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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 후]2021년 11월 9일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정치 취재 후

      [취재 후]2021년 11월 9일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개조심’이라는 팻말은 더 이상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드나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코바나컨텐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회사죠. 부부가 사는 아크로비스타 상가건물 지하 B125호에 있습니다. 입구 옆 벽면에는 그동안 이 회사가 주최한 전시회 작가들을 설명하는 문구들이 타이포그래피로 장식이 돼 있었습니다. 논란이 됐던 ‘개 사과’ 인스타그램 사진이 찍힌 장소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의혹투성이 서초동 캠프의 거점이라고도 부르고요. 국민의힘 경선 당시 이른바 윤석열 손바닥 왕(王)자 논란에 대한 해명과 관련, 아파트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할머니들이 써줬다는 해명이 얼마나 가능한지 역시 간 김에 검증해봤습니다. 윤석열 후보 부부가 사는 아파트의 출입구는 별도 건물에 있습니다. 다만 윤 후보의 동선이 코바나컨텐츠가 입주해 있는 상가동을 통해 올라간다면 일반 주민들과 마주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겠더군요. 본·부·장 리스크, 다시 말해 본인과 부인, 장모의 행적과 관련된 의혹이라는 신조어를 저희는 안쪽의 ‘표지 이야기’ 기사에서만 사용했는데 다른 매체에선 아예 표지 제목으로 등극시켜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이 ‘리스크들’이 크리티컬하게 작동하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2020년) 하반기, 검찰총장 윤석열 시절부터 검증기사를 써왔습니다. 이번 국민의힘 경선과정에서 뒤늦게 논란이 됐지만 이른바 천공스승 의혹도 지난 4월 그가 검찰총장을 사퇴한 직후에 검증해 기사로 쓴 바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단순 스폰서 관계를 넘어서는 뭔가 집안 사이의 석연치 않은 관계를 보여주는 강원도 동해시의 전기공사업자 황 사장 가족과의 관계를 검증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한편으로, 후보자질과 관련한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돼도 1~2주 몇% 정도 지지율이 빠진 뒤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검증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시견(watch dog)으로서 언론의 역할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다잡곤 합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결국 임기를 마치고 감옥에 가게 된 데는 그분들의 임기 시작 전이나 임기 중 언론이 감시견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못 한 탓도 있을 테니까요.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서초동을 떠났습니다.

      정용인 기자 2021.11.22 13:39

    • 국제 표지 이야기

      [표지 이야기]2021년 미얀마는 1980년 광주다

      ㆍ가슴 아픈 ‘민주화의 기억’ 간직한 한국사회 지지와 연대 확산 한밍툰(24), 민칸소(19), 아응맛링(27)…. 광주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다 사망한 미얀마인들의 영정을 품에 안았다. 팔목에는 붉은 끈을 둘렀다. 군부 규탄 시위에 나갔다가 숨진 치알신(19)에게 아버지가 주었다는 그 ‘붉은 끈’이다. 종이 울리고 위령제가 시작됐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는 갈수록 거세졌다.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 모인 70여명의 시민은 흠뻑 젖고 말았다. 급히 우비를 입었지만 신발에는 계속 빗물이 차올랐다. 미얀마인들이 ‘저항의 날’, ‘반 군부독재의 날’이라 부른 3월 27일, ‘오월의 아픔’을 지닌 광주시민은 그렇게 3400㎞ 거리에 있는 미얀마 시민과 함께했다. 광주 시민들이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3·27 미얀마의 봄 혁명 희생자 추모제’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 송윤경 기자 ‘5월 광주’ 아픔을 알기에 군부의 유혈진압에 목숨을 잃는 미얀마인들을 지켜보면서 한국사회의 많은 시민이 41년 전 ‘5월 광주’를 떠올렸다. 광주시민은 더욱 그랬다. 5·18기념재단을 비롯해 광주의 시민단체들은 지역 내 미얀마인들과 ‘미얀마 광주연대’를 결성했다. 이날 오전의 추모제 ‘주최자’ 역시 미얀마 광주연대다. 2009년 광주인권상의 수상자인 민 꼬 나잉(Min Ko Naing)은 이날 추모제에 앞서 광주에 서신을 보냈다. 그는 1988년 군부 쿠데타에 저항한 ‘8888항쟁’을 이끈 인물이다. “미얀마 국민은 민주화를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준비가 돼 있다. (중략) 힘들 때 손 내밀어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인 것처럼 한국 국민의 지지가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미얀마 광주연대의 묘네자 대표가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광장엔 ‘Kabar Makyay Bu(우리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것)’ 노래가 울려퍼졌다. 이 노래는 ‘8888항쟁’ 당시 미얀마 작곡가가 팝송 ‘바람 속의 티끌’을 개사한 것이다. 5·18 광주민주항쟁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있다면 미얀마 시민의 저항엔 늘 이 노래가 함께해 왔다. 빗속 추모제가 끝나자, 옛 전남도청 앞 광장 한켠에선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광주 신광중·각화중 학생들이 미얀마를 돕기 위한 바자회를 하고 있었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모금활동을 위해 광주 신광중학교 학생들이 바자회를 열고 있다. / 송윤경 기자 “100원만 내도 돼. 마음이 중요하니까.” 한 소년이 바자회장 앞을 서성이자, 신광중의 한 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미얀마 시민 지지 피켓을 걸어두고, 간식과 직접 만든 수제 비누를 팔았다. 각화중 학생들은 학교에서 모은 가방, 텀블러, 책 등의 기부품을 내놓았다. 비 탓에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모금함엔 금세 현금이 찼다. 정은선양(15)은 “비누를 만드는 데 5시간이 꼬박 걸렸다”면서 “부모님으로부터 5·18에 대해 많이 들었다. 오늘 행사를 한다고 하니 부모님도 의미가 있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직접 피켓을 들고 시장을 돌기도 했다. 이날 바자회엔 ‘오월어머니집’의 회원들이 함께했다. 5·18 광주민주항쟁에서 남편과 형제, 자매를 잃은 이들이다. “어린것이 우리나라 살려주세요, 라고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5·18로 오빠를 잃은 김형미씨(57)는 지난달 광주의 미얀마인들과 만났을 때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했다. “5·18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난 그냥 죽어버리겠다고 했지. 너무 힘들었으니까….” 남편이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매일 가택수색을 당하던 시절을 얘기하던 오월어머니집의 이명자 관장(70)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말해왔는데 미얀마 사태가 터지니까, 그곳에 가서 돕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5년 전 미얀마로 건너가 ‘88어머니회’ 여성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보다 어려 보여 안쓰러웠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 3시, 빗줄기는 더 굵어졌지만 옛 전남도청 앞에선 또 다른 집회가 열렸다. “팔뚝에 혈액형과 연락처를 적고 시위에 나간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저희도 과거에 버스 안에서 속옷에 사인펜으로 이름, 주소를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과 바늘로 꿰매 표시해 놓기도 했고요. 우리가 죽으면 그것으로 확인이 될 테니까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미술인들이 만든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지지와 연대의 물결 41년 전 차명숙씨(60)는 5월 19일부터 사흘간 차를 타고 돌며 거리방송을 했다. 군인들의 만행을 알리고, 도청에 모여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그는 열아홉 살이었다. “그때 저를 저격하려 했던 군인 얘기를 지인이 전해주었어요. 총을 쏘려다가 제가 너무 어려 그러지 못했다고 하더래요.” 40여년간 지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그는 지금 미얀마인들의 항쟁이 ‘역사’로 기록되지 못할까봐 애가 탄다. 최근까지도 ‘간첩이었느냐’는 질문 따위에 시달렸던 그는 “시민들이 겪은 이야기 하나하나를 무조건 다 기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없었던 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국사회 시민들에게 새겨진 ‘민주화의 기억’은 미얀마인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1960년의 4·19, 1979년 10월의 부마항쟁, 1980년의 5·18, 1987년의 6월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서울·대전·전북·경북 각지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모임을 만들고 있다. 옛 전남도청에서 집회가 계속됐던 27일 저녁 서울에선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한국 시민사회단체 모임’이 분향소를 설치했다. 주한 미얀마대사관 인근에서도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군부 쿠데타 직후인 2월 5일 청년단체 ‘세계시민선언’이 침묵행진을 하는가 하면 최근엔 민교협(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이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합니다’라는 컵홀더를 제작해 나눠준 카페(부산 홍지컴퍼니)도 있고,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 연대한 미술인들(생명평화 미술행동)도 있다. 인증샷 참여와 모금 열기도 뜨겁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미얀마 민주화 캠페인엔 10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인증샷을 남겼다. 해외주민운동연대엔 약 한달간 1500명의 시민으로부터 1억2000만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미얀마 광주연대 역시 2주간 1000명의 시민이 모금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도 최근 모금을 시작했다. 기부금은 부상자 치료, 시위물품 구입 등에 쓰인다.

      송윤경 기자 2021.04.05 15:37

    • 국제 우리가 모르는 인도

      [우리가 모르는 인도](6)센섹스 5만 돌파 이끈 2021년 연방예산안

      지난 2월 1일 니르말라 시타라만 인도 재무장관이 2021~2022년 정부예산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날 인도 센섹스 지수는 하루 만에 5%, 2315포인트가 급등해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뜨거웠습니다. 인도 국회에 도착한 시타라만 연방 재무장관(오른쪽)과 타쿠르 주 재무장관 / ANI 정부예산안 발표 이틀 뒤 주가가 5만을 돌파하자 모건스탠리는 인도 주가가 올해 말 6만1000포인트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치를 내놓으며 4대 민간 은행의 목표주가를 대폭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후 센섹스 지수는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며 2월 셋째 주 5만2000포인트를 넘어서며 인도 주식시장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장의 호응을 끌어낸 2021년 예산안, 과연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시사할까요? 재무장관 손에 들린 빨간 물건의 정체 연방예산안 발표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예산안을 예고했던 니르말라 시타라만 재무장관은 금색 문양이 달린 빨간색 커버로 싸인 물건을 들고 등장했습니다. 1년 사이에 하얗게 새어버린 백발과 빨간색, 크림색의 조합을 이룬 사리는 이 특별한 물건과 묘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인도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으로 2019년 5월 임명된 그는 예산안 발표 때마다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전통적으로 ‘서류가방’에 국회 내의 보안구역에서 인쇄한 예산안 문서를 담아오는 오랜 관행을 깨고, 영국 식민시대의 잔재로 여겨지는 서류가방을 빨간 천으로 만든 봉투 형태의 싸개와 가운데를 끈으로 묶는 방식의 인도 전통 장부인 ‘바히 카타(Bahi Khata)’로 바꿔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재무장관으로서 3번째 발표하는 이번 연방예산안은 두꺼운 서류뭉치 대신 인도에서 생산된 삼성의 태블릿에 최초로 ‘전자문서’화된 종이 없는 예산안을 선보였습니다. 인도 사회에서 이런 상징적인 행위는 개인의 주장이나 정부 정책 등 다양한 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하나의 행위에 부여되는 의미가 주장이나 정책을 뒷받침하고, 그 파급효과 역시 상당하기 때문인데요. ‘바히 카타’의 경우, 수십년간 인도의 재무장관들은 영국식을 따라 검은색, 붉은색, 갈색과 같은 서류가방에 예산안을 넣어 국회에 발표하러 오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민족주의 성향의 모디 정부가 영국의 잔재를 청산하고 인도 전통의 재건 의지를 더욱 확실하게 표명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올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자화된 바히 카타’는 전통적 외향에 ‘디지털 인디아’라는 현대적 정책을 반영한 속내용을 갖췄다는 상징성, 그리고 정부가 이를 ‘연방예산 모바일 앱’을 통해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점은 모디 정부가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정부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지향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재무장관은 예산안 발표가 있기 전, 3월 말에 끝나는 2020년 회계연도 동안 인도 경제 성장률이 7.7%로 축소됐으며, 올해에는 11% 성장이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발표한 예산안에서는 자본지출을 26% 늘리면서 코로나19로 인해 타격을 입은 경제 활성화의 버팀목이 되어줄 6개의 주요 지지대로서 보건 및 복지, 인프라 개발, 포괄적 성장, 인적 자본, 혁신 및 연구개발(R&D), 최소 정부 및 최대 거버넌스를 핵심 영역으로 삼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도 정부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경제 회생 및 발전’이고, 추구하는 성장의 성격은 지난해 이미 천명한 ‘자립 인도’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최소 정부, 최대 거버넌스’가 핵심입니다. 목표 실현을 위한 보조 수단이 될 핵심 정책은 제조업 육성 정책 강화, 철도·도로·항만·농촌개발 등의 인프라 확대, 관세 조정, 보험부문 외국인의 직접투자(FDI) 확대, 국영기업 민영화, 보건 인프라 및 백신 등을 포함한 보건 분야 지원 강화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도 정부의 예산안 발표 후 ‘인도주식회사’를 바라보는 시장의 전반적인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정부가 과세표준 또는 소득세율 변경을 하지 않은 것을 비롯해 여러 증권법을 통합해 단일화한 것, 부실자산인수은행(Bad Bank)을 운영하겠다고 한 점, 보험부문 FDI 확대 및 인도 비거주 투자자의 100% 지분 허용으로 배당 소득에서 발생하는 세금 손실을 줄이게 된 점, 소기업의 매출 및 자산 기준을 변경함으로써 스타트업 활성화가 촉진된 점, 과세 평가 재개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해 기업 부담 줄여준 점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예산안은 ‘정책지원-규제합리화-부실 개선’이라는 크게 3개의 방책을 사용해 경제회생 및 활성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Capex(제조업 육성, 인프라, 에너지)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내놓았고, 동시에 세금 고정, 보건 분야 집중지원, 관세 및 규제 합리화 등으로 사회적 안정을 추구했습니다. 각종 국영기업의 민영화 및 배드뱅크 설립 등은 부실 개선을 통한 자본 및 신용도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도의 이번 예산안에 대해 일부에서는 일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은 없고, 투자 및 기업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인도에 이어지는 투자 러시, 한국은 어디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정보통신(IT), 이커머스 등 디지털 부문의 해외투자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집중되고 있는데다 제조업 강화를 위해 글로벌 기업에 생산연계인센티브(PLI) 제공을 확대하면서 삼성전자의 노이다 공장 휴대폰 생산라인 증설, 애플의 생산기지 인도 이전, 테슬라의 인도 생산계획 등이 연달아 확정됐습니다. 제조업과 디지털 부문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잇따른 러브콜에 인도는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면서 주변국과의 관계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많은 나라가 일본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해 불신의 시선을 보낼 때, 인도는 일본의 아비간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생산하는 계약을 맺고 에어버블을 체결하며 신뢰를 유지했습니다. 인도의 기관 또는 기업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일본을 향한 시선 한 부분을 엿볼 수 있었는데, 공통적인 점은 이해득실과 무관한 ‘꾸준함’과 ‘관계 유지’를 꼽았습니다. 인도인의 문화적 특성 중에 ‘상호 신뢰’와 한번 신뢰가 형성되면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들이 왜 일본과 변치 않는 우정(?)을 유지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부 장관이 인도 정부의 전자상거래 부문의 FDI 정책에 대해 논의하던 중 미국을 포함해 한국, 일본 및 아세안 국가와의 무역협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인도 장관이 CEPA 개정을 언급할 때 한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언급은 전혀 없었던 점은 양국의 눈높이와 시선의 격차를 느끼게 했습니다. 인도 진출을 원하는 우리 기업들의 의지 외에도 정부의 분명한 대인도 정책과 인도 정부와 긴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적 인프라가 지금이라도 구축되길 희망해봅니다. 한유진은 화학산업 컨설턴트로 일하다 삶의 전환점을 인도에서 찾게 된 것을 계기로 2009년부터 인도 뭄바이에서 살았다. 인도의 문화와 산업을 비즈니스와 통합하는 큐레이팅 스타트업 회사를 운영하며 현재는 국내에 머물고 있다.

      한유진 스타라진 대표 2021.02.26 14:19

    • 문화/과학 방구석 극장전

      [방구석 극장전]2092년 가 보여주는 2021년

      <승리호>가 지난 2월 5일 발사됐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천만 영화’를 꿈꾸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공식대로 대규모 홍보와 스크린 독과점 논란 속에 개봉했겠지만, 두 차례 개봉연기 끝에 넷플릭스를 통한 공개로 급선회했다. <승리호>는 한국 상업영화에서 거의 최초 시도된 ‘스페이스 오페라’ SF 장르물이다. 영화 「승리호」 / 넷플릭스 국내에서 SF영화가 ‘대박’ 내기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가상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르는 필히 대규모 예산을 전제로 한다. <승리호>가 한국영화로는 대규모인 240억원을 들였다지만 할리우드 기준으론 저예산인 셈이니 진입장벽이 퍽 높다. 지금껏 ‘천만 영화’들은 대부분 중장년층도 접근 가능한 가족과 역사 관련 소재로 승부해 왔다. 판타지·공상과학물은 이 부분 공감도가 취약한지라 안전장치로 현실에 대입해 ‘공감’될 이야기와 인물 관계를 유지해 왔다. <승리호> 또한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한 미래세계를 높은 수준으로 구현했지만, 이 지점은 적절히 유지했다. <승리호>는 기존 한국 상업영화가 지적받아온 ‘국뽕’과 신파 색깔도 옅은 편이고, 영화 속 가족도 ‘대안가족’ 형태를 취한다. 진일보한 측면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과거를 숨긴 능력자’ 조합인 주인공들 구성은 히어로물의 전형을 답습하는 한계다. 영화 속 2092년 미래는 화려한 CG를 벗겨내면 익숙한 풍경이다. 지구는 오염돼 방독면 없이 숨쉬기 곤란하고, 95%의 인류는 그 환경에 방치돼 있다. 5% 소수는 우주로 이주해 쾌적한 거주구에서 삶을 누린다. 우주라는 배경만 빼면 지금 현실에서 온갖 세련된 이름을 붙인 고급 아파트단지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민과 ‘비(非)시민’ 거주공간은 완벽히 분리돼 있다. 시민의 거주공간 관리업무는 비시민들 몫이다. 주인공들이 생업으로 삼는 우주쓰레기 청소가 대표적이다. 앞선 우주개발 흔적인 폐기 인공위성들은 지구 궤도를 고속 공전하기 때문에 수거작업은 고난이도 중노동이다. 그들이 우주쓰레기를 잡아채는 생사의 현장은 거주구 안 시민들에겐 그저 천장에 뭔가 살짝 부딪치는 것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 아닌가. 필수업무를 수행함에도 비시민임은 물론, 금융거래도 신용등급이 낮아 현찰만 통한다. 토마토 노점 에피소드에서 보듯 신선식품 먹기는 큰맘을 먹어야만 가능하다. 흔히 SF는 현실과 유리된 별개의 존재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역으로 이 장르는 직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현실을 은유하고 풍자해온 수많은 사례로 가득하다. 과거에 ‘검열’이 공공연하던 시절 여러 예술가는 시치미 뚝 떼고 ‘이건 미래 가상 이야기입니다!’라며 당대 시대상을 비트는 유쾌한 장난을 저지르곤 했다. <승리호>의 본령은 그 지점이 아닐지언정, 영화 속 배경과 설정은 보는 이들이 온전히 우주여행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2021년 현실과의 접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2021.02.19 14:41

    • 경제

      2021년 해운업 크게 살아나나

      ㆍ지난해 2분기부터 물동량 늘어나면서 2008년 이후 계속된 적자행진 탈피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해운시장에 대한 전망은 암울했다. 물동량이 크게 줄고 운임까지 떨어지면서 해운업체는 2008년 이후 계속된 적자행진에서 탈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지난해 2분기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형 컨테이너선이 부산항에서 연료를 공급받고 있다. / 사진제공 해양수산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해운업체들이 운임을 잘 지켜냈다. 세계 물동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임시결항을 통한 선박의 운항노선 투입조절 등 공급 증가를 최대한 억제한 것이 주효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국제 환경규제 등도 선복량 증가를 억제하는 데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완화, 백신 개발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인간의 의식주에 대한 욕구와 국제적 거래가 되살아나면서 물동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운임까지 상승했다. 해운업체들이 불황은커녕 최근 보기 드문 호황을 누리게 됐다. 그 결과, 2019년 말 800~900대에 머물렀던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2000을 넘어서면서 치솟았다. 2021년 1월 15일 SCFI는 2885로 또 역대 최고치를 경신함으로써 지난해 11월 6일 이후 14주 연속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올해 1분기에 3000을 통과할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임시결향·노선 조절·공급 억제 등 주효 반면 이와 같은 상황은 해상운송의 수요자인 수출기업 등 화주에게는 고통이 되고 있다. 운임이 상승하고 있는데다 선박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특히 한국이 수출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국가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으로 상황은 알 수 없다. 코로나19의 확산 또는 진정에 따라 해상물동량의 불안정성이 계속 요동칠 것이기 때문이다. 해운업체의 선복량 증대 등 공급 측면의 변수도 해운의 호황 또는 불황을 좌우할 것이다. 해상운송에 대한 수요는 대체로 가격에 대해 비탄력이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 대해서는 매우 탄력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속력 등에 의해 간신히 조정할 수 있는 해상운송의 공급도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해운업체들이 매우 탄력적으로 조절했음이 확인됐다. 코로나19로 인한 해운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상대방의 상황에 대해 재빨리 대응하는 탄력성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다만 해상운송의 수요자인 화주 기업들이 선복량 조절에 영향을 끼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수요에 맞춘 선복량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좋은 예다. 지난해 8월부터 글로벌 선사들에게 운임인상을 자제하라고 했고, 9월에는 선복량 확대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 정부는 최근 글로벌 선사를 불러 불공정 사례에 대해 지적했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오는 불확실성에 대해 해운업계, 화주기업, 정부가 얼마나 빨리 탄력적으로 대응하느냐가 해운기업과 수출기업의 수익은 물론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해운경제학의 전통 이론이 새롭게 쓰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되면 다시 침체 가능성 코로나19가 해운항만 분야에 던지는 몇가지 시사점과 화두가 있다. 먼저 해상물동량의 불안정성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적 해운 경제학자인 마틴 스톱포드 박사는 3가지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해상물동량이 2020년과 2021년 어려운 시기를 거쳐 2022년부터 2050년까지 연평균 3.2%씩 성장하며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2024년까지 극심한 경기침체와 해상물동량 15% 감소 등을 예상하며, 향후 30년간 연평균 0.7%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 연합뉴스 둘째, 물류의 핵심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이 신속성과 효율성 등 경제적 요인에서 안전과 방역, 환경과 보안 등 환경적·사회적 요인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점이다. 빨리빨리, 싸게싸게, 많이많이를 외쳐왔던 해운항만 업계에 코로나19 팬데믹은 조금 늦더라도, 조금 비싸더라도, 조금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안전하고 깨끗한 물류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세균과 바이러스에서 안전한 바이러스프리(VirusFree) 물류체계가 구축될 전망이다. 셋째, 국제적 연대의 강화도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가 글로벌 팬데믹이라는 점에서 국제기구, 산업단체, 국가 등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 국제해운회의소(ICS)와 국제항만협회(IAPH)가 공동으로 국제해사기구(IMO),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노동기구(ILO),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 유엔 산하 국제기구에 서한을 보내며 국제적 협조를 요청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선박의 입출항과 선원의 승하선 등 글로벌 공급사슬과 무역, 항만 운영이 지속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넷째, 선원 등 사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십만명의 선원이 육지를 밟지 못하고 바다에서 떠돌고 있다. 선박에 체류할 수 있는 최대 기간 12개월을 넘기고도 상륙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선원들의 하선과 이동 등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글로벌 공급사슬의 단축이다. 코로나19는 각 국가의 국제적 상호의존성과 연대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먼 지역과 교류하고 교역하는 국제물류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얼마 전까지가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오프쇼어링’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니어쇼어링(인접 국가에서 생산)’과 ‘리쇼어링(제조업이 본국으로 복귀)’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욱 급속하게 진행되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전 세계적으로 아웃소싱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지구촌 시대에서 이웃 동네와 최소한 상품과 서비스를 주고받는 물물교환에 국한된 자급자족 시대로 회귀한다고도 하겠다. 관심은 해운업이 2021년에도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느냐, 다시 침체로 돌아서느냐 하는 것이다. 최대 변수는 역시 코로나19에 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가계의 보복적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회복되면서 해운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이는 운임상승 등 해운업의 활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해운업의 활황은 계속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얼라이언스 협력, 공급 조절 등 해운기업의 대응에 따라 과거와 같은 급락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이동현 평택대 국제물류학과 교수 2021.01.22 15:42

    • 경제

      2021년 공모주 시장 ‘대어’들 즐비

      ㆍ크래프톤·LG에너지솔루션·SK바이오사이언스·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등 대기 석경에이티와 ESR켄달스퀘어리츠를 끝으로 2020년에 기업 공개한 공모주 76개가 모두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상반기 때 상장건수가 12개에 불과했지만, 하반기에 60개 이상 상장하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공모주가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데는 지난해 7월 초에 상장한 SK바이오팜의 역할이 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약 승인을 2개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모가액이 다른 바이오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낮아 보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공모주 열풍이 불었다. 6년 전 제일모직 상장 때 청약을 위해 들어왔던 개인 청약자금 30조600억원보다 9000억원 이상 더 들어오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SK바이오팜은 모든 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하듯 상장 첫날 ‘따상(더블 상한가)’으로 시작해 공모가액 대비 450%까지 상승했다. 공모주의 상장 첫날 거래가격은 공모가액의 90%에서 200% 사이에서 결정되는데, 2배에서 시작해 바로 상한가를 가면 ‘따상’이라는 표현을 쓴다. 2020년 10월 BTS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공모주 청약은 58조원의 청약증거금이 모이며 600 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로 마감됐다. / 이상훈 기자 SK바이오팜이 흥행에 성공하니 그 이후부터 알 만한 공모주가 나오면 시중의 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카카오게임즈와 빅히트에 58조원씩 들어오며 공모주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빅히트는 이미 상장한 엔터기업들의 기업가치 대비 공모가액을 너무 비싸게 책정한 바람에 상장하자마자 급등 후 폭락해버려 공모주 열기가 한풀 꺾이는 데 일조했다. 13만5000원의 공모주는 상장 첫날 35만1000원까지 치솟더니 3주 만에 공모가액 근처까지 뚝 떨어졌다. 상장 후 뒤늦게 빅히트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만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2020년 공모주 중 18개 종목은 손실 그 이후로 공모주가 등장하면 50조원 이상씩 몰리지 않았다. 테슬라에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기업인 명신산업에 14조원, 치킨기업 최초로 상장한 교촌에프앤비에 9조원 이상 몰린 게 최고였다. 빅히트 이후 공모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많이 떨어진 사이 오히려 수익률이 엄청 좋은 중소형 공모주들이 더 많이 등장했다. 명신산업은 5배, 영상인식 인공지능 기술기업인 알체라는 3배, 아마존에 PDA를 납품하는 포인트모바일도 3배 이상 올랐다. 꾸준히 공모주를 투자하며 시장에 남아 있던 투자자들은 연말까지 계속 큰 수익을 올렸다. 모든 공모주가 이처럼 수익을 척척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2020년에 상장(12월 24일 기준)한 공모주 76개를 분석해보면 상장 후 58개 종목은 수익이고, 18개 종목은 손실이다. 모든 공모주에 다 투자했다면 평균 수익률은 67%이고, 선별 투자했다면 100% 이상이다. 2021년에도 수십조원의 돈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대어들이 많다. 배틀그라운드라는 인기 게임의 개발 및 유통을 하고 있는 크래프톤, LG화학에서 분할한 2차전지 전문기업 LG에너지솔루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SK바이오사이언스, 카카오의 종속기업들인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지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크래프톤은 단일 게임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실적 성장성이 여타 게임사에 비해 가히 압도적이다. 2020년 3분기 누적 매출액이 1조2000억원대로 대장주인 엔씨소프트보다 작지만 영업이익은 더 크다. 무엇보다 전년도 3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3배 이상 증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17년에 ‘검은 사막’이라는 게임 하나로 상장한 펄어비스도 단일 게임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핸디캡을 딛고 상장 후 고공행진을 했기 때문에 크래프톤에 대한 기대감도 클 수밖에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크지만 LG전자가 캐나다의 자동차 부품사인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법인을 설립함에 따라 날개를 하나 더 달게 되었다. 2차전지 시장 규모의 확대에 따라 투자자금이 많이 필요한 바 상장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알짜 중소형 공모주 눈여겨봐야 백신 전문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도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시장에서 백신 개발과 생산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게임즈를 시작으로 계열사들을 하나씩 선보이고 있는 카카오그룹도 단연 관심의 대상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이미 큰 기대를 받고 있고 어느 정도 실적을 보여준 기업들이기 때문에 싼 가격에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예전부터 대형주가 상장하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얘기가 늘 나올 정도였다. 2020년에 상장된 대어들도 냉정하게 보면 SK바이오팜만 예상보다 싸게 나와서 투자자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준 정도였지 카카오게임즈나 빅히트 모두 기업가치 대비 싼 가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모주 투자수익이 크지 않았고, 괜히 분위기에 휩쓸려 상장 후 매수한 투자자들만 큰 손실을 입었다. 때로는 과열된 분위기와 군중심리가 시장을 이끌기도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주가는 기업가치에 수렴해왔다. 이미 미래에 큰 초과수익이 날 것으로 기대해서 공모주가 비싸게 나왔다면 상장 이후에 주가가 더 올라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그리고 욕심은 늘 화를 부른다. 15년 동안 모든 공모주의 투자설명서를 분석하고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온 필자의 경험상 대어보다 오히려 알짜 중소형 공모주의 수익률이 더 좋았다. 큰 기업들의 이름에 가려져 있지만 2021년에도 역시 많은 중소형 공모주들이 상장하며 투자자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그 기쁨을 누리고 싶은 투자자는 공모주 투자설명서를 읽으며 위기와 기회를 가려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사업을 하는 회사이고 손익과 재무구조는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다. 공모가액은 어떤 근거로 산정되었는지,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수요예측 결과와 상장 당일 유통 가능한 물량은 얼마나 되는지 등 중요한 내용 위주로 살펴 판단해야 한다. 빅히트가 상장한 이후 공모주 열기가 다소 꺾인 것처럼 보이지만 28개 중소형기업이 상장해서 ‘따상’은 기본이고, 200% 이상 오른 종목만 7개가 넘을 정도였다. 자금력이 있는 사람들만 공모주를 독차지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보니 정부에서는 2021년부터 청약 기회를 균등하게 나눠줄 수 있게끔 방식을 변경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돈이 많건 적건 똑같은 비율로 주식을 받을 수 있다.

      박동흠 회계사·「박 회계사처럼 공모주 투자하기」 저자 2021.01.04 15:45

    • 경제 우정이야기

      [우정이야기]2021년 신축년 ‘소의 해’

      다가오는 2021년이 신축년 ‘소의 해’임을 이달 2일부터 판매 중인 우체국연하카드를 보고 알았다. ‘전진하는 희망의 소’라는 제목의 연하카드에는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소 한마리가 우아한 자태로 서 있다. 전통적으로 농가의 큰 일꾼이던 소는 성질이 유순하고 인내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소의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해’로도 불린다고 한다. 2021 우체국연하카드 / 우정사업본부 제공 2020년은 여러모로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많았다.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어떤 동물에서 유래했는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전문가들은 인간이 야생동물이 살던 자연을 침범하면서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잦아진 것을 근본 원인으로 지적한다. 특정 동물에만 감염되던 병원체가 변형돼 사람에게까지 전염되어 발생하는 감염병을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하는데 사스, 메르스, 에볼라 등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한 많은 감염병이 인수공통감염병에 해당한다. 사람 몸에서만 사는 병원체는 백신을 개발해 사람들이 면역을 획득하도록 하면 물리칠 수가 있는데 인수공통감염병은 박멸이 어렵다. 병원체가 계속해서 숙주를 바꿔가면서 살아남기 때문이다. 돌연변이가 일어나게 되면 대처는 더욱 어려워진다. 천병철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미국의학원의 신종 감염병 발생 요인을 참고해 정리한 ‘신종 감염병이 최근 대두되는 요인들’을 보면, 가축이 대규모로 밀집된 가금류 농장이나 돼지농장은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몰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기후변화 역시 신종 감염병 출현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강수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질병을 매개하는 모기와 진드기 서식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다 온도와 염분이 변하면 독성세균과 독소도 증가한다. 올여름 우리나라를 찾아온 최악의 장마는 기후변화를 몸소 실감케 했다. 54일간 지속된 장마는 평년의 두 배나 길었고, 여름철 강수량은 평년의 1.5~2배에 이르렀다. 장마가 시작된 지난 6월 강릉에서는 한 시간 만에 50㎜가 넘는 비가 내려 일일 총 강수량이 210㎜를 넘긴 날이 있었는데, 이날은 109년 기상 관측 사상 최고로 많은 비가 내린 날로 기록됐다.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던 전남 구례군에서는 많은 사람이 잊지 못할 장면이 연출됐다. 강이 넘치면서 축사가 잠기자 물에 떠올라 지붕으로 피신한 소들이 물이 빠진 후에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었다. 절로 피신한 소들도 있었다. 소들은 축사의 축대가 무너지자 탈출해 3㎞가량 길을 따라가 해발 531m 높이의 사성암까지 갔다고 한다. 지붕 위의 소들은 구례군과 소방당국이 마취총과 중장비 등을 써서 구조했고, 한 마리는 새끼까지 낳았다. 하지만 후유증으로 얼마 못 가 폐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진작 물에 떠내려가거나 폐사한 소도 부지기수다. 자연과 동물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대해온 대가를 인류와 짐승들이 다 같이 받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방법을, 아니, 인간이 벌인 이 모든 일을 이제라도 수습할 방법을 더 많이 논의할 수밖에 없겠다.

      최미랑 뉴콘텐츠팀 기자 2020.11.13 15:09

    • 문화/과학 방구석 극장전

      [방구석 극장전]2021년 선보일 의 신세계

      <킹덤: 아신전>이 11월 초 제작 공식 발표와 함께 첫 촬영에 들어갔다. <킹덤: 아신전>은 시즌2의 외전 격인 70분 분량의 에피소드로, 시즌3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정규 시즌은 아니지만 코로나19로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 촬영이 유보된 상태에서 팬들을 설레게 하는 소식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시즌1부터 화제를 일으킨 <킹덤>은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코로나19 창궐로 극장가가 꽁꽁 얼어붙었고, <킹덤>은 이런 극장 수요를 흡수했다. 방구석에 고립된 이들에게 시리즈 전편을 한꺼번에 공개하면서 ‘킹덤 폐인’을 숱하게 양산했고, 시즌1에서 미처 다 풀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시청자를 낚기 위해 투척해둔 떡밥들이 시즌2에서 하나둘 풀렸다. 이 과정에서 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세계관이 완성됐다. <킹덤>의 배경은 임진왜란에서 세도정치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다. 여기에 현세에 닥친 지옥도를 방불케 했다는 ‘경신대기근’의 종말론적 세계를 좀비 아포칼립스로 은유하는 세계관을 더했다. 가상으로 재구성한 배경임에도 왕위를 둘러싼 궁정 암투와 조정 내 권력구도 및 신분제도의 디테일한 묘사, 전염병에 대한 사실적 접근은 논리적 개연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점에서 <킹덤>은 ‘시공초월 연애물’로 치부되기 일쑤였던 한국형 팩션 장르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역사대체물이라는 평가다. <킹덤: 아신전>은 여기에 북방 여진족 후예(전지현 분)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더할 예정이다. 고대부터 민족사에 오랜 기간 연결되어 왔지만 어느새 잊혀버린 북방 민족지를 눈으로 확인할 드문 기회다. 뛰어난 고증으로 호평받은 이 성공적인 시리즈물이 과연 한반도에서 북방 만주와 요동으로 무대를 확장해 어떤 풍경을 그려줄까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팩션에 도전하려면 이 정도쯤은 도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킹덤> 시리즈는 단순한 ‘K-좀비’ 장르를 넘어선 듯 보인다. 서구 드라마나 영화가 시즌을 이어가며 확장되는 방식, ‘마블 유니버스’나 ‘스타워즈 사가’ 같은 대중문화 현상으로의 전환을 꿈꿔도 될 정도다. 해외 시청자들은 영화 속에서 구현된 조선 중후기 복색(예를 들어 주지훈이 쓰던 ‘갓’)에 열광하고 흥미를 가진다. (좀비) 발병원인과 변이에 대한 독창적 해석은 전 세계 시청자들의 2차, 3차 추리를 불러온다. 다음 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장치다. 성공한 드라마의 첩경인 시즌제 도입의 이상적인 조건이다. 아낌없는 투자를 받은 <킹덤>은 넷플릭스 대세를 선언하는 콘텐츠로 기억될 것이다. 대중문화 역사를 예로 든다면, 음악은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라 선언한 음악방송 MTV의 1981년 개국 당시 첫 뮤직비디오, 더 버글스의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의 충격에 비길 만한 순간이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2020.11.13 15:08

    • 오피니언

      [윤동호의 눈]2021년 수사 잘 받는 법

      “조사할 게 있으니 나와 주세요”라는 수사기관의 전화를 받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몸이 긴장되면서 당황하고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자문한다. 범죄혐의가 있다는 수사기관의 의심을 받는 사람을 흔히 피의자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종종 뜻밖의 일로 피의자가 되어 형사절차에 휘말리는 고통을 겪는데, 그 고통이 작지 않다. 유죄가 확정되어 받는 처벌의 고통은 일회적이지만 형사 절차에 연루되어 겪는 절차적 고통은 지속적이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신체 접촉은 모두 폭행이나 추행이 될 수 있고, 기분 나쁜 말은 모두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과잉범죄화 시대이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수사기관의 수사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수사를 피할 수 없다면, 가기 전에 어떤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가능하면 많은 사람, 특히 법무사,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수사를 받을 때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수사기관에 가면 대체로 말을 아껴야 한다. 유리한 점은 말하고, 불리하거나 애매한 점은 말하지 않아야 한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입을 굳게 다문 사람을 수사하는 것이 수사기관에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올해 초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2021년 시행되면 피의자가 경찰의 수사를 받을 때 자신의 범죄혐의의 부당성을 잘 설명하여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은 피의자에게 범죄혐의가 없음을 뜻하므로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받으면 일단 절차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는 흔히 경찰의 수사를 받은 후 검찰로 송치되어 검사의 기소 여부 판단을 거쳐서 기소된 경우에만 법원의 재판을 받는데, 종전에는 피의자에게 범죄혐의가 없다고 경찰이 판단하더라도 무조건 검찰로 송치해야만 했다. 경찰은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하는 마치 군대의 하급자와 같았다. 경찰의 수사단계에서는 절차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검사에게 송치된 후 검사의 불기소 결정을 받아야 비로소 절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검사와 경찰의 관계를 상호협력관계로 변경하면서 경찰에게 자율적 판단권한을 부여하고, 그 판단에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기소유예가 포함된 검사의 불기소결정권에 견줘보면 경찰의 불송치 결정권은 매우 작은 권한이지만 피의자를 절차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경찰의 책임 수사와 역량 강화에 보탬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피의자가 경찰의 수사를 받을 때 자신의 범죄혐의가 경찰의 수사권의 범위 안에 있는지 확인하여 관할 위반의 위법수사임을 주장하는 것도 종전에 없었던 방법이다. 올해 초 개정된 검찰청법이 2021년 시행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사건), 경찰공무원이 범한 죄, 이들 범죄 및 경찰이 송치한 범죄와 직접 관련된 범죄의 수사권은 검찰에 있고, 또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 검사 등 약 7000명에 이르는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범죄의 수사권은 출범을 앞둔 공수처에 있기 때문이다.

      윤동호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 2020.08.28 14:21

    • 문화/과학 IT칼럼

      [IT 칼럼]포드의 ‘2021년 자율주행차 상용화’ 선언

      자동차 회사 포드가 지난 8월 1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팔로알토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주요 내용은 2021년까지 자동차에서 핸들과 브레이크, 가속 페달을 없앤 완전 자율주행 상용차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량을 차량 공유 서비스 회사인 우버와 리프트 등에 먼저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팔로알토 연구소 규모를 2배 늘리고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일원이 되겠다고 밝혔다. 일전에 GE의 혁신 사례를 쓰면서 GE가 2009년부터 실리콘밸리에 대규모 연구소를 마련하고 최고의 인재들을 모으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가치를 창출해 나갔던 것처럼 포드도 이곳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 모든 자동차 회사들을 포함해 테슬라, 테슬라를 겨냥해 중국기업 러에코(LeECO)가 미국에 세운 페러데이 퓨처, 그리고 구글, 중국의 바이두도 자율 주행차 분야에 관심이 많고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심지어 애플도 이 시장에 뛰어드는 거 아니냐는 관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포드는 중국 바이두와 손도 잡았다. 기술은 물론 시장도 잡겠다는 행보다. 포드사는 8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2021년까지 완전 자율주행차를 시장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 Ford 자율 주행차? 아니 무슨 자동차에 핸들도 없고 브레이크도 없단 말인가. 그것도 2021년에 이런 제품을 선보이겠다고? 2021년이면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미래가 아니라 바로 저 앞이다. 그만큼 많은 준비를 해 왔다는 거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지금이 미래다.’ 이런 제품이 등장하면 정부 당국이 당황스러울지 모르겠다. 지금 법으로는 음주를 하고 운전을 하면 안된다. 자율 주행차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차 가지고 왔지? 그럼 당연히 한 잔 할 거지”라고 묻고 “당연하지, 차도 가져왔는데 마셔보자고”라고 할 거다. 대리운전 없이. 술을 마시고 나서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고 차를 주차장에서 부른다. 목적지를 입력해 놓으면 내 앞에 와서 문이 열리고 차에 타고 한숨 자면 목적지에 다 왔다고 깨울지도 모른다. 차에 탔으니 휴대폰으로 마구 통화하고 영화도 즐기면서 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밖이 다 보이는 창이지만 아예 안 보이게 할지도 모른다. 아니 자동차 안이 왜 보여야돼라며 프라이버시 이슈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줘야 하는 부모들은 환영할 거다. 아이를 차에 태워 목적지를 누르고 보내면 자동으로 차가 목적지를 향해 간다. 유치원이든 학교든 아이를 확인하고 다시 차를 돌려보내면 된다. 나이가 들어 차를 몰기 힘겨운 이들도 장거리 여행을 아주 즐겁게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누군가는 이뤄내려고 하고 있다. 그것도 가까운 시간에 말이다. 그동안 자동차 회사들은 운전의 즐거움만을 부각시켜 왔다. 운전이 엄청난 노동이고, 주차를 잘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다른 운전자의 잘못으로 인해서 엄한 목숨이 희생됐어도 그런 장치를 미리 만들어 넣는 데 인색했다. 배우고 익혀야만 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김여사’라는 여성 비하가 널리 일상화된 단어까지 나왔다. 그런데 묻고 있다. 과연 차는 꼭 그래야 하는지. 이런 움직임은 단순히 차에 대한 인식이나 당국의 ‘세수’에 대한 고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누구는 사고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여기서 더 확장되면 새로운 도시 설계 이슈까지 나아갈 수 있다. 자율 주행차가 다니는 도로와 사람이 모는 차가 전혀 만나지 않도록 설계할 수 있다. 유치원과 학교 주위는 의무적으로 사람이 운전해서는 못 들어오게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건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저건 미국에서나 일어나는 아주 먼 이야기처럼 들릴 거다. 그렇지만 그런 곳에 수출해야 하는 회사와 부품 회사들이 줄도산할 거 같다면 아마 우리의 문제로 확 와닿지 않을까. 2021년은 그리 멀지 않다.

      2016.08.22 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