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기타 치며 아리랑 ‘한국계 여성 랍비’···“내 정체성은 창의성·공감력 지닌 이방인”... 것이기 때문에 ‘너는 반만 유대인’이란 이야길 들었죠. 완전한 한국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 저의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방인은 외부인의 눈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과...
이영경 기자 2024.06.18 18:06
문화
기타 치며 아리랑 ‘한국계 여성 랍비’···“내 정체성은 창의성·공감력 지닌 이방인”... 것이기 때문에 ‘너는 반만 유대인’이란 이야길 들었죠. 완전한 한국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 저의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방인은 외부인의 눈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과...
이영경 기자 2024.06.18 18:06
문화 책과 삶
[책과 삶] 아슬아슬하게 이방인·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골드러시’.... 동성애가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에서 그들은 ‘한 나라의 구성원이 되는 자격’을 박탈당한 이방인이자 경계인이다. 동성커플인 희율과 은영은 2017년 12월 7일 호주의 동성결혼 법안이 가결된 날,...
박송이 기자 2024.03.08 08:00
오피니언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합정역, 보름달, 이방인.... 드디어 휘황한 도시에 착지했다. 차가운 불빛과 스쳐 가는 눈빛을 몸에 두른 채 이제부터 난처한 이방인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더욱 낯선 기분을 만지작거린다. 달은 그냥 못 본 체하면 안 되는 동네다. 이...
#이갑수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2024.02.29 20:09
문화 책과 삶
[책과 삶]“이방인 아닌 이웃” 고단한 삶의 기록...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거친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이들은 ‘이웃’이기보다 ‘이방인’이다.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는 이방인이 아닌 이웃이 되길 원하는 이주민들의...
최민지 기자 2023.10.13 20:12
연예
‘슈퍼리치 이방인’ 유희라, 미스틱스토리 전속계약미스틱스토리 유희라가 미스틱스토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8일 소속사 미스틱스토리는 “다채로운매력을 가진 유희라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라고 밝히며 “앞으로의 다양한 활동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유희라는 “미스틱스토리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유희라는 상위 1% 슈퍼리치들의 럭셔리한 한국 라이프를 들여다보는 리얼리티 쇼 Netflix ‘슈퍼리치 이방인’에 출연하여 패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미스틱스토리 미스틱스토리
손봉석 기자 2024.05.09 03:01
연예
[종합] “슈퍼카가 껌값” 글로벌 리치들은 왜 韓에서 살까 (슈퍼리치 이방인)“시간 아끼기 위해 전세기를 타요” “드레스룸이 방보다 넓어요” 글로벌 슈퍼리치들은 왜 한국을 택했을까 넷플릭스 ‘슈퍼리치 이방인’ ‘슈퍼카가 껌값’인 상위 1% 슈퍼리치들의 럭셔리한 한국 생활을 들여다보는 리얼리티 쇼가 찾아온다. 7일 넷플릭스 신규 예능 ‘슈퍼리치 이방인’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선 조세호, 뱀뱀, 미미, 여운혁 PD, 박혜성 PD가 참석한 가운데 프로그램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슈퍼리치 이방인’은 슈퍼리치들의 화려한 한국 라이프를 들여다보는, ‘찐’부자들의 부내나는 리얼리티 쇼다. 세계 어디나 집이 될 수 있지만 K-컬처를 사랑해 한국을 선택한 글로벌 ‘찐’부자들의 서울살이가 밝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여운혁 PD ‘아는 형님’등을 탄생시킨 여운혁 PD는 제작발표회를 통해 “한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세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힙하고 트렌디한 나라가 되는 건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다. 각 나라의 부자들의 삶도 관심이 많지 않나. 글로벌 부자들의 삶과 그들이 왜 자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한국에 왔을지 주목했다. K-컬처에 매력을 느낀 슈퍼리치들이 삶의 터전을 바꿔 서울에 온 이유가 의미 있는 포인트”라고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 대해 밝혔다. 박혜성 PD 박혜성 PD는 “관찰예능이지만 슈퍼리치의 일상에만 포커싱하지 않았다. ‘그들이 왜 한국에 왔을까’ 하는 목적을 같이 녹여낸 프로다. 이분들이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는지가 신선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슈퍼리치 이방인’은 30분씩 6개 에피소드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에 박PD는 “각양각색의 캐릭터가 있는 슈퍼리치들의 한국에서의 일상을 유쾌하고 경쾌하게 담았다”고 덧붙였다. 뱀뱀, 미미, 조세호 ‘슈퍼리치 이방인’은 ‘패션 애호가’ 조세호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갓세븐 뱀뱀, ‘예능 대세’ 오마이걸 미미가 MC로 활약한다. 제작진이 ‘원픽’으로 꼽은 MC 조세호는 출연 소감에 대해 “함께 하는 건 항상 즐거운 일,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는 건 설레는 일이다. 평소 진심으로 관심 갖고 있던 멤버들이라 호흡이 궁금했다. 그래서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합류했다”고 전하며 “무엇보다 글로벌한 넷플릭스에 함께 할 수 있다니 부모님께서도 굉장히 기뻐하셨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조세호 그는 “제목을 듣자마자 처음부터 재밌겠다고 생각했다”라면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슈퍼리치들의 삶이 궁금했는데, 보면 볼수록 그 자리까지 오는데 진심을 다했다는 게 느껴져서 놀랐다”라고 진행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을 밝히기도 했다. ‘외국인 출연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뱀뱀은 “출연자 남자 두 분이 밥 먹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 장면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며 “아무리 슈퍼리치여도 사람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사는 건 다 똑같다. 금전적으로 있으면 좋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배웠다”고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전했다. 뱀뱀 그러면서 “출연자 분들이 저처럼 한국의 정에 깊이 빠져 있는 분들”이라며 “한국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 출연자 분들을 보며 한국 사람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각을 대변할 예능 대세’ 미미는 “정말 리얼한 리액션을 했다. (슈퍼리치 이방인)을 보면 동공 확장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보는 것 자체로도 신기했는데 상상치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 대한 사랑도 느껴지고, 인간다움도 느껴져서 표정을 신경쓸 새도 없이 정신없이 봤던 것 같다”고 말해 기대감을 일으켰다. 미미 한편, 파키스탄 귀족 가문 김안나, 중동 오천만 팔로워 누르 나임, K-POP에 진심인 싱가포르 억만장자 데이비드 용, 이탈리아 다이아 수저 테오도로, ‘원앤온리’ 한국을 대표하는 하이엔드 브랜드 클라이언트 앰배서더 유희라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상위 1% 슈퍼리치들이 출연하는 ‘슈퍼리치 이방인’은 7일 오후 4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윤소윤 온라인기자 2024.05.07 15:49
연예
‘상위 1%’ 부자들의 삶을 엿보다, 그들이 한국에 온 이유는? (슈퍼리치 이방인)넷플릭스 ‘슈퍼리치 이방인’ 상위 1% 슈퍼리치들의 럭셔리한 한국 라이프를 들여다보는 리얼리티 쇼 ‘슈퍼리치 이방인’ 제작발표회가 7일 MC 조세호, 뱀뱀, 미미와 여운혁·박혜성 PD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먼저 ‘슈퍼리치 이방인’을 기획한 의도에 대해 여운혁 PD는 “글로벌 부자들의 삶과 그들이 왜 자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한국에 왔을지 주목했다”라면서 “K-컬처에 매력을 느낀 슈퍼리치들이 삶의 터전을 바꿔 서울에 온 이유가 의미 있는 포인트”라고 밝혔다. 박혜성 PD는 “슈퍼리치들의 꿈을 발현하기 위한 열정,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정신을 지켜봐주시면 좋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어 박 PD는 “각양각색의 캐릭터가 있는 슈퍼리치들의 한국에서의 일상을 유쾌하고 경쾌하게 담았다”라고 덧붙이며 30분씩 6개 에피소드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넷플릭스 ‘슈퍼리치 이방인’ ‘슈퍼리치 이방인’에서는 패션 애호가이자 슈퍼리치들의 삶을 유쾌하게 풀어낼 적임자로 제작진이 ‘원픽 MC’로 꼽은 조세호,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슈퍼스타로 외국인 출연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뱀뱀, 젊은 시각을 대변할 예능 대세 미미가 MC로 맹활약을 펼친다. 조세호는 “제목을 듣자마자 처음부터 재밌겠다고 생각했다”라면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슈퍼리치들의 삶이 궁금했는데, 보면 볼수록 그 자리까지 오는데 진심을 다했다는 게 느껴져서 놀랐다”라고 진행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을 밝혔다. 슈퍼리치들의 가치관과 열정적인 일상을 통해 배운 점도 많았다는 뱀뱀. 그는 “출연자 분들이 저처럼 한국의 정에 깊이 빠져 있는 분들”이라면서 “한국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 출연자 분들을 보며 한국 사람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넷플릭스 ‘슈퍼리치 이방인’ 앞서 공개된 메인 예고편에서 슈퍼리치들의 삶에 놀라 동공확장 리액션을 보여줬던 미미도 “슈퍼리치들의 삶이 신기해서 그런 리액션을 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그런데 그 안에서 한국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고 인간적인 면모도 느껴져 표정을 신경 쓸 새도 없었다. 또 K-컬처가 많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했다”라고 덧붙였다. ‘슈퍼리치 이방인’은 재력만큼이나 개성도 만렙인 슈퍼리치 이방인들 존재 자체가 차별점이다. 조세호는 “데이비드 용씨는 본인 활용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라면서 “비즈니스를 하거나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야 할 때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이 되어야 이뤄지는지를 아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또 그는 ‘원앤온리’ 국내 유일의 하이엔드 브랜드 클라이언트 앰배서더이자 한국의 패리스 힐튼 유희라에 대해 “패션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한국을 알리려는 마음이 진심”이라고 높이 평가해 궁금증을 유발했다. 넷플릭스 ‘슈퍼리치 이방인’ 파키스탄 대저택에서 살면서 한국과 다름 없이 한식들로 가득한 주방을 만든 김안나. 조세호는 “김안나씨의 화려한 집에 K-문화가 담겨 있다. K-키친 느낌이 들 정도로 한국 문화가 많이 스며들어있다”라고 파키스탄 귀족 가문 김안나의 남다른 한국 사랑을 예고했다. 미미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가문 후계자 테오도로에 대해 “자신의 사업을 이뤄내기 위한 열정이 멋있다고 느꼈다”라면서 “테오도로씨와 데이비드 용씨의 티키타카도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슈퍼리치들의 케미스트리도 귀띔했다. 5천만 팔로워를 가진 ‘슈퍼 인플루언서’ 누르 나임도 함께 한다. 박혜성 PD는 “아랍 여성 최초로 아랍어 유튜버를 시작한 사람”이라면서 “새로운 시간은 나에게 주는 투자라고 말하는 당찬 매력을 가진 출연자”라고 전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넷플릭스 ‘슈퍼리치 이방인’ 조세호는 “집에서 밥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보기에 편안한 프로그램”이라면서 “녹화를 하면서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어?’라고 할 정도로 재밌게 봤다”라고 슈퍼리치들의 유쾌하고 열정 넘치는 서울살이를 예고하는 관전포인트를 전했다. 뱀뱀 역시 ‘밥친구’를 예고하며 “유쾌하게 보다 보면 출연자들의 이야기에 많은 메시지도 담겨 있어 깊이 있고 재미 있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미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서 몰랐던 한국의 아름다움이나 좋은 문화들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위 1% 슈퍼리치들의 스펙터클 서울 라이프를 담은 ‘슈퍼리치 이방인’은 7일 오후 4시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
윤소윤 온라인기자 2024.05.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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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상상치도 못한 일…‘동공 확장’ 할 수밖에 없어”(슈퍼리치 이방인)‘슈퍼리치 이방인’ 미미 그룹 오마이걸 미미가 ‘슈퍼리치 이방인’ 프로그램을 보며 ‘동공 확장’ 리액션을 할 수밖에 없다고 어필했다. 7일 넷플릭스 시리즈 ‘슈퍼리치 이방인’ 온라인 제작발표회가 진행된 가운데 조세호, 뱀뱀, 미미, 여운혁 PD, 박혜성 PD 등이 참석해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제작발표회 MC를 맡은 유재필은 “예고편 속 미미의 동공 확장 리액션이 화제가 됐다. 제작진은 ‘젊은 세대의 시선에서 출연자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적임자’로 미미를 꼽아서 섭외했다는데 이에 동의하냐“고 질문했다. 이에 미미는 “일단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하다. 적임자로 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리얼한 리액션을 했던 건 맞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슈퍼리치 이방인)을 보면 동공 확장할 수밖에 없다.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보는 거라서 그거 자체로도 신기했는데 상상치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 “그 안에서 또 한국에 대한 사랑도 느껴지고, 인간다움도 느껴져서 표정을 신경쓸 새도 없이 정신없이 봤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슈퍼리치 이방인’은 상위 1% 슈퍼리치들의 한국 라이프를 들여다보는 리얼리티 쇼로 파키스탄 귀족 가문 김안나, 중동 오천만 팔로워 누르 나임, K-POP에 진심인 싱가포르 억만장자 데이비드 용, 이탈리아 다이아 수저 테오도로, ‘원앤온리’ 한국을 대표하는 하이엔드 브랜드 클라이언트 앰배서더 유희라가 출연한다.
윤소윤 온라인기자 2024.05.07 12:09
사회 골목 내시경
[골목 내시경]이태원-이방인의 마을, 관광은 주춤 삶은 계속서울에서 외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을 꼽자면 용산구 이태원을 들 수 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부터 녹사평역까지 이태원로를 중심으로 각종 상권과 이태원 특유의 문화가 펼쳐진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방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나, 가게에서 파는 이국의 식자재에서 이태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어 또는 아랍어 간판과 화려한 색깔의 스프레이 낙서도 서울의 다른 골목과는 차이가 있다. 이태원은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태원에 이방인이 정착한 것은 꽤 뿌리가 깊다. 고려말 거란족과 여진족이 정착했던 곳이라는 설도 있고,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이 정착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남산 기슭에 배나무가 많아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가깝게는 일본군과 미군의 군사기지가 있었고, 그들이 드나들던 흔적도 엿볼 수 있으니 이역의 자취가 이태원 곳곳에 배어든 것은 오래된 일이다. 이태원은 해밀턴호텔을 기점으로 동서남북의 골목길이 서로 다른 모습이다. 해밀턴호텔 뒤편 상가를 조금 벗어나 남산 쪽으로 향하면 고급 주택가와 저택들이 한강을 내려 보며 자리 잡고 있다. 재벌가와 유명인의 저택이 줄지어 있다. 그 주택가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곳은 전형적인 서민들의 주택가로 또 다른 분위기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 서로 다른 경제 사정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곳이 이방인의 마을이라는 점은 부동산 주인의 유창한 영어 솜씨에서도 드러난다. 외국 회사 주재원인 듯 말쑥하게 차려입은 손님과 함께 부동산 업자는 열심히 이태원의 장점과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대충 들리는 이야기는 1000만원에 육박하는 월셋집을 제시하는 것 같은데, 이웃 부동산 창문에는 보증금 2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알리는 전단도 붙어 있다. 이곳은 극과 극이 함께하는 골목이다. 오래된 가게들도 이태원 골목의 주인이다. 유흥·쇼핑으로 흥한 과거 이태원은 서울에서 가장 활발한 상권으로 이름났다. 대표적인 유흥가로 화려한 시절을 보낸 적도 있다. 지금도 골목마다 명소가 있고, 특색 있는 옷과 물건을 파는 가게도 남아 있다. 이태원 상권이 활발해진 것은 대략 1970년대 미군부대 병사들의 소비가 동력이 됐다고 한다. 그들을 상대로 양복을 짓고 기념품을 팔던 가게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1980년대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이태원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그때부터 자리 잡고 있는 큰 옷 전문점과 2박3일이면 가봉까지 끝내주는 양복점은 아직도 영업 중이다. 귀국 병사를 위해 기념품을 팔던 가게는 골동품과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곳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예전과 달리 이태원을 드나드는 이방인도 주체가 바뀌었다. 무엇보다 용산 미군기지 대부분이 평택으로 옮아간 여파가 컸다. 대신 보광동 모스크를 드나드는 무슬림과 중앙아시아인, 러시아인과 아프리카 출신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그 자리를 채웠다. 놀러온 사람도 있고 일자리를 찾아온 이들도 있다. 이곳에선 식당도 이슬람 율법대로 마련한 할랄 푸드를 팔고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하는 외국인도 흔히 볼 수 있다. 이태원 골목의 낙서도 외국어로 된 것이 많다. 이태원 파출소 뒤편 골목에 있던 이태원시장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중형마트가 시장 골목 전체가 할 일을 대신 맡았고, 식료품 가게며 쌀집이 있던 점포 대부분은 트랜스젠더 술집으로 바뀌었다. 밤이면 붉은 등이 켜지고 트랜스젠더와 게이가 열린 문 사이로 호객을 한다. 문 닫힌 낮 동안은 순댓국집을 찾아 헤매도 되지만 해가 지면 야릇한 분위기가 골목을 지배하는 곳이다. 1970년대 이 일대 골목은 유명했던 세븐클럽 등 미군 상대의 클럽이 성시를 이루었고, 시장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양주며 양담배 등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 유흥과 암시장의 번영이 이태원 전성기의 일부였으나, 그런 흥청망청한 모습은 사라졌다. 하나의 세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질병보다 무서운 집세 이태원로 남쪽 국제시장과 지하상가 일대는 옷 좀 입는다는 이들의 단골 쇼핑가가 있다. 소위 보세 옷들이 쏟아졌던 1980년대부터 이곳 의류시장이 번창했다. 아직까지 큰 옷과 특이한 의상과 액세서리는 이태원 골목의 주된 상품이다. 상가 앞에서 행인을 지켜보던 가게 주인은 “예전엔 손님 물어오는 호객꾼만 5명을 두고 있었는데, 지금에야 집세 낼 걱정이 더 크다”라고 걱정했다. 명품을 주로 팔던 지하상가 한 곳은 가장 목 좋은 가게가 철수했고, 곳곳에 ‘임대’ 표지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경기를 묻자 “우선 외국인들이 못 오지 않느냐. 여기 의류 상가 손님 반은 외국인이었는데, 이런 시국에 손님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되묻는 상인의 이야기는 수긍이 갔다. 이태원은 고급 주택가와 서민 주택가가 공존한다. 전반적인 침체 속에도 타로점이며 궁합을 보는 점집을 드나드는 젊은이를 더러 볼 수 있었다. 수정구슬을 만지던 타로 점집 주인은 “불안할 때는 뭐라도 찾고 묻는 게 심사라 꾸준히 손님은 온다. 무엇보다 여기는 상담료가 싸다”라고 설명한다. 오늘과 내일의 두려움을 점으로 맞출 수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운명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태원 골목을 즐기는 행락객은 많이 늘었지만, 집기를 뺀 빈 가게도 여럿이고 한참 철거 중인 가게도 있다. 삼겹살과 곱창을 함께 굽는 특색 있는 메뉴로 장사했다는 가게 주인은 “처음엔 수제 맥주를 팔았는데, 안 돼서 메뉴를 바꿨다. 그것도 한 1년 찬바람을 맞으니 이젠 모두 접는 중이다”라고 한탄한다. 다시 회복의 실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리단길에서 시작해 이태원 전 지역에 불어닥친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가 퍼진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골목을 단장하고 벽화를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도 질병은 넘길 수 있으나 오르는 집세는 버틸 수 없다고 했다. 이방인의 거리답게 이태원에는 나이지리아 거리도 있고 베트남 퀴논 길도 있다. 이태원 의류상가 뒤편 골목이 베트남 퀴논 길인데 베트남을 상징하는 것이라곤 한두 곳 있는 베트남 커피집과 골목에 그려진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성뿐이다. 골목 위로 등도 달아두고 곳곳에 퀴논 길이라는 명판도 붙어 있지만 오가며 베트남을 연상할 수 있는 모습은 찾지 못했다. 단지 아주 오래된 골동품 가게와 명품 수선집이 그 골목의 터줏대감이라 했다. 아무 데나 상관없는 이름을 붙인다 해서 명소가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골목 곳곳에서 플리마켓을 만날 수 있다. 이태원의 골목에서 종종 만나는 업종이 있는데, 열쇠가게다. 어쩌면 골목마다 열쇠가게 하나씩은 꼭 있다. 가게 주인에게 묻자 “여긴 몇달 살다 옮기는 이들이 많아 그때마다 열쇠 바꾸는 일이 잦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 보니 치안에 대한 걱정도 있는 편이고…”라고 답한다. 골목의 사정이 번창하는 업종을 만든 것이다. 방을 함께 쓰는 룸 셰어나 한두달 초단기 임대도 이태원에서는 흔한 일이다. 비자와 취업 문제 등으로 장기 체류가 어려운 외국인은 이런 형태의 주택 임대가 편하고, 외국인 커뮤니티에서는 이태원의 주택정보와 아르바이트 상황이 상세히 올라오고 있었다. 현재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대략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니 적잖은 비중이다. 관광지 이전에 사는 곳 자주 드나드는 외국인과 달리 이곳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붙박이로 살고 있는 이들이 많다. 다른 지역처럼 재개발로 주민의 대이동이 일어난 적도 없어 세입자들도 시내 가깝고 살기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고 한다. 골목 안 가게 주인은 “보통 30년 이상 사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전한다. 이태원 시장은 외국인 상대 가게와 주점 골목으로 바뀌었다. 이태원 의류상가 건너편 뒷골목은 주점으로 가득하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의류상가 쪽보다는 행인과 손님들이 훨씬 많았다. 이곳 역시 어떤 가게는 흥하고 어떤 가게는 문을 닫았다. 요행보다는 실력이 더 큰 힘이 되는 세상사의 이치는 이곳이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두려움이 살짝 비껴간 듯 대부분의 가게는 손님을 가득 받고 있다. 행인에게 이 골목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이국적인 분위기와 다양한 메뉴”라고 답한다. 골목 안 라면집부터 김치찌개 식당과 서양요리 전문점이 함께 공존하는 것도 독특했다. 행인들은 느린 걸음으로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어느 가게를 들를지 고르고 있다. 이태원은 오래전부터 외국에도 잘 알려졌지만, 한류 열풍이 불면서 더 큰 유명세를 얻었다. 특히 <이태원 클라쓰> 등 드라마의 성공은 이태원을 흔한 관광지에서 문화가 있는 곳으로 각인시켰다. 어떤 점에서 이태원은 한류의 시발지이자 가장 큰 혜택을 본 곳이다. 그야말로 가장 세계적이면서 한국적인 모습이 이 지역 곳곳에 배어 있다. 이태원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관광특구 지정을 받은 곳이다. 관광산업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골목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관광객보다는 이곳에 정착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와의 교류는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다. 일자리를 찾아서 혹은 유랑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 이곳까지 와서 둥지를 튼 이들은 이미 이웃이 됐다. 강남, 홍대와 더불어 이태원은 서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클럽과 유흥 지대다. 쇼핑과 더불어 이태원을 대표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분간 전성기 모습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아프고 난 후 더 건강하길 바라듯이 이 시련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태원이 더 번성하길 바란다. 이방인도 이웃이 되고 인종과 언어에 상관없이 골목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곳이 이태원이다. 세상과 만나 더 큰 문화를 만들어내는 그런 지역으로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다.
김천 자유기고가 2021.10.29 14:27
오피니언 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우리 안의 이방인‘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아마도 1960~70년대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대부분 기억하고 있는 구호일 겁니다. 그때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반공’이라는 말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반공 웅변대회’ ‘반공 포스터 그리기’는 연례행사였고, ‘반공 표어’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숙제도 심심치 않게 있었죠. 나중엔 반공을 넘어 아예 ‘공산당을 없애자’는 ‘멸공’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안방극장에서는 <113 수사본부> <전우>와 같은 반공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간첩은 독침과 특수장비를 가지고 파괴와 살인을 일삼는 범죄자였고, 인민군은 무조건 쓰러뜨려야 하는 적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담뱃값을 묻는다거나 군부대의 위치를 물어보는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파출소나 군부대에 신고하라는 교육도 받았습니다. 그때는 ‘북한’이 아니라 ‘북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뇌’를 당하다보니 북쪽에 사는 사람들을 ‘뿔 달린 괴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귀순용사’의 기자회견도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였습니다. 거기에는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규탄하고 체제 우위를 선전하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었습니다. 내부 단합을 꾀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던 셈이죠. 1983년 미그기를 몰고 남쪽으로 넘어온 북한군 이웅평 대위에게는 거액의 포상금과 함께 대대적인 환영행사까지 열어줬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냉전체제 해체 이후 북한을 이탈하는 주민의 숫자가 늘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이 이뤄지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차츰 변했습니다. 북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말을 쓰는 동포이고, 언젠가는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이들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통일부 자료를 보면 분단 이후 1998년까지 947명이던 탈북주민의 숫자는 2000년대 들어 해마다 1000명 이상씩 늘어 지금은 3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지만 아주 적은 숫자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체류 등록된 미국인(2만4602명, 2018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보다 많습니다. 편집실에서는 이번 호에서 탈북민 문제를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탈북한 모자가 자신들이 살던 서울 봉천동 임대아파트에서 아사한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며 목숨을 건 탈출을 했지만 한국 사회는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곤란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다수가 공동체에 녹아들지 못한 채 좌절을 겪고 있습니다. 차별과 멸시를 이유로 한국을 떠나 미국이나 유럽으로 난민신청을 통해 떠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나 사연은 다양하고 생각 또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 팍팍하고 주변을 돌볼 여유를 찾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탈북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이방인’으로 겉돌지 않고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2019.08.23 16:05
문화/과학 문화프리뷰
[문화프리뷰]이방인에게 감았던 눈을 뜨는 법이주노동자들은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 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건축 현장이나 식당은 물론 요양병원 간병인의 90%를 중국동포가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삶이 실제 존재하는 장소에 대해서 우리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서울 대림동이나 경기 안산 원곡동의 차이나타운에 대한 우리의 인상은 강력범죄와 불법체류자 문제에 관한 주요 언론의 사건 보도나 상업영화의 광고영상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서 만든, 하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는 미완성의 모자이크 작품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필자 제공 서울 마포구에 있는 대안공간 루프가 일본의 타쿠지 코고의 국제 협업 아트플랫폼 ‘캔디 팩토리 프로젝트’를 초청해 6월 9일까지 열고 있는 전시 <캔디 팩토리 프로젝트 인 서울>은 앞에서 말한 구멍 난 모자이크를 다 채워 넣을 때 우리 일상의 풍경이 얼마나 낯설어 보일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는 싱가포르에서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는 싱가포르의 이주노동자 법을 사운드 및 텍스트 애니메이션으로 읊어 주거나, 그들의 일자리를 중개하는 인력사무소가 밀집해 있는 싱가포르 ‘부키티 티마 쇼핑센터’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풍자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싱가포르 이주노동자들은 체재기간 중 싱가포르 시민과 결혼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임신도 할 수 없다. 심지어 이러한 모든 규정은 근로 허가가 종료된 이후에도 준수되어야 한다. 도시국가이며 강대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사회 시스템을 통해 국력을 키워야 하는 역사적·지정학적 특수성이 이러한 이민 규정에 영향을 준 것이리라. 다만 영어로 “그녀는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임신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텍스트가 묘한 흥얼거림에 가까운 디지털 음성과 함께 차례차례 흘러가는 것을 보자면, 그러한 이민 규정이 갖는 무게감이 이상하리만큼 실감이 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로 남아있기 위해 타인을 규정하고 경계선을 그어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일상 너머의 타인의 사정은 법조문보다는 노랫말이나 액션영화를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최장 10여년 가까이 일하면서도 정작 가족과 계속 헤어져 지내야만 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 논의나 난민인정을 둘러싼 찬반 양론 또한 정작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주한미군 병사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나 이탈리아 등에 주둔 중인 미군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들을 읊어 주는 이번 대안공간 루프 전시 작품들처럼 이방인의 눈과 입으로 한국 사회를 보고 듣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도 싱가포르와 유사한 법률 준수를 요구받고 있다. 이를 ‘캔디 팩토리 프로젝트’ 식으로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이 된다. “그들은 가족과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회사를 네 번 이상 옮기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곡조로 읽어볼지는 독자 여러분께 맡기겠다.
정필주 독립기획자 2019.05.24 16:48
사회
“한국의 이방인 혐오 일본 혐한과 닮은꼴”ㆍ재일동포들 “일본에서 당하는 일을 한국 사회가 하는 건 부끄럽다” 호소 #1 이상희씨(가명)는 재일동포 4세다. 그는 나이를 묻는 질문에 “20대 초반”이라고만 답했다. 자신의 국적은 일본, 부모의 국적은 한국이다. 조선학교를 다닌 부모와 달리 그는 어려서부터 일본 정규 교육과정을 밟았다. 그는 “그래서 한국 말은 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상희’라는 이름도 집 밖에서는 불릴 일이 없다. 도쿄 신주쿠구에서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 소속 회원들이 욱일기 등을 들고 혐한시위를 벌이자 ‘인종 차별주의 반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시민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국적을 택하게 된 건 일상적인 차별 때문이다. “조선인이 강도질을 한다”, “지진 때문이 아니라 조선인이 문화재를 파괴했다”, “조선인들이 무너진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친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의 소문이 아니다. 2015년 도쿄 지진, 2015년 구마모토현 지진 때도 9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졌다. 이씨는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자신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그는 어린 시절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이씨는 “가는 길에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던 표정이 기억난다. 무시라고 해야 하나? 피한다고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후 치마저고리는 입지 않았다. 이씨는 종종 제주도를 찾는다. 증조할아버지 고향이 제주도다. 지난해 초 그는 제주도 여행을 검색하던 중 예멘인들이 내전을 피해 대거 제주도로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했다. 한국 여론을 본 이씨는 깜짝 놀랐다. 그는 “한국사람들이 난민에게 하는 말이 일본 우익들이 재일한국인에게 하는 말과 너무나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2 다큐멘터리 <하늘색 심포니> 박영이 감독(43)은 재일동포 3세다. 국적은 한국이다. 아버지 국적은 한국이고 어머니는 ‘조선적’을 유지하다 10년 전쯤 한국 국적을 택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건너간 조선사람들은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 국적을 받았다. 해방과 분단 이후 이들은 무국적자가 됐다. 박 감독은 이를 ‘난민’이라고 표현했다. 박 감독은 조선학교를 다녔다. 조선학교는 교복에서부터 차이가 드러난다. 학창시절 내내 온몸으로 차별을 겪었다.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는 일상이었고 돌을 맞는 일도 잦았다. 그는 “아주 어릴 때는 그냥 도망쳤고 청소년기에는 다른 학교 아이들과 많이 싸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말투는 시종 덤덤했다. 일본의 ‘혐한’은 현재진행형이다. 박 감독은 수없이 혐한시위를 목격했고 직접 촬영해 영화에 담았다. 그는 혐한시위에 대해 “정말 기분이 나쁘고 상처를 받는다”면서 “나는 민족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한창 정체성 문제로 고민할 시기의 어린아이들은 혐한발언이나 시위를 보는 게 정말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달 한국을 찾는다. 직업 특성상 한국영화도 많이 본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조선족에 대한 차별이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가 일본에서 당하고 있는 일을 한국 사회가 하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렇게 하면 일본에서 우리 동포를 차별하는 사람들과 같은 수준이 된다. 그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멘인에 대한 혐오 발언에 깜짝 놀라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에 대한 혐오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멘 난민 관련 기사에는 ‘한국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무슬림의 선교전략이다’ ‘정부가 예멘 난민 한 명당 138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난민 신청자들에게 집을 제공한다’ 등의 댓글이 많다. 모두 가짜뉴스다. 외국인 노동자나 중국동포(조선족) 관련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파키스탄인의 강간 비율은 한국인의 5.5배다’, ‘힘들다고? 그럼 니들 나라로 가라고. 배가 불렀네’, ‘외노자들 때문에 한국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는 조선족이다’ 등도 역시 혐오에 기반하고 있으며 사실이 아니다. 이런 이방인 혐오와 배제는 한국 사회가 분노하는 일본 사회의 혐한과 닮았다. “조선인들은 수도요금, NHK 수신료, 자동차세를 면제받고 통근 정기권을 할인받는다”, “공직과 언론사에 우선 채용된다” 등의 소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재일한국인은 선거권이 없고 국가공무원이 될 수 없다. 조선학교는 미용학교 등과 함께 ‘각종학교’로 분류돼 있다. 지난해 말 일본 오사카의 한 택시회사가 소속 택시 60여대에 ‘헤이트 스피치, 용인하지 않는다’는 스티커를 붙이고 운행한다는 사실이 한국에 알려지자 기사에는 응원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이 나타난다. 민족과 국민을 동일시한다”며 “그 결과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받았던 수모를 한국이 이방인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 일본을 욕하면서 정작 우리 얼굴은 못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차별을 겪은 이들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혐오발언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편견이 혐오가 되고 차별이 되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단계적인 과정이 아니라, 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가 저들을 반대한다가 되고 저들을 반대한다가 저들을 박멸하자가 되는 건 순간”이기 때문이다.(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에서는 혐오표현을 ‘표현’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금지한다. 일본도 오사카에서 2015년 시민들의 힘으로 ‘헤이트 스피치 대처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졌고, 2016년 5월에는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책 추진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처벌규정은 없지만 혐오표현 대처를 국가적 과제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3자도 혐오표현이 발붙일 곳 없도록 연대해야 한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은 현실의 권력관계를 인정하고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혐오가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의 ‘카운터스’처럼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카운터스는 혐한시위 등을 반대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차별이 없었어도 일본으로 귀화했을지 이씨에게 물었다. 이씨는 곧바로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귀화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무척 슬퍼했다”며 “강제는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강제귀화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방인 혐오가 한 개인에게는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면서 4대에 걸쳐 받았던 차별을 한국 사회는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하늬 기자 2019.01.28 14:47
화제
씨름에 푹 빠진 이방인, 커티스 존슨의 천하장사 도전기한국 전통 기예, 씨름은 힘과 기술의 조화로 승부를 결정짓는 운동이다. 무조건 힘의 논리로 승자를 정하는 스모보다 스포츠 정신이나 과학적 요소가 더 깃들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국내 인기, 세계적인 인지도 모든 면에서 스모보다 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씨름의 매력에 푹 빠져 한국을 찾은 미국인 커티스 존슨의 존재는 큰 힘이 된다. 씨름의 세계화, 그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11월 초, 국내 대회 참가를 앞두고 인천 인하대학교에서 맹훈련 중인 그를 만났다. 233cm! 충남 서산에서 열리는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에서 온 커티스 존슨의 신장이다. 기자의 생애에서 가장 큰 사람을 만났다. 그를 만나 인터뷰하는 것도 미션이었지만 개인적인 또 다른 미션은 나란히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었다. 큰 것에 대한 잠재적 동경일까? 마치 최홍만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심리와 같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최홍만보다 더 크다! 괜히 군침을 삼키며 커티스 존슨과 일대일 인터뷰를 시작했다. 키가 얼마나 되나요? 발 사이즈는요? 키는 233cm, 발 사이즈는 400mm입니다. 혹시 최홍만 선수라고 아세요? 아! 격투기 선수지요? 인터넷을 통해 경기하는 걸 봤습니다. 엄청나게 크고 빨간색 머리가 인상적이었죠. 본인이 16cm나 더 큰 거 아세요? 정말이요? 몰랐어요. 제가 정말 크긴 크군요(웃음). 몇 번째 한국 방문인가요? 2011년과 2012년 뉴욕 천하장사 대회 우승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천하장사 씨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왔어요. 그동안 한국에서 이룬 성적은 어느 정도인가요? 예선 통과도 못했습니다. ‘천하장사 씨름대회’에 참가했다는 의의만을 갖고 돌아갔죠.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미국에서 틈틈이 연습도 했고 올해는 상위권 진입이 목표입니다. 미국에서는 어떻게 연습을 해왔나요? 모래판이 없을 텐데. 미국 코치가 있어요. 1주일에 2, 3일씩 미국에 계신 코치에게 훈련을 받았죠. 주말이나 일을 마치는 저녁 때 시간을 내서 했지요. 모래판은 없지만 매트가 깔린 도장이나 공원 잔디밭에서도 연습했습니다. 또 한국에서 열린 씨름대회 동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됐어요. 본업은 무엇인가요?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에 있는 영국계 은행 바클레이스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어요. 대회 일정이 꽤 긴 걸로 아는데 휴가를 낼 수 있었나요? 1년 치 휴가를 전부 모으면 3주간의 휴가를 가질 수 있어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했답니다(웃음). 한국 첫 방문 때에 비하면 그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사실은 주변 씨름 관계자들도 인정한다. 신체적으로도 유리할 뿐만 아니라 기본기도 많이 늘었다는 평가다. 그는 이번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에서 세계 특별장사 씨름대회, 세계 씨름 친선 교류전 그리고 천하장사 결정전에 출전한다. 외국인 선수로는 미국인인 그뿐만 아니라 스페인, 몽골, 러시아 등 씨름과 유사한 전통 기예가 있는 나라의 프로 선수 50여 명이 참가한다. 씨름이라고는 전무한 나라에 살고 있고, 게다가 아마추어인 그가 겨루기에는 외국 프로 선수들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대회를 앞두고 준비하고 있는 나만의 필살기가 있을까요? 말할 수 없어요. 비밀입니다(웃음). 농담이고요. 제 장점인 큰 체구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밀어 넘어뜨리는 전법을 주로 연습했습니다. 현재 컨디션도 매우 좋은 편이에요. 샅바를 매는 건 꽤 어려운 일인데요. 혼자 맬 수 있나요? 아직은 불가능해요. 미국에는 샅바가 없어요. 한국에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다 짧아서 제게 맞는 게 없었어요. 급하게 특별 제작한 것을 가져와서 연습하고 있어요. 원래 운동선수 출신이지요? 2003년도 대학농구 우승 팀인 세인트존스대학교 소속으로 농구를 했어요. 포지션은 당연히 센터였죠. NBA의 하부 리그인 ABA에 진출했다가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운동을 그만두고 수술하고 재활치료를 했어요. 그리고 중국 리그로 스카우트됐다가 다시 발목에 문제가 생겨 쉬고 있던 중에 씨름을 접하게 된 거예요. 유독 씨름에 빠지게 된 이유가 뭘까요? 운동은 늘 부상 위험이 뒤따르게 마련지만 모래 위에서 하는 씨름은 소프트하잖아요. 위험도가 적어서 일단 마음에 들었고요. 제 큰 체구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운동이라 더욱 좋아하게 됐어요. 가족에게 한국에 가겠다고 하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저희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버지니아 주 노퍽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었어요. 현재는 큰 규모로 돼지 농장도 하고 있죠. 시골 소년인 제가 뉴욕에 처음 온 건 대학교에 입학하면서였죠. 그 정도로 시골이니 부모님들은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세요. 어머니는 처음에 “왜 굳이 지구 반대편 나라까지 가려 하니?”라며 놀라셨어요. 아버지는 “남자라면 하고 싶은 일은 해야지! 그래! 가서 상금 타와라”라고 말씀하셨죠. 아마 미국에서 응원하고 계실 거예요. 씨름을 좋아해서일까? 덩치 큰 이방인인 커티스 존슨에게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기자보다 두 살이 어리니, 귀여운 남동생처럼 느껴진다. 본인에게는 모든 것이 낯선 환경이지만 말 한마디마다 사람들을 웃기려는 개그 본능은 숨길 수 없었다. 사실 미국식 유머라 잘 와 닿진 않았지만 그의 해맑은 표정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났다. 한국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어 인터뷰 전날 저녁에는 삼겹살을 먹으며 파무침을 세 번이나 추가해 먹었다는 후문이다. 159cm 신장의 본지 기자와 함께. 한국의 느낌은 어떤가요? 전 한국이 좋아요. 제일 좋은 것은 씨름이고요. 한국 사람들은 친절해요. 또 음식도 정말 맛있어요. 3년째 오다 보니 순대, 매운탕을 비롯해 거의 모든 한국 음식을 먹어봤어요. 단, 개고기는 빼고 말이죠. 순대는 맛있었나요? 매운탕은 맵지 않았어요? 전 생고추도 잘 먹어요. 쏘가리 매운탕은 최고였어요! 순대에 함께 나오는 간도 맛있었어요. 하지만 동물의 발이나 내장은 잘 못 먹겠어요. 미혼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 여성은 어떤가요? (박장대소를 한 다음) 잘 모르겠어요. 한국 여성들은 저를 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존슨씨가 잘생겨서 그럴 겁니다. (또 박장대소한다) 그렇겠죠? 미국에서도 종종 듣는 얘기입니다. 사실은 한국 모 기업에서 CF를 찍자는 연락을 받은 상태예요. 지금 관계자와 협의 중입니다. 커티스 존슨은 촬영 당일, 인하대학교 씨름부 학생과의 연습 경기에서 1승 2패로 석패했다. ‘씨름은 기술’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살아볼 생각도 해봤나요? 지금 당장은 계획이 없고요. 미국에서 직장 잘리면 한국에 오겠습니다!(웃음) 씨름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미국에서 주짓수(브라질 유술)를 가르치는 도장에서 씨름 훈련을 하곤 했는데요. 제가 씨름 연습하는 걸 보고 주짓수를 배우던 사람들이 “나도 배울 수 있냐?”라고 많이 물어왔어요. 그런 걸 봤을 때 씨름은 미국에서도 가능성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씨름의 인기는 일본의 스모보다 낮은 게 사실이지요? 저는 영원한 씨름맨입니다. 씨름은 스모보다 훨씬 재밌는 운동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미국인들에게 씨름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어요. 그의 입에서 나온 ‘씨름맨’이라는 단어에서 새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가 그간 무관심했던 씨름에 무한 애정을 쏟는 낯선 이의 눈빛을 보며 조금은 머쓱해진다. 그의 무모하지만 의미 있는 세 번의 도전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참 많다. 인터뷰 후 씨름 대회에 참가한 커티스 존슨은 세계 특별장사 씨름대회 부문 3위를 차지했고 외국인 선수의 가능성을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받아 ‘기술왕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영길, 김천기>
2013.12.02 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