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표지 이야기
[표지이야기]‘박원순 심야 기자회견’ 막전막후
ㆍ전문가들 의견 들은 후 박 시장이 발표 결단…
ㆍ시민사회 출신 김창보 기획관 활약 눈길
“이번 주에 들어서는 정부와 협력관계가 원만한 것 같다. 정부가 제대로 안 움직일 때 적극적으로 제안한 셈인데, 너무 대립각을 세워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메르스 사태와 관련, 서울시 방역대책본부 핵심 관계자 A씨의 ‘당부’다.
“이제부터는 제가 방역대책본부장을 맡겠습니다.” 6월 4일, 심야 긴급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이다. 이튿날부터 박 시장은 매일 아침 8시, 저녁 8시에 열리는 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전 회의는 간밤의 상황을 정리하고 그날 하루에 할 일을 검토하는 회의다. 밤에는 아침보다는 작은 규모인데, 주요 담당자와 국장급이 참여해 상황을 정리하고 점검하는 회의다.” 박 시장을 보좌하는 또 다른 핵심 참모 B씨의 말이다. 오전 회의를 준비하고, 저녁 회의 결과를 정리하자면 새벽에 잠깐 집에 들러 1~2시간 눈을 붙이고 나오는 ‘비상근무’가 6월 5일 이후 계속되고 있다.
대처방법 놓고 내부에서 격론
메르스 사태의 심각성이 서울시에서 처음 공유된 것은 5월 말에 열린 기관장 회의 자리였다. 자리에 참석했던 한 기관장의 말. “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민기 서울의료원 원장이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심각한 지경인지는 몰랐다.” 이 기관장에 따르면 그 주말, 박 시장 및 서울시 간부들의 지리산 산행이 있었다. “아마 그때 박 시장이 ‘더 이상 위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결단을 내린 듯싶다”는 것이 이 기관장의 설명이다.
서울시 핵심 관계자들이 언급하는 6월 4일 심야 기자회견이 이뤄지게 된 막전막후는 이렇다. 6월 3일 열린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한 서울시 쪽 관계자가 메르스 확진 환자 35번이 재개발 총회에 참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오전에 그 사실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다음은 A씨의 말. “그 사실을 빨리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통보하기 위해 실무라인을 통해서 보냈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확인을 해보니, 명단조차 확보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다행히 조합원 중 서울시 메트로 등의 사람들이 있어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긴급하게 회의가 소집되었고, 박 시장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통화를 해 시급성을 알렸는데, 35번 환자의 상황에 대해 정확한 인지를 못한 것으로 보였다.” 질병관리본부장과도 박 시장이 직접 통화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성과가 없었다. 다음은 B씨의 말.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성급한 발표가 될 수도 있으니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있으니 당장 발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결단을 내린 것은 박 시장이었다.”
저녁, 박 시장은 전문가들을 초청해 의견을 물어봤다.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과 필요한 조치가 얼마나 있는지 등을 물었다. “복지부 장관은 그날 통화에서 증상이 생기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자가격리와 같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나으며, 쫓아가는 대응을 해서는 한계가 있으니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심야 박 시장의 기자회견 자리에 배석했다. 그런데 이 전문가들은 어떤 틀로 모아졌을까. 기자회견에 배석한 전문가는 조성일 서울대 감염의학과 교수, 방지환 보라매병원 감염내과 교수,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이종구 박사, 그리고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밤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메르스 관련 긴급 브리핑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의견 물어본 전문가들 기자회견에 배석
기자는 과거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를 취재한 적이 있다. ( 1077호 관련기사 참조)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토론회에는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 박재동 화백, 안재웅 한국YMCA 전국연맹 이사장, 송경용 성공회 신부(나눔과 미래 이사장), 윤형근 한살림 성남용인 상무이사, 강대인 녹색전환연구소 고문 등이 참석했다. 시민사회 원로급 인사들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 시장은 수첩을 들고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이 모임이 어떻게 구성되었느냐는 물음에 대해 주최측 관계자는 “박 시장의 요청으로 비공식적으로 3~4차례 모임을 갖고 의견을 개진해온 자리”라고 밝혔다. 이날 박 시장 기자회견을 함께한 보건의료계 인사들도 그런 성격의 모임 멤버들일까. A씨는 “그 분들과 박 시장의 개인적인 인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후 서울시 메르스 대책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인사는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이다. ‘정치선동’이라는 비난에서부터 구체적인 서울시 대책까지 언론 대응 및 회의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김 기획관은 관료 출신이 아니다. 보건정책학 박사 출신인 김 기획관은 보건사회연구원,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3년 건강세상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에 들어가 보건의료 시민운동에 투신한 특이한 케이스다. 서울시에 들어오기 전까지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등의 활동을 해왔다. 메르스 국면에서 김 기획관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서울시 공무원 출신 핵심 관계자 C씨의 설명. “사실, 기존 서울시 공무원 출신들은 시민사회운동을 하다가 들어온 사람들의 지휘를 잘 안 받으려고 한다. 앞에서는 하는 시늉을 하지만, 대답만 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라는 특수한 국면이긴 하지만 김 기획관의 경우는 다르다. 같이 일하는 사이지만, 일을 진전시키도록 발휘하는 정무적 감각은 내가 봐도 뛰어나다.”
박 시장을 향해 ‘정치쇼’라고 비난했던 35번 환자의 주장과 관련, A씨는 당사자로서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팩트 부분은 정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30일부터 증상이 나타났다고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했는데, 복지부 역학조사에서 35번 환자가 29일 경미한 증상를 보인 것이 드러났지 않았나. 14번 환자의 동선을 보면 27일부터 29일까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감염을 일으켰는데, 실제 그 시기에 같이 있거나 병문안 온 사람들 중 지금까지 확진 환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당시 우리 판단으로는 35번 환자가 위험을 인지했는지 못했는지의 문제는 다음 문제였다.” 일부 보수단체들을 중심으로 수도방위사령관이 서울시 대책회의에 참석한 것을 두고 나오는 비난과 관련, B씨는 “원래 재난상황에 열리는 통합방위위원회가 있는데 서울시장과 수방사령관, 경찰청장, 교육감 등이 비상시에 한 자리에 모여 대책을 검토하는 자리”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비난”이라고 일축했다.
어찌됐든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박원순 리더십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갤럽이 6월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에서 조사한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박 시장은 1위에 올랐다. 여야 대표에 밀려 3위에 그치다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다시 1위로 복귀한 것이다. “서울시장 일 말고 다른 생각은 않겠다”는 박 시장의 평소 공언과 무관하게 그의 ‘행보’가 주목을 끄는 까닭이다.
정용인 기자
2015.06.15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