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인천공항 있는 영종도에 종합병원 설립···허종식 ‘대선 공약’ 추진... 제공 감염병 대응·지역 의료 공백 해소 공론화 위해 23일 국회서 토론회 인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에 감염병 예방과 응급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린다.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인천공항 #영종도 #감염병 #종합병원 #??薦? #인천국제공항공사 #서울대병원 #인천시
박준철 기자 2025.04.21 11:16
정치
“인천공항 있는 영종도에 종합병원 설립···허종식 ‘대선 공약’ 추진... 제공 감염병 대응·지역 의료 공백 해소 공론화 위해 23일 국회서 토론회 인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에 감염병 예방과 응급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린다.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인천공항 #영종도 #감염병 #종합병원 #??薦? #인천국제공항공사 #서울대병원 #인천시
박준철 기자 2025.04.21 11:16
경제
인천공항 있는 영종도에 영국 명문 ‘위컴 애비’ 국제학교 들어선다... 사업협약을 체결, 2028년 하반기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국제학교는 인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에 설립되는 첫 국제학교이다. 영종의 발전을 견인하고, 새로운 앵커 시설로 투자유치 활성화의...
#영국 #국제학교 #위컴애비 #인천 #영종도 #인천공항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 #청라
박준철 기자 2025.03.31 10:32
경제
인천 영종도 미단시티 국제학교 공모에 외국학교 7곳 지원... 선정 영종도 미단시티 내 국제학교 공모 부지. 인천경제청 제공 인천경제자유구역인 영종도 미단시티에 설립될 국제학교 공모에 모두 7곳이 접수했다. 인천경제청은 지난 14일 마감한...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도 #미단시티 #국제학교 #송도 #청라 #채드윅 #칼빈매니토바 #달튼외국인학교
박준철 기자 2025.02.17 09:50
문화
J팝 대표주자 요아소비 1년 만의 내한 ···뉴진스와 합동 무대에 영종도가 ‘들썩’... 멤버 이쿠라(24)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외치자 관객 1만5000명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인천 영종도를 뒤흔들 만한 열기였다. 요아소비가 지난 7일 오후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두 번째 내한 공연...
최민지 기자 2024.12.08 22:11
연예
기안84, ‘영종도 매드맥스’ 변신…흙 먼지 뒤집어쓰며 “여기 길?” (나혼산)MBC ‘나 혼자 산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영웅 형제’ 기안84와 박지현이 ‘영종도 매드맥스’로 변신한다. 오는 25일 밤 11시 10분 방송되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영웅 형제’ 기안84와 박지현의 여행 두 번째 이야기가 공개된다. 지난주 친형제 케미를 뽐내며 인천 월미도를 접수한 ‘영웅 형제’ 기안84와 박지현이 이번엔 바다를 건너 영종도를 접수한다. 갈매기와 찐하게 소통하며 도착한 영종도에서 기안84는 오토바이를 타고 자신의 아지트로 박지현을 안내한다. 황금 들판을 감상하며 박지현에게 오토바이 라이딩의 재미를 보여준 기안84는 심상치 않은 풍경과 마주하고 당황한다. “여기 길 맞아?”라며 잠시 멈춰 내비게이션을 보는 기안84는 “길을 잘못 들어도 좋아요. 길 잃는 것도 여행”이라는 박지현의 말에 무작정 질주를 시작한다고. 막다른 길 앞에서도 기안84는 “내가 뚫고 가는 게 빠를 수 있어!”라며 영웅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매드맥스’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가 하면 박지현은 “이런 경험을 언제 해봅니까”라며 기안84가 준비한(?) 코스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웅 형님’을 위한 요리도 대접한다고. 사이좋게 구충제까지 나눠 먹고 자유와 낭만을 쫓는 ‘영웅 형제’ 기안84와 박지현의 여행이 어떤 새로운 재미와 웃음을 안겨줄지 기대가 모인다. ‘영종도 매드맥스’가 된 ‘영웅형제’ 기안84와 박지현의 여행기는 오는 25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되는 ‘나 혼자 산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형우 온라인기자 2024.10.24 16:30
생활
‘발로란트 챔피언스’ 결승 시리즈,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서 개최‘발로란트’ 세계 최강을 가리는 ‘챔피언스 서울’ 결승전이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다. 라이엇 게임즈는 오는 8월 1일~25일 한국에서 열리는 ‘발로란트 챔피언스 서울’의 결승전 시리즈가 마지막 사흘 동안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개최된다고 발표했다.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2023년 12월 개관한 국내 최초의 다목적 공연 전용 아레나로 1만5000석 규모다. 에픽하이, 동방신기, 엑소, 샤이니 등 국내 뮤지션은 물론 마룬파이브, 웨스트라이프 등 외국 뮤지션들의 공연도 활발히 유치되고 있다. 4개의 국제 리그에서 선발된 16개 팀이 참가하는 ‘발로란트 챔피언스 서울’은 그룹 스테이지와 브래킷 스테이지로 나뉘어 진행된다. 8월 1일~4일, 6~11일 16개 팀이 모두 참가하는 그룹 스테이지가 펼쳐지며 각 조에서 두 팀씩 살아 남아 브래킷 스테이지에 진출한다. 더블 엘리미네이션으로 진행되는 브래킷 스테이지는 두 단계로 구분된다. 14~18일 상위조와 하위조 경기를 치른다. 그룹 스테이지와 브래킷 스테이지의 1단계까지는 국제 리그인 VCT 퍼시픽의 정규 리그와 플레이오프를 소화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열린다. ‘발로란트 챔피언스 서울’의 대미를 장식하는 결승 시리즈는 23일에는 상위조 결승과 하위조 준결승, 24일에는 결승 진출전, 25일에는 최종 결승전이 펼쳐진다. ‘발로란트 챔피언스 서울’의 티켓은 오는 11일 낮 12시부터 인터파크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조진호 기자 2024.06.28 18:55
연예
‘더트롯쇼’ 금잔디, 호소력 짙은 ‘영종도 갈매기’SBS FiL, SBS M ‘더트롯쇼’ 캡처 가수 금잔디와 강예슬이 2인 2색 청아한 비주얼과 실력을 뽐냈다. 7일 오후 8시 SBS FiL, SBS M ‘더트롯쇼’가 방송된 가운데, 이날 금잔디와 강예슬은 ‘감성 맛집’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영종도 갈매기’로 무대에 오른 금잔디는 독보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동시에 가슴 절절한 감성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독점했다. 금잔디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아련함이 돋보이는 표정, 제스처와 함께 무대 몰입도도 높였다. 금잔디가 내공 깊은 보컬과 감정 표현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면, ‘가요계의 꽃’ 강예슬은 청아함 그 자체로 눈길을 끌었다. 강예슬은 이날 신곡 ‘목련’을 통해 청순한 비주얼은 물론 맑고 깨끗한 보이스를 선보이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강예슬은 진한 감성을 곡에 완벽하게 녹여내며 절절함을 배가시켰고, 한층 성장한 보컬 실력으로 대중의 귀 또한 사로잡았다. 각기 다른 깊은 감성으로 ‘더트롯쇼’를 물들인 금잔디와 강예슬은 매번 곡의 분위기에 따라 애절함부터 러블리함까지 팔색조 매력을 뽐내고 있으며, 이런 두 사람에 대중 역시 뜨거운 호응으로 화답하고 있다. 명품 무대로 대중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드는 금잔디와 못다 이룬 사랑의 그리움을 표현한 신곡 ‘목련’으로 컴백한 강예슬은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손봉석 기자 2023.08.07 22:59
생활
영종도 ‘한국판 라스베이거스’ 휘청영종도 시저스코리아 복합리조트 공사 현장. 연합뉴스국제선 여객 수 세계 4위인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 곳곳에 다양한 콘텐츠와 결합한 카지노 복합리조트를 조성해 ‘한국판 라스베이거스’를 만든다는 구상이 차질을 빚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미국의 카지노리조트 운영기업 MGE사가 2022년 6월 개장을 목표로 영종도에 건립 중인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의 건설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 북서쪽 국제업무지구(IBC)-Ⅲ에 건립 중인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특급호텔, 실내워터파크, 공연장(아레나) 등을 갖출 예정이며 지난달 기준 12%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는 코로나19 여파로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전해져 공정률을 높이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리조트를 비롯한 관광산업 전반에 투자가 위축되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건이 악화해 어려움이 있다”면서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사업 기간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영종도 미단시티에 추진 중이던 시저스코리아 복합리조트 건설 공사도 반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시저스코리아 복합리조트는 중국 푸리그룹과 미국 시저스엔터테인먼트가 2017년 50대 50 지분으로 합작법인을 설립해 추진해왔다. 그러나 두 기업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투자가 중단돼 공사비를 제때 받지 못한 시공사인 쌍용건설이 올해 2월 공사를 멈추고 유치권 행사에 들어갔다. 2017년 9월 착공된 이 리조트는 27층짜리 특급호텔(750실)이 24층까지 골조가 올라간 상태로, 전체 공정률은 25%이다. 인천경제청은 그동안 사업 정상화를 위해 두 기업 사이에서 중재 작업을 벌였지만, 양측이 자금 조달과 공사 재개 방안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경제청은 공사에 필요한 절대 기간을 고려할 때 내년 3월 준공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영종도에는 2017년 4월 국내 최초의 복합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가 인천공항 옆에 문을 열었다. 부지 면적이 축구장의 46배인 33만㎡에 달하는 파라다이스시티에는 개장 이후 2년간 250만명이 방문해 ‘한류 관광’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다수의 복합리조트를 한데 모아 영종국제도시를 세계적인 관광 허브로 조성한다는 인천경제청의 전략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온라인뉴스팀 2020.08.24 07:41
사회
[긴조 9호 세대 비사 6]영종도의 7인 비밀결사긴급조치9호 전야인 1975년 봄 대학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연이은 공안 조작 사건으로 학생운동의 주력이 철저히 거세된 고려대가 먼저 본격적인 반(反)유신투쟁의 기치를 올린 것이다. 더욱 알 수 없는 점은 시위의 조직이나 양상이 선배들을 뺨칠 정도로 오히려 진보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 학기의 전열이 채 정비되기도 전에 발생한 3-31시위, 그리고 연이은 4-7시위와 도서관 철야농성, 4-8긴급조치7호 발동.... 전격적으로 전개된 일련의 사태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학원사찰기관과 당사자인 학생들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돌아온 장고' 조성우와 한경남 민우-야생화 이후 초토화된 고려대 학생운동이 극적으로 재건된 배후에는 68학번 두 복학생이 있다. 일찍 군대에 가는 바람에 1971년 위수령 사태를 피한 조성우(전 민화협 공동의장, 17대 총선 서울 마포을 출마 준비, 열린우리당)와 한경남(푸른사회연대 상임대표, 17대 총선 서울 영등포갑 출마 준비, 한나라당)이다. 두 사람의 학생운동 및 민주화운동 역정은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이다. 이들은 긴조9호 시대인 1970년대 후반과 제5공화국 시대인 80년대 전반 고려대 학생운동을 이끄는 양대 이념서클의 대부 격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1975년 6월 고려대 첫 긴급조치9호 위반자로 함께 옥살이를 한 것을 시작으로 수배와 투옥으로 얼룩진 삶을 살게 된다. 조성우는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1968년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경복중을 졸업하고 대신고에 진학한 것도 순전히 생활비 보조를 받기 위해서였다.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웠던 그는 고려대에 입학한 뒤 한 학기만 마치고 해군에 지원입대, 김포에 있는 해병부대에서 근무한다. 운명의 장난일까. 그의 인생은 여기서 엄청난 궤도 수정을 한다. 1966년 용산고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가 퇴교당해 김포 해병부대에 사병으로 입대한 함호철(사업)이 바로 그 운명의 중개인이었다. 함호철은 고교동기이자 고려대 경영학과 66학번인 조용상(경향신문사 사장)을 조성우에게 소개한다. 학교에 가면 그를 찾아가보라는 것이었다. 1971년 12월 제대한 조성우는 그 인연으로 72년 봄 조용상이 회장을 맡고 있던 청년문제연구회(청연)에 가입한다. 순수 이념서클이었던 청연이 향후 고려대를 대표하는 막강 학생운동조직으로 탈바꿈한 것은 조성우가 회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맥이 끊어진 고려대 학생운동이 단기간에 복원된 것도 청연이라는 서클과 조성우라는 걸출한 활동가가 있기에 가능했다. 청연은 긴급조치9호 발동과 함께 강제해체되지만 그 뒤 고전연구회-겨레사랑회 등의 이름으로 이어져 1980년대 들어 약칭인 '겨사'로 더 유명한, 고려대 학생운동의 최고 배후조직으로 발전한다. 현재 청연은 '청우회'(회장 김희중-72학번)라는 모임으로 남아 있는데 66학번 조용상이 좌장 격이고 회원은 한사회 출신 이문수(현대자동차 상무, 67학번)를 비롯, 71학번 남효응(대우분당서비스 대표이사, 17대 총선 분당 출마 준비, 한나라당), 72학번 이병석(한나라당 의원), 74학번 설훈(민주당 의원) 등 86학번까지 150여 명에 이른다. 청연이 본격적으로 '사고'를 치기 시작하는 것은 1974년 들어서다. 그해 마산고 학생회장 출신 설훈이 제 발로 청연에 가입한다. 재수생 시절 유신쿠데타를 맞이한 설훈은 그 때부터 박정희 정권과 싸우기로 이미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1974년 4월 3일 민청학련 사건이 터졌을 때 분을 참지 못해 곧바로 학생회관 이발소로 달려가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다. '제2의 야생화' [民魂] 발간 모의 이미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던 조성우는 이런 설훈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먼저 69학번으로 고려대에 재입학한 해병부대 동료 함호철을 끌어들였다. 청연 회원인 74학번 설훈-홍의락(크로네스코리아 대표이사, 17대 총선 울진-봉화 출마 준비, 열린우리당)이 적극 호응했다. 계우회(대구 계성고 총학생회) 총무부장 출신인 홍의락 역시 유신에 대한 반감으로 충만한 열혈학도였다. 여기에 가세한 인물이 도산연구회 소속의 철학과 73학번 도천수(푸른시민포럼 대표, 17대 총선 서울 용산 출마 준 비, 열린우리당)였다. 도천수는 용산중-고 시절 학생회장을 지낸 데다 정치의식이 남달랐다. 그 역시 유신 시절의 폭압적 상황을 참지 못해 삭발하고 다녀 선배들의 눈에 금방 띄었다. 이렇게 해서 조성우-함호철-도천수-설훈-홍의락 등 7인의 정예멤버가 구성됐다. 이들은 그해 5월 영종도에 잠입, 비밀결사를 한다. 유신체제에 맞서 끝까지 싸우기로 맹세하고 흰 러닝셔츠에다 한자로 '민혼(民魂)'이라는 혈서를 썼다. 설훈의 기억에 따르면 피가 모자라 각자 열 손가락의 피를 모두 모아 글자를 완성했다고 한다. '민혼'은 이들이 구상한 지하신문의 제호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혼]을 내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당시 시위 주동 정도는 제적과 구류 처분으로 족하지만 지하신문은 그렇지 못했다. 〈민우〉-〈야생화〉지 사건이 결과를 잘 말해주는 상황이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화가 가족에게까지 미친다는 점이었다. 결국 한 명의 이탈자가 생기면서 영종도 모의는 공수표가 되고 말지만 이들 7인 비밀결사는 1974년 말 시위와 이듬해 긴급조치7호를 유발하는 중요한 배후조직 가운데 하나가 된다. 긴급조치9호 전야의 고려대 학생운동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민족이념연구회(민연) 창립멤버인 68학번 한경남이다. 그는 고려대에 입학할 당시부터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의식분자'였다. 그는 한국전쟁 때문에 취학시기를 놓쳐 뒤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간 데다 재수를 하는 바람에 동기생보다 2~3세 나이가 많았다. 대전고 수위 그룹에 속했던 그는 고교 시절 이미 감성적으로나마 사회 모순을 인식하고 사회 변혁을 꿈꾸는 '혁명가'의 피를 갖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네 성격으로 정치를 하면 안 되니 법학과를 지망하라"고 유언했을 때 그 자리에서 거절할 정도로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이런 한경남이 입학하자마자 66학번 선배들과 조직한 것이 민족이념비교연구회였다. 손태인(전 국회의원, 작고) 등 3학년 9명과 김종완(동아일보 독자서비스센터장) 등 1학년 9명이 창립멤버였다. 그가 한사회 간사직 제의를 거절하고 새로운 조직에 참여한 까닭은 '사회과학적 학생운동'을 지향하기 위해서였다. 서클 이름도 1960년대 6-3학생운동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 서울문리대 서클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곧바로 군에 입대하면서 서클 이름과 성격이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된다. 학교 당국의 요구로 서클 이름에서 '비교'라는 단어가 빠지고, 성격도 이념이나 운동보다 학내 주도권 확보에 치중하는 쪽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만 NICA(Nat- ional Ideology Comparative Associ- ation)라는 약칭은 그대로 유지된다. 니카회, 총학생회 접수하다 한경남이 없는 동안 손태인의 영향력하에 니카, 즉 민연은 실제로 학내에서 상당한 파워그룹으로 성장한다. 이런 가운데 한사회에 이어 그 후신인 등림회마저 '야생화 사건'으로 풍비박산나자 1974년 민연은 마침내 이윤세(작고)를 밀어 총학생회장에 당선시킬 정도로 학내 제1세력으로 떠오른다. '돌아온 장고' 한경남은 그러나 생각이 달랐다. 학내 이니셔티브 확보보다 사회운동체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그의 이런 지도노선의 결과물이 72학번 박계동(전 국회의원, 17대 총선 서울 송파을 출마 준비, 한나라당)과 74학번 최규엽(민주노동당 서울 금천지구당위원장)-문학진(17대 총선 경기 하남 출마 준비, 열린우리당)-신태식(덕지기업 이사, 17대 총선 경기 구리 출마 준비, 열린우리당) 등 뒷날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의 쟁쟁한 인재를 배출한 것이었다. 한경남의 복학을 계기로 민연은 본격적인 사회운동체로서 반유신투쟁에 주력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긴급조치9호로 서클이 해체된 이후에도 사회과학연구회(사연)로 이어져 1980년대 고려대 학생운동의 한축을 이루게 된다. 민연 역시 '민이연동우회'(회장 오필근-66학번)라는 이름으로 85학번까지 140여 명의 회원을 갖고 있고, 매년 창립일인 6월 14일 모임을 하고 있다. 1975년 3-31데모는 이들 청연과 민연의 조직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학생들 사이에서 반유신운동의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으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세력이 규합됐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3학년 권순성(범양상선 대만지사장)과 박구진(변호사)이었다. 청연 소속의 설훈-김관회(작고)와 민연 소속의 문학진-최규엽-신태식 등 2학년도 가세했다. 여기에 비서클 멤버인 74학번 신계륜(열린우리당 의원)-김세응(17대 총선 충남 천안갑 출마 준비, 민주당) 등까지 포함해 모두 12명의 시위 집행부가 구성됐다. 본격적인 회합이 이뤄진 것은 3월 27일 인촌 동상 앞에서였다. 이들은 밤이 되자 학교 근처 여관으로 옮겨 밤을 새웠다. 나중에 비상총학생회 회장을 맡아 4-7 도서관 철야농성을 이끌게 되는 권순성의 말. "통상 시위는 화요일에 시작하는 것이 그간의 관례였지만 '3월항쟁'의 기록을 중시해 월요일인 3월 31일 오전 10시로 잡았죠. 아울러 지도부를 1-2-3진으로 나눠 주동자가 연행되더라도 다음 사람이 계속 시위를 이끌 수 있도록 했고요. 거기에서 시위용품과 플래카드, 구국선언문 작성, 학생 동원 등 각자 업무 분담까지 이뤄졌습니다. 구국선언문은 신계륜이 맡았는데 내용과 문장이 워낙 뛰어나 나중에 우리 말고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는데...." 3월 31일 10시 대강당에서 시작한 집회는 운동장 시위로 이어진다. 총학생회가 배제된 상태에서 열린 이날 시위를 주도한 도천수는 1진 집행부인 설훈 등과 함께 경찰에 연행된다. 12인 집행부의 일원이었던 박구진의 기억에 따르면.... "시위 규모가 커지지 않자 이를 지켜보던 총학생회가 나서서 지도부를 설득했습니다. 오늘 시위는 접고 4월 7일 총학생회 이름으로 제대로 하자는 것이었죠. 그렇게 하기로 하고 시위를 마무리했는데 4월 6일 총학생회장이 연금되는 바람에...." 시위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총학생회 간부와 민연 회원을 사전에 연행해 억류해버린 것이다. 문학진-최규엽-신태식도 이때 연금된다. 4월 7일 지도부 공백 상태에 처하자 경영학과 대의원이었던 박구진은 임시대의원총회를 소집한다. 결론은 "애초에 총학생회에서 하기로 한 것이니까 그대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구성된 비상총학생회의 회장에는 권순성이 선출됐다. "본보기로 고려대 폐교 조치할 것" 오후 5시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작된 시위는 밤늦도록 계속됐다. 기동경찰이 발사한 최루탄과 페퍼포그, 시위대가 던진 돌멩이로 학교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날 시위의 하이라이트는 중앙도서관 철야농성이었다. 고려대에서 철야농성은 성공한 전례가 거의 없었다. 농성장으로 자주 이용됐던 학생회관 강당은 사방이 유리로 되어 군이나 경찰의 무력에 쉽게 진압될 뿐더러 정보기관 프락치의 접근이 쉬웠다. 이들이 주동이 돼 농성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내는 등 자중지란을 일으키곤 했던 것이다. 시위 지도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대학에서 '성역'이나 다름없는 도서관을 농성장소로 택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공부하는 학생을 몰아낸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간단치 않은 일이었지만 도서관이 건물구조상 무력 진압이 불가능한 천혜의 요새였기 때문이다. 권순성은 "지금 이 시기에 도서관이 왜 필요하냐"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시 권순성의 말을 들어보자. "당시 시중에는 박정희 정권이 반정부 데모를 방지하기 위해 본보기로 일개 대학을 폐교조치할 것을 구상 중이라는 루머와 함께 고려대가 시범 케이스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요. 실제로 유신헌법이 대만헌법을 참조한 만큼 장제스 정부가 대만 주민의 항거를 막기 위해 앤핑(延平) 대학을 폐교한 사례가 있어 고대생의 불안감은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어쨌든 교문 앞 연좌를 끝내고 도서관에 진입한 것은 밤 9시쯤. 도서관 철야농성 지도부에는 권순성-박구진과 함께 또 하나의 낯익은 인물이 있었다. 철학과 73학번 최봉영(삼성기획 대표)이다. 1974년 12-2시위 조직에 실패한 그는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4-7시위에 가담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이들 세 사람은 경찰이 '바바리'(권순성), '빨간 잠바'(박구진), '야전 잠바'(최봉영)로 부를 정도로 1975년 상반기 고려대 학생운동의 주목 인물이었다. 도서관에서 밤을 샌 철야농성 지도부와 500여 명의 학생은 4월 8일 먹을 것을 싸들고 등교한 학생들과 합류해 다시 시위에 들어갔다. 시위 군중은 3,000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미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를 기해 고려대에 휴교를 명하고 학내 집회와 시위를 금하는 내용의 긴급조치7호를 발동했다. 신동호 편집장 hudy@kyunghyang.com
2004.01.2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