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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간집’ 풍자, 맛집 추천 안 받고 직접 차린 밥상 “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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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간집’ 풍자, 맛집 추천 안 받고 직접 차린 밥상 “살 것 같아”

      유튜브 채널 ‘풍자테레비’ 일반인 출연자의 거짓 추천으로 논란이 된 웹예능 ‘또간집’ MC 풍자가 봄맞이 계절음식을 직접 준비했다. 28일 풍자의 유튜브 채널 ‘풍자테레비’에는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올 사람?’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풍자는 “우리나라의 자랑 중 하나가 사계절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사계절이 있으면 여기에 나오는 제철 음식이 있다. 그래서 이걸 내 마음대로 오마카세처럼 해보겠다”고 말했다. 풍자는 “1년의 5월은 봄의 시작이라 봄 제철음식을 준비했고, 풀 밖에 없지만 맛있게 먹어야 한다. 오늘 준비한 음식은 무와 표고버섯이 들어간 밥, 달래장, 냉이 된장찌개, 쑥 부침개, 데친 두릅”이라고 말하며 본격적인 음식 장만을 시작했다. 이후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으로 식사하던 풍자는 사투리를 연발하며 “그냥 냉이 밭이다. 진짜 맛있다. 최고”라고 했다. 이어 풍자는 데친 두릅을 먹으며 “두릅이 제철이긴 한데 아직 피크를 아니어서 향이 약간 부족하다. 그래도 너무 맛있고 향이 부족한 대신 연하다. 남자 초대하고 싶은 맛”이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더불어 제작진들의 식사까지 챙긴 풍자는 “어디 한정식집 온 것 같지 않냐”며 “살 것 같다. 사람이 살 것 같다는 말이. 이렇게 맛있는 거 먹어도 살 것 같다”고 감탄했다. 그러면서 풍자는 “이걸 장보는데 2만 6천원 정도가 들었다. 요즘 배달비 2만 6천원이면 족발도 못 사먹는데 이렇게 해드셔라”라고 조언했다. 한편 풍자가 출연 중인 웹예능 ‘또간집’ 측은 안양의 맛집으로 선정된 식당이 콘텐츠의 맛집 선정 기준을 어겼다는 공지를 냈다. 이 공지에서 제작진은 제보와 당사자 확인을 통해 해당 사실을 확인했다고 알렸으며 “이에 따라 전달된 포스터는 회수하고 해당 구간은 영상에서 삭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김희원 온라인기자 2025.04.28 18:24

    • 출연자 거짓 제보 논란, 풍자의 ‘또간집’ 제작진 사과 “해당영상 영구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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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자 거짓 제보 논란, 풍자의 ‘또간집’ 제작진 사과 “해당영상 영구 삭제”

      방송인 풍자. 사진 스포츠경향DB 방송인 풍자가 출연하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 ‘또간집’이 출연자의 거짓 제보로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내보냈다. 지난 27일 ‘또간집’을 제작하는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수제’ 측은 공지문을 통해 최근 불거진 ‘또간집’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최근 공개된 ‘또간집’ 안양 편에서 1등으로 선정된 맛집이 ‘또간집’의 선정 기준을 어긴 사례가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어 “일반인 출연자분의 발언 중 ‘가족관계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사실과 다름을 직접 확인했다”며 “당사자에게 직접 사실을 확인했으며 당사자는 스튜디오와 시청자분들께 거듭 사과의 뜻을 전해왔다. 이에 따라 전달된 포스터는 회수했고 해당 영상은 영구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안양 편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준비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최근 공개됐다 출연자 거짓 제보 논란을 겪은 유튜브 예능 ‘또간집’의 안양 편 한 장면. 사진 스튜디오 수제 유튜브 채널 방송화면 캡쳐 제작진은 또한 “일반인 출연자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우려해 신중히 대응하고자 했다”며 “출연자분의 신상정보나 과한 비방 댓글을 원치 않으며 삭제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또간집’은 지난 3년간, 단 한 건의 맛집 광고를 받지 않은 점을 시청자분들께 다시 한번 명확히 말씀드린다”며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당부했다. ‘또간집’은 풍자가 길거리 인터뷰 등 시민 출연자들의 추천을 받아 지역의 맛집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안양 편에서 논란이 생겼다. 영상 막바지에 출연한 시민이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을 맛집으로 추천했고, 이를 몰랐던 풍자가 이 식당을 안양 편 1등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이후 시청자들을 통해 ‘가족 식당’이라는 제보가 쏟아지자, 제작진은 출연자에게 확인하고 출연자는 댓글에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결국 100만 가까이 조회수가 나왔던 이번 안양 편은 영구삭제의 비운을 맞게 됐다.

      하경헌 기자 2025.04.28 09:01

    • 풍자, 하지 마라는 ‘이 성형’ 했다가 부작용 “계속 충혈” (풍자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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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자, 하지 마라는 ‘이 성형’ 했다가 부작용 “계속 충혈” (풍자테레비)

      유튜브 채널 ‘풍자테레비’ 방송인 풍자가 성형 부작용과 함께 자연스러운 얼굴이 가장 예쁘다고 조언했다. 22일 유튜브 채널 ‘풍자테레비’에는 ‘여태까지 했던 모든 성형수술 썰 l 성형의 경험담과 부작용, 주의사항,수술 횟수 총정리’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이날 풍자는 항간에 떠도는 자신의 성형의혹에 대해 “사람한테 풍노키오라 그러고, 일본 콘센트 같다 이러더라. 여러분들에게 풍자의 성형스토리를 들려드리면 어떨까 했다. 이 영상을 찍는 이유는 이제 할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풍자는 눈 성형 부위에 대해 “뒷트임을 하고 싶었다”며 “눈이 위로 큰 게 아니라 가로로 길어야 예쁘다. 뒷트임이 너무 하고 싶어서 병원을 다섯 군데 이상 갔는데 나는 뒷트임을 하면 안 된다더라. 사람들 중에 뒷트임이 안 되는 눈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성형을 거절당한 이유는 눈 뼈와 눈 끝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라고. 그러나 풍자는 결국 수술을 했다며 “어느날 어떤 병원에서 조금이라도 터보자고 해서 듀얼 트임을 했다. 밑 트임과 뒤 트임을 같이 하면서 눈을 선하게 밑으로 약간 찢는 거였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풍자는 바로 부작용이 왔다며 “하면 안 되는 걸 하니까 그러더라. 눈 밑이 계속 말려 들어가고 속눈썹이 안구를 계속 찔러서 충혈이 일어나고, 아침에 건조해서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을 겪고 언더 속눈썹 라인을 절개해서 살을 잘라내고 봉합했다”고 말했다. 영상 말미, 풍자는 성형을 한 것에 대해 “성형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케이스여서 한 거긴 한데 안 해도 되는데 한 것도 있고, 욕심으로 한 것도 있고, 남들이 한다길래 해본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자연스러운 게 제일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며 “가끔 내 모니터링을 하는데 웃거나 할 때 부자연스럽게 웃더라. 그런 걸 보면서 후회되는 것도 있고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고 조언했다.

      김희원 온라인기자 2025.04.23 15:00

    • 풍자, 코 성형만 5번 “과하다고? 내 몸이 더 과해, 10000%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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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자, 코 성형만 5번 “과하다고? 내 몸이 더 과해, 10000% 만족”

      유튜브 채널 ‘풍자테레비’ 방송인 풍자가 코 성형을 5번 했다며 현재 결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22일 유튜브 채널 ‘풍자테레비’에는 ‘여태까지 했던 모든 성형수술 썰 l 성형의 경험담과 부작용, 주의사항,수술 횟수 총정리’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이날 풍자는 항간에 떠도는 자신의 성형의혹과 관련해 “사람한테 풍노키오(풍자+피노키오)라 그러고, 일본 콘센트 같다 이러더라. 여러분들에게 풍자의 성형스토리를 들려드리면 어떨까 했다. 이 영상을 찍는 이유는 이제 할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상에서 이마수술, 눈썹 뼈 수술, 눈 성형을 받았다고 고백한 풍자는 “코 얘기는 언제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코 영상을 두 개나 찍어놨는데 그때 너무 많은 댓글과 추측이 있어서 지금 얘기해봤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 같더라. 나는 코를 다섯 번 정도 했다”고 고백했다. 풍자는 “첫 번째 코는 별로였다. 사람들이 ‘코 수술을 했다고?’라고 할 정도였다”고 말하며 “다음으로 한 콧볼 수술은 만족감이 있었고 그 다음에 한 두 번째 수술에서도 (결과가 똑같아서) 코 성형 복이 없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풍자테레비’ 두 번의 수술에도 크게 달라진 점을 못 느꼈다는 풍자는 어느날 이상 증세를 겪었다며 “병원에 갔더니 염증이 시작되고 있다더라. 확실하진 않으나 안 좋은 재료가 들어간 것 같으니 수술을 해보자고 해서 세 번째 수술에 연골을 뺐다. 코에 연골을 댔는데 너무 옛날에 쓰던 재료가 들어갔고, 염증 유발을 하는 거라 그 재료를 빼고 연골과 실리콘을 넣었다”고 했다. 다만 풍자는 연골을 넣고 코끝이 점점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며 “연골을 쓰는 단점 중 하나가 코가 떨어지는 거다. 감기 걸리면 코를 먹게 되는데 그때 입술이 코에 닿을 수준이었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풍자는 “이게 병원의 잘못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라서 네 번째 수술을 했다. 기증늑연골을 써서 그때 코가 마음에 들었는데, 수술하고 3년 정도 지나니 코가 휘기 시작하더라. 코 수술을 하고 싶은데 할 시간이 없어서 모든 프로그램에 연락해서 ‘한 번만 봐달라’고 했었다. 감사하게도 모든 프로그램에서 시간을 주셔서 수술한 게 지금 코”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풍자는 코수술 후 대중들의 반응에 대해 “너무 높다, 부자연스럽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내 코에 10000% 만족한다. 실물 보신 분도 과하다 할 수 있지만 내 몸이 더 과하고 얼굴 크기가 더 과하다. 그래서 중심부도 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코가 작으면 귀여운 맛이 있겠지만 이러면 코가 묻힌다. 그렇기에 내가 너무 원했던 코고 무너짐이 없으니까 너무 좋다”고 만족했다.

      김희원 온라인기자 2025.04.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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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40) 시국 풍자 봇물 “숨 좀 쉬며 살자”

      문화/과학 이주영의 연뮤 덕질기

      [이주영의 연뮤덕질기](40) 시국 풍자 봇물 “숨 좀 쉬며 살자”

      뮤지컬 <틱틱붐>·연극 <보도지침> 등 뮤지컬 <틱틱붐> 공연 장면 / 신시컴퍼니 제공 순간의 예술인 연극과 뮤지컬은 시대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대중의 문제의식과 불안감이 실시간으로 작품에 반영된다.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마당극 형식의 시국 풍자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정치적 혼란이 점입가경에 이르러서인지 부조리(不條理·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 이해되지 않는 것) 철학도 고개를 든다. 방백(무대 위 다른 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만 듣는 것으로 약속된 대사)으로 무대를 여는 뮤지컬 <틱틱붐>과 연극 <클뤼타임네스트라>, 촌철살인의 대사로 시국을 은유하는 연극 <보도지침>·<내 무덤에 너를 묻고> 등 요즘 상연되는 대다수 공연이 그러하다. <틱틱붐>(조너슨 라슨 작·작곡, 황석희 번역·한국말 가사, 이지영 연출, 최영은 무대, 임재덕 조명, 이수경 영상)의 프리쇼(작품의 세계관에 몰입하게 이끄는 사전 공연 혹은 장치들)는 색다르다. 공연 시작 전부터 ‘틱틱’ 반복되는 음향과 암전 속 3층짜리 노란 정글짐 세트가 호기심과 두통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의 불안과 청춘의 욕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시국 답답함 반영한 사이다 슬쩍 나타난 존(배두훈·장지후·이해준 분)은 불안을 청각화한 ‘틱틱(tick tick)’ 음향, 무대예술로 형상화한 ‘붐(boom)’에 대한 소회와 시대의 답답함을 전한다. “지금은 1990년 거지 같은 시대라고.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더 쉽겠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 뭐 더 어떻게 할래.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깡 없어? 내가 할게. 역대급 꼰대 중에 손꼽히는 왕꼰대. 법 위에 군림하고 고집불통에 나라를 개판 오 분 전으로 만들고 있는 ‘조지 부시’. 이렇게 하면 돼”라는 존의 방백에 객석은 초반부터 폭발한다.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다. 말 그대로 붐(boom)이다. 극 중 상황과 동시대 상황을 교묘하게 엮어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연결하는 마당극 방식의 재치 있는 시작이다. 뮤지컬 <렌트>로 유명한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인 작품 <틱틱붐>은 1인극으로 출발해 3인극으로 확장돼 2001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국서 7번째 시즌인 이지영 연출의 <틱틱붐>은 존의 여자친구 수잔(방민아·김수하 분) 및 절친 마이클(김대웅·양희준 분)과 더불어 5명의 앙상블이 추가되면서 중대극장 규모로 커졌다. 회전하는 놀이터와 총천연색 조명, 클로즈업되는 존의 표정은 청춘의 불안과 열정, 성공과 방황을 관객들이 온전히 전유하도록 돕는다. 고대 그리스 극작가인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아가멤논>을 모티브로 한 연극 <클뤼타임네스트라>(강훈구 작·연출, 김현 조명, 함승완 음향, 극단 공놀이클럽)는 더 직접적이다. 신탁으로 딸을 죽이고 트로이 전쟁에 출전한 아가멤논이 10년 만에 귀환해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하는 서사를 동시대 한국의 예술계에 대입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는 예술고등학교 3학년으로 극작을 전공하는 태주(김기주 분)다. 여배우 승완(김설 분)은 정치 풍자 연출로 유명한 남편 기문(김중우 분)과 연극 <나의 아가 아가멤논>을 올리기 전날 남편의 실수로 아이를 잃는다. 기문이 유학을 떠나고 남겨진 승완은 시누이 기영(신현실 분)이 학과장으로 있는 예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지내며 고통을 삭인다. 태주의 여자친구이자 기영의 딸인 무용 전공 고등학교 2학년 다현(오예현 분)의 발랄함과 대조적이다. 태주가 방백으로 하는 등장인물 소개에서 기영을 ‘사주를 맹신하는 현 영부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거나 기문이 수시로 대통령 탄핵 관련 시사프로그램을 보며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모습은 폭소를 자아낸다. 연극 <클뤼타임네스트라> 공연 장면 / 공놀이클럽 제공 3년 후 돌아온 남편에게 배반감을 느끼며 예고 연극제 출품작을 지도하는 승완은 태주를 통해 <아가멤논>의 진정한 주인공은 ‘클뤼타임네스트라’임을 상기하고 연기자로 새로운 삶을 꿈꾼다. 이 작품은 극중극으로 여러 겹의 구성을 하고 있다. 그리스 비극과 현재 한국 예술계, 태주의 극작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기문의 극작 <나의 아가 아가멤논>, 승완의 여배우로서의 삶과 기문을 통해 복기 되는 한국 정치사회의 혼돈을 여러 시공간에 위치시킨다. 무대는 과거와 속마음을 상징하는 위층과 현재 혹은 극중극을 상징하는 아래층으로 나뉘어 복잡한 알레고리(allegory·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로 전달되는 기법)를 형성한다. 시대와 예술계를 풍자하는 부조리함을 연극계의 부조리와 연결한 메타연극이다. 부조리에 대한 촌철살인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윤성민 작, 유영봉 연출, 장지영 드라마트루그, 이민영 미술, 김성구 조명, 극단 서울괴담)는 ‘조선시대가 배경인 현대극’이다. 무대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거대한 관 안에서 인물이 관 뚜껑을 열고 한 명씩 등장한다. 경종(길덕호 분)과 왕세제(김민지 분) 연잉군(훗날 영조)의 권력 교체기를 현재 한국의 탄핵정국과 부동산 사기에 연동했다. 경종은 반대파 김춘택(전종용 분) 일가를 순장하겠다고 공표하며 능묘 조성을 명한다. 이들 가족인 김현주(김성환 분)와 김덕재(공하성 분)는 묘 안에 탈출구를 만들고 집이 있다고 속여 분양사기를 저지르며 생존 자금을 축적한다. 무덤 배경에 록 음악과 사이키 조명, 천장에서 쏟아지는 흙더미 등 표현주의적이면서도 부조리한 총체적 난국 속에 ‘욕심이 과했다. 우리가 도망가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꼴이다’, ‘일가친척 모두 끌려가고 있다. 체통이라도 지켜야 한다’ 등 정치 상황을 풍자하는 대사들이 그로테스크한 미장센과 함께 와닿는다. 시국을 풍자하는 촌철살인의 대사로 가득한 작품도 있다. 2024년 하반기 서울 주요 대학 및 전국의 대학가 축제 기간에 약속이라도 하듯 차례대로 상연됐던 연극 <보도지침>(오세혁 작, 정철 연출)은 표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됐다. 이 작품은 1986년 전두환 정권하에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 ‘말’에 폭로한 정부의 보도지침에 관한 재판을 다룬다. 탄핵정국 응원봉 시위에 앞장섰던 청년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구호는 “이건 미룰 일이 아니다. 한 달을 미루면 한 달만큼 더 깜깜해지는 거야.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니까”와 “숨 좀 제대로 쉬면서 살고 싶어 그렇습니다. 숨 좀 제대로 쉬며 살게 해주십시오”이다. 모두 <보도지침>의 대사들이다. <틱틱붐>은 수백 개의 노란 공이 천장에서 쏟아지며 숨이 탁 트이는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 글을 마감하는 내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대통령 체포영장 2차 집행을 생중계로 보았다. 양극단으로 나뉜 목소리들의 처절함에 답답함이 가중된다. 더불어 ‘적반하장’과 ‘후안무치’가 입가를 맴돈다. 현 시국에도 이런 ‘틱틱’을 ‘붐’할 만한 수천 개의 ‘노란 공’이 절실하다. <클뤼타임네스트라>·<내 무덤에 너를 묻고>·<보도지침>은 상연이 끝났다. <틱틱붐>은 2월 2일까지 상연한다 .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2025.01.17 1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29) 풍자인가 씻김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문화/과학 이주영의 연뮤 덕질기

      [이주영의 연뮤덕질기](29) 풍자인가 씻김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연극 <햄릿>·<맥베스> 부새롬 연출의 <햄릿>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 셰익스피어 열풍이 거세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 유럽 연극의 르네상스 시기 명작을 쏟아낸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매일 상연 중이라 할 만큼 공연계 단골 메뉴다. 하지만 올해처럼 중·대극장 작품이 연달아, 심지어 같은 시기에 같은 작품을 여러 프로덕션이 상연하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흔치 않다. 대부분 전석 매진이거나 그에 준하는 인기몰이를 이어가 공연계 종사자들도 놀라고 있다. 시작은 신시컴퍼니의 세 번째 시즌 <햄릿>(손진책 연출·배삼식 극본·이태섭 무대)이다. 2016년 내로라하는 중견 연극배우들을 필두로 연극 <햄릿> 초연을 전석 매진으로 한 달여 상연한 신시컴퍼니는 2022년 같은 창작진들과 새로운 시도를 했다. 주요 배역은 청년 배우들로, 조·단역은 중장년 유명 배우들로 캐스팅한 역발상으로 매진을 기록했다. 현재 상연 중인 같은 맥락의 세 번째 시즌 <햄릿>은 이런 여정에 힘입어 3개월 장기공연 중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리더 격인, 광기와 죽음이 가득한 3시간짜리 대작 연극 <햄릿>이 상연 중인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로비에서 단체관람 온 초등학생들을 보는 필자의 마음은 괜히 벅차올랐다. 동서양 불문하는 고전을 예술적으로 재현한 공연을 어린 시절에 체험할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가 새삼 인식돼서다. 공연의 메카인 영국 웨스트엔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나 시도할 만한 도전이자 가능한 풍경이다. “공연계, 셰익스피어 인기몰이에 놀라” 두 번째 <햄릿>(부새롬 연출·윤색, 정진새 각색, 박상봉 무대)은 국립극단의 2024년 라인업 중 한 작품이다. 2019년 기획돼 2020년 상연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온라인 상연만 했다. 이번이 명작을 무대 위에 올린 첫 관객 대면작이다. 온라인으로 본 관객들의 기대가 커서인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과 동시에 한 달여 동안 매진을 이어갔다. 세 번째 <햄릿>(신유청 연출)은 예술의전당이 제작한다. 오는 10월 18일부터 한 달여 상연할 계획으로 프리 프로덕션(준비) 중이다. 현재 상연 중인 두 가지 버전의 <햄릿>은 대척점에 자리한다.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정통적인 햄릿을 현대적인 미장센으로 재해석한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캐릭터 분석과 만연체 대사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대부분 재현했다. 중점적으로 봐야 할 것은 무대예술이다. 검정 무대디자인은 생과 사, 인간과 유령의 경계를 넘나들게 동선을 안배해 현실과 꿈을 넘나든다. 영상디자인과 시적인 안무, 죽음의 강을 넘나드는 습기 가득한 향취와 안개 같은 미스트 효과 등은 오감을 생생하게 자극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부질없음과 원혼을 위무하는 씻김(이승에 맺힌 원한을 씻고 극락에 가도록 한다는 뜻)이 작품의 전반적인 세계관을 형성한다. 모두 사망하는 순간 천장에서 뿌려지는 안개 같은 미스트는 그들의 원혼을 씻어 사후의 세계로 인도하는 제례이기도 하다. 전무송·박정자·손숙 등 노장 연극인들이 이를 풍자하는 배우와 선왕의 영혼 등으로 등장해 청년세대 햄릿(강필석·이승주 분)과 오필리어(루나 분)의 혼돈과 절망을 묵도하고 받치는 역할을 한다. 국립극단의 <햄릿>은 햄릿이 왕자가 아닌 공주라는 상상을 더해 각색했다. 기본 설정은 그대로 두고 원작을 곱씹을수록 드러나는 틈새에 현대적인 논리를 덧대니 강력한 정치 풍자극이 됐다. 해군 장교로 복무 중이던 덴마크 왕위계승 서열 2위인 햄릿 공주(이봉련 분)는 갑작스러운 부왕의 죽음에 본국으로 돌아오지만, 삼촌 클로디어스(김수현 분)가 어머니 거트루드(성여진 분)와 결혼해 국왕이 된 후다. 슬픔과 분노로 절망에 빠진 햄릿 공주는 선왕의 유령이 토해내는 억울한 죽음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정의를 위해, 생존을 위해 미치광이인 척하며 삼촌의 악행을 고발하고 왕위에 대한 정당성을 되찾고자 고군분투한다. 치열한 궁중 암투와 골육상잔이 벌어지고 모두 죽어 쏟아지는 폭우 속으로 사라진 자리에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 프라스가 등장해 왕좌를 차지,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독재국가를 건설한다. 감정과 사색에 빠져 민중은 외면하고 각자의 정의만 주장하는 ‘헛짓거리’로 전쟁이 시작된다는 경고와 자성의 작품으로도 읽힌다. <맥베스> 역시 <햄릿> 못지않게 올해 많이 공연됐다. 중극장 작품으로 청각장애 배우 6인이 등장한 힙합 세계관의 유혈낭자극 <맥베스>(김미란 각색 연출·송성원 무대)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인 데 이어 샘컴퍼니가 <맥베스>(양정웅 연출, 여신동 무대·조명)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상연 중이다. 소극장인 서울 서대문구 신촌극장 <맥베스>(임성현 연출, 백소정·임성현 등 각색)도 같은 기간에 공연하고 있는 데다 작년 12월 말 상연한 뮤지컬 <맥베스>(조윤지 연출·김은성 작가·박천휘 작곡)까지 가세해 <햄릿>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아름답고 추한 것’ 경계 만끽하게 될 것” 최근 베일을 벗은 샘컴퍼니의 <맥베스>는 맥베스(황정민 분), 레이디 맥베스(김소진 분), 뱅코우(송일국 분) 등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거의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오프닝의 까마귀 떼가 객석을 저공 비행하는 광경과 세 마녀가 절단된 시신, 특히 잘린 머리를 들고 농담하는 장면까지 을씨년스러운 전쟁의 공간을 체감하게 이끈다. 영상 휴대전화기와 게임기가 혼재된 시공간 불문의 무대디자인은 중세 이야기가 아닌 동시대 이야기로 끌어당기는 오브제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전쟁영웅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가 세 마녀의 예언에 휘둘려 수많은 살상을 자행하고 어떻게 자멸해가는지 현대적 미장센으로 스펙터클하게 담아냈다. 필자는 국립극단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창작진들에게 최근 관객들 사이에 불고 있는 셰익스피어 열풍에 관해 질문한 적이 있다. 부새롬 연출은 “이 작품 모두 창작자들이 해석한 동시대 리액션들인데 왜 지금 하필 셰익스피어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질문이 생긴다. 왜 그럴까? 왜 지금 햄릿이고 맥베스일까? 왜 올해 한꺼번에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상연 중인 걸까?”라며 질문을 되돌려준다. 정진새 작가는 “한국 관객들이 연극에 대한 문해력·독해력이 좋아진 듯하다. 셰익스피어 정도는 충분히 즐기면서 수용할 수 있다는 문화적 자신감이 높아지고 선진국의 관객으로서, 낯설어했던 고전 원작을 누락 없이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청년 창작진들의 시선처럼 셰익스피어 공연 열풍은 관객들에게 행운이다. 오는 여름휴가에는 문화 강국의 장점을 누리며 새로운 셰익스피어와 만나길 추천한다. <맥베스>의 세 마녀가 읊조린 ‘아름답고 추한 것, 추하고 아름다운 것’의 경계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국립극단 부새롬 연출 <햄릿>은 오는 7월 29일, 신시컴퍼니 손진책 연출 <햄릿>은 오는 9월 1일, 샘컴퍼니 양정웅 연출 <맥베스>는 오는 8월 18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 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2024.07.19 16:00

    • [시네프리뷰]웡카-동화적 세계관에 녹아 있는 사회 풍자

      연예 시네프리뷰

      [시네프리뷰]웡카-동화적 세계관에 녹아 있는 사회 풍자

      영화 <웡카>는 공식적으로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세 번째 영화화한 것이지만, 주인공 윌리 웡카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완전히 새롭게 창작된 이야기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많은 동년배가 기억하겠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 평범한 대중에게는 사실상 텔레비전이 유일한 영상매체였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텔레비전은 사회, 문화, 학문, 예술을 아우르는 가장 저렴하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정보통이었다. 말 그대로 ‘대중문화’의 향방과 성쇠를 좌우하는 절대적 도구였다. 당시 극장 관람 문화는 지금처럼 그리 일상적인 것은 아니었기에 주말 저녁이나 공휴일이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던 영화들이 귀했다. 지금도 <주말의 명화>나 <토요명화>, <명화극장>이란 타이틀을 마주하거나, 시그널로 사용됐던 음악이라도 우연히 듣게 되면 가슴 한켠이 아련해진다. 이즈음 보았던 수많은 영화 중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 편이 <초콜렛 천국>(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1971)이다. 몇 번은 재탕해 방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족용’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그때는 더더욱 흔치 않기도 했고(아마 흑백텔레비전으로 보았을 테니) 화려한 색감까지 느끼지는 못했을지언정, 비범한 상상력으로 시각화한 흥미로운 세트와 재미있는 장치들만으로도 눈길이 가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린 필자에게는 그리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소극적이나마 뮤지컬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부터 낯설었고, 무엇보다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 알 수 없는 기괴함으로 인해 거리를 느꼈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에서 파생된 새로운 이야기 2005년 팀 버튼 감독이 조니 뎁을 주연으로 리메이크해 국내에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작품 덕에 앞선 영화를 다시 볼 핑계가 생겼다. 그리고 왜 어릴 적에 이 영화를 흔쾌히 즐기지 못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생경함은 애초 원전인 로알드 달의 소설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삐딱한 상상력과 흥미로운 전개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아동 문학계의 셰익스피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많은 대표작 중 <초콜렛 천국> 외에도 <마틸다>,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같은 작품은 영화화돼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사실 대부분의 동화가 그렇지만) 현실의 고단함과 경쟁사회의 잔인한 이면이 우회적으로 희화화된다. 영화 <웡카>는 공식적으로 원작 소설을 세 번째 영화화한 것이지만, 원작에 근거해 주인공인 윌리 웡카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완전히 새롭게 창작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꿈을 안고 순진한 마술사 겸 초콜릿 제조사인 웡카(티모시 샬라메 분)는 도시로 향한다. 하지만 첫날부터 많지 않았던 돈을 모두 탕진하고 여관을 운영하는 사기꾼 스크러빗 부인(올리비아 콜맨 분)의 계략에 빠져 엄청난 빚까지 지게 되는 바람에 지하 세탁소에 갇혀 중노동에 시달릴 처지에 놓인다. 화려하고 따뜻한 무공해 가족영화 <웡카>의 제작이 발표되며 가장 희망적인 소식은 폴 킹이 연출을 맡는다는 부분이었다. 말하는 영리한 곰의 런던 적응기를 다룬 전작 <패딩턴>(2014) 시리즈만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작품 <웡카> 역시 영국 아동문학 작품을 기반으로 환상적인 세계관 안에 펼쳐지는 이야기로 유사한 작품이다. 감독의 재능이 충분히 발휘되고 있고,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지점이 눈에 띈다. 과거 <초콜렛 공장>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볼거리와 장치들이 첨단기술로 보강해 더욱 화려하게 재현됐고, 넌지시 녹여내는 사회풍자도 꽤 직접적이지만 적절한 선을 지키고 있어 거북할 정도는 아니다. 원작 영화도 본격 뮤지컬은 아니었던 터라 이번 작품 역시 노래 대사의 비중이 큰 편은 아니다. 쏙쏙 귀에 감기는 레퍼토리는 없지만, 극의 정서와 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충분히 활용되고 있다. 이렇다 할 기대작이 없는 요즘 극장가에 모처럼 마음 놓고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추천하고 싶다. 제목: 웡카(Wonka) 제작연도: 2023 제작국: 미국, 영국 상영시간: 116분 장르: 판타지, 뮤지컬 감독: 폴 킹 출연: 티모시 샬라메, 칼라 레인, 올리비아 콜맨, 휴 그랜트 개봉: 2024년 1월 31일 등급: 전체 관람가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재평가될지언정 손상되거나 왜곡돼선 안 되는 가치 www.yellowbarrel.org 원작자 로알드 달은 1916년 웨일스 카디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탓에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남겨준 많은 일기장은 그의 상상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조종사로 근무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소설가 C. S. 포레스터와 만났다. 그 만남은 작가의 길에 들어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90년 골수이형성증후군이란 희소 혈액질환으로 사망했는데, 2023년 새삼스럽게 그의 이름이 화제에 오르내렸다. 출판사가 현대적 관점에 근거해 작품 일부를 검열하고 수정한 것이 화근이었다. 생전 로알드 달은 편집 과정에서 원고의 작은 부분도 수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수년 전부터 세계를 들썩이게 한 소위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의 연장선에서 비롯된 화두다.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이미 완성돼 평가된 창작물을 수정한다는 건 옳은 일일까? 지난해 4월 스티븐 스필버그는 한 행사에서 대표작인 <이티>(E.T.·1982·사진)의 20주년 재개봉 당시 스스로가 새롭게 수정한 장면을 후회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절정 부분에 아이들을 뒤쫓는 형사의 손에 들린 총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지우고 그 자리에 무전기를 대체해 넣었다(사진). “원래 작품을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영화는 만들 당시 살았던 시대, 세상이 어땠는지,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다.” 스필버그의 말이다. 하나의 작품은 가치를 떠나 그 존재만으로도 시대를 반영한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당대의 요구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과거는 재평가될지언정 손상되거나 왜곡돼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다. 비단 영화에 국한된 교훈만은 아닐 것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2024.01.24 05:30

    • 정치 표지 이야기

      “너무 욕을 먹어서…” TV 정치풍자 부활 가능할까

      ㆍ블랙리스트와 팬덤정치의 압력 내년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의 계절이다. 연일 서로 각을 세우는 TV 정치토론이 봇물을 이룬다. 하지만 과거 ‘대선정국’ 때와 확연히 달라진 한가지가 있다. ‘TV 정치풍자 코미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KBS <개그콘서트>가 21년간의 대장정을 마친 것을 끝으로 지상파 3사에서는 아예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케이블TV인 tvN이 유일하게 <코미디 빅리그>를 그나마 유지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정치풍자는 보기 힘들다. tvN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쿠팡플레이로 옮겨 방송되고 있는 가 주목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를 포함한 시사풍자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국회의원(무소속 이용호)까지 나서서 KBS 코미디 프로그램 부활을 촉구하며 “정치인도 기꺼이 코미디 대상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까. shutterstock 이런 가운데 KBS는 11월 13일 새 코미디 프로그램 <개승자> 시즌1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코미디언들이 팀을 이뤄 경쟁을 벌이면서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고,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된다. 매 라운드 시청자 개그 판정단의 투표로 생존 결과가 좌우된다. 내년 2월 12일까지 4개월간 매주 토요일 밤에 KBS2를 통해 시즌1이 방송된다. 그런데 적어도 1회 녹화분에서는 정치풍자를 포함한 시사풍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승자>를 연출하는 조준희 PD는 “경연이고 서바이벌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출연 개그맨들이 짜온 아이템에 간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와 팬덤정치의 압력 정치풍자 또는 시사풍자는 코미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 장르다. 정치권력이나 기득권층,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불만이나 답답함을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으로 승화시켜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엄혹했던 5공 시절에서도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정치풍자, 시사풍자가 펄떡였다. KBS <유머 1번지>에서 코미디언 고 김형곤씨가 연기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나 ‘탱자 가라사대’의 정치풍자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내용과 수위가 파격적이었다.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일요일 밤의 뉴스 대행진’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김병조씨는 시사풍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경우다. “지구를 떠나거라”, “먼저 인간이 되거라” 등 그가 이 코너를 통해 낳은 유행어도 많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도 <개그콘서트>, ,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등에서 독한 정치풍자가 이어졌다. 대표 코너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LTE 뉴스’, ‘내 친구는 대통령’, ‘살점’ 등과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 ‘민상토론’, ‘대통형’ 등이다. 물론 5공 시절 김형곤씨는 국가안전기획부의 감시 전화를 받아가며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연습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박근혜 정부 때는 tvN의 에 대한 청와대 외압설이 불거졌다. 직전 대선정국에서 각당 대선후보들을 텔레토비 캐릭터로 풍자한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 제작진의 성향을 조사했다는 것이다. 결국 한동안 에서 정치풍자가 사라졌다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부활했다. 시원한 촌철살인 멘트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SBS 의 ‘LTE 뉴스’의 업데이트 버전 ‘LTE-A 뉴스’(왼쪽)와 ‘내 친구는 대통령’ / SBS제공 그렇다고 해도 TV에서 정치풍자 코미디가 지금처럼 아예 전멸한 시기는 없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팬덤정치’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큰 파문을 낳았다. 김미화·김구라·김제동 등 진보 연예인들 다수가 포함됐다. 성 평론가는 “새로 들어선 정권에 의한 보복이 연예인들에게도 반복되다 보니 제작진이나 코미디언들이 정치풍자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팬덤’의 대상은 노무현(노사모)·박근혜(박사모)·문재인(문파)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특히 2016년 촛불시위 이후 팬덤정치는 더 증폭됐다. 현정부 들어 정치풍자가 점차 힘을 잃다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개그맨 A씨는 “정치 코미디를 하기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환경이 더 나빠졌다”며 “진영 갈등이 워낙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전 정부까지는 중도가 80%,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각각 10% 정도여서 정치풍자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중도가 30%, 양 진영이 각각 35%씩 되는 것 같다”며 “자기가 지지하는 진영에 불리하거나 불편한 내용이 나오면 반발이 거세 TV에서 정치풍자를 할 여지가 좁아졌다”고 했다. 2018년 에서 김원효씨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라는 새 풍자 코너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지방선거 당선 직후 방송사 인터뷰 도중 연결을 끊으며 인터뷰를 거부한 사건을 풍자했다가 이 지사 지지자들의 반발로 한달 만에 폐지되고 말았다. / KBS 제공 제한 없는 유튜브·OTT로 이동 한 사례로 2017년 SBS 시사토크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특보 역할을 맡았던 개그우먼 강유미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가 보수진영의 반발을 샀다. 강씨는 결국 자신은 특정 정파 색깔이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2018년에는 3년간 <개그콘서트>를 떠나 있던 김원효씨가 복귀하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라는 풍자 코너를 시작했다. 김씨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지방선거 당선 직후 방송사 인터뷰 도중 연결을 끊으며 인터뷰를 거부한 사건을 풍자했다가 이 지사를 지지하는 누리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결국 해당 코너는 한달 만에 폐지됐다. 개그맨 황현희씨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겠다고 시작한 정치풍자인데, 환호는커녕 많게는 국민 절반가량의 비판을 애초부터 각오해야 한다면 누가 그것을 시작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누군가의 속은 시원하게 하지만 누군가의 속은 부글부글 끓게 하는 개그를 과연 개그라 할 수 있을까”라고도 말했다.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창구가 늘어난 환경이 ‘팬덤정치’와 만나면서 TV 정치풍자는 더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프로그램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방송사에 항의전화를 거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전화뿐 아니라 개인 SNS나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즉각적이고 매우 과격한 언어를 사용해 공격하는 일이 예사이기 때문이다. 황현희씨는 “정치풍자가 아니더라도 젠더평등이나 외모 등 다방면에서 과거에 비해 표현에 대한 제약이 많아지면서 개그맨들의 아이디어 회의도 욕을 먹지 않기 위한 회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1년 KBS 코너인 ‘사마귀 유치원’은 사회 이슈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아나운서 비하발언으로 고소된 강용석 당시 무소속 의원이 이 코너에 출연 중인 개그맨 최효종씨를 국회의원 집단 모욕죄로 형사 고소했다가 취하한 해프닝도 있었다. / KBS 제공 정치풍자가 TV가 아닌 OTT나 유튜브, 팟캐스트 등으로 옮겨간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다. 웹예능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를 진행하는 방송인 정영진씨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지상파 방송과 달리 유튜브나 OTT는 해당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시청하고자 하는 이들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콘텐츠 생산자들도 자기편 앞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풍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재의 제한도 없고 특히 유튜브 콘텐츠의 경우엔 심의도 받지 않아 표현에 제약도 없다. “품격 있는 정치풍자 노력 필요해” TV에서 수준 높은 풍자를 보여주지 못한 제작자들의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준희 PD는 “꾸준히 이어오지 못해서인지 질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풍자가 많아지면서 퇴보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놓고 하는 것은 정치풍자가 아니라 단순한 정보전달에 불과하다”며 “‘달인’을 연기하기 위해 개그맨 김병만씨가 꾸준히 자기 몸을 단련시킨 것처럼 제작자나 개그맨들도 품격 있는 정치풍자를 하려면 각고의 트레이닝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7년 SBS 시사토크쇼 에서 특보 역할을 맡았던 개그우먼 강유미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가 보수진영의 반발을 샀다. 강씨는 결국 자신은 특정 정파 색깔이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 캡처 그렇다면 TV 정치풍자는 부활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이었다. 성상민 평론가는 “쉽지 않다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성 평론가는 “박정희·전두환 시절은 아니어도 여전히 경직돼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며 “풍자를 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도 수용해야 하는데, 보복이 반복되다 보니 생산자들이 다들 몸을 사리고, 하더라도 독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희 PD는 “개그는 개그로 봐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한없이 자기검열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한 말은 ‘웃프’다. 전씨는 “정치인이나 언론에서 하는 이야기 중 정말 듣기 싫은 게 ‘코미디 같다’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미디의 가장 기본은 웃기거나 즐겁게 해주는 것인데, TV 정치풍자 코미디의 고갈 속에서 정치권력의 불쾌한 행태에 제발 코미디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전씨는 TV 정치풍자 부활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 그는 “코미디의 중요한 장르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되살아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박주연 선임기자 2021.11.0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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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침없는 정치 풍자 논객 ‘강남아줌마’ 강영란

      화제

      거침없는 정치 풍자 논객 ‘강남아줌마’ 강영란

      기사 작성을 위해 인터뷰 때 녹음한 파일을 플레이했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슨 오류가 났는지, 외계인의 언어 같은 해독할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 받아 적는 습관과 ‘강남 좌파 아줌마 논객 1호’라는 타이틀을 단 강영란의 글이 고스란히 책으로 엮여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휘발한 이야기들은 그저 열심히 수다를 떤 셈 쳤다. 실제 인터뷰도 그랬다. 정치 평론을 쓰는 아줌마? 이 익숙지 않은 조합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가벼운 에세이를 끼적이던 대한민국 아줌마가 촛불을 들게 되고 반정부적인 글을 쏟아내게 된 발단은 바로 국민을 들끓게 했던 미국산 쇠고기 사태였다. 2008년 정치 웹진 서프라이즈에 ‘강남아줌마’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엄청난 조회 수를 올리며 화제가 됐던 주부 강영란(52)은 여전히 정부를 비판하는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평범한 국민을 ‘좌파’로 만드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토록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을까. 그 사이 강남아줌마의 일상도 변했다. 강남 소재의 아파트와 본인 소유의 차를 팔고 익숙지 않은 강북 도심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백화점 슈퍼마켓의 잘 손질된 재료가 아니라 재래시장에서 산 식재료로 요리를 하게 됐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열심이라는 것, 교수 남편을 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아줌마, 강영란의 일상을 인터뷰 내용과 책 「나를 너희 편에 서게 하라」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봤다. 작가 특유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경어를 쓰지 않았음을 양해해주시길. 그래 내가 강남아줌마야 내가 ‘강남아줌마’란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잖아. 근데 더는 강남에 살지 않게 됐어. 그래도 일단 알려진 필명이니 강북아줌마로 바꾸기는 좀 그렇더라고. 강북으로 이사 오니 어떠냐고? 강남 살 때는 극장도 코앞이고 문화생활을 즐기기 편했는데, 이사 와서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 운전할 엄두가 안 나 차를 팔았어. 물론 집 근처에도 영화관이 있지만 더 외출을 안 하게 되고 가까운 곳에도 잘 안 나가게 되네. 집 근처의 재래시장은 싸고 정감 있는데, 손질된 재료만 사 먹다가 일거리가 배로 늘었어. 안 그래도 게으른 주부인데, 휴. 환경이 달라지니 이질감이 드는 건 당연해. 그래도 삼청동이나 부암동, 성북동에 가면 강남보다 훨씬 품격 있고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이란 느낌을 받아. 강남이 미국이라면 이쪽은 유럽이라고나 할까. 내 비유 어때, 좀 적절했나?(웃음) 아이들이 둘 다 근처의 명문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이사한 것도 있어. 아들(25) 하나, 딸(22) 하나가 있는데 둘 다 공부는 곧잘 했지. 극성스러운 엄마 아니냐고? 사실 그건 아니야. 애들 공부는 남편이 챙겼어. 유학까지 한 교수 남편 뒀다가 어디에 써먹어. 남편이 워낙 꼼꼼해서 나는 가끔 싫은 소리나 한 번씩 하는 정도. 원래 천성이 조용히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야. 나도 내가 글 써서 책까지 내게 될 줄은 몰랐어. 원체 책은 읽는 용도로만 사용했지, 별반 써먹는 데가 없었기 때문에 가족이 그리 반기질 않았거든. 오프라인에서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것보다 온라인으로 하는 게 편하고 잘 맞아서 이것저것 쓰기 시작했어. 나름 ‘키보드 워리어’이기는 한데, 악플러는 아니니까 악플은 자제해줘. 내가 은근 소심하다고 아까 말했지? 이 같은 평소 성격과 달리 웹에서는 활달하고 까불고 좀 그래. 날더러 사납다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요즘엔 블로그도 잘 안 하고 주로 트위터로 얘기해. 내 계정은 @kangnamajumma, ‘강남아줌마’야. 이만 하면 일관성 있지? 강남 사는 50대 주부 좌파로서 강남에 대해 할 얘기가 얼마나 많겠어. 강남이 겉으로 점잖은 척 체면 차리는 분위기잖아. 강남에서도 대치동을 기준으로 위에 사느냐 아래에 사느냐, 종부세를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클래스가 현격하게 달라져. 나도 강남 살았지만 강남 사람들 참 이기적이야. 가뜩이나 부가 편중돼 있는 강남이 투표 때마다 한나라당에 몰표나 주고 그러니까 무개념하다고 생각하겠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곳에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다 사람 사는 곳이잖아. 대선을 앞둔 시기지만 정치색만 드러내는 책은 아니야. 내용도 술술 읽을 수 있도록 재밌게 썼고. 다만 한 사람에게라도 이 정권의 실상을 알릴 수 있다면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지. 주목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나름 익명성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책 하나 내고 유명해지고 싶어 하겠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해.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면 어쩌지? 이민 가야 하나? 아무튼, 정치에 무관심한 게 시크한 게 아니란 사실을 명심하라고. 꾸준히 한 거라곤 글쓰기 보통 주부가 책 썼다고 하면 무지 치열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야. 그래 당신 잘났다, 자상한 남편에 단란한 가족 뭐 그런 뻔한 이야기 아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끝까지 읽어줬으면 해. 시골치고는 유복한 환경에서 막내로 고이 자란 건 맞는데, 부모님 바람처럼 의사 남편 만나서 편하게만 살았다면 지금하고는 많이 달라졌을 거야. 유학생 남편을 만나 독일에서도 살고, 미국에서도 산 덕에 시야가 넓어진 덕을 좀 봤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스물넷에 남편을 만났어. 선을 봤는데 의사 남편감 마다하고 택할 정도로 남편이 맘에 들었지. 유학생이라 가난했지만 의식이 뚜렷하고 지적이었어. 그래서 결혼하고 독일에 따라갔지. 그 나라는 복지도 잘 돼 있고, 시스템도 반듯한데 왠지 답답한 게 있었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이긴 해도 피부색으로 차별받은 적도 있고. 미국에서도 한국 사람들 보면 성공한다고 해도 교민 사회에서 벗어나기 힘들더라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 살면서 40대엔 나름 사업도 해봤는데 일하는 체질은 아닌 것 같아. 치열한 성격이어야 하는데 느긋하고 게으른 편이라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해버렸지. 그나마 제일 꾸준히 한 게 글쓰기야. 사실 문학 소녀도 아니었고 어릴 적 방송국에 엽서도 한 번 보낸 적 없어. 그런데도 책은 굉장히 많이 읽었어. 말주변이 없다 보니 남편한테 불만이 있어도 눈물이 먼저 나는 거야. 싸우는 것도 잘 못하고. 30대 후반이 되니까 이렇게 늙어가나 싶어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어. 사업도 그만두고 나서는 한 달이면 28일은 집에 있었어. 종일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우울증이 왔어. 다른 재주가 없으니까 글로 조금씩 풀었지. 처음에는 일상을 재밌게 써봤는데 그러면서 처음으로 나를 발견했어. 남편이 나보다 내 글을 더 좋아해준 덕분이지. 조금씩 우울감이 극복이 됐고 활기를 찾았어. 어느 인터넷 카페에 글을 썼는데 남편이 혹시 없어질지 모른다면서 그걸 다 모아놓은 덕분에 책을 낼 수 있었지. 또 책 쓸 때도 평가도 해주고 많이 도와줬지. 요즘 주부들은 얼마나 젊고 능력 있어. 할 수 있다고. 날 부러워할 일이 아니야. 약자를 짓밟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것일 뿐 정치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만 생각하는데 장바구니나 교육이나 모든 게 정치와 연결되어 있잖아. 왜 노인 연금이 없어지고 그게 어떻게 4대강 사업하고 연관됐는지 알아야 해. 일하랴, 아이들 선행학습시키랴 정신없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엄마들이 공부하고 달라져야지. 나도 누구 못지않게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지만 역사를 너무 몰라서 일부러 역사서를 찾아 읽었어. 전우용, 이덕일, 남경태씨의 역사책을 추천해. 전우용씨는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적재적소에 결합해 쓰는 걸로 유명하지. 「서울은 깊다」라는 책을 보면 서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은 우리가 드라마에서 알았던 왜곡된 사실을 제대로 알게 해줘서 추천해. 남경태씨의 「종횡무진 한국사」는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진단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줘. 부모라도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를 제대로 지키자는 의미에서 읽어보면 좋겠어. 소설은 일단 재밌어야 돼. 「모방범」이나 「화차」를 쓴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사회적 추리소설이라고 하는데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책들이지. 한국 작가는 박민규, 은희경을 좋아해. 영화나 책은 취향이 달라서 추천하는 것도 우습고, 그냥 본인이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이는 좀 있어도 딸 같은) 기자가 물으니 그래도 답해줄게.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자주 보는데 기억에 남는 영화는 ‘타인의 삶’이야.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 때문에 신문지상에도 오르내린 영화야. 도청이나 사찰이 줄기를 이루지만 냉혈한 비밀경찰이 점점 인간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품격 있는 영화야. 최근에는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도 봤지. 재개발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작정 물대포로 쏘고 무리한 진압으로 화재가 나도록 하고, 유가족 동의도 없이 부검하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영화보다 더 무섭고 슬픈 현실이 안타까워.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아. 이제 다 커서 얼른 결혼해 애 낳고 싶어 하는데, 딸한테 서른 살 전에는 하지 말라고 해. 연애도 많이 해보고 시행착오도 해보면서 사람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했지. 대신 책임질 일만은 하지 말라고 해. 내가 결혼을 일찍 해서 사람과 세상을 모르고 갇혀 살았잖아. 40대 이후에야 글 쓰면서 세상을 알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커.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 요즘 주부들 보면 30대 때 애 키우면서 그동안 쌓은 커리어가 사라지며 퇴보한 듯한 기분도 들고, 남편이나 시댁과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잖아. 시간 지나면 어떻게든 조금씩 해결이 될 거야. 어떤 일이든 얻으면 잃는 게 있고, 잃으면 얻는 게 있는데 그게 똑같은 비율은 아니니까 당장 보이는 것에 너무 신경 쓰거나 집착할 필요는 없어. 나이가 들면서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일, 작은 일에도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에야 새삼 알 것 같아. 나는 세상이 뒤집어질 만큼 급진적인 변화를 바라는 게 아니야. 다만 힘 있는 사람이 약자를 짓밟지 않는 사회,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사회, 국가와 사회가 날 버리지 않을 거란 믿음을 주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보통 사람일 뿐이야. 이렇게 상식적인 내가 ‘세 보이는’ 건 다 이 정부 탓이라고. 아이고, 말을 너무 많이 하려니 숨이 차네. 혹시 나한테 할 말 있거든 연락해. 내가 아까 트위터 계정 알려줬지?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원상희 ■참고 서적 /「나를 너희 편에 서게 하라」(강영란, 모요사) ■장소 협찬 / 카페 체화당(02-364-9356)>

      2012.09.04 19:41

    • 연예

      유머와 풍자가 넘치는 촌극 부활 꿈꾸는 개그맨 유세윤

      “언젠가 저만의 ‘느린’ 개그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요” 개그맨 유세윤이 ‘사랑의 카운슬러’로 또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운이 좋았다’란 말로 지금의 인기를 설명하지만, 데뷔 3년 만에 여느 중견 개그맨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남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아이디어’도 ‘개성’도 없는데 ‘운’은 좋다?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사랑의 카운슬러’로 인기몰이 중인 개그맨 유세윤(26). 데뷔 1년 만에 ‘복학생’으로 이름을 알린 그가 지금까지 히트시킨 코너는 ‘장난하냐’ ‘착한 사람’ ‘B.O.A’ 등이다. 데뷔 10년 만에 겨우 빛을 본 여느 개그맨들의 무명 설움과 견주면 그의 이런 성공은 가히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하고 나서 친구들이 만들어준 팬 카페에 ‘못 웃기더라도 3년 동안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란 말을 썼어요. 적어도 3년 정도는 무명으로 지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했던 목표치를 훨씬 뛰어넘은 것 같아요.” 아직 만 3년이 안 됐는데, 그의 인기는 여느 중견 개그맨 못지않다. 이 젊은 개그맨에게 가파른 인기 상승 곡선의 비결을 묻자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개그맨은 아이디어가 중요한데, 저는 그런 면에서는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지금까지 제가 아이디어를 내서 무대에 올린 코너들은 대부분 일찍 막을 내렸거든요. ‘사랑의 카운슬러’도 유미가 낸 아이디어였어요.” “운이 좋았다”는 말로 자신을 정의한 유세운은 “개성이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개그 코너의 평균 생명이 6개월 정도예요. 시청자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크면 클수록 개그 변화의 속도도 빨라요. 그런 면에서 개성이 없는 저는 캐릭터가 바뀌어도 크게 거부감 없이 변화가 가능해요. 개성이 없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 된 셈이죠.” 희극 배우가 꿈인 개그맨 TV 속 모습만 보면 유세윤은 어떤 자리에서나 누구와도 허물없이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무대가 아닌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때문에 토크쇼 등에는 거의 출연을 하지 않는다고. “낯도 많이 가리고 말수도 적은 편이에요. 토크쇼에 출연하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저는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으며 어머니와 함께 둘이 살고 있다’ 외 더 깊게 들어가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싫어요. 그래서 가급적 토크쇼 출연은 자제하고 있어요.” 이런 성격 때문에 그는 개그맨으로 데뷔하고 나서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편한 친구들이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웃겨봐’와 같은 농담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줄어드는 개인적인 공간 때문에 힘들어했다. 사실 유세윤의 본래 꿈은 배우였다. 대학 때부터 그는 연극 동아리 ‘창작과 무대’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공개 오디션장을 쫓아다니는 열성 배우지망생은 아니었다. 그냥 막연히 배우의 꿈을 키울 뿐이었다. 그러다 장동민·유상무와 ‘옹달샘’이라는 팀을 이뤄 2004년 KBS 개그맨 공채에 합격하면서 개그맨의 길로 들어셨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대학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따라 개그맨 시험을 본 게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됐죠. 저는 개그맨이 ‘웃기는 사람’이라면 희극 배우는 ‘웃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개그맨이 됐으니까 이제는 웃기는 연기를 하는 희극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2의 ‘유머1번지’를 꿈꾸다 많은 개그맨들이 무대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즉흥적인 애드리브로 청중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때로는 준비하지 않은 애드리브가 더 많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세윤은 다르다. 즉흥적인 애드리브를 날리기보다는 준비한 연기에 몰입한다. 일단 무대에 서면 방청객의 웃음소리나 박수 소리보다는 상대 개그맨의 연기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방청객이 얼마나 웃었는가가 아닌 자신이 오늘 얼마나 연기에 몰입했나로 만족을 느낀다. “보통 개그맨들은 관객들의 눈을 보면서 흐름을 타는데 저는 무대에 서면 연습한 것만 그대로 보여줘요. 복학생을 연기할 때는 내가 직접 복학생이라고 생각하고 무대에 서죠. 장단점이 있는데, 관객과 호흡을 하다 보면 반응이 시원치 않을 때 당황하게 되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예요. 준비한 개그에 대한 반응이 썰렁할 때보다 준비한 개그를 100% 다 못 보여줬을 때 더 실망하는 편이에요.” 가벼운 말장난보다 묵은 장맛 같은 웃음을 주고 싶다는 유세윤. 요즘 그의 바람은 세트 코미디의 부활이다. 과거 큰 인기를 얻었던 ‘유머1번지’와 ‘테마게임’ 같은 프로그램이 다시 부활해서 개그맨들만이 할 수 있는 연기와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싶다고. “지금은 ‘말’을 통해 웃음을 주는 개그가 주류를 이루고 있잖아요. 저는 말보다는 모습, 대사보다는 그림을 통해 웃음을 주고 싶어요. 제가 개그맨이란 직업을 얻고 보니까 심형래 선배님이 했던 개그가 ‘정말 대단한 것이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웃음을 유발하는 타이밍과 구도를 만든다는 건 정말 아무나 흉내 낼 수 없거든요. 내공으로 치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유세윤은 과거 선배 개그맨들이 엎어지고 맞아가며 보여줬던 개그가 절대 유치한 게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개그가 자신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진짜 개그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느린’ 개그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는 개그맨 유세윤. 그의 바람처럼 유머·풍자·기지가 넘치는 촌극이 다시 부활하길 기대해본다. ■글 / 김성욱 기자 ■ 사진 / 이주석

      2006.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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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자 코미디, 성대모사의 달인에서 트롯가수로 변신한 최병서

      “가수는 어릴 적부터의 꿈, 이제 가수로 ‘제2의 인생’ 삽니다” 1980년대 최고의 코미디언 최병서가 퓨전 트롯 앨범을 발표했다. 그의 뛰어난 노래 실력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지인들은 한결같이 그의 음반 발매가 너무 늦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남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돌아온 ‘신인 가수’ 최병서의 노래 사랑, 그리고 다시 쓰는 인생.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원래 최병서 노래 그의 얼굴을 보고 말투를 듣자 이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처음엔 오랜만에 듣는 그의 성대모사가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게 아니다. 굳이 웃기려 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몸과 말에 익숙하게 배어 있는 재치가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것. 그는 ‘타고난’ 코미디언이다 싶었다. 최병서(47)는 1980년대 풍자 코미디와 성대모사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코미디언이다. 그가 출연한 ‘따따부따’ ‘병팔이의 일기’ 등의 코너는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트롯 앨범을 냈다. 알고 보면 그는 5장의 앨범을 낸 베테랑 가수. 코미디언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 그는 대선 메들리부터 캐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컨셉트 앨범을 발표했다. 물론 이번 음반은 가수로 데뷔하는 정식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언젠가 한번 정식 앨범을 내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어릴 적 꿈이 가수이기도 했구요. 이번 앨범을 통해 제 목소리를 찾았어요. 제 목소리를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죠. 사석에서 노래를 부르면 제 목소리가 아니라 가수의 목소리가 나왔어요. 굳이 흉내 내지 않아도 조용필 노래를 부르면 조용필 목소리가, 나훈아 노래를 부르면 나훈아 목소리가 나왔거든요. 처음으로 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최병서는 코미디언의 기질 못지않게 노래 실력도 타고났다. 모 탤런트는 그의 노래를 듣고 감동이 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을 정도. 한번은 그가 미국 공연에서 조용필의 곡 ‘간양록’을 불렀다. 그때 한국의 한 스태프가 외국 엔지니어에게 “오늘 한국 팝 가수가 다 왔는데 누가 최고인 것 같냐”고 했더니 그가 최병서를 가리키며 “미스터 초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조용필과 태진아가 목이 아파 라이브가 힘들 때면 노래를 대신 불러주기도 했던 최병서. “(조)용필 형이나 태진아씨가 무대에 많이 서다 보니까 목이 자주 쉬어요. 라이브를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는 경우엔 제가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불렀죠. 어쩌다 박자가 잘 안 맞았다든가 하면 용필 형이 공연 후에 절 소주집으로 불러 ‘너 박자 두 군데나 틀렸잖아, 왜 그렇게 틀려’라고 구박하기도 하고….(웃음) 가끔 제가 MC를 보는 무대에서 용필 형이 노래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허락 없이 제가 몰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해요. 그러면 나중에 형이 와서는 ‘네가 했지?’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제가 맞다고, 흥이 나서 몰래 따라 불렀다고 그러죠. (웃음)” 지인들은 한결같이 최병서가 ‘좀더 일찍 음반을 냈어야 했다’는 반응이다. 사실 좀더 이전에 그에게 가수 데뷔의 기회가 왔었다.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원래 최병서가 부를 뻔한 노래다. 태진아가 그에게 불러보라고 제안을 했는데 계약상의 문제로 성사되지 않았던 것. “그렇게 히트할 줄 알았으면 무조건 했죠. 친구들은 제가 했으면 히트가 안 됐을지도 모른다고 그러기도 하는데… 여하튼 운이 좀 없었던 것 같아요.” 최병서의 이번 앨범은 요즘 감각에 맞게 편곡한 퓨전 트롯이다. 홍수철의 노래를 재편곡한 ‘철없던 사랑’이 타이틀곡. 이 곡에 연기자 이덕화의 아들 태희씨가 래퍼로 참여해 화제다. 세미 디스코풍으로 편곡된 ‘철없던 사랑’의 중간 부분에 원래 섹시한 여자 래퍼의 목소리가 들어가기로 돼 있었는데 노래를 들은 태희씨가 최병서에게 중간에 랩을 넣을 생각이 없냐며, 자신이 하겠다고 했단다.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고 실제로 음악 공부를 한 태희씨의 제안이었기에 최병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최병서와 이덕화는 절친한 선후배인 동시에 처조카 사이. 이덕화에게 고모부뻘이지만, 이전부터 불렀던 호칭이 습관이 돼서 그냥 ‘형’이라고 부른다. 태희씨 역시 ‘매형’인 최병서에게 같은 이유로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전성기의 그는 ‘움직이는 부동산’ 코미디언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현실에 최병서 역시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또 코미디언으로서 일이 적어질 때면 서글퍼지기도 한다고. 전성기의 최병서는 신인상부터 최우수상, 인기상에 이르기까지 코미디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죄다 받았다. 아직까지 뛰어난 순발력과 애드립을 구사하는 그를 보며 후배들은 ‘대단하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럴 때면 최병서는 우스갯소리로 “그러면 뭐 하냐 이 모양 이 꼴인데…”라며 말끝을 흐리지만 웃어넘기기엔 마음 한켠이 씁쓸해진다고. 그는 요즘 개그 프로그램이 너무 젊은 사람에게만 맞춰진 것이 아쉽다고 했다. 물론 그는 코미디에도 흐름이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주 웃는다. 가끔은 요즘 개그 코드와 웃음 포인트가 자신이 활동하던 시절과 상당히 다름을 느끼면서, 또 뭔가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보면서 개그 감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도 한다. 그는 늦은 시간대에 편성되더라도 좀더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한다. 특히 자신이 해온 풍자 코미디에 대한 애착이 크다. “풍자는 큰 재미는 없어도 사람들이 참 좋아해요.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기 때문이죠. 아이디어를 찾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신문에서 이슈가 되는 것을 소재로 하면 돼요. 제가 ‘따따부따’를 할 때 전화 참 많이 받았어요. 그때만 해도 정치 풍자가 힘든 시기였잖아요. 안기부와 여·야당 항의 전화가 쇄도했고, 당원들이 직접 방송국을 찾아와 대본을 미리 보자고도 했어요. 나중에는 특정 정치인 풍자를 죄다 못하게 해서 건달로 했잖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최건달입니다. 건달이 뭐… ’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데, 그게 한때 또 유행했어요. 저희 세대가 풍자에 대한 기반을 닦아놓은 것도 있고 또 요즘은 개그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높으니까 풍자 코미디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후배들에게 제안하는데 ‘요즘은 풍자 안 돼요’ 그러더라구요.” 브라운관을 통해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간 최병서는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 얼마 전만 해도 박준형, 정종철, 황승환 등 젊은 개그맨들과 함께 공중파 코미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각종 인터넷과 라디오 방송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주 수입원은 야간 업소와 이벤트, 각종 행사 등의 MC. “굳이 방송 활동하지 않아도 잔치나 행사 MC를 하면서 받는 수입이 꽤 괜찮아요. 그런데 제가 어느 정도 개런티를 정해놓고 일을 하니까 요즘 일이 별로 없어요.(웃음) 개그맨들이 재미있으니까 행사 MC로 선호되는데, 문제는 한 시간 넘게 MC를 보는 개그맨의 개런티가 15분 정도에 노래 서너 곡 부르는 가수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이벤트 주관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행사 분위기는 개그맨이 이끌어가고 좌우하는데 왜 그만큼 대우해주지 않냐고요. 그렇게 돈이 없으면 행사를 하지 말든가, 가수를 한두 명 줄이든지 개런티를 줄이든지, 아니면 나보다 조금 못 한 MC를 써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이야기를 하죠.” 그것은 그의 자존심이다. ‘덜 벌고 덜 쓰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자존심을 어느 정도 지켜가고 있지만, 자신의 고집으로 인해 한 달 내내 쉴 때도 있다고 한다. 사실 전성기의 최병서는 ‘움직이는 부동산’이었다. 코미디언에게는 움직임이 곧 수입. 그는 그만큼 바빴고, 많은 돈을 벌었다. “자고 일어나면 돈이 들어왔으니까. 그게 오래갈 줄 알았던 건 제 착각이었죠. 어느 날 갑자기 일이 뚝 끊기면서…. 한창 벌 때 여기저기 투자하라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전 부동산 한 평도 없어요. 집도 얼마 전에 샀어요. 전 좋은 집 전세로 사는 게 좋더라구요. 그간 계속 전세로 살았는데 처음 약속과 달리 매년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과 잡음이 있던데다가, 또 우리 아이가 ‘이거 우리집 아니야?’라는 말에 전세라고 한 게 속도 상하더라구요. 그래서 부랴부랴 집을 샀어요.” “이는 빠졌어도 발톱은 살아 있다” 최병서는 결혼 12년 차다. 서른일곱 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늦깎이 결혼을 했다. 이덕화 부인의 제안으로 호텔의 한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마르지도 않고, 외모도 보통인 아내는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홉 살 연하의 아내를 아는 동생으로 만나다가 8개월 만에 결혼했다. 최병서는 초등학교 5학년 딸과 2학년 아들을 뒀다. 두 아이 모두 자신을 닮아 개그맨 기질이 엿보인다고 한다. 특히 아들은 성대모사에 재능이 있다. 종종 이덕화 성대모사를 하기도 한다고. 아직 어려서 성대모사가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잘 잡아낸다. 아이들은 그의 가장 큰 행복이자 원동력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이자 요리 솜씨가 뛰어난 아빠다. 김치볶음밥에서 떡볶이 등 간식에 관한 한 아내보다 한 수 위란다. 그는 “아이들이 인정한 맛”이라고 했다. 가끔 아이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신에게 “아빠도 개그맨인데 왜 저기 안 나와?”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자신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계약상 나이가 많으면 방송을 못 한다고 얼버무린다. 한번은 행사장에서 후배 개그맨들에게 초등학생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몰려들고, 자신에게는 나이 든 사람들이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을 본 딸이 “아빠 아까 창피했지? 학생들이 아빠한테는 사인해달라고 안 하잖아” 하더란다. 이에 최병서가 “쟤들은 아빠 알지도 못해. 대학생들도 아빠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라고 얘기해줬다고. “딸이 ‘그래도 학교에서 아빠 아는 친구들이 많아’ 그러더라구요. 아빠가 예전에 인기 개그맨이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잘 알고 있어요. 가족이 함께 외출했을 때 사람들이 저에게 사인을 요청해오면 아이들이 뿌듯한가 봐요. 얼마 전 쇼케이스 했을 때 제가 인터넷 검색 순위 1위 한 적 있는데 그거 보면서 아이들이 아빠 대단하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럴 땐 흐뭇하죠.” 최병서는 일이 조금 뜸해지면서 술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양이 아니라 횟수가 늘었다. 그는 일주일에 5일 정도 술을 마시는데 그러다 보니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고. 그래서 시작한 게 헬스와 등산이다. 등산은 가수의 호흡에 좋다는 조용필의 얘기를 듣고 시작했다. 또 30분 정도의 거리는 무조건 걸어다니는 것이 그의 원칙. 그는 최근 자신의 몸매를 공개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술을 마시기 위해 체력을 다진 결과라고 하기에는 무척 다부진 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나이에 비해 군살이 없고 몸매가 조금 괜찮은 것이지 ‘몸짱’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더 잘 나온 사진이 있다”며 농담을 건넸다. 뒤돌아보면 자신이 기회를 많이 놓친 편이었다고 말하는 최병서. 가수의 기회를 놓친 것과 전성기에 MC를 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인기 코미디언 시절 그는 방송 MC 섭외 1순위였다. 당시 쇼 MC 등 굵직한 방송의 MC 제안이 많았는데 그는 수락하지 않았다. 한 지인의 ‘희극인은 희극인으로 남아야 한다, 너 MC 하면 큰일 난다’는 말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MC로 전환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단다. 그는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고. ‘인기야말로 비누 거품’이라는 사실을 경험한 그는 요즘 제일 가슴에 와 닿는 말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다. 어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든 그 인기와 권세가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고. 그것을 깨달으면서 인생을 보다 편하게 받아들이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여유도 찾았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옆집 살잖아요” “여기 단골이에요”라며 친근하게 응수하고, 시골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에게 “산골에 계신 분들이 아직 절 알아봐주니 제가 앞으로 5년은 더 코미디언 해먹을 수 있겠어요”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최병서. 그는 가끔 아이들에게 농담으로 “아빠 이도 다 빠지고,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한다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가끔 이덕화와 함께 술잔을 기울일 때면 그는 “형님, 우리가 이는 빠졌어도 발톱은 살아 있지 않습니까? 더 열심히 합시다”라고 이야기한다. 최병서에게 이덕화는 인생의 가장 좋은 선배다. 밤을 새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이덕화는 그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 중 한 명. 최병서의 일이라면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는 이덕화를 보며 고마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10월 앨범 쇼케이스에도 가장 먼저 달려와 독려해줬다. 또 이덕화는 쇼케이스의 문제점까지 하나하나 짚어주고 충고해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철저한 프로 이덕화는 그의 좋은 모델이기도 하다. 최병서는 자신이 이덕화의 프로 의식을 10분의 1만 따라갔어도 큰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최병서는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으로 열심히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것만큼 가수로서도 열심히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또 가끔 자신의 홈페이지에 들러 격려의 한마디 해달라는 이야기도 건넸다. 글 / 신현화 기자 사진 / 안진형·www.최병서.com

      2005.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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