해나가는 데 해로운 불순물을 모두 태우는 감사한 기회였어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홍성교도소를 ‘홍성 불가마’라고 불러요. 엄청 뜨거운 불가마에서 태울 건 다 태우고 좋은 것들만 살아남아 비로소 저를 더 깨끗하고 단단하게 완성시킨 거죠. Q 출소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송지영 남편이 입던 옷을 벗어두고 간 그 자리에 1년 동안 그대로 놔뒀어요. 그러고는 남편 생각이 날 때마다 그 옷 냄새도 맡고 안아보면서 그리움을 달랬거든요. 한편으로는 1년간 이전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해온 남편이 돌아오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 이런저런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마치 어제 출장 갔다가 오늘 돌아온 사람처럼 변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하물며 외국을 며칠 다녀오더라도 시차 적응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한데, 이 사람은 1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도 전혀 변화가 없었어요.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던 회를 1년이나 못 먹었는데도 회 먹으러 가자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어요. 정봉주 마음의 성찰이 완전히 이뤄진 거죠.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제가 살아가는 삶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그냥 잠깐 잠을 자고 꿈에서 깨어보니 몸과 마음이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출소하고 나서 도올 선생님과 명진 스님을 만났는데, 명진 스님께서 저더러 여느 스님들보다도 도력이 깊어졌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Q 마음뿐만 아니라 몸의 변화도 큰 것 같아요. 식스팩 복근을 가진 ‘중년의 몸짱’으로 돌아오셨잖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정봉주 처음에는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수감생활의 고통을 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어요. 하루에 두 시간 반 동안 운동했죠.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매 시기마다 어느 한계점을 넘어서야 하는데, 제가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2백 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1천 개씩 했어요. 기온이 35℃가 넘는 한여름에 좁은 감옥 방에서 그렇게 하다 보면 제가 흘린 땀으로 장판이 흥건했어요. 그래도 멈추지 않았어요. 수감생활을 버텨내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죠. 또 제가 얼마나 이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으니까요. 몸은 시각적으로 바로 보이는 거잖아요. 복근 하나만으로도 제가 이 안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저 때문에 교도소 안의 다른 재소자들 사이에서 헬스 열풍이 불기도 했어요. Q 탄탄한 근육들을 잔뜩 품고 돌아온 남편을 보면서 부인께서도 기분이 좋으셨을 것 같아요. 송지영 그렇죠. 남편 몸이 좋아지니까 새로운 남자와 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웃음). 하지만 무엇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건강해져서 돌아온 것에 정말 감사해요. 남편은 요즘도 팔굽혀펴기를 1천 개씩 하는 등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해요. 그래서인지 저까지 긴장돼요. 저도 열심히 운동해서 뱃살 안 생기도록 노력해야겠어요(웃음). 서울 토박이 부부, 봉화 시골 마을로 떠나다 ‘정봉주’ 하면 ‘노원구 월계동과 공릉동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제17대 국회의원’이라는 그의 자기소개를 떠올릴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그가 정치적 고향 노원구를 떠나 경상북도 봉화군 비나리 마을로 이사를 결정했다. 누가 봐도 과감한 선택이다. 아이들은 학교 문제로 인해 이모 집에서 지내게 될 예정이란다. 서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내내 살아온 도시 남녀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진짜 시골생활을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다니, 설레면서도 두려움이 클 만도 하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는지 속사정이 궁금하다. Q 봉화행 결정은 정말 의외인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정봉주 제가 봉화 정씨예요. 또 봉화는 제 조상인 삼봉 정도전의 철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요. 아버지의 고향인 봉화에서 정도전이 조선 맹자학의 시초와 뿌리를 내렸죠. 사실은 수감 기간 동안 정도전과 맹자에 대한 공부를 좀 했는데 진도가 통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다짐했어요. 출소하면 봉화군으로 내려가야겠다고 말이죠. 그러던 차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로부터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할 테니까 오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아내는 좋은 기회이니 미국에 다녀오자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미국이 아니라 봉화로 가자고 얘기하니까 처음에는 “엥?” 하고 놀라더라고요(웃음). Q 그러실 수 있죠. 이사라는 건 남편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부인의 의사도 굉장히 중요한데, 어떻게 합의를 하셨나요? 정봉주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도올 선생님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아내가 도올 선생님께 조언을 구해보자고 하더라고요. 도올 선생님은 제 얘기를 듣자마자 “미쳤냐. 미국? 거긴 왜 가냐. 걔네가 우리나라에 와서 배워야 한다. 봉화가 훨씬 좋다. 무척 신선하다. 봉화로 내려가는 건 정말 생각 잘한 거다”라며 적극적으로 봉화행을 권하셨어요. 미국에 가는 것보다 일단 봉화에 가서 제 뿌리에 대해서부터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그렇게 결정이 된 거죠. 송지영 저는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유학에 대한 아련한 꿈이 있었어요. 참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냥 봉화에 가기로 합의를 했어요. 일단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런 말 하기 쑥스럽지만 남편을 사랑하니까 남편의 뜻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1년 동안 떨어져 지내서 그런가?(웃음) 특별히 말릴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남편은 이미 정치적 삶에 들어섰으니까, 더 큰 뜻을 위해 가야 할 길이라면 반대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두 번째는 저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게 괜찮을 것 같았어요. 제가 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게 늘 새로운 작업에서 영감을 받고 뭔가를 창조해내는 일이잖아요. ‘다이내믹한’ 남편 옆에서 그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리얼한 시골생활을 해나가면서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 불편하고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을 것 같아요. 다만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좀 걸리긴 해요. 정봉주 봉화로 내려가는 또 다른 이유는 FTA 협정 때문에 다 죽어가는 농민들 곁에서 직접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농업은 모든 경제의 기본이에요. 농민들은 도시에서 살려야 돼요. 도시와 농촌이 연계돼서 한민족 네트워킹을 잘해나가면 농촌을 살릴 수 있어요. 제가 내려가서 농촌과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말로만 농민을 살리자고 할 게 아니라 직접 그 사람들과 함께 먹고 생활하면서 삶을 나눠가다 보면 더 많은 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정봉주 전 의원이 ‘전격 공개’했다. 그의 치열한 의지가 만들어낸 탄탄한 근육!Q 그곳에서의 구체적인 계획들이 있나요? 정봉주 봉화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고, 그곳에 대한 정보 좀 달라고 트위터에 글을 남겼더니 연락이 많이 왔어요. 그중 가장 적극적이었던 분이 비나리 마을에 살고 있다고 해서 아내와 같이 직접 내려갔죠. 시골 마을이지만 귀농인들이 꽤 있어서 전원주택과 마을공동체가 잘 형성돼 있더라고요. 저에게 추천해주신 분도 15년 전에 귀농해서 빌라를 짓고 살고 계셨어요. 한 건물에 여섯 세대가 모여 사는데 그중 한 집에 들어가서 살아보기로 했어요. 1년에 5백만원을 내면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인 25평 규모의 현대식 집에서 살 수 있어요. 1년 후 귀농에 성공해 정착을 하면 그중 2백만원을 돌려받지만, 서울로 돌아간다면 못 받는 거죠. 어차피 저희 부부에게 지금 당장 집을 살 돈도 없으니 일단 임대를 해서 살아볼 계획이에요. 거기 살면서 농민의 삶도 경험해보고, 비나리 마을의 특산품을 전국화시켜서 도시와 농촌을 연계해나가는 게 제가 하고 싶은 가장 큰 일이에요. Q 부인께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송지영 비나리 마을에 화가가 한 분 살고 계신데, 마을 사람들에게 생활도자기 공예를 가르쳐주시더라고요. 마침 제가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거든요. 그곳에서 함께 생활도자기를 만들어서 판매도 하고, 도예 체험 캠프도 열어볼 생각이에요. 인터뷰를 마치며 정봉주·송지영 부부는 이르면 2월 중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봉화군으로 내려갈 것 같다고 했다. 봄을 채 맞이하기도 전, 추위가 맹위를 떨치기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봉화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두 사람은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힘들었던 시간을 이겨내자마자 또 다른 도전을 선택한 부부.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인생의 시련을 지혜롭게 극복해내는 방법을 터득한 그들을 이젠 그 무엇도 흔들지 못할 것 같다. 「레이디경향」 독자들을 위한 정봉주의 컴백 기념 선물 여전히 유쾌하지만 분명 변했다. 모든 이야기의 주제가 결국 자기 자랑으로 끝나던 ‘깔때기’ 화법이 확 줄어들고, 그 자리에 ‘사색과 성찰’이 자리를 잡았다. 정봉주 전 의원은 옥중에서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 선생과 명진 스님, 제레미 리프킨 등 시대의 지성들과 교류하면서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졌고, 사고의 폭도 넓어졌다. 그는 지난 1년간 그렇게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출소 이후 한동안 칩거하며 옥중에서 쌓은 내공을 담은 한 권의 책을 내놓았다. 정 전 의원은 “독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반성하고, 뜨겁게 사색했다. 지금 성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이 책을 만들었다”라며 “이 한 권의 책에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라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윤현진(프리랜서)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사진 제공 / 정봉주 ■장소 협찬 / 스튜디오 하늘(070-1544-7000) ■헤어&메이크업 / W퓨리피(02-549-6282)>
2013.03.07 18:41
건강
[장수마을]경북 경주…관광도시의 자부심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신라 천년수도의 자부심을 고스란히 간직한 경주. 수학여행으로 경주 불국사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터. 이런 관광의 도시 경주가 ‘장수도시’로 꼽히고 있다. 과연 경주의 장수 요인은 무엇일까. 100세 이상의 고령자 총 22명 경주시는 도시·농촌 복합 형태의 도시이며, 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로 건재해 있던 터라 ‘벽이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찰, 유적, 석탑, 마을, 서원과 같은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또 공공장소와 같은 건물에 기와가 얹어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며, 시정 구호는 ‘새로운 천년에 도전하는 경주’다. 경주의 특산물로는 교동법주, 황남빵, 찰보리빵, 감포멸치젓, 감포미역, 안강찰토마토, 산내더덕, 감포전복, 신라토기, 모조금관, 기마인물토기, 은잔, 두산명주 등이 유명하다. 과거에는 100세까지 장수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지만 지금은 100세 이상 노인 인구가 어느 연령층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때문에 100세 이상 노인의 존재는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주시의 전체적인 연령대별 분포는 중·장년층이 가장 많고, 아동·청소년층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구조이며, 65세 이상 노령 인구는 40,293명으로 14.9%를 차지한다. 현재 경주시에 100세 이상 노인 수는 총 22명으로 이 중 여자가 20명 남자는 2명이다. 최근 경주시는 ‘장수마을 조성’을 지역의 목표로 삼고 장수마을이 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구상 중이다. 그런 구상의 일환으로 현재 100세 이상 장수 노인은 어느 지역에서 무슨 음식을 먹으며, 어떤 생활습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경주 장수 노인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생활-경주의 100세 이상 고령자 대부분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한다. 이들의 건강관리 방법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냥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일, 산책 등 신체적인 활동을 하는 시간은 하루에 1~4시간 정도며, 대다수의 노인은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 음식-장수 노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소식’으로 식사 조절을 하고, 평소 즐기는 음식은 역시 ‘채소류’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생선류’를 즐겨 먹으며, 튀김류, 볶음류 등은 싫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한기에는 경로당 등에서 같이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식사하는 시간을 보내며 지역의 깨끗한 청정수를 마신다. ● 성격-장수 노인들은 대부분 웃음이 많았고 유쾌하며 낙천적인 성격이다. 또 매일 빠뜨리지 않고 운동을 하는 부지런한 생활습관이 몸에 뱄으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 충분히 수면을 취하는 편이다. 장수 노인들의 마을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 특성-장수 노인들의 특성을 살펴봤더니,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들은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 ① 산간지역 대부분의 장수 지역은 더덕, 돌미나리, 산나물 등 자연 작물이 많이 자생하는 산간지역이다. 또 여름철 강수량이 풍부하며, 기온의 연교차와 일교차가 커서 쾌적하고, 고랭지 과채류 작물 생산이 적합한 지역이다. 기온은 고도가 높은 산에 위치해 산 아래보다 평균 4℃ 정도가 낮은 편이고, 토양은 광물질이 섞여 질이 좋으며, 나무가 많고 수질이 청정하다. ② 문화 관광지 경주는 문화재와 사적지를 보유한 문화 관광지로 잘 알려졌다. 경주의 주요 명승과 고적으로는 ‘석굴암’을 비롯해 ‘불국사’와 ‘나원리 오층석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포석정지’, ‘첨성대’ 등이 있다. 경주의 문화재 보유율은 경상북도의 30%로 총 396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경주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대한민국의 주요한 관광지로 통한다. 때문에 경주 시민들은 외부 관광객을 자주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다. 또 관광객들의 일에 적극적이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요인이 장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③ 병원&요양시설 경주는 종합병원 2개, 일반병원 13개, 한방병원 1개, 요양병원 9개 등 노후 생활에 필요한 의료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며, 경로당 수는 41개로 노인이 서로 만나서 일상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이렇게 노인들이 서로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진 것 또한 장수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Mini Talk 노인들을 위한 정부 정책 활성화 노력 경주시는 ‘장수도시가 경주의 미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앞으로 장수 노인들 관련 정책을 더욱 확대해나갈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① ‘장수촌’ 건설: 장수문화와 관련한 고령 친화적인 장기 정책적 지역사회 개발의 모델로서 역사, 문화, 관광산업의 연계로 지역 경제의 활력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장수연구소 및 종합실버타운 조성, 유료복지주택 관리 조성(친환경주거관리), 장수체험공원, 역사·문화체험 관리 조성, 장수식물재배 및 가공단지 조성, 온천 개발 및 숙박시설 관리 조성, 풍력 개발 및 근린 생활시설 등을 계획 중이다. ② ‘농어촌 건강 장수마을’육성: 농어촌 노인에게 농업, 전통문화 영역에서 알맞은 일거리를 발굴하고 생활경제, 건강관리, 사회활동 참여 등 건강하고 보람 있는 노년 생활문화를 정립한다는 게 경주시의 포부다. ③ 노인 일자리 사업 지속 추진: 일을 통한 소득 보충, 적극적 사회 참여 및 건강 증진 등 노인 문제를 예방하고, 사회적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노인들의 일자리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④ 노인 여가시설 확충: 여가시설을 늘려 지역 노인들의 자율적인 친목 도모와 취미활동 및 각종 정보 교환을 돕고, 기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넓힐 것이다. ⑤ 노인대학 운영: 노인들에게 건전한 취미활동과 일상생활과 관련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한 노인대학을 더욱 늘릴 예정이다. <■김민주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 / 경주시(www.gyeongju.go.kr)>
2010.10.06 17:23
재테크 주말에 떠나는 가족여행
[주말가족여행]쪽빛 하늘이 있는 가을날, 감빛의 경북 청도소싸움축제로 잘 알려진 경북 청도군은 물 맑고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곳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아늑함과 단층으로 이어진 농가, 곳곳에 자리한 고택과 문화유산들이 어우러져 단아한 도시 정취를 맛볼 수 있기도 하다. 그중 옛 이서국의 수도였던 화양읍의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온통 가는 곳마다 감빛이 가득하기 때문. 11월, 감으로 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감 세상’ 청도로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나보자. 청도 반시가 빚어내는 감빛을 만지다 천연 염색공방 ‘꼭두서니’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자리한 천연 염색공방 ‘꼭두서니’. 이곳에서 처음 감물 염색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김종백씨가 대구의 사업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면서부터다. 고향집으로 내려와 그가 처음 한 일은 동네 할머니들과 친해지기였다. 덕분에 그의 사투리가 더욱 억세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정도. 할머니들과 함께 염색을 하며 고향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 감물 염색법을 찾아내고, 천이 사각거리도록 풀 먹이는 방법을 배웠다. 전통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거기에 더해 꼭두서니만의 염색 방법을 찾기 위해 실험을 거듭한 결과 지금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천연 염색 기술을 가지게 됐다. 이처럼 어렵게 찾아낸 꼭두서니의 감물 염색은 청도 곳곳에서 만나는 감물 염색 농가에 무상 제공됐다. 태풍으로 떨어진 감을 보며 시름에 잠긴 농민들을 위해 자신의 노하우를 풀어놓은 것. 그의 이런 노력으로 지금 청도는 감물 염색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꼭두서니 공방에 들어서 제일 먼저 만나는 풍경은 너른 마당 가득 널려 있는 천들이다. 햇살을 받으며 다양한 형태로 펄럭이고 있는 천들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든다. 그 옆으로 체험자들의 체험 공간이자 김종백씨의 작업장인 염색 작업장이 있다. 체험장으로 들어서자 감물 염색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진다. “감물은 풋감으로 만듭니다. 예전엔 일일이 손으로 으깨 주머니에 넣고 물을 짜내서 썼습니다. 지금은 기계가 그 일을 대신합니다. 착즙기에 파란색의 풋감을 넣으면 떫은 감즙이 쏟아지지요. 그만큼 편리해졌습니다. 그 다음 저기 보이는 커다란 통에 담고 시간을 두고 발효시킵니다. 지금 공방 안에서 나는 콤콤한 냄새가 바로 감물이 발효되는 냄새입니다. 이렇게 발효시켜두고 1년 동안 사용합니다. 그런데요. 감물에는 지금처럼 발효시키는 것 이외에 첨가제가 없습니다. 보통 염색은 마지막에 색을 유도해내는 발색제를 넣습니다. 그러나 감물 염색에는 발색제를 넣지 않습니다. 천연 그대로 감물만 사용하지요. 소금을 조금 넣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더욱 친환경적인 염색입니다.” 설명을 듣는 사람들은 어서 빨리 염색을 하고 싶은 눈치다. 설명이 끝나면 큰 손수건만 한 하얀 천이 체험객들에게 주어진다. 물에 빨아 풀기를 빼고 말린 천을 감즙이 골고루 배어들도록 감물에 담가 20여 분을 주무른 다음 꼭 짜서 햇빛에 널면 염색 끝. 염색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특이한 것은 감물에 주무른 천을 맑은 물에 헹구지 않고 바로 짜서 말리는 것. 이런 간단한 과정 때문에 감물 염색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발색 과정이다. 감물에 주물러 넌 천이 햇빛에 바싹 마르면 물을 골고루 뿌려 다시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것. 그 과정에서 뿌리는 물에 따라 자연스럽게 색이 달라진다. 때문에 색이 얼룩지지 않도록 골고루 물을 뿌려주어야 하고, 중간 중간 감물에 넣어 새롭게 염색도 해주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보통 3~5번 감물에 넣고 말리기를 반복한다. 감물 염색 과정 중 재미있는 것은 뿌리는 물에 따라 천에 남는 색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감물을 사용해도 철분이 많은 물을 뿌려주면 갈색이 좀 더 진하게 표현된다. 햇빛, 바람, 물 그리고 사람의 노력이 어우러져야만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 감물 염색이다. 염색이 끝나면 줄에 천을 널어놓고 천연 염색 전시장으로 가보자. 2005년 12월에 문을 연 천연 염색 전시장에는 다양한 감물 염색 제품과 천연 염색 제품들이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전시돼 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주방에는 낮은 커튼이, 커다란 거실 창에는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감물 커튼이 걸려 있는 식이다. 특히 손님방 바닥에 깔려 있는 감물 들인 삼베 장판은 염색 천의 용도가 무궁무진함을 보여준다. “염색은 코팅입니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도 모두 염료로 코팅한 것이지요. 천을 잘라 자세히 살펴보면 실 안쪽에 흰색이 보일 겁니다. 이처럼 삼베를 감물로 잘 코팅해놓은 이 방바닥은 다른 어떤 장판보다 좋습니다. 왜냐하면 감물 염색은 항균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쪽물 염색을 사용하면 방충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주인의 설명은 ‘천은 반드시 옷이나 이불 등 생활용품으로 만들어 사용한다’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깬다. 감물 염색 체험은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루어진다. 염색 체험료는 1인당 1만원. 체험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다. 문의`&`예약 054-371-6135감으로 만든 와인을 만나는 곳 와인터널 꼭두서니를 나와 화양읍 송금리로 가면 (주)청도와인의 와인터널이 있다. 이곳은 1904년 대한제국 말기에 경부선 철도용으로 뚫었다 사용하지 않고 둔 화양읍 송금리터널로 1백 년이 넘는 세월을 담고 있는 곳이다. 촘촘히 쌓여 있는 붉은 벽돌이 1km 넘게 이어지는 터널 안은 연중 13~15도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다. 때문에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 와인숙성고로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게다가 와인 10만 병을 숙성시킬 수 있는 너른 공간이 이곳을 와인터널로 만들게 된 이유다. 송금리터널은 단순히 와인 저장고일 뿐 와인을 만들어 낸 곳은 따로 있다. (주)청도와인의 와인연구소다. 풍각농공단지 안에 자리한 (주)청도와인 와인연구소가 과즙이 풍부한 청도 반시 농가의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상품 개발 연구를 한 지 5년 만에 완성한 것이 감그린 와인이다. 감그린 와인은 쉽게 식초로 변해버리는 감즙을 와인 단계에서 숙성이 멈추도록 했다. 덕분에 숙취에 좋은 감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감 와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감에는 탄닌 성분이 많습니다. 때문에 심장병과 노화방지에도 좋지요.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도 감와인의 장점입니다. 그러니 육류와 생선류로 만든 모든 요리에 잘 어울리겠지요? 뿐만 아니라 한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우리 것으로 만든 순수 국산와인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세계 최초로 감 와인을 생산한 하상오 대표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말이다. 이런 열정으로 만들어낸 감그린 와인의 맛을 인정받은 것은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다. 참가 대표단의 환영 만찬주로 감그린 와인이 선정된 것. 그후 2006년 2월 중순경부터 (주)청도와인은 와인터널을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와인터널 입구에 시음장을 마련하고 주말 연주회를 열며 청도를 찾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준 것. 이제는 청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와인터널 시음 체험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시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시음으로 만족하지 못하겠다면 간단한 안주와 함께 와인을 한 병 주문해 마셔보자. 와인 저장고 안에서 즐기는 색다른 와인파티가 될 것이다. 와인 가격은 750㎖ 와인 1병에 1만6천원. 문의 054-371-1135, gamwine.com주렁주렁 열린 감을 직접 따볼 수 있는 곳 농부와닷컴 청도를 지키는 젊은 농부들이 모여 있는 ‘농부와닷컴’은 연중 청도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청도 곳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고 청도의 자연에서 난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청도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청도 반시가 지천인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는 청도 반시 따기 체험이 진행된다. 농부와닷컴이 직접 농사지은 감 밭과 인근 농부들이 농사지은 감 밭을 임대해 가을 체험을 할 수 있다. 감 밭에 들어서면 감 따기보다 먼저 하는 것이 있다. 저마다 가져온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 것. 이처럼 많은 감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어른 키보다 더 큰 감나무 가득 매달린 감들이 만들어낸 풍경도 장관이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농장 주인아저씨. 감 따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어른 키보다 높은 장대 끝에 달린 Y자 모양의 고리를 감이 달려 있는 가지 끝에 대고 장대를 돌려 가지를 꺾어야 하는 것. 이때 장대 끝에 달린 망사주머니 안으로 감이 들어가야 한다. 망사가 있는 쪽으로 가지를 살짝 꺾어주는 것이 감 따기 요령이다. 그래야만 바닥으로 떨어져 감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감을 따서 상자에 넣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감 따기 초보자는 장대를 들고 서는 것조차 만만하지 않은 것. 하지만 농부아저씨들의 친절한 도움이 있어 장대를 드는 것도, 감을 따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청도 반시는 쟁반처럼 납작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유난히 당도가 높고 수분함량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나무에 달린 잘 익은 홍시가 햇살에 비쳐 투명하게 보이는 것도 수분이 많기 때문이다. 먹음직스럽지만 완전히 익은 감은 건드리지 말자. 자칫 꼭지에서 떨어져 머리 위로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부와닷컴은 1년 내내 농사 체험과 함께 도자기 만들기, 떡메치기, 야외 새참 먹기 등의 농촌 체험을 한다. 봄철 달콤한 청도 딸기 따기부터 시작해 여름에는 복숭아따기, 가을에는 밤 줍기와 감 따기, 감말랭이 만들기, 겨울에는 고구마 캐기 등 농산물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들녘에 솥을 걸고 해먹는 밥맛도 꿀맛이다. 열린 공간에서 자연의 에너지까지 담아 만들어내는 들밥은 밥투정 하던 아이들까지 꿀맛으로 밥을 먹게 만든다. 감 따기 체험 참가는 농장에 들어가 할 수 있는 1일 참가 인원이 있으므로 농부와닷컴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참가비는 1인당 5천원. 30분간 진행되며 자신이 딴 감을 5kg 상자에 담아 가져갈 수 있다. 가마솥밥으로 준비되는 들밥 먹기(1인분 8천원)와 기타 체험을 하나 더한 1일 프로그램(1만원)에 참가할 수도 있다. 문의 & 예약 054-373-5565, www.nongbuwa.com 여행 정보 1 주변 볼거리 석빙고와 청도읍성 화양면 동천리에 자리한 청도석빙고는 보물 제323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석조물이다.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깊이 파서 만든 저장창고인 석빙고의 바닥은 사각형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이 자연스레 석빙고 밖 개천으로 흘러들어가도록 설계돼 있다. 흙이 두껍게 덮여 있어 천장 구조물을 볼 수 없는 것이 원형이나 청도석빙고는 천장의 흙이 무너져 없어지고 반원으로 만들어진 홍예 4개만이 남아 있다. 돌을 잘라 둥글게 맞물린 천장 구조물인 홍예를 볼 수 있는 것이 장점.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빙고 중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석빙고다. 석빙고 앞의 작은 비석에는 조선 숙종 39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의 이름도 적어놓았다. 석빙고 앞에는 논둑처럼 보이는 낮은 성곽 구조물이 있다. 청도읍성으로 한창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고려시대부터 돌과 흙을 섞어 쌓은 읍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조선 선조 23년에 돌로 고쳐 쌓은 것이라 전해진다. 도주관과 척화비 청도읍성을 따라 화양읍내로 내려가면 도주관과 척화비가 있다. 시도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된 도주관은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당시 청도를 ‘도주’라고 부른 것에서 이름 붙었다. 정청과 숙박시설이 있는 객사는 조선 현종 때 지어진 것으로 화양면사무소로 정청이 사용되면서 바닥과 벽이 바뀌었으나 이외의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건물 양옆으로 비석들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오른쪽에 모여 있는 비석군은 역대 군수들의 선정을 기리는 공덕비들이다. 비석 윗면의 문양의 다양함을 살펴볼 것. 왼쪽 앞에 자리하고 있는 비석은 조선 말기인 고종 때 외세 침략을 거부하는 대원군의 의지를 새긴 척화비이다. 2 잠잘 곳 화양읍 삼신리에 자리한 용암온천은 12년 전 개발된 자연 온천이다. 온천이 있는 삼신리는 예로부터 장수마을로 이름난 곳. 땅속 약 1000m에서 솟아오르는 43℃ 게르마늄 유황온천수가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이곳의 온천수에는 게르마늄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하루 6천2백 톤의 온천수가 솟아올라 인위적으로 덥히지 않은 온천수가 탕 속으로 직접 공급되는 것도 장점이다. 이곳에 온천수가 객실까지 공급되는 28개의 객실을 갖춘 관광호텔이 있다. 용암웰빙스파(054-371-5500, www.yongamspa.co.kr)다. 숙박료는 주중·주말과 객실 크기에 따라 4만8천원부터 12만원까지 다양하다. 인근에 크고 작은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 3 맛집 꼭두서니공방 옆에 자리한 알미뜸(054-373-5245)은 생오리숯불구이 단일 메뉴의 오리 전문점이다. 숯가마에서 직접 구워낸 숯불을 사용해 오리의 잡냄새와 기름이 없는 담백하고 쫄깃한 육질을 자랑한다. 4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오리 1마리 가격은 2만5천원이다. 석빙고에서 가까운 화양읍 범곡리에 돼지수육과 멸치국수를 맛깔스럽게 하는 코보식당(054-373-5588)이 있다. 2인이 먹을 수 있는 수육은 작은 것 1접시에 5천원. 큰 것 1접시는 1만원이다. 족발처럼 쫄깃한 식감을 내는 것이 특징. 멸치국수 3천원, 돼지국밥 4천원이다. 4 찾아가는 길 대구-부산고속도로 청도 IC로 나와 우회전해 약 5분을 달리면 왼쪽으로 용암온천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공사 중인 소싸움 경기장이 보인다. 용암온천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약 200m 들어가면 용암웰빙스파다. 소싸움 경기장 앞에서 직진하면 와인터널로 올라가는 남성현역 이정표가 보인다. 용암온천을 지나 경부선 굴다리 아래로 진입하고 언덕 너머 유등리로 길이 이어진다. 알미뜸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꼭두서니 천연 염색 체험장이다. 좌회전하면 화양읍으로 길이 이어진다. ■기획 / 김민정 기자 ■글&사진 / 한은희(여행 작가)
2007.11.0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