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배드민턴 단식 최강’ 안세영 부상 복귀 무대는 ‘수디르만컵’ 유력... 새 사령탑과 첫 대회 부상으로 잠시 쉬는 안세영(23·삼성생명·사진)의 복귀 무대는 세계혼합단체배드민턴선수권대회(수디르만컵)가 유력하다. 안세영이 대표팀의 새 사령탑과 함께하는 첫 대회가 될 것으로
배재흥 기자 2025.03.25 20:33
스포츠
‘배드민턴 단식 최강’ 안세영 부상 복귀 무대는 ‘수디르만컵’ 유력... 새 사령탑과 첫 대회 부상으로 잠시 쉬는 안세영(23·삼성생명·사진)의 복귀 무대는 세계혼합단체배드민턴선수권대회(수디르만컵)가 유력하다. 안세영이 대표팀의 새 사령탑과 함께하는 첫 대회가 될 것으로
배재흥 기자 2025.03.25 20:33
스포츠
내가 배드민턴 왕이로소이다…안세영, 전영오픈 2년 만에 탈환... 다시 전영오픈 왕좌에 올랐다.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17일 새벽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전영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중국의 왕즈이(2위)를 2-1(13-21 21-18 21...
배재흥 기자 2025.03.17 20:03
사회
구로구 여자 배드민턴팀,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김하나 선수 영입... 수여했다. 김하나 선수는 삼성생명, 전북은행 배드민턴단에서 활동하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체전 은메달, 2016년 리우 올림픽 혼합 복식 8강, 2020년 스페인 마스터즈 배드민턴 대회...
류인하 기자 2025.03.17 16:09
사회
경찰, ‘페이백’ 배드민턴협회·요넥스 압수수색···김택규 회장 휴대전화 압수... 마포구 요넥스코리아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경남 밀양에서 열린 ‘원천요넥스 코리아주니어 배드민턴대회’에 참석 중이던 김택규 배드민턴 협회장에 대해서도 신체를 수색하고, 휴대전화 등을...
#배드민턴협회 #경찰
강한들 기자 2024.11.28 15:21
스포츠종합
제32대 배드민턴협회장 취임식…김동문 회장, “변화를 위해 행동하겠다”김동문(가운데) 제32대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이 21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배재흥 기자 김동문 대한배드민턴협회 신임 회장이 21일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변해야 한다”며 배드민턴 행정의 개혁을 약속했다. 김동문 회장은 이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32대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취임식’에서 “‘대한민국 배드민턴, 다시 비상하라’라는 슬로건을 가슴 깊이 새기며 협회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했다”며 “이 슬로건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낡은 틀을 과감히 깨고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으며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다짐이자 국민과 배드민턴 가족 모두에게 드리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김동문 회장은 현역 시절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셔틀콕 복식의 전설’이다. 그는 “배드민턴은 제 인생에 커다란 의미를 안겨준 소중한 스포츠”라며 “이 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배웠고, 수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배드민턴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을 때 감격은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며 “그러나 그 영광 뒤에는 국민과 배드민턴인으로부터 질책 또한 있었다”고 짚었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단식 금메달을 딴 안세영이 대회 직후 대표팀 운영 방식 등에 ‘작심 발언’한 후로 배드민턴협회의 낡은 행정을 꾸짖는 여론이 커졌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안고 협회장 선거에 출마해 지난 1월 당선된 김 회장은 “협회 운영과 시스템은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변화 흐름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선수들은 경기 외적인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며 “우리는 그 일을 통해 값진 교훈을 얻었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협회의 수장으로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하지 않도록 투명,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며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도록 행동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회장은 또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며 “선수들이 기량을 마음껏 펼치고, 지도자들은 선수 육성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협회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하형주 국민체육공단이사장, 문원재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 등 체육계와 정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유승민 회장도 “파리 올림픽 이후 대한체육회도 대한배드민턴협회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며 “앞으로 대한배드민턴협회와 대한체육회 그리고 대한민국 체육계가 공정하고 신뢰를 더 견고히 다질 수 있도록 많은 분과 함께 뛰겠다”고 힘을 보탰다.
배재흥 기자 2025.04.21 18:14
스포츠종합
안세영 빠진 韓 배드민턴, 단 한 명도 결승 무대 못 밟았다···‘유일한 생존자’ 심유진도 천위페이에 패해 4강서 탈락심유진.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안세영(삼성생명)이 빠진 한국 배드민턴이 아시아선수권에서 단 한 명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여자 단식 세계랭킹 16위 심유진(인천국제공항)은 12일 중국 닝보에서 열린 2025 아시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4강전에서 천위페이(중국·8위)를 맞아 34분 만에 0-2(11-21 11-21) 완패를 당했다. 심유진의 탈락으로, 이번 대회 한국은 전 종목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서승재(왼쪽)와 김원호. 신화연합뉴스 심유진에 앞서 세계랭킹 28위 김가은(삼성생명)이 전날 가오팡제(중국·15위)에 43분 만에 게임스코어 0-2(17-21 16-21)로 완패하며 8강에서 탈락했다. 여기에 결승 진출은 무난해 보였던 남자복식의 서승재-김원호(이상 삼성생명)는 16강에서 인도네시아 팀에 1-2(21-18 17-21 15-21) 역전패를 당해 일찍 짐을 쌌다. 서승재-김원호는 올해 전영오픈 우승팀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또 여자복식의 김혜정(삼성생명)-공희용(전북은행)도 중국 팀에 0-2(15-21 18-21)로 완패하는 등 굴욕을 면치 못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간판’ 안세영이 부상으로 불참했다. 안세영은 지난달 전영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이번 대회에는 불참했다. 안세영이 전영오픈 여자단식 우승을 확정한 뒤 포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윤은용 기자 2025.04.12 22:33
스포츠종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주봉,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 취임···임기는 2026년까지박주봉 신임 한국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주봉 전 일본 대표팀 감독이 한국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4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박 감독을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이사회를 통해 이경원, 김상수, 정훈민 코치가 함께 선임돼 박 감독을 보좌하게 됐다. 협회는 “박주봉 감독은 배드민턴 역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그간 지도 경험과 뛰어난 리더십을 보면 국가대표팀을 이끌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평가됐다”라고 밝혔다. 박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서 중책을 맡게 돼 매우 기쁘고,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며 “선수들이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도록 체계적 훈련과 전략적 접근을 통해 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겠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지난해 말 김학균 전 감독과 결별한 뒤 줄곧 감독 자리가 공석이었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2026년 말까지 국가대표 선수들을 지도한다. 박 감독이 임기 중 치를 주요 국제 대회로는 내년 9월 개막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꼽힌다. 임박한 대회로는 이달 27일부터 중국 샤먼에서 2025 세계혼합단체선수권대회가 있다. 박 감독이 일본에서 오래 지낸 만큼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당장 8일 개막하는 아시아선수권대회 이후에 대표팀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여자 단식 세계 최정상에 오른 안세영(삼성생명)은 자신과 같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지도자에게 가르침을 받게 됐다. 1964년생인 박 감독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남자복식 금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혼합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드민턴은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따라서 박 감독은 ‘최초의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 금메달리스트’로 종목 역사에 기록됐다. 1996년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지도자의 길을 밟은 박 감독은 영국, 말레이시아 대표팀을 거쳐 2004 아테네 올림픽 이후 일본 대표팀을 맡아 대대적인 체질 개선으로 일본 배드민턴의 부흥기를 열었다. 박 감독 체제의 일본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여자복식 은메달)을 획득했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마침내 첫 금메달(여자복식) 수확의 기쁨도 맛봤다. 협회에 따르면 박 감독은 일본배드민턴협회와 계약을 지난달에 끝냈다. 박 감독은 이전부터 지도자 경력을 마무리하기 전에 우리나라 선수들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뜻을 주변에 밝혀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두리 기자 2025.04.04 18:10
스포츠종합
배드민턴 국제 커플 떴다···‘일본 얼짱’ 오호리, 말레이 복식 전문 옹유신과 결혼일본 오호리 아야가 지난해 파리올림픽 단체전에서 승리 후 기뻐하고 있다. Getty Images코리아 일본의 ‘셔틀콕 얼짱’으로 유명한 전 국가대표 오호리 아야(29)가 말레이시아 배드민턴 복식 간판 옹유신(30)과 결혼한다. 오호리는 27일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말레이시아 배드민턴 복식 전문 선수 옹유신과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배드민턴 선수끼리 국경을 넘은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됐다. 일본 매체 디 앤서는 28일 “오호리의 결혼 소식에 팬들의 축복과 놀라움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옹유신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호리에게 청혼하는 사진을 올리며 “그녀는 예스라고 말했다. 이것을 세상과 공유하는 것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다른 국적, 다른 문화, 다른 생활 스타일. 우리는 서로의 생활 방식을 적응하고 받아들이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우리는 여전히 항상 다투고 있다) 우리 영원한 사랑 오늘 시작”이라고 전했다. 배드민턴 국제 커플이 생겼다. 말레이시아 옹유신이 일본 오호리 아야에게 청혼하고 있다. 옹유신 SNS 한국 배드민턴 복식 에이스 서승재도 이 글에 “축하한다(congrats)”며 댓글을 달았다. 이들이 공개한 사진에서 오호리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옹유신이 무릎을 꿇고 반지와 함께 프러포즈를 하며 서로 활짝 웃고 있다. 오호리는 일본 여자배드민턴 국가대표로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개인전 동메달, 2024 파리올림픽에선 8강까지 진출한 바 있다. 출중한 외모로 국내에서도 ‘일본 얼짱’ 배드민턴 선수로 꽤 인지도가 높다. 오호리는 지난해 은퇴를 선언했다. 옹유신은 말레이시아 복식 전문 선수로 2021년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땄으며 계속 현역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양승남 기자 2025.03.28 09:21
스포츠
[스포츠]배드민턴 가문의 ‘신데렐라’ 쑥쑥 컸다ㆍ성지현 코리아오픈 준우승 차지, 아버지·어머니 모두 국가대표 출신 라켓을 든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겨우 2세트째였지만 경기 시간은 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19-16으로 앞서 있던 2세트가 어느새 20-20이 돼 있었다. 성지현(19·창덕여고)의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첫 결승 경험은 무척이나 힘든 승부였다. ‘이젠 됐겠지’ 싶은 셔클 콕을 네트 너머에 있는 왕스셴(중국)은 지독하리만치 모두 받아냈다. 지난 1월 17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내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2010 빅터코리아오픈 배드민턴슈퍼시리즈 여자 단식 결승에서 한국의 성지현이 중국 왕스셴을 상대로 공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포인트를 따내며 경기를 끝낼 어드밴티지 기회를 세 차례나 잡았지만 그때마다 왕스셴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성지현도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는 ‘기교파 플레이’에 능했지만 왕스셴은 한 수 위였다. 결국 경기가 끝났다. 23-25의 패배. 2010 빅터코리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에서 파란을 일으키던 성지현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준우승으로 끝났다. 우승은 놓쳤지만 충분한 해피엔딩이었다. 성지현은 경기가 끝난 뒤 팬들의 힘찬 박수를 받았고, 앞으로 뛰어야 할 경기는 지금까지 해 온 경기보다 더 많다. 성지현은 이제 겨우 열 아홉.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 네 살 때부터 라켓 가지고 놀아 성지현은 이번 대회 16강에서 세계 3위인 티네 라스무센(덴마크)을 꺾었고 8강에서는 세계 13위 야오지(네덜란드)마저 무릎을 꿇렸다. 세계 58위 소녀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성지현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마카오 오픈 때부터. 당시 성지현은 16강에서 세계 1위인 홍콩의 저우미를 꺾었다. 8강에서 더이상 오르지 못했지만 세계 1위를 꺾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싹부터 달랐다. 성지현의 아버지는 성한국 대교눈높이 배드민턴단 감독, 어머니는 김연자 한국체대 교수다. 성 감독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김 교수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이던 배드민턴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땄다. 배드민턴 선수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란 성지현은 자연스럽게 배드민턴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성지현은 네 살 때부터 라켓을 휘둘렀다. 성 감독은 “집에 온통 굴러다니는 게 라켓이었다”면서 “라켓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법 잘 맞혔다. 성 감독은 싹이 보이는 네 살짜리 어린 딸에게 풍선을 불어 던져줬고, 성지현은 놀이 삼아 라켓으로 그 풍선을 때리며 놀았다. 성 감독은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 풍선을 참 잘 맞혔다”며 웃었다. 풍선을 때리면서 놀았기 때문일까. 지금도 성지현의 플레이는 강력한 스매싱보다는 드롭샷 위주의 수비형이다. 나풀거리는 풍선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했으니 셔틀콕도 힘껏 때리기보다 쓰다듬듯 나꿔 채 넘기기를 잘한다. 주변 배드민턴인들은 “아버지의 게으름을 닮아 빠른 플레이보다 느린 플레이에 강하다”며 놀리지만 느린 플레이는 최근 여자 단식의 흐름에서 강한 무기로 자리 잡았다. 강력한 공격보다는 이를 받아내며 범실을 줄이는 선수들이 상위 랭커에 올라 있다. 코리아오픈 결승에서 만난 왕스셴도 전형적인 수비 중심의 선수다. 왕스셴은 작은 키임에도 이 같은 플레이로 중국에서 4년마다 열리는 중국 체전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2위에 올랐다. 큰 키와 ‘하프 스매싱’ 강점 지녀 배드민턴 여자 단식의 최고 선수는 방수현(38)이었다. 방수현은 1996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자 단식 금메달을 땄다. 배드민턴 사상 단식 종목의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방수현 이후 여자 단식에서 이렇다 할 선수가 없었다. 뒤를 이을 재목으로 꼽힌 전재연(전 대교눈높이)은 결국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떨치지 못했다. 김중수 국가대표 감독은 “성지현을 비롯해 배은희 등 몇몇 선수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 세대 교체에 이제서야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여자 단식의 미래를 밝게 내다봤다. 여자 단식 부활에는 역시 성지현이 가장 앞서 있다. 무엇보다 1m75의 큰 키가 장점이다. 1m70의 방수현보다 5㎝가 더 크다. 큰 키는 네트 가까이에서 펼치는 플레이에서 탁월한 강점을 보인다. 큰 키와 함께 성지현은 ‘하프 스매싱’의 위력이 뛰어나다. 하프 스매싱은 힘껏 점프해 내려치는 풀 스매싱과 달리 서 있는 자세에서 작은 점프로 때린다. 절반의 힘으로 때리는 대신 정면으로 셔클 콕을 때리지 않고 좌우로 비틀며 깎아 때리는 느낌으로 휘두른다. 성지현의 하프 스매싱으로 날아간 셔틀콕은 마치 야구에서 투수의 포크볼이나 스플리터처럼 뚝 떨어진다. 스매싱을 기다리던 상대 선수는 야구 변화구처럼 갑자기 휘는 셔틀콕을 받으려다가 말 그대로 무릎을 꿇기 일쑤다. 코리아오픈 결승에서 만난 왕스셴도 2세트에서 성지현의 마구 같은 하프 스매싱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좌우로 흔드는 상대의 노련한 플레이에 말린 데다 체력이 부족한 탓에 무너졌지만 하프 스매싱만큼은 성지현을 세계 정상급 선수로 끌어올리는 비장의 무기다. 성지현에게 부족한 것은 경기 운영 경험. 국제 대회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한 게 지난해부터여서 경험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번 결승에서 준우승에 그친 것도 결승까지 올라 온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중수 감독은 “이전까지 가장 높이 올라 온 게 8강전이었다. 토너먼트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가 본 적이 없으니 체력 안배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성지현은 이미 4강전을 치르면서 체력이 고갈됐다. 자신의 체력을 결승에 대비해 나눠 놓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서다. 매번 결승에 오르는 이용대나 이효정 등과는 경기를 치르는 운영 방식에서 미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해결해 줄 일이다. 김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 단식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남은 대회에서 경험을 쌓으면 아시안게임에서 체력이 모자라 경기를 내 줄 일은 없을 것이다. 성지현이 올해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아버지 성 감독에 이어 아시안게임 부녀 금메달을 기록하게 된다. 물론 더 앞의 목표는 어머니 김 교수가 따낸 올림픽 금메달이다. 2012년이면 겨우 스물 하나. 여전히 성장하고 있을 나이다.
체육부·이용균 기자 2010.01.28 11:11
국제 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
[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11)영국 배드민턴스쿨특별기획 37개국 유학생 북적 ‘국제화 지향’ 브리스톨에 있는 배드민턴스쿨은 영국의 명문 여학교로 명문이 높다. 아담한 캠퍼스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영국 런던에서 남서부로 200㎞ 정도 떨어져 있는 브리스톨(Bristol)에는 영국의 명문 여학교가 있다. 인도 총리를 지낸 인디라 간디를 배출한 배드민턴스쿨(Badminton School)이다. 배드민턴이라는 학교 이름을 보면 언뜻 운동경기인 배드민턴이 연상된다. 그러나 배드민턴스쿨은 럭비스쿨과 달리 운동경기인 배드민턴과 전혀 관련이 없다. 배드민턴은 인도에서 시작된 푸나(Poona)를 한 영국 장교가 영국에 소개해 스포츠가 되었다. 영국에서 푸나 경기가 열린 곳이 영국 중서부에 있는 배드민턴이라는 작은 시골이어서 그 이름을 따 배드민턴이 된 것이다. 반면 운동경기와 직접 연관이 있는 학교로는 럭비스쿨(Rugby school)이 있다. 럭비스쿨은 잉글랜드 중부에 있으며 1567년에 설립한 남학교다. ‘악마의 시’를 쓴 살만 루시디가 럭비스쿨 출신이다. 럭비학교가 유명세를 탄 것은 바로 이 학교 학생이 럭비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운동경기 배드민턴관 관련 없어 1823년 당시 축구는 ‘핸들링’도 허용할 정도였다. 이 학교 학생 윌리엄 엘리스는 학년 대항 풋볼시합에서 흥분한 나머지 자신에게 굴러온 공을 잡아가지고 상대편을 향해 돌진하는 반칙을 범했다. 이때 상대편 학생들은 엘리스를 잡으려고 덤벼들었고 엘리스는 이들을 피해 상대편 골문으로 뛰어들었다. 축구경기에서 규칙을 무시하고 축구공을 팔에 안고 달린 데서 럭비가 생겨난 것이다. 럭비스쿨은 남학교로 전통을 이어오다 1975년에 여학생 3명이 입학하면서 남녀공학으로 탈바꿈했다. 영국 더 타임스지가 분석한 명문학교 리스트에 배드민턴스쿨은 당당히 22위에 올라 있다. 앞서 소개한 톤브리지스쿨(37위)이나 차터하우스스쿨(56위)보다 아카데믹 성적은 더 높다. 럭비스쿨은 차터하우스스쿨 다음인 57위를 기록하고 있다. 1858년에 설립한 배드민턴스쿨은 올해로 150주년을 맞고 있다. 배드민턴스쿨로 학교 이름이 된 것은 엉뚱하게도 배드민턴 학교가 세워진 집(House) 이름에서 연유한다. 배드민턴스쿨이 세워진 곳이 바로 ‘배드민턴 에스테이트’(Estate: 단지 안의 집 형태)였던 것. 그래서인지 배드민턴스쿨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배드민턴 구장이나 배드민턴을 운동하는 학생들을 찾아볼 수 없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스포츠 종목에도 댄스, 펜스, 골프, 카누, 네트볼, 하키, 육상, 수영, 체조 등이 있지만 배드민턴은 정식종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 인도 총리 지낸 인디라 간디 배출 브리스톨 시내의 언덕에 자리 잡은 배드민턴스쿨은 설립 당시에는 시 외곽에 있었지만 도시가 확장되면서 지금은 도심에 있게 됐다. 캠퍼스 규모는 20에이크(약 2만5000평)로 다른 사립학교와 비교하면 아담하고 작은 편이다. 학생은 모두 425명의 여학생으로 유치원부터 초·중·고교(4~18세)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 중 180명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캠퍼스 규모가 다른 명문학교에 비해 작지만 명문대인 ‘옥스브리지’ 진학률은 20%에 이른다. 마케팅 디렉터인 헨리에타 라이트우드는 “학교 규모는 도심에 있어 작지만 명문대 진학률 등에서는 다른 명문학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면서 “배드민턴스쿨은 작지만 강한 전통 있는 여학교의 대표 주자”라고 소개했다. 또 그는 “37개국에서 유학생이 와서 공부하고 있을 정도로 국제화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배드민턴스쿨은 해외 유학생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을 비롯해 홍콩, 러시아,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온 유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 비율은 1 대 8 정도. 한 학급당 12명이 토론식 위주로 수업한다. 라이트우드는 활달한 성격답게 인터뷰와 학교 소개를 열성적으로 했다. 그는 특히 명문학교 진학을 염원하는 한국 학부모들을 염두에 둔 듯 “매년 졸업생의 20% 정도가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합성어)에 진학한다”고 강조했다. 또 에이 레벨(A-level)은 매년 100% 패스하고 이중 A와 B등급이 88%(2007년 기준)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중등학교 자격시험인 GCSE도 매년 100% 합격하고 A와 B등급이 97%에 이른다고 했다. 37개국에서 온 유학생 가운데 한국 학생은 10명 정도로 많은 편은 아니다. 이 중 오승연(11)양은 서울에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지난해 이 학교로 유학왔다. 아직 앳된 표정이 역력한 오양은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고 1년밖에 안 됐지만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라이트우드와 대화에도 막힘이 없었다. 학생들은 아트, 뮤직, 디자인 등을 통해 예술적 재능을 키울 수 있다. 방과후 수업도 다양하게 운영한다. 오양이 공부하는 과목은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다양하다. 수학, 과학, 지리, 역사, 아트, 디자인, 테크놀로지, 스페인어, 역사, 잉글리시, 스포츠, 뮤직(플루트) 등이다. 커뮤니티 활동으로 시도 쓰고 뜨개질도 하며 슬리퍼도 만든다. 스포츠는 매일 하고 방과 후 수업으로 인형만들기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배드민턴스쿨에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등 외국어 과목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한국 초등학생이라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외국어 공부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보딩하우스, 연령대별로 섞어 생활 (위) 학생들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 (아래) 5학년생인 오승연양은 유학온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잘 적응하고 있다. 오른쪽은 마케팅 디렉터인 헨리에타 라이트우드씨. 오양은 기숙사생활에 흠뻑 빠져 향수병도 잊은 채 지내고 있다. 기숙사는 주니어용 4개와 시니어용 6개 하우스가 있는데 하우스마다 하우스 캡틴이 있다. 하우스 캡틴은 학생들에게 매너 교육과 함께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학생들이 집에서처럼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서로 친구를 잘 사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다른 학교의 하우스와 달리 같은 학년끼리 생활하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가 한데 어울려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언니와 동생처럼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지내면서 학교생활이나 공부를 도와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배드민턴스쿨은 유니폼을 입지만 고학년인 식스폼 과정의 학생들(109명)은 유니품을 입지 않는다. 라이트우드는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활을 돕고 공부에 전념하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기숙사에는 휴게실이 잘 갖춰져 있고 특히 진로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해 진학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상담실장과 12명의 상담원이 상주하면서 1명당 학생 9명을 전담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 진학 준비를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시니어스쿨 학생들에 비해 기숙사생이 많은 편이다. 식스포머 109명 가운데 8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아름답게 기억할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경쟁력이다. 그것이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라면 국가적인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전통이 있고 인재 배출에서 경쟁력을 지닌 캠퍼스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는 경쟁력을 지닐 수 있고 지속적인 인재를 키워낼 수 있다. 영국의 학제 영국의 초·중·고 학제는 우리나라와 약간 차이가 난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는 12세까지 다니고 13세부터 5년간 중등학교(9~13학년)에 다닌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한다. 중등학교는 9~11학년 과정(주니어스쿨)과 대학 진학 과정인 12~13학년 과정(시니어스쿨)으로 나뉜다. 11학년 때 중등교육수료고사인 GCSE를 치르는데 이는 일종의 고교 졸업시험이다. 12~13학년은 60% 정도가 대학 진학을 위한 식스폼(Sixth form) 과정을, 40%가 직업 교육 과정을 밟는다. 명문사립학교 학생은 대부분 식스폼 과정을 밟는다. 평균적으로 영국 전체 중·고교 학생의 7% 정도가 사립학교에 다니고 나머지는 공립학교에 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2년간의 식스폼 과정에서는 4과목을 공부한다. 13학년 때 우리나라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에이 레벨(A-Level)’ 시험을 보는데, 3~4개 과목을 선택한다. 주로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의 학과에서 요구하는 과목을 선택한다. 영국에서는 옥스퍼드대와 캠브리지대를 합성한 옥스브리지(Oxbridge)가 미국의 아이비리그(Ivy League)와 같이 명문대학을 상징한다. 미국의 명문대와 마찬가지로 옥스브리지 역시 성적만 우수하다고 합격할 수는 없다. 성적뿐 아니라 봉사정신, 스포츠 능력, 예술적 재능, 리더십 등과 면접능력 등을 고루 반영해 학생을 선발한다. 여학교인 배드민턴스쿨과 남학교인 럭비스쿨이 명문학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를 통한 인격 수양과 단결심, 협동심, 절제력 등을 중시하는 전통 덕분이다. 물론 스포츠가 옥스브리지의 학생 선발에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옥스퍼드대가 주는 로즈장학금의 선발 기준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로즈 장학생 선발에는 학문적 능력만 고려하는 것은 아니고 스포츠나 군사 분야에서의 업적, 자원봉사자로서의 활동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영국 정치가 세실 로즈의 유언에 따라 1902년에 처음 선발을 시작한 로즈 장학생은 학문적 성취, 인격적 완성도, 잠재적 지도력, 육체적 활력 등이 선정기준으로 유명하다. 옥스퍼드대에 본부를 둔 로즈트러스트로 운용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한국계 학생도 선발한 바 있다. 로즈장학금은 1870년 영국에서 남아프리카로 건너가 다이아몬드광과 금광을 경영하면서 재력가이자 정치가로 성장한 세실 로즈(Cecil John Rhodes)의 유언에 따라 그의 모교인 옥스퍼드대에 설립한 것이다. ‘무리한 도전’ 아닌 ‘무한도전’ 되게 하라 너도 나도 조기유학 열풍이다. 2007년 한 해만 해도 2만~3만 명 정도의 학생이 청운의 꿈을 안고 조기유학을 떠났다. 아이를 가진 부모에게 ‘조기유학’은 이제 친근한 단어가 되었다. 그러나 조기유학의 뜻을 지닌 학부모들과 상담하다 보면 준비 과정에서 사소한 점을 간과해 낭패를 보았던 경우를 종종 듣는다. 조기유학이 성행하는 만큼 듣는 것은 많지만 그 중에서 핵심을 골라 준비하기란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조기유학을 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야 할 네 가지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째, 내 아이는 유학을 가고 싶어하는가. 한국 학생들이 외국에서 살다 보면 문화적 충격을 많이 받는다.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줄곧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부터 시작해 한국과 전혀 다른 교육 방식을 접하는 것까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어려움을 학생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아이들이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 그리고 또래 집단과 잘 융합하고 조화할 수 있는 사회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에게 유학을 강요하는 것보다 학생의 자발적 의지와 동기 부여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가 한국의 교육제도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나아가 공부에 대한 흥미를 느낀다면 조기유학은 반 이상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내 아이의 객관적인 능력을 잘 파악하고 있는가. 좋은 사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현재 재학 중인 학교 성적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영국 학교들은 학생의 지난 2~3년의 학생기록부, 성적표 등을 학교 등록 시 요구한다. 또 교사들의 추천서나 학생의 리더십 등이 학생의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평가지표가 된다. 영어, 과학, 수학 등은 영국에서도 기초 핵심과목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충분한 자질을 갖춘 학생이 뛰어난 성과도 거둘 수 있고 영어로 인한 학력 차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세심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셋째, 어학 준비는 미리 하고 있는가. 영국 유학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학’이다. 영어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현지 교육 과정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고 나아가 친구들과 의사소통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이 영국에 도착해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 역시 어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유학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1년 전부터는 꾸준히 기초 영문법과 말하기를 공부해야 한다. 영국 정통영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영국인에게 직접 교습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넷째, 장기적인 안목으로 유학의 시기를 결정했는가. 나이가 어릴수록 언어 습득 능력이 높고 시간적으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어학 문제에서 한결 자유롭다. 특히 Year 6(만 10세) 이하는 영어 과정이나 국제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본 과정(main stream)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상급학교 진학 시 유리할 수 있다. 또 유학생활을 하면서 불거지는 문제점들을 어릴 때부터 경험해보고 동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배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영국에서 의과 과정을 가려고 할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좀 더 어린 나이에 준비해야 한다. 영국 유학의 준비 시기는 길게는 1년, 짧게는 4~5개월 정도 여유를 두고 준비해야 하며 ‘이튼(Eaton)’이나 ‘해로우(Harrow)’ 같은 명문학교는 입학 3~4년 전에 미리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영국의 교육제도나 학사 일정과 관련해 아이의 특성에 맞춰 이야기해줄 수 있는 조언자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문 유학원이나 현지 유학을 경험한 학생·학부모 등과 이야기를 나눠 보고 그들의 조언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내놓기만 하면 내 아이가 유학 엘리트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정말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단한 준비 과정과 부모의 정성 어린 관심이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성공적인 유학은 시작이 아닌 준비가 반이다. 그리고 부모와 아이 모두 올바른 관점으로 준비해야 ‘무모한 도전’이 아닌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무한도전’이 될 수 있다. 서동성 브리스톨(영국)ㅣ최효찬〈객원기자·자녀경영연구소장〉
2008.03.06 00:00
사회 이 맛에 산다
[이 맛에 산다]탁구와 배드민턴 동시에 즐긴다디엠패드민턴 동호회 “이건 탁구도 아니고, 배드민턴도 아니여~.” ‘패드민턴(Padminton)’을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빌려 소개하면 이렇다. 탁구 라켓을 들고 있으니 탁구(ping-pong) 같기도 하지만 셔틀콕이 네트를 넘나드니 배드민턴(badminton) 같기도 하다. 패드민턴은 탁구와 배드민턴의 장점만 ‘쏙쏙’ 뽑아 접목한 새로운 스포츠다. ‘디엠패드민턴 동호회(www.padminton.com)’ 회원들은 패드민턴의 장점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좁은 공간에서도, 앉아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탁구대처럼 거창한 부대장비도 필요 없고요. 또 배드민턴과 달리 라켓이 짧아서 콕을 맞추기도 쉽죠. 간편하고 쉽게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야말로 입에 침이 마른다. 게임 방식은 간단하다. 스코어는 3판2선승제로, 세트당 25점을 얻으면 이긴다. 패드민턴의 라켓은 ‘핸들러’라고 부르며, 서비스권과 상관없이 상대 코트에 셔틀콕을 떨어뜨리면 된다. 셔틀콕이 네트를 스치고 넘어와도 상관없다. 대신 서비스는 허리 아래에서 위쪽으로 넣어야 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것은 반칙이다. 탁구나 배드민턴과 마찬가지로 단식, 혼합, 복식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디엠패드민턴의 회원은 15명. 식구는 단출하지만 활동은 야무지다. 동호회에서는 매달 자체적으로 대회를 열고, 전국의 교도소나 소년원에 패드민턴 라켓을 지원하고 있다. 패드민턴이야 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스포츠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패드민턴이 대중화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회원들은 패드민턴을 ‘행복 에너지’라고 말한다. 전신운동이다 보니 운동량이 크고 양손을 쓰기 때문에 균형감각과 손목의 유연성을 기를 수 있다. 그뿐이랴. 라켓으로 셔틀콕을 때릴 때 나는 경쾌한 소리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준다. 이성희〈미디어칸 기자〉 mong2@khan.co.kr
2007.04.17 00:00
화제
테니스+배드민턴+탁구? ‘피클볼 서울 오픈’ 반얀트리에서 개최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제공 배드민턴과 탁구와 테니스를 합친 것 같은 이색 라켓 스포츠 피클볼 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오는 26일부터 나흘간 ‘제1회 피크볼 서울 오픈’ 대회가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Banyan Tree Club & Spa Seoul)의 멀티 코트에서 개최된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스포츠 ‘피클볼 (pickleball)’은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라켓 스포츠로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가 융합되어 배우기 쉽고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다. 피클볼은 탁구채를 연상시키는 전용 라켓(패들)과 구멍이 송송 뚫린 공을 사용하며 11점을 먼저 득점하는 팀이 승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임 진행 속도가 빠르고 배드민턴 코트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으며 간단한 규칙의 라켓스포츠라는 점에서 소규모 그룹 또는 가족 단위, 기존 라켓스포츠를 즐기는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대한피클볼협회 주관으로 개최되는 이번 대회는 총상금 1500만원 규모의 아시아 역대 최대 피클볼 대회다. 국내외 700여 명의 선수와 유명 인플루언서를 포함한 동호인들이 함께 참가하며 대만, 싱가포르, 태국 등 다양한 국가의 선수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제공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송준규 레크리에이션 팀장은 “이번 행사는 대회 관람뿐만 아니라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자리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관람객을 위한 이벤트와 먹거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했다”며 “단풍으로 물든 남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반얀트리 서울의 멀티 코트에서 피클볼의 매력을 느껴 보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피클볼 서울 오픈은 10월 26일 오전 10시부터 6개의 코트에서 경기가 진행된다. 별도의 입장료 없이 누구나 관람할 수 있으며, 공식 후원사인 휠라(FILA)에서 준비한 다양한 선물과 음료 및 스낵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장회정 기자 2023.10.2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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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라켓 하나로 웃긴 익살꾼 ‘통아저씨’의 인생 이야기ㆍ이양승·이은경 부녀 인터뷰 우리는 ‘통아저씨’는 안다. 배드민턴 라켓의 작은 구멍에 몸을 통과시키는, 재미있는 ‘통춤’을 추는 ‘통아저씨’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양승씨(60)는 몰랐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그래서 많은 상처를 떠안은 그를 알지는 못했다. 통아저씨로 우리에게 기억된 지 20여 년 만에 이양승씨를 만났다. 그의 뒤를 잇는 딸, 이은경씨(32)와 함께 무대 밖의 ‘통아저씨’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가로×세로 22cm의 문을 통해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가고 몸을 반으로 접은 상태로 좁은 원통을 통과한다. 진기명기다. 이 정도면 ‘동춘 서커스단’ 저리 가라다. 하지만 정작 이양승씨는 서커스 한 번 구경해보지 못한 산골 촌뜨기였다. 아침이면 소·돼지 여물을 끓여 먹이고 땔감을 한 짐 지어 나르는 것으로 그의 하루가 시작됐다. 이미 오래전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청각 장애인이던 아버지에게 그의 학교생활은 안중에도 없었다. 큰아버지 댁에 얹혀살면서 매를 세 번 맞지 않으면 하루가 지나가지 않을 만큼, 어린 그에게는 녹록지 않은 삶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직후 가난과 서러움이 지겨워 무작정 고향집을 뛰쳐나와 상경했지만 이는 더 큰 고난의 시작이었다. “외삼촌이 서울에서 신문보급소를 운영했어요. 보급소 바닥에서 잠을 자고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신문을 돌렸지. 4년 동안 일했지만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 사실 그때는 돈을 받아야 하는 줄도 몰랐어. 내가 어렸고, 엄마도 없으니까 일만 시킨 거지. 신문보급소 앞에 시경찰국이 있었는데 거기서 밥을 줬어요. 아침에 가서 밥을 먹고는 점심, 저녁까지 싸오는 거야. 그러다 전단지를 돌리면 돈이 나왔어요. 그걸 받으면 호떡을 사 먹고 그랬지.”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렇게 들려준 육십 평생은 애달팠다. 굽이굽이 잠시도 쉴 틈 없이 세파가 몰아쳤고, 그는 맨몸으로 버텨냈다. ‘통아저씨’라는 별칭을 얻으며 한국의 슬랩스틱계를 평정한 그에게는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들이 있었다. 산골 촌놈이 ‘통아저씨’가 되기까지 “머슴이지, 머슴이야. 못된 사람들이야. 어린 것이 뭘 안다고 일만 시키고 돈도 안 주고 말이야.” 그 당시 아이들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구두닦이나 신문팔이, 그도 아니면 ‘아이스케키’를 파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구두닦이는 왼손잡이라 반나절 만에 쫓겨나고 신문팔이를 해도 돈을 벌 수 없었다. 여름이면 얼음과자를 팔다가 울기도 여러 번 울었다고 했다. “날이 더워서 금방 녹는다고 많이 안 줍디다. 하루에 딱 스무 개. 그거 팔고 빨리 들어오라는 거야. 다 못 팔고 녹으면 얼마나 울었던지. 또 남의 구역에 가서 팔다가 걸리면 그쪽 지역 아그들이 다 먹고 두드려 패는 거야. 그러다가 시경찰청 차량경비청에 취직이 됐지. 새벽마다 돈도 못받는 신문돌리기를 하고. 공장 청소하고 아침 먹고 나면 일이 시작되는 거야. 그래도 야간학교를 다녔어요. 가방도 사고 책도 사서 서소문 쪽에 있는 야간 학교에 다녔지. 그런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 그때 공부 좀 더 했으면 이렇게 안 됐으려나….” 그는 착실히 일했다. 자동차 정비기술도 배우고, 당시엔 귀했던 운전면허도 땄다. 그게 인연이 돼 19년 8개월을 한 회사 사장 운전기사로 일했다. 그가 서울로 가면 그도 서울로 터전을 옮겼고 그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다. 사생활도 없이 뼈 빠지게 일을 했지만 20년이 지나도 주머니 사정은 매일 똑같았다. “어느 날 회사에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라는 거야. 그런데 돈이 있어야 양복을 입지. 봉급이나 많이 주나? 겨우 63만원 받았는데…. 당시가 1991년이었으니까 그거 받아서 생활하기가 힘들었지. 밥값도 3천원 주면서 직원들 앞에서 또 생색을 내요. 아들 둘, 딸 둘 키우는 데 63만원이 가당키나 했겠어? 사달라는 거 하나도 못 사주고 학원도 못 보냈지. 그래도 애들이 공부는 잘했어요.” 적어도 사장이 회사에 머무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웠다. 그때마다 회사 옥상에 올라가 운동했던 것이 지금의 ‘통아저씨’가 되는 발판이 되었다. “가진 기술이 있어, 재능이 있어. 할 게 없는 거야. 운전기사 그만두면 갈 곳이 없는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어? 이게 되거든. 그래서 혼자 막 연습을 했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다 연습했어. 방송? 그때는 그런 거 생각지도 못했지. 그냥 밤업소에서 묘기 보여주면 월급보다는 많이 벌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어.” 회사를 그만두고 그간 연마했던 묘기를 밑천 삼아 과감히 ‘업소’에 진출했다. 탁구공에 빨간색을 칠해 코를 만들고 가발을 썼다. 그는 피에로가 됐고, 아내가 옆을 지켰다.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아이코, 무대에서 15분 동안 공연하는데 수입이 괜찮더라고. 그런데 중간에서 자꾸 돈을 떼어먹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공연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건 아닌가 보다’ 싶었지.” 그러던 중 첫 방송 출연의 기회를 잡았다. MBC-TV 프로그램 ‘보통 사람 보통 무대’였다. 적은 분량의 촬영을 하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서커스’에 대한 미련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가 회사생활을 하던 중 방송국에서 섭외 전화가 걸려 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따금 방송 출연을 하면서 회사생활을 하던 중, 그가 ‘통아저씨’로 불리게 된 결정적인 기회를 만나게 됐다. “당시 서세원씨가 진행하던 ‘뒤돌아보지 마’의 촬영이 강원도에서 있었는데, 그렇게 추울 줄 몰랐어요. 무대 뒤에서 공연을 준비하면서 몸을 푸는데 너무 추워서 몸이 꼬이더라고. 아무 생각 없이 한 건데,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무대에서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대박이 난 거죠.” ‘대박’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었다. 각종 방송국에서 러브콜이 날아왔고 여러 업소에서 “통춤 한번 보여달라”라고 하는 통에 전화가 불통이 될 정도였다. 매니저와 운전기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난 월급 많이 줬어요. 밥값도 2만원이나 줬다고요.” 운전기사로 20년간 일하며 당한 수모의 체증이 단번에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산골 촌놈이 방송국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스타가 됐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통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언감생심 돈을 떼어먹는 사람도 없었다. 낮에는 방송 촬영을 하고 밤이면 업소 아홉 군데를 돌았다. 연예인이 아닌지라 몸값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63만원 받던 월급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오랜 시간, 몰아쳤던 태풍이 지나가고 그에게도 봄이 찾아든 것이다. 아직도 업소 공연 캐스팅 1순위 ‘통아저씨’의 묘기에 사람들은 빨리 익숙해졌다. 그래서 그를 찾는 방송은 줄었어도 업소에서의 명성은 여전했다. 거기다 일본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묘기가 더 이상 새롭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일본에 가게 됐어요. 처음 방송에 출연하고 200만원을 받았단 말이야. 그때 일본 니혼 TV와 다리를 놓아준 한국 방송국의 작가가 있었어요. 그 사람한테 돈을 받았지. 그리고 계약서를 보니까 100만 엔을 받았어야 하더라고요. 그게 한국 돈으로 얼마야. 나머지 돈은 그 작가가 싹 챙겨 간 거야. 그래도 일본 TV에서 계속 불러줬어. 여하간 해마다 연말이면 생방송 출연도 하고, 한국 대표로 중국, 미국 등의 대표와 겨루기도 하고 그랬지. 난 한 번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었는데, 평생 그것만 해오던 사람들과 겨뤄도 만날 1등만 했다고, 내가.”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어도 ‘통아저씨’는 여전히 바빴다. 일본에서는 방송 출연을 하고 한국에서는 일본 관광객을 위한 무대에도 서야 했다. 그래서 단 하루도 쉴 수가 없었다. 주말도, 명절도 없었다. 막내딸 이은경씨가 이양승씨를 돕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때는 매니저도 있고, 무대에서 도와주는 분도 따로 있었어요. 약속 시간에 늦게 오고, 심지어 아무 말 없이 안 오고…. 제대로 일하지 않아서 아빠가 속상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도와드린다는 마음에 별 생각 없이 일을 시작하게 됐죠.” 사실 이은경씨가 처음부터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무대에 올라가는 장비가 한둘이 아니기에 짐만 같이 나르고 공연 준비를 도와주면 보통 아르바이트보다 두둑한 수고비를 챙겨 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슬금슬금 그녀가 무대 위에 올라가야 할 빌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뚜껑만 닫아달라’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었어요. 청심환을 먹어야 할 정도였죠. 그 다음은 가방만 닫아달라, 문을 닫아달라며 요구사항이 하나씩 늘어났죠. 그래도 묘기를 배울 마음도 없었고, 엄두도 나지 않았죠. 그런데 아빠와 일본에 다녀온 후 생각이 달라졌어요. 아빠가 그때처럼 멋있어 보인 적이 없었죠.” 이은경씨의 눈에 한국에서의 ‘통아저씨’는 그저 ‘웃긴 사람’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묘기를 보며 재밌어 하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대우’가 달랐다. 적어도 ‘통아저씨’의 묘기를 존중해주고 그 가치를 인정해줬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용기가 생겼다. 이은경씨는 그렇게 해서 스무 살을 훌쩍 넘긴 늦은 나이에 ‘서커스’에 입문했다. 하지만 유연성과 순발력 등은 타고나거나 혹은 오랜 기간 수련 과정을 거쳐야 했다. 더욱이 뻣뻣한 몸을 ‘통아저씨’만큼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때 아빠가 비법을 전수해주셨어요. 그건 목욕탕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거였죠. 목욕탕처럼 따뜻한 곳에서는 근육이 이완되기 때문에 유연성을 키우는 데 아주 효과적이더라고요. 또 매일 집 주변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원통 위에서 균형을 잡고 링을 능숙하게 돌리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보기만해도 아찔한 무대를 완성하기까지 깨뜨린 컵의 수와 부서진 판자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연습할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실제 무대에 오른 후에도 두 번이나 크게 넘어져 살갗이 찢기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아빠는 제가 아빠 없이 묘기를 해도 주목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길 바라세요. 지금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저 혼자 무대에 오를 날이 올 거예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빠가 더 잘되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아빠가 쏟은 노력과 실력을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거든요. 제가 아빠 따라가려면 멀었죠(웃음).” 이양승씨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딸에게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대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주로 공연을 하는 ‘업소’라는 험한 환경에 대한 미안함과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안타까움도 크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옆에서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데 대한 대견스러움이 더 크다. ‘통아저씨’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가족 사실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존경스러운 마음은 딸 이은경씨 또한 갖고 있다. 더 잘하지 못한 죄스러움과 ‘자기관리’가 철저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가 늘 이용만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한다. “한번은 이태원에서 6개월 계약으로 공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몇 달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연을 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돈을 못 받으셨다는 거예요. 빨리 가서 따지자고 했는데, 아빠는 ‘우리가 해줄 거 다 해주고 그때 가서 따지자’라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참다 참다 말을 했는데, 오히려 욕지거리가 날아왔죠. 아빠는 늘 한결같으시거든요. 항상 어디에서건 최선을 다해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 위에서 최고의 묘기를 보여주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시는데…. 그런 아빠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화가 나요.” 그동안 이양승씨의 2남 2녀에게 아버지는 ‘숨겨야 할 존재’였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방 안에서 나오지 마세요”라고 엄포를 놓았고, 아들이 군대에 갔어도 면회 한 번 못 가봤다. 최근에 결혼한 둘째 아들은 10년 동안 연애를 했는데, 며느리는 상견례 당일 시아버지가 ‘통아저씨’라는 걸 알았을 정도다. “처음 업소에서 공연할 때, 길거리 가로등 불빛 아래서 분장을 다 지우고 집에 들어갔어요. 애들한테 창피하더라고. 동네 사람들 볼까 무서웠지. 또 애들도 싫어했고. 그러다 보니 비밀로 하게 됐어요. 방송 출연할 때도 애들한테 안 보여줬어요. 막내는 나랑 같이 다니니까 이제 어쩔 수 없고, 둘째 아들도 결혼식 때 다 들통이 났고. 서른일곱 먹은 큰애나 둘째 딸은 아직도 친구들한테 말을 안 해.” 그런 자녀들의 모습에 서운할 만도 하지만 이양승씨는 아이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내가 해준 게 있어야지. 큰애가 아주 공부를 잘했어요. 유학을 갔다 오면 교수가 될 수 있었지. 근데 유학 보내줄 돈이 어딨어. 둘째랑 연년생이라 대학 등록금도 막막했는데. 자기가 알아서 장학금 타서 학교를 다녔어요. 동생 대학 보내야 한다고 자기는 월급 받는 부사관으로 지원해 7년이나 군 생활을 한 첫째한테는 내가 미안하지.” 한 달 월급 63만원으로 살아야 했던 시절. 아이들의 설움이 오죽했을까. 한번은 정말 돈이 궁해 아이들끼리 합심해 자판기에서 10원짜리를 빼 왔다는 이야기를 요즘에서야 전해 들었다. 지금이야 웃음이 나오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지금이라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을 텐데, 지금이라면 유학도 보내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게 해줬을 텐데….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숨겼어요. 그런데 지금은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이야기를 못하겠더라고요. 사람들은 TV에서만 우리 아빠를 보니까, TV에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줄 알아요. 그들은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지만 듣는 사람한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이양승씨와 이은경씨 부녀는 인터뷰 당일, 약속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일찍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그간 늦는 사람은 여럿 봤어도, 일찍 와도 이렇게 일찍 온 인터뷰이는 처음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뭘 했느냐”라고 물었더니 “몸을 풀었다”라고 한다. 어눌하고, 순박하고, 또 웃기기만 했던 ‘통아저씨’의 첫인상은 그렇게 ‘프로’다운 모습으로 각인됐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부녀의 뒷모습을 보며 리쌍의 ‘광대’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슬퍼도 웃으며 내 모습을 감추는 게 철칙…’이라던 노래 가사가 두 사람의 열정과 오버랩됐다. ‘통아저씨’라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뒤에 감춰진 이양승씨의 눅진한 삶과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은경씨의 진중한 삶. 부녀의 동행에 따뜻한 박수를 아낌없이 보낸다. <■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 / 이성원>
2012.03.08 1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