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상거래의 최전선 시애틀](https://img.khan.co.kr/weekly/2025/04/18/news-p.v1.20241206.b31d900efbe34f45b84acd57ab89d096_P1.jpg)
국제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8) 21세기 상거래의 최전선 시애틀미국 시애틀에 있는 현대팝예술박물관 / 손호철 제공 <영하의 삶>(Life Below Zero). 알래스카 오지의 삶을 찍은 이 프로그램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말코손바닥사슴 등을 사냥해 식량을 조달하고, 거의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에스키모 원주민이나 백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들도 눈썰매의 기름값 등 최소한의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덫을 놓아 비버, 스라소니 등을 잡아 모피를 손질해 판다. 미 서부 북쪽 끝에 있는 시애틀 근처에는 컬럼비아강이 흘러간다. 포틀랜드를 떠나 시애틀 방향으로 2시간을 달려 컬럼비아강 입구에 이르러 좌회전해 20분 정도 가면 포트 니스퀄리(Fort Nisqually)라는 요새가 나타난다. 미 서부의 남쪽인 캘리포니아를 개척시킨 것이 금이었다면, 북쪽인 시애틀 지역과 그 북쪽인 캐나다를 개척시킨 것은 비버, 수달 등 이 지역에 많은 동물 모피였다. 17세기부터 유럽에는 상류층 부인들을 중심으로 모피 옷이 인기를 끌었고, 그중 최고로 친 것이 물가에 댐을 만들고 사는 비버였다. 유럽비버가 남획으로 빠르게 멸종하자, 유럽의 모피업자들은 미 대륙으로 눈을 돌렸다. 특히 미 대륙의 비버는 유럽비버보다 커서 모피 옷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서인도회사(DWIC)는 뉴욕지역에 ‘식민지(colony)’를 만들고 비버를 수집했다. 또다시 남획으로 동부지역 비버가 멸종하자, 모피회사들은 서부로 향했다. 일부 회사는 러시아영토였던 알래스카로 진출했지만, 런던에 있는 허드슨 베이 컴퍼니(HBC)는 1800년대 초 워싱턴주 컬럼비아강 입구에 모험심이 강한 개척자들을 선발해 보냈다. 시애틀에 있는 현대팝예술박물관. 손호철 제공 e커머스의 최전선 ‘아마존’ 자리 잡아 모피를 찾아 먼 길을 이동해 미지의 땅인 이 지역에 도착한 이들은 자신들이 생활하고, 외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요새를 지었다. 그 요새가 바로 포트 니스퀄리다. 이들은 요새가 완성되자, 비버 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침입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이들을 공격했다. HBC가 택한 대안은 교역, 다시 말해 원주민과의 물물교환이었다. 이들은 원주민으로부터 모피를 사들이는 대신 거울, 칼, 도끼, 옷 등 원주민들이 본 적이 없었던 유럽 문명의 상품들을 파는 물물교환을 했다. 포트 니스퀄리는 서구 자본주의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문물을 수집하고 생산하던 원주민들의 ‘생존경제’를 만난 ‘19세기 세계 상거래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비버를 필요한 만큼만 잡던 원주민들은 이곳을 통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통합됐고, 유럽 귀부인들의 사치를 위해 마구잡이로 비버들을 잡기 시작했다. 이는 또다시 멸종위기로 이어졌고, HBC는 이 요새를 비버 수집소로부터 농사를 짓는 농업 전진기지로 바꿔야 했다. 20세기 들어 복원한 요새를 보고 있으면, 끊임없는 탐욕으로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는 자본주의에 의해 생겨난 최근의 유례없는 생태위기, 기후위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포트 니스퀄리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면 시애틀이다. 시애틀 하면 우리는 세계적인 커피체인 스타벅스를 떠올리지만, 시애틀을 상징하는 것은 스타벅스가 아니다. 60㎞ 떨어진 포트 니스퀄리가 ‘19세기 세계 상거래의 최전선’이었다면, 시애틀에는 ‘21세기 상거래의 최전선’이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 쇼핑, 즉 e커머스의 최전선인 아마존이다. “아버지, 돈 좀 빌려주세요. 지금 인터넷 사용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어서 인터넷서점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름은 아마존입니다. 아마존이 A로 시작하는 만큼 웹사이트에 제일 앞에 나올 것이고요. 아마존은 세계에서 제일 큰 강이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제일 큰 서점 이름으로 어울리니까요.” 창업을 준비하던 제프 베이조스는 1994년 아버지에게서 30만달러를 빌려 시애틀에 한 임대주택 차고에서 아마존을 창립했다. 아마존은 인류 역사에 전자상거래라는 유통혁명을 가져왔다. 21세기 최첨단 상거래인 e커머스의 왕국인 아마존 본사가 시애틀에 있다. 손호철 제공 21세기 최첨단 상거래인 e커머스의 왕국인 아마존 본사가 시애틀에 있다. 손호철 제공 ‘인간적 플랫폼 경제’는 불가능한 걸까 아마존이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다. 계속 돈이 들어가면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고, 부도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최고의 서점체인인 반스앤드노블이 그의 투자 제의를 거절하며 100만달러에 회사를 팔라고 했다. 베이조스는 “당신들은 과거이고 아마존은 미래”라고 장담했다. 그의 장담대로 아마존은 성공해 세계 최고의 서점이 됐다. 이 성공에 기초해 판매 품목을 늘리면서 아마존은 이제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2020년대 초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은 비대면 상거래인 전자상거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전자상거래는 2024년 현재 세계 전체 소매구매의 20%를 넘어섰다. 27억명이 넘는 사람이 온라인쇼핑을 이용하고 있으며, 전자상거래매장이 2669만개에 달하고, 온라인 상거래 규모가 6조3000억달러다. 미국의 경우 온라인 상거래가 2024년 기준으로 1조2600억달러인데 이중 아마존이 37.6%를 차지해 2위인 월마트 6.4%를 압도하고 있다. 투자 제의를 거절한 반스앤드노블은 점점 쪼그라들어 기업가치가 2억달러에 불과하지만 아마존은 2조달러다. 세계로 이어졌던 당시의 거래네트워크 지도 / 손호철 제공 시애틀 중심가에 있는 아마존 본사 앞에는 여러 거울을 이어 붙여 지구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공 모양의 조형물이 2개 설치돼 있다. 그 앞에 서자 문득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다음 해(2021년) 작품상, 감독상 등 아카데미상을 휩쓴 <노매드랜드>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2008년 월스트리트발 경제위기로 집을 잃은 한 노인이 미니버스에 짐을 싣고 미국을 유랑하는 사회고발 영화다. 주인공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기저기서 허드렛일을 하는데 전국 각지에 있는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고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존은 생산을 하지 않고 사람들이 접촉하는 플랫폼으로 돈을 버는 ‘플랫폼 경제’의 전형으로, 창립자 베이조스는 재산이 230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다. 하지만 <노매드랜드>가 보여주듯이, 초단기 노동자를 양산하고 수많은 소상공인의 생계를 빼앗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물류창고는 냉난방이 되지 않고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없어 병에 소변을 눠야 하는 등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이직률이 연 150%에 달한다. 긴급구조대에 따르면 1년이면 38명이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해를 한다. 뉴욕타임스는 아마존을 인간의 ‘노동력을 태워 달리는 폭주 자동차’라고 비판한 바 있다. 21세기 ‘플랫폼 경제 시대’에 ‘인간적 플랫폼 경제’는 불가능한 것인가? 포트 니스퀄리가 ‘모피 거래 제국의 최전선’이었다는 내용의 포스터 / 손호철 제공 모피 옷 제작용 비버를 잡기 위해 백인들이 19세기 초 시애틀 근처에 설치했던 요새 / 손호철 제공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2025.04.18 1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