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 가자 남부 ‘라파’ 완전 장악... 구상에 따라,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국가로의 자발적 이주도 제공될 것”이라고 했다. 남부 라파와 칸유니스 사이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 모라그를 이스라엘군이 장악하면서 가자 전체 면적 5분의 1에...
트럼프 ‘가자구상’ 파문
조형국 기자 2025.04.13 20:46
국제
이, 가자 남부 ‘라파’ 완전 장악... 구상에 따라,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국가로의 자발적 이주도 제공될 것”이라고 했다. 남부 라파와 칸유니스 사이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 모라그를 이스라엘군이 장악하면서 가자 전체 면적 5분의 1에...
트럼프 ‘가자구상’ 파문
조형국 기자 2025.04.13 20:46
국제
이스라엘, 가자 남부 라파 점령…전방위 공습에 내몰리는 피란민들... 구상에 따라,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국가로의 자발적 이주도 제공될 것”이라고 했다. 남부 라파와 칸유니스 사이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 모라그를 이스라엘군이 장악하면서 가자 전체 면적 5분의...
조형국 기자 2025.04.13 17:04
국제
네타냐후 “라파 장악 필요” 벤그비르 ‘휴전 반대’···이스라엘-하마스 협상 또 ‘적신호’?... 다음주 미국 의회 연설을 앞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8일(현지시각)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를 전격 방문해 이스라엘군(IDF)을 향해 국경지역 점령 필요성을 말했다. 이스라엘 국회(크네세트)가...
트럼프 ‘가자구상’ 파문
조문희 기자 2024.07.19 15:42
국제
가자 최남단 라파서 이스라엘군 8명 사망···휴전안 협상 ‘불티’될까... 부중대장인 와셈 마흐무드(23) 대위 포함 8명 병사다. 이스라엘군(IDF)의 초동 조사 결과 이들은 라파 북서쪽 텔 술탄에서 밤샘 작전을 마친 뒤 장갑차로 이동하던 중 사망했다. IDF는 묻혀 있던 대규모...
조문희 기자 2024.06.16 17:27
야구
‘안 맞네, 안 맞아’ 개막 5경기 19타수 무안타에 15삼진, 보스턴 라파엘 데버스에 무슨 일이?보스턴 레드삭스 라파엘 데버스. 게티이미지코리아 2025시즌 출발선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라파엘 데버스는 악몽을 꾸는 듯하다. 타격에는 사이클이 있고, 느린 출발도 있지만 개막 이후 무안타 침묵이 길어지고 있어서다. 데버스는 지난 1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오리올파크 앳 캠던 야즈에서 열린 2025 MLB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방문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 삼진 3개 볼넷 2개로 경기를 마쳤다. 데버스의 개막 후 타격 성적은 19타수 무안타에 삼진 15개다. 5경기에서 무안타는 종종 나오는 기록이다. 하지만 시즌 개막부터 이런 기록에 얽히는 것은 달갑지 않다. 게다가 데버스는 3할, 30홈런, 100타점을 달성한 2019시즌 이후로 세 차례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다. 불안요소는 삼진이다. 삼진을 무려 13개(4볼넷 1타점)나 당했다. 데버스는 개막 후 3경기에서 10삼진, 4경기에서 12삼진, 5경기에서 15삼진을 당한 첫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중심타자인 데버스의 부진에 보스턴의 스타트도 꼬였다. 그러면서 데버스의 부진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ESPN도 2일 데버스의 깊은 슬럼프를 몇 가지 시각에서 바라봤다. 일단 지명타자 이슈다. 보스턴 라파엘 데버스가 더그아웃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데버스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보스턴이 지난 시즌 3루수 골드글러브 수상자 알렉스 브레그먼을 영입하자 지명타자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데버스가 불만을 터져 나오기도 했다. ESPN은 “3루수로서 브레그먼이 더 뛰어나므로 데버스를 (지명타자로)옮기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타자들은 지명타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부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선수들이 수비를 할 때보다 지명타자로 나설 때 타격이 더 나쁠 것으로 가정하는 ‘지명타자 페널티’를 주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부상 가능성도 언급했다. 데버스는 지난 시즌내내 어깨가 좋지 않았다. 오프시즌에도 수술을 피했지만 어깨 부상 회복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스프링캠프에서는 실전을 자제하며 단 15번만 타석을 소화했다. 그 근거로 뚝 떨어진 평균 배트 스피드를 주목했다. 지난 세 시즌 시속 73.4마일 → 72.5마일 → 70.3마일로 떨어진 평균 배트 스피드를 언급한 ESPN은 “이번 시즌 샘플은 아직 적지만, 만족스런 배트 스피드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새 타격폼에도 적응 중이다. 데버스는 타격시 스탠스를 조금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빠른 공을 타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버스는 이와 관련해 “이 자세는 과거에 해 본 적이 없는 자세다. 그래서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변화는 만족스럽다”며 타격폼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밝혔다. 지명타자 제도가 메이저리그에 도입된 1973년 이후로 19타수 무안타 보다 더 긴 무안타 행진을 벌인 지명타자는 단 3명 뿐이다. 전 포지션을 통틀어서는 7명이다. 대부분은 부상으로 고전했지만, 명예의 전당에 오른 크레이그 비지오가 반전의 시즌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ESPN은 “누구도 데버스만큼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고 했다. “데버스를 계속 2번 타자로 출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한 알렉스 코라 보스턴 감독은 “아직 데버스의 부진을 말하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다. 이런 일이 7~8월에 일어났다면 그 부분에 대해 얘기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데버스에 믿음을 보였다.
이정호 기자 2025.04.02 12:55
스포츠종합
출산 아내 두고 대회 30분전 현장 도착한 라파엘 캄포스, PGA 투어 첫승 인생역전 ‘딸이 복둥이였네’라파엘 캄포스가 18일 버뮤다 포트 로열GC에서 열린 PGA 투어 버터필드 버뮤다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고 기자회견에서 삼각형 모양 트로피를 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버뮤다|AFP 연합뉴스 첫 딸을 낳은 아내와 최대한 오래 함께 지내다 대회 개막일 30분 전에 골프장에 도착한 라파엘 캄포스(36·푸에르토리코)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극적으로 우승컵을 들었다. 캄포스는 18일 버뮤다의 포트 로열GC(파71·6828야드)에서 열린 PGA투어 가을시리즈 7번째 대회 버터필드 버뮤다 챔피언십(총상금 690만달러) 최종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4개, 보기 3개로 3언더파 68타를 치고 합계 19언더파 265타를 기록, 2위 앤드루 노바크(미국)를 3타차로 제치고 생애 첫 우승을 거뒀다. 캄포스는 2019-2020 시즌 PGA 투어에 데뷔했지만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해 콘페리 투어(2부)로 내려갔다가 복귀하는 등 이전까지 79개 대회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콘페리 투어 1승이 있지만 PGA투어에서는 2021 코랄레스 푼타카나 챔피언십 준우승이 최고성적이었다. 올해 다시 PGA 투어로 복귀한 캄포스는 지난주까지 페덱스컵 랭킹 147위에 그쳐 다음 시즌 카드를 걱정하고 있었으나 이날 우승으로 2년 시드를 확보하고 페덱스 랭킹도 80위로 끌어올렸다. PGA투어는 다음주 대회를 끝으로 페덱스 랭킹 125위 이내 선수들에게 내년 시드를 부여한다. 캄포스의 아내는 지난 월요일 유도분만으로 딸을 낳았다. 아내와 최대한 시간을 보내려고 대회 개막 당일 항공편을 선택한 그는 2라운드까지 7언더파 135타에 그쳤으나 3라운드에만 9언더파 62타를 쳐 공동선두로 올라섰고, 마지막날 3타를 더 줄이고 인생역전 드라마를 썼다. 우승상금 124만 2000달러(약 17억 3000만원)를 받고 1979년 치치 로드리게스 이후 45년 만에 PGA투어에서 우승한 푸에르토리코 선수가 된 캄포스는 우승 직후 “믿을 수 없는 한 주, 제 인생 최고의 한 주”라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여러분과 함께 앉아 내가 PGA투어 챔피언이라고 말하는게 믿겨지지 않는다”며 “솔직히 내겐 고용안정이 중요했는데, 앞으로 몇년 동안 어디에서 뛸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김성현은 공동 42위(6언더파 278타)에 그쳐 페덱스컵 랭킹 130위로 3계단 더 하락했다. 노승열은 공동 62위(1언더파 283타)로 페덱스컵 랭킹 178위를 유지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2024.11.18 13:46
스포츠종합
호날두, 나달 극찬 “라파, 내 친구가 돼줘 영광”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011년 라파엘 나달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게티이미지 “라파, 정말 놀라운 경력을 쌓았네. 너의 헌신, 열정, 놀라운 재능은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영감을 줬어. 너의 여정을 목격하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게 큰 영광이야. 훌륭한 경력에 축하를 보낸다. 은퇴를 즐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축구)> “은퇴 소식은 테니스 세계 전체에 힘든 뉴스야. 나 역시 그를 알게 되어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지.” <얀니크 시네르(테니스)> “너는 정말 놀라워. 너의 위대함과 근면한 자세를 목격하고 그걸 배운 게 정말 인상적이었어. 다음 여정에서도 최고 행운이 있기를 기원해.” <코코 가우프(테니스)> “스페인이 배출한 최고 운동 선수 중 한 명. 당신의 타이틀과 가치에 감사합니다.” <비니시우스 주니어(축구)> “너 때문에 테니스를 사랑하게 됐어.” <다비드 데 헤아(축구)> “우리 모두에게 롤모델이 되어줘 고마워.” <마르크 마르케스(MotoGP 챔피언)> 라파엘 나달. 게티이미지 최근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38·스페인)에 대해 다양한 종목 스타들이 내놓은 반응이다. 대표적인 서남아시아 스포츠매체 ‘알자지라’는 최근 나달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를 다양한 숫자로 설명했다. 나달은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22회나 차지했다. 프랑스 오픈 14회, 호주 오픈 2회, 윔블던 2회, US 오픈 4회다. 역대 그랜드슬램 달성 순위에서 나달은 24회 우승한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에 이은 2위다. ‘위대한 맞수’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20차례 그랜드 슬램을 차지했다. 세 명 모두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나달은 올림픽에 단식(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복식(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두 개 금메달을 따냈다. 조코비치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냈고 페더러는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 나달은 테니스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도 네 차례 우승컵을 들었다. 나란히 1회 우승에 그친 조코비치, 페더러보다 훨씬 많다. 국가대표로서 보인 열정, 국가대표로서 거둔 성적 모두 세 명 중 압도적으로 앞선다. 로저 페더러가 2022년 9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레이버컵에서 라파엘 나달과 함께 복식 경기에 나서 자신의 은퇴 경기를 치렀다. 페더러와 나달은 6-4, 6-7, 9-11로 패배했지만 이 경기는 페더러의 24년 경력을 마무리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페더러와 나달은 경기 후 많은 눈물을 흘렸다. 게티이미지 나달은 15세부터 프로 테니스 투어에 나섰다. 지금까지 프로 선수로 활동한 기간은 무려 23년이다. 나달은 209주 동안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알자지라는 “나달은 2008, 2010, 2013, 2017, 2019년을 세계랭킹 1위로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나달이 가져간 ATP 투어 우승컵은 모두 92개다. 조코비치는 99개, 페더러는 103개다. 로저 페더러가 2008년 윔블던 단식 결승에서 자신을 꺾고 우승한 나달을 축하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나달이 한 경기 중 팬들의 뇌리에 가장 깊게 남은 경기는 2008년 윔블던 결승전이다. 당시 나달은 페더러를 상대로 6-4, 6-4, 6-7(5), 6-7(8), 9-7로 승리했다. 알자지라는 “4시간 48분 동안 대접전이었다”며 “테니스 역사상 최고 경기 중 하나”로 평가했다. 나달은 2023년 초 호주 오픈에서 발생한 고관절 부상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겨우 23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나달은 오는 11월 19일 데이비스컵에서 스페인 대표로 나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알자지라는 “나달은 은퇴를 선언한 후 부상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며 “그는 앞으로 자기 고향인 마요르카에 세운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세훈 기자 2024.10.13 00:34
스포츠종합
2년만에 돌아온 롤랑가로스, 1회전 완패에도 팬들은 ‘라파 라파!’ 환호···파리올림픽을 언급한 나달 “여기 다시 돌아오길 희망한다”라파엘 나달이 27일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1회전서 알렉산더 츠베레프에 패한 뒤 코트를 떠나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파리 | AFP연합뉴스 ‘흙신’의 패색이 짙어지자, 경기장에 있는 모든 관중들이 일제히 ‘라파’를 외쳤다. 롤랑가로스를 수호하는 신의 가호를 가장 많이 받았던 선수, 그리고 프랑스 테니스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선수. 모두가 라파엘 나달(275위·스페인)이 극적으로 일어나길 바랬지만, 아쉽게도 나달은 전성기 때 그 폼이 아니었다. 2년 만에 돌아온 앙투카 코트에서, 나달의 도전은 아쉽게도 첫 판에 끝났다. 나달은 27일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1회전에서 알렉산더 츠베레프(4위·독일)에 세트스코어 0-3(3-6 6-7 3-6)으로 패했다. 2년 전 이 대회에서 카스페르 루드(7위·노르웨이)를 꺾고 통산 14번째 프랑스오픈 정상에 올랐던 나달은 이후 고관절 부상으로 고생하며 지난해에는 불참했고, 올해 다시 돌아왔으나 첫 판에서 짐을 쌌다. 공교롭게도 나달이 2년전 이 대회 4강에서 만났던 선수가 바로 츠베레프였다. 당시 츠베레프는 경기 도중 발목을 크게 접질러 기권했고, 회복을 위해 오랜기간 코트를 떠나 있어야 했다. 이날 경기가 나달과 팬들에게 갖는 의미는 컸다. 나달은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하지만 지난 25일 공식 인터뷰에서는 “예전에 비해 움직임이 더 좋아졌다. 그래서 더 자신감이 생긴다”며 “(은퇴 시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지만 오늘 당장 올해가 마지막 프랑스오픈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고 은퇴 시기를 미룰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라파엘 나달이 27일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알렉산더 츠베레프와의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1회전서 백핸드를 치고 있다. 파리 | 로이터연합뉴스 물론 나달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도 말했다. 만약 나달의 말처럼 올해가 마지막이라면, 이번 대회는 나달의 마지막 프랑스오픈이 될터였다. 노바크 조코비치(1위·세르비아), 카를로스 알카라스(3위·스페인)은 물론이고 여자 세계랭킹 1위인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까지 경기장을 찾아 나달의 경기를 관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경기는 모두의 예상대로 츠베레프의 우위로 흘러갔다. 츠베레프는 1세트 나달의 첫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한 뒤 5-3까지 리드를 이어갔고, 이어진 나달의 게임을 4번의 듀스 접전 끝에 브레이크하며 1세트를 가져왔다. 2세트는 이날 경기 최대 분수령이었다. 나달이 게임스코어 2-2에서 츠베레프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해내자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하지만 이후 츠베레프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켜갔고, 4-5에서 나달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결국 5-5 원점으로 돌렸다. 이후 6-6까지 이어가 타이브레이크로 접어든 경기는 츠베레프가 접전 끝에 7-5로 이겨 2세트도 따냈다. 기세를 탄 츠베레프는 3세트도 6-3으로 제압하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보통 경기가 끝난 후에는 승자만 코트 인터뷰를 하기 마련인데, 이날은 승자인 츠베레프와 패자인 나달의 코트 인터뷰가 모두 진행됐다. 먼저 인터뷰에 나선 츠베레프는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우선 나달에게 감사하다. 매우 영광이었다”며 “난 어린 시절 내내 나달이 경기하는 것을 지켜봤고, 프로가 되었을 때 운이 좋게도 라파와 경기를 할 수 있었다. 난 운이 좋게도 이 아름다운 코트에서 그와 두 번 경기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오늘은 내 순간이 아닌, 나달의 순간이다”라며 나달을 위해 짧게 인터뷰를 마쳤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나달은 공식 인터뷰에서처럼, 마지막 무대냐는 질문에 애매한 답을 내놨다. 나달은 “만약 오늘이 (프랑스오픈에서) 내 마지막 시간이었다면, 잘 즐겼다”며 “참 말하기가 어렵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금 말하기 어렵다. (롤랑가로스에서) 다시 뛰지 않을 것이라는 쪽의 비율이 높지만, 100%라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단, 나달은 7월 열리는 파리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앙투카 코트를 밟고 싶다는 뜻은 강하게 내비쳤다. 나달은 “올림픽에 나서기 위해 이 코트로 다시 돌아오길 희망한다”며 “그것은 내게 동기를 부여한다. 그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정말로 잘 준비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라파엘 나달이 27일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1회전서 알렉산더 츠베레프에 패한 뒤 츠베레프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파리 | EPA연합뉴스
윤은용 기자 2024.05.28 02:32
문화/과학 해외문화 산책
[해외문화 산책]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 ‘유작’ 공개조금씩 풀리고는 있다지만 이탈리아는 여전히 ‘봉쇄 중’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전국이 두 달 가까이 마비됐고,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박물관들도 문을 닫았다. 바티칸광장은 텅 비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화상 강론’을 하는 형편이다. 그 와중에도 미술팬들의 기대를 키우는 소식은 있다. 바티칸박물관의 문이 다시 열리면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라파엘로의 새 작품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티칸박물관 ‘정의’를 표현한 라파엘로의 작품 ‘유스티티아’ / 바티칸뉴스 화면 캡처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미술가’로 꼽히는 라파엘로 산치오는 1483년 이탈리아의 우르비노에서 태어났고, 1520년 길지 않은 생을 마칠 때까지 여러 지역을 돌며 건축·미술작품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모습을 그린 ‘아테네학당’, ‘라 포르나리나’라 불리는 젊은 여성의 초상화, 유명 은행가의 별장이던 파르네시나궁전에 그린 벽화 ‘갈라테이아의 승리’ 등이 특히 걸작으로 꼽힌다. 50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라파엘로의 ‘새 작품’이라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새 작품이 맞다. 라파엘로의 것으로 ‘공식’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5월 13일(현지시간) 바티칸박물관의 ‘콘스탄티누스의 방’에서 프레스코화 두 점을 공개했다. 정의와 우정의 미덕을 우화적으로 묘사한 그림에는 라틴어로 ‘유스티티아(정의)’와 ‘코미타스(우정)’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두 작품은 1520년 라파엘로가 숨지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 아마도 마지막 작품이었을 것이라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5월 13일(현지시간) 바티칸박물관 직원들이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의 작품 ‘유스티티아’와 ‘코미타스’를 공개하고 있다. 라파엘로는 피렌체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로마로 옮겨갔고, 율리오 2세 교황의 의뢰를 받아 오늘날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의 건축과 실내장식에 참여했다. 박물관의 여러 전시실 중 ‘콘스탄티누스의 방’·‘서명의 방’을 비롯한 여러 방은 라파엘로와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들로 장식돼 지금도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두 그림은 각각 가로 18m, 높이 12m 정도인데 박물관 수리 중 발견돼 2015년 3월부터 5년여 동안 세심한 복원 과정을 거쳤다. 복원작업을 이끈 문화재 전문가 파비오 피아센티니는 2017년 현지 언론 <라스탐파> 인터뷰에서 “거장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고, 르네상스 미술 전문가들과 감정가들의 최종 확인을 통해 라파엘로의 작품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박물관 기술과학전문가 아르놀드 네셀라스의 설명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맨 벽에 먼저 로진이라 불리는 송진 비슷한 수지를 뿌리고 못으로 고정했다. 그 위를 회반죽으로 얇게 덮고 오일로 그렸다. 네셀라스는 “라파엘로는 이 방에서 직접 유화용 기름을 가지고 기법을 실험했다는 사실이 16세기 기록에 나와 있다”며 “그는 하나의 기법을 이해하고 나면 다음 도전에서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는 모험가였다”고 설명했다. 벽화들은 원래 라파엘로 사망 500주년을 맞아 4월 20일 국제콘퍼런스에서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취소됐다. 그래서 바르바리 자타 박물관장과 복원전문가 등 20여 명만 참석한 가운데 공개됐다고 바티칸뉴스는 전했다.
구정은 국제부 선임기자 2020.05.22 14:40
사회 주목! 이 사람
[주목! 이 사람]‘거리의 악사’ 페루인 라파엘 몰리나 “지하철 무대 덕분에 한국에 정착”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루 출신 뮤지션은 누구일까. 뮤지션의 주요 활동무대를 ‘거리’로 좁히면 답은 쉽게 나온다. 회원 수 7000명의 팬카페를 보유한 ‘거리의 악사’ 라파엘 몰리나(48)다. 생소한 안데스 전통악기 퀘나와 삼포냐를 곁들여 부르는 그의 노래는 특히 거리에서 반응이 좋았다. <베사메무초>로 대표되는 라틴음악 역시 어디서든 박수를 받았다. 인기에 힘입어 방송에 출연하고 음반도 4장이나 냈다. 1997년 공연을 위해 무심코 찾은 서울은 삶의 터전이 됐다. 덕수궁 돌담길과 남산타워, 마을축제 현장까지, 사람이 모인 곳은 모두 그의 무대다. 그 중에서도 자하철역은 몰리나가 가장 사랑하는 공연 장소다. 몰리나는 “지하철과 첫 인연을 맺은 건 2003년 봄입니다. 당시에 저와 비슷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이후에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났지만 저는 남았습니다. 지하철 무대는 나를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게 해준 곳이고 아내를 만나게 해준 곳이니까요. 만약에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지하철 공연은 계속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인을 꿈꿨던 건 아니다. 여느 남미 남자들 처럼 그도 축구선수를 꿈꿨다. 장남감이 없었던 유년시절, 축구공은 유일한 놀잇감이었다. 키는 작지만 제법 빠른 공격수로 활약하면서 축구에도 소질을 보였지만, 허리를 다치면서 축구를 접었다. 축구선수 꿈을 포기한 뒤 막막한 심정으로 친형을 따라 배운 악기가 지금의 몰리나를 뮤지션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2003년 가을, 남미 음악을 좋아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공연이 없던 날이라 다른 연주팀을 보러 대림역에 갔다가 아내를 처음 만났어요. 그 뒤에 아내는 내가 쇼핑갈 때 바가지 쓰기 딱 좋은 인상이라며 쇼핑에 동행해주었는데, 난 그걸 내게 관심이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프로포즈했습니다.” 이제 몰리나에게 한국은 페루만큼이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나라다. 무엇보다 그 자신과 아내, 아이가 살고 있는 귀한 보금자리다. 시민의 한 명으로 때로는 광장에서 목소리를 낸다. “한국 현대사에 대해 아내가 자주 설명을 해줍니다. 5·18 민주화운동이나 6·10항쟁에 대해 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참여했던 촛불집회는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비교적 발전한 유럽이나 북미권 나라들도 이런 평화적인 집회를 국민적 차원에서 이끌어낸 적이 거의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들은 자긍심을 가질 만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살 만한 높은 수준의 정치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몰리나는 올해도 지하철역을 기반으로 전국을 돌며 연주하고 노래할 계획이다. ‘악기를 놓는 순간까지 조금씩 진화하는 뮤지션’이라는 그의 꿈을 이어간다. 또 다른 바람도 있다. “아들이 건강하게 인성 바른 아이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아이를 위해 아내와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행복보다는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만끽했으면 합니다.”
반기웅 기자 2018.03.26 17:02
사회 사람의 빛
[사람의 길]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 ‘라파엘 클리닉’치유의 천사, 천사의 치유 고통받는 이의 모습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시며 그들이 내민 손을 보듬으며 당신의 미소를 보게 하소서 베품보다는 늘 섬기는 법을 배우게 하시어 자신을 낮추고 진정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박성규 ‘라파엘의 기도’ 중에서 일요일.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 라파엘 클리닉(대표 김유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교수, www.raphael.or.kr)의 ‘작은 진료’가 있는 날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열리는 라파엘 클리닉은 한 주씩 번갈아가며, 내과·가정의학과를 중심으로 진료하는 ‘작은 진료’와 전체 17개 과목을 한꺼번에 진료하는 ‘큰 진료’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진료소로 사용하고 있는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강당 복도는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오전부터 대학로에서 민주노총 집회가 열려 일대에 경찰들이 쫙 깔리는 바람에 내진환자 수가 눈에 띄게 준 것 같은데도 이 모양이다. 복도에는 피부색도, 차림새도 구구각각인 외국인 환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사이를 의사와 자원봉사자 들이 비집고 다니며 업무를 본다. 응급 환자만 찾아보기 어렵다뿐이지 마치 야전병원을 방불케 하는 ‘복도병원’. 일요일마다 한 고등학교 강당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라파엘’은 에 나오는 ‘치유의 천사’다. 11년 전,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 이름조차 없었다. 그 전신은 1958년 시작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가톨릭학생회(CaSA)의 무료 진료소였다. 50년 전만 해도 국내 의료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의료보험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학생 중심의 빈민 진료는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1996년 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가톨릭학생회 교수와 학생들은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참담한 의료 실태를 전해 들었다. 1993년부터 산업연수제도를 통해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큰 꿈을 안고 이 땅에 들어왔다. 1996년 당시 약 22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다양한 산업 현장에 종사했지만, 대부분 불법체류자로 혹사와 임금체불 등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 처지에 의료 혜택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 가톨릭학생회 교수와 학생 들은 과거의 전통을 되살리기로 했다. 창고 안에서 낡은 궤짝 두 개를 찾아 끄집어냈다. 과거 빈민진료 때 사용했던 진료상자였다. 어쩌면 유물로서나 남아 있어야 했던 그 상자가 이렇게 다시 쓰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학생들은 상자 안에 시효가 지난 약제와 약봉지, 처방전으로 쓰일 종이와 간단한 진료 도구들을 넣어 리어카에 싣고 혜화동 성당으로 향했다. 그렇게 낡은 궤짝 안에 들어간 라파엘 천사는 리어카에 실려 소리 없이 이주노동자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1997년 4월 13일 혜화동 성당 백동관에서 문을 연 무료 진료소는 토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용하기 쉽도록 격주 일요일마다 오후 2시에 진료를 시작했다. 초기 30명을 밑돌던 환자 수는 어느새 급증해 한 달 만에 혜화동 성당 안의 진료 장소가 비좁아졌다. 이를 전해 들은 김수환 추기경과 강우일 주교는 그때까지 봉쇄 구역이나 다름없던 가톨릭대학교 성신 교정의 문을 열어주었다. 학생들은 다시 진료날이면 리어카에 의료도구와 약을 싣고 대학로를 가로질러 성신 교정에 진료소를 차렸다. 처음에 축구장처럼 넓어보이던 성신 교정 내 3층 건물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가 꽉꽉 들어찼다. 라파엘 클리닉은 매주 일요일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강당 복도에서 열린다. 이역만리에 온 이주노동자를 위한 병원이다. 의사가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가톨릭 교수회 교수들과 그동안 흩어져 있던 가톨릭학생회 동문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와 진료소의 빈 자리들을 채워주었다. 진료소가 성장하면서 진행과 통역, 청소 등의 자원봉사의 물결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해 10월 강우일 주교는 무료 진료소에 치유의 천사 ‘라파엘’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한겨울의 한파가 닥쳐왔다. 1997년 겨울, IMF 외환위기로 많은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잃었다. 유달리 추웠던 어느 날, 환자들의 아침 대용식인 초코파이가 동이 났다. 오후 2시까지 진료소에 도착하기 위해 아침을 거른 채 먼 길을 오는 경우가 다반사인 환자들을 위해 준비한 대용식이었다. 처음엔 환자들이 미안해하며 조심스레 집어가던 초코파이가 30분 만에 모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라파엘 사람들은 깨달았다. 지금 환자들에겐 약보다 먹을 것이 더 시급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들은 ‘적극적인 구호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마침 라파엘이 ‘제2회 지학순 주교 기념 정의평화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으로 쌀을 비롯한 구호 식량을 구입할 수 있었다. 사정을 알게 된 여러 단체의 격려와 후원도 잇따랐다. 그해 겨울 라파엘 산부인과와 소아과는 유례없이 바빴다. 라파엘 사람들은 당시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쭈뼛쭈뼛 진료소 문을 들어서던 이주노동자들의 서글픈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심지어 막 태어난 아이를 몰래 내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학생들이 아이를 맡겠노라고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체 인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때 다행히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팀이 합류해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어느덧 열 살 소년으로 자라나 있을 터인데…. 모두 어떻게 그 엄혹한 시기를 견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시련을 통해 라파엘 사람들의 봉사가 오히려 깊고 넓어진 것만큼은 분명했다. 라파엘 클리닉 김전(서울대 의대 생리학 교수) 소장의 말마따나 “모든 것이 다 움츠러드는 IMF 동안에 라파엘 클리닉은 가장 성장한 ‘사업’을 벌인 것”인지도 모른다. ‘선의’는 바이러스다. 진료 과목도 늘고, 후원금도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주노동자의 삶은 춥고 아프다. 1998년 6월, 라파엘 클리닉은 현재의 동성고등학교 4층 강당 복도로 이사했다. 가톨릭대학교 측이 신학부 성신관을 재건축하면서 건물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라파엘 클리닉이 성신 교정으로 옮겨갈 때만 해도 이삿짐이라곤 리어카 2대 분의 간단한 물품이었지만, 동성고등학교로 이사할 때는 이삿짐이 무려 큰 트럭으로 3대 분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숱한 기적이 일어났다. 약품과 도구가 비면 어느새 채워지고 모자라면 보충되는가 하면, 급한 환자의 대수술 후면 어김없이 수술비만큼의 후원금이 어디선가 지원되곤 했다. 하다못해 생각지도 않은 상을 받으면서 생긴 상금이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천사(월 1004원)’와 ‘대천사(월 1만1004원)’ 후원을 비롯한 후원금도 꾸준히 늘어났다. 1998년 가톨릭대학교 산부인과 박종섭 교수팀과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김중수 교수팀 등이 합류하면서 라파엘 클리닉은 무려 17개 과를 갖춘 준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동두천과 의정부에도 진료소를 열었다. 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의과대학 가톨릭학생회 멤버들이 속속 봉사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제 라파엘 클리닉은 겉보기엔 허름한 ‘복도병원’일지 모르지만 그 진료 수준만큼은 어디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넘쳐난다. 다만 지금의 동성고등학교 강당 복도에서 벗어나 그나마 의료 환경이 갖춰진 곳으로 옮기는 게 소망이라면 소망이다. 장기간 사용으로 인한 학교 측의 불편도 불편이지만, 먼지나 난방 문제 등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증하는 환자들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보건소를 빌려 휴무일에 진료하는 방안을 알아보고 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오후 7시. 라파엘 식구 몇 사람이 조금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학교 밖에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치과 병원 및 ‘라파엘 인터내셔널’ 사무실에서 라파엘 몽골 의료봉사단 해단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2007년 5월 13일, 라파엘 클리닉은 1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globalization, reproduction, agape, community, environment for patients의 첫 글자를 딴 이른바 ‘GRACE(은혜)’ 비전을 선포했다. 그 일환으로 라파엘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가난한 세계 이웃들에게까지 의료봉사의 손길을 뻗치기로 했다. 그 첫걸음으로 인도 오리사로 향했지만 신변의 위험이 있어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택한 곳이 몽골이었고, 2007년 10월 1기에 이어 2008년 5월 2기 봉사단이 몽골을 다녀왔다. 그 사이 내버려두면 죽을 수밖에 없던 심장기형 아기 샤옥도돔을 서울로 데려와 수술을 시켜주기도 했다. 학교 문 밖을 나서는데 성당에선 저녁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고 거리엔 낙엽들이 뒹굴고 있었다.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깃발을 앞세우고 어디론가 흩어져갔다. 대치하고 있던 전경들 역시 부산하게 장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2008년 늦가을, 거리는 미구에 닥쳐들 IMF 때보다 더 엄혹한 겨울에 대한 예감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 한파로 내몰릴 때 먼 나라에서 온 이방 사람들의 삶이야 말한들 무엇하랴. 그래서 어둠이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는 라파엘은 아프다.
2008.11.2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