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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채 집 보유’ 1세대 헤어 디자이너 재산 공개에 서장훈 웃었다(이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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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채 집 보유’ 1세대 헤어 디자이너 재산 공개에 서장훈 웃었다(이웃집)

      EBS, E채널 공동 제작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서장훈이 출연하는 ‘이웃집 백만장자’가 첫 회 시청률이 2.1%에 달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9일 첫 방송된 EBS, E채널 공동 제작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이하 ‘이웃집 백만장자’)는 서장훈이 인생 수업료를 내고 부자들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다. ‘냉철 상담가’ 서장훈, ‘MZ 대장’ 조나단, ‘교양의 명가’ EBS, ‘예능 공작소’ E채널의 합작으로 방송 전부터 높은 기대를 모았다. 이날 첫 방송에는 ‘대한민국 1세대 남성 헤어 디자이너’ 이상일이 출연해 평범한 시골 소년에서 전설의 헤어 디자이너로 성공하기까지 거쳐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결과 ‘이웃집 백만장자’는 전국 시청률 EBS 1.6%, E채널 0.4%(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특히 1만 평 면적, 22채의 집으로 이루어진 이상일의 거대한 왕국에 부모님을 기리면서 만든 한옥 공간을 둘러보는 장면과 막대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나라에 내놓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분당 최고 시청률 2.1%(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까지 치솟으며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EBS, E채널 공동 제작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이상일은 1980년대 국내 최초로 미장원을 ‘프리미엄 헤어숍’으로 혁신했고, 미용업계 종사자들을 ‘헤어 디자이너’로 명명한 인물이다. 故신성일, 장미희, 김완선 등 당대 최고 톱스타들의 헤어 아티스트로 활약했으며, 故앙드레김 패션쇼의 상징인 ‘양머리 스타일’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상일은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돈을 벌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감정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고객을 가장 아름답게 해드릴까?’ 그 생각에만 집중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에 최선을 다하면 성공과 물질은 나의 그림자에서 쫓아온다. 인내심을 가지면 수천만장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며 깊은 울림을 전했다. 다음 주에는 연매출 700억에 이르는 K-디저트의 신흥강자 ‘와플왕’ 손정희 편이 방송된다. EBS x E채널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는 매주 수요일 밤 9시 55분에 방송된다.

      서형우 온라인기자 2025.04.10 13:22

    • ‘여왕의 집’ 이가령, YL그룹 기획디자인팀 디자이너 강세리 역 첫 스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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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의 집’ 이가령, YL그룹 기획디자인팀 디자이너 강세리 역 첫 스틸 공개!

      KBS 이가령이 ‘여왕의 집’을 통해 욕망의 화신으로 변신한다. 오는 28일 오후 7시 50분 첫 방송을 앞둔 KBS2 새 일일드라마 ‘여왕의 집’(연출 홍석구, 홍은미 / 극본 김민주 / 제작 플라잉엔터테인먼트, 아센디오)은 완벽한 삶이라고 굳게 믿었던 여자가 인생을 송두리째 강탈당한 뒤 벌이는 인생 탈환 복수극이다. 이가령은 극 중 YL그룹 기획디자인팀 디자이너 강세리 역으로 분한다. 강세리는 분수에 맞지 않는 허영과 욕망으로 뒤섞인 인물로,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남자도 권력도 모두 제 손에 넣고자 고군분투한다. 또한 그녀는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까지 갖고 있어 더욱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이에 예상을 뒤엎는 극 흐름을 주도하면서 남다른 존재감을 떨칠 이가령의 활약에 기대감이 커진다. 이와 관련 4일 공개된 스틸에는 화려한 스타일링을 한 이가령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가운데 옅은 미소와 날카로운 눈매에서 나오는 강렬한 눈빛이 눈에 띈다. 그런 그녀의 모습 뒤에는 숨은 속내가 있어 특별한 사연을 가진 그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고 화려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세리가 어떤 일들을 벌여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그런가 하면 세리는 어린 시절 친구인 재인과 얽히며 팽팽한 대립각을 세운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예상치 못한 사실을 접하면서 흑화하기 시작, 자신을 절친으로 생각하는 재인을 적대시하며 파국으로 몰아가 극을 흥미진진하게 이끌 예정이다. ‘여왕의 집’ 제작진은 “배우 이가령은 팔색조 매력을 지닌 배우다. 그녀는 캐릭터의 냉온을 오가는 다양한 감정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함은정과도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며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제대로 자극할 것”이라고 전했다. 새 일일드라마 ‘여왕의 집’은 ‘신데렐라 게임’ 후속으로 오는 28일 저녁 7시 50분 첫 방송된다.

      손봉석 기자 2025.04.04 10:59

    • 디올,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전시회 서울서 선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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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올,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전시회 서울서 선봬

      프랑스 럭셔리 패션하우스 디올(DIOR)이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전시회를 4월 19일부터 7월 13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한다. 이번 전시회는 파리 장식미술관을 시작으로 런던, 상하이, 청두, 뉴욕, 도하, 도쿄, 리야드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이 중 플로렌스 뮐러의 큐레이션과 글로벌 건축 기업 OMA 파트너 시게마츠 쇼헤이가 구상한 몰입감 넘치는 공간을 배경으로 75년 이상 디올 하우스 역사를 기념한다. 커다란 성공을 거둔 ‘New look(뉴 룩)’을 시작으로 이를 모던하게 재해석한 디자인을 아울러 디올의 시작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발자취를 따라간다. 또 꽃과 정원을 향한 크리스챤 디올의 애정, 아뜰리에의 탁월한 장인 기술, 무도회와 특별한 파티를 향한 찬사 등 디올 하우스가 소중히 여기는 테마에 대한 시각을 선보인다. 다양한 오뜨 꾸뛰르 작품과 아카이브 문서는 김현주, 수 써니 박, 제이디 차를 비롯한 한국 아티스트 작품과 함께 어우러져 특별한 이야기를 전한다. 최초로 ‘Lady Dior(레이디 디올)’만을 위해 마련된 전시 공간에서 한국의 상징적인 아티스트가 재해석한 매혹적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Dior Lady Art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9점 작품과 Lady Dior As Seen By 컨셉으로 완성된 17점의 작품을 담은 매력적인 공간은 디올 하우스와 한국의 유대감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한다. 디올의 세계로 초대하는 매혹적인 ‘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 전시회 입장권은 4월 2일부터 디올 공식 웹사이트에서 구매 가능하다.

      손재철 기자 2025.03.27 11:54

    • 아름다웠던 BTS 한복 정장··· 디자이너 김리을 사망, 추모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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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웠던 BTS 한복 정장··· 디자이너 김리을 사망, 추모 물결

      그룹 방탄소년단의 한복 정장 차림. 리을, 방탄소년단 SNS 제공 한복 디자이너 김리을(본명 김종원) 대표가 향년 32세로 사망했다. 12일 전북 남원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9시께 남원시 도통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 등이 출동했으나, 김 대표는 이미 숨진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 결과 김 대표는 사건 당일 부모가 거주하는 남원의 본가를 찾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 대표는 지인과의 통화를 마친 뒤 자신의 방에서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은 없어 보인다”며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한복 정장 브랜드 ‘리을’을 이끈 김 대표는 지난 2020년 그룹 방탄소년단이 미국 유명 토크쇼인 NBC ‘지미 팰런 쇼’에 출연 당시 입은 한복 정장을 만든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방탄소년단은 한복 정장을 입고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서 ‘아이돌’ 무대를 꾸며 세계적으로 크게 화제를 모았다. 이외에도 가수 지코, 정동원, 모델 한현민, 배구선수 김연경 등 다양한 유명인이 리을의 현대적인 한복을 입어 주목받았다. 한복 정장 브랜드 ‘리을’의 김리을 대표.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 이에 리을은 유명 해외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김 대표는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는 지인과 대중이 모여 ‘이게 무슨 일이냐’ ‘믿기지 않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하늘에선 못다 피운 꿈 펼치길’ ‘이렇게 또 아까운 사람이 일찍 세상을 떠나네’ ‘편히 쉬세요’ 등 애도와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원희 기자 2025.02.12 15:10

  • 주간경향

    • 경제 지구를 살리는 스타트업

      [지구를 살리는 스타트업](4)패션 디자이너 이옥선 오픈플랜 대표

      ㆍ“플라스틱 없는 비건 패션 실천하고 있다” 일회용처럼 옷을 소비하는 패스트 패션이 지구를 망치고 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 매장에서 한 디자인이 머무는 시간은 평균 3~4주에 불과하다. 패스트 패션은 옷을 쉽게 사고 버리는 소비를 부추기면서 환경부담을 키웠다. 2019년 세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패션 업계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 물 소비도 많아 청바지 한벌을 만드는 데 2650ℓ의 물을 쓴다. 사람이 10년 동안 마실 양이다. 패션 산업을 지속가능하게 바꾸는 건 인류의 생존을 위한 지상과제가 됐다. 이옥선 오픈플랜 대표가 4월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아카데미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천연 소재를 사용해 환경부담을 최대한 줄이면서, 털과 가죽을 얻기 위해 동물을 학대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패션 디자이너 이옥선 오픈플랜 대표가 지속가능한 패션의 키워드로 ‘플라스틱 없는 비건 패션’을 내세운 이유다. 만 4년째 윤리적 소비에 공감하는 소비자들과 함께 싸게 대량으로 만드는 의류 산업의 문법을 조금씩 허물고 있는 그를 만났다. 식품 포장지를 잘라 뒷면에 도장을 찍어 만든 작은 명함에 시선이 갔다. 지난 4월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강연에서 그가 청중과 주고받은 내용을 정리했다. -창업의 계기가 궁금하다. “중국의 왕지우량 감독의 <플라스틱 차이나>(2016)라는 다큐멘터리가 시발점이었다. 중국 산둥성 지역의 폐비닐 재활용 공장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른들은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고, 아이들은 플라스틱 산에서 놀고 먹고 자고 있었다. 내가 쓰레기를 잘 분리배출해 버린다고 해도 결국 저렇게 처리되는구나 알 수 있었다. 열심히 정성껏 멋지고 예쁘게 만든 옷들이 저기에 쌓여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겠구나 생각하니 엄청 괴로웠다. 만드는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플라스틱 프리를 강조한 이유는.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85% 이상이 합성섬유에서 기인한다. 5㎜ 미만의 미세플라스틱은 합성섬유 옷을 입을 때의 마찰과 세탁 과정에서 발생한다. 5㎏ 정도를 세탁하면 미세플라스틱 600만개가 나온다. 결국 (먹이사슬을 거쳐) 우리가 먹는다. 2019년 기준 일주일에 신용카드 하나 분량이다. 합성섬유는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는 독이 되는데 이걸 사용해 멋져 보이는 뭔가를 만드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인가 돌아보게 된다. 이브 생로랑은 ‘패션은 사라진다. 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블랙 프라이데이 때 ‘패션 레볼루션’이라는 운동 단체는 ‘패션은 사라진다. 하지만 매립된 옷은 영원하다’라고 바꿔 불렀다. 영국 환경단체 ‘멸종저항운동’은 ‘죽은 행성에 패션은 필요없다’고 외쳤다. 나 역시 플라스틱 없는 비건 패션을 하자는 단순한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 -오픈플랜의 실천을 소개한다면. “초기엔 작은 것부터 바꾸려고 노력했다. 처음 바꾼 건 ‘태그고리’였다. 태그를 고정할 때 쓰는 건데 플라스틱 끈과 조각을 천연섬유로 바꿨고, 라벨도 리넨 섬유로 만들었다. 리넨은 면보다 물을 덜 써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이 적다. 1~2년이 지난 후에는 합성섬유 사용을 완전히 없애고, 식물섬유 원단과 식물염색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제품에 따라 신축성이 필요한 경우 스판덱스 섬유를 쓰고, 옷의 구조를 지탱하는 심지와 폴리에스터 봉제사도 쓰는데 그 경우에도 2%를 넘지 않는다. 오픈플랜에 없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지퍼이다. 플라스틱 사용이 불가피해 아예 다 빼고 단추를 쓰는데, 상아 야자나무 열매를 재료로 한다. 비건 100%라 캐시미어, 앙고라, 실크 같은 동물성 섬유도 쓰지 않는다. 다른 비건 브랜드는 포도껍질이나 한지 등 식물섬유에서 유래한 비건 가죽을 쓰기도 하는데 이것도 플라스틱화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버섯으로 만든 대체가죽을 사용할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화학염료 사용은 어떻게 대체했나. “식물의 줄기, 과일껍질, 꽃을 염료로 사용한다. 한 예로 석류는 연한 노란 빛에서 카키색까지 표현이 가능하다. 초록색과 검정처럼 아직 천연염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색이 있다. 식물염료는 디지털 프린트기에 넣어서 사용한다. 정화를 해서 내보내긴 하지만 정화 이전에도 이미 농업용수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다.” -지속가능 브랜드는 비싸다는 인식이 강하다. “제품을 만들 때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를 우선 생각한다. 보통의 브랜드처럼 싸게 많이 팔려는 데 초점을 두지 않기 때문에 가격은 부차적이라고 본다. 가격이 싸다면 그건 제대로 된 가격인가 물어봐야 한다. 말도 안 되게 싼 옷도 있지만 말도 안 되게 비싼 브랜드 매장에서 줄 서서 사기도 한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이야기할 때의 기준은 달라야 한다. 우린 오가닉 섬유가 포함됐음을 인증하는 OCS보다 더 까다로운 GOTS(Global Organic Textile Standard) 인증을 받고 있다. 제품이 오가닉 섬유를 70% 이상 포함하는 것 외에도 공장의 폐기물 처리나 에너지 사용, 노동자의 대우 등 제조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사회적인 영향을 평가한다.” -패션의 역할은. “패션이 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역할은 메신저다. 진심을 담은 긍정의 메시지를 어떻게 사람들과 나누면 좋을까 고민한다. 그 일환으로 2019년부터 패션 레볼루션이라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 4월 24일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로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은 걸 계기로 시작한 운동이다. 패션이라면 화려한 조명, 멋진 모델, 멋진 문구가 적힌 옷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 열악한 환경에서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옷을 만드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깨닫고 있다. 사람들은 ‘누가 내 옷을 만드는가’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의류 브랜드의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누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재료로 옷을 만드는지 밝히는 투명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당신의 옷을 만듭니다’라는 패션 레볼루션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실천이라면. “패션 레볼루션의 설립자 중 한명이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지속가능한 옷은 지금 네 옷장에 있는 옷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국 양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중요하다. 지속가능이라는 말과 매 시즌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패션을 같이 이야기하는 게 창피하지 않은가, 고민하게 된다. 앤 클라인이라는 디자이너가 ‘옷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입은 여자가 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난 여자 대신에 사람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 지속가능한 산업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고, 사람이 중요하다.”

      주영재 기자 2022.04.29 15:35

    • 사회 박주연의 메타뷰

      [박주연의 메타뷰](10)안현주 무대의상 감독 겸 디자이너

      ㆍ“제 옷 입은 배우가 무대서 빛날 때 가장 행복하죠” 공연에서 의상은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결정적 요소다. 대본 속 인물과 연기자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배우를 극중 인물로 현실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연에 따라 수십~수백벌의 의상을 제작해야 한다. 무대의상 감독 겸 디자이너인 안현주씨가 지난 4월 26일 뮤지컬 가 공연 중인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씨의 뒤편에 배우들이 입을 의상이 진열돼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안현주씨(50·쇼크레도 대표)는 국내 공연계에서 손꼽히는 의상 감독 겸 디자이너다. 21년간 <오페라의 유령>, <캣츠>, <맘마미아>, <헤드윅> 등 명작 뮤지컬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의 의상을 만들고 총괄해왔다. 디자인부터 시작하는 작품도 있고, 디자인을 제외한 제작부터 맡은 경우도 있다. 발군의 실력으로 그에게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2~3개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일도 숱하다. 지난 4월 26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안현주씨를 만났다. 이 극장에서는 그가 의상 디자인을 한 뮤지컬 <킹아더>(3월 22일~6월 6일)가 공연되고 있다. 자신의 진짜 신분을 모른 채 살아가던 아더가 바위에 박힌 성스러운 검 ‘엑스칼리버’를 뽑고 영국 왕으로 즉위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프랑스 뮤지컬이다. -최근 작업한 작품은 뭔가요. “현재 공연 중인 작품으로는 <킹아더> 말고도 <라이온 킹>과 <리지>가 있어요. 최근 대만 공연을 마친 <캣츠> 아시아투어 의상도 했고요. 6월 개막하는 <웃는 남자>와 <포미니츠>의 의상도 맡고 있어요.” -<포미니츠>를 제외하곤 모두 라이선스 뮤지컬이네요. 라이선스 뮤지컬은 해외의 원제작사가 만들어놓은 의상을 비행기로 다 공수해오는 것 아닌가요. “작품마다 달라요. <라이온 킹>은 의상을 해외에서 가져왔어요. <오페라의 유령>도 2001년 한국 초연(한국어 공연)과 2005년 내한 공연 때까지는 영국의 원제작사가 일을 맡긴 호주 의상팀이 제작한 옷을 공수해왔지만 2009년 두 번째로 한국어 공연이 올라갈 때는 호주 측과 우리가 반반씩 제작했어요. 여주인공인 크리스틴의 드레스처럼 까다로운 의상은 호주 측이 제작했지만요. <캣츠>는 원단과 디자인은 영국에서 가져오되, 제작은 우리가 했어요. <킹아더>는 제가 디자인부터 전 과정을 맡았고요.” 그는 “내년 2월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이 다시 시작하는데 이때 모든 의상을 우리가 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몇달 전 영국 원제작사가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 제작사인 에스앤코에 전체 의상 제작을 한국 측이 맡아줄 수 있는지, 그럴 경우 전체 예산은 얼마나 되는지 문의했다는 것이다.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명작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어요.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에서 30년 이상 연속 공연됐고, 토니상·올리비에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지요. 명성만큼 자부심이 클 텐데 의상 제작을 한국 측에 온전히 맡기려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하는지 경험했으니까요. 특히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공연을 올린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에요. 미국, 영국 등 세계의 뮤지컬 제작자들은 그런 한국 제작사와 배우·스태프들의 뚝심, 뮤지컬 팬들의 열정을 지켜봤어요. 뮤지컬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신뢰를 하면서 투자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죠. 한국이라면 의상 제작을 온전히 맡겨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 생각해요.” -<오페라의 유령>에는 의상이 몇벌이나 등장하나요. “의상만 380~400벌이고 신발, 모자, 가방, 액세서리를 포함하면 700여벌에 달해요.” 수백벌의 의상이 등장하는 뮤지컬 의 한 장면. 디자인은 정해져 있지만, 내년 한국 공연 때는 의상 제작을 안현주씨가 모두 맡을 가능성이 높다. / 에스앤코 제공 -그게 다 의상 감독 또는 의상 디자이너의 소관인가요. “배우가 착장하는 모든 것을 담당해요. 외국은 우리와 달리 메이크업과 헤어도 의상 디자이너의 몫이에요. 다만 제 경우에는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의 메이크업과 헤어도 책임지고 있어요.” -<킹아더>는 직접 디자인을 했다고요. 그렇게 디자인부터 시작하는 경우 제작공정은 어떻게 이뤄집니까. “우선 대본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캐릭터의 의상을 상상해요. 장면변화를 동시에 계산하면서 의상 목록을 작성하죠. 짧은 시간 내 장면이 전환돼 같은 인물이 다른 날, 다른 장소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는 일이 잦으니까요. 의상 목록 작성 후 연출가와 1차 캐릭터 분석 회의를 해요. 가령 주인공 성격이 외향적이라고 파악하면 의상도 밝은 톤일 확률이 높아요. 그런 다음 의상, 안무, 무대, 조명, 분장 디자이너가 다같이 참여하는 회의를 여러차례 해요.” -그 회의에선 어떤 논의를 하나요. “배우가 춤을 출 때 옷이 불편하면 안 되잖아요. 또 무대 디자인이나 조명과도 잘 어우러져야 하고요. 가령 <킹아더>에는 비운의 왕비 귀네비어가 또 다른 남자 랜슬럿에게 마음이 흔들리며 괴로움을 노래하는 장면이 나와요. 연약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때 그녀의 의상은 하늘거리는 느낌으로 제작했어요. 색상도 어떤 빛의 반사에도 흡수될 수 있는 화이트나 아이보리 색상을 사용했고요. 이런 협의를 하는 과정이에요. 공연은 서로 간 조율이 중요한 종합예술이니까요.” -시대극이라면 의상 고증도 필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그다음 단계가 해당 시기의 복식에 대한 조사예요. 디테일은 제 머릿속에 있지만 그 시대의 일반적 흐름은 파악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예전에 공부했던 책과 웹사이트 핀터레스트(Pinte-rest)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활용하고 있어요.” 그는 “이후 캐릭터에 맞는 색상과 실루엣을 정하고 원단을 찾기 위한 시장조사를 하는 게 디자인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완성하고자 하는 의상에 맞는 최적의 색상과 질감의 원단을 3~4개 골라 연출가에게 제시한다. 그중 하나가 선택되면 원단을 구매하고 의상 제작소에 작업지시서(의상 제작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표기한 것)를 보낸다. -제작소에서 완성된 옷을 만들어 보내오는 건가요. “아니에요. 디테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의 옷이 만들어져 와요. 그걸로 배우와 1, 2차 피팅(착용)을 해요. 그 과정에서 문제점을 수정하죠. 그런 다음 옷에 제가 세부 장식을 해 완성해요. 하지만 끝이 아니에요.” -작업과정이 또 남아 있군요. “입고 무대에 서봐야 해요. 계단을 오를 때 자꾸 치마가 밟히는 등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또 수선하죠. 그걸 테크(tech·기술) 리허설이라고 해요. 이때 무대, 조명, 음향, 의상 모든 것을 점검하는데, 대형 공연은 이 리허설을 7~10일간 해요. 그런 다음 드레스 리허설이 있어요.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옷을 수시로 갈아입으면서 연기를 해보죠. 보통 캐릭터를 3명의 배우가 번갈아 연기하니 세 번의 드레스 리허설을 해요. 그때 프로그램 사진촬영도 하고요.” -수백벌의 옷 제작과 거듭된 수정과정을 거쳐야 하니, 손이 많이 필요하겠어요. “그래서 쇼크레도의 상주 인원은 10명이지만, 진행하는 공연 수나 규모에 따라 동시에 50~80명을 수시로 고용하고 있어요. 이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해요. 주어진 시간 안에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시간에 맞춰 제작을 끝내야 하니까요.” 의 아더왕(왼쪽)과 왕비 귀네비아. 아더왕의 옷은 털과 가죽, 메탈 그리고 붉은색과 검정색을 사용해 강인함을 표현했고, 귀네비아의 의상은 연약함을 표현하기 위해 하늘거리는 옷감과 화이트 색상을 사용했다. / 안현주 디자이너 제공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합니까. “디자인 파트, 제작 파트, 공연 진행 파트가 있어요. 디자인 파트는 저와 작품 콘셉트를 공유하고 리서치 작업과 디자인 작업을 해요. 제작 파트는 원단 조사와 제작소에 작업지시서 전달 등의 일을 하고, 공연 진행 파트는 공연 전 의상 준비를 하고 배우들이 옷 입는 것을 도와주죠. 연기 중에 옷이 찢어지거나 하는 위급 상황에서 옷핀 등으로 응급 처치도 하고요. 물론 세탁도 의상팀 담당이에요.” -옷 입는 당사자인 배우들의 요구사항은 없습니까. “캐릭터를 중심에 두지 않고, 자꾸 본인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배우들이 있죠(웃음). 특히 여배우들은 아줌마 역할임에도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아요. 주역으로서 충분히 아름다운데도 지나친 요구를 끊임없이 하는 배우도 있고요. 또 남자배우들의 경우에는 키높이 신발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키가 커도 10㎝ 깔창을 넣어달라고 해요(웃음).” -무리한 요구를 받으면 어떻게 대처하나요. “적당한 선에서 맞춰주기도 하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이야기하죠. 반면 조승우씨는 까다롭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본인이 아닌 캐릭터를 중심으로 판단해 요구하고 그 의견이 맞는 경우도 많거든요. 또 협의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나면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즉각 수용해요. 진정한 프로라고 생각해요.” 1972년생인 안현주씨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1남2녀 중 막내다. 고교 졸업 후 1년간 독일에서 어학연수를 한 후 1994년 독일 파더본 종합예술대학 미술교육과에 진학했다. 반년 정도 다닌 후 그만두고 1997년 독일 빌레펠트 디자인대학에 입학해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 방학 때 잠시 귀국해 결혼도 했다. 남편은 독일 한인교회에서 만난 정광진씨(51)로, 당시 빌레펠트 종합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왜 진로를 의상디자인으로 바꿨습니까. “미술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너무 이론 중심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집에서 미싱을 사용해 자식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셨어요. 그걸 보고 자라서인지 저도 옷 만드는 일이 친근했어요. 패션에 관심도 많고요. 그래서 진로를 의상디자인 쪽으로 바꾼 거예요. 커리큘럼이 다양해 재미있었어요. 찰흙으로 옷을 만들거나,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 교수와 다른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수업도 있었어요. 패션쇼도 했고요.” 안현주씨는 “의상의 완성은 디테일에 있다”고 말한다. 비즈나 보석 등의 디테일 장식은 모두 안씨가 손수 수작업으로 마무리한다. / 우철훈 선임기자 -독일 대학의 학비가 무료라 해도 유학생 부부의 생활비가 만만찮을 텐데 어떻게 조달했나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웃음). 신발가게와 옷가게 점원, 자동차 부품 맞추기, 잡초 뽑기 등.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한 의상실 주인 할머니예요. 할머니는 일손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말벗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일을 마치면 제게 차를 타주셨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마다 제게 돈을 쥐어주셨어요. 귀국 후 한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날부터 편지가 끊어졌어요. 돌아가셨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말벗이 돼준 값을 주신 거군요. “독일에는 그런 분들이 많아요. 학생 신분인 우리 부부가 결혼 후 집을 구할 돈이 없어 고민할 때 독일 빌레펠트 종합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은퇴한 호스트 드라이첼(Horst Dreizel)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국인 유학생들과 같이 살다가 유학생들이 돌아간 후 혼자 사신다고요.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편지를 썼어요. 한동안 답장이 안 와 포기하려는데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또 누군가와 헤어지는 게 힘들어 망설였지만, 막상 우리를 보니 같이 살고 싶다고 했어요.” -얼마나 같이 살았습니까. “6년요. 우리 부부에게 사시는 집의 3층을 내주셨는데, 집세도 안 받고 n분의 1로 딱 물값만 받으셨어요. 우리 부부에게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였어요. 패션을 공부하려면 미술을 잘 알아야 한다며 전시회에 데려가 주시고, 여행도 함께 다녔어요. 저녁식사 시간이면 제가 만든 김치찌개 같은 한국음식도 잘 드셨고요. 그분에게는 자식이 4명이나 있지만 찾아오지 않았어요. 그분도 의상실 할머니처럼 가족이 필요했던 거예요.”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나요. “남편이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계속 서신 왕래를 했는데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2015년에 들었어요. 바로 독일로 가 찾아뵈었는데, 병실에 우리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는 거예요. 그곳 직원의 말이, 교수님 댁에서 요양원에 가져갈 물건을 챙기는데 교수님이 ‘다른 건 필요 없고 이 아이들 사진을 가져가야 한다’고 하셨대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이후 1년이 채 안 돼 교수님은 돌아가셨어요.”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화제를 돌렸다. -무대의상은 어쩌다 하게 된 건가요. “대학 때 연극학 수업을 참관했어요. 프랑스인인 알랑 교수가 일본에서 공연될 오페라 <마술피리>의 의상 제작을 맡아 6개월간 한국에서 준비하는데 통역과 어시스턴트를 맡지 않겠느냐고 제게 제안했어요. 남편이나 저나 대학을 졸업하려면 6개월간 현장실습은 필수라서 따라나섰어요. 공연의 맛을 처음 알게 됐어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작품이 2001년 한국에서 초연한 <오페라의 유령>이더군요. “독일로 돌아와 1998년부터 1년간 학생들로 이뤄진 극단의 연극 공연에서 의상과 메이크업을 맡았어요.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했는데, 패션회사에 취직해 기성복을 만드는 일은 맞지 않겠더라고요. 대학원에 진학해 무대의상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배웠어요. 그런데 얼마 후 한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내가 알랑 교수와 작업하는 것을 눈여겨본 분이 한국에서 개막하는 <오페라의 유령> 의상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겠어요. “바로 휴학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죠(웃음). 당시 영국 스태프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일해야 해 저를 적임자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뮤지컬 (위)와 . 는 시즌에 따라 디자인과 원단은 영국에서 가져왔지만, 제작은 안현주씨가 맡았다. 은 디자인부터 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안씨는 1년간 한국에 머물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실력이 입증되자 2003년부터 한국 측 제작사들의 의뢰가 잇따랐다. 대학원 졸업 해인 2003년 귀국해 쇼크레도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2003년 <캣츠>를 시작으로 지난 21년간 <맘마미아>, <미녀와 야수>, <아이 러브 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헤드윅>, <프로듀서스>, <벽을 뚫는 남자>, <스위니 토드>, <오즈의 마법사>, <록키 호러 쇼> 등 수많은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뮤지컬, 연극의 의상을 책임졌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제 손을 거친 의상을 배우들이 입고 무대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그 에너지에 관객들이 큰 감동을 받는 모습을 목격할 때죠. 그때 ‘우리가 같이 해냈구나’ 하는 뭉클함이 밀려들어요. 그런 성취감과 보람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 행복해요.” 그는 “행복하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 일도 일이지만, 두 번의 유산 끝에 결혼 15년 만인 2012년에 낳은 딸 로아(10)는 특히 ‘축복’이라고 했다. 동대문시장에서 공연을 위한 원단을 보다가 하혈을 해 구급차에 실려간 직후 태어난 아이다. 출산 예정일보다 한달 반이나 빨랐지만 딸은 건강하게 태어났다. 시어머니가 같이 살면서 양육을 도왔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로아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인터뷰는 잘했는지, 실핏줄이 터졌던 한쪽 눈은 괜찮은지 묻는 듯했다.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가 싶더니, 목소리도 깃털처럼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박주연 선임기자 2022.04.29 15:35

    • 경제 슬기로운 직업생활

      [슬기로운 직업생활](5)디자이너,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직업을 의미하는 영어단어에 몇 가지 규칙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직업은 동사에 ‘er’을 붙여야 하고, 또 어떤 직업은 명사에 ‘ist’를 붙이는데, 그 외에도 여러 접미사가 있다고 했다. 어떤 기준으로 직업마다 접미사가 달라지는지 배웠던가. 아쉽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사에 ‘er’을 붙이는 직업에 대한 설명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선생님은 칠판에 ‘Design’이라는 단어 뒤에 ‘er’을 큼직하게 쓰곤 “디자인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을 디자이너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그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들고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런데 디자인은 무슨 뜻이에요?” / pixabay 선생님의 답은 “디자인은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패션 디자이너를 예로 들었다. 똑같은 옷도 남보다 좀 더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이 패션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라고. 그 기억 때문인지 나에게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이라 각인되어 있다. 내가 이 단어를 배울 때만 해도 분야가 다양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요즘에는 ‘디자인 싱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디자인의 개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디자이너들이 활약하는 영역 또한 다양해졌다. 그리고 늘 그렇듯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역에서 활약하는 디자이너들도 많다. <무한도전>이나 <신서유기> 같은 TV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는지? 내 경우에는 TV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그 프로그램의 로고가 연상된다. <무한도전>을 생각하면 물음표 모양을 한 마스코트 ‘무도리’가, <신서유기>를 생각하면 손오공의 머리띠를 형상화한 장난스러운 로고가 떠오른다. 로고와 함께 프로그램 전체를 가득 채운 디자인 요소들도 함께. 이러한 TV 영상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이들을 OAP 디자이너라 부른다. TV 속 영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OAP 디자인은 우리가 매일같이 접하고 있음에도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이다. 심지어 나는 처음 OAP 디자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무자동화(OA)를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생각했다. 실제로는 ‘온 에어 프로모션(On Air Promotion)’의 줄임말이라고. 말 그대로 ‘방송의 프로모션 영상’이라는 뜻인데, 미국의 음악 방송국 MTV에서 채널을 홍보하는 짧고 강렬한 크리에이티브 영상을 만들어낸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방송국만큼이나 개별 프로그램의 브랜드가 중요해진 지금은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대개 OAP 디자인은 프로그램의 기획단계에서부터 함께 만들어져 짧으면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사용된다. 하지만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디자인이 유지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변함없어 보이는 <전국노래자랑>조차 로고의 모양은 유지하면서 시기에 따라 색상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으니까. 이처럼 OAP는 프로그램의 방영과 함께 쉬지 않고 변화를 거듭하는데, 이 말은 쉴 새 없이 새로운 작업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촉박한 제작 시간을 맞춰야 하면서도 동시에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충실히 담아낸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OAP 디자이너들에게 내려진 미션. 덕분에 이들에게는 출퇴근 시간이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한 케이블 채널의 OAP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방송국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직업이나 스트레스는 있게 마련이지만 디자인부터 편집, 모션 그래픽 등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도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TV 속에는 OAP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어 보인다. 심지어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뉴스 프로그램에도 그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자세히 보니 ‘뉴스 속보’라는 짤막한 한 줄에도 방송국마다 아이덴티티가 녹아 있다. 그런데 이 아이덴티티에는 단순히 미적인 요소만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송국의 전략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실제로 노년층이 즐겨보는 한 종합방송채널의 뉴스는 다른 방송국보다 자막이 훨씬 크다고 한다. 자막 하나도 ‘타깃 시청자’에게 최적화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디자인으로 그 방송국이나 프로그램의 콘셉트와 전략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OAP 디자인은 브랜드 디자인으로서 역할도 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험조차 아름답게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음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디자인 분야는 UX이다. UX는 User Experience라는 말을 줄인 것인데, 인터넷이나 모바일 서비스상에서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의미이다. 이 말을 처음 듣는다면 ‘경험을 디자인한다니, 이건 또 무슨 해괴한 말인가’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휴대폰이나 PC로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하나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이나 그에 따른 반응 등 사용상의 모든 것이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경험’인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이 만족스러울 수 있도록 사용자를 중심에 두고 디자인을 설계하는 것을 UX 디자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새로 지어진 건물에 지하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내려가야 한다고 해보자.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길은 무척 아름답다. 벽에는 멋진 그림이 걸려 있고, 은은한 배경음악과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싼다. 그런데 정작 길 자체는 위험천만이다. 엄청나게 좁은데다 경사도 심하고 중앙분리선도 모호해서 이러다가 마주 오는 차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겁이 난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는 그럴싸하지만, 그 길을 내려가는 운전자의 경험은 한마디로 빵점이다. 반대로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지만, 사방에 흉측한 그림이 있다거나 귀신이 나오겠다 싶을 정도로 으스스한 분위기라면 어떨까. 게다가 어디선가 수상한 냄새도 풍겨온다. 과연 이 경험 또한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주차장으로 가는 여정 전체를 편리하면서도 만족스럽도록 서비스 전반을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UX 디자이너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매일 입는 옷, 매일 신는 신발이나 가방, 매일 타는 차…. 디자이너들이 아름답게 만드는 대상을 내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1초에도 수많은 프레임으로 나누어 화면을 스쳐 지나가는 TV 속 영상이나 인터넷, 모바일을 이용하는 경험까지 손으로 잡히지 않는 무형의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사람들 또한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이렇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의 일상을 가꿔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도 가져본다.

      장지희 작가·서비스 기획자 2020.09.24 16:40

    • 문화/과학 만화로 본 세상

      [만화로 본 세상]디자이너-스포츠계 ‘약물 시스템’의 치명적 부작용

      4년간 연속 꼴찌를 기록한 야구팀 ‘드림즈’를 다룬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얼마 전 종영했다. <스토브리그>는 드림즈 야구단에 백승수가 단장으로 새로 부임하면서, 구단 안에 산적한 병폐 현상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팀 내 파벌싸움부터 스카우터 팀장의 촌지 문제, 구단주 기업의 횡포까지 백 단장이 손을 대는 문제는 하나같이 조직 전체를 뒤흔드는 구조적 차원의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해츨링 작가의 만화 중 한 장면 / 케이툰 그런데 이러한 <스토브리그>에서도 유난히 개인적인 일탈로 그려지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도핑이다. <스토브리그>에서 도핑은 성장을 갈망하는 스포츠 선수에게 은밀하게 찾아오는 유혹처럼 연출된다. 스카우터 팀장이 “그럴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을 방패 삼아 촌지를 받고, 구단주가 횡포를 저지르는 모습에서 조직 전체를 문제 삼았던 이전의 서사와 달리 <스토브리그>는 도핑을 개인의 윤리의식 문제로 취급한다. 반면 케이툰에서 연재되고 있는 웹툰 <디자이너>는 도핑을 성과 중심적인 스포츠계 안의 병폐 현상으로 그린다. 이 만화에서 도핑은 단순히 선수 개인의 열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코치나 감독에 의해 마치 선수를 실험체 다루듯 하는 위계적인 구조 안에서 강요된다. 이들은 선수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손쉽게 가로챌 뿐, 약물 부작용으로 괴로워하는 선수들의 몸에는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렇듯 억압적인 방식으로 행해지는 도핑 문제를 뒤쫓는 사람은 <디자이너>의 주인공 ‘닥터 유진’이다. 그는 15년 전 유도 유망주였던 조카 최유진을 억울하게 떠나보낸 뒤, 미국에서 도핑 약물을 연구하며 오랜 시간 음지에서 복수를 준비해왔다. 유진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우명진 감독은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고, 당시 우 감독 때문에 선수 생활이 끊긴 이동호는 본인 역시 그렇게 버려진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체대 교수로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학생들을 도핑에 밀어 넣고 있다. 약물이 체육계의 성공 법칙으로 이미 견고하게 뿌리내린 것이다. 여기에는 스테로이드뿐 아니라 성장호르몬 주사, 자가수혈 등 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안기는 온갖 도핑 방법들이 동원된다. 닥터 유진은 이러한 도핑 방법들에 능통한 ‘스택 디자이너(약물 복용을 설계하는 사람)’로 한국에 돌아와 우명진에게 차츰 접근한다. 닥터 유진은 이 폭력의 연쇄 고리를 끊어내려고 하나 목표가 복수인 만큼 그도 잔혹한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닥터 유진의 결의를 보여주고자 등장하는 몇몇 장면들 때문에 만화의 서사적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단점은 <디자이너>가 갖고 있는 노골적인 문제의식(이른바 ‘노골리즘’)에 충분히 상쇄된다. 해츨링 작가는 전작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도 등장인물의 상황과 입장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며 거침없이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행보를 보였는데, 이 ‘노골리즘’은 <디자이너>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디자이너>의 ‘노골적인’ 문제제기는 비단 도핑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디자이너>의 시선은 도핑을 넘어 그 이면에 있는 시스템을 향한다. 성과 중심체제 속에서 누가 가장 약한 고리로서 폭력의 대상이 되며, 또 이 폭력의 궤도 안에서 가해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을 방기하는가. 이번에도 해츨링의 노골리즘을 따라가 볼 만하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2020.02.21 15:59

  • 레이디경향

    • 글로벌 디자이너 민주킴이 만든 ‘위키드룩’은?

      패션

      글로벌 디자이너 민주킴이 만든 ‘위키드룩’은?

      패션 브랜드 ‘민주킴(MINJUKIM)’이 유니버설 픽쳐스의 뮤지컬 영화, ‘위키드(Wicked)’와의 협업 컬렉션을 공개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디자이너 김민주(MINJUKIM)가 영화 ‘위키드’를 만났다. 패션 브랜드 ‘민주킴(MINJUKIM)’이 유니버설 픽쳐스의 뮤지컬 영화, ‘위키드(Wicked)’와의 협업 컬렉션을 공개했다. 위키드의 스토리와 명장면들을 민주킴 특유의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아트웍으로 재해석한 이번 컬렉션은 영화 속 등장인물은 물론 영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컬러 팔레트를 몽환적인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비즈, 오간자 등의 소재를 활용한 섬세한 디테일을 더해 위키드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판타지를 연출했다. 화사한 그래픽이 돋보이는 ‘위키드 후디’와 엘파바의 망토에서 영감을 받은 ‘페어리 윙 더플 백’을 비롯해 스크런치와 키 홀더 & 백 참까지 다양하게 구성했으며 스티커와 포스트 카드 등의 문구류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위키드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민주킴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위키드 후디’는 블랙 바탕에 조화롭게 믹스된 그린과 핑크 컬러의 그래픽이 환상적인 무드를 선사하고, 그 위를 수놓은 크리스탈 큐빅이 낭만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또한 전면 하단에는 글린다와 엘파바의 우정을 나타내는 ‘Pink goes good with green’이라는 텍스트로 특별함을 더했다. 엘파바의 망토에서 영감을 받은 ‘페어리 윙 더플 백’은 민주킴의 아카이브 퀼팅 원단에 삼각형의 오간자를 더해 날개처럼 흩날리는 망토의 실루엣을 표현했다. 또한 자카드와 샤 소재의 레이어드로 위키드의 매지컬한 분위기를 담은 ‘레이어드 스크런치’는 이번 협업을 상징하는 펜던트와 꽃 모양의 스와로브스키 원석으로 우아하면서 화려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민주킴의 시그니처 아이템 중 하나인 ‘아크 퍼 키홀더 & 백 참’은 엘파바의 강력한 매력을 담아 새롭게 탄생했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귀여운 곰돌이 귀 모양에 엘파바를 떠올리는 초록색 눈과 실버 펜던트, 꽃 장식 등으로 유니크하게 연출했다. 민주킴과 위키드 협업 컬렉션은 민주킴 공식 온라인 스토어와 서울 안국동에 위치한 민주킴 쇼룸을 통해 단독으로 만날 수 있고, 쇼룸에서는 이번 협업을 위한 리얼 드로잉과 아트웍들을 함께 선보이며 스테이셔너리 제품의 구매도 가능하다.

      이유진 기자 2024.12.13 09:27

    • 나치 1급 전범이었다…디자이너 코코 샤넬 [세기의 비하인드]

      문화/생활

      나치 1급 전범이었다…디자이너 코코 샤넬 [세기의 비하인드]

      사업 확장을 위해서일까, 연인을 따라서일까.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협력했다는 흑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브랜드 샤넬을 만든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20세기 패션 혁신을 이끈 프랑스의 전설적인 디자이너입니다. 샤넬은 절제되면서 세련된 디자인으로 지금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때는 왕실과 상류층 여성이나 톱스타만 입을 수 있어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벌쯤 탐내는 옷이었습니다. 이 명품 옷을 만든 코코 샤넬은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아무리 옷이 예뻐도 그에게는 대중이 용서할 수 없는 인생의 한 토막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1급 전범이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샤넬은 어머니 사망 후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두 여동생과 함께 수녀원에 딸린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노래에도 재능이 있어 10대 시절, 낮에는 재봉사로 일하고 저녁이면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어갔죠. 밤무대에서 만난 플레이보이 백만장자 에티엥 발상의 정부가 되고 그의 도움으로 모자 가게를 엽니다. 그녀는 상류층 남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사업을 일구고 성공 가도를 달립니다. 사넬의 이런 경험은 자신의 사업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권력자인 나치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생각을 심어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샤넬이 오직 권력을 이용한 사업가는 아닙니다. 그의 디자인은 패션의 역사를 바꿨죠. 전통적인 여성복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유로움과 실용성을 겸비한 그녀의 디자인은 패션의 혁신이었습니다. 코르셋을 없애 여성의 몸을 해방했고, 장식이 많은 거추장스러운 의복 대신 편안한 옷으로 여성들의 활동성을 높였습니다.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자르고 발목이 보이도록 짧게 줄인 미니 블랙 드레스와 샤넬 슈트는 새로운 여성복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샤넬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의류 디자이너로 승승장구하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프랑스까지 밀고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군에 점령되었을 당시 상류층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피신했지만 샤넬은 파리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가수 모리스 슈발리에, 에디트 피아프, 작가 장 콕토 등 많은 대중문화 유명인들이 애국적인 마음으로 내 나라를 지키겠다며 같은 선택을 했죠. 샤넬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이유도 그들과 같은 이유였을까요? 디자이너 코코샤넬 관련 이미지. 그러나 진실은 전쟁이 끝난 후에 밝혀집니다. 샤넬이 나치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책 <적과 함께 침대에서>을 쓴 작가 할 본(Hal Vaughan)은 “샤넬이 전쟁 기간 독일 정보기관과 손을 잡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 놀랍게도 그녀가 국제 정세나 냉전 체제 이념에 대해 영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샤넬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전쟁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관심사는 그저 자신의 패션 사업이었습니다. 샤넬은 사교계를 통해 독일 나치 군인들과 어울려 지냈고 13세 연하인 독일계 귀족 한스 귄터 본 딩클라게와 사귀게 됩니다. 코코 샤넬의 연인이자 독일 나치 전범 한스 귄터 본 딩클라게 폰 딩클라게는 당시 고급 스포츠였던 테니스를 즐기고 비싼 차를 타고 다니며 여자들과 어울린 바람둥이였지만 뒤로는 독일 나치에 협력하는 스파이였습니다. 20대부터 파리의 사교계에 들어가 의도적으로 고위층에게 접근했죠. 샤넬은 폰 딩클라게의 매력적인 외모와 사회적 지위에 매료되었고, 그 또한 샤넬의 독특한 개성과 예술적 감각에 끌렸습니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지만 서로 사익을 추구하는 사이기도 했습니다. 폰 딩클라게는 독일 정보기관의 요원으로서 사교계 유명인 샤넬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활동했습니다. 코코 샤넬은 폰 딩클라게의 지위를 이용해 독일 포로 수용소에 있는 조카를 구해냈고 과거 유대인에게 판 자신의 샤넬 향수 사업을 도로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이미 1924년 샤넬 향수를 유대인인 버트하이머 형제에게 팔았지만 유대인이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도망간 틈을 타 쉽게 되찾아온 것이죠. 나치 친화적이었던 그녀에게 독일 정보기관은 ‘에이전트 F-7124’라는 암호명과 ‘웨스트민스터’라는 코드명까지 부여합니다. 완벽한 나치의 스파이로 활동했던 것이죠. 1941년 그녀는 나치의 명령에 따라 1941년 8월 스페인 마드리드로 잠입 작전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스파이 재능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 할 본에 따르면 그녀의 스파이짓은 스페인 수도에 자신의 회사를 세우고 영국 외교관과 인사를 주고받는 것에 그쳤다고 합니다. 그녀의 임무는 단지 나치 일당이 스페인에서 겪는 불편함 몇 가지를 해결해준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전범 처단 재판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샤넬은 1급 나치 부역 혐의로 체포됩니다. 프랑스 정부는 1만 명 이상을 사형시켰고 샤넬도 처형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처칠 등 친분이 있던 유력 인사들의 도움으로 중립국 스위스로 도피합니다. 디자이너 코코 샤넬. 프랑스인들은 샤넬을 ‘재판을 받지 않은 전범’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그동안 쌓아올린 명성과 이미지가 손상된 상태였죠. 그녀는 대중에게 전범 이미지가 잊힐 때 즈음인 10년 후 파리로 돌아와 자신의 패션 사업을 재개했고 옛 명성과 인기를 되찾습니다. 샤넬은 1971년 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정치에 무지했기 때문에 나치 정권에 협력했는지, 연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협력했는지 아니면 조카를 포로수용소에서 구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치와 협력했는지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합니다. 그녀의 사적인 잘못과 흑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옷을 만드는 악마의 재능을 갖고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샤넬의 옷과 향수는 8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료제공 유튜브 <지식 아닌 지식> 지식 아닌 지식역사의 뒤안길 인물을 조명합니다. 매주 토,일 업로드합니다https://www.youtube.com/@yeswawa/videos

      이유진 기자 2024.05.12 09:10

    •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역사, DDP에서 만난다

      패션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역사, DDP에서 만난다

      장 루이 셰레 by 스테판 롤랑 레드 이브닝 가운. 이랜드뮤지엄 제공 파코 라반, 카스텔바작, 이세이 미야케…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디자이너들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만난다. 이랜드뮤지엄이 서울디자인재단과 함께 5월 3일부터 8월 4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간수문전시장 지상 1층 및 지하 1층에서 ‘RSVP: 위대한 유산으로의 초대’ 전을 개최한다. DDP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이랜드뮤지엄이 보유한 50여만 점의 소장품 중 남다른 시대정신과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패션계에 위대한 유산을 남긴 글로벌 패션 디자이너 21인의 의상 컬렉션이 처음 공개된다. 전시장에서는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과 금속을 소재로 사용해 디자인의 혁신을 일으킨 파코 라반의 의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1966년 발표된 첫 컬렉션 ‘입을 수 없는 드레스’를 비롯해 오드리 헵번과 제인 버킨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에게 사랑받은 파코 라반의 의상을 만나볼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을 꾀한 디자이너 카스텔바작의 ‘테디베어 재킷’과 플리츠 소재로 형태의 파격을 이끈 이세이 미야케의 의상도 전시된다. 모스키노의 1993년 SS 컬랙션. ‘칩앤시크 아트 이즈 러브’ (Art Is Love) 드레스. 이랜드뮤지엄 제공 알렉산더 맥퀸의 2010년 SS 컬렉션. 디지털 프린트 오간자 드레스. 이랜드뮤지엄 제공 샤넬 by 칼 라거펠트 골드 재킷 1996. 이랜드뮤지엄 제공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 세계를 구축했던 장 폴 고티에, 프랑코 모스키노, 마틴 마르지엘라, 알렉산더 맥퀸 등의 의상 컬렉션도 관람객을 만난다. 알렉산더 맥퀸의 2010년 SS(봄여름) 시즌 컬렉션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의상을 비롯해 패션 스케치, 컬렉션 쇼 초대장, 맥퀸의 생전 마지막 컬렉션 의상에서 영감받은 미디어 아트 등 맥퀸 관련 다수의 소장품도 전시된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 또한 전시장 곳곳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카스텔바작의 테디베어 재킷을 모티브로 한 연진영 작가의 설치 아트, ‘아텍스트(Artexte)’의 사운드&미디어 아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받아 제작된 메이킴 작가의 미디어 아트도 이번 전시에 공개된다. 장 파투 by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태피터 이브닝 가운. 1986 FW. 이랜드뮤지엄 제공 이랜드뮤지엄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예술 작품과 비견되는 당대 최고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을 실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며 “올해는 이랜드뮤지엄이 보유한 소장품을 활용해 다채롭고 신선한 전시를 전국 단위로 기획하면서 더 많은 고객과 소통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랜드뮤지엄 #파코라반 #장폴고티에 #알렉산더맥퀸 #DDP

      노정연 기자 2024.05.01 11:30

    • 전설의 헤어디자이너가 도면 한 장 없이 지은 집

      리빙

      전설의 헤어디자이너가 도면 한 장 없이 지은 집

      이천 이상일씨의 집. EBS 제공 도면 한 장 없이 그때그때 그림을 그리며 지은 집이 있다. 나만의 왕국을 위한 건축주의 도전은 일꾼들이 포기해 도망갈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단다. ‘집은 벽돌로 쌓은 철학’이라고 말하는 철학가가 고향 집터에 지은 나만의 왕국도 있다. EBS <건축탐구 집>에서 조명했다. ■설계도 없이 그림으로 지은 집 충남 당진에서 평생을 농부로 산 아버지의 남다른 심미안을 꼭 빼닮았다는 이상일씨. 누나가 셋이라 화관을 만들어 동네 여자아이들 머리에 씌워주고 고무줄놀이를 즐기던 이상일씨에게 ‘남자’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신선한 충격이었단다. 그 길로 복장학원에 등록해 옷 만드는 법을 배우고 졸업 직후 고급 양장점에 스카우트되었다. 하지만 1980년 제대 뒤 그의 삶은 바뀌었다. 패션지 <보그>를 읽다 남자 미용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국립미용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 당시 흔하던 ‘○○미장원’이 아닌 ‘헤어뉴스’를 개업한 이상일 씨. 헤어 디자이너라는 명칭과 유니폼을 처음 도입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헤어 디자이너로 큰 성공을 거둔 이상일 씨는 1996년 사둔 이천의 산자락을 떠올리고,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이천 이상일 씨의 집 작은 집을 지어 아내와 둘이 살려고 했던 산자락은 혼자 누리기엔 아까웠다. 앞산에 올라가 집터를 내려다보니 어떻게 집을 지으면 되겠다 하는 구상이 마구 떠올랐다고. 이상일 씨는 순식간에 산자락을 따라 집을 지을 배치도를 그려내고 사람들과 나누어야겠다 생각했다. “산의 주인은 자연이고, 우리는 빌려 쓰는 것!” 공사를 진행하면서 설계도나 도면 없이 그때그때 바닥이나 판자에 그림을 그려 가며 집을 지었다. 정해진 설계도가 없었기 때문에 능선을 따라 바위와 나무, 심지어는 땅의 형질도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는데 공사 중에 바위가 많이 나와도 계단 폭을 좁혀 바위를 살리고, 땅이 평평하지 않아도 그대로 경사를 살려서 지었다. 철학가 최진석 교수의 함평 집. ■집은 벽돌로 쌓은 철학이다 전남 함평 ‘부처의 자손들이 산다’는 손불면에서 태어난 철학자 최진석 교수. 아홉 살 때 방 두 칸에 부엌 하나 광 하나 딸린 작은 집으로 이사해 살았다. 부엌과 방 사이에 구멍을 뚫어 호롱불 하나로 두 공간을 밝히던 집. 부모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그 집에서 사셨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었지만 변변한 집 한 채 남겨주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셨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던 최진석 교수는 온 가족이 평생 살았던 집터에 새집을 지었다. 옛집의 기억을 간직하면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집이라는데. 넉넉하진 않았어도 공부 잘하는 아들딸이 아버지의 은근한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옆집 아들이 사업으로 성공해 이층집을 지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 안 하셨지만, 내심 불편하신 것 같았다. 집터에 새집을 구상할 때 마침 이층집이 매물로 나오자 최진석 교수는 그 집을 매입해 등기부 등본을 들고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갔다고 한다. 지금은 이 층을 허물고 고쳐 살림집이 되었다. 최진석 교수의 함평 집. 최진석 교수의 ‘철학의 왕국’을 이룬 세 채의 집은 건축가가 모두 다르다. 그 이유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건축이 상당히 수준 높은 쾌락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만 있던 개념이 실체가 있는 구조물로 만들어지는 쾌감은 책 다섯 권을 써낸 기분이라 한다. <건축탐구 집>은 오는 28일 밤 10시 50분 EBS1 방송.

      이유진 기자 2023.11.2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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