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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도적 지원조정실 손귀엽 국장에게 듣는 국제기구 진출기청소년들은 물론 대학생과 직장인들까지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유엔 인도적 지원조정실 손귀엽 총괄기획국장의 이야기는 많은 국제기구 진출 희망자들에게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가장 낮은 직급에서 시작해 18년 동안 소말리아와 라오스, 미국, 동티모르 등에서 근무하고 2011년 유엔 OCHA로 옮겨 관료직 중 가장 높은 직책인 총괄기획국장에 오르기까지, 그녀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어린 시절 품었던 아프리카를 향한 꿈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허스키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하는 손귀엽(45) 국장의 직업은 국제공무원이다. 유엔 사무국 중 하나인 OCHA의 최고 책임자로,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나 무력분쟁 등 긴급 상황에 대비해 여러 인도주의 업무 수행 주체들을 조정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 등의 긴급구호 현장과 분쟁 지역을 누비며 활약하고 있는 손귀엽 국장의 오늘은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 대한 꿈으로부터 시작됐다. “어렸을 적 저의 꿈은 세상 곳곳을 최대한 많이 돌아다녀보는 것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왠지 모르게 아프리카만큼은 꼭 가보고 싶었죠. 무엇 때문에 이러한 꿈을 갖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꿈은 항상 마음속에 숨쉬고 있었어요.” 아프리카를 향한 꿈은 곧 더 큰 세상을 향한 동경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동경은 고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제가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된 건 피아노와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피아노에 재능이 없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죠. 현실적으로 나에게 재능이 없고 피아니스트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걸 직시한 거예요. 결국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와 세계 정치를 배우기 위해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정치학을 선택했어요.” 그녀는 영국 우스터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며 오랜 시간 가슴속에서만 품고 있던 열망을 불태웠다. 재학 중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등 당시 정치적 이슈와 연관된 많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매 여름방학마다 아이티와 케냐 등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한번은 아이티에 있는 ‘Death and Dying Institutes’라는 시설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중 두 곳인 인도의 캘커타 빈민촌과 아이티의 포트아우프린스 빈민촌에 있는 이곳은 테레사 수녀가 에이즈 환자들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건립한 시설이에요. 그곳에서의 경험이 저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며 인생을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의미가 됐어요. 가난한 사람에게 죽음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기본적인 인권으로서의 생존권과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고요.” 콜럼비아 대학원 진학 후에는 3개월간 나이지리아에서 가난한 여성들에게 사업의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한 대출제도를 설계하는 지역 NGO에서 일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저와 같은 경험을 가진 아시아 여성들이 많지 않았어요. 다양한 나라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 얻은 경험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안의 열정이 유엔에 입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어요.” 리더십과 매니지먼트, 휴머니티에 기반한 전문성 중요 1994년, UNDP에서 가장 낮은 직급으로 처음 일을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러왔는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모든 열정을 다 바쳐 일했다. 그녀의 인생을 영화로 찍으면 장르는 아마 스펙터클 스릴러 액션일 것이다. “소말리아에서 일할 때는 직무 중 사망한 지역 유엔 경비원의 가족이 보상금 액수에 항의하며 저를 납치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어요. 쓰나미가 덮친 직후 인도네시아의 아체를 방문했을 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홀로코스트 영화를 보는 듯 시체가 산을 이룬 엄청난 참사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죠. 그곳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한 할머니를 만난 것이 기억나요. 자식과 손자들을 잃고 혼자 남겨진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때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항상 희망은 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우리가 이토록 풍요롭고 안전한 환경에서 사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에요. 모든 사람이 이렇게 안전한 환경에서 살고 있지는 않아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유엔 내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이 분야에서 요구되는 핵심적인 능력으로 리더십과 매니지먼트, 그리고 프로페셔널리즘을 꼽았다. 다양한 실무 경험 역시 중요하다. 무엇보다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 역시 그간 많은 실수들을 했고 그러한 실수들을 통해 저의 처신과 능력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법을 배웠어요.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런 실수들을 통해 더욱더 많은 것을 보다 빠르게 배우게 될 거예요. 지금 저의 위치가 되면 사람들은 제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습니다. 젊어서 일을 시작할 때는 배워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무엇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인지를 자각하는 것 또한 그녀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실수할 수 있는 여유와 창의력, 혹은 혁신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멘토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국제기구 진출을 희망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꿈을 가진 이들에게 해주고픈 조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세계화와 기술의 발달로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적응하고, 지식과 정보를 더욱더 빠르게 받아들이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단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마세요.” 손귀엽 국장에게 듣는 국제기구에 대한 궁금증 일문일답 Q 여성으로서 국제기구 진출과 근무 환경은 어떤가요? A 국제기구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비율을 고려한 채용 절차를 밟습니다. 여성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선발 과정에서 동점자가 생기면 여성 지원자를 우선적으로 뽑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성 근무자로서 근무 환경에 대해 보자면 출산휴가를 예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보통 출산휴가가 4개월 주어지는 것으로 보아 다른 여타 직업보다 여성에게 적합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Q 유엔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언어가 유리할까요? A 절대적으로 영어가 중요하며 또 다른 언어도 하나 정도 할 수 있는 게 좋겠죠. 아프리카 쪽을 생각하면 프랑스어가 중요할 것이고, 스페인계 사람들의 국제기구 진출이 많으므로 스페인어도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랍어는 수요에 비해서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역시 많이 필요할 듯합니다. Q 봉사활동은 어디에서 하는 것이 좋을까요? A 개발도상국과 같이 많은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봉사활동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는 나라보다는 모르는 나라에 가서 경험한다면 물론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도움이 될 것입니다. Q 선호되는 직업이나 경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유엔에서는 선호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서류상의 경력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유엔 직원으로서의 자질과 전문지식입니다. 이것은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관련 분야가 유리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국제기구 진출 방법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 정부가 국제기구에 수습 직원을 일정 기간 파견하는 제도로 사회 초년생이 국제기구에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로 통한다. 매년 1회 외교통상부가 주관하는 JPO 시험에 합격해 최대 2년간 실무 경험을 쌓고, 성과가 우수하면 정규 직원으로 채용될 수 있다. ● YPP(Young Professional Programme) 일부 국제기구에서 미진출 혹은 과소진출 상태에 있는 회원국 국민을 위해 운영하는 특별 프로그램이다. 일정 기간 유능한 젊은이들을 수습 직원으로 근무하게 한 뒤 성과가 우수하면 정규 직원으로 채용한다. ● Internship 정기적 인턴 선발 외에도 필요에 따라 수시로 모집한다. 유엔 사이트(www.un.org/youth)에서 여러 기구의 인턴십 기회를 확인할 수 있다. ● UNV(UN Volunteers) 여러 유엔 기구들의 개발, 인도적 지원, 평화 유지 업무와 연계해 활동하고 있으며 짧으면 3개월에서 길면 2년 정도 봉사하게 된다. 향후 유엔 정규직에 지원하는 데 필요한 업무 경험을 쌓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사이트(www.unv.org)를 방문해 희망자 명부에 자신의 이력과 관심 분야를 등록하면 된다. ● 공석공고 빈자리가 날 때마다 지원자가 직접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므로 전문 분야에서 5~10년 정도의 경력을 쌓고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박동민>
2012.08.20 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