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 경향신문

    • 구미시가 불허한 이승환 콘서트, 5월 광주에서 열린다

      사회

      구미시가 불허한 이승환 콘서트, 5월 광주에서 열린다

      ... 자료 사진. 지난해 연말 경북 구미에서 취소됐던 가수 이승환의 공연이 5월 광주에서 열린다. 5일 광주시에 따르면 오는 5월3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이승환 콘서트’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승환 #광주 #콘서트 #구미 #대관

      강현석 기자 2025.03.05 16:06

    • 되감긴 44년…12월 서울, 5월 광주 소년을 소환하다

      사회

      되감긴 44년…12월 서울, 5월 광주 소년을 소환하다

      ... 김용만·경창수·이덕준씨 1980년 5월26일 시민들이 광주 시내에서 계엄 철폐를 촉구하는... 떠나지 않았다. 김씨는 1980년 5월18일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광주에서 계엄군과 대치했다....

      탄핵, 국내외 영향

      배시은 기자 2024.12.10 21:16

  • 스포츠경향

    • 뮤지컬 ‘광주’ 오늘 개막…42년 전 5월 온다

      연예

      뮤지컬 ‘광주’ 오늘 개막…42년 전 5월 온다

      쇼온컴퍼니 제공■뮤지컬 ‘광주’, 삼연 맞아 평화를 갈망한 광주 시민들 서사 보강 “담담하더라도 진정성 갖고자 노력” 오늘(15일) 뮤지컬 ‘광주’가 42년 전 5월, 광주의 뜨거운 봄날과 열망을 담아낸 세 번째 시즌의 막을 올린다. 제작사는 15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뮤지컬 ‘광주’가 공연한다고 밝혔다. 작품은 5·18민주화운동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치열한 항쟁을 벌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세 번째 시즌을 맞은 만큼 작품의 창작진은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더 높였다. 평화를 갈망하는 광주 시민들이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의 서사를 보완했으며, 시민군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야학교사 역 ‘윤이건’의 비중을 높여 광주 시민의 서사에 무게감을 실었다. 이에 관해 고선웅 작가/연출은 “그 무엇보다도 담담하더라도 진정성을 갖고자 노력했다”며 작품 보완의 방향성을 설명했다. 이번 시즌의 음악 역시 신곡이 추가돼 더욱 섬세하게 수정됐다. 극 중 시민군의 의지와 믿음을 드러내는 ‘눈엔 눈’, 거짓으로 얼룩진 광주의 급박한 현 상황을 대변하는 ‘높은 담장이 광주를 가두네’ 등의 곡이 추가돼 광주 시민의 서사를 뒷받침하며, 보다 대중성을 갖춘 음율, 박자를 활용해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최우정 작곡가는 “음악보다는 작품 전체의 주제가 더 명확히 전해질 수 있도록 섬세한 수정 과정을 거쳤다”며 이번 삼연의 방향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 시즌 ‘광주’의 캐스팅으로는 서사 중심에 있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실제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자 시민군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야학교사 ‘윤이건’ 역의 이지훈과 조휘가 출연하며, 첫 임무를 위해 광주에 파견된 505부대 편의 대원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폭행당하고 연행되는 참상을 목격하며 광주의 진실에 눈을 뜬 505부대 편의 대원 ‘박한수’ 역에 정동화와 신성민이 캐스팅됐다. 작품은 2019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문화재단의 ‘2019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 일환으로 기획돼 같은 해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초연 무대를 올렸다.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앙상블상, 안무상, 극본상, 음악상(작곡)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창작 부문 프로듀서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입증한 동시에 ‘한국인이라면 꼭 관람해야만 작품’이라는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소시민들의 뜨거웠던 투쟁을 그린 ‘광주’는 광주를 평화의 땅으로 일궈낸 열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서사와 ‘임을 위한 행진곡’, ‘투쟁가’ 등 웅장한 멜로디로 그날의 열기를 전한다. 1980년, 군부 정권에 대항하며 평화를 위해 피 흘리며 싸웠던 광주 시민들의 분노와 희망을 그려낸 이야기는 한 명의 영웅 서사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일궈낸 숭고함에 초점을 맞춰, 모든 캐릭터의 서사를 더한 무대를 완성한다. 한편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인 민주, 인권, 평화 등 보편타당한 가치를 담아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봐야 하는 필수작으로 꼽히고 있는 ‘광주’는 오늘(15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개막하며 5월 1일까지 이어진다. 5월 14일에는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무대를 선사한다.

      #뮤지컬 광주

      황효이 온라인기자 2022.04.15 12:26

    • ‘광주’ 1980년 5월, 42년 전 ‘광주의 봄’ 다시 온다

      연예

      ‘광주’ 1980년 5월, 42년 전 ‘광주의 봄’ 다시 온다

      뮤지컬 ‘광주’의 배우-스태프 상견례 현장. 사진=쇼온컴퍼니 제공다가오는 봄, 뜨거웠던 42년 전 ‘광주의 봄’을 다시 만난다. 22일(오늘) 뮤지컬 ‘광주’의 배우-스태프 상견례 현장이 공개됐다. 당일 상견례 현장에는 고선웅 극작/연출가를 비롯한 창작진들과 배우들이 참석, 뜨겁고 진지한 동시에 설레는 분위기로 진행됐다.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전원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진행된 상견례는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의 작품을 향한 열의와 진심이 담겨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인 시간이 됐다는 후문이다. 상견례가 진행된 후 배우들은 대본 리딩을 통해 42년 전 뜨거웠던 광주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마스크로 반 이상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하며 그날의 뜨거웠던 광주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서면서 세 번째 시즌을 향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제작사 라이브는 “초·재연을 거치면서 조금씩 보완한 서사로 올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세 번째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관객들에게 ‘42년 전 광주의 봄’의 열기를 고스란히 선사할 수 있는 감동적인 작품으로 완성되길 기대한다”라며 다시 한번 돌아올 뮤지컬 ‘광주’의 가슴 뭉클한 의미와 포부를 밝혔다. 작품은 2019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문화재단의 ‘2019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 일환으로 기획돼 같은 해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초연 무대를 올렸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소시민들의 뜨거웠던 투쟁을 그린 뮤지컬 ‘광주’는 광주를 평화의 땅으로 일궈낸 열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감동적인 서사와 ‘임을 위한 행진곡’, ‘투쟁가’ 등 웅장한 멜로디로 그날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뮤지컬 ‘광주’는 오는 4월 15일부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뜨겁고 찬란했던 명성을 또다시 입증할 예정이다.

      #뮤지컬 광주

      황효이 온라인기자 2022.03.22 12:15

  • 주간경향

    • 사회 특집

      [포커스]40주년 ‘5월 광주’를 기억하는 방법

      ㆍ교육·문화예술 현장에서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 다양하게 열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지난 4월 27일은 광주광역시교육청이 새로운 5·18 민주화운동 교과서를 발행한 날이기도 하다. 2017년 4월 자서전을 겸한 회고록을 펴낸 전씨는 책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밝힌 고 조비오 신부의 증언이 거짓이라며 비난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1년여 만에 광주지법에 출석한 전씨는 자신의 책임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같은 날 나온 새 5·18 교과서는 23개의 질문에 대한 충실한 대답을 내놓는다. 40년이 흐른 뒤 5·18을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역사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기념 연극 공연 의 한 장면 /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5·18 교과서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롭게 광주시교육청이 이번에 5·18기념재단과 함께 펴낸 교과용 인정도서는 11년 전인 2009년 처음 나온 교과용 도서를 계승한 책이다. 이전 첫 번째 교과서가 관련 지침이 달라짐에 따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롭게 내용을 구성한 것이다. 관내 각급 학교에 배포한 인정도서 초간본을 바탕으로 학생교육에 활용하면서 승인 절차를 밟으면 올 하반기에는 공식 교과서의 지위를 얻게 된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이 “5·18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데 교과서가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믿고 전국 보급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대로 현대사 교육현장에서 쓰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0대 청소년들도 시위에 참여했나요?”, “‘광주사태’는 어떻게 ‘민주화운동’이 되었나요?”, “5·18단체들은 왜 세월호유가족을 격려했을까요?”처럼 중·고생의 시각을 염두에 두고 구성한 질문들에 따라 각각의 주제를 담았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배경과 전개과정 같은 역사적 사실을 비롯해 ‘주먹밥’으로 상징되는 당시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이나 영화 <택시운전사>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도 포함됐다. 5·18 40주년을 맞아 교육현장 및 문화예술현장에서 역사를 새롭게 기억하려는 노력은 점차 다채로워지고 있다. 전남도교육청도 5·18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등학생용 학습 보조자료를 새롭게 보급하고 나섰다. 3·4학년용과 5·6학년용 두 단계로 구분해 발간되는 이번 학습자료는 사적지 탐방 프로그램이나 도서 읽기 대회 등의 프로그램과 결합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활용될 계획이다. 전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19로 온라인수업이 진행되고 단계적 등교 개학이 이뤄지고 있어 자율운영을 통해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이 중·고교생 학습용으로 펴낸 5·18 민주화운동 인정도서 초간본 / 광주시교육청 제공 각종 기록자료 서울에서 처음 선보여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상당수의 기념전시·공연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기도 했지만 ‘생활 속 거리 두기’ 방침에 따라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행사들도 점차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국가기관 차원에서는 최초로 주최돼 전국 곳곳에서 함께 진행되는 ‘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 특별전은 어린이·학생·주부 등 당시 광주시민이 쓴 일기 16점을 포함해 현장을 기록한 자료들을 선보인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이 전시는 국가기관인 국가기록원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광주의 지역 기념·연구기관과 공동 주최했다. 5월 12일 열린 개막식에서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광주를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자료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광주의 역사가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 특별전시를 시작으로 5월 19일에는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27일에는 광주 5·18기록관에서 연이어 전시가 개막하는 점도 40주년을 맞아 이전까지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시민들의 일기와 취재수첩, 성명서와 각종 실물자료 등을 서울에서 선보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에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정부기록물과 당시 국방부·광주 동구청이 생산한 상황일지·통행증, 국군기무사령부가 보관 중인 사진집 같은 공적 기록물이 40년 전 현장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단단한 물푸레나무로 만들어진 당시 계엄군의 진압봉을 비롯해 군복과 군화도 함께 전시되고, 이들이 전남대병원 쪽으로 총알을 난사한 흔적이 남은 캐비닛도 출품됐다. 1980년 광주의 상황을 보고 일본 판화가 도미야마 다에코가 제작한 <광주의 피에타> 작품 또한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서울시 산하 서울기록원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대표적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초점을 맞춰 개최하는 특별전 <넘어 넘어: 진실을 말하는 용기>도 광주지역 밖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전시다. ‘넘어 넘어’로 줄여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널리 알려진 이 책의 판본 10개 모두가 공개되고, 한때 이름이 숨겨졌던 저자 이재의의 취재노트 원본 등 관련 자료들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에는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으로 저자가 표기된 출판사 풀빛의 1985년 최초 판본부터 조금씩 다른 초판본 3종과 1985년 독일지역 제본판, 1985년 일본어판, 1987년에 비매품으로 유통된 사진자료집 <넘어 넘어 2>, 1999년·2017년 영어판, 2019년 나온 개정판 양장본까지 10개 판본이 모두 나온다. 광주의 지역 문화예술계는 물론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연과 행사도 눈길을 끈다. 광주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이 전당 재개관 후 선보이는 첫 공연이자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공연인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열흘간의 5·18 민주화운동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현했다. 이 작품은 관객이 공연에 직접 참여해 스스로 역사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몰입형 연극이다. 작품을 연출한 고선웅 감독은 “연극이 때로 사실보다 더 진실하다. 허구를 통해 손바닥으로 가려진 진실의 빛을 보여 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곳에서 함께 열리는 특별 영상전 ‘5·18 영화주간’에서는 평소 만나기 어려웠던 5·18 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자료를 공개하고 퍼포먼스 전시 등의 행사도 진행한다.

      김태훈 기자 2020.05.15 16:55

    • 사회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 시인 “80년 5월 쓰러진 임산부 그의 넋이 빙의돼 시가 되어 나왔다”

      “80년 6월 2일이었어요. 당시 신문은 전부 석간이었지. 문순태 당시 편집부국장으로부터 ‘빨리 가져오라’는 전갈을 받고 가보니 기자들은 펜을 놓고 떠난 거예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는 기자 일동 사직서 아시죠? 어차피 사실은 못 쓰니 대신 실으려 했던 것인데….” 5월 22일, 서울 용산역의 한 찻집에서 만난 김준태 시인(71)의 얘기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39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기억은 엊그제 일처럼 또렷했다. 45분 만에 시는 완성됐다. 토씨 하나도 고치지 않았다. 일필휘지다. 그는 모든 시인은 샤먼(무당) 기질이 있다고 했다. “나는 손만 빌려줬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누가 썼느냐, 내 몸 속에 5월에 죽은 사람들이 들어와 썼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해원(解寃)을 해줘야지. 39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45분 만에 완성된 ‘아아 광주여…’ 당시 광주 전남도청에는 계엄군 검열관 5명이 파견 나와 있었다. 광주광역시 금남로 구 가톨릭센터 건물에 들어선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는 이때 빨간펜으로 싹둑싹둑 검열 삭제 표시가 된 검열 전·후의 신문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검열 후 제목도 뒷부분은 잘려 나갔다. ‘아아, 光州여!’ 뒤에는 검은 공백만 남겨졌다. 105행, 두 단에 걸쳐 게재된 시는 33행짜리 한 단으로 축약됐다. “활판인쇄 시절 제일 처음 찍는 걸 ‘게라지’라고 해요. 당시 조판실 사람들이 영리했어요. 검열받은 것이 나오기 전에 그걸 올려놓고 철커덕철커덕 10만부를 찍어 전국에 암암리에 다 뿌려버린 거야. 어떤 루트로 서울까지 올라갔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AP, UPI, 로이터에 영문으로 번역돼 전세계에 타전된 겁니다. 그 중 하나가 하버드대 데이비드 맥캔 교수라고, 마침 한국에 체류 중인데 그 분이 번역한 거였어요.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는 분인데, 나중에 보니 시카고대 교수도 번역했더군요.” -그 뒤 어떻게 되셨습니까. “원래는 진실을 쓸 수 없으니 시로 메우려 했는데, 제 시가 그날 참상을 너무 리얼하게 그려버린 거지. 당시 전남매일신문사가 광주 미 문화원이 있던 동구 광산동에 있었는데 그날 신문사 근처에 숨어 있었어요. 오후 5시30분쯤 신문사 쪽에서 전하길 ‘시가 다 퍼졌다. 큰일났으니 피신하라’는 겁니다. 게오르규의 <25시>를 읽다보면 피신의 법칙이 나와요. 절대로 연고지는 가지 마라. 그래서 무연고지를 찾아다녀요. 한 달 가까이 집에 가지도 못해요. 모르는 사람들은 시 속에 나와 있는 집사람이 죽은 줄 알았대요. 그래서 김준태 부인이 사태 때 죽은 줄 알았다고….” ‘아아, 광주여!…’ 시 전문을 보면 화자에 빙의된 망자(亡者)의 회한이 괄호 안에 들어 있다.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 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 이 사연은 그가 당시 재직했던 전남고 동료교사 김충희씨 부인 최미애씨 이야기다. 그는 최씨 이야기가 시에 들어간 까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동료교사 김씨가 살던 1층 단독셋방이 중흥동 과거 사레지오고등학교 뒤쪽, 지금 모아아파트 쪽에 있었거든. 옆집에는 장인·장모가 살고 있었고. 김 교사는 1학년 2반 담임이었고 나는 2학년 3반 담임이었어요. 그렇게 상을 당했는데 당시 학교 선생들은 나 빼고 한 명도 못왔어요. 총알이 날아다니니 겁을 먹은 거라. 김 교사가 나를 보더니 털썩 주저앉으며 통곡하는 거예요. 우리 처 모가지가 잘려 버렸다고.” -최미애씨의 사인을 두고 학살을 은폐하려는 쪽에서는 ‘공수부대로 위장한 시민군의 짓이다’, ‘최씨와 장모 등이 시민군에게 밥을 차려준 폭동 부역자’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려 합니다. “나는 월남전에도 다녀온 사람입니다. 당시 북한 특수군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군이 사용하는 총기는 AK47이에요. 당시 계엄사 부검일지에도 저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나 흔적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요. 총 맞은 자리를 보면 어떤 총인지 알 수 있어요. 시민군이 예비군 무기고 등을 통해 확보했던 M1 소총은 4조 우선 강선이고, M16은 6조 우선입니다. 머리가 맞아 없어졌다는 건 M16이기 때문입니다.” 김 교사의 장모, 최씨의 친정어머니는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뱃속 둘째아이의 안타까운 죽음도 목격해야 했다. “어머니가 그러시는 거야. 엄마가 그렇게 되니 뱃속의 아이가 천방지축으로 몸부림을 치더라는 거야. 어떻게든 아이라도 살려보려고 했는데 결국 살릴 수가 없었고.” 끔찍한 기억이다. 계엄군이 시 외곽을 봉쇄하고 있어서 장례를 치르러 나가기도 힘들었다. 집 화단에 가매장을 했다 한 달이 지난 후 5·18묘역으로 이장했다.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최씨 묘지의 비석은 1년 뒤 김 시인과 남편 김 교사가 가서 세운 것이다. 문구는 김 시인의 시에서 따서 쓴 것이다. 일본의 전문지도 그의 시 조명 김준태 시인을 만난 것은 일본 잡지 <시와 사상> 5월호에 실린 그의 시에 대한 서평이 계기였다. 지난해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의 번역으로 일본에서 출간된 그의 시집 <광주로 가는 길>에 대한 서평은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파 여류시인인 사가와 아키(佐川亞紀)가 ‘고난에서 창조로-독립운동 기념의 해에 광주로 가는 길을 읽는다’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아키 시인도 시에서 최미애씨 원혼이 독백하는 부분을 주목하면서 ‘계엄군에 의해 죽었음에도 자신의 무력감을 원망하는 것이 투쟁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자각 때문일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모성은 대단합니다. 남자들은 총 맞으면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데 여자들은 앞으로 쓰러져요. 묘합니다. ‘내 새끼 젖 먹여야지’ 하는 마음이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내게 하는 거예요. 엉겅퀴처럼 질긴 겁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다 그랬어요. 4·3이 그랬죠. 81년 5월, 망월동에서 나는 이런 걸 봤어요. 엄마를 잃은 최씨의 아이가 우니까 할머니가 애를 달래려고 빈젖을 물리는데 그 쭈글쭈글한 젖을 빨고 있어요. 그걸 보니 눈물이 얼마나 나오던지.” 80년 6월, 김 시인은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려 신안동 셋방을 찾아갔다. 25일간의 도피는 5분도 안돼 잡히면서 끝났다. 505보안대에 끌려가 취조를 받으면서 강제로 사직서를 낸 그는 학원가 선생으로, 신문사 기자로, 구속자와 수배자, 유가족 등이 모인 ‘5항동(5월항쟁동지회)’ 활동을 하다 조선대 교수,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사단법인 광주평화포럼 이사장을 하며 강연과 저술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나이가 70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별 탈 없이 건강합니다. SNS 활동도 활발히 해요. 지난해는 <밭詩, 강낭콩>,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라는 제목의 시집 2권을 냈는데 세월호나 남북정상회담의 단상도 시에 담았습니다. 생명과 평화·통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제 시의 화두일 것입니다.”

      글·정용인 기자 사진·김영민 기자 2019.05.24 16:51

    • 사회 인터뷰

      [사회]“5월 광주, 여전히 현재진행형”

      ㆍ‘5월의 작가’ 임철우 “한 품고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는 건 결국 산 자 이야기를 하는 것” 영화감독 이창동은 임철우의 장편소설 (1991)를 읽고 쓴 서평에서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인간들은 마치 햇빛이 짱짱한 세계,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 같다”고 했다. 2년 뒤 소설가였던 그는 영화 (1993)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임철우의 소설은 지독하게 아픈 현실의 공간 속에 별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눈물겹게 따뜻한 서정의 세계가 마술 같은 상상력과 어우러져서 마치 ‘묘약’과 같은 위안을 안겨준다. 5월이 왔다. 33년이 지났지만 5월은 여전히 아픈 계절이다.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가 오로지 풍문과 유언비어로만 떠돌던 시대의 한가운데에 소설가 임철우(60)가 있다. 그는 오늘까지 살아남았고, 1981년부터 33년 동안 ‘가열차게’ 광주항쟁과 그 정신에 관한 소설을 써왔다. 그는 오랜 시간 ‘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불려왔고, 그 평가는 결코 과분하지 않다. , , 와 같은 걸출한 작품들이 좋은 본보기다. 먼저 떠나보낸 자와 살아남아서 현재의 시간을 살아내야만 하는 자, 그 모두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 일제시대부터 제주 4·3항쟁, 6·25 때의 보도연맹 사건, 80년 광주항쟁까지, 무려 우리나라 100년의 역사를 다루며 글을 써온 소설가 임철우. 그는 최근에 ‘가장 임철우다우면서도 임철우를 넘어서는’ 연작소설집 을 내놓았다. 여고 1학년 때 이라는 소설을 읽고 작가 임철우를 알게 됐어요. “곽재구의 시 를 읽고 쓴 소설이죠. 전남대 동기고, 같은 해에 등단했고, 같은 동네 출신이고, 심지어 생일도 같아요.(웃음) 그래서 주민번호 앞이 똑같고, 뒤도 거의 같죠.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친구가 전화로 읽어줬는데,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는 첫 행을 듣고 가슴에 ‘쿵’ 하는 진동이 있었어요. 친구는 기분 나빠 해요.(웃음) 좋은 시 망가뜨려 놨다고…. 저는 ‘내가 시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그러죠.” 97년에 이 나왔을 때,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서 어떤 기자가 “언제까지 과거의 이야기, 광주 얘기만 할 거냐”라는 질문을 한 게 생각납니다. “5·18은, 광주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에요. 그 고통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게 어찌 과거인가요. 비극의 역사는 우리의 현재예요.” 80년 5월, 광주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고, 살아남아서 그것을 증언하는 길을 택한 사람이 있다면 후자를 택하신 셈인데요. “한을 품고 죽어간 사람들도 고통스럽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고통스럽죠. 그 아픔을 안고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하는 건 결국 산 자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작가는 적어도 자기가 살아온 시대의 문제를 재단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서영채 평론가가 며칠 전 작가 임철우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어요. “죄의식의 밀도와 무게를 가지고 임철우를 말해야 한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작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300년 이내엔 장자크 루소와 임철우밖에 없다.” “그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서울 친구들에게 말을 하니 믿지를 못해요. 그래서 거짓 없이 진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친형도 광주 31사단 대위였고 계엄군이었어요. 친구들도 군대에 있었고…. 사실 계엄군, 시민군 모두 우리 자신이에요. 10년에 걸쳐서 5권짜리 장편소설 을 겨우 완성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거의 미쳐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 소설을 못 끝내고 죽으면 어떡하나… 제발 끝낼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쓰고 나서 나는 이제 소설 못 써도 좋다,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 뒤 4년 동안 아무런 글도 쓰지 못했어요. 풀리지 않는 뭔가가 있었죠. 불면증으로 고생하면서 눈물과 술, 분노로 저를 학대했어요. 결국 뇌졸중으로 길바닥에 쓰러졌어요. 그 순간에 깨달았죠. 죽음은 삶과 항상 함께 있었다는 것을….”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고 있는 가상의 섬 ‘영도’ 이야기로 이어지는군요. “그래서 을 썼고, 이제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인간적 부채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은 한국 현대사의 희생양이 된 원혼들의 신내림을 받은 작가 임철우가 한바탕 굿판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환상소설’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무녀 조천댁은 이 땅을 떠도는 구슬픈 혼령들을 초대해 굿판을 벌이잖아요. 백년 만에 딱 한 번 찾아온 개기월식일 밤이었던가요? “그 곳은 산 자와 죽은 자, 기억하는 자와 망각하는 자가 함께 어우러진 환상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공간이죠. 혼령이 산 자를 구해내고, 살아남은 자가 죽은 원혼을 달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보여주는 ‘한국의 마르케스’라는 평가를 받으시는데요. “고통이 너무 크면 울음도 안 나오지요. 울음으로도 담을 수 없을 때 ‘허허허’ 웃음이 터지고 미친 사람이 되는 거죠. 하늘에서 피가 쏟아지고 나무도 사람도 동물도 함께 미치는 듯한…. 온 세계가 함께 뒤틀리고 피범벅이 돼서 비명을 지르게 되죠. 인간의 고통을 자연이 함께 조응하고, 죽은 자가 튀어나와서 산 자와 같이 이야기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나죠. 마르케스 작품들을 읽으면서 토속적인 발상과 문화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이번에 나온 연작소설집 에 실린 이야기들은 리얼리즘의 틀을 깨고 나와 설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토해낸, 해학과 익살이 넘치는 타고난 이야기꾼 임철우의 원래 모습이 잘 드러나서 반가웠어요. “그동안은 힘들게 글을 썼어요. 역사적인 소재가 주는 압력의 하중에 눌려 있다가 어느 정도 벗어난 순간, 내 안에 꾸물대던 상상력이 막 터져나오는 걸 느꼈어요.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썼죠. 이제껏 비통한 마음으로 글을 썼다면, 은 통곡이 그친 다음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냐’ 그런 마음으로 썼어요. 그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워 글을 써왔는데, 이번엔 전혀 계획 없이 그냥 내 몸을 내 상상력에 맡기고 재밌게 썼어요.” 학창 시절 가출도 많이 하고 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면서요. “저는 원래 도시나 문명, 학교보다는 자연이나 우주와 친화감이 커요.(웃음) 사실 사회적 자폐아에 가깝죠. 원시세계에서 극도의 상상력을 과도하게 가동하며 자라다가 10살에 들어선 도시는 심한 충격이었어요. 학교도 마찬가지였죠. 그 상태로 청년이 되고 5·18을 만났어요. 제 내면은 여전히 너덜너덜한 채로 얼룩져 있어요. 글을 쓰는 행위는 갈가리 찢겨진 내 정신을 봉합하는 행위라고 할까요?” 힘든 시절입니다.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우리 사회가 어찌해야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자기 욕망만 보지 말고, 우리를 생각해야죠. 함께 사는 우리가 힘들다면 나도 결코 행복할 수 없죠. 시대의 삶이 내 삶이 될 때,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고통과 비극적인 시대의 아픈 이야기는 무한한 상상력의 옷을 입고 또 하나의 ‘증언설화’로 거듭 태어난다. 신이 그를 살아남게 한 이유는 산 자들에게 ‘묘약’과 같은 위안을 안겨주고, 한 서린 영혼들이 못다한 증언을 대신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은 아닐까.

      2014.05.12 17:10

  • 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