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관 증원 역설한 ‘대법원의 사법쿠데타’](https://img.khan.co.kr/weekly/2025/05/23/news-p.v1.20250521.98a6c7e9486e4ba5a263dc474729d9b4_P1.jpg)
사회
[한동수의 틈새](1) 대법관 증원 역설한 ‘대법원의 사법쿠데타’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 연합뉴스 대다수 국민, 보수 성향의 법조인들조차 상고기각을 예상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서울고등법원 무죄판결이 매우 충실하고 설득력이 높았다. 2. 항소심 판결 선고 후 한 달 남짓 만에 초고속으로 선고기일이 잡혔다. 상고 후 단기간 내 선고는 상고기각이 통례다. 3. 대법원 소부에 배당된 지 2시간 후 전격적으로 회부된 전원합의체에서 불과 9일 만에 나오는 선고다. 4. 국민의 예상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서 생방송하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5. 보수 성향을 포함해 전원 법관 출신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가 8 대 0 전원일치로 파면선고했기에 법관의 양식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있었다. 6. 헌법재판소와 경쟁의식이 있는 대법원이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상고기각 판결을 통해 대법원의 위상을 유지하고, 차기 정부에서 법원개혁 요구를 무마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여론의 예상을 깨고 파기환송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A4용지를 손에 들고 판결 이유를 낭독하는 동안 ‘설마 파기자판하고 유죄판결을 직접 선고하려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만일 원심이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판결이었다면 상고기각 판결을 했을 것이고, 이재명 후보 이름은 대통령선거 투표용지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파기환송 후에도 법원은 군사작전하듯 이례적으로 움직였다. 대법원 선고 다음 날 서울고등법원에 기록이 송부되고, 당일 서울고등법원(재판장 이재권)은 2025년 5월 15일 공판기일을 지정했다. 우편송달 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집행관 송달을 촉탁했다. 그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이 피선거권 박탈형을 선고하고, 대법원은 상고이유서 제출기한 20일을 기다리지 않고, 대선일인 6월 3일 전에 상고기각 판결을 선고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그 후 서울고등법원이 공판기일을 대선 후인 6월 18일로 변경해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김주옥 부장판사는 “조희대 대법원장은 반이재명 정치투쟁의 선봉장이 됐다. 과대망상에 기반한 착각이다. 사법부는 대법원장의 사조직이 아니다”고 직격하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 나는 “이번 일련의 재판행위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고, 인혁당 사법살인 이후 국민 신뢰와 법치의 근간을 결정적으로 뒤흔든 사건이니 해당 법관들을 파면해야 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기록했다. 국민 주권 찬탈 시도 판사는 법치주의에 익숙하고 대체로 민주주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의 실현, 즉 기본권 보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는 헌법 원리다. 조희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은 국민대표를 선출하는 기본권인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을 없애는 것으로서, 사법쿠데타이자 국민의 주권 찬탈 시도라 불린다.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판결로 기본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이런 평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주권자인 국민은 ‘당신들이 누군데 내가 대통령으로 뽑으려는 사람을 출마조차 못 하게 막느냐’ 하며 분노했다. 국민이 판결 이유를 살펴보니 대법관들의 인식 수준과 판단 근거가 그리 전문적이거나 객관적이지도 않은 것이 드러났고, 그 속내도 빤히 읽혔다. 대법원판결은 골프장 관련 발언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다수의견은 국민의힘에서 제기한 골프 동반 의혹이 조작됐다는 것으로 해석했고, 반대의견은 국민의힘에서 공개한 사진이 조작됐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결국 대법원은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사건에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에 반해 유례없는 초고속으로 충분한 토론과 숙고 없이 유죄 취지의 판결 선고를 감행한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범죄자를 심판하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한다”고 했다. 다수의견에 선 대법관들은 여론을 전혀 개의치 않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독선과 오만함으로 형사재판을 통해 사회를 지배하려 한 것이다. 더 솔직히 표현하면 10명의 대법관이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이다. 때마침 조희대 대법원장이 상고장 접수 후인 2025년 4월 한덕수, 정상명, 김충식 등과 점심 회동을 하였다는 의혹 보도가 있었다. 고위직 법관일수록 더욱 정치적이고 검찰 친화적인 것이라는 것은 내가 법원에 근무하는 동안 직접 경험했고, ‘법조 카르텔’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조희대 대법원장 특검법 5월 12일 ‘조희대 대법원장 등에 의한 사법 남용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수사대상은 대통령선거에 개입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는지, 제3자의 부당한 개입이나 영향력 행사를 허용하거나 동조했는지 등에 관한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죄, 직권남용죄, 내란죄 등의 범죄 혐의점이 있는지 수사하자는 것이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보면 재판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하고 나머지 대법관들은 그저 재판장이 제시한 절차와 결론에 수동적으로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 초고속 판결을 애써 정당화하려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으로 시작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불과 3~4일 만에 재검표 중단을 명하는 종국재판을 내려 혼란을 종식시켰다”는 극히 논쟁적인 사례까지 논거로 들었다. 과거 사법파동이 있으면 대법원장은 용퇴했다. 대외적인 의견 표명을 극도로 자제하는 판사들 사이에서 사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인식에서였다. 2009년 촛불집회 사건 당시 신영철 대법관이 현직 판사들의 사퇴 요구에도 자리를 지키면서 그러한 ‘아름다운 전통’이 깨졌다. 송경근, 김도균, 김주옥, 노행남 부장판사 등의 주장처럼 조희대 대법원장 등이 사퇴할지는 알 수 없다. 그리하여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회는 권력 분립의 원칙상 정부와 법원을 견제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사법의 독립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법관 탄핵이 정상 작동되는 것이 민주주의에 부합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빛의 혁명이 진행 중이다. 국민은 검찰개혁에 이어 ‘배심제 확대, 판결문 공개, 법조기자단 폐지, 법관의 책임 강화, 법원장 직선제’ 등 광범위한 법원개혁을 원하고 있다. 대법관 증원이 대통령선거 공약일 정도로 중요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를 ‘코트패킹(Court Packing)’으로 부르며 증원을 반대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대법관들이 상고 기록은커녕 재판연구관이 작성한 검토보고서와 의견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도 업무가 벅차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상고허가제가 채택되지 않은 현실에서 효율적이고 정확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라도 합리적 수준의 대법관 증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종이 주인보다 높을 수 없으니, 사법권도 국민의 뜻에 따라 구성되고 행사돼야 할 것이다.
한동수 변호사·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2025.05.23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