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참회 고백](https://img.khan.co.kr/newsmaker/981/20120626_981_A81a.jpg)
문화/과학 북리뷰
[북리뷰]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참회 고백필자가 서울대 법대를 다니던 1970년대에는 경제활동에 대해선 정부가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고 보는 ‘정부 간섭주의’가 정설로 자리 잡고 있었다. 1979년에 미국에 유학을 간 필자는 행정법을 수강했다. 우리와 달리 미국 행정법은 행정절차와 규제행정이 주된 내용인데, 그 중에 ‘규제 해제’에 관한 비중이 컸다. 당시는 카터 행정부가 항공산업에 대한 규제를 해제한 직후였다. 공익과 소비자를 위해선 자유경쟁이 필수적이고, 정부 규제는 독과점을 초래해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경쟁에 뒤진 이스턴 항공사는 파산했는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미국인들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이남규 옮김·기파랑·1만3000원 1980년 대통령 선거 시즌이 시작되자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감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감세를 통해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주장은 그 때 처음 들어보았다. 레이건 후보는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필자는 솜이 물을 빨아 들이듯이 ‘규제 해제’와 ‘감세’라는 독트린에 빠져들었다. 케인스 대신에 하이에와 밀튼 프리드먼이 나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말았다. 저자 나카타니 이와오는 닛산 자동차에서 근무하다가 하버드에 유학을 가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고 일본에 돌아와서 대학에서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을 전파했다. 고이즈미 정권이 들어서자 저자는 일본 경제 ‘구조개혁’에 직접 참여해서 미국식 자유주의 경제논리를 일본에 접합시켰다. 그러자 일본 기업의 전통이던 종신고용이 무너졌고, 자유무역 추세에 따라 일본의 제조업은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났고, 빈부의 차이가 커졌다. 불과 10여년 사이에 일본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했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의 ‘참회와 전향’이라고 했다. 자신이 미국 유학을 통해 받아들였던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은 원래 잘못됐고, 그것을 일본에 전파하고 시행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주도한 구조개혁이 일본인을 행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자율적으로 굴러간다”는 주장은 “계급사회 엘리트들의 암묵적인 생각”일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에 남아있는 기득권 구조에 메스를 대는 동시에, 시장 메커니즘이나 글로벌 자본주의가 가진 폭력성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역수로 잡아 일본이나 세계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 자본주의가 폐단이 많다고 역설한다. 글로벌화에 따른 빈부 격차 확대는 “‘시장의 실패‘에서 유래하는 것이기보다는 글로벌 자본주의 그 자체에 내재된 본래적 기능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일본이 미국식 개혁을 추진한 결과는 비참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 등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나오는 제품과 경쟁을 해야 했던 기업들은 ‘격차가 의욕을 낳는다’는 사상에 기초해서 회사 종업원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분단형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로 일본은 미국에 이어 빈곤층의 비율이 가장 높은 세계 제2위의 ‘빈곤국가’가 되고 말았다. 저자는 2008년 금융공황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인류보편의 원리’였던가?”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쿠바와 부탄의 예를 들면서, 국민의 행복은 물질적 풍요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일본이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폐기하고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재평가한 대목이 흥미롭다. 저자는 미국이 보기 드문 ‘이념형 종교국가’라서 실패했다고 본다.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이라크 전쟁은 그러한 성격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서 생성된 민주적 시스템인 시장 메커니즘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의’라고 믿고 있다고 꼬집는다. 덧붙이자면, 필자는 아직 이 책의 저자만큼 시장자본주의를 불신하고 있지는 않다. 이상돈
2012.06.19 1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