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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59 건 검색)

박세은·김기민,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캐스팅
박세은·김기민,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캐스팅
2024. 09. 06 15:56문화
.... <라 바야데르>는 힌두 사원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대작 발레다. 국립발레단이 3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라 바야데르>에서 니키아 역에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국립발레단라바야데르
최초 ‘4연임’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세계로 날아오르는 K-발레”
최초 ‘4연임’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세계로 날아오르는 K-발레”
2023. 04. 05 15:35문화
... 이끌게 됐다. 강 단장은 자신의 4연임에 대해 “꿈도 못 꿨다”며 “앞으로 임기 동안 국립발레단 100년을 계획하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저는 하루가 끝나면 감사하고, 다음날이 시작되면...
돈키호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막 발레는? 국립발레단 ‘고집쟁이 딸’ 무대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막 발레는? 국립발레단 ‘고집쟁이 딸’ 무대에
2022. 06. 06 12:00문화
... 들어 세계적인 안무가들에 의해 여러 버전으로 재탄생하며 희극 발레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국립발레단이 이번에 공연하는 <고집쟁이 딸>은 1960년 영국 로열발레단의 창립 안무가인 프레데릭...
국립발레단고집쟁이딸영국로열발레단프레데릭애쉬튼희극발레전막발레
베를린국립발레단, 올해 크리스마스 공연에 인종차별 논란 <호두까기 인형> 안 올린다영상
베를린국립발레단, 올해 크리스마스 공연에 인종차별 논란 <호두까기 인형> 안 올린다
2021. 11. 29 06:00국제
... 수정해 다시 공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최근 <호두까기 인형>이 빠진 베를린국립발레단의 연말 공연 레퍼토리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화제가 됐다. 더타임스의 27일(현지시간) 보도에...
중국

스포츠경향(총 25 건 검색)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신진예술인의 도시’ 관악구 방문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신진예술인의 도시’ 관악구 방문
2024. 09. 01 17:00 연예
관악문화재단 관악문화재단(대표 차민태)은 8월 26일 진행된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의 명품 강연으로 명사 특강 시리즈 ‘로열 인문학’ 올해 첫 포문을 열었다. 관악아트홀 전시실에서 진행된 로열 인문학 ‘관점 : 국립발레단 단장 강수진, 나를 바라보는 법’은 강 단장이 한평생 예술인으로서 살아온 길과 청년 시절 느낀 고민과 슬럼프를 진솔하게 나누는 장으로 진행됐다. 관악구는 청년 거주 비율(40.2%)과 신진예술인활동증명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인 만큼 청년과 신진예술인을 대상으로 강연이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소통과 공감의 장으로 마련됐다. 사회를 맡은 관악구립여성합창단 정은주 지휘자와 함께 대담 형식의 토크쇼로 진행되었고 관객을 위한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됐다. 강연에 참석한 신진예술인 이정민씨는 “사진작가로 활동한 지 1년 차인데 이 길이 맞는 건지 갈피가 안 잡혀 슬럼프에 빠졌었다”며 “강수진 단장님께서 청년예술인들의 번아웃에 대해 ‘하루 루틴을 놓치지 않도록 하고 자신만의 심지를 잘 태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조언과 함께 응원해주셨다”소 소감을 전했다. 관악문화재단 차민태 대표이사는 “관악산역 5분 거리의 접근성 높은 예술공간, 관악아트홀을 활용해 청년예술인과 전문예술인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며 “이번 특강을 통해 관내 청년 및 신진예술인들이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폭이 좀 더 넓어졌길 바란다”고 전했다. ‘로열 인문학’은 예술.역사.철학.과학을 관통하는 관악문화재단 인문학 명사 특강이다. 다음으로 이어질 ‘로열 인문학’의 ‘관점’ 2회차 강연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김헌과 역사 뮤지컬 작가 한아름의 ‘관점:역사가 작품이 되는 시선’이 예정되었다. 9월 6일 저녁 7시 30분 관악아트홀 공연장에서 진행되는 이 명사 특강은 그리스 신화 ‘메디아’를 중심으로 인물의 서사를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한다. 강연은 네이버 ‘관악아트홀’ 예약 페이지를 통해 무료 예매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관악문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관련 문의는 관악문화재단 예술진흥팀으로 하면 된다. 강연 장소로 활용된 관악아트홀 전시실은 숲을 연상시키는 기획전시 ‘웰컴투 숲씨네’ 공간에서 진행됐다. 재단은 ‘웰컴투 숲씨네’를 통해 지난 7월 25일부터 8월 30일까지 무더위에 지친 구민 누구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영화 상영 및 공간을 무료로 제공했다. 한 달여간 동안 1,500여 명이 다녀가는 등 주민들 문화생활 증진과 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악문화재단
국립발레단, 새로운 해석 ‘돈키호테’ 12일 개막···이재우·구현모 돈키호테 배역
국립발레단, 새로운 해석 ‘돈키호테’ 12일 개막···이재우·구현모 돈키호테 배역
2023. 04. 11 21:14 생활
국립발레단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가 12일부터 16일까지 공연된다. ‘돈키호테’는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바탕으로 1869년 만든 클래식 발레로 이번 국립발레단 ‘돈키호테’는 원작 주요장면 ‘캐스터네츠 솔로’ ‘결혼식 그랑 파드되’ 등은 남겨 놓고 스토리와 캐릭터를 시대에 맞게 바꿨다. ‘돈키호테’는 원작 소설에 주제에 더 가깝게 등장인물들 비중에 균형을 맞추고, 개연성도 높였다. 클래식 발레 작품이 원작이 키트리와 바질의 사랑 이야기에 방점을 뒀다면, 이번 무대는 돈키호테의 사랑과 모험에도 비중을 뒀다. 2막 돈키호테 꿈속 장면을 몰입감 넘치는 빠른 전개로 수정하고 원작의 집시들을 유랑극단으로 바꿨다. 신예 안무가 송정빈의 신선한 해석이 기대되는 무대로 무용수 1명이 퀵 체인지(의상, 분장을 빠르게 전환하는 것)로 늙은 돈키호테와 젊은 돈키호테를 연기한다. 기존 클랙식 ‘돈키호테’ 공연들에서 장화를 신던 돈키호테가 발레슈즈를 신고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으로로 강화한 이번 공연은 ‘김백봉상’ 수상자인 국립발레단 간판 스타인 수석무용수 이재우와 시칠리아 국제무용콩쿠 수상자인 라이징 스타 구현모가 새로운 해석의 중심적 존재가 돌 것으로 보인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신작을 통해 안무와 기술에서 모두 세계 어느 국가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성장한 한국 발레의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국립발레단 ‘지젤’ 내일 첫발
국립발레단 ‘지젤’ 내일 첫발
2022. 11. 10 18:28 연예
국립발레단 제공 가장 로맨틱한 발레가 비상한다. 국립발레단은 낭만발레의 정수 ‘지젤’을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다. ‘지젤’은 19세기 프랑스 시인 고티에 작품을 원작으로, 낭만주의 흐름을 타고 탄생한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2019년 파리 오페라극장 발레단 부예술감독이었던 파트리스 바르 버전 공연 후 3년 만에 ‘지젤’을 선보인다. 순박한 시골 처녀 지젤은 마을을 찾아온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다. 알브레히트는 자신을 로이스라 소개하며 신분을 속인다. 지젤을 사랑하는 사냥꾼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에게 질투를 느끼고 그의 정체를 의심한다.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가 숨겨둔 칼을 찾아내 그의 정체를 폭로한다. 진실을 알게 된 지젤은 충격을 받아 죽는다. 숭고한 사랑을 지키려는 지젤과 진실한 사랑을 깨닫게 된 알브레히트의 애절한 파드되, 사랑에 배신당한 ‘윌리’(결혼 전 죽은 처녀들의 영혼)들의 황홀한 백색발레 등 눈부신 장면들이 이어진다. 11일과 13일 국립발레단 간판 무용수 박슬기가 지젤과 하나 된 모습을 선보인다. 박슬기는 수석무용수 허서명과 호흡을 맞춘다. 지젤 첫 데뷔를 앞둔 수석무용수 박예은과 수석무용수 김기완, 심현희와 수석무용수 박종석까지 세 커플이 서로 다른 매력을 선사할 예정이다.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내일 첫발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내일 첫발
2022. 10. 11 17:27 연예
국립발레단이 3년 만에 ‘백조의 호수’를 선보인다. 국립발레단은 오는 12일부터 16일까지 총 6회의 ‘백조의 호수’ 공연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백조의 호수’는 악마 로트바르트의 저주에 걸려 낮에는 백조로,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운명을 거스른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다. 국립발레단은 2001년부터 러시아 볼쇼이의 살아있는 전설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버전 ‘백조의 호수’를 직접 전수받아 공연하고 있다.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버전의 엔딩으로 나뉜다. 하나는 왕자의 배신에 절망한 오데트 공주가 호수에 빠져 죽고 왕자도 뒤따라 죽는 비극이다. 반면 국립발레단은 ‘진정한 사랑이 운명을 이긴다’는 해피엔딩을 택한다. 이는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한국 관객들을 위해 특별히 안무한 버전이다. 또 인간이 지닌 선과 악의 본성을 표현하고자 악마 로트바르트의 역할을 더욱 부각해 재탄생시켰다. 1막 2장.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가 호숫가에서 처음 만나 추는 백조 아다지오 파드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두 무용수의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몸짓이 차이콥스키의 선율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가녀린 백조 오데트를 연기하는 무용수가 요염하면서도 섹시한 흑조 오딜로 변신하는 장면과, 32회전 푸에떼 등 고난도 기술이 펼쳐지는 2막 결혼식도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이번 공연은 네 커플이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국립발레단 간판스타 박슬기와 허서명, 신예 조연재와 수석무용수 박종석, 출산 후 복귀한 솔리스트 한나래와 또 다른 간판스타 김기완, 마지막으로 심현희와 하지석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수석무용수 박슬기를 제외한 3명의 발레리나는 오페라극장에서의 첫 백조 데뷔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문화캘린더]헨젤과 그레텔-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 마법의 무대
[문화캘린더]헨젤과 그레텔-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 마법의 무대(2018. 05. 14 13:52)
2018. 05. 14 13:52 문화/과학
무용 헨젤과 그레텔 일시 5월 23일~27일 장소 LG아트센터 관람료 VIP석 13만원 / R석 10만원 / S석 8만원 로열 발레단과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단, 버밍엄 로열 발레단과 함께 영국의 4대 발레단 중 하나인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이 그림 형제의 동화를 바탕으로 만든 <헨젤과 그레텔>을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엥겔베르트 훔퍼딩크가 작곡한 동명의 유명 오페라 음악 위에 발레단의 예술감독 크리스토퍼 햄슨이 감각적이면서도 위트 있게 안무를 입힌 작품이다. 오페라에서는 그림 형제의 원작동화가 지니고 있던 일부 잔혹한 장면을 순화하고 음악을 덧입혀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바꿨다. 이 작품 역시 색다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움직임을 채워넣어 발레극으로 즐길 수 있게 재탄생했다. 작품 개발단계에서부터 스코틀랜드 지역 어린이와 어른들과의 소통으로 새로운 영감이 더해졌다. 부모님 몰래 집을 빠져나온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까마귀들에게 이끌려 마법의 숲으로 들어가면서 흥미진진한 모험을 겪게 되는 줄거리다. 하지만 재미를 더한 각색과 화려한 의상, 드라마틱한 음악과 다채로운 무대미술이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뒤집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롤리팝과 달콤함이 가득한 과자의 집,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정과 무시무시한 까마귀들, 반짝반짝 흩날리는 별 모래로 아름답게 채워지는 무대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해 관객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넘치는 생동감과 탄탄한 기량을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무대가 마법의 세계로 이끄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02-2005-0114 ▲연극 쥐가 된 사나이 일시 5월 18일~27일 장소 유니플렉스 2관 관람료 3만원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안고 사는 어머니는 우연히 만난 청년을 아들이라 믿는다. 이를 부정했지만 결국 가족이 되기를 받아들이는 청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이야기다. 070-7918-9077 ▲국악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 일시 5월 23일~26일 장소 국립국악원 예악당 관람료 S석 3만원 / A석 2만원 / B석 1만원 즉위 7년째 해부터 음악의 기준과 표준을 정비하고 악기와 악보, 악조, 춤 등 예악 전반을 연구하며 예술적 성과를 드높였던 조선조 세종의 업적과 정신을 돌아보는 공연이다. 02-580-3300 ▲뮤지컬 시카고 일시 5월 22일~8월 5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관람료 VIP석 14만원 / R석 12만원 / S석 8만원 토니상과 그래미상 등 세계적인 상을 석권하고 미국·영국·독일 등 전세계 36개국 490개 도시에서 3만2500회 이상 공연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02-577-1987
문화 캘린더
[공연 가이드]무 용_국립발레단과 함께 하는 해설이 있는 발레 外(2008. 06. 19)
2008. 06. 19 문화/과학
○무 용_국립발레단과 함께 하는 해설이 있는 발레-백조의 호수 일 시 6.20 ~ 6.21 장 소 서울열린극장 창동 관람료 전석 1만 원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클래식 발레 3대 걸작 레퍼토리에 속하는 작품. 마법에 걸린 오데트 공주와 그녀를 구하려는 지그프리트 왕자, 이들을 지배하려는 악마 로트바르트의 싸움이 주요 내용이다.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로 로트바르트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 가장 큰 특징이다. 왕자와 별개의 인물인 악한 마법사가 아니라 별개의 내면, 즉 ‘악의 근성’으로 해석되는 로트바르트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상반된 성격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02-994-1469 ○콘서트_킹스 싱어즈 40주년 기념 내한공연 일 시 6.24 장 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관람료 VIP석 10만 원 / R석 8만 원 / S석 6만 원 / A석 4만 원 / B석 3만 원 남성 아카펠라 그룹 킹스 싱어즈(King’s Singers)의 창단 40주년 기념 월드 투어의 일환. 1960년대 후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스컬리지 출신 동창생 6명이 결정한 킹스 싱어즈는 트레이드 마크인 재킷과 넥타이, 빈틈없는 화음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카운터 테너 2명과 테너 1명, 바리톤 2명, 베이스 1명으로 구성되어 포크, 재즈, 민속음악, 클래식 등 모든 장르의 레퍼토리를 섭렵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유명 뮤지컬 넘버를 차례로 들려줄 예정이다. 02-548-4480 ○클래식_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미샤 마이스키 협연) 일 시 6.22 장 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관람료 R석 15만 원 / S석 10만 원 / A석 7만 원 / B석 4만 원 1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드레스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첼로의 거장 미샤 마이스키와 협연으로 내한공연을 한다. 드레스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슈타츠카펠레와 더불어 음악의 고도 드레스덴이 자랑하는 오케스트라로 1870년에 창단되었다. 명문 오케스트라답게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R.슈트라우스 등이 자신의 곡을 초연한 역사가 있으며 파울 반 켐팬, 카알 슈리히트 등 수많은 거장들이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바 있다. 02-599-5743 ○전 시_안정환 ‘Nature Story’전 일 시 6.19~6.25 장 소 경향갤러리 관람료 무료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돌아가야 할 곳인 자연. 그 자연 속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세상사의 찌든 때를 씻어버리고, 생(生)이 가득한 초록과 빛이 조화를 이뤄 하나 됨을 이야기한다. 숲과 나무를 주요 소재로 하는 그는 숲의 나무와 풀, 바위와 냇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들까지 모두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생명의 소리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은 이 모든 생명들을 품어 안는다. 02-6731-6750
문화 캘린더
[정동초대석]국립발레단장 7년 만에 복귀하는 최태지(2007. 12. 25)
2007. 12. 25 문화/과학
“한국 발레도 세계무대 우뚝설 수 있어요” 저 가냘픈 여인의 몸에서 어쩌면 그토록 강력한 카리스마와 의지가 뿜어져나올까. 7년 만에 국립발레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돌아온 최태지씨(48)를 보며 느낀 바다. 2001년 10월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들어야 했던 청천병력 같은 통보. 당시 문화관광부에서 열린 국립발레단장 선발회의 결과 후임으로 다른 사람(김긍수씨)이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받아 그 자리에 얼어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그는 그 후 2년이 넘게 두문불출하다시피 살았다. 하지만 정신을 추스르고 2004년 국공립극장 사상 최초로 여성 경영자로 정동극장장에 부임해 일대 혁신을 꾀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대관공연만 하던 정동극장을 탈바꿈해 ‘아트 프런티어 시리즈’ 등 정동극장만의 레퍼토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정동극장이 도심의 쉼터로 거듭나는 데 일조했다. 최태지는 그런 사람이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국립발레단장을 맡아 한국 발레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사람도 바로 최씨다. 그런 그가 내년부터 3년간 다시 한 번 국립발레단을 맡아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고향이자 분신이며 설움도 함께 안겨준 국립발레단이니만큼 각오가 남다를 터. 게다가 1996년에는 국립발레단 지도위원으로 재직하던 중 단장으로 임명된 것이지만 이번에는 공모에 응모해 선정된 것이어서 감회가 더욱 각별할 것이다. 최씨는 “설레면서 몹시 긴장이 된다”고 표현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48년의 시간 동안 저는 길이 열리는 대로 살아왔어요. 또 물 흐르는 대로 살아보자고 3년 7개월 전 정동극장에 왔죠. 인생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여정이라는 생각에 어떤 길이든 거절하지 않고 저 자신을 변신하면서 살고자 했어요. 그런데 올 10월 말 갑자기 몸이 몹시 아팠어요. 앓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 50을 앞둔 시점에서 내 길은 이제 나 스스로 열어야 하지 않을까…. 또 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했지요. 그 결과 역시 제가 있을 곳은 발레단이라고 판단했어요. 결심이 서니까 몸도 씻은 듯이 나았어요. 다시 한 번 새로운 마음으로 일할 거예요.” 아이디어뱅크답게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국립발레단의 다양한 청사진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고 있다. 과거 국립발레단장 시절 ‘해설이 있는 발레’를 처음 도입하면서 발레의 대중화를 이끈 그는 “이번에 돌아가면 무엇보다 한국 발레의 세계화를 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르네상스 시대에 발레가 탄생하고 400년이 지난 데 비해 국립발레단의 역사는 45년이에요. 그런 이유로 우리 발레단의 기량이 세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죠. 하지만 그것은 오해예요.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무용수가 증가하는 등 우리 단원들의 기량이 매우 좋아졌어요. 핵심은 한국적 발레를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만 가진 레퍼토리로 세계 무대에 진출해야 해요.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모우가 자신의 영화를 각색해 만든 중국국립발레단의 ‘홍등’은 국제무대에서 선보이면서 세계적인 레퍼토리가 됐잖아요. 국립발레단도 하루 빨리 그렇게 세계 속으로 뻗게 하고 싶어요. 일차적으로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부터 공략해야죠. 아시아 지역 발레단의 합동공연도 추진하면 좋을 것 같아요.” 연극, 뮤지컬, 전통공연 등 다른 예술장르와 달리 발레는 아티스트의 무대 생명력이 길지 않다. 최씨는 이 부분을 극복하려면 무용수들이 드라마적인 표현력을 더 길러야 한다고 주문한다. 테크닉과 몸매는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으나 연기력은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설명이다. “발레는 젊을 때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수진씨는 나이 40에도 발레를 빼어나게 소화하고 있잖아요. 강수진씨처럼 되려면 드라마를 이끌 수 있는 무용수가 되어야 해요. 단순히 기교를 부리는 게 아니라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해야 한다는 얘기예요. 가령 물을 마셔야 한다는 설정 때문에 물을 마시는 것과 물을 마시고 싶은 강렬한 갈증을 느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행동은 전혀 다르잖아요. 그래서 발레단에도 연극계에 계신 분을 많이 초청해 연기 조언을 구하려고 해요.” 정동극장장을 맡으면서 잠시 외도 아닌 외도를 했지만 최씨에게 발레는 인생 그 자체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인 그는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발레를 배운 뒤 1970년대 일본 가이타니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약했다. 국내 무대에 데뷔한 것은 1987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특채되면서다. 하지만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을까. 밖에서 볼 때 발레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그 안에서 아티스트들이 겪는 인내와 갈등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 역시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발레에 몰입할 때 갖는 ‘무(無)’의 상태가 좋아 발레를 그만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발레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하지만 발레를 하던 시절이 너무 그리워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발레를 하는 순간 절대 순수의 경지를 경험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국립발레단장 자리에 오른 후에는 발레복을 입지 않았어요. 제가 무대에 서면 후배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에요. 다음 인생을 맞으면 발레가 아닌 무엇을 하며 살지 저도 궁금해요.” 그는 외견상 얼핏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외로움’으로 점철된 시간이 많았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로비에만 강하다는 시샘 어린 눈총도 감수해야 했다. 그는 견디기 힘든 고난이 닥칠 때마다 ‘이것도 지나가리라’고 되뇌었다. 둘째딸 최세나양(18)이 엄마가 고통을 겪을 때 들려준 주옥 같은 조언이라고 한다. “흔히 어른들이 ‘시간이 약’이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어느 날 작은 딸 세나가 제게 다가와 그러더라고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이것도 지나가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요. 그 말을 가슴속에 담아두었어요. 돌이켜보면 제게 닥친 어려움이 저 자신을 한층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 것 또한 사실이에요. 저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세상이 꼭 제 마음 같은 게 아니잖아요.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고요. 제 탓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편안해졌어요.” 큰딸 리나양(21)은 올 2월 러시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에 입단, 엄마의 뒤를 좇아 발레리나의 삶을 살고 있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이 아닐 수 없다. 최씨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였던 1990년대 초반, 아이를 따로 돌볼 수 없어 연습실에 데려간 게 계기가 됐다. 리나양이 다섯 살 때다. 그 후 예원중학교 3학년 때 캐나다 국립발레단 학교로 유학을 갔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최씨는 딸이 발레리나로 사는 것을 끝까지 만류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결정을 딸 스스로 하도록 하고 있다. 최씨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가장 하고 싶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깨우쳐 실행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발레는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도, 몸이 불편한 사람도 다 같이 향유할 수 있을 때라야 예술이 진정성을 갖는다고 믿는다. “발레는 오페라하우스에 오는 사람만 위한 공연이 아니에요. 과거 국립발레단을 이끌 때 수천 명이 운집한 야외무대에서 발레를 공연했던 일은 제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에요. 다시 돌아가도 서민과 신체적 장애를 가진 분들을 위해 공연할 거예요. 그분들도 문화생활을 하면서 자부심을 가질 권리가 있어요. 돈은 없다가도 벌 수 있지만 예술은 하루아침에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자신이 살아오면서 얻은 유·무형의 복(福)과 교훈을 이제는 후배들과 나누고 싶다는 최태지씨.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똑’ 소리 나는 그가 이번엔 또 어떻게 국립발레단을 더 멀리, 더 높이 비상(飛上)시킬지 자못 기대된다.
정동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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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
2010. 07. 29 16:19 화제
ㆍ어울림을 아는 프리마 발레리나, 데스크에서 만개하다 국립발레단의 ‘롤랑 프티의 밤’ 공연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마음이 급할 법도 하지만, 최태지 단장은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고, 전에 없던 속 얘기를 꺼내놓았다. 그녀가 가진 남다른 몰입의 힘은 전염성도 강한 모양이다. 꾸밈이 없는 인터뷰는 일본식 발음이든, 영어와 불어가 섞였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귀를 붙잡아 끄니 말이다. 최태지 단장의 진심이 지면으로도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몸으로 예술 하던 발레리나, 말문을 열다 김진세_ 예술의 전당이 공공기관이라 그런지 냉방을 약하게 하나 봐요. 내부 온도가 높네요. 최태지_ 저희는 땀을 내면서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더운 건 잘 참아요. 추운 게 오히려 힘들어요. 나이 먹으니까 에어컨 바람 맞으면 몸이 쑤시잖아요?(웃음) 김진세_ 단장님을 뵈면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발레에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 많잖아요? 현실에서 느끼지 못했다면, 표현이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최태지_ 남편도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저랑 결혼하고 발레 공연을 많이 보기 시작했는데, “공연을 보고 나면, 당신 세계 사람들은 그 속에 빠져서 그 안에서만 살 것 같아”라고 하더군요. 저는 일찍이 행정 업무를 하게 돼서 바깥 사회를 만났지만, 이 세계 속에서만 사는 단원도 있죠. 그래서 “나머지 시간은 좀 프리하게 세상을 보라”고 해요. 휴식시간에는 발레를 떠나서,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듣고 자신을 찾으라고 하죠. 김진세_ 몸으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더더욱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최태지_ 유럽 출신 안무가들은 “발레 스토리를 몸으로 이야기하라”고 강조해요. 발레리나는 바비 인형이 아니에요. 모든 동작에서 다 자신의 삶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풍부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거죠. 제 인생을 통해서 배운 것이기도 하고요. 어려서는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안무가가 하는 것을 그저 따라가기만 했거든요. 지금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무용수를 만들고 싶어요. 김진세_ 역시 일상에서 경험이 많아야 발레를 할 때도 풍부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거죠? 최태지_ 네. 아무리 테크닉이 뛰어나도 끄집어낼 수 없는 게 있죠. 전 발레를 보면 그 무용수가 어떤 것들을 겪어왔는지가 보여요. 김진세_ 인터뷰 앞두고 최 단장님에 대해 알아보면서,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 하던 사람이 행정을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최태지_ 어떻게 그런 힘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어요. 국립발레단은 어떻게 보면 나라의 기관이잖아요. 재일교포로서 살았지만 부모님은 항상 한국을 그리워하셨고, 항상 한국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셨어요. 부모님의 나라에 와서, 국립발레단에 푹 빠졌기 때문에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김진세_ 그 밖에도 어떤 힘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최태지_ 보통 예술 하는 사람들, 게다가 발레리나라고 하면 자기를 보여주는 데만 급급해 고집이 세다고들 알고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항상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요. 타고난 기질이 그래요. 발레는 참 고독하거든요.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발레를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어요. 김진세_ 서른일곱 살에 최연소 국립발레단 단장이 되셨잖아요. 최태지_ 눈앞이 캄캄했죠. 그때 ‘이제 연습복을 던져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제가 할 일은 정말 ‘내 맘 같지 않은’ 행정 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해서 우리 발레단 후배들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변신할 수 있었던 거죠. 김진세_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최태지_ 지금도 제 한국말이 이상하다고 하는데, 언어 문제가 스트레스였죠. 게다가 전 발레라는 언어 없는 예술, 몸으로 보여주는 예술을 했잖아요.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국립’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 점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죠. 지금도 인터뷰를 할 때면, 발레만 해온 사람이 부럽지 않느냐고 물으시는데, 확실하게 “부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길을 택하지 말았어야죠. 저는 이것도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김진세_ 행정 업무도 예술이다? 최태지_ 발레리나라고 해서 아름다운 백조 역할만 하는 게 아니에요. 흑조도 할 수 있고, ‘돈키호테’의 키드리처럼 정열적인 스페인 여자가 될 수도 있죠. 다양한 세계를 넘나들며 변신하는 것이 발레의 매력이 아닐까 해요. 그렇게 변신에 능했기 때문에 행정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진세_ 어떻게 보면 인생 자체가 하나의 무대죠.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을 때 빨리 몰입해서 잘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지셨어요. 그 힘은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세요? 최태지_ 부모님이 한국을 사랑하셨다는 점이 제가 여기서 꿋꿋하게 일할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제가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국가를 위해서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셨거든요. 박사님께서 물어보신 힘은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인 것 같네요. 발레리나 엄마, 발레리나 딸 김진세_ 2년 전 큰따님이 러시아의 유명한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에 입단해 화제가 됐었죠? 최태지_ 네. 첫째 리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레를 하고 있고, 둘째 딸 세나는 뉴욕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김진세_ 둘째는 엄마와 다른 길을 가네요. 어쩌면 엄마와 같은 길을 걷는 게 항상 좋은 일만은 아니잖아요? 더군다나 정말 훌륭한 엄마를 뒀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을 수 있거든요. 최태지_ 세나가 제 성격과 참 많이 닮았거든요. 그 아이도 초등학교 때까지 발레를 했어요. 감성이 풍부하고 예술적인 기질을 타고났는데, 엄마와 언니를 보면서 ‘이 길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나 봐요. 초등학교 때부터 제 비서처럼 곁에서 모든 공연을 같이 봐주곤 했는데, 6학년 때 갑자기 “저 발레 그만두고 공부하겠어요” 하더니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고요. 김진세_ 두 딸과 지금껏 떨어져 살면서 힘들지 않으셨어요? 최태지_ 스물네 살 된 큰애는 10년째 외국에서 지내고 있는데, 참 안됐죠. 전 제가 새끼들이라고 부르는 우리 후배들, 단원들을 챙겨야 하니까요. 우리 딸들은 너무나 큰 희생자죠. 애들이 “나는 이 다음에 결혼하면 아이 옆에 있어줄 거야”라고 해요. 그 얘기 들을 때마다 가슴 찡해요. 너무 미안하죠. 김진세_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유학을 떠나게 됐나요? 최태지_ 큰애가 예원학교에 다녔는데, 제 딸이라는 게 짐이 많이 됐나 봐요. “엄마가 발레단 단장이 아닌, 보통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결국 사람들이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캐나다로 보냈고, 거기서 발레를 계속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안정된 생활을 했죠. 김진세_ 딸들과는 얼마나 자주 만나세요? 최태지_ 둘째는 방학이 많아서 자주 봐요. 이번에도 방학 맞아서 4개월째 들어와 있어요. 오히려 둘째와는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요. 큰애는 휴가차 3주 정도 왔다가, 바로 일하러 갔죠. 김진세_ 요즘은 둘째 딸이 와 있으면, 직접 밥도 해주세요? 최태지_ 주말에도 공연이 있으면 못 쉬긴 하지만, 집에 있을 때는 가급적 직접 하죠. 김진세_ 음식 잘하세요? 최태지_ 몸에 좋은 거 하려고 하죠(웃음). 제가 만들면 맛있다고 해줘요. 애들이 외국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게 있잖아요? 이번에도 사골 사다가 푹 고아서 먹였어요. 열 몇 시간 끓여야 하잖아요? 정성들여 끓였죠. 김진세_ 일하는 엄마가 아이들 음식까지 챙기는 게 쉽지 않잖아요. 또 오래 떨어져 지내다보면 서로의 취향을 잘 모를 수도 있고요. 최태지_ 그래도 자주 대화는 해요. 전화, 인스턴트 메신저, 문자 메시지…. 요즘은 좋은 세상이잖아요. 애들과 하루에 한 번씩은 통화하자고 해요. 김진세_ 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감동적이에요. 그럼 바깥분이랑은 어떠세요? 최태지_ 아시다시피 제가 재혼을 했잖아요. 그게 몇 년도였지?(웃음) 한 4, 5년 됐는데 아직 긴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적응하는 단계죠. 아이들과도 계속 같이 지내면 더욱 친해질 수 있는데, 떨어져 지내면서 잠깐잠깐 보게 되니까요. 김진세_ 게다가 두 분 다 바쁘시잖아요. 최태지_ 그렇기도 하고요. 바쁜 와중에도 가급적이면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워요.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다 김진세_ 엄마가 가정에만 묶여 있지 않고 사회생활을 했기에 딸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따를 수 있는 롤모델이 되는 거잖아요. 최태지_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보고 직접 겪어야지만 깨닫게 되는 거 같아요. 제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비판하면서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해가 되더군요. 제가 딸의 비판을 받을 때,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하게 됐죠. 제 어머니는 열심히 일을 하셨고, 본인께서 못해주시는 부분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아요. 어머니 시대에는 돈이 없으면 학교도 못가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울 수 없었잖아요? 어머니는 저에게 그렇게 사랑을 표현하신 건데, 어렸을 때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죠. 김진세_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시나 봐요. 최태지_ 어떤 때는 과일을 깎으면서도 아이가 나에게 반항하던 생각이 나서 “엄마, 미안해. 엄마도 그랬을 거야”라고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해요. 김진세_ 아마 따님들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단장님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최태지_ 그렇죠? 저도 그동안 예술을 하다 보니 느낌에 이끌리는 대로 살았어요. 우리는 논리가 아니라 직관대로 가잖아요? 그런데 국립발레단 단장이 되면서 달라졌어요. 가족이 많이 희생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국립발레단이 재단법인이 되는 시기에는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정말 많았어요. 그때는 작은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갈 여유가 없었어요. 너무너무 미안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할머니가 계셨거든요. 무슨 일이 있으면 일본에서 오셔서 엄마 역할을 대신해주셨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들이 다 무너지더라고요. 김진세_ 친정어머니 말씀하시는 거죠? 최태지_ 네. 5년만 더 살고 싶다고, 손녀들 결혼까지 본인 손으로 시키겠다고 하시더니 일찍 가셨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전화하면 “네가 죽으면 안 되지. 애들이 있잖아. 단원들을 맡고 있는 책임도 있잖니”라고 토닥여주셨죠. 제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간 뒤로는 맘 편히 의논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항상 어머니가 계셨는데…. 돌아가신 지 6년 됐어요. 김진세_ 많이 힘드셨겠어요. 최태지_ 그때 모든 게,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무너지고…. 내가 살아야지, 애들도 산다고 생각하면서 과도기에 있는 사춘기 아이들을 데리고 제가 결혼을 택한 거 아니겠어요. 쉽게 택하진 않았죠. 김진세_ 그러셨을 거예요. 최태지_ 엄마가 행복해지는 길을 딸들도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멀어지는 건 아닌지 염려하는 것도 저는 알고 있어요. 재혼을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저는 모든 걸 쉽게 결정하는 여자는 아니거든요. 그 시기에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여기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요. 애들에게 제 입장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김진세_ 내가 나를 사랑해야 자식도 나를 사랑하고, 남편도 사랑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사랑을 알아야 또 상대에게 줄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아이들은 두 번째, 엄마 스스로가 첫 번째가 되어야죠. 그렇게 사는 게 옳고요. 최태지_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김진세_ 어쨌든 딸들이 지금은 머리로 이해를 하고 있으니, 좀 더 크면서 가슴으로 이해하게 될 거예요. 다만 한동안 참으셔야겠지만. 최태지_ 많이 참고 있어요. 그런 게 가족이에요.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 그것이 또 가족 김진세_ 일본에 계시는 가족은 어떤 분들이세요? 최태지_ 오빠 둘, 언니 하나가 있어요. 하여튼 제 어머니가, 대단하고 아주 재밌는 사람이었어요. 둘째 오빠가 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했어요. 당시 저희가 소도시에 살았는데, 어머니가 대도시에 집을 하나 사서 오빠를 보냈어요. 그러곤 일주일에 두 번 자동차로 세 시간 거리를 오가면서 돌보셨죠. 언니는 교토 시내에 있는 기숙사 학교에 진학해서 집에는 큰오빠와 저만 남았어요. 김진세_ 작은 오빠께서 야구를 잘하셨나 봐요? 최태지_ 학창 시절에 야구를 하면서 한국에도 왔었어요. 대학 졸업 후에는 큰오빠와 함께 아버지 사업을 이어서 했어요. 언니는 가정주부가 됐고요. 김진세_ 네 남매지만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군요. 최태지_ 가족이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지내서 참 외로웠어요. 가족이 모두 모여 사는 집을 부러워했죠.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딸은 엄마를 아무리 원망해도 서른 살이 넘으면 역시 엄마가 걸어온 길을 간다고요. 제 어머니가 정말 열정적인 분이셨거든요. 김진세_ 최 단장님도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거 같은데요. 열정적이시잖아요? 최태지_ 전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딸들을 이해해요. 그냥 아버지 말에 “네네” 하고 사셨으면 편했을 텐데, 아이 넷 키우면서 아버지 사업까지 도우셨죠. 김진세_ 어머니께서 그 마을에서 여성 최초로 운전면허를 취득한 분이라면서요? 딸 손을 잡고 발레도 이끈, 굉장히 멋쟁이시잖아요? 최태지_ 전 어머니가 제발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죠(웃음). 김진세_ 거꾸로요?(웃음) 최태지_ 어쩌면 그런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막내였지만 독립심이 강하게 자랐어요. 언니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시집을 갔는데 전 그게 싫었거든요. 어머니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진짜 내 일을 하면서 책임 있게 살 거라고 했죠. 김진세_ 타고난 성격 같은 건가 봐요. 최태지_ 그런 거 같기도 하고요. 제가 처음 한국 왔을 때는 한국말도 못했고 게다가 발레 하는 사람이니 다들 저를 굉장히 조용한 여자로 알고 있었어요. 그때는 듣기만 했지 “그거 아니에요”라고 반박하지 않았어요. 그때 동기들이 지금의 저를 보면 “자리가 사람을 바꾸는지 참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행정 일을 맡으면서는 제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됐잖아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 국립발레단이 국립극장의 품을 떠나 재단법인이 되면서부터 제가 직접 예산을 따와야 하던 거였어요. 김진세_ 전혀 다른 역할을 맡으셨을 때, 모범을 삼을 만한 롤모델이 있었나요? 최태지_ 정해놓은 롤모델은 없었지만, 항상 옆을 보고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배워야 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어요. CEO 모임에도 꾸준히 나갔고요. 김진세_ 쉽지 않은 노력을 해내셨어요. 최태지_ 그냥 예술가로 살면 되는 건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죠. 무엇보다 낯선 자리에서 재일교포라는 얘기를 듣는 게 싫었어요. 제가 무슨 얘기를 시작하면 “일본에서 오래 사셨죠?”라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았죠. 하지만 너무 위를 바라보지 않고 그저 옆에 있는 사람을 롤모델 삼기로 했어요. 그러다가 안정이 되면 조금 위를 보는 식으로, 스텝 바이 스텝. 저는 능력보다 커다란 걸 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이죠. 공무원 하던 제 남편이 저더러 ‘더 공무원 같은 사람’이라고 해요. 안전지향적으로 조금씩 역할을 늘려가는 거죠. 그런 면은 전혀 예술적이지 않아요. 김진세_ 지금 말씀만 들으면 예전에 발레 하신 분 같지 않아요(웃음). 최태지_ 그런가요?(웃음) 타고난 꼼꼼한 성격, 행정 무대에서 발휘 김진세_ 예술가는 직관으로 산다고 하셨잖아요? 이게 편견일 수도 있는데, 저는 예술가에게 필요한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최태지_ 좋으신 말씀이세요. 우리 발레단 와서 강의 좀 해주세요(웃음). 맞아요. 사랑이죠. 그리고 배려. 김진세_ 이성 간의 사랑도 될 수 있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원적인 사랑일 수도 있겠죠. 지금 퍼뜩 든 재미있는 생각은, 파리 유학 시절에 사랑 많이 받으셨을 거 같다는 거예요. 예술을 하는 아름다운 동양 여성이라면 정말 인기가 많거든요. 최태지_ 아유. 김진세_ 에피소드 같은 건 없었나요? 최태지_ 로맨스그레이가 매일 장미꽃 한 송이씩 들고 기다리기도 했죠. 김진세_ 있으셨군요! 최태지_ (한국 국적이라 일본 국비 장학생 심사에서 탈락했을 당시 부모님의 권유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그때는 부모님께서 편하게 지내라며 좋은 아파트도 구해주시고 돈도 잘 보내주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게 부담스러워서 빨리 좋은 거 배워서 돌아가고 싶었어요. 파리에서 발레단 입단 제의도 받았는데 마다했어요. 남녀가 탈의실을 같이 쓰는 그런 문화가 너무너무 이해가 안 됐거든요. 다른 유학생들은 이탈리아, 독일 등 여행도 자주 다녔는데, 저는 파리에 있으면서 구라파(유럽) 여행을 한 번도 안 갔어요. 김진세_ 그래도 그건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최태지_ 하루 연습 안 하면 자기 자신이 알고, 이틀 연습 안 하면 선생님이 알고, 3일 연습 안 하면 관객이 알아요. 발레 하는 사람은 하루도 연습을 빼먹으면 안 돼요. 아침 6시면 크루아상 하나, 카페오레 한잔 사들고 연습실 가서 오전에 2 클래스 하고 오후에 알리앙스 가서 불어 배우고 끝나면 부모님께 편지 써서 부치고… 그게 제 일과였어요. 아~주 타이트했죠. 김진세_ 원래 성격 자체가 꼼꼼하세요? 최태지_ 너무 꼼꼼했어요. 병적으로, 결벽증적으로. 일찍 부모님 품에서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항상 마음속에서는 ‘부모님을 울려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제가 되게 완벽주의자예요. 제대로 못하면 스스로가 못 참아요. 김진세_ 그러니까 이 어려운 일을 잘 이끄시는 거겠죠. 최태지_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죠(웃음). 발레, 테크닉 못지않게 마음 교육이 중요해 김진세_ 딸을 발레리나로 키우기 위해 강한 훈련을 시키는 분들이 많은데요. 발레 교육에 대한 단장님의 조언을 듣고 싶어요. 최태지_ 김연아 선수 어머니도 “실수하면 백 바퀴”라고 했다죠? 그래서 김 선수가 100이라는 숫자를 제일 싫어한다면서요. ‘정 트리오’도 그런 어머니가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예술인들에게 어머니의 힘이 크게 발휘되는 면이 있죠. 도망가고 싶을 때 아무래도 붙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나 중심은 자신이어야 하죠. 얼마나 잘해내느냐, 얼마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건 어머니가 대신할 수 없는 거잖아요. 김진세_ 어머니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요? 최태지_ 어떤 발레리나의 자서전을 보니 ‘훌륭한 어머니가 하는 일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어머니의 역할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김진세_ 발레 교육을 계획하는 분들은 귀담아들으셔야겠어요. 최태지_ 1980년대 제가 파리에 갔을 때는 마치 우리가 피아노를 가르치듯 발레를 교양수업 정도로 가르쳤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었죠. 제가 발레 대중화를 부르짖은 이래 요즘은 문화센터 같은 곳에 성인 클래스도 생겼거든요. 그런 점은 참 좋아요. 다만 프로페셔널 발레리나는 좋아서만 되는 건 아니거든요. 김진세_ 타고나야 하는 게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최태지_ 취미로 하는 건 괜찮지만, 전문적으로 발레리나가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반드시 전문가와 의논을 해야 해요. 발레 아카데미 학생들의 어머니를 만나면, 아이보다 어머니가 하고 싶어 시키는 분들이 많아요. 그 욕심만으로 아이를 푸시하는 건 무리가 있죠. 발레리나는 체격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멘털리티(정신적인 면)가 중요해요. 그래서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해요. “왜 그러니?”가 아니라 “어땠니?”라고 묻는 거죠. 김진세_ 아, ‘어땠니?’ 최태지_ 제가 딸한테 엄청나게 혼났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딸이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어렸을 때 넘어지면 제가 “빨리 일어나”라고 한 뒤에야 “아프지 않아?”라고 했대요. 그런데 캐나다에 갔더니 그쪽 엄마들은 “괜찮니?”를 먼저 묻고 손을 잡아주더라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있어도 사회생활을 잘해나갈 수 없어요. 대항하고 경쟁하는 것보다는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가르쳐야죠. 다시 말하면 발레 테크닉만 키우기보다는 사랑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아주는 게 부모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예요. 김진세_ 발레 교육에 대한 열의가 느껴지네요. 최태지_ 아직까지 우리는 테크닉만 가르치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정신적인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하거든요. 외국 발레학교의 경우 심리 선생님이 항상 곁에 있어요. 발레리나는 무릎을 다치면 그 순간 ‘아,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해요. 다리는 3개월이면 낫는 거지만, 문제는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거예요. 김진세_ 어떤 발레학교를 만들고 싶으신지 짐작이 갑니다. 최태지_ 교육비 부담 없이 열여덟 살까지 가르쳐서, 졸업 후 바로 프로 발레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요. 사실 발레에는 영재가 없어요. 어렸을 때는 괜찮았지만, 생리를 시작하고 호르몬 밸런스가 달라질 때 자기 몸을 컨트롤하지 못해 급격히 살이 쪄서 발레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열여덟 살은 되어야 프로 발레리나가 될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말이에요. 김진세_ 발레학교 설립이 최 단장님이 품고 계신 꿈이었군요. 최태지_ 앞으로 발레학교를 만들게 되면 발레 테크닉에 있어서 전문적인 상담을 하고 몸은 어떻게 쓰며 또 근육을 위해서는 어떤 식사를 해야 하는가 등의 체계적인 교육을 하고 싶어요. 남보다 연습을 많이 하고, (콩쿠르에 나가서) 남을 이겨야 하는 발레가 아닌 예술가를 만들기 위한 발레교육을 하고 싶어요. 김진세_ 정말 좋은 말씀이세요. 저도 딸은 발레를 시키고 아들은 수영을 시키고 싶었는데, 아들만 두는 바람에 발레를 못 시켰어요(웃음). 최태지_ 언니는 저더러 발레리나여서 좋겠다고 해요. 제 언니는 정말 똑똑했어요. 공부도 1등이라 최고의 대학에 갔고, 최고의 신붓감이었죠. 어머니가 자랑스러워하는 딸이었어요. 반면 저는 당시 일본 대학에 발레과가 없어서 불문과를 나왔어요. 그것도 3년만 다녀서 졸업장이 없어요. 사실은 그게 좀 콤플렉스였어요. 그런데 언니는 저에게 “나는 좋은 대학 졸업장이 있어도 시집가니 다 쓸모없더라”며 “너는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살 수 있으니 부럽다”고 해요. 여자에게 발레는 몸을 예쁘게 단련하고 삶의 마지막까지 가져갈 수 있는 행복한 일이기도 하죠. 감사함의 표현, 세상과 어우러지는 힘 김진세_ 어려서 별명 있으셨어요? 최태지_ ‘개그맨’이었어요. 항상 주변이 썰렁한 걸 싫어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웃기곤 했죠. 사람들이 “너는 가만있으면 공주 같은데, 입만 열면(웃음)…”이라고 했어요. 지방 공연 가면 단원들의 기쁨조였어요(웃음). 김진세_ (웃음) 항상 주변이 어떤지 살피시나 봐요. 최태지_ 전 항상 나보다 주변이 우선이었어요. 프리마 발레리나였을 때 오히려 슬펐어요. 부러움을 받는 게 저에게는 전부가 아니었거든요. 화장실 갈 때 동료들끼리 손잡고 가고 항상 같이 있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전 2등이 되고 싶었어요. 김진세_ 결국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알아주니까 또 지금처럼 일을 하실 때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최태지_ 인복이에요. 제가 잘하는 거 없어요. 항상 주변에 좋은 분들이 감사한 말씀을 해주시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예술인들은 말 한마디에 살고 죽는다잖아요. 내가 전생에 얼마나 나쁘게 살았으면 이렇게 비판을 받고 외로워질까, 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옆에서 서포트해주는 사람이 있었죠. “너는 할 수 있어. 비록 언어(한국어)가 서툴지만, 그러니 오히려 사람들이 더 열심히 들어주지 않겠냐”는 얘기를 들을 때 다시 한번 일어나는 힘이 생겼죠. 김진세_ 어떤 분들과 친하세요? 최태지_ 한국에 오니 “학연이 없어서 외롭지 않으냐”고들 하는데, 각 분야에 일을 통해서 만난 분들이 있어요. 인터뷰로 만난 기자들도 10년 이상 알고 지내니 이젠 가족 같고요. 김진세_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힘이 있으세요. 최태지_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좋은 선물은, 늘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표현하라는 걸 배운 거예요. 딸들에게도 그 두 마디만큼은 잊지 말라고 해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어요. 그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하고, 손을 내밀어주는 상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고 해요. 전 그 가르침이 지금도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김진세_ 혹시 이런 거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단장님 체중이? 최태지_ 대학 다닐 때는 46~47kg이었다가, 아이 가졌을 때는 80kg까지 나갔어요. 지금 몸무게가 51kg 정도 돼요. 김진세_ 그 체중을 어떻게 유지하세요? 최태지_ 발레에서는 ‘거울 선생님’이라고 해요.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보다 거울에 비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거죠. 전 어려서부터 그걸 해와서 잘 먹고 잘 자요. 그러다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이 미워지면 노력은 하죠. 요즘 특히(웃음), 우리 나이가 갱년기잖아요. 바빠서 큰 운동은 못하는데, 4개월 전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내 시간을 내자고 노력하는 거죠. 김진세_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거울을 보는 게 좋은 방법이겠네요. 이제 공식 질문인데요. 독자들께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최태지_ 자기 자신을 아는 거죠. 저는 인생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계속 헤매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책을 읽는 게 좋다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 대화 속에서 제 자신을 알게 됐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 더욱더 나를 알게 돼요. 대화를 통해 자신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혼자이기보다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을 접하면서 상대의 이야기도 들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건,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김진세_ 그렇죠. 최태지_ 열정을 가지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노력해야 하는 거 같아요. 나이 들수록 제 발로 걸어 다니지 않으면 그런 기회가 적어지더라고요. 제가 행복해야 곁에 있는 사람의 행복지수도 높아지고, 반대로 제가 슬픔을 표현해야 주변 사람도 속마음을 알아주는 거 아니겠어요? 세상은 마지막 순간까지 혼자서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요. 김진세_ 좋은 말씀이에요. 단장님, 발레 동작으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발레 동작에 다 의미가 있다면서요. 최태지_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내려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나는 (다시 손을 앞으로 우아하게 뻗어 앞쪽을 가리키며) 당신을, (손을 왼쪽 가슴에 모으며) 사랑합니다. 김진세_ 아, 그리 어렵지 않은 동작이네요. 최태지_ 사랑한다는 말은 진짜 좋은 말이잖아요? 왼쪽 가슴을 안고 “사랑한다”라고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왼쪽 가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이렇게 따라 해보세요. “사랑합니다.” 김진세_ (동작을 따라 하며) 이렇게요? 최태지_ 잘하시는데요. 참 쉽죠? 김진세의 에필로그 최태지, 몰입에의 환희 사람은 바뀌기 힘들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와 감정과 행동의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벗어나려는 순간, 많은 불안이 엄습해서 그 패턴을 버리기 힘들다. 쉽게 이야기해서, 안 하던 짓을 하면 불편해진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다채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본다. 원래의 삶은 물론이고, 새로운 삶에서도 큰 성취를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발레리나는 말이 없다. 온몸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행정가는 달변(達辯)이다. 사람을 만나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열 살 때부터 마흔 즈음까지 발레만 했고 최고라는 극찬을 듣던 무용수가, 어느 날 행정가로 변신하는 것이 가능할까? 더구나 행정가로서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이 달라지게 할 정도의 성공을 이루었다면, 그런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녀는 선이 아름다웠다. 옆에서 본 그녀는, 얼굴은 물론이고 발레리나답게 몸의 선이 남달랐다. 하지만 마음의 선은 더욱 우아하게 빛났다. 두 딸에 대한 애증을 표현할 때, 프리마 발레리나도 아니고 대한민국 대표 문화 명사도 아닌, 젖가슴같이 포근하고 따뜻한 모성의 선을 보았다. 대한민국 문화계를 대표해 봉사하며 일생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결연한 애국자의 선을 보았다. 그 우아한 선에 빠져 정신이 없음에도 그녀의 말은 귀에 착착 감겼다. 실은 그녀는 한국말이 서툴다. 일본어를 생애 첫 언어로 스무 해 넘게 자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순전히 잘 들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일까? 물론 인간은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표현에 집중을 잘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집중은 오래 가지 못한다. 몹시 피곤해진다. 그렇지만 짧지 않은 그녀와의 인터뷰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벅차오르는 즐거움이 있었다. 우아한 내면의 선을 보게 하고, 어눌한 말에 집중하고, 벅찬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힘은, 바로 그녀의 ‘몰입’에의 재주 덕택이었다. 그녀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상대에게 몰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 느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내게 몰입한다는 사실을 느낀 순간, 나 자신도 그녀에게 놀랍도록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을 잘해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발레리나는 여러 배역을 소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맡은 배역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바로 몰입을 말한 것이다. 몰입은 없던 힘을 만든다. 내부 잠재력을 한껏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몰입이다. 몰입 뒤에는 피곤함보다는 환희가 따른다. 한참을 독서에, 영화감상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덮고 혹은 극장 문을 나서면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몰입인 것이다.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몰입 후에 오는 환희는 일종의 중독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일중독자나 강박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만약 그녀가 일에만 몰입해 있었다면, 그녀에게서 모성과 같은 다양한 선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세상 중심에는 ‘그녀’가 있고,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더구나 그녀는 ‘뛰어남’보다 ‘어울림’을 좋아하는 화합의 심성이 있었다. 그를 괴롭혔던 수많은 편견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어울리기 좋아하는 그녀의 심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녀에게서 몰입이라는 긍정의 힘을 배웠다. 만나는 사람, 하는 일, 사랑하는 가족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 몰입은 긍정의 힘 중에 가장 큰 즐거움임을 깨달았다. 최태지는… 1959년 일본에서 태어나 가이타니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약하며 일본 정부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됐으나 한국인임이 알려져 취소되는 한 차례 시련 후 스승의 조언으로 1983년 ‘세헤라자데’ 공연에 참여하며 국립발레단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딸 둘을 낳고도 프리마로 활약하는 등 발레계의 전설로 통하다, 1996년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최연소 국립발레단 단장에 취임하며 행정가로 변신했다. 사람 좋아하는 천성에 특유의 꼼꼼한 일처리, 일본·프랑스·미국 등에서 익힌 선진국의 노하우로 국립발레단을 국내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4년여 동안 정동극장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가, 지난 2008년 3월 친정인 국립발레단 단장(예술감독 겸직)으로 복귀했다. 긍정의 힘을 보태는 선물 국립발레단 발레 ‘라이몬다’ 딸을 낳으면 발레를 가르쳐야지 했습니다. 별 뜻은 없고요. 그냥 아름다운 자세는 오랜 시간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화장술과 더불어 나날이 발전하는 성형의학 덕에, 이제는 얼굴 미운 사람 혹은 볼륨 없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세가 아름다운 사람은 드뭅니다. 최태지 단장님처럼 발레리나의 우아한 몸매는 아주 오랜 기간 훈련을 통해 다듬어지는 것이기 때문이겠죠. 그 아름다운 몸을 가진 발레리나의 공연을 볼 기회가, 이번 ‘긍정의 힘’에 있습니다. 바로 최 단장님께서 이끄시는 국립발레단의 공연 ‘라이몬다’에서 말입니다. 13세기 중세 십자군 시대의 헝가리 왕국을 배경으로 한 클래식 발레인데요, 한국과 러시아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라니 대단할 듯합니다. 참! 이제는 ‘긍정의 힘을 보태는 선물’이란 제목을 바꾸어야겠어요. 원래 취지는 긍정의 힘을 더 내시라고 인터뷰이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었는데, 벌써 몇 번째 ‘긍정의 힘’ 주인공들이 선물을 주시고 있잖아요. ‘긍정의 힘을 나누는 선물’ 정도면 어떨까요? *김진세의 인터뷰 _ 긍정의 힘 최태지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5분을 선정해 오는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발레단의 ‘라이몬다’에 초대합니다(1인 2매 제공). 김진세 박사는…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파리6대학의과대학에서 메조테라피 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고려대에서 강의 중이며, 고려제일신경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그의 또 다른 재주는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노숙자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에 ‘김진세의 자기 사랑 프로젝트’를 연재하고 있다.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외 고민 많은 20대 여성에게 보내는 세심한 위로를 담은 「심리학 초콜릿」, 행복한 시작을 위한 심리학 처방 「스타트 신드롬」을 썼다. <■기획&정리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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