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아직 안 버린 ‘세종시 국민투표 카드’](https://img.khan.co.kr/news/2010/03/08/20100302000569_r.jpg)
정치
[정치]아직 안 버린 ‘세종시 국민투표 카드’ㆍ이달 중 ‘6인 중진협의체’ 성과 없으면 MB식 해법 재부상 가능성 세종시법 수정을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는 ‘죽은 카드’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이와 관련해 “현재 국민투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투표 카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세종시 문제를 중재할 ‘6인 중진협의체’가 끝내 해법을 찾지 못할 경우 수정안 당론 채택 논란과 함께 국민투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월 24일 한나라당 세종시 의총에서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가 얘기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여론조사 결과 오차범위 내 찬반론 한나라당은 지난 3월 4일 소속 의원 3선 이상 가운데 원안과 수정안 찬성론자 각 2명, 중립지대 2명 등 총 6명으로 중진협의체를 구성했다. 친이(이명박)계는 이병석·최병국 의원, 친박(박근혜)계는 이경재·서병수 의원, 중립은 원희룡·권영세 의원으로 각각 결정됐다. 중진협의체는 앞으로 세종시 해법에 관해 토론을 벌이고 그 결과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세종시 관련 법의 국회 제출을 중진협의체 활동 종료 이후로 미뤘다. 국회에 제출될 5개 관련 법은 세종시의 성격을 종전의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로 변경하고, 대규모 투자 유치를 위해 민간에도 원형지를 공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세종시특별법 전부 개정안과 ▲혁신도시건설특별법 ▲산업입지개발법 ▲기업도시개발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이다. 그러나 중진협의체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헛바퀴만 돌리다 끝내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친이계는 “수정안의 큰 틀을 훼손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친박계는 “절충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3월 한 달동안 중진협의체의 논의를 지켜본 뒤 여의치 않으면 여권에서는 다시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친이계 일각에서는 국민투표의 ‘헌법적 권위’를 내세우며 최후의 카드로 남겨두려는 기류가 여전한 상태다. 특히 이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공언하면서 ‘현재’라는 전제를 달았다는 것도 미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친이계인 나경원 의원은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 “세종시 건설이 국민투표 요건에 해당하느냐는 논란이 있지만 외교, 국방, 통일 등 안보와 관련된 사항처럼 국운이 걸린 사항은 포함될 수 있다”면서 “최종적으로 (합의가) 안된다면 국민투표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정무라인 등에서는 세종시 국민투표 방안을 심도있게 분석하는 등 실무 차원에서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운찬 국무총리도 지난 2월 이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세종시 논란의 해법으로 국민투표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청와대 측의 중대결단 발언으로 인한 ‘국민투표 시사’는 세종시법 수정안을 빨리 결정하라는 정치권에 대한 압박인 동시에 여의치 않을 경우 다시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즉 3월 말까지 중진협의체의 논의를 지켜보다가 결론이 나지 않으면 이 대통령이 4월 중 국민투표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 내 친박계와 야당의 반대로 세종시법 수정안에 대한 당론 변경과 국회 통과가 불가능해질 경우 세종시법 수정을 성사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투표밖에 없다. 특히 친이계에서는 국민투표를 하면 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현재 세종시법 원안과 수정안에 대한 여론은 조사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는 기본적으로 정부에 유리한 방식이다. 역대 국민투표에서 대통령이 발의한 내용이 부결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까지 국민투표는 모두 여섯 차례 실시됐다. 이 가운데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다섯 차례 있었고, 유신헌법 재신임 투표가 한 차례 있었다. 물론 여섯 차례 모두 가결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0월 국회 연설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고 밝혔지만 불발에 그치기도 했다. 또한 국민투표가 결정되면 대통령이 국정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대통령이 국민투표 정국의 핵심에 서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6월 지방선거 국면에서 정부부처 이전에 부정적인 수도권 민심을 확실하게 잡을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유혹 때문에 일부 친이 강경파들은 국민투표 카드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투표 표결안건 여부’ 논란 가중 그러나 세종시법 수정안은 국민투표의 요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종시법 수정 문제가 과연 ‘기타 안위’에 관한 문제인지가 최대 쟁점이다. 한나라당 친박계 중진인 이경재 의원이 3월 3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세종시 중진협의체 구성에 반대 입장을 표한 뒤 친이계 이윤성 의원이 반박하자 팔짱을 낀 채 외면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철훈 기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세종시 문제는 외교도 아니고 국방도 아니고 앞으로 세종시 수정을 놓고 국민적 갈등이 더욱 더 심해지면 모를까 현재는 ‘기타 국가 안위’도 아니다”면서 “정치적 갈등을 국민투표라는 방법으로 풀려면 대의제의 근간이 훼손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세종시 문제로 일부 지역 갈등이 있는 것은 사실인 가운데 국민투표로 이를 해결하려면 지역 갈등의 봉합이 아니라 확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충청지역과 수도권 등 특정 지역에서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계에서는 헌법 72조의 ‘기타 국가안위’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좁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라면서 “이는 권위주의 정부가 이를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라고 밝혔다. 정부안 부결 땐 대통령 신임 큰 타격 최근 한국입법학회장에 선출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와대에서 전혀 헌법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정치권에 대한 ‘압박용’으로 거론한 것 같다”면서 “국민투표를 해서 찬성이 많이 나왔다 해도 이를 바탕으로 세종시법 수정안을 집행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인 대의제의 원칙 훼손을 막기 위해선 국민투표를 엄격히 제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에서 정한 법률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함부로 국민투표를 통해 바꾼다면 입법·사법·행정부라는 3권 분립의 원칙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전광석 연세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투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예외 규정으로 국회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최후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라면서 “이미 법률로 제정된 것을 국민에게 다시 국민투표로 묻는 것은 국회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친이계의 국민투표 주장도 논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세종시법 수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세종시보다 더 첨예하게 국민적 갈등을 빚고 있는 3불정책(기여입학제 금지, 본고사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도 국민투표 사안이라는 것. 또한 이런 논리대로라면 정권이 바뀌면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한 미디어법, 4대강 사업도 지속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정권이 바뀌면 수정 또는 폐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72조는 외교·국방·통일뿐만 아니라 ‘기타 안위’라는 용어가 있으니 국민투표가 가능한 사안”이라면서 “세종시로 인해 심각한 국론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충분히 국민투표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세종시 문제가 헌법 72조에 부합된다면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에 대한 위헌 논란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면서 “국민투표가 꼭 대의제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디어법, 4대강 사업에 대해 “국가의 중요정책이긴 하지만 국가 안위에 관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세종시법 수정안 국민투표는 헌정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위험성도 안고 있다. 세종시법 수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면 이는 이 대통령의 신임투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신임 투표는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이 대통령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세종시법 수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정치적 책임이 뒤따른다. 즉 대통령직을 건 도박일 수밖에 없다. 한상희 교수는 “세종시법 수정안이라는 정책적 사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하지만 부결되면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의 경우 1969년 4월 지방자치제 실시와 상원 개혁을 자신의 신임과 연계해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부결되자 사퇴했다.
권순철 기자 2010.03.10 1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