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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엘, 오열 속 장제원 빈소 채비 마쳤다···“무너지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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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엘, 오열 속 장제원 빈소 채비 마쳤다···“무너지진 않아”

      래퍼 노엘과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된 장제원 전 의원. 인스타그램 캡처 래퍼 노엘(장용준)이 부친상 조문객을 맞고 있다. 팬들에게 심경도 털어놨다.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빈소는 부산 해운대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4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부산실로암공묘원이다. 노엘은 부친의 빈소를 준비하며 결국 오열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엘은 1일 팬들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부친상에 대한 심경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이걸 이렇게 말하는 게 맞나 싶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쓴다”며 “걱정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쓴다. 당연히 어떻게 괜찮겠냐만 내 걱정은 너무 하지들 말라”고 했다. 또한 “감히 어떻게 헤아리겠느냐 이런 말도 안 해도 괜찮다”며 “잘 보내드리고 오겠다”고 했다. 노엘은 “다행히 어린 나이에 많이 경험해 본 탓에 남들 때문에 내가 무너지거나 할 일 없으니 너무 염려들 말라”며 “날이 너무 좋다. 너희들도 꼭 좋은 하루 보내길 바란다. 사랑한다”고 했다. 노엘은 지난달 31일 새벽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공연을 홍보하는 자필 편지를 올렸다. 부친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시간 이후에 올라온 글이었다. 이를 두고 노엘을 조롱하는 악플 등이 이어지기도 했다. 노엘은 해당 게시물을 비공개 처리한 상태다. 장 전 의원은 이날 오후 11시 40분 서울 강동구 한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장 전 의원이 남긴 유서가 발견됐으며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의원은 부산의 한 대학교 부총장이던 2015년 11월 A씨를 상대로 성폭력을 한 혐의(준강간치상)으로 고소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A씨 측은 이날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열고 고소 경위 등을 설명할 계획이었으나 장 전 의원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이선명 기자 2025.04.02 08:36

    • 임시완, 미얀마 지진피해 아동 위해 3000만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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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완, 미얀마 지진피해 아동 위해 3000만원 기부

      배우 임시완. 사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배우 임시완이 미얀마 지진피해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에 나섰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회장 정갑영)는 31일 “임시완이 미얀마 지진피해 어린이 긴급구호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 기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금은 미야마 지진피해 어린이를 위한 영양, 식수위생, 교육, 보호 등의 긴급구호사업에 전액 사용된다. 임시완은 2019년 강원 산불을 시작으로 매년 재난 발생 때마다 기부를 실천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이 외에도 재난피해세대 지속돌봄사업과 독거어르신 난방비 지원 등 재난 취약계층을 위한 사업에도 꾸준히 동참했다. 임시완은 유니세프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작게나마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며 “더 큰 피해 없이 모두가 안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미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평소 따뜻한 선행으로 우리 사회의 나눔문화 확산을 이끌어 온 임시완 님이 미얀마 어린이들을 위해 소중한 기금을 전해 주셨다. 이번 기금은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공포와 절망에 빠진 지진피해 어린이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될 것”이라며 “어린이를 향한 임시완 님의 진심 어린 애정과 후원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지진 발생 직후인 29일부터 ‘미얀마 지진피해 어린이 돕기’ 긴급구호 캠페인을 시작한 데 이어 31일에는 3억원의 기금을 긴급 지원하며 신속한 지원을 전개 중이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홈페이지(https://donate.unicef.or.kr/myanmar_emergency)에 네이버 해피빈, 카카오 같이가치를 통해 후원에 동참할 수 있다. 유니세프는 현재 지진피해 지역에서 어린이 100만명에게 식수 및 위생용품을, 5세 미만 영유아 200만명에게 비타민A 보충제 등 필수 보건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고 55만명의 어린이 및 보호자에게 심리사회서비스 제공, 92만명의 어린이에게 교육 서비스를 지원하는 긴급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경헌 기자 2025.03.31 08:37

    • 이주승, 이불 가격 듣고 동공 지진 (나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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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승, 이불 가격 듣고 동공 지진 (나혼산)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나 혼자 산다’ 이주승이 봄을 맞이해 새 이불을 찾아 나선다. 28일 방송되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는 ‘딥 그린’에 딥하게 빠진 이주승의 모습이 공개된다. 이주승은 다가오는 봄을 맞아 오랫동안 함께했던 침대 이불을 교체한다. 화사하고 알록달록한 이불들이 가득한 이불 가게에서 이주승은 오직 ‘딥 그린’ 컬러의 이불을 찾기 시작한다. 이주승은 “최근 ‘딥 그린’에 꽂혔다”라며 석양 같은 주황빛 조명과 곳곳에 오아시스처럼 자리 잡은 파란 커튼, 파란 소파 등으로 ‘석양 속의 오아시스’ 콘셉트를 완성한 집에 산소를 제공하는 나무가 있으면 지구처럼 조화롭겠다고 생각했다는 것. 마음에 쏙 드는 이불을 발견한 이주승은 직접 누워 덮어 보는 등 신중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그는 사계절을 위한 구스 솜까지 이불 풀세트를 사기로 결정하는데, 이불의 견적을 확인한 후 동공지진을 일으킨다. “질 좋은 수면을 위한 투자”라며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던 이주승은 각종 할인 혜택까지 야무지게 챙긴다고. 집에 돌아와 새 이불을 세팅한 이주승의 침대는 색다른 분위기를 뿜어낸다고 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이주승은 ‘딥 그린’의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와 볶음밥을 곁들인 오믈렛으로 건강하고 맛있는 한 상을 준비한다. 달걀도 터지고 치즈 가루 뚜껑도 터지는 등 박력 넘치는 요리 현장이 예고돼 기대가 모인다. 특히 부드러운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맹연습 중이라는 이주승의 모습을 본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 보유자 키의 반응은 어떨지 이목이 집중된다. 28일 오후 11시 10분 방송.

      장정윤 온라인기자 2025.03.28 19:03

    • 불어난 체중, 만만한 투수로 꼽혀도 경험은 무시 못해…삼성 후라도, 흔들려도 무너지진 않는다

      야구

      불어난 체중, 만만한 투수로 꼽혀도 경험은 무시 못해…삼성 후라도, 흔들려도 무너지진 않는다

      23일 대구 키움전에서 등판했던 삼성 아리엘 후라도. 삼성 라이온즈 제공 올시즌부터 삼성에서 뛰는 외국인 투수 아리엘 후라도가 이적 후 첫 단추를 잘 뀄다. 후라도는 2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키움과의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선발 등판해 6이닝 8안타 1홈런 1볼넷 5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첫 경기부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고 삼성은 13-5로 승리하며 개막전부터 기분 좋게 웃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후라도는 3회까지 매 이닝 타자를 내보냈다. 1회에는 1사 1·2루에서 루벤 카디네스에게 좌전 적시타를 맞았고 2회에는 선두타자 여동욱에게 솔로 홈런을 내줬다. 그러다 점차 안정감을 찾은 후라도는 4~5회를 삼자범퇴로 처리했고 6회에도 1사 1·2루의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겼다. 초반 흔들림이 있었지만 후라도는 노련함으로 이겨냈다. 2023시즌을 앞두고 키움과 계약하며 KBO리그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후라도는 첫 해 30경기 11승8패 평균자책 2.65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에이스 노릇을 하며 10승8패 평균자책 3.36을 기록했다. 당연히 재계약 대상이지만 키움이 외인 타자 2명 체제로 가기로 하면서 후라도와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를 모두 포기했다. 다수의 팀이 후라도의 영입을 노렸다. 그리고 후라도는 삼성행을 택했다. 후라도는 KBO리그에서 두 시즌의 경험을 쌓은 검증된 투수다. 하지만 비시즌 동안 물음표 역시 적지 않았다. 후라도는 훈련의 강도가 세다고 알려진 삼성 스프링캠프에서 모든 훈련을 소화했다. 그럼에도 후라도는 전지 훈련 기간 동안 다소 체중이 불어난 모습으로 우려를 자아냈다. 의도한 ‘벌크업’이 아닌 모습이었기에 더했다. 포수 강민호는 “후라도가 한 시즌을 소화하려면 그정도 체형이 되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선수단은 믿음을 보냈지만 겉으로 보기에 배가 많이 나온 모습은 다소 의문점을 낳을 법했다. 삼성 아리엘 후라도. 삼성 라이온즈 제공 게다가 후라도는 시범경기 기간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10일 두산전에서는 3.2이닝 5안타 2볼넷 5삼진 3실점했고 두번째 경기인 16일 KIA전에서는 4이닝 10안타 1볼넷 3삼진 6실점(5자책)으로 무너졌다. 더불어 개막전 상대는 운명의 장난처럼 키움이었다. 직전해까지 함께 뛰었던 동료들을 상대해야했다.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키움 송성문, 이주형은 ‘지난해 함께 뛰었던 헤이수스(KT)와 후라도 중에 누가 더 까다로울 것 같느냐’는 질문에 입을 모아 “후라도가 더 만만하다”라고 답했다. 송성문은 “헤이수스가 좌타자에게 강하더라”며 이유를 덧붙였다. 이주형은 “‘라팍’에서 좋은 기억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후라도는 이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고 자신의 피칭을 했다. 삼성은 시즌 전 걱정이 많았다. 기존 외인 에이스 역할을 해야하는 대니 레예스가 스프링캠프 도중 부상으로 이탈했다. 국내 에이스 원태인도 올시즌에는 출발이 조금 느리다. 둘은 3월 말이나 되어야 돌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후라도가 중심을 잘 잡아줘야했다. 다행히 후라도가 호투를 했고 삼성도 좋은 출발을 하면서 계획대로 마운드를 꾸릴 수 있게 됐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개막전이라 부담이 있었을텐데, 초반엔 제구가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곧 페이스 찾았다. 타자들이 도와주자 안정감이 생겼다”고 칭찬했다.

      김하진 기자 2025.03.23 13:22

  •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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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캘린더]간토대지진 조선인을 기리다

      ㆍ전시 - Yellow Memory 일시 9월 1일~12월 31일 장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람료 성인 5000원, 소인 3000원 일본 간토대지진 발생 100년을 맞아 당시 희생됐던 조선인들을 기리는 전시가 열린다. 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예술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고 기억하는 것, 기억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 특히 노랑은 아픔과 상처 그리고 위험, 역사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세월호 희생자의 노랑나비를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 예술작품은 미샤엘라 멜리안의 ‘기억’이다. 이방인에 대한 탐색과 그리움을 모티프로 했다. 작품은 역사와 지리를 가공해 사람들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미디어적, 미적, 성적, 인종적 유토피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담고 있다. 이창원의 ‘두 나비’ 역시 관람객을 기다린다. ‘두 나비’에는 역사를 기록, 증언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의 장소성에 현대미술의 행태로 전달될 자신의 메시지를 담았다. 전쟁이라는 역사적 흐름이 개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관통한다는 점에 착안해 평온한 일상과 전쟁이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하전남의 ‘깨어진 계란 속 씨앗의 꿈’은 작가가 한지로 계란을 만들고 여러 종류의 씨앗들을 모아 넣어 제작한 설치 작품이다. 한지는 한복, 씨앗은 조선인, 계란은 식민본국의 피식민지인으로 일본에 왔던 조선인을 뜻한다. 일본 땅에 정착해 새 삶을 살고자 한 조선인들이 정작 마주한 것은 제도화·일상화된 인권유린이었다. 그들은 한지 계란 속 씨앗처럼 새싹도 피우지 못하고, 피식민지인으로 희생당할 것이라는 운명 역시 피할 수 없었다. 작가는 이들의 꿈을 위로하고자 한다. 02-365-4016 ▲연극 | 배소고지 이야기 일시 9월 7~17일 장소 CKL스테이지 관람료 전석 4만원 전쟁의 비극과 그 숨겨진 기억을 여성의 목소리로 복원한 연극이 온다. 한국전쟁 당시 전북 임실군 옥정호 인근 배소고지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의 비극을 연극으로 되살렸다. 02-6498-0403 ▲무용 | 여자야 여자야 일시 9월 7일 장소 세종예술의전당 관람료 R석 4만원, S석 3만원 일제강점기 신여성 또는 모던걸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무용으로 그려냈다. 그 시대 사회적·문화적 풍토를 다양한 시청각 자료로 되살렸다. 044-850-8989 ▲뮤지컬 | 벤허 일시 9월 2일~11월 19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 관람료 VIP석 170,000원, R석 14만원, S석 11만원, A석 8만원 한국 창작뮤지컬의 수작으로 꼽히는 벤허가 돌아왔다. 웅장한 무대 위 실감나는 전차 경주를 관람하고, 생생한 수중 탈출 장면까지 볼 수 있다. 검증된 작품인 만큼 기대를 모은다. 02-6391-6333

      김찬호 기자 2023.09.01 10:55

    • [오늘을 생각한다]지진 이후 필요한 것

      오피니언 오늘을 생각한다

      [오늘을 생각한다]지진 이후 필요한 것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참혹한 지진으로 이미 4만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재난은 살아남은 자들의 삶도 뒤흔든다. 열악한 환경에 영하의 날씨, 전염병, 추가 여진 등 악조건이 더해져 주택 파괴, 식량 부족, 전력난의 상황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다사다난한 글로벌 상황에서 그 관심이 충분히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단 하루의 지진이 국가를 기로에 서게 만들고, 국민의 삶을 수만 보 후퇴하게 한다. 지진 자체가 자연재난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튀르키예 남동부의 한 도시에서는 단 1명의 사상자도, 건물 붕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전해지며 부실 건축 등 불법이 난무한 시스템이 피해를 확대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지진 피해를 비껴간 도시의 경우 불법 건축물을 용납하지 않은 강경 정책이 참사를 방지했다고 한다. 다른 지역들은 만연한 부패와 불법이 피해를 키웠다. 평시에는 준법사회와 불법사회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위기의 순간에 놓이면 이처럼 어김없이 격차가 벌어진다. 기업 경영에서 컴플라이언스란 “사업 추진 과정에서 기업이 자발적으로 관련 법규를 준수하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시스템”을 말한다. 법률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면, 분쟁이나 사건이 발생한 후 사후적인 관리를 하는 것보다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다. 이런 판단 아래 컴플라이언스 경영(준법경영)을 강조한다.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다. 예방은 최고의 방어책이며, 준법은 예방의 최전선이다. 미국 저술가이자 비평가인 리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국내엔 2012년에 번역 소개됐다)라는 책에서 “거대한 재난은 낡은 사회질서를 작동 불능으로 만든다. 인간은 패배자가 되는 대신 새로운 사회를 실현한다”라고 했다. 재난은 고통스럽고 쓰라리지만, 우리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해주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니,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기회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2020년 섬진강 유역 4개 댐 하류 지역의 수해에 대한 감사보고서가 올해 1월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국가기관의 위법·부당사항이 대규모 침수피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섬진강 수해와 관련한 재발 방지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지도·감독도 미흡하다고 한다. 쓰라린 참사를 기회로 삼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 몇 년 전 구례를 찾아가 만났던 수해 피해자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아직도 그분들은 비가 오는 밤이면 집 안팎을 살피느라 잠을 설치는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을까.

      지현영 변호사 2023.02.17 11:04

    • 사회 특집

      [포커스]포항지진, 재난의 여진은 안 끝났다

      ㆍ피해구제 과정에서 장애인 언급 없어… 아직도 집으로 갈 수 없는 이재민들도 진도 5.4의 포항지진은 주민의 삶을 흔들었다. 지진이 발생한 지 2년 6개월이 지났다. 여진은 그쳤고, 도시는 재건 작업에 돌입했다. 1797명의 이재민은 새 거주지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 사이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소가 부른 ‘인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정부가 지열발전사업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해 지진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포항지진특별법이 제정됐다. 지난 4월에는 국무총리 산하 진상조사위원회·피해구제심의위원회가 출범했다. 남은 절차는 피해구제(금전적 보상) 절차다. 어찌 됐든 포항지진은 공식적으로 ‘종결’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지진 발생 2년 6개월이 지났지만 포항 흥해 체육관에는 이재민이 거주하고 있다. / 반기웅 기자 그날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 지진은 수습됐지만 재난이 끝난 것은 아니다. 포항에는 아직도 ‘2017년 11월 15일’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진 상황에서 대피를 체념했던 장애인은 지금도 건물 밖으로 탈출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재난관리 열외 대상이었던 이들은 피해구제 과정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흥해체육관 대피소 텐트에는 아직도 이재민이 산다. 2년 거주기간이 끝나 철거를 앞둔 컨테이너에도 이재민이 남아 있다. 이들은 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까. 포항지진 당일 저녁 중증 뇌병변장애인 하민국씨(38·가명)는 흥해체육관으로 갔다. 전동휠체어에 앉아 대피소로 온 장애인은 하씨가 유일했다. 체육관은 이재민들로 꽉 들어찼다. 대피용 텐트가 세워지기 전이었다. 체육관 바닥에 침구류와 담요가 깔렸지만 하씨의 전동휠체어는 비좁은 틈으로 오갈 수가 없었다. 체육관에는 장애인용 화장실을 비롯해 편의시설이 없었다. 대피소에 남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대피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 길로 휠체어를 돌려 집으로 갔다. 하씨가 혼자 거주하던 집은 포항시 북구 장성동 필로티 구조의 원룸이었다. 당시 미디어에서는 ‘필로티 구조가 지진에 취약하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지진으로 기둥이 붕괴된 하씨의 집 옆 빌라는 방송 리포트에서 위험한 필로티 구조의 사례로 소개됐다. 지진 피해를 입은 한미장관맨션은 지금도 곳곳이 갈라져 비가 새고 곰팡이가 핀 집들이 많다. / 반기웅 기자 이후 포항에는 여러 차례 여진이 이어졌다. 새벽에 여진이 느껴질 때마다 하씨는 식은땀을 흘렸다. 홀로 남은 방에서 그는 ‘지금 집이 무너진다면 꼼짝없이 건물 더미에 깔려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운 좋게 밖으로 나간다 해도 새벽에는 대피소로 갈 이동 수단이 없다. 대피소에는 하씨의 자리가 없다. 하씨는 탈출을 포기했다. 그날 새벽의 기억은 지금도 하씨를 괴롭힌다. 하씨는 “지진을 겪고 나서 견딜 수 없이 힘들다고 포항시에 말했고, 정부에서 마련한 자리에 나가 당사자 증언도 했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혼자서는 몸을 뒤집지 못하는 소진현씨(35·가명·중증 뇌병변)도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홀로 누워 있는 방이 흔들렸는데 당장 형광등이 떨어지면 피할 도리가 없었다. 전화를 걸려고 음성 연결을 시도했지만 통신도 불통이었다. 지진은 소씨가 2008년 자립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무서운 경험으로 남았다. “집이 흔들리는데 저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거예요. 너무 무서웠어요. 욕하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장애인이 느끼는 지진의 공포는 비장애인보다 강도가 높다. 후유증도 장기화된다. 포항지진 이재민 심리 치료를 했던 김선현 차의과학대 미술치료학과 교수는 “재난 앞에서 장애인은 자신이 철저한 약자라는 사실,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며 “분노와 무력감, 소외감을 느끼고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재난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 장애인 등 안전취약계층 지원 및 안전서비스 확대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다. 2017년 9월, 정부는 9개 관계부처 합동으로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정책 발표를 하면서 ‘장애인은 재난 인지·대응력이 낮고 현재 재난대응 매뉴얼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돼 있다’며 ‘장애인은 재난 안전 사각지대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안전 종합대책은 무엇을 바꿨을까. 장애인을 위한 지역기반 재난대응 안전망 구축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부터 구체적인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가 시작됐다. 안전취약계층을 위한 재난 대피 지원 시스템 개발도 추진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쉽게 말해 재난 상황에서 아파트·빌라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엘리베이터 대신 이용할 이동 장치는 없다. 건물 밖 이동 수단도 열악하다. 지진을 겪은 포항시는 38대의 장애인 콜택시(동행콜)를 운영한다. 2017년 포항지진 이후 8대가 증차됐다. 동행콜 이용을 위해 서비스에 등록한 장애인은 2146명(2019년 기준)이다.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심야에 운행하는 동행콜은 단 1대뿐이다.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의 발은 여전히 묶여 있다. 김성렬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지진을 겪었지만 장애인을 위해 만든 대책은 전무하다”며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말했다. 재난피해구제 과정에서도 장애인은 열외 대상이다. 포항 북구에 거주하는 이선주씨(가명)의 딸 수희 양(14·가명)은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수희는 2017년 지진을 겪은 뒤 일주일간 이불을 덮어쓰고 말을 하지 않았다. 이후 진동이 느껴지거나 지진과 비슷한 단어만 들려도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고 과민반응을 보였다. 이씨는 “수희의 지진 트라우마가 심한데 언어 장애가 있어서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못 하고 있다”며 “정신적 피해가 큰데 피해를 호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수희와 같은 장애인이 입은 정신적 피해는 포항시 지진 피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물리적 재산 피해도 다르지 않다. 지진 피해 규모 파악을 위한 지자체의 형식적인 방문 절차는 있었지만 이후 보상 등 행정 처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보 접근성이 취약한 장애인은 피해 관련 지원 대상에서 누락됐다. 지난 4월 30일 11·15 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이 발표한 ‘포항지진 취약계층 지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진 이후 안전취약계층은 지진 트라우마와 불안감, 강박 증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마철을 대비해 지진으로 갈라진 틈을 메우는 외벽 공사를 하고 있다. / 반기웅 기자 장애인은 ‘포항지진특별법’에서도 주변인이다. 법 시행에 따라 오는 9월 1일부터 피해구제 신청이 시작된다. 그 전에 지진 피해주민들은 피해 규모를 산출해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정보 접근성이 취약한 장애인은 구제절차를 밟기 쉽지 않다. 구제절차를 따르더라도 이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는 인정받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같은 강도의 지진이더라도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정신적 피해가 크다. 하지만 현행 구제절차 과정에서 장애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오롯이 손해사정사의 판단에 따라 피해 여부와 정도가 결정된다. 양만재 포항지진공동연구단 부단장은 “비장애인인 손해사정사의 잣대로만 장애인의 지진 피해를 산정한다면 갈등이 이어질 것”이라며 “장애인의 아픔과 피해를 공감할 수 있는 별도의 전담 소통 창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대피소를 벗어나지 못한 이재민에게도 지진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포항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아파트 가동에 살았던 김상재씨(51·가명)는 2017년 11월 15일부터 흥해체육관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체육관에 등록된 이재민 가구는 64가구. 실제 거주하는 이재민은 10명 내외다. 2년 반 동안 이재민 구호대책을 통해 LH 임대주택 등 새 거주지를 찾아 떠났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이재민들은 코로나19 이후 대피소에 발길을 끊었다. 체육관 대피소에 남아 있는 사람들 김씨는 왜 남아 있을까. 한미장관맨션은 지진 진앙 인근에 있어 피해가 컸다. 김씨의 집 천장과 바닥에 균열이 생겨 비가 새고 곰팡이가 슬었다. 외벽에도 금이 갔고 바람이 들어오는 집도 있었다. 하지만 한미장관맨션은 건축물 안전진단 등급 C를 받았다. 포항시는 아파트 내력벽이 온전하다며 ‘소파(小破)’ 판정을 내렸다. 소파 판정은 지진 피해복구비로 100만원이 지급된다. 김씨는 소파 판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김씨를 비롯한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 별도의 구조진단업체에 조사에서 나온 안전진단 결과는 D등급과 E등급이었다. 비가 새는 집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김씨는 “인재로 삶이 엉망이 됐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큰 보상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피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만 인정해달라”고 말했다. 한미장관맨션 뒤편 이재민 거주 단지인 희망보금자리에도 사람이 있다. 현재 컨테이너 32동 가운데 25가구가 남았다. 살 곳을 따로 마련해두고 오가는 인원을 제외하면 실거주자는 거의 없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만 컨테이너에 남았다. 상주하던 관리 인력도 철수했다. 희망보금자리 거주기간은 당초 2년이었지만 지난해 1년 연장했다. 포항시는 오는 9월 희망보금자리를 철거한다는 계획이다. 사유지를 빌려 조성한 부지여서 더 이상 임대료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자식과 떨어져 혼자 살던 단독주택이 무너진 뒤 컨테이너에서 거주하고 있는 박진수씨(가명)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컨테이너가 철거되면 마땅히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월세로 살던 아파트가 완파돼 희망보금자리로 온 이경수씨(52·가명)는 억울해서 그냥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재난 수습 과정에서 세입자라는 이유로 번번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했다. 이씨는 “세입자도 똑같이 지진 피해를 입고 생계에 타격을 받는다”며 “재난 상황에서조차 차별을 받고 보니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포항·반기웅 기자 2020.06.26 15:29

    • 사회 특집

      [포커스]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트라우마 극복, 정부 신뢰 회복에 달렸다”

      포항지진이 균열을 낸 건 땅뿐만이 아니다. 지역공동체에도 금이 갔다. 한 아파트 주민들은 둘로, 셋으로 갈라섰다. 보상을 둘러싼 분쟁이 이어졌고, 주민 간 불신이 생겨났다. 지진이 발생한 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포항시민은 지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 가운데는 심리 치료가 시급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도 적지 않다. 이들은 왜 지진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포항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하고 있는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60·전 국립부곡병원장)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e메일과 전화로 이뤄졌다. 2017년 11월 15일 지진이 발생한 경북 포항시 흥해읍 도로변 모습 / 경향DB -지금도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분들이 있나. “지난해 11월에 트라우마센터를 열었는데 그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센터를 찾는 분들은 하나같이 소리와 진동에 과민 증상을 보였다. 아랫집 휴대폰 진동 소리를 못 견딘다고 했다. 층간 소음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10명 중 7명은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불안과 우울감이 심해졌고, 지진을 겪고 나서 성격이 변한 사람들도 많았다. 괜찮았던 대인관계가 엉망이 되면서 주변에 사람이 다 떠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혼까지 가는 경우도 흔하다.” -지진이 그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인가. “포항지진은 큰 재난이지만, 지진 자체는 대형 인명사고를 동반한 끔찍한 사고는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진으로 인해 매몰됐다가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사실 충격적인 일을 당한 사람은 그 당시 상황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하지만 포항지진 피해자들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 상상하기도 한다. 지진 자체만 놓고 보면 이렇게 후유증이 오래갈 만한 재난은 아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회복이 더딘가. “불이 꺼질 만하면 외부에서 기름을 붓고 불꽃을 튕긴다. 재난 치료를 하려면 먼저 당사자들이 그 상황에서 단절돼야 한다. 하지만 포항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지진 발생 원인도 자연 지진에서 지열발전으로 인한 촉발지진으로 뒤바뀌지 않았나. 그간 주민들이 의혹을 제기했던 부분들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포항지진 감사결과에서는 관리 소홀이 확인됐다. 지진 특별법 제정을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커진다. 당연히 피해보상에 대해서도 불만이 쌓인다. 더 많이 받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정부가 보상금 배분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은 피곤하지만 지진 이슈를 계속 따라가야 한다. 정부와 포항시가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다 보니 놀란 신경이 가라앉지 않는다. 여기에서 불안함과 분노, 무력감, 우울감이 생겨난다. 이런 분들은 지나간 지진에 매몰돼 현재를 살지 못한다.”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제공 -큰 피해도 없는 지진을 너무 오래 끌고 간다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흥해체육관에 아직 이재민이 있다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잘못된 관점이다. 지진은 포항시민이 만든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만든 것이다. 재난 수습 과정에서 곪아 터진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포항지진의 본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사안을 재단하고 재난 피해자를 삐딱하게 바라본다. 동일본 대지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을 끌고 와서 ‘저 정도 피해면 몰라도 포항지진 피해가 얼마나 된다고 유난을 떠느냐. 아직도 힘들다고 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보상 더 받으려고 쇼한다’는 식으로 공격하는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행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섭섭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까’라고 묻는다. 물론 트라우마 치료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다. ‘센터에 가고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는다고 나아지겠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있다가 떠밀려서 센터에 오는 분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기대 없이 왔는데 도움이 되네요’라고 한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정서가 있는데 시간은 트라우마를 해결할 수 없다. 어떻게든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움직여야 한다.” -포항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지금도 매일매일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재난을 뜻하는 영어 단어 ‘Disaster’는 북극성처럼 방향을 알려주는 ‘별’을 잃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길을 밝혀주는 별이 사라져 막막한 게 재난이란 얘기다.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은 칠흑 같은 어둠에 홀로 놓인 것과 같다. 비장애인이 느끼는 감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공포를 느낀다. 포항에서 상담했던 장애인 한 분은 지진이 일어난 뒤 9층 아파트에서 기어서 내려왔다고 얘기했다. 그 경험이 얼마나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겠나. 비장애인의 지진 후유증은 재난 복구 과정에서 생긴 피로감이 주요 원인이지만 장애인의 지진 트라우마는 지진 그 자체에서 온 것이다.” -이분들은 트라우마 치료를 받을 기회도 없는 것 아닌가. “현실이 그렇다. 장애인은 트라우마센터를 방문하기가 힘들다. 상담도 어렵고 트라우마 치료 장비도 사용하지 못한다. 아마 대부분이 트라우마를 그냥 떠안고 살고 있을 것이다. 당장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어렵다면 재난 이후에라도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기웅 기자 2020.06.26 15:29

  • 레이디경향

    • 무표정 고수하던 ‘셀카 장인’ 지진희, 이번엔 웃었다?

      연예

      무표정 고수하던 ‘셀카 장인’ 지진희, 이번엔 웃었다?

      배우 지진희가 HLB제약의 관절 전문 브랜드 ‘콴첼’과 함께 한 화보. 배우 지진희가 HLB제약의 관절 전문 브랜드 ‘콴첼’의 모델로 근황을 알렸다. 특유의 진중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꾸준히 광고계의 러브콜을 받아온 지진희는 올 초 ‘콴첼’의 모델로 발탁, 최근 광고 촬영을 진행했다. 공개된 사진 속 지진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장 피트로 절제된 분위기를 보여주는가 하면 핑크색 셔츠와 어울리는 화사한 미소를 더해 부드러운 인상을 전했다. 배우 지진희가 HLB제약의 관절 전문 브랜드 ‘콴첼’과 함께 한 화보. 지진희는 광고뿐만 아니라 본업에서도 다양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그는 최근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시즌2에서 육군본부 법무실장 ‘구자운’으로 출연을 예고했다. 시즌2는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D.P.) 준호와 호열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쫓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올해 하반기 공개를 앞두고 있다.

      김지윤 기자 2023.04.26 12:57

    • 연예

      이 남자의 사랑, 지진

      로맨티스트 지진희가 올가을 또 한 번 가슴 아픈 사랑에 빠졌다. SBS-TV 주말드라마 ‘애인 있어요’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아내를 또다시 사랑하게 되는 주인공 최진언을 연기하며 안방극장을 달구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 사랑 앞에 흔들리는 이 남자에게 여심 또한 어김없이 흔들린다. “나중에 피눈물 흘릴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반응은 처음이에요.” 마주앉은 그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드라마 ‘애인 있어요’에서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남자’ 최진언을 열연 중인 지진희(44)는 요즘 시청자들의 뜨겁다 못해 따가운 시선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데뷔 후 여러 작품에서 정통 멜로 연기를 선보이며 로맨티스트로 사랑받아온 그가 이토록 비난의 대상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최진언이 불륜남이기 때문이다. 최진언은 사랑하던 아내 도해강이 차갑게 변해가는 모습을 견디지 못해 바람을 피우고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되는 캐릭터다. 열 살이나 어린 후배에게 마음을 뺏겨 아내를 배신하는 남자,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울면서 매달리는 아내를 매몰차게 거절하는 남자 그리고 결국 기억을 잃은 채 돌아온 그녀를 가슴 절절히 사랑하게 되는 남자. 최진언을 연기하는 그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감정은 복잡 미묘하다. 덕분에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쓰레기’, ‘국민 불륜남’ 등 격한 호칭을 얻게 됐다. “얼마 전 사인회에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여기저기서 욕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도 마주치는 분들이 한마디씩 하세요. ‘왜 그랬어. 그러면 안 되지. 벌 받을 거야’라고요.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어요(웃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만큼 관심을 가져주시는구나 싶어 만족스러워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관심도예요.” 사실 그가 불륜남을 연기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전작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도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정신적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 유재학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친 바 있다. 드러나는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았던 재학에 비해 격렬히 흔들리는 진언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특히 아내 도해강을 앞에 두고 “이 사람 좀 치워달라”라고 읍소한 장면은 진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조차 앗아간 장면이었다. 이쯤에서 그의 변명을 들어볼 때가 됐다.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최진언에 대해 ‘욕먹는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설레는 캐릭터’라고 했다. 진언을 변호하자면 불륜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 드라마의 시작부터 진언의 마음은 오직 사랑이라고 믿어왔다. 드라마 초반, 불륜을 소재로 한 막장 드라마가 아니냐는 질문에 “불륜이 아닌 사랑, 막장 드라마가 아닌 명품 드라마다”라고 못 박을 수 있었던 것은 진언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진언이에게는 해강이밖에 없어요. 해강이를 미워하게 되고 헤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이 됐지만, 후배 설리와의 관계가 부각되다 보니 해강과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묻힌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나쁘게 보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었겠지만 이제 풀어나가고 있는 단계니 좀 더 지켜봐주셨으면 해요. ‘아, 진언이가 저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드라마 ‘애인 있어요’ 캡처. 헤어진 전처와 두 번째 사랑에 빠지다 드라마는 진언이 이혼 후 4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아내 도해강을 다시 만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진언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연민으로 바꾼 것은 지진희라는 배우가 가진 힘이다. 회한과 그리움에 가득 찬 눈빛, 해강을 향한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으며 시청자들을 설득시키고 있다는 평이다. 치명적인 불륜남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했던 진언은 어느새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애틋하게 파고들고 있다. “진언이 해강에게 전화로 ‘그만 자자. 잘 자’라고 했던 장면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바로 옆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사도 대사지만 사실 해강이를 바라볼 때마다 찌릿찌릿할 때가 많아요. 그런 감정들이 시청자분들께도 전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욕하면서 끌리는 캐릭터래요(웃음). 해강에 대한 진언의 마음이 드러나며 밉지만 완벽하게 미워할 수 없는 감정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 진언과 해강을 바라보고 있는 설리와 백석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안쓰러운 마음이에요. 그들도 희생자일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이야기가 얼마나 더 흥미진진해질지 저 역시 기대하고 있어요.” 이번 드라마는 지진희에게 여러모로 도전이 되는 작품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우유부단한 남자, 그로 인해 불륜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남자는 누가 봐도 이미지상 득보다 실이 많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격렬한’ 반응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진언을 선택한 데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감정을 더욱 깊게 만날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연기하고 있단다. ‘불륜남’이라는 꼬리표가 붙을지언정 앞으로도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은 캐릭터에 제한을 두지 않을 생각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좀 더 솔직하게 제 자신을 돌아보고 있어요. 이미지에 대해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지금 제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가슴 절절하고 애틋한 로맨스가 있는 작품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결혼을 약속한 연인 설리를 두고 전처와 사랑에 빠진 진언은 또 한 번 불륜이라는 덫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독할수록 매력적인 사랑, 지진희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2015.10.29 11:25

    • [일본 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지진으로 가족 잃은 슬픔을 사랑과 봉사로

      화제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

      [일본 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지진으로 가족 잃은 슬픔을 사랑과 봉사로

      ㆍ나이팅게일의 현신 김 아이코 ‘아이코 시리즈’는 옆 나라 일본에 살고 있는 아이코(愛子)란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여성이란,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가’의 의미를 찾는 기획 기사다. 일본의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삶을 따라가보며 한국과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들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번 호에는 자신도 지진으로 가족을 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피해를 입은 환자들을 구조한 간호사 아이코를 만났다. 지진의 상처는 지금도 여전히 동일본 대지진, 일본에선 ‘3·11’로 통용된다. 미국 ‘9·11’에 버금가는 재해이자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지상 최대, 최악의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마치 종잇장처럼 무너지던 그 기억, 믿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3·11도 그러했다. 2011년 3월 11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해가 떴고, 또 나른한 오후였다. 오후 2시 26분 18초, 미야기 현 오시카 반도 동남쪽 130km 지점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윽고 해일이 밀려들었다. 빠른 곳은 지진 직후 해일 도착까지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판단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 지진과 해일로 1만8천여 명이 사망 및 행방불명됐고, 수십만 명이 고향을 등져야 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흘렀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한 피해 복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무려 31만 명이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고 있다. 그중 10만 명이 가설 주택에 살고 있다. 피난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체력 악화 및 과로로 작년 8월 시점에서 약 3천 명이 사망했다. 후쿠시마 지역에선 오염수가 매일 3백 톤씩 나오고 있고, 오염 제거 작업을 해도 그때뿐, 금세 방사능 수치는 허용 범위보다 높게 검출되고 있다. 2020년 올림픽 유치 현장에서 아베 총리는 원전 오염수가 ‘언더 컨트롤’되고 있다고 말했지만 과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일본인 모두가 의심하고 있다. 여전히 지진 복구 작업이 한창인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에 살고 있는 아이코를 만났다. 이시노마키 적십자병원 김 아이코(59) 부원장 겸 간호부장은 3·11 당일, 병원에 근무 중이었다. 그녀 역시 지진으로 남편을 잃었다. 그럼에도 환자들을 돌본 김 부원장에게 올해의 나이팅게일상이 수여됐다. 나이팅게일상은 국제적십자사가 주최하는 상으로 사랑과 봉사로 간호를 실천한 간호사를 표창한다. 김 아이코 부원장을 통해,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에 남긴 흔적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녀가 태어난 해, 1954년 김 아이코는 1954년에 태어났다. 일본에선 유달리 영화와 관계가 깊은 해였다. 영화 ‘고질라’가 개봉된 해였고, 세기의 섹스 심벌 마를린 먼로와 남편 조 디마지오가 일본을 방문했다. 한국전쟁으로 전쟁 특수를 얻어 마쓰시타 전기가 첫 전기 청소기를 내놓았고, NHK의 지방 방송국들이 문을 열었다.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남긴 원전 운전이 시작된 것도 같은 해다.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원자력발전소가 세계 최초 가동을 시작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녀는 그런 해에 태어났다. 이름에 ‘김’자가 들어가서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을 듯해요. 자주 받는 편이에요. 남편 성이 ‘김’이에요(일본은 결혼하면 부부가 성을 하나로 통일시켜야 하는데, 주로 남편 성을 따른다). 남편이 스님이에요(일본 불교는 종파에 따라 다르지만 승려도 대부분 결혼을 한다). 오랫동안 절을 운영하고 관리해온 집안으로 성이 ‘김’이에요. 재일동포는 아니고요. 어릴 때부터 꿈이 간호사였나요? 아뇨. 특별히 미래의 어떤 직업에 대한 동경은 없었어요. 그냥 평범하고 소심한 아이였어요. 농가에서 느긋하게 자랐어요. 부모님이 직접 기른 걸 먹으며 두 남동생과 함께. 간호사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일본은 경제 성장기였어요. 자립을 하려면 자격증을 따는 게 유리했고, 교사와 간호사 중에서 간호사의 길을 걷기로 했죠. 간호사가 된 친구가 있어서 대충은 알고 있었어요. 저도 망설이지 않고 간호학교에 입학했지요. 1950년대 중반까지 일본인의 절반 이상이 농업 등 제1차 산업에 종사했다. 특히나 여성의 경우, 60% 이상이 부모나 남편을 따라 농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0년부터 3년간 한국전쟁 특수를 맞은 일본은 고도의 경제 성장기에 접어들었고, 산업구조가 제1차 산업에서 제2차 산업으로 옮겨가며 섬유에서 철강, 기계 산업에 중점을 두는 등 크게 변화했다.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었고, 샐러리맨이 급증했다. 장기고용, 연공서열, 임금체계, 기업 내 조합 등 일본 특유의 고용 관습이 보급, 정착했다. 1970년대에는 여성의 고교 진학률이 상승했고, 도시 인구 집중과 샐러리맨 증가로 인해 그들의 아내가 되는 가정주부 또한 급증했다. 1970년대 일본은 20, 30대 여성의 대부분이 가정주부였고, 출산과 육아를 끝낸 30대 후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매우 활발히 이뤄졌다. 후생노동성은 세탁기 보급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분석한다. 1957년에 20%이던 세탁기 보급률이 1970년에는 91%까지 치솟자, 빨래에서도 육아에서도 어느 정도 해방된 여성들이 집 밖으로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이다. 김 아이코는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이시노마키 시의 간호학교를 나와 간호사가 됐다. 당시 여성이 독립해 손을 떼지 않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로는 교사와 간호사가 유일했다. 2013년인 현재는 여성도 노력하면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교사와 간호사가 안정적인 직종이라는 사실은 그 시절과 변함없다. 3·11 동일본 대지진, 남편을 잃고 환자들을 구하다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는 기타가미 강 하구에 위치하며, 태평양과 근접해 예부터 수운 교통의 요지였다. 난류인 구로시오 해류와 한류인 쿠릴 해류가 만나는 세계 3대 어장 중 하나로 일본 유수의 수산 도시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첫 해일은 10cm였다. 3시 26분 8.6m의 해일이 몰려들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이시노마키 시는 일부 언덕과 산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이 해일 피해를 입었다. 인구 16만 명인 이시노마키에서만 무려 약 3천2백 명이 사망했고, 약 7백 명이 행방불명됐다. 동일본 대지진 최대 피해 지역이다. 당시 피해에 대해 현지 신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땅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심하게 흔들렸다. 방에 있던 어부가 뒤늦게 밖으로 뛰어나왔다. 바위가 무너지고, 한 여인이 소리 질렀다.’, ‘원전에서 반도중앙부 관광도 코발트 라인까지 남은 집은 한 채도 없었다. 담요를 덮은 시체 앞에서 합장했다’ (3월 15일자). 유치원 스쿨버스가 해일에 쓸려가 원아 5명이 사망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지는 아니, 지진도 해일도 믿을 수 없는 그런 하루였다. 그리고 이후로도 여진은 계속됐다. 이시노마키 적십자병원은 지진과 해일 속에서 다행히도 살아남았다.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병원으로 약 3백80명이 수용 가능하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김 아이코 부원장은 근무 중이었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반 진료를 정지하고, 구급 환자 대책으로 병원 태세를 재빨리 바꿔야 한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김 아이코 부원장의 나이팅게일상 수여식 아이코씨가 받은 나이팅게일 상장과 훈장. 상과 훈장을 수여받은 김 아이코씨. 의롭게 간호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나이팅게일 선서식. 지진이 일어났을 때 병원 상황은 어땠나요? 저는 회의 중이었어요. 3월 9일에 규모 5의 지진이 있어서 미야기 앞바다에 지진이 일어난 줄 알았어요. 입원 환자가 3백 명쯤 있었어요. 뭔가 큰 게 왔다는 직감과 동시에 긴급 구호 상태에 돌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재해 레벨을 최고 수준으로 올리고, 재해 피해자 대책으로 병원 태세를 바꿨어요. 사전에 그런 연습을 해두었나요? 네. 지진과 해일을 비롯한 다양한 재해가 일어났을 때 인명 구조를 위해 병원 태세를 바꾸도록 매뉴얼을 만들고 재해 대책 훈련도 하고 있어요. 매달 연수회를 열고, 1년에 1회씩 소방서와 자위대와 함께 대대적인 훈련도 해왔죠. 그날은 이 훈련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1시간 만에 병원 태세를 긴급 구호가 가능한 병원으로 바꿨습니다. 도망가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았나요? 환자들도 입원한 상태고, 지진과 해일로 다친 사람들이 들이닥칠 것을 생각하면 제 안전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재해 대책 마련을 해야겠다는 의무감뿐이었어요. 여진도 계속됐는데 어떤 심정이었는지요? 지진은 계속되고 환자는 점점 증가하고, 매뉴얼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어요. 다행히 전국 적십자병원의 도움으로 버텨낼 수 있었죠. 지진 첫날은 평소와 비슷하게 약 60명의 구급 환자가 실려 왔어요. 그 다음날부터 환자가 크게 늘었죠. 둘째 날은 7백90명, 셋째 날은 무려 1천2백50명이 병원에 실려 왔어요. 이런 상태가 1주일쯤 계속됐죠. 이시노마키의 다른 병원들이 해일로 큰 타격을 받아서 모든 피해자를 저희 병원에서 받아야 했고, 오는 환자는 100% 다 받았어요. 평소 때의 20배가 넘는 환자들로 넘쳐나는 병원은 마치 야전병원 같았다. 구급 환자들의 목숨을 구하는 동안 그녀의 집은 해일에 휩쓸렸다. 남편이 걱정됐지만 눈앞의 환자를 생각하면 병원을 떠날 수 없었다. 지진이 일어난 날은 병원 바닥에서 밤을 지새웠다. 상황이 안정돼 남편을 찾아봤지만,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시체 안치소를 다 돌아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011년 4월 1일, 남편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절 경내의 무너진 건물 아래서 발견된 남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도 끝까지 사람들을 위해 경전을 읽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애도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살려야 했다. 황급히 병원으로 돌아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했다. 김 아이코 부원장의 헌신은 전 세계 언론을 타고 전해졌고, 올해의 나이팅게일상을 받게 된 것이다. 나이팅게일상을 받은 소감은 어떤가요? 저보다 더 활약하신 분들이 많은데 제가 받게 돼 쑥스러워요. 제가 그분들의 대표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려고요. 남편에게도 그렇게 전해주고 싶어요. 둘째 아드님도 간호사가 됐다던데, 어머니를 본받았나보군요. 되려고 해서 된 게 아니고, 들어갈 수 있는 학교의 커트라인이 간호사가 되는 길이었어요(웃음). 삶의 해답은 오로지 열심히 사는 것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느끼신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지진을 경험하고 알게 된 사실이 많아요. 먼저 삶과 죽음은 정말 한순간이라는 점이에요. 그리고 누군가는 대피해서 살아남았는데 가족이 걱정돼 찾아다니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어요. 인간의 본능인 삶에 대한 욕구보다 더 위대한 사랑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운이 좋았던 것이 병원이 높은 지대에 있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는 거예요. 살다 보면 서로가 서로를 열심히 도와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나이팅게일상은 국제 적십자사가 매년 세계각국의 우수한 간호사에게 주는 상이다. 나이팅게일상은 간호사 최고의 영예가 아닐 수 없다. 지진 후 가장 변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변해도 무척 많이 변했어요. 가족이 줄었고, 지진 이후 타 지역으로 떠난 직원들도 있어서 직원도 많이 줄었어요. 제 자신은 좀 외로워요. 저희 집이 해일에 잠겼기 때문에 전혀 사용하지 못하다가 요즘은 2층은 사용할 수 있게 돼서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생겼는데, 많이 적적하죠. 남편은 어떤 분이셨나요? 제가 출산 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정적인 사람이었어요. 두 아들을 남편이 많이 봐줬어요. 제가 야근이 있는 날은 꼼짝없이 아이들을 돌봤지요. 아이들도 저를 많이 도와줬고요. 건강하게 자라준 덕에 제가 일을 할 수 있었던 거죠. 끝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요? 이 절망과 고통을 꼭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 지진과 해일이 어떤 것이었고,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잊지 않기를. 도쿄가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데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있는데, 올림픽을 통해 피해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3·11 동일본 대지진, 그 여파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충격이었다. 원전 사고가 언제 수습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필자가 겪은 바로는 ‘무섭다’, ‘두렵다’라는 단어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머릿속은 그저 멍한 상태로 눈물밖에 나지 않는…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기적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김 아이코 부원장처럼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과연 헤아릴 수 있을까. <■기획 / 이유진 기자 ■글 / 김민정(일본 통신원)>

      2013.11.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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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R규슈와 함께한 지진희의 로맨틱 일본 기차 여행기

      지난 4월 1일 서울에서 부산행 KTX를 타는 것으로 지진희의 기차 여행은 시작됐다. 다음날 부산에서 배를 이용해 쓰시마에 닿은 그의 여정은 4월 6일까지 알차게 이어졌다. 일본의 철도회사 JR규슈와 함께 일본을 속속들이 둘러보고 돌아온 지진희가 직접 쓴 여행기를 보내왔다. (편집자 주) 고속선 ‘비틀’로 더욱 가까워진 일본 배를 타고 일본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 행사차 일본에 갔을 때 현지 관계자로부터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고속선 ‘비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이런 정보를 보다 많이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일본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 이러한 좋은 루트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한국에서 일본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한국을 많이 찾을 테고 자연히 양국의 관광문화 교류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드디어 쓰시마에 도착했다. 어떻게 아셨는지 일본 팬들이 히타카쓰 항까지 마중을 나와 환영을 해주어 기분 좋게 처음으로 ‘대마도’를 밟았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1 대마도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미우다 해수욕장. 2 쓰시마 최북단에 위치한 한국 전망대. 쓰시마에서 첫 번째로 들른 곳은 미우다 해수욕장이다. 중간에 잠깐 미우다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정차해서 사진을 찍고 다시 좀 더 이동해 미우다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일본 해안 100선’에 선정됐을 정도로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특히 해변가의 고운 천연 모래와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자아내 마음이 참 고요해졌다. 이곳은 자연 휴양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청정 바다와 천혜의 숲을 자랑하는 대표 관광 명소다. 우리가 방문한 그날은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었지만 오랜만에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니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듯했다. 이곳은 5월이면 기온이 많이 올라간다고 한다. 날씨가 좀 더 더웠으면 물에 발이라도 살짝 담가보았을 텐데 아직은 쌀쌀한 4월, 아쉬운 마음을 접고 해변을 빠져나왔다. 쓰시마 최북단에는 한국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한국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이다. 한국까지의 거리가 불과 49.5km라고 하니 오히려 후쿠오카보다 한국이 훨씬 더 가깝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부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부산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한국 이동통신 기지국의 신호가 잡히기도 한다. 한국 전망대는 설계부터 우리나라에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어쩐지 눈에 익은 외관 역시 한국풍으로 지어졌다. 또 입구에는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가 자리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매우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1 수십 개의 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에보시다케 전망대에서. 2 주위 경관이 무척 아름다운 카미소 호텔 전경.크고 작은 수십 개의 섬들로 마치 잔잔한 호수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에보시다케 전망대도 이곳의 명소다. 날씨가 따뜻하다 보니 사계절 내내 난대성 식물들이 자란다고 한다. 전망대 남쪽으로는 아소 만이 자리하고 있는데, 곳곳의 섬들이 바람을 막아주어 양식의 적지라고 한다. 특히 쓰시마의 특산품, 진주 양식업이 번성했을 정도로 거대한 진주 양식장을 형성하고 있다. 1 멧돼지고기는 고소한 육질로 입맛을 사로잡았다. 2 쓰시마의 대표적 음식인 아나고회.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식도락이 아닐까. 쓰시마에서 유명한 음식이 바로 아나고라고 불리는 붕장어다. 그중 유명하다는 요리점 모모타포를 찾았는데, 사장님과 종업원들이 알아봐주시고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어 친절한 서비스와 좋은 대접을 받고 왔다. 아나고돈부리와 아나고회는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쓰시마 북단에 위치한 일본식 호텔 카미소는 주위 경관이 아주 빼어나다. 호텔 바로 앞으로는 해안이 넓게 펼쳐져 있고 주변의 숲과 어우러진 노란색 외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호텔에 마련된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곳에서는 무척이나 귀하다는 ‘다금바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아서 미각뿐 아니라 시각까지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지금이 제철이라는 방어와 자연산 전복 맛도 일품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멧돼지 고기도 먹어볼 수 있었는데, 처음엔 식감이 질긴 듯했지만 씹을수록 느껴지는 고소한 육질이 별미였다. 예정대로라면 쓰시마에서 하루만 묵고 후쿠오카로 넘어가야 했지만 거센 폭풍우가 발목을 잡았다. 자연의 힘에 의해 볼모가 된 셈이었는데, 그랜드호텔에서 보낸 하루도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테라스로 나가니 무척이나 예쁜 교회 하나와 벚꽃, 뒤로는 바다가 어우러져 동화 속 풍경이 펼쳐졌다. 교회로 보이는 건물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예식홀로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만개한 벚꽃 사이에서 만난 일본의 속살 아침 일찍 쓰시마 공항에서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아름다운 섬 쓰시마를 떠났다. 40여 분을 날아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JR 하카타 시티로 이동했다. 하루 전만 해도 뉴스에서는 온통 강풍 피해 보도뿐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햇빛 쨍한 날씨로 돌아왔다. 드디어 JR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JR 하카타역에서 규슈신칸센을 타고 JR 구마모토역으로 간 후 이곳에서 다시 A렛샤데이코 열차를 타고 미스미역으로 이동했다. ‘A렛샤데이코’ 열차는 작년 10월에 개통됐다고 한다. 열차 개통에 맞춰 새 단장을 한 미스미 역은 이국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풍겼다. 역사를 나서자 마치 열대 남국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차에 몸을 싣고 10여 분을 달렸을까. 메이지 시대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설계됐다는 미스미 항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바닥에 깔린 돌들은 항구가 세워진 메이지 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왔다고 한다. 주변 마을도 참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예쁜 곳이었다. 마침 그때 한 쌍의 예비부부가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예쁜 신부만큼이나 사진도 멋지게 나올 것 같다. 항구를 둘러본 후 기차에 올랐다. 다음 역은 JR구마모토 역으로 목적지는 구마모토 성이다. 현지에 계신 분의 말에 따르면 구마모토 성의 벚꽃은 일본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고 한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벚꽃이 가장 만개할 때라 자연스레 다음 행선지가 됐다. 구마모토 성은 일본의 오사카 성, 나고야 성과 더불어 일본 3대 명성에 들어가며 일명 ‘은행나무성’이라고도 한다. 구마모토 성 꼭대기까지 올라가 성 주변을 살펴봤다. 벚꽃이 만발해 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났다. 이날 저녁 메뉴는 구마모토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 말고기 육회인 바사시로, 다진 생강, 다진 마늘, 잘게 썬 양파 등과 함께 간장을 뿌려 먹는다. 대체로 생고기로 먹는 부분은 지방이 거의 없어 남녀 모두에게 스태미나식으로 좋다고 한다. 여성 독자께 권하는 일본 여행의 백미 벚꽃이 만개한 구마모토를 뒤로하고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이동해 ‘이부스키노 타마테바코2호’로 환승한 후 이부스키로 향했다. 이부스키는 지난해에도 한 번 와본 적이 있다. 이부스키 하쿠스이칸으로 자리를 옮겨 웅장한 외관을 자랑하는 사쓰마 전승관을 둘러봤다. 이곳은 2007년 가을 오픈한 미술관으로 3천여 점의 공예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평소 도예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제작에 나서기도 했던 터라 사쓰마 전승관을 둘러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일본 특유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공예품부터 화려함의 극치라 할 만한 중국 황실의 도자기까지 즐비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내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1 담백한 외관이 은근히 로맨틱한 미스미 역 2 구마모토 성을 가기 위해 거쳤던 구마모토 역. 3 A렛샤데이코 열차 내부의 바에서 누리는 시원한 음료 한 잔의 여유. 4 일본 3대 명성으로 꼽히는 구마모토 성. 5 구마모토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 바사시. 하쿠스이칸의 백수관에는 흑모래 찜질 온천이 있다. 지난해 방문했을 때 흑모래 찜질을 해봤는데, 여행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일정상 구경만 하고 찜질 체험을 해보지는 못했다. 피부 미용에 좋다고 하니 특히 이곳을 방문하는 여성 독자들께서는 꼭 한 번 찜질을 받아보시길 권한다. 이부스키의 흑모래 찜질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다시 가고시마로 돌아가 센간엔을 방문했다. 화산섬 사쿠라지마가 마주 보이는 이곳은 일본의 전통미와 중국, 류큐 문화가 어우러진 시마즈 가문의 별장으로 ‘이소 정원’이라고도 불린다. 탁 트인 정원과 멀리 보이는 사쿠라지마의 경관이 멋있었다. 사시사철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 식물들에 둘러싸여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의 본색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쿠라지마는 원래는 섬이었지만 1914년 화산 폭발로 인해 용암이 흘러내려서 오스미 반도와 연결됐다. 지금도 5천여 명의 주민들은 화산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웃과 공생(?)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등하교할 때마다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해야만 한다고. 피부 미용에 좋다고 소문난 흑모래 찜질을 할 수 있는 공간.시로야마 관광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가고시마 시내와 사쿠라지마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한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이 그림 같은 전경을 바라보면서 노천욕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호텔 지하에 자리한 음식점에서 이 고장의 명물인 흑돼지 샤부샤부로 저녁 식사를 했다. 호텔에서 직접 제조하는 이색 맥주(오렌지맥주, 레몬맥주, 녹차맥주)도 맛볼 수 있었다. 일본인의 생활 깊숙이 자리한 기차 문화를 만나다 원래 여행 둘째 날 돌아보기로 했다가 기상 악화로 무산됐던 일정을 마지막 날 소화하기로 했다. 가고시마에서 출발해 하카타 역에서 하차해 JR 하카타 시티 주변을 구경했다. 후쿠오카와 규슈의 관문이라는 JR 하카타 시티는 2011년 3월 3일 문을 연 이래 규슈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백화점을 비롯한 쇼핑센터들과 일본 최대 규모의 레스토랑 구역인 ‘시티 다이닝 쿠텐’ 등을 갖추고 있어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하카타 역 건물 옥상엔 정원으로 꾸며놓은 ‘츠바메노모리’ 광장이 있다. 아이들이라면 신나는 꼬마 열차를 놓칠 리 없다. 9층에는 열차 전망 스페이스가 마련되어 하카타 역으로 열차가 오고 가는 풍경 등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카타 역사는 각 층마다 특징적인 요소들을 갖춰 각양각층의 고객이 감동과 편안함,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각별하게 배려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내내 내 손을 떠나지 않은 것이 바로 카메라였다. 평소에도 사진에 관심이 많아 직접 찍는 것도 즐기는 편이라 이번 일본 기차 여행에서도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카메라에 가득 담아올 수 있어서 뿌듯했다. 1 일본 공예품의 진수를 엿볼 수 있었던 사쓰마 전승관에서. 2 시로야마 관광호텔 전경. 3·4 저녁 메뉴인 흑돼지 샤부샤부는 이 고장의 명물이다. 일본은 철도 왕국답게 전국적으로 철도산업이 무척 발달되어 있었다. 아울러 현재도 노선 증설, 속도 향상, 신형 차량 도입, 새로운 역 건립 등 개선과 향상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이번 JR규슈 기차 여행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기차와 노선들을 체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앞으로 일본을 찾을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일정상 관광열차라는 발상을 도입한 각 열차들의 테마를 다 즐기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왕이면 여유 있는 일정으로 각 관광열차가 가진 특색과 장점을 마음껏 누리셨으면 좋겠다. 작년부터 생긴 ‘이부스키노 타마테바코’와 ‘아소보이’를 꼭 체험하고, ‘관광열차 왕국 규슈’의 매력을 많은 분들께서 함께 즐기시길 바란다. 츠바메노모리 광장에서 꼬마 열차도 타보았다. 마지막으로 규슈 지역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규슈레일패스를 추천한다. 북규슈레일패스와 전 규슈레일패스 2종류로, 각각 3일권과 5일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슈레일패스 한 장이면 정해진 지역의 모든 열차를 마음껏 탈 수 있어 규슈를 더욱 편리하고 경제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 ●단체여행 상품 문의 코레일관광개발㈜ 해외여행팀(02-2084-7744, www korailtravel.com) ●‘비틀’ 이용 문의 JR규슈고속선㈜(051-469-0778, www.jrbeetle.co.kr) JR규슈의 명물 기차 1 특급열차_ A렛샤데이코 ‘A열차로 가자’라고 불리는 열차 노선으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차창, 로맨틱한 시트커버 등 ‘16세기 아마쿠사 지방에 전해진 유럽 문화’를 테마로 한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전 좌석이 지정석이라 예매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대에 기차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구마모토 역과 미스미 역 구간을 운행한다. 1호차의 A트레인바는 다른 기차 여행객들과 친목 도모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린이를 위한 전용 좌석은 2호차에 마련되어 있다. JR규슈의 명물 기차 2 특급열차_ 이부스키노 타마테바코 남규슈의 중심 가고시마 중앙역과 이부스키를 잇는 열차. ‘이부스키의 보물 상자’라는 뜻으로 상자를 열었을 때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이부스키 지방의 용궁 전설의 한 장면처럼 열차 문이 열리면 물안개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이부타마’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으며, 바다 쪽을 향해 카운터식 회전의자 좌석이 마련되어 아름다운 사쿠라지마와 킨코 만의 절경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JR규슈의 명물 기차 3 특급열차_ 유후인노모리 온천으로 유명해 역사 내에 족욕장까지 갖춘 유후인으로 가는 리조트 특급열차다. 하루 석 대밖에 운행되지 않으며 모든 좌석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 일본 현지인들도 무척 타고 싶어 하는 로망의 기차라고 한다. 고급 원목으로 처리된 바닥은 여행의 낭만을 더한다. 다른 열차들과 달리 천장까지 이어진 넓은 차창은 고원지대에 펼쳐진 아름다운 창밖 풍경을 조망하기에 제격이다. 하카타 역에서 유후인을 지나 오이타까지 운행한다. JR규슈의 명물 기차 4 특급열차_ 아소보이 세계 최대 규모의 아소 칼데라를 통과하는 관광열차로 구마모토와 미야지 구간을 운행한다. 승객의 동심을 자아내는 즐거움이 가득한 장난감 상자처럼 객실을 디자인해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 만점. 기차 외부에는 일본 고양이 캐릭터인 ‘쿠로’가 그려져 있으며 내부에는 하얀 쿠로짱 시트, 나무 공으로 채워진 놀이 풀, 그림책이 가득한 도서실 등 각 객실마다 테마가 있는 놀이동산처럼 꾸며놓았다. 어린이를 배려한 시트가 인상적인 패밀리 차량, 전망 창이 시원하게 열린 파노라마시트, 휴식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 라운지 등 골라서 즐기는 재미가 있다. JR규슈의 명물 기차 5 신칸센 800계(츠바메), 신칸센 N700계(사쿠라) 규슈신칸센은 2004년 3월 신야츠시로-가고시마중앙역 구간으로 부분 개통됐다가 지난해인 2011년 3월 12일 전 노선이 정식 개통됐다. 일본의 첨단 기술이 담긴 집약체인 동시에 전통미를 살린 최고의 열차라는 평을 받고 있다. N700계는 규슈신칸센 사쿠라라는 이름으로 하카타와 구마모토 구간을 운행한다. 팔걸이, 테이블, 차창까지 엄선된 원목을 사용해 세련된 느낌을 준 실내 인테리어에서 일본 장인의 고집이 느껴진다. N700계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날쌘 느낌을 주는 800계는 구마모토와 가고시마 구간을 운행한다. <■글 / 지진희 ■기획&진행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영주>

      2012.06.0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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