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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주목! 이 사람

      [주목! 이 사람]‘자살’ 들여다보는 사회학자 김명희 “사회적 참사 치유방법 탐구”

      /김명희 제공 세월호가 107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날 화제가 된 것은 강원도 원주에서 촬영된 세월호 리본 모양의 구름 사진이었다. 시민들은 “하늘이 위로해주는 것 같다”며 세월호 리본 사진을 공유했다. 하늘의 구름은 우연적인 현상일 뿐, 사람들의 이런 반응은 비과학적인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데이터로 드러나는 과학만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요?” 최근 (한울아카데미)을 출간한 사회학자 김명희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가 오래도록 매달려온 질문이다. 사회학자로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연쇄자살 등을 연구하던 김 교수에게도 세월호 사건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학자로서 자괴감이 드는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전 국민이 겪는 충격을 ‘사회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과 충격은 곧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이름으로 의료적으로 다뤄졌어요. ‘케어센터’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상담을 받으라 하고, 약을 처방해요.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전혀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사회과학이 중시하던 사실(fact)은 일베의 용어가 됐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팩트’라는 말을 꺼내죠. 사회과학이 거기에 답을 못해요. 자기기입식 응답에 근거해 통계만 돌리는 사회학이 이른바 ‘과학적’이라고 인정받죠. 과학적이지도 않고 인간을 위한 학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뿐 아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위안부 피해 생존자, 탈북민들을 다룰 때도 항상 같은 패턴이 나타났다. 탈북민들의 자살이 문제가 되면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고통, 우리 사회의 인식에 대해 논의하고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탈북민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고 치료적으로 개입히려는 식이다. ‘사고-보상’ 프레임이다. 등 여러 곳에서 이 같은 문제의식을 풀었다. 한국의 갈라진 학계 풍토를 극복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국의 학계 풍토는 이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의 통합이 논의되고 있지만, 한국은 인간과학도 사회과학, 인문학으로 철저히 나뉘어 소통이 잘 되지 않습니다. 사회학만 해도 역사학과 분리돼 역사 없는 사회학, 통계만 돌리는 사회학이 존재하고 있어요.” 책은 19세기 말 산업화·근대화의 소용돌이에서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개척한 뒤르켐에서 다시 시작한다. 뒤르켐은 당시 유럽에서 죄악, 유전적 현상, 혹은 모방 효과로만 여겨지던 자살을 인구통계학을 통해 ‘사회적 현상’임을 규명해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교수가 보기에 뒤르켐의 작업에서 중요한 지점은 통계의 기법만이 아니라 누군가 자살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인과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2014년 8월 세월호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밝힌 심리학자 307명의 성명에서도 많은 자극을 받았다. “사건과 사례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일, 그렇게 구조를 알아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사회를 통합시키고, 연대를 이루는 일이고,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꿔내는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구름 리본처럼 ‘학문’이라는 리본이 다시 사회를 묶어내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겼다.

      박은하 기자 2017.03.28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