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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디칼럼] 의대 2000명 증원, 필요한 것이었나

      건강 메디칼럼

      [메디칼럼] 의대 2000명 증원, 필요한 것이었나

      의대 증원을 두고 의료계와 정부의 대립이 지속될 당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수빈 기자 2024년 2월 시작한 의료대란이 2025년 새해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년 정도 지나고 보니, 이제 슬슬 그 영향이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당분간 신규 의사는 기존의 10분의 1로, 신규 전문의는 5분의 1 이하로 급감할 것이다. 모든 의료 분야가 그러하겠지만, 내가 몸담은 장기이식도 ‘직격탄’을 맞았다. 2024년 장기기증을 한 뇌사자는 397명이다. 2011년 이후 처음 400명 이하로 내려갔다. 2022년 코로나19 창궐 때도 405명의 뇌사자가 장기를 기증했다. 2024년 장기이식은 코로나19 때보다 심각한 타격을 입은 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뇌사자의 장기를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한 것이 1355건이니 뇌사자 1명이 3.3명의 환자에게 장기이식을 한 셈이다. 2023년은 코로나19 유행에서 벗어나 장기기증이 다시 활성화되던 해로 483명의 뇌사 장기기증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2024년의 의료대란만 없었다면 약 100명의 뇌사자가 더 장기기증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약 330명이 새로운 삶을 찾았을 것이다. 공든 탑 무너지는 장기이식 뇌사자 장기기증 건수는 외부 영향을 많이 받는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면서 장기기증을 희망했고, 각막이식으로 이어지자 이듬해 장기기증 건수가 증가했다. 2017년 뇌사자의 아버지가 아들의 장기를 기증했더니 ‘장기는 적출하고 시신은 아버지가 알아서 가져가라고 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오자, 2017년 515건이었던 뇌사자 장기기증 건수는 2018년 449건으로 급감했다. 이후 한국장기기증원(KODA)과 이식학회 등이 인식 개선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으나 급감하는 추세만 늦추었을 뿐이다. 다행히 뇌사자 장기기증 건수는 2023년 483명으로 다시 올랐으나 지난해 의료대란으로 장기기증 건수는 2012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뇌사자 장기기증은 대표적인 ‘미끄러운 비탈길 논증’ 사례다. 미끄러운 비탈길 논증은 어떠한 행동이나 결정이 연속적인 과정을 거쳐 결국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의료대란이 해결되더라도 예전만큼의 장기기증과 장기이식 수술 활성화는 단기간에는 이루어지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어려움은 작년 겨울 한국장기기증원에서 하는 모임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장기기증원 관계자의 분석에 따르면 인력이 부족한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잠재 뇌사자’ 발굴과 기증이 특히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심각한 뇌 손상이나 뇌병변이 의심돼 잠재 뇌사자로 판단되면 병원은 한국장기기증원에 의무적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 이후 뇌사 판정을 받고 유족이 장기기증 의사를 보이면 그 가능성이 있는지 평가한 뒤, 장기기증 수술 전까지 뇌사자를 관리한다. 이렇듯 장기기증 수술을 하기까지는 많은 인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진 듯한데, 그것이 인력이 부족한 지방의 대학병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분야는 장기이식 분야만이 아닐 것이다. 응급의료 체계 또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응급실은 의사 부족과 배후진료 역량의 부재로 환자들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증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곳이 없어 적기를 놓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대거 이탈하면서 응급실 폐쇄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한 지역에서는 심정지 환자가 응급처치를 받아야 하는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부산대병원 본원의 경우 종양내과 의료진의 사직으로 암 환자의 진료가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이에 따른 생존율 감소가 우려된다. 대다수의 대학병원에서는 항암 치료 일정이 연기되거나 수술 대기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2024년의 초과 사망률은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과 사망은 위기가 없었을 때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사망자 수를 넘어선 수치를 말한다. 코로나19가 극심했던 시기에도 초과 사망률의 증가는 미미했으니, 2024년의 의료대란은 전무후무한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의료대란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또 해결되더라도 이제 과거와 같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의사와 정부 사이의 불신은 돌이킬 수 없고, 내가 몸담은 장기이식과 같은 필수의료에 투신하려는 의사의 수는 더 줄어들 것이다. 장기이식, 북유럽식 제도 고려해볼 만 한국의 장기이식 시스템은 미국과 유사하다. 장기이식을 하는 모든 병원이 각자 대기자를 등록하고 경쟁적으로 이식수술을 시행한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2019년에는 전국에 신장이식을 하는 의료기관이 80여개나 됐다. 이러한 시스템의 장점이 제대로 나타나려면, 장기이식을 하는 병원이 경쟁해 우수한 병원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병원은 도태돼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장기이식을 하는 사람 자체가 줄어들고, 이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버린 전공의들이 필수의료를 지원하지 않아 유입도 줄어든다면 이런 시스템은 유지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영국이나 북유럽식의 장기이식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간이식을 받기 위해서는 에딘버러에 있는 ‘로열 인퍼머리’에 가야 한다. 노르웨이에서는 모든 장기이식을 오슬로대학병원에서만 한다. 오슬로대학병원에서 복부 장기이식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는 10여명에 불과하다. 한국도 장기이식에 참여하는 의사들이 줄어든다면, 모든 병원에 장기이식을 하는 외과 의사 및 기자재를 분산할 것이 아니라 거점병원을 지정하고, 그곳으로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미 외상센터들이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만일 필수의료 분야에서 이런 식으로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적은 인원으로 더 효율적인 의료체계가 수립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필요한 것이었나.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2025.01.24 15:00

    • ‘의대 증원’ 정부의 뒷걸음질, 출구 찾을까

      사회

      ‘의대 증원’ 정부의 뒷걸음질, 출구 찾을까

      정부 한 발 물러났지만 의료계 ‘싸늘’…언제 불의의 사고 터질지 불안 지난 4월 11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한 의료계 종사자가 지친 모습으로 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의·정 갈등이 중대 기로를 지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일부 조정하게 해달라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기로 했다. 총선 이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4월 19일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의료계의 단일화된 대안 제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공백 피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증원 규모는 당초 정부가 제시한 연 2000명에서 많게는 절반 수준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지 두 달만에 정부가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갈등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일보 후퇴에도 의료계는 여전히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의사 단체는 줄곧 의대 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해 왔다. 연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산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획을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총선 이후, 사회적 협의를 해보자는 정부와 야당의 제안에도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정부와의 “일대일 대화”를 요구하며 일축했다. 의료 현장이 언제쯤 정상화될 지도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다. 최대 피해자는 의료 공백에 노출된 환자, 시민들이다. 현장에서는 각 주체가 초기보다 혼란에 적응하는 기미도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전공의가 떠난 후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의대 교수들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병원은 병원대로 외래 진료와 수술이 줄어들면서 재정이 악화하고 있다. 간호사, 일반 직원들에게 무급휴가·희망퇴직 등 고통이 전가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양측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의정 갈등 쟁점과 현 상황을 짚어봤다. 양쪽 모두 소환한 아산병원 사망 사건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간극은 한자리에 앉을 수도 없을 만큼 커 보인다. 그렇다고 공통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의외로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비슷한 면이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4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사망한 사건을 언급했다.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 현상을 강조하면서 의사 수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과정이었다. 그보다 20일 앞선 3월 18일에는 방재승 당시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의 정책 재검토를 요청하면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이야기했다. 동일 사례를 언급하면서 전혀 상반된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2022년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서울아산병원에는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환자를 옮겼지만 끝내 사망했다. 병상 2700여개로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단 2명뿐이었다. 1명은 해외 학회 참석 중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른바 ‘빅5 병원(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병원)’조차 수술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부도 이 지점에 방점을 찍었다.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하니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같은 사건을 놓고 의사 단체는 다르게 진단한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당시 쓰러진 간호사의 뇌혈관에 관을 주입해 출혈을 멈추는, 수술이 아닌 시술 치료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환자의 상태가 차도를 보이지 않아 수술이 필요했지만,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 2명은 서울아산병원에 없었다. 왜 최상의 의료진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수술은 할 수 없었을까. 수술 자체가 고난도였기에 배운 사람도, 배우려는 사람도 적었기 때문이다. 시술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가능한 처치는 두개골을 열어 터진 혈관을 클립으로 묶는 고난도 수술이었다. 한때는 수년을 들여 이 수술법을 배우려는 의사도 많았지만, 더욱 간단한 시술법이 등장하면서 이를 익히는 의사가 많아졌다. 수술법을 익히는 시간과 노력(투자) 대비 보상이 적은 것이 원인이다. 뇌동맥류 결찰술이라 불리는 이 수술의 의료수가만 봐도 그렇다. 2022년 기준 이 수술의 건강보험 수가는 한국이 250만원, 일본이 1100만원이었다. 호주 540만원, 미국 480만원과 비교해도 적다. 병원 입장에서는 돈은 안 되고 시간은 오래 걸리는 수술보다 간단한 시술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두 방식 중 어느 쪽으로도 치료할 수 있다면 환자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향성이 의료진 인력 배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따져보기 어렵다. 다만 이런 질병을 다루는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의료기관별로 얼마나 진출했는지는 살필 수 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신경외과 전문의는 2388명에서 2659명으로 11%(271명) 증가했다. 의료기관 유형별 증감률을 보면 의원에서 일하는 전문의가 29.7%(138명)로 가장 많이 증가했고, 요양병원 전문의가 29.6%(42명)로 두 번째로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종합병원도 23.5%(145명)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지만, 상급종합병원(3.6%·15명)과 병원(-3.9%·27명 감소)은 증가율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2·3차 의료기관에 남는 의사들보다 개원하거나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인력이 많았다는 얘기다. 지난 4월 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의사 단체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이 달린 분야에 필요한 의사가 부족하다고 본다. 곧 인력의 배분이 문제라는 얘기다. 한국의 의료는 민간에 맡겨져 있기에,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의료진)들이 스스로 움직일 유인이 필요하다. 필수의료 영역을 떠나는 의사들을 잡아둘 보상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증원보다 중요한 선결과제라는 것이다. 수가를 높이면 건강보험 부담은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의사들의 주장에도 설득력은 있다. 정부는 일단 의사 수를 늘리면 인력난으로 붕괴해 가는 필수의료 분야나 지역으로도 의사들이 흘러갈 것이라 본다. 일종의 낙수효과다. 그러나 보상체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의료진의 필수의료 영역 이탈은 계속될 수 있다. 보상체계를 바로 세워도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도 4대 개혁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대책은 마련해뒀다. 보상체계 강화를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지역 의대에서 지역 출신 학생을 의무적으로 선발하는 비율을 높이는 한편, 일정기간 지역 근무를 전제로 장학금·수련비용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의사 단체는 2000명 증원이라는 정책 목표는 뚜렷한 데 반해 보상체계 강화·지역 의료 대책은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나백주 을지대 의대 교수는 “교육 여건을 갖춰 (연간) 의사 2000명을 더 양성한다고 해도 지역과 필수의료로 간다는 보장은 없다. 수가를 올리면 된다지만, 수가를 올려봐야 대도시로 몰리는 현상을 완화할 수 없다. 지역의 환자들도 수도권으로 몰리는데 수가만으로는 답이 없다. 건강보험만으로 한다는 건 유효하지 않고 결국 재정을 써 공공병원 등을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사태 장기화, 최대 피해자는 환자 의사 단체가 내세우는 논리의 정합성과는 별개로, 이들의 속내는 시장 참여자가 늘어난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는 의구심이 이어지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의대 증원이 논의될 때마다 의사들은 ‘업무중단’이라는 강력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논의를 중단시켰다. 인력의 배분 문제 등을 다루는 추가적인 논의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필수의료 공백에 대한 이들의 우려가 과연 진정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 사이 전국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30년 전인 김영삼 정부(당시 정원 3260명) 때보다 줄었다. 정부가 내놓은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의사의 절대 수가 부족하다는 공감대는 넓게 형성됐다. 앞선 3건의 선행연구는 모두 2035년에 국내 의사 수가 1만명가량 부족해진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각 대학들이 증원 규모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면서 한 발 물러섰다. 한덕수 총리는 4월 19일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금년에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했다. 모집 인원은 이달 말까지 결정하기로 했다. 32개 대학 모두가 증원된 인원의 최소치인 50%씩만 선발할 경우 내년도 의대 정원은 1000명만 늘어난 4058명이 된다. 동시에 정부는 의사 단체가 대화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단일안을 제시하면 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며 “오늘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날 정부 발표에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의사 단체의 대화 거부는 의사들의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킬 여지가 있다. ‘거야’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약으로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신설을 내걸었다. 모두 문재인 정부 때 추진하다 의사들의 반대로 무위에 그친 정책으로 지역 내 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내용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언제 불의의 인명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현장은 전공의 공백에 적응한 모습도 보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4월 둘째 주 기준으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신고는 일평균 6.3건이었다. 집단행동 초기인 2월 중순, 미리 잡힌 수술과 진료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일평균 45.4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된 것에 비하면 신고 건수가 줄었다. 3월 셋째 주의 13건보다 적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두 달 전에 입원, 항암치료, 수술이 연기됐던 환자들이 더 연기할 수 없는 상황이 돼 치료를 받고 있다. 코로나19 때도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했기에 인내하면서 버티고 있다. 병원은 병원대로 인력이 줄었지만 신규 환자도 줄면서 아직은 여력이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사각지대에서 환자의 상태가 악화하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사고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임박했다. 전공의 공백에 서울대 의대 교수의 41%는 주 8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교수가 86.4%에 달했다. 외래와 입원 환자 모두 줄어든 병원은 경영 적자를 무급휴가, 희망퇴직 등으로 다른 직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나백주 교수는 “어쨌든 돌아가고는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부와 의사 단체 모두 대화할 의지는 커 보이지 않는다. 환자들만 마음을 졸이고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2024.04.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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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 메디칼럼

      [메디칼럼](35)의대 증원 여론몰이의 의도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복도에서 관계자가 의협의 주장이 담긴 벽보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의대 정원 확대 이슈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에 대해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백년지대계인 교육과 더불어 백년 계획을 세워야 하는 지역의료, 필수의료에 대한 담론과 공청회는 뒤로 한 채 총선을 위한 하나의 이슈 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의대 정원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고, 의료계를 포함해 대부분의 국민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충분한 논의 과정과 철저한 계획을 세운 후에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의협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학장들에게 원하는 의대 정원을 물어본 후 바로 언론에 발표했다. 의정 갈등만 부추기는 행위다. 공공의대, 의대 정원, 필수의료, 지역의료 등에 관련된 수많은 이익단체의 입장과 국민의 처지를 생각하는 시민단체 입장, 정부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이러한 첨예한 사안을 토론할 때는 여러 번의 공청회와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참고해야 한다. 언론에서는 서울대 김모 교수가 주장하는 낙수효과에 대한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 교수가 얘기하는 낙수효과는 여러 면에서 허점이 많을 뿐 아니라 의사들의 인간적 본성을 간과하는 발언이다. 우선 의료서비스는 수요공급 원리가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수를 늘리면 그만큼 전 국민 의료비가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의사가 늘어난다고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필수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지역의료를 담당하려 하겠는가. 고되고 의료사고 위험 높은 필수의료 대책 마련부터 의사 수를 적정하게 늘리자는 데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리면 그 숫자는 고스란히 미용의료 등의 영역으로 빠지게 된다. 열심히 공부한 훌륭한 의사 인력을 필수의료로 유인하는 정책이 없다면 이들은 당연히 돈을 따라서 의대 졸업과 동시에 돈을 꽤 많이 벌 수 있는 미용의료로 빠지고 만다. 그게 현실이다. 단순히 사명감 하나로 일하라는 건 너무나 열악한 의료현장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필수의료 분야는 특히 그렇다.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한 선배는 나한테 전화 너머로 얘기하기를 365일 중 364일을 병원에서 잔다고 했다. 집에서 잠을 자는 건 1년에 1번뿐이란다. 중간중간에 가족이 병원에 와서 잠깐 얼굴은 봤겠지만, 삶의 질을 놓고 봤을 때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동 강도다. 이런 분들이 대우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렇게 힘들게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분들은 의료사고에 노출될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민형사상 책임은 의사가 고스란히 져야 한다. 물론 의사가 직접 한 의료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온전히 의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게 가혹한 현실이다. 정부는 이러한 위험들은 상호 부조를 통해 의사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이러한 정부 정책이 과연 능력 있고 사명감 투철한 의사들로 하여금 필수의료로 향하게끔 만드는 유인책이 될 수 있을까? 정부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필수의료로 의사들을 가게 하려면 의료수가를 조정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놓고 벌이는 시소 놀이는 멈춰야 한다. 지금까지의 의료수가 조정은 여기서 울면 다른 곳에서 빼앗아 여기에 조금 주고, 빼앗긴 데서 울면 또 다른 데서 빼앗아 주는 식이었다. 악순환이었던 셈이다. 그러한 고리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저렴한 의료수가를 방치해서는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MRI, CT 등에 의료비를 지원하는 선심성 정책은 과감히 버리고 소아, 중증환자, 취약계층 등을 진료하는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원을 모아야 한다. 정치권은 표 놀음을 그만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라면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학생 때 의사는 종교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지금까지 정말 그렇게 살았노라 자신할 순 없지만 그에 상응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업을 행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의사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매진할 준비가 된 굉장히 자각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또한 이러한 자성 있는 집단과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은 방안에 대해 토의하고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현실은 그러나 두 집단의 간극이 너무도 크다. 수십 년에 걸친 상호 간의 신뢰 부족 때문이다. 의협, 범죄 연루 의사 현업 복귀 막는 등 자정노력 필요 의협에서도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아프더라도 썩은 살은 도려내는 심정으로 의료계 조직의 위계와 사회적 책임감, 아주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을 위한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의료 집단이 종교인에 필적하는 도덕적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모든 목소리는 공염불처럼 허공을 떠돌 수밖에 없다. 마약 의사, 성 관련 범죄 의사, 사무장 의사 등이 왜 다시 현업에 복귀하고 있는가? 내부 단속은커녕 부도덕한 몇 명 살리겠다고 엉뚱한 판단을 내리고 차일피일 책임을 미루면서 스텝이 꼬이니까 언론의 지탄, 국민의 뭇매를 맞고 이 지경에 이르고 만 것 아닐까. 향후 10년을 목표로 문제 의사는 영구적으로 퇴출하는 등 국민과 정부에 우리의 자정 의지를 꾸준히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서로 신뢰가 쌓이고, 의협도 결국에는 존경받을 수 있는 집단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재란 인재는 전부 의대로 쏠리고 있다. 그러한 인재들이 정말 필요한 곳으로 갈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중국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밀어닥쳤을 때 정부는 이들의 단체비자 발급 수수료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준 바 있다.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의료계로 범위를 좁히면 미용성형, 피부시술 등을 위해 한국 병원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한 일종의 의료산업 진흥정책이었던 셈이다. 이런 산업적인 측면에 머물 게 아니라 정부가 정말로 국내 의료계의 발전을 원한다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한국의 의료기술을 전 국민이 골고루 안전하게 누릴 수 있도록 의료수가에 대한 전향적인 재고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산업의 발전 토대가 될 의과학자들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고, 발등에 떨어진 불 수준으로 위기감이 커진 필수의료 분야의 문제점도 차츰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박병호 아이호성형외과 대표원장 2024.02.02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