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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다리] 민희진이 아닌 사람들의 기자회견

      사회 꼬다리

      [꼬다리] 민희진이 아닌 사람들의 기자회견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4월 25일 서울 강남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하이브 경영권 탈취 의혹’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4월 25일 휴가 중이라 집에 있었다. 나른한 오후 소파에 늘어져 TV를 틀었는데 파란 야구모자를 쓴 여성이 기자회견에서 속사포 래퍼처럼 말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는 바로 ‘뉴진스맘’ 민희진 어도어 대표였다. 휴가 중에도 하이브의 보도자료 알림 문자메시지는 계속 날아왔기 때문에 ‘하이브 사태’의 내용은 대략 알았다. 하이브는 ‘민 대표가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며 고강도 감사를 벌이는 한편 맹렬한 기세로 보도자료를 보냈다. 여론전이란 본래 진흙탕 싸움이지만 민 대표가 ‘주술 경영’을 벌였다는 ‘긴급 보도자료’는 쓴웃음을 짓게 했다. 이날 민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반격의 시작을 알렸다. 민 대표는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자신이 뉴진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회사와 일에 얼마나 헌신했는지,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게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는지 등을 열거하며 울분을 터뜨렸다. 발언부터 옷차림까지 파격이었다. 나는 어림잡아 최소 100번이 넘는 기자회견을 경험했지만 그런 기자회견은 처음 봤다. 끝내 민 대표의 뒤죽박죽 언어를 알아듣기 어려워 결국 다른 영상으로 넘겨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세상이 야단법석이었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이 단숨에 전세를 뒤집은 것이다. 민희진은 ‘밈’이 됐다. 그가 입은 티셔츠와 모자는 ‘완판’ 됐고, 그의 목소리를 AI(인공지능)로 흉내 낸 힙합 음악도 나왔다. 하이브 사태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놀랍다. 나의 삶과 별 상관없는 집안싸움 아닌가. 민 대표에게서 ‘직장인의 애환’을 느낀다는데, 매년 수십억원을 버는 CEO(최고경영자)가 같은 직장인인지 의문이다. 하여튼 하이브는 거대 기업이고 민 대표나 방 의장은 자본가다. 초일류 로펌 변호사들이 양측에 달라붙어 힘겨루기 중이다. 이번 사태로 하이브의 시가총액이 1조원 이상 증발했다니 거인들의 싸움이라고 부를 만하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 영상을 다시 찾아보면서 내가 찾아갔던 100번의 기자회견을 떠올렸다. 누구나 번듯한 장소에 기자 수백명을 불러모아 2시간 20분을 떠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많은, 아주 많은 기자회견이 길거리에서 열린다. 이런 기자회견들은 길어봐야 30분 내로 끝난다.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기자들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라도 알리려는 기자회견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난 노동자, 여성혐오 범죄에 항의하는 여성,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장애인,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성소수자, 예방할 수 있었던 참사의 유가족 등이 계속 기자회견을 열어왔다. 세상이 듣지 않는 간절한 말들을 세상을 향해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억울함과 절박함이 민희진이나 방시혁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참석한 기자가 나밖에 없었던 기자회견도 있었다. 기자 한 명만이 듣는 기자회견을 마친 그들이 “기자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하며 울 듯이 웃었다. 그 사람들과 민희진의 차이는 민희진이 아니라는 것뿐인데, 민희진처럼 기자회견을 열었다면 세상이 민희진만큼 관심을 줬을까. 나하고는 상관없는 사건이라며 무시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허진무 기자 2024.05.08 06:00

    • 경제 표지 이야기

      [표지 이야기]‘악수’로 끝난 대법원 앞 기자회견

      ㆍ사법부 전 수장으로서의 의미 강조… 일선 판사들 반응은 싸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왜 대법원 청사 앞 기자회견이라는 무리수를 뒀던 것일까.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월 1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그는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가기 전 대법원 앞에 먼저 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대법원은 앞서 “양 전 원장 측으로부터 어떠한 협조요청도 없었고, 별도의 허가신청서를 내지도 않았다”고 했다. 양 전 원장의 일방적인 행보였다. 그의 변호인이 출석 전날 언론에 “검찰에 출석하기 전 양 전 대법원장이 오전 9시쯤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며 “정문 안쪽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피할 수 있겠지만 대법원과 협의가 안 되면 정문 밖에서 할 수도 있다”고 알린 게 전부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기 위해 대법원 정문으로 들어서다 법원노조원들이 내건 펼침막을 바라보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양 전 원장이 검찰청사에 들어가는 장면이 찍히는 것에 대해 측근들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법부 수장이자 국가 의전서열 3위인 대법원의 전직 수장으로서 ‘피의자 신분’이 강조되는 장면은 피해야 한다는 일종의 전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사진이 찍혀야 한다면 포토라인을 검찰청사 앞이 아닌 대법원 앞에 세우는 것이 양 전 원장이 앞으로 가져갈 이미지 구축에도 유리하다는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일선 판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양 전 원장이 원했던 이미지는 대법원 청사가 자신의 뒤로 보이는 가운데 ‘(전) 사법부 수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나 수사방향은 잘못됐으니 판사들은 동요하지 말라’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어차피 양 전 원장이 어느 지점에 서서 발언을 하든 대법원 청사가 전부 다 찍히는 장면은 나오기 어렵다. 왜 무리수를 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판사는 “이미 사법부 구성원 안에서는 ‘그(양승태 전 대법원장)는 그고, 우리(일선 판사)는 우리’라는 생각이 많다”며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일선 판사들은 이제는 크게 동요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일선 판사들은 그들이 무너뜨린 사법부의 신뢰를 앞으로 어떻게 회복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이 원했던 이미지 전략 실패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계획’이 됐다. 양 전 원장은 법원 구성원들로부터도 배척당하는 이미지만 가져갔기 때문이다. 11일 이후 각종 언론매체에 노출되는 이미지는 ‘양승태는 사죄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앞에 선 전직 대법원장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전부였다. 일각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굳이 대법원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데 대해 “내 뒤에 나와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판사들이 있다”는 비언어적 표현을 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 허은아 소장은 1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는 분명히 있어 보이지만 장소 선택에 있어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허 소장은 오히려 양 전 원장이 기자회견을 할 때의 자세를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모습을 보면 손을 절대 앞으로 모으지 않는다. 차렷자세로 기자회견을 하고 질의응답에 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는 당당하고 잘못한 것이 없다는 비언어적 의사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보인 행동은 ‘나는 죄가 없고, 검찰이 어떤 압박을 해와도 전 사법부 수장으로서 당당하게 대응하겠다’는 일종의 비언어적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은 “판결이 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죄를 지은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는 불만을 공개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임 전 차장이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기 전까지 미디어에 노출되는 임 전 차장의 모습은 기자의 질문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밖에 없었다”며 “구속기소된 이후에는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사진만 계속 나온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은 검찰청사 내에서 포승줄에 묶인 채 호송차량에서 내리는 사진이 찍힌 후 검찰에 크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 전 차장 측은 “정식조사가 아니었고, 구속된 이후 수사기관과 일종의 상견례 형태로 조사받는 자리였는데 사전에 예고도 없이 의도적으로 검찰이 수의를 입은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켰다”고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검찰이 먼저 언론에 알린 적이 없으며, 언론 쪽에서 확인이 들어온 것에 대해 답변만 했을 뿐 누구를 의도적으로 망신을 주려고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이송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포토라인에 대한 찬반 논란 실제 대중들은 검찰청사를 배경으로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들에 대해 ‘유죄의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1월 15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언론인클럽이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마련한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송해연 대한변협 공보이사(변호사)는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고 혐의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일반인에게 유죄심증을 안기고 법관의 심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요소 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그러나 이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오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각국 정상을 만나 악수를 할 때 반드시 자신이 오른편에 서는 방식으로 ‘강대국 대통령’의 이미지를 가져갔다. 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이 왼편에 서 있는 인물에 비해 서열이 높은 것으로 인식되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에 대한 여론과는 별개로 현재 비언어적 표현을 가장 적절히 잘 활용하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방금 김정은으로부터 훌륭한 편지(great letter)를 받았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공개했다. 이때 대통령 앞 테이블에는 김 위원장의 친서와 함께 이란 제재 복원을 예고하는 ‘SANCTIONS COMING(제재가 다가오고 있다)’이라는 문구가 적힌 미드 <왕좌의 게임> 패러디 포스터를 배치했다. 김 위원장의 친서를 소개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와 미국 내부에 ‘불량국가’에 대한 제재 및 압박을 완화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가 당을 상징하는 색깔(짙은 파랑) 넥타이 대신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 역시 줄무늬 넥타이가 상징하는 열정과 자신감을 자신의 이미지로 구축하기 위한 비언어적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당시 줄무늬 넥타이를 제안한 사람은 예종석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홍보본부장(한양대 교수)이었다. 그는 마케팅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허은아 소장은 “대중들은 정치인이나 CEO들이 치밀하게 구축한 이미지에서 실제로 많은 영향을 받는다”며 “이 같은 형태의 이미지 마케팅은 앞으로 더욱 활발히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2019.01.21 14:56

    • 사회 렌즈로 본 세상

      [렌즈로 본 세상]기자들의 기자회견 “취재도 진압하는가”

      전국언론노조와 한국사진기자협회 등 직능별 기자협회 회원들이 경찰청 정문 앞에서 경찰의 폭력적 ‘취재 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습니다. 11월 14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살수차 운용지침’을 지키지 않고 머리와 상체를 겨냥한 조준 살수로 취재를 방해한 것 등을 항의하기 위한 것입니다. 집회현장의 모든 목소리와 상황을 기록해야 할 기자들에게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조준 발사해서 진실을 덮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진실을 기록하려는 대한민국 언론이 기껏 물대포에 의지가 꺾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생각 아닐까요.

      사진·글 이상훈 선임기자 2015.11.24 15:07

    • 사회 표지 이야기

      [표지이야기]‘박원순 심야 기자회견’ 막전막후

      ㆍ전문가들 의견 들은 후 박 시장이 발표 결단… ㆍ시민사회 출신 김창보 기획관 활약 눈길 “이번 주에 들어서는 정부와 협력관계가 원만한 것 같다. 정부가 제대로 안 움직일 때 적극적으로 제안한 셈인데, 너무 대립각을 세워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메르스 사태와 관련, 서울시 방역대책본부 핵심 관계자 A씨의 ‘당부’다. “이제부터는 제가 방역대책본부장을 맡겠습니다.” 6월 4일, 심야 긴급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이다. 이튿날부터 박 시장은 매일 아침 8시, 저녁 8시에 열리는 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전 회의는 간밤의 상황을 정리하고 그날 하루에 할 일을 검토하는 회의다. 밤에는 아침보다는 작은 규모인데, 주요 담당자와 국장급이 참여해 상황을 정리하고 점검하는 회의다.” 박 시장을 보좌하는 또 다른 핵심 참모 B씨의 말이다. 오전 회의를 준비하고, 저녁 회의 결과를 정리하자면 새벽에 잠깐 집에 들러 1~2시간 눈을 붙이고 나오는 ‘비상근무’가 6월 5일 이후 계속되고 있다. 대처방법 놓고 내부에서 격론 메르스 사태의 심각성이 서울시에서 처음 공유된 것은 5월 말에 열린 기관장 회의 자리였다. 자리에 참석했던 한 기관장의 말. “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민기 서울의료원 원장이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심각한 지경인지는 몰랐다.” 이 기관장에 따르면 그 주말, 박 시장 및 서울시 간부들의 지리산 산행이 있었다. “아마 그때 박 시장이 ‘더 이상 위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결단을 내린 듯싶다”는 것이 이 기관장의 설명이다. 서울시 핵심 관계자들이 언급하는 6월 4일 심야 기자회견이 이뤄지게 된 막전막후는 이렇다. 6월 3일 열린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한 서울시 쪽 관계자가 메르스 확진 환자 35번이 재개발 총회에 참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오전에 그 사실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다음은 A씨의 말. “그 사실을 빨리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통보하기 위해 실무라인을 통해서 보냈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확인을 해보니, 명단조차 확보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다행히 조합원 중 서울시 메트로 등의 사람들이 있어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긴급하게 회의가 소집되었고, 박 시장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통화를 해 시급성을 알렸는데, 35번 환자의 상황에 대해 정확한 인지를 못한 것으로 보였다.” 질병관리본부장과도 박 시장이 직접 통화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성과가 없었다. 다음은 B씨의 말.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성급한 발표가 될 수도 있으니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있으니 당장 발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결단을 내린 것은 박 시장이었다.” 저녁, 박 시장은 전문가들을 초청해 의견을 물어봤다.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과 필요한 조치가 얼마나 있는지 등을 물었다. “복지부 장관은 그날 통화에서 증상이 생기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자가격리와 같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나으며, 쫓아가는 대응을 해서는 한계가 있으니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심야 박 시장의 기자회견 자리에 배석했다. 그런데 이 전문가들은 어떤 틀로 모아졌을까. 기자회견에 배석한 전문가는 조성일 서울대 감염의학과 교수, 방지환 보라매병원 감염내과 교수,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이종구 박사, 그리고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밤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메르스 관련 긴급 브리핑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의견 물어본 전문가들 기자회견에 배석 기자는 과거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를 취재한 적이 있다. ( 1077호 관련기사 참조)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토론회에는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 박재동 화백, 안재웅 한국YMCA 전국연맹 이사장, 송경용 성공회 신부(나눔과 미래 이사장), 윤형근 한살림 성남용인 상무이사, 강대인 녹색전환연구소 고문 등이 참석했다. 시민사회 원로급 인사들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 시장은 수첩을 들고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이 모임이 어떻게 구성되었느냐는 물음에 대해 주최측 관계자는 “박 시장의 요청으로 비공식적으로 3~4차례 모임을 갖고 의견을 개진해온 자리”라고 밝혔다. 이날 박 시장 기자회견을 함께한 보건의료계 인사들도 그런 성격의 모임 멤버들일까. A씨는 “그 분들과 박 시장의 개인적인 인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후 서울시 메르스 대책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인사는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이다. ‘정치선동’이라는 비난에서부터 구체적인 서울시 대책까지 언론 대응 및 회의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김 기획관은 관료 출신이 아니다. 보건정책학 박사 출신인 김 기획관은 보건사회연구원,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3년 건강세상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에 들어가 보건의료 시민운동에 투신한 특이한 케이스다. 서울시에 들어오기 전까지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등의 활동을 해왔다. 메르스 국면에서 김 기획관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서울시 공무원 출신 핵심 관계자 C씨의 설명. “사실, 기존 서울시 공무원 출신들은 시민사회운동을 하다가 들어온 사람들의 지휘를 잘 안 받으려고 한다. 앞에서는 하는 시늉을 하지만, 대답만 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라는 특수한 국면이긴 하지만 김 기획관의 경우는 다르다. 같이 일하는 사이지만, 일을 진전시키도록 발휘하는 정무적 감각은 내가 봐도 뛰어나다.” 박 시장을 향해 ‘정치쇼’라고 비난했던 35번 환자의 주장과 관련, A씨는 당사자로서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팩트 부분은 정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30일부터 증상이 나타났다고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했는데, 복지부 역학조사에서 35번 환자가 29일 경미한 증상를 보인 것이 드러났지 않았나. 14번 환자의 동선을 보면 27일부터 29일까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감염을 일으켰는데, 실제 그 시기에 같이 있거나 병문안 온 사람들 중 지금까지 확진 환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당시 우리 판단으로는 35번 환자가 위험을 인지했는지 못했는지의 문제는 다음 문제였다.” 일부 보수단체들을 중심으로 수도방위사령관이 서울시 대책회의에 참석한 것을 두고 나오는 비난과 관련, B씨는 “원래 재난상황에 열리는 통합방위위원회가 있는데 서울시장과 수방사령관, 경찰청장, 교육감 등이 비상시에 한 자리에 모여 대책을 검토하는 자리”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비난”이라고 일축했다. 어찌됐든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박원순 리더십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갤럽이 6월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에서 조사한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박 시장은 1위에 올랐다. 여야 대표에 밀려 3위에 그치다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다시 1위로 복귀한 것이다. “서울시장 일 말고 다른 생각은 않겠다”는 박 시장의 평소 공언과 무관하게 그의 ‘행보’가 주목을 끄는 까닭이다.

      정용인 기자 2015.06.15 18:27

    • [유승찬의 눈]‘벙어리 민주주의’ 신년 기자회견

      오피니언 금주의 칼럼

      [유승찬의 눈]‘벙어리 민주주의’ 신년 기자회견

      “오늘 기자회견의 주목적이 담뱃값 인상 이후 판매가 저조하자 ‘보는 사람들 열받아서 담배 한 대라도 더 피우게 하려는 것’이라는 사실도 새로 발견했다.” @presi*****님이 올린 트윗글이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이토록 희화화되는 경우가 또 있었을까. 이런 트윗도 있었다. “전례 없는 정부를 맞이하여 뉴스타파도 전례 없는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이렇게 분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뉴스타파는 작년 기자회견과 올해 기자회견을 비교하는 프로그램으로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었다. 기자회견을 언급한 트위터와 블로그 문서는 1월 12일부터 15일까지 약 5만3000건 정도였다. 전체 연관어 1위는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이었고, 이어 국민, 청와대가 뒤를 이었으며, 4위가 바로 뉴스타파였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은 단지 야권이나 진보성향의 언론만이 아니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도 이번 기자회견이 국민의 기대와 전혀 달랐다고 비판했고, 새누리당 의원들 속에서도 탄식과 비판이 터져나왔다. 한마디로 불통과 고집이었다. 정윤회씨 문건 유출 파문으로 청와대 비서실이 송두리째 신뢰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인적 쇄신을 거부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국민의 바람에 등을 돌리고 이른바 청와대 가족만을 외롭게 감싸안았다. 경제 키워드를 42번 반복한다고 해서 경제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것은 용서를 구하며 하나씩 동의를 구해가는 것이 신년 기자회견의 기본 태도이다. 국민의 동의 없이 어떻게 경제인들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예상했던 대로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빠졌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면 웬만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 국민이 원하는 소리를 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잘못했다’는 의견이 52.2%로 ‘잘했다’는 응답 39.5%를 훨씬 상회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1월 12일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38.9%로 1월 9일 지지도 43.1%에 비해 큰 폭으로 빠졌다. 1월 15일에도 30%대를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당인 새누리당 지지율도 40% 벽이 무너진 데 이어 37.5%까지 주저앉았다. 청와대 인사문제는 이준석 전 비대위원과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의 진실게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점입가경이다. 실제로 두 명의 논쟁과 관련한 전체 연관어에는 ‘점입가경’과 ‘막장’이라는 단어가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당청 갈등도 첨예해지고 있다. 특히 정말 지독한 불통과 아집이 낳은 인사 참사와 인사 참사의 원인을 둘러싼 의혹이 하나도 풀리지 않은 상황은 집권 3년차 국정수행 능력 자체를 의심케 한다는 여론을 낳고 있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매우 상징적인 이벤트다. 그런데 올해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불통의 상징적인 각본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번 기자회견은 대통령은 귀를 닫고 기자들은 입을 닫은 ‘벙어리 민주주의’의 표상이 되었다. 기자회견을 극도로 싫어했다는 조지 부시 대통령도 2년간 7차례 단독 기자회견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단 두 차례밖에 하지 않았다. 국민과의 소통은 대통령의 주관적인 관념이 아니라 국민이 소통한다고 느낄 정도로 하는 것이 맞다. 빌 클린턴은 2년간 29회, 버락 오바마는 21회 기자회견을 가졌다. 집권 3년차 박근혜 대통령이 불통의 상징을 넘어 계속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매월 한 차례 기자회견을 갖는 파격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너무 장밋빛인가!

      2015.01.20 14:29

    • [특집]영담·성타 스님의 ‘돌발 기자회견’

      사회 특집

      [특집]영담·성타 스님의 ‘돌발 기자회견

      ㆍ민주평통 종교분과위 ‘입장’ 표명 불교계 안팎으로 파문 “이미 4대강 공사는 돌이킬 수 없는 공정을 보이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하면서 환경을 잘 보호할 수 있도록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난 7월 8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종교인도지원분과위원회(이하 민주평통 종교분과위)가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이하 ‘입장’)의 한 대목이다. 민주평통 종교분과위가 발표한 이 ‘입장’이 불교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평통 종교인도지원위원회 참석자들이 7월 8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4대강 사업 및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발언하는 이가 영담 스님, 오른쪽이 성타 스님이다. |연합뉴스 민주평통 종교분과위의 ‘입장’은 사실상 4대강 사업 지지 선언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전국 4812명의 승려가 참여한 ‘생명평화선언’ 발표 기자회견이 열린 날이다. 외부 시각으로는 4대강과 관련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불교계에서는 이날 ‘입장’ 기자회견에 참석한 영담 스님의 ‘행보’와 관련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4대강생명살림불교연대에서는 조계종 총무부장으로 있는 영담 스님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7월 14일 불교환경연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의 기자회견이 “민주평통이 발표한 입장은 관련 법이 규정한 고유의 업무인 ‘통일’을 벗어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명백한 월권 행위이며 헌법 질서를 파괴한 행동”이라며 △민주평통의 의장인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종교인도지원위원회 자문위원 스님들의 해촉 △여야 정당의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 요구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 불교계 인사는 “결국 나중에 직책을 뺐다고 하지만 이번 4대강사업 찬성 기자회견에서 조계종 총무부장 직함이 거론된 것은 마치 종단의 공식 입장인 듯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것이 불교계 중론”이라고 말했다. 영담 스님의 ‘참여’를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과거 영담 스님이 수장으로 있던 종책모임 보림회가 경부운하 추진 당시 반대 입장을 낸 ‘전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인사의 설명이다.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성타 스님은 과거 핵폐기장 경주 유치 등에서 찬성 입장을 보인 적이 있어 일견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보이지만 영담 스님의 태도가 갈 지(之) 자 행보를 보인다는 시각이다. 총무원장도 기자회견 참석 만류 한편 이날 ‘입장’ 기자회견 참석 문제와 관련해 총무원에서 열린 오전 종무회의에서 총무원장도 기자회견 참석을 말린 것이 알려지면서 파문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한 종단 관계자는 “‘오해를 살 수 있으니 그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자승 총무원장이 권고했음에도 결행에 옮긴 것은 실제적인 ‘항명’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13일 오후 영담 스님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4대강 사업에 대해 종단의 공식 입장은 지난 6월 8일 발족한 화쟁위원회에서 마련 중이며, 아직 결론이 도출되지 않았다”면서 “민주평통 종교분과의호소문은 정부안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정부에 대국민 설득과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환기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평통 분과위원회가 쟁점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실제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민주평통이나 분과위원회가 4대강과 같은 쟁점 현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평통 종교분과위의 간사직을 맡고 있는 도희윤 선진통일교육센터 대표는 “선진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이 봉합돼야 하기 때문에 4대강에 대해 입장을 표시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8일 4812인 선언과 기자회견일이 겹친 것과 관련해 그는 “기자회견 장소인 한국프레스센터 대관과 개인 일정 등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교계에서는 7월 17일과 18일 문수 스님 추모행사와 49재를 마친 뒤 영담 스님 거취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예정이어서 관련 파문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용인 기자 2010.07.20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