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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칸 영화제에 한국영화 0편···26년만에 전 부문 초청 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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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칸 영화제에 한국영화 0편···26년만에 전 부문 초청 불발

      제78회 칸국제영화제 초청작 발표 기자회견. EPA=연합뉴스 한국 영화가 올해 칸국제영화제의 경쟁 부문 등 공식 부문에 초청되지 못한 데 이어 감독·비평가주간 등 비공식 부문의 초청장을 받는 데에도 실패했다. 한국 장편 영화가 칸영화제의 공식 부문과 비공식 부문에서 모두 초청이 불발된 건 26년 만의 일이다. 칸영화제 감독주간 집행위원회가 15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제78회 칸영화제 상영작 명단에는 한국 영화가 포함되지 않았다. 프랑스 감독협회가 차별화된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1969년 신설한 감독주간은 칸영화제의 비공식 부문 중 하나다. 그동안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2005), 봉준호 감독 ‘괴물’(2006), 연상호 감독 ‘돼지의 왕’(2012) 등이 이 부문을 통해 상영됐다. 홍상수 감독의 ‘우리의 하루’는 2023년 감독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 영화는 또 다른 비공식 부문인 비평가주간에도 초청받지 못했다. 프랑스 비평가협회가 1962년부터 주관한 이 부문은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최근 한국 감독 초청작으로는 한준희 감독의 ‘차이나타운’(2015), 정주리 감독 ‘다음 소희’(2022), 유재선 감독 ‘잠’(2023) 등이 있다. 공식 부문에 이어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에서도 초청받지 못하면서 올해 칸영화제에선 한국 장편을 한 편도 볼 수 없게 됐다. 한국 장편 영화가 공식 부문과 비공식 부문에서 초청작을 내지 못한 건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앞서 한국 영화는 칸영화제 집행위원회가 지난 10일 발표한 경쟁 부문, 비경쟁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등에서 초청이 불발됐다. 한국 영화가 공식 부문에 초청받지 못한 건 2013년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칸영화제는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를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한국 작품을 선보여왔다. 특히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안겼고 박찬욱 감독에게는 심사위원대상(‘올드보이’), 심사위원상(‘박쥐’), 감독상(‘헤어질 결심’) 등 3개의 상을 수여했다. 이창동 감독은 ‘시’로 각본상을,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에 출연한 송강호는 남우주연상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주연한 전도연은 여우주연상을 가져가기도 했다.

      이주영 기자 2025.04.16 15:45

    • 영화 한 편에 146억 받는 배우 밀리 브라운 “여전히 마트서 쇼핑”

      국제

      영화 한 편에 146억 받는 배우 밀리 브라운 “여전히 마트서 쇼핑”

      미국 배우 밀리 보비 브라운. UPI=연합뉴스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등으로 인기를 끈 배우 밀리 보비 브라운(21)이 여전히 검소한 자신의 소비 습관에 대해 밝혔다. 미국 경제매체 CNBC 등에 따르면 브라운은 최근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기묘한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기 전까지 “돈 없이 자랐다”며 이런 성장기가 돈에 대한 자신의 인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12세부터 ‘기묘한 이야기’에 출연하기 시작해 일찍이 부와 성공을 거머쥔 그는 2019년에 영화 1편당 출연료로 1000만달러(약 146억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돈에 대해 매우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라며 “무언가에 돈을 쓰려고 할 때 부모님께 전화해야 하고 한참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그냥 바로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록스타 존 본 조비의 아들 제이크 본지오비와 결혼한 브라운은 남편과 소비 성향이 완전히 반대라고 전했다. 브라운은 “내가 ‘양말이 필요해’라고 말하면 그(남편)는 ‘프라다에 가자’고 말할 것이고, 나는 ‘타깃(마트)에 가자’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편은 쇼핑을 정말 좋아해서 여행 갈 때 우리가 가는 곳에서 쇼핑하려고 짐을 싸지 않으려고 한다”며 “반면에 나는 아마존(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기묘한 이야기’에 더해 영화 ‘에놀라 홈즈’ 시리즈까지 성공시키며 ‘넷플릭스 스타’로 불리지만, 정작 브라운은 넷플릭스 구독 계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부모님의 계정을 사용하고 있다”며 “나는 아직 내가 봐도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구독료를 내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2025.03.20 10:17

    • [시네프리뷰]악령: 깨어난 시체 - 베트남판 1960년대 한국 공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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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프리뷰]악령: 깨어난 시체 - 베트남판 1960년대 한국 공포영화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허술하다. 공포 장면은 주인공 뒤로 검은 그림자가 쓱 지나가거나, 과장된 음향효과와 함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시신을 비춘다. 1960년대 초창기 한국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엔케이컨텐츠 제목: 악령: 깨어난 시체(The Corpse) 제작연도: 2025 제작국: 베트남 상영시간: 122분 장르: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 감독: 도안 낫 트룽 출연: 광 투안, 카 누 개봉: 2025년 3월 1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내가 베트남산 공포영화를 접한 적 있던가. 영화관에 들어가며 한 생각이다. 있긴 있다. 조안, 차예련 주연의 <므이>(2007)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몇몇 장면만 삽화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한·베 합작영화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베트남 단독으로 2편 <므이: 저주 돌아오다>(2022)가 제작됐고, 국내 개봉까지 한 모양인데 후속편 제작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많은 편수는 아니지만, 베트남에서도 공포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시즌에는 메콩강에 있다는 물귀신을 소재로 한 영화 <마야>도 수입돼 개봉한 모양인데, 역시 깜깜무소식이었다. 영화를 보며 끊임없이 스스로 돌아봤다. 필자가 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 같은 건 아닐까. 영화를 보며 계속 떠올랐던 것은 <월하의 공동묘지>(1967) 같은 영화들이다. 엔딩크레딧에 붙어 있는 영화가 근거하고 있다는 ‘실제 사건’ 다큐 영상에서 떠오른 건 다시 <월하의 공동묘지>를 만든 권철휘 감독이 그럴듯한 공포 장면을 만들기 위해 당시 미아리 공동묘지에서 1주일간 밤을 새웠다는 일화 같은 것이었다. 관 속에서 발견된 목걸이의 저주 영화의 중심 이야기는 도시에서 살다가 낙향한 가족 이야기다. 남편 쿠앙은 아내 누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들 산과 살고 있다. 이 남자, 마음씨는 좋지만 능력 없는 백수다. 돈이 떨어지자 상속받은 선산을 팔아치우려 한다. 지관과 함께 나타난 매수자는 선산에 무연고 묘가 있는 걸 발견한다. 산을 팔기 전에 무연고 묘를 처리하라고 하자 쿠앙은 동네 파묘꾼을 데리고 가서 파기 시작한다. 마침내 드러나는 관. 관 속에는 낡은 목각인형이 있는데 꽤 값나가 보이는 보석 목걸이를 하고 있다. 임시로 쿠앙의 집에 가져다 둔 관에 파묘꾼이 몰래 접근해 보석 목걸이를 훔쳐 간다. 목걸이엔 저주가 걸려 있었고, 목걸이를 손에 넣은 사람들은 차례로 죽어 간다. 남편이 그 지경인지라 아내 누는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영화에서 뚜렷하게 설명은 안 나오지만, 하필이면 직업이 염습(殮襲)하는 염장이다. 영화는 이탈리아 B급 호러들이 신체 훼손과 시신을 집요하게 비추는 것처럼 시신 묘사에 집착한다(왜 저런 직설적인 제목을 붙였지? 라는 의문이 해소된다). 아마도 공포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은 그 대목에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가리지 않을까. 영화는 아마도 베트남에서 민간 전승됐을 다양한 괴담을 에피소드로 사용한다.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술에 취한 파묘꾼 카가 도박장에서 나와 집에 돌아갈 때다. 술이 떨어진 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동묘지에 누군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놓아두었던 반쯤 찬 술병이다. 감사를 표하고 술병을 잡고 마시려 할 때마다 공중 어딘가에서 손이 나와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술병을 빼앗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는다. 있음 직한, 그럴듯한 괴담이다. 연출도 훌륭하다. 카메라는 잘생기고 마음씨만 좋을 뿐, 능력은 없는 쿠앙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시신이 차고 있는 시계가 탐난 누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몰래 훔치려고 하지만 시신의 ‘보복’을 당한다. ‘만들어진 전근대’의 근대에 대한 복수 가족을 건사하지 못하는 가부장의 ‘위기’는 자식을 돌봐주는 남편의 고모에게 밥도 안 주는 못된 조카며느리 탓으로 몰아간다. 물론 이대로 끝난다면 결국 희대의 악녀가 저주를 받는 건 당연한 것이 되겠지만, 영화의 중반부쯤엔 감독이 감춰놓은 반전을 눈치채게 된다. 아마도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의 초반부에도 복선을 숨겨놨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전반적으로 허술하다. 대부분의 공포 장면은 주인공 뒤로 검은 그림자가 쓱 지나가거나, 과장된 음향효과와 함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시신을 비추는 진부한 연출의 결과다. 1960년대 초창기 한국 공포영화 연출을 떠올린 까닭이다. 영화는 ‘근대에 대한 전근대의 복수’라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 공포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영화의 인트로에 사용된 마녀의 의식 장면이라던가, 동굴을 나와 밤하늘을 나르는 박쥐 따위는 그 전근대의 고유성조차 이미 근대가 발명한 전통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베트남 영화에 흐르는 유교 문화 /정용인 기자 영화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프리미어 개봉한다. 왜 하필 한국일까. 의문이 들어 시사회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사진)에 참석했지만, 뚜렷한 답은 못 들었다. 베트남 영화시장에서 CGV의 멀티플렉스가 꽤 선전하고 있고, 찾아보면 CJ ENM이 히트작 다수 제작에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한국투자사가 관여하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자세히 찾아보진 못했다. 시사회장엔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학생들과 커뮤니티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사실, 기자나 배급 시사 없이 일반시사로 최초 공개하는 것도 이례적이다(기사를 쓰면서 살펴보니 개봉을 앞두고 기자·배급 시사 일정은 따로 다시 잡혀 공지돼 있다). 주연을 맡은 남녀 배우들은 베트남 쪽에서는 꽤 유명한 청춘스타인 모양이다.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고 간담회에 참석한 누 역을 맡은 카 누는 쩐 탄 감독의 가족 코미디 영화 <더 하우스 오브 노 맨>(2023), <마이>(2024)의 주연을 맡은 국민배우라고 한다(“공포 장르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밝혔다). 앞서 영화를 보며 <월하의 공동묘지>의 권철휘 감독 일화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상영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도안 낫 트룽 감독은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며 “실제로 산꼭대기에 올라가 연구했다”라고 밝혔다. 영화에서 강조한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라는 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덧붙여 있는 “아내를 잊지 못해 무덤에 묻은 시체를 파내 집에서 수십 년간 동거했던 남자의 이야기”(자료화면으로 실제 그 남자의 일화가 짧게 덧붙여져 있다)인 듯싶다. 아마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같은 곳에서 다룰 만한 에피소드다. 사실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일종의 견강부회다. 영화의 절정부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발화점이 됐을 그 이야기는 암시되지 않는다. 찾아보니 ‘베트남 공포영화의 제작현황과 법 제도’를 다룬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통신원 리포트가 있어 읽어봤다. 어쨌든 사회주의 나라인 베트남 영화법엔 ‘센서십’, 다시 말해 검열에 관한 규정이 있어 이게 영화제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창작 의욕을 크게 떨어뜨리는 자기검열을 가져온다고 한다. 법 제11조를 보면 “사회주의 공화국에 대항하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행위” 등과 함께 “외설적이고 타락한 생활방식, 범죄행위, 사회악, 미신 및 반동적 사상을 전파하거나 국가와 민족 간의 증오를 조장하고, 건전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선전행위”가 금지돼 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유교 사상이 사회주의 나라인 베트남 대중문화에도 뿌리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용인 기자 2025.03.12 06:00

    • [시네프리뷰]미키 17-근미래 SF영화에서 왜 ‘그분들’이 떠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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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프리뷰]미키 17-근미래 SF영화에서 왜 ‘그분들’이 떠올랐을까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이전 영화와 분명 변화가 있다. 여전히 그는 카메라 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며 우화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봉준호 월드’의 전형을 그리고 있지만, 세상의 앞날을 보는 그의 시각이 조금 관대해졌다고나 할까.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목: 미키 17(Mickey 17) 제작연도: 2025 제작국: 한국, 미국 상영시간: 137분 장르: SF, 판타지 감독: 봉준호 출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렛, 마크 러팔로,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개봉: 2025년 2월 28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시사회가 끝난 후 한 평론가와 영화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평론가가 말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촉’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필자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봉준호 감독을 여러 차례 인터뷰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봐서 영화를 찍은 건 2024년 이전이었을 것이고, 시나리오를 최종 탈고한 건 수년 전이었을 것이다. 신통하게도 영화는 ‘12·3 비상계엄 사태’ 후 모든 국민이 적나라하게 목격했던 대한민국 최상부 권력에서 비밀스레 벌어진 일들을 우화 형식으로 야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미국 관객들에게는 또 다른 권력자, 내놓고 이야기한다면 도널드 트럼프가 연상될 것이다. 영화를 찍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에드워드 애슈턴의 원작 소설을 구해 읽었다. 벌써 1~2년 전이다. 거기엔 마셜의 배우자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왔던 기억은 없는데?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심야 좌담프로그램에 출연한 봉 감독의 말에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셜(마크 러팔로 분)의 부인 일파(토니 콜렛 분)는 음식 소스에 광적으로 집착하는데, 원작 소설에는 없는 창작 캐릭터다. 원작 소설 형식에 담은 ‘봉준호 월드’ SF 장르의 형식을 걸쳤지만, 누차 이야기하는 것처럼 봉준호 영화는 특유의 색깔이 있다. 우화와 같은 블랙코미디. 감독 본인은 반기지 않는 별명인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은 웨스 앤더슨 영화처럼 형식미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큰 이야기 뼈대는 에드워드 애슈턴의 원작 <미키 7>에 비교적 충실하되, 그 내용은 봉준호식 각색으로 채워 넣었다. 예컨대 소설에서 ‘익스펜더블’에 지원한 주인공 미키는 역사학자였다. 영화 속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한때 유행 타던 마카롱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한 실직 청년이다(<기생충>(2019)에서 기택 가족과 문광 가족의 가세가 몰락한 것은 역시 유행처럼 대한민국에 나타났다 사라진 대만 카스텔라 가게를 했기 때문이었다). 빚쟁이에 시달리던 미키의 해결책은 우주 식민지 개척단에 지원해 지구를 떠나는 것이다. 당장 떠나는 것에 급급하다 보니 택한 게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익스펜더블’(과거 잘나가던 1980년대 액션 스타들을 총집합해 놓은 영화 시리즈의 제목이 이 익스펜더블이었다. 익스펜더블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두고 당시 선택한 단어는 ‘총알받이’였던 것이 기억난다)이었다. 익스펜더블은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우주 공간에서 주로 ‘몸빵’을 하는 존재다. 예컨대 그들이 도착한 얼음행성 니플하임의 대기엔 인체에 치명적인 어떤 바이러스 같은 것이 있을지 모르는데, 사람들이 내려 정착하기 전에 미키만 홀로 내보내 행성 대기 상태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실제 그 임무를 수행한 미키는 죽었고, 백신을 개발해 적용 완료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우주선 밖으로 나가는 건 유예된다. 영화는 탐사 수행을 나간 미키 17, 그러니까 17번째 미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 기지로 돌아와 보니 이미 그가 죽었다고 판단해 프로토콜에 따라 18번째 미키가 만들어지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로 시작한다. 감독의 여덟 번째 영화가 담은 주제 의식은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일곱 편에 걸친 그의 작품을 리뷰하면서 필자는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어떤 주제 의식이 있다면 ‘진정성에 대한 냉소’와 계급 혹은 사람들 간의 분리와 단절이라고 봤다. 끝은 항상 그런데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것에 대한 다짐, 내지는 바람으로 끝나지만 심연에 흐르는 건 그게 과연 이뤄질 수 있겠냐는 회의 같은 것 말이다. 예컨대 영화 <기생충>의 결말에서 기우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짐한다. “계획을 세웠어요. 돈을 많이 벌어 그 집을 사는 일. 이사하는 날, 아버지는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그 편지는 지하실에 고립된 아버지에게 부칠 수도 없고, 아버지가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감탄했던 기우의 마지막 계획은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영화는 은연중에 암시하며 끝난다. <미키 17>에서 미키는 이 지구로부터 이주민 중에서도 ‘밑바닥 인생’(그람시가 만들어내고 스피박이 널리 퍼뜨리는 개념으로 말하자면 서발턴(subaltern))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봉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분명 변화가 있다. 여전히 그는 카메라 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며 우화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봉준호 월드’의 전형을 그리고 있지만, 세상의 앞날을 보는 그의 시각이 조금 관대해졌다고나 할까. 감독과 다시 인터뷰할 기회가 있다면 아카데미상 수상 후 요 몇 년간의 사정을 묻고 싶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교정된 식민주의 대안 판타지 /브에나 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미키 17>은 한국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제작사는 워너브러더스다. 굳이 분류하자면 할리우드가 이제는 세계적 거장이 된 봉준호 감독에게 투자해 만든 할리우드 영화다. 2019년 <기생충>의 미국 개봉을 앞두고 봉 감독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는 지난 20년간 큰 영향을 가졌음에도 왜 단 한 작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했냐”는 질문을 받고 “오스카는 로컬이잖냐”, 그러니까 지역문화제라고 쿨하게 답을 했다. 이 답은 꽤 큰 반향을 끌어냈다. 필자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 상을 휩쓸게 된 데는 봉 감독이 미국 주류사회에 일깨워준 그 무엇도 큰 작용을 했다고 본다. 아카데미 작품상 중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된 작품이 작품상을 받은 것은 2020년까지 92년의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사실 <미키 17>의 서브플롯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교정된’ 서구 정체성의 과거와 대안적 미래에 대한 상상이다. 지구이주민들이 도착한 얼음행성 니플하임엔 선 거주자들이 있었다. 마셜은 그들에게 멋대로 ‘크리퍼’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폭살 계획을 세운다. 서구 정체성의 과거라는 것은 콜럼버스 이래로 원주민을 말살·학살한 식민개척사가 감춰진 진실이기 때문이다. 지구이주민의 가장 밑바닥의 하찮은 ‘서발턴’인 미키 17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법을 처음 알아내고, 결국 그들과 공생하는 삶이 독재자의 폭주를 이긴다는 것은 대안 판타지다. 이 점에서 <미키 17>의 세계관은 하인 라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 시리즈(사진)와 대척점에 서 있다. 차후에 기회가 되면 여기에 대해서도 꼼꼼히 다뤄보고 싶다.

      정용인 기자 2025.02.26 06:00

    • [시네프리뷰] 검은 수녀들-한국형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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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프리뷰] 검은 수녀들-한국형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진일보

      판타지 세계를 그린 작품이지만, 역설적으로 <검은 신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상적 풍경을 강조한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다채로운 도시 풍경은 확실히 의도적으로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영화사 집 제목: 검은 수녀들(The Priests 2: Dark Nuns) 제작연도: 2025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14분 장르: 공포, 드라마 감독: 권혁재 출연: 송혜교, 전여빈, 이진욱, 문우진 개봉: 2025년 1월 2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 두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관객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홍보 요소다. 2015년 공개된 <검은 사제들>은 서양에서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선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엑소시즘(Exorcism·퇴마(退魔), 구마(驅魔), 축사(逐邪))을 전면에 등장시킨 모험적 영화로 평가받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인 단편 <12번째 보조사제>(2014)를 확장해 장편 데뷔식을 치른 장재현 감독은 이후 <사바하>(2019), <파묘>(2024) 등 꾸준히 오컬트 장르를 선보여 흥행시키며 한국 장르 영화의 새로운 한 축을 개척한 연출가로 우뚝 섰다. <검은 수녀들>은 앞선 <검은 사제들>과 등장인물이나 감독이 다르지만, 판권을 가지고 있는 ㈜영화사 집이 기획·제작한 정식 속편이다. 엄밀히는 직접적 속편과 구분하는 스핀오프(Spin-Off·파생작, 번외작)로 보는 것이 옳겠다. 단순히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검은 사제들>의 인물들이 수시로 언급될 뿐 아니라 이야기 전개 면에서도 상당한 유사점을 보여주고 있다. 전편에 경의를 보냄과 동시에 전편을 기억하는 관객들을 향한 일종의 선물로 읽힌다. 현재까지 공식적인 참여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장재현 감독은 <검은 수녀들>에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이후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제 절정의 배우들을 만나는 반가움 고대로부터 언급돼 오던 최강의 악마인 12형상 중 하나가 소년 희준(문우진 분)의 몸을 빌려 다시 출현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신부들의 부재로 세상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보다 못한 유니아 수녀(송혜교 분)가 악령 퇴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지만, 윗선에서는 도움은커녕 절차와 전통을 이유로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미카엘라 수녀(전여빈 분)에게 간신히 도움을 청한 유니아 수녀가 세운 원칙은 하나다. ‘이번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장르적으로는 보통 신부가 행하는 것이 당연한 구마 의식을 수녀들이 집행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자 흥미를 유발하는 포인트다. 그리고 이를 연기하는 배우 송혜교와 전여빈에 대한 관객들의 호감이 고조된 시점이라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보인다. 한동안 활동이 주춤했다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통해 기존의 이미지를 혁신하고 연기파로 거듭난 송혜교가 모처럼 출연한 영화라는 점을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골초에 험한 말도 서슴지 않는 유니아 수녀의 모습을 그만의 차갑고 저돌적인 이미지를 통해 매력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전여빈의 지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경력 중 최고의 연기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인물의 설득력을 끌어내기는 충분해 보인다. 독특한 화면비와 다양한 특별관 상영 비현실적인 판타지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지만, 역설적으로 <검은 신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상적 풍경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다채로운 도시 풍경은 확실히 의도적으로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근래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화면비인 16 대 9(1.77 대 1) 비율이 아닌 초기 와이드 스크린 비율인 1.66 대 1로 제작된 것도 화제가 되고 있다. 보통 극장에서 보는 화면보다 좌우가 짧아서 답답하게 느끼는 관객이 있을 수도 있는데 촬영감독은 시야를 좁게 만들어 관객들의 시선이 인물에 더욱 집중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이런 의도는 화면비뿐 아니라 빈번한 클로즈업과 극단적인 ‘오버 더 숄더 숏’(앞의 인물이나 사물에 일부가 가려진 피사체를 포착하는 법)을 통해서도 구현되는데, 대상만을 강조하는 만큼 답답한 느낌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민감한 관객들에게는 불만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 영화로는 모처럼 돌비 애트모스, 4DX, SCREENX, IMAX 등 다양한 특별관에서 상영한다. 특히 1.66 대 1의 좁은 화면 비율은 IMAX 스크린에서 최적의 효과를 유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성모독까지 감내하는 ‘넌스플로이테이션’ /amazon.co.uk 1960~197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착취)’ 장르로 구분되는 영화들이 있다. B급 영화 안에서도 특정 소재나 관객의 취향을 집중해 겨냥한 노골적 상업 영화를 일컫는다. 대부분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완성도보다 오로지 관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지갑을 열게 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폭력과 섹스에 집착하는 작품이 많았다. 이 안에서도 관객의 취향만큼 다양한 전문 분야(?)가 갈라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일명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이다.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상업영화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무대로 나치의 잔악상과 고문, 학대를 다룬 작품들인 ‘나치스플로이테이션’, 이소룡 아류 영화들을 일컫는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성적 묘사에 집착하는 ‘섹스플로이테이션’과 표현 수위의 극한까지 밀어붙인 ‘쇼크플로이테이션’, 저예산 호주 영화만을 묶어 명명하는 ‘오즈플로이테이션(Ozploitation)’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표적인 갈래가 수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넌스플로이테이션’이다. 1990년대 말 국내에 무삭제 비디오로 출시됐다 회수됐던 사건이 전설처럼 회자하는 이탈리아 영화 <악령 속의 사춘기>(Malabimba·1979·사진)가 대표적 작품이다. 단순히 성스러운 처녀의 존재를 초월해 종교적 의미를 지닌 수녀란 이미지를 세속화해 신성모독의 위험까지 감내한 이런 작품들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점잖은 방향으로 선회하며 대중 속으로 스며들었지만, 근저에 내재한 발칙한 호기심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2025.01.29 06:00

    • [시네프리뷰] 노스페라투-영화사 첫 고전 흡혈귀 영화의 통속적인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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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프리뷰] 노스페라투-영화사 첫 고전 흡혈귀 영화의 통속적인 재해석

      이 102년 뒤의 리메이크 영화는 그 ‘주류적 해석’을 그대로 영화로 재현해 내놨다. 연출이나 연기는 비교적 훌륭하다. 몇몇 장면의 연출은 나중에 하나하나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다. /유니버셜 픽처스 제목: 노스페라투(Nosferatu)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32분 장르: 공포 감독: 로버트 에거스 출연: 빌 스카스가드, 릴리 로즈 뎁, 니콜라스 홀트, 애런 존슨, 윌렘 대포 개봉: 2025년 1월 15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노스페라투>.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부터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감독으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가 1922년 만든 무성영화다. 한국에서는 시네필(영화광)의 시대였던 1990년대 다른 초기 고전 영화들과 함께 비디오로 출시됐다. 이제는 <노스페라투>가 세상에 나온 지 100년도 넘었으니 저작권이 풀려 다양한 버전의 영화 완전판을 유튜브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다(원래 필름은 독일에서는 저작권 소송에서 져 모두 사라졌고, 북미에 넘어간 판본과 남미에서 발견된 자투리 필름들을 모아 전체 영화가 복원됐다). 독일 표현주의를 말하자면 반드시 거론되는 게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독일의 사회상이다. 표현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추상과 상징이다. 돈이 없으니 많은 부분을 세트와 조명, 상징으로 때우는 와중에 완성된 연출기법이다. 영화 <노스페라투>의 대표적 장면으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계단을 올라 희생자에게 다가가는 올록 백작의 괴기스러운 그림자다(박스 기사 사진).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암시로, 그림자 연출만으로 효과를 극대화했다. 독일 표현주의 대표작의 103년 후 리메이크 1월 15일 개봉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노스페라투>는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를 100여년 만에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무르나우가 창시한 ‘그림자 기법’은 이번 리메이크 영화에서 최소 두 차례 변주된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 이어 절정부에서 도시 위를 나르는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 분)의 그림자가 나온다. 여자주인공 엘렌(릴리 로즈 뎁 분)의 방문 앞에 도달한 올록 백작의 손 그림자는 문의 손잡이 위에 머무는데 문은 요술처럼 활짝 열린다. 영화는 원작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가지고 와 해석한다. 엘렌의 침대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1922년 원작 무성영화에 삽화처럼 삽입된 ‘새 신부 엘렌이 고양이와 장난치는 장면’을 해석해 부연한 것이다. 원작 무성영화에는 꽃을 받은 엘렌이 무심한 듯 “불쌍한 꽃들을 왜 죽이느냐”고 받아치는 대사가 적힌 슬라이드가 삽입돼 있는데 많은 평론가는 이 대목을 근거로 ‘엘렌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흡혈귀 올록 백작은 실은 그의 우울증이 만들어낸 자아상’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103년 뒤의 리메이크 영화는 이 ‘주류적 해석’을 그대로 재현해 내놨다. 은유를 실재 사건으로 재해석하기 연출이나 연기는 비교적 훌륭하다. 몇몇 장면의 연출은 나중에 하나하나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다. 원작과 달리 이번 리메이크작에서는 심혈을 기울여 엘렌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은 배우 빌 스카스가드가 맡은 올록 백작이다. 통상 드라큘라라고 하면 완전히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빗은 벨라 루고시(1931년 작·토드 브라우닝 감독)나 크리스토퍼 리(1958년 작·테렌스 피셔 감독)가 떠오르는 것처럼 ‘짝퉁 드라큘라’인 올록 백작 하면 떠오르는 건 무르나우 영화의 창백한 얼굴에 깡마르고 어딘가 모르게 신경질적인 외모를 지닌 배우 막스 슈렉이다. 빌 스카스가드가 연기한 올록 백작은 히어로 영화의 빌런(악당)처럼 근육질에 썩어 문드러진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 게다가 원작은 무성영화이다 보니 모든 연기가 거의 사백안이 되도록 부릅뜬 눈과 과장된 표정으로 특유한 기괴함을 만들어내는데, 리메이크작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컴컴한 어둠 속에서 진행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노스페라투’는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 30분이나 지나서야 언급된다. 게다가 여기서 노스페라투는 그냥 역병이다. 단순한 은유다. 독일 표현주의에서 완성된 데포르메(회화 등에서 대상을 과장·왜곡·생략해 표현하는 기법)를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다시 실사로 되돌린 느낌이랄까. 노스페라투는 원작에서는 올록 백작을 만나러 가던 후터가 묵는 여관방에 뒹굴고 있던 싸구려 괴기 모음집에 실린 뱀파이어의 이름이었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베낀 노스페라투 /Wikipedia <노스페라투>는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무단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의 제작자인 알빈 그라우는 뻔뻔하게도 자신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세르비아의 한 농부에게서 들었던 ‘자기 아버지가 흡혈귀가 돼서 다시 돌아온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드라큘라의 원작자 브램 스토커의 저작권을 상속한 미망인 플로렌스 스토커가 영화화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브램 스토커는 1912년 사망했는데, 당시 독일은 저작권 관련 국제 협약인 베른협약에 가입한 상태였다. 사후 50년까지 저작권이 보장되므로 <드라큘라>의 저작권은 1962년까지 살아 있어 여지없이 소송을 당할 판이었다. 그라우는 저작권 문제 해결 없이 영화제작을 강행했고, 소송을 피하고자 영화 제목을 <노스페라투>로, 백작 이름을 올록으로 변경했다. 1922년 영화가 개봉한 뒤 아니나 다를까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 결국 그가 설립한 독일 무성영화사 프라나 필름은 이 영화 한 편을 끝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모든 사본을 거둬들여 파기하라는 법원의 판결이었고, 이는 철저히 이행됐다. 독일에선 <노스페라투>의 프린트가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1922년 작 <노스페라투>는 어떻게 된 것일까. 불행 중 다행으로 미국은 당시 베른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고, 소설 <드라큘라>의 저작권은 풀려 있었다. 그렇게 <노스페라투>의 프린트가 여기저기에서 살아남았다. 극적으로 이야기를 과장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직 한 프린트만 남았다고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이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가 재발견된 이후 군데군데 남아 있던 프린트 릴을 조합해 오늘날 1시간 28분 12초짜리 완전판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정용인 기자 2025.01.22 06:00

    • 영화관람료 내린다면서요?…기업 배만 불리는 ‘영비법’ 개정

      문화/과학

      영화관람료 내린다면서요?…기업 배만 불리는 ‘영비법’ 개정

      윤석열 정부 ‘관람권 부과금’ 폐지…기업들은 “관람료 인하 없다” 서울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있는 사람. ‘영화관람권 구매 시 징수되는 부과금 3%’가 폐지됐지만, 영화 관람권 가격은 인하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정부가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겠다며 새해에 ‘영화관람권 구매 시 징수되는 부과금 3%’를 폐지했지만, 관람료는 그대로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설명대로면 영화관람료는 지난 1월 1일부터 기존 가격에서 450원 정도 인하돼야 하지만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은 “인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는 “업계에 ‘촉구’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부과금 폐지로 ‘영화발전기금’의 주요 재원이 사라지는 문제는 세금 투입으로 해결할 방침이다. 결국은 영화상영관 및 배급사의 수익만 늘어난 셈이다. 허술한 정부, 이용하는 기업 지난해 12월 1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는 ‘2025년 예산안’ 부수 법안으로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영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주요 내용은 “2025년 1월 1일부터 영화 관람객에게 징수했던 부과금 3%를 폐지해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영화상영관 입장권의 요금 인하를 통해 영화 관람 수요 증가 및 영화산업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0일 ‘2025년 예산안’ 부수 법안으로 국회를 통과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제안 이유에 “영화 관람객의 부담을 완화하고”라고 적혀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 관람객이 영화표 구매 시 내는 ‘부과금 3%’는 흔히 ‘영화발전기금’으로 알려져 있다. 부과금이 영화진흥위원회가 관리 및 운용하는 영화발전기금의 주요 재원으로 활용되기에 관람권이나 영수증에 ‘발전기금’으로 표시됐다. 영화발전기금은 ‘한국영화의 창작·제작 진흥 관련 지원’, ‘한국영화의 수출 및 국제교류 지원’, ‘소형영화·단편영화의 제작 지원’ 등에 쓰였다. 영비법 개정안은 국회가 발의하고 통과시켰지만 ‘정부 법안’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모든 부과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고, 3월에는 “국민이 부담하는 준조세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며 영화관람권 구매 시 징수되는 부과금 3% 폐지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이종욱 의원은 해당 내용 등을 담은 법률안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부가 해당 법안 시행 이후 문제점을 미리 점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정부의 기대는 빗나갔다. 핵심인 ‘관람객의 경제적 부담 완화’ 효과는 전혀 없었다. 영비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31일, 주간경향은 대표적인 영화 상영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측에 “부과금이 폐지된 만큼 새해부터 영화관람료를 인하하느냐”고 물었다. 3사 관계자들 모두 “인하는 없다”고 밝혔다. 한 상영관업계 관계자는 “관람객 부과금 3%가 폐지됐지만 이를 상영관과 배급사가 나눠 가져야 하는 만큼 영화표 한 장당 1.5% 정도 수익이 늘어난 것”이라며 “이는 상영관 수익이 영화발전기금으로 빠져나갔다가 정상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영화관람권 가격을 내리기보다 침체한 영화산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존 영비법을 보면 영화발전기금을 내는 주체는 상영관이나 배급사가 아닌 ‘관람객’이다. 상영관은 영비법 개정으로 수익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추가로’ 얻는다고 봐야 한다. 법 개정하고, 결과는 나 몰라라 영비법 개정안이 시행된 뒤 관람료가 인하됐는지 여부는 정부도 국회도 관심이 없다. 문체부 관계자는 “저희도 간접적으로 파악하기로는 (상영관 측이) 인하계획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에서 티켓 가격을 얼마나 내리라고 하기는 어렵고, 상영관들이 자율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얼마를 내리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협조’할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이 개정 취지에 따라 시행될 수 있을지 미리 검토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처음에 정부가 부과금 폐지를 검토하며 상영관 측과 면담을 하긴 했다. 그때도 (관람료 인하와 관련한) 명확한 답변은 못 받았다”며 “부과금 3% 폐지 효과를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영관들이 티켓 가격을 인하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결국 영비법 개정이 상영관이나 배급사 측 수익만 증대시킨 상황 아니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국민과 기업의 준조세 부담을 경감하겠다”며 ‘영화관람권 구매 시 징수되는 부과금 3%’를 폐지할 뜻을 밝혔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부와 여당은 영화 관람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겠다며 영비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영비법 개정으로 이득을 얻은 것은 관련 기업뿐이다. 문체부는 상영관 측이 부과금이 폐지될 시, 관람료를 인하할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해당 정책을 추진했다. 영화 관람객이 지급했던 부과금 3%는 지난해까지 영화발전기금 재원으로 쓰였다. 올해부터 부과금이 사라지면서 영화발전기금 유지에 어려움이 생기자 정부는 이를 세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영화발전기금 수입원을 국고(세금)로 대체했고, 그 결과 2025년 영화발전기금 사업비는 전해보다 20% 가까이 늘었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한 업계 사람들이 관람객들에게 꼬박꼬박 3%씩 받아내던 부과금을 폐지한다는데 왜 가만히 있겠느냐”며 “정부가 세금으로 기존 수준 이상으로 보전해 준다니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진위 측은 “국회의 의결사항을 존중하고자 한다”면서도 “현재 야당에서 부과금 존속을 포함한 영비법 일부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으로 향후 야당 입장이 반영된 영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입장권 부과금은 다시 징수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호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항공권에 부가되는 ‘출국납부금 부담금’이 지난해 7월부터 3000원 인하(1만원→7000원)되면서 그만큼 항공권 가격이 낮아졌다”며 “정부가 국민 부담 경감을 약속한 만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게 영화 관람료 인하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 역시 실질적 영화 관람권 인상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결국 영화 관람객이 내던 부과금이 국민 전체가 내는 세금으로 항목만 바뀌고, 대기업 극장들의 수익만 증대됐다”며 “국회에서 영비법 개정안이 처리됐으면 문체부가 실질적 집행을 해야 하는데 직무유기를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찬호 기자 2025.0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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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꼬다리

      [꼬다리]영화 기사에 달린 정치 댓글

      지난 11월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법원 앞 지지자들이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정치 영역에는 여지가 필요한데,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하다. 너무 전방위적으로 모든 곳에 법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2년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 문제를 사법적 판단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지난 11월 15일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TV 방송 토론과 국정감사에서 ‘대장동·백현동 의혹’에 거짓말을 한 혐의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돼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일각에선 ‘유력 대선주자를 말 한마디로 처벌해 대권을 막는 것이 옳으냐’며 야단이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인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2022년 대선 당시 나는 사회부에서 검찰을 취재하고 있었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은 검찰청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온갖 사건으로 상대 후보를 고발했다. 자신들이 고발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항의하며 검찰총장이나 서울중앙지검장과의 면담을 막무가내로 요구하기도 했다.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하겠다는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하겠다는 민주당까지 검찰 수사를 부추기는 모습에 기자들도, 검사들도 어이없어했다. 정치의 사법화만큼 ‘사법의 정치화’도 심각해 보인다. 사법의 정치화란 정치가 여론을 등에 업고 사법적 판단에 개입하는 것이다. 정치적 생명이 판결로 결정되니 이제 여야는 노골적으로 법원을 회유하고 압박한다. 이재명 대표 1심 선고 닷새 전 민주당은 국회 예산심사에서 대법원 예산을 정부 원안보다 246억원이나 늘려줬다. 유죄가 선고되자 다음 날 민주당은 서울 광화문에서 수만명 규모의 집회를 열어 “미친 정권에 미친 판결”, “검찰 독재 정권에 부역한 정치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여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가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자 국민의힘은 “정치적 판결”, “억울한 측면”, “법원 좌경화”라는 논평을 냈다. 그러자 민주당은 “사법체계와 국민의 법 상식을 조롱하지 말라”고 맞받았다. 법원이 우리 편에게 유죄를 선고하면 “정치 판사를 탄핵하라”며 비난하고, 무죄를 선고하면 “사법부를 겁박하지 말아라”며 옹호하는 추태가 요즘 국회의 문화다. 법원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판사·검사·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오히려 공세에 앞장선다. 지금 나는 문화부에서 영화 담당 기자로 일하는데, 영화 기사에 뜬금없이 ‘??’(윤석열 대통령 멸칭)과 ‘쥴리’(김건희 여사 멸칭)를 수사하라고, ‘찢죄명’(이재명 대표 멸칭)을 구속하라고 정치 댓글이 자주 달린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낄 틈도 없이 일상이 정치만으로 가득 찬 사람을 생각하면 슬프고 안쓰럽다. 모니터 앞에서 전쟁하듯이 댓글을 다는 시민들도, 법원과 검찰청 앞에서 칼바람을 맞아가며 시위하는 시민들도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을 믿지 않는다. 자신들이 재판과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심지어 영향을 줘야 한다고 믿는다. 국회가 그런 간절한 믿음을 만들고 이용하며 시민의 일상을 정치화·사법화하고 있다.

      허진무 기자 2024.11.22 15:30

    • [시네프리뷰] 에이리언: 로물루스-원전의 감성으로 되살아난 SF 공포영화 전설

      연예 시네프리뷰

      [시네프리뷰] 에이리언: 로물루스-원전의 감성으로 되살아난 SF 공포영화 전설

      <에이리언: 로물루스> 제작 발표에 팬들이 기대를 모은 이유는 연출을 맡은 페데 알바레즈에 대한 신뢰에 있다. 그는 자신의 우상과도 같던 <에이리언>을 직접 연출하면서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의 모범이 됐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목: 에이리언: 로물루스(Alien: Romulus)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19분 장르: SF, 공포 감독: 페데 알바레즈 출연: 케일리 스패니, 데이비드 존슨, 아치 르노, 이사벨라 머세드, 스파이크 펀, 에일린 우 개봉: 2024년 8월 1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전까지 나온 <에이리언> 장편영화는 총 8편이다. 일단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원전 <에이리언>의 뒤를 잇는 (여주인공 ‘리플리의 연대기’로 볼 수 있는) 속편이 4개다. 1편 자체도 평가가 좋았지만, 특별히 1986년 제임스 캐머런이 연출한 <에이리언 2>의 엄청난 흥행은 이 지저분하고 기괴하게 생긴 외계생물의 영화적 생명을 연장하는 결정적 추진력이 됐다. 이후 데이빗 핀처 감독의 <에이리언 3>(1992)와 장-피에르 주네 감독의 <에이리언 4>(1997)로 이어졌는데, 당대 상업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감독들에게 메가폰을 맡김으로써 완성도의 평가와는 별개의 흥행과 화제를 이어갔다. 그러나 무리하게 이어진 이야기와 배우 시고니 위버의 육체적 노화는 결국 이 시리즈의 정체를 초래했다. 과거 20세기 폭스 영화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외계 악당으로, ‘에이리언’의 맞수처럼 취급돼 오던 ‘프레데터’와의 조우가 실현된 일종의 외전은 2개가 있다. <에이리언 vs. 프레데터>(Alien vs. Predator·2004)와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 레퀴엠>(Aliens vs. Predator: Requiem·2007). 공개 당시의 화제와 달리 현재는 그냥 이벤트 자체로서의 의의만 대접하는 일종의 흑역사로 취급하는 시선도 있다. 원작으로의 회귀 또는 새로운 시작 2010년대 들어서며 원조 창작자인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말년의 예술혼을 불태우며 에이리언의 기원을 다루는 프리퀄 제작을 야심 차게 발표했다. 그렇게 <프로메테우스>(2012),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를 공개했지만, 인류의 기원까지 들먹이는 심오하고 거창한 장황설에 모처럼 ‘오리지널의 귀환’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사실상 외면당하고 만다. 여파로 원래 서너 개로 기획했던 속편의 제작이 무산되며 노장 감독의 원대한 포부는 사실상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2025년 2월 공개 예정으로 <에이리언: 어스>란 제목의 8부작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1편의 30년 전이자 <프로메테우스>의 이전 사건을 다룬다고 전해진다. 전작들과 별개의 이야기로 기획된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시대적으로는 1편(2122)과 2편(2179) 사이인 2142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무대는 초거대기업 ‘웨이랜드 유타니’가 관리하는 새로운 개척지 행성 ‘잭슨 스타’. 이곳에서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나 신분이 종속된 채 사는 일군의 젊은이들은 이상향으로의 도피를 꿈꾼다. 이를 위해 버려진 우주기지 ‘로물루스’로 향하지만, 그곳은 예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존재들의 둥지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우상을 재창조한 공포영화 전문 감독 <에이리언: 로물루스> 제작 발표에 팬들이 기대를 모은 이유는 연출을 맡은 페데 알바레즈에 대한 신뢰에 있다. 1978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했는데, 12세 때 처음 접한 <에이리언>의 (본편도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2001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자신이 만든 단편들을 공개하며 꾸준히 영화를 만들다가, 드디어 2013년 저예산 공포영화의 신화로 통하는 <이블 데드>의 리메이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단숨에 스타 감독으로 등극했다. 이후 <맨 인 더 다크>(Don’t Breathe·2016)로 존재감을 견고히 한 그는 드디어 자신의 우상과도 같던 <에이리언>을 직접 연출하면서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의 모범이 됐다. 여담으로 알바레즈 감독의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한국영화를 꽤 좋아하는데 특히 <올드보이>(2003)를 보며 받은 충격이 이후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살인의 추억>(2003), <부산행>(2016), <기생충>(2019) 등을 즐겁게 본 작품으로 꼽는다. 또 두 번째 연출작이었던 <맨 인 더 다크>(2016)가 한국에서 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2번째로 흥행하는 성공을 거둔 것도, 그가 한국을 더욱 특별하게 기억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에이리언의 진정한 아버지 ‘H. R. 기거’ www.swissinfo.ch <에이리언> 시리즈가 현대 SF 공포 영화의 전설이 된 데는 이전 작품들과 차별되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으뜸은 등장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외계 괴물의 기괴한 형체일 것이다. 이는 스위스 태생의 화가 H. R. 기거(H. R. Giger)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기거는 1940년 스위스 그라우뷘덴주의 쿠어에서 태어났다. 약사인 아버지는 예술을 ‘배고픈 직업’이라며 아들에게 약학을 전공하기를 강권했지만, 그는 결국 응용 예술 학교에서 건축과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다. 대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직업 덕분에 접할 수 있었던 사람의 두개골이나 뼈에 관한 관심을 자신의 창의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된다. 기거는 1974년 <엘 토포>, <성스러운 피> 등으로 유명한 칠레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연출을 맡아 진행하던 <듄>(Dune)의 콘셉트 디자인을 맡으며 처음으로 영화작업에 뛰어든다. 그러나 결국 영화가 무산되면서 그의 독창적 결과물들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안타까운 과정은 훗날 공개된 다큐멘터리 <조도로프스키의 듄>(2013)을 통해 재조명된다. 하지만 <듄>에 함께 참여했던 댄 오배넌의 소개로 연을 맺게 된 영화 <에이리언>에서 기거는 아카데미 시각 효과상 수상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기거 자신에겐 현대 미술가로서의 세계적 명성을 확장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후 그의 창작물들은 순수 예술의 영역을 넘어 영화, 음반 표지, 비디오 게임은 물론 가구 디자인까지 아우르며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14년 5월 12일, 기거는 집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으로 이송됐고, 취리히 병원에서 74세로 사망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2024.08.21 06:00

    • 낯섦과 익숙함 사이…‘대치동’ 드라마·영화가 늘어난다

      문화/과학

      낯섦과 익숙함 사이…‘대치동’ 드라마·영화가 늘어난다

      ‘일타 강사’ 이어 최근 드라마 ‘졸업’· 영화 ‘대치동 스캔들’ 잇달아 드라마 <졸업>에서 극 중 대치동 학원 국어과 강사인 서혜진(정려원 분)이 강의하고 있는 장면 / tvN 제공 “대한민국 다 무너져도 저 욕망이 남아 있는 이 동넨 절대 안 무너질 거거든.” 지난 6월 30일 종영한 tvN 드라마 <졸업> 1화, 남자 주인공 이준호(위하준 분)와 ‘대치동 친구들’의 술자리. 결혼을 앞둔 한 친구가 강남 밖에 신혼집을 알아본다는 말에 준호의 가까운 친구 최승규(신주협 분)는 ‘안면몰수’하고 부모의 집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대치동에 남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서울대 과점퍼를 입은 이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졸업>의 공간적 배경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다. 여자 주인공 서혜진(정려원 분)은 대치동 학원의 국어과 강사로 ‘등급 올리는 귀신’이라 불릴 만큼 잘나가는 강사다. 준호는 고등학교 1학년 첫 모의고사에서 8등급을 받았지만, 혜진의 수업을 받으며 1등급까지 오른 ‘기적’적인 인물.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다가 혜진이 있는 학원에 강사로 들어오면서 드라마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주요 이야기로 풀어낸다. “<봄밤>(2019)과 같은 로맨스 드라마인 줄만 알았는데 마지막 회를 보니까 <하얀거탑>(2007)에 가깝더라고요.” 드라마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졸업>을 연출한 안판석 PD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대치동 학원가에서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 더 높은 탑을 쌓고 싶은 강사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경쟁과 배신, 한편으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인간적 고민 등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랬다. 실제 두 사람의 로맨스 서사 이외에 드라마 배경, 등장인물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은 6.6%(최종회). 시청률 측면에서 성적이 눈에 띄진 않았지만, 정려원은 지난 6월 3주 연속 화제성 배우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올랐고, 극 중 학교 교사 출신 국어 강사 표상섭(김송일 분)의 무료 강의 장면은 ‘현실 고증’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제 일타 강사들이 언급할 정도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였다. 이 장면은 유튜브에서 tvN 드라마 공식 계정 기준 2주 만에 조회 수 10만여회를 기록했다. ■욕망과 갈등이 자라는 곳···‘대치동’ 드라마·영화들 줄이어 <하얀거탑>이 대형병원의 속살을 드러냈다면 <졸업>은 주인공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대치동이 어떤 곳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최근 ‘대치동’을 콕 집어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와 영화가 늘고 있다.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한 장면 / tvN 제공 앞서 지난해엔 전도연·정경호 주연의 드라마 <일타 스캔들>(tvN)이 최종회 시청률 17%를 기록하며 인기를 모았다. 고소득을 올리면서 팬덤을 형성한 일타 강사(일등 스타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과 조카를 키우며 ‘대치동 학부모’의 세계에 뛰어든 남행선(전도연 분)의 로맨스를 주요 서사로 한다. <일타 스캔들>은 대치동이란 이름을 ‘강남구의 모 학원가, 녹은로’로 대치했지만, 화면엔 대치동 학원가 모습이 그대로 펼쳐졌다. 지난 6월 19일 개봉한 영화 <대치동 스캔들>의 주인공 안소희 역시 대치동 학원의 국어과 일타 강사로 분한다. 대치동 일타 강사를 주인공으로 한 <대치동 1들의 전쟁>(가제)이란 드라마도 기획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대치동을 왜 작품 배경으로 삼을까. 윤석진 교수는 “대치동은 열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특성이 있다”며 “그곳을 내밀하게 엿볼 수 있다는 부분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고 했다. 윤 교수는 “학교라는 공간에선 교사가 그래도 여전히 어느 정도는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지만, 사교육 현장은 정글 같은 곳이다 보니 그 안에서 극적인 갈등 구조들, 첨예할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 형성될 것이기에 드라마화하기에 적합한 요소들이 있다”고 했다. ‘접근하기 어려움’이라는 측면에선 역설적이지만, 대치동이 한국사회에서 익숙한 공간이 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치동을 누구나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강(인터넷 강의)도 있고 현우진·이지영 등 일타 강사가 인플루언서로서 자리 잡으면서 대치동도 일상적인 공간이 됐다”며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최전선이기도 하고, 그런 공간에서 갈등이나 에너지들이 있고, 또 강사라는 인물이 등장하니까 동경하는 캐릭터도 넣을 수 있다 보니 작품화하기 좋은 배경인 것 같다”고 했다. ■대치동, 일타 강사···선망과 비판 사이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일타 강사가 출연하고 이들이 자체 제작한 영상 콘텐츠들이 유튜브 등에서 화제를 모으는 건 꽤 흔한 일이 됐다. 성적 올리기, 문제 풀이, 학습법 공유 등을 소재로 한 동영상 콘텐츠들에 울고 웃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위시한 입시판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신간 <수능 해킹>에선 이런 흐름을 “공부의 문화화”라고 했다. K팝 향유자들의 아이돌과 같이, 일타 강사가 수험생의 우상이 됐음을 의미한다. <수능 해킹>의 공저자인 문호진 교육평론가는 ‘대치동 일타 강사’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관심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했다. “예전에는 일타 강사라고 해도 꼭 대치동에서 활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대치동 일변도가 됐고, 그것을 (대중문화에서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치동 강사이면서 인강 강사들은 수험생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입시 대비 측면에서는 지방이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지방에서도 여유가 있는 가정의 학생들은 주말이면 대치동으로 몰려갑니다. 학원 강의와 숙소를 묶은 패키지 상품을 팔죠. 대치동이 오프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화됐다는 측면이 (대중화가 되는 영향이) 있을 것 같고요.” 일타 강사에 대한 선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문호진 평론가는 “K팝이 빈틈없이 굴러가는 세계처럼 보이듯이, 사교육 자체가 고도화하면서 그 안의 일원이 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선망이 자란다”고 했다. 김교석 평론가는 “일타 강사들이 선한 영향을 미친다고도 하는데, 그것이 <졸업>에서도 일면 보여준 것 같다”고 했다. <졸업>의 서혜진은 드라마 초반엔 강의 중 문제풀이를 하면서 “공감하려고 하지 마, 외워”라며 사교육이 성적 올리기에 매몰돼 있고, 문제 풀이 기법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다 드라마 후반 서혜진은 어떤 계기로 강의 스타일을 바꾸면서 학부모들 앞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작품을 읽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강사들의 치열한 논쟁은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체한다는 주장 앞에서 공교육을 더 쪼그라들게 만든다. 다만 “작품에서 현실보다 사교육을 미화했을 때 (사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이) 가려질 우려”(김교석 평론가)는 공존한다. 사교육이 참전해 “초등학교 5학년에게 기본교육과정보다 6년을 앞당겨 고등학교 수학(상)까지 가르치는 학원의 진도 속도”(사교육걱정없는세상·‘초등의대반’ 실태조사 결과·7월 1일 발표)를 우리 사회가 따라가자고 할 순 없는 일이다. <수능 해킹>은 사교육에 대한 악마화·신화화를 벗어나 실질을 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공교육이 위기를 맞은 것은 교사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교육 당국의 정책 설계에서 파생된 구조적 문제임을 짚는다. 이 책은 사교육 업계가 의도와 상관없이 젊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가해자임을 지적한다. “수능이 고도화하고 N수가 일반화하면서 반수생을 비롯한 N수생들이 조교 및 출제·검토 업무를 병행해 사교육비를 벌면서 산업의 하부를 지탱하는 구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학습과 노동의 경계가 흐릿한 곳에서 ‘열정페이’를 받는 젊은 노동자들이 지금 대치동 사교육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는 한 축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문 평론가는 “일타 강사들의 실제 역할이나 캐릭터가 평면적이지 않다.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표면상에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더라도 결국에 그것이 나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향미 기자 2024.07.0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