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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열차, 진짜 사랑을 실었습니다…‘커플열차’첫 결혼 커플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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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 진짜 사랑을 실었습니다…‘커플열차’첫 결혼 커플 탄생

      코레일관광개발 ‘커플열차’에서 시작된 인연… 황진우♥최수양 커플 비하인드 스토리 1년 반가량의 연애 끝에 지난 13일 결혼식 올려… “참가 계기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코레일관광개발(대표이사 권백신)의 ‘굿바이! 나만 솔로, 커플열차(이하 ’커플열차‘)’에서 만난 두 청춘이, 사랑을 키워 결혼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커플열차’ 운영 이후 탄생한 첫 결혼 커플로,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만남 프로그램에서 실제 결혼까지 이어진 사례로는 이례적이어서 주목된다. 지난 2023년 12월 강원도 춘천에서 진행한 ‘커플열차’에 참여해 처음 인연을 맺은 최수양 씨(코레일관광개발 재직)와 황진우 씨(한국도로공사 재직)는 약 1년 반가량 교제를 이어오다 지난 13일, 가족과 지인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수양 씨는 처음에 프로그램 내용이 재미있게 느껴져서, 진우 씨는 회사 선배가 공고를 보고 추천을 해주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커플열차’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은 0%였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하루 안에 여러 명을 알아가며 호감을 느낀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수양 씨는 “로테이션 대화 마지막 시간에 진우 씨와 처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제게 관심을 두고 다가오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얼굴이 점점 잘생겨 보이더라”며 회상했다. 진우 씨 역시 “닭갈비를 먹으러 가는 길에 수양이를 보며 빨리 말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혼자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난다.”고 첫 만남을 떠올렸다. 행사 종료 후 인연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춘천에서 서울에 도착한 뒤 두 사람은 아쉬운 마음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했고, 이후 두 번째 만남이 이뤄지며 설렘과 애틋함은 점점 깊어졌다. “연애하면서 ‘이 사람 아니면 결혼 못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우 씨는 말했다. 수양 씨도 “이 정도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고, 늘 진심이 느껴져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결혼은 커플열차가 만들어낸 첫 결실이자, 여행에서 낯선 만남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결혼으로 이어진 따뜻한 사례로서 의미를 지닌다. 진우 씨와 수양 씨는 두 사람 모두 공공 분야에서 근무 중이기도 하지만,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도 잘 맞아 연애와 결혼 모두 자연스럽게 흘러갔다고 전했다. 결혼 적령기인 사람에게 ‘커플열차’를 강력히 추천한다는 수양 씨는 “나도 움직여야 인연을 더 빨리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혼자 참가하는 걸 망설이는 분들도 많겠지만, 커플열차는 동성·이성 모두가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분위기로 짜여 있어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조언했고, 진우 씨는 “운명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기회가 온다면 꼭 잡아보시길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커플열차’는 여행과 만남을 결합한 코레일관광개발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로, 기차여행을 하며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기획돼 연애와 결혼에 관심 있는 청년층에게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2023년 춘천, 2024년 부여, 지난 1월 정선에서 운영됐다. 올 하반기에도 또 한 번 ‘커플열차’가 출발할 예정이어서, 새로운 인연을 찾고 싶은 싱글들의 관심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권백신 코레일관광개발 대표이사는 “기차 위에서 피어난 두 사람의 인연이 결혼까지 도달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라면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순간, 여행은 더 큰 의미가 된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특별한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기차여행 콘텐츠를 지속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강석봉 기자 2025.04.17 11:45

    • 라붐 출신 유정, ‘위문열차’ MC로 맹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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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붐 출신 유정, ‘위문열차’ MC로 맹활약

      ‘위문열차’ 방송화면 캡처 걸그룹 라붐 출신 유정이 국군장병들을 위한 대표적인 군 문화 프로그램 ‘위문열차’의 MC로 활약하며 눈부신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유정은 매회 유쾌하면서도 안정적인 진행을 선보이며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고 있다. 현장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해 출연 아티스트들과 군 장병들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는 따뜻한 멘트로 감동까지 선사하고 있다. 특히 유정은 라붐 활동을 통해 쌓아온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한 진행을 넘어 현장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이며 ‘위문열차’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키고 있다. 실제로 군 장병들 사이에서는 유정을 향한 응원과 환호가 끊이지 않으며, 그녀의 진행 덕분에 프로그램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유정의 소속사 관계자는 유정에 대해 “단순한 MC 역활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가는 진정성 있는 진행자이다”며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로 현장을 이끄는 모습이 많은 관객 및 제작진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유정은 MC 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능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며 다재다능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손봉석 기자 2025.03.26 22:47

    • [종합] ‘지볶행’ 끝내···9기 옥순-남자 4호, 파국행 열차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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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 ‘지볶행’ 끝내···9기 옥순-남자 4호, 파국행 열차 탔다

      SBS Plus와 ENA의 ‘지지고 볶는 여행’ ‘나는 SOLO(나는 솔로)’ 9기 옥순과 ‘나는 SOLO,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이하 ‘나솔사계’) 남자 4호, 그리고 22기 영수-영숙이 결국 ‘파국행 열차’를 탔다. 14일(금) 방송한 SBS Plus와 ENA의 ‘지지고 볶는 여행’(이하 ‘지볶행’, 제작: 촌장엔터테인먼트)에서는 9기 옥순-남자 4호, 22기 영수-영숙이 프라하 여행 둘째 날 ‘기-승-전-위기’에 부딪히는 모습이 펼쳐졌다. 앞서 22기 영수-영숙, 9기 옥순-남자 4호는 ‘한 지붕 아래 한방을 쓴다’는 ‘지볶행’만의 ‘십약조’에 따라 같은 방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잤다. 이날 22기 영수는 동이 트기 전부터 22기 영숙이 깰까 봐 조용히 일어나, 전날 22기 영숙에게 지적받았던 ‘로밍’ 문제를 홀로 해결했다. 이후 한국에서 가져온 즉석 미역국에 볶음밥으로 아침식사를 차려냈다. 하지만 22기 영숙은 “고생 많았네. 대박이야”라고 칭찬하면서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는 “사실 아침엔 브런치 스타일로 달걀 요리를 먹고 싶다고 어제 (22기 영수에게) 말했었다. 그런데 제 얘길 안 듣는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제 생각을 버리고 있다”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또한 22기 영수는 식사 중 계속 그릇과 수저를 부딪히며 ‘쨍쨍쨍’ 소리를 냈고 이에 예민해진 22기 영숙은 “밥 먹을 때 그렇게 소리 내는 거 아니야”라고 22기 영수의 식사 매너를 지적했다. 9기 옥순은 남자 4호의 우렁찬 코골이에 새벽 4시 50분 강제 기상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한 9기 옥순은 커피를 마시며 ‘카페 오픈런’을 계획했다. 그러던 중, 남자 4호가 일어났고 9기 옥순은 예의상 “같이 갈래?”라고 물었다. 남자 4호는 커피를 안 마시는 터라, “실탄 사격장도 있던데?”라고 넌지시 자신의 의견을 건넸으나, 9기 옥순은 “내 스타일 아닌데? 난 ‘1일 10카페’ 하고 싶은 로망이 있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결국 남자 4호는 9기 옥순을 따라 카페로 향했으며, 커피를 마시던 중 다시 한 번 “실탄 사격장 가볼래?”라고 물었다. 9기 옥순은 또 다시 거절한 뒤 2차로 가고 싶은 카페를 보여줬다. 남자 4호는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9기 옥순은 아랑곳 않고 길을 걷다가 우연히 ‘굴뚝빵집’을 발견했다. 9기 옥순은 곧장 “이거 내 버킷리스트였다!”라고 환호하며 ‘굴뚝빵’ 하나를 사서 남자 4호와 ‘나 한입 너 한입’ 하며 신나게 나눠먹었다.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되찾은 두 사람의 모습에 3MC 신동-경수진-이세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잠시 후 9기 옥순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혼자 왔으면 더 재밌었을텐데”라고 반전 속내를 드러내, 3MC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한편 아침 식사를 마친 22기 영수는 ‘나홀로 환전’을 하러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1000유로 이상을 환전하려면 여권이 있어야 한다는 환전소 직원의 안내에 ‘멘붕’에 빠졌다. 다행히 직원의 조언으로 900유로를 환전해 생기를 되찾은 22기 영수는 카를교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네스 다리를 거쳐 산책을 즐기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22기 영숙은 22기 영수의 ‘환전 후일담’을 무심하게 들어준 뒤, 곧장 택시를 불러 프라하성 투어에 나섰다. 두 사람은 프라하성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줬고,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체코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두 사람은 각자 맥주와 논알콜 맥주를 각기 주문한 뒤 다음 여행 코스를 짰다. 이때 22기 영수는 맥주를 좋아하는 22기 영숙을 위해 맥주 공장 투어를 제안했는데 22기 영숙은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놉!”이라며 거절했다. 대신 “2층 버스를 타고 시내 투어를 하자”고 말했는데, 사전에 예약까지 해놓은 맥주 공장 투어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 22기 영수는 심란한 표정으로 “일단 알겠다”라고 답했다. 어색한 기류 속, 체코 전통 음식인 꼴레노(돼지 앞다리 요리) 등이 나왔다. 22기 영수는 먹기 좋게 고기를 잘랐다. 하지만 나이프가 접시를 긁으면서 ‘끼이익’하는 소리가 났고, 22기 영숙은 곧장 “그릇 자르지는 마!”라고 경고했다. 22기 영수는 조심스럽게 칼질을 했지만 다시 ‘끼익’ 소리가 나자, 22기 영숙은 “입이 쉬면 얘가 안 쉬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머쓱해진 22기 영수는 “한잔 하시라”며 전에 없던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22기 영숙은 “알게 모르게 내가 얘기 많이 했다. 그릇 소리 내는 거 아니라고, 난 그렇게 배웠다”라고 ‘회초리 모드’를 가동했다. 22기 영수는 “존중할게”라고 답했지만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급격히 싸늘해진 기류 속, 22기 영수는 “프라하 댄싱하우스 건물에 가보고 싶다”고 다음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22기 영숙은 “그냥 건물 보고 땡인데, 별로 같다”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22기 영수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워하면서 “네가 즉흥적인 ‘P’ 성향이니까 물론 이해는 하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22기 영숙이 “그래? 그러면 빠르게 수정하도록 해”라고 받아쳐 22기 영수를 ‘녹다운’시켰다. 9기 옥순-남자 4호는 ‘굴뚝빵’을 클리어한 뒤 택시를 타고 프라하성 근처의 또 다른 카페로 향했다. 탁 트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도착한 두 사람은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시킨 뒤 화기애애한 기류를 풍겼다. 그러다 남자 4호는 ‘트래킹 투어’를 예약해 놓은 것을 언급하며 함께 가자고 제안했는데 9기 옥순은 “혼자 갔다 올래?”라고 거절했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남자 4호는 “등가교환을 하는 건 어떠냐?”고 각자 원하는 것을 하나씩 들어주자고 했지만 9기 옥순은 남자 4호의 여행 로망을 들어보다가,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지친 남자 4호는 “각자 여행하든가, 그냥”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는데, 9기 옥순은 “그럴래, 그러면?”이라고 답해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직후 남자 4호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럴 거면 왜 같이 여행을 온 거지?”라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뒤이어 예고편에서는 9기 옥순-남자 4호가 “설명하는 거잖아”, “어필하는 거잖아”라고 ‘말싸움’을 벌이는 모습과 함께, 또 다른 커플인 10기 영수-정숙이 매콤한 여행을 떠난 현장이 포착돼 다음 방송에 대한 궁금증을 치솟게 했다. 10기 영수-정숙의 ‘대환장 여행기’는 21일(금) 밤 8시 40분 SBS Plus와 ENA에서 방송하는 ‘지지고 볶는 여행’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병길 기자 2025.03.15 14:15

    • 1월 1일부터 ‘동해 라인 열차 달린다’ 강릉서 부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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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일부터 ‘동해 라인 열차 달린다’ 강릉서 부산까지

      내년 1월 1일부터 ITX-마음이 강릉에서 부산(부전) 간 하루 왕복 8차례 운영된다. 기존 삼척∼포항 구간이 개통되면서 강릉에서 부산까지 환승 없이 열차로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ITX-마음이 강릉에서 부산(부전) 간 하루 왕복 8차례 운영된다고 31일 밝혔다. 기존에는 강릉∼동해(45km), 포항∼부전(142.2km) 구간만 운영됐는데, 중간의 삼척∼포항(166.3km)이 개통되며 전 구간이 연결되는 것이다. 강릉에서 부산까지는 총 4시간 50분이 소요된다. 신형 새마을호인 ITX-마음이 시속 150km라서다. 내년 말부터 시속 260km인 KTX-이음이 투입되면 강릉∼부산 소요시간이 4시간 초반대로 줄어들게 된다. 동해선은 단선이기 때문에 소요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새로 개통하는 삼척∼포항 구간 주파에는 1시간 40분이 걸린다. 동해선 전 구간이 개통되면서 동해 생활권인 강원도, 경상도는 일일생활권으로 연결된다. 정부는 지역 간 여객, 화물 수송이 원활해지면서 동해선이 ‘동해안 초광역 경제권’ 탄생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동해선은 동해안 여행객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철도를 타고 강릉 경포대, 양양 낙산사,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월송정 등 관동 8경을 포함한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다. 내년에 포항, 경주, 영덕, 울진 일원의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 동해안 지질관광(지오투어리즘)도 활성화될 수 있다. 동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지질명소만 경주 양남 주상절리, 울진 성류굴, 포항 호미반도 등 29곳이다. 동해 중부선에는 총사업비 3조4천297억원이 투입됐다. 2009년 공사를 시작해 완공까지 15년 걸렸다. 앞으로 동해선은 더 확장된다. 현재 동해 북부선 제진(고성)∼강릉 111.0km, 춘천∼속초 구간 93.7km 구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르면 2028년 동해 북부선이 완공되면 최북단 고성에서 부산까지 철도망이 연결된다.

      손재철 기자 2024.12.31 12:01

  • 주간경향

    • 문화/과학 이기환의 Hi-story

      [이기환의 Hi-story](65)천상열차분야지도는 천상행 열차 노선도?

      한국의 국보 가운데 유독 다가가기 어려운 문화유산이 몇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천상열차분야지도’입니다. 이 문화유산이 ‘천상행 열차 노선을 그린 지도’였다면 얼마나 쉬울까요.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죠.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새롭게 단장한 과학문화 상설 전시장의 문을 다시 열었다. 상설 전시장에는 조선왕실 과학문화 유산 45건을 전시해놓았다. 그중 백미는 역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국보·1395년)와 ‘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보물·17세기 말), ‘천상열차분야지도 목판본’(1571년) 등 3점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국립고궁박물관이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새롭게 단장한 ‘과학문화’ 상설 전시장의 문을 열었는데요. 전시장에는 조선 왕실 과학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 45건을 전시해 놓았네요. 이 가운데 압권은 역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국보)과 ‘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보물), ‘천상열차분야지도 목판본’ 등 3점입니다. 여기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풀어봅시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각(돌에 새긴) 천문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품 중 국보 ‘각석(刻石)’은 1395년(태조 4)에 돌에 새긴 천문도이고, 보물 ‘복각’은 그 천문도를 숙종 연간(17세기 말)에 다시 돌에 새긴 겁니다. ‘목판본’은 1571년(선조 4) 태조 때의 ‘각석’을 새긴 목판에 120점 찍어 2품 이상 고위관리에게 하사한 종이본 가운데 1점입니다. 그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이름은 어떤 뜻을 품고 있을까요. 하늘의 모습을 차례로 배열한 천문도 한마디로 ‘하늘의 모습(천상·天象)’을 ‘차(次)’와 ‘분야(分野)’로 벌려놓은(열·列) 천문도(그림)인데요. ‘차’는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이 움직이는 길(황도)을 따라 관측되는 동양의 별자리를 12개 영역으로 나눈 것을 가리킵니다. ‘분야’는 하늘의 별자리 영역 12차를 그대로 지상의 12개 왕조와 대응시킨 겁니다. 지상의 해당 왕조는 중국 춘추시대 12개국인 주·초·정·송·연·오·제·위·노·조·진(晉)·진(秦)나라를 가리키는데요. 이처럼 중국의 왕조를 대응시킨 것이 조선의 현실에 맞지 않다고 해서 조선의 땅을 적용한 천문도도 남아 있답니다. 이러한 우주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하늘과 땅이 다를 바 없다, 하늘의 섭리가 땅에서도 통하고, 땅의 원리가 하늘까지 닿는다’는 이른바 천인감응(天人感應·하늘과 사람, 땅이 연결돼 있다는 유교사상)의 관념이 투영돼 있습니다. 1467개의 별자리가 빼곡히 구체적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들춰볼까요. 모두 290개의 별자리(1467개의 별)를 크고 작은 4개의 원 안에 그려놓고 별자리 이름까지 빠짐없이 적었는데요. 가장 바깥의 원 주위에는 28수(달의 공전주기인 27.32일에 따라 북극성을 중심으로 28개 구획으로 나눈 별자리)의 이름을 차례로 기록했고요. 앞서 밝혔듯이 28개 구획의 별자리를 12차로 나눠 지상의 왕조 12개국에 대응시키고요. 바깥 원과 가장 작은 중심원 사이의 공간을 이 28수로 나눈 모든 별자리의 도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연구 결과 14세기 별자리와 1세기 무렵 별자리가 구분돼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395년(태조 4)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돌판에 새길 때 참조했던 고구려시대 천문도를 바탕으로 하되, 14세기의 별자리 위치에 맞게 오차를 조정했다는 얘기다. /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장 제공 한가운데 중심원(주극원)에는 1년 내내 관측되는 별들을 표시했습니다. 자미원·태미원·천시원이 모여 있죠. 그다음에는 2개의 원이 겹쳐 있는 형태인데요. 하나는 지구의 적도를 연장한 선입니다. 또 하나의 선은 지구에서 바라봤을 때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黃道)를 나타냈습니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 돌기 때문에 황도와 적도는 교차해 움직이죠. 이 두 선을 중심으로 별자리를 관측하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즉 겨울철에는 황도가 적도 아래로 내려가고, 여름에는 위로 올라오겠죠. 태양이 적도보다 가장 낮게 내려가면 지구에서 가장 추운 겨울의 동짓날이 되고요. 가장 높이 올라가면 가장 더운 하짓날이 되겠죠. 따라서 황도와 적도가 교차하는 두 곳 중 앞엣것은 춘분점, 뒤엣것은 추분점이 됩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죠. 겨울철에는 태양이 낮게, 여름에는 높게 움직이지 않습니까.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아래위에는 천문도와 관련된 다양한 설명문과 그림이 들어 있습니다. 천문도 제작 내력과 의미, 제작에 참여한 관원들의 이력, 제작연월일까지 기록돼 있고요. 미세 조정까지 거친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돌판에 새겨진 것은 조선 개국 직후인 1395년(태조 4)입니다.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설명문과 권근(1352~1409)의 <양촌집> 등에 기록된 ‘천문도설’을 중심으로 살펴볼까요. 권근은 “천문도 석각본은 옛날 평양성에 있었는데, 병란 때문에 강물에 빠졌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가 천문도 인쇄본을 한 권 올렸고, 이를 전하(태조·재위 1392~1398)가 보배로 귀중하게 여겨 돌에 새기게 했다”는 겁니다. 이때(1395)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1247)보다 148년 늦게 제작됐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각석 천문도로 알려졌는데요. 후속 연구결과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물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천문관을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 하지만 ‘중국 따라쟁이’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선 “천문도를 새기라”는 명을 받은 서운관(천문관)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 그림은 세월이 오래돼 별의 위치가 달라졌다”면서 “다시 측정해 고쳐 새겨야 한다”고 건의한 거죠. 무슨 말일까요. 지구의 북극점은 고정불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약 2만6000년이라는 긴 주기를 두고 조금씩 이동한답니다. 이걸 세차운동이라 하죠. 세월이 지나면서 별들의 위치가 달라지는 겁니다. 서운관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제기했습니다. 오차 조정을 위해 나선 이가 천문학자인 류방택(1320~1402)이었습니다. 류방택은 당시 북극에 맞춰 중성(28수 가운데 해가 질 때와 돋을 때 하늘의 정남 쪽에 보이는 별)을 면밀하게 계산해 오차를 조정했습니다. 천문도의 글은 권근이 지었고요. 글씨는 설경수(생몰년 미상)가 썼습니다. 모두 12명이 참여했지요. 고구려와 조선의 합작품? 류방택이 조정한 옛 별자리는 어느 시대 것이었을까요. ‘평양성의 천문도 돌판이 병란 때문에 잃었다’는 구절이 눈에 밟히죠. ‘평양성의 병란=고구려 멸망 시기’를 의미한다는 것이 통설인데요. 연구결과 천문도의 한가운데 보이는 북극성 중심의 자미원 별들은 14세기, 그 밖의 별들은 1세기 무렵의 위치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것이 류방택 등이 조정한 오차입니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세기 무렵의 별자리를 새긴, 가장 오래된 석각(돌에 새긴) 천문도라 할 수 있습니다. 멀게는 1400년, 가깝게는 700년의 시공을 초월한 ‘고구려와 조선 천문관’의 합작품이라는 특징도 있고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의 모습(천상·天象)’을 ‘차(次)’와 ‘분야(分野)’로 벌려놓은(열·列) 천문도(지도)다.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이밖에 중국의 순우천문도와는 다른 요소가 또 있습니다. 즉 모양이 완전히 다른 별자리가 있는데요. 천주, 상서오, 외주, 팔곡, 팔괴 등의 별자리가 그렇고요. 별의 개수와 연결선, 이름이 서로 다른 별자리도 있습니다. 이중 서로의 천문도에는 보이지 않는 별자리(한국 5개·중국 3개)가 보입니다. 그중 중국 천문도에는 없는 ‘종대부’ 같은 별자리는 확연히 눈에 띕니다. 무엇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독자성을 짐작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요소가 있습니다. 별을 새길 때 실제 밝기에 따라 구멍의 크기를 다르게 했다는 겁니다. 즉 밝은 별은 크게, 희미한 별은 작게 그렸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노인성입니다. -0.7등급인 노인성(카노푸스)은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로 밝은 별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는 이 별을 엄청 크게 그렸습니다. 분석 결과 1467개의 별을 밝기에 맞춰 일일이 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답니다.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장은 “이런 표현은 한반도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고구려 벽화고분의 별자리 새김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 천문도에는 없는 표현 방식입니다. 700년 만에 찾은 천문도의 가치 태조가 조선을 개국하자마자 천문도(‘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에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대 왕조의 군주들은 다른 분야에 비해 유달리 천문학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늘의 성변을 제대로 관측하는 것은 하늘과 백성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통치권자의 능력이었으니까요. 민심은 곧 천심이며, 하늘의 조화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곧 백성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개국 후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민심은 전 왕조인 고려를 떠나지 않았고, 왕씨(공양왕) 복위 운동까지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두문동 72현’이 상징하듯 고려의 충신들은 끝내 절의를 꺾지 않았습니다. 창경궁 명정전 뒤쪽 추녀 밑에 방치돼 있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960년 무렵까지 소풍 나들이객들이 도시락을 펴놓고 앉기에 안성맞춤인 돌판으로 여겼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럴 때 어떤 이가 홀연히 나타나 700여년 전 평양성에서 잃어버린 천문도 판본을 바쳤으니 ‘옳다구나’ 싶었겠죠. 유명한 고사가 있죠. 중국 하나라 시조 우임금은 9개국 제후가 바친 청동을 모아 ‘아홉 개의 솥(구정·九鼎)’을 만들었는데요. 이 청동솥은 후대 왕조에서 ‘태평성대’와 ‘왕권’의 상징이 됐죠. 성군이 나라를 세우면 그 군주에게 옮겨갔고요.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자취를 감췄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서 청동솥 9개 중 8개가 사라졌어요. 단 하나 남은 것조차 사수(泗水·산둥성에 있는 강이름)에 빠졌는데요. 훗날 6국을 통일한 진시황(재위 기원전 247~기원전 210)이 장정 1000명을 동원해 강바닥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답니다. 조선 개국 후 ‘천문도’ 역시 그런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죠. 개국초 민심을 얻는 데 어려움에 빠진 태조 이성계로서는 자신이 천명, 즉 하늘의 명을 받은 인물임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때 어떤 이가 나타나 천문도를 바쳤으니 어찌 반색하지 않았겠습니까. 행방이 묘연해진 국보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숙종 연간인 17세기 말에 다시 새겼습니다. 태조 때 만들어진 돌판이 마모돼 알아보기 어렵게 되자 다시 판각한 겁니다. <연려실기술> ‘천문전고·의상’편은 “1770년(영조 46) 관상감 안에 흠경각을 마련해 태조 때 제작된 석각본(국보)과 숙종 때 다시 새긴 복각본(보물)을 나란히 옮겨두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신·구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나란히 보관해두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처음 연구·소개한 이는 평양 숭실학교 교사를 지낸 천문학자 윌 칼 루퍼스(1876~1946)였는데요. 루퍼스는 “동양의 천문관이 집약된 섬세하고도 정확한 천문도”(<한국천문학>(1936))라고 극찬했습니다. 정작 실물은 ‘오리무중’이었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사라진다는 청동솥, 즉 ‘구정(九鼎)의 고사’가 있죠. ‘천상열차분야지도’ 역시 조선 왕조가 어지러워지고, 급기야 멸망하면서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실은 등잔 밑이 어두웠습니다. 사연을 들어볼까요. 일제가 조선-대한제국을 침탈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궁궐을 훼철·유린하는 것이었습니다. 창경궁을 박물관과 동·식물원으로 격하했죠. 그때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과학문화재들을 창경원으로 격하된 창경궁 명정전(정전)의 툇간 노천에 내놓았던 겁니다. 천상행 열차 노선도 같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심오한 뜻과 함께 파란만장한 사연을 품고 있는 국보 보물 문화유산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창경궁 추녀 밑에 방치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요. 일제강점기 이후 1950년대 말까지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과학문화재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1960년 무렵 창경궁 명정전 뒤쪽 추녀 밑에 방치된 ‘천사열차분야지도’를 찾은 과학사가 전상운 교수(성신여대·1928~2018)의 회고를 들어봅시다. “명정전 뒤 추녀 밑은 나들이나 소풍 온 학생과 가족들이 비와 햇볕을 피하기 좋은 곳이었다. 거기에 놓인 두 장의 석판 등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펴놓고 앉기에 좋은 장소였다.” 어떻습니까. ‘천상행 열차 노선도’ 같은 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고, 이렇게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고 있는지 아셨죠. 조선 중·후기 문인·학자인 계곡 장유(1587~1638)가 ‘천상열차분야지도’ 인쇄본을 보고 지은 시가 심금을 울립니다. “한 조각 천문도 기막히게 다 보이네(圖成一片妙堪看)…. 종이 한 장에 삼라만상 모두 담겨 있는 걸(法象都輸片幅看)…. 사계절 원기 잘 맞추면 태평성대 이루리니(玉燭調元期聖代)….”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2022.12.30 14:55

    • 경제 표지 이야기

      에어컨·산악열차에? 길 잃은 기후대응기금

      정부, 기후대응기금으로 소외계층 에어컨 보급 찬반양론 거센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에도 편성 탄소중립 ‘공정한 전환’ 위해 써야할 곳들 외면 국제사회가 평가하는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수준은 주요국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인 한국이 위상에 걸맞은 기후위기 대응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후위기 대응은 국제사회의 약속이다. 국내 사정에 따라 늦춰서도 안 되고 그럴 여유도 없다. 자칫 탄소중립 실현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과 압력에 직면하고, 통상 장벽에 가로막혀 엄청난 비용 청구서를 받아들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재생에너지 비중을 줄이며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강화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만든 기후대응기금 역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은 언제쯤 ‘기후악당’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까. 10월 6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시청에서 신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원환경운동연합,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온다와 함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에어컨 설치, 기후대응 사업일까 윤석열 정부는 내년 에너지 소외계층에 에어컨을 보급할 계획이다. 이를 포함한 관련 사업비는 대략 910억원. 재원은 기후대응기금이다. 저소득층 가구 에어컨 설치를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사업으로 볼 수 있을까. 정부는 기금 취지에 부합한다고 봤다. 정부 관계자는 “고효율 에어컨으로 교체하면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에너지 취약계층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어 기금의 용도에도 부합한다”고 했다. 저소득층 에어컨 설치 지원은 필요하지만,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기금 취지에는 맞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에어컨·냉장고 등의 냉매로 쓰이는 수소불화탄소(HFC)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수백 배에서 수천 배 크다. 미국 상원이 지난 9월 HFC를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키갈리 수정안’을 비준하자 정부도 10월 HFC 감축을 이행하는 목적의 관련 법률 개정안을 의결하고 2024년부터 HFC류 감축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하반기까지 우리 업계에 적합한 HFC 감축 계획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사실 기금으로 편성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 사회복지시설 등 저소득층 에어컨 보급 사업은 지난해까지 산업부의 에너지특별회계로 편성·집행된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 사업’이다. 사업의 골자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벽체, 창호, 보일러 등 시설을 개선하고 에어컨을 설치·보급하는 내용이다. 올해 산업부 에너지특별회계에서 기획재정부 기후대응기금으로 이관이 결정됐다. 기후대응기금 사업 중에서는 ‘공정한 전환’ 항목으로 분류됐다. 이 사업은 절차상 문제도 지적된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기재부는 복권기금에서 910억원가량을 전출해 해당 사업의 예산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중앙행정기관이 복권기금을 사용하려면 복권법에 따라 내년 3월 31일까지 복권위원회에 ‘복권기금 사용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위원회가 이를 바탕으로 5월 31일까지 복권기금운용계획안을 기재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기재부는 그러나 기간 내 복권기금 사용신청서를 복권위원회에 제출하지 않는 등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장혜영 의원은 “기재부 필요에 따라 예산이 휘둘리고 있다”면서 “해당 사업이 (기금의 용도에서 규정한) 정의로운 전환 측면에 부합되지 않으며 기금 목적에도 맞지 않는 만큼 사업과 기금의 목적에 맞게 기후대응기금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재이관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검토보고서(11월 9일)도 “법에서 규정한 기후대응기금의 취약계층 지원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피해를 받는 노동자 등에 대한 ‘일자리 전환이나 일자리 창출 지원’ 사업”이라며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냉난방 시공 및 설비 지원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절차상 문제에 대해서는 “복권기금의 기후대응기금 전출액은 전액 삭감하고 사업의 목적에 맞는 에너지특별회계로 재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대응과 어울리지 않는 사업들 기재부 소관의 기후대응기금은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올해 첫 시행됐다. 내년 예산안에 담긴 기후대응기금 규모는 2조4290억원(인건비 등 운영비 제외)이다. 올해 대비 약 7.5% 늘었다. 기금은 용도에 따라 크게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9634억원, 신유망·저탄소 분야 유망기업과 인력 육성, 녹색금융 지원 등에 6357억원, 취약산업·고용·지역 등의 공정한 전환에 2038억원, 제도·기반구축에 6260억원이 쓰일 예정이다. 탄소중립과 무관해보이는 사업에 기금을 편성한 사례는 이 외에도 많다. 기재부는 천연기념물 329호인 반달가슴곰이 주로 서식하거나 자주 출몰하는 지리산에 산악열차 시범노선을 건설하고 차량을 제작할 계획이다. 사업명은 ‘산악벽지용 친환경 전기열차 기술개발(R&D)’ 사업으로 기금 72억원을 편성했다. 2013년 건설을 시도하다 환경단체와 지자체 등의 반발로 무산된 사업을 지역주민의 이동 편의 증대 등을 이유로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기재부는 기존 도로를 활용하는 친환경 기술개발 사업이며, 시범노선(1㎞) 예정 구역은 반달가슴곰 출몰지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명한다. 또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대신 전기열차를 운행하면 차량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고, 주민의 이동 편의도 크게 향상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스위스와 프랑스 등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도 산악용 전기열차가 다수 운행되고 있다고도 했다. 반론이 만만찮다. 시범노선 연장으로 소음과 진동이 발생해 반달가슴곰 서식지를 훼손할 수 있다. 도로 폭 확장으로 벌목이 불가피해 환경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전기열차 제작과 철도 설치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럴 필요없이 환경부의 지리산 정령치~성삼재 도로의 전기버스 활용 사례처럼 전기버스를 도입하고 도로 열선 설치를 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스위스와 프랑스 등의 경우 산악열차 대부분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도입했다. 기후위기 이후에 관광 목적으로 산악열차를 설치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 해명은 주로 ‘관점의 차이’에 무게를 둔다. 보는 관점에 따라 기후위기 대응 사업으로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끼워맞추기식 예산 편성과 부처별 예산 챙기기 경쟁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본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 연구위원은 “정부가 기후대응을 위한 정책 방향성을 명확하게 수립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들이 무분별하게 예산 확보 경쟁에 나서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불거졌다. 부처 간 연계와 분석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분야가 뭐고 어느 정도 예산을 할당할지를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2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 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 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기금 사업으로 편성해놓고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선박온실가스감축지원사업은 올해 약 26억원이 편성됐으나 12월 14일 현재 집행액은 800만원(약 0.3%)에 그친다. 사업의 취지는 국내 중소 선박사에 대한 엔진 출력 제한장치 설치 보조금(설치 시 10%) 지원 등 국내 해운사의 경쟁력 확보에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400t급 이상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해당 선박들은 내년부터 기관출력 제한장치와 에너지효율개선장치 등을 설치해야 한다. 황석진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 활동가는 “국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사업 방향은 적절하다”면서도 “집행률이 저조한 원인과 사업의 실효성, 실제 업장과 업체에서 원하는 사업인지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해수부 관계자는 “국제해사기구의 관련 기준 제정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고, 이에 따라 선사의 사업 준비에 시간이 걸리면서 신청 건수가 저조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연말까지 최대한 선사들에게 보조금을 신청하도록 독려해 예산집행률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정부 예산이 들어간 사업은 사업 종료 후 성과를 평가하지만, 대체로 기금 사업에 대한 성과 관리는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훈 연구위원은 “에너지 정책들의 경우 법적 계획을 포함해 제대로 이행점검이나 성과평가를 한 적이 거의 없다. 계획 발표 때마다 부처 간 협조를 통해 점검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행된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정한 전환’을 위한 기금 활용, 실현 가능성은 한국의 기후대응 수준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국제 평가기관인 저먼워치와 기후 연구단체 뉴클라이밋 연구소가 지난 11월 14일 공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3)에서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 상위 60개국 중 57위(매우 저조함)를 기록했다. 2020년 50위, 지난해엔 56위였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부가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 제시한 ‘원전 23.9%·재생에너지 30.2%’ 약속을 뒤집었다. 원전 비중을 32.4%로 크게 올리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1.6%로 낮춰 잡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내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한 12월 8일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는 이런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기-승-전-원전확대만 내세우고 있다. 국내 재생에너지 기반을 빠르게 확대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탄소중립 실현은 물론이고 RE100(100% 재생에너지 사용) 같은 산업 재편에서도 낙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같은 날 RE100 캠페인을 공동 주관하는 클라이밋그룹은 “재생에너지 목표를 21.6%로 낮추는 것은 상당한 후퇴”라며 “(한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시급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는 한국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국제사회는 특히 2030년 전까지 석탄발전을 퇴출하라고 압박한다. 이는 정부가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비용 부담에 대비하는 한편, 이해 당사자들에 대한 지원과 보상을 전제로 한 공정한 전환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기후대응기금 도입 목적도 ‘공정한 전환(정의로운 전환)’에 있다. 공정한 전환은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주민,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해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을 말한다. 환경운동 활동가들이 기후위기를 촉발한 선진국들이 손실을 입은 개발도상국에 보상할 것을 촉구하며 지난 11월 18일(현지시간) ‘지불’이라는 글자가 쓰인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 / 샤름엘셰이크 | AP연합뉴스 특히 고용·노동시장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가피한 산업 구조 전환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회미래연구원이 11월 14일 발간한 ‘탈석탄 갈등의 주요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통한 정의로운 전환 정책에의 시사점: 노동자 및 지역주민 대상 보고서’(마크로밀엠브레인 의뢰, 69.1% 응답)는 탈석탄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순조로운 전환을 이루려면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과 보상을 포함한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설문 조사는 석탄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지역주민(충남·강원) 103명, 발전소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 50명, 정규직 노동자(한전 5개 발전사 종사자) 38명 등 모두 191명을 대상으로 했다. 현재 국내에는 총 57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운영 중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우선 탈석탄 정책에 동의하는 비중은 노동자 36.4%, 지역주민 41.7%로 낮았다. 노동자 중에서는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24.0%)의 동의 비중이 낮았다. 다만 노동자는 고용보장이 되거나 실업급여·재취업 지원이 되는 경우 동의 비중이 72.7%로 증가했다. 지역주민은 지역지원사업 혜택이나 경제적 지원이 있을 경우 동의 비중이 75.7%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병행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 당사자들도 탈석탄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공통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은 일자리 관련 정책이다. 일자리 문제는 지역 경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노동자뿐 아니라 지역사회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도 해결을 위한 정책 방안을 우선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노동자와 지역주민 목소리 적극 반영해야” 기금 사업들은 공정한 전환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까. 고용부의 노동전환지원금 사업을 보면 아직까지 제 역할을 못 하는 쪽에 가깝다. 사업은 산업구조 전환에 따라 고용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사업주가 소속 노동자에 대해 자체 또는 위탁해 직무전환 교육 훈련과 전직지원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관련 소요비용을 지원한다. 기금 규모는 올해와 내년 동일하게 52억6000만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검토보고서를 보면, 연말까지 올해 예산의 5.7%(약 3억원) 정도만 집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부는 집행률이 낮은 이유를 “올해 사업이 실질적으로 4월부터 추진된 데다 지원금이 3개월 단위로 각 기업에서 선지출·후정산되고 있고, 대부분의 기업이 약 4개월이 소요되는 컨설팅을 완료한 후 지원금을 신청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과 변호사들이 2월 16일 서울 종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소중립기본법도 기후위기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고용부의 또 다른 기금 사업인 사업전환고용안전협약지원금 사업은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지원기준이 개선사항으로 지적됐다. 사업은 산업구조 전환에 따라 고용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사업장에 대해 노사 간 고용유지에 합의한 경우 직무전환 교육, 기숙사(월세), 통근버스 임차 등 비용을 지원한다. 올해 기금 예산은 50억원, 내년 25억원을 편성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검토보고서는 “문제는 ‘저탄소·디지털 전환 사업주’에 대한 일률적인 기준의 설정이 어려워 저탄소·디지털 관련 업종 전환 없이 ‘노동전환 고용안정 컨설팅’만 받으면 정책 지원금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피해를 받는 ‘노동자·계층에 대한 일자리 전환·창출 지원’과 관련된 목적에 부합하도록 개선하고, 지원금뿐만 아니라 여러 노동전환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회에는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발의), ‘산업전환 시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국민의힘 임이자 의원 발의),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에 관한 법률안’(정의당 강은미 의원 발의) 등 3개의 법안이 지난해와 올해 발의돼 국회 환노위에 상정돼 있다. 입법 과정에서 당사자들인 지역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시민사회·노동 단체는 당면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공정한 전환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가능할 것인지를 규율하는 것이 필요한데, 불균형적인 논의 구조 때문에 경영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가 전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민주노총 기후위기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동규 부위원장은 “국회에서 현재 거대 양당의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집중되는 분위기다. 이 법안들은 공정한 전환을 위한 정책의 입안을 고용부 산하 고용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진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위원회에 30여명의 위원이 있다. 그중엔 관료와 전문가 그룹도 있지만 경총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위원은 2명(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각 1명)에 불과하다. 결과가 어디로 흐를지는 안 봐도 뻔한 상황이다. 사용자 지원이나 구조조정 지원 방안을 법률로 뒷받침할 가능성이 높다. 석탄화력발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발전소를 장기적으로 폐쇄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논의 구조에서는 공정한 전환을 바라는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2022.12.16 11:30

    • 오피니언 꼬다리

      [꼬다리]열차칸 술냄새가 그리워

      앞사람이 비틀거린다. 한둘이 아니다. 술을 얼마나 먹었길래. 해가 저문 지 한참 지났지만 상기된 얼굴들은 눈에 잘 띈다. 삼삼오오 2차 장소를 고민하거나 손을 흔들고 허리를 숙이며 다음을 기약한다. 몇몇은 택시 잡느라 바쁘다. 야근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400m 남짓한 거리에서 매번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만났다. 사진/권도현 기자 열차 문이 열린다. 쿰쿰한 술냄새가 코에 확 닿는다. 술을 한잔도 하지 않은 사람에겐 분명 기분 나쁜 냄새다. 형광등 불빛에 사람들의 발그레한 볼이 선명해진다. 무슨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은지 열차 안이 복작복작하다. 나는 일하다 이제 들어가는데, 저 사람들 술자리는 재미있었을까, 내일 출근하기 힘들겠다, 좀 이따가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갈까, 따위의 생각을 한다. 방금 야근을 마친 내게는 날 수 없는 그 냄새가 야속하다. 나도 어느 날엔가 비슷한 냄새를 풍겼을 텐데 말이다. 입사 후 수년간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똑같았다. 2019년까진 그랬다. 지난해부턴 비틀대는 사람은커녕 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열차 안 냄새도 사라졌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고 술자리가 줄어서다. 선천적 집순이인 나도 몸이 근질근질해질 만큼 외출을 삼갔다. 한동안 맡지 못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 건 여름이 올 즈음이었다. 옷이 얇아진 것처럼 얇은 마스크를 썼기 때문일까. 다시 밖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가. 코로나19에도 이렇게들 술을 먹는구나 싶다가도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요즘 회사에서 젊은 사람, 늙은 사람 가릴 것 없이 틈만 나면 주식화면밖에 안 봐.” 같은 방향 열차를 기다리던 중년의 회사원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열차 안의 사람들은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 큰일이네”, “청약 점수가 한참 모자라네”라며 부동산 얘기만 했다. 먹고살기 얼마나 팍팍한지 서로 겨루는 듯했다. 나도 한마디 보태고 싶었다. 누가 집값 좀 잡아달라고. 야근하는 날이면 나를 괴롭힌 술냄새를 마냥 싫어할 수는 없게 됐다. 술 마신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곧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냄새는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내 냄새였다. 요 몇달은 냄새를 맡지 못했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식당·주점이 9시면 영업을 마치고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금지된 탓일 테다. 열차 안 한풀이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대신 고단한 사람들이 회포를 풀던 카페와 주점, 땀을 빼던 헬스장같이 영업이 제한된 자영업자들의 호소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인력난에 지칠 대로 지친 의료진들은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열차칸 술냄새를 맡고 싶다. 퇴근길 풍경을 되찾는 길은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세상과 거리를 둔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에만 기대지 않는 방역을 바라며. 냄새가 사라진 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꼬다리’는 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를 뜻하는 꼬투리의 방언이다. 10년 차 이하 경향신문 기자들이 겪은 일상의 단상을 소개한다. ‘꼬’인 내 마음 ‘다’ 내보이‘리’라는 의미도 담았다.

      노도현 정책사회부 기자 2021.01.18 10:54

    • 문화/과학 방구석 극장전

      [방구석 극장전]미드 「설국열차」 시즌2를 기다리며

      절묘한 타이밍에 설국열차가 돌아온다. 하필 드라마 속 <설국열차>의 시간대가 2021년이다. 지난해 5월 소개된 드라마 시즌1에 이어 시즌2는 미국 현지에서 1월 25일 공개되며 국내에서도 곧 방영이 예상된다. 2021년 벽두를 온 세상이 얼어붙은 드라마 속 가상현실과 함께 맞이하는 셈이다. 이렇게 기이한 만남이라니. 「설국열차」시즌2가 1월 25일 미국 현지에서 공개된다. / 미국 TNT 채널 이 매력적인 종말 이후의 세계는 만화에서 영화, 그리고 미국 케이블 채널 TNT의 드라마(국내에서는 넷플릭스 공개)로 확장돼왔다. 1984년 프랑스의 만화가 자크 로브와 장 마르크 로셰트의 만화 원작은 1984년 1권 <탈주자>를 시작으로 1999년 2권 <선발대>, 2000년 3권 <횡단>으로 이어졌고, 2004년 불어권 외 최초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원작 세계관에 매료된 봉준호 감독은 2013년 <설국열차>를 완성했고, 영화 개봉 1년여 후 원작자들에 의해 4권 <종착역>이 출간됐다. 드라마 <설국열차>는 설국열차 출발 7년 후(영화의 10년 전) 시간을 다룬다. 영화에서는 시간과 예산의 제약으로 미처 구현하지 못했던 1001량의 열차가 멸망한 세계를 달리는 가상세계 속 풍경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눈요기와 볼거리를 선사한다. 끝없이 세로로 길게 늘어진 열차를 한칸씩 전진하는 등장인물들 앞에 펼쳐진 ‘최후의 세계’는 코로나19로 집안에 갇힌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흥미롭게도 길게 늘어진 설국열차를 수직으로 세우면 마치 초고층 빌딩의 펜트하우스와 지하실 사이 격차처럼 계급사회가 형상화된다. 열차의 세계는 1등-2등-3등-꼬리 칸 객실 승차권으로 계급이 나뉜다. 객실 간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며 격차는 절대적이다. 대신 승차권을 구입할 능력만 된다면 인종이나 성차별은 거의 사라진 사회다. 설국열차의 세계는 ‘맬서스 트랩’이 지배한다. 자원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평한 분배는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폐쇄 생태계다. 1등 칸 열차 투자자 귀족, 2등 칸 공무원과 군인, 기술자 관료, 3등 칸 생산 노동자, 꼬리 칸 예비 노동자 간에는 끊임없는 이전투구가 일어난다. 누군가에겐 인류 보전을 위한 고육지책이 반대편에선 착취와 차별로 받아들여진다. 영화와는 차별화된 복잡한 셈법의 정치적 우화다. 생존을 위한 질서와 통제의 정당화가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지가 드라마 판 <설국열차>의 주제다. 자원이 제한되기에 산아제한은 철저하고, ‘제동수(경찰)’와 ‘군화(군대)’의 제재는 정당화된다. 닫힌 공간인 열차 안에서 전염병은 인류의 종말로 이어지기에 다들 극도로 두려워한다. 누군가 재채기만 해도 민방위 훈련처럼 마스크를 즉시 착용하는 드라마 속 아이들 풍경은 코로나19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일상과 고스란히 겹쳐진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2021.01.04 15:34

  • 레이디경향

    • 크루즈와 산악열차로 북유럽 여행 떠나요

      레저/여행

      크루즈와 산악열차로 북유럽 여행 떠나요

      노르웨이 피오르 전망 알렉산드라 호텔. 롯데관광개발 제공 북유럽 4개국을 크루즈와 산악열차로 여행하는 여행 패키지가 출시된다. 롯데관광개발은 15일 롯데홈쇼핑을 통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4개국을 크루즈와 산악열차 등을 통해 10일간 여행하는 ‘북유럽 비즈니스 패키지’를 판매한다고 밝혔다. 패키지는 5월부터 9월까지 주 2회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수요일 출발) 및 터키항공(화요일 출발) 비즈니스 클래스(회당 16석)를 이용해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며, 가격은 1인 839만원(세금 포함)부터다. 롯데관광개발 측은 “여행 일정이 긴 만큼 불필요한 버스 이동을 줄이고 현지 국내선 항공 (1회) 및 럭셔리 크루즈(2회)를 이용하는 등 고품격 여행 상품에 걸맞은 최적의 동선으로 여행의 만족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스톡홀름과 핀란드 헬싱키를 연결하는 실자라인 럭셔리 크루즈. 롯데관광개발 제공 크루즈의 경우 덴마크 코펜하겐과 노르웨이 오슬로 항로를 오가는 DFDS 씨웨이즈(1박) 및 스웨덴 스톡홀름과 핀란드 헬싱키를 연결하는 실자라인(1박)을 통해 특별한 크루즈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크루즈 이용 시 선상에서 아름다운 발트해를 바라보며 즐기는 뷔페식이 제공되며, 내부에는 클럽, 사우나, 오락실, 면세점, 카페, 펍 등 투숙객을 위한 즐길 거리가 많다. 또한 롯데관광개발 특전으로 4성급 호텔 및 노르웨이 피오르 산장 호텔에서의 숙박이 제공되며, 기존 북유럽 패키지에서 옵션으로 제공되는 플롬 로맨틱 열차와 플뢰엔산 후니쿨라 열차 탑승, 북유럽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즐길 수 있는 현지 프리미엄 레스토랑에서 특식이 더해진다. 주요 관광지로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노르웨이의 3대 피오르인 게이랑에르, 송네 피오르, 하당에르 피오르가 있다. 이외에도 스톡홀름 시청사 및 오슬로 뭉크 미술관 관람,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의 도시 베르겐 투어 등 도심 관광지까지 포함됐다.

      김지윤 기자 2023.01.14 06:51

    • 문화/생활

      [Movie]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外

      1 설국열차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이 신작 ‘설국열차’로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새로운 빙하기, 인류 마지막 생존 지역인 열차 안에서 억압에 시달리던 꼬리칸 사람들이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장악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장 마르크 로셰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존 허트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봉 감독의 도전에 함께했다. 송강호·고아성 주연, 8월 1일 개봉. 2 더 테러 라이브 어느 날 생방송 중 신원 미상의 청취자로부터 협박 전화를 받은 앵커 윤영화. 장난전화로 치부하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마포대교가 눈앞에서 폭발한다. 테러범과의 통화를 독점 생중계하게 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인이어 이어폰에도 폭탄이 설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21억이라는 거액의 보상금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테러범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하필 윤영화를 지목했을까?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전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정우 주연, 8월 1일 개봉. 3 스톨른 동료들과 은행에서 1천만 달러를 훔치는 데 성공하지만 경찰을 따돌리던 중 혼자 현행범으로 체포된 천재 도둑 윌 몽고베리. 8년 후, 감옥에서 출소한 그는 과거 실랑이를 벌이다 다리를 잃은 빈센트가 복수심으로 자신의 딸을 납치해 1천만 달러를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논스톱 액션과 ‘콘에어’ 이후 15년 만에 재회한 니콜라스 케이지, 사이먼 웨스트 감독이 만들어낼 시너지 효과가 기대해볼 만하다. 니콜라스 케이지·로쉬 루카스 주연, 8월 1일 개봉. 4 숨바꼭질 고급 아파트에서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성공한 사업가 성수. 어느 날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수십 년 만에 형의 아파트를 찾게 된 그는 집집마다 새겨진 이상한 암호를 발견한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집 초인종 옆에서도 동일한 암호를 발견하게 되는데….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살고 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해 공포 심리를 더욱 자극한다. 더불어 드라마 ‘추적자’, ‘황금의 제국’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손현주의 열연이 티켓 파워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손현주·문정희·전미선 주연, 8월 14일 개봉. 5 감기 한 남자가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한다. 감염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극도의 공포 속에 정부는 2차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 재난 사태를 선포하고 급기야 감염관리본부가 나서 위험 구역인 도시를 폐쇄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린다. 대재난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사투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비트’, ‘태양은 없다’의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장혁·수애·유해진 주연, 8월 15일 개봉. 6 언어의 정원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로 많은 국내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두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이번 작품은 마치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정밀하고 아름다운 영상을 담아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201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돼 예매 3분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8월 15일 개봉. 7 잡스 전 세계인들의 삶을 뒤바꿔놓은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맨발로 교정을 거니는 괴짜, 자유로운 영혼의 히피였던 젊은 시절부터 대학 자퇴 후 절친 스티브 워즈니악과 자신의 집 차고에서 ‘애플’을 설립해 CEO로 승승장구하기까지, 잡스 일생의 중요한 순간과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잡스가 가족과 함께 지낸 집에서 촬영이 진행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애쉬튼 커처 주연, 8월 29일 개봉. <■담당 / 김지윤 기자>

      2013.08.19 18:54

    • 레저/여행 코레일과 함께하는 기차여행

      [코레일관광개발과 함께하는 기차 여행]바다열차도 타고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주말이면 어디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일주일 내내 피곤에 절은 남편에게 또 운전을 시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던 소라씨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코레일 기차 여행! 낭만과 볼거리, 먹을거리 가득한 주문진 수산시장 투어 열차가 과연 소라씨네 부부에게는 어떤 추억을 만들어줬을까. 주문진 수산시장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싶어라 이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 코스라고 큰소리 뻥뻥 쳤던 소라씨는 새벽 4시 40분 장대비 속에 휩싸인 정동진역 플랫폼에서 왈칵 솟는 눈물을 꾹 삼켰다. 결혼한 지 어느덧 10년, 주말이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버린 남편 은구씨를 떼어내어 기차에 몸을 실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동해의 붉은 태양을 보며 부부의 새로운 다짐의 시간을 갖겠다는 계획이 저 멀리 날아가버린 것이다. 실망을 가득 안고 정동진역 인근 휴게소에서 말없이 오징어 라면을 먹는 동안 비가 잦아들고 서서히 동이 터왔다. “바다나 보러 갈까?” 은구씨가 먼저 손을 내민다. 드라마틱한 해돋이는 아니었지만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 정동진의 운치를 즐기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첫새벽 모래를 밟는 기분이 상쾌하다. 그래, 가을이구나. 버스에 몸을 싣고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이동했다. 사실은 ‘주문진 문어’에 넘어온 은구씨였다. 그는 먹음직스럽게 데친 문어를 초장에 푹 찍어 오물오물 씹는 상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수산시장 거리에 내리자마자 어느 때보다 민첩해진 은구씨가 가이드를 자청한다. “주문진어시장은 생선회센터, 좌판회센터, 수협회센터, 방파제회센터로 나뉘거든. 날 따라와.” ‘쳇, 왕년에 좀 다녀봤다 이거지’ 코웃음 치는 소라씨를 뒤로하고 은구씨는 잰걸음으로 방파제회센터로 향한다. 이른 아침임에도 장보기에 나선 이들이 제법 많다. 바로 옆에는 싱싱한 오징어를 포구에 갓 풀어놓았음직한 배가 아직도 환하게 전구를 밝히고 있다. “오징어 다섯 마리 만원” 하는 상인의 목소리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기운찬 오징어들이 연신 물을 뿜어낸다. 1 선명한 주황색이 먹음직스러운 게. 2·3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꼭 먹어봐야 할 생선구이. 은구씨는 어느새 문어 값 흥정에 한창이다. 선명한 주황색 게며, 9, 10월이 제철이라는 곰치까지 갖가지 해산물이 백화점 매대 못지않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등 푸른 생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소라씨는 ‘50마리에 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표를 내건 ‘고등어 언덕’에 자꾸만 눈이 간다. 생명력이 넘치는 주문진 방파제 좌판. 문어도 데쳐서 잘 포장해뒀겠다, 기념품 삼아 오징어도 한 축 샀겠다, 아침식사는 주문진시장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생선구이와 잡어매운탕으로 골랐다. 불과 두어 시간 전 라면 한 그릇을 뚝딱한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알이 꽉 밴 도루묵과 좌르르 윤기가 나는 양미리 한 접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창을 스크린 삼아 한 편의 멋진 바다 영화를 본 듯한 바다열차. 추암역에서 만나는 촛대바위. 동해 바다열차 낭만과 사랑을 싣고 부지런을 떨면 하루가 길다더니, 경포대에 도착해 경포호와 정자를 둘러봐도 오전 10시가 채 안 됐다. 10시 30분 강릉역을 출발해 추암역까지 가는 동해의 명물 바다열차에 몸을 실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열차 내부는 정말 전 좌석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10분쯤 달리니 안인 앞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상해수욕장, 대진항, 묵호항 등 창을 스크린 삼아 펼쳐지는 바다 마을 풍광이 정말이지 그림 같다. “와아” 탄성을 내지르던 소라씨가 순간 멈칫한다. “아내 덕분에 멋진 여행을 하고 계시다는 은구씨가 부인 소라씨에게 보내는 노래입니다. 이승기의 ‘여행을 떠나요’.” DJ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구씨는 소라씨의 손을 꼭 쥐었다. “당신이 좋아라하는 승기잖아. 히힛.” 산, 바다, 들녘과 함께 7.2km 구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레일바이크. 마지막 여행지 정선의 아라리촌. 정선 하면 역시 곤드레밥. 레일바이크 자연과 어우러지다 불멸의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였다는 추암 촛대바위를 둘러본 뒤 버스에 올라 까무룩 잠이 들었을까. 굽이굽이 백복령을 넘어 정선에 도착했다. 옥산장에서 곤드레밥과 함께 곰취장아찌, 감자조림, 고사리 등 ‘가정 한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주인장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정선아리랑에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 소라씨의 눈에 은구씨가 보이질 않는다. 세상에나, 그는 벌써 툇마루에 앉아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있다. “아, 레일바이크 타러 가야지!” 구절리역은 마치 축제 직전처럼 들뜬 분위기였다. 출발선 뒤로 늘어선 빨간색의 2인승, 노란색의 4인승 레일바이크 행렬이 장관이다. 주변 볼거리를 과감하게 무시하고 일찌감치 안장 위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았는데, 어찌나 시간이 더디 가는지. 앞 팀의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역사를 벗어나자 오른편으로 시원스러운 물줄기가 함께 내달린다. 와아, 하는 탄성도 잦아들 무렵 다리 위, 건널목, 터널을 지난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 누렇게 익어가는 벼…. 모든 것이 여유롭고 포근하다. 아우라지역까지 7.2km 구간은 대부분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생각보다 힘이 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라리촌 민속마을을 둘러본 뒤 민둥산역에 도착했다. 저녁 6시 50분 청량리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은구씨와 소라씨의 손은 꼭 붙어 있었다. 여행 정보 [전통시장 투어 - 주문진 수산시장] 정동진 해돋이, 주문진 수산시장, 동해의 명물 바다열차, 정선 레일바이크 등 인기 있는 관광지를 연계한 문화부 인증 우수 여행상품. 무박 2일 형태로 10월에는 매주 금·토요일, 11월에는 금요일에 운영된다. 여행 노선 청량리역-정동진-주문진 수산시장-경포대-바다열차(강릉역~추암역)-정선 레일바이크-아라리촌 민속마을-민둥산역(현지 사정에 의해 일정 변경 가능) 문의 코레일관광개발 1544-7755, www.korailtravel.com 그 밖에 강진청자축제와 함께할 수 있는 [곡성 기차마을 전통시장], 문학과 여행이 만나는 [문학기행 열차 - 곡성 심청축제], 가을 단풍과 풍기 전통시장이 연계된 [풍기 인삼홍삼 상점가 투어], 정호승 시인과 함께하는 [문학기행 열차-풍기 인삼홍삼 상점가], 백제문화제와 각종 체험 행사가 있는 [강경 젓갈시장], 고도 경주 역사체험이 있는 [경주중앙시장] 등이 10월의 프로그램으로 준비되어 있다. 11월에는 강경 젓갈시장을 둘러보는 [김장열차]도 운영되니 미리 계획을 세워도 좋겠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원상희>

      2010.10.13 15:08

    • [코레일과 함께하는 기차여행]정선 5일장과 풍경 열차

      레저/여행 코레일과 함께하는 기차여행

      [코레일과 함께하는 기차여행]정선 5일장과 풍경 열차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강원도 정선, 그곳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자연의 넉넉함을 배운 정선 주민들은 낯선 이방인에게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산골에서 자란 신선한 나물과 후한 인심까지 보너스로 챙길 수 있는 ‘정선’의 5일장과 천혜의 자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풍경 열차’를 직접 둘러봤다. 청량리에서 제천을 거쳐 4시간 만에 도착한 정선. 최근 정선은 관광객들에게 손꼽히는 인기 명소다.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탈 수 있다는 ‘레일바이크’는 물론 5, 6월 푸른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떼 구경도 할 수 있다. 또 동굴도 둘러보고 옛 가옥을 그대로 재현한 ‘아라리촌’에서는 숙박도 하면서 선조들의 생활방식을 체험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급속도로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코스는 바로 정선의 명물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5일장’이다. 넉넉한 인심이 가득한 정선 5일장 5일장은 4월부터 11월까지 열리며, 끝자리가 2일과 7일로 끝나는 날에만 운영된다. 장날에는 정선의 주민들이 그동안 자식처럼 공들여 키운 온갖 농작물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관광객들에게 선보인다. 상인들은 직접 재배한 ‘국내산’이라는 푯말을 구비하고, 농작물들을 예쁘게 진열하느라 분주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장을 둘러볼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시간 안에 발 빠르게 움직이며 쇼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선의 5일장에서는 다양한 제철 나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우선 봄에는 ‘달래, 냉이, 씀바귀, 황기, 곰취, 참나물, 두릅’ 등 무공해 고산지 산나물과 각종 산채 음식을 통해 봄기운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여름에는 영지버섯, 마늘, 메밀쌀 등이 제철이며,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국수, 찰옥수수, 황기백숙 등을 맛볼 수 있다. 또 가을에는 산초, 신배(돌배), 고추, 더덕, 감자, 머루, 다래 등 싱싱한 가을걷이를 접할 수 있으며, 겨울에는 따뜻한 감자떡, 옛날 찐빵, 민물고기 매운탕, 수수노치, 전병, 메밀 부침개 그리고 따뜻한 옥수수술이 추운 날씨에 입맛을 돋우기에 제격이다. 기자 역시 봄이 제철인 곰취는 2천원, 두릅은 5천원 주고 한 꾸러미를 구입했는데, 시골장의 후한 인심 덕분에 두릅 한 움큼을 ‘덤’으로 받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품질 좋은 물건을 샀다는 마음에 왠지 뿌듯함이 느껴지고 산속 깊은 곳에서만 자란다는 곰취 특유의 향과 두릅의 알싸한 향이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든다. 정선 5일장에서는 방문객에게 다양한 문화 공연과 전통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장터 구경의 재미를 더하고 구성진 정선아리랑 가락을 통해 주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축제 한마당을 만들어 추억의 5일장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연장에서는 5일장 집중 운영기간(4월 17일~11월 27일) 동안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공연, 민요마당, 마술공연, 짚공예, 전통음식 체험 등 상설 이벤트를 한다. 또 관광 성수기의 주말장에는 국악한마당, 벨리댄스, 밴드공연, 품바공연 등 특별 이벤트를 운영해 관광객들에게 여행의 묘미를 선사한다. 정선 토속 음식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 정선에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속 음식이 많다. 정선을 제대로 즐길 생각이라면 음식부터 맛보는 게 당연지사. 정선 시내에서 쉽게 ‘곤드레밥’이라는 간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곤드레 나물을 넣어 지은 밥으로 간장, 고추장, 된장 등으로 비벼 먹는 건강식이다. 또 하나 먹지 않으면 서운한 음식은 바로 ‘콧등치기’. 여름에 시원하게 먹는 메밀의 특성상 국수가 딱딱하게 되어 콧등을 친다 하여 콧등치기라 불리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먹어 느름국이라 불린다. 어느 시인이 이곳에서 여름에 메밀국수를 먹다가 면발이 계속 콧등을 쳐 이름을 ‘콧등치기’로 지었다는 설도 있다. 또 정선의 주 특산물인 황기를 넣어 끓인 황기백숙, 옥수수로 만든 모양이 올챙이 같다 하여 지어진 옥수수 원료의 올챙이국수, 정선에서 나는 갖가지 청정 산나물을 맛볼 수 있는 산채 정식도 빼 놓을 수 없는 별미다. 자연을 가르는 풍경 열차 정선 5일장을 둘러보고 난 후, 연계된 관광버스로 30여 분 이동하면 ‘풍경 열차’를 탈 수 있는 역에 도착한다. ‘아리아리 풍경 열차’는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 구간을 달리며 풍경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정선의 명물이다. ‘아리아리호’는 계곡과 협곡 사이의 아름다운 자연을 따라 7.2km 구간 동안 레일바이크와 같은 철로를 따라 내려간다. 이 열차를 타는 동안 아름다운 산과 자연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나마 도시의 빌딩 숲이 주는 답답함과 삭막함을 잊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중간에 5분 정도 열차에서 내려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지니 열차를 타는 동안은 자연에 몰입할 것을 권한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으니 꼭 체험해보길 바란다. 정선아리랑의 감동을 공연으로 정선 5일장과 풍경 열차만으로는 뭔가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마지막코스로 정선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정선아리랑공연’을 50분간 감상하게 된다. ‘아! 정선,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인 정선아리랑을 뮤지컬 형식의 창극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색다른 감동과 재미를 준다. 이 공연은 2000년 ‘새천년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9년 이상 지속되어온 장기공연으로 매년 2만여명 이상이 관람하고 있다. 대규모 총체극으로 제작되어, 정선은 물론 서울, 인천, 수원, 의정부 등 대도시에서도 공연되어 관객들의 호평을 얻은 내공 있는 작품이다. 특이한 점은 공연하는 이들이 모두 현지 주민들이며, 평소에는 모두 각자의 삶에 충실하다가 5일장에만 모여서 공연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특성상, 어릴 적부터 정선아리랑을 접해온 주민들의 구성진 노랫가락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수준급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관람에 나선 관광객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큰 감동에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한참을 자리에서 뜨지 못할 정도다. 주최 정선군 주관 극단무연시,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 공연 일시 4월~11월 말 관람료 무료 공연 시간 오후 4시 40분~5시 30분(끝자리가 2, 7일인 장날에만 공연) 공연 장소 정선군청 옆 문화예술회관 3층 여행 정보 정선 5일장 운영일 매월 끝자리가 2, 7일인 날(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월 6회) 여행 노선 청량리역(07:50)~양평역(08:23)~원주역(09:15)~제천역(10:01)~정선역(12:00) / 정선역(18:00) 출발 가격 주중 4만3천원(성인 기준), 주말 4만9천원(성인 기준) 포함 사항 무궁화호 왕복 열차, 연계 버스, 풍경 열차 탑승료, 정선아리랑극 관람(혹은 아라리촌 투어), 진행비, 여행자보험(전 일정 식사 및 개인경비 불포함)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조상규(프리랜서)>

      2010.06.1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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