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이재명 “개헌 당시 재임 대통령엔 연임제 적용안돼 ···임기 단축 개헌 신중해야”](https://img.khan.co.kr/news/2025/05/18/news-p.v1.20250518.6ff2baf57d0640ea99f4f8b0fac668e7_P1.jpeg)
정치
[속보]이재명 “개헌 당시 재임 대통령엔 연임제 적용안돼 ···임기 단축 개헌 신중해야”... “개헌 당시 재임 대통령은 연임 안돼” 임기 단축 개헌에는 신중 입장 “국가 최종 책임자 임기 문제 신중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운데)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김한솔 기자, 허진무 기자 2025.05.18 11:23
정치
[속보]이재명 “개헌 당시 재임 대통령엔 연임제 적용안돼 ···임기 단축 개헌 신중해야”... “개헌 당시 재임 대통령은 연임 안돼” 임기 단축 개헌에는 신중 입장 “국가 최종 책임자 임기 문제 신중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운데)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김한솔 기자, 허진무 기자 2025.05.18 11:23
사회
5·18 당시 시민군 통역…미국인 데이비드 돌린저 ‘광주 명예시민’ 선정... 상징”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미국인이 광주 명예시민이 됐다. 광주시는 29일 “5·18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한 미국인 데이비드 돌린저(사진)를 광주 명예시민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광주 #미국인 #명예시민
강현석 2025.04.29 21:47
사회
“누구를 체포하겠냐, 일이 크다” 말에 ‘한숨 푹’···계엄 당시 경찰 간부들 통화...,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에 대한 5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계엄 당시 박창균 전 영등포서 형사과장과 이현일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계장 간 통화 녹취가...
#조지호 #목현태 #김봉식 #윤승영 #비상계엄
김나연 기자 2025.04.29 17:17
정치
김민석의 ‘이재명 관찰기’ 출간…비상계엄 당시 김혜경 여사 일화도..., 계엄 해제를 주도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해 내란 종식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불법계엄 사태 당시의 일화도 담겼다. 김 최고위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한 직후, 이(재명) 전 대표는...
박용하 기자 2025.04.22 19:13
연예
마릴리 먼로, 하루만에 ‘허리 1인치’ 뺐다 “당시 할리우드 유행해”(셀럽병사)영화속마릴린 먼로의 모습. 연합뉴스 KBS 2TV 한국 최초의 의학 스토리텔링 예능 ‘셀럽병사의 비밀’에서는 영원한 ‘섹스 심볼’ 마릴린 먼로의 생로병사가 공개된다. 20일(화) 방송될 KBS2 ‘셀럽병사의 비밀’에서는 ‘아이들’의 미연이 마릴린 먼로의 아이코닉한 흰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감탄을 자아냈다. 이찬원은 “마릴린 먼로가 환생해서 온 줄 알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의 주인공인 ‘마릴린 먼로’는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할리우드 섹스 심볼’ 대표 여배우다. 이번 회에는 풍성한 금발과 풍만한 몸매로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생로병사가 공개된다. 당시 신예였던 마릴린 먼로는 데뷔 3년 차에 출연한 영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에서 주연 여배우보다 5배의 팬레터를 받으며 라이징 스타에 올랐다. 이찬원은 “이 3년 사이에 마릴린 먼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라며 호기심을 부추겼다. 마릴린 먼로는 성형 외에도 머리카락 색을 밝은 금발로 바꾸고 개명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본래의 ‘노마 진’이라는 이름에서 ‘마릴린 먼로’로 개명하게 된 계기는 당시 그와 계약한 기획사와 관련이 있었다. 이날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한 ‘정치학자’ 김지윤 박사는 “악덕 아이돌 기획사 느낌이다”라며 당시 할리우드의 보편적인 계약 방식이었던 스튜디오-배우간의 전속 계약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마릴린 먼로는 이미지와 달리 똑똑하고, 지적인 여성이다. 촬영 대기할 때도 항상 책을 놓지 않았다”며 카메라 뒤편의 마릴린 먼로가 가진 진면목도 소개했다. KBS2 ‘셀럽병사의 비밀’ VCR에 공개된 19세의 마릴린 먼로와 20대 때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은은한 차이로 MC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찬원은 “코 끝과 턱 끝에 보형물을 넣어 이미지가 달라졌다”며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닥터 MC’ 이낙준은 기원전 7세기경 인도에서 기록된 첫 성형수술의 역사와 마릴린 먼로가 받은 성형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과연 그 시절 성형은 현재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방송에서 공개된다. 또한 마릴린 먼로의 독특한 다이어트 방식도 밝혀진다. 이찬원은 “하루에 1인치, 약 2.54cm를 줄이기도 했다”며 당시 할리우드에 유행했던 자기 파괴적인 다이어트 방식을 소개했다. 이낙준은 “사실 살을 빼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라며 고개를 저어 궁금증을 유발했다. 역사 속 셀러브리티의 은밀한 생로병사를 파헤치는 한국 최초의 의학 스토리텔링 예능 ‘셀럽병사의 비밀’ 20회 마릴린 먼로 편은 5월 20일(화) 저녁 8시 30분 KBS 2TV에서 공개되며 이후 웨이브(Waave)에서도 시청 가능하다.
서형우 온라인기자 2025.05.19 14:23
연예
박해수 “‘악연’ 촬영 당시 배경화면 조커였다” (유퀴즈)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 배우 박해수가 한동안 배경화면이 조커였다고 밝혔다. 14일 방송된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 (이하 ‘유퀴즈’)에는 박해수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유재석은 최근 공개된 박해수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에 대해 “그야말로 살벌한 연기를 보여줬다. 공개 2주 차 만에 글로벌 TOP10 시리즈 2위, 35개국에서 TOP10에 오르지 않았나. ‘박해수의 연기 차력쇼다’ ‘이번에 작두 탔다’는 평이 많았다”고 칭찬했다. 특히 유재석은 극 중 박해수의 광기 어린 미소에 대해 “맡은 캐릭터가 그랬다. 혼자 웃거나, 감정 기복 심해서 조커가 떠올랐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박해수는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을 못 했는데 그때 당시 휴대폰 배경 화면이 조커였다”며 수줍음을 보였고, 유재석은 “진짜 조커같았다”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장정윤 온라인기자 2025.05.14 21:58
연예
전소민 ‘런닝맨’ 하차 당시 심경 “악성댓글에 시달렸다” (백반기행)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출연한 배우 전소민 주요장면. 사진 TV조선 배우 겸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전소민이 TV조선 교양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이하 백반기행)에 참여해 과거 예능 ‘런닝맨’에서 하차했던 사연을 암시한다. 전소민은 이날 허영만과 함께 서울의 중심 용산으로 맛 기행을 떠난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용산 거주 8년 차의 그는 용산의 주요 맛집을 소개한다. 그는 SBS 예능 ‘런닝맨’의 고정 멤버로 7년 동안 활약하며 특유의 명랑한 모습으로 사랑을 차지했다. 하지만 사랑을 받았던 만큼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악성댓글로 마음고생도 심했다고 밝혔다. 전소민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긍정적인 태도로 식객 허영만의 마음도 녹였다. 여린 모습과 달리 단단한 ‘외유내강’ 전소민의 남모를 사연이 솔직한 심정과 함께 공개된다. 연예계 데뷔 22년 차에 접어든 전소민은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잡지모델로 데뷔해 MBC 드라마 ‘에덴의 동쪽’과 ‘오로라 공주’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이날 허영만에게 “원래 꿈은 배우가 아닌 가수”였다고 밝히며 결국 노래를 못 불러 꿈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이에 허영만이 “대체 얼마나 노래를 못 부르기에 가수를 포기하나?”라고 궁금해하자, 그는 간드러진 열창을 선보인다. 전소민과 허영만은 아는 사람만 찾는 골목 깊숙한 곳에 항정살 집을 방문한다. 퇴근하고 온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이곳의 대표 메뉴 항정살을 맛본 전소민과 허영만은 고기의 식감에 감탄하고, 깔끔한 매력의 오이지냉국수에 입맛이 사로잡힌다. 그는 “항정살을 몰랐을 때 돼지의 항문살인 줄 알았다”고 백치미를 뽐내기도 했다. 전소민과 함께한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은 오늘(11일) 오후 10시20분 방송된다.
하경헌 기자 2025.05.11 10:04
연예
기은세, 이혼 당시 母 반응 “반대 안 해···괜찮다고” (편스토랑)KBS 2TV 예능 ‘신상출시 편스토랑’ ‘편스토랑’ 기은세가 자신의 이혼을 언급했다. 2일 방송된 KBS 2TV 예능 ‘신상출시 편스토랑’ (이하 ‘편스토랑’)에는 기은세가 전인화를 집에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전인화는 자신의 결혼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전인화는 “엄마는 너에 대해서 어떤 이야길 하시냐”고 물었고, 기은세는 “저 이혼했을 때요?”라고 되물었다. 이어 기은세는 “엄마는 제가 알아서 할 거니까 괜찮다고 하셨다. 결혼할 때도 그랬고 헤어질 때도 그랬고 엄마가 저한테 뭘 반대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에 전인화는 “엄마가 또 (시집) 가라고는 안 하시냐”고 물었고, 기은세는 “나중에. 지금 말고”라며 웃음을 보였다.
장정윤 온라인기자 2025.05.02 22:21
문화/과학 만화로 본 세상
[만화로 본 세상]투쟁에 참여한 당시 여성들의 다양한 서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한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이 출간됐다. 김홍모·윤태호·마영신·유승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시리즈는 각각 제주 4·3,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을 다뤘다. 나란히 한 케이스에 꽂힌 네 권의 책 중 유승하 작가의 <1987 그날>을 먼저 꺼내들었다. 당연히 영화 <1987> 개봉 후 있었던 논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유승하 작가의 <1987 그날> 표지 / 창비 영화 <1987>은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사건을 중심으로 1987년 대투쟁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한 답을 써내려간 영화다. 결집한 민중의 위대한 힘을 웅변하는 작품답게 영화는 다수의 인물로 주연을 구성한다. 모두 실존했던 남성들 사이에 김태리 배우가 분한 ‘연희’는 유일하게 여성이자 허구의 인물이었다. 진실의 무게와 시대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남성들 사이에서 연희는 정치도, 역사도 관심 없는 ‘평범한’ 시민의 얼굴을 표상했다. ‘잘생긴 운동권 오빠’에게 반해 이 역사의 흐름에 뛰어든 연희 모습에 불편함을 느낀 여성들이 많았다. 영화 <1987>이 여성들을 지웠느냐, 아니냐의 논란이 분분했다. 황진미 평론가는 연희가 강렬하진 않지만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캐릭터라는 점을 높이 샀다. 그의 말처럼 물론 영화 속에도 당시 여성들이 투쟁의 주체로 움직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들은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는 사람 눈에나 또렷이 보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 ‘여성’이 도드라지는 건 연희일 수밖에 없다. 유승하 작가가 그러한 논란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유승하 작가 또한 그 당시 투쟁의 흐름에 참여한 여성이었으니, 그가 어떻게 다른 ‘1987’을 써낼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책장을 열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작중 인물소개란에서 ‘이름’을 가지고 서로 다른 얼굴을 한 여럿의 ‘여성들’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것은 안도였고, 어쩐지 뭉클함이었고, 왠지 모를 서글픔이었고, 무엇보다 기대감이었다. 영화 <1987>의 연희라는 캐릭터에서 느낀 아쉬움 중 하나는 여성은 왜 남성을 매개로 해서만 자신의 역사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만화 <1987 그날>은 당시 투쟁에 참여한 여성들의 다양한 서사를 드러낸다. 대학생 진주는 사회적 책임과 불의를 눈감을 수 없어 운동에 동참한다. 그의 친구 혜승은 가족과 운동 사이에서 갈등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언니의 죽음을 사유하며 시대에 다가간다. 가난 속에서도 미대에 진학하려 애쓰다 좌절하는 나리는 민중미술을 통해 ‘그날’의 작은 물결이 된다. <1987 그날> 역시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지만 상계동 강제철거, 신촌 벽화 사건 등 철거민 운동, 민중미술의 역사가 1987년의 흐름에 어떻게 함께했는지 놓치지 않는다. 혜승의 언니의 모델로 삼은 ‘박혜정 열사’의 죽음과 같이 ‘열사’가 되지 못한 죽음이 이 역사 속에 무수히 함께했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유승하라서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서사가 종종걸음을 치는 듯한 느낌은 조금 아쉽지만, 한편으론 그 종종거림이 ‘여성의 목소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도, 역사도 되지 못한 채 내 안에만 구겨 넣어진 분투의 기억이 작은 물꼬를 만날 때 내는 소리 말이다.
2020.04.24 15:42
문화/과학
일본, 정유재란 당시 왜성 40여개 쌓았다일본이 우리나라에 쌓은 왜성의 현황 지도가 발견됐다. 박종평 연구가는 “다양한 왜성의 존재와 형태를 보면 일본군이 우리나라 남쪽 지역을 영구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졌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에 쌓은 왜성의 현황 지도가 발견됐다. 이 지도는 중국 국가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목판본 <조선일본도설(朝鮮日本圖說)>에 실려 있다. 책 제목은 ‘조선과 일본의 지도와 해설’이라는 뜻이다. 이 책의 존재는 2014년에 처음으로 중국 학자인 정지에시(鄭潔西) 박사가 일본 가나가와대에서 발간하는 <비문자자료연구(非文字資料硏究)>에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이 책을 소개한 사례가 없다. 속에 있는 ‘사로왜채총도(四路倭寨總圖)’. 모두 17개의 왜성이 그려져 있다. 이순신 연구가인 박종평씨가 중국 국가도서관을 통해 책의 전문을 입수했다. 이 책에는 정유재란 때 왜성의 전체적인 위치와 구체적인 형태의 그림이 실려 있다. 정유재란 당시의 그림으로서 왜성의 위치가 모두 나타난 그림은 <조선일본도설>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박종평 연구가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처럼 왜성에 대한 전체적인 위치를 그린 지도가 없어 자료가치가 아주 크다”며 “경남과 전남지역에 세워진 다양한 왜성의 존재와 형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에 그려진 주요 거점의 왜성에 대한 묘사는 아주 상세하다. 이중삼중으로 성곽, 성곽 앞뒤에 설치된 나무울타리와 해자가 있다. 성가퀴(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성 위에 낮게 덧쌓은 담) 등의 방어시설이 그려져 있다. <선조실록>이나 진경문의 <예교진병일록>, 조경남의 <난중잡록> 등에서 울산·사천·순천왜성 전투 기록을 살펴보면, 조·명연합군이 적극적으로 공격해 왜성을 함락시킨 사례가 없다. 왜성의 방어시스템이 조·명연합군의 공격 능력보다 훨씬 우세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국가도서관 소장 <조선일본도설> 그림 속 왜성의 모습 중 일부는 기존에 알려졌던 그림과 거의 일치한다. 순천(예교·왜교)왜성의 경우는 <정왜기공도병(征倭紀功圖屛)>(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울산(도산)왜성은 <울산성 전투도>(일본 나베시마보효회 소장)와 대부분 일치한다. 특히 사천왜성과 부산왜성의 경우 기존에는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 없었다. 이 책 속의 그림으로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 책에는 그동안 학계에서 알려지지 않은 왜성의 존재를 그려놓았다. 기존의 여러 연구 결과물을 살펴보면, 남쪽에 존재했던 왜성은 31~34개 정도가 된다. <조선일본도설>에서는 이들 연구물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8개의 왜성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 순천·구례·한산·김해·곤양·광양·목창·영춘왜성이다. 박 연구가는 “순천은 순천왜성과 같은 것일 수 있고, 구례의 경우는 잠시 주둔했던 곳일 수 있으며, 한산왜성은 견내량왜성, 김해왜성은 마사 혹은 농소왜성일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런 사례를 제외해도 곤양·광양·목창·영춘왜성 등은 새롭게 드러난 왜성”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본도설>의 그림에 의하면 몇 개가 더 추가돼 왜성이 40여개에 이른다. 박 연구가는 “왜성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어서 향후 왜성 연구와 복원에 큰 도움이 될 자료”라며 “정유재란 당시의 전투 상황을 보다 더 깊게 연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왜성의 대부분은 1597년 2월, 일본군이 다시 침입해 북상하다가 직산에서 명나라 군대에 패전한 뒤 남쪽으로 후퇴해 호남의 순천부터 동해의 울산까지 동·남해안 일대 해안 요충지에 쌓은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와의 강화협상 때 전라·경상·충청도 할양을 요구했다. 이 요구가 거절되자 교두보인 왜성을 쌓았다. 정유재란 당시의 왜성은 그들이 강할 때는 기동전을 위한 침략 전진기지로, 약할 때는 지구전 혹은 진지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중로왜채분도(中路倭寨分圖)’(위), ‘동로왜채분도(東路倭寨分圖)’(아래) <조선일본도설>은 정유재란이 끝난 뒤 명나라에서 왜군의 재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저술된 책이다. 저자는 나타나 있지 않다. 내용으로 추정해 보면, 정유재란에 참전했던 명나라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책 중 한 목차인 ‘왜채총도설’에서 저자는 ‘1598년 가을, (…) 그들의 영루를 살폈는데 빈틈없고 세밀하게 건설되었고, 교묘한 솜씨가 잘 갖추어 있었다. 그들이 본래 방어를 잘한다고 했는데 실로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려놓았으니 해양 방어를 하려는 사람이 읽기를 기다린다’고 적어 놓았다.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씨가 전문 입수 박 연구가는 “<조선일본도설>의 그림에 나타나는 왜성은 상상화가 아니라 실제로 왜성의 형태를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지에시 박사도 논문에서 밝혔지만, 명나라 조용현의 <조정우서목(趙定宇書目)>, 명나라 전겸익의 <강운루서목(絳雲樓書目)>에 이 책의 제목이 언급돼 있다. <조선일본도설> 중 주목해서 볼 부분은 ‘사로왜채총도(四路倭寨總圖)’다. 왜채는 왜성을 지칭한다. 실록이나 당시 기록에서는 대부분 ‘토굴’이나 ‘소굴’ 등 ‘굴’로 표현했는데, 이 책에서는 왜채라고 쓰고 있다. 사로(四路)는 동로·중로·서로·수로를 말한다. 조·명연합군이 1598년 9월 일본군을 토벌하기 위해 나아간 네 경로를 말한다. 이 책이 일본군에 대한 공격 개시 이전에 저자가 직접 왜성을 살펴보고 그려놓았다가 나중에 정리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로왜채총도’는 지도에 대한 설명문 ‘왜채총도설(倭寨總圖說)’로 시작해 ‘동로왜채분도(東路倭寨分圖)’와 ‘동로부산채도설(東路釜山寨圖說)’,‘중로왜채분도(中路倭寨分圖)’와 ‘중로사천채도설(中路泗川寨圖說)’, ‘서로왜채분도(西路倭寨分圖)’와 ‘서로순천왜채도설(西路順天倭寨圖說)’, ‘제로왜추수채전도(諸路倭酋水寨全圖)’와 ‘수로남해왜채도설(水路南海倭寨圖說)’로 구성돼 있다. 왜성의 그림 외에도 ‘중로사천채도설’에는 사천왜성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심안도(沈安道)라는 사천의 왜구가 교활한 소굴을 만들었다. 그 땅은 바닷가에 매달려 연결되어 있는데, 육지에는 물길을 파서 바닷물을 끌어들였다. 높은 벽과 늘어선 성가퀴로 지키게 했고, 이중의 해자로 견고하게 했다. 언덕에 보루를 지었기에 네 곳으로 정찰하고 살필 수 있다.’ 박종평 연구가는 “다양한 왜성의 존재와 형태를 보면 일본군이 우리나라 남쪽 지역을 영구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졌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2019.03.11 14:50
문화/과학
[문화]명량해전 당시 거북선은 없었다ㆍ영화 의 역사적 사실 논란, ㆍ이미 불타서 없던 거북선 등장시켜 극적 요소 가미 영화 이 연일 최단 기간 관객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개봉 열흘 만인 8월 8일 새벽 800만명 관객 기록을 돌파했고,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동원을 앞두고 있다. 영화 제작팀은 명량해전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최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와 역사적 사실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명량해전의 역사적 사실은 등 여러 기록에서 나타나지만 대부분 이순신 장군이 쓴 에 사실적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속 내용은 의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다를까. 우선 영화 속에서 거북선을 불태우고 달아난 경상우수사 배설의 설정부터 와 차이가 있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원균이 지휘한 칠천량 전투에서 12척의 배를 갖고 도망쳐 나왔다. 이 배가 조선 수군의 마지막 남은 12척이다. 그는 명량해전(1597년 음력 9월 16일)을 보름 정도 앞둔 9월 2일(음력) 새벽에 도망을 쳤다. 이 같은 사실은 이순신 장군의 에 기록돼 있다. 배설이 거북선을 불태우고 달아난 것이 아니라 그냥 육지로 도망친 것이다. 거북선은 이미 칠천량 전투에서 모두 불타고 없어졌다. 영화 에서는 이 거북선이 등장한 것이다. 영화 의 한 장면. 비겁한 도망자 배설, 다소 과장 이순신 연구가로 (일상이상)를 최근 출간한 김태훈 전국은행연합회 기획조사부장은 “거북선이 불타는 장면은 관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극적 요소를 가미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거북선은 이미 칠천량 해전에서 모두 불탔고, 매일 진을 옮겨 다니는 도중에 거북선을 단기간에 만들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더 퀘스트)를 쓴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기록을 보면 명량해전에서 거북선은 등장하지 않았으며, 다만 거북선으로 위장하려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영화 에서 배설은 ‘제2의 원균’으로 등장한다. 거북선을 불태우고 달아나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 것이다. 실제로는 배설은 도망을 쳤다가 1년 후 권율 장군에게 잡혀 참수를 당하게 된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배설이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 하고 거북선을 불태운 뒤 도망치는 모습은 역사의 왜곡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허구”라고 말했다. 박 연구가는 “비겁한 도망자 배설은 맞지만 이순신 장군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참혹한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면서 “이는 제2의 원균 만들기”라고 비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이순신 장군을 극단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원균을 극단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과 비슷한 설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김태훈 기획조사부장은 배설의 설정에 대해 “극적 재미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영화에서는 충분히 가공이 가능하다고 본다”면서 “왜곡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을 통한 강조”라고 말했다. 명량해전의 실제 전투에서 영화 이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은 백병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김태훈 기획조사부장은 “영화에서 대장선에서 백병전이 벌어지는데 난중일기를 보면 본격적인 백병전은 없었다”면서 “대장선에서는 사망자 2명 부상자 3명이 발생한 기록을 보더라도 백병전이 벌어졌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에는 ‘상선(대장선)이 홀로 적선들 속으로 들어갔다. 포탄과 화살이 비바람처럼 일었지만 여러 배들은 구경만 하고 나오지 않아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의 다른 전투 기록을 보면 조선 수군은 화포로 왜선을 파괴할 뿐 이순신 장군이 직접 칼을 휘두르며 적과 싸움을 벌였다는 기록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략이 뛰어난 이순신 장군은 왜군보다 우수한 화포와 활쏘기 기술로 원거리 공격을 펼쳤다. 왜군을 쫓아 육지에까지 상륙한다든지 왜선이 판옥선 근처에 접근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근접전에서 왜군이 조총과 뛰어난 검술을 펼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근접전이 필요할 경우 돌격선으로 거북선을 이용했다. 선상 백병전도 영화 속 상상력 명량해전에서 백병전에 가까운 근접전은 안위의 함선에서 일어났다. 정유일기에는 ‘안위가 몹시 당황해 곧바로 뚫고 들어가 교전할 때 적장의 배와 다른 두 척의 적선이 안위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었다. 안위의 격군 7~8명이 물에 떨어져 헤엄치고 있었으나 구할 수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김 조사부장은 “안위의 함선으로 왜군이 백병전을 시도했으나 대장선이 도와줌으로써 왜군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판옥선으로 왜선을 격파하는 장면도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영화에서는 이를 충파(衝破)라고 표현했으나 충파는 중 1593년 2월 20일 기록에 등장한다. 이 뜻은 판옥선으로 왜선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큰 바람이 불어 배끼리 부딪쳐 ‘구멍나고 깨졌다’는 표현에 등장한다. 이를 당파(撞破)로 표현한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충파든 당파든 난중일기 내용을 보면 모두 잘못 해석됐다”고 말했다. 박 연구가는 “1592년 6월 5일 당항포 해전 기록에서 ‘당파’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천자·지자의 각 총통을 연달아 쏘아 왜적선 50여척을 쳐서 깨뜨렸다’는 표현에 당파가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이순신 장군의 장계 등에서도 당파는 천자포·지자포·대장군전 등의 총통 등을 활용해 포탄 등으로 맞혀 적선을 깨뜨리는 방식의 전투였다. 박 연구가는 “거북선으로 직충(直衝)했다는 기록도 등장하지만 이 역시 거북선이 왜선들을 들이박았다는 것이 아니라 적의 대열을 깨뜨리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화포가 왜선에서 터지면서 배에 불이 붙는 것도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화포는 당파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왜선을 깨는 역할만 했다. 왜선에 불을 내기 위해서는 따로 불화살을 이용했다. 영화 의 역사적 사실 논란은 결국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냈느냐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김태훈 기획조사부장은 “영화 이 이순신 장군의 절규와 고뇌를 그려내면서 완전 무오류의 장군상을 만들어낸 이전의 이순신 장군 영화보다 진일보했다”고 평가했다. 김 조사부장은 “신이라면 숭배의 대상이지 따라가야 할 귀감이 되지 못한다”면서 “이순신 장군이 너무 완벽하다면 이순신 장군을 따를 사람이 없으므로 온전히 이순신 장군을 인간의 영역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탈영병을 처형하는 장면 등은 이순신 장군의 진정한 리더십과 맞지 않는 부분으로, 이순신 장군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식, 사무라이식 영화로 지나친 영웅화를 시도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 연구가는 “영화 이 사실보다는 픽션에 가깝지만 우리 곁에 이순신 장군을 다시 불러냈다는 의미는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윤호우 선임기자 2014.08.11 16:51
정치
[정치]LH, 통합 당시 우려 현실로 나타났다ㆍ출범 3년 만에 눈덩이 빚… “공기업 선진화 모델 자랑하더니”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의 대표적인 성과라고 홍보했던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가 부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공기업인 LH공사가 과도한 부채로 인해 부실이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LH공사 본사 사옥 전경 | 경향신문 자료 LH공사는 지난 2009년 10월 주택공사(주공)와 토지공사(토공)가 통합돼 출범했다. 주공은 공공 임대주택 건설 등 주택건설을 주로 담당했고, 토공은 신도시 건설, 산업단지 및 택지조성 등 국토개발 관련 업무를 주로 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공기업 선진화 계획’을 추진, 우선 주공과 토공의 통합을 밀어붙였다. 당시 정부는 양 공사가 통합하면 조직이 슬림화하고 경영효율화를 도모하는 등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통합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는 LH공사가 공기업 선진화의 본보기라고 자랑했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에 따르면 ‘공공기관 통·폐합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공과 토공의 통합은 현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통해 통합에 성공함으로써 L H공사가 출범하는 결실을 맺게 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출범 당시 부채 108조에서 139조로 증가 하지만 통합 당시에 민주당 등 야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토공과 주공의 통합은 오히려 부실을 키울 뿐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국회 국토해양위 위원이었던 김진애 전 의원 등은 건설·부동산시장의 장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건설·부동산 공기업 통합이 실패했을 경우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토공과 주공의 한 해 사업 투자규모는 각각 20조원 정도로 국내 건설 규모 1·2위를 차지했다. 또한 2008∼2009년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침체기로 돌입한 때였다. 임대주택 건설 부채(15조원) 등 과다한 빚을 안고 있었던 주공과 상대적으로 건실한 평가를 받았던 토공의 통합은 동반부실로 이어져,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2009년 4월 김형오 국회의장은 주공과 토공의 통합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주공과 토공의 통합과 관련한 많은 우려와 사전에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민주당 등 야당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강행처리했다. 주공과 토공이 통합해 LH공사로 출범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성적표는 어떨까. 통합 당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LH공사는 천문학적인 빚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LH공사는 출범 당시 총부채가 108조원이었다. 통합 이후 부채는 계속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LH공사의 자산은 169조4000억원이며, 총부채는 139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이 중 금융부채가 무려 104조1000억원이었다. 반면 당기순이익은 1조2000억원에 불과했다. 여기에 장기화하고 있는 부동산 경기침체도 LH공사의 부채 증가에 한몫 했다. 2011년 기준으로 볼 때 LH공사의 부채(130조6000억원)는 국가 부채(434조원)의 32% 규모이며, 지방자치단체 전체 부채(28조원)의 498%에 달한다. 하루 이자만도 120억원에 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여기에 LH공사가 진행하는 사업 특성상 투자비를 조기에 회수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도시개발정비사업의 경우 토지 매각을 통해 투자금 회수 기간이 상당히 길고, 임대주택 사업의 경우 임대보증금 이외에는 투자금 회수가 거의 불가능하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박수현 의원(민주당)은 “LH공사는 통합 이후 부채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2016년에는 167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LH공사는 이러한 부채의 증가로 차입경영을 계속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공사 측은 사업조정 등 자구노력으로 부채 증가 속도가 감소하는 등 재무가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LH공사 관계자는 “부채비율이 2009년 말을 기점으로 매년 낮아지고 안정화 추세로 들어가고 있다”며 “지난해의 경우 당기순이익도 전년도의 8000억원에서 1조2000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LH “당기순이익 늘어 재무 개선되고 있어” LH공사 부채의 핵심은 임대주택사업 부문이다. 임대주택의 재원은 국민주택기금에서의 차입 등으로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등 임대주택 건설로 2009년 41조원, 2010년 55조3000억원, 2011년 59조1000억원을 들였다. 임대주택의 부채(2011년 말 기준)는 46조9000억원이며, 이 중 이자부담을 해야 하는 금융부채는 34조5000억원이다.(국민주택기금 28조6000억원, 채권 5조9000억원) 하지만 현재와 같이 LH공사가 과도한 금융부채를 안고 있고, 임대주택 1호를 건설하는 데 약 1억여원의 부채가 누적됨에 따라 토지와 주택 매각 수익으로 임대주택의 적자를 보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담당부처인 국토해양부 등 정부도 임대주택의 재원 마련과 관련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2009년 4월 1일 국회 국토해양위 회의에서 이병석 위원장이 한국토지주택공사법안을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통과시키고 있다. | 우철훈 기자 특히 박근혜 정부는 임대주택 건설을 신주거복지정책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임대주택 건설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일각에서는 임대주택을 전문으로 전담하는 주거복지전담기구를 설치·운영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즉 정부가 직접 공공 임대주택의 수요를 측정하고, 정부 재원으로 공공 임대주택 건설을 지원·관리해야 한다는 안이다. 정부는 통합 당시 양 공사가 통합을 하면 임대주택 재원 수단을 마련할 수 있고, 분양가와 임대료 인하를 할 수 있다는 논거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LH공사가 출범하면 토공이 수행했던 토지개발이익으로 주공이 수행하고 있는 임대주택 건설재원으로 활용하고, 택지개발(토공)과 주택건설(주공)을 일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주택건설 원가를 인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주택 분양가격 인하효과는 없으며, 임대주택 건설원가도 상승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대주택의 경우 통합 전 토지조성 원가의 60∼70%에서 공급받아 건설되던 임대주택이 현재는 건설 원가가 오히려 올랐다는 것이다. 김용구 미래경영개발연구원장은 “당시 정부가 토지개발이익으로 임대주택 재원을 마련한다는 굉장히 무책임한 발상을 했다”며 “토지개발이익은 국토의 균형발전에 사용하고, 임대주택 재원은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무조건 합쳐서 문제를 키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공사 측은 분양가와 임대료 부문에서도 통합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LH공사 관계자는 “임대주택의 경우 토지조성 원가가 규모(평형)에 따라 각각 다르게 책정되고 있다”며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조2000억원 발생했다는 것은 토지부문 이익으로 임대주택 부문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았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2013.03.11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