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포토] 남북콤비 장우진과 차효심, 한국 임종훈-양하은조 격파](https://img.khan.co.kr/news/2018/12/14/l_2018121401001370900126191.jpg)
스포츠
[경향포토] 남북콤비 장우진과 차효심, 한국 임종훈-양하은조 격파... 1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2018 ITTF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 혼합복식 4강전 한국 임종훈-양하은조와의 경기에서 힘찬 공격을 하고 있다. 2018.12.14 ...
이석우 기자 2018.12.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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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포토] 남북콤비 장우진과 차효심, 한국 임종훈-양하은조 격파... 1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2018 ITTF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 혼합복식 4강전 한국 임종훈-양하은조와의 경기에서 힘찬 공격을 하고 있다. 2018.12.14 ...
이석우 기자 2018.12.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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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식, 양하은 탁구국가대표 최종선발전 1위... 등 ‘노장 3인방’이 사실상 은퇴한 자리를 신세대 에이스들이 모두 메우게 됐다.대한항공 양하은이 18일 홍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3 탁구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1위에 오르며 여자탁구...
김창영 기자 2013.01.18 19:31
스포츠
여자탁구 기대주 양하은 IB스포츠와 메니저먼트 계약... 양하은(18·대한항공)이 국내 최대 스포츠 마케팅사인 IB스포츠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양하은은 키 1m71, 몸무게 60㎏의 뛰어난 신체조건과 특유의 침착함과 성실함으로 중학교 2학년 때 2007년...
김창영 기자 2012.04.04 14:08
스포츠
오스트리아오픈 탁구 양하은 U-21 단식 우승... 여자 탁구 차세대 에이스인 양하은(세계랭킹 27위·흥진고)이 25일 오스트리아 슈베하트에서 열린 2011 국제탁구연맹(ITTF) 프로투어 오스트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 21세 이하(U-21) 결승전에서 모리조노...
김창영 기자 2011.09.25 22:13
스포츠종합
장우진·양하은, KTTL 원년 코리아리그 남녀 최고의 별KTTL 원년 MVP를 받은 장우진(왼쪽부터)과 윤주현, 문현정, 양하은 | KTTL 제공장우진(27·국군체육부대)과 양하은(28·포스코에너지)이 프로탁구 원년 남·녀 최고의 별로 선정됐다. 한국프로탁구리그(KTTL)는 8일 수원의 스튜디오T에서 열린 2022 두나무 KTTL 대상시상식에서 코리아리그(1부) 남·녀 최우수선수(MVP)에 장우진과 양하은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KTTL 최초의 MVP 수상자는 탁구 기자단 투표로 결정됐다. 코리아리그 남자부의 장우진은 12표 중 절반인 6표를 획득해 5표에 그친 라이벌 안재현(23·삼성생명)을 간발의 차로 제쳤다. 장우진은 팀 성적에선 국군체육부대가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개인 단식에서 32승4패로 압도적인 1위로 선전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생명의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 통합 우승을 이끈 에이스 안재현으로선 아쉬운 결과일 수 있다. 장우진은 MVP와 개인 단식 최다승 2관왕에 오르면서 총 상금 300만원도 손에 넣었다. KTTL는 MVP 상금이 200만원이고, 감독상과 개인 최다승과 복식 최다승은 각각 100만원이 주어진다. 장우진은 “탁구인 모두가 염원하던 KTTL이 시작한 첫해 이런 상을 받을 수 있어 영광이다. 현장에서 고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공을 돌리겠다”고 말했다. 반면 코리아리그 여자부의 MVP인 양하은은 개인 단식에서 2위(18승3패)에 머무르고도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에서 통합 우승의 공을 인정받았다. 오히려 양하은은 삼성생명과 챔피언결정전에서 단식 2승을 책임진 후배 김나영(17·포스코에너지)과 내부 경쟁을 힘겹게 넘어서야 했다. 양하은은 기자단 투표에서 6표를 받았는데, 김나영이 4표로 만만치 않은 지지를 받았다. 양하은은 “KTTL을 처음 시작할 땐 우승도 MVP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음 시즌에도 잘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코리아리그 남녀 감독상은 팀 성적에 따라 우승팀인 삼성생명 이철승 감독(12표 중 11표)과 포스코에너지 전혜경 감독(12표 중 12표)에게 돌아갔다. 내셔널리그 남자부 MVP 표심도 마지막까지 예측이 쉽지 않았다. 정규리그 1위이자 포스트시즌 준우승팀인 제천시청 윤주현(33)이 6표로 포스트시즌에서 유일하게 역전 우승을 거둔 산청군청 천민혁(29)을 1표 차이로 따돌리며 MVP로 선정됐다. 내셔널리그 여자부에선 수원시청 문현정(38)이 선수로는 유일하게 만장일치 MVP가 됐다. 문현정은 개인 성적으로는 단식에서 다승 1위(26승2패)를 거뒀고, 팀 성적은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 통합우승의 성과를 냈다. 내셔널리그 감독상은 산청군청 이광선 감독(6표), 수원시청 최상호 감독(9표)이 뽑혔다. 개인 최다승과 복식 최다승은 투표가 아닌 정규리그 기록으로 수상자가 결정됐다. 코리아리그 남녀부에선 장우진과 이은혜(22승5패·대한항공), 내셔널리그 남녀부에서는 윤주현과 문현정이 개인 최다승으로 이름을 올렸다. 복식 최다승은 코리아리그 남녀부 이상수-조대성(11승6패·삼성생명), 최효주-김지호(9승3패·삼성생명)가 각각 주인공이 됐다. 내셔널리그 남자부는 조재준-서홍찬(산청군청)과 함소리-이정호(부천시청)가 9승4패의 기록으로 공동수상했다. 여자부는 이영은-박세리(11승2패·안산시청)였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은 “KTTL 원년을 무사히 넘긴 것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오늘 수상하신 선수들과 일년 내내 최선을 다한 선수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전했다. 안재형 KTTL 위원장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즌 중반 어려움이 있었으면 모두가 합심해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원년인 이번보다 더 나은 KTTL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탁구
수원 | 황민국 기자 2022.06.08 21:33
스포츠종합
프로탁구 개막전 승리를 이끈 양하은…“우승도, 국가대표도 모두 노릴래”양하은 | 월간탁구 제공한국 탁구가 꿈이라 여겼던 프로탁구리그(KTTL) 원년 개막전이 열린 28일 수원 스튜디오T. 이날 역사적인 첫 승리의 주역인 양하은(28·포스코에너지)는 “이젠 프로라는 실감이 난다”며 “T2리그나 T리그에서 보던 풍경을 우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고 활짝 웃었다. 탁구 라켓 하나를 잡고 숱한 국제 무대를 누볐던 그가 감격한 것은 역시 모두가 바라보는 앞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사실이었다. 아쉽게도 이날 경기는 관중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TV와 온라인 중계 등을 통해 수많은 팬들이 관전했다. 그 앞에서 0-1로 대한항공에 끌려가던 경기를 홀로 두 점을 따내 3-1로 뒤집었으니 기쁜 게 당연했다. 개막전 승리에 기뻐하는 양하은(왼쪽)과 포스코에너지 선수들 | 월간탁구 제공양하은은 기자와 만나 “첫 경기를 내주다보니 과감하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면서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의지였는데, 그게 통했다.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내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하은의 활약상이 가장 빛난 무대는 ‘에이스 매치’로 불리는 4단식이었다. 포스코에너지가 2-1로 앞선 상황에서 그의 상대는 최근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우승자이자 이날 1단식에서 대한항공에 첫 승리를 안긴 이은혜였다. 양하은은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이은혜에게 패배했다. 양하은이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 우승한 터라 3관왕을 가로막은 라이벌과 리턴 매치를 벌인 셈이다. 그리고 양하은은 첫 세트에선 11-9로 힘겹게 이겼으나 2세트에선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며 11-3으로 승리했다. 양하은은 “3관왕의 아쉬움을 풀어냈다”고 활짝 웃었다. KTTL는 흥행을 위해 ‘3세트제’를 도입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가 1경기에 7세트까지 치르는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변화다. 양하은은 “엄청 큰 차이”라면서 “선수들이 상대 공을 파악할 여유가 없다. 상대의 박자와 패턴, 구질을 읽다보면 첫 세트가 끝난다. 첫 세트를 지면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프로리그는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3세트제 덕에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양하은은 KTTL에서 우승과 함께 기량 성장도 욕심난다는 입장이다. 양하은은 “아무래도 팬들이 주목하는 경기에선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한다는 욕심이 있다. 그 욕심이 내 실력을 끌어올릴 것”이라며 “KTTL 우승에 도전하면서 올해 항저우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갈 자격까지 노려보겠다. 내가 욕심이 많다”고 다짐했다.
#탁구
수원 | 황민국 기자 2022.01.28 20:49
연예
김목경·이은하·양하영·채은옥·백영규·이재성 등 중견 음악인들 신보 발매 및 활동 러시(주)채널넘버식스 제공.‘7080 레전드’ 중견 가수들이 잇단 신곡 발표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중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하고 있다. 지난 5월 20일 이은하를 필두로 김목경(5월 25일), 채은옥(5월 29일), 백영규(6월 1일) 등 가수들이 끊임없는 창작활동에 결과물인 신곡들로 팬들과 만나고 있다. 기억 속에 스타들을 방송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현재, 신보 발매 덕분에 7080을 사랑하는 중장년 팬들에게는 기타의 선율과 함께 새로운 음악으로 추억의 음악 여행을 떠나게 되어 한층 즐거움을 전해준다.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모든 분에게 감사와 존경심을 담은 노래 ‘천사’로 돌아온 ‘슬픈 계절에 만나요’에 주인공 백영규, ‘빗물’에 주인공 포크 디바 채은옥 은 ‘사랑은 다가가는 것’을 타이틀로 발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블루스맨 김목경은 ‘외출’을 발표, 또한 예전에 발매한 ‘당신께만’을 새롭게 편곡해 발표한 디스코의 여왕 이은하가 그 대열에 합류했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이재성은 ‘거짓말이라도 해봐’를 발표했고 양하영은 양광모 시인에 시에 곡을 붙인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무관객 공연, 온라인 방송 등을 통해 코로나 19에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팬들 곁을 찾아가면서 추억의 향수로 행복을 안겨주고 있다.
#김목경
손봉석 기자 2020.06.11 18:36
연예
원조 포크 여신 양하영 12일 ‘가슴 뭉클한 콘서트’원조 포크 여신 양하영이 오는 12일 오후 8시 광화문 아트홀서 열리는 소극장 문화운동
김원희 기자 2019.04.04 09:20
문화/과학 구석구석 과학사
[구석구석 과학사](18)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김양하를 아십니까김양하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남한에서는 이태규를, 북한에서는 리승기를 화학계의 원조로 기리고 있지만, 김양하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가을이 되면 과학담당 기자들은 바빠진다.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매년 10월 스웨덴 왕립한림원이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면 매체들은 앞다퉈 그들의 업적을 소개하고 ‘왜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는가’ 같은 토론회를 연다(행여 수상자 가운데 일본인이 있으면 토론회의 분위기는 한층 더 비장해진다). 어떤 이들은 한국에 이처럼 노벨상에 한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고도성장기 개발주의의 잔재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타당한 분석이지만, 노벨상에 대한 집착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한국인 ‘노벨상 후보’에 대해 한국의 언론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에도 하루가 다르게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던 해외의 과학계 소식이 보도되었고, 노벨상은 그 변화의 대열에서 어느 나라의 누가 앞서 나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졌다. 일본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물리학상을 받기 전까지 몇 명의 후보만 물망에 올랐을 뿐 수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김양하를 노벨상 후보로 꼽은 「동아일보」 기사. ‘비타민 E 결정 발견: 세계 학계에 대충동’이라는 제목에 ‘노벨상 후보 김씨’라는 부제목을 달아 소개했다. / 「동아일보」 1939년 1월 10일자 석간 비타민 E와 ‘킴즈 메소드’ 그런데 1939년 1월 10일자 동아일보는 일본이 그토록 바라던 노벨상을 가져올 후보가 다름아닌 한국인이라는 주장을 폈다. 한국인 과학자와 기술자의 활동을 소개하는 연재기사 중 하나에서 “일본 학계에서 ‘노벨상’의 후보자로 추천한다면 단연 우리의 김씨를 꼽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감 넘치는 논평을 실은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하기로는 이것이 한국 언론이 한국인을 노벨상 후보로 지칭한 가장 이른 예다. 여기서 김씨는 화학자 김양하(1901∼?)를 가리킨다. 그리고 노벨상까지 거론하며 김양하의 주요 업적으로 소개한 ‘킴즈 메소드’, 즉 ‘김씨 방법’이란 그가 고안한 비타민 E의 결정을 분리하는 공정을 일컫는다. 김양하는 함경남도 출신으로,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제국대학 화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29년 일본 과학계의 핵심 기관 중 하나인 이화학연구소(리켄)의 스즈키 연구실에 연구원으로 취직하였다. 스즈키 우메타로(1874∼1943)는 비타민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1910년 쌀눈 추출물이 각기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유효성분을 분리하여 ‘오리자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벼의 라틴어 학명 ‘오리자 사티바’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리자닌은 서양의 과학자들이 발견한 다른 미량영양소들과 함께 뒷날 ‘비타민’이라는 갈래로 묶이면서 ‘비타민 B’라는 이름을 얻었다. 즉 스즈키는 오늘날의 비타민 B(티아민)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사람 중 하나였으며, 리켄의 스즈키 연구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비타민 연구집단 중 하나였다. 김양하는 스즈키 연구실의 일원으로 여러 가지 비타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바야흐로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비타민 E의 정체를 밝히고 그 순수한 결정을 분리해 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1935년 리켄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에 쌀눈에서 비타민 E 결정을 추출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발표했다. 이것이 일본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한반도에도 전해졌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한국계 언론들은 1935년 말부터 김양하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김양하의 연구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네 번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는데, 일간지에서 전문적인 학술논문을 그대로 싣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동아일보가 김양하의 연구를 매우 높이 평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타민 연구는 20세기 초반 노벨상이 쏟아져나온 분야다. 서양에서 각종 비타민을 최초로 발견하고 분리해낸 이들은 대부분 노벨상을 받았다. 더욱이 스즈키 우메타로는 비타민 B에 해당하는 물질을 서양보다 먼저 발견하고도 그 연구 결과가 서양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벨상 공동 수상에서는 빠졌고, 많은 일본인들이 그것을 아쉽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양하가 비타민 연구에서 중요한 성과를 내자 다시 일본이 비타민 연구로 노벨상에 도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일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양하를 ‘노벨상 후보’로 거명한 동아일보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당시 비타민 연구를 둘러싼 세계 생물학계의 경쟁은 너무도 치열하여 김양하의 연구를 넘어서는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었다. 비타민의 가짓수도 점점 늘어나면서 한 종류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기대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고 해도, 한국인 과학자가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첨단분야에서 전세계의 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김양하는 이태규나 리승기 등과 함께 ‘과학조선의 파이오니어’로 이름을 높였다. 한편 그동안의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1943년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농화학 전공)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왜 이리도 낯선가 그러나 김양하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남한에서는 이태규를, 북한에서는 리승기를 화학계의 원조로 기리고 있지만 김양하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물론 그의 과학 연구가 모자라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김양하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에 가린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리켄을 떠나 한반도로 돌아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생화학을 가르치다가 광복을 맞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였으므로 조선학술원의 서기장과 부산수산전문학교의 교장 등 조국 재건을 위한 여러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미 군정의 고등교육 개편안이 서울에서 이른바 ‘국대안 파동’으로 이어지던 와중에, 부산에서도 국립부산대학교 설치에 반대하는 ‘부산 국대안 파동’이 일어났다. 부산수산전문학교는 통·폐합의 대상 중 하나였으므로 김양하는 부산대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고, 학교에서 파면되기에 이르렀다. 조선학술원 활동 또한 결과적으로는 김양하의 입지를 좁히고 말았다. 국대안 파동을 계기로 미 군정과 지식인 사회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조선학술원 원장이었던 백남운을 비롯한 학술원 주도 인사들은 하나둘씩 월북길에 오르고 말았다. 김양하는 여운형과도 교분이 깊었고 김성수의 한국민주당에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유연했지만 결국 북으로 떠났다(월북과 납북 여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북에서도 그에 대한 기록은 갑자기 끊기고 만다. 1952년 북한 과학원 창립 기록 등에서 김양하의 이름이 보이지만, 1950년대 후반 숙청의 바람이 불면서 김양하의 이름도 북한의 공식 기록에서 사라졌고, 우리는 그의 생몰연도를 물음표로 끝낼 수밖에 없다. 최초로 노벨상을 기대했던 한국인 과학자는 그렇게 희미한 사진만을 남기고 잊혀 갔다. 역사에 대한 기억 대신 노벨상에 대한 아쉬움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2017.10.31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