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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여성 선수 쿼터 남자 초월 “성평등을 향한 역사적 진전”

      스포츠종합

      LA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여성 선수 쿼터 남자 초월 “성평등을 향한 역사적 진전”

      수영 경기는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3만8000석 규모로 올림픽 역사상 최대 규모 수영장 무대가 된다. 미국올림픽위원회 2028년 LA올림픽에서는 새로운 혼성 종목과 초단거리 수영 종목이 포함돼 역대 최다인 351개 메달 이벤트가 열린다. 가디언은 “특히 여성 선수의 총 쿼터 수가 사상 처음으로 남성을 넘어서는 등 성평등 측면에서도 역사적인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9일 온라인 집행위원회를 통해 LA올림픽 종목 구성 최종안을 승인했다. IOC는 “이번 종목 구성은 혁신과 양성평등에 대한 약속을 반영한 결과”라며 “선수와 팬 모두를 위한 짜릿한 새로운 순간들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 50m 수영 종목 첫 올림픽 진출…혼성 체조도 신설 이번 대회에서는 50m 배영, 평영, 접영이 남녀 모두에 정식 채택되며, 단순하고 빠른 속도의 승부가 수영 종목에 새롭게 추가된다. 이들 초단거리 종목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이미 인기 있는 정식 종목이지만, 올림픽 무대에서는 처음이다. 육상에서는 혼성 4×100m 계주가 신설되고, 기계체조 역사상 최초로 남녀 혼성 팀 경기가 열린다. 남녀 선수들이 같은 팀으로 구성돼 루틴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종목 간 성별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골프, 조정, 탁구, 양궁 등에서도 혼성 종목이 추가돼 이번 대회에서는 총 6개 혼성 이벤트가 신설된다. ■ 대회 역사상 첫 ‘여성 쿼터 우세’ 총 선수 쿼터는 이전과 같은 1만500명으로 유지되지만, 여성 쿼터는 5655명으로 남성(5543명)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는 IOC가 지난 몇 년간 강조해온 ‘성평등한 올림픽’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여자 축구는 참가국이 16개로 확대되며 남자(12개국)보다 더 많은 팀이 출전하게 된다. 수구 역시 여자 팀 수가 늘어나 남녀 모두 12개 팀으로 균형을 맞춘다. 복싱에서는 여성 체급이 7개로 늘어나 남녀 체급 수가 동일해졌다. 3x3 농구는 남녀 각각 12개 팀으로 참가국이 확대됐다. ■ 대회 장소는 LA 핵심 경기장 중심 수영 경기는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3만8000석 규모로 올림픽 역사상 최대 규모 수영장 무대가 된다. 소파이 스타디움미국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에 위치한 다목적 대형 스타디움이다. 정식 개장은 2020년 9월이었다. NFL 팀인 LA 램스와 LA 차저스의 공동 홈구장이며 2026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경기장 중 하나다. 체조는 NBA LA 레이커스 홈구장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육상은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에서 각각 열린다. ■ 새로운 IOC 수장, 여성 스포츠 강화 첫발 이번 집행위는 지난달 IOC 차기 위원장으로 선출된 커스티 코번트리(짐바브웨)가 처음 공동 주재했다. 전직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인 코번트리는 오는 6월 공식 취임 예정이며, IOC 131년 역사상 최초로 뽑힌 여성 수장이다. IOC는 “LA올림픽 프로그램은 전통과 변화를 균형 있게 반영했다”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올림픽의 미래를 그려가는 상징적인 대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LA올림픽은 2028년 7월 14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김세훈 기자 2025.04.10 08:36

    • ‘성평등 아이콘’ 빌리 진 킹…스포츠 여성 최초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

      스포츠종합

      ‘성평등 아이콘’ 빌리 진 킹…스포츠 여성 최초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

      빌리 진 킹이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명예의 거리 헌액식에 참석해 힘찬 포즈를 취하고 있다. UPI 미국 여성 스포츠의 선구자 빌리 진 킹(82)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Hollywood Walk of Fame)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언론들은 “그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부문 최초 여성 헌액자가 됐다”고 9일 전했다. 12차례 그랜드슬램 단식 우승 등 총 39개 테니스 메이저 타이틀을 보유한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인 킹은 지난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명예의 거리 헌액식에 참석했다. 시상식에는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 농구계 전설 매직 존슨도 함께 했다. 킹은 이날 SNS를 통해 “내가 이 부문 첫 여성 수상자일 수는 있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에는 후원금 8만5000달러(약 1억 2635만원)가 필요하다. 이는 공식 기념 행사 및 별 관리 비용 등으로 쓰인다. 킹은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성 평등 실현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그는 1973년 남성 선수 바비 릭스를 꺾은 ‘남녀 성 대결(Battle of the Sexes)’ 경기로 대중적 인식을 바꾸었고, 같은 해 US오픈을 통해 4대 메이저 대회 최초로 남녀 동일 상금제도를 실현했다. 1974년에는 ‘여성 스포츠 재단’을 설립했다. 1972년 미국에서 성차별을 금지한 교육법 타이틀 IX(Title IX)가 통과된 지 2년 후였다. 현역 은퇴 이후에도 킹의 활동은 계속됐다. 그는 미국여자프로축구리그(NWSL) 엔젤 시티 FC, WNBA(미국여자프로농구) LA 스팍스, 미국프로야구(MLB) LA 다저스 등에 투자했고 다양한 종목에서 여성 스포츠 환경 개선에 기여해왔다. 국제 여자 국가대항전인 빌리 진 킹컵은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대회다. 한편,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는 LA 할리우드 대로를 중심으로 약 2.1㎞k에 걸쳐 설치돼 있다. 별 모양 핑크색 테라조(화강암) 바닥 패널에 이름이 새겨지는 형태다. 영화, 방송, 음악, 스포츠 등 대중문화에 기여한 인물·단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헌정으로 1960년 처음 설치됐다. 2024년 기준으로 약 2750명이 헌액됐다.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알 파치노, 줄리아 로버츠, 이병헌, 오프라 윈프리,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비욘세, 휴 잭맨,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슈렉 등이 헌액자들이다.

      김세훈 기자 2025.04.09 07:11

    • 재혼 후 가정 경제 분담 원칙, 男 ‘양성 평등’-女‘청혼자 우위’

      생활

      재혼 후 가정 경제 분담 원칙, 男 ‘양성 평등’-女‘청혼자 우위’

      비에나래 재혼을 희망하는 돌싱(돌아온 싱글)들은 재혼 후의 가정 경제에 대해 남성의 경우 ‘양성 평등 원칙’에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나, 여성은 ‘재혼을 먼저 제의한 측, 즉 청혼자가 좀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혼정보업체 온리-유가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대표 손동규)와 공동으로 12일 ∼ 17일 전국의 (황혼)재혼 희망 돌싱남녀 516명(남녀 각 258명)을 대상으로 전자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재혼 후 가정 경제는 부부가 어떤 기준으로 분담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이다. 질문에 대해 남성은 응답자 41.5%가 ‘양성 평등 원칙’으로 답했고, 여성은 38.0%가 ‘청혼자 우위’로 답해 각각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 이어 남성은 ‘경제력 기준(26.4%)’ - ‘결혼 관행 반영(20.9%)’ - ‘청혼자 우위 원칙(11.2%)’ 등의 순으로 답했고, 여성은 ‘결혼 관행 반영’으로 답한 비중이 34.1%로서 2위를 차지했고, ‘경제력 기준(18.6%)’과 ‘양성 평등 원칙(9.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조사 결과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재혼 후 가정 경제 분담 원칙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온리-유 관계자는 “결혼에 한번 실패하고 새로운 살림을 꾸리면서 남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을 주장하는 것”이라며, “이런 현상이 재혼 성사에 최대 장애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재혼 후 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질문 ‘재혼 후 집과 생활비 등은 부부가 어떻게 부담하기 원합니까?’에 대해서는 남성의 경우 ‘집은 남자, 생활비는 여자 부담(34.1%)’, 여성은 ‘전부 남자 부담(39.5%)’을 각각 첫손에 꼽았다. 2위로는 남녀 모두 ‘집은 남자, 생활비는 각자 부담(남 31.0%, 여 33.7%)’을 들었다. 3위로는 남성이 ‘전부 남자 부담(19.8%)’, 여성은 ‘집은 남자, 생활비는 여자 부담(19.0%)’으로 답했다. ‘반반씩 부담(남 15.1%, 여 7.8%)’이 뒤따랐다. 손동규 온리-유 대표는 “앞의 두 설문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남성은 양성 평등 원칙에 따라 가정 경제도 대등하게 분담해야 하나, 현실을 감안하여 집은 남자, 생활비는 여자가 부담하는 데까지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여성은 “청혼은 대부분 남성이 하므로 가정 경제도 남자 위주로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질문인 ‘재혼 후 가사는 부부가 어떻게 분담하기 원합니까?’라는 질문에는 ‘반반(남 35.3%, 여 52.3%)’과 ‘가정 경제 기여도 고려 분담(남 43.0%, 여 34.5%)’ 등을 1, 2위로 꼽았다. 남성은 가정 경제 기여도 고려 분담을, 여성은 반반을 상대적으로 높게 지지했다. 그 뒤로는 ‘모두 여자(남 16.7%, 여 10.1%)’에 이어 ‘모두 남자(남 5.0%, 여 3.1%)’의 순이다. 이경 비에나래 총괄실장은 “가정 경제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남성은 이러한 사실이 가사 분담에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이고, 여성은 “남성이 가정 경제를 떠맡기 바라면서 가사까지 남성에게 반분시키려는 이기적인 자세를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손동규 온리-유 대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이혼할 때 재산을 50 : 50으로 분배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따라서 여성도 책임이나 역할 이행 측면에서 높아진 위상을 반영해야 재혼도 수월하고, 재혼 후의 생활 역시 평화로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손봉석 기자 2024.08.21 06:38

    • ‘밤피꽃’ 벡델초이스10 선정···“성평등 가치 실현”

      연예

      ‘밤피꽃’ 벡델초이스10 선정···“성평등 가치 실현”

      MBC ‘밤에 피는 꽃’ 사람엔터테인먼트(이하 ‘사람엔터’)가 공동 제작한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이 ‘벡델초이스10’에 선정됐다. ‘벡델초이스10’은 한국영화·시리즈 업계의 양성평등 인식 제고와 작품 내 다양성 확대를 목표로 2020년부터 양성평등주간에 맞춰 열리고 있는 ‘벡델데이’(주최·주관 DGK(한국영화감독조합) /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선정한 한 해 동안 가장 성평등한 영화, 시리즈 각 10편의 작품이다. 이번 ‘벡델데이 2024’는 MBC 드라마 ‘밤에 피는 꽃’(기획 남궁성우 / 제작 김정미 / 연출 장태유, 최정인, 이창우 / 극본 이샘, 정명인 / 제작 베이스스토리, 필름그리다, 사람엔터테인먼트)을 시리즈 부문 ‘벡델초이스10’으로 발표했다. 지난 1월 첫 방송한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은 밤이 되면 담을 넘는 십오 년 차 수절과부 ‘여화’와 사대문 안 모두가 탐내는 갓벽남 종사관 ‘수호’의 담 넘고 선 넘는 아슬아슬 코믹 액션 사극.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더 나아가 시대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여화’의 속 시원한 활약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밤에 피는 꽃’ 마지막 회는 닐슨 코리아 기준 전국 18.4%를 돌파, 역대 MBC 금토드라마 시청률 1위라는 신기록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벡델데이 2024’ 이화정 프로그래머는 “남성 캐릭터에게 국한되었던 ‘복면 쓴 액션 히어로’, 조선시대로 따지자면 홍길동을 여성 캐릭터로 치환한다. 단순 변환에 그치지 않고 여성을 향한 공고한 차별의 담을 넘나드는 캐릭터 여화의 미래지향적 활약상이 생기있게 펼쳐진다. 대중적 장르라는 쉬운 문법을 따르면서도 성취의 지점을 놓치지 않고 전진하는 드라마”라고 평했다. ‘밤에 피는 꽃’ 공동 제작사 사람엔터 이소영 대표는 “‘밤에 피는 꽃’은 시대의 통념을 타파하는 스토리와 감각적인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업계의 현주소를 짚어주고, 앞으로 나아갈 청사진을 제시하는 ‘벡델초이스10’에 선정돼 작품의 의미가 다시금 깊어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면서 “사람엔터는 앞으로도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한편 사람엔터는 배우 공명, 김성규, 박규영, 정호연, 조진웅, 정건주, 최수영, 한예리가 소속된 글로벌 아티스트 브랜딩 회사다.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을 비롯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 영화 ‘유체이탈자’, ‘데드맨’, ‘눈을 감은 아이’를 공동 제작했다. 또 지난 5일 아티스트와 팬의 자유로운 소통 공간을 넘어 창의의 원천과 영감을 줄 수 있는 high value & hyper-end 플랫폼 ‘사람엔터 스테이지’를 오픈하며 영역을 확대했다.

      안병길 기자 2024.08.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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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다리] 성평등과 대의

      사회 꼬다리

      [꼬다리] 성평등과 대의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2월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더 이상 성평등 후퇴는 없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여성가족부가 2023년 1월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정부·여권 반발로 철회한 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여가부 직원들을 감찰 조사했다는 경향신문 보도가 나왔다. 그 뒤 여가부 직원들로부터 상반된 반응을 들었다. 대변인실과 고위 관료들은 방어하기 바빴다. 감찰 이후 김종미 전 여성정책국장과 담당 과장이 서면 경고·주의 처분을 받은 건 “민감하고 중요한 사항을 상세하게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탓했다. 장관이 공석인 지난 1년 동안 저출생 등 가족 정책엔 힘을 싣고 성평등 정책은 사후약방문식으로 대응했단 보도엔 억울해했다. “오히려 이 보도로 직원들 사기가 떨어진다”라고 했다. 사기 저하를 운운한 이들과 달리 여가부 직원들은 2년 뒤에야 드러난 감찰 사실에 어처구니없어했다. ‘무슨 이런 거로 감찰을 하느냐’, ‘장·차관이 보고를 못 받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등 반응이 나왔다. 내부 직원을 보호하기보다 꼬리 자르기에 바빴던 당시 장·차관에 대한 분노도 들렸다. 기사가 나오고 며칠 뒤에 만난 국회 관계자는 “정부가 바뀌면 여가부가 조금 달라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손쉽게 “그렇겠죠”라고 답하지 못했다. 정권이 교체돼도 부처들 사이에 끼인 작은 부처가 어떤 압박 없이 성평등 정책을 주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언제나 ‘대의’ 앞에선 성평등 따윈 뒷전이었으니까. 또렷이 기억한다. 지난 대선 기간 민주당을 출입하며 이재명 대표가 대선후보 시절 보였던 반페미니즘 행보를 지켜봤다. 2021년 11월 10일 이 후보는 ‘홍카단’(홍준표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지지자)이라고 밝힌 작성자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쓴 ‘이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야 한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이틀 전인 8일에는 ‘2030 남자들이 펨코(에펨코리아)에 모여서 홍(준표)을 지지한 이유’라는 딴지일보 게시글을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공유했다. 이 글에는 이 후보가 2030 남성의 표심을 얻기 위해선 페미니즘 정책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해 12월 초청 강연차 서울대를 찾은 이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년들에게 “다 했죠?”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닷페이스’ 출연 일정을 잡았다가 한 차례 번복해 논란이 됐다. 그런데도 2030 여성들은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이 후보를 찍었다. 그 배경엔 당시 선대위가 영입한 ‘추적단 불꽃’ 활동가 박지현씨가 있었다. 박씨가 이 후보와 함께 유세를 다니며 국민의힘의 성차별 정책을 비판하자 2030 여성들이 모였다. 민주당은 성평등 의제에 목소리 내온 여성 인사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성평등을 지향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수록 두렵다. 선악 구도로 치러질 것이 분명한 선거판에서 정권 교체 ‘대의’ 앞에 이번에도 성평등은 뒷전이 될까봐. 지금도 그럴 조짐이 보인다. 현역 민주당 의원이 “차별금지법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라고 당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실용’을 위해, ‘먹고사니즘’을 위해 성평등은 잠시 미뤄두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정치세력이 감히 ‘선’의 위치를 차지하도록 놔두는 게 맞을까.

      탁지영 기자 2025.03.07 14:3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6) 모두가 평등하게 막말하는 사회

      사회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6) 모두가 평등하게 막말하는 사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난 4월 민희진 어도어 당시 대표의 기자회견이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는 공적 공간에서 사용 가능한 표현의 한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막말과 욕설을 쏟아냈는데, 오히려 이 점이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한국사회는 막말에 관대한 것일까? 이 문제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막말의 기능 ‘막말’의 사전적 의미는 ‘말을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말의 내용과 표현 모두가 포함된다. 예컨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당신의 외모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답지는 않군요’라고 말한다면, 이건 막말일까? 표현은 정중하지만, 발언 내용의 무례함 때문에 막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면 평범한 일상어에 습관적으로 욕설과 비속어를 덧붙이는 사람, 나이 어린 사람에게 다짜고짜 반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의 발언은 내용이 아니라 표현 방식 때문에 막말로 간주된다. 많은 사회에 ‘품위 있는 언어를 써야 한다’는 관습적 규칙이 존재하는데, 이 규칙이 일차적으로 다루는 대상은 언어의 내용보다 형식이다. 그래서 공적 공간에서 욕설이나 비속어를 쓰지 않는 것이 ‘교양인’의 기본 조건으로 생각된다. 이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사실이지만, 왜 그 규칙을 존중해야 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의 구별이라는 전통적 문제, 그리고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구별이라는 근대 사회의 문제가 모두 개입돼 있다. 공적 공간이 저속한 표현과 욕설을 허용하지 않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공적 대화의 기본 토대를 파괴한다는 데 있다. 막말이 난무하는 곳에서 합리적으로 대화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 언어 교환은 말싸움일 뿐, 대화라고 할 수 없다. 막말은 사적 공간이나 친밀성의 관계에서만 조건부로 허용된다. 상위문화, 정확히 말해서 지배계급의 엘리트 문화는 막말을 배제하고 ‘교양 있는 언어’를 요구한다. 이는 지배계급이 자신의 문화와 도덕을 사회 전체의 규칙으로 일반화함으로써, 지배 리더십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즉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는 교양인의 언어가 필요하고, 그 교양인이란 바로 우리 엘리트 계급’이라는 식이다. 그람시는 이런 리더십을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결국 교양 있는 언어는 역설적 성격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공적 대화를 위한 기본 형식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트 집단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양인의 언어는 위선적 언어이고, 막말이야말로 진실한 언어라는 발상도 등장한다. 부패한 정치인의 비리 사건을 두고 ‘교양과 품위 있는 언어’로 토론하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왜 XXX를 XXX라고 부르지 못해!’라는 분노가 치밀지 않는가? 막말이 일종의 저항 수단으로 생각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위문화는 교양인의 언어에 대립하는 은어와 비속어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지배질서에 맞서 싸우려는 투사와 예술가는 욕설을 언어적 무기로 채택하기도 한다. 한국에 상위문화가 존재하는가? 방금 이야기한 내용은 현대사회의 일반적 특징이지만,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과연 한국에 ‘교양과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지배권력을 유지하는 엘리트 집단’, 즉 문화적·도덕적 헤게모니를 갖춘 지배층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곧바로 떠오르는 것이 의사들이다. 한국에서 의사는 특권적 직업으로 간주된다. 소득 수준이 다른 모든 직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의사를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보는 시선도 흔하다. 의사 중에는 기이한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의협 관계자들이 쏟아내는 막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사적인 술자리에서나 나올 저속하고 무례한 언어를 공적 언어로 사용하고, 인터넷 하위문화에서 볼 수 있는 조롱과 모욕의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교양 없는 엘리트, 상위문화를 파괴하는 지배계급, 공적 언어와 사적 언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전문가 집단은 한국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의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막말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정치인도 많다. 이는 ‘정치인의 품위 없음’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정치인은 교양인이 돼야 한다. 정치적 이념이나 진영에 상관없이 교양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 즉 상위문화를 실천하는 것이 지배 엘리트로 인정받기 위한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막말은 그런 인정을 포기하는 전략이다. 이는 시민 일반의 지지를 거부하고, 열성 지지자들에게 몰두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이런 전략이 가능한 것은 공적 공간이 교양 있는 언어로 구성돼야 한다는 규범 자체가 허약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한국에는 하위문화와 구별되는 상위문화, 정확히 말하자면, 문화적 헤게모니가 분명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도 관습적 언어 규칙을 무시하고, 저속하고 거친 발언을 내뱉는 정치인이 있다. 그들에게는 대체로 ‘극우’나 ‘포퓰리즘’ 같은 딱지가 붙는다. 포퓰리스트는 지배 엘리트에 대한 반감을 이용하고, ‘교양 있는 척, 똑똑한 척 말하는 엘리트 집단에 맞서 보통 서민들의 언어로 말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치인의 막말을 포퓰리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내뱉는 비속어와 조롱은 정치적 경쟁자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일 뿐, 반엘리트 정서를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한국에 교양인으로서의 지배 엘리트가 존재하는지 자체가 의심스럽다. 한국에도 물론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의 구별이 존재한다. 지상파 방송과 유튜브 콘텐츠가 분리되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숏폼에 떠돌아다니는 정보가 다르다. 하지만 한국의 상위문화는 표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하위문화의 영향력은 ‘하위(sub)’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강하다. 주류 언론은 인터넷 밈을 모방해서 콘텐츠 장사를 하고, 사교육 스타 강사의 발언이 해당 분야 연구자의 영향력을 압도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집게손 논란’이 괴담처럼 떠돌면, 국가기관과 대기업이 납작 엎드려 사과한다. 민희진 전 대표의 기자회견은 하위언어가 주류 매체의 규칙을 압도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곳에서는 교양인의 언어가 놀림감이 되고, 막말이 모두의 언어로 기능한다. 그래서 공적 토론은 거의 예외 없이 비하와 조롱으로 끝난다. 모든 사회 영역이 미세한 계급관계로 구성돼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균질하고 획일적인 것이 이 사회의 특징이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2024.09.27 16:00

    • 문화/과학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39)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평등의 순간

      ‘죽음 앞에서 평등’(1848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우리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학력, 재산, 직업, 사는 동네 등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기를 즐긴다. 또 그런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처럼 인생의 수많은 시간을 계층 형성을 위해 보내고, 그 계층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굳건히 형성하고자 한다. 연고가 없는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의심하는 것도 인맥을 통해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이물질 없이 끼리끼리 놀고 싶다는 뜻이다. 하지만 원하지 않아도 평등해지는 순간이 있다.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 인간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게 무소유를 실천하게 만드는 신이 그리스신화에서 ‘죽음의 신’으로 나오는 타나토스이다. 로마신화에서는 ‘모르스’라고 불린다. 타나토스는 밤의 신 닉스의 아들로, 잠의 신 히프노스의 쌍둥이 형이다. 타나토스는 성격이 선하며 온순하지만 죽은 자를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스틱스강에서 카론에게 죽은 자를 인도함으로써 그 역할을 끝낸다. 타나토스도 실패한 적이 있다. 인간 시시포스에게 속아 아레스에게 구출되는 굴욕을 겪었으며 헤라클레스에게 두들겨 맞고 알케스티스의 생명을 거두지도 못했다. 타나토스의 힘이 세상 사람들을 다 끌고 갔지만, 헤라클레스의 힘에는 유일하게 밀렸기 때문이다. 타나토스의 ‘저승사자’ 일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1825~1905)의 ‘죽음 앞의 평등’이다. 벌판에 젊은 남자가 누워 있고, 그 위로 검은 날개를 단 천사가 흰 천을 덮고 있다. 젊은 남자의 몸은 창백하며 가슴까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검은 날개의 천사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나타낸다. 누워 있는 남자를 흰 천으로 덮고 있는 것은 그가 죽었음을 암시한다. 전통적으로 타나토스는 젊은 남성으로 표현되는데 죽음은 곧 남성, 삶은 여성으로 그려진다. 또 타나토스는 주로 로브를 뒤집어쓰고 검은 날개가 달린 젊은 청년이 낫이나 검을 든 차림으로 그려지고 있다. 타나토스가 들고 있는 흰 천은 죽음의 덮개를 나타낸다. 반듯하게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은 불가항력인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슴까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황량한 대지는 인간이 죽음을 느끼는 감정을, 청년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초록의 하늘은 이승이 아닌 저승임을 암시한다. 부게로의 작품은 주로 어린 소녀를 그린 것이 많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기존의 화사한 톤에서 벗어났다. 다른 화풍을 시도한 첫 작품치고는 주제가 상당히 무겁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일을 하면 실패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실패할 인생은 실패하고 성공할 인생은 성공한다.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신의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 때문에 평등해지고 말 인생이다. 사람 가리지 마시라.

      박희숙 작가 2023.08.25 10:54

    • 사회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8)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얼마 전 한 아파트 시행사가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광고를 걸었다가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해당 아파트의 분양가는 100억원에서 4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저런 광고 문구를 생각해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는 사실 역시 놀랍지 않은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주변 어디에나 널려 있기 때문이다. SNS에는 ‘상류층’과 결혼하려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결혼 정보 회사 광고가 뜬다. 결혼과 계급 차이는 익숙한 주제지만, 결혼 상대방의 ‘스펙’을 하나씩 따지며 인간의 등급을 분류하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주거지에 따른 차별은 일상적 사건이 돼 별다른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기괴한 외국어 이름이 붙은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를 보라. 아파트단지 입구에 서 있는 저 흉물스럽고 거대한 아치는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자기 존재 증명 같은 것이 아닌가? 이런 사회에서 앞서 말한 광고 문구가 비난받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래도 아직은 불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순히 표현의 수위가 문제인가? 혹은 내가 ‘상류층’이 되려는 건 괜찮지만, 이미 상류층이 된 이들의 계급 놀이는 봐줄 수 없기 때문일까?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일이 대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평범한 부자가 되기 위한 삶 한국의 불평등은 극단적이고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불평등 지수는 그 독특성을 표현하기에 불충분하다. 흔히 생각하는 ‘살 만한 삶’의 기본 조건을 따져보자. 일단 서울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하고, 자기 소유의 아파트가 필요하다. 자녀의 사교육비 평균을 부담하고, 적절한 여가와 여행을 즐기고, 충분한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부자가 돼야만 이런 조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가구 순자산 상위 10% 선이 9억원 정도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10억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방금 말한 삶의 기본 조건을 누리려면 상위 10% 이상의 자산가가 돼야 한다. 이제 한국에는 ‘부유하진 않지만 평범하고 행복한 삶’ 따위의 관념은 존재하기 어렵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부자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상당 기간이 상위 10%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으로 채워져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얻고, 자산을 불리는 게 인생의 표준 경로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그 노력이 성공하면 어느 정도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지만, 실패하면 노인 빈곤의 위험에 노출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지역 불평등, 양극화된 노동 시장, 기이한 부동산 시장, 학벌 차별, 불충분한 사회보장체계 등 불평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이에 관한 분석은 많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 하나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한국인의 일반적 욕망은 어떤 세상을 향하는가? 평등한 세상인가, 불평등한 세상인가? 한 아파트 시행사는 홈페이지에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홍보문구를 썼다가 비판받고 사과문을 올렸다. / ‘더 팰리스 73’ 홈페이지 캡처 당신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가? 자산과 소득의 차이는 곧바로 인간 존엄성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상위 10%는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이다. 자산과 소득 수준이 낮아질수록 존엄성이 침해될 위험이 증가한다. 이는 단순히 부자가 빈자를 멸시하는 현상이 아니다. 자산 100억원을 가진 사람이 10억원 가진 사람을 무시하고, 10억원 가진 사람이 1억원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식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외적 위험이 아니라 내적 위험이다. 한 인간의 가치가 물질적 ‘스펙’으로 환원되는 사회에서, 그 누구도 내적 자존감을 온전히 지키기는 어렵다. 따라서 어딜 가나 자기 비하에 빠진 사람이 넘쳐난다. 이는 결코 자본주의의 당연한 효과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에서 인간 존엄성의 불평등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불평등 없는 나라가 없지만, ‘나보다 아래쪽에 있는 인간을 무시해도 된다’는 관념이 한국처럼 일반적인 곳은 드물다. 이런 현상이 현실의 불평등을 심리적으로 내면화한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불평등에 대한 욕망이 현실의 불평등을 낳은 것은 아닐까? 한국의 불평등이 이토록 독특한 것은 다수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기 때문은 아닌가? 불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존재는 확고하다. 어디서나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찾기 힘들다. 이들이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 집단 의지로 결집돼 있다는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 불평등의 원인과 양상을 분석하는 경제학자는 많지만, 평등이란 무엇인지를 다루는 학자는 드물다. 불평등 완화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흔하지만, 평등을 정치적 가치로 주장하는 정치인은 극소수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슈퍼리치’에게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고 말하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 평등이란 무엇인가? 사회경제적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시민은 똑같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모든 인간은 똑같이 존엄하다는 원칙, 모든 사람이 모든 타인을 똑같은 시민과 인간으로 대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원칙이다. 이런 원칙이 최소 수준이라도 합의돼 있었다면, 아이들이 전세 사는 친구를 따돌린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을 때 온 나라가 뒤집혔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 자문해 봐야 한다. 내가 꿈꾸는 것은 평등한 세상인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인가? 평등한 세상을 원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내 아래로는 불평등하고 내 위로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아닌가? 아래를 향해서는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다’고 말하고, 위를 향해서는 ‘세상은 평등해야 한다’고 외치는 게 지금 한국의 상식 아닌가? 부자 되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평등이라는 원칙을 망각하기 위한 노력이다. 한국의 시민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그 사회 구조를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불평등 개선이나 완화가 아니라 평등 그 자체를 생각할 수 있을 때만, 한국을 더 인간적인 곳으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2023.07.07 11:29

  • 레이디경향

    • “임신에 관한 생식 평등 제공” ‘비호르몬’ 남성용 경구 피임약 개발

      건강

      “임신에 관한 생식 평등 제공” ‘비호르몬’ 남성용 경구 피임약 개발

      코넬 의과 대학 연구진이 일시적으로 정자의 운동을 무력화시키는 남성용 경구 피임약 실험에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임신에 관한 남녀 간 생식 평등을 제공할 것이다.” 미국 야후 뉴스에 따르면 코넬 의과대학 연구진이 14일(현지 시각) 남성용 경구 피임약 실험에서 얻은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으며 한 말이다. 연구진이 개발 중인 남성용 경구 피임약은 수컷 쥐의 정자를 일시적으로 약 2.5시간에서 3시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새로운 남성의 피임약 개발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자평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지원 자금으로 실험 개발 중인 남성용 경구 피임약의 기능은 이렇다. 연구진은 수컷 쥐에게 가용성 아데닐릴 사이클라제(sAC)를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화합물을 투여했다. 아데닐릴 사이클라제는 정자 세포가 수영하는 능력을 활성화해 여성 생식 기관 속 난자가 수정하는 데에 필수적인 효소다. 해당 연구로 화합물을 맞은 모든 수컷 쥐는 정상적인 짝짓기 행동을 보였으나 임신을 일으키지 않았다. 화합물을 투여받지 않은 수컷과 짝짓기한 암컷 쥐의 30%는 임신이 됐다. 수컷 쥐는 최대 2.5시간 불임 상태를 유지했고 3시간 후 정자의 운동성은 회복됐다. 24시간 이후 진행한 검사 결과 모든 쥐에게서 부작용이 관찰되지 않았으며 생식능력을 완전하게 회복했다. 이 남성 경구 피임약이 여성용 피임약을 비롯해 기존 피임약과 가장 큰 차이점은 비호르몬제라는 점이다. 이 연구의 공동 저자인 로니 레빈 박사는 “기존 호르몬 요법은 94% 임신을 예방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피부 트러블, 기분 변화 같은 부작용이 있다”라고 말했다. 개발 중인 피임약은 또한 정기 복용해야 하는 호르몬 경구 피임약과 달리 1회 복용만으로 즉각적인 피임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우리의 연구는 남녀 두 파트너 모두에게 생식 평등을 제공할 수 있는 피임약을 개발해야 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라며 “수년 동안 남성의 유일한 피임법은 콘돔과 정관 절제술이었다. 새로운 피임법은 여성용 경구 피임약과 마찬가지로 가족 계획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이 제시한 남성용 피임약의 기능 목표는 남자가 성 관계 직전에 약을 먹고 이후 12~18시간 불임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2~3년 안에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시작하고 6~8년 안에 상용화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유엔 성생식 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모든 임신의 평균 40%는 의도하지 않은 임신으로 보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도 30~40%로 추산된다. 여성 피임법은 1960년대 여성 피임약이 처음 나온 이후 경구 피임약, 응급 피임약, 자궁 내 삽입 시스템(IUS) 등이 높은 피임 효과와 함께 다양하게 발전해왔지만, 남성 피임법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콘돔 사용과 정관 수술에 그쳐 피임 부담이 여성에 치우쳐 있는 현실이다.

      이유진 기자 2023.02.16 11:24

    •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인간 평등\'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문화/생활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인간 평등'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열아홉 번째 책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지음 / 허블)이다. 이번엔 제원이 쓴다. ▶세희와 제원의 대화 제원:음, 오늘은 통 식욕이 없네. 세희:먹보 우제원씨가 웬일이래? 제원:종일 제 잘난 척하는 녀석의 말을 들어줬더니, 밥맛이 다 떨어지네.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그저 자기만 최고라니… 에휴~ 세희:남들은 자기보다 무조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모지리들이 꽤 많지. 그런데 그런 사람하고 뭐하러 온종일 붙어 다니냐? 그런 인간들과 오래 접촉하면 정신건강에 안 좋아. 그 증상은 전염성이 있거든! 제원:짜증나고 역겨워서 혼났어. 그런데 소득도 있었어. ‘끊임없이 자기 객관화를 하지 않으면, 삶의 균형이 순식간에 깨진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세희야, 만약 너도 나 때문에 밥맛 없으면 알지? 세희:하하. 걱정을 마셔. 그러기만 하면 이단옆차기로 아주 박살을 내주겠어! ▶둘리야 미안해 둘리야! 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고 해. 너는 어린 시절 변신 로봇 다음가는 나의 우상이었지. 그런데 내가 성인이 되면서 마냥 귀엽고, 좋았던 네가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미숙하고 철없게 보이고, 너를 향한 내 마음이 싸늘해졌어. 문득 네가 꼴 보기 싫어 방치했지. 넌 내게 이유를 묻지 않겠지만, 난 왠지 부끄럽네. 동심을 잃은 건 내 문제였는데 말이야. 둘리야, 인간이 신으로부터 시간만큼이나 공평하게 부여받은 게 뭔 줄 아니? 그건 바로 결핍이야. 결핍이 없는 사람도 없고, 또 누군가보다 ‘더’ 결핍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의 결핍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려 안달이지. 아니 찾기보다는 억지로 만들어 내면서, 타인의 결핍 위에 서려고 해. 그건 자기 과시를 덧칠하면, 자신들의 결핍이 가려진다고 착각하는 바보들이지.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이런 사회적 결핍이 만든 차별과 망상을 시원하게 걷어차는 소설이야. 노인, 어린아이, 성소수자 등 우리 사회가 유난히 결핍된 존재라고 믿는 인물들을 주인공인 흥미진진한 이야기지. ▶식욕감퇴 유발자 자신의 장점을 과도하게 뽐내는 태도를 우리는 ‘잘난 척’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진짜로 잘난 게 아니라 그런 척을 하고 있다는 소리다. 과연 이 말만큼이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잘난 게 있으면 못난 것도 있으니 남들보다 더 잘난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건방 떨지 말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하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누군가보다 잘나거나 못난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은 취약계층으로 낙인찍는 사람들은 실상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도 나도 모두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바른 공동체는 서로 다른 결핍을 채우고 나누면서 공존해야 한다. 결핍의 양을 저울질하는 것만큼 우매한 일은 없다. 돈과 권력의 소유로 무게를 저울질하는 나쁜 놈들이 아니면 말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포항공대에서 생화학을 공부한 김초엽 소설가의 SF소설이다. 스펙트럼, 공생 가설 등 상상력이 톡톡 튀는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우주비행사가 된 중년 여성, 순례에 나선 어린이 등 사회가 미숙하고 약하다고 인식하는 존재들의 삶의 이야기다. 단편 ‘스펙트럼’의 주인공 희진은 우주 생명체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사고로 외계행성에 불시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루이라 불리는 ‘무리인’과 함께 지내게 된다. 그와 함께 지내며 희진은 기묘한 일을 겪는다. 그건 루이가 죽더라도, 그 뒤를 이어 새로운 루이가 온다는 것. 여기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이 책은 사회가 결핍됐다고 여기는 존재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진지함과 감동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책의 주인공들과 당신은 분명 같은 인간이다”라고 말이다. 김초엽의 문학적 상상력 속에선 외계인조차 다르거나 결핍되거나 구분돼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김초엽 문학은 바로 이런 점이 독특하면서도 현대적이다. 결핍된 존재들로부터 이야기를 그려내는 책의 시선은 페미니즘의 서사와 닮았다. 페미니즘은 인간 평등을 실현하는 운동이자 학문이다. 인류 역사상 평등을 쟁취하는 과정이 쉬웠던 적이 있던가.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평등을 말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누리기 위한 자격을 증명하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자신이 남보다 잘났다는 걸 가정하고 하는 소리니 이 또한 잘난 척이다. 페미니즘은 이런 식욕감퇴 유발자들을 향해 ‘인간 평등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라 외치는 일갈이다. ▶세희의 한마디 페미니즘은 성별, 인종, 계급 등에 따라 다양한 갈래로 나뉘어 있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12개가 넘지. 모두 같은 페미니즘의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건 그 내용과 모습은 달라도 모두가 평등한 인간임을 인정하기 때문이야. 우리의 페미니즘은 인간 평등을 훼손하려는 그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정신으로 대동단결해야 해.

      북칼럼니스트 2020.11.11 17:09

    • 화제

      양성평등 실천 우수기관 한국자산관리공사의 행복한 여자들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여성을 배려하는 가족 친화적인 경영이 대세입니다” 여성가족부 장하진 장관이 지상 과제라고 공언할 만큼 강조한 ‘양성평등’. 남녀 구분 없이 똑같이 분담하고 똑같이 대우받자는 양성평등을 우수하게 실천해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한 자산관리공사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무실의 공기부터 달랐다면 오버센스일까. 공기업이라 자칫 딱딱하고 사무적인 분위기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사내 분위기는 자유롭고 화기애애했다. 지난 7월 5일 여성가족부 주최로 제11회 여성주간 기념식에서 양성평등 실천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자산관리공사. 여성단체나 보육시설을 제외하고 공·사기업을 통틀어 유일한 수상 기관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크다. 공기업의 여직원은 오랫동안 마이너리티의 대명사였다. 수적 열세는 물론이고 1990년대 중반까지는 입사 후 일정기간이 지나 전직시험을 봐야만 남직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자산관리공사는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이전부터 여사원제도를 폐지해 전 직원이 평등한 조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 만들기에 노력해왔다. 신입사원 공채시 10~20%에 머물렀던 여성 비율이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50%를 넘어서 전체 여직원 비율이 28%에 이르며 ‘남성할당제’를 도입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여사원제도 하에 입사한 선배부터 이제 입사 반년이 넘어가는 신입사원까지, 자산관리공사의 여성 대표들로부터 양성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오후의 티타임을 가졌다. 이젠 여자 선배가 남자 후배에게 육아 휴직 권하는 시대 “제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공기업에서는 여직원은 물론 대졸 여직원은 더더욱 원치 않는 풍토였습니다. 남자들이 한 개를 완성해 인정을 받는다면 여성은 열 개 이상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열 배는 일을 해야 했거든요. 한명숙 총리와 같이 정부 요직에 진출한 중장년 선배들 모두가 똑같이 겪어야 했던 과정이었겠지요. 그런 노력 덕분에 양성평등의 기반이 이뤄졌다고 봅니다.”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행복한 것이 양성평등’이라 정의를 내린 노정란 혁신경영지원부장은 공사 내 유일한 여성 부장으로 3년 전부터 채용 면접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세월이 무색하다 싶은 건, 요즘 그녀가 남자 직원들에게 둘째, 셋째를 낳으라고 ‘강력 추천’하고 있다는 것. 남성들도 육아 휴직을 활용해 아이 키우는 재미를 누리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입사 22년 차인 노 부장은 미혼이다. 김은주 희망모아관리부 과장은 육아 휴직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녀는 90일(근무기간 기준이라 실제는 1백 일에서 조금 빠짐)의 휴직 기간 동안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직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낳은 큰아이가 벌써 열두 살이니 자산관리공사가 얼마나 앞서갔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현재 육아 휴직 기간은 1년 이내로 규정되어 있다. “누군가 육아 휴직에 들어가면 인사부에서 별도의 인력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나로 인해 다른 직원들이 힘들겠다는 부담을 덜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 점이 바로 직원들에 대한 배려겠죠.” 입사 3년 차인 종합기획부 문경민씨는 입사 동기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신생아를 둔 주부인 동기는 모 대기업의 입사 면접에서 “야근은 할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은 뒤 탈락의 고배를 마셨는데, 자산관리공사에서는 일체의 차별적인 질문을 받지 않았고 합격의 영예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해외사업부의 황인영씨는 지난 12월 신입사원 중 여성 비율 50%를 이끈 여풍의 주역이다. 입사 전 ‘연합뉴스’의 아나운서로 3년간 재직했던 그녀는 자산관리공사의 열린 채용이 아니었더라면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신입으로 지원하기에는 많은 나이였기 때문에 타 기업의 경우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아침저녁으로 자기개발에 부단히 노력하는 여자 선배들을 보면서 저도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잘 병행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양성 평등 문화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산관리공사에는 유독 사내 커플이 많은 편이다. 김은주 과장도 그중 하나다. 이종진 홍보실장은 “일반 금융권의 경우 구조조정시 사내 커플을 1순위로 한다는데, 본사는 사내 커플에게 가는 불이익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풀이했다. interview 자산관리공사 김우석 사장 “직원 간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이 양성평등 문화를 이끌어냈다” 공·사기업을 통틀어 유일하게 양성평등 실천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는데, 그 의의를 들려준다면. 여성가족부에서 민간 및 자체공적심사위원회의 엄격한 절차를 걸쳐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CEO로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 공기업은 뭔가 보수적이라는 인상이 있는데, 우리가 변화에 앞서고 솔선수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본다. 양성평등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몇 해 전 모 광고 카피 중에 ‘차이는 있지만 차별은 없다’는 문안이 있었는데, 그 말이 적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남녀의 차이를 뛰어넘어 똑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과제가 여성 인력의 활용인데, 여성에게는 그 부담을 덜어주도록 배려하는 것까지가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양성평등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비결이 무엇인지 타 기업에서 궁금해할 것 같다.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적인 개혁이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모성보호를 우선으로 직장과 가정에 모두 충실할 수 있도록 양성평등의 여건을 마련하고 기존에 여성 진출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분야에 과감히 여성 간부를 중용 육성했다. 채용에서도 남녀 구분을 두지 말고 직무수행에 필요한 능력과 실력만 보자는 게 원칙이다. 여기에 여성면접관을 배정해 자칫 양성평등에 어긋날 수 있는 질문을 근절하도록 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3~4년 전부터 여직원의 비율이 증가했고 작년에는 신입사원의 50%를 초과하는 획기적인 변화가 왔다. 공기업에는 여성 간부가 없다는데 우리는 변화를 주도하는 1급 참모 혁신지원부장이 여성이며, 일선 사령관인 여성 지사장도 있다. 직장 내 양성평등 실천을 위해 남자와 여자, 공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면. 양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제도나 시스템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인드다. 남녀가 서로 동반자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앞으로 국가경제를 위해서는 저활용되었던 여성 인력의 채용을 늘리지 않으면 지속적인 발전이 어려울 거라는 게 사회적인 공감이 아니겠는가. 이런 변화를 이젠 직원들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가정에서도 양성평등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평일에는 못 도와주지만 주말에는 적어도 식사 후 빈 그릇 치우기, 청소, 자동차 관리는 내 몫이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크던 작던 가정에서 모든 의사 결정은 반드시 아내와 상의한다. 평생 공직에 몸담다 보니 사회생활에 서툰 면이 있는데 생활의 지혜는 아내들이 더 뛰어나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 같다. 2005년 1월 취임한 김우석 사장이 급선무로 생각한 것은 직원 간 인화단결. 종합 체육대회, 노조대위원들과의 정기적인 대화, 청년이사회(캠코 영라운드)와의 간담회, 월 1회 전 직원과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는 호프데이 등을 마련해 직원들과의 스킨십 기회를 늘려왔다. 마침 노동조합 19주년 기념일을 맞이해 직원들과 탁구경기를 하고 왔다는 김우석 사장을 만나보니 양성평등은 너 나 할 것 없이 공정하게 어우러진다는 인화단결의 기치 아래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글/장회정기자 사진/원상희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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