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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의 기억창고를 걷다… 광주 양림동 근대문화역사마을

      양림동은 헌책방 한쪽에 꽂아 놓은 고서(古書) 같은 동네다. 세월의 뒤안길에 숨어 낡고 허름하지만, 켜켜이 쌓인 먼지 툭툭 털어내면 잊혀선 안 될 고귀한 명소들이 구석구석 박혀 있다. 100년 전 시간이 멈춘 곳, 근대의 시간이 오롯이 살아 숨쉬는 곳. 선교사들이 광주 선교의 전초 기지로 삼았던 양림동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오웬 기념각 광주광역시 남구에 속한 양림동은 사직산과 양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동남쪽 언덕배기에 자리한 마을이다. ‘양림(楊林)’은 버드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마을이라 해서 ‘양촌(楊村)’과 ‘유림(柳林)’을 합쳐 지어진 것.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은 교회를 열고 학교와 병원을 세워 ‘광주의 예류살렘’ ‘서양촌’이란 별칭이 따른다. 양림동이 근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목포를 거쳐 광주에 정착해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에 만들어진 기독교 유적과 우리네 전통문화 유적이 좁다란 골목을 따라 오롯이 남아 있다. 오웬기념각을 중심으로 1960년대 초까지 양림동은 광주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지였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서 헌신하고 묻히기를 원했다. 호남신학대 뒷산에는 선교사와 가족들이 부활을 꿈꾸며 안식하고 있다. 그 옆으로 호남 지방 순교자 850명을 기리는 기념공원이 자리한다. 당시 양림동은 광주 지역 부호들이 선망하는 동네이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양림산 기슭에 터를 잡았다. 그중 광주시 문화재로 지정된 최승효 가옥과 이장우 가옥이 대표적이다. 최승효 가옥은 ‘사동 최 부자’로 알려진 최명구의 장남 최상현이 살던 곳이다. 동강학원과 나주 동신대학교 창립자인 이장우 가옥은 양파 정낙교의 집터였고, 1899년 정병호가 지은 집이다. 100년을 훌쩍 남긴 한옥이 전쟁과 근대화, 개발 속에서 온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근대와 현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중첩돼 공존하는 곳, 양림동 탐방은 곧 시간 여행이다. ‘개화 1번지’ 양림동은 기독교 유적을 둘러보는 데서 시작된다.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일행은 목포에서 배를 타고 나주를 거쳐 광주 양림동에 들어와 12월21일 선교부를 열고,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배유지(유진 벨) 목사에 의해 첫 예배를 드린다. 양림동에 기독교 역사가 물꼬를 튼 역사적 순간이다. 책이들이 남긴 흔적 중 하나가 병원이다. 제중병원은 광주뿐 아니라 19세기 말 대한제국 근대화와 함께 선교사가 들어오면서 평양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만들어진 병원 이름이다. 1884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병원인 ‘광혜원’을 1886년 고종이 ‘민중을 널리 구제한다’는 뜻으로 고쳐 지었다. 1905년 배유지 선교사 임시 사택에서 시작된 병원은 1940년 일제에 의해 폐쇄됐다가 1951년 재개원해 결핵 퇴치에 앞장섰고, 현재 광주기독병원으로 운영 중이다. 제중병원의 탄생 배경에는 오웬이라는 인물이 숨어 있다. 1898년 선교사로 한국에 온 그는 배유지 선교사와 함께 목포 선교부를 개설하고 의료 사역을 담당했다. 이후 1904년 12월 배유지 선교사와 함께 광주 선교부를 개설한 후 복음전도사역에 전념했다. 오웬은 그러나 전남 장흥에서 폐렴에 걸려 1909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오웬의 할아버지와 친지들의 성금으로 1914년 지어진 오웬기념각은 기독간호대학 내에 있는 광주 신문화의 발상지다. 기독교와 관련된 모든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고, 1920년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김필례가 이곳에서 음악 발표회를 가졌다. 이는 광주 최초의 개인 독주회다. 네덜란드식 벽돌 쌓기로 지어진 기념각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당시의 정서에 의해 남녀 출입구가 따로 만들어진 점이 이채롭다. 드라마 이 이곳에서 촬영됐고, 기념각 옆에 광주 최초의 교회인 양림교회가 있다. 오웬기념각 맞은 편 어비슨기념관도 둘러보자. 어비슨은 1937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기 전까지 의료와 농업, 문맹 퇴치에 힘쓴 인물. 1층 기념관에서 그의 업적을 엿볼 수 있다. 양림산 기슭 호남신학대에 터를 잡은 우월순(wilson) 선교사 사택도 필수 코스다. 양림교회 사거리에서 수피아여학교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호랑가시나무’ ‘우월순 선교사 사택’ 표지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100m 거리의 산 중턱에 자리한 사택은 광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다. 우월순 제중병원장은 1908년 광주 최초로 장애아와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 사역을 이곳에서 시작했다. 사택에는 400년 수령의 호랑가시나무가 아카시나무, 왕버즘나무, 팽나무 등 100년을 훌쩍 넘긴 노거수와 함께 숲을 이루고 있다. 사택 뒤편 선교사 묘원에 있다. 우월순 선교사 사택 수피아여학교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제니 스피어를 기념하기 위해 1911년 그의 언니가 헌금한 돈으로 설립됐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수피아 홀과 윈스보로우 홀, 배유지 기념예배당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은 선교의 근거지이자 여성 교육의 요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활용됐다. 그만큼 수난도 많았다. 1919년 3·1만세운동 사건으로 일시 폐교,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무기 휴교, 1937년 신사 참배 거부로 폐교당했는가 하면 광복 후에는 1947년 5월까지 미 군정청이 점유했고, 6·25전쟁 때는 북한군이 사용하기도 했다. 양림동에는 서양 건축물에 뒤지지 않는 한옥도 있다. 민속길에 자리한 이장우 가옥은 1899년 정병호가 지은 조선시대 반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안채, 사랑채, 부속채, 행랑채, 문간채, 우물, 장독대, 정원, 텃밭 등이 가지런히 배치돼 있고, 500살을 훌쩍 넘긴 팽나무가 당당하게 가지를 뻗고 있다. 집터 아래로 양림천이 흐르고, 멀리 무등산이 그림처럼 다가오는 풍광이 멋스럽다. 최승효 가옥 양림산 동남쪽 끄트머리에 터를 잡은 최승효 가옥은 독립운동가 최상현의 집이다. 1921년에 지어진 이 집은 당시 압록강 근처에서 구해온 목재를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상현은 독립운동자금과 빈민구제에 힘쓴 인물. 현재 설치미술가 최인준이 문화 공간으로 꾸민 이 가옥은 양림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끌어다 만든 연못이 운치 있다. ‘오랫동안 맑은 바람이 부는 곳’이란 뜻의 ‘백세청풍’이란 편액이 눈길을 끈다. 양림동 79번지(불로동 163번지)에는 정율성 생가가 있다. 정율성은 광주가 낳은 항일운동가이자 중국 최고 인민 음악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중국 아리랑’이라 불리는 ‘옌안송’을 비롯해 가곡·합창·동요·영화 음악 등 360곡을 남겼다. 그가 남긴 ‘팔로군 행진곡’은 ‘중국인민해방군가’가 됐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율성로’에는 거리 전시관이 조성돼 있다. 이장우 가옥 이장우 가옥에서 골목을 빠져나오면 시인 김현승의 호 ‘다형(茶兄)’에서 이름을 따 온 다형다방이 길모퉁이에 앉아 있다. 무인카페로 운영되는 자그마한 다방은 나그네의 발품을 잠시 쉬게 하는 곳. 무등산과 양림동, 교회 첨탑, 플라타너스, 대숲 위로 날아오르는 까마귀떼 등 그의 시에 등장하는 옛 양림동 풍광을 한 잔의 차와 함께 음미해 본다. 다형다방 양림동 골목 귀 띔 ■주변 볼거리:무등산, 전통문화관, 국립5·18민주묘지, 5·18자유공원, 광주김치타운, 남도향토음식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충장사, 원효사, 광주호 호수생태원, 서창향토문화마을 등 ■맛집:한정식, 보리밥, 떡갈비, 오리탕, 광주김치가 광주 5미(味)에 속한다. 한정식은 금다연(062-385-0002)·조선한정식(062-365-6822), 보리밥은 쉬어가는 보리밥집(062-222-0208)·사계절(062-222-8848), 광주김치는 성근식품(062-956-9985), 떡갈비는 송정떡갈비(062-944-1439)·빛고을떡갈비(062-944-6042), 오리탕은 영미오리탕(062-527-0248)·영광오리탕(062-528-5678)이 유명하다. 이외 증심사 입구 전북식당(보리밥, 062-227-1449)과 조선옥(굴비한정식, 062-654-3322), 정자골(돌솥간장게장정식, 062-673-7003), 우미추어탕(추어탕, 062-369-1171) 등이 있다. ■체험:의재미술관(062-432-1318)에서는 무등산 춘설차 만들기 체험행사를 운영한다. 녹차 만들기(6월까지)와 떡차 만들기(6~8월) 홍차 만들기(8~9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허백련 유적지를 둘러본다. 광주김치타운(062-613-8222)과 남도향토음식박물관(062-575-8883)과 빛고을공예창작촌(062-223-7040) 등에서도 각각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의:광주남구청 문화관광과 (062)607-2331, 광주광역시 관광진흥과 (062)613-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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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 글·사진 윤대헌 기자 2015.04.13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