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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고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적 AI 협력…“한국학 데이터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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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고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적 AI 협력…“한국학 데이터 공유”

      한국적 인공지능(AI)서비스를 개발 중인 KT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과 AI 데이터 제휴 및 연구 협력에 나선다고 23일 밝혔다. 고려대 부설 연구기관인 민족문화연구원은 한국학 분야 국내 대표 연구 기관으로 한국어 사전 편찬, 한국 문화 및 역사와 관련한 출판물 간행 등 한국학 연구 과제를 수행 중이다. KT 기술혁신부문장 오승필 부사장(왼쪽)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허은 원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KT는 민족문화연구원과 협력을 통한 고품질 데이터 확보가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정서를 잘 이해하고 한국의 역사와 철학, 사회 문제에 해박한 한국적 AI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KT는 상반기 중 상용화를 목표로 한국적 AI를 개발 중이다.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을 비롯한 한국어 사전 데이터, 한국 현대소설 사전과 근대 간행물 사전 등 백과사전 데이터, 민족문화연구 총서 등 고대 민족문화연구원의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AI 개발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허은 민족문화연구원장은 “AI 등장으로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인문학이 인류와 한국 사회의 방향과 당면 과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한국적 AI 시대의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영역 개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필 KT 기술혁신부문장(부사장)은 “민족문화연구원이 보유한 한국 정서와 지식 기반의 고품질 데이터 확보가 한국적 AI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생활경제부 2025.03.23 12:49

    • [종합] 전노민, 유학 간 딸 자랑 “검색하면 사진 떠…대학병원 연구원” (4인용)

      연예

      [종합] 전노민, 유학 간 딸 자랑 “검색하면 사진 떠…대학병원 연구원” (4인용)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4인용식탁’ 배우 전노민이 딸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17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4인용식탁’에서는 전노민이 출연해 동료 연예인 오정연, 이한위, 하지영 대화를 나눴다. 이날 전노민은 1994년생인 자신의 딸을 언급했다. 전노민은 “지금 미국에 있다. 벌써 서른이 넘어가고 있다”며 “알아서 잘 크고 있고, 연구소에서 일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최근에 이직했다. 구글에 이름을 검색하면 사진이 제일 앞에 나온다. 미국 대학병원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4인용식탁’ 이어 “딸이 그걸 공부했으니 콜라는 먹지 말고 차라리 사이다를 먹으라고 한다. 또 화장품 성분표도 봐주고 하면 나도 모르게 듣게 된다”며 애틋한 부녀 관계를 자랑했다. 그런가 하면 전노민은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전노민은 “딸을 미국에 보낸지 20년도 넘었는데, 이혼하는 모습을 안 보여주려고 보낸 거다. 그러고 나서 2년 뒤에 설명을 하러 갔다”고 말했다. 딸이 10살일 때 유학을 보냈다는 전노민은 “그 당시에는 내가 말할 자신도 없었지만 딸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다”며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결국 헤어지게 됐어. 미안해. 이해해달라고 했는데 딸이 ‘알겠어’하고 자면서 경기를 하더라. 그때 조금 놀랐다”며 미안한 마음을 고백했다.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4인용식탁’ 현재 전노민은 딸의 홀로서기를 돕고 있다면서 “밖에 나가면 성인인데 나는 늘 딸이 7살에 멈춰있더라. 부녀지간이면 나쁠 게 없지만 독립적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구두쇠라 2~3년 전까지도 딸의 신발, 옷을 사서 보내줬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현재는 딸이 스스로 결정을 할 수록 도와주고 있다고. 끝으로 전노민은 딸에게 애정 가득한 영상 편지를 보냈다. 그는 “크게 속 안 썩이고 혼자서 알아서 잘 커서 고맙게 생각하고, 대학 졸업하면서 ‘다음 달부터 돈 안 보내도 된다’고 말한 게 가장 즐거웠다. 또 미국에서 딸을 돌봐준 누나에게 고맙고, 딸에게도 ‘평생 고모에게 감사하라’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한다. 그것만 지키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희원 온라인기자 2025.02.18 09:57

    • ‘감자연구소’ 이선빈, 열혈 감자 연구원 캐릭터 스틸 첫 공개

      연예

      ‘감자연구소’ 이선빈, 열혈 감자 연구원 캐릭터 스틸 첫 공개

      tvN ‘감자연구소’ 이선빈이 털털하고 화끈한 매력을 장착하고 돌아온다. 오는 3월 1일 첫 방송되는 tvN 새 토일드라마 ‘감자연구소’(연출 강일수·심재현, 극본 김호수, 기획 CJ ENM 스튜디오스, 제작 (주)초록뱀미디어) 측은 5일 감자에 살고 감자에 죽는 열혈 감자 연구원으로 변신한 이선빈의 스틸컷을 공개했다. ‘감자연구소’는 감자가 인생의 전부인 미경(이선빈 분) 앞에 차가운 원칙주의자 백호(강태오 분)가 나타나 뱅글뱅글 회오리 감자처럼 휘몰아치는 힐링 코믹 로맨스를 그린다. ‘신입사관 구해령’ ‘솔로몬의 위증’ 등 장르불문 다채로운 감성을 보여준 강일수 감독과 김호수 작가가 의기투합, tvN 힐링 코믹 로맨스의 계보를 잇는다. 공개된 스틸은 감자에 인생을 올인한 김미경의 ‘감친자(감자에 미친 자)’ 모먼트를 담고 있다. 연구실이 아닌 감자밭과 비닐하우스에서 흙을 파헤치고 구르는 날이 더 많은 감자 연구원 김미경. 선캡에 꽃무늬 팔토시까지 야무지게 장착하고 농민 교실에 등장한 그의 모습이 털털하고 호탕한 성격을 짐작게 한다. 특히 12년 차 직장인 바이브가 느껴지는 모습 역시 감자연구소에서의 일상을 더욱 궁금케 한다. 감자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김미경이 소백호의 등장으로 어떤 변화를 맞을지 궁금해진다. ‘감자연구소’ 캐릭터들이 다채로워 매력적이었다고 밝힌 이선빈은 “대본을 정말 빠르게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실생활 연기를 재미있게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감자연구소’처럼 사랑스럽고 사람 냄새 나는 작품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라면서 작품 선택 이유를 전했다. ‘김미경’ 캐릭터에 대해서는 “미경은 야무지고 정의로운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이지만 정도, 눈물도, 사랑도 많은 인물이다. 공감 능력이 너무 뛰어난 F 성향 200%의 인물”이라며 “여러 가지 매력이 있는 캐릭터인 만큼 다채롭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남다른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미경이는 친근하면서도 계속해서 생각나는 감자전 같은 매력이 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라고 덧붙이며 기대를 높였다. tvN 새 토일드라마 ‘감자연구소’는 오는 3월 1일 밤 9시 20분 첫 방송된다.

      손봉석 기자 2025.02.06 06:58

    • 한국스포츠경영전략연구원, 행정사법인 CST와 MOU 체결

      생활

      한국스포츠경영전략연구원, 행정사법인 CST와 MOU 체결

      한국스포츠경영전략연구원(원장 김필수)은 최근 행정사법인 씨에스티(CST)와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한국스포츠경영전략연구원은 국내 최고 수준의 스포츠 인공지능 및 데이터 분석 전문기업으로, 공공브랜드 대상을 받은 경륜·경정 승자 예측 시스템인 AI PICK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여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피드온 홈페이지에 제공하고 있다. 스포츠 데이터 솔루션 브랜드인 ‘PLai Pick’을 통해 인공지능 기반 프로스포츠 경기결과를 예측하여 팬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스포츠 종목의 구단 전력 분석, 팬 인게이지먼트 디지털 콘텐츠 개발 등의 R&D를 진행하고, 연구논문 60편을 게재할 정도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협약을 맺은 행정사법인 씨에스티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특화된 전문성과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행정과 정책적 조언이 필요한 고객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과 지방자치단체 관련 업무에 특화된 행정사법인 씨에스티와 한국스포츠경영전략연구원이 전략적 제휴에 관한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문화·스포츠산업 활성화를 위한 플랫폼을 활성화하고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반의 콘텐츠 개발과 행정 능력을 결합한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 분야에 특화된 데이터 분석 고도화와 디지털 혁신을 이루고 고객가치를 구현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스포츠경영전략연구원 관계자는 “본사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행정사법인 씨에스티와 MOU를 체결할 수 있어 의미 있게 생각한다”라며 “앞으로 행정사법인 CST와의 포괄적이고도 전략적인 협력을 계기로 국내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편,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 데이터 분석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손재철 기자 2024.12.12 13:56

  • 주간경향

    • 문화/과학

      [2050 과학오디세이]고정환 한국우주항공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 본부장 “우리 발사체로 2030년까지 달 착륙”

      전남 고흥 포두면을 거쳐 동일면, 봉래면으로 이어지는 약 47㎞의 길은 ‘우주로 가는 길’로 불린다. 봉래면 외나로도에 있는 나로우주센터가 종점이다. 가는 길 곳곳에 아기자기한 섬들이 둥글게 솟아 있고, 갯벌과 해수욕장이 숨어 있다. 이중 어디가 ‘누리호’ 발사 모습을 지켜보기 좋은 ‘명당’일까. 오는 10월 누리호 1차 시험발사가 다가올수록 국민의 이목이 주목될 곳이다. 고정환 한국우주항공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 본부장이 4월 6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체 종합 조립동에서 누리호 개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항우연 제공 이제 반년 남았다.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개발 사업은 지난 3월 25일 1단 종합연소시험에 성공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시험발사가 성공하면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위성을 우주로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 누리호는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 상공 600~800㎞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3단형 발사체이다. 누리호급의 우주발사체를 자국에서 발사할 수 있는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하다. 누리호 사업이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 7대 우주강국의 반열에 오른다. 20년 넘게 로켓 개발 외길 누리호 사업에는 한국의 과학기술, 제조역량이 총동원됐다. 이를 조율하고 지휘한 이는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 본부장(54)이다. 고 본부장은 2000년 우리나라 최초의 액체추진 로켓인 과학로켓(KSR) 3호 개발에 참여하면서 로켓 개발에 발을 들였다. 이후 지금까지 20년 넘게 줄곧 로켓 분야 연구에 매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체계종합팀 책임연구원, 발사체품질보증팀장을 거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 단장을 거쳤다. 고 본부장은 어릴 적 마징가Z, 태권V 같은 로봇 만화에 심취했다. 1985년 서울대 항공공학과에 입학하면서 과학 꿈나무에서 진짜 과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 미국 텍사스 A&M 대학원 항공우주공학과에서는 유도제어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약 4년간 미국의 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국내로 들어왔다. 그는 “유도제어 분야는 시스템에 관한 정보를 많이 알게 돼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이 취업하기 어려운 분야다. 연구원으로 있어도 외국인이라 보안등급에 차이가 있어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 입사한 후엔 10년 넘게 발사체 비행 안전을 맡았다. 로켓이 비행하다 문제가 생길 경우 비행 중단 결정을 내리는 게 그의 일이었다. 로켓은 상당한 양의 연료를 싣고 비행한다. 잘못 추락할 경우 인명·재산 피해가 클 수 있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이상이 감지된 순간 빠르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발사 장면을 눈으로 볼 여유가 없었다. “비행 안전 일을 할 땐 폐쇄회로(CC)TV로도 발사 장면을 못 봤다. (본부장을 맡고 있는) 지금도 발사통제소 안에서 CCTV만 볼 수 있지 육안으론 못 본다.” 그는 2015년 8월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장을 맡으며 누리호 개발을 지휘했다. 처음 시작할 때 수십명 수준이었던 인력은 지금 200명 넘게 불었다. 폰 브라운처럼 천재적인 한명이 우주 개척을 진두지휘하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고 본부장은 “엔진을 만드는 사람, 연료·산화제 탱크를 만드는 사람 등 지금은 전문분야가 매우 세분화돼 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도 30년 전부터 항우연 안에 축적된 기반 위에서 이뤄온 것이지 특출난 한명이 했다고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4월 6일 고 본부장을 만난 곳은 나로우주센터 발사체 종합 조립동이다. 높이 40m, 폭 30m, 길이 70m 정도의 조립동 안에서 누리호 1~3단이 조립되고 있다. 조립동 안에 들어가려면 먼저 에어클린실을 통과해야 한다. 미세 먼지라도 배관에 들어갈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10월 시험발사를 위한 1·2단 비행모델(FM)의 조립이 70%를 조금 넘게 진행됐다. 3단 비행모델은 이미 조립이 완료됐고, 바로 옆에서 내년 5월 예정된 2차 시험발사에 쓰일 비행모델 2호기 3단이 제작 중이다. 발사대 인증시험을 위한 인증모델(QM)은 이미 제작이 완료돼 전체 조립을 위한 점검을 받고 있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체 종합 조립동에서 로켓 개발자들이 누리호 3단 로켓(왼쪽)을 제작하고 있다. / 항우연 제공 시행착오와 실패가 자산으로 비행모델 제작은 7월에 끝난다. 그에 앞서 5월에는 인증모델 기체 1~3단을 결합해 처음으로 발사대와 접속해보는 발사대 인증시험을 한다. 발사대에서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고 빼내는 과정을 연습한다. 문제가 생길 경우 발사를 중지하고 철수하는 연습도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 본부장은 “나로호 개발 때 러시아에서 많이 배운 부분이다. 센서를 삼중화하고, 연료 주입 순간부터 반경 1.8㎞ 내의 사람을 완전히 소개하고 원격으로 조작한다. 내부의 연료와 산화제가 다 배출된 후에만 사람이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켓엔진은 연소실과 노즐, ‘터보펌프’로 불리는 추진제 공급계통으로 크게 나뉜다. 누리호는 연료로 항공등유를, 산화제로 액체산소를 쓴다. 연소실에서 추진제를 분사해 연소하면 고온고압의 가스로 변한다. 이 고온고압의 가스가 노즐의 좁은 목을 통과해 가속되면서 운동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연소실 압력은 60기압에 달하는데 연료와 산화제를 그 이상의 압력으로 공급해야 연소실에 들어갈 수 있다. 이를 위한 장치가 터보펌프이다. 터보펌프는 1분에 1만번 회전하며 연료, 산화제를 고압 상태로 만들어 연소실에 밀어넣는다. 로켓은 엔진의 총추력이 기체 중량을 상회해야 발사대를 떠나 날아오를 수 있다. 추력은 로켓이 기체를 가속하는 힘의 양이다. 추력 75t의 누리호 1단 엔진 4개가 묶여 전체 추력은 300t이 된다. 누리호의 무게가 200t이라 1.5G의 가속도를 얻어 발사대를 떠날 수 있게 된다. 고체로켓은 발사 순간부터 6~7G의 가속도를 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액체로켓을 단 발사체가 발사대를 떠날 때는 매우 느리게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액체로켓도 60초 정도가 지나면 음속을 돌파한다. 4G라면 지표 중력 가속도의 4배를 뜻한다. 가속도가 커질수록 구성품의 무게가 늘어 구조에 무리를 준다. 연소와 비행으로 인한 진동도 엄청나다. 고 본부장은 “전자장비가 고속에서는 못 견뎌요. 그래서 보통 발사체들은 중력 가속도의 4배 이하로 제한하고 모든 장비도 그 정도 규격으로 제작한다. 액체가 들어 있어 움직이면 출렁출렁하면서 안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이륙 가속도를 크지 않게 출발해 점점 속도를 높여간다”고 설명했다. 누리호는 한국의 과학기술과 제조역량을 집약한 결정체이다. 이날 1단 로켓에 결합된 4기의 75t 엔진을 직접 보니 눈으로 좇아가기 힘들 정도로 복잡했다. 추력 7t인 3단 엔진도 난이도는 비슷했다. 3000℃에 달하는 온도에 노즐이 녹지 않도록 냉각 성능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엔진 자체도 복잡하지만 엔진을 기체에 조립하기 위한 배관과 전선 등이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영하 183℃인 산화제의 온도를 유지하면서 새지 않도록 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상태를 알기 위한 센서도 100여가지가 붙는다. 전체 부품의 수는 37만개, ‘신경세포’ 역할을 하는 전선의 길이는 약 47㎞에 달한다. 과연 손을 집어넣어 조립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 만큼 복잡했다. 실제 대부분의 연기 이유가 1단 조립 때문이었다. 조립하는 과정에서 순서가 맞지 않아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지만 안 해보고는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 본부장은 “손만 들어갈 게 아니라 도구가 움직일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캐드(CAD) 상으로 잘 확인이 안 돼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금은 처음 할 때보다 굉장히 안정화됐다. 한번 해보면 그다음은 잘되니까 경험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주 개발 과정을 보면 실패와 모방에서 배운다는 말은 진리이다. 오늘날 세계 정상급에 오른 중국은 1950~1960년대 러시아에서 기술을 배우다가 어느 순간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북한 역시 스커드 미사일을 역설계해 노동미사일을 만들고 발사체에 적용했다. 우린 그렇게 발사체를 가져와 뜯어볼 기회도 갖지 못했고, 나로호 때도 가까이 가서 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로호의 경험이 없었다면 한국형발사체 개발은 불가능했다. 기술은 이전받지 못했지만, 러시아와의 협업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는 10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될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 실제 로켓과 크기, 무게, 무게 중심 등을 동일하게 만든 로켓 목업(Mockup)이 놓여 있다. / 항우연 제공 세계 7대 우주강국 머지않아 고 본부장은 “러시아 쪽 보안요원이 있어서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민감한 부품에 접근하는 것이나 들여다보는 걸 많이 제지받았다. 러시아 사람과 놀거나 저녁에 술 한잔하고 싶어도 제약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두 번의 발사 실패 후 조금 느슨해지면서 자기들 술자리가 있을 때 부르는 경우도 있고, 작업하면서 물어보면 조금 이야기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나로호 사업은 기술 이전이 없는 사업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사업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익혔다.” 우주발사체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는 9개국 정도이지만, 누리호에 쓰이는 크기의 엔진을 개발해 운용한 나라는 우리가 7번째이다.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 한국이 세계 7대 우주강국에 오른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발사체는 기술 이전이 거의 불가능해 설계와 제작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직접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문제를 해결한 지식과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자산이 된다. 나름의 독자 기술을 확보해 발사체 개발에 성공하면 비로소 우주 분야의 국제협력이 원활해진다. 일본 역시 미국 항공우주국이 시험 삼아 낸 과제를 성공시켜 기술력을 인정받은 후에 국제우주정거장에 화물을 나르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발사체 성공 경험이 우주 개발의 ‘이너서클’에 들어올 수 있는 초대권인 셈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발사 기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처음 쏠 땐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번 성공한 후에는 굉장히 빨리 발전할 수 있다. 한번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크고, 안 해본 사람은 취급을 안 한다. 자력 발사체가 있고 없고에 따라 상대 국가가 우리를 대하는 자세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개발이 성공해 우리 발사체로 어디든 원하는 데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다면 굉장히 다양한 일을 우리랑 같이하자고 제안이 들어오지 않을까.” 오는 10월 첫 누리호 비행시험에는 위성 모사체를 실어 발사한다. 내년 5월에는 별도 제작한 성능 검증 위성을 싣는다. 두 번의 비행시험을 통해 탑재물을 보호하는 페어링이 제대로 분리되는지 등을 최종 검증하면 발사체 개발이 완료된다. 그 후에도 차세대 소형위성 2호, 차세대 중형위성 3호가 한국형발사체 검증용으로 계획돼 있다. 고 본부장은 그 후에도 누리호 개발의 성과를 이어받고 발전시킬 후속 사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멈추면 발사체 기술의 전승과 발전이 어려워진다. 발사 신뢰도도 한두 번 발사 성공으로는 크게 인정받기 어렵다. 발사를 여러 번 경험해야 전혀 몰랐던 새로운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다. 후속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누리호 개발에 참여하는 기업의 인력이 유지되기 어렵다. 뉴스페이스 시대를 열려면 민간 우주 개발을 이끌 기업이 필요한데 후속사업으로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기업은 수익성이 매력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우주발사체 개발이라는 대의로 참여했다. 돈을 많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발사 때 기업 이름이라도 알릴 수 있게 (기체에) 기업체 로고를 쫙 붙였다. 저희가 어떻게 했는지는 알지만 실제 작업은 이분들이 다 하는데 이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는 계약이 끝나면 다 사라진다. 후속 과제가 이어서 가줘야 하는데 지체되면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후속사업으로 한국형발사체 성능개량이 예정돼 있는데 현재 예비타당성 검토 단계에 있다. 현재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상 한국형발사체는 두 방향으로 발전한다. 500㎏ 이하의 소형위성 수요 증가에 대비해 경제성을 갖춘 소형 발사체 플랫폼으로 연계 확장하는 것과 한편으로 3t 이상 정지궤도, 저궤도 대형위성 등을 올릴 수 있는 대형 발사체 플랫폼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발사 수요가 지속되지 않으면 발사체 개발에 성공했으면서도 현재는 기술력을 잃어버린 영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그래서 발사체를 이용하는 다양한 우주 탐사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25일 종합연소시험을 참관한 후 “2030년까지 우리 발사체를 이용한 달 착륙의 꿈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검토 중이라고 밝혔던 2029년 소행성 아포피스 탐사에도 한국형발사체를 쓸 수 있다. 6세대(G) 시대를 대비한 통신위성 시범망, 자율주행차와 드론 산업에 필수적인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 국방 우주력 강화를 위한 초소형 군집위성시스템 구축 등도 거론됐다. 고 본부장은 “발사 경험을 많이 쌓는 게 필요하다. 아직은 저궤도 관측 위성 등 항우연 위주의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지만 소행성, 달 탐사 등이 조금씩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앞으로 다양한 외계 탐사 프로그램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리호 성과 이어받을 후속 사업 필요 고 본부장은 누리호 성능을 개량해 추력 82t, 추력 9t의 엔진을 개발하면 달 탐사선에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추력과 함께 로켓의 성능을 판단하는 또 다른 지표인 비추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비추력은 주어진 질량의 추진제로 로켓이 얼마만큼의 속력 변화를 내는지 보여준다. 고 본부장은 “달로 가기 위한 이동 궤도(전이궤도)에 얼마를 올려줄 수 있냐가 관건인데 성능을 개량하면 830㎏ 정도를 탑재할 수 있다. 그 정도면 달 착륙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세대 후 우주 개발을 이끌어갈 이공계 분야의 인재를 키울 필요도 있다. 고 본부장은 문제 풀이보다 실험과 실습으로 실제 동작시키는 재미를 느껴야 관심을 잃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발사체를 정기적으로 발사할 수 있다면 외국의 발사장처럼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실물을 보면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 특히 발사체 엔진을 시험하는 것이나 실제 발사하는 장면을 보면 굉장히 마음에 와닿는 게 있다. 실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만져보고 느껴볼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 일단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참관 기회는 10월 시험발사이다. 언제 발사될까. 미리 숙박을 예약하려면 발사일은 중요한 정보이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발사 한달~한달 반 전에 결정된다. 고 본부장은 “보통 큰 시험일수록 목요일에 잡는다. 내려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다음 날 한 번 더 할 시간을 가져야 하니 수요일과 목요일이 적당하다. 시간은 원래 위성이 임무가 있으면 정해진 시간에 발사해야 하지만 1~2차는 특별히 위성 자체의 미션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다. 그러면 작업하기 편한 오후 4~5시 정도가 좋다.”

      주영재 기자 2021.04.16 11:09

    • 문화/과학

      [2050 과학오디세이]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자연을 이해하는 과학이 더 중요해져”

      사물은 각자 고유의 색을 ‘갖고’ 있다. 그럼 색깔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 물리학에 따르면 우리는 사물에 닿은 태양빛이나 조명 중 흡수되지 않고 반사된 빛을 본다. 형광등 밑의 사과를 보자. “사과는 우리 눈에 빨간색으로 보인다. 사과 표면이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 주로 빨간색을 반사하고 나머지 색의 빛들은 흡수하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노란 이유도 마찬가지다. 햇빛이 병아리의 깃털에 부딪히면 주로 파란색 계열의 빛이 흡수된다. 흡수되지 않고 반사되는 빨간빛과 초록빛이 섞여 눈에 들어오면 우리는 노란색을 느낀다.”<빛의 핵심>(고재현·사이언스북스) 비슷하게 흰색 사물은 모든 빛을 반사하고, 검은색 사물은 모든 빛을 흡수해 그렇게 된 것이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장이 지난 4월 13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물이 어떤 빛은 흡수하고 어떤 빛은 반사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4월 13일 광물리학자인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을 만나 물어봤다. ‘식전 요리’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질문도 그는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다. “우주는 빛(에너지)과 물질이 평형을 이루고 있다. 빛은 물리적으로 해석하면 전자기파다. 빛을 흡수하면 물질의 에너지가 바뀐다. 에너지가 들어올 때 가장 잘 움직이는 건 가장 가벼운 전자다. 전자가 빛의 에너지를 흡수해 더 높은 운동 에너지를 갖고 그 빛(광자)은 없어진다. 반대로 자기의 에너지를 버리고 낮은 에너지로 가면 거기서 빛이 나온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연속적인 에너지를 가질 수 없다. 전자가 갈 수 있는 에너지 준위는 물질에 따라 다르다. 결국 전자들의 에너지 분포에 따라 어떤 색을 흡수하고 반사하는지가 결정된다.” 더 자세히 설명했지만 대략 이해한 바로는 이런 내용이었다. 노도영 원장은 방사광 분야에서 국내외 학계를 이끄는 석학으로 평가받는다. 1985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극미세초고속X-선과학연구센터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위원, 한국방사광이용자협회 회장,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학장 등을 역임하며 과학연구와 행정에서 두루 왕성하게 활약했다. 2019년 11월 22일 제3대 기초과학연구원장에 선임되기 전까지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물리·광과학과 교수로 일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초과학연구기관의 수장을 맡은 지 이제 1년 반이 지났다. 남은 임기는 3년 반. 장기 기초과학연구를 안정적으로 추진하라는 취지에서 과학기관장 중 임기가 5년으로 가장 길다. IBS의 연구 대상은 크게 우주, 물질, 생명의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난 4월 12일 IBS의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은 국제공동연구로 뮤온(전자의 무거운 형제 격으로, 고에너지 입자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입자)의 흔들림을 측정해 뮤온이 현대 물리학의 예측과 다르게 행동함을 밝혀냈다. 새로운 기본입자의 존재 가능성을 밝힌 연구라는 평가를 받는다. IBS의 또 다른 연구단들은 원자가 모여 결정을 이루는 핵생성 과정을 관찰하고, 26개 원자로 구성된 반도체를 촉매로 사용해 이산화탄소를 유용 유기물질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연구들이 한달여 사이에도 여러건이 나올 정도다. IBS는 설립 1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초과학연구소로 성장했다. 하지만 아직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나 일본 이화학연구소와 비교하기에는 부족하다. 노도영 원장에게서 한국 기초과학과 IBS의 미래를 들었다. -현재의 기후위기를 인류세로 해석하기도 한다. “현재는 인간이 지구에 가하는 변화가 충분히 커서 그 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인류가 탄생한 후 그간 인간 간의 갈등이 가장 큰 문제였다면 지금은 인간과 자연의 갈등이 문제이다. 초연결 시대로 불릴 정도로 인간 간의 상관관계도 너무 높다.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은 어떤 시점에서 결정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연은 복원력이 있는데 변화가 클수록 복원력의 크기도 크다. 인류가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느냐가 위기의 본질이다. 과거 로마가 망해도 중국엔 영향이 없었지만, 지금은 로마가 망가지면 중국도 망가진다. 인류 공동체적으로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과학의 역할은. “자연을 이해하는 과학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도 자연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는 이 싸움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모든 것이 기후변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연구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부산대 기후물리연구단의 의미가 크다.” -어릴 때부터 과학에 관심을 가졌는가. “중학교 때 학교를 4㎞ 이상 걸어다녔다. 힘들어서 망가진 자전거를 구해 고쳐 타고 다녔다. 그때 바퀴를 돌리면 헤드라이트가 켜지는 걸 보고 신기해했다. 어릴 적 갖고 놀았던 게 중요했던 것 같다. 돋보기에 상이 맺히는 이유도 궁금해했다. 물리에 관심을 가진 건 고등학교 입학 이후였다. 그때 입학시험에서 일등을 했던 친구가 물리 시간에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타원은 초점이 두개가 있어야 한다. 지구가 타원궤도로 태양을 돈다면 왜 초점인 태양은 하나뿐이냐’였다. 굉장한 질문이었다. 우린 문제 풀기에 바빴는데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데 자극을 받았다.” -방사광 분야를 연구한 계기는. “박사과정 지도교수가 중성자와 X레이로 물질을 연구하는 분이었다. 방사광 가속기가 미국에서도 제대로 된 걸 처음 만들었을 시기였다. 2세대 가속기로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시설이었다. 밤새 싱크로트론에서 전자를 돌려 빛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초기라 작동이 됐다 안 됐다 했다. 빛이 있어야 실험을 하니까 고치는 동안 밖에 나가 밥 먹고, 영화 보고 그랬다. 지금은 우리나라 4세대 가속기만 해도 거의 망가지지 않고 쉼 없이 돌아간다. 학생들이 밥 먹을 새가 없다.” -방사광 가속기의 원리는. “원래 입자물리학에서 전자를 가속시켜 고에너지의 전자가 어떻게 가동하는지를 보려 한 시설이었다. 가속시킨 전자를 계속 쓰려고 방향을 바꾸는 방법을 생각했다. 전자의 방향을 바꾸는 데는 에너지가 많이 들지 않으니까. 그런데 방향을 바꾸니 에너지가 줄어든다. 줄어든 에너지는 빛으로 바뀌었다. 방향을 바꿀 때마다 에너지가 빛으로 새는데 이 빛이 쓸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빛을 만들어내는 전용 시설이 된 것이다(방사광가속기는 X선 파장의 빛을 만들어 분자가 결합하고 떨어지는 수십조분의 일초의 순간을 관측할 수 있다. 그래서 물질 분석, 신물질 개발, 세포 내부 영상 획득, 단백질 구조 분석 등 활용 분야가 넓다).” -IBS의 중이온 가속기 구축 사업은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방사광 가속기가 가속된 전자를 이용해 빛을 만든다면, 중이온 가속기는 전자가 아닌 핵을 가속시킨다. 중이온 가속기는 다른 여러 이유를 대지만 근본적으로는 핵물리 연구 도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도 핵물리나 입자물리 실험시설을 갖출 정도의 나라가 됐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전자보다 무거운 핵을 가속시켜야 하니 상대적으로 어렵다. 어려운 기술이다 보니 처음부터 전략을 잘 짜서 했으면 못 할 프로젝트는 아닌데 시행착오가 많이 있었다. 열손실이 없이 효과적으로 가속하려고 초전도 가속을 택했는데,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이를 계획에 포함시켰어야 했는데 다 잘될 경우를 가정한 게 문제였다. 원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제 만들려면 고도의 엔지니어링이 필요해 시제품을 만드는 게 어렵고, 일부분은 지금도 시제품을 못 만들고 있다. 국내 생산 위주로 하려 했는데 국내에 이런 경험을 가진 업체가 많지 않다는 데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초전도라 저온냉각을 위한 장치를 프랑스에서 구했는데 코로나19로 안전허가 등도 지연되고 있다. 정부와 저희의 대원칙은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원래 계획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저에너지 구간만 올해 완성하려 한다. 고에너지 구간은 수백개의 가속모듈을 완벽하게 만든 후 시작하기로 했다.” -과학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처음 접할 때 잘 가르치지 않으면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초·중등 수학·물리 교사가 이런 부분에서 주의해야 한다. 저도 물리가 암기과목인 줄 알았다. 개념을 잘 잡아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싱크로트론에서 연구하는데 X선 빔을 모을 수 있는 거울을 얼마만큼 휘어야 할지 문제였다. 그때 한 선배가 종이를 꺼내 어느 정도의 탄성이 필요한지 계산하고, 스프링을 반 잘라 넣으니 문제가 해결됐다. 그렇게 어려운 계산은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그런 원리를 적용하는 건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IBS의 미래상은. “IBS가 10년간 상당한 발전을 이룬 건 사실이지만 아직 시스템이 안정적이지 않은 면이 있다.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 양적 성장이 필요하다. 예산이나 아웃풋 측면에서 IBS는 독일을 대표하는 기초과학연구소인 막스플랑크연구소의 10분의 1,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4분의 1 수준이다. 더구나 IBS는 독자적인 연구소가 아니라 대학 캠퍼스와 연계해 국내 기초과학연구를 모두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규모 면에서 허수가 있는 것이다. ISB에 지금 30개 연구단이 있는데 출범 때 계획대로 50개 연구단은 돼야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연구단의 클러스터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4~5개 정도의 연구단을 모아 클러스터로 만들어 하나의 연구소처럼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연구단의 시너지도 높아지고, 한 연구단에서 다른 연구단에서 옮겨갈 수 있어서 IBS의 치명적 약점인 연구자의 고용 불안정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올해 설립하는 바이러스기초연구소가 여러 센터가 묶인 형태라 클러스터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IBS가 추구하는 게 장기 연구라 시작을 젊을 때 해도 고령이 될 때까지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연구단을 이끌어가는 단장의 연령을 낮게 가져가고 있다. 검증이 안 됐어도 잠재력을 보고 뽑는 것이다. 젊은 단장을 뽑으면 당연히 소속 연구자도 젊어진다.” -과학자란 직업의 매력은. “나라가 발전할수록 과학기술을 하겠다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선진국을 봐도 그렇다. 미국 학생들은 더 재미난 게 많아 과학을 안 하고 유학생이 대신 한다. 그러나 과학자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꼭 갖춰야 할 직업군이다. 군인과 마찬가지다. 전쟁이 나지 않을 땐 필요성을 모르는 것처럼 과학자도 약간 그렇다. 이번에 코로나19로 이렇게 힘들게 될 줄 몰랐는데 우리나라엔 바이러스 연구자가 거의 없다. 대접도 못 받고 재미도 없는데다 위험해 생물학 분야에서도 제일 인기가 없다. 그런데 팬데믹 상황이 되니 이제는 꼭 이 집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국가는 과학자 집단이 필요 없어 보여도 항상 지원해야 한다. 우리가 바이러스기초연구소를 만드는 것도 ‘레디니스(준비성)’ 때문이다. 바이러스를 분자 수준에서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학생들, 과학연구자들에게 너만 좋아한다면,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글·주영재 기자 사진·김기남 기자 2021.04.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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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0 과학오디세이]서판길 한국뇌연구원 원장 “노벨과학상 받으려면 포닥 중심으로 연구해야”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업적이 있는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과학상이다. 서판길 한국뇌연구원장은 지난해 과학의 날에 이 상을 받았다. 서 원장은 인체의 세포, 분자, 기관 간 신호를 전달하는 ‘생체신호전달’ 경로를 연구해왔다. 그는 “사회에서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듯 인체에서도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암, 당뇨 같은 질환을 일으키게 된다”며 “신호전달 과정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면 이를 기반으로 특이적 진단, 치료법의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뇌연구원 서 원장은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대구 혁신도시에 있는 한국뇌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평생을 지방 과학계에 투신한 만큼 지방과학 기술인력 양성에 대한 관심은 누구보다 크다. 그는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으려면 박사과정이 아니라 포닥(박사후연구원)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런 생태계만 만들어지면 20년 내 노벨상 수상을 기대해봐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봄햇살이 쏟아지던 지난 4월 11일 서 원장을 경북 포항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막 밭일을 끝내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세포 사이 정보를 주고받는 신호전달 과정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어떤 개념인가. “생명체는 시스템, 세포, 분자 간에 서로 소통을 한다. 호르몬, 성장인자, 사이토카인, 신경전달물질, 대사산물 등은 소통을 촉발시키는 물질들이다. 이런 외부 자극을 세포막 수용체가 인지하면 세포 내 단백질이 체계적이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게 되고, 생리활성 분자의 합성 및 활성화, 유전자 발현, 세포 성장 및 분열 등 다양한 생체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을 신호전달(signal transduction)이라고 한다. 나는 외부 신호가 어떻게 전달돼 생리기능을 조절하는가를 밝히는 ‘생체신호전달 경로’를 연구해왔다. 신호전달은 분자, 세포, 기관 간의 네트워크를 따라서 형성되는 소통을 통해 생체 기능을 조절하는 핵심기작으로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 개념이다. 우리 몸은 수천 종류의 분자로 이루어진 60조개 이상의 세포가 있다. 또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종류로 이루어진 기관 및 체계가 있다. 이 수많은 구성 단위체는 서로 간에 소통을 통해야만 우리 신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신호전달에 문제가 생기면 생체 항상성에 이상을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암이나 당뇨와 같은 치명적인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도 유용하겠다. 어떤 분야에 적용할 수 있나. “코로나19 중증 환자 발생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염증 신호전달물질 ‘사이토카인’도 신호전달과 관련 있는 물질이다. 나는 세계 최초로 신호전달 과정에 관여하는 중요한 효소인 ‘포스포리파아제(PLC)’를 규명했다. 또한 뇌에서 PLC 3종을 분리해 유전자를 확인했다. PLC는 외부 자극이 주어졌을 때 세포막을 구성하는 인지질을 분해해 신호전달물질 두가지를 만들어내는 효소를 말한다. 또 PLC를 매개로 하는 신호전달 과정을 분자, 세포, 개체 수준에서 확인했다. 세포가 살아 있을 때 소통은 물론이고 죽었을 때도 적절하게 사멸해야 인체가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게 된다. 만약 사멸이 억제되면 상대적으로 세포 성장이 과잉되는데 이럴 때 암과 같은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신호전달 과정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면 이를 기반으로 특이적 진단, 치료법의 개발이 가능하다.” -세포의 신호전달 연구는 뇌 분야 연구와 어떻게 연결되나. “생체 신호전달 기작의 핵심효소인 포스포리페이즈 C(PLC)를 처음으로 ‘뇌’에서 분리정제하고 유전자를 클로닝(특정한 유전자만을 세포에서 꺼내는 기술)했다. 그런 뒤, PLC를 매개로 하는 신호전달 과정을 분자, 세포 및 개체 수준에서 독자적·체계적으로 밝혀냈다. 그리고 신호전달 연구를 응용해 줄기세포를 조절하는 정교한 과정을 밝히는 연구도 수행해 신호전달 과정에서 발생한 불균형이 세포기능의 이상을 초래해 다양한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예를 들어 뇌에서 흥분성 시냅스(신경세포 접합 부위)와 억제성 시냅스가 협력해 신호전달의 균형을 이루는데, 이 균형이 깨질 경우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 일어나게 된다. 즉 신호전달의 문제가 생체 내의 소통과 항상성 이상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치매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다양한 뇌질환을 유발하게 된다. 인체 정상 기능 조절은 뇌와 심혈관계 등의 소통인 신호전달을 통해 이뤄지게 된다. 소통이 정상적으로 잘 이뤄져 균형을 유지하는 항상성을 지키면 질병이 없지만, 불통이 일어나면 균형이 깨지고 발육장애가 생긴다. 최근 사회적 이슈인 코로나 블루의 대표적 질환인 우울증도 이때 일어나게 된다.” -뇌의 신비를 풀기 어려운 이유가 뭔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뇌세포가 약 1000억개쯤 된다. 1개 뇌세포는 1000개 시냅스로 연결돼 있다. 1000억개의 세포가 1000개의 통로로 연결돼 있다는 뜻으로, 이러면 무한대의 수가 만들어진다. 즉 서울, 부산, 대구 같은 도시가 1000억개 있고 각 도시 간 1000개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때문에 완벽하게 다 해석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만드는 인공지능(AI)은 일종의 가짜 뇌다. 진짜 뇌에 대한 비밀을 하나씩 풀다 보면 AI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AI에 지성을 집어넣어 AI가 상식선을 넘지 않도록 제어하는 데 쓸 수 있다. 너무 똑똑한 AI가 상식선을 넘게 되면 인간에게 오히려 폐해가 될 수도 있다. 챗봇 ‘이루다’의 논쟁도 AI가 지성을 갖지 못해 생긴 일이다.” -뇌과학은 분야가 넓어 보인다. 한국뇌연구원은 요즘 어떤 연구를 집중하고 있나. “많은 생명과학 정보가 통계나 분자, 세포, 동물 실험에서 나왔지만 실제 인체에서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 이들 정보 외에 인체의 데이터에 기반을 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 만큼 학제 간 연구와 데이터 분석을 통한 ‘선순환 중개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선순환 중개연구는 세포나 동물에서 드러난 원리가 인간에게도 적용하는지 확인하는 연구인 ‘중개연구’의 반대 개념이다.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연구 트렌드가 선순환 연구로 변하고 있다.” -협력하는 기관이 많을 것 같다. “20세기까지는 뇌연구가 단순히 뇌를 관찰하는 형태학적 또는 해부학적 관점에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인간 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뇌의 기능적·활용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뇌연구는 수학, 과학, 물리, 공학은 물론 심리학과 같은 인문사회학까지 방대한 학문이 결집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 최근 한국뇌연구원은 미국 애질런트사와 공동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뇌 지질체 분야에 대한 공동협력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공동 협력연구센터인 ‘뇌지표분석센터’를 뇌연구원에 개소했다. 이제까지 연구는 뇌 영상 분석, 분자 정보 분석 및 우리 인간 행동을 분석하는 기초연구였지만, 앞으로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정밀한 데이터 분석을 하고 산업계와 연계해 뇌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대구 동구 혁신도시 내에 위치한 한국뇌연구원(KBRI)은 뇌 분야의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소로 2011년 설립됐다. / 한국뇌연구원 -수의학과를 나왔더라. 수의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집안에 큰어른이신 분이 ‘생명체 연구를 하고 싶다면 의대보다 수의대가 더 낫다’며 수의대를 권유했다. 대학원은 의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의대에 진학할 때부터 생명과학 관련 기초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수의대에서 동물의 생리현상이나 질병연구를 하면 궁극적으로 기초과학 연구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을 바로 연구하지 못하니 동물을 모델로 연구를 해야 하는데 이런 것도 수의대 출신들이 잘한다.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 등 기초 생명과학 분야나 생리학 등은 수의학을 배경으로 하는 연구영역이다. 때문에 화학이나 물리하는 사람들도 최근에는 수의학으로 많이 넘어온다. 수의학은 인간과 동물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생리학 등 기초과학부터 질환 관련 임상의학까지 두루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학문이다. 다만 수의학은 세포나 동물, 심지어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긴장과 스트레스가 매우 크다.” -최근 발표되는 자료들을 보면 한국 과학계가 점점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은 크기가 작다. 인구만 봐도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되고 일본의 3분의 1이다. 연구개발 예산도 일본이 50조원, 중국이 200조원 쓰는데 우리는 23조원 쓴다. 매스(총량)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우리가 밀린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고 보면 우리는 대단한 수준에 와 있는 게 사실이다. 10년 전 SCI급 논문 기준의 한국 점유율이 0.5%였다. 당시 일본은 9%였다. 중국은 10%대였다. 내가 알기로 지난해 중국이 20%를 넘어섰지만, 일본은 6%로 떨어졌다. 우리는 2%로 올라섰다.” -의대가 인재를 너무 많이 흡수해간다는 지적이 있다. “선진국의 공통적인 상황이다. 미국, 일본 다 그렇다. 높은 삶의 질을 바라니 의대로 간다. 과거 우리나라가 제조업 중심일 때는 공대 인기가 많았다. 지금은 먹는 것을 해결한데다 고령화 시대까지 겹치니 의대가 인기 있을 수밖에 없다. 의대를 간다고 의사만 되는 게 아니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분의 1은 의대에서 나온다. 세계적인 의학자를 잘 키우면 우리나라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주요 의대에는 정말 반짝반짝하는 아이들이 있다. 세계 10대 경제국가로 성장한 지금은 우리가 세계를 선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인재양성 쪽으로도 많은 역할을 했더라. 과학 인재양성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해외에서 앞선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대학은 포닥(박사후연구원) 중심으로 바뀌었다. 우리도 과학기술을 주도하는 대학은 포닥으로 가야 한다. 서울에 있는 주요대와 부산대, 경북대 등 지방거점대학은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가면 된다. 지금은 이런 생태계가 잘 안 돼 있다 보니 젊은 연구자들이 외국으로 나가지만, 우리나라도 포닥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할 만한 역량이 된다. 최근 노벨과학상을 받은 연구를 보면 박사과정에서 결과물을 낸 것은 거의 없다. 포닥의 젊은 주니어 교수일 때 연구했던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는다. 우리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포닥 중심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러면 20년 내에 한두명 노벨상이 나올 거다.” -포스텍,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지방소재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에서 30년을 보냈다. 과학기술 연구에 있어 지방의 역할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과학기술의 첨단 연구 분야가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 여러 지역에 지역전략과 연계한 연구개발특구와 국책연구기관이 설립돼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지난 3월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을 세우면서 지역주도 혁신성장을 위한 전략을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변화에 대응하고 지역 연구개발(R&D)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 정부의 투자전략에 맞춰 지방도 연구현장 중심의 과학기술전략이 필요하다. 한국뇌연구원과 대구의 다양한 의료기관과 대학, 연구기관이 연계해 국가차원의 뇌산업을 지역에서 육성해보자는 전략을 제안했다. 올해 초 대구시에서는 ‘대구형 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그 핵심과제 중의 하나로 ‘대구 브레인시티 구현’을 목표로 내세웠다.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 극복, 뇌기반 휴먼증강기술 구현 등 뇌산업 전략도 발표했다.”   -지방은 특화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대구는 의료기반이 원체 좋다. 대구·경북이 잘하는 것을 특화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 최근 포항 세명기독병원에 국내 최대규모의 뇌병원을 만들었다. 과거 부산·경남은 조선, 대구·경북은 전자를 키웠던 것처럼 지방거점대학도 특성화를 강화해야 한다. 합계 출산율이 1명도 안 되는 상황에서 지방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특화다.” -과학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뇌연구원의 핵심가치로 ‘성장’과 ‘성숙’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이 산업화·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아직 성숙은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숙은 간단하다.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내 연구 분야가 세포 간의 소통을 핵심으로 삼듯 일상에서도 항상 이해하고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가까운 친구이자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팀 헌트 교수는 ‘과학자에게 즐거운 시간은 짧고, 좌절의 시간이 더 많은 법이다. 과학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고 과학으로 성공하려면 수도사처럼 일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연구현장에서 늘 좌절하고 어려움을 겪지만 고민하고 또 고민해 지식을 축적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과학자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이라 열정을 가지고 즐기면서 노력하기를 거듭 당부드린다.”

      박병률 편집장 2021.04.16 11:08

    • 문화/과학

      [2050 과학오디세이]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장 “과학시설은 국산화만 고집하면 망해”

      한국 과학이 한 단계 도약한 순간은 언제일까. 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장은 포항 방사광 가속기가 준공된 1995년을 꼽는다. 포항 방사광 가속기가 만든 ‘빛’이 과학 인재를 길러냈다고 본다. 한해 3000명이 포항 방사광 가속기를 찾는다. 지금도 35개 빔 라인(빛을 내는 장치)은 쉴새 없이 돌아간다. 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장 1995년 준공 이후 25년간 포항 방사광 가속기는 제 역할을 다했다. 그사이 설비는 구식이 됐다. 이 단장은 10년 전부터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 도입을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충북 청주 오창에 4세대 방사광 가속기 건립이 결정됐다. 오창 프로젝트를 총괄기획하고 이끌었던 이 단장에게 “어떻게 정부의 마음을 움직였느냐” 물었더니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덕분”이라고 답했다. 무슨 말일까. 지난겨울 갑작스러운 중증질환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병가를 낸 그를 4월 13일 대전 자택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큰 수술을 받았다고 들었다. 몸은 좀 어떤가. “죽다 살아났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다. 후유증으로 몸이 부자연스러운데 지금 거의 회복됐다. 오창 방사광 가속기 건으로 신경을 너무 많이 썼다. 몸이 못 버틴 것 같다.” -왜 그렇게 방사광 가속기에 매달렸나.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포항 방사광 가속기 이용 경쟁률이 2.5 대 1이 넘는다. 가속기에서 실험 한번 하려고 기다리는 분들이 많다. 지금 가속기만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앞으로 방사광 가속기의 쓰임이 더 다양해질 텐데 대기줄은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다. 과학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고 얘기했고, 이번에 만들게 된 것이다.” -방사광 가속기가 무엇인가. “쉽게 말해 빛을 만드는 빛 공장이라고 보면 된다.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면 접선 방향으로 다양한 빛(방사광)이 나온다. 과거 인류에게 빛은 태양이나 조명에서 나오는 빛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방사광 가속기를 이용해 다양한 파장의 빛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빛으로 물질의 구조를 분석할 수 있고, 세포 분열 과정과 같은 찰나의 변화까지 모두 포착할 수 있다. 기초과학부터 응용과학, 신약 개발, 반도체 제조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쓰인다.” -정부가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 건립에 반대했던 것으로 안다. “방사광 가속기 추가 건립은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 이미 한국은 가속기 사업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구축 사업이다. 2017년 완공을 목표로 2011년부터 짓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완공 못 했다. 이렇게 되니까 중이온 가속기가 완공되기 전에는 다른 가속기는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과기부도 그렇게 방향을 정했다.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로 넘어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중이온 가속기부터 마무리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2019년 일본 수출규제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가 터졌다. 우리는 탄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지 않나. 그때 방사광 가속기 건립에 대한 여론이 180도 바뀌었다. 반도체 소재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려면 방사광 가속기 구축이 필수다. 그때부터 정부 차원에서도 본격적으로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추진이 됐다. 오창 방사광 가속기 건립의 수훈 갑은 역설적이지만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도발이었다.” -중이온 가속기 사업은 왜 지연되고 있나. “지금 표류 중인 중이온 가속기 사업은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를 만드는 게 목표다. 한국형, 국산화를 고집하는 게 문제다. 국산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과학시설은 국산화를 목표로 하면 안 된다. 일단 최고 성능의 시설을 갖춘 후 활용을 잘해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국산화는 그다음이다. 한국은 가속기와 같은 거대한 첨단 연구시설을 우리만의 힘으로 구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다. 핵심기술은 여전히 외국에서 들여와야 한다. 해외기술을 들여오면 1년이면 만들 설비인데 우리 힘으로 하겠다고 고집하다가 시간을 소모하고 재정이 늘어나면서 어려워지게 된다. 우리는 아직 가속기 설비 관련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일단 필요한 핵심기술이 있는 나라에서 가져와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매국노라고 비판하는데 답답하다. 특히 정치인들이 국산화를 참 좋아한다. 실적으로 남으니까. 그래서 누가 국산화 얘기하면 거기에 매몰된다. 부실한 기획에 무리하게 국산화까지 넣었으니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방사광 가속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유감스럽지만 한국은 방사광 가속기 건설 분야 초일류 국가는 아니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이 초일류 그룹이고, 그 뒤를 다른 유럽 국가와 중국 그리고 한국이 추격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낙오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만해도 선방한 편이다. 일본에서 가속기를 처음 만든 시기가 1920년이다. 1920년에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가속기를 지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역사가 짧다. 본격적으로 과학연구를 시작한 게 1960년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따라왔다. 늦었지만 출발한 게 다행이다.” -오창 방사광 가속기는 포항 방사광 가속기와 무엇이 다른가. “포항 3세대 방사광 가속기에서는 태양광의 100억 배에 이르는 빛을 만든다. 오창 방사광 가속기는 포항 가속기의 100배 이상 성능이다. 빔 사이즈는 오창은 포항의 10분 1 이하 수준으로 작다. 빔이 작고 강할수록 더 작은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포항 가속기로 할 수 없었던 미세분석이 가능하다. 더 중요한 것은, 오창 방사광 가속기는 과학계뿐 아니라 산업체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산업 지원을 주요 포인트로 잡았다. 최소 30% 이상을 산업체 지원에 할당했다. 가동 이후에는 반도체 분야를 비롯한 산업체 활용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러면 기초과학 지원에 소홀해지는 것 아닌가. “일본 도호쿠대학 내에 방사광 가속기를 짓고 있다. 여기는 산업체가 7을 쓰고 대학과 연구소가 나머지 3을 쓴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일부 과학계에선 ‘과학과 기술을 분리해야 한다’, ‘기초과학과 순수과학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시대는 끝났다. 돈은 안 되지만, 과학 발전을 위해 연구할 테니 국가가 돈을 대라? 전 세계 어디에도 그런 방식으로 지원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는 국민 세금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과학은 산업에 도움이 돼야 한다. 예산을 받아 연구했으면 실적을 내야만 하는데, 그 실적은 논문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로 따져야 한다. 과학과 산업은 분명히 다르지만, 산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솔루션은 과학이 제공해야 한다. 산업뿐만 아니라 국가적 위기에서도 과학은 해답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조금 더 설명해달라. “단적인 예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이 사태에서 드러난 사실은 과학의 저력이 있는 나라는 버텨낸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나라지만 결국 그 나라가 백신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지금 백신 접종 추이를 보면 두 나라는 곧 집단 면역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백신을 만들지 못하는 나라는 그저 백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국도 과학 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치료제든 진단키트든 그나마 대응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과학을 못 하는 나라는 아무것도 못 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품귀 사태도 기술이 있으면 살아남는다. 지금은 코로나19, 시스템 반도체지만 앞으로 이런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 대한 솔루션은 과학이 쥐고 있다.” -한국 과학계는 솔루션을 낼 역량이 있나. “우리나라 과학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평가시스템의 문제다. 근본적으로 평가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으면 그 장래가 밝지 않다. 사스와 메르스 사태 후에 정부의 R&D 예산이 그쪽에 많이 배정됐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 과학계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그 예산으로 무엇을 했나 봤더니 논문이 많이 나왔더라. 왜? 논문 편수로 결과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논문을 위한 논문을 쓴다. 전에 삼성 갤럭시 배터리 폭발 사고 때도 고질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 당시 배터리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혁신 기술인 양 언론에 나오던 교수들과 논문은 현실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논문에 게재한 기술 중 실용화가 된 기술은 거의 없다. 논문 편수로 과학 실적으로 평가하고 과제를 주는 시스템부터 손봐야 한다.” -과학 인재양성 정책은 어떻게 보고 있나. “과학문화 활성화를 위한 이른바 과학 대중화 사업 예산은 다시 점검해야만 한다. 일련의 과학문화 활동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과학문화가 과학 인재양성 정책의 주류가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지속성이 없다. 대중은 재미있는 부분까지만 관심을 갖는다. 예컨대 뉴턴의 만유인력 하면 딱 사과까지다. 그다음 만유인력 공식으로 넘어가면 포기한다. 과학의 대중화는 만유인력의 사과와 같다. 과학 문화활동으로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동기 부여를 한다고 하는데 그 끝을 생각하면 회의적이다. 그나마 이런 과학문화 프로그램은 모두 서울 수도권 위주다. 과학은 대도시에서만 하나. 그러니 주니어 닥터 이런 프로그램에 죄다 서울에 있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대학 입학 포트폴리오에 쓰려고. 이런 것이 과학문화 대중화인가 생각하면 답답하다. 우리나라 어딘가에는 과학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발굴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과학 대중화 프로그램 일색이다. 특히 과학 저술이라고 해서 과학 교양서적이 많이 나오는데, 정작 대학에 가면 한글로 된 과학 교재가 없어 다들 원서를 본다. 재미있는 과학 교양서적 대신에 실제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전공 교재를 써줬으면 한다.” -과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과학은 어려운 것이다. 복잡한 절차와 입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모진 마음을 먹지 않으면 과학자가 되기 어렵다. 다만 그만큼 보람이 있는 학문이다. 과학은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이고 시작과 끝만 보는 게 아니라 중간 과정에서 실험하고 반복성과 재현성을 검증해야만 정립이 된다. 그러나 유사과학과 미래학은 그 중간이 없고 단지 문제 제기와 그리고 장밋빛 환상만 보여준다. 그래서 유사과학을 조심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은 어렵다. 하지만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다.”

      글·반기웅 기자 사진·김기남 기자 2021.04.16 11:08

  • 레이디경향

    •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2) 이명진 연구원과 아들 성현이의 호기심 천국

      육아/교육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2) 이명진 연구원과 아들 성현이의 호기심 천국

      아이들의 영원한 장래 희망 1순위는 과학자다. 이달에는 과학자 엄마의 하루 스케줄을 아들이 함께하며 직업의 세계를 탐험했다. 아이는 이 시간을 통해 엄마의 직업을 이해하고 자신의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과학자 엄마가 알려주는 과학 교육 정보도 준비했으니 참고해보자. 우리 엄마는 X-ray를 찍는 사람? 어릴 때 반에서 서너 명은 ‘과학자’를 꿈꿨다. 로켓을 만들어 우주에 가고 싶다거나 새로운 약을 개발해 불치병을 고치고 싶다는 등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같은 꿈을 꾸었다.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됐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첨단 과학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여전히 아이들은 과학자를 꿈꾼다. 하지만 아이들이 과학자를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의외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직업 중 하나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과학자가 하는 일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은 한정적이다. TV에서 보고 듣거나 책을 통해 읽은 내용을 말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명진(35) 연구원의 아들 홍성현군(10) 대답은 달랐다. “엄마는 엑스레이(X-ray)를 찍어서 새로운 물질을 찾는 일을 하고 있어요.” 옆에서 아들의 대답을 듣고 있던 이 연구원은 “엑스레이의 회절 패턴을 이용해 물질의 구조를 알아내는 장비를 담당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현재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강릉센터 나노물성영상팀에서 일하고 있다. 과학에 상당한 지식이 있지 않다면 그녀의 직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나노물성영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다. “저희는 재료의 기반 물성을 규명하기 위한 분석 지원을 수행하고 있어요. 주로 강릉의 특화 산업인 신소재 분야 분석을 하고 있고요. XRD라는 국가적 대형 장비를 담당하며 측정된 데이터를 해석하는 일을 맡고 있죠.” 10억분의 1m인 나노미터의 세계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나노 측정 장비를 담당하며 기업이나 단체, 학교에 분석 지원을 하며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고. 여기까지 이해한 후 다시 성현군의 대답을 살펴보면 나노물성영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막 열 살이 된 아이치고는 제법이란 생각이 든다. 또래 아이들은 과학자라고 하면 로봇이나 로켓을 만드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게다가 의사뿐만 아니라 과학자도 엑스레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아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아이가 가끔씩 연구실에 오거든요. 과학 장비를 직접 보고 만지며 때론 관찰 실험도 해요. 지난번에는 파리 머리를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더니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이렇게 늘 과학과 가까이 있다 보니 제 직업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같아요.” 과학관을 100% 활용하는 과학 모자 성현군이 과학적인 환경에 가까이 있다고 해서 이 연구원이 과학 교육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들과 함께 국립과천과학관을 찾은 것도 그녀만의 과학 교육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립과천과학관은 성현이가 다섯 살 때 방문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 기초과학관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좀 놀랐어요. 다른 곳들은 거의 없거든요. 기초과학에 중점을 두고 세분화한 것도 맘에 들었고요. 그래서 성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에 꼭 다시 오자고 점찍어놓은 곳이에요.” 그녀가 일하는 곳이 기초과학 연구를 위해 정부가 설립한 국내 최고의 기초 연구 인프라 기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임을 생각한다면 선택 이유가 납득이 간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누구보다 순수과학 분야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학관에 들어서자 모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반짝였고, 엄마는 자신의 세계에 온 듯 한결 편안한 눈빛이었다. 두 사람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전시물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했다. 성현군은 먼저 눈으로 살펴본 후 직접 체험을 하면서 프로그램을 익혔다. 몇 차례 해본 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전 뒤에서 조용히 아이를 지켜보던 엄마가 말을 건넸다. 차분한 목소리로 과학 원리를 묻고 설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어느덧 전시관을 다 돌아볼 무렵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오르락! 내리락!’이란 체험 전시물 앞에서 성현군이 걸음을 멈췄다. 핸들을 돌리면 태엽 같은 바퀴가 장착된 인형이 수직으로 세워진 봉을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도록 연출된 전시물이었다. 성현군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핸들을 돌리면서 눈으로는 수레바퀴 인형의 움직임을 좇았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이 연구원이 “인형이 왜 움직일까?”라고 묻자 아이는 “도르래요”라며 짧지만 정확하게 답했다. “미술관에 가면 해설사도 있고, 헤드폰으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잖아요. 그런 시스템이 과학관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줄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해 아쉬워요. 과학인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이런 사소하지만 큰 차이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사실 국립과천과학관에는 봉사자가 있다. 하지만 시간대별로 한정해서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 몇 개에만 이론을 설명해주는 담당자가 있을 뿐 그 외엔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거나 시설물을 관리 및 정리 정돈하는 스태프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을 놀이처럼 쉽고 재밌게 접하고자 방문하는 과학관이지만 단순 체험은 놀이와 다를 바가 없다. 국립과천과학관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다. 그렇지만 예산, 인력 등 아직까지 우리나라 과학 교육의 현실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몇몇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듯 시설물을 갖고 노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아쉬움을 남겼다. 놀이로 과학을 받아들이는 것과 놀이 간 큰 차이가 있다. 마치 도서관에서 공부하듯 과학관을 관람하라는 말이 아니다. 과학관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호기심’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 연구원과 성현군은 원자의 개념을 설명하는 전시물 앞에 섰다. 그녀는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입자 단위인 원자에 대해 설명했다. 원자와 소립자의 관계부터 역사 속에서 원자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등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성현군에게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성현군은 엄마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 기울이고 있었다. “어른들에게 원자와 분자의 개념을 이해시키려고 하면 무척 힘들어요. 기본 정보가 있든 없든 일단 ‘어려운 것’이라고 인식해버리기 때문이죠. 근데 아이들의 뇌는 스펀지와 같아요. 어떤 것을 설명하든 일단 흡수하듯 받아들이거든요. 그래서 성현이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다양한 것을 경험해보게 하려고 노력해요.” 과학관에서 이들 모자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많은 엄마들은 과학관 밖에서 휴식을 취하며 아이들끼리 관람하도록 했다. 함께 다니더라도 엄마와 아이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이가 관람을 하고 엄마는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기 일쑤였다. 물론 석사 학위를 받은 과학자 엄마처럼 일일이 이론을 설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엄마의 자세는 곧 아이에게도 드러났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오르락! 내리락!’의 전시물을 체험할 때였다. 한 남자아이가 핸들을 열심히 돌려 인형을 꼭대기까지 올린 후 다시 빠른 속도로 내렸다. 그러고는 “가자”라며 엄마의 손을 다음 전시물로 이끌었다. 바로 앞에 과학적 원리를 적어놓은 표지판은 보지도 않았다. 도르래의 원리를 살펴본 이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과학은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관찰 “의외로 많은 대학원생들이 졸업 논문이 통과되지 못해 석사 학위를 못 따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요. 바로 호기심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과학을 문제 풀듯 주입식으로 교육받은 친구들은 자유 주제를 참 힘들어하더라고요. 관심 있는 주제를 선정하려면 일단 어떤 것에 대해 ‘호기심’이 있어야 하거든요.” 이런 경험 때문인지 그녀는 성현군의 과학 교육 핵심을 호기심에 두었다. 아이가 싫어하면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분야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주위 환경을 바꿔놓았다. 현재 부부는 강릉에서 맞벌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체험관이나 과학관이 있다면 기꺼이 주말을 이용해 전국을 누빈다. “가끔 다른 엄마들이 저에게 과학 공부를 어떻게 시키는지 물어보세요. 그리고 본인이 과학을 전혀 모르는데 어떡하느냐고도 하시고요. 일단 과학 문제집을 맹신하지 말라고 조언해요. 두 번째는 과학 교구를 사서 엄마도 함께해보길 추천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최대한 과학적 환경을 만들어주되 강요는 금물이라는 점이에요.” 과학은 실생활과 밀접한 학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어렵고 낯설게 느끼는 과목 중 하나다.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싶어도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녀가 말했듯 엄마의 과학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실제로 이 연구원은 성현군보다 호기심이 많았다. 때때로 아들 옆에서 직접 체험을 하고 작은 전시물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현역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로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물이 시시할 법도 한데 아들보다 더 열심히 관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과학은 관찰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대상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꾸준히 관찰하면서 연구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죠. 그래서 성현이의 과학 교육도 기다리려고 해요. 성현이는 자기 관심사를 관찰하고, 저는 아이의 교육을 관찰한다고나 할까요? 물론 제가 잘 아는 분야니까 가능한 거죠. 다른 과목에서는 저도 걱정 많은 엄마예요(웃음).” 폐관을 알리는 음이 들리고 나서야 두 사람은 과학관을 나섰다. 아직 둘러보지 못한 곳이 남아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흔히 날 때부터 성향이 정해졌다며 문과 머리, 이과 머리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연구원과 성현군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달라졌다. 타고난 것보단 어떤 것을 관찰하느냐가 방향을 정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강릉으로 돌아가는 길, 두 사람은 과학관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며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에서 엄마와 아들 관계를 넘어 왕성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과학자와 예비 과학자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성현군의 과학자 일일 체험 후기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 정말 재밌어요! “예전에 제가 국립과천과학관을 왔었다고 하는데,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처음에는 엄마 연구실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훨씬 커요. 근데 현미경은 엄마 연구실에 있는 게 더 좋은 것 같고요. 그래도 여기서는 편광현미경으로 암석을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암석 교체 버튼을 누르면 재물대가 회전하는 것도 신기했고, 암석 6가지가 모두 다른 모양인 것도 재밌었어요. 렌즈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현미경도, 천체 망원경도 좋아요. 조만간 아빠, 엄마랑 천체 망원경이 있는 천문대에 가기로 약속했어요. 거기서 보는 별은 어떨지 기대가 돼요. 또 엄마가 늘 흰 가운을 입었는데 오늘 저도 여기서 똑같은 걸 입었어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엄마랑 저랑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줄 알고 물어봤었는데요. 그때 기분이 좋았어요. 진짜 과학자가 된 거 같기도 하고요. 오늘 하루 엄마랑 다양한 실험도 하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근데 못 본 게 많아서 아쉬워요.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다 보고 싶어요.” 과학자 엄마가 추천하는 과학 체험 프로그램 최고의 전문가에게 배우는 과학 체험 교육 엑사이언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 과학 대중화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는 과학 교육 프로그램이다. 생활 속 과학 체험과 연구 활동을 통해 청소년 과학 인재 육성을 지원하고자 시작하게 됐다.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에 토론과 실습까지 할 수 있어 프로그램의 전문성을 갖춘 것이 장점. 또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각 연령대에 맞는 실질적인 과학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이다. 첨단과학 창의 교실, 미리 보는 실험실, 찾아가는 과학 교실, 융합사이언스 교실, R&E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2014년 엑사이언스 프로그램은 3월에 신청받을 예정이다. 주소 대전 유성구 과학로 169-148 문의 042-865-3698, xscience.kbsi.re.kr 바람에서 에너지를 배우는 영덕 풍력발전소 어느 날 성현이가 책에서 풍력발전에 관련된 내용을 보고 가보고 싶다고 해서 찾아간 곳이다. 영덕 풍력발전소는 제법 큰 규모다. 2만여 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해낼 정도다. 크기만 해도 높이 80m, 한쪽 날개 길이가 41m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발전기들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이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근에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청정 발전 시스템에 관한 전시관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소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24 문의 054-727-5212 책에서 본 내용이 그대로 재현된 과학상상공간 Why PARK 과학 학습 만화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Why」 시리즈를 테마로 한 과학 체험 교육관이다. 책에서 본 내용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동적인 체험전이다. 공룡, 발명과 발견, 동굴, 바다, 독 있는 동식물, 유전과 혈액형, 사춘기와 성, 3D입체 영상관까지 총 8개 주제로 체험관을 나눠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끈다. 특히 먼저 책을 읽고 올 경우 재미와 교육적 효과가 배가된다. 주소 서울 광진구 광나루로 441 이용 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이용 요금 아동·성인 1만2천원 문의 1588-2918 글로벌 과학 인재 프로그램 카이스트 과학캠프 성현이가 올해 3학년이 된다. 그래서 여름방학부터는 이 캠프에 보내볼까 생각 중이다. 캠프 기간 동안 경영 분야 석학들이 기술 경영 마인드를 주제로 다양한 특강을 진행하며, 공학, 기술 관련 트렌드를 토론을 통해 배운다. 핵심 프로젝트는 아이가 직접 로봇을 만들고 디자인하며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취감, 창의성을 고취시킬 수 있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또 영어 발표 수업을 통해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 실력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무엇보다 국가 인증 캠프라서 부모로서 신뢰가 간다. 문의 02-556-2622, www.ee-ya.com 서울 하늘에 반짝반짝 별이 뜬다면 서울시민천문대 하늘의 별을 보려면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서울시민천문대를 추천한다. 주관측실에서는 달 표면이나 성운, 성단, 은하 등을 관측하며 망원경에 대한 강의도 진행한다. 천체투영실에서는 별자리와 천체의 운행에 대해 전문 강사의 쉽고 재미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방학을 맞아 방학 특강, 과학 교실, 과학 교과 연계, 일요 융합과학 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찾아가는 과학 교실’의 인기가 좋다. 각 전공 교수진들과 전문 과학자들이 직접 교실로 찾아가 수업을 하는데 이수를 하면 과학관 명의의 이수증까지 발행해준다. 아이들의 목표 의식 함양에 좋을 뿐만 아니라 이 기회에 전문 과학자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주소 서울 노원구 통일로 205길 13 이용 요금 과학 교실 기준 주 1회 1만6천5백~3만2천원(반에 따라 가격 상이) 문의 02-971-6232 과학자 엄마의 과학 교육 10계명 1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체험이나 전시장은 최대한 가도록 한다. 2 단, 가기 전 아이 스스로 자료 조사를 하게 한다. 3 관람할 때는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4 아이가 보기 싫다고 하면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5 갔다 온 후 짧게라도 보고서를 쓰도록 한다. 6 학습 만화나 학습 동화로 아이의 흥미를 높인다. 7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서 어린이 과학 잡지를 읽도록 한다. 8 과학 문제집을 맹신하지 않는다. 9 사교육 대신 도서관이나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과학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한다. 10 과학 교구 등을 활용해 아이와 함께 엄마표 과학 교육을 한다. PROFILE 이명진 연구원은… 학부 졸업과 동시에 결혼해 줄곧 학업과 육아를 병행해왔다. 힘들다는 석사 논문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의 경력 복귀 연구 지원을 통해 여성 과학자의 길을 다시 이어가게 됐다. 현재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강릉센터 나노물성영상팀에서 국가적 대형 장비인 XRD를 담당하며 분석 지원 및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글 / 이선희(프리랜서) ■사진 / 김영길 ■촬영 협조 / 국립과천과학관(02-3677-1500)>

      2014.02.12 11:51

    • 화제

      “가사조정에도 노하우가 있다” 부부행복연구원 최강현 원장

      ㆍ“빈말이라도 ‘내 남편이 최고야’ 하면 정말 최고의 남편이 될 거예요”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이혼 관련 뉴스, 갈수록 높아만 가는 이혼율에 어느새 무덤덤해졌다. 자그마치 1천 쌍의 부부에게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고 말한 가사조정위원 최강현 원장은 이혼 직전의 부부를 보면 ‘부부는 남남’이란 말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고 한다. 부부 갈등의 해법을 찾으려면 불화의 원인부터 차근차근 살필 필요가 있다. 이혼한 이유를 보면 답이 보인다 ‘부부행복전도사’로 불리는 최강현 원장(46)은 6년 전 부부행복연구원을 설립, 많은 부부들의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의정부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 인구보건복지협회 교육원 교수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브라운관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국내 최초의 결혼 서바이벌 프로그램 ‘세기의 커플’ 심사위원 등 각종 부부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제각각인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는 일이니만큼 이혼에도 수많은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최 원장은 3년간 1천여 쌍의 이혼 위기의 부부를 만나며 그들이 처한 이혼 사유를 아홉 가지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성(性)과 성격 차이, 생활고, 외도, 고부 갈등, 종교, 가정 폭력, 무시, 무관심, 술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30여 사례를 보면 ‘조금 더 일찍 문제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이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부부행복연구소를 설립하게 된 계기도 아내와 남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혼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요. 가정법원에서 만나지 않고 상담소에서 만났더라면 해결 가능했을 경우가 많았어요.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요. 제가 남성이다 보니 남성의 입장에서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양성평등이 지난 10여 년간 뚜렷한 흐름을 보이면서 여성의 의식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남성은 아직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요. 앞서가는 법제도 때문에 오히려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고요. 조금 더 참고 기다려준다면 남편들도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남편들을 교육하는 일에 힘쓸 거고요.” 가정법원에 찾아간다고 바로 이혼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4주간의 조정기간을 거쳐야 한다. 서로 마음이 돌아설 대로 돌아선 상태지만 이 기간 동안 극적으로 개선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최 원장이 느끼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는 남편이 바뀌어야 함을 역설한다. 젊었을 때는 덜하지만, 노년에 이혼을 당한 남자들이 얼마나 쓸쓸하고 처량하게 여생을 보내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부인이 얘기를 하면 잘 들어주세요. 여성에게는 대화를 통해 친밀함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쓸데없는’ 소리는 없습니다. ‘결론이 뭐냐’라고 묻거나 도중에 끊지도 마시고요. 애정표현 결핍증도 고쳐야 해요. 회사에서 만나는 여직원한테는 ‘예쁜 옷 입었네’라고 칭찬하면서 왜 정작 중요한 아내에게는 안 하나요? 말을 안 하는데 아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남편이 행복해지면 아내가 행복하고, 아내가 행복해지면 남편도 행복하다. 최 원장은 그 열쇠를 가사노동의 분담에서 찾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듯 누가 살림을 하고 얼마나 많은 부분을 나눠서 하는지가 가정 행복의 바로미터와도 같다. “남편들에게는 가사분담을 안 하면 나중에 황혼이혼당한다고 얘기해줍니다. 연배 지긋하신 분들 보면 여자들은 이혼하고도 잘 사는데 남자들은 너무 비참하고 피폐해요. 콩나물무침 하나 하려고 해도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몰라요. 손 하나 까딱 안 하다가 그게 쉬울까요? 노년에 행복해지려면 아내가 건강할 수 있게 보살피라고 강조합니다. 제가 남자여서 그런지 제 말이 효과가 있어요. ‘아내가 없어져봐야 그 소중함을 알 거냐’라고 하면 알아듣더라고요. 덕분에 철마다 과일 보내오는 팬도 생겼고요.” 반면 아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이다. 적어도 남이 아닌 가족에게 있어서 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은 남성의 자존심만 세워주어도 아내는 편하게 지낼 수 있단다. “요즘 존경할 만한 남성이 드물긴 해요. 존경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인정만 해줘도 행복합니다. 남편에게 부탁할 때도 ‘나 좀 힘든데 물건 좀 옮겨줄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해야 남편도 기꺼이 해줄 맛이 납니다. 빈말이라도 ‘내 남편이 최고야’라고 하면 정말 최고의 남편이 될 거예요.” 잉꼬부부는 침대에서부터 부부관계에서 성격 차이라고 일컫는 문제의 대부분이 실은 성(性) 문제일 거라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부부의 금실을 좌우하는 것이 잠자리가 아닐까. 이를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성생활은 부부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해소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좋다고 해서 부인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요. 50대 후반의 부부인데 남편이 술에 취해 새벽에 귀가할 때마다 반강제적으로 부부관계를 가졌다고 해요. 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의무감으로 그랬다’라고 하더라고요. 이혼 직전까지 갔었지만 세 차례의 상담 끝에 지금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존중과 배려 없는 일방적인 성관계는 강간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부인을 흉기로 찌르고 강제로 성관계를 한 사례를 부부강간으로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도 1980년대부터 “혼인증명서가 면책특권을 갖고 아내를 강간하는 자격증일 수 없다. 기혼 여성도 미혼 여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권리를 지닌다”라며 부부강간죄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를 따르는 추세다. “부부강간은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아야 해요. 남편이 원해도 아내의 동의가 있어야 된다는 교육이 필요해요. 다만 무조건적인 잠자리 거부도 이혼 사유가 됩니다. 아이 때문에 잠자리가 신경 쓰인다면 서구에서처럼 일찍부터 아이를 따로 재우거나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면 아이를 맡기고 부부만의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보세요.” 최 원장이 제안하는 부부 잠자리 원칙은, 의사표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랑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처럼 잠자리를 하기 싫은 이유도 표현을 해야 상대방이 알 수 있다. 남편이 원해도 잠자리가 싫다면 거부 의사를 정중히 표현하되 그 이유를 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오늘은 큰아이가 보채서 종일 신경을 썼더니 많이 피곤해요”, “내일 좋은 시간 가져요,” “다음에 행복하게 해줄게” 하는 식이다. 부부 행복의 길, 어렵지 않다 모 국회의원 보좌관직을 2년간 역임하고 다방면에 경험이 있는 최 원장은 전면적인 부부 교육, 아버지 역할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특히 여성의 의식 변화를 따라잡기 위한 남편들을 위한 교육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부부 사이가 좋으면 기업의 생산성도 높아지고 이혼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사회가 감당해야 할 천문학적인 이혼 비용도 줄어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건강한 가정, 건강한 부부관계가 생산성까지 높여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작년에 30만 쌍이 결혼하고 그중 10만 쌍이 이혼했다는 통계가 있어요. 자녀가 없는 부부가 45%, 결혼 후 5년 미만 이혼이 27%, 황혼이혼이 25% 정도 됩니다. 예비 신혼 교육이 절실해요. 요즘은 애정보다 스펙을 따져보고 결혼하기 때문에 서로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요. 결혼 전에는 혼수 준비에 에너지를 뺏기고 막상 결혼 후에는 하룻밤도 못 지내고 헤어지는 커플이 꽤 많아요.” 최 원장은 이어지는 강연 요청으로 바쁜 가운데 교사인 아내를 위해 가사 분담을 해왔단다. 담배 피우러 나갈 때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청소도 나눠서 하고, 이부자리도 스스로 갠다. 하지만 단 한가지 요리만은 해놓아도 가족이 먹지를 않아 엄두를 못 내고 있단다. “싸울 시간이 없어요. 아내가 해준 밥을 먹고 감사히 먹었다는 표현만 해도, 최소한 밥 굶을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10년째 기념일마다 아내가 다니는 학교로 꽃을 보내요. 직원들이 보는 데서 꽃을 받으니까 얼마나 좋겠어요. 몇 만원의 효과로 2주 동안 행복해요. 아내는 꽃 대신 돈으로 달라고는 하는데(웃음), 마음이 담긴 선물을 좋아하는 게 여자 아닌가요?” 또 그는 법률로 보장되는 결혼의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고 한다. 법률혼뿐만 아니라 사실혼도 부부관계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단다. 4주 후에 만나도 달라지지 않는 부부를 볼 때면 안타깝지만 사람들을 바꿔나가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애쓰는 일이라 보람도 크다. 최 원장의 말처럼 서로 좀 더 아껴주고 입장 바꿔 생각한다면 부부의 행복, 멀지만은 않을 것 같다. 부부의 행복을 위한 원칙들 ●첫째, 화가 날 때는 응급조치부터 욱하는 성격에 저질러놓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화를 다스려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언제 어떻게 하느냐가 부부의 평화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면 일단 자리를 피하거나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를 차분히 생각해보고 다시 얘기해도 늦지 않다. ●둘째, 부부 사이에도 포기가 필요하다 ‘부부 문제의 70%는 해결이 안 된다’라는 연구가 있었다. 있는 그대로 배우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원만한 부부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적당히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 ●셋째, 부부는 한 팀이다 고부 갈등의 경우 대개는 일방적으로 남편이 시댁의 편을 들어서 갈등이 커지곤 한다. 먼저 ‘내 아내’, ‘내 남편’의 편을 들고 난 뒤에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를 하나로 이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만의 팀워크가 없다면 부부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넷째, 공동의 꿈과 취미를 가져라 부부를 이어주는 가장 큰 고리인 자식이 장성하면 부부관계가 흔들리기도 한다. 노년에 부부가 함께 하나의 것에 관심과 목표를 갖고 있다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나 동호회 활동 등이 있다면 더없이 좋다. 사례로 보는 이혼 위기 1 외도로 인한 불신 17년 전 친정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열 살 차이 나는 남편과 결혼했어요. 그런데 5년 전부터 생활비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남편이 매달 300만원씩 내연녀에게 송금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당당한 내연녀를 만나서 그간 제가 속았다는 사실을 듣게 됐죠. 믿었던 남편에 대한 분노 때문에 괴롭습니다. 해법 노트 차마 ‘용서하시고 가정을 지키라’는 말을 하기 힘든 경우입니다. 자녀 때문에 덮고 넘어간다 해도 이런 상황이 반복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외도로 소원해진 관계는 다른 오해와 불신을 낳기 쉽습니다. 외도 후에 이전과 같은 관계를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요. 남편이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면 차라리 각자의 행복을 찾으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용서가 가장 큰 복수라고 하지만 용서하기 위해 감내해야 할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겠지요. 부디 자신의 행복을 위해 현명한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례로 보는 이혼 위기 2 무시도 정도껏 해야지 초등학교 동창인 아내는 저를 ‘병신’이라고 부릅니다. 사귀는 동안에도 ‘야!’라는 호칭을 주로 썼고요. 아이 앞에서 ‘지지리 못난 새끼’라고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는 전업주부인데도 상의도 없이 고가의 피아노 등을 구입하고 저와는 이미 각방을 쓴 지 오래입니다. 더 이상 무시받으며 살고 싶지 않아요. 해법 노트 동갑내기 부부의 경우 존중감이 부족해 무시하는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친근하게 들리는 반말도 좋지만 부부 싸움을 할 때는 서로에게 조심해야 합니다. 지켜보고 있을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배우자에게 막말을 하게 되면 마음도 막 대하게 됩니다. 부부간의 호칭부터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사례로 보는 이혼 위기 3 불합리한 경제활동 직장 동료로 만난 결혼 18년 차 부부입니다. 임신 후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양육에 전념했었지요. 그런데 남편은 과민성대장염 때문에 일이 힘들다는 이유로 10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더군요. 이후 저는 마트에 점원으로 취직해 번 돈으로 옷가게를 냈지만 남편은 취직이 어렵다며 집에서 지내면서 가사도 돌보지 않았어요. 최근에 상속받은 1억원으로 사업을 하려다 사기까지 당했고요. 해법 노트 결혼 전에는 사랑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막상 결혼해 같이 살다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부부는 서로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자존심을 긁을 수 있기 때문에 민감한 부분입니다. 이 문제로 이혼하는 부부는 남편이 가장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아내가 가족을 부양하고 남편이 살림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고요. 서로 역할 분담이 되어 있으면 문제가 없습니다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육아와 가사노동까지 아내에게 미루는 것은 불공평합니다. 서로 힘을 합쳐 가정을 돌봐야 진정한 부부라 할 수 있습니다.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이주석 ■참고 서적 /「넌 웬수랑 사니? 난 애인이랑 산다!」(최강현 저, 조선앤북) ■장소협찬 / 리얼커피(02-333-3637)>

      2011.10.28 17:30

    • [나의 건강 비법]자신에게 잘 맞는 운동으로 체력 강화 - 체육과학연구원들

      화제 나의 건강 비법

      [나의 건강 비법]자신에게 잘 맞는 운동으로 체력 강화 - 체육과학연구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바람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크고 작은 질병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각종 건강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레이디경향」은 실제로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건강 ‘달인’들을 만나 그들만의 건강관리법을 배워보기로 했다. 불로장생의 비법은 아니더라도 이미 실천해본 이들이 전하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건강관리법은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법부터 찾자 전 국민이 체육을 통해 즐겁고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은 첨단 시설과 연구진을 갖추고 국가대표 선수들의 과학적 훈련 개발, 재활, 지도자 육성 등 국내 엘리트 체육 발전을 담당해왔다. 또 ‘새천년 건강 체조’를 개발하는 등 생활체육 진흥과 국민 체력 증진에도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국가 체육 연구기관으로 ‘한국 체육’을 책임지고 있는 이곳의 연구원들은 과연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고 있을까. 전문체육연구실 이순호 책임연구원은 무엇보다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자신만의 운동법을 찾는 것이 건강 증진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건강한 몸을 지켜나가기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체육에 관한 연구를 해서인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어떤 운동이 가장 몸에 좋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아요. 답은 명확해요. ‘좋은 운동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에요. 본인이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끼고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운동이 가장 효과적이고 좋은 운동이죠.” 건강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겠다고 결심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제대로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간에 쉽게 포기하는 이유는 바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 따라서 ‘어떤 이유로 운동을 하고자 하는지’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 의지를 두 배로 높여줄 운동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순호 연구원은 틈 날때마다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는 어느 정도 몸에 익을 때까지 ‘일단’ 해보는 것이다. 일정 정도 실력이 붙으면 그 재미가 두 배가 된다. 예를 들어 달리기만 해도 그렇다. 일단 ‘뛰면서’ 느끼는 쾌감을 맛보고 나면 쉽게 운동을 끊을 수 없게 된다. 이순호 연구원은 요즘 자신에게 잘 맞는 운동법으로 ‘저녁식사 10분 후 걷기’를 정하고 이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하루 종일 각종 업무를 처리하고 전문적인 연구·개발에 몰두하면서 강의까지 맡다 보니 저녁이 되면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스트레스로 머리가 묵직해지기 일쑤다. 따라서 격한 운동보다는 전신을 고루 사용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걷기’를 선택했다.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일한다고는 하지만 저희도 시간에 쫓기다 보니 정작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즐겁게 운동하라’고 조언하면서도 저 역시 퇴근하고 집에 가면 꼼짝도 하기 싫어 누워 있기 일쑤였어요.” 그래서 꺼내든 것이 바로 시계다. 저녁식사 후 자리에 앉지 말고 대충 상을 치운 뒤 시곗바늘이 정확히 10분 뒤를 가리키면 미련 없이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하계동 집에서 중랑천을 따라 한 시간 정도를 걷는 것이다. 소화가 잘 되고 몸에 근력이 붙는 것은 물론이고 몸무게도 5~6kg 정도가 줄었다. 걷기를 시작하면서 저녁식사 후 TV를 보면서 과일이나 과자 등 주전부리를 챙겨 먹던 습관도 없어졌다. “식사 후에는 나른해지고 누워서 쉬고 싶어지잖아요. 시계를 보고 있다가 늘어지기 전에 바로 밖으로 나가도록 하세요. 저는 거의 매일 하다가 요즘에는 바빠서 일주일에 3일 정도밖에 걷지 못하는데, 그래도 지속적으로 한다는 점이 중요해요. 아내와 함께 걷는데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꼭 데이트하는 느낌이에요. 운동하면서 데이트도 하니 더욱 좋죠.” 나눠서 하는 운동도 효과는 같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처럼 체육과학연구원연구원들도 바쁜 업무로 인해 특별한 운동을 하거나 음식을 제때 챙겨 먹지는 못한다고 한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몸을 최대한 많이 움직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스포츠과학연구실 박세정 연구원은 연구실에서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고 이동할 때 계단을 이용해 몸을 훈련시킨다. “실생활에서 조금씩 나눠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운동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제가 10분씩 나눠 운동을 했을 때와 연달아 긴 시간 운동을 했을 때의 신체 변화를 연구한 논문을 썼거든요. 연구 결과 혈압에 관한 운동 효과가 거의 비슷했어요. 그러니까 작정하고 운동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거예요. 보통 ‘힘들게’, ‘오래’ 운동해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체력이 받쳐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생활 속 운동 중에서도 ‘계단 오르내리기’는 박세정 연구원이 가장 자신 있게 추천하는 효과적인 운동법이다. 그녀 또한 급한 일이 없을 때는 아파트 계단을 이용하고 차 대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연구 중간중간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어려운 동작은 없다. 작은 덤벨이나 밴드를 이용해 몸을 쭉 늘려주거나 몸을 비틀어 호흡을 고르는 정도다. 양쪽 몸에 고루 체중을 실어가며 균형을 맞추고 뻐근하게 자극이 느껴지는 부위를 중점적으로 운동한다. 주로 운동선수들의 상해에 따른 처방 및 스포츠의학을 연구하고 있는 박세정 연구원은 운동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아무리 운동이 좋다고 해도 인체에 유해한 환경에서 몸을 움직인다거나 혹사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 특히 4월에는 황사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일기예보에서 경고하는 주의 시간대에는 절대로 밖에서 운동하지 마세요. 호흡기가 좋지 않은 분들은 각별히 조심하시고요. 운동을 할 때는 평소보다 호흡량이 스무 배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황사바람 속에서 운동을 하면 짧은 시간에도 엄청난 유해 중금속을 마실 수 있어요.” 몸의 적응 능력을 믿고 점진적 강도 높이기 연구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며 굳은 몸을 풀어준다는 박세정 연구원. 물을 자주 마시는 것도 잊지 않는다.신체의 특성과 운동학습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체육과학연구원연구원들은 우리 몸이 가진 적응 능력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몸은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체력도 주어지는 상황에 적응하면서 점차 발전해나간다는 것. 따라서 운동 효과를 늘리기 위해서는 점진적으로 운동의 강도를 높여가야 한다. “제가 처음에 하루 50분씩 걷기 운동을 시작했을 때, 집에 돌아오면 피곤함을 많이 느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그러면 시간을 좀 더 늘려줘야 해요. 이것도 익숙해지면 걷는 속도를 좀 더 높여보세요. 항상 정형화된 활동만 하다 보면 몸도 단순히 습관적으로 이를 인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강도를 조절해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 것이죠.” (이순호) 또 운동에 관한 지나친 ‘의무’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각종 건강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의미 없는 조건에 집착하다가 본연의 목적을 잃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아침에 운동을 하는 것이 좋은지, 저녁에 하는 것이 좋은지 등의 궁금증을 물어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호흡기나 당뇨 등 특정 질환이 있는 환자라면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조건들보다 몸이 어떻게 적응해나가는지 지켜보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송홍선) ‘코어’ 강화 운동으로 중심 단련 송호선 연구원은 몸의 중심축을 단련하는 ‘코어’운동이 건강관리의 핵심이라고 말한다.베이징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 획득을 이끈 숨은 주역인 송홍선 연구원은 선수들만큼 자기관리를 혹독하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포츠과학을 전공하고 현재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수영 등의 종목에 관한 운동생리학적 이론과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는 그는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운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저 스스로 건강을 자부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의 건강도 책임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엄격하게 체력 관리를 하고 있어요. ‘아침형 인간’인 편이라 일찍 연구원에 나와 트레이닝실에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있어요. 바쁠 때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12시부터 40분 정도 하고요. 운동 시간이 짧을 때는 강도를 높여 최대한 집중해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송홍선 연구원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코어’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목에서부터 골반에 이르는 몸의 중심축을 튼튼하게 단련함으로써 신체 불균형과 각종 질환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척추의 작은 근육들을 자주 자극시켜주면 몸에 힘이 생겨요. 겉으로 보이는 근육도 중요하지만 이 몸속 근육이 발달해야 진정한 건강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루에 최소한 10~20분 정도는 시간을 내서 ‘코어’ 운동을 하는 것이 좋아요.” 송홍선 연구원은 ‘코어’를 강화하는 가장 쉽고 대표적인 동작 한 가지를 소개했다.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 척추 마디마디를 단계적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몸을 눕히는 것이다. 몸을 일으킬 때도 같은 방법으로 천천히 올라오며 가장 버티기 힘든 각도에서 최대한 오래 몸을 지탱해본다. 단, 평소 허리가 약한 사람이라면 무리하지 말고 엎드려서 양팔과 다리를 들어 올리는 정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코어’를 강화하는 데 좋은 동작들.“또 하나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동작이 바로 ‘스쿼트’예요. 무게가 있는 아령 등을 잡고 상체는 고정한 상태에서 엉덩이와 척추의 힘으로 앉았다 일어나면 돼요. 내려간 상태에서는 잠시 멈추고 버티면서 평소 사용하지 않는 근육들이 자극받을 수 있게 해요. 그리고 운동의 마무리는 물구나무서기로 해요. 집중해서 균형을 맞추다 보면 혈액순환도 잘 되고 몸과 마음이 정리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거든요.” 송홍선 연구원은 최근 국민 체력 향상과 관련된 프로젝트 추진을 맡게 돼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나다 보니 스트레스가 엄청날 터. 그때그때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것도 송 연구원의 건강 비결 중 하나다. “일이 힘들 때는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자꾸만 떠올려봐요. 제가 열심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해보며 ‘의미’를 부여하려 하죠. 당위성을 찾고 나면 힘듦보다는 보람과 행복감이 먼저 느껴지거든요.” 생각을 바꾸고 나면 에너지와 추진력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의미를 갖고 긍정적으로 일에 임하다 보면 일의 성과도 좋아진다는 것이 송 연구원의 설명이다. 대신, 일을 할 때는 최대한 몰입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완벽히 일을 놓아버리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하루는 잠도 푹 자고 청소도 하는 등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요.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요. 현대인들 중에는 ‘일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많아요. 잘 쉬는 것도 테크닉이에요. 강박감과 스트레스에서 놓여나는 자신만의 방법을 하나쯤은 꼭 갖도록 하세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강은호>

      2010.04.06 15:42

    • 연예

      메릴랜드대 초빙 연구원으로 유학 떠나는 오유경 아나운서

      꿈을 향해 가는 이의 설렘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뭉클한 에너지가 전이된다. 14년 방송국 생활 중 13년간 데일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완벽한 방송 체질로 맞춰진 오유경 아나운서가 1년의 쉼표를 찍는다. 이름 석자보다, 얼굴보다 프로그램을 빛나게 하는 진행자였던 그녀의 빈자리가 제법 크게 느껴질 것 같다. 역사적인 순간에는 그녀가 있었다 엊그제 ‘시사 투나잇’을 보다가 부쩍 수척해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 빨간 옷 입은 날요? 몸살이 왔는데 그날이 가장 심한 날이었어요.” 연례행사로 찾아오던 감기가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건 후임 진행자가 막 정해지고 나서였을 거다. 13년간 데일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편성표 맞춤 체질이 되어버린 오유경(37)일지라도 믿음직한 후배에게 마이크를 넘겼으니 이만 하면 됐다고 안도하는 순간 수년간 팽팽하게 잡아온 고삐를 슬쩍 놓아버렸는지 모르겠다. KBS1-TV ‘생로병사의 비밀’, KBS2-TV ‘생방송 시사 투나잇(이하 시투)’을 맡아온 아나운서 오유경이 6월 말 유학길에 오른다. 저널리즘 철학과 실무 분야를 균형 있게 다루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메릴랜드대 필립메릴저널리즘대의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개인 연구실을 제공받는 데다가 강의 요청까지 받았다고 하니 듣는 사람이 다 뿌듯해진다. “오래 일했으니 충전의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꾀를 부릴까 싶었는데(웃음), 학교 측으로부터 강의 요청까지 받고 보니 보다 열성적으로 해야겠더군요. 얻어만 갈 것이 아니라 제 경험을 나누라는 의미이니 부실하게 준비를 해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무리했더니 감기몸살이 왔어요.” 1994년 KBS 공채 20기로 입사한 오유경 아나운서는 교양 프로그램에서 활약해왔다. ‘국악한마당’을 진행할 땐 그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었고, ‘6시 내 고향’ 시절엔 이보다 더 적역일 수 없다고들 했다. 1회 때부터 맡은 ‘생로병사의 비밀’은 햇수로 5년째 이끌고 있다. 오유경이 주는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담당하는 프로그램은 실패한 법이 없다며 KBS의 한 PD는 프로그램에 생명력을 주는 진행자라고도 했다. 2년 전 한국방송대상 수상 역시 그 점을 높이 평가했을 줄로 안다. 2년 전 오유경은 ‘시사 투나잇’과 함께 방송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열었다. 농촌 어르신과 두런두런 미담을 나누던 ‘논두렁밭두렁 MC’가 과연 시사를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없었을리 없다. 방송이 시작된 뒤, 며느리 삼았으면 딱 좋겠다 싶었던 후덕한 미소의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톡톡 입바른 소리를 하는 진행자가 브라운관을 장악했다. ‘어디서 갑자기 독한 여자가 나타났느냐’는 시청자의 반응은 오히려 즐거운 활력소였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경력기술서를 쓰다 보니 제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방송은 한번 쏟아내면 날아가버리는 매체라 제가 지내온 시간에 대해 곰곰이 돌아볼 여유가 없었거든요. 옛날 흔적을 들춰보니 나름 의미 있고 영향력 있는 방송을 해왔더군요.” 그러고 보니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2회에 걸쳐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 4시간 생방송을 이끈 것도 오유경이었다. 반신욕 붐을 이끌고 건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창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생로병사의 비밀’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년간 국내 모든 이슈를 다룬 ‘시투’는 최초로 여성 진행자가 왼쪽에 앉아 메인이 된 프로그램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또 죽은 시간대였던 방송 3사의 마감뉴스 경쟁을 뜨겁게 한 것도 ‘시투’다.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매국노 5적이 되기도 반면 오유경 개인에게 평일 자정 방송은 참 많은 걸 포기하게 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가족을 챙기는 역할은 물론 저녁 약속의 여유를 앗아갔고, 카메라에 예쁘게 잡히고 싶은 욕심도 잊게 만들었다. 새벽 2시에 퇴근해 4시에 잠드는 일상에 적응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렸다. 방송에서 그녀가 오죽 피곤해 보였으면, 한 신문사 기자가 멋진 재즈카페를 소개하는 칼럼을 쓰면서 ‘늦은 밤 카리스마 넘치게 방송을 진행하는 오유경 아나운서가 그곳에 와서 여유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글을 썼을까. ‘시청자로 하여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아닌 무난하게 생각하는 진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선배 아나운서의 가르침을 지론으로 삼아온 오유경은 ‘시투’를 만나고 방향키를 돌렸다. 기계적인 객관성을 버리고 가치 중립을 지향하는 프로그램 성격 때문이었다. 미군 기지 이전 문제로 불거진 평택 대추리 사건 때에는 시위 진압을 앞두고 지휘관이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전경들을 독려하는 장면을 방송에 내보냈다가 친북반미 아나운서라는 비난을 받았다. 황우석 사건을 정면으로 다뤘을 때에는 ‘시투’의 홈페이지에 수백 페이지가 넘는 네티즌의 글이 올라왔고 이메일에는 항의 글이 빗발쳤다. 혹자는 매국노 5적에 그녀의 이름을 올렸고, 급기야 오랫동안 이어온 사모임 멤버로부터도 원망의 화살을 받았다. “주로 공격받았던 사건이 기억에 남네요. 황우석 박사님은 당시 우리 국민에게 자랑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에 그 권위를 훼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가 황 박사님이나 지지자들에게 뼈아픈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부 네티즌들이 제기한 음모가 있어서가 절대 아니었어요. 참 마음이 아픈 일이었지만 해외 엄격한 기준에 따르면 진실이 아닌데 우리만 자위하고 있는 거 같았기 때문에 많은 고민 끝에 방송을 했죠.” 방송을 잘 안다는 사람들도 간혹 물어온다. “앵커 코멘트는 오유경씨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그럼 자신의 충분한 의견과 팀의 취재 결과를 종합해 공통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지금껏 방송에서 자신의 의지와 반대되는 생각을 밝힌 적은 없다. “‘시투’는 안티가 많지만, 그건 시청자 스스로 판단을 한다는 의미거든요. 우리 팀의 취지가 100%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여지를 제공하려 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제가 ‘시투’를 높이 사는 건 종전 뉴스에서 선택받지 못한 이슈를 다뤘다는 점이에요. 이주민 노동자 사례, 사회적으로 정말 크지만 눈감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장애인 문제 등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시투’에서는 메인이 됐죠.”솔메이트 남편, 속 깊은 딸 오유경의 이번 유학이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는 건 초빙 연구원이라는 좋은 조건뿐만 아니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라면 차마 짐 쌀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 마침 남편 천종식 교수(서울대 생명공학부)가 안식년을 얻어 교환교수로 함께 갈 수 있게 됐다. 남편과의 인연에 대해 묻자 주변 사람들의 뜨거운 성원 덕분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첫 번째 공신은 입사 동기인 ‘세상의 모든 아침’의 이형걸 아나운서. 고등학교 동창인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가 묵살(?)당한지 몇 년 후 동일 인물을 소개해주는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두 사람의 인연을 이어줬다. 두 번째 공신은 지금은 KBS를 떠난 선배 공정민 아나운서. 매번 모임 때마다 ‘내 이상형’이라며 천 교수와의 만남을 독려했고 심지어 정신과 의사인 남편을 가세시켜 ‘천 교수는 정신적으로도 아주 건강한 사람’이라며 단단히 밀어붙였다. “남편이 프러포즈를 했는데 제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바람에 합의하에 한 달간 유예 기간을 둔 적이 있어요. 그때 난데없이 제 가장 친한 친구 정화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이 내 친구가 만난 남자 중 최고니까 꼭 유경이와 결혼하라’고 했다더군요. 그 전화를 받은 남편은 한달음에 제가 출장 가 있던 강원도 용평으로 달려왔어요. 둘 다 저지르는 성격이 못 되는데… 주변의 도움 덕을 봤죠.” “지금도 너를 사랑하지만, 10년 뒤에 더 사랑할 거야”라는 절절한 고백으로 일단 마음을 사로잡은 남편은 “솔메이트가 되어주겠느냐?”는 로맨틱한 프러포즈로 쐐기를 박았다. 지금에야 TV 시트콤이나 책 제목으로 흔하디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8년 전만 해도 ‘솔메이트’는 ‘희소성’이 있었더랬다. 인생의 동반자, 반려자, 친구를 구하는 듯한 그의 손을 덥석 잡아버린 이유다. “남편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성을 찾는다고 했어요. 그런 남편의 마음가짐과 배려 덕분에 방송 일에 매진할 수 있었겠죠.” 스스로 ‘불량주부’ ‘불량엄마’를 지칭하는 것도 다 가족의 지지를 받는 주부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일 것이다. 새벽 4시나 되어야 잠자리에 드는 탓에 평일 아침에는 어린이집 가는 딸아이를 한 번 안아주는 것 말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예방접종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지난주 주사 두 대를 한꺼번에 맞히고는 마음깨나 아팠었나 보다. “진이를 봐주는 할머니와 같이 아이를 챙기지만 어쩌다 둘 중 한 사람이 깜빡하는 날엔 꼭 일이 터져요. 어린이집 졸업사진 찍는 날, 다른 아이들은 졸업식 옷을 입었는데 진이 혼자서 공주 드레스를 입고 갔더라고요. 또 수료식날 진이네 반은 졸업생이 아니니까 어머니들 오지 말라는 선생님의 당부를 듣고 안 갔더니, 다른 엄마들은 다 갔더라고요. 별거 아닌 일 같아도 가슴에 맺히는 건 어떻게 말로 할 수가 없어요. 상처는 받지 않았나 걱정도 되고. 50점도 안 되는 엄마라는 게 참….”완급을 아는 진행자, 1년 뒤를 기대하며 차라리 투정을 부리면 좋으련만 애어른 같은 진이는 엄마 속을 더 아리게 한다. 미국으로 가면 자기를 돌봐주는 할머니는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가 하면, “할머니,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중요하지요?”라며 행여라도 섭섭할세라 할머니 속을 헤아리려 든단다. “다행스러운 건 작년 말 어린이집에서 받은 테스트에서 진이는 정서가 안정되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나온 거예요. 다른 평가보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 정서적으로 평화롭다는 결과에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제 인생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어떻게 보면 딸에게 부족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잘 커줬다는 게 고맙고 또 고마웠어요.” 진이가 ‘협조적인 딸’이 된 건 엄마의 직장을 자주 보여준 힘이 크다. 얼마 전에는 딸의 친한 언니가 아나운서가 꿈이라며 박지윤 아나운서와 만나고 싶다고 하기에 그러마 했더니만 진이도 ‘나도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라고 하더란다. 매일 바뀌는 장래희망이긴 하지만, 엄마가 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아는 거 같아서 내심 흐뭇했다고. “심야 방송을 맡고서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긴 뒤 가끔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거든요. 며칠 만에 엄마를 만나면 진이는 조금만 더 놀다 가라고 붙잡아요. 그냥 떼놓고 나오기가 뭐 해서 ‘엄마는 진이 보고 싶어서 몰래 도망 나왔기 때문에 몰래 들어가야 해. 진이가 뽀뽀해주면 엄마는 투명인간이 돼서 사람들이 못 알아볼 거야’라고 했더니 이마, 손, 엉덩이까지 아이가 뽀뽀를 하는 거예요. 한참을 그렇게 속는 거 같더니 한번은 그러더라고요. ‘나는 회사에서 몰래 도망 나오는 아나운서는 싫어’라고요(웃음).” 엄마와 함께 미국에 가야 한다고 하자 “한국에 너무 오래 살았으니 미국에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말하는 진이 덕분에 오유경은 모처럼 맘껏 웃었다. 진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출국 날짜가 다가오면서 마음이 무거워오는 건 벌써부터 1년 후를 내다보기 때문이다. 작년 KBS를 시작으로 부쩍 신설되기 시작한 시사 전문 프로그램은 최근 방송 3사에서 고루 빛을 발하고 있다. 편집의 힘이 중시되는 ‘VJ특공대’류의 다큐 붐이 잦아들면서 서서히 진행자의 역량이 요구되는 시사 프로그램이 부각되고 있다. 유학 발표 직전 시사 프로그램의 꽃이라 불리는 KBS 제1라디오의 진행자 제안을 받았던 오유경은 다소 마음이 급해 보였다. 아니 기대에 차 보였다는 게 옳을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을 일컬어 맛은 없지만 영양가는 높은 시금치에 비유합니다. 1년 뒤 기회가 주어진다면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한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을 통해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1년이라는 기간이 짧다면 짧은데, 제 각오가 너무 거창하지 않나 모르겠네요(웃음).” 시청자의 권력을 등에 업었다고 생각하니 대통령이나 VIP를 인터뷰할 때 더 힘이 나더라는 오유경. 교양 프로그램의 안정감과 시사 프로그램의 팽팽함을 두루 거치며 완급의 미학을 익힌 그녀의 방송 인생 제2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니 어쩌면 좋은가.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민영주 ■장소 협찬 / 카페 정원(02-733-1911)

      2007.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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