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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사나이’ 백기완 선생 별세

      한국 ‘진보의 상징’ 백기완 선생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선생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해 왔다. 1993년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대형 걸개그림 앞에서 연설 중인 백기완 선생. 경향신문 자료사진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 선생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백범 김구 선생이다. 그의 조부가 피신하던 백범을 돌보았고, 이후 백 선생은 백범의 영향을 받았고 스승처럼 따랐다. 1950년 6·25가 발발하면서 부모·작은형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온 선생은 이 후 젊은날 농민운동과 나무심기운동, 빈민운동에 힘썼고 1967년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는 이후 ‘통일문제연구소’로 확대됐다. 1973년에는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에 앞장섰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서울지부 의장, 전노협 고문 등을 지내오다,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1974년 3월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12년·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았다. 이 후 2013년 8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7년 대선에 민중후보로 출마했던 백 선생은 야당의 후보 단일화·연립정부 구성을 촉구하며 사퇴했고, 1992년 다시 민중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해 24만표를 얻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인 7월, 출국하는 히딩크 감독과 만난 백기완 선생. 15일 오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있다. 연합뉴스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한 백 선생은 ‘항일민족론’(1971),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등 여러 저작도 남겼다. 당시 선생은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며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라고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평소 축구를 좋아했던 선생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히딩크 감독의 요청을 받아 대표팀 선수들에게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선생은 히딩크 감독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으며, 히딩크 감독은 “진짜 사나이·진짜 한국사람”이라며 존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백 선생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백기완

      이충진 기자 2021.02.15 14:15

    • 시민사회 원로 백기완 선생, 심장 질환으로 9시간 수술

      생활

      시민사회 원로 백기완 선생, 심장 질환으로 9시간 수술

      시민사회 원로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86·사진)이 심장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데 이어 9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통일문제연구소는 23일 “백 소장이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심혈관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고 밝혔다. 백기완소장은 호흡기 질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가슴 답답함과 오한을 호소해 9일 오후 3시쯤 서울대병원에 입원했고, 검사 결과 심장혈관 동맥이 막힌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은 스텐트 시술을 통해 심장에 피가 통하도록 조치했으나 동맥경화가 심해져 급성 심근경색 등 위급한 상황에 이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수술을 결정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백 소장이 폐 호흡기 질환으로 수년째 통원치료를 받았고, 이는 고문 후유증 여파로 진단된 바 있다”며 “최근 정밀검사에서 심장 주요 동맥 3개 중 2개가 완전히 막혀 있으며 나머지 혈관도 거의 막힌 상태로 확인돼 혈관 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수술은 잘 됐으나 출혈 가능성이 있고 회복 기간 중 폐렴 등 부작용도 올 수 있어 며칠간 집중치료실에서 경과를 봐야 한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라고 덧붙였다. 193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백기완 소장은 한국전쟁 때 큰형 등 가족과 헤어졌으며 1960년대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투신했다. 백기완 소장은 1974년 유신헌법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가 옥고를 치렀고 1992년 대선에 ‘민중후보’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백기완 소장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이 된 시 ‘묏비나리’ 원작자로도 알려졌다.

      손봉석 기자 2018.04.23 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