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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957 건 검색)

[속보]경찰, 한덕수 국무총리 2차 피의자 조사···비상계엄 국무회의 참석
[속보]경찰, 한덕수 국무총리 2차 피의자 조사···비상계엄 국무회의 참석
2025. 02. 05 10:22사회
... 국무총리가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경찰에...
[서울25]송파구, ‘2024 안전문화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서울25]송파구, ‘2024 안전문화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2025. 01. 02 11:00지역
.... 송파구청 제공 송파구(구청장 서강석)는 2일 행정안전부 주관 ‘2024년 안전문화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고 특별교부세 1억5000만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2024년 안전문화대상’은 행정안전부가...
서울25
[속보] 헌재,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사건 변론준비 회부
[속보] 헌재,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사건 변론준비 회부
2024. 12. 31 14:07사회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2024.12.17. 정효진 기자
尹 탄핵심판 시작
대통령·국무총리 부재 속 최상목 권한대행 “특별재난지역 선포”
대통령·국무총리 부재 속 최상목 권한대행 “특별재난지역 선포”
2024. 12. 29 21:05사회
.... 또 최 권한대행은 “1월4일 24시까지 7일간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하겠다”고 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부재한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최 권한대행은 사고가 발생한 무안을 찾아 사고를 수습하는 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스포츠경향(총 185 건 검색)

천우희, 국무총리 표창 수훈…“열정 잃지 않을 것”
천우희, 국무총리 표창 수훈…“열정 잃지 않을 것”
2024. 11. 01 12:48 연예
천우희. 블리츠웨이스튜디오 배우 천우희가 ‘2024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훈했다. 지난달 31일(목)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최한 ‘2024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대중문화예술인들의 공을 기리기 위한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권위의 정부 포상으로, 올해로 15회째를 맞이했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천우희는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과 넷플릭스 ‘더에이트쇼’의 연타석 글로벌 흥행으로 본업뿐 아니라 광고, 화보, 예능 등 아이코닉한 행보를 걷고 있다. 지난 9월 ’2024 올해의 브랜드 대상‘ 시상식에서 여자 배우-OTT 부문을 수상하기도 한 천우희는 국무총리 표창까지 수상하며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20주년을 보내고 있다.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천우희는 “한 가지 업을 반세기 가까이 해올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지고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그런 멋진 분들과 이 자리 함께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드린다.”는 말로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이어 “이 자리에 계신 선생님들과 선배님, 축하드리고 정말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천우희는 “앞으로도 배우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열정과 재능을 잃지 않으며 계속해서 지금처럼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천우희는 현재 드라마 ’마이 유스(MY YOUTH, 가제)‘를 촬영 중이다. 천우희.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천우희.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천우희. 블리츠웨이스튜디오
라이온하트 스튜디오, 2년 연속 ‘일자리 창출 유공 국무총리 표창’ 수상
라이온하트 스튜디오, 2년 연속 ‘일자리 창출 유공 국무총리 표창’ 수상
2024. 09. 20 12:18 생활
라이온하트 스튜디오는 고용노동부가 선정하는 ‘2024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에 2년 연속 선정과 함께 일자리 창출 유공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고 20일 밝혔다.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은 고용노동부가 일자리를 늘리고, 일자리 질을 개선한 우수기업과 일자리 창출에 모범을 보인 개인을 찾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매년 100개사 규모로 선정을 하고 있으며, 선정된 기업에게는 신용평가 우대와 여신지원 금리우대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라이온하트 스튜디오는 2년 연속으로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에 선정됐으며, 특히 올해는 ‘일자리 창출 유공 국무총리 표창’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국무총리 표창은 지난 19일 고용노동부 양승철 성남지청장이 라이온하트 스튜디오에 직접 방문해 김재영 의장에게 수여했으며, 일자리 으뜸기업 인증패 전수식은 이한순 부사장이 수상한 가운데 지난 5일 진행됐다. 2년 연속 ‘일자리 으뜸기업’에 선정된 라이온하트 스튜디오는 최근 2년간 고용증가율이 86%를 기록할 만큼 공격적인 인재 채용을 이어왔다. 서비스 4년 차 ‘오딘: 발할라 라이징(이하 오딘)’의 견고한 성장 속에 신작 4종 개발에 집중 투자해온 결과다. 라이온하트 스튜디오는 인력 투자의 결과로 핵앤슬래시 로그라이크 장르 신작 ‘발할라 서바이벌’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프로젝트 C’, ‘프로젝트 Q’, ‘프로젝트 S’ 등 초대형 신작 3종도 순차적으로 공개해 나갈 계획이다.
‘꼬꼬무’ 제작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국무총리표창 상금 500만원 기부
‘꼬꼬무’ 제작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국무총리표창 상금 500만원 기부
2024. 01. 17 17:32 연예
SBS ‘꼬리에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진이 2023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표창과 함께 받은 상금 500만원을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에 기부했다. 17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후 ‘꼬꼬무’) 황성준 PD는 “지난 10월 우리 프로그램에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 이용우 이사장님이 출연한 이후로 강력범죄피해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느꼈고, 적은 금액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이유를 밝혔다.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는 범죄 피해자 가족이 조속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법률적, 경제적 지원은 물론 심리치료와 상해 치료비 지원 등 다각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다. 황 PD는 “국민들이 낸 세금에서 받은 상금이다. 당연히 가야할 곳으로 간 것”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프로그램이 되고 싶다”고 포부도 밝혔다. 장현성, 장도연, 장성규가 진행하는 ‘꼬꼬무’는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20분에 방송된다.
은평성모병원 배시현 병원장, C형 간염 예방 공로 국무총리표창 수상
은평성모병원 배시현 병원장, C형 간염 예방 공로 국무총리표창 수상
2023. 12. 02 11:29 생활
대한간학회 이사장직 수행하며 다양한 정책 제안 및 대국민 캠페인 국가검진 항목 제외로 C형 간염 인식 낮아, 우리나라 간암 발생원인 10% 차지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배시현 병원장(오른쪽)이 감염병 관리 유공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하고 지영미 질병관리청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배시현 병원장(소화기내과 교수)이 지난 11월 30일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질병관리청 주최 ‘2023년 감염병 관리 컨퍼런스’에서 감염병 관리 유공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했다. 간 질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대한간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배시현 병원장은 학회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C형 간염의 조기 진단과 치료를 위한 정책 제안 및 다양한 인식개선 캠페인을 전개해 국민들의 질병 부담을 줄이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배시현 병원장은 대한간학회 이사장으로서 ‘한국인의 간질환 백서’ 발간과 개정에 참여해 우리나라 C형 간염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선별검사 대상을 확대하자는 제안을 정부와 보건당국에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 또, 고비용 C형 간염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 확대를 통해 치료실패 환자나 비대상성 간경변 환자들까지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질병관리청과 ‘제1차 바이러스 간염 관리 기본계획’ 공동수립,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와 ‘2030 Goodbye C형 간염’ 운동 전개를 비롯해 아시아 태평양 간학회와 바이러스 간염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C형 간염은 급성과 만성 간염, 간경변증, 간암 등 다양한 질환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질환으로 세계적으로 약 5800만 명이 감염돼 있으며 연간 150만 명의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고 29만 명이 C형 간염 관련 간질환 때문에 사망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B형 간염과 달리 C형 간염은 국가검진 항목에서 제외돼 있어 대부분의 환자들이 감염 여부를 모르고 있고, 이에 따라 예방과 치료에 대한 인식 또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의 C형 간염 누적 환자 수는 38만 명(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넘어섰으며 간암 발생 원인의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에서의 C형 간염 만성화율은 70~80%로 B형 간염 만성화율 10%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조기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며 세계보건기구에서도 2030년까지 새로운 감염 발생과 사망을 감소시키고, 진단율과 치료율을 높이고자 각 국가들에 정책 마련을 포함한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배시현 병원장은 “C형 간염은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전파되며 예방 백신은 없으나 2~3달 정도의 경구 약물 복용으로 97%이상 완치될 수 있다”며 “모든 국민들이 평생에 한 번 반드시 C형 간염 검사를 받아 간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조기 진단을 위한 국가검진 항목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배시현 병원장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신동호가 만난사람]동반성장위원장 전격 사퇴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
[신동호가 만난사람]동반성장위원장 전격 사퇴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2012. 04. 17 20:14)
2012. 04. 17 20:14 정치
ㆍ“동반성장과 재벌개혁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란 잔인한 것이다. 19대 총선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 신망과 인기를 한몸에 받던 사람도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전혀 다른 인물이 된다. 내부 견제와 외부 비판을 전부 이겨내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안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수없이 보았다. 한때 여·야 양쪽에서 대권주자로 ‘모시려’ 했던 정운찬 전 총리가 지난 3월 29일 동반성장위원장 직을 내던졌다. 약 1년 전,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거기서 막 물러난 그를 또 만난 것은 그의 동반성장위원장 취임보다 퇴임의 정치적 의미가 더 무겁게 보여서다. 의미라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동반성장론은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다른 버전이다. 경제학자로서 드물게 재벌개혁론을 강하게 펴왔고 지금도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그가 동반성장위원장 퇴임으로 한결 자유롭게 경제민주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 점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워진 점이다. 대선정국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의 폭이 넓어졌다는 얘기다. 그가 퇴임하면서 이른바 ‘정운찬테마주’가 급상승한 데는 그런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총선 다음날인 지난 4월 12일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 42주기 추모식에 다녀온 그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3·1운동 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리는 스코필드 박사는 그에게 스승이자 은인이며 자신을 키워준 4명의 아버지 중 1명이라고 할 정도로 각별하다. 총선 과정과 결과를 지켜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참으로 민심이 무섭고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총선정국에 들어가기 전에는 여당은 100석 이하의 완패를 하고 민주당은 단독으로 과반을 달성하리라고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민주당이 패배한 데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국민이 원하는 정치가 아니라 민주당이 원하는 정치를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면 국민은 바로 정치세력에 등을 돌린다는 점에서 무섭다는 거예요.” 민심이 현명한 것은 새누리당 지지가 국민 전체로 볼 때 30%에 불과하다는 점이라고 했다.(투표율과 정당 지지율을 따지면 실제로는 25% 정도지만 그는 약간 후하게 계산했다.) 다시 말하면 국민의 70%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앞으로 국민이 바라는 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한다면 야당에게도 다시 기회를 줄 여지를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서민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거예요.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것은 ‘정책’보다 ‘사람’입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모두 시장자유주의 대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주장했지만 어느 당에도 그런 정책 이념을 갖고 추진할 수 있는 인물군은 매우 부족하거나 오히려 시장자유주의자가 훨씬 더 많은 실정이에요. 특히 새누리당은 그러한 요소가 더욱 강하죠.” 민심은 무섭고 현명하다, 서민의 미래가 어둡다는 점 외에도 그는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의 특징 가운데 또 하나를 매우 의미 있게 보았다. 국민의 정치인에 대한 평가 기준이 품격과 품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막말 파문이다. 이제 정치인은 투쟁이나 극단적인 정책이념보다 균형과 개방, 품성 등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동반성장 측면에서 여·야의 정책공약과 당선자 성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당선자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인물이 공천에서 이미 배제됐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언급할 부분이 없어요.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책 부분도 여·야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단순히 뭘 하겠다는 건 있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건 없잖아요. 재원 확보도 부자세나 재정 감축 말고는 뚜렷하게 잡히는 게 없어요. 4~5년 뒤 다음 정부에게 빚만 잔뜩 안겨주겠다는 말밖에 안 됩니다.” 동반성장위원장 시절 그는 재벌 경제구조의 높은 벽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회의 때부터 ‘법적 근거가 있느냐’며 기구 자체를 백안시하려는 도전을 받았다.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인지 공산주의인지…’라는 조롱을 당했다. 그에게 임무를 맡긴 이명박 대통령은 힘을 실어주지 않았고, 정부는 한술 더 떠 딴죽을 걸기 일쑤였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회의를 보이콧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서 많은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성과는 없었습니까. “추상적인 것부터 말씀드리면, 이제 국민 누구에게 물어봐도 동반성장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동반성장위원회의 목적이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이잖아요. 그 목적은 상당히 달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서도 일일이 설명했다. 우선 기구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들을 설득해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동반성장지수 작성과 발표 등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가장 큰 논란을 부른 초과이익공유제도 ‘협력이익배분제’로 이름을 바꿔 기어이 관철시키는 뚝심을 보여주었다. “이익공유제에 대해서는 참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기업이나 국회 지도자, 정부에서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급진좌파적 사고로 보는 거예요. 이익공유제가 ‘공유’ 때문에 공산주의가 생각나고 ‘제’ 때문에 규제가 생각나서 그게 그렇게 싫다고 하니까 그러면 협력이익배분으로 바꾸자고 양보를 해서 관철을 한 거예요.” 이 밖에도 그는 재임 동안의 성과로서 MRO가이드라인, 기술임치제 활성화, 기술인력유출 금지 등을 거론했다. 한계점에 대해서는 정부와의 교감이나 지원을 받지 못한 점, 대기업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 동반성장을 경제적 영역에만 한정지었던 점 등을 지적했다. “동반성장이라면 대·중소기업만이 아니라 빈부, 도농, 수도권과 비수도권 등 여러 영역에서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한꺼번에 다 접근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행하지 못할 것 같아서 대·중소기업 간의 문제부터 다룬 것이죠. 대기업이 대개 부자 쪽이 많을 거고 도시, 그 중에서도 수도권에 많을 것이기 때문에 대·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면 다른 문제도 어느 정도 누그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정운찬 위원장’이 빠진 동반성장위원회가 앞으로 제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동반성장위원회와 저를 동일시하지 마십시오.(웃음) 후임자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질까 걱정입니다. 다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것은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 합의나 결정사항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역할을 수행하고 국가 경제의 미래를 입에 담을 수가 있겠습니까. 또 하나 더 보탤 것은 양극화 때문에 동반성장위원회가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그 양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예요. 문제가 있는 곳에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동반성장위원회와 같은 기구는 어떤 식으로든 필요합니다.” 동반성장위원장에서 물러나자마자 정부가 이익공유제 대신 성과공유제 쪽으로 선회하는 기류이지 않습니까.(지난 4월 9일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포스코를 비롯한 성과공유제 우수기업을 방문해 힘을 실어준 것 등이 그런 해석을 낳고 있다.) “그것 봐라, 당신 나가니까 이익공유젠가 협력이익배분젠가는 어디로 가버리고 성과공유제로 간다, 이거잖아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성과공유제는 4~5년간 시행해본 결과 실패한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보세요. 중소기업이 마른 수건 짜듯이 원가절감을 하자는 게 성과공유제예요. 포스코가 연간 2조원에 가까운 순이익이 나는데 그 중에서 20억~30억원, 많게는 120억원을 중소기업과 나눴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가능하겠습니까. 언 발에 오줌 누기예요. 정부 관료들은 이런 방안으로 동반성장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에요.” 성과공유제는 중소기업이 원가절감을 많이 해서 난 이익을 나누는 것이고, 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많이 남긴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장부’를 봐야 한다. 성과공유제를 하면 중소기업이, 이익공유제를 하면 대기업이 평가 대상이 되는 셈이다. 중소기업은 성과공유제를, 대기업은 이익공유제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중요한 까닭이다.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만, 지금 양극화라든가 재벌독식 경제구조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동반성장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인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재벌개혁 없이 동반성장은 없기 때문에 두 가지는 동일한 주제입니다. 개벌개혁의 핵심은 경제력 집중 해소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력 집중은 경제적으로 서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중소기업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의 환경을 악화시키며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후퇴와 기본적인 정치적 평등, 자유에도 악영향을 가져옵니다. 동반성장은 서민 삶의 질을 높이고 중소기업의 경제적 환경을 개선합니다. 역사적 경험은 경제적 환경 개선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환경 개선을 가져온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반성장과 재벌개혁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경제민주화는 복지와도 관련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정 전 총리께서는 생산 과정에서 동반성장을 해서 전체 복지 수요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그것 좀 강조해주십시오.(웃음) 새누리당이건 민주당이건 복지에 대한 개념은 같습니다. 생산과 분배가 끝난 다음에 현격한 차이가 있으면 많은 쪽을 거둬서 적은 쪽에 나눠주자는 것이죠.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용도 많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더 좋은 것은 생산과 분배 과정에서 미리 복지를 생각하는 것이죠. 아예 생산 과정에서 분배가 골고루 가도록 하자는 게 동반성장입니다. 저는 동반성장이야 말로 가장 생산적인 복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동반성장위원장직을 사퇴하면서 “우리 사회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필요하다면 그것이 무슨 자리고 어떤 소임이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등을 통해서는 ‘동반성장 전도사’로 불러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말이다. 동반성장 전도사로서 앞으로 어떤 활동이나 역할을 할 생각입니까. “동반성장위원장은 그만두었을지라도 개인적으로 동반성장 문화 확산을 위해 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할 생각입니다. 연구소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길이 있겠죠, 뭐.” 4·11총선 표심을 대선 레이스에 적용하면 ‘박근혜 대세론’과 ‘안철수 등판론’으로 단순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봅니까. “아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정치를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단지 아까 말씀드렸듯이 70%의 국민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거죠. 단정적으로 경선은 무조건 박근혜 위원장이다, 이렇게 보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안철수 교수는… 훌륭한 것 같아요. 현실감각도 있는 것 같고 남에게 베풀 줄도 알고요. 그런 의미에서 훌륭하지만 아직 정치적 견해를 밝힌 게 거의 없잖습니까. 좀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이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리에게 어떤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균형·소통·화합의 리더십인데, 그에 앞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한국이 거시경제 지표로 보면 굉장히 큰 나라가 됐어요. 세계에서 인구가 5000만명이 넘고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나라가 일곱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예요. 경제대국입니다. 아주 큰 돈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경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고요. 2010년 6·25 60주년을 맞아 참전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아주 융숭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 문화가 세계에 인식되고 있지 않습니까. 굉장히 한편으로는 좋아요. 이게 유지되고 더 발전돼야 하는데, 그러자면 뭘 해야 하겠습니까. 지속적으로 동반성장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품격입니다. 도와주는 나라, 감사할 줄 아는 나라, 문화가 외국에 받아들여지는 나라, 이렇게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나라에서 부자는 균형 감각이 있어야 되고, 서로 잘 소통하는 속에서, 정말 화합을 해야 합니다. 그런 리더십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리더십을) 준비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말씀만 드리죠.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안 할 말로 제가 안 해본 게 없잖아요. 교수 하고 총장 하고 총리 했는데….” 할 건 대통령밖에 없네요.(웃음)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준비는 다 돼 있지만 그게 꼭… 뭘 하면 어때요.” 동반성장과 관련된 일이면 여든 야든 함께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여가 어딨고 야가 어딨습니까. 누가 훌륭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 도와줄 수 있고, 제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단지 그래도 이명박 정부의 총리를 했고, 특히 대학 총장을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행동을 하기는 참 어려워요.”
신동호가 만난 사람
[HOT피플]김황식 국무총리, 노인 복지 홀대 발언 또 다시 논란 外
[HOT피플]김황식 국무총리, 노인 복지 홀대 발언 또 다시 논란 外(2010. 11. 10 18:39)
2010. 11. 10 18:39 사회
김황식 국무총리, 노인 복지 홀대 발언 또 다시 논란 김황식 국무총리가 ‘65세 이상 노인의 무료 지하철표’로 논란을 빚은 데 이어 “부모 부양을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우리나라 품격에 맞는지 검토해봐야 한다”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김 총리의 발언은 11월 5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사회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나왔다. 김 총리는 노인의 부양은 가족이 책임지는 것이 맞다는 태도로, 노인 복지정책 홀대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황영철 의원의 ‘국모’ 표현 비판 받아 11월 4일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영부인을 ‘국모’라고 표현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날 황 의원은 김윤옥 여사와 대우조선해양 로비설을 제기한 강기정 민주당 의원을 비판하면서 “우리 국모는 심각한 상처를 받았다”고 발언한 것. 이에 민주당은 “영부인이 국모라면 대통령의 위치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지금은 ‘절대왕권’의 꿈을 깨고 국민의 목소리를 되새길 때”라고 비판했다. 가수 비, 억대 도박설 강하게 부인 가수 겸 배우로 활동 중인 비(본명 정지훈)가 2007년 월드투어 당시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에서 거액의 바카라 베팅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한 공연 관계자의 발언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나왔다. 이 매체는 지난 10월에도 비의 도박설을 제기했다. 이에 비의 소속사 제인튠 엔터테인먼트는 “보도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비 측은 해당 매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선택은?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 나온 박찬호의 선택은 무엇일까. 11월 4일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박찬호가 피츠버그 구단으로부터 마이너리그 계약 제안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인터넷 매체는 피츠버그 고위 관계자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박찬호만 원한다면 재계약하고 싶다”고 보도했다. 박찬호 선수에 대한 상반된 반응이 나온 것.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싶다고 밝힌 박찬호가 피츠버그 구단과 재계약을 맺을 것인지, 한국으로 돌아올 것인지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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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피플]고건 전 국무총리, 사회통합위원장에 임명 外
[HOT 피플]고건 전 국무총리, 사회통합위원장에 임명 外(2009. 12. 30 15:54)
2009. 12. 30 15:54 사회
고건 전 국무총리, 사회통합위원장에 임명 고건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장에 임명됐다. 청와대는 “고 전 총리가 서울시장과 총리 등 요직을 거치며 오랫동안 경륜을 쌓았고 통합적 이미지, 중도실용의 철학, 도덕성과 투명성 등 역량과 인품을 두루 갖췄다”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2009년 12월 23일 출범한 사회통합위원회는 계층·이념·지역·세대 등 4개 분과에 걸쳐 사회 각 분야의 갈등 해결에 대한 자문을 맡을 예정이다. 박진 의원, 의원직 상실 위기 ‘박연차 게이트’로 기소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홍승면 부장판사)는 2009년 12월 24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 의원에 대해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300만원과 추징금 2313만원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유죄 선고에 대해 박 의원은 “항소심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의원직이 박탈되는 정치자금법 규정에 따라 1심형이 확정되면 박 의원은 의원직을 잃는다. 홍규덕 교수, 민간인 첫 국방개혁실장에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 교수가 민간인 최초로 국방개혁실장에 올랐다. 국방부는 2009년 12월 23일 국방정책 개혁안의 밑그림을 담당할 국방개혁실장에 홍 교수를 임명했다. 국방개혁실장은 병력 감축과 군 구조 및 부대구조 개편 등 국방개혁 작업의 실무책임을 담당하는 자리다. 한편 홍 교수는 17대 대통령인수위원회 국방 담당 상임자문위원을 지냈으며,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박주영 3게임 연속 ‘골잡이’ 본능 과시 ‘축구천재’ 박주영(AS 모나코)이 3경기 연속 골을 터뜨리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박주영은 2009년 12월 24일 르망과의 경기에서 득점하며 프랑스 프로축구 데뷔 이후 처음으로 3경기 연속 골을 넣었다. 박주영은 시즌 6호 골로 득점 순위 12위에 올랐다. 최근 박주영의 활약에 대해 국가대표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본선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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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58년 헌정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로 임명된 한명숙의 고난과 성공
2006. 05. 01 화제
꿈 많던 문학소녀 한명숙은 남편을 만나면서 여성운동가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리고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냈고, 환경부 장관까지 지내 재선 의원이 됐다. 여성운동가에서 성공적인 정치인으로 안착한 한명숙이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바로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된 것. 하지만 한 총리의 성공 뒤에는 뼈아픈 고통과 힘겨움이 있었다. “이견이 있더라도 화합하는 어울림의 항해를 해나가겠습니다” 국무총리 한명숙 투기와 병역 혜택 의혹 없이 인사청문회 통과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4월 19일은 ‘4.19 혁명 46돌’이 되는 날이었다.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부패정권을 몰아낸 시민혁명이 일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매년 대학가는 4.19를 기념하는 많은 행사들이 열렸지만, 올해는 예년에 비해 많이 축소된 듯 조용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날은 대학가가 아닌 국회에서 4.19를 기념(?)하는 특별한 일이 생겼다. 바로 새로운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투표가 열린 것. 새로운 국무총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임명동의안 투표를 거치는 게 순서다. 그렇지만 이날 임명동의안 투표 결과에 쏠린 관심은 여느 때와는 사뭇 달랐다. 수많은 매체와 시민들 그리고 정치인까지 이날의 투표 결과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출석 의원 2백64명 가운데 찬성 1백82표, 반대 77표, 기권 3표, 무효 2표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통과되고, 새로운 국무총리가 탄생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 사람은 한명숙(61) 전 여성부 장관으로 58년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이었다.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오던 금녀의 벽을 한명숙 장관이 처음 깨뜨린 것. 초대 여성부 장관이라는 특별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영광된 타이틀을 또 하나 얻게 된 것이다. 한명숙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다른 정치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인사청문회에 나온 정치인이나 후보들에게는 대부분 ‘부동산 투기 의혹’과 ‘병역 의혹’이 불거졌다. 하지만 한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는 투기 의혹은 전혀 제기되지 않았다. 1999년 비례대표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이래 성공의 길을 걸어온 정치인이고 남편은 대학 교수인데 두 사람은 아직도 전셋집에 살고 있다. 누구처럼 몇십 억을 호가하는 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억원짜리 집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정치인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관을 한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깨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이 마흔 살이 넘어 얻게 된 외아들은 현재 현역 군인으로 복무 중이다. 다른 노쇠한 정치인에게서는 맛보기 힘든 상쾌한 ‘반란’이었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후 정치권은 사상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금까지는 상대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모습만 보여주던 정치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만큼 한명숙 총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반증인 셈이다. 한명숙 총리 역시 동의안 통과 직후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에 ‘화합’의 화답을 했다. “대한민국호에 야당과 여당, 우리 모든 국민을 함께 태우고, 이견이 있더라도 화합하고 조정해나가는 어울림의 항해를 하겠습니다. 5.31 지방선거를 깨끗하고 엄정하게 치러야 한다는 과제가 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선거기간에는 위기나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당정협의를 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한명숙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수여받고 본격적인 총리 업무에 들어갔다. 한 총리에게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과연 어떤 리더십과 능력을 보여줄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문학소녀에서 여성운동가로 변신 “13년간 매주 남편과 주고받은 편지로 더 단단해졌다” 한명숙 총리는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문학소녀’였다. 선생님 몰래 소설책을 책상 밑에 놓고 읽었고, 시를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작가가 되고 싶던 꿈 많던 여고생은 이화여대 불문과에 진학했다. 보들레르와 베를렌을 읊조리는 불문학도였다. 아름다운 생을 노래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여린 감성을 지닌 문학소녀였다. 하지만 암울하던 시대는 그녀를 꿈 많은 소녀로 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때 서울대와 이화여대의 기독교학생연합 단체인 ‘경제복지회’(EWS)에서 남편 박성준씨(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를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박성준씨가 회장이었고, 한 총리가 부회장이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이화여대 축제 때였어요. 쌍쌍파티 파트너로 남편을 초대했는데,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을 때 얼마나 멋있던지. 가난했지만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초반에는 내가 열심히 좇아다녔어요.” 한 총리는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한 때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고 4년 간의 열애 끝에 1968년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은 ‘통혁당 사건’(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당시 한 총리의 나이는 스물네 살, 달콤한 꿈만 꿔도 부족한 새댁은 이때부터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게 됐다. 당시 남편 박성준씨가 복역하던 대전교도소 규칙은 월 1회 면회, 주 1회 서신 교환이었다. 남편이 감옥에 있던 1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매주 편지를 주고받았고,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갔다. 그러면서 한 총리는 점점 남편을 닮아가게 됐다. 한 총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는 뭐가 뭔지 몰랐어요. 옳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철이 없던 것인지, 순수했던 것인지. 지금 다시 그 생활을 하라면 견디기 힘들 거예요. 나는 남편과 편지만으로도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었어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철학을 공유할 수 있었고. 나는 남편의 편지를 먹고사는 새댁이었고, 점점 더 강한 투사가 되어갔죠.” 그만큼 두 사람은 신뢰로 뭉친 부부였다. 당시 한 총리는 이화여대 사감으로 일했지만, 1970년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한 것이 문제가 돼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곳은 강원래 목사가 설립한 ‘크리스찬아카데미’였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한국 사회에 산재해 있는 사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간자적 중재자를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노동자, 농민, 여성, 학생, 종교 다섯 계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한 총리는 여성 교육을 담당하는 간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 총리는 뛰어난 활동을 보여줬고, 여성 지도자로 설 수 있는 역량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1979년 그녀는 뜻하지 않는 고통을 겪게 된다. 바로 1979년 4월 16일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된 것. 공안당국은 1979년 3월 9일부터 4월 1일까지 크리스찬아카데미가 연 교육프로그램을 문제삼았다. 당시 신문에는 ‘불법 용공 서클 일당 검거’라는 기사로 한명숙의 구속 소식을 전했다. 유신 말기에 일어난 공안조작 사건이었다. ‘50여 점의 불온 책자를 탐독하고 북한의 체제와 노선을 지지해왔다’라는 이유로 크리스찬아카데미 간사 6명이 구속됐다. 한 총리는 당시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이라는 형량을 받았다. 대표적인 고문조작 사건이었다. 한 총리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밤새도록 구타를 당했어요.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없었고,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어요. 온몸은 피멍이 들어 부어올랐고 부은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안겨 주었어요. 귓전에 울려오는 윙윙거림 속에 나를 고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아스라하게 들려왔어요. 그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어요. ‘빨갱이’임을 실토하라는 것이었죠.” 한 총리의 가슴과 몸에 큰 상처를 준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은 후에 조작된 사건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한 총리의 무죄를 인정받은 것. 하지만 한 총리의 가슴에는 그때의 아픔이 남아 있었다. 인사청문회에서 당시의 상황을 묻는 국회의원에게 “어렵다”라는 무거운 답변을 할 정도였다. 1981년 한 총리는 8.15 특사로 풀려났다. 2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된 것.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 날 남편도 석방됐다. ‘빵잽이 부부’라는 반갑지 않은 꼬리표를 떼고 13년 반 만에 부부가 다시 만났다. 이때 스물일곱 살 청년은 마흔한 살 중년이 되었고, 스물셋 꽃다운 여인은 서른일곱 살 아낙이 되어 있었다. 남편 박성준 교수는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존경’으로 표현할 정도다. “나는 사람의 한계와 약점과 이중성을 잘 알아요.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당신이 존경하는 인물을 말하라’고 하면 난처해져요. 그래도 꼭 ‘대답해야 한다’고 하면 고심 끝에 아마 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거예요. 이런 난처한 경우를 상상해보니 한 인물이 떠올랐어요. 그 사람은 놀랍게도 아내 ‘한명숙’이었어요. 제 아내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는 것은 듣기에 따라서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지만, 이것은 나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성실한 대답이에요.” 그리고 1985년 두 사람 사이에 아들 ‘한길’이가 태어났다. 한 총리 나이 마흔에 얻은 유일한 자식이다. 이름은 박한길인데, 남편의 성과 한 총리의 성을 하나씩 땄다. 그래서 성은 ‘박한’이고 이름은 ‘길’이다. 주민등록상에는 ‘박’ ‘한길’로 되어 있지만, ‘부모 성 함께 쓰기’의 원조인 셈이다. 여성운동가에서 성공한 정치인으로 초대여성부 장관으로서 여성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 석방된 뒤 한 총리는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 남편은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남편은 한국신학연구소 학술부장, 한백교회 목회자로 80년대를 보냈다. 그리고 일본 릿쿄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딴 뒤 2001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남편이 학자의 길을 걸었다면 한 총리는 맹렬 여성운동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1983년 여성민우회 전신인 여성평우회 발족 당시부터 참여했고, 1987년 전국 21개 민주여성단체가 연합해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을 결성할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여연’은 여성운동가 한명숙을 알리게 한 단체다. 진보적 여성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하면서 민주화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0년 1월 여성민우회 회장에 취임했다. 한 총리는 여성운동가로서 많은 일을 해왔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가족법 개정’이었다. 1989년 당시 가족법 개정 운동은 ‘여성계 37년 숙원’이라고 할 정도였다. 개정안 중에서 ‘호주제 폐지’와 ‘동성동본 금혼 규정 삭제’ ‘이혼시 배우자의 재산 분할 청구권을 신설한다’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가족법 개정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시대를 앞선 노력 때문에 요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공동 대표로 일하면서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10대 여성 정책 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여성의 권익 보호와 여성의 사회적 신장을 위해 꾸준히 일해오면서 대표적인 여성운동가로 인정받았다. 여성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한 총리를 영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던 남편 뒷바라지와 개인 사정으로 고사했다. 그러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의 창당 발기인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했다. 그리고 2000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2001년에는 초대 여성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여성운동가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총리는 여성부 장관으로서 ‘가족법’ ‘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처벌법’ 등 여성 권익에 관련된 법률 제정을 위해 노력했다. 여성 근로자의 출산휴가 기간을 30일 연장하고, 출산휴가 급여를 신설할 수 있던 것은 한 총리의 노력 덕이었다. 그리고 2003년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됐으며, 17대 총선 직전 장관직을 사퇴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17대 총선에서는 지역구에서 홍사덕 전 의원을 이기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4월 20일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영광된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시민사회운동을 하다 정치권에 입문한 국회의원들은 많다. 하지만 한명숙 총리처럼 운동가로서의 이미지를 잃지 않고 정치인으로서도 성공의 길을 걷는 예는 극히 드물다. 운동가가 정치인으로 변신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변절이다’ ‘너무 변했다’이다. 하지만 한 총리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지난 4월 20일 총리로서 총리 본관으로 들어서는 한 총리의 발걸음과 표정은 여유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총리 취임식에서는 장관들이 뒷줄에 앉고 1·2·3급 공무원들이 앞줄에 앉게 하는 ‘깜짝 이벤트’를 보여줬다. 한 총리가 처음으로 시도한 변화였다. “사실 오전 10시쯤 이 자리에(취임식이 열리는 곳)에 와봤어요. 그래서 ‘섞이자, 높낮이를 없애자’라고 했어요. 작지만 첫 여성 총리로서 변화를 시도해봤어요. 어떤 리더십이 좋을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한 총리가 걸어온 삶의 이적은 여성의 권익 보호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제는 여성을 뛰어넘어 ‘국민’의 삶을 보살펴야 한다. 여성의 꼼꼼함과 따스함, 그리고 여성운동가로 활동할 때의 열정으로 국무총리직을 잘 수행해내길 기대해본다. 정리 / 최영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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