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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가 접수한 다저스, ‘확률’에 빠지다
다저스의 새 프런트는 야구의 수학자로 불릴 만큼 숫자에 밝은 이들이다. 앤드류 프리드먼 야구담당 신임 사장은 월스트리트 출신이고, 새로운 단장은 MIT와 UC버클리를 나온 ‘숫자 장인’ 파르한 자이디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들의 스프링캠프는 한창 진행 중이고 메이저리그 역시 본격적인 스프링캠프 돌입을 앞두고 있다. 선수들에게는 기량 점검의 시간, 팬들에게는 응원 준비의 기간이다. 어떤 새로운 선수가 활약을 펼칠지 기다리는 시간은 소개팅을 앞둔 청춘의 두근거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류현진이 뛰고 있는 LA 다저스는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이저리그 구단이다. 그런데 새 시즌을 맞는 다저스는 조금 낯설다. 류현진은 그대로지만 많은 선수들이 바뀌었다. 장타를 펑펑 때려주던 유격수 핸리 라미레스와 중견수 맷 켐프가 떠났다. 황소를 닮은 커다란 눈망울과 치타만큼이나 빠른 발로 국내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2루수 디 고든도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됐다. 류현진 뒤를 받쳐줄 센터라인, 2루수-유격수-중견수가 모두 바뀌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단장 파르한 자이다(왼쪽)가 1월 7일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새로 영입한 유격수 지미 롤린스를 소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마운드 역시 변화가 심하다. 3선발 류현진의 뒤를 이을 4~5선발이 모두 교체됐다. 불펜진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염에 불이 붙을 것처럼 ‘불쇼’를 이어갔던 브라이언 윌슨이 방출됐고, 베테랑 불펜 투수 조엘 페랄타가 합류했다. 디 고든 트레이드 때 데려온 크리스 해처도 불펜에 투입된다. 꽤 커다란 변화다.
변화를 이끈 것은 다저스의 새 프런트다. 야구의 수학자로 불릴 만큼 숫자에 밝은 이들이다. 앤드루 프리드먼 야구담당 신임 사장은 월스트리트 출신이다. 툴레인대학을 졸업해 베어스턴스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투자은행에서 만난 동료들이었던 매튜 실버맨, 스튜어트 스턴버그 등과 함께 메이저리그 구단 탬파베이 경영에 참여했고, 실버맨을 중심으로 탬파베이를 인수한 뒤 프리드먼은 탬파베이 단장으로 일했다. 1998년 창단 이후 10시즌 동안 꼴찌를 도맡았던 탬파베이는 이들이 활약하기 시작한 2008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며 대반전에 성공했다.
다저스 프런트의 수뇌부는 프리드먼 신임 사장을 중심으로 ‘수학자’들로 꾸려졌다. 새로운 단장은 파르한 자이디다. ‘머니 볼’로 유명한 오클랜드의 부단장 역할을 했다. MIT와 UC버클리를 나온 ‘숫자 장인’이다. 오클랜드에서 빌리 빈을 보좌할 때 ‘빌리 빈의 세이버메트리션 왕’이라고 불렸다.
수비 센터라인과, 제4,5선발 교체
프리드먼 사장-자이디 단장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에 ‘숫자 장인’들이 추가됐다. 샌디에이고 단장에서 물러난 조쉬 번즈 역시 세이버메트리션에 능하다. 번즈는 다저스의 야구 담당 부사장이 됐다. 다저스 육성총괄로 영입된 게이브 케플러는 탬파베이 외야수 출신이다. 최근까지 FOX스포츠에서 야구 해설을 했다. 케플러 역시 선수시절 야구 통계에 무척 강한 선수였다.
야구의 전문적인 통계를 다루는 일을 두고 세이버메트릭스라고 한다. 미국야구학회(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의 줄임말인 SABR에 메트릭스를 더한 말로 야구 통계의 대부격인 빌 제임스가 만들었다. 세이버메트릭스를 잘 다루는 이를 세이버메트리션이라고 한다. 다저스를 이끄는 프런트의 수장들은 이들 세이버메트리션으로 꾸려졌다.
앞선 단장이었던 네드 콜레티는 ‘전통파’에 속한다. 숫자보다는 전통적인 스카우트 방식을 선호한다. 정량적 평가보다 정성적 평가에 가치를 둔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류현진을 영입한 결정은 ‘대박’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름값 높고 몸값 비싼 불펜 투수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올 겨울 다저스는 ‘확률 게임’에 푹 빠졌다. 다저스가 팀 구성에 있어서 대대적인 ‘개각’을 추진한 것 역시 ‘확률’을 위해서다. 야구는 확률 게임이다.
4선발 브랜든 매카시는 2005년 데뷔 이후 통산 52승65패를 기록했다. 단 한 번도 시즌 10승을 거둔 적이 없다. 2013시즌에는 애리조나에서 5승11패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중반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뒤 7승5패를 거둬, 앞서 애리조나에서 따낸 3승과 함께 처음으로 10승 투수가 됐다. 통산 평균자책 역시 4.09다.
그런데, 감춰진 숫자가 있다. 매카시는 볼넷을 주지 않는다. 지난 시즌 9이닝당 평균 볼넷이 1.5개였다. 양키스 성적만 따지면 1.3개다. 볼넷 안 주기로 유명한 류현진이 1.7개다. 클레이튼 커쇼도 지난 시즌 1.4개였다. 볼넷을 주지 않는 투수는 ‘계산’이 가능하다. 맞아 나가는 타구는 수비로 커버할 수 있다.
5선발 후보 브렛 앤더슨은 더욱 심각하다. 2라운드 지명의 유망주였지만 2011시즌 이후 단 한 번도 100이닝을 넘긴 적이 없다. 최근 3시즌 동안에는 시즌당 평균 40이닝 투구에 그쳤다. 툭하면 부상을 당했다. 2011년에 토미존 수술을 받았고 2013년에는 발이 부러졌다. 기대를 모았던 2014시즌 역시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선발등판 8번에 1승3패(평균자책 2.91)에 그쳤다.
제4,5선발 감춰진 숫자서 가능성 찾아
역시 ‘확률’이다. 앤더슨의 부상은 2011년 통과의례와도 같은 토미존 수술을 제외하면 발, 손가락 등 투구와 관계없는 부상이다. 단지 ‘불운’했을 뿐이고, 확률로 따지자면 이제 불운은 끝날 때가 왔다. 앤더슨은 유망주 시절부터 ‘터지면 무서운 투수’로 평가받아 왔다.
둘의 영입엔 한 가지 숨은 이유가 더 있다. 매카시와 앤더슨 모두 오클랜드에서 뛴 경험이 있다. 파르한 자이디 단장이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확인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
불펜에 새로 추가된 투수 조엘 페랄타도 독특하다. 조엘 페랄타는 38세의 베테랑 불펜 투수다. 2014 시즌 69경기에 나와 3승4패, 방어율 4.41을 기록했다. 속구의 평균 구속이 90마일 언저리로 빠른 편은 아니지만 효과적인 움직임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야구 통계 중에 Babip라는 항목이 있다. 인플레이 타구의 타율(혹은 피안타율)로 풀이되는데, 페어지역으로 떨어진 타구 중 얼마나 안타가 되느냐의 확률 계산이다. 이 Babip는 ‘운’을 평가하는 요소다. 이게 높으면 공교롭게도 수비수가 없는 쪽에 공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페랄타는 2014시즌 Babip가 0.307로 자신의 통산 평균 0.267에 비해 꽤 높았다. ‘평소의 운’만 돌아온다면 페랄타는 단단한 불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저스는 야수진 구성에 있어서도 수비 강화에 초점을 뒀다. 골든글러브를 4차례나 받은 유격수 지미 롤린스가 영입됐고, 수준급 수비를 보이는 2루수 하위 켄드릭이 센터라인을 지킨다. 일명 미트질이라 불리는 프레이밍 기술이 뛰어난 포수 야스마니 그란달이 포수진에 더해졌다. 중견수를 맡을 다저스 최고 유망주 조크 페더슨은 빼어난 수비능력을 자랑한다.
타자는 10번 중 3번만 안타를 때려도 되는 30%의 세계지만, 수비는 98% 이상의 확률로 성공해야 하는 세계다. ‘숫자 장인’으로서는 당연히 집중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다저스는 공격보다 수비를 택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LA타임스의 스티브 딜벡은 지난해 칼럼을 통해 “다저스를 숫자 괴짜들이 접수했다”며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교실 뒤에 앉아서 계산기나 두드리던 녀석들”이라고 다저스 수뇌부를 비꼬았다. 딜벡은 “그들이 야구에 대해서 어떤 자산과 정보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게 됐다. 이제 내 노트북이 바이러스 때문에 고장 나면 어디로 가져가면 되는지 안다”고 한 방 먹였다.
이에 대해 자이디 단장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이디 단장은 이 칼럼이 나온 뒤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스티브 딜벡 기자님 오셨나요? 저 노트북 고쳐드리려고 드라이버 갖고 왔는데요”라고 말했다. 일단 1차전은 자이디 단장의 판정승이라는 평가다. 진짜 승부는 시즌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다.
이용균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2015.02.02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