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군]100살 노익장 과시하는 충북 영동의 배나무들…올해도 배꽃 활짝](https://img.khan.co.kr/news/2021/04/15/l_2021041501001659800139461.jpg)
지역 영동군
[영동군]100살 노익장 과시하는 충북 영동의 배나무들…올해도 배꽃 활짝... 고령인 만큼 영동군은 각별한 신경을 쏟고 있다. 영동군의 관리로 이 나무들은 올해도 순백의 배꽃을 피워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영동군 관계자는 “나이가 많아 병충해 피해 등을 걱정했지만 이를...
#충북 영동군 #배꽃 #배나무 #노익장 #배 #과일
이삭 기자 2021.04.15 13:59
지역 영동군
[영동군]100살 노익장 과시하는 충북 영동의 배나무들…올해도 배꽃 활짝... 고령인 만큼 영동군은 각별한 신경을 쏟고 있다. 영동군의 관리로 이 나무들은 올해도 순백의 배꽃을 피워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영동군 관계자는 “나이가 많아 병충해 피해 등을 걱정했지만 이를...
#충북 영동군 #배꽃 #배나무 #노익장 #배 #과일
이삭 기자 2021.04.15 13:59
과학·환경
[포토뉴스]활짝 핀 배꽃 사이 거니는 동심18일 서울 중랑구 봉화산 자연체험공원에서 활짝 핀 배꽃 사이로 어린이들이 걷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17.04.18 22:27
사회
[경향포토]배꽃 산책길18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봉화산 근린공원 자연체험공원에 심어진 배나무에 배꽃이 활짝 피어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2017.04.18 13:16
사회
[경향포토]배꽃밭 산책하는 아이들18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봉화산 근린공원 자연체험공원에 심어진 배나무에 배꽃이 활짝 피어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2017.04.18 13:09
생활
음악이 있는 배꽃과 시가 있는 피아노 콘서트ㆍ23일 음봉면 의식리 배꽃 음악회 개최 하얀 배꽃이 만발한 야외에서 시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가 23일 오후 3시 마련된다. 올해로 4회째인 ‘음악이 있는 배꽃과 시가 있는 피아노’ 콘서트로 2008년 4월 시작해 해마다 이 맘때 충남 아산시 음봉면 의식리 ‘윤씨 농원’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콘서트를 주최한 산토끼뮤직은 “이 콘서트가 배꽃을 사랑하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외지인과 함께 맛있는 배 수확을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2008년 첫 공연 당시 600여 명이 찾았던 ‘음악이....’ 콘서트는 지금껏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인들의 시낭독과 음악 연주가 어우러지면서 수준 높은 공연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회 콘서트에는 1500여 명이, 3회 콘서트에는 2000여 명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이번 행사에선 중창단 아리오조, 테너 박창수, 소프라노 김은정 등이 노래하고 피아니스트 위정혜와 오카리나 연주자 양강석이 연주한다. 또 시인 김초혜, 박주택, 류기봉 등이 시를 낭독한다. 사회는 탤런트 양미경이 맡는다. 입장료는 5000원∼1만 원이다. 문의는 음봉면사무소 041-537-3641.
강석봉 기자 2011.04.20 15:50
사회 표지 이야기
[커버스토리]한국사회 ‘배꽃’이 만개했네이대출신 사회 각분야 첫 교두보 마련… 여성인권운동가 배출 우먼파워 시대 열어 여성단체회원들이 최근 서울 YMCA의 여성 참정권 부결을 계기로 3월 6일 이화여대에서 한국여성대회를 개최, 여성 참정권 확대를 요구했다. 2004년 1월, 여성 운동가들의 연대체인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같은해 4월 실시될 17대 여성 국회의원 후보로 여성계가 지원하는 101명의 리스트를 발표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후보 선정 과정과 투명성, 후보의 자질에 대한 문제제기 등 시비가 있긴 했지만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101명 가운데 석 달 뒤 국회의원이 된 여성은 모두 21명(지역 3명, 비례대표 18명)이었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 당선자 12명 중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추천 후보는 9명에 달했으며 한나라당 5명, 민주노동당 2명, 민주당은 2명이 포함됐다. 여성계의 막강한 힘을 보여준 사례로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고 있다. 최근 한명숙 여성 총리지명자 탄생,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으로 곧 실시될 5·31 지방선거에서 여성이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대는 여성들에게 해방구 역할 73개 여성운동단체들은 지난해 11월 ‘생활자치·맑은정치 여성행동’을 만들어 여성 후보를 위한 12대 여성정책 공약 개발, 기금과 인력을 통한 선거전 지원, 유권자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각 당에 기초단체장 10% 여성 공천, 지역구 30% 여성 공천 등을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17대 총선 때처럼 대대적으로 여성 후보 리스트를 작성해 발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한 여성 정치 단체 중에는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한국여성정치연맹,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등이 있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를 이끌고 있는 조현옥·오유석 대표는 각각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와 사회학과를 졸업한 동문이며 한국여성정치연맹의 신은숙 총재 역시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여성들만 있으니까 모든 역할을 다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여성학을 접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고 그때 만들어진 가치관이 현재의 나를 지배하고 있다. 성별고정관념이 심한 사회에서 이화여대는 여성들에게 어떤 한계도 짓지 않는 해방구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조현옥(정치외교학과 75학번)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공동대표의 말이다. 올해 창립 120주년을 맞은 이화여대는 ‘여성 교육의 메카’라는 명성에 걸맞게 여성 고등 교육자 발굴·육성·배출에 기여했다. 최초의 여자 박사·의사·변호사·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으로서 첫 교두보를 만든 여성은 대부분 이화여대 출신자들이었다. 오래된 역사, 한 해 3000여 명의 여성 학사를 배출하는 이화여대는 양적·질적 여성 고등 인력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다. 왼쪽부터 이태영(전 가정법률상담소장), 이효재(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윤정옥(전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 신인령(이화여대 총장). 왼쪽부터 곽배희(가정법률상담소장), 김현자(한국여성정치연맹 전 총재), 윤정숙(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박인혜(한국여성의 전화 대표).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제약이 컸던 50년대 후반∼70년대, 대학 문을 나선 여성들 가운데 기업에 입사하거나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는 이들은 소수였다. 당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적기도 했지만 ‘여성의 행복은 아이 잘 키우고 내조를 잘하는 것’이란 의식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변혁의지가 컸던 여성들은 시민단체 쪽으로 발길을 돌려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정치참여운동이 시작된 1950년대부터 가족법개정운동이 시작됐다. 가족법 개정운동을 처음부터 이끌어온 이는 이화여대 가사과를 졸업한 뒤 서울법대에 진학,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 고 이태영(1914~ 1998) 박사다. 그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설립해 가족법개정운동을 벌였다. 그의 뜻은 2005년 3월 국회에서 호주제폐지안이 통과되면서 40여 년 만에 이뤄졌다. 그 과정에 그가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 시절 가르친 제자들이 대거 동참했다. 현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곽배희씨 역시 그의 영향을 받은 제자다. 크리스찬 아카데미와 여성학과 1970년대는 한국 여성운동의 전환점이 된 시기다. 1975년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를 맞아 한국 여성운동은 도약기를 맞는다. 여성계 인사들이 제1회 멕시코 세계 여성대회에 참가하면서 세계적인 여성운동 추세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고 세계 여성의 해와 관련한 다양한 행사들을 열면서 사회적으로 여성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함께 진보적 기독교 기관이었던 크리스찬 아카데미가 개설한 중간집단교육은 이후 수많은 여성운동가들을 배출하면서 현대 여성운동의 중요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당시 크리스찬 아카데미는 민주사회와 평등한 인권사회를 이끌 주도세력으로 중간집단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각 분야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농촌, 노동, 여성, 교회, 학생 등 5개 분야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중간 집단 교육이었다. 1974년 시작된 여성 중간집단 교육은 수많은 여대생들과 젊은 여성 지식인들이 거쳐갔고 현대 한국 여성운동 발전의 모태가 되었다. 한명숙 국무총리 지명자 역시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여성 노동자들을 교육시키는 간사로 활동하다 수감되기도 했다. 신인령 현 이화여대 총장, 이미경·이경숙 열린우리당 의원,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현자 한국여성정치연맹 전 총재 등 이화여대 졸업생들이 이곳을 거쳐 정치·사회 지도자로 성장했다. 1975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여성 중간집단교육에 참여한 이화여대생들. 한편 국내 제도교육에 여성학이 도입된 시기도 1970년대다. 1977년 이화여대에 처음으로 교양과목으로 여성학이 개설됐으며 1982년 대학원에 여성학과가 신설됐다. 대학이라는 공식적인 시스템을 통해 여성주의 의식화가 가능해지면서 이후 여성운동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여성학 강의는 대학 내 인기 강의로 자리잡았고 여성주의 이론과 여성운동을 확산하는 데 큰 영향력을 미쳤다. 여성학 강의를 통해 의식화된 여성들이 여성운동 현장에서 운동가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후 숙명여대, 성신여대 등 여대를 중심으로 여성학과 대학원이 설립됐으며 4년제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크게 늘었다. 1980년대는 여성운동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여성 의식화 교육의 수혜자들과 사회민주화운동, 각 부문 운동의 경험자들이 여성의 특수과제에 눈을 뜨면서 독자적인 여성운동단체의 조직이 급격히 늘었다. 1980년 여신학자협의회, 1983년 여성평우회, 여성의 전화, 1984년 또하나의 문화, 1987년 여성운동단체의 상설 연대체로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출범하면서 활발히 여성운동을 전개해나간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 비정규직 차별철폐, 보육문제 해결, 정치세력화, 성매매방지운동법 제정 등의 활동을 벌이며 우리사회 여성운동의 주축으로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엄중한 심판대 세운 ‘아내 폭력’ 진보적 여성운동단체들을 만든 이들 중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이효재 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다. 그는 보수 관변 단체적인 성격이 짙었던 기존의 여성단체에 맞서 여성평우회(현 여성민우회), 여성단체연합 등을 조직화했다. 여성부 장관을 거쳐 현재 덕성여대 총장이 된 지은희씨, 여성민우회 공동대표를 지내고 현재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를 맡은 윤정숙씨 등이 이효재 교수의 제자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은폐되어 왔고, 범죄로도 인식되지 못했던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한 것은 83년 여성의전화 창립부터다. 여성의전화(현 한국여성의전화연합)는 폭력피해여성을 ‘문제 있는 개인’으로 보는 전통상담과 달리 ‘피해여성’ ‘생존자’로 보고 폭력의 원인을 가부장적 남성중심 사회에 둬 피해자 개인에 대한 지원과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가정폭력의 일차적 사회대책으로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운동을 벌였다. 가정폭력 추방운동은 아내 폭력에 관한 사회의 태도와 의식, 사법체계, 피해자 여성들과 가족, 여성운동 분야, 인권운동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 이 단체의 대표로 활동 중인 박인혜·한우섭씨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이와 함께 성폭력·성희롱 추방 운동도 주요한 여성인권운동 분야다. 1991년 문을 연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으며 성폭력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해결방안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현재 소장으로 활약 중인 이미경 소장은 이화여대 여성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1995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에 대해 시위를 벌이는 여성의 전화 회원들. 80년대 쟁점으로 떠오른 이슈 가운데 하나는 해방 후 40년 넘게 은폐돼온 일본군 위안부(정신대) 문제였다. 이 문제는 1987년 4월 윤정옥 교수(당시 이화여대 영문학과, 정대협 초대 공동대표)가 한 세미나에서 정신대 문제를 처음 언급하여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맞춰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 3개 단체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대협은 1992년 8월부터 아시아연대회의를 개최하고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법률가 위원회 등 국제기구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진상과 심각성을 알리는 국제연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 이슈로 확장된 데는 초기 정대협을 조직했던 윤정옥·이효재 공동대표 외에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 김윤옥 전 상임대표, 신혜수 정대협 상임대표의 역할이 컸다. 특히 이효재 교수의 제자였던 신혜수 대표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유엔에 적극 제기하는 데 공헌했다. 그는 현재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언론을 통한 여성운동도 활성화됐다. ‘페미니스트 저널’을 기치로 내건 주간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됐다. 당시 민주화운동에 맞물린 여성운동이 상승세를 타면서 ‘여성’ 특화 언로가 필요하다는 데 강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여성운동계를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 리더부터 보통 주부에 이르기까지 781명의 국민주를 모아 여성신문이 창간되기에 이르렀다. 초대 발행인은 여성운동가 출신의 이계경 의원, 주간은 작고한 페미니스트 시인 고정희씨. 초대 편집위원으로 김경애 동덕여대 학생처장, 박혜란 여성학자, 이상화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장필화 이화여대 대학원장 등이 활약했고, 이효재, 한명숙 등이 논설위원으로 동참했다. 이들은 이화여대 및 여성학과 대학원 출신자들이다. 대한민국 여성 운동, 혹은 여성발전의 장면마다 이대의 배꽃이 가득했다. 임현선
2006.04.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