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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기사 2’ LA 찾은 곽준빈-이동휘, 현지 택시기사와 ‘우정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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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기사 2’ LA 찾은 곽준빈-이동휘, 현지 택시기사와 ‘우정 투어’

      ENA-EBS 공동제작 ‘곽준빈의 세계기사식당 2’ 10회 주요장면. 사진 ENA-EBS ENA-EBS 공동제작 예능 ‘곽준빈의 세계기사식당 2’에 출연 중인 곽준빈이 배우 이동휘와 함께 미국 택시 기사와 우정을 쌓는다. 오늘(17일) 방송될 ‘곽준빈의 세계기사식당 2’(이하 곽기사 2) 10회에서는 곽준빈과 이동휘가 영어보다 한국어가 자연스럽고 익숙한 풍경이 반기는 LA 한인타운에서 현지 택시기사와 만난다. 앞서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곽준빈과 이동휘는 미국에서 첫 번째로 만난 택시 기사가 추천한 햄버거 맛집과 베니스 비치의 머슬 비치를 찾아간다. 또한 아내가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 덕분에 K-콘텐츠에 익숙했던 택시 기사는 두 사람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며 친근함을 더했다. 이에 택시 기사와 연락처도 주고받았던 곽준빈은 이동휘가 추천한 칼국수 맛집에서 그를 만나 식사를 함께한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한식을 접해보는 멕시코 출신 택시 기사를 위해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메뉴를 고른 것으로 알려져 그 메뉴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인테리어부터 한국 그 자체인 이 식당은 겉절이, 열무김치 등 직접 담근 김치도 종류별로 준비돼 곽준빈이 “여기가 한국이야? 미국이야?”라며 놀랐다. 이들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포토부스도 찾아가 다양한 포즈로 사진도 찍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곽준빈과 이동휘는 올드카 투어로 할리우드의 감성을 만끽한다. 특히 올드카를 탄 것만으로도 쑥스러워 “진짜 일탈 제대로다”라고 말한 내향인 이동휘는 곽준빈의 주도로 조금씩 분위기에 녹아든다. 이들은 짐 캐리가 성공을 꿈꿨던 멀흘랜드 드라이브에서 도시 전경을 바라보며 이동휘는 윌렘 대포를 롤모델이라고 하고, 곽준빈은 빠니보틀을 꼽았다. 곽준빈과 이동휘의 LA 여행이 담긴 ‘곽기사 2’는 매주 토요일 오후 8시5분 ENA와 EBS에서 동시 방송된다.

      하경헌 기자 2024.08.17 16:11

    • ‘아버지뻘 택시기사 폭행’ 유튜버, 법정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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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뻘 택시기사 폭행’ 유튜버, 법정 선다

      유튜브 영상 캡처 올해 초 아버지뻘 택시 기사를 폭행해 공분을 산 20대 유튜버가 이후로 다수의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서게 됐다. 전주지검 정읍지청은 상해 및 특수폭행, 특수협박,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A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1일 전했다. A씨는 지난 1∼4월 음식점 등에서 깨진 유리컵을 던지거나 철제 의자를 휘둘러 손님들을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가 됐다. 그는 SNS에 성폭행 피해 여성과의 성관계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A씨는 지난 2월에는 전주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고령 택시 기사를 폭행한 사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져 누리꾼 공분을 불렀다. 그는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되레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택시 기사 폭행 문신남’ 등 홍보 문구를 내걸고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이후로도 다른 유튜버와의 싸움 영상, 문신 자랑 영상 등을 올리며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검찰 조사 중에도 수사기관을 농락하는 내용의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등 법질서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정읍지청은 밝혔다.

      손봉석 기자 2024.08.02 03:15

    • 흉기에 찔려 살해당한 택시기사…범인 정체 충격 (용감한 형사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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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기에 찔려 살해당한 택시기사…범인 정체 충격 (용감한 형사들3)

      E채널 제공 ‘용감한 형사들3’에서 택시기사를 죽음으로 내몬 범인의 뒤를 쫓는다. 23일 방송되는 티캐스트 E채널 ‘용감한 형사들3’(연출 이지선) 26회에는 정연우, 남상민, 조남성 형사가 출연해 직접 발로 뛴 수사기를 공개한다. 이날 사건은 한 농수로에 자동차가 시동이 켜진 채 빠져있다는 신고로 시작된다. 확인해 보니 신고된 차량은 택시로, 시동이 켜져 있을 뿐만 아니라 미터기 요금도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운전자와 손님은 없고, 운전석 시트에 혈흔 자국만 남아있어 곧바로 수사에 돌입한다. 주변을 탐색한 결과 택시에서 약 7m 떨어진 수풀에서 흉기에 수차례 찔린 채 사망한 택시 기사를 찾는다. 형사는 야심한 시각에 택시기사를 공격한 범인 찾기에 돌입하고, 택시 안에서 비교적 최근에 찍힌 것으로 보이는 지문을 채취한다. 그중 조수석 오른쪽 뒷자리 문손잡이에서 왼손 지문을 발견한다. 오른쪽에 있는 문을 굳이 왼손으로 닫아 의아함을 안긴 것. 곧바로 왼손 지문의 주인을 찾아내지만, 형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문의 주인이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를 충격에 빠뜨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전말은 ‘용감한 형사들3’ 본 방송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용감한 형사들3’는 매주 금요일 오후 8시 40분에 방송되며,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주요 OTT에서도 공개된다.

      김나연 온라인기자 2024.02.22 08:39

    • ‘세모집’ 김광규 “데뷔 전 택시기사였다, 기본요금 800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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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모집’ 김광규 “데뷔 전 택시기사였다, 기본요금 800원 시절”

      TV CHOSUN 예능 프로그램 ‘세모집-세상의 모든 집’ 베트남에서 한 달 사는데 드는 돈은 얼마일까. 22일 방송되는 TV CHOSUN 예능 ‘세모집-세상의 모든 집’(이하 ‘세모집’) 4회에서는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한 달 살기 좋은 나라 TOP3 하와이, 칠레, 베트남을 랜선 임장한다. 그중 제주도보다 더 저렴한 베트남 한 달 살기의 모든 것이 공개된다고 해 기대를 모은다. 이날 방송에서 소개되는 세 나라 중 베트남은 가장 적은 돈을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생활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교통비는 택시비 기준 서울 기본요금이 4,800원인 반면, 베트남은 1,100원으로 약 1/4 수준이라고. 택시비를 듣고 “우리나라 90년대 초반 같다”라고 말하는 다른 가(家)이드들에게 김광규는 “데뷔 전에 택시 기사를 했다. 당시 기본요금이 800원이었다”고 답한다. 김광규의 놀라운 이력에 가이드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잠시 김광규의 인생 토크가 펼쳐진다고 해 기대를 더한다. 이어 베트남 호이안의 한 달 살기 좋은 집이 공개되고, 고급 리조트 같은 풍경이 가이드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침실 2개, 욕실 3개, 주방, 화장실에 예쁜 공용 수영장과 호수 위 그림 같은 휴식 공간까지 있는 집을 보며 준범 엄마 홍현희는 “베트남은 아이들과 가기 좋은 곳”이라며 감탄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집의 한 달 가격이라고. 여기에 더해 저렴한 물가 덕분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확연히 싼 한 달 생활비가 모두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한다고 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과연 베트남 호이안의 한 달 살기 좋은 집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베트남 한 달 생활비는 얼마일까. 방송은 22일 오후 10시.

      강주일 기자 2023.12.22 09:50

  • 주간경향

    • 사회 꼬다리

      [꼬다리]어느 택시기사의 무례한 질문

      얼마 전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기사가 거리 선거유세를 보더니 구시렁 불만을 쏟아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에 반대하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기를 바라는 듯 내게도 말을 건넸다. 동의 여부를 떠나 적당히 맞춰줬는데 대뜸 “아가씨가 검수완박 이슈도 알아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가씨라는 호칭이 불쾌했고, 아가씨가 검수완박 이슈를 안다고 놀라워하는 걸 보니 기가 찼다. 어디서부터 짚어야 하나 고민하다 아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pixabay 제공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린 건 아가씨라는 호칭 때문에 얼굴을 붉힌 기억이 있어서다. 지역에서 상습 침수지대 문제를 취재하던 때였다. 취재 중 한 농민이 나를 대뜸 ‘아가씨’라고 불렀다. “아가씨,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어요? 아가씨가 넘기엔 턱이 좀 높아요.” 취재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반복되자 듣기가 거북했다. 호칭을 삼가달라고 했다. 그 농민은 정정은커녕 “결혼했어요? 결혼 안 했으면 아가씨지. 남자들도 총각이라고 하면 다 좋아하던데”라고 했다. 강하게 항의를 하고서야 사과를 받았다. 별다른 의미 없이 내뱉은 말들이었으려니 마음을 달래면서도, 이런 경험이 되풀이되다 보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먼지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마치 ‘찌든 때’처럼 아무리 닦아도 잘 닦이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은 2016년 영화 <아가씨>를 개봉하면서 “오염된 단어를 원래의 의미로 되살리고 싶었다(제목을 이렇게 정했다)”고 말했다. 당초 상류계급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부르던 말이 현대에 들어 ‘OO 아가씨’로 쓰이는 것을 두고서다. 호칭에도 ‘맥락’이 있는 법이다. 대통령 부인의 호칭을 놓고 종종 논쟁이 벌어진다. 일부 언론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을 여사나 영부인이 아닌 ‘씨’라고 표기해 독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영부인이라는 용어 대신 여사로 호칭하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정작 일부 기념품에 ‘영부인’이라고 표기해 빈축을 샀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영부인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고 했다. 앞으로 더 지켜볼 일이다. 여사와 영부인이라는 호칭 그 자체보다 반대말이 있는가 여부에 더 관심이 간다. ‘남사’와 ‘영부군’쯤 될 듯하다. 정작 이 단어들은 국립국어원에 등재돼 있지 않다. 굳이 칭할 일이 없어서 단어를 만들 필요조차 없었던 걸까. 영부군을 맞이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단어로 등재하게 될까. 결국 호칭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가는 ‘작업의 산물’이다. 적재적소에 적당한 이름을 사용하는 건 결국 개인의 몫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 구절이 떠오른다. 호칭도 마찬가지 아닐까. 제대로 된 호칭을 부를 때 온전한 존재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호칭에는 존중과 하대, 고정관념, 편견 등이 모두 담긴다. 호칭 다음에 나오는 말까지 종합하면 발화자의 의식을 짐작할 수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아가씨가 검수완박 이슈도 알아요?”라는 질문은 호칭부터 내용까지 모두 부적절했다. 일상생활에서 곧잘 마주치곤 하는 ‘무례함’에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 이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유선희 정책사회부 기자 2022.05.27 13:51

    • [사회]택시기사 허세욱씨 인생스토리

      사회

      [사회]택시기사 허세욱씨 인생스토리

      아무도 그의 분신을 생각 못했나… 혼자 살면서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 지난 4월4일 수술실로 향하는 허세욱씨의 상태는 매우 심각해보였다. “토론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 평택기지 이전, 한·미FTA에 대해 토론한 적 없다. 숭고한 민중을 우롱하지 마라. 실제로 4대 선별조건, 투자자 정부제소건, 비위반제소건을 합의해주고 의제에도 없는 쌀을 연막전술 펴서 쇠고기 수입하지 마라. 언론을 오도하고 국민을 우롱하지 마라.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저 멀리 가서도 묵묵히 꾸준히 민주노총과 같이 일하고 싶다.”(허세욱씨의 유서 중에서) 지난 4월1일 하얏트호텔 안팎은 부산했다. 호텔 안에서는 한·미 FTA 협상단이 막바지 타결을 위해 밀고 당기는 진통을 겪고 있었고, 밖에서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의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후 3시50분 즈음 범국본이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을 때, 전경 한 무리가 호텔 앞쪽의 골목길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한 50대 남성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전경들이 곧바로 달려들어 휴대용 소화기로 진화했지만, 그의 몸은 심한 화상을 입은 후였다. 반FTA를 외치며 분신자살을 기도한 한독택시노조 조합원 허세욱씨(54)였다. 빈민촌 철거 보면서 ‘사회’ 깨달아 허씨는 바로 중앙대 용산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고, 화상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그의 상태는 심각했다. 전체 몸의 63%가 화상을 입었고, 그중 51%는 3도 화상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담당의사는 이 정도 화상이면 사망률이 70~80%나 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본 허씨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의 온몸은 하얀 붕대로 칭칭 감겨 있고,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간신히 숨을 쉴 뿐이었다. 붕대로 감지 못한 목과 얼굴 부분을 살짝 쳐다봐도 절로 눈이 감길 정도로, 화상 피해는 참혹했다. 피부는 원래색을 모두 잃어버리고, 진물로 얼룩졌다. 그리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어야만 했다. 그는 지난 4월4일 1차 수술을 받았다. 허세욱시가 쓴 유서.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등이 참여하고 있는 ‘허세욱분신대책특별위원회’(이하 대책위) 측은 “가족의 동의와 대책위원회의 각서와 서명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면서 “피부 이식수술 결과는 좋은 편이며, 기관지와 폐 등 장기 상태도 대체로 괜찮다”고 설명했다. 허씨의 손과 등 부분에 나타난 괴사된 피부를 벗겨내는 수술과 함께 사체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집도한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 김종현 소장은 “이식할 피부가 모자라 수술을 완전히 하지 못한 상태다”면서 “1주일 정도 경과를 지켜본 뒤 재수술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소견을 전했다. 이번에 필요한 수술비는 약 2천만 원 정도이지만, 앞으로 치료에 필요한 비용은 약 2억 원 정도라고 대책위는 예상한다. 대책위는 허씨의 수술비와 치료비 마련을 위한 기금마련운동에 들어갔다. 허씨의 분신기도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택시기사가 왜 FTA 때문에 분신을 했나?”라는 의문을 가졌다. FTA 타결 협상안에는 택시와 관련된 사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조차 허씨의 소식을 뉴스로 알게 될 정도로, 그의 분신자살 기도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한독택시노조 황규금 위원장은 “분신하기 전날 만나서 40분 정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때도 분신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면서 “전화로 분신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또 황 위원장은 “2005년 인천에서 택시노조원이 분신자살을 했던 적이 있다. 그곳을 다녀왔을 때 허세욱씨는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면서 “아무래도 FTA가 체결되면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한다. 허씨는 FTA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일 2교대의 빡빡한 일정에도 잠을 줄여가면서 촛불집회나 1인 시위 등에 참여해왔다. 그는 한독택시노조 관계자에게 “우선은 FTA 저지 운동에 열심히 참여해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시위에 참여할 정도였다. FTA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FTA 타결이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해 극히 비관적이었던 것이다. 서울로 올라온 후 가족 왕래도 뜸해 그는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어렸을 때 서울에 혼자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는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만 하는 4가구가 모여 있는 다세대주택의 지하 단칸방에 살았다. 주인을 잃은 방문은 잠긴 상태였다. 지난 3월 신림역에서 한·미FTA 저지를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허세욱씨의 모습. 동네에서 만난 한 주민은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면서 “동네에서 그렇게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지인에 의하면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었다. 비키니 옷장 하나와 앉은뱅이 책상이 덩그러니 있는 소박한 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황규금 위원장은 “허세욱씨는 가족이나 사생활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면서 “그가 서울에 아주 어렸을 때 올라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고 말한다. 서울에 올라온 후에는 가족들과 왕래도 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렵게 허씨의 동생과 통화를 했지만 “우리는 일이 터진 후에야 형님이 그런 분이란 것을 알았다.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면서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는 서울에 올라온 후 주로 빈민촌에서 살았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데 바쁜 생활을 하느라 사회활동에 관심을 갖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철거반원과 대항해 빈민운동을 하는 여자 간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허씨는 참여연대와 나눈 인터뷰에서 “1995년 봉천6동 철거촌에 살 때였다. 그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 때였다”면서 “그런데 빈민운동을 하던 여자 간사가 용역깡패들에게 얻어맞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냥 구경만 했다. 그 뒤 많은 걸 깨달았다”라고 사회참여의 계기를 밝혔다. 철거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효순이·미선이 촛불집회, 매향리 운동, 평택대추리 반전평화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리고 노조원들과 함께 관악구에 있는 시설에 ‘사랑의 김장 나누기’ ‘소년·소녀 가장 돕기’ 등의 봉사활동을 해왔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삶을 살았던 것이다.

      2007.04.17 00:00

    • [사회]택시기사 핸들 인생 ‘펑크’ 나겠네

      사회

      [사회]택시기사 핸들 인생 ‘펑크’ 나겠네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게 수입 격감… “법인소속 기사 40%가 신용불량자” 택시업계가 고사위기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 12월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운수사업법 개정 촉구 택시 노동자 결의대회. “하루하루가 죽기보다 더 고통스럽네요. 사는 게 지옥입니다.” “요즘 택시하기 어떻습니까?”라는 물음에 택시기사들은 한결같이 이 말을 되풀이 했다. 힘든 밑바닥 삶을 어렵게 이어가느니 차라리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는 택시업계 종사자들. 그들은 현실의 삶을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채워가고 있다. 그만큼 택시업계가 절박하다는 뜻이다. 한때 택시는 ‘시민의 발’로 일컬어지며 각광을 받았지만 대체운송수단이 늘어나면서 이젠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사실 택시업계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간간이 실상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택시업계는 오히려 여론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택시만 어려운 것이 아닌데 새삼 엄살을 부리냐’는 식이다. 최악 근무조건, 생계비도 못벌어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임모씨(56). 그는 요즘 병마와 싸우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다 실직한 후 택시기사로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6년 동안 택시기사를 하면서 그가 얻은 것은 희귀병인 ‘파킨슨병’이다. 임씨는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성실 하나만은 인정받았다.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아 건강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가 택시를 하면서 온갖 병을 다 얻었다. 스스로 ‘종합병원’이라고 말할 정도다. 파킨슨병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사납금을 채워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임씨는 또 관절염과 위장병까지 앓고 있다. 돈벌이에 나섰다가 돈 대신 병을 얻은 꼴이다. 때문에 임씨는 인생의 황금기를 고통 속에서 쓸쓸하게 보내고 있다. 한 달 병원비도 만만치 않아 얼마 전에는 부인이 식당에 나가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그래도 생활고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 임씨가 겪은 6년간의 택시기사 생활은 택시업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해도 주간 8만8000원, 야간 9만2000원의 사납금을 채우기도 힘겨웠다고 한다. 한 달 운전대를 잡고 그가 받은 월급은 기본급 60만 원을 포함해 100여 만 원. 5~6년 전 200여 만 원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법정 근무시간 8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몸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라도 있어서 쉰 다음 날이면 사납금의 족쇄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결근한 날의 사납금까지 채워 넣거나 아니면 급여에서 차감해야 했다. 때문에 임씨는 하루 200㎞ 이상을 거리에서 보내며 손님을 실어 날랐다. 그나마 손님이라도 많으면 다행, 요즘은 손님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임씨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LPG 가스도 부족해 나머지를 내가 채워 넣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실제 영업용 택시가 하루에 필요한 가스량은 40ℓ 정도인데 회사에서는 25ℓ만 지원한다. 부족분 15ℓ는 본인이 부담하는 현실이다. 냉난방을 하는 여름·겨울철에는 가스 소비량도 그만큼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생존권 사수결의대회를 열고 있는 전국택시노련서울지부 회원들. 택시기사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줄어든 수입만큼 수입확보를 위해 과로운전을 하다보니 덩달아 사고율도 높아졌다. 장기근속자가 줄고 미숙련 운전자가 늘어나는 것도 원인이다. 2004년 발생한 법인택시의 교통사고율을 보면 전년대비 13%가 늘어난 3만7010건이다. 사고율은 전년보다 4.6% 증가한 40.9%로 나타났다. 운행 중인 법인 택시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올해 초 택시 민생투어를 했던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일부 악덕 사업주들은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처리 비용을 택시기사에게 전가하는 일까지 있다”며 “개인택시 자격에 필요한 무사고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고를 감추어야 하는 택시 운전사들의 약점이 개인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살인적인 근무조건에도 택시기사의 생활은 나아지는 게 없다. 하루 10시간 이상 26일의 근무일수를 꼬박 채워도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해마다 사납금과 유가가 오르면서 수입은 줄어들다 못해 쪼그라들 정도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운수업 통계조사 결과’에서도 택시기사의 실상은 참담하다. 운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법인택시기사의 연간급여액이 가장 낮았다. 업종별로는 항공운송업이 5500만 원으로 가장 높은 반면, 법인택시는 864만 원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간으로 따지면 72만 원이다. 현행 법정 최저생계비인 3인 가구 기준 94만 원에 훨씬 못 미친다. 때문에 택시기사의 90%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맞벌이를 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맞벌이 수입으로도 저축과 자녀교육비는 꿈도 꾸지 못한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이하 민택노련) 정부영 홍보부장은 “전체 법인소속 영업용 택시기사의 40%가 신용불량자다”며 “지금 같은 근무조건에서는 택시노동자의 생활도 인권도 없다”고 강조했다. 택시노동자들의 생계형 자살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개인택시나 모범택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월평균 수입은 개인택시 200만 원, 모범택시 250만 원 정도로 파악된다. 개인택시의 경우 영업환경이 나빠지자 최근 시내버스 등으로 전업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개인택시 경력 8년 차인 윤모씨(49)도 시내버스로 옮겼다. 연료비, 수리비, 보험료 등을 감당하기엔 수입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동료 개인택시 기사 상당수도 전직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개인택시가 버스회사 등의 월급쟁이로 전직하는 반면, 모범택시는 일반 중형택시로 전환하는 추세다. 하루 평균 15만 원 대의 수입이 10만 원대로 떨어지면서 차량유지비도 건지지 못할 지경이기 때문. 서울시는 내년까지 모범택시를 2000대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택시기사의 명예의 전당으로 불리는 모범택시까지 붕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택시업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단단하게 지탱했던 기초경제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업으로 농사날품 팔기도 택시업계의 쇠락은 택시의 과잉공급과 대체운송수단의 증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가용의 증가,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의 발달, 대중교통차량 야간 연장운행, 콜밴·대리운전업계 성행 등이 택시업계를 대중 속에서 멀어지게 한 요인이다. 특히 콜밴·대리운전의 급격한 증가는 택시업계에 치명타를 가했다. 업체들의 저가경쟁으로 서울시내 어디든 1만5000원이면 갈 수 있게 되면서 택시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장기적인 경기불황과 내수침체도 택시업계의 발목을 붙잡았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택시보다는 대중교통 이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하루 평균 택시이용 승객은 2000년 이후 4년 사이 15.4%인 212만명이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에서만 10.8%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택시승객은 줄어드는 반면 택시차량은 늘어나는 추세다. 구조조정과 명퇴 등의 명목으로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이 택시업계로 대거 밀려들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택시 면허대수는 지난해 말 24만5924대로 2000년 22만9254대보다 7.2%가 늘었다. 택시수급의 불균형은 택시업계를 옥죄는 또 하나의 족쇄가 되고 있다. 지방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이용객 감소로 인한 사업구역 다툼은 일상사가 되었다. 경기도 일부 지역은 기본급 30만 원에 월차도 없고 가스비도 지원하지 않는다. 사고처리도 운전기사가 책임져야 한다. 때문에 지방 택시기사들은 부업이 일상화됐다. 심지어 농사날품을 팔며 택시 운전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불법 지입제가 암암리에 성행하는 것도 문제다. 지입은 기사가 2000만 원 정도의 지입료를 내고 회사차량을 할당받아 사납금을 제외한 나머지 수입을 챙겨가는 형태다. 불법 지입이 적발될 경우 영업정지 등의 강력한 처벌이 잇따르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성행하고 있다. 택시업계는 위기타개책으로 지난 2년간 잠자고 있는 ‘택시제도개선방안’을 이행하라고 건교부에 요구하고 있다. 법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택시기사들의 ‘도심 막장신세’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건교부가 개선은 뒷전으로 미룬 채 사업휴지기간 연장, 차령연장, 2종 보통면허 택시자격 취득 허용 등 택시사업주들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고 분노하고 있다. 법인택시 운전기사인 최모씨(36)는 “최저 생계라는 것이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이냐. 정부 정책의 실패로 서민경제가 무너지면서 기초생활도 할 수 없다면 누구 책임이냐”며 “최소한 사람처럼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 아니면 다 망한다”고 호소했다. 택시업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밑바닥을 단단하게 지탱했던 기초경제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벌써 내년에는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택시업계는 더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더 이상 이들을 방치할 경우 민생경제의 앞날은 언제나 절망일 수밖에 없다. 정락인〈객원기자〉 pressfree@hanmail.net

      2006.12.26 00:00

  • 레이디경향

    • 화제

      금융계 CEO에서 택시기사 된 김기선씨의 즐거운 인생

      택시기사를 하면서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사람 사는 맛을 느낍니다” 39년 동안 금융인으로 살아온 김기선씨. 그는 몇 년전 CEO의 자리를 마다하고 택시기사가 됐다. 20년전부터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꿈을 예순의 나이에 이룬 그는 요즘 어느 때보다 흥겨운 삶을 살고 있다. ‘행복한 운전사’ 김기선씨와의 해피 토크. 20년 전 택시기사가 되기로 결심 “아니, 이 좋은 일을 왜 안 한답니까?” 금융계 CEO 자리를 박차고 택시기사가 된 김기선씨(61). 사람들이 “사장님이 어떻게 택시기사를 하느냐?”고 물어올 때마다 그는 이렇게 되묻는다. 39년 동안 금융인으로 살았고, 영풍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까지 지냈던 그가 임기 1년을 남겨두고 택시기사를 선택한 건 그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20년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예순이 되면 택시기사 할 거라고 말했어요. 환갑 이후에는 저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살아야겠다 생각했고, 그런 면에서 선택한 게 택시기사예요. 정년 없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고, 많은 사람 만날 수 있는 택시기사가 노년에는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길어봐야 65~70세잖아요. 그런데 택시기사 중에는 여든이 넘은 분들도 많아요. 현재 최고령 택시기사가 여든일곱 살이에요.” 남들처럼 집에서 쉬며 안락한 노년을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김기선씨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는 나이가 들수록 일에 취미를 갖고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은 밋밋한 삶에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활력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택시기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설마 진짜로 하겠느냐’ 였다고 한다. 심지어 오래 전부터 세뇌(?)당해온 가족조차 반신반의했다고. 기사로서 핸들을 잡은 순간에도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얼마 못 갈 것이다, 한두 달 하면 그만 둘 것’이라고 여겼다. 가끔 동창들은 ‘택시기사를 왜 하냐’며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김기선씨는 “5년이나 10년 후에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살 수 있는 놈은 나밖에 없을 거다. 너희는 월급 사장이지만 나는 오너야”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고 한다. 그의 결정에 가족이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가워한 것도 아니었다. 가족이 표현은 안 했지만 어쩌면 자신이 택시기사를 하지 않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김기선씨.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게 사실이다. 택시기사보다 회사 사장이 훨씬 그럴싸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큰아들이 대한항공 부기장인데 한번은 제가 불러놓고 그랬어요. 너나 나나 같은 운전사다, 너가 나보다 좀 빠른 것뿐이지 더 좋은 게 있냐고 얘기하면서 둘이 웃었죠 최근에 제가 책을 냈고, 그 때문에 신문에도 종종 인터뷰가 실리다 보니까 지금은 자식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내는 한술 더 떠요. 보통 남편들이 실직하면 집에서 잔소리만 늘어놓게 마련이잖아요. 전 안 그러니까 ‘우리 신랑 최고!’래요.(웃음)” 함께 택시기사가 된 세 친구 주변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김기선씨는 3년 반째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 6개월 전부터 개인택시를 몰았다는 그는 일이 한결 자유롭고 즐거워졌단다. 그는 택시기사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사는 맛을 느낀다고. “기사식당에서 먹는 된장찌개가 아주 꿀맛이에요. 예전에는 제육볶음이 그렇게 맛있는지 몰랐어요. 나이 들면 밥맛 없고 잠이 오지 않아 고생한다는데 전 밥맛이 너무 달고, 잠도 얼마나 잘 자는지 몰라요. 열심히 일한 자의 행복이 이런 것인가 봐요. 사장으로서 기사가 모는 차 타고 편하게 이동할 때보다 제가 직접 운전석에 앉아 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순간순간 회의가 느껴질 때도 있다. 손님이 없어 빈 택시를 몰 때면 외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들이 여느 직장 생활과 비교할 때 그리 큰 어려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택시는 중노동’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중노동’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주부들이 시아버지 생신 잔치 치르고 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하지만 친정 아버지 생신은 3일동안 잔치를 해도 멀쩡해요. 매끼 남편 밥상 차리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봉사 활동으로 식사 당번할 땐 12시간 일해도 괜찮구요.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면 어떤 일도 힘들지 않아요. 택시기사는 지구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오히려 순간순간 즐거운 일이 더 많아요. 잔재미도 있고, 작은 일이지만 만족도 자주 느껴요. 손님들에게 ‘친절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어도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요. 생활이 좀 어려워 보이는 노인들이 타면 요금도 깎아주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요금 안 받는 것보다 깎아주는 걸 더 좋아해요.(웃음) 외국인 근로자들이 택시를 타면 요금 안 받는다는 기준을 정했는데, 그렇게 할 때마다 제가 더 기분 좋고 뿌듯해요.” 김기선씨가 택시기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동조한 친구가 셋 있다. 모두 그와 마찬가지로 회사 CEO와 간부들이었는데, 그들은 정년퇴임 후 김기선씨와 함께 택시기사가 됐다. 교육을 마치고 택시기사로 현장에서 뛰기 일주일 전 그들은 일종의 결단식 차원에서 전국 일주를 했단다. 그중 한 친구는 안타깝게도 택시기사를 포기했고, 나머지 두 친구만이 택시기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동창 한 명이 더 합류했다고. 김기선씨는 그들과 함께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도 하고, 더욱 친절한 김기선씨는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하고 보니 너무나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지더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요즘 가장 멋있어 보이는 것이 마을버스를 모는 아주머니의 모습이라고. 여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단다. 다음에 만났을 때 어쩌면 그가 푸근하고 친절한 마을버스 기사로 변신해 있을지도…. ‘몸보다 마음이 폼나는 택시기사’ 김기선씨. 그의 즐거운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글 / 신현화 기자 사진 / 유승현

      2005.10.0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