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80년대 ‘마피아 대부’ 말데라, 괴한들 총격에 사망···‘미치광이’로 불린 동생은 10년 전 실종... 남서부 도시 그르노블 인근 고속도로에서 차량으로 이동 중이던 장 피에르 말데라(71)가 괴한의 총격을 받아 도망치려 했으나 사망했다. 현지 언론은 괴한 3~4명이 말데라 차량을 추격하다 소총 등 군용...
김희진 기자 2025.03.13 10:36
국제
80년대 ‘마피아 대부’ 말데라, 괴한들 총격에 사망···‘미치광이’로 불린 동생은 10년 전 실종... 남서부 도시 그르노블 인근 고속도로에서 차량으로 이동 중이던 장 피에르 말데라(71)가 괴한의 총격을 받아 도망치려 했으나 사망했다. 현지 언론은 괴한 3~4명이 말데라 차량을 추격하다 소총 등 군용...
김희진 기자 2025.03.13 10:36
국제
450여명 탄 기차에 파키스탄 반군 총격, 최소 10명 사망…77년 분쟁의 비극... 12일(현지시간) 파키스탄 퀘타의 기차역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파키스탄 반군이 열차에 총격을 가하는 과정에서 최소 10명의 시민이 숨졌다. 파키스탄 보안군은 탑승자를 납치해 인질로 삼고...
윤기은 기자 2025.03.12 14:48
국제
몬테네그로 총격 사건 사망자 12명으로…용의자는 자살... 숨진 이들을 기리는 촛불이 놓여 있다. AFP연합뉴스 몬테네그로의 옛 수도인 체티녜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12명이 사망했다. 용의자는 도주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몬테네그로
김서영 기자 2025.01.03 09:16
국제
몬테네그로서 새해 첫날 총격 사건…“최소 7명 사망”... 발생해 경찰과 구급대가 출동했다. AP연합뉴스 새해 첫날 몬테네그로의 옛 수도인 체티녜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최소 7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매체가 전했다. 경찰은 도주한 용의자를 쫓고 있다....
선명수 기자 2025.01.02 07:29
스포츠종합
아버지 등 식구 눈앞에서 총격 사망…비극 겪은 아프리카 젊은이들의 올림픽 출전 ‘꿈’올림픽 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아프리카 젊은이들. 케냐올림픽위원회 총성이 울렸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삼촌도 숨졌다. 불길이 집까지 집어삼켰다. 어머니는 손에 총을 맞은 채 도망쳤다. 소년은 울부짖었다. 그러다가 동생 손을 잡고 뛰었다. 남수단에서 겪은 2011년 참상은 제임스 로키디치(23)에게 여전히 생생하다. BBC는 19일 “아버지가 눈앞에서 총에 맞고 사망하는 장면을 본 소년이 올림픽 출전을 원한다”는 제목으로 로키디치 등 올림픽을 목표로 운동하고 있는 아프리카 젊은이들을 소개했다. 제임스 로키디치. BBC 로키디치는 오른쪽 머리에 화상을 집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는 BBC와 인터뷰에서 “가슴 깊은 곳에는 아버지와 삼촌을 잃은 슬픔이 지워지지 않는다”며 “어머니는 다친 손을 잡고 달아났고, 우린 그날 이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키디치 형제는 국경을 넘어 케냐로 향했다. 현재 북서부 카쿠마 난민캠프에서 약 30만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는 운동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목표는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난민 대표팀(ROT) 출전이다. 지난주 케냐 이텐에서 열린 ROT 선발전에는 육상, 유도, 태권도 선수들이 다수 모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가능성 있는 난민 선수들을 발굴해 장학금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로키디치는 마라톤 영웅 엘리우드 킵초게(케냐)를 우상으로 삼고 있다. 로키디치는 “캠프에 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성공해서 다시 돌아가 그들을 돕겠다. 우리는 팀으로 함께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ROT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처음 등장했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는 카메룬 출신 난민 복서 신디 응감바가 중량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팀 최초 메달을 안겼다. 2026년 세네갈 다카르에서 열리는 청소년 올림픽에도 난민 선수단이 꾸려진다. 이번 선발전에서 돋보인 또 다른 인물은 태권도에 출전한 15세 소녀 로렌스 나무키자다. 로렌스 나무키자. BBC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서 태어난 나무키자는 2010년 갓난아기였을 때 가족과 함께 난민이 됐다. 9남매 중 넷째인 그는 카쿠마에 있는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 안젤리나 졸리 이름을 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 학교에서 태권도를 접한 뒤, 가족을 위해 이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나무키자는 “캠프에서 식량 배급이 줄었다. 16명이 한 집에 사는데 다섯 명 분량 식량만 나온다”며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고생하고 계신다”며 “태권도로 성공해 가족을 해외로 데려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선발전에서 나무키자는 여자 54㎏급에서 세 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태권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여자애가 왜 그런 운동을 하느냐’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그녀는 “태권도를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는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다른 소녀들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선발전은 케냐올림픽위원회(NOC), 케냐육상연맹, UNHCR, 세계육상연맹, 유도 및 태권도 연맹이 공동 주최했다. 케냐 NOC 폴 테르갓 회장은 “캠프에서 벗어나 이틀만이라도 바깥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이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 챔피언이자 현재 ROT 코치인 자넷 젭코스게이는 “이 선수들이 올림픽 결승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기쁨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케냐에는 현재 난민과 망명 신청자 약 82만 명이 있다. 수단 내전, DR콩고 동부 분쟁이 계속되면서 그 수는 늘어나고 있다.
김세훈 기자 2025.02.19 08:09
축구
호날두를 꿈꾼 14세 팔레스타인 소년, 이스라엘 총격에 사망세계적인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꿈꾼 14세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의 총탄에 사망했다. 서남 아시아 대표 언론 알자지라는 7일 “14세 나지 알바바가 최근 헤브론 인근에서 축구하다가 이스라엘 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전했다. 요르단강 서안에 살던 알바바는 “호날두와 같은 선수”가 되는 꿈을 꿨다. 알바바는 키가 크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아 다정하고 배려심 깊은 소년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지난달 3일 친구들과 함께 가족 집 근처 숲에서 축구를 하면서 놀다가 이스라엘 군에 의해 총격을 받았다. 아버지 니달 알바바는 “치킨을 점심으로 먹은 뒤 친구들과 놀겠다고 하고 나갔다”며 “사촌이 다급하게 집으로 뛰어와 아들의 총격 소식을 전했다”고 회고했다. 식구 휴대전화에 있는 나지 알바바 사진. 알자지라 아버지와 삼촌은 급히 숲으로 달려갔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가로막혔다. 아버지는 “내 아들을 보게 해달라”며 외쳤지만, 군인들은 오히려 그를 폭행했다. 그는 손이 묶인 채 40분 동안 땅에 방치됐고 군인들이 나지의 시신을 들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아버지는 “그 순간 내가 본 것이 내 아들이 아니길 바랐다”며 “그가 며칠 전에 사달라고 한 검은 운동화를 보고 아들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법의학 보고서에 따르면, 나지는 골반, 발, 심장, 어깨에 총 네발을 받았다. 그리고 30분간 아무런 의료 처치를 받지 못했다. 나지의 장례식 모습. 알자지라 나지의 장례식은 마을 주민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스라엘 군 폭행으로 부러진 손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 시신을 직접 어깨에 메고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어머니 사마하르 알자마라는 “아들이 떠난 뒤 내 일부가 영원히 사라진 느낌”이라며 울었다. 할머니 인티사르 알바바는 “손자는 마치 30살 남자처럼 모든 일을 알아서 했고, 우리와 함께 밥을 먹으려 하며 우리가 외롭지 않도록 해줬다”고 말했다. 할훌 스포츠 클럽 매니저 나세르 메립은 “나지는 강력한 오른발을 가진 재능 있는 선수”라며 “그는 늘 국제적인 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알바바 죽음에 대한 이스라엘 국방부의 의견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알자지라는 “아버지는 ‘왜 14살 아이를 죽였는가’는 질문은 오늘도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세훈 기자 2024.12.08 06:28
연예
‘동물은 훌륭하다’, 은지원도 경악한 지하철역 멧돼지 출몰+총격전 “너무 무서워”KBS ‘동물은 훌륭하다’가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들로 시청자들을 기다린다. 오는 30일 오전 10시 35분 방송되는 KBS2 예능프로그램 ‘동물은 훌륭하다’ 3회에선 동물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동물은 훌륭하다’에는 지난 1회에 이어 18마리 고양이 구조의 뒷이야기가 공개된다. 이들이 남은 고양이 6마리 구조에 성공할지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구조된 고양이들을 입양할 보호자들에게 보내는 김명철 수의사의 영상 편지가 공개돼 시청자들을 웃고 울릴 전망이다. 또 고지안 훈련사와 김명철 수의사가 각각 현장에 출동해 활약을 펼친다. 고지안 훈련사는 현장에 출동해 본업 모멘트로 MC들과 애니벤저스들을 놀라게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모습은 물론, 도움이 되는 훈련 팁들로 반려인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김명철 수의사도 직접 현장에 나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예정이다. 지난 1회 방송된 ‘보라냥이’의 건강 검진에 발 벗고 나선 김명철 수의사는 구조를 넘어 동물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진료하며 진정성을 더한다. 이에 은지원은 “애프터까지 책임지는 애니벤저스”라고 강조해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동물은 훌륭하다’는 도심 속 출몰하는 멧돼지들의 위험성에 대해 조명한다. 학교 운동장과 주차장, 지하철 등 장소를 불문하고 출몰하는 멧돼지들과 3MC를 놀라게한 총격전 등 포획 현장이 담긴 보디캠이 궁금증을 자극할 예정이다. ‘동물은 훌륭하다’는 다양한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애니캠을 통해 감동과 재미, 일상 속 법률 상식까지 반려문화를 선도하고 대중 인식을 개선하는데 힘쓰고 있다. 유일무이 무공해 동물 전문 프로그램 ‘동물은 훌륭하다’ 3회는 오는 30일 오전 10시 35분 KBS2에서 안방극장에 배달된다.
손봉석 기자 2024.11.29 18:32
생활
트럼프 골프 치던 클럽 인근서 총격…경호국 “트럼프는 안전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본인 소유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중 두번째 암살 시도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치지 않았고, 사법 당국은 도주하던 용의자를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경호국(SS)과 현지 경찰에 따르면 15일 오후(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있는 트럼프 소유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 인근에서 총격이 발생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골프를 치던 중 경호국 요원이 무장한 용의자를 발견해 사격했다. 한 남자가 골프장 밖에서 울타리를 통해 AK 유형 소총의 총구를 들이댔고,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몇 홀 앞서 가고 있던 경호국 요원이 이를 포착해 대응했다. 남자는 소총을 떨어뜨리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달아났다. 그는 북쪽으로 도주했고, 골프장이 위치한 팜비치카운티 인근 마틴카운티의 고속도로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골프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골프를 치는 동안 부분적으로 폐쇄된 상태였지만, 울타리 밖에서 골프 치는 사람들이 보이는 지점이 몇 곳 있다고 AP는 설명했다. NBC뉴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 당시 5번과 6번 홀 사이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FBI는 성명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로 보이는 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사건에 대해 보고받았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안전하다고 해서 안도했다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서 “그가 안전해 기쁘다. 미국에 폭력을 위한 자리는 없다”고 규탄했다. 이번 총격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 약 두 달만에 발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진행한 야외 유세 도중 총에 오른쪽 귀 윗부분을 맞아 부상했으며, 수사 당국은 이를 암살 시도로 규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격 직후 지지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은 안전하다면서 “아무것도 날 늦추지 못할 것이다. 난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팀 2024.09.16 06:36
국제
신한은행 미얀마 양곤 지점 직원 총격 중태설신한은행 미얀마 양곤 지점 현지 직원이 31일 오후 5시께 군경으로부터 총격을 당해 위급하다는 소식이 미얀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총상을 당한 직원은 미얀마 여성으로 위독한 상태로 알려졌다. 미얀마에는 신한·KB국민·하나은행 등 주요 금융사들이 진출해 있지만 군부 쿠데타 이후 영업을 최소화하고 있는 상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시간이 늦은데다 현지 통신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실여부를 곧바로 확인하기 어렵다”며 “날이 밝는데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미얀마 양곤 지점 직원이 군경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중태에 빠졌다고 주장한 한 미얀마인이 SNS에 올린 자료 사진 페이스북 캡쳐
#미얀마
박병률 기자 2021.04.01 00:52
국제
애틀랜타 총격 사고는 증오범죄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3월 16일 처음으로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확산 초기에는 코로나19를 독감에 견주며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감당 못 할 수준으로 퍼지자 바이러스의 유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대응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미국 시민들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 8명이 사망한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며 행진하고 있다. / 미네아폴리스|AFP연합뉴스 <상하이 떠나는 마지막 배>의 작가 헬렌 지아는 대통령의 ‘중국 바이러스’ 발언에 1970~1980년대 디트로이트를 떠올렸다. 중국계 이민자인 그는 1970년대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의 공장이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를 만들었다. 당시는 황금기였다. 산업은 날로 번창했고 노조는 강했으며, 노동자들의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6배 많은 10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호시절은 1970년대 말 석유파동과 함께 끝났다. 그를 포함해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정치인과 회사 경영진, 노조의 대표자가 누구의 책임인지를 두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헬렌 지아는 지난해 4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그들은 곧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공의 적, 일본을 찾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중국 바이러스’ 발언이 부채질 동양인은 이내 표적이 됐다. 1982년 중국계 미국인인 스물일곱 살 청년 빈센트 친이 백인 두 사람에게 살해됐다. 친은 결혼을 8일 앞두고 친구들과 술집에서 총각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가해자는 미국 자동차 제조사 크라이슬러의 관리자와 해고 노동자였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석유파동과 정부의 강화된 연비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일본 미쓰비시에서 들여와 브랜드만 바꿔 달은 차종이 그나마 잘 팔렸다. 가해자 백인들은 중국계인 친을 일본인이라 생각하고 “너 같은 꼬마 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해고됐다”고 시비를 걸었다. 이내 싸움으로 번졌고, 가해자 2명은 의식을 잃을 때까지 친을 야구방망이로 때렸다. 사건의 잔혹성에도 가해자들에게는 과실치사죄가 적용됐다. 죗값은 집행유예 3년에 벌금 3000달러가 전부였다. 가해자들은 끝까지 이 사건이 인종차별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헬렌 지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또 다른 빈센트 친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사람들에게 증오를 퍼뜨릴 허가를 줬다”고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1년 내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아시아인들은 공격을 당했다. 최악의 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바이러스’ 발언을 내놓은 지 딱 1년째 되는 날인 지난 3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일어났다. 스물한 살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이 지역 마사지숍 3곳에서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사망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미국 언론은 혐오범죄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점이 가리키는 바는 분명해 보였다. 특히 지난 1년간 아시아계를 표적으로 한 혐오범죄는 폭증했다. 미국 내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사건을 추적하는 단체 ‘스톱 AAIP 헤이트’에는 지난해 3월 19일부터 지난 2월 28일까지 혐오·차별 신고가 3795건이나 접수됐다. 더힐은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최근 연구를 인용해 지난해 미국 대도시 16곳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거의 15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약 40년 전 일이지만 빈센트 친 사건과도 더러 닮은 점들이 있다. 일본인에 대한 불만에 중국계 빈센트 친이 목숨을 잃었다면, 이 사건에서는 희생자의 절반이 한국계였다. 애초부터 분노의 대상 자체가 잘못 설정돼 있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가해자는 끝까지 인종차별을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증오범죄 혐의가 적용돼 종신형이 선고된다면 가석방이 불가능해지는 등 형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수사기관도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보다 ‘성중독’이 원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3월 22일 로이터통신은 로버트 애런 롱이 악의적 살인과 가중 폭행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증오범죄 혐의는 빠진 것이다. 성중독 인정해도 증오범죄는 본질 그러나 전문가들은 롱의 성중독을 인정한다고 해도 증오범죄라는 사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롱은 경찰수사 과정에서 그가 마사지숍을 “제거하고 싶은 유혹”으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그는 3곳의 마사지숍 중 2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 업체 중 일부는 유사 성행위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기록이 있다. 그레이스 카오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이 총격 사건은 비자발적 독신에 대해 여성을 탓하는 남성을 연상시킨다”며 “여성은 거절할 권리가 없는 물건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남성이 스스로가 겪는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여성 혐오범죄의 특징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아시아 여성에 대해 서구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고정관념과 연결된다. 아시아계 미국인을 연구한 카렌 수예모토 매사추세츠 보스턴대학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순종적이며, 작다는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며 “이러한 인종주의는 미 제국주의와 전쟁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도 여러 매체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 미국은 1875년 페이지법을 통해 ‘외설적이고 부도덕한 목적’으로 미국에 오는 아시아 여성의 이민을 제한했다. 잠재적인 매춘부로 본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미국이 아시아지역에서 벌인 군사작전을 통해 꾸준히 유지됐다. 오랜 기간 유지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 혐오가 여느 때보다 위험해 보이는 것은 국가의 지도자들과 주요 매체들이 이 편견을 전략적으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 바이러스’ 발언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자 이를 부인하며 유래를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지지자들 앞에서는 중국 무술 ‘쿵푸’에 빗대 코로나19를 ‘쿵 플루’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보수적인 매체뿐 아니라 CNN의 앵커들도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우한 바이러스’라 불렀다. 중국이 이탈리아에 의료장비를 기증한 것을 두고도 CNN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가디언은 “선전 도구”, 보이스오브아메리카는 “가면 외교”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패션연예 월간지 ‘베니티페어’의 작가 메이 정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총격 사건을 일으킨 롱은 21세기 미국에서 살아가는 백인이다. 이곳은 전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쿵 플루’라 부르고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나라이자, 그 이후 아시아인에 대해 3800건의 폭력이 저질러진 나라”라고 말했다.
이효상 국제부 기자 2021.03.26 12:59
사회 광복 70년 역사르포
[광복 70년 역사르포](9) 5·16쿠데타 첫 총격전-한강대교 남단…넘으려는 자, 막으려는 자 정반대의 군인상이 교차김종필 전 총리(JP)는 2013년 12월 10일 자신의 아호를 딴 운정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하기 위해 여의도 국회를 찾은 적이 있다. 5년 10개월 만에 국회를 찾은 JP는 “국립묘지에 가지 않고 조상이 묻히고 형제들이 누워 있는 고향에 가서 눕겠다. 비석에 ‘영생의 반려자와 이곳에 함께 눕노라’라고 쓰겠다”면서 “회고록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JP는 최초의 중앙정보부장, 국회의원 아홉 번, 국무총리 두 번, 몇 번의 정당 대표를 지냈던 인물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그만큼 역사의 주요 순간을 함께한 인물도 드물다. 그런 인물이 회고록을 안 쓴다는 것은 ‘책임회피’는 물론 후대 역사가들에게 죄를 짓는 행위였다. JP는 생각을 바꿨는지 최근 한 신문에 자신의 회고록을 연재하고 있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JP의 회고록 일부를 인용해보자. “이날은 JP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1961년 5월 16일의 거병은 비밀누설 속에 시작됐다. 출발은 불길했다. 그렇다고 되돌릴 수는 없다. 화살은 활시위를 떠났다. 긴장과 불안, 긴박감과 안도감이 팽팽하게 충돌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 하루는 역사를 새로 쓰는 날이었다.”( 2015년 3월 23일자) 1960년 5월 16일 새벽 4시15분, 해병대와 특전사 등 쿠데타 군을 지휘한 박정희 소장은 총알이 날아오는 이 한강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쿠데타군과 다리에서 대치한 육본 헌병 바로 5·16 쿠데타 당일의 모습이다. 이날이 JP에게만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을까. 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소장은 더욱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5·16 쿠데타에 동원된 병력은 60만 군대 중 불과 3600여명에 불과했다. 주된 세력은 김포 해병대 1여단 1500여명과 역시 김포에 있던 공수특전단 600명이다. 경기 포천에 있는 포병대대는 사실 ‘전시용’이었다. 김윤근 준장이 지휘하는 해병대 1여단은 김포가도와 노량진을 거쳐 새벽 2시30분쯤 한강인도교(한강대교) 남단에 도착했다. 당시 한강다리는 기차가 다니는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 단 2개뿐이었다. 따라서 트럭으로 병력을 이동시키려면 한강인도교를 건너는 방법밖에 없었다. 공수특전단 역시 비슷한 시간, 한강인도교에 합류했다. 그런데 30예비사단에서 ‘거사계획’이 누설된 것이다. 장도영 참모총장은 육본 헌병대에 “반란군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거사에 참가하기로 했던 이백일 작전참모(중령)는 야산으로 도주했다. 박정희 소장은 새벽 2시30분 한강인도교로 달려갔다. 육본 헌병들이 한강에 트럭 7대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쿠데타군의 도심 진입을 막고 있었다. 박 소장은 용산에 있는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고, 남산 KBS 방송국, 태평로 국회와 중앙청을 접수해야 했다. 시간은 흘렀다. 박 소장은 더 이상 이곳에서 지체할 수 없었다. 양측의 첫 총격전이 발생했다. 해병 6명과 헌병 3명이 부상했다. 쿠데타군은 트럭으로 막아놓은 바리케이드를 뚫었다. 하지만 쿠데타군은 한강인도교 중간에 친 바리케이드와 또 맞닥뜨렸다. 이 대목에서 JP는 회고록에서 “박 소장은 차에서 내렸다. 헌병대 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박 소장은 무시한 채 다리 위를 앞장서 걸었다. 그 장면은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와 침착한 솔선수범이었다. ‘나를 따르라’는 박 소장의 결의는 극적으로 실천되고 있었다”고 기술했다. JP는 당시 상황을 매우 정밀하게 기술하고 있지만 실은 JP는 당시 현장에 없었다. JP는 그 시간, 인사동 광명인쇄소에서 혁명공약을 인쇄하고 있었다. 따라서 JP의 기술에는 약간의 ‘과장’이 섞였을 것이다. 아무튼 한강인도교를 건너 광명인쇄소로 달려온 박 소장은 JP에게 “한강다리를 건너는데 헌병들이 쏜 총알이 막 날아와. 나는 지프에서 내렸지, 그리고 다리를 걸어서 건너갔지. 이쪽에서 응사하니까 잠시 후 헌병대가 싹 사라졌어”라고 말했다. 육본 헌병들이 총격에 겁을 먹고 도주하면서 한강인도교 방어선이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새벽 4시15분 쿠데타군은 무사히 한강인도교를 돌파해 조용히 서울시내로 진입, 중앙청을 접수했다. 그리고 해병대 1개 소대는 남산, KBS 라디오 방송국을 점령하고 새벽 5시 이른바 혁명 취지문을 발표했다. 한강을 넘은 쿠데타군이 5월 16일 아침 태평로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건물) 앞을 장악,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1년 5월 18일 중앙정보부장 김종필 중령이 외신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총격전에 허무하게 무너진 방어선 결국 5·16 쿠데타 전개과정에서 부상자 9명만 나왔을 뿐 사망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과거 여러 무신의 난을 보면 수십~수백명의 문신이나 신하가 죽임을 당했다. 또 한참 후 일어난 12·12 군사반란에서도 총격전으로 여러 군인이 전사한 사례에 비추어 5·16 쿠데타는 매우 이례적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당시 이곳에서 교전하던 헌병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방어했다면… 역사는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5·16 쿠데타를 연구하는 학계의 관심 중 하나가 바로 쿠데타를 언제부터 모의했느냐는 ‘기원’에 대한 논란이다. 이번 회고록에서 JP는 1961년 2월 15일 정군운동을 주도하다 예편한 후 청파동 자신의 집에서 혁명을 결심하고, 2월 19일 대구에 있는 박 소장을 찾아가 “혁명을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2015년 3월 9일) 거사 불과 3개월 전 쿠데타를 결의했다는 것이다. 과연 3개월 만에 국가를 전복하는 거사를 모의할 수 있었을까. JP는 5·16 쿠데타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1961년 5월 18일 외신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키려는 생각은 1960년 3월부터였다”면서 “민간정권을 전복시키기로 결심한 9명의 대령과 중령들의 핵심 그룹 가운데 자기도 끼여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육군 중령으로 중앙정보부장직에 있던 JP는 “한국의 영관급 장교들은 독재자 이승만씨가 실각하기 한 달 전부터 군사혁명을 계획하기 시작했다”면서 “그러나 계획은 이 정권을 전복시킨 바 있는 역사적인 4·19 학생혁명 봉기 때문에 좌절됐었다”고 말했다.( 1961년 6월 5일자) 이는 JP의 지금 발언과 시차가 많다. 1960년 3월부터라면 쿠데타 준비기간이 1년 2개월로 주도면밀하게 준비됐다는 것이다. 제2공화국 장면 정권 출범(1960년 8월 23일) 불과 6개월 전이다. 5·16 쿠데타의 명분으로 드는 ‘장면 정권의 무능’을 검증하기에 6개월은 너무 짧은 기간이다. 또 쿠데타의 명분으로 드는 ‘무분별한 통일논의’는 4·19혁명 1주년을 맞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는 점에서도 쿠데타의 명분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 5·16 주체세력의 쿠데타 논의는 훨씬 이전부터라는 주장과 연구도 많다. 성균관대 명예교수 서중석은 1960년 9월 10일 김종필을 비롯한 영관급 정군파들이 현석호 국방부 장관을 면담하러 갔다가 못 만나고 돌아온 그날 충무장에 김종필, 김형욱 등 9명이 모여 쿠데타를 결의했다고 밝혔다. 9월 10일이면 장면 정권이 출범한 지 불과 18일 만이다. 김동하 장군은 회고록 에서 “1959년 1월 2일 원주에 있는 박정희 소장을 만나 송요찬 1군 사령관을 설득해 거사하자”고 쿠데타를 논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5·16 당시 헌병의 2차 바리케이드가 있던 한강인도교 중지도(현 노들섬)에는 이원등 상사의 동상이 서 있다. 바리케이드 있던 자리는 지금의 노들섬 5·16 쿠데타의 시작이 중요한 것은 ‘장면 정권의 무능과 무분별한 혁신세력의 통일론’이라는 5·16 쿠데타 감행의 명분이 합당한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JP의 최근 증언처럼 불과 3개월 전에 5·16 쿠데타를 결심했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학자는 별로 없다. JP 본인도 55년 전에는 1년 2개월 전이라고 말했다. 쿠데타 직후인 당시 기억이 훨씬 정확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지금 JP는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장면 정권이 아무리 혼란하고 무능했어도 쿠데타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성신여대 교수 홍석률(한국사)은 라는 논문에서 “장면 정권기의 사회적 혼란이 과연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를 완전히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면서 “당시의 사회적 혼란은 민주주의적 틀 안에서 점진적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벌어진 첫 군사 쿠데타의 현장, 한강인도교는 지금 한강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 한강인도교는 일제 강점기인 1938년 준공됐다. 길이 840m, 폭 30m의 이 한강인도교는 일제 수탈과 해방, 한국전쟁 등 민족의 비원을 간직한 곳이다. 특히 한국전쟁 기간, 한국군이 후퇴하면서 저지른 어설픈 폭파로 많은 피란민이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당시 차량이 건널 수 있던 다리가 한 개뿐이었던 한강에는 지금 27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철교 4개까지 포함하면 31개다. 게다가 한강대교는 교통량이 많아 1981년 2월 하류 쪽에 똑같은 모양의 다리를 추가로 준공해 교통량을 두 배로 늘렸다. 육본 헌병의 마지막 바리케이드가 있던 당시 중지도는 지금 노들섬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노들이란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이란 의미로, 바로 노량진을 의미한다. 현재 서울지방항공청의 헬기 이·착륙장과 어린이 체험학습장 ‘노들텃밭’이 있다. 봄을 맞아 유치원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꽃과 채소를 심고 있다. 노들섬 중간에 이원등 상사의 동상이 있다. 1966년 2월 4일 공수특전단 낙하산 침투훈련 중 고장난 동료의 낙하산을 펴주고 자신은 그대로 추락, 순직한 그를 기리는 동상이다. 이원등 상사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살리는 군인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 그러나 바로 이 한강 바리케이드를 넘은 쿠데타 주도세력들은 정권을 잡고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많은 ‘남’을 죽였다. 남을 위해 자신이 죽은 군인과,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인 군인이 이 한강대교 중간에서 극명하게 교차하고 있다.
글/원희복 선임기자·사진/이상훈 선임기자 2015.04.2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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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 총격 용의자는 ‘해상 자위대원 출신’후지TV FNN뉴스는 속보로 아베 전 일본 총리에게 총격을 가한 용의자가 전 해상자위대원이라고 보도했다.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에가 총격을 가한 용의자는 전 해상자위대원 출신 남성이었다. 후지TV 뉴스 보도는 복수의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어 “아베 전 총리를 총격한 야마가미 데쓰야(41) 용의자는 전 해상자위대원”이라 보도했다. 현지 경찰 당국에 따르면 오전 11시 반경 나라 시내에서 거리연설을 하던 아베 전 총리가 배후에서 총격을 당했고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가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아베 전 총리는 심장 마사지를 받고 헬리콥터로 구급 이송되었지만 심폐 정지로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알려졌다.
이유진 기자 2022.07.0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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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日총리 총격…용의자는 42세 일본인 남성NHK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유세 중 총에 맞아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응급 이송됐다. 교도통신 제공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거리 선거 유세 중 등 뒤에서 총격을 당해 쓰러졌다. NHK는 8일 아베 전 총리가 이날 오전 11시경 일본 나라시 긴테쓰 야마토 니시이지 역 앞에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유세하던 중, 두 발의 총성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보도했다. 소리가 난 후 아베 전 총리는 쓰러졌다. 교도통신은 자민당 관계자의 말을 빌어 용의자가 아베의 배후에서 왼쪽 가슴을 향해 총을 쐈다고 보도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총격 소식과 용의자 야마가미 테츠야 검거 소식을 전하고 있는 일본 방송. 나라시 소방국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응급 이송됐으며 심폐정지 상태라고 알려졌다. 아직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없는 상태다. 경찰 당국에 따르면 용의자는 나라시에 거주하는 42세 일본인 야마가미 테츠야(山上徹也)로 살인 미수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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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출산인데…’ 리한나 연인, 총격사건 용의자로 체포첫 출산을 앞둔 리한나의 연인 에이셉 라키가 지난해 있었던 총격 사건 용의자로 체포됐다. 야후엔터테인먼트 캡처 첫 출산을 앞둔 가수이자 뷰티 사업가 리한나의 연인인 래퍼 에이셉 라키가 총격 사건 용의자로 체포됐다. 최근 리한나는 연인 라키과 자신의 고향 바베이도스에 머무르며 휴가 겸 그들의 첫 출산 계획을 세웠으나 라키가 연루된 지난 11월 총격 사건으로 인해 급히 로스엔젤레스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개인 비행기로 로스엔젤레스 국제 공항에 도착했고 에이셉 라키는 수사기관에 의해 현장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총격 사건은 지난해 11월 6일 W 할리우드 인근에서 일어났다. 당시 라키가 지인들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말다툼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총격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라키가 자신을 향해 여러 차례 총을 발사했고 한 발의 총알이 자신의 왼손을 스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총기 사고 발생 직후 라키가 다른 두 명의 남성과 함께 현장을 떠났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들 커플은 첫 출산의 기쁨도 만끽하기도 전에 다양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앞서 한 패션 관계자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리한나가 신발 디자이너 아미나 무아디와 외도 후 남편 라키를 버린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무아디는 SNS를 통해 소문을 부인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현재 리한나와 라키 측은 총격 사건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에이셉 라키는 여러 차례 폭행 혐의로 법적 재판을 받은 바 있으며 2019년에는 폭행 혐의로 스웨덴에서 투옥되기도 했다.
이유진 기자 2022.04.22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