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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방조제 준공, 새만금 어떻게 변했나

      사회

      [현장]방조제 준공, 새만금 어떻게 변했나

      ㆍ죽거나 없어질 생명체와 어민의 피해 줄일 해결책은 4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새만금 방조제 현장 준공식이 열렸다. 당일 KBS 저녁 뉴스에서 이 소식을 전하던 기자는 흥분한 말투로 새만금 방조제를 “바다에 놓인 만리장성”이라고 말했다. 실상 새만금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필자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새만금 갯벌로 향했다. 방조제 내측의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이 메말라가고 있다. 필자는 새만금 사업 초기부터 새만금 바다와 갯벌 일대를 찾아 ‘사실’들을 기록해 왔다. 안타까운 마음은 더욱 더했다.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를 완료한 이후 새만금을 찾을 때마다 희망의 소리보다 온갖 아픔의 소리와 비명이 들린다. 새만금 갯벌을 찾고 싶지 않지만 또다시 그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육상식물이 뒤덮은 ‘갯벌’ 며칠 뒤 찾은 김제 거전갯벌은 길가 입구부터 육상식물들이 점점 갯벌을 침입해 들어가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했다. 무서운 생명력이다. 염생 식물들 사이로 싹이 트고 있는 실망초와 노란색의 유채꽃들이 보인다. 수로에 갇힌 배는 여전히 꿈적 않고 썩어가고 있다. 파릇한 식물들이 자라면서 이곳이 갯벌이었는지를 알 수 없게 하고 있다. 소금기가 남아 있는 곳에서 자라난 칠면초 새싹.갯벌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메말라 버린 갯벌은 딱딱해져 차량이 드나들고 가루먼지가 날려 사막 같다. 어민은 보이지 않고 배만 군데군데 놓여 있다. 어느 배는 아예 물에 떠 있지 않고 메마른 땅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다. 바닷물을 많이 빼냄으로써 땅 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얼마나 바닷물을 빼냈는지 육지가 상당히 많이 드러나 있었다. 둥지를 튼 검은머리물떼새들의 경계음을 뒤로 하고 큰민가섬 정상에 오르니 얼마나 물을 빼냈는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바닷물을 빼낸 상태에서 배수갑문을 닫아 놓아 물기가 있는 지역이 없다. 갯벌로서의 기능을 하는 지역이 없어진 것이다. 새만금 배수갑문을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는 항상 배수갑문을 열어 놓고 자유롭게 해수 유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을 외측으로 빼낸 뒤 나흘 동안 수문을 닫아 놓고, 또 내측으로 바닷물을 들여보낸 뒤 나흘 동안 수문을 닫아 놓는다. 물가를 따라 늘어선 도요물떼새들도 먹이 사냥이 어려운지 부리만 갯벌을 연방 쑤셔댄다. 그러나 잡혀 올라오는 지렁이나 게는 거의 없다. 마침 한 마리가 먹이를 부리로 집어 올리자 주변에 있던 새들이 달려든다. 먹이를 뺏으려는 것이다. 먹이 찾기에 바빠야 할 시기에 아예 메마른 땅에 배를 대고 잠을 자는 새들도 있다. 월동지인 동남아와 호주·뉴질랜드에서 올라온 이 새들이 번식 장소인 시베리아, 알래스카, 중국 동북부 지역까지 가기 위해선 먹이를 충분히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굶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변산 해수욕장은 모래가 깎여 나가고 경사면의 요철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곳 새만금 지역의 섬과 메마른 모래톱에서 번식하는 검은머리물떼새들도 마찬가지로 먹이를 먹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어슬렁어슬렁 움직일 뿐 날아서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하얀 소금가루가 뒤덮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갯벌이 오랫동안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로 햇볕이 내리쬐자 이런 경관이 된 것이다. 마치 겨울철의 눈 내린 갯벌 모습 같다. 몇몇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풍경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한참을 걸어 가니 어민 몇 명이 배 주변에서 무엇인가 작업하고 있다. 그물에 강한 수압으로 바닷물을 연방 뿌리고 있다. 작업하는 어민에게 물으니 “오랫동안 일을 못하다가 숭어 좀 잡으려고 며칠 전에 그물을 넣었는데 죽뻘이 달라붙어 물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더욱이 새끼 해파리가 엄청나게 많아 물고기는 만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해파리 퇴치에 나서면 돈을 준다니 그것이나 해야겠다”고 한숨 섞인 쓴웃음만 지었다. 추억으로만 남은 새들 어디서 날아오는지 2000여 마리의 도요물떼새들이 날아와 멀리 물기가 남아 있는 갯벌에 내려앉는다. 덩치가 가장 큰 알락꼬리마도요와 큰뒷부리도요, 크기가 작은 민물도요·좀도요·왕눈물떼새·흰물떼새·개꿩들의 무리다. 작은 조개를 먹는 붉은어깨도요는 단지 100여 마리밖에 없다.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하기 전만 하더라도 전 세계 개체 수의 27%인 8만마리 정도가 찾아왔으나 겨우 이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혹시 좀도요 무리 속에 넓적부리도요 한 마리라도 있는지 망원경으로 뚫어지게 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다. 이 새는 전 세계 개체 수가 2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극심한 멸종위기종이다. 10년 전에 옥구염전 앞 갯벌에서 20마리와 2년 전에 이곳 거전갯벌에서 8마리를 본 기억이 이제는 추억 속에만 남았을 뿐이다. 여전히 새만금 갯벌을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기 위해 찾아온 도요물떼새들. 차를 돌려 어민이 가장 많이 사는 부안 계화도 포구로 이동했다. 어촌 풍경이 적막하다. 인기척은 별로 없고 한 노부부가 그물 손질에 바쁘다. “요즘 어업이 어떻냐”고 물었다. 말없이 손놀림에 바쁘다. 과거에는 이렇게 자주 그물 손질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예전에 어떤 어민으로부터 그물에 자꾸 물이끼가 끼고 작은 조개가 달라붙어 그물을 사용할 수 없어 자주 교체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참 있다가 재차 묻자 “형편없는 것이 말할 것도 없다”고 답한다. “다른 할 일도 없고 해서 일당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바지락이라도 잡는다”면서 “조개 잡히는 장소도 한정돼 있어 많은 어민이 달려들어 잡다 보니 이제는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한때 새만금 갯벌은 조개만 따져도 전국 생산량의 최대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잡혔다. 더욱이 수입이 많은 백합은 거의 잡히지 않는다. 바지락만 잡히고 있을 뿐이다. 시화호에서도 방조제를 막은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새만금 지역의 어민들도 바지락 잡이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 완료 후 죽은 넓적부리도요. 이 새는 멸종위기종 1급이다. 어선에 오르자 한 어민이 조개 선별기를 수선하고 있다. 죽은 조개껍질이 너무 많이 올라와 선별기에서 1차로 선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도매상에서 이르자 아낙 5명이 낮은 의자에 걸터앉아 바지락 선별에 바쁘다. 도매상 사장의 말이다. “예전엔 배에서 조개를 가져오자마자 다른 곳으로 곧바로 팔아 넘겼는데 죽은 조개가 있어 일일이 선별해야 한다.” 그는 “죽어 썩은 조개 하나라도 섞여 들어가면 바지락 국물을 내기 위해 끓이다가 전체 국물을 먹을 수 없게 된다”면서 “신경 써서 하지 않으면 손해가 막심하다”고 덧붙였다. 선별 일을 하는 아낙들은 이전에 모두 직접 조개를 잡던 맨손 어업인이었다. 갯벌에 조개가 거의 나오지 않자 한 시간에 5000원씩 받고 선별 일을 하고 있다. 예전엔 하루 4시간만 일해도 5만원에서 많으면 10만원을 벌던 때도 있었다. 이들은 “바지락도 많이 잡히지 않아 선별하는 일감조차 찾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 완료 후 죽어간 조개들.모두들 흥이 나지 않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선별에 여념이 없다. 어업이 잘될 때는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흥했다. 이제는 맨손 어업을 하는 어민은 거의 없다. 배를 이용해 펌프로 물을 쏘아 바지락을 잡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해수 유통을 하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잡지 해수유통도 안 한다면 이마저도 잡을 수 없다. 한 어민은 “올 가을부터 방수제 공사를 시작한다는데 걱정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인사하고 마을을 가로질러 계화도 살금갯벌에 다다랐다. 갯벌 초입에 만들어 놓은 포장 안에서 나이 지긋한 세 분이 앉아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글씨도 선명한 한국농어촌공사 모자를 쓰고 있다. 생계 위해 취로사업 나선 어민들 방조제 물막이 공사 완료 이후 어민들이 생계대책을 호소하자 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이 대책의 일환으로 주민들을 환경감시원이나 쓰레기 분리 수거, 제방 풀 제거 등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일당을 주고 있다. 주민으로서는 적은 돈이나마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일이다. 이 일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몇 달만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한다. 마을 규모에 따라 따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마을당 2, 3명만 일한다. 수입은 한 달에 겨우 80만원 정도다.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 변산 해수욕장에 다다랐다. 변산지역발전협의회 회장을 만났다. 그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 이후 해수욕장의 모래가 깎여 나가고 해수욕철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정도로 모래바닥에 움푹한 요철이 많이 생겼다”면서 “방조제 안쪽의 오염된 물이 방류될 때마다 해수욕장에 누런 거품 띠가 밀려와 행락객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라고 말했다. 어민들이 죽은 조개를 설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 여러 관계 기관에 진정을 내 보았지만 주민들에게 피해 사실을 입증하라고만 할 뿐 해결책은 전혀 없다. 그는 “전북도나 부안군에도 민원을 내 봤지만 새만금사업 추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 그런지 전혀 언급이 없다”고 설명했다.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완료 이후 위도, 곰소만, 서천 등 방조제 외측으로 광범위한 해양 환경 악화는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사업은 정부나 개발론자들이 말하듯 장밋빛 희망인가. 적어도 필자가 새만금 방조제 내외 축을 돌아보면서 확인한 것은 죽거나 사라질 뭇 생명과 어민공동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현명한 해법은 없을까. 필자는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용기<전북대 새만금연구회 전임연구원>juyki@hanmail.net

      2010.05.26 17:06

    • 사회

      [해외 사례]네덜란드 주디치 방조제의 교훈과 새만금의 도전

      네덜란드는 이름 자체가 ‘바다보다 낮은 땅’이라는 뜻이다. “신은 세상을 창조했으나 네덜란드인은 육지를 만들었다”는 말이 따라다니듯이 네덜란드의 국토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토의 27%가 해수면보다 낮다. 또 절반 이상이 해발 5m가 되지 않는다. 제일 높은 곳이라야 해발 321m에 불과하다. 많은 도시의 이름이 ‘담(-dam)’으로 끝나는 것도 강에 댐이나 제방을 쌓고 그 위에 거주지를 만들어 도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은 암스텔 강, 로테르담은 로테 강, 에담은 에이 강에 댐을 쌓아 만든 도시다. 네덜란드의 근대사를 간척의 역사로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제방을 쌓고 또 쌓아 국토를 늘리고 다듬은 결과 국토의 모양이 10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수도 암스테르담만 하더라도 100여 개 운하가 거미줄같이 연결되어 있고, 이를 잇는 다리도 1000여 개에 이른다. 인구 약 1600만 명, 면적 3만7000㎢인 네덜란드는 전 국토의 3분의 2가 바다였으며 산이 없기 때문에 1년 내내 북해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 일찍부터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풍차가 발달해 풍차의 나라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다. 국토의 물리적 여건으로만 보면 네덜란드는 자연이 주는 ‘가혹한 형벌’을 받은 땅이지만 인간의 잠재력은 가끔 자연의 힘에 맞서기도 한다. 길이 32㎞에 달하는 북해의 에이셀(IJseel) 만과 마르크 만을 막은 주디치(Zuiderzee) 방조제가 대표적인 예다. 주디치란 그들 말로 ‘남해’(북해의 남쪽에 위치)란 뜻을 가진 조이데르 해를 일컫는 말로서, 원래 담수호였던 이곳은 1787년 해일로 북쪽 입구가 휩쓸려가는 바람에 바다와 연결됐다. 그걸 1916년부터 1932년까지 전장 32㎞의 방조제를 쌓아 다시 담수호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그때 플레보란드 등 4개 간척지도 생겨났다. 지난 70년 동안 단계적으로 개발된 주디치 간척지는 규모가 35만ha로 전북 새만금의 9배에 달한다. 암스테르담 신시가지도 이 간척지 위에 세워졌다. 주디치 방조제의 건설로 네덜란드는 막대한 규모의 간척지를 얻었지만 자연에 도전한 대가도 치러야 했다. 1953년 허리케인의 급습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재민이 생겨났고 가옥 수만 채와 농지 16만여ha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간의 위대한 도전도 자연의 한순간의 콧바람 앞에 무력한 존재임이 입증된 것이다. 간척지는 이처럼 걸핏하면 홍수를 맞았고 농사도 생각처럼 좋지 않았다. 바다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17세기엔 황금의 시대까지 누렸던 네덜란드인에게 바다는 다시 최악의 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 ‘새만금’은 대한민국의 미래 주디치 방조제의 예는 물론 우리의 새만금 사업과 기후적인 여건과 국토의 생김새에서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예는 아니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교훈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새만금 방조제는 주디치보다 1㎞가 길어 세계에서 제일 긴 방조제다. 2006년 국내 기술진은 33㎞에 달하는 방조제 끝막이 공사를 완료했다. 새만금 방조제는 공사의 난이도에서 주디치 방조제보다 훨씬 높았다. 주디치 방조제 끝막이 공사 때의 유속이 1초당 3m여서 비교적 쉬웠던 데 비해 새만금 방조제 끝막이 공사 때는 1초당 7m에 달했다. 방조제를 쌓는 데 들어간 바위·돌·흙은 모두 7300만㎡로 소양강댐 8개를 축조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는 경부고속도로를 9m 높이로 쌓아올린 양으로, 방조제 상단의 40m에 불과하지만 밑바닥 폭은 300~400m나 된다. 방조제 축조공사에 이어 간척공사로 조성될 토지는 여의도 면적의 140배와 맞먹는 8500만 평(2만8000만㎡)이며 새로 생기는 새만금호는 3500만 평(1만1550만㎡) 규모로 저수용량이 소양강댐의 4분의 1인 5억3452만t에 달한다. 주디치와 새만금의 규모가 인간이 보기에는 엄청난 규모일지 모르지만 자연 앞에서는 한낱 장난감에 불과하다. 따라서 네덜란드 주디치 방조제는 새만금이 새겨야 할 교훈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로 불리는 새만금 사업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주는 ‘새한국’ 사업으로 성공하는 것은 전북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다.

      2007.11.13 00:00

    • 사회 독자의 소리

      [독자발언대]새만금 방조제를 버릴 것인가 外

      새만금 방조제를 버릴 것인가 새만금사업은 식량자원과 수자원 확보의 필요성에 따라 시작됐으나 갯벌보호 문제에 부딪혀 찬반논쟁이 이어지다가 지난 2월 법원이 해양환경의 변화 등을 이유로 새만금사업의 목적을 변경하라는 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미래를 준비하는 큰 밑그림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33㎞에 달하는 거대한 방조제를 원상복구시켜 갯벌을 되살린다는 것은 공학적으로도 어렵거니와 무엇보다 상류의 수질개선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새만금 갯벌은 이미 1980년대부터 공단과 도시건설, 집단화된 축산 등으로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상류 하천인 만경강과 동진강의 오염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갯벌 보전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둘째, 현재 개방구간을 통한 바닷물의 유통으로 유지되는 갯벌은 더 이상 과거의 갯벌과는 다르며,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이다. 지금처럼 방조제를 완공하지 않고 바닷물을 유통시킬 경우 해수유통 구간의 유속이 빨라져 침식이 가속돼 본래의 가치와 기능을 가진 갯벌로 유지하기 어렵다. 특히 새만금처럼 넓은 면적에서 장기간 사업이 진행되면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환경변화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를 조속히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방조제공사는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 셋째, 해양학적 측면에서 방조제 내부 토지의 활용은 바닷물의 조차를 극복한 후에야 가능하다. 새만금 지역의 조위 변화폭은 ±3.5m여서, 평균해면에서 3.5m 높이로 설계된 방수제로는 해수유통을 감당할 수 없다. 방조제를 완공한 뒤에도 배수갑문을 통해 수위를 조절하지 않으면, 농지조성은 물론 환경단체의 신구상안도 실현성이 떨어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방조제 완공을 2.7m 남겨둔 상황에 공사 중단을 전제한 대안 제시는 사업규모나 현장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처사다. 새만금사업에 대한 논의는 ‘방조제 완공’에서 출발해야 실현성을 가질 수 있다. 식민통치 미화 발언 용납 못해 616호 ‘우익보수세력의 분란?’을 읽었다.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의 친일발언으로 우익 가운데서도 양론이 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일본의 월간잡지에 기고한 글이라 해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거나 미화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과거사 청산을 통해 다시는 민족반역자나 외세에 아부하는 세력이 출현하지 않도록 하자는 판에 일본의 식민통치를 미화하고 한국의 발전에 자극제가 되었다니 도대체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약소국이 되어 일본에 강점되었던 자체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외국의 문물을 늦게 받아들인 것을 탓했다면 몰라도 일본 식민지배를 축복받은 일이며 오늘날 성장의 밑거름이라니 어찌 학자로서 최소한의 국가관과 역사관도 갖추지 못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최명연〈대구시 중구 남산동〉 중부권 창당은 또 다른 지역주의 최근 대전시장과 충남지사의 탈당을 계기로 충청권 출신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중부권 보수신당 창당론이 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616호 ‘빅뱅일까, 찻잔 속 태풍일까’는 관심을 끄는 기사였다. 물론 이들이 탈당하고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은 자유겠지만 창당 명분이 행정수도 이전의 실행력을 들먹이고, 특정지역 출신인사들을 기반으로 하는 점에 비추어본다면 보수보다는 지역주의적 색채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노선과 이념을 가질 수도 있으나 하필 중부권을 강조하며 그간 망국병처럼 여겨오던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불행하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정치발전이나 국민화합에도 역행한다. 그러잖아도 경상도당이니 전라도당이니 하는데 또다시 충청당이라는 지역당을 만들어 지역맹주가 되려는 속셈이 있다면 반대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정당도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바탕을 두어서는 안된다.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으며 성공할 수도 없는 법이다. 우도형〈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동〉 119구급대 출동 요청은 신중히 119 구급대원들의 애환을 같이 체험하면서 눈으로 본 그대로를 적어놓은 ‘비응급환자는 참아주세요’ 기사를 관심있게 읽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고 부르짖는 지금의 현실에서 과연 시민의식마저 선진국 수준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은 한번도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는 내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아이가 책상에 넘어지면서 눈 밑이 2㎝ 가량 찢어졌을 때, 남편의 눈에 철가루가 박혀 괴로워할 때, 갑자기 찾아온 요로결석으로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아플 때, 사실 119를 부를까 잠시 고민을 했던 건 사실이다. 119에 대한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잠긴 문 열어 달라고 부르고, 손가락 베었다고 부르고, 코피 흘렸다고 구급대원을 동네 견공 부르듯 불러대는 부모 밑에서 수준높은 시민의식을 가진 자녀가 과연 나올까? 구급대원은 그야말로 위급하고, 급박한 상황에 투입되어야 하는 것을 모두가 알고 또 가르치기를 바란다. 주경심〈경기 성남시 중원구〉 ‘고구마의 추억’ 일깨워줘 고구마농사를 짓는 집에서 1년에 반은 그것도 하루 세끼 중 한끼는 고구마로 해결하던 가난한 집안에서 생고구마가 변비의 해결책이란 건 정말 몰랐다. 그런데 뉴스메이커의 ‘생고구마로 변비탈출’ 기사를 읽고 생고구마가 변비에 좋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생고구마를 먹으면 변비에 회충이 생긴다고 어른들이 못 먹게 했는데. 게다가 못 먹던 시절에 밥 대신으로 먹던, 가난과 전쟁을 대변하던 구황작물인지라 어쩐지 먹기 싫었는데 어릴 적에는 없던 변비로 고생을 하는 이유도, 그 변비를 해결할 방법도 한꺼번에 터득을 했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고구마를 먹기로 했다. 나는 지금 도시에서 소독약 팍팍 풍기는 넥타이맨으로 살고 있지만 장모님은 여전히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한테 매년 두어 가마니씩 보내주는 재미로 사시는데, 지금까지는 사실 안 먹었다. 이제부터는 많이 먹어보련다. 옛생각하면서 고구마밥, 고구마 죽, 군고구마, 고구마 튀김 게다가 고구마케이크까지…. 김기환〈경기 안성시 서운면〉

      2005.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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