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신간] 공씨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
“나에겐 살아가는 방식이 곧 장사하는 방식이고, 장사하는 방식이 곧 살아가는 방식이다.”
본질을 지키고 가치를 담으며, 일과 삶을 하나의 결로 만들어간 15년 차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 이야기
“과일은 맛있으면 그만 아닌가?” “소비자는 동지가 될 수 없을까?” “내가 파는 것이 과일인가, 쓰레기인가?”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과일장수의 눈에 이상한 점들이 띄었다. 과일 맛이 아무리 좋아도 크기가 작거나, 껍질에 작은 점 하나만 있어도 B급이 되어 제값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못난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상식과 다른 업계의 관습과 관행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과일로 바라본 세상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특히 차별의 문제. 이 바닥 초짜였지만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자 했던 어느 과일장수의 고민과 실천들
오랜 회사 생활을 접으며 과일가게를 시작할 때 결심했다. “일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이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태도가 일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삶을 원했다.” 상식과 원칙을 지키는 과일가게이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크고 ‘예쁜’ 농산물만 대우받는 시장의 오랜 관행에 의문을 제기했고, 공씨아저씨네는 과일을 크기와 모양으로 등급을 나누지 않고 판매했다. 또한 명절과 같은 특정 판매 대목에 맞춰 과일을 조기 수확하지 않고 과일 본연의 시간을 기다려 맛과 향이 무르익었을 때 수확해 판매한다. 로켓마저 배송에 동원되는 퀵커머스 시대에 농민의 삶의 질을 우선순위에 두고 주 2회 배송하는 늦장커머스를 자처한다. 온라인 판매업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포장 쓰레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플라스틱 완충재 하나 덜 넣기’, ‘종이 상자로의 전환’ 등 끝없이 개선 방안을 고심한다.
삶의 가치를 사업에 구현하며 ‘딸 때 따는 상식적인 과일가게’, ‘다름이 우열이 되지 않는 과일가게’, ‘환경을 생각하는 과일가게’ 등 여러 수식어를 갖게 되었다. 조금 특별하고 이상한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는 결국 입소문을 타고 단단한 팬층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회사가 꼭 확장해야만 할까요?”…1인 기업이자 구멍가게로 남는 것이 유일한 목표
대부분 창업을 하면 시작은 미약해도 그 끝은 창대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공씨아저씨네는 과일가게 회원을 무한정 늘리지 않으며,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는 과일농사 특성상 사업계획서나 매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한 과일 품목당 한 농가와 거래해 농민과의 신뢰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 때문에 파는 과일이 적고, 파는 시기도 제한되어 문을 연 날보다 문을 닫은 날이 더 많은 가게다. 가게를 처음 열 때부터 마지막까지 1인 회사, 구멍가게로 남는 것, 올해도 무사히 넘기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매출을 늘리거나 규모를 키우기보다 1인 기업을 유지하면서 공씨아저씨네만의 경영 가치와 운영 방식을 지키는 것에 집중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삶의 비중을 할애하고, 적게 벌고 적게 소비하는 삶을 산다.
“종종 매체와 인터뷰하면 받는 질문이 있다. 처음부터 이런 계획과 철학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냐는 질문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완성형으로 태어날 수 없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성숙한 자아를 만들어가듯이 1인 회사인 공씨아저씨네도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 가게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변화해왔다.”
점차 변화하되, 본질을 잃지 않는 것, 15년 차 공씨아저씨네가 서서히 그리고 더 선명하게 브랜드를 만들어간 비결이다. 저자는 “누군가에게는 내가 다양한 삶의 레퍼토리 중 하나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자신이 나이 들어가듯 브랜드와 함께 나이 들어가길 꿈꾼다. 삶과 가치를 사업에 녹여내고 싶은 이들에게 한 발 한 발 진심을 담아 걸어온 공씨아저씨네의 좌충우돌 남다른 행보가 용기를 북돋아줄 것이다.
공석진은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 대표 노동자
임금 노동자로 살다 퇴직당한 후 먹고살 길을 찾던 중 얼떨결에 2011년 온라인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를 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까막눈으로 과일 유통업계에 들어섰다. 외지인이나 다름없어서였을까. 상식과 다르다고 여겨지는 업계의 관습과 관행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과일로 바라본 세상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특히 차별의 문제가 눈에 띄었다. 과일시장에도 예쁘고 반듯한 과일만 환대받는 외모 지상주의가 팽배했고, 자본의 논리 앞에 환경의 가치와 농민의 삶은 쉽사리 흔들렸다.
삶이 지향하는 방향과 일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지 않길 바랐다. 사업에 삶의 가치를 하나씩 구현해가며 그렇게 15년간 본질을 지키고, 가치를 담아 과일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다 보니 ‘딸 때 따는 상식적인 과일가게’, ‘다름이 우열이 되지 않는 과일가게’, ‘환경을 생각하는 과일가게’ 등 여러 수식어를 갖게 되었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낭만 과일가게’다. 장사에도 낭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과일 유통업계에서 자연, 농민, 소비자의 공생을 꿈꾸며, 오늘도 이상주의자이자 몽상가로 살고 있다.
강석봉 기자
2025.03.08 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