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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림남’ 송백경 “과거에 한 문신 후회, 아빠 되니 더 이상 드러내고 싶지 않아”

      연예

      ‘살림남’ 송백경 “과거에 한 문신 후회, 아빠 되니 더 이상 드러내고 싶지 않아”

      KBS 방송 캡처 ‘살림남’이 6주 연속 토요일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지난 22일 방송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이하 ‘살림남’)에서는 박서진의 일상과 ‘추억 살림남’ 첫 번째 주인공 원타임(1TYM) 송백경의 두 번째 에피소드가 공개됐다.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6.2%를 기록했고, 송민준, 최수호가 박서진의 집을 구경하는 모습이 7.9%의 최고 시청률을 나타냈다. 스페셜 게스트로는 엔믹스(NMIXX)의 해원이 출연했다. 해원은 박서진이 거주하고 있는 인천 출신이라며 박서진 오프닝 무대에 대해 “옆집 오빠 보는 느낌으로 봤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또 신곡 ‘KNOW ABOUT ME(노 어바웃 미)’ 무대를 공개하며 시작부터 분위기를 달궜다. VCR에서는 박서진이 ‘살림남’ 시청률 7% 달성 기념 버스킹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에 나섰다. 초대 가수로 ‘2024 KBS 연예대상’ 대상 출신인 트로트 가수 이찬원 섭외에 나선 박서진은 이찬원과 전화 통화를 했고, 이찬원은 ‘살림남’ 애시청자 인증과 동시에 “시청률 8% 넘으면 출연하겠다”고 약속해 기대감을 자아냈다. 또 이찬원은 박서진의 훈훈한 미담을 공개했는데 “우리 외할머니가 형을 엄청 좋아해. 홍삼까지 챙겨주고 정말 고마웠어”라며 가족까지 챙겨주는 친한 형, 동생 사이임을 과시했다. 박서진은 버스킹을 위해 ‘트롯 귀공자’ 송민준과 ‘트롯 밀크남’ 최수호를 집으로 초대했다. 동생 효정은 “내가 같이 있으면 불편할 것 같다”라며 박서진 방으로 들어갔고, 효정과의 만남을 고대했던 송민준과 최수호는 박서진의 집안을 구경하다 태닝기에 숨어있는 효정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후 박서진은 두 손님을 위해 직접 요리에 나섰다. 송민준과 최수호는 예상치 못한 박서진의 살림 실력에 “살림 하나도 못 한다”라며 ‘살림남’ 고정 자리에 강한 야망을 드러냈고, 박서진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두 사람을 견제해 웃음을 자아냈다. 결국 박서진은 ‘살림남’ 고정의 자존심을 걸고 최수호와 팔씨름 대결을 벌였지만, 처참하게 지고 말았다. 만나자마자 찰떡 케미를 보여준 ‘대세 트로트 훈남 스타’ 3인방은 다음 주 열정적인 버스킹 무대를 선보일 것을 예고해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지난 방송에서 성우와 식당 사장으로 변신한 일상을 공개해 큰 화제를 모은 송백경은 이날 가수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과거를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1998년 원타임 데뷔와 동시에 넘치는 끼와 뛰어난 실력으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은 송백경은 “가수가 너무 하고 싶은데 아무도 인정을 안 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가출까지 했다”라며 학업을 뒤로하고 신문 배달,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틈틈이 작곡 연습을 했다고 털어놨다. 우연히 ‘1세대 힙합 아이돌의 아버지’ 양현석을 만나게 됐지만 처음부터 가수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송백경은 “제가 탐탁지 않았던 것 같다. (양현석이)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트렸다. 하지만 나는 양현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의 눈에 들려고 연습실 청소하고 곡도 양현석이 좋아하는 힙합 장르로 만들어서 계속 도전했다. 그렇게 기회를 잡아서 데뷔를 했다”고 ‘노력 천재’였던 과거를 회상했다.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송백경은 근검절약하는 어머니와 티격태격하며 케미를 보여줬다. 36세 때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30년 넘게 식당일을 해왔고, 절약 정신이 몸에 밸 수밖에 없었던 힘든 시절을 떠올리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아빠이자 가장, 성우, 식당 사장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송백경은 과거에 했던 문신이 후회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긴소매 옷을 입고 가스불 앞에서 더위를 참으며 일하던 송백경은 “왼팔에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아빠가 되고 나서 더 이상 드러내고 싶지 않다. 가정이 없을 때는 평생 가수로 살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이를 지켜보던 MC 은지원 또한 “나도 몸에 문신이 있는데 후회된다”고 동의했다. 또 송백경이 원타임 시절 때부터 약 20년 간 사용해 온 애착 아이템이 최초로 공개됐다. 송백경은 발가락 양말을 착용한 발을 보여주며 “난 발가락 양말 전도사다. 한번 신으면 일반 양말 못 신는다”라며 남다른 애정을 보여줬다. 어느덧 하루를 마감하고 식당을 정리하던 송백경 어머니는 아들을 먼저 집으로 보냈다. 어머니는 “엄마가 된 입장으로 아들 조금이라도 쉬게 하려고 빨리 보낸다. 혼자 마감하는 게 힘들지만 아들이랑 같이 나와서 일하면 잊어버린다”고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같이 열심히 하자. 사랑한다”고 영상 편지를 남겼다. 송백경 또한 “우리 가족을 위해서 남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손봉석 기자 2025.03.23 18:55

    • ‘에펠탑>예수상>후지산’ 리디아 고가 ‘올림픽 메달 슬램’ 기념으로 오른쪽 팔에 새긴 특별한 문신

      스포츠종합

      ‘에펠탑>예수상>후지산’ 리디아 고가 ‘올림픽 메달 슬램’ 기념으로 오른쪽 팔에 새긴 특별한 문신

      리디아 고. AFP연합뉴스 리디아 고(27·뉴질랜드)가 자기 몸에 새긴 특별한 문신을 공개했다. 리디아 고는 22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홈페이지를 통해 오른쪽 팔에 넣은 ‘올림픽 금·은·동메달 획득 기념’ 문신을 소개했다. 리디아 고는 “올림픽 메달을 기념하는 타투를 새기고 싶었다”며 “과거 마음에 드는 타투를 해준 한국 타투이스트에게 연락한 뒤 세 도시를 상징하는 디자인을 제안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팔을 보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랜드마크인 예수상, 일본 도쿄의 상징인 후지산, 프랑스 파리의 대표 건축물인 에펠탑이 검은색 얇은 선으로 이어져 있다. LPGA 홈페이지 캡처 리디아 고는 “메달 색에 따라 크기에 차별을 뒀다”며 “실제로는 후지산이 가장 높지만 내 타투에서는 (금메달을 딴 파리의) 에펠탑을 가장 크게 그렸고 (은메달을 딴 리우의) 예수상을 두 번째로 크게 했다”고 소개했다. 한국계 뉴질랜드인인 리디아 고는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은메달,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고,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역대 최초 ‘올림픽 메달 슬램’을 달성했다. 그는 파리 올림픽 금메달로 LPGA 최연소 명예의 전당 가입 기록도 갈아치웠다. 자신의 업적을 자축하고 싶었던 리디아 고는 몸에 기념 타투를 새기며 환희의 순간을 남겼다. 그는 “소중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디아 고는 LPGA 투어 시즌 개막전인 힐튼 그랜드 배케이션스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6위에 오르는 등 올해도 변함없이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27일 싱가포르에서 시작하는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시즌 첫 승에 도전한다. 리디아 고. 로이터연합뉴스

      윤은용 기자 2025.02.23 21:22

    • 문신왕 폰세의 마지막 미션은 ‘99’

      야구

      문신왕 폰세의 마지막 미션은 ‘99’

      류현진 존경한다는 새 외인 “등번호 새기고 사인 받고파” 한화 코디 폰세가 일본에서 활약하며 새긴 문신을 보이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멜버른 | 심진용 기자 한화 새 외국인 투수 코디 폰세(31)는 ‘문신왕’이다. 왼팔과 왼쪽 가슴, 왼쪽 허벅지에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를 의미하는 문신을 각각 새겼다. 오른팔은 일본에서 3년간 뛰면서 새긴 문신으로 가득하다. 일본 시절 별명을 따서 ‘곰 웅’자를 손목에 새겼고, 그 위에는 두 자루 칼을 든 미야모토 무사시 문신을 새겼다. 지금은 오른팔 남는 자리에 새길 새 문신을 생각 중이다. 여권 도장 찍듯 머물렀던 나라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폰세가 정말로 새기고 싶은 문신은 따로 있다. 숫자 99. 류현진의 등 번호다. 빈자리가 크게 남은 등판에다가 99를 새기고, 그 아래 류현진의 사인을 받고 싶다고 폰세는 크게 웃었다. KBO는 물론 빅리그를 주름잡은 위대한 팀 동료 투수에 대한 존경심이 그만큼 크다. 폰세는 “다저스, 토론토 때 류현진 유니폼을 이미 다 사놨다. 2019년 평균자책 2.32로 1등을 하지 않았나. 정말 대단한 투수”라고 했다. 실력뿐만 아니다. 낯선 땅에서 외국인으로 야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 자신이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류현진의 커리어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폰세는 “나 역시 지금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뛰고 있지만, 류현진 선수도 미국에서 뛸 때는 외국인이지 않았나. 언어 문제를 시작해서 여러 힘든 일이 있었을 텐데 그런 걸 다 이겨냈다는 점이 특히 대단하다”고 했다. 호주 멜버른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폰세는 9일 류현진과 나란히 서서 공을 던졌다. 3번째 불펜 피칭을 소화했다. 전체적으로 몸 상태가 좋았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트랙맨 데이터를 살폈다. 양상문 투수코치에게 데이터를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꼼꼼한 성격이 마운드만 내려오면 정반대가 된다.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취재진 질문에 한참 답을 하더니 “이제부터 내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며 오히려 자기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전례 드문 유형이다. 폰세는 일본에서 3년간 활약을 했다. 다른 외국인 투수들보다 아시아 야구에 대한 이해가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한국과 KBO리그에 궁금한 게 많다. 취재진을 향해 “한국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점이 뭐냐”고 물었다. 술 먹고 운전하면 큰일 난다고 했더니 “아내가 운전할 거라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크게 웃었다. 앞으로 뛰게 될 대전이 어떤 곳인지도 궁금해했다. ‘빵집이 유명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도 만족한 곳’이라고 했더니 기대감을 표시했다. 한국에서 기타를 배우고 싶다며 대전에서 기타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커피가 맛있는 곳은 어디인지 폰세의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대전 인근에 미군 기지가 있느냐는 질문은 의외였다. 폰세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싶다. 근처에 기지가 있다면 야구장 티켓이라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폰세는 처음 만난 팀 동료들을 향해서도 쉴 새 없이 농담을 던진다. 워낙 장난치는 걸 좋아하고,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한국말도 이미 많이 배웠다. 제일 빨리 배운 말이 뭐냐는 말에는 ‘기사로 내보내기 부적절하다’며 웃었다. 폰세는 일본프로야구(NPB)에서 3년간 활약하며 실력을 검증받은 선수다. 제 기량만 발휘한다면 KBO리그에서도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평가다. 최근 많은 외국인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컴백을 노리고 한국을 찾는 게 사실이다. 폰세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잘해서 메이저리그로 가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게 먼저다. 가을 야구를 하고 싶고, 우승까지 바라보는 그런 팀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폰세는 올 시즌 한화의 개막전 선발 후보다. 폰세가 다짐대로 자기 실력을 발휘해준다면 5강 진출이라는 한화의 목표는 한층 더 현실에 가까워진다.

      멜버른 | 심진용 기자 2025.02.10 07:10

    • ‘문신왕’ 폰세 “가장 새기고 싶은 문신 99, 류현진 정말 대단해”

      야구

      문신왕’ 폰세 “가장 새기고 싶은 문신 99, 류현진 정말 대단해”

      한화 코디 폰세가 9일 호주 멜버른 볼파크에서 불펜 피칭을 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한화 코디 폰세. 한화 이글스 제공 한화 새 외국인 투수 코디 폰세(31)는 ‘문신왕’이다. 왼팔과 왼쪽 가슴, 왼쪽 허벅지에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를 의미하는 문신을 각각 새겼다. 오른팔은 일본에서 3년간 뛰면서 새긴 문신으로 가득하다. 일본 시절 별명을 따서 ‘곰 웅’자를 손목에 새겼고, 그 위에는 두 자루 칼을 든 미야모토 무사시 문신을 새겼다. 지금은 오른팔 남는 자리에 새길 새 문신을 생각 중이다. 여권 도장 찍듯 머물렀던 나라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폰세가 정말로 새기고 싶은 문신은 따로 있다. 숫자 99. 류현진의 등 번호다. 빈자리가 크게 남은 등판에다가 99를 새기고, 그 아래 류현진의 사인을 받고 싶다고 폰세는 크게 웃었다. KBO는 물론 빅리그를 주름잡은 위대한 팀 동료 투수에 대한 존경심이 그만큼 크다. 코디 폰세가 일본에서 활약하며 새긴 문신을 보이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폰세는 “다저스, 토론토 때 류현진 유니폼을 이미 다 사놨다. 2019년 평균자책 2.32로 1등을 하지 않았나. 정말 대단한 투수”라고 했다. 실력뿐만 아니다. 낯선 땅에서 외국인으로 야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 자신이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류현진의 커리어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폰세는 “나 역시 지금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뛰고 있지만, 류현진 선수도 미국에서 뛸 때는 외국인이지 않았나. 언어 문제를 시작해서 여러 힘든 일이 있었을 텐데 그런 걸 다 이겨냈다는 점이 특히 대단하다”고 했다. 호주 멜버른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폰세는 9일 류현진과 나란히 서서 공을 던졌다. 3번째 불펜 피칭을 소화했다. 전체적으로 몸 상태가 좋았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트랙맨 데이터를 살폈다. 양상문 투수코치에게 데이터를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꼼꼼한 성격이 마운드만 내려오면 정반대가 된다.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취재진 질문에 한참 답을 하더니 “이제부터 내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며 오히려 자기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전례 드문 유형이다. 폰세는 일본에서 3년간 활약을 했다. 다른 외국인 투수들보다 아시아 야구에 대한 이해가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한국과 KBO리그에 궁금한 게 많다. 취재진을 향해 “한국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점이 뭐냐”고 물었다. 술 먹고 운전하면 큰일 난다고 했더니 “아내가 운전할 거라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크게 웃었다. 앞으로 뛰게 될 대전이 어떤 곳인지도 궁금해했다. ‘빵집이 유명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도 만족한 곳’이라고 했더니 기대감을 표시했다. 한국에서 기타를 배우고 싶다며 대전에서 기타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커피가 맛있는 곳은 어디인지 폰세의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대전 인근에 미군 기지가 있느냐는 질문은 의외였다. 폰세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싶다. 근처에 기지가 있다면 야구장 티켓이라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폰세는 처음 만난 팀 동료들을 향해서도 쉴 새 없이 농담을 던진다. 워낙 장난치는 걸 좋아하고,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한국말도 이미 많이 배웠다. 제일 빨리 배운 말이 뭐냐는 말에는 ‘기사로 내보내기 부적절하다’며 웃었다. 폰세는 일본프로야구(NPB)에서 3년간 활약하며 실력을 검증받은 선수다. 제 기량만 발휘한다면 KBO리그에서도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평가다. 최근 많은 외국인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컴백을 노리고 한국을 찾는 게 사실이다. 폰세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잘해서 메이저리그로 가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게 먼저다. 가을 야구를 하고 싶고, 우승까지 바라보는 그런 팀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폰세는 올 시즌 한화의 개막전 선발 후보다. 폰세가 다짐대로 자기 실력을 발휘해준다면 5강 진출이라는 한화의 목표는 한층 더 현실에 가까워진다. 한화 코디 폰세가 9일 호주 멜버른 볼파크에서 활짝 웃고 있다.

      멜버른 | 심진용 기자 2025.02.09 13:29

  • 주간경향

    • [뽕의 계보](4) “제대로 팔아보자” 문신기술자서 텔레그램 판매 개척자로

      사회 뽕의 계보

      [뽕의 계보](4) “제대로 팔아보자” 문신기술자서 텔레그램 판매 개척자로

      문신 작업 ‘휠’ 꽂혀 뽕 빠져…‘로뽕이’ 브랜드로 판매 혁신 거액 벌어 호화생활하다 이젠 개털…“모든 게 일장춘몽” 회한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 마약이 대표적이다. 신고할 피해자가 없는 범죄 마약은 조용히 사회 곳곳에 퍼져갔다. 남녀노소·사농공상 가리지 않고 마약 투약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저연령화’가 두드러진다. 가장 보편적인 마약류가 메스암페타민, 즉 히로뽕이다. 온갖 종류의 마약이 우후죽순 퍼져나간 데는 히로뽕이 60여 년 전부터 한국 땅에 중독의 토양을 만들어 놓은 영향이 컸다. 히로뽕 유통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만연한 마약 유통의 문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이유다. 주간경향에서 히로뽕의 역사와 현재 즉 대한민국 ‘뽕의 계보’를 5회에 걸쳐 되짚는다. 직업물 웹소설 및 실화 기획사 팩트스토리와 공동기획했다. <편집자 주> 일러스트 / 김상민기자 L은 히로뽕 업계의 혁신가였다. 그는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로뽕이’나 ‘Mr. 메스’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히로뽕을 제대로 팔아보자며 그가 만든 브랜드다. 이제는 보편화한 텔레그램 마약 거래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L, 즉 ‘로뽕이’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는 2018년 무렵 텔레그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히로뽕 업계는 다시 한번 변하고 있었다. 익명성이 강화된 메신저 텔레그램이 보편화하고, 가상화폐와 인터넷 세계의 암시장으로 불리는 다크웹이 퍼져나갔다. L은 이 변화에 올라타 이름을 알렸다. 문신기술자가 만난 히로뽕 2023년 8월 L을 처음 만났다. 출소한 지 한 달쯤 지나 그런지 눈빛이 강렬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지만 체격은 단단해 보였다. 1980년생이라고 소개했는데 동안이라 더 어려 보였다. L과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텔레그램 세계의 마약왕이라 불리는 그도 평범한 투약자 시절이 있었다. 교도소를 오가며 전통의 히로뽕 거물들과 안면을 쌓아가기 전이었다. 그의 원래 직업은 타투이스트였다. 과거 판결문에 적힌 L의 직업명은 문신업자, 문신기술자, 스킨아티스트 등이었다. L은 ‘문신’이 ‘타투’가 되는 것만큼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가 히로뽕의 세계에 처음 발 들인 건 고교 졸업반 시절이다. 지역의 농업고 원예과 학생이었던 그는 학업에 별 흥미가 없었다. 취업 준비를 할 때 길에서 우연히 접한 ‘문신 광고’ 전단이 삶의 행로를 바꿨다. 미군기지가 있는 경기도 송탄이나 동두천에서 활동하던 기술자가 L이 사는 지역에 가게를 열었다. 지울 수 없는 그림을 몸에 새기는 일에 그는 빠르게 매료됐다. 그때는 ‘문신장이’라 불렸다. 타투라는 용어는 생소했다. “그때 문신하러 오는 주 고객이 건달이나 화류계 여성들이었죠. 히로뽕도 그들에게서 접했고요.” L은 호기심에 접한 히로뽕에 빠르게 매료됐다. 각성제인 히로뽕은 투약자들의 표현대로 “휠(feel)”을 잡는 게 중요하다. 투약 후에 각성 상태가 되면 한 가지 일이나 감정, 느낌에 사로잡혀 말 그대로 ‘꽂혀’ 버리는데, 이때 어떤 방향으로 갈지 잡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히로뽕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다. 투약하면 한 방향으로만 꽂혀 버린다고 해서 ‘방향 향(向)’ 자를 쓰는 것 아니겠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L은 문신기술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문신하러 온 고객들을 통해 히로뽕을 배웠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연합뉴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마약을 투약한 이들이 몽롱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자주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히로뽕 투약자들은 오히려 정신이 매우 또렷하고 흥분된 각성 상태에 빠진다고 말한다.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휠’이 꽂힌 일에만 집중한다. 보통 투약자들은 성적인 방향으로 ‘휠’을 잡는다. 하지만 L은 먼저 문신에 꽂혔다. 히로뽕을 투약하고 ‘휠’이 잡히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문신 작업을 했다. 그렇게 히로뽕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히로뽕 자체는 담배나 아편 같은 신체적 중독성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투약 후 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대량 분비된다. 투약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성이 생겨 투약 용량을 늘리지 않으면 이전과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없다. 결국 정신적 의존 상태에 빠져 중독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된다. L은 타투 고객들에게 산 히로뽕을 친구들에게 전해주면서 자연스럽게 판매와 알선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알선 등의 혐의로 몇 차례 징역을 살았고, 교도소에서 만난 히로뽕 인맥은 계속 넓어졌다. 그는 내심 억울했다. 자신이 판매업자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지인에게 히로뽕을 구해다 줬을 뿐이라는 것이다. 히로뽕을 판매하는 일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알선만 해도 판매업자나 마찬가지로 처벌받고 징역을 살았다. L은 이왕 넘은 선을 훌쩍 뛰어 더 넘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처벌받는 거, 제대로 판매해보자.” 망설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히로뽕 업계에 뛰어들기 전 L은 마지막 도전을 했다. 사회와 교도소를 오가는 히로뽕 비즈니스의 굴레를 벗어나 합법적으로 살아보려는 시도였다. 2017년 1월 출소한 후 거제 조선소로 향했다. 대형 시추선 건조 현장이었다. 24시간 동안 제대로 쉬지 않고 일하는 ‘4공수’짜리 일이 생기면 좋았다. L은 조근과 야근을 이어갔다. 한 달에 450만원을 벌어 나름 풍족하게 살았다. 그해 5월 조선소에서 대형 크레인이 붕괴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흡연실 옆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사고 시간 전 그 역시 그곳에 있었고, 다른 현장에 투입되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이런 경험에도 그는 조선소를 떠나지 않았다. 합법적인 삶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이 끊겼다. 불황이 시작된 탓인지 선박 수주가 줄면서 조선소에 일거리가 사라졌다. 한 달 근무일이 3~4일에 그쳤다. 생활비도 구하지 못했다. ‘하늘의 계시인가?’ 그는 고민 끝에 히로뽕 판매를 하기로 했다. 텔레그램 접수하다 마약류를 지칭하는 은어로 찾아본 구글 검색 결과. 최상단 노출 결과부터 마약 거래를 유도하는 게시글이다. 실제 게시물이 삭제됐더라도 캐시 기능을 악용, 제목에 거래가 가능한 텔레그램 아이디를 노출하는 식으로 구글 검색이 이용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 L은 장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 히로뽕도 끊었다. 히로뽕 투약자 중 단약에 성공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이라고 한다. 그 1명은 대부분 판매업자라는 게 이 업계의 통설이다. 판매 중에 붙잡혀 투약 사실이 나오면 변명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로뽕보다 돈을 향한 갈망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히로뽕 비즈니스의 혁신가라고 불린 건 이 시기에 그가 시도한 방식 때문이다. 그는 당시 시작된 텔레그램을 통한 히로뽕 판매를 체계화한 인물이었다. L은 교도소 수감 중 인터넷을 통한 히로뽕 거래를 배웠다. 그러다 텔레그램의 존재를 알게 됐다. 텔레그램은 익명성이 보장된 메신저 프로그램이다. 텔레그램을 통해 히로뽕 구매 희망자와 대화하고, 비대면으로 돈과 물건을 주고받는다면 수사기관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히로뽕 판매 방식인데 당시에는 막 시작된 신종 수법이었다. L은 히로뽕 세계의 거물들과도 잘 알고 지냈기에 저렴한 가격에 히로뽕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텔레그램을 통해 히로뽕을 판매하는 이중 상당수는 안정적인 공급선이 없어 돈만 받고 사라지는 사기꾼으로 전락하거나 판매기간이 짧았다. L에겐 그런 문제가 없었다. 수요는 걱정할 것 없었다. 2018년에만 한국에서 향정신성 의약품 투약자로 적발된 이가 5108명이었다. 검찰은 마약 사건의 드러나지 않은 암수 범죄 비율을 적발자의 29배, 약 15만 명으로 봤다. L이 보기에도 수요는 넘쳤다. 문제는 홍보였다. 텔레그램으로 마약을 판다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선 자신이 히로뽕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부터 어렵다. L은 타투이스트로 일할 때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해 홍보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여러 홈페이지에 히로뽕을 팔고 있다며 광고글을 써 올렸지만 제대로 노출되지 않았다. 검색 사이트에서는 몇 페이지나 넘어간 뒤에야 자신이 쓴 글이 발견됐다. 연구 끝에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각종 인기 키워드를 조합하고, 각종 조작 프로그램(매크로)으로 방문자를 유인했다. 구매자들이 히로뽕을 뜻하는 은어 ‘아이스’, ‘빙두’ 같은 단어를 구글 등 검색 사이트에 치면 첫 페이지 상단에 노출되게 하는 것이다. 또 사이트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히로뽕 소비자들이 어떤 검색어를 써서 자신의 사이트에 방문하는지 분석했다. 이렇게 사이트를 알린 뒤에는 단골을 만들어야 한다. 히로뽕 판매도 다른 장사처럼 신뢰가 중요하다. 텔레그램으로 히로뽕을 사는 것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대화 몇 번 만에 거액을 건네는 일이다. 히로뽕을 안전하게 손에 쥘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만 받고 히로뽕을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래서 L은 우선 첫 구매에 만족감을 주기로 했다. 구매 문의가 오면 빠르게 대응하고, 입금이 확인되면 재빨리 히로뽕을 찾을 위치를 알려주고, ‘정량·정가 판매’, ‘정오부터 오전 7시까지 정시 영업’ 등 나름의 장사 기준을 지키며 단골을 모았다. 단골은 물론 히로뽕을 구걸하는 악성 고객에게도 좋은 리뷰를 써달라 부탁한 뒤 서비스를 줬다. 입소문을 노렸다. 단골을 비대면 거래에 필수적인 ‘드롭퍼’로 고용하기도 했다. 히로뽕을 특정 장소에 숨겨두는 역할이다. 돈을 입금하면 이 장소를 나타내는 ‘좌표’를 고객에게 전달한다.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다. 이런 드롭퍼 중 상당수는 20대 청년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욕망으로 히로뽕 비즈니스에 뛰어든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큰돈은 벌지 못하고 부속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게 일반적이다. L은 결제 방식도 고민했다. 차명 계좌를 통한 무통장 입금뿐 아니라 상품권 대리구매, 가상화폐 거래 등 다양한 방식을 연구했다. 밖으로 나가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뽑고 차명 계좌에 돈을 입금하는 것은 번거롭고 귀찮으면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간단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단골이 늘어날 것이라고 계산했다. L도 과거의 인물이 됐다. 최근 히로뽕 판매업자들은 가상화폐 거래가 완전히 정착했다고 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장춘몽 쉽고 빠르고 안전한 거래에 만족한 히로뽕 투약자들은 L의 브랜드인 로뽕이를 계속 찾았다. 2018년 인터넷에서 히로뽕을 사기 위해 검색하면 늘 그의 브랜드인 ‘로뽕이’와 ‘Mr. 메스’가 나왔다. 그보다 전에 시작한 히로뽕 판매업자들도 있었지만, 그의 빠른 성장에 밀려 사라졌다. 그보다 전에 활동했던 ‘굿필777’이란 아이디를 썼던 판매업자는 L과 텔레그램 채팅창으로 욕설을 하며 다툰 일도 있다. 경쟁업자와의 기싸움이다.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L은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수사기관을 피하려고 거처를 수시로 옮기고 여러 대의 차명 통신장비를 갖췄다. 히로뽕 판매는 단 한 번의 체포로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위험 관리가 히로뽕 판매업자들에겐 중요했다. L의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텔레그램으로 뛰어들었다. 히로뽕 거래는 이전까진 소수의 총판을 거쳐 도매업자와 소매업자에게 차례로 전달되는 형태였는데, 텔레그램이 히로뽕 거래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다수의 판매업자가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고객과 바로 만나는 ‘오픈 마켓’의 형태를 띠게 됐다. 절대로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L은 약 1년 만에 검거됐다. 사소한 실수로 자신을 주시하던 수사기관에 위치가 노출됐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완벽하게 피한다고 생각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L의 텔레그램 거래는 일반 투약자를 상대로 한 소매거래였고, 비대면이라 거래 횟수가 많았다. 이런 내역이 압수된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남았다. L은 체포된 뒤 자신의 판매 기법을 밝히고 수사에 협조했다. 2019년 징역 5년에 벌금 2000만원, 추징 2억2262만원을 선고받았다. 선처받은 형량이었다. 과거의 혁신가였던 L이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텔레그램을 통한 히로뽕 거래는 보편화했다. L은 뽕의 계보에서 독특한 인물이다. 히로뽕 유통업자들을 일본 시장을 상대로 제조·밀수한 1세대, 국내파 투약자로 한국 시장에 유통한 2세대, 텔레그램 비대면 거래에 나선 3세대로 나눌 수 있다. L은 2세대와 3세대 사이에 걸친 2.5세대인 셈이다. “요즘 애들은 또 달라요. 이제 무통장 입금은 거의 안 쓰고 가상화폐 거래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해요. 과거의 홍보 방식도 잘 안 쓰죠. 고객 응대하는 텔레그램 채널도 휘황찬란하게 꾸며놓고요. 투약자도 아니면서 돈 벌어보겠다고 뛰어든 애들도 있어요. 이전과는 전혀 달라요.” 텔레그램을 통해 탄생한 신흥 히로뽕 거물이었던 L. 매일 거액의 현금을 손에 쥐면서 짧지만 호화롭게 생활했다고 말했다. 언제 붙잡힐지 몰라 모두 써버리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국 철창신세를 지고 나와 이제는 다시 불법의 굴레를 벗어나 살기 위해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L은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했다. 히로뽕을 팔아 번 돈은 결국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히로뽕이 쾌락과 돈을 쥐게 해줄 것이란 것은 환상 같은 것이었다. “이제는 개털이 됐어요. 일장춘몽이었죠.” L은 말했다. 인생과 직업은 스토리로 가득하다. 팩트스토리는 직업 소재 및 범죄스릴러 웹소설웹툰, 실화 논픽션 기획사입니다. 드라마 원작 논픽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원작사이며 웹소설과 논픽션 등 16개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전현진 기자 2024.04.29 06:00

    • [내 인생의 노래]비틀스의 -내 마음의 문신으로 남다

      문화/과학 내 인생의 노래

      [내 인생의 노래]비틀스의 -내 마음의 문신으로 남다

      어릴 적 자주 가던 음반가게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게 안 풍경이 어렴풋이 떠오를 정도로 이제는 멀리 떠나 온 음반가게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대중음악계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그 흐름을 오롯이 새기며 따라갔다. 용돈이 남아 여유가 생기면 난 바로 그 음반가게로 달려갔다. 당시엔 최신 곡들을 테이프에 따로 녹음해 놓은 믹스 테이프를 음반가게들에서 판매하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한 달에 두세 번은 그 믹스 테이프를 사러 음반가게를 찾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하고 H.O.T와 핑클이 데뷔를 하며 또 하나의 새로운 흐름이 다가왔을 때, 나는 대중가요에 재미를 잃고 있었다.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음반가게에 가서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문득 그 전에는 눈길도 안 주었던 팝 앨범 코너에 시선이 갔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려던 나는 영어로만 가득한 이 테이프들 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찾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외국 뮤지션의 이름을 떠올려봤다. The Beatles. 그렇다. 그 나이에도 이름을 기억할 만큼 그들은 정말 유명했었다. 팝 앨범 코너에서 비틀스를 찾았지만, 앨범이 너무 많았다. 다시 난관이다. 어떤 앨범을 사야 할까. 당시로서 나는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다는 개념을 잘 모를 나이였다. 내가 기억하는 비틀스의 노래, (Yesterday). 이 잡듯 오로지 예스터데이라는 단어만 찾은 지 10분쯤 되었을까. 네 사람이 하얀 배경에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커버가 있는 비틀스의 5번째 정규 앨범, (Help!). 부푼 마음을 진정하고 워크맨에 테이프를 꽂아 넣고 이어폰을 끼었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었다. 아니, 새로운 우주와의 만남이었다. 는 트랙 리스트에서 꽤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첫 곡부터 들어보기로 한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불현듯 외치는 소리 헬프에 나의 우주가 멈췄다. 2분10여초밖에 안 되는 노래였지만, 노래를 듣던 2분은 순간이었다. 한국의 대중가요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멜로디, 단순하지만 꽉 찬 사운드와 코러스, 그리고 낯선 영어 발음이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그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단순해도 충분히 신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낯선 영어 발음이 뭔가를 상상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이 앨범을 끝까지 들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비틀스가 그렇게 유명한 밴드인지 몰랐다. 중학생이 되고, 학교에는 미국에서 1년을 지내고 온 한 살 많은 동급생이 있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열성팬이었던 그는 음악 마니아였다. 앨범을 통해 팝음악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던 나는 이 친구를 통해서 90년대 영국과 미국의 수많은 밴드들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차츰 저렇게 나도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영국의 밴드들이 나에게는 롤 모델이 되어갔다. 나에게는 그들이 영웅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뿌리, 현대 대중음악의 기준이 되는 밴드가 비틀스, 그들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60년대 활동한 그들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음악작업을 하다 막히면 언제나 다시 찾아 듣는다. 가끔은 이들의 음악에 모든 답이 숨어 있다 싶을 때도 있다. 아직까지도 나의 마음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련하게 남아있는 곡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도, 도 아니다. 언제나 다. Help I need somebody Help not just anybody Help you know I need someone help When I was younger so much younger than today I never needed I never needed anybody’s help in any way Now But now these days are gone I’m not so self assured I know I’ve found Now I find I’ve changed my mind and opened up the doors

      2017.11.21 10:59

    • [신간]무신과 문신外

      문화/과학 신간

      [신간]무신과 문신

      무신과 문신 에드워드 슐츠 지음·김범 옮김·글항아리·1만8000원 고려 중기 무신정권을 연구한 책이다. 1170년부터 한 세기에 걸친 무신정권의 수립과정에 대한 해석이다. 고려왕조의 관습과 제도는 문신이 통치하며 왕권이 강화되고 유교 규범이 지배한 조선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보여준다. 박물관의 탄생 도미니크 풀로 지음·김한결 옮김·1만5000원·돌베개 지은이는 박물관과 문화유산 관련 연구자다. 박물관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지금 어디에 와 있고 그 변화를 이끄는 힘은 무엇으로 시작되었는지, 나아가 오늘날 박물관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 로완 무어 지음·이재영 옮김·계단·2만원 욕망과 감정은 집을 짓게 만들고 집은 반대로 그런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이 책은 섹스와 돈, 희망과 권력, 진실과 상징, 가정과 생활이라는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이 집을 비롯한 건축물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반영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왜 일본군 ‘위안부’를 공격하는가 전쟁과 여성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연구행동센터 엮음·김경원 외 옮김·휴머니스트·2만원 고노담화를 비롯해 강제연행, 국민기금 등 23년간 국제사회의 화두가 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본질적인 논쟁의 핵심을 다룬 책이다.

      박송이 기자 2014.11.24 15:32

    • 문화/과학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조폭 문신이 떠오르는 ‘바르게 살자’

      전국의 거리를 뒤덮을 기세로 세워지고 있는 저 거대한 표지석들, 우리 사회의 퇴행성에 전율을 느낀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씨가 맡는 현대 도시의 이미지 읽기는 여행 중 눈에 들어오는 강한 이미지를 채집하고 독해해서 도시와 문화, 일상, 삶의 단면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전해드릴 것입니다. 자유로로 진입하는 장항IC 길목에 서 있는 ‘바르게 살자’ 그것은 관악산 입구에도 있고, 수락산 입구에도 있다. 저 남쪽 바다 서귀포 쇠소깍해변 소공원에도 있고, 북쪽의 고성군 송지호 철새관망타워 대로변에도 있다. 없는 곳이 없다. 산자수명하여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서 있고, 교통의 중심이라 차륜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길목마다 기립해 있다. 낙향처사의 안빈낙도가 기품 있게 펼쳐져 있다는 담양군 제월리의 그 유명한 면앙정 앞에도 있고, 산세 그윽하여 선풍이 드높다는 해남군 두륜산 입구에도 있으며, 콩밭 매는 아낙네가 고개 한 번 돌리면 볼 수 있는 청양군 칠갑산의 휴게소 꼭대기에도 있다. 도심은 말할 것도 없다. 서대문구 신촌로터리에도 있고,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도 있고, 부산역 지하철 10번 출구에도 있고, 부산진역 앞에도 있다. 저 경북 울릉군의 도동리·서면·북면마다 서 있고, 반대편 전남 신안군으로 넘어가서 도초도·자은도·신의도·임자도·안좌도에도 하나씩 기립하고 있으니 이러한 기호지세라면 장차 통일이 되어 개성 너머 평양이요, 금강산 너머 원산 지나 그 멀고먼 함경북도 산골마을 삼수 갑산까지 이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온 산하를 뒤덮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름 아닌, ‘바르게 살자’. 울릉·제주도까지… 전국 600개 넘어 인터넷 사진 전문 사이트 ‘레이소다’가 있다. 거기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 아이디 ‘DLKN’을 쓰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이 직접 확인하여 지난 7월 25일자로 게시한 바에 따르면 이 ‘바르게 살자’ 조형물은 전국적으로 605개 정도 있다고 한다. 내가 사는 일산에서 자유로로 나가는 길목 한복판에도 그것은 서 있다. 나는 아침 저녁으로 그것을 본다. 시대착오적인 조형물이지만 사회의 퇴행현상이 뚜렷해질수록 그 조형물의 당대성에 전율을 느낀다. ‘바르게 살자’는 조형물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가 세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관할 지자체로부터 도로점용 허가를 얻어야 한다. 이 단체가 구청이나 읍·면·동보다는 훨씬 상급기관인 안전행정부의 협의기관인 데다가 회원들 대부분이 지역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관계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초 지자체는 점용 허가를 내준다. 물론 명분이 없지는 않다. 그 조형물이 ‘공공성’과 ‘계도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공공성과 계도성이란 무엇인가. 거리는 공유물이며 공공재다. 특정 기관이나 단체나 기업이나 개인에 앞세우는 이미지나 메시지가 압도하는 것은 공공성이 아니다. 지난 7월 10일, 아마도 가장 최근에 세워진 조형물인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의 ‘바르게 살자’는 높이 2.4m, 가로 2.2m, 세로 68cm 크기다. 우람하고 장대하고 튼튼한, 묵시록적인 자연 재앙이 아니고서는 무너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화강암이다. 전국 대부분의 조형물이 이런 규모다. 서기 3000년쯤에도 끄떡없을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문화유산이라도 될까. 하지만 지금은 공공재인 거리와 공원을 압도하는 위압적인 조형물이요, 그 형상 자체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돌덩어리다. 이런 것을 공공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공공성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그것은 일시적으로 한 시대를 살게 된 사람들끼리 쟁론하고 토론하면서 형성해가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계도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발달한 현대 시민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계도하는가. 국가가? 지자체가? 특정 단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시 공간에 대해 주목할 만한 글을 써온 상지대 홍성태 교수는 이미 수 년 전에 “경관을 망치는 흉물이며 시민을 계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유치하고 시대착오적인 조형물”이라고 말했다. 흡사 ‘차카게 살자’라고 새긴 조폭의 문신 같다. 설악산 일대의 풍경을 가로막고 있는 속초시 영랑호의 ‘바르게 살자’ 소시민들 위압하는 시대착오적 조형물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삶의 불안한 이면을 파헤쳐온 소설가 천운영의 단편 중에 ‘입김’이 있다. 소설에는 한 사내가 나온다. 성실하게 살았다. 그 조형물이 지시한 것처럼 바르게 살았다. 별명이 ‘바른생활맨’이라나. 그러나 세상은 바르게 사는 사람을 짓눌러버린다. 세상의 모든 허위의 약속어음을 믿었다가 인생 전체를 부도 맞은 이 사내는 낫을 들고 문제의 조형물을 깨부수려고 한다. 그게 될 일인가? 세상은 만만치 않고, 더욱이 그런 걸 세운 사람들이 건재하는 세상에서 낫 하나로 어떻게 해볼 수는 없다. 그리하여 파국으로 몰려간다. 소설의 한 대목을 보자. “근데 거기다 왜 그런 걸 세워놨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위압적으로 세워놓지 않아도, 바르게 살고 있잖아요. 하긴 바르게 살아봤자, 손해보는 세상인데, 손해보고 살자, 뭐 이런 뜻일까요?”(천운영, ‘입깁’에서) 이를테면 이런 뉴스 말이다.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여미숙)는 자신을 머슴처럼 부리는 상관의 횡포에 못견뎌 군복무 중 목숨을 끊은 이아무개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7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01년 입대한 이씨는 부대 참모장의 운전병으로 배치됐는데 이 참모장은 일과 외 시간에도 운전을 시키고 관사 청소, 빨래, 애견 돌보기, 잔심부름 등을 시켰다. 결국 운전병은 자살했다. 문제는 헌병대의 수사다. 헌병대는 “인터넷 게임을 하다 게임 아이템을 훔쳤고 이 때문에 처벌받을까 우려해 자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대원과 지인들의 진술이 모두 조작된 수사였다. 이런 판국에 산하 도처에 ‘바르게 살자’는 표지석은 1000개를 목표로 착착 세워지고 있는 중이다. 이성과 감각의 시계는 자연의 흐름마저 거슬러 20세기 중엽으로 거꾸로 돈다. 21세기 중엽을 살아가야 할 어린 학생들이 20세기 중엽의 군사훈련의 잔재에 휩쓸려 제 꿈의 한 자락도 만져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갔다. 무엇이 문제인가? 누군가는 안전시설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 점,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시설만 있으면 20세기 중엽의 군사 집체교육 같은 것을 열대여섯 살 아이들에게 시켜도 좋은가? 사고가 난 충남 태안군 안면도 일대에도 ‘바르게 살자’는 조형물이 네 군데나 기립해 있다. 우리는 아직 근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윤수

      2013.07.29 17:11

  • 레이디경향

    • [퇴근뉴스] 내 눈썹 문신, 이제 집에서 내 맘대로?

      화제 퇴근뉴스

      [퇴근뉴스] 내 눈썹 문신, 이제 집에서 내 맘대로?

      이제 매일 아침 눈썹을 새로 그리느라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로레알그룹 제공 ■ 메이크업 곰손들에게 희망을 365일 중 내 맘에 쏙 드는 눈썹을 그리는 날이 며칠이던가. 집에서 눈썹문신을 할 수 있는 기기가 탄생했다. 로레알그룹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3’에서 가정용 눈썹문신 디바이스 ‘로레알 브로우 매직’를 공개했다. 전문가 수준으로 눈썹 문신이 가능하다고 소개한 이 기기는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에게 가장 알맞은 눈썹 모양을 추천하고 단 몇 초 만에 자연스러운 문신을 완성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로레알그룹은 휴대용 로봇 메이크업 애플리케이터 ‘합타’(HAPTA)를 공개했다. 손과 팔의 움직임이 제한된 사람들도 안정적으로 화장할 수 있도록 한 기기다. 혼자가 아닌 반려견과 함께하는 여행을 소개하는 비짓제주의 혼저옵서개 ■ 반려견과 제주 가신다고요? 반려견과 함께 제주여행을 앞둔 여행객이라면 미리 살펴볼 만한 사이트가 열렸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는 반려동물과 함께 출입할 수 있는 제주도 관광지와 시설 200곳의 정보를 공개했다. 이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여행 ‘혼저옵서개’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해 9∼12월 도내 반려동물 동반 가능 시설을 조사한 결과다. 제주도 공식 관광정보 포털인 비짓제주 홈페이지의 ‘혼저옵서개’ 페이지에는 반려동물 동반 가능한 200곳(관광지 33, 식당·카페 99, 숙박 13, 동물전용 26, 오름·자연경관 29)의 영업시간·위치·연락처, 대·중·소형견 출입 여부, 시설 내 반려동물 출입 제한 정보, 구비시설, 반려동물 동반 시 펫티켓 제공 등 다양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반려동물동반_식당카페, #반려동물동반_숙소 및 지역별 태그를 통해 검색 가능하며 PDF로도 다운받을 수 있어 여행지에서 활용하기 좋다. 비욘드클로젯이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아이코닉존에서 팝업스토어를 연다. ■ 최대 90% 할인, 득템 기회 디자이너 고태용의 ‘비욘드클로젯(Beyond Closet)’ 팬이라면 반가운 소식. 비욘드 클로젯이 오는 8일과 9일 양일간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연다. 비욘드클로젯 2021, 2022 시즌 컬렉션 쇼에 올랐던 의상을 최대 90% 할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샘플 세일 외에 3·5·7·10만원 균일가 판매도 실시한다. 스웨트셔츠부터 가디건까지 아이템도 다양하다. 팝업스토어 구매 고객에게는 비욘드클로젯 2023 아트워크 달력도 증정한다. 팝업스토어 현장 방문 SNS 인증 이벤트에 참여한 고객과 비욘드클로젯 의류 또는 액세서리를 착용한 고객에게는 10% 현장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장회정 기자 2023.01.04 17:48

    • 화제

      문신을 예술로 끌어올린 국내최고 타투이스트 김건원의 항변

      “신은경씨 용 문신보고 예쁘다는 아줌마 때문에 너무 행복했죠”. ‘조폭마누라’의 신은경 등에 새겨있는 ‘용 문신’은 문신에 대한 선입견을 확실하게 깨준 작품이었다. 장장 40여 시간의 작업을 통해 태어난 용 문신을  그렸던 타투이스트 김건원. 그 후 국내 최고의 타투이스트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건원씨는 지난 6월 13일 긴급 체포됐다 ‘문신=조폭’이라는 선입견 깬 타투이스트 “문신도 이렇게 멋있는 것이 생기는구먼.” 야간작업을 하고 해장국을 먹으러 갔던 타투이스트 김건원씨(28, 본명 김유미)는, 식당 아주머니가 신문에 나온 신은경의 문신을 보며 했던 이야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2001년 최고의 히트작인 영화 ‘조폭마누라’의 신은경 등에는 지금까지 보기 힘든 예술적인 용 문신이 새겨졌다. 용 문신이 어깨에서 엉덩이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는 데만 8시간이 걸렸다. 김건원씨 역시 문신분장 작업이 처음이어서 많은 문제가 생겼다. 그림을 작게 그렸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할 때는 먼저 칠한 부분이 말라버려 살에서 떠버렸다. 문신의 최대 효과를 내야 했기에, 신은경은 먹지도, 자지도, 화장실까지도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장장 40여 시간의 작업 끝에 신은경의 용 문신은 세상에 나왔다. 영화 ‘조폭마누라’의 문신 작업은 만족스러웠어요. 처음에는 좀더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에 거절했는데,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문신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죠. ‘조폭마누라’ 이후 ‘달마야 놀자’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보스상륙작전’ ‘강타 뮤직비디오’ ‘정우성 뮤직비디오’ 등 여러 작품에서 작업을 하게 됐다. 이때부터 타투이스트 김건원의 이름 앞에는 ‘국내 최고’라는 단어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김건원씨는 ‘문신=조폭’이라는 공식을 깨고, 문신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가 문신을 처음 본 것은 음악에 빠져있던 고교 시절. 외국가수들의 음반 재킷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문신을 접했다. 이때는 타투가 그녀의 평생 업이 될 줄은 몰랐다. 그 후 성신여대 서양화과 97학번으로 입학했지만, 유학 준비로 1년만에 휴학을 했다. 유학을 가서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할 것인가를 궁리하던 중, 외국에 다녀온 친구들이 ‘타투(문신이라는 의미의 세계 공용어)’를 알려줬다. 타투가 외국에서는 대중화됐고,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하게 됐어요. 기지촌 주변에 문신을 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보니까, 너무 비위생적이고 제 눈에 차지 않는 거예요. 1997년 말, 아는 사람의 소개로 타투이스트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미국 사람을 만나서 배우게 됐죠.” 이때부터 기계의 조립과 분리, 타투의 원리, 바늘은 어떻게 만드는지, 기본적인 테크닉, 위생 등 타투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교육받았다. 하지만 선생이 예술적인 것보다 상업적인 것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고 그만두게 됐다. 타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느냐가 김건원씨의 큰 고민이었다. “저에게 ‘타투가 예술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해요. 저는 어떤 생각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예술이 될 수 있고, 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타투는 평생 몸에 따라다니잖아요. 단지 학비를 벌기 위해서 타투를 할 수 없었죠. 제 인생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타투에만 빠져들기 시작했다. 준비하고 있던 유학도 접고,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면서 타투이스트 김건원의 이름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선진적인 타투 기법을 배우기 위해 외국에도 나갔고, 타투의 대중화를 위해 ‘문신 설명회’나 전시회도 가졌다.  그녀를 찾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고, 그녀가 작업해준 타투는 호평을 받았다. 모든 것이 다 잘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6월 13일, 작업실에 들이닥친 경찰은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그녀를 긴급체포했다. 위생적이고 질 높은 타투 위해 법제정 필요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문신은 불법이다. 1992년 내려진 판례는 문신 역시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의사 외의 사람이 문신을 하는 것은 불법 의료행위에 속하므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문신은 음지에서 은밀히 이뤄질 수 밖에 없다. 김건원씨가 체포된 이유는, 병역기피 혐의로 구속된 이 모씨의 진술에 그녀가 2년 전 문신을 해줬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김건원씨는 검찰과 법원 구치소를 왔다갔다하며 열흘간 구속됐다. 병역기피를 도왔다는 혐의는 풀렸지만, 지난 8월 22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벌금 3백만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그녀는 타투 법제화를 위해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구치소에 있을 때 가장 빠른 시간과 가장 느린 시간을 함께 경험했어요. 새벽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눕지도 못하고 책만 읽는데 너무 지루했어요. 타투를 시작한 후에는 계속 타투 작업만 하고 지냈는데, 아무것도 못하니까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지금도 작업을 못하고 있는데, 실력이 줄어만 가는 것 같아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 지금은 계속 실력을 늘려가야 할 시기인데….” 현재 김건원씨의 안타까운 상황을 아는 예술인들이 예술인 김건원 구명 대책 위원회(cafe.daum. net/artistgun)를 꾸려 ‘타투 법제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건원씨는 문신 법제화는 ‘문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위생적으로 문신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운동’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9월 19일 홍대 Z클럽에서 신해철, 박재동, 최소리 등의 여러 예술인들이 김건원씨 후원행사를 열기도 했다. “1992년 판례에 의해 문신을 의료법으로 처리하고 있어요. 하지만 문신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만 있는데, 불법으로만 간주하니까 음지에서만 이뤄지게 되죠. 법제화가 되면 사람들도 위생적인 환경에서 질높은 문신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국가와 법정 소송을 하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다.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동료들의 외면도 힘들지만, 타투가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을 길이라며 위안한다. “저는 평생 타투를 할 거예요. 나이가 들어, 손이 떨려서 타투를 하지 못할 때까지 평생 할 거예요.”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정준욱

      2003.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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