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생로병사의 비밀’ 췌장암의 편견을 깨다

      연예

      ‘생로병사의 비밀’ 췌장암의 편견을 깨다

      KBS 23일 오후 10시 KBS1 ‘생로병사의 비밀’ 948회는 ‘췌장암의 편견을 깨다’가 방송된다. 5년 생존율 16.5%! 전체 암 평균 생존율(72.9%)의 약 1/4에 불과한 수치인 췌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이 현저히 낮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어려워 ‘암 중의 암’으로 꼽히며 공포의 암으로 여겨지는 췌장암. 최근 새로운 진단 기술과 치료법의 발전으로 췌장암도 장기 생존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생사의 경계에서 암을 이겨내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췌장암 환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췌장암의 표준 치료는 물론 혁신적인 최신 연구까지, ‘난치 암’이라는 췌장암의 편견을 깨고, 환자 맞춤의 적절한 치료법을 알아본다. ■ 췌장암 완치를 위한 최선의 치료, 수술 췌장암은 다른 장기나 주변 혈관에 잘 전이되는 성질이 있어 수술이 까다롭다. 당장 수술이 어려운 ‘경계성 췌장암’ 판정을 받았던 이재원씨는 선행 항암 치료를 통해 암 크기를 줄이고 혈관 침윤을 개선한 뒤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회복되면 조그만 바이크를 타고 봄나들이 가는 게 꿈이라던 이재원 씨. 꿋꿋이 치료를 이어가며 수술실에 들어섰는데, 예기치 못한 통보를 받게 된다. 그의 치료 여정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5년 전 폐암을 완치한 문순애씨는 추적 관찰 중, 췌장암 초기 증상인 점액성 종양을 발견해 수술이 결정됐다. 폐암으로 이미 한차례 큰 수술을 겪은 문순애 씨는 수술 부위를 최소화하는 로봇 수술을 선택했다. 췌장암 수술법인 ‘췌·십이지장 절제술’을 소개하고, 췌장암에서 이뤄지는 로봇 수술은 기존 개복 수술이나 복강경 수술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본다. KBS ■ 수술이 어려운 췌장암에도 희망은 있다 수술 불가능한 췌장암 3기를 판정받은 김정숙씨는 항암 치료의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절망했다. 괴로움을 덜어줄 방법을 찾던 끝에 선택한 것은 ‘중입자 치료’.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한 탄소 입자를 암세포에 집중 타격하는 방사선 치료법이다. 기존 방사선 치료보다 정밀도와 치료 효과가 높다. 누구나 중입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데, 중입자 치료는 어떤 환자에게 효과적일까? 췌장암 4기,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서영옥씨는 2년 넘게 일상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서영옥 씨가 받은 ‘맞춤형 항암 치료’는 암의 원인을 유전자 수준에서 분석하고, 암을 유발하는 특정 변이를 전략적으로 표적하는 치료법이다. 표적 항암 치료에 힘써온 서영옥 씨는 최신 정밀 진단 기법인 ‘액체 생검’을 통해 잔존 암세포 유무를 확인할 예정이다. 서영옥 씨는 췌장암 4기를 극복하고, 오랜 항암 치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KBS ■ 고령층의 췌장암, 완치의 비밀은 여든을 넘긴 박대식씨는 췌장암 3기를 진단받고 수술을 거부했다. 췌장암은 재발이 많은 데다 수술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그는 고령의 암 환자가 수술을 감당할 수 있는지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분석하는 ‘노인 포괄 평가’에서 수술을 받아도 좋다는 결과를 듣고 마침내 수술을 결심했다. 3년 전 췌장암 수술을 받은 이훈씨는 현재 추적 관찰하며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췌장암 완치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령의 췌장암 환자가 수술 치료를 받은 뒤 온전히 회복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공포의 암으로 불리는 췌장암, 분명 치료의 길은 있다. 2025년 4월 23일 KBS1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는 완치 의지를 다지며 희망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난치 암’이라는 편견에 가려졌던 췌장암 치료의 새로운 길을 들여다본다. KBS

      손봉석 기자 2025.04.23 19:27

    • 꽈추형 “성 건강, 예방이 먼저”···편견 넘은 기부

      연예

      꽈추형 “성 건강, 예방이 먼저”···편견 넘은 기부

      “성 건강, 편견 넘고 예방으로 접근해야” 유튜브 활동 이어 사회 공헌 확대 의지 지난 17일 기부를 진행한 홍성우 원장(꽈추형). 사단법인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제공 비뇨의학과 전문의 홍성우 원장(꽈추형)이 국내 에이즈 취약계층을 위해 1억원 상당의 콘돔을 기부했다. 유튜브 채널 ‘닥터조물주 꽈추형’으로 대중에 알려진 홍 원장은 이번 기부를 통해 성 건강에 대한 인식 개선과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부는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사단법인 한국에이즈퇴치연맹 본부에서 전달식을 통해 공식 진행됐다. 기부된 콘돔은 향후 연맹을 통해 전국의 에이즈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홍 원장은 “에이즈는 여전히 편견 속에 있으며, 예방을 위한 정보와 도구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보다 많은 이들이 성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예방에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연맹의 활동에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돕겠다”며 외부 활동 참여 의사도 밝혔다. 홍 원장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솔직하고 유쾌한 비뇨의학 정보 전달로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관계자는 “이번 기부는 단순한 물품 전달을 넘어 성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번 활동은 ‘선한 영향력’의 사례로 기록되며, 성 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 형성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선명 기자 2025.04.17 11:40

    • “고윤정, 맨 처음 편견 있었다…이렇게 털털한 배우 없어”(언슬전)

      연예

      “고윤정, 맨 처음 편견 있었다…이렇게 털털한 배우 없어”(언슬전)

      tvN 제공. 신원호 PD가 배우 고윤정을 극찬했다. 15일 오후 1시 30분 서울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 3층에서는 tvN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하 ‘언슬전’) 디렉터스 토크가 열렸다. 현장에는 신원호 PD와 이민수 감독이 자리했다. 이날 신원호 PD는 ‘언슬전’에서 고윤정을 오이영 역에 캐스팅하게 된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신원호 PD는 “사실 고윤정 배우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저렇게 예쁘게 생긴 배우는 이런 태도가 가질 것이다, 하는 편견이 있었으나 사실 처음 보는 캐릭터였다. 털털하다는 표현 많이 쓰지만 이렇게 털털한 배우는 배우 중에서 보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이어 “고윤정 배우는 본인 말투를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그런 말투와 태도가 오이영한테 씌워지면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또 타고난 게 워낙 많고, 외모뿐만 아니라 표정을 제로로 만들어 연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점도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언슬전’은 ‘언젠가는 슬기로울’ 의사생활을 꿈꾸는 레지던트들이 입덕부정기를 거쳐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첫 스핀오프 드라마다. 자타공인 대세로 자리매김한 배우 고윤정(오이영 역)을 비롯해 ‘1408 대 1의 소녀’라는 수식어를 얻은 신시아(표남경 역), ‘폭싹 속았수다’ 등 화제작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강유석(엄재일 역)까지 참여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의 좌충우돌 24시간이 펼쳐질 tvN 새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주말 밤 9시 20분에 방송된다.

      서형우 온라인기자 2025.04.15 14:16

    • ‘어남선생’ 류수영 “한국 음식 맵고 달다는 편견, 깨고 싶었다”

      연예

      ‘어남선생’ 류수영 “한국 음식 맵고 달다는 편견, 깨고 싶었다”

      배우 류수영. 배우 류수영이 한국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전했다. 7일 상암동 스탠포드호텔 서울 2층 그랜드볼룸에서는 JTBC 예능 프로그램 ‘길바닥 밥장사’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파브리 셰프와 함께 ‘길바닥 밥장사’의 수셰프로 나선 류수영은 “전 요리사도 아니고 셰프도 아니다. 그렇지만 해외에 나가니까 한국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밝혔다. 류수영은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정반대에 위치한 나라이다보니 한국 음식에 대한 맵고 달기만 하다는 편견이 있더라. ‘한국에 이런 맛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다양한 레시피를 고민했다. 한국에서 직접 말린 시레기를 가져가기도 했다”며 진심으로 임했다고 전했다. 한편 ‘길바닥 밥장사’는 한식과 레시피에 진심인 이들이 푸드 바이크를 타고 요리하며 지중해의 부엌 스페인을 누비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길바닥 밥장사’는 8일 밤 10시 40분 첫 방송된다.

      강신우 온라인기자 2025.04.07 12:07

  • 주간경향

    • [신간] 여전히 유효한 ‘여성 편견’과의 싸움

      문화/과학 신간

      [신간] 여전히 유효한 ‘여성 편견’과의 싸움

      숨겨진 여성들 케이트 제르니케 지음·정미진 옮김·북스힐·2만2000원 1999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여성 교수 16명이 학교의 차별 정책에 맞서 투쟁한 과정을 담았다. 분자생물학자인 낸시 홉킨스를 중심으로 모인 MIT 여성 교수들은 교묘하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차별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실 크기와 급여 내역 등 각종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를 정량화해 분석한 결과 여성 교수들이 자신보다 낮은 직급의 남성 교수보다 작은 연구실을 배정받고, 같은 직급의 남성 교수보다 적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계 명문대 MIT 전반에 퍼져 있던 여성 차별의 구조를 입증한 것이다. 당시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MIT가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차별을 인정했다”는 기사를 내보냈고, 세계 과학계에선 커다란 반향이 일었다. 해당 사건은 세계 교육기관 내 과학·기술·공학·수학 부문의 여성들이 어떤 편견에 직면해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 사건으로 기록됐다. 사회적으로는 미묘하면서 완고한 새로운 형태의 차별을 처음 인지하게 된 계기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MIT의 조사는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둬 온 여성 종신 교수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며 “조사는 노골적인 괴롭힘이나 협박이 없어도 차별이 얼마나 만연하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매우 명확하게 입증해 상당한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한 저자는 교수들의 투쟁이 현재도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는 “차별은 종종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며 “이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공급망 붕괴의 시대 피터 S. 굿맨 지음·장용원 옮김·세종·2만4000원 미국 경제 전문기자가 공급망 재편 최전선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담았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처 집중화 문제와 기업이 화물차 기사와 철도노동자를 쥐어짜며 재고를 줄인 과정, 육류 가격을 올리고 재난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 방법 등을 밝혀낸다. 2028 거리에서 서점이 사라진다면 고지마 ??이치 지음·양필성 옮김·마인드빌딩·1만8800원 출판계 인사와 작가, 서점 운영자, 문화 평론가 등 전문가 29명을 취재해 일본 서점의 위기를 짚어냈다. 단순한 문제 진단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며, 유사한 위기 상황임에도 고민이 없는 한국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양자역학의 역사 데이비드 카이저 지음·조은영 옮김·동아시아·2만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양자역학을 둘러싼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양자역학과 얽힌 사건을 아인슈타인 등 핵심 물리학자들이 벌인 논쟁과 엮어 소개하며 과학기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색한다.

      김은성 기자 2025.01.29 06:00

    • 성미산마을 30년…자연서 편견 없이 자란 게 ‘좋은 어른’ 될 자산됐다

      사회 표지 이야기

      성미산마을 30년…자연서 편견 없이 자란 게 ‘좋은 어른’ 될 자산됐다

      지난 4월 6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에서 성미산마을 아이들이 손바닥 텃밭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사단법인 ‘사람과 마을’ 제공 1994년 9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현재 성산동에 있음)이 문을 열었다. ‘육아’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가 제시한 방식과는 다른 보육·교육 방식을 고민했던 부모와 교사들이 만든 기관이었다. 이후로 30년,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전국 곳곳(현재 67곳)에 생겨났다. 우리어린이집의 30년 역사는 마을공동체 ‘성미산마을’의 역사이기도 하다. 성미산마을은 우리어린이집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우리어린이집 아이들은 성미산마을에서 자랐다. 30년이면 ‘한 세대’가 바뀌는 세월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녔던, 성미산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됐을까. 먼저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관해 간략히 설명하면, 만 5세 이하 아동들을 돌보는 민간 보육기관(일부 공립)이다. 부모가 출자금과 조합비를 부담한 조합원으로서 어린이집 운영 주체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다른 민간 어린이집들과 차이가 있다. 부모와 교사가 함께 교육 프로그램, 생활 원칙 등을 정한다. 자연 나들이를 통한 놀이 중심 활동, 사교육·선행학습 지양, 친환경 먹거리 제공 등을 원칙으로 한다. ‘터전’(어린이집 공간)에서 아이들과 교사·부모들이 평어(격식을 갖춘 반말)를 사용함으로써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공동육아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는 ‘용감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한다. 어떤 이는 ‘시대 흐름에 못 따라간다’고도 한다. 최근 ‘초등 의대반’을 넘어 ‘유아 의대반’까지 생긴 현실을 반영한 평가 아닐까. 모두가 같은 길을 걸을 순 없다. 과도한 경쟁 풍토 속에서 자란 청소년·청년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들에게 어떤 돌봄과 교육을 제공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공동육아로 자라온 이들의 목소리도 들어봄 직하다. ■“자연에서 자랐던, 편견 없이 자란 경험이 자산” 성미산마을에서 공동육아를 통해 자란 20~30대 청년 7명을 지난 11월 9일과 18일, 성산동의 한 카페에서 차례대로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 11월 18일 전화로 1명을 더 만났다. 성미산마을은 ‘성미산’(성산동 위치)을 중심으로 한 도심 속 생활공동체로 공동육아가 뿌리이자 핵심이다. 성미산 주변에 우리어린이집 외에도 4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협동조합형 참나무·성미산·또바기 어린이집, 위탁 운영형 구립 성미어린이집)이 있다. 초등학생 방과후 돌봄기관인 도토리마을방과후(1999년 설립), 초·중·고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2004년 설립)도 협동조합형 공동육아기관이다. 지난 11월 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한 카페에서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과 초등방과후 ‘도토리방과후’를 다녔던 청년들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혜수씨, 권예림씨, 강한결씨, 손수연씨, 강한얼씨. 김향미 기자 청년들에게 ‘어린 시절 기억’과 ‘공동육아 경험이 삶에 미친 영향’에 관해 물었다. 만 0세 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우리어린이집·도토리방과후를 다녔다는 손수연씨(30)는 ‘성미산’을 기억했다. “그때는 성미산에서 살았다고 할 정도로, 매일 성미산에서 하루를 다 보냈어요. 그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식물, 동물 다 채집하고 다녔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놀거리를 항상 찾았던 것 같아요.” 서울 도심이라고 해서 자연과 가까이 지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말한 자연에서의 경험은 ‘많은 시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수연씨는 미대 입시와 관련한 일화를 들려줬다. 수연씨는 한 대학 실기시험에서 입체도형 ‘구’가 주제로 제시되자 ‘쥐며느리’를 그려 합격했다고 한다. 남들보다 뒤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기술적인 역량은 다소 부족했다는 수연씨는 “그 대학에 최종 합격하진 못했지만 내 삶에 녹아 있는 걸 표현했는데 (실기시험에서) 합격한 걸 보고 내 생각대로 표현하는 게 맞다는 확신이 생겼고, 이후 원하는 대학도 가게 됐다”고 했다. 놀이와 여행도 이들의 기억에 남았다. A씨(34)는 우리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1학년까지 도토리방과후를 다니다 이사를 했다. 그는 새로운 학교에 가니 ‘자신만 아는 놀이’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전래놀이를 많이 했고, 같은 놀이도 많이 변형해서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다른 지역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닌 후 성미산학교를 졸업한 강다운씨(26)는 “성미산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 도보여행도 가고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에 가서 감 수확하는 것도 도와드렸고, 이런저런 여행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어린이집·도토리방과후에 다닌 강한얼씨(30)는 “날마다 모여서 같이 밥 먹고 기차 타고 놀러 가고 터전이랑 마을에서 시장놀이도 자주 했다”며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경험은 진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한얼씨는 말했다. 그는 일반고를 다니다 3학년 때 전학해 제빵을 시작, 현재는 제주의 한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다. “부모님은 거의 처음부터 공동육아를 하신 분들이고요. 제가 학교를 옮길 때도, 제주에서 혼자 살기로 했을 때도 반대가 없었어요.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집안 분위기나 자라온 환경 자체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10년 이상 공동육아 환경에서 자란 강한결씨(28)는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같이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배려하는 걸 익혔던 부분이 좋았던 것 같다”며 “지금은 제빵 일을 하고 있지만 사회복지 분야로도 일해보려고 했는데, 편견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경험이 좋았다”고 말했다. 공동육아기관 다수는 장애 통합 교육을 한다. 다운씨는 “아주 뿌리 깊은 곳에 공동체 의식 같은 게 있어서 어떤 문제를 마주쳤을 때 해결하는 방식에서도 개인과 공동체를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다른 사람들과 어떤 사건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게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학원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권예림씨(28)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말했다. 공동육아기관에서는 아이들이 친구의 부모나 교사를 부를 때 ‘별명’을 부르고 평어를 쓴다. 권예림씨는 “또래들을 보면 보통 어른이나 조직의 상사와 소통하는 걸 어려워하는데 저는 교수님이나 어른들과 소통할 때 조금 편한 부분이 있다”며 “공동육아 하면서 친구 부모님이랑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분들이 저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경험을 하다 보니까 권위적인 문화에 덜 위축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르게 자라온 것에 ‘방황’도···친절한 어른 경험” 이들은 공동육아에서 ‘졸업’한 뒤 중·고등학교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대안학교를 가지 않는 한, 학교에 다니면 학업 스트레스를 피할 길이 없었다. 이 시기를 건널 때 경험은 사람마다 달랐다. 부모님이 마을활동가로, 아기 때부터 공동육아 환경에서 큰 박혜수씨(27)는 “중학교 때까지는 큰 차이가 없었는데 일반계 여고를 다닐 때는 많이 방황했다”며 “친구들과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고 학업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아 부모님을 원망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한결씨도 고등학교 때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했다. 혜수씨는 다만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되돌아볼 수 있었다.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되게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부당한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마을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A씨는 중·고등학교 시기 대안학교를 다녀 대학 입시 압박을 크게 받진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공인 영어시험 점수가 필요해 어학원을 다니면서 ‘기한 내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정해놓고 짜인 틀대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식’의 공부를 처음 해봤다. ‘한 번 죽어라 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기조차 어색하고 힘들었다”며 “그래서 제가 자라온 환경이 ‘울타리’라면 보호하는 울타리인지, 가두는 울타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이들이 부모가 되면 공동육아를 선택할까. 한결씨는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 점점 뭔가 엄청나게 빨리 변하고 있어서, 옳고 그른 것을 정할 순 없지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한다”고 했다. 다운씨는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가끔 ‘우리가 어른이 돼서 아이를 낳더라도 부모들만큼 돈을 벌지 못하면 성미산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란 우스갯소리도 했다”고 했다. 공동육아기관은 공공 보육·교육기관과 비교해 추가 비용이 많다. 어린이집에서 교사 1명이 맡는 아동의 수는 국공립보다 훨씬 적고, 친환경 먹거리로만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기에 인건비, 식재료비가 많이 든다. 우리어린이집이 생길 때 6세였던 B씨(35)는 25년간 성미산마을에서 살았다. 결혼 후 성미산마을을 떠난 B씨는 현재 만 3세 아이를 둔 엄마다.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낼까 고민하다 “맞벌이로서 부모 참여 활동이 많아 어렵겠다”고 생각해 보내지 않았다. 공동육아를 두고 지금도 계속 고민한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이가 그냥 원에 가는 게 아니라 어른들,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같이 커갈 수 있는 동지가 생긴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아이에게 그런 집단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성미산마을과 같은 공동육아 환경에서 자라면 부모와 교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른과 ‘비스듬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서로의 가정을 방문해 함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품앗이 돌봄을 뜻하는 ‘마실’이라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하다. 부모 아닌 다른 어른과 관계를 맺은 경험은 현재까지도 힘이 된다고 이들은 말했다. 혜수씨는 “공동육아 환경에서는 ‘존재만으로도 빛난다, 예쁘다’고 말해주는 어른들이 있다”며 “부모가 없어도 무너지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만의 사회를 꾸려갈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하다”고 했다. 1994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문을 연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현재 성산동에 있음)의 개원 초기 아이들의 놀이 활동 모습(왼쪽)과 최근 놀이 활동 모습. 우리어린이집 제공 수연씨와 한얼씨는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낼 것이라고 했다. 수연씨는 “제가 경험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아니까 보내고 싶다”며 “호주에 갔을 때 접한 육아 방식이 제가 커온 것과 같더라. 맨발로 아이들이 산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이었다. 공동육아가 아니면 해외에서 키우고 싶다”고 했다. 한얼씨는 “제가 마을에 있을 땐 활동적인 편이었는데 일반고에 가면서 소심한 성격으로 바뀌었는데 ‘이곳에서 자유로웠구나’란 생각을 했다”며 “제주에서 마을 모임을 찾고 싶고, 제가 제주에 공동육아 환경을 만들어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했다. 청년들은 ‘좋은 어른의 상’을 그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2001년 성미산 개발 계획이 알려지면서 우리어린이집 부모들을 비롯해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벌였다. 산에 텐트를 치고 숲속 공연을 하며 산을 지켰다. 이때 어린이로 성미산에 있었던 청년들은 “어른들이 우리의 터전을 지켜주기 위해서 힘을 합쳐준다는 게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혜수씨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위험하니 오지 마’라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고, 아이들을 배제하는 게 아니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대해준 것이다. 그런 친절한 어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아직도 자유가 필요하다” 지금 자녀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또바기 어린이집 부모 조합원인 ‘쌀밥’(별명)은 자녀 2명을 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직장동료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우연히 공동육아 게시물을 봤다. 그는 “아이를 기관에 보낸다면 저렇게 자연에서 뛰노는 곳에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고 “교사 대 아동 비율과 마당이 있는 터전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매일 나들이를 가서 뛰놀고 자연과 가깝게 지내고,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고 어른과 어른의 관계를 모델링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아이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다른 부모 조합원 ‘호두’(별명)도 자녀 2명을 또바기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그는 “교육학 전공할 때 한 논문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접했고, 아이를 낳고는 인지교육 없는 놀이중심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 이 기관을 선택했다”고 했다. “공부하면서 한국 공교육의 여러 문제를 마주했는데, 특히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여섯 살인 첫째 아이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스스로 학습하고 온전히 체화하는 게 보여요. 그게 놀이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서울로 인구가 몰리고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던 1970~1980년대 영·유아기 아동 돌봄을 위한 사회적 자원은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 당시 달동네 ‘야학’에서 공동육아의 싹이 텄다. 교육운동가, 학생들은 1978년 ‘어린이걱정모임’을 만들고 교사 양성을 위해 해송보육학교를 만들었다. 이곳을 나온 노동자 출신 교사들이 1980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철거민촌에 ‘해송유아원’을 설립해 운영한다. 그러나 1982년 새마을유아원법이 만들어지면서 어린이집과 탁아소를 제도권으로 강제편입, 해송유아원도 1984년 문을 닫는다. 이들은 같은 해 종로구 창신동에 ‘해송 아기둥지’를 설립하고 아이들이 도심 속 자연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갔다. 1990년 부모가 아이를 맡길 데 없어 문 잠그고 일하러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나 남매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만들어졌다. 해송 아기둥지를 만든 교육운동가들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동육아 연구회’를 만들었다. 이 연구회에서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시작됐다. 해송 아기둥지·공동육아 연구회 설립 구성원이면서 우리어린이집의 초대 원장을 지낸 정병호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장(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은 지난 11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때 소수의 용감한 부모들과 교사들이 선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병호 교수는 “정부 누리과정(만 3~5세 공동 교육과정)을 만들 때 공동육아 모델을 참고하면서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숲나들이를 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함께 키운다는 의미에서 아이들을 해방시켰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또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유롭게 다양한 경험을 해야 공감 능력이나 지능 발달도 이뤄지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교육 산업계를 비롯한 지배문화가 한국 부모들을 ‘소비자로서의 부모’로서 행동하도록 굉장히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도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또 부모 참여를 원칙으로 해서 부모의 노동시간이 길고 불규칙하거나 한부모 가정이면 망설일 수밖에 없다. 정병호 교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마다 운영 특성이 다 다르기도 하고 그 안에서 배제하지 않고 함께 가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며 “이혼 가정이 늘고 새로운 가족 형태가 나오는데 더욱 공동육아가 필요하다”고 했다. 협동조합형이 아닌,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등이 위탁운영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이용해볼 수 있다. 다만 아직 국공립형은 소수다. 무엇보다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학습만 강권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고, 최근 저출생으로 아이들이 줄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들이 설 자리가 넓지는 않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든 다음에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초등방과후를 만들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됐고요. 성미산뿐만 아니라 대전 뿌리와새싹 어린이집 같은 곳에서도 마을을 만든 사례가 있어요. 거기서 희망을 보죠. 30년 전에도 ‘한국 부모들은 아이를 안전하게만 키우고 싶어하고 학업을 신경 쓰니까 이런 교육은 안 된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래서 해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게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한 부모를 사회가 달달 볶지요. 그러니 같이 갈 공동체가 중요할 수밖에요.”

      김향미 기자 2024.11.25 06:00

    • 피해 여성에 도리어 무고죄…“내가 왜” 편견과 싸움 끝 무죄

      사회 표지 이야기

      피해 여성에 도리어 무고죄…“내가 왜” 편견과 싸움 끝 무죄

      이아름 기자 지난 4월 1일 경남 거제시 한 원룸에서 20대 남성이 전 여자친구를 폭행해 사망. 지난 5월 6일 서울 강남구 한 건물 옥상에서 대학생이 헤어지자고 말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 지난 6월 14일 서울 강서구에서 교제 중인 여성을 폭행해 크게 다치게 한 남성 검거. 최근 잇따라 언론에 보도된 교제폭력(데이트폭력) 사건들이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경찰에는 총 2만5967건의 교제폭력 신고가 접수됐다. 하루 214건꼴이다. 같은 기간 교제폭력으로 붙잡힌 사람은 4395명에 달한다. 2021년부터 교제폭력 신고는 늘고 있다. 교제폭력은 왜 계속될까. 국가는 교제폭력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지난 6월 중순 기자는 수사기관에 교제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했다가 도리어 무고죄로 재판에 넘겨진 지연씨(가명)를 만나 교제폭력과 이후 무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었다. 신고 후 약 5년간의 수사·재판 끝에 지연씨는 최근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복된 그 시간 내내 지연씨는 큰 고통을 받았다. 지연씨 사례는 연인 사이라는 관계에 가려진 교제폭력의 심각성과 교제폭력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수사기관은 교제폭력의 특성과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에 기반해 무고로 몰아갔다. ■‘폭력이라면 왜 안 피했나’ 추궁한 검찰 전문가들은 교제폭력을 ‘친밀함 뒤에 가려진 공포’라고 정의한다. 연인으로서 좋은 감정을 공유하고 신뢰해온 관계 속에서 폭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그 폭력을 인지하기도, 끊어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회유, 협박과 함께 교제폭력은 곧잘 은폐된다. 지연씨가 남자친구 A씨를 경찰에 신고한 것은 사귄 지 2년쯤 된 2019년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다며 애정을 드러낸 A씨는 종종 집착적·폭력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지인을 만나거나 집 앞의 편의점에 갈 때도 지연씨는 A씨에게 이를 알려줘야 했다. 알려주지 않으면 A씨는 화를 냈고, 때로 폭력으로 이어졌다. 지연씨가 A씨의 행동을 참기 어려워 연락을 끊자 A씨는 계속해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왔다. “화내고 폭언하고 위협적으로 행동했던 것 온전히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정말 잘하고 싶은데 서운하고 섭섭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은 마음을 참지를 못했어요. 그렇게 아프고 힘들고 다치게 해서 미안해요”, “저를 용서하고 다시 만나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고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 사실 저는 지금 지연씨네 근처에 와 있어요. 혹시라도 한 번이라도 만나서 대화를 해볼 수 있을까 해서요”, “잠깐 이야기 좀 해요.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눠요. 잠깐이면 돼요.”(A씨가 지연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발췌·재구성) A씨는 지연씨에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도 했다. 지연씨는 ‘나 때문에 사람 한 명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무서움을 지울 수 없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연씨가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별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힌 날, A씨가 “지금 주차장에 있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A씨는 100번 넘게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만남을 요구했다. 지연씨는 마지막 대화를 해서 완전히 헤어지려고 A씨를 만났는데 2시간가량 실랑이가 이어졌다. A씨는 집에 들어가게만 해주면 잠깐 이야기하고 가겠다고 했고, 그때 강제 성관계가 이뤄졌다는 게 지연씨의 말이다. “제가 질질 끌려다닌 이유는 그 사람에게 맞춰주지 않으면 울고불고, 밀치고 때렸거든요. 그렇게 실랑이를 하느니 비위를 맞춰주고 아예 보내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A씨는) 집에서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고 또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죠. 여기서 죽어서 뉴스 기사에 피해자 누구누구씨라고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신고하게 된 거예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안전한 이별을 위해 피해자가 폭력을 즉각 거부하지 못하거나, 가해자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폭력을 차단하지 못하는 모습은 여러 연구에서 교제폭력의 특성으로 보고된다. 지연씨는 강제 성관계를 한 A씨를 처벌해 달라고 경찰에 고소했다. 지연씨는 자신이 교제폭력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무고죄로 기소될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제가 피해자가 된다면 밤늦게 길을 가다 누가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이었지, 남자친구와 교제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저는 강간을 당한 게 맞았거든요. 제가 거부의사를 분명히 표시했는데도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제로 당하면 강간이다, 그렇게 알고 있었고 사실 그대로 고소장에 적었는데 이게 무고죄로 연결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죠.” ■‘피해자다움’ 편견 드러낸 무고죄 수사 지연씨는 수사 과정에서 검찰 관계자로부터 ‘피해자가 맞느냐’는 의심과 추궁을 당했다. 검찰 관계자는 ‘전 남자친구가 그렇게 싫었다면 연락을 차단하면 됐던 것 아니냐’, ‘만남을 회피하면 되지 않았느냐’, ‘진즉 신고하지 왜 참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검찰은 또 강간이 있었다는 시기에 지연씨가 강간 피해자의 모습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연씨가 A씨의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피하지 않았다거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함께 먹을거리를 사 온 것은 강간 피해자의 모습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또 지연씨도 몸싸움을 벌이며 A씨를 폭행했다며 지연씨가 일방적으로 A씨 요구에 순응하는 관계가 아니었다고 했다.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이른바 ‘피해자다움’의 편견이 작동한 것이다. 지연씨는 A씨의 심기를 거스르면 더 폭력적이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이별’을 위해 A씨의 비위를 맞추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가 문자메시지에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적기 때문에 A씨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연락을 차단할 수 없었고, 각종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도 연락할 수 있어 차단은 소용없었다고 했다. 신고 경위에 대해 지연씨는 “그동안 데이트폭력을 여러 차례 당했지만 이번엔 용기를 내서 신고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연씨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A씨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그러면서 지연씨는 무고 혐의로 기소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검찰의 이런 기소는 대법원이 2018년 ‘성인지 감수성’ 판례를 정립한 와중 이뤄진 것이다. 대법원은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므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세웠다. 이는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를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인 여론, 불이익한 처우, 신분 노출 등 2차 피해를 보는 역사를 고려한 것이다. 대법원은 2019년 이른바 ‘부현정씨 판결’에서는 이 법리가 성폭행 고소에 대한 무고죄 판단에서도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지연씨를 변호한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성범죄로 고소한 사건이 불기소되거나 무죄라고 해서 그 자체가 무고라는 적극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대법원이 밝혔지만 검찰은 이 사건에서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며 “친밀한 관계의 폭력에서는 피해자가 전형성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수사기관이 그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사기관이 교제폭력의 맥락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단순 쌍방폭행으로 처리하는 점은 최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거제 교제폭력 사건에서 사망한 이효정씨의 어머니가 국회 국민동의청원 글에 쓴 말이다. “효정이는 가해자를 11번이나 신고했지만 경찰에서 번번이 쌍방폭행으로 처리해 풀어줬고, 가해자는 더 의기양양해져서 제 딸에게 ‘이제는 주먹으로 맞는다’, ‘너 죽어도 내 잘못 아니래’라고 했습니다. 경찰이 가해자의 폭력을 방관하고 부추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피고인이 된 피해자, 사과 없는 가해자 무고죄 재판에선 교제폭력 피해를 신고했던 지연씨가 피고인, 교제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전 남자친구가 피해자 신분이었다. 지연씨가 말했다. “억울해서 죽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왜 죽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는 거예요. 너무 끔찍해서 계속 눈물이 나고 살기 싫더라고요. 저는 분명 피해자가 맞는데 법정의 사람들이 저를 무고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 같아서…. 제가 사람들을 쳐다볼 수 없어서 땅만 보고 다녔어요, 그때는.” 재판을 준비하려면 사건기록을 살펴보고 기억을 되살려야 했다. 지연씨는 신고 때부터 무고죄 재판까지 일관된 진술을 했다. 평소 폭력적 성향을 보인 A씨와 헤어지기를 원하던 상황에서 집에 찾아온 A씨를 설득하기 위해 함께 있던 중 거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완력을 행사해 억지로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A씨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지연씨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심리 끝에 지연씨가 허위 신고를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헤어지려는 지연씨에게 여러 차례 화를 내며 폭언하거나 위협한 사실, 지속해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시도한 사실을 인정했다. 특히 1심 재판부는 검찰이 강간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며 내놓은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1심 재판부는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며 “(지연씨가) 상당한 기간 동안 A씨로부터 폭력 피해 및 집착에 가까운 만남 요구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인정되는 이상, 일부 행동을 근거로 성관계가 (지연씨의) 자발적인 동의하에 이뤄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연씨 사례는 동의 없는 성관계를 처벌하지 않는 한국의 성폭력 법과 판례 때문에 발생하는 사각지대 문제와도 연결된다. 대법원 판례는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항거불능)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한다(최협의설)는 입장이다. 처벌 범위를 좁혀놓은 것이다. 그러나 2021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96.7%가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는 성폭력’이라고 답변했다. 이 차이는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인식해 가해자를 고소한 피해자가 언제든 무고죄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박 변호사는 지연씨의 재판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범죄의 현실이나 인식과 법적 상황이 대단히 크고 그 틈 사이에서 무고죄가 존재한다. 성범죄 관련 무고 사건에서는 반드시 이러한 커다란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며 지연씨에게 무고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기자와 만나 “강간죄 폭행·협박에 대한 최협의설을 취하고 있는 상태에서 성범죄를 무고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많이 발생하지도 않는다”며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되지 않은 현행 입법 상황은 피해자들이 신고조차 못 하도록 심리적 장애를 높인다”고 덧붙였다.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3월 8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39회 한국여성대회 참가자가 장미꽃을 들고 있다. 장미꽃은 참정권을 의미하며, 빵과 함께 세계 여성의 날을 상징한다. 정효진 기자 1심 재판부는 이런 주장까지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성관계가 이뤄진 당시 두 사람의 관계, 만나게 된 경위, 상황을 고려할 때 지연씨가 A씨의 성관계 요구에 흔쾌히 동의해 자발적으로 성관계에 응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이례적”이라며 “지연씨가 명확한 거부의사를 표시했음에도 A씨가 이를 무시한 채 다소의 힘을 사용해 일방적으로 성관계에 나아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법원 “무고죄 수사 신중해야” 이례적 명시 2심 재판부도 검찰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무고죄에 해당하려면 성관계가 지연씨의 자발적·정상적인 합의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가 부담하는데 검사가 증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판결에서 수사기관이 성폭력 무고죄 수사를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무고죄 인지는 또 다른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인지 감수성에 유의하면서, 개별적·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처했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성폭력 가해자들의 역고소와 수사기관의 성폭력 무고죄 수사가 피해자를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된 이래 법원이 판결에 이런 내용을 명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국제경찰장협회(IACP)는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 피의자로 인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수사 결과 어떠한 성폭력도 없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지침을 둔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성폭행 피해 신고자가 여성이고, A씨가 다소 폭력적 언행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진술 신빙성에 더욱 무게를 두는 판단은 그 자체로 성차별적’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이에 대해서도 2심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에 유의해 사건을 심리하는 것이 여성에게 근거 없이 유리한 성차별적인 입장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재판부는 “원심과 당심은 성폭행 피해 신고자인 피고인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진술의 신빙성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해 논리와 경험칙에 따른 증거 판단의 결과에 의해 인정되는 상황을 고려해 피고인의 심리상태를 합리적으로 추인해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판정패였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지연씨에게는 무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지연씨에게는 억울함과 고통만 남았다. “교제폭력을 당한 피해자인데 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야 했을까…. 저는 이 일 때문에 5년간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아요.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기쁘거나 떳떳한 느낌도 없어요. 허탈하고 상처만 남았죠. 남자라는 성별이 불편해졌고, 앞으로 누구를 만날 생각이 들지가 않아요. 요즘 데이트폭력이 너무 심해서 분명 저 말고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어느 단계에 있는 사람이든 누구든지 힘들어하는 분들이 잘 이겨내면 좋겠어요. 또 검찰이 무고 수사를 할 때 조금 더 세심하고 정확하게 해주면 좋겠어요. 닿지 않는 목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 말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법의 빈틈’에…남자친구에게 죽는 여성들‘거제 교제폭력(데이트폭력) 사건’으로 숨진 이효정씨의 어머니가 교제폭력 관련 제도를 개선해 달라며 올린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지난 6월 18일 시민 5만명 동의를 받았다. 이...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2407010640001

      이혜리 기자 2024.07.01 06:20

    • 사회

      “‘성소수자 축복’ 소송, 교회 편견 깨려는 싸움”

      ㆍ‘정직’ 이동환 목사 법원에 소송 제기… 법원 심사 대상 삼을지 관건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가 지난해 10월 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이 재판이 신의 이름으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앞장서 온 교회의 아집과 오만한 편견에 경종을 울리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본래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과 환대의 정신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42)가 결국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성소수자를 위한 기도 등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을 선고한 교단의 처분이 무효라는 점을 확인해 달라며 지난 2월 2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목사는 소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소송을 두고 “작게는 혐오와 차별에 물들어 버린 감리회를 바꿔내려는 싸움”, “나아가 한국사회 인권의 장애물이 돼 번번이 차별금지법 등 인권의 진보를 가로막아온 한국 교회를 바꿔내려는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이 목사의 소송을 지지하는 공동대책위원회에는 약 30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 목사가 여러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교단 내 사건을 사법부의 판단에 부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소송의 쟁점은 어떻게 될까. 교단 내 추가 고발 움직임 감리교의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의 재판법에는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했을 때’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2015년 10월 신설했다. 이를 위반하면 정직·면직·출교 등 중징계에 처하도록 한다. 마약 및 도박과 같은 수준의 ‘범과’(잘못을 저지름)로 본다. 이 목사는 2019년 8월 31일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진행했다. “이 땅의 모든 성소수자와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낙인과 혐오, 차별과 배제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그러자 일부 목회자들이 이 목사를 고발했다. 경기연회 심사위원회(검찰에 해당)는 이 목사를 동성애 찬성·동조 혐의로 2020년 6월 기소했다. 이어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법원에 해당)는 그해 10월 이 목사에게 정직 2년을 선고했다. 이 목사가 상소했으나 총회 재판위원회는 2022년 10월 원심을 확정했다. 감리회 재판은 2심제다. 이 목사는 이를 계기로 기독교 내 성소수자 운동단체인 ‘Q&A(큐앤에이)’를 설립해 사무국장을 맡았다.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 한국 교회의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 등을 펼쳤다. 그러던 중 이 목사는 2022년 11월 16일 목사와 장로 10명의 명의로 된 ‘권면서’를 받았다. 권면서는 일종의 내용증명과 같다. 여기에는 ‘이 목사가 회개하지 않으면 고발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이 목사가 추가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점, 큐앤에이 활동, 각종 언론 인터뷰 내용 등을 문제 삼았다. 교회법에 따라 고발하기 전에는 피고발인에게 권면서를 먼저 보내야 한다. 이 목사는 그간 사회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지를 고민해왔다. 일단 소송은 위험 부담이 크다. 승소를 쉽게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법은 교단에서 재판을 받은 후, 동일한 사안으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가 패소하면 추가로 처벌토록 한다. 정직·면직·출교 등 중징계로 수위도 높다. 이 목사가 이미 정직 2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어 법원에서 진다면 면직 이상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면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목사는 앞서 교단의 재판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렸다. 이 목사는 지난 2월 7일 통화에서 “그런데도 이번 일이 좋지 않은 선례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송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잘못됐다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추가 고발 움직임도 영향을 끼쳤다. 이 목사는 정직 처분을 그대로 둔다면 “교회 내 성소수자 성도, 동료 목회자, 향후 목회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 등이 성소수자 문제를 비롯해 여러 사안에서 양심과 신념에 따른 목소리를 내는 데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송이 한국사회를 바꾸는 데 하나의 주춧돌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법원, 심사 대상으로 인정할까 “감리교 총회 재판위원회가 선고한 동성애 찬성·동조 판결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이동환 목사가 제기한 소송의 청구 취지다. 이유는 이렇다. “교단의 판결은 절차적·실체적 내용 면에서 중대한 하자가 있어 이 목사의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했고, 사회질서에 비춰 용인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이 목사가 교단에서 받은 처벌의 옳고 그름을 두고 법원이 심사 대상으로 삼을지 여부다. 이 목사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자 첫 번째 관문이다. 법원이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면 구체적인 내용을 판단하지 않은 채 각하 결정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근거로 종교단체 내부의 징계 등 결의와 관련한 사안은 심사를 자제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종교 영역에 개입하는 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감리회 측도 이번 소송에서 이런 점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예외도 있다. 개인의 특정한 권리나 법률관계를 둘러싼 분쟁이 존재할 때다. 또 교회 내에서 자율적인 해결이 불가능할 때도 사법부가 심사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이 목사 측은 이번 소송이 이런 예외에 해당한다고 본다. 교단 내 목사와 장로가 이 목사를 추가로 고발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목사의 권리와 동성애 찬성·동조 처벌 조항을 두고 다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 목사를 대리하는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교단의 정직 판결이 정리되지 않으면 이 목사가 고발을 당하고 징계를 받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라며 “이 목사가 목회자 직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와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월 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교단이 이 목사에게 내린 정직 2년 처분의 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 이동환 목사 제공 무엇보다 동성애 찬성·동조를 이유로 처벌을 받은 이번 사건이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조항이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에 법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리인인 ‘희망을 만드는 법’(공익인권 변호사 모임) 소속 박한의 변호사는 “법원이 이 사건을 단지 종교문제이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소수자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법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길 촉구한다”고 했다. 이와 맞물려 이 목사 측은 해당 조항이 헌법이 보장하는 각종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동성애를 두고 찬반을 논할 수 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찬성·동조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두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또 축복식을 집례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도 반한다는 입장이다. 이 목사 측은 “성소수자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를 이끌어가려는 일체의 표현 행위를 금지하기 때문에 개인의 의견이나 사상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조항이 외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이 목사 측은 본다. “성소수자 또한 축복받아야 함을 기도하는 행위를 폭넓게 금지함으로써 개인의 종교적인 확신에 따른 표현이나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와 형벌은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는 형법상의 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도 저촉된다고 주장한다. 동성애 찬성·동조 처벌 조항은 처벌하려는 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 목사 측은 “동성애 자체는 단지 성적지향의 하나이기 때문에 동성애만 두고서 어떤 행위나 의견이라고 할 수 없다”라며 “이런 지향에 찬성한다는 게 어떤 행위를 일컫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동성애 찬성·동조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 자체를 무효로 봐야 한다는 게 이 목사 측의 견해다. 각종 재판 권리 침해 등 절차적 하자도 이동환 목사 측은 교단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절차적인 문제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신속한 재판, 공개 재판, 변호인 조력 등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절차적 하자가 매우 중대해 이를 그대로 두면 현저히 정의관념에 반하는 경우”에는 종교단체의 결의 등을 무효로 인정한다. 감리회의 재판은 2심제다. 교회법은 각급 재판은 2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하고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15일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총회 재판위원회의 재판은 2년이 넘어서야 선고가 나왔다. 1심 판결 직후 효력이 발생한 정직 2년의 집행이 종료된 이후에야 2심 판결이 마무리됐다. 이 목사 측은 “총회 재판 과정에서 기일이 연기된 것은 이 목사와 무관한 경기연회 심사위원회나 총회 재판위원회의 과실 때문”이라며 “벌칙으로 인해 이 목사가 입은 손해를 총회 재판위원회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고 했다. 또 교회법에는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 목사의 총회 재판 과정에서 극히 일부만 방청이 허용됐고 일반인의 방청은 배제됐다. 총회 재판위원회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방역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거리 두기가 완화 또는 해제된 이후에도 일반인의 방청을 불허하거나 방청 인원을 한정했다. 총회 재판위원회가 출석 가능한 변호인을 1~3명으로 제한한 점도 변호인의 조력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는 게 이 목사 측의 시각이다. 교회법에는 ‘이 재판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은 사회 재판법에 준한다’고 규정한다. 이 목사 측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교단의 재판에서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철저하게 준수해야 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심사해야” 의견서도 제출 예정 법원이 이번 사건처럼 교회법 조항의 위법 여부를 구체적으로 판단한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법원은 종교단체 내부 결의 등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판단한 내용이 종교 교리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라는 조건도 달고 있다. 법원이 이 목사 사건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 목사 측은 여러 전문가로부터 ‘이 목사 사건은 성소수자를 상대로 한 혐오 및 차별과 관련된 중요한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법원이 이 사건을 다뤄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모으고 있다. 향후 이를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교리와 장정’ 중 재판법 내용 정리 제1조(재판의 목적) 교회의 재판은 ‘교리와 장정’을 수호하고 범죄를 방지하여 교회의 권위와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자의 회개를 촉구하여 영적 유익을 도모하는 데 있다. 제3조(범과의 종류) ⑧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제5조(벌칙의 종류와 적용) ②제3조 제8항은 정직, 면직 또는 출교에 처한다. ⑤교회재판을 받은 후 사회법정에 제소하여 패소하였을 경우 정직, 면직, 또는 출교에 처한다. 제9조(고소·고발) ①고소·고발하기 전에 마태복음 18:15~17의 말씀대로 권고해 보았다는 사실을 서면으로 첨부하여야 한다. 제2조(재판의 대상자) ③교역자와 교인은 2심제에 의한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8조(준용규정) 이 재판법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은 사회 재판법에 준한다. 제34조(재판) ④재판은 당해 심사기록을 송부받은 날로부터 2개월 이내에 판결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1차에 한하여 재판위원회의 결정으로 15일간 연장할 수 있다.

      정희완 기자 2023.02.10 11:37

  • 레이디경향

    • 쫄쫄이? 그것은 편견입니다…힙하게 입는 바이커쇼츠

      패션

      쫄쫄이? 그것은 편견입니다…힙하게 입는 바이커쇼츠

      1·2.보스 3.UFC 스포츠 4·5.보스 가벼운 스포츠웨어인 ‘에슬레저룩’이 유행하면서 바이커쇼츠 또한 대중화됐다. 바이커쇼츠란 주로 사이클링을 할 때 입는 무릎 기장의 딱 붙는 반바지를 의미한다. 활용도가 뛰어난 바이커쇼츠는 어떤 상의를 매치하느냐에 따라 운동복과 일상복의 경계를 넘나든다. 스타일리시하게 멋 내기 좋은 바이커쇼츠 룩을 소개한다. 하체 라인이 타이트하게 드러나는 바이커쇼츠의 디자인이 부담스럽다면 엉덩이를 덮는 긴 기장의 오버 피트 후디를 추천한다. 힙 라인을 가리면서 상대적으로 하체를 날씬해 보이게 해준다. 캐주얼하게 후디를 입었다면 스포티한 볼캡과 발목 위로 올라오는 양말에 하이톱 운동화를 더해 보는 것도 좋겠다. 베이직하고 편한 코디로 활동성도 높일 수 있는 원마일 룩을 완성할 수 있다. 1·2.자라 3.혼가먼트 4.보스 5.카린 6.UFC 스포츠 7.보스 밴딩에 로고가 있는 바이커쇼츠는 드러내야 ‘멋’이다. 크롭트 톱을 착용하면 로고가 주는 강렬함을 배가시킬 수 있다. 또한 로 라이즈 스커트를 레이어드 하면 밴딩의 로고를 살리며 바이커쇼츠가 속바지의 역할을 해 환절기 보온성도 챙길 수 있다. 바이커쇼츠는 무조건 스포티하게 입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블레이저 재킷으로 코디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버사이즈의 재킷은 정장의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시크한 무드를 표현해준다. 선글라스와 캐주얼한 운동화까지 더해지면 세련미까지 얹을 수 있다.

      김지윤 기자 2023.03.24 10:02

    • 예술에 투영된 편견 없는 사회

      문화/생활

      예술에 투영된 편견 없는 사회

      팝업 전시회 ‘ABC 브릿지 가든 마을에 가다.’ ABC마트 제공 밀알복지재단 발달장애인 예술단 브릿지온 아르떼의 팝업 전시 ‘ABC 브릿지 가든: 마을에 가다’가 오는 22일까지 서울 을지로 파인에비뉴 1층 로비에서 진행된다. ABC마트와 밀알복지재단 기빙플러스가 맺은 사회공헌 업무협약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기획됐다. ABC마트가 후원하고 LG 스탠바이미가 지원한다. 전시는 공동체를 강조하기 위해 ‘마을’을 주제로 작품 총 12점을 선보인다. ‘편견 없는 마을’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시선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예술로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아냈다. 산촌의 오솔길, 맑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 놀이터, 바다가 굽어 들어가는 항구의 풍경 등 마을 모습을 그려낸 작품과 함께 전시 공간을 싱그러운 녹색 정원으로 조성해 편안한 휴식과 힐링을 선사한다. 특히 이동식 무선 프라이빗 스크린과 LG 스탠바이미를 통해 만나 볼 수 있는 다양한 디지털 아트워크도 인상적이다. ABC마트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가 장애인 인식 개선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ABC마트는 팝업 전시회를 기념해 다채로운 현장 이벤트를 준비했다. 접착식 메모지를 활용해 작품 감상평을 남기면 10명을 선정해 ABC마트 기프트카드 5만원을 제공한다. 전시는 무료.

      #ABC브릿지가든

      김지윤 기자 2022.05.13 10:32

    •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2 ‘프랑스 편견’은 여전했다

      문화/생활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2 ‘프랑스 편견’은 여전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는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시즌 1에서 불거졌던 프랑스에 대한 편견이 시즌2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 제공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화려해진 의상과 볼거리를 장착해 시즌2로 돌아왔다. 시즌1에서 지적됐던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에 대한 편견이 담긴 에피소드 논란에서 자유로워졌을까? 프랑스 출신 저널리스트 알렉스 비카르드는 매체 ‘인사이더’를 통해 <에밀리, 파리에 가다> 속 프랑스에 대한 잘못된 시선들을 조목조목 언급했다. *시리즈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극 중 민디는 비자 문제로 인해 정기 급여없이 ‘라담 피피’에게 주는 팁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했다. 넷플릭스 제공알렉스 비카르드는 “시즌1과 마찬가지로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는 파리, 프랑스에 대한 부정확한 묘사가 있다”고 짚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에밀리의 룸메이트인 민디는 드래그 클럽에서 ‘라담 피피(la dame pipi)’라는 일자리를 얻고 팁으로 급여를 충당하라는 말을 듣는다. 라담 피피는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수건이나 구강청결제를 챙겨주며 사용료를 징수하는 ‘화장실 도우미(Restroom attendant)’ 같은 역할이다. 알렉스는 이 장면을 두고 “에피소드에서 묘사된 것과 달리 라담 피피는 실제 팁 이외에도 정기적인 급여를 받는 직종”이라고 정정했다. 노천 카페 장면에서 실비는 카페 서버를 ‘가르송’이라고 불렀다. ‘Boy’를 뜻하는 말로 90년대 서버에게 통용되던 호칭으로 지금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넷플릭스 제공또한 그는 “작가들이 지금은 쓰지 않는 프랑스 용어들을 과도하게 사용한 것 같다”며 “에밀리의 상사 프랑스인 실비가 야외 테이블에서 재떨이를 요청하기 위해 서버에게 ‘가르송(웨이터)’이라 외친다. 1990년대라면 통용됐겠지만 지금 그리한다면 대부분의 서버들은 매우 불쾌해 할 것”이라 밝혔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여러 번 나오는 “프랑스는 주말에 일하면 불법”이란 말도 사실과 다르다. 그는 “일주일에 6일 이상 일할 수 없다는 법률은 있지만 주말에 일하면 불법이란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극 중에서 토요일에도 일하는 열정 넘치는 에밀리가 주말에 일손을 모두 놓은 프랑스 동료들 탓에 곤욕을 치루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프랑스인들의 융통성 부재를 돌려 꼬집은 설정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설정된 페트라는 상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과 액세서리를 훔친다. 넷플릭스 제공비카르드는 비상식적인 동유럽인 캐릭터 설정에 대해서도 비난했다. 에밀리는 프랑스어 교실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여성 페트라와 ‘패션’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친해진다. 함께 쇼핑을 나간 상점에서 에밀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점의 옷과 액세서리를 훔치는 페트라를 비난한다. 비카르드는 “페트라에 대한 짧고 무례한 묘사를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기뻐하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라고 언급했다. 게다가 극 중에는 보란듯이 사무실 내부 흡연 장면이 등장한다. 실비가 사무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여러 번 나온다. 심지어 에밀리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고 흡연을 권하기도 한다. 주인공 에밀리의 고난을 위한 캐릭터 설정이겠으나 도 넘은 묘사다. <에밀리, 파리의 가다> 중 헬멧 없이 스쿠터를 타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이를 두고 비카르드는 “프랑스에서는 실내 흡연을 금지하는 법이 2007년에 제정됐다. 에밀리의 나라 미국보다 훨씬 더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 외에도 그는 알피와 에밀리가 헬멧 없이 파리 시내에서 스쿠터를 타는 장면이나, 유부녀인 실비가 젊은 사진 작가를 만나며 ‘오픈 매리지’ 생활을 하는 장면을 예로 들며 “프랑스 문화에 대한 미국인의 노골적인 무시가 숨어있다”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의 가다>는 시즌1이 공개 후 프랑스 현지에서 혹평을 받았다. 현지 매체들은 프랑스인에 대한 편견 고착화, 파리에 대한 과도한 미화에 대해 비난했지만 이와 별개로 드라마는 입소문을 타며 시즌2 제작이 성사됐다. 여전히 프랑스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이는 <에밀리, 파리의 가다> 시즌2, 시즌1처럼 혹평을 딛고 흥행할 수 있을까?

      이유진 기자 2021.12.30 18:43

    •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 편견을 가지는 순간 지성은 멈춘다

      문화/생활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 편견을 가지는 순간 지성은 멈춘다

      intro 유재덕의 직업은 합법적인 칼잡이, 즉 요리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20년 넘게 일했으며, 현재는 그곳에서 메뉴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요리사’보다는 자신을 ‘음식가’ 혹은 ‘파불루머’라는 명칭으로 불러주길 원한다. ‘음식물’이나 ‘영양물’을 뜻하고, 그래서 ‘마음의 양식’ 등을 표현하는 숙어에서 종종 활용되는 라틴어 pabulum(파불룸)에서 따온 단어다.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음식은 위대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좌우명이다. 요리는 맛을 주지만, 음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런 이유로 그는 언제나 손에서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책을 집어들었다. ‘파블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은 오늘도 그가 주방에서 읽고 있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쉰아홉 번째는 ‘음식의 위로’(에밀리 넌 지음 /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다. 언제부터인가 10월의 마지막 밤이 축제가 됐다. 라디오에서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들으며 아련한 첫사랑이나 떠올리던 그런 날이 이젠 아니다. 내가 근무하는 호텔에도 10월 31일이 되면 핼러윈 데이를 즐기려는 고객들로 붐빈다. 한국의 기념일과 공휴일은 대부분 3·1절, 현충일, 광복절과 같이 엄숙하게 역사를 기리는 날이거나 설날이나 추석처럼 조상에게 제사를 올려야 하는 날이다. 반면 핼러윈 데이는 공휴일은 아니지만 즐거운 축제의 성격을 가진다. 여러모로 답답할 수밖에 없는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이 핼러윈 데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즐기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올해의 핼러윈 데이를 준비하며, 이날이 단순 소비되지 않도록 뭔가 나만의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리사로서 근무하는 곳은 100년도 넘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특급 호텔이다. 특급 호텔은 대중문화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먹고 자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서 끊임없이 트렌드를 제시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핼러윈 데이에 대해서도 서양의 풍습을 그저 흉내만 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의 역사와 의미, 근원과 본질을 먼저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만 우리나라에서도 지속 가능한 문화콘텐츠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핼러윈 데이를 키워드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러다 딱 마음에 드는 칼럼을 하나 찾았다.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쓴 글이었다. 무릎을 ‘탁’ 하고 치게 만든 문장이었다. 이렇게 적혀 있다. “11월 1일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겨울의 도래를 알리는 중요한 날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 경계를 표시하고 마음을 준비하는 의례를 준수해 왔다. 그 축제가 ‘핼러윈’(halloween)이다. 이 단어의 연원을 알기 위해서는 2000년 전 고대 켈트족의 축제인 ‘소우인’(Samhain)을 알아야 한다. 소우인은 고대 아일랜드어로 ‘여름(sam)의 끝(hain)’이란 의미다. 오늘날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프랑스 북부에 거주하고 있었던 고대 켈트인들은 1년 수고의 결실인 추수를 마치고 추운 겨울을 단단히 준비해야 했다. 그들에게 이날은 신년 첫날이다. 시작은 언제나 희망과 설렘이 아니라 절망과 망연자실이다. 시작은 어머니의 뱃속[始]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억지이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作] 내려는 분투다.”(‘배철현의 월요묵상’. 2020년 11월 2일. 뉴스1) 이 고전문헌학자는 자신의 글이 셰프의 요리 재료까지 될지는 꿈에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글은 무엇이든 된다. 핼러윈이라는 이름의 역사적인 배경도 알아보았다. 서기 800년 이후 유럽에서 11월 1일은 만성절이라 하는데, 영어로는 모든 성인을 기리는 날이라는 뜻으로 All Saints’ Day(올 세인트 데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날 성당에서 가진 미사를 “All hallow mas(올 할로우 마스)”라고 했다. “Halloween Day(핼러윈 데이)”는 그 전날 밤을 “All Hallow e’en(올 할로우 윈)”이라 부르면서 생겼다고 한다. 호박의 속을 파내서 무서운 얼굴 모양의 등을 만드는 ‘잭-오-랜턴(jack-o‘-lantern)’에 관한 아일랜드의 전설도 재미있다. 옛날에 잭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워낙 인색한 사람이라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또 잭은 악마들에게도 워낙 장난을 많이 쳤기 때문에 지옥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잭은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는 랜턴을 가지고 땅 위를 걸어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년 핼러윈에는 우리 호텔 레스토랑 전체를 ‘잭-오-랜턴’의 전설로 가득 채우고, 다양한 호박 요리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핼러윈 데이가 지나자 나는 몸도 마음도 좀 지쳤다. 이럴 때 위안이 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다. 시시콜콜한 하루의 일과를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웃는 것만큼 큰 위로와 구체적인 힘을 얻는 시간이 또 있을까. 아! 하나가 더 있긴 하다. 바로 책을 읽는 시간이다. 핼러윈은 기독교의 축일인 만큼 이날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려는 사람들도 최근 서구에선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의 불우한 아동들을 위하여 음식이나 약품을 공급해 주기 위하여 돈을 모으는 자선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착한 트렌드로의 진화는 우리도 가급적 빨리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주말 내가 사는 곳 주변의 노란 은행나무들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정신없이 살면 지천이 노랗게 물든 것도 몰랐을까 싶었다. 오랜만에 공원의 낙엽길을 천천히 걷고 난 후 고른 책이 바로 ‘음식의 위로’다.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가정요리 전도사이며 ‘뉴요커’에서 10여 년간 편집자로 일하면서 극장과 레스토랑 기사를 담당했던 에밀리 넌이라는 저널리스트의 에세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세상에서 낙오되고 버림받은 삶이라 생각하며 우울증까지 얻는다. 그러다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조언에 힘을 내어 저자는 자신만의 ‘음식 위로 여행’을 떠난다. 저자는 이 여행의 과정에서 추억의 음식들을 만들고 함께 나누며, 조금씩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아픔을 극복해 간다. ‘음식의 위로’에는 저자에게 위로가 된 추억의 음식이 50여 가지나 등장하는데, 하나하나 그 만드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나온다. 나는 저자가 음식을 통해 스스로 위로받고 치유해 가는 과정에 푹 빠져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녀와 함께 울고 웃었다. 그녀의 아픔에 너무 깊이 공감한 나머지 온종일 가슴이 아픈 날도 있었다. 책에 나온 음식 중에 내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나에겐 작지만 소중한 인생의 깨달음을 주었던 음식이다. ‘뉴잉글랜드 클램 차우더 수프’.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 때 빵과 함께 먹으면 딱 좋은 음식이다. 클램 차우더(clam chowder)는 조갯살(주로 대합), 절인 돼지고기나 베이컨, 여기에 양파·셀러리·감자·당근 등을 넣고 끓인 미국의 대표적 수프 요리다. 내가 한창 요리를 배우고 익히던 시절에 클램 차우더 수프의 맛은 짭짤한 조개 맛이 강하게 나야 정통이라고 배웠다. 당연히 나는 20여 년 동안 배운 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몇 해 전 보스턴의 한 오래된 식당에서 오리지널을 먹어 보니 내가 만들어 왔던 수프와는 맛이 많이 달랐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여기면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도 있다. 우리가 김치를 만들 때 단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지 않는 것과 같다. 김치는 우리 것이니까 우리 맘대로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식에도, 아니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편견이라는 것은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편견을 가지는 순간 지성은 즉시 멈춘다. ‘진정한 너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 줄래?’ 요즘 내가 요리에 쓰일 재료들을 다듬으며 자주 내뱉는 혼잣말이다.

      음식가, 조선호텔서울 조리팀장 2020.11.18 15:31

  • 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