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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는 얼마나 싸워야 얻을까”

      ㆍ 쓴 김수련 간호사 인터뷰 신촌세브란스 암병원 중환자실에서 7년간 일하며 겪은 것들을 엮은 의 저자 김수련 간호사 / 강윤중 기자 간호인력에 관한 사항을 의료법에서 떼 내 독자적으로 규정한 ‘간호법’이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보건의료계의 극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의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응급구조사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촉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5월 3일 ‘반차’를 쓰는 방식의 1차 부분파업을 벌인 데 이어 5월 11일에는 2차 부분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17일 총파업’도 거론 중이다. 간호법의 내용이 어떻기에 ‘간호사 대 나머지 직역’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걸까. 간호법은 간호사의 법적 활동영역에 ‘지역사회’를 추가하고 간호인력의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국가·지방자치단체 책무 등을 규정하는 내용이 담긴 법이다. 지역사회라는 단어가 추가됐지만, 방문간호 등 ‘병원 밖 간호’을 활성화하기엔 내용이 추상적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감대가 형성된 ‘간호사 처우 개선’ 관련 조항은 2019년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과 유사한 데다 구체적 방안 없이 선언적 내용이라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한 마디로 간호법은 내용보다는 간호인력의 독립된 법이 존재한다는 ‘형식’이 더 중요한 법이다. 보건의료계는 알맹이 없는 형식을 두고 극한 대치 중인 셈이다. 간호법을 둘러싼 입장은 찬반으로 나뉜다. ‘간호협회(찬) vs 의사협회·간호조무사협회(반)’, ‘더불어민주당(찬) vs 국민의힘(반)’이라는 구도 속에서 누구나 ‘어느 편이냐’를 강요받고 있다. 주간경향은 간호법 찬반을 넘어 간호법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소개한다. 간호사들의 혹독한 노동 현실을 핍진하게 담은 책 <밑바닥에서>(올해 2월 글항아리 출간)를 쓴 김수련 간호사는 간호법 논란을 바라보며 “알맹이 없는 법을 가지고도 대통령 거부권 얘기가 나오고 총파업 얘기까지 나오는데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하는 법을 만들려면 얼마나 지옥같이 구르고 싸워야 할까 생각했다”고 한다. 김 간호사는 간호법 논란 속에 묻혀버린 간호인력인권법안(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안)을 얘기했다. 간호인력인권법안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국회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10만명 동의’를 달성한 법안이다. 간호법과 함께 국회 보건복지위에 상정됐지만, 보건복지위가 “입법 취지가 간호법 제정안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현재 청원심사소위에 계류된 상태다. 김 간호사는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법으로 대체할 수 없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법안”이라면서 “간호사가 너무 부족해 내 손에서 환자가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려 하는 간호사들의 진짜 싸움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글항아리 지난 5월 2일 미국 뉴욕에 있는 김 간호사와 줌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원 중환자실에서 7년간 일했던 김 간호사는 2021년 병원을 그만뒀다. 지금은 미국 적십자 재난의료팀 멤버로 뉴욕 시립병원 외과계 외상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다. 재난 현장의 파견 인력이 되기 위한 자격을 추가로 취득 후 국경없는의사회를 통해 제3세계에서 간호활동을 펼치는 것이 목표다. "껍데기 같은 법에 본질 실종, 갈등만 남아 이런 이야기 하면 "누구 편이냐" 묻는 현실 간호인력인권법, 진짜 싸움 아직 남아 있다" -인력 부족 속에서 짓이겨지는 듯한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간호사들의 현실에 대해 썼습니다. 간호법은 간호사를 위한 최초의 단독 법률이고 처우 개선 관련한 조항도 담겼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간호법 통과 이후 의사, 간호조무사 등의 반발은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어떻게 보세요. “사실 의아합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껍데기 같은 법에 각 협회가 왜 이렇게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어리둥절해요. 간호노동을 연구하는 모임에서 한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본질은 사라지고 갈등만 남았다’고요. 그 말씀이 딱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언론에선 이렇게 되묻는다고 하더군요. ‘너 의사 편이지?’, ‘어느 편이세요’라고 묻는 이 상황에선 그냥 얘기를 안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소속된 ‘행동하는 간호사회’도 같은 이유로 간호법에 대한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하는 간호인력인권법안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법에 입법 취지가 반영돼 있다는 이유로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습니다.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간호법은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하는 간호인력인권법을 대체할 수 없어요. 둘은 다른 법입니다.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병동 특성, 병원 특성에 따라 상세하게 분류했고, 병동별로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간호사 최저 인원, 이런 기준을 어겼을 경우의 벌칙 조항(○년 이하의 징역, ○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담았어요. 이제까지 간호사 인력 기준을 어겼을 경우 벌칙이 들어간 법은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간호사의 수련환경과 관련한 국가·병원의 책무,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한 지방 중소병원 간호사들을 위한 지원책도 담았습니다. 간호법 논란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껴요. 알맹이 없는 법을 가지고도 대통령 거부권 얘기가 나오고 총파업 얘기까지 나오는데,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하는 법을 만들려면 얼마나 지옥같이 구르고 싸워야 할까 싶어서요.” 김수련 간호사가 쓴 <밑바닥에서>는 ‘백의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헌신을 강요받는 간호사가 얼마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고발하듯 써 내려간 책이다. <밑바닥에서>가 그려낸 간호사들의 ‘극한 노동’은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도저히 끝마칠 수 없는 업무들을 등에 이고 환자, 보호자, 의사, 선배 간호사 등 누군가에게 늘 죄송해야만 했다. 특히 신규 간호사들은 신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벼랑 끝으로 떠밀릴 수밖에 없었다.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가 간호법 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에 반발하며 부분파업에 들어간 지난 5월 3일 서울 시내 한 의원 관계자가 출입문에 단축진료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 성동훈 기자 “벌을 받아야 할 것만 같았다. 밤 근무가 끝나면 동도 트지 않은 얼어붙은 거리를 헤매다가 인적 드문 곳에서 장갑을 벗고 내 뺨을 때렸다. …가끔 이불이 너무 포근하게 느껴지면 내가 그런 것을 느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 서랍들을 꺼내 침대 위로 올리고 그 빈 자리에 들어가 누웠다. 바닥에 누우면 마치 죽는 것처럼 편안했다. 나는 그때 인간도 영혼도 아닌 반쪽짜리 존재였다. …나는 빠져나갈 뒷문을 열어두듯 어떻게 죽을지 계획을 세웠다. …이 시절은 모두 지나갔다. 그 날들에 나는 누구보다 더 강바닥 같은 죽음에 가까이 가 있었다. 거기서 나를 건진 것은 내가 아니고 내 근성도 아니고 그저 운이다. 나는 내 밑바닥을 봤다.” -<밑바닥에서>를 통해 간호사들의 처절한 현실을 전하면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사실은 이것보다 나을 수 있었다. 단순하다. …그냥 간호사를 조금 더 충원하면 된다. 그럴 수 있는 법을 만들 기회가 수십 번 있었다. 그걸 놓쳐서 지금 간호사의 절반은 일을 그만두고 나머지 절반은 반인반수가 된다.’ 현장의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가 대안으로 오래 얘기돼왔던 건가요.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즈음인 2018년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2019년엔 고 서지윤 간호사가, 2021년엔 을지대병원의 신규 간호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사실 알려진 사례 말고도 많은 비극이 있었습니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는 수십 년간 일선 간호사들이 얘기해왔던 것이긴 한데요, 아마도 박선욱 간호사의 사건을 접하고부터 강력하게 얘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최전선’이었던 대구의 한 병원에 자원해 일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담은 SNS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책에선 이렇게 썼더라고요.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간호사가 너무 모자라서, 훈련돼 있지 않아서, 아무리 애써도, 매일 녹초가 되도록 진을 빼도 도무지 닿을 수가 없어서 속절없이 환자들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죽음이 석연치 못했다는 것, 다른 환경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멈추기 위해 우리와 힘을 모아주시면 좋겠다.’ 숙련된 간호사의 부족으로 환자가 죽어간 사례가 많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게 하는데요. “제 경험에 한해 말씀을 드리면, 코로나19 초기 제가 파견됐던 대구 동산병원은 야전병원 같았어요. ‘간호사가 정말 없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게다가 코로나19 증상은 순식간에 진행됩니다. 폐가 살짝 안 좋아져 중환자실에 들어왔는데 다음날 투석을 해야 하고, 그다음 날 에크모(ECMO·심폐기능보조장치)를 달아야 하는 식이었죠. 그래서 중환자실 경력이 있는 간호사가 절실했는데, 파견 온 인력들은 요양병원에서 일했거나 오래 일을 쉬어서 그런 경험이 부족했어요. ‘빅5’라 불리는 서울의 큰 병원들조차 자기 병원을 돌리는 간호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소수만 파견했거든요. 간호사가 더 있었더라면, 특히 중환자실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더 있었더라면 살릴 수 있었던 죽음들이 있었습니다. 죽을 듯이 온힘을 다해 쥐어짜서 일한 간호사 개인들에게 죽음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더는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촌세브란스 암병원 중환자실에서 7년간 일하며 겪은 것들을 엮은 의 저자 김수련 간호사가 지난 5월2일 줌을 통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송윤경 기자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1명 증가할 때마다 환자의 사망률은 7% 증가한다. 1명 더 늘면 14%, 거기서 1명 더 늘면 31% 증가한다(2008년, 환자 사망률과 간호 인력에 관한 병원 치료 환경 연구, 린다 에이큰 등). 김수련 간호사는 <밑바닥에서>를 이 통계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퍼센티지가 사람 목숨으로 돼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 4월 25일 간호인력 확충 대책을 내놨습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돌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간호대 정원을 늘리고 간호등급제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간호대 입학정원 확대는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해 계속해온 건데요, 지금 간호사 면허자의 절반은 ‘유휴 인력’입니다. 배출 인력을 늘려도 병원 밖으로 다시 빠져나가면 의미가 없어요. 간호관리료 차등제(간호등급제)는 병동에 간호사를 많이 배치하면 인센티브(수가 차등)를 주는 제도인데 이런 보상을 아예 포기한 의료기관은 어떡할 건가요. 간호등급제로는 보상만 있을 뿐 제재가 없어요. 간호사 1인당 환자 5명은 지향점일 뿐이고요. 정부 대책엔 강제력이 없습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공론화된 이후 유사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부에서 ‘태움’ 대책을 여러 번 내놨습니다. 주로 간호등급제 강화를 통한 개선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처벌조항과 구체적인 방도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현장의 업무강도가 경감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어요.”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의 태움은 심각한 인력 부족 때문에 생겨난 악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왜 태움이 간호사의 ‘문화’로 다뤄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셨더라고요. “범인은 항상 병원이었어요. 그런데 가해자는 직접 괴롭힘을 가한 선배 간호사들의 ‘얼굴들’로만 특정됐습니다. ‘태움 문화’로 불리는 동안 고용주의 역할이 쏙 빠져나가는 현실이 절망스러웠습니다. 정부에서도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강력히 밀어붙이기 어려운 사정이 있긴 할 겁니다. 우리나라의 병원 95%가 사립이에요. ‘공공 반 사립 반’이면 게임이 될 수 있겠지만 자칫 사립병원들이 들고일어났다간 의료 대란이 오겠죠. 그래서 공공병원의 확충도 꼭 필요합니다.” 간호사들이 지난 4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미국 적십자 재난의료팀 소속으로 뉴욕의 공공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곳의 인력 배치는 어떤가요. “주 3일 12시간씩 일하고 있는데, 제가 원하는 날짜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근무표가 짜여야 하고요. 만약 인력이 부족하면 병원에선 에이전시 소속의 비정규직 간호사를 써서 환자·간호사 비율을 맞춥니다. 비정규직 간호사의 임금은 우리의 두 배입니다. 이곳에선 중증 환자 1명을 간호사 1~2명이 돌봐요. 한국의 중환자실이었다면 이런 중증도의 환자 2~3명을 간호사 1명이 봤을 겁니다.” 중증 환자의 경우 한국의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대략 미국의 3배 안팎 된다는 얘기다. 2016년의 간호행정학회 연구에 따르면 일반병동을 기준으로 했을 때도 한국의 상급종합병원의 간호사 1인당 환자수(16.3명)는 미국(5.3명), 일본(7명), 영국(8.6명), 독일(13명)의 2~3배가량 된다. 간호인력인권법안은 병동 특성별 인력배치기준을 설정했는데, 일반병동은 병원 규모와 관계없이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12인으로 하도록 했다. 또한 근무조별 최소인원(2~3명) 기준도 별도로 명시했다. -간호법을 둘러싼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을까요. “실은 간호협회 편을 들어달라고 할 수도 없어요. 공허할 뿐인 껍데기 간호법에 대해 저조차 기대가 없는데 시민들께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다만 간호사가 너무 부족해 내 손에서 환자가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려 하는 일선 간호사들의 진짜 싸움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간호법 논란이 지나가면, 간호인력인권법이 논의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간호사회’ 등이 노력할 겁니다. 내년 5월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 폐기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제3세계에 파견되는 것이 목표지만 저도 어디에 있든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일선 간호사들은 밥그릇이고 뭐고 그냥 환자가 죽어나가는 현실을 바꾸고 싶을 뿐입니다.”

      송윤경 기자 2023.05.05 12:21

    • [편집실에서]자수성가형 + 도련님형

      오피니언 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자수성가형 + 도련님형

      도지사를 역임했던 한 전직 국회의원이 사석에서 “국회의원만큼 대한민국에서 좋은 직업이 없더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여의도에서 한때 나돌았다. 도지사는 도정을 책임져야 하고 또 도 의회에서 꼼꼼히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책임질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에 딱히 비판받을 일도 거의 없다. 부장 판·검사를 했던 분들도, 심지어 총리·장관까지 했던 분들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노력하니 의원이 대한민국 최고의 직업인 것만은 분명한 듯 보인다. 매년 가을 국정감사만큼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의 가치가 높이 드러나는 시기가 없을 것이다. 각 부처 산하기관장들은 물론이거니와 각 부처 장관들도 국회의원 개개인의 날카로운 질문에 쩔쩔매게 된다. 국회의원이 되면 동문회나 모임에서 ‘성공한 인물’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로서 의원들을 만나다보니 이들 ‘성공한 인물’의 유형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민주당은 이 유형이 꽤 복잡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이 유형이 의외로 간단하다. 딱 두 갈래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하나는 어릴 때부터 귀한 집에서 태어난 ‘도련님’ 출신이다. 이들의 특징은 대부분 유학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부류는 어릴 적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랐지만 고시에 합격하거나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그룹이다. 국회의원까지 됐으니, 개천에서 용이 된 부류이기도 하다. 흔히 자수성가형이라고 부른다. 특이하게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친이와 친박이 다툴 때 친이에는 자수성가형이 많았다. 이들의 중심인물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수성가형이었고, 이상득·이재오 같은 정치인도 이 부류에 속했다. 반면 친박의 중심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도련님형이었고, 친박쪽 중심인물인 김무성·유승민 같은 정치인은 이 부류에 속했다. 자수성가형이든 도련님형이든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이들 두 부류의 생각은 비슷하다. 경제분야에서는 대기업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생각이다. 도련님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수성가형이 저임금 노동자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은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몰라주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특유의 언사로 대기업이 먼저 잘돼야 저임금 노동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담론을 펼친다. 이 담론은 199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들어맞았지만 웬일인지 그 이후 기업은 배부르고 노동자들은 배고픈 상황이 계속됐다. 한때 자유한국당의 전신은 집권여당으로 대다수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자주 ‘웰빙 정당’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거친 들판의 야당 생활로 웰빙도 더 이상 힘들게 됐다. 급기야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전원책 조직강화특위 위원에게 칼을 넘겨주는 상황에 이르렀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해 외부의 칼을 빌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도련님형이든 자수성가형이든 ‘웰빙’이라는 누명 또는 오명을 벗기를 기대해본다.

      윤호우 편집장 2018.10.22 14:17

    • [건강설계]불임부부, 남편의 정자수 늘리려면

      사회 건강설계

      [건강설계]불임부부, 남편의 정자수 늘리려면

      지난 50여년 동안 현대인들은 도시생활이나 문명생활을 하면서 각종 유기합성 독성물질에 많이 노출됐다. 성인 남성의 평균 정자 수는 약 절반으로 줄었고, 이로 인해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불임률이 늘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남성의 정자 수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은 환경호르몬이다. 정식 명칭이 내분기계 장애물질인 환경호르몬은 생명체의 정상적인 호르몬 기능에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이나 합성물질을 말한다. 환경호르몬 물질로는 농약, 생활쓰레기 소각에서 발생하는 다이옥신, 합성세제, 플라스틱 제품, 통조림통 내부의 코팅제 등 70여 종이 있으며, 이들은 정자 수의 감소, 성기 기형의 증가, 호르몬 관련성 암의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회 배출되는 남성의 사정액은 보통 0.2∼6.6㎖이며, 사정이 반복되면 감소하고 장기간 금욕 후에는 10㎖ 이상 나오기도 한다. 3일만에 배출된 정액의 평균 양을 측정하면 약 3.5㎖ 정도 되지만 그 양은 나이와 체질에 따라 차이가 매우 많다. 심지어 같은 사람의 정자량도 때와 장소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남자들은 극치감을 느낄 때 3∼4번의 정액을 방출하며 그 간격은 0.8초마다 이루어진다. 정액 3.5㎖ 속에는 약 3억~5억 마리의 정자가 들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정상적인 정자 수는 ㎖당 2000만마리 이상이어야 하고, 정액의 양도 2㎖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남성들도 상당히 많다. 또 정자 수가 정상이라고 하더라도 정자의 모양에 이상이 있거나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깨끗한 환경에서 안전한 음식을 섭취하고, 정신적 긴장을 줄이며 규칙적 운동을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정자 수를 늘리는 방법은 딱히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랫배를 따뜻하게 하고 옻추출물을 지속적으로 먹으면서 금연한다면 수정능력이 향상되기도 한다. 옻은 몸을 따뜻하게 해줄 뿐 아니라 용량을 늘려 투여할 경우 정자의 활동성을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임신을 위한 성생활은 배란일 전후 2~5일 이내가 적당한데, 이는 정자의 생성주기가 4~5일이고, 난자의 생존시기가 약 일주일인 것을 감안한 것이다. 김달래

      2013.01.29 13:26

    • [재벌이야기]자수성가 부자의 약진

      경제 재벌이야기

      [재벌이야기]자수성가 부자의 약진

      지난해 우리나라 부자 판도에 큰 변화가 일어나 관심을 끈다. 재벌닷컴에서 만 45세 미만의 상장사 주식부자 상위 100명을 살펴보니 19명이 ‘자수성가’ 부자였다. 전년의 10명보다 두 배에 가까운 9명이 증가한 것이었다. 김정주 엔엑스씨 회장. 자수성가 부자가 전체의 20%에 못미치니 여전히 재벌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수성가 부자가 계속 약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놀라운 것은 젊은 자수성가 부자 중에 이미 1조원이 넘어선 신흥 갑부가 전체 4명 가운데 2명이나 된다는 부분이다. 김정주 엔엑스씨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온라인 게임사업 하나로 1조원대 갑부가 됐다. 우리나라 기업인의 부를 보면 통틀어도 작년 말 기준으로 1조원 이상 주식갑부는 16명에 불과하다. 젊은 나이에 재벌에 못지 않은 부를 쌓은 인물들이 탄생한 것은 매우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부자 판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새로운 부자가 탄생하기란 쉽지 않다. ‘부의 축적 시스템’이 갈수록 고착화되고,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 부자가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와 같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 부자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늘어난다면 보통사람들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수성가 부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까. 필자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아 보인다. 재벌의 반격이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부의 판도’는 경제를 지배하는 세력이 누구냐를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재벌의 부가 자수성가 부자에게 밀린다는 것은 경제 지배자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격하진 않더라도 조금씩 주류세력이 교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재벌로선 여간 위협적인 일이 아니다. 해방 이후 형성된 한국 부의 판도를 지배해온 전통 재벌이 밀려난다면 경제 전반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필자는 요즘 한국 사회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진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경제권력에서도 새로운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기득권 세력은 변화를 두려워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끝없는 변화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다. 아직은 자수성가 부자의 힘은 재벌에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그 변화는 엄청날지도 모르고, 또 그렇게 되리라 확신한다. 재벌이 무겁고 비대해진 몸을 뒤뚱거리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에 젊고 싱싱한 두뇌와 가벼운 몸을 가진 신흥 기업들은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애플과 같은 신흥 기업들이 전통 기업들을 밀어내고 경제 지배자로 등장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이런 조짐이 꿈틀대고 있다. 2012년에는 재계 판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 ‘재벌 이야기’는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2012.01.10 16:57

    • [언더그라운드 넷]지하철 더듬남, 하루 만에 자수한 사연

      사회 언더그라운드. 넷

      [언더그라운드 넷]지하철 더듬남, 하루 만에 자수한 사연

      “일단 내사는 착수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지하철 CCTV를 보고 찾아야지요. 글을 올린 분이 신천역에서 탔다고 했죠? 두세 정거장 지나서 들어온 것을 보니 CCTV 보면 나와 있을 것인데….” 지하철수사대 2지구대 문광식 팀장의 말이다. 한 누리꾼이 찍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성추행 현장 동영상. | 네이트 동영상 캡쳐12월 1일, 한 동영상과 사연이 급속도로 퍼졌다. 술에 취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사내가 힐끗힐끗 쳐다본다. 그런데 사내의 손이 자꾸 여성의 허벅지 쪽으로 들어간다. 성추행범이다. 동영상만 본 누리꾼은 “연인일 수도 있지 않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영상과 함께 게시된 동영상을 찍은 ‘사연’을 보면 확실히 이 남자가 치한임을 알 수 있다. 즉 여성이 먼저 앉아 있었고, 중간에 남성이 탔는데 빈 자리도 많은데 유독 옆자리에 붙어 앉더라는 것이다. 낌새가 이상한 걸 느낀 사연을 올린 주인공(편의상 A씨라고 하자)은 휴대폰으로 그 장면을 찍었다. 이 중년사내가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려는 순간, A씨는 동영상 찍는 것을 중단하고 “아저씨! 그만 좀 하시죠”라고 소리를 질렀다. 중년남성은 힐끗 본 뒤 자는 척하다가 얼른 내렸다. 동영상을 올린 A씨는 “제 3자인 내가 신고해도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나 없나 고민만 한 것이 후회된다”며 “(여성 분들이) 얼굴이라도 보고 피하라는 뜻에서 동영상을 올린다”고 밝혔다. 글에 따르면 남자는 사당역에서 내렸다. 이 경우 이수역에 자리잡은 지하철수사대 2지구대 관할이다. 문 팀장은 “CCTV만 확보되면 범인이 누군지 밝히는 것은 거의 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건 수사기법상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추행이 친고죄라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여성이 처벌 의사를 밝혀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설령 동영상과 같이 뚜렷한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이 스스로 처벌해달라고 연락해오지 않으면 정식으로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사’하는 정도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해결되었다. 문제의 남성 신원은 금방 밝혀졌다. 46살 조모씨. 신천역 이후에 신도림행 막차를 탄 손님들의 CCTV 분석을 통해서다. 수사 기법은 알고 보니 간단한 것이었지만, 향후 다른 범죄자들이 악용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사실 여기서 안 들춰도 다른 보도를 통해 이미 다 공개됐다). 같은 기법으로 피해를 당한 여성도 찾아냈다. 열차가 막차였기 때문에 이 여성이 내린 역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기 때문에 몰랐을 것”이라는 일부의 추측과 달리 장모씨(26·여성)는 “성추행을 알고 있었지만 부끄러워 말을 못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인터넷에 퍼진 동영상을 보고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 1일 밤 늦게 지하철수사대에 연락, 자수했다. 공분한 누리꾼이 ‘신상털기’에 나서는 것을 보고 큰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경찰 측은 밝혔다. 동영상 공개가 잘한 일인지 논란도 있었지만, 신속한 사건 종결에 도움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누리꾼은 조씨에게 ‘더듬남’이라는 별명을 부여했다. (※ 경향신문 기자블로그 ‘정용인의 언더그라운드.넷 공작소’(underground.khan.kr)에 들어가면 보다 자세한 취재 뒷이야기, 기사 관련 인터뷰 등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정용인 기자 2010.12.09 10:48

    • [사회]자수성가형 국세청장 ‘위기의 남자’ 되다

      사회

      [사회]자수성가형 국세청장 ‘위기의 남자’ 되다

      지난 10월 22일 국세청에서 열린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서 전군표 국세청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 전군표 국세청장(53)은 강원 삼척 탄광지대에서 태어났다. 강릉고를 졸업하고 경북대 법대(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문학과 철학책에 심취해 입시 준비에 매달리는 동급생들과는 다른 학교 생활을 했다”고 말해왔다. 시쳇말로 ‘개똥철학’을 하느라 입시 준비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내세울 만한 학연이나 지연이 없는 그가 국세청장직에 오른 것은 확실히 예외적인 일이다. 그는 “오히려 그런 기반과 조건이 나를 노력하고 분투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술회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모친이 한 점술가를 만나 “‘군표(君杓)’라는 이름이 너무 거창하니 이름을 바꾸고 크면 가능한 한 남쪽으로 보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그는 “내 이름은 내가 짊어지고 가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다만 남쪽인 대구에서 대학 생활을 한 것이 입신에 도움을 준 것을 보면 그 점술가가 사이비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국세청 내 조사업무의 달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행정고시 출신(1979년, 20회)으로는 드물게 사무관 시절부터 조사국에 발탁돼 풍부한 현장 경험을 했다. 중부청 조사 2국장, 서울청 조사 3국장·조사1국장을 거쳐 본청 조사국장을 지냈다. 재무부 세제국, 대통령 비서실에서도 근무했고 참여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에 파견되는 등 감사·국제조세·조사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는 것이 국세청 내 평가다. 세제·심판·송무 업무에도 정통한 그는 일찌감치 ‘장래의 청장감’이라는 낙점을 받아왔던 인물이다. 인구 자체가 적은 강원 출생(삼척 도계읍)인 데다 강릉고 출신 가운데 몇 번째 안 되는 행정고시 합격자인 까닭에 관가에 선배가 별로 없다. 그런데도 그는 사회 전 분야에 많은 지인과 우호그룹을 가지고 있다. 그가 국세청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청장까지 오르게 된 데는 각고의 노력이 숨어 있다. 그 노력 중엔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 주변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집요한 노력과 재능이 포함돼 있다. 청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선 그의 초등학교 학적부가 공개돼 그의 당시 IQ가 153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 청장도 청문회 때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으면 노력하지 않는 인간이 됐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그가 털어놓은 소회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청년시절엔 검도 수련에 매진한 적도 있다. 틈틈이 연마한 바둑은 아마 5단 실력, 조사국장 시절 국세청 테니스 선수단장으로 중앙부처 테니스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지금은 중단했지만 골프도 싱글 수준으로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의 인맥은 이런 취미와 스포츠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 그의 강릉고 인맥은 그 수가 많지 않은 대신 친밀도가 깊다. 최명희 강릉시장과 권혁인 행정자치부 지방행정본부장, 최경덕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장, 김형익 재 캐나다 목사 등이 그가 터놓고 얘기하는 동문들이다. 장동희 제네바 차석대사, 김태환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재경금융심의관 등은 그가 손꼽는 대학 동기다. 전 청장은 행시 20회지만 합격 후 곧바로 군복무를 하는 바람에 교육은 22회와 함께 받았다. 그 때문에 친한 행시 동기는 그리 많지 않다. 유영환 정보통신부 장관(행시 21회), 장태평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20회), 윤용로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21회), 신철식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정책차장(22회) 등과 자주 만난다. 특히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외아들인 신철식 실장과는 각별한 사이다. 국세청 선배 가운데는 이주성 전 청장을 은인으로 꼽는다. 이 전 청장은 수많은 선배를 제치고 전 청장을 차장으로 발탁했으며 지난해 퇴임하면서 후임 청장으로 전 청장을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급작스런 사임에 대해 전 청장은 “건강 등 개인적인 사유가 작용했지만 항간에 알려진 것 같은 정치적인 배경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바둑은 아마 5단 수준으로 김기태 전 재경부 부동산기획실무기획단 부단장, 김진세 전 고검장 등과 자주 실력을 겨룬다. 지난해 3월 명예퇴직한 뒤 김&장에서 일하는 김 전 부단장은 재경부 파견 시절 친분을 쌓았으며 인수위에서도 함께 일했다. 김진세 전 고검장(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춘천세무서장 시절 춘천지검 검사장으로 만나 바둑으로 친분을 유지해왔다. 요즘 그는 골프도, 바둑도 즐길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 청장은 퇴임 후 사진공부를 하는 것이 희망이었다. 얼마 전까지 고향 지인들이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하기도 하지만 전 청장은 “관심없다”며 일축했다는 후문이다. “청장이 그런 돈을 받았을 리 없다”는 여전한 신뢰와 함께,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국세청 전체를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전 청장은 평상심을 강조하며 직원들을 다독이면서도 지난주 내내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007.11.06 00:00

    • [클릭, 해외인물]53년 만에 자수한 뺑소니범

      사회 클릭, 해외인물

      [클릭, 해외인물]53년 만에 자수한 뺑소니범

      떳떳하게 죽고 싶은 소망 1953년 10월 24일 저녁, 교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조지 루이스 돌턴(당시 74·미국 버지니아주)은 집 앞 도로를 건너던 중 뺑소니차에 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사고 현장은 4년 전 돌턴의 전처가 교통사고로 숨진 곳이기도 했다. 뺑소니범은 잡히지 않았고 돌턴의 유족은 범인 찾기를 포기한 지 오래. 그런데 최근 한 노인이 자신이 뺑소니범이라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3년이 지나서였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경찰에 자진 출두한 벌린 브래디(77·사진)가 무겁게 내뱉은 첫 마디다. 당시 24세던 브래디는 자신이 뺑소니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마주오던 차의 전조등 불빛이 시야를 가려 ‘무엇’과 부딪혔는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깨진 전조등과 범퍼에 묻은 핏자국을 본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자수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후 신문기사의 ‘살인’ ‘뺑소니’라는 단어는 53년간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브래디는 최근 심장 수술을 앞두고서야 ‘죽기 전에 죗값을 치를 것’을 결심했다. 갑작스런 뺑소니범의 출현에 돌턴의 유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월이 분노를 삼켰을까. 유족들은 ‘피고인도 그동안 말 못할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며 법원에 선처를 호소했다. 결국 브래디는 감옥행을 면했다. 한편 돌턴의 손자 도날드 시몬즈(72)는 “(뺑소니범의 자수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런데…”라며 뜻밖의 사실 한 가지를 털어놨다. 사고 후 이 마을에서는 한 주민이 뺑소니 용의자로 몰렸으며, 본인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그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았다는 것. 그는 살인자 누명을 쓴 채 15년 전에 사망했다. 시몬즈는 “자수한 브래디는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덜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죄인 취급을 당했던 그 이웃은…”이라며 씁쓸해했다.

      2007.03.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