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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4,091 건 검색)

경북, 중소기업·소상공인에 특별경영자금 6000억원 지원
경북, 중소기업·소상공인에 특별경영자금 6000억원 지원
2025. 01. 02 10:56지역
... 기업이 협력 은행에 융자 대출을 하면 경북도가 대출금리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경북도는 올해 한시적으로 대출금리 지원 비율을 2%에서 4%로 높인다. 소상공인육성자금은 담보력이...
[신년 여론조사] 헌법재판관 임명, 국민 절반 이상 찬성…대구·경북도 우위
[신년 여론조사] 헌법재판관 임명, 국민 절반 이상 찬성…대구·경북도 우위
2024. 12. 31 14:02정치
... 이들이 61%, 반대는 30%였다. 무당층에서는 찬성 47%, 반대 33%였다. 거주 권역별로 보면 대구·경북을 제외한 다른 모든 권역에서 ‘임명해야 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특히 광주·전라(76%)와...
2025 신년기획
경북 영천 야생조류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검출
경북 영천 야생조류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검출
2024. 12. 31 09:00지역
... 폐사체 시료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형)가 검출됐다고 31일 밝혔다. 이에 경북도는 시료 채취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0㎞ 이내 지역의 사육 가금의 이동통제와 예찰 등 차단방역...
20년 넘은 경북 ‘노포 빵집’ 들러보세요…경북문화관광공사, 4곳 소개
20년 넘은 경북 ‘노포 빵집’ 들러보세요…경북문화관광공사, 4곳 소개
2024. 12. 30 11:14지역
... ‘뉴욕베이커리’ 빵집에 전시된 빵. 경북문화관광공사 제공 경북문화관광공사는 연말연시를 맞아 경북지역 노포 빵집 4곳과 대구·경북에서 유일하게 제과제빵 분야 대한민국 명장이 운영하는 빵집을...

스포츠경향(총 477 건 검색)

‘경북의 미학(Aesthetics of Gyeongbuk)’ 경북 홍보대사 이혜정 요리연구가와 함께 경북의 미(美) 담아
경북의 미학(Aesthetics of Gyeongbuk)’ 경북 홍보대사 이혜정 요리연구가와 함께 경북의 미(美) 담아
2024. 11. 04 21:47 연예
아리랑TV 아리랑TV(사장 김태정)는 경상북도 글로벌 홍보 프로그램‘경북의 미학(Aesthetics of Gyeongbuk)’을 오는 6일부터 매주 수요일(오전 8시) 4주에 걸쳐 방송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난 전 세계 사람들은 현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 여행도 수도권에 국한하지 않고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아름다운 곳이 가득한 경상북도로 해외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아리랑TV는 경상북도 글로벌 홍보 콘텐츠를 기획했다. 경상북도 여행지의 메카! 울진, 청송, 영양 세 지역의 주요 스팟과 먹거리, 그리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장소들을 낱낱이 소개하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아~ 저곳에 가서 사진 찍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울진의 경우 요리연구가 이혜정과 인기 아이돌 DKZ, 모델 겸 배우 송유진이 출연해 산과 바다의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울진을 체험하고 소개한다. 아리랑TV 이혜정과 송유진은 바다, DKZ 산으로 직접 가서 울진에서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을 구해와 요리연구가 이혜정이 손수 해주는 저녁 만찬을 즐긴다. 또 재료를 구하러 다니면서 케이블카, 성류굴 체험 등 액티비티한 체험은 물론 울진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스팟들을 소개한다. 다음 청송 편에서는 국제커플 유튜버인 미래를 약속한 한국 여자‘추수정’과 미국 남자‘케빈’이 청송에서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사진작가와 함께‘스냅사진’을 만들어 간다. 한국 여자와 미국 남자의 현실적이고도 아름다운 연애를 위트 있게 담아내는가 하면, 오히려 한국 남자보다 더 한국 남자 같은 케빈의 활약도 돋보였다. 커플들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면 좋을 스냅사진 맛집 청송! 청송의 어디를 가야 아름다운 사진들을 건질 수 있는지‘경북의 미학’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아리랑TV 끝으로 영양 편에서는 다국적 걸그룹‘엑신’이 출연해 두 팀으로 찢어져 영양군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 백화점보다 더 핫한 시장에서의 쇼핑은 물론 계곡과 숲을 오가며 평생 소장하고 싶은 인생 사진들을 남긴다. 또, 영양군의 주요 스팟에서 자신들의 노래로 릴스를 촬영, 멤버들의 유튜브에 업로드해 영양군의 홍보를 톡톡히 한다. 아리랑TV ‘경북의 미학’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경상북도의 아름다움과 먹거리, 즐길거리를 보다 세세하면서도 재미있게 담아낸 프로그램이다. 울진, 청송, 영양의 문화와 역사는 물론이고 맛집과 액태비티를 담아냄으로써 연인 또는 친구, 가족 단위로도 찾아올 수 있게 구성하였다. 아리랑TV를 통해 전세계 107개국, 1억 4천 6백만 가구에 송출되고, 25개국 50개사에 온라인 뉴스로 배포할 예정이다. 또, 국내외 방송사와 방송협약체결을 통해 매력있는 경상북도의 문화를 계속해서 알릴 예정이다. 아리랑TV 아리랑TV 아리랑TV
[로컬] 경북지역 최대 클래식 페스티벌로 선보이는 ‘2024 포항국제음악제’
[로컬] 경북지역 최대 클래식 페스티벌로 선보이는 ‘2024 포항국제음악제’
2024. 10. 28 18:16 연예
‘2023 포항국제음악제’ 공연 모습 포항시 제공 문화도시를 꿈꾸는 포항시(시장 이강덕)가 가을을 음악으로 채워 줄 최고의 국제음악제를 개최한다. 플루티스트 이김유빈,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지휘자 윤한결 등이 출연하는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 잔치는 오는 11월 1일부터 포항문화예술회관 및 포항시 일원에서 개최된다. 재단법인 포항문화재단(대표이사 이상모)은 오는 1일부터 8일까지 포항문화예술회관 및 포항시 일원에서 2024 포항국제음악제 ‘바다의 노래’(SONG OF THE SEA)를 개최한다고 전했다. 2021 년 ‘포항음악제’로 시작해 4회째를 맞이하는 축제는, 올해부터 ‘포항국제음악제’로 명칭을 변경했다. 지역 대표 브랜드로 도약하고자 힘쓰는 동시에 지난해부터 더해진 경상북도의 지원에 힘입어 시민들의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자 한다. 11월 1일부터 시작하는 개막공연은 포항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윤한결과 플루티스트 김유빈이 협연하는 프로그램으로 축제의 서막을 연다. 멘델스존의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라이네케의 플루트 협주곡,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드’를 연주한다. 포항문화재단 11월 2일 무대는 축제에 참가하는 연주자들이 선보이는 실내악 무대다. 베토벤의 플루트,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 D장조(김유빈, 토비아스 펠트만, 이한나), 프륄링의 피아노 오중주 F#장조(김영욱, 김재영, 아드리앙 라 마르카, 율리안 슈테켈, 김다솔),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스텔라 첸, 조인혁 일리야 슈무클러), 투일레의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육중주 Bb장조(김유빈, 윤성영, 조인혁, 김현준, 김홍박, 김다솔)가 연주된다. 11월 3일은 오랜만에 만나는 피아니스트 백해선의 무대다.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번 축제 중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8번, 서주리의 소나타 2번 ‘봄’, 리스트의 베네치아와 나폴리,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다. 포항문화재단 11월 4일에는 슈만의 작품으로 실내악과 가곡 무대를 마련했다. 바리톤 강형규가 선보이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피아니스트 일리야 슈무클러 연주의 세 개의 로망스, 그리고 피아노 오중주 무대를 토비아스 펠트만, 김영욱, 아드리앙 라 마르카, 박유신, 백혜선이 연주한다. 11월 5일 무대는 BBC가 선정한 뉴제너레이션 아티스트, 프랑스 남성 현악사중주팀 아로드 콰르텟(Quatuor Arod)의 리사이틀이다. 조던 빅토리아(바이올린), 알렉상드르 부(바이올린), 탕기 파리소(비올라), 새미 라치드(첼로)로 구성된 이들은 2013년 팀 결성 후, 2015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칼 닐슨 챔버 뮤직 콩쿠르, 2014년 유럽 콩쿠르(파리)에서 우승한 뒤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매년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을 초청해 중심 무대를 구성했던 포항국제음악제에서, 이들은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 6번, 슈만의 현악 사중주 3번, 드뷔시의 현악 사중주 g단조를 연주한다. ‘2023 포항국제음악제’ 공연 모습. 포항문화재단 11월 6일는 아로드 콰르텟과 함께하는 실내악 무대다. 쇼팽의 피아노 트리오 g단조(김재영, 율리안 슈테켈, 김다솔), 아렌스키의 피아노 오중주 D장조(김영욱, 스텔라 첸, 아드리앙 라 마르카, 박유신, 일리야 슈무클러),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카프리치오’에 의한 현악 육중주(스텔라 첸, 토비아스 펠트만, 이한나, 아드리앙 라 마르카, 빅토르 쥘리앙 라페리에르, 율리안 슈테켈)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피렌체의 추억’을 아도르 콰르텟과 이한나, 빅토르 쥘리아 라페리에르가 연주한다. 11월 7일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함께하는 무대다. 차웅이 지휘하는 포항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고,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포항문화재단 11월 8일 올해도 폐막공연에는 현악팔중주의 연주가 준비되어 있다. 쇼팽의 첼로 소나타(빅토르 쥘리앙 라페리에르, 일리야 슈무클러)에 이어 에네스쿠의 현악 팔중주 C장조(토비아스 펠트만, 스텔라 첸, 김재영, 김영욱, 아드리앙 라 마르카, 이한나, 율리안 슈테켈, 박유신)를 연주하고, 매혹적인 하모니와 혁신적 사운드로 사랑받고 있는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가 대미를 장식한다. 보다 많은 관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대중적인 프로그램도 일부 구성함과 동시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을 아카펠라로 선보인다. 이 밖에 ‘포커스 스테이지’, 포항 출신의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아티스트 포항’, 찾아가는 음악회, 마스터클래스 등의 프로그램, 그리고 10월 중에는 지역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포항국제음악제 프린지로 관객과 만난다. 포항문화재단 2024 포항국제음악제의 메인 공연 티켓은 R석 5만원, S석 4만원으로 티켓링크를 통해 구매가 가능하다. 경북도민 50% 할인 등 다양한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 포커스 스테이지는 전석 3만원, 아티스트 포항 프로그램은 전석 1만원이다. 포항문화재단
‘아주 史적인 여행’ 홍경민, ‘붉은 여우’에 홀리다?···경북 영주는 토종 붉은 여우 복원 중!
‘아주 史적인 여행’ 홍경민, ‘붉은 여우’에 홀리다?···경북 영주는 토종 붉은 여우 복원 중!
2024. 09. 29 05:13 연예
KBS 29일 오후 9시 40분 KBS1에서 방송이 될 ‘아주 史적인 여행’은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사롭고 역사적인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프로그?c이다. 열세 번째 이야기는 경상북도 최북단에 위치한 지역으로 남부지방의 가장 큰 산맥인 소백산맥이 흐르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살아 숨 쉬는 경상북도 영주시를 찾는다. 2곳의 세계 문화유산과 5개의 국보를 자랑하는 영주는 역사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매력적인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볼거리가 가득한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의 땅, 영주로 가수 겸 배우 홍경민과 함께 <아주 史적인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지역, 영주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보면 역사 교과서에서 본 거 같은, 어딘가 낯 익는 장소와 보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 희방사에는 소중히 지켜야 할 귀한 보물이 있다. 바로 훈민정음 언해본이다. 월인석보 1권에만 수록된 언해본 속엔 우리에게 익숙한 훈민정음 서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가 한글로 적혀있다. 주지 스님께 듣는 훈민정음의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늘 백성들을 생각하던 세종대왕의 깊은 마음을 느껴본다. 영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 교과서에 나와 있는 백운동서원이 이곳의 첫 시작이다.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주세붕 선생이 풍기 군수로 영주에 오게 되며 처음으로 서원을 지었고 이후 퇴계 이황에 의해서 임금에게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을 받아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그 시절 유학생들의 학업 현장이었던 소수서원의 오랜 역사와 풍기 인삼의 아버지 주세붕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본다. KBS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는 영주에는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화를 입은 한 집안의 이야기도 전해온다. 영주로 유배됐던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해 일어난 정축지변으로 순흥 안씨 집안 사람들이 큰 화를 입게 됐다는 것. 지금도 순흥 안씨 추원단에는 당시의 비극을 엿볼 수 있는 흔적들이 남아있다는데, 한 집안에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어떤 역사가 숨어있을까? 영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 멸종되어 가는 여우 복원에 앞장서고 있는 여우 생태관찰원에서는 토종 붉은여우를 직접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직접 토종 붉은 여우의 실물을 보고 나면 왜 ‘여우한테 홀렸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수 있다는데, 토종 붉은 여우와 함께 여우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본다. KBS 영주 여행에는 다재다능한 가수 겸 배우 홍경민이 함께한다. ‘흔들린 우정’, ‘널 보내며’ 등 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한국의 리키 마틴 홍경민이 사적인 영주 여행을 위해 하루 동안 선비로 변신했다. 영주 대표 특산물인 풍기 인삼으로 만든 인삼꽃 주와 칠향계를 먹으며 몸보신까지 제대로 한 연예계 선비 홍경민이 아주 사적인 여행을 역사 만화책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로운 영주의 역사 이야기. ‘한국의 리키 마틴’ 홍경민이 선비로 변신한 아주 사적인 영주 여행은 29일 밤 9시 40분 ‘아주 史적인 여행’에서 공개된다. KBS
‘아주 史적인 여행’ 박기웅 매료시킨 조선판 ‘사랑과 영혼’ 등장!···지조로 지킨 풍류의 땅, 경북 안동
‘아주 史적인 여행’ 박기웅 매료시킨 조선판 ‘사랑과 영혼’ 등장!···지조로 지킨 풍류의 땅, 경북 안동
2024. 09. 12 23:01 연예
KBS 오는 15일 오후 9시 30분 KBS1에서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사롭고 역사적인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아주 史적인 여행’ 열한 번째 이야기가 펼쳐진다. 선조의 지혜를 계승해 온고지신을 실천하는 선비의 고장, 경북 안동 여행 이틀 차가 펼쳐진다. ‘유학의 성지’로 불리는 만큼, 안동은 많은 선비를 배출한 고장이자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그 후예들이 기개와 품격을 이어오고 있는 고장, 안동. 선비들의 맑은 지조로 지킨 풍류의 땅, 안동으로 배우 박기웅과 함께 ‘아주 史적인 여행’을 떠난다. 안동 여행의 두 번째 이야기는 안동의 정신을 배우고 계승해 나갈 인재를 기르는 ‘안동대학교’에서 시작한다. 역사학자 심용환이 대학교를 여행지로 선정한 이유는 바로, 안동대학교 안에는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 이야기와 유물이 있기 때문. KBS 안동 최초의 서원이자 고려 후기 학자인 우탁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퇴계 이황이 창건한 역동서원부터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고 평가받는 원이 엄마 편지 등 우리가 잘 몰랐던 안동의 사(史)적인 이야기를 들어본다. 선조의 지혜를 이어가고 있는 곳은 안동대학교만이 아니다. 어쩌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전통 한지의 명맥을 잇기 위해 무더운 날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한지 공장의 장인들. 전통 한지는 사람 손이 백 번 가야 종이 한 장이 탄생하기에 일명 백지(百紙)라고 불린다. 모든 게 빠르게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는 시대, 고집스럽게 옛 방식을 지켜내고 있는 곳은 또 있다. 1540년경 안동의 풍류가 김유가 작성한 조선 최초의 요리책 ‘수운잡방’, 그 음식을 재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광산 김씨 설월당 종가 김도은 종부.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노력이 있기에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 전해져 내려온 안동의 문화를 만나본다. 안동 2부에서는 안동이 고향인 배우 겸 화가 박기웅이 함께한다. 드라마 ‘각시탈’에서 악역인 기무라 ??지 역할을 맡아 인기를 얻은 그는 악역의 중요성과 매력을 느껴 화가로 변신한 뒤에도 영화 속 빌런을 그리고 있다. 아트테이너 박기웅의 빌런 그림은 전시마다 연일 화제를 몰며 완판의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는데, 그에게 이번 안동 여행은 어떤 영감을 선사했을까? KBS 그동안 몰랐던 안동의 색다른 역사 이야기. 아트테이너 박기웅에게 영감을 선사한 아주 사적인 안동 2부 여행은 오는 9월 15일 밤 9시 30분 ‘아주 史사적인 여행’에서 공개된다. KBS

주간경향(총 36 건 검색)

[정태겸의 풍경](74)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왕자 탯줄 묻어…태교 명소로 각광
[정태겸의 풍경](74)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왕자 탯줄 묻어…태교 명소로 각광(2024. 10. 16 06:00)
2024. 10. 16 06:00 문화/과학
성주라는 동네는 참 낯설다. 참외 말고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나마 ‘언택트 성지’라는 수식어로, 찾는 이가 많지 않아 도리어 좋은 여행지로 포장돼 알려진 편이다. 처음 경북 성주를 찾았을 때 내 느낌은 그랬다. ‘이런 곳을 왜 몰랐을까.’ 세종대왕이 자손의 탯줄을 모아서 태실을 만들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조선 왕조가 왕가의 탯줄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으며, 구태여 스스로 찾아보는 이도 없다. 세종대왕자 태실을 찾은 후 알게 된 것이 일제의 또 다른 만행이다. 조선의 왕가는 전국의 길지 중 길지를 골라 54기의 태실을 만들었는데, 이걸 일제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한데 모아 버렸다는 것. 이제는 태봉산이니 태봉리 같은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세종대왕자 태실이 고스란히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게 반가운 건 그래서다. 선석사라는 사찰 곁, 태봉의 정상부에 태실은 자리하고 있다. 주차하고 조금만 걸으면 금방이다. 온종일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고, 여기에 19개의 태실이 조성돼 있다. 어느 곳을 봐도 주변이 훤히 내다보이는 위치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당인 그곳. 따스한 볕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기에 기분이 좋은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정태겸의 풍경
[정태겸의 풍경](73) 경북 영주 부석사-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서서
[정태겸의 풍경](73) 경북 영주 부석사-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서서(2024. 10. 02 06:00)
2024. 10. 02 06:00 문화/과학
길가에는 어느덧 사과가 붉은빛을 뽐내고 있었다.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근처를 지날 때면 으레 들렀다 가게 되는 곳이 경북 영주의 부석사다. 소백산 끝자락 부석면에 앉은 부석사는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있었다. 타들어 갈 것만 같은 태양은 누그러지고 짙게 물들어가던 초록의 빛깔도 조금씩 너그러운 색채를 갖춰가고 있었다. 여름의 꽃 백일홍(배롱나무)은 마지막 꽃잎을 산들산들 흩날렸다. 이 절의 이름인 부석은 ‘떠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나타나는 무량수전 곁에 있는 바위가 바로 그 떠 있는 돌이라고 한다. 의상을 흠모했던 여인 선묘가 용이 되어 이 자리에 사찰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상을 도왔다는 이야기. 의상을 막아섰던 무뢰배들을 선묘가 커다란 돌을 띄워(부석) 물리쳤다는 고사가 깃든 절이 부석사다. 그래서일까. 절이 참 예쁘다. 영주에 내려올 때면 잊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가는 이유다. 보물찾기하듯 모르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아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요소가 많은 것도 부석사의 매력이다. 안양루 아래 처마의 장식이 멀리서 보면 가부좌를 튼 수없이 많은 부처의 실루엣으로 보이는 게 그중 하나다. 안양루에 올라 부석사에서만 맞이하는 풍경을 본다. 소백산 아래로 펼쳐지는 평화로움. 부처의 세상에 올라서일까. 언제 찾아와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태겸의 풍경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53) 경북 울릉군 독도의 돌돔- 바다 사막화 막는 ‘독도의 수호자’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53) 경북 울릉군 독도의 돌돔- 바다 사막화 막는 ‘독도의 수호자’(2024. 08. 28 06:00)
2024. 08. 28 06:00 문화/과학
2018년 8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관계자들과 함께 독도를 방문했다. 독도 최단거리 기점을 조사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독도의 동도와 서도 사이에서 돌돔 무리를 만났다. 한국에는 ‘돔’ 자 항렬의 물고기가 많다. 돔은 가시 지느러미를 의미하니 돔 자가 들어간 어류는 가시 지느러미가 있다고 보면 된다. 이중 참돔과 감성돔, 돌돔 등은 스쿠버다이버뿐 아니라 낚시꾼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돌돔은 어릴 때는 주로 떠다니는 해조류인 ‘뜬말’ 아래에 붙어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암초 그늘로 숨어들어 저서 생활을 한다. 양턱의 이빨이 단단한 데다 새의 부리처럼 생겨 딱딱한 소라나 성게 등을 깨어 먹을 수 있다. 특히 성게를 즐겨 먹기에 암초 틈 근처에 성게 껍질이 늘어져 있으면 근처에 돌돔이 살고 있으리라 추정해볼 수도 있다. 그래서 돌돔을 전문적으로 낚는 낚시꾼들은 말똥성게를 미끼로 사용한다. 돌돔은 어릴 때는 몸 전체에 뚜렷한 일곱 개의 검은색 가로줄이 있지만, 성장하면서 점차 희미하게 변해 은회색이 된다.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돌돔은 작은 몸에 있는 뚜렷한 검은색 가로줄무늬로 관상용 열대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름에 ‘돌’ 자가 붙은 내력은 주로 암초지대에 살기에 암초를 뜻하는 ‘돌’ 자가 붙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육질이 돌처럼 단단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다.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
[정태겸의 풍경](70) 경북 울릉도 현포-들판의 보랏빛 파도 ‘그림 같은 꽃밭’
[정태겸의 풍경](70) 경북 울릉도 현포-들판의 보랏빛 파도 ‘그림 같은 꽃밭’(2024. 07. 31 06:00)
2024. 07. 31 06:00 문화/과학
차를 몰아 경북 울릉도를 일주할 때였다. 바다를 끼고 달리다 산길로 올라 오르락내리락. 코너를 돌아서 나가던 중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넓은 들판에 보랏빛 파도가 일렁였다. 평평한 땅이 드문 울릉도에서 보기 힘든 규모의 꽃밭이었다. 귀한 풍경에 차를 멈추었다. 울릉도는 화산섬이다. 지형이 가파르고 평지가 드문 건 그래서다. 바위가 많고 척박하다. 야생화가 많고, 여름이면 나리꽃이 여기저기 만발하다. 이렇게 한 종류의 꽃을 무더기로 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심지어 보랏빛이라니. 한쪽에 누군가 꽃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 버들마편초. 본 이름은 숙근버베나라고 부르는 남미 원산의 식물이다. 사진을 찍고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다른 버베나에 비해 이 종은 키가 크고 줄기가 꼿꼿해 비바람에도 쉬이 꺾이지 않는다고 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람 많은 울릉도에는 안성맞춤이다. 울릉어선안전국 현포중계소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면적은 3967㎡(약 1200평). 울릉군은 2022년 텅 빈 이 땅에 버들마편초를 심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꽃으로 가득 채워졌다. 저쪽으로는 진청색 바다가 일렁이고, 육지의 이쪽은 자줏빛으로 물든 절경이라니. 울릉도여서 볼 수 있는, 섬이 주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
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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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강원·경북 산불 성금 1억 기부
김희선, 강원·경북 산불 성금 1억 기부
2022. 03. 10 11:33 화제
배우 김희선이 강원·경북 산불 피해지역 이재민과 소실된 산림재건 지원을 위해 성금 1억원을 기탁했다. 힌지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희선이 강원·경북 산불 피해지역 이재민과 소실된 산림재건 지원을 위해 대한적십자사에 성금 1억원을 기탁했다. 김희선은 “예기치 못한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산림재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기부하게 됐다”며 “어려움을 겪는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 산불로 소실된 산림이 조속히 복원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성금은 산불 피해가 발생한 강원, 경북 등 지역 적십자 지사를 통해 이재민의 임시주거시설 지원과 피해지역 산림 재건복구활동에 사용된다. 앞서 그는 코로나19 극복 성금 및 소아암 환우, 학대 피해 아동 및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마스크 기부를 비롯해 도움이 필요한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며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서왔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강원·경북 산불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성금모금을 실시하고 있다. 자동응답전화(060-707-1234), 계좌송금(우리은행 1006-401-507754), 문자기부(#7079-8179, 1건 2천원) 등으로 기부할 수 있으며 자세한 정보는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김희선
정봉주·송지영 부부의 속사정&경북 봉화 이사 계획
2013. 03. 07 18:41 화제
ㆍ1년 전 언론 첫 부부 인터뷰 이후 본지와 다시 만났다 계절이 네 번 바뀌고 나서야 부부는 뜨겁게 재회했다. 한 평짜리 어두컴컴한 방에서 외로운 싸움을 버텨낸 남편은 “나는 더 이상 가벼운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고, 홀로 두 자녀를 돌보며 눈물조차 다 말라버릴 정도로 퍽퍽했던 시간을 견뎌낸 아내는 이제 그 누구보다도 씩씩하고 강한 여자가 됐다.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에 가슴을 치는 날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 시간마저 감사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를 갖게 됐다는 정봉주·송지영 부부를 만났다. 법원의 실형 선고 이후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지난 2011년 12월 초, 부부가 첫 인터뷰에 나섰던 그때만 해도 정봉주(54) 전 의원은 더 이상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는 인기 팟캐스트 방송 프로그램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 출연해 굵직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거침없는 폭로전을 이어가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팬클럽 회원 수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만큼 인터뷰 내내 정 전 의원은 자신감이 넘쳤고, 아내 송지영씨(51)도 무척이나 뿌듯하고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보름 뒤, 그들은 전혀 다른 현실에 부딪혔다. 정봉주 전 의원이 BBK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해 허위 사실 유포죄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된 것이다. Q 오랜만에 다시 뵙네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2개월 전에 뵀죠. 그때 인터뷰를 마치면서 부인께서 “언제 또 무슨 일이 터질까봐 늘 조마조마하다”라고 했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송지영 맞아요.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으니까 정말 일이 터져버린 거죠. 정봉주 아내가 고생 많이 했어요.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아직도 저녁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울어요. 제가 맘고생 많이 시켰어요. Q 실형 선고 소식을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정봉주 수감 기간 내내 독방을 사용했는데, 그 방 크기가 엄청 작아요. 폭은 양팔을 다 뻗지 못할 정도고 이불을 펴고 누우면 위아래로 각각 30cm 정도씩 남는 길이예요. 공황장애나 폐쇄공포증에 걸리기 십상이죠. 그래서 저는 실형 선고를 받은 그날부터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며칠 동안 집에서 미리 감옥에서 자는 연습을 좀 했어요. 저랑 아내는 평소에도 서로 살을 안 대고는 못 자는 스타일인데, 제가 조그마한 파우더룸 바닥에 누워 쭈그리고 자니까 아내가 다가오더라고요. 그때마다 아내에게 오지 말라고, 침대에 가서 얼른 혼자 자라고 했어요. 솔직히 실형 선고를 받고 나서부터는 가족 걱정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감옥에 들어가서 저 스스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것에만 집중했죠. Q 아내 입장에서는 여러 번 마음이 무너져내렸을 것 같아요. 어떻게 참으셨나요? 송지영 저도 각오를 단단히 했어요. 큰일도 큰일이지만, 이게 마냥 슬퍼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러면 더욱 못 견디겠더라고요. 울지 말자고 결심하고 마음을 강하게 먹었어요. 남편이 구속되던 날 검찰청 앞에서 딱 한 번 울었던 거 빼고는 한동안 울지 않았어요. 심지어 남편이 구속된 다음날 제가 하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인 일과 관련해 부산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출장을 떠나고 주어진 일을 했어요. 사람들 앞에서도 힘든 내색을 전혀 안 했고요. 제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평소처럼 행동을 하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Q 두 분 모두 서로의 앞에서는 눈물을 참 많이 참으신 것 같아요. 정봉주 1월 말 즈음에 첫 면회가 있었어요.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죠. 아내와 처제, 보좌관이 왔더라고요. 보좌관 앞에서 의원인 제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아내의 얼굴을 보니까 한동안 참았던 눈물이 순간적으로 펑 터지더라고요. 너무 쪽팔려서(?) “아, 왜 자꾸 눈물이 나오지” 하면서 열심히 눈물을 닦았어요.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다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마음을 강하게 먹었고요. 송지영 저도 마음을 꽉 붙잡으며 씩씩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남편이 구속될 당시 입고 있던 옷, 코트, 구두, 벨트 같은 옷가지가 집으로 도착하던 날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혼자 그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보는데 희한하게도 신발을 보니 참 슬프더라고요. 그래서 신발을 끌어안고 정말 크게 소리 내면서 울었어요. 남편이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신발을 벗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정봉주 나중에 아내가 그때 이야기를 편지에 적었더라고요. ‘짐승이 울부짖듯 울었다’라고 표현한 걸 읽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어요. 그런 말을 일찍 하면 제가 감옥 안에서 마음 약해질까봐 참고 참았다가 뒤늦게 털어놓은 거죠. 제가 사실 일부러 아이들 편지도 초반에는 절대 보내지 말라고 했거든요. 제가 무너질 것 같아서요. 그래서 아이들 편지도 6, 7개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받았어요. 아이들과 면회도 그 후에야 했고요. Q 아버지의 수감 소식을 들었을 때 자녀분들의 충격이 꽤 컸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정봉주 작년에 큰아들이 중학교 3학년, 둘째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워낙 일찍 철이 들어서 그다지 큰 상처를 받지는 않았어요. 아이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아빠가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알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왔거든요. 정치인 아빠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항상 어디에서든지 예의 바르게 행동해요. 물론 그런 생활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지는 모르죠. 그래도 참 착해요. 제가 수감되고 나서도 주위 사람들이 “너희 아빠 요즘 뭐 하시냐”라고 물으면 정말 아무렇지 않게 “우리 아빠 감옥에 있는데요”라고 했대요. 나중에 면회 왔을 때도 엄청 밝았어요. “아빠, 여기가 교도소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송지영 둘째 아이는 집에서 몇 번 운 적이 있어요. 남편을 보내고 한참 뒤 어느 날 아침에 “아빠가 꿈에 나타나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꼭 안아줬다”라면서 식탁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또 한번은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집에 누워 있었는데 제 곁으로 오더니 양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빠가 무척 보고 싶다”라며 울더라고요. 그 때 딸아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웬만하면 그런 분위기를 절대 안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딸이 저를 위로하고 제 등을 다독여주더라고요. 남보다 일찍 철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요. 지구 1+1/4바퀴와 맞먹는 소통의 거리 정봉주 전 의원은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2011년 12월 26일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고, 해를 넘겨 1월 17일에는 충남 홍성교도소로 이감됐다. 교도소 생활을 시작한 지 20여 일 만에 갑자기 지방으로 옮겨 가게 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의 지지자들은 더 단단하게 결집했다. 비록 선거법상 향후 10년간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 사실이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정치인 정봉주의 심장을 뻥 뚫어버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는 가족과 팬들의 위로와 격려에 힘을 얻고 답답한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Q 부인께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꼬박꼬박 면회를 가셨다면서요. 정봉주 어떤 수학자께서 제 아내가 저를 만나기 위해 서울과 홍성을 오간 거리를 수학적으로 계산해주셨는데, 그게 무려 지구를 1+1/4바퀴 도는 거리와 맞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정말로 매주 두세 번씩은 꾸준히 왔다 갔거든요. 남편인 제가 생각해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기본적으로 저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서 그런 거겠지만, 아무래도 갇혀 있는 삶에 대한 안타까움도 커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송지영 가뜩이나 호기심도 많고, 주변 일들 하나하나에 관심도 많은 사람인데 감옥 안에서 얼마나 바깥세상 일들이 궁금하고 신경 쓰일지 제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남편이 더욱 안쓰러웠어요. 그래서 제가 이 사람을 조금이라도 덜 답답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자꾸만 먼 길을 달려가게 됐고요. Q 편지도 자주 주고받으셨어요? 송지영 요즘은 교도소가 좋아져서 인터넷으로도 편지를 보낼 수 있어요. 법무부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오후 4시 안에 이메일을 써서 보내면 당일에 바로 남편이 편지를 받아볼 수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그걸 몰라서 계속 손으로 편지를 써서 부쳤거든요. 정봉주 아내가 저의 비서 역할을 완벽하게 해줬어요. 덕분에 몸은 갇혀 있어도 답답하지가 않더라고요. 게다가 제 팬클럽 ‘미권스(정봉주와 미래 권력들)’ 회원들이 그날 기사들을 취합한 것과 SNS 내용, 주요 이슈 키워드를 정리해서 보내주고 심지어 팬클럽에 올리는 글에 대한 댓글까지 모두 뽑아서 보내줬거든요. 그 덕분에 안에서 밖의 정치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었어요. 바빠서 신문도 잘 안 읽고 넘어가는 현직 국회의원들보다도 오히려 제가 현실을 더 객관적으로 ‘빠삭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거죠(웃음). Q 그동안 부인께서 가장 역할을 맡아 한창 크고 있는 두 자녀를 혼자 책임지면서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송지영 맞아요. 면회를 자주 다니면서 남편의 비서 역할을 하고, 아이들까지 돌봐야 하다 보니 제 일을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남편이 수감 전에 썼던 책에서 나오는 인세와 예전에 조금 벌어놨던 돈을 쓰면서 최소한의 생활비로만 살았죠. 그런데 사실 따져보면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계에 기초가 되는 비용 등을 제외하고는 돈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어요. 남편을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쌀이나 된장을 보내주고, 아이들의 생일이면 꽃다발과 케이크 선물도 챙겨주셨거든요. 설날에는 떡국 끓여 먹으라고 떡을 보내주시기도 했고요. 그래서 정말 적은 생활비로도 버틸 수 있었어요. 다만 남편의 면회 비용으로 한 달에 기본 2백만원 이상은 들었어요. 밥값과 자동차 기름값이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그 돈도 남편 팬클럽 회원분들이 모금을 해서 마련해주셨어요. 그분들 아니었으면 어떻게 감당했을지 상상이 안 돼요. 정말 감사해요. 정봉주 지지자들의 힘이 정말 컸어요. 특히 ‘미권스’ 회원들이요. 면회를 신청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아서 하루에 5명씩 면회 신청자를 받기까지 했죠. 경쟁률이 치열했어요. 제주도에서 몇 번이나 찾아오시는 분도 계셨고요. 팬클럽 회원들 중에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있지만 비정규직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도 많아요.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저를 찾아와 영치금까지 넣어주시는 걸 보면서 정말 울컥했어요. 한번은 3만원의 영치금과 함께 편지 한 통이 왔어요. 한진중공업 하청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에게 3만원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잘 아는데, 그 귀한 돈을 제게 보내시면서 편지에다가 “그곳에 계시는 의원님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의원님이 저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쓰셨더라고요. 그걸 읽으면서 정말 하염없이 울었어요. 옥석 가려내고 ‘몸짱’으로 거듭나게 한 ‘홍성 불가마’ 지난 9월 가석방 예비 심사에서 모범수에 해당하는 S1 등급을 받았지만 법무부는 정봉주 전 의원의 가석방을 불허했다. “정치인 최초로 만기 출소라는 진기록까지 세웠다”는 정봉주 전 의원은 1년의 시간을 결코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도자기에 비유한다. 뜨거운 불 속에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도자기는 더 고운 질감과 빛깔을 만들어내듯, 그 역시 자신의 내외적인 불순물을 걸러내고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준 홍성교도소를 ‘홍성 불가마’라고 부르며 뜨거웠던 지난 시간을 기억한다. Q 수감생활로 인해 잃은 것도 많았을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힘드셨나요? 정봉주 아마도 이런 기회가 없었으면 주변 사람들 중에 옥석을 가리지 못했을 거예요. 감옥에 있으면서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은 적은 겨드랑이 밑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점이에요. 송지영 남편이 갇혀 있는 동안 측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거든요. 당연히 교도소 들어가기 전에는 남편 곁을 지켰는데, 수감되고 나니까 남편이 이뤄놓은 작은 것들을 마치 자신들의 권력으로 생각하고 좋지 못한 행동들을 하더라고요. 배신감이 컸죠. 믿었던 사람과의 인연을 잘라내야 했고요. 남편도, 저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참아내야 했어요. 저는 진심으로 남편의 수감생활이 가슴 아프지만,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는 오히려 ‘만약에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정치인으로서 이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큰일 났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 덕분에 이제는 사람 보는 눈이 생겼어요. 정봉주 믿었던 사람들이 아내에게 폭언을 하고 무시하기까지 했어요. 당연히 저보다 아내가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었죠. 오랫동안 깊이 믿어왔던 사람이 내게 등을 돌리고 탐욕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살아온 삶에 대한 자괴감이 심했어요. 그 와중에 아내가 혼자서 제 일을 다 해내는 걸 보는 게 고통 중의 고통이었고요. 한번은 너무 열이 받아서 저희 부부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향한 분노의 편지를 썼어요. 다음날 그 편지를 다시 읽은 뒤 찢어버렸지만요. 그런 식으로 감정을 삭인 거죠. ‘에휴, 이게 결국 인간사이고 그냥 내가 이 감정을 접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면서 썼다가 찢어버린 편지가 수십 통이에요. 그러면서 분노를 받아들이고 다시 정제된 감정을 되찾는 것도 큰 공부가 됐어요. 그래도 덕분에 주위에 있는 사람과 큰일을 할 때 이 사람이 나와 손을 잡아도 되는 동지인지 아닌지 확실히 가려낼 수 있게 됐어요. 송지영 저도 그랬어요. 주변 사람들의 악행을 글로 남겨놨어요. 미리 보여주면 감정만 더 상할 거 같아서 혼자 간직하고 있다가 남편이 출소하고 나서야 보여줬죠. 정봉주 뒤늦게 깨닫고 보니 저는 그동안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아왔더라고요. 야단치고 가르치지 못할 거면 그냥 내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요. 정치라는 건 귀한 도자기 하나를 빚어서 거기에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담아 국민에게 잘 먹여야 하는 건데, 아무래도 불순물이 들어간 도자기는 음식을 제대로 담기도 전에 쉽게 깨지게 마련이죠. 그런 점에서 볼 때 홍성교도소에서 보낸 시간은 제가 정치를 해나가는 데 해로운 불순물을 모두 태우는 감사한 기회였어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홍성교도소를 ‘홍성 불가마’라고 불러요. 엄청 뜨거운 불가마에서 태울 건 다 태우고 좋은 것들만 살아남아 비로소 저를 더 깨끗하고 단단하게 완성시킨 거죠. Q 출소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송지영 남편이 입던 옷을 벗어두고 간 그 자리에 1년 동안 그대로 놔뒀어요. 그러고는 남편 생각이 날 때마다 그 옷 냄새도 맡고 안아보면서 그리움을 달랬거든요. 한편으로는 1년간 이전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해온 남편이 돌아오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 이런저런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마치 어제 출장 갔다가 오늘 돌아온 사람처럼 변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하물며 외국을 며칠 다녀오더라도 시차 적응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한데, 이 사람은 1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도 전혀 변화가 없었어요.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던 회를 1년이나 못 먹었는데도 회 먹으러 가자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어요. 정봉주 마음의 성찰이 완전히 이뤄진 거죠.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제가 살아가는 삶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그냥 잠깐 잠을 자고 꿈에서 깨어보니 몸과 마음이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출소하고 나서 도올 선생님과 명진 스님을 만났는데, 명진 스님께서 저더러 여느 스님들보다도 도력이 깊어졌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Q 마음뿐만 아니라 몸의 변화도 큰 것 같아요. 식스팩 복근을 가진 ‘중년의 몸짱’으로 돌아오셨잖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정봉주 처음에는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수감생활의 고통을 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어요. 하루에 두 시간 반 동안 운동했죠.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매 시기마다 어느 한계점을 넘어서야 하는데, 제가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2백 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1천 개씩 했어요. 기온이 35℃가 넘는 한여름에 좁은 감옥 방에서 그렇게 하다 보면 제가 흘린 땀으로 장판이 흥건했어요. 그래도 멈추지 않았어요. 수감생활을 버텨내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죠. 또 제가 얼마나 이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으니까요. 몸은 시각적으로 바로 보이는 거잖아요. 복근 하나만으로도 제가 이 안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저 때문에 교도소 안의 다른 재소자들 사이에서 헬스 열풍이 불기도 했어요. Q 탄탄한 근육들을 잔뜩 품고 돌아온 남편을 보면서 부인께서도 기분이 좋으셨을 것 같아요. 송지영 그렇죠. 남편 몸이 좋아지니까 새로운 남자와 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웃음). 하지만 무엇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건강해져서 돌아온 것에 정말 감사해요. 남편은 요즘도 팔굽혀펴기를 1천 개씩 하는 등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해요. 그래서인지 저까지 긴장돼요. 저도 열심히 운동해서 뱃살 안 생기도록 노력해야겠어요(웃음). 서울 토박이 부부, 봉화 시골 마을로 떠나다 ‘정봉주’ 하면 ‘노원구 월계동과 공릉동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제17대 국회의원’이라는 그의 자기소개를 떠올릴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그가 정치적 고향 노원구를 떠나 경상북도 봉화군 비나리 마을로 이사를 결정했다. 누가 봐도 과감한 선택이다. 아이들은 학교 문제로 인해 이모 집에서 지내게 될 예정이란다. 서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내내 살아온 도시 남녀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진짜 시골생활을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다니, 설레면서도 두려움이 클 만도 하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는지 속사정이 궁금하다. Q 봉화행 결정은 정말 의외인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정봉주 제가 봉화 정씨예요. 또 봉화는 제 조상인 삼봉 정도전의 철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요. 아버지의 고향인 봉화에서 정도전이 조선 맹자학의 시초와 뿌리를 내렸죠. 사실은 수감 기간 동안 정도전과 맹자에 대한 공부를 좀 했는데 진도가 통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다짐했어요. 출소하면 봉화군으로 내려가야겠다고 말이죠. 그러던 차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로부터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할 테니까 오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아내는 좋은 기회이니 미국에 다녀오자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미국이 아니라 봉화로 가자고 얘기하니까 처음에는 “엥?” 하고 놀라더라고요(웃음). Q 그러실 수 있죠. 이사라는 건 남편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부인의 의사도 굉장히 중요한데, 어떻게 합의를 하셨나요? 정봉주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도올 선생님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아내가 도올 선생님께 조언을 구해보자고 하더라고요. 도올 선생님은 제 얘기를 듣자마자 “미쳤냐. 미국? 거긴 왜 가냐. 걔네가 우리나라에 와서 배워야 한다. 봉화가 훨씬 좋다. 무척 신선하다. 봉화로 내려가는 건 정말 생각 잘한 거다”라며 적극적으로 봉화행을 권하셨어요. 미국에 가는 것보다 일단 봉화에 가서 제 뿌리에 대해서부터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그렇게 결정이 된 거죠. 송지영 저는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유학에 대한 아련한 꿈이 있었어요. 참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냥 봉화에 가기로 합의를 했어요. 일단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런 말 하기 쑥스럽지만 남편을 사랑하니까 남편의 뜻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1년 동안 떨어져 지내서 그런가?(웃음) 특별히 말릴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남편은 이미 정치적 삶에 들어섰으니까, 더 큰 뜻을 위해 가야 할 길이라면 반대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두 번째는 저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게 괜찮을 것 같았어요. 제가 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게 늘 새로운 작업에서 영감을 받고 뭔가를 창조해내는 일이잖아요. ‘다이내믹한’ 남편 옆에서 그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리얼한 시골생활을 해나가면서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 불편하고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을 것 같아요. 다만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좀 걸리긴 해요. 정봉주 봉화로 내려가는 또 다른 이유는 FTA 협정 때문에 다 죽어가는 농민들 곁에서 직접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농업은 모든 경제의 기본이에요. 농민들은 도시에서 살려야 돼요. 도시와 농촌이 연계돼서 한민족 네트워킹을 잘해나가면 농촌을 살릴 수 있어요. 제가 내려가서 농촌과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말로만 농민을 살리자고 할 게 아니라 직접 그 사람들과 함께 먹고 생활하면서 삶을 나눠가다 보면 더 많은 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정봉주 전 의원이 ‘전격 공개’했다. 그의 치열한 의지가 만들어낸 탄탄한 근육!Q 그곳에서의 구체적인 계획들이 있나요? 정봉주 봉화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고, 그곳에 대한 정보 좀 달라고 트위터에 글을 남겼더니 연락이 많이 왔어요. 그중 가장 적극적이었던 분이 비나리 마을에 살고 있다고 해서 아내와 같이 직접 내려갔죠. 시골 마을이지만 귀농인들이 꽤 있어서 전원주택과 마을공동체가 잘 형성돼 있더라고요. 저에게 추천해주신 분도 15년 전에 귀농해서 빌라를 짓고 살고 계셨어요. 한 건물에 여섯 세대가 모여 사는데 그중 한 집에 들어가서 살아보기로 했어요. 1년에 5백만원을 내면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인 25평 규모의 현대식 집에서 살 수 있어요. 1년 후 귀농에 성공해 정착을 하면 그중 2백만원을 돌려받지만, 서울로 돌아간다면 못 받는 거죠. 어차피 저희 부부에게 지금 당장 집을 살 돈도 없으니 일단 임대를 해서 살아볼 계획이에요. 거기 살면서 농민의 삶도 경험해보고, 비나리 마을의 특산품을 전국화시켜서 도시와 농촌을 연계해나가는 게 제가 하고 싶은 가장 큰 일이에요. Q 부인께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송지영 비나리 마을에 화가가 한 분 살고 계신데, 마을 사람들에게 생활도자기 공예를 가르쳐주시더라고요. 마침 제가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거든요. 그곳에서 함께 생활도자기를 만들어서 판매도 하고, 도예 체험 캠프도 열어볼 생각이에요. 인터뷰를 마치며 정봉주·송지영 부부는 이르면 2월 중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봉화군으로 내려갈 것 같다고 했다. 봄을 채 맞이하기도 전, 추위가 맹위를 떨치기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봉화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두 사람은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힘들었던 시간을 이겨내자마자 또 다른 도전을 선택한 부부.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인생의 시련을 지혜롭게 극복해내는 방법을 터득한 그들을 이젠 그 무엇도 흔들지 못할 것 같다. 「레이디경향」 독자들을 위한 정봉주의 컴백 기념 선물 여전히 유쾌하지만 분명 변했다. 모든 이야기의 주제가 결국 자기 자랑으로 끝나던 ‘깔때기’ 화법이 확 줄어들고, 그 자리에 ‘사색과 성찰’이 자리를 잡았다. 정봉주 전 의원은 옥중에서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 선생과 명진 스님, 제레미 리프킨 등 시대의 지성들과 교류하면서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졌고, 사고의 폭도 넓어졌다. 그는 지난 1년간 그렇게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출소 이후 한동안 칩거하며 옥중에서 쌓은 내공을 담은 한 권의 책을 내놓았다. 정 전 의원은 “독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반성하고, 뜨겁게 사색했다. 지금 성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이 책을 만들었다”라며 “이 한 권의 책에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라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윤현진(프리랜서)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사진 제공 / 정봉주 ■장소 협찬 / 스튜디오 하늘(070-1544-7000) ■헤어&메이크업 / W퓨리피(02-549-6282)>
[장수마을]경북 경주…관광도시의 자부심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
[장수마을]경북 경주…관광도시의 자부심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
2010. 10. 06 17:23 건강
신라 천년수도의 자부심을 고스란히 간직한 경주. 수학여행으로 경주 불국사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터. 이런 관광의 도시 경주가 ‘장수도시’로 꼽히고 있다. 과연 경주의 장수 요인은 무엇일까. 100세 이상의 고령자 총 22명 경주시는 도시·농촌 복합 형태의 도시이며, 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로 건재해 있던 터라 ‘벽이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찰, 유적, 석탑, 마을, 서원과 같은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또 공공장소와 같은 건물에 기와가 얹어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며, 시정 구호는 ‘새로운 천년에 도전하는 경주’다. 경주의 특산물로는 교동법주, 황남빵, 찰보리빵, 감포멸치젓, 감포미역, 안강찰토마토, 산내더덕, 감포전복, 신라토기, 모조금관, 기마인물토기, 은잔, 두산명주 등이 유명하다. 과거에는 100세까지 장수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지만 지금은 100세 이상 노인 인구가 어느 연령층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때문에 100세 이상 노인의 존재는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주시의 전체적인 연령대별 분포는 중·장년층이 가장 많고, 아동·청소년층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구조이며, 65세 이상 노령 인구는 40,293명으로 14.9%를 차지한다. 현재 경주시에 100세 이상 노인 수는 총 22명으로 이 중 여자가 20명 남자는 2명이다. 최근 경주시는 ‘장수마을 조성’을 지역의 목표로 삼고 장수마을이 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구상 중이다. 그런 구상의 일환으로 현재 100세 이상 장수 노인은 어느 지역에서 무슨 음식을 먹으며, 어떤 생활습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경주 장수 노인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생활-경주의 100세 이상 고령자 대부분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한다. 이들의 건강관리 방법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냥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일, 산책 등 신체적인 활동을 하는 시간은 하루에 1~4시간 정도며, 대다수의 노인은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 음식-장수 노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소식’으로 식사 조절을 하고, 평소 즐기는 음식은 역시 ‘채소류’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생선류’를 즐겨 먹으며, 튀김류, 볶음류 등은 싫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한기에는 경로당 등에서 같이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식사하는 시간을 보내며 지역의 깨끗한 청정수를 마신다. ● 성격-장수 노인들은 대부분 웃음이 많았고 유쾌하며 낙천적인 성격이다. 또 매일 빠뜨리지 않고 운동을 하는 부지런한 생활습관이 몸에 뱄으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 충분히 수면을 취하는 편이다. 장수 노인들의 마을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 특성-장수 노인들의 특성을 살펴봤더니,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들은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 ① 산간지역 대부분의 장수 지역은 더덕, 돌미나리, 산나물 등 자연 작물이 많이 자생하는 산간지역이다. 또 여름철 강수량이 풍부하며, 기온의 연교차와 일교차가 커서 쾌적하고, 고랭지 과채류 작물 생산이 적합한 지역이다. 기온은 고도가 높은 산에 위치해 산 아래보다 평균 4℃ 정도가 낮은 편이고, 토양은 광물질이 섞여 질이 좋으며, 나무가 많고 수질이 청정하다. ② 문화 관광지 경주는 문화재와 사적지를 보유한 문화 관광지로 잘 알려졌다. 경주의 주요 명승과 고적으로는 ‘석굴암’을 비롯해 ‘불국사’와 ‘나원리 오층석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포석정지’, ‘첨성대’ 등이 있다. 경주의 문화재 보유율은 경상북도의 30%로 총 396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경주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대한민국의 주요한 관광지로 통한다. 때문에 경주 시민들은 외부 관광객을 자주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다. 또 관광객들의 일에 적극적이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요인이 장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③ 병원&요양시설 경주는 종합병원 2개, 일반병원 13개, 한방병원 1개, 요양병원 9개 등 노후 생활에 필요한 의료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며, 경로당 수는 41개로 노인이 서로 만나서 일상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이렇게 노인들이 서로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진 것 또한 장수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Mini Talk 노인들을 위한 정부 정책 활성화 노력 경주시는 ‘장수도시가 경주의 미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앞으로 장수 노인들 관련 정책을 더욱 확대해나갈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① ‘장수촌’ 건설: 장수문화와 관련한 고령 친화적인 장기 정책적 지역사회 개발의 모델로서 역사, 문화, 관광산업의 연계로 지역 경제의 활력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장수연구소 및 종합실버타운 조성, 유료복지주택 관리 조성(친환경주거관리), 장수체험공원, 역사·문화체험 관리 조성, 장수식물재배 및 가공단지 조성, 온천 개발 및 숙박시설 관리 조성, 풍력 개발 및 근린 생활시설 등을 계획 중이다. ② ‘농어촌 건강 장수마을’육성: 농어촌 노인에게 농업, 전통문화 영역에서 알맞은 일거리를 발굴하고 생활경제, 건강관리, 사회활동 참여 등 건강하고 보람 있는 노년 생활문화를 정립한다는 게 경주시의 포부다. ③ 노인 일자리 사업 지속 추진: 일을 통한 소득 보충, 적극적 사회 참여 및 건강 증진 등 노인 문제를 예방하고, 사회적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노인들의 일자리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④ 노인 여가시설 확충: 여가시설을 늘려 지역 노인들의 자율적인 친목 도모와 취미활동 및 각종 정보 교환을 돕고, 기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넓힐 것이다. ⑤ 노인대학 운영: 노인들에게 건전한 취미활동과 일상생활과 관련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한 노인대학을 더욱 늘릴 예정이다. <■김민주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 / 경주시(www.gyeongju.go.kr)>
[주말가족여행]쪽빛 하늘이 있는 가을날, 감빛의 경북 청도
[주말가족여행]쪽빛 하늘이 있는 가을날, 감빛의 경북 청도
2007. 11. 05 재테크
소싸움축제로 잘 알려진 경북 청도군은 물 맑고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곳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아늑함과 단층으로 이어진 농가, 곳곳에 자리한 고택과 문화유산들이 어우러져 단아한 도시 정취를 맛볼 수 있기도 하다. 그중 옛 이서국의 수도였던 화양읍의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온통 가는 곳마다 감빛이 가득하기 때문. 11월, 감으로 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감 세상’ 청도로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나보자. 청도 반시가 빚어내는 감빛을 만지다 천연 염색공방 ‘꼭두서니’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자리한 천연 염색공방 ‘꼭두서니’. 이곳에서 처음 감물 염색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김종백씨가 대구의 사업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면서부터다. 고향집으로 내려와 그가 처음 한 일은 동네 할머니들과 친해지기였다. 덕분에 그의 사투리가 더욱 억세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정도. 할머니들과 함께 염색을 하며 고향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 감물 염색법을 찾아내고, 천이 사각거리도록 풀 먹이는 방법을 배웠다. 전통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거기에 더해 꼭두서니만의 염색 방법을 찾기 위해 실험을 거듭한 결과 지금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천연 염색 기술을 가지게 됐다. 이처럼 어렵게 찾아낸 꼭두서니의 감물 염색은 청도 곳곳에서 만나는 감물 염색 농가에 무상 제공됐다. 태풍으로 떨어진 감을 보며 시름에 잠긴 농민들을 위해 자신의 노하우를 풀어놓은 것. 그의 이런 노력으로 지금 청도는 감물 염색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꼭두서니 공방에 들어서 제일 먼저 만나는 풍경은 너른 마당 가득 널려 있는 천들이다. 햇살을 받으며 다양한 형태로 펄럭이고 있는 천들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든다. 그 옆으로 체험자들의 체험 공간이자 김종백씨의 작업장인 염색 작업장이 있다. 체험장으로 들어서자 감물 염색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진다. “감물은 풋감으로 만듭니다. 예전엔 일일이 손으로 으깨 주머니에 넣고 물을 짜내서 썼습니다. 지금은 기계가 그 일을 대신합니다. 착즙기에 파란색의 풋감을 넣으면 떫은 감즙이 쏟아지지요. 그만큼 편리해졌습니다. 그 다음 저기 보이는 커다란 통에 담고 시간을 두고 발효시킵니다. 지금 공방 안에서 나는 콤콤한 냄새가 바로 감물이 발효되는 냄새입니다. 이렇게 발효시켜두고 1년 동안 사용합니다. 그런데요. 감물에는 지금처럼 발효시키는 것 이외에 첨가제가 없습니다. 보통 염색은 마지막에 색을 유도해내는 발색제를 넣습니다. 그러나 감물 염색에는 발색제를 넣지 않습니다. 천연 그대로 감물만 사용하지요. 소금을 조금 넣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더욱 친환경적인 염색입니다.” 설명을 듣는 사람들은 어서 빨리 염색을 하고 싶은 눈치다. 설명이 끝나면 큰 손수건만 한 하얀 천이 체험객들에게 주어진다. 물에 빨아 풀기를 빼고 말린 천을 감즙이 골고루 배어들도록 감물에 담가 20여 분을 주무른 다음 꼭 짜서 햇빛에 널면 염색 끝. 염색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특이한 것은 감물에 주무른 천을 맑은 물에 헹구지 않고 바로 짜서 말리는 것. 이런 간단한 과정 때문에 감물 염색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발색 과정이다. 감물에 주물러 넌 천이 햇빛에 바싹 마르면 물을 골고루 뿌려 다시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것. 그 과정에서 뿌리는 물에 따라 자연스럽게 색이 달라진다. 때문에 색이 얼룩지지 않도록 골고루 물을 뿌려주어야 하고, 중간 중간 감물에 넣어 새롭게 염색도 해주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보통 3~5번 감물에 넣고 말리기를 반복한다. 감물 염색 과정 중 재미있는 것은 뿌리는 물에 따라 천에 남는 색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감물을 사용해도 철분이 많은 물을 뿌려주면 갈색이 좀 더 진하게 표현된다. 햇빛, 바람, 물 그리고 사람의 노력이 어우러져야만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 감물 염색이다. 염색이 끝나면 줄에 천을 널어놓고 천연 염색 전시장으로 가보자. 2005년 12월에 문을 연 천연 염색 전시장에는 다양한 감물 염색 제품과 천연 염색 제품들이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전시돼 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주방에는 낮은 커튼이, 커다란 거실 창에는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감물 커튼이 걸려 있는 식이다. 특히 손님방 바닥에 깔려 있는 감물 들인 삼베 장판은 염색 천의 용도가 무궁무진함을 보여준다. “염색은 코팅입니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도 모두 염료로 코팅한 것이지요. 천을 잘라 자세히 살펴보면 실 안쪽에 흰색이 보일 겁니다. 이처럼 삼베를 감물로 잘 코팅해놓은 이 방바닥은 다른 어떤 장판보다 좋습니다. 왜냐하면 감물 염색은 항균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쪽물 염색을 사용하면 방충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주인의 설명은 ‘천은 반드시 옷이나 이불 등 생활용품으로 만들어 사용한다’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깬다. 감물 염색 체험은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루어진다. 염색 체험료는 1인당 1만원. 체험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다. 문의`&`예약 054-371-6135감으로 만든 와인을 만나는 곳 와인터널 꼭두서니를 나와 화양읍 송금리로 가면 (주)청도와인의 와인터널이 있다. 이곳은 1904년 대한제국 말기에 경부선 철도용으로 뚫었다 사용하지 않고 둔 화양읍 송금리터널로 1백 년이 넘는 세월을 담고 있는 곳이다. 촘촘히 쌓여 있는 붉은 벽돌이 1km 넘게 이어지는 터널 안은 연중 13~15도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다. 때문에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 와인숙성고로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게다가 와인 10만 병을 숙성시킬 수 있는 너른 공간이 이곳을 와인터널로 만들게 된 이유다. 송금리터널은 단순히 와인 저장고일 뿐 와인을 만들어 낸 곳은 따로 있다. (주)청도와인의 와인연구소다. 풍각농공단지 안에 자리한 (주)청도와인 와인연구소가 과즙이 풍부한 청도 반시 농가의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상품 개발 연구를 한 지 5년 만에 완성한 것이 감그린 와인이다. 감그린 와인은 쉽게 식초로 변해버리는 감즙을 와인 단계에서 숙성이 멈추도록 했다. 덕분에 숙취에 좋은 감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감 와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감에는 탄닌 성분이 많습니다. 때문에 심장병과 노화방지에도 좋지요.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도 감와인의 장점입니다. 그러니 육류와 생선류로 만든 모든 요리에 잘 어울리겠지요? 뿐만 아니라 한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우리 것으로 만든 순수 국산와인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세계 최초로 감 와인을 생산한 하상오 대표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말이다. 이런 열정으로 만들어낸 감그린 와인의 맛을 인정받은 것은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다. 참가 대표단의 환영 만찬주로 감그린 와인이 선정된 것. 그후 2006년 2월 중순경부터 (주)청도와인은 와인터널을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와인터널 입구에 시음장을 마련하고 주말 연주회를 열며 청도를 찾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준 것. 이제는 청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와인터널 시음 체험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시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시음으로 만족하지 못하겠다면 간단한 안주와 함께 와인을 한 병 주문해 마셔보자. 와인 저장고 안에서 즐기는 색다른 와인파티가 될 것이다. 와인 가격은 750㎖ 와인 1병에 1만6천원. 문의 054-371-1135, gamwine.com주렁주렁 열린 감을 직접 따볼 수 있는 곳 농부와닷컴 청도를 지키는 젊은 농부들이 모여 있는 ‘농부와닷컴’은 연중 청도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청도 곳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고 청도의 자연에서 난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청도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청도 반시가 지천인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는 청도 반시 따기 체험이 진행된다. 농부와닷컴이 직접 농사지은 감 밭과 인근 농부들이 농사지은 감 밭을 임대해 가을 체험을 할 수 있다. 감 밭에 들어서면 감 따기보다 먼저 하는 것이 있다. 저마다 가져온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 것. 이처럼 많은 감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어른 키보다 더 큰 감나무 가득 매달린 감들이 만들어낸 풍경도 장관이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농장 주인아저씨. 감 따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어른 키보다 높은 장대 끝에 달린 Y자 모양의 고리를 감이 달려 있는 가지 끝에 대고 장대를 돌려 가지를 꺾어야 하는 것. 이때 장대 끝에 달린 망사주머니 안으로 감이 들어가야 한다. 망사가 있는 쪽으로 가지를 살짝 꺾어주는 것이 감 따기 요령이다. 그래야만 바닥으로 떨어져 감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감을 따서 상자에 넣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감 따기 초보자는 장대를 들고 서는 것조차 만만하지 않은 것. 하지만 농부아저씨들의 친절한 도움이 있어 장대를 드는 것도, 감을 따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청도 반시는 쟁반처럼 납작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유난히 당도가 높고 수분함량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나무에 달린 잘 익은 홍시가 햇살에 비쳐 투명하게 보이는 것도 수분이 많기 때문이다. 먹음직스럽지만 완전히 익은 감은 건드리지 말자. 자칫 꼭지에서 떨어져 머리 위로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부와닷컴은 1년 내내 농사 체험과 함께 도자기 만들기, 떡메치기, 야외 새참 먹기 등의 농촌 체험을 한다. 봄철 달콤한 청도 딸기 따기부터 시작해 여름에는 복숭아따기, 가을에는 밤 줍기와 감 따기, 감말랭이 만들기, 겨울에는 고구마 캐기 등 농산물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들녘에 솥을 걸고 해먹는 밥맛도 꿀맛이다. 열린 공간에서 자연의 에너지까지 담아 만들어내는 들밥은 밥투정 하던 아이들까지 꿀맛으로 밥을 먹게 만든다. 감 따기 체험 참가는 농장에 들어가 할 수 있는 1일 참가 인원이 있으므로 농부와닷컴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참가비는 1인당 5천원. 30분간 진행되며 자신이 딴 감을 5kg 상자에 담아 가져갈 수 있다. 가마솥밥으로 준비되는 들밥 먹기(1인분 8천원)와 기타 체험을 하나 더한 1일 프로그램(1만원)에 참가할 수도 있다. 문의 & 예약 054-373-5565, www.nongbuwa.com 여행 정보 1 주변 볼거리 석빙고와 청도읍성 화양면 동천리에 자리한 청도석빙고는 보물 제323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석조물이다.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깊이 파서 만든 저장창고인 석빙고의 바닥은 사각형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이 자연스레 석빙고 밖 개천으로 흘러들어가도록 설계돼 있다. 흙이 두껍게 덮여 있어 천장 구조물을 볼 수 없는 것이 원형이나 청도석빙고는 천장의 흙이 무너져 없어지고 반원으로 만들어진 홍예 4개만이 남아 있다. 돌을 잘라 둥글게 맞물린 천장 구조물인 홍예를 볼 수 있는 것이 장점.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빙고 중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석빙고다. 석빙고 앞의 작은 비석에는 조선 숙종 39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의 이름도 적어놓았다. 석빙고 앞에는 논둑처럼 보이는 낮은 성곽 구조물이 있다. 청도읍성으로 한창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고려시대부터 돌과 흙을 섞어 쌓은 읍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조선 선조 23년에 돌로 고쳐 쌓은 것이라 전해진다. 도주관과 척화비 청도읍성을 따라 화양읍내로 내려가면 도주관과 척화비가 있다. 시도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된 도주관은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당시 청도를 ‘도주’라고 부른 것에서 이름 붙었다. 정청과 숙박시설이 있는 객사는 조선 현종 때 지어진 것으로 화양면사무소로 정청이 사용되면서 바닥과 벽이 바뀌었으나 이외의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건물 양옆으로 비석들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오른쪽에 모여 있는 비석군은 역대 군수들의 선정을 기리는 공덕비들이다. 비석 윗면의 문양의 다양함을 살펴볼 것. 왼쪽 앞에 자리하고 있는 비석은 조선 말기인 고종 때 외세 침략을 거부하는 대원군의 의지를 새긴 척화비이다. 2 잠잘 곳 화양읍 삼신리에 자리한 용암온천은 12년 전 개발된 자연 온천이다. 온천이 있는 삼신리는 예로부터 장수마을로 이름난 곳. 땅속 약 1000m에서 솟아오르는 43℃ 게르마늄 유황온천수가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이곳의 온천수에는 게르마늄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하루 6천2백 톤의 온천수가 솟아올라 인위적으로 덥히지 않은 온천수가 탕 속으로 직접 공급되는 것도 장점이다. 이곳에 온천수가 객실까지 공급되는 28개의 객실을 갖춘 관광호텔이 있다. 용암웰빙스파(054-371-5500, www.yongamspa.co.kr)다. 숙박료는 주중·주말과 객실 크기에 따라 4만8천원부터 12만원까지 다양하다. 인근에 크고 작은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 3 맛집 꼭두서니공방 옆에 자리한 알미뜸(054-373-5245)은 생오리숯불구이 단일 메뉴의 오리 전문점이다. 숯가마에서 직접 구워낸 숯불을 사용해 오리의 잡냄새와 기름이 없는 담백하고 쫄깃한 육질을 자랑한다. 4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오리 1마리 가격은 2만5천원이다. 석빙고에서 가까운 화양읍 범곡리에 돼지수육과 멸치국수를 맛깔스럽게 하는 코보식당(054-373-5588)이 있다. 2인이 먹을 수 있는 수육은 작은 것 1접시에 5천원. 큰 것 1접시는 1만원이다. 족발처럼 쫄깃한 식감을 내는 것이 특징. 멸치국수 3천원, 돼지국밥 4천원이다. 4 찾아가는 길 대구-부산고속도로 청도 IC로 나와 우회전해 약 5분을 달리면 왼쪽으로 용암온천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공사 중인 소싸움 경기장이 보인다. 용암온천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약 200m 들어가면 용암웰빙스파다. 소싸움 경기장 앞에서 직진하면 와인터널로 올라가는 남성현역 이정표가 보인다. 용암온천을 지나 경부선 굴다리 아래로 진입하고 언덕 너머 유등리로 길이 이어진다. 알미뜸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꼭두서니 천연 염색 체험장이다. 좌회전하면 화양읍으로 길이 이어진다. ■기획 / 김민정 기자 ■글&사진 / 한은희(여행 작가)
주말에 떠나는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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