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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659 건 검색)

부산독립운동기념관 설계안 선정…본격 건립 추진
부산독립운동기념관 설계안 선정…본격 건립 추진
2025. 02. 27 10:31지역
... 병행 중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 독립운동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반영한 새로운 개념의 기념관으로 조성될 예정”이라며 “시민들이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체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부산독립운동기념관부산시민공원시민사랑채
부산시민공원에 부산독립운동기념관…시민사랑채 새롭게 단장
부산시민공원에 부산독립운동기념관…시민사랑채 새롭게 단장
2024. 12. 04 10:14지역
... 조감도 부산독립운동기념관 공모에서 당선작으로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의 설계안이 선정됐다. 부산시는 부산독립운동기념관 조성을 위한 설계 공모에서 최종 당선작으로...
부산독립운동기념관부산시민공원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시민사랑채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후…제주 4·3기념관 방문객 증가 ‘쑥’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후…제주 4·3기념관 방문객 증가 ‘쑥’
2024. 12. 02 15:17지역
... 전개와 진상규명 운동 등을 담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 등이 있다. 평일 임에도 기념관을 찾는 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연인, 친구,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눈에 띄었다. 상설전시실에서...
한강작가제주4·3제주4·3평화기념관제주4·3평화공원작별하지않는다한강작가제주도4·3평화재단관람객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
‘4.19혁명 도화선’ 대전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
‘4.19혁명 도화선’ 대전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
2024. 11. 19 16:00지역
... 평가받는다. 3.8민주의거일은 그 역사적 의미가 재조명되면서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기념관 건립은 이듬해 처음 정부 주관으로 열린 3.8민주의거 기념식을 기점으로 추진됐으며, 2022년부터...

스포츠경향(총 59 건 검색)

천안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 야간 개방
천안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 야간 개방
2024. 10. 30 15:36 생활
천안 독립기념관 내에 있는 단풍나무 숲길이 경관 조명을 갖추고 오는 11월 1일(금)부터 3일(일), 11월 8일(금)부터 10일(일)까지 6일간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야간에 개방이 된다. 독립기념관은 자연과 역사가 융합된 ‘독립운동사와 함께하는 단풍나무숲길 힐링축제’를 지난 26일과 27일 이틀간 개최했다. 모기장 텐트를 활용한 창의적인 무대 연출과 국가상징물을 주제로 한 드론쇼, 역사와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가을힐링음악회 등으로 구성된 단풍나무숲길 힐링축제는 야간개장과 함께 개최되어 많은 방문객의 관심과 참여 속에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독립기념관은 앞으로 더욱 독립운동사의 가치를 알리고자 다양한 콘텐츠와 접목된 축제를 기획하고 추진하여 많은 관람객이 찾는 독립기념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故 장진영 부친 장길남, 딸 기념관 다녀오다 발 헛디뎌 사망
故 장진영 부친 장길남, 딸 기념관 다녀오다 발 헛디뎌 사망
2024. 05. 17 14:53 연예
고(故) 장진영의 부친 장길남 계암장학회 이사장. 연합뉴스 배우 고(故) 장진영의 부친 장길남 씨가 딸을 만나고 오던 중 사망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향년 89세. 고(故) 장진영 부친인 장길남(계암장학회 이사장) 씨가 16일 오후 2시쯤 세상을 떠났다고 연합뉴스가 17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전북 임실군 운암면에 있는 ‘장진영 기념관’에 다녀오던 길에 발을 헛디디며 넘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장진영의 언니 장진이 씨는 연합뉴스에 “(아버지가) 올해 9월 동생의 15주기 행사를 크게 열고 싶어 하셨다. 어제도 그 준비차 (장진영) 기념관에 갔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변을 당했다”라고 말했다. 생전에 딸을 누구보다 아꼈던 고인은 딸을 앞서 보낸 뒤 지난 2011년 5월 ‘장진영 기념관’을 세우고 직접 관리해 왔다. 고인은 고 장진영이 2009년 9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 9월 빈소를 찾은 딸의 모교 교감에게 장학금 5000만원을 기부했다. 장진영이 투병 중 모교에 장학금을 기탁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장길남씨는 이를 시작으로 계암장학회를 설립한 뒤 장학 사업을 이어왔다. 지난 1월에도 학교법인 우석학원에 5억 원을 기부했다. 고인의 빈소는 전주시민장례문화원 특301호실에 마련됐다. 18일 오전 8시 30분 발인 후 전북 임실군 운암면 선영에 안장된다.
이영애,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기부 의사 밝혀
이영애,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기부 의사 밝혀
2023. 09. 12 16:53 연예
이영애. 경향DB 제공 배우 이영애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위한 기부 의사를 전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12일 이영애는 지난 6월 ‘이승만 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발족한 후인 7월 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중앙일보는 “당시 행정 절차상 후원 계좌가 열리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이 씨가 먼저 뜻을 밝혀와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이 씨는 지인을 통해 ‘기념관 건립 취지에 동의한다’는 의사와 함께 기부 뜻을 전해왔다”며 재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영애의 소속사 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 측은 “이영애가 재단법인 이승만 대통령기념재단에 후원 의사를 밝힌 게 맞다. 이승만 전 대통령뿐 아니라 다른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기념사업에도 후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라며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영애는 구룡마을 화재, 충청지역 수해, 코로나 19 후원, 우크라이나 분쟁 피란민 구호 등 활발한 기부 활동을 펼쳐왔다.
[스경포토] 축사하는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
[스경포토] 축사하는 김미 백범김구기념관
2023. 08. 30 14:01 생활
카이로 선언 80주년을 기념한 국제 학술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29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백범김구기념관과 김구재단 주최로 열린 이번 공동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최초로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한 카이로 선언 80주년을 기념한 것으로, 이 날 학술회의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을 비롯해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 국회의원, ‘스띵(石定)’ 전 주한 타이베이 대표 등 많은 정계 인사는 물론 학자들이 참석해 ‘카이로 선언 80주년에 다시 보는 동아시아’를 주제로 카이로 선언이 있었던 1943년을 전후한 시기의 세계정세와 한국의 독립에 대한 국제적 인식 등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다. 김구재단 제공

주간경향(총 4 건 검색)

[원희복의 인물탐구]임정기념관건립위원장 이종찬 “이승만부터 김원봉까지 다 아우르겠다”(2018. 03. 19 14:46)
2018. 03. 19 14:46 사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는 최순실의 국정농단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배경에는 ‘역사전쟁’이라는 요소가 있다. 건국절로 상징되는 친일·독재세력과 항일·민주화 세력의 대결이 그것이다. 뉴라이트 생각을 가진 인물을 중용한 박근혜는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넘어 국정 역사교과서까지 나가는 무리수를 범한다. 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거부한 전교조 선생님과 역사학자·민주화운동가들에 의해 촛불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바로 그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항일역사를 확고히 하고 있다. 그동안 지지부진(사실상 중단)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임정기념관)을 국비로 신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현재 서울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2020년 8월까지 지상 5층·지하 1층(연면적 6236㎡)의 임정기념관을 짓기로 결정했다. 1월 31일 정부 차원의 건립추진위도 출범시켰다. 민·관이 함께하는 이 임정기념관건립추진위원장을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전 국정원장)이 맡았다. 이 위원장은 “국가보훈처에서 수립한 건립계획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며 “내년 4월 11일 임정기념식에 맞춰 착공해 2020년 완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정기념관은 세 가지를 강조하려 한다. 첫 번째는 1919년이 우리 5000년 역사에서 제국에서 처음으로 ‘민국’으로 온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시대를 연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건국이라 하지 말고 국민주권시대, 즉 민주공화제의 시작으로 역사를 정리하자고 했다. 두 번째는 임시정부를 세울 때 좌·우파 이념이나 지역·세대 구분이 없었다. 이승만에서 김원봉까지 모두 모여 나라를 세우자고 한 것이다. 임정기념관도 그 정신을 담아야 통일시대에 기여할 수 있다. 세 번째가 임정은 나라만 찾자고 한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인류공영에 이바지하자는 것이었다. 이 정신은 당시 대단한 것이다. 임정기념관은 이 세 가지 정신을 표현하고 담아야 한다.” 내년 4월 착공, 2020년에 완공 -외국의 독립기념관이나 레지스탕스 박물관을 가보면 국민과 매우 친숙하게 다가온다. 임정기념관은 천안 독립기념관과 백범기념관 등과 또 달라야 한다. “당연히 차별화해야 한다. 임정기념관의 차별성은 앞서 세 가지 특징으로 할 것이다. 임정기념관은 특히 ITC 강국답게 최첨단 5G(세대)기술로 꾸밀 생각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 마땅한 전문가가 없어 고민이다.” -이승만에서 김원봉까지 포괄하기 위해 이승만 아들 인수씨를 찾아간 것인가. “찾아가 ‘밖에 있지 말고 참여하라’고 했다. 이승만은 그래도 임정 초대 대통령이다. 안창호 후손도 찾아갔다. 임정기념관은 백범에만 기울어져 있어서는 안된다. 이승만에서부터 김원봉까지 다 들어와야 한다.” -김원봉은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하고, 6·25전쟁에 가담한 사람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원봉은 김일성에게 비참하게 죽었다. 일제가 김원봉을 잡기 위해 백범보다 10배 넘는 현상금을 걸었다. 그런 김원봉이 대한민국 천지에 갈 데가 없다. 김원봉 영혼이 구천에 떠도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김일성만 빼고, 김두봉도 넣어야 한다.” 매우 파격적인 ‘화해’다. 지금까지 정부는 일제강점기 아무리 항일투쟁 사실이 커도 북한 김일성 정권 수립에 가담했으면 서훈하지 않았다. 김원봉·김두봉은 뛰어난 항일투사였고 1958년 김일성에 의해 숙청됐지만 북한정권 수립은 물론 6·25전쟁에도 가담한 전력이 있다. 따라서 임정기념관은 매우 폭넓은 ‘역사적 화해’의 장이 될 것이다. 화해의 자리는 올 6월 1~2일 이념을 초월하는 음악회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바로 정률성과 한유한 통합음악회다. 두 사람 모두 1930년대부터 항일투쟁을 한 음악가로 정률성은 좌파, 한유한은 우파로 분류된다. 이 위원장은 “정치색을 뺀 서정적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만 공연하려 했는데, 반응이 좋아 부산에서도 공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공연은 성남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이 함께 한다. 임정기념관건립추진위는 8월에 ‘레지스탕스 영화제’를 열고, 11월 23일 임정요인들이 귀국한 날을 기념해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소개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이 이사장은 “임정기념관 건립과 별도로 이들 사업을 통해 분위기를 잡고 내년부터 더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들 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다. 이종찬 임정기념관건립위원장이 우당 이회영 흉상 앞에 서 있다. 우여곡절 많았던 임정기념관 건립 임정기념관 건립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가 설립된 것은 2004년이다. 기념관 건립을 위해 2015년 건립추진위를 구성했지만 정부는 법인승인조차 하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2015년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을 찾아가 ‘지금이라도 사업을 시작해야 박 대통령도 역사에 남는다’고 설득해 겨우 1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면서 “그런데 정작 박승춘 보훈처장이 이를 2000만원만 사용하고 반납해 버렸다”고 말했다. 다음해 이 위원장이 야당 예결위원장을 찾아가 다시 1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는데 박 보훈처장은 “국민 모금해 짓고 국가에 기부채납하라”며 다시 거부했다. 정부에서 나몰라라 하던 이 사업은 다행히 서울시가 서대문구의회 건물을 제공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아쉬운 대로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건물 신축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이 위원장은 “박원순 시장이 220억원대 부지를 제공하고, 문 대통령이 건물 신축을 결정했다”면서 “좀 비좁긴 하지만 서대문형무소가 보이고, 독립문과 남산까지 다 보여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라고 말했다. 사실 프랑스 에펠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물이고, 미국 자유의 여신상은 독립 100주년 기념물이다. 우리도 오래전부터 3·1혁명 100주년 기념물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이어지면서 이런 움직임은 쑥 들어갔다. 그나마 임정기념관이라도 만들어지는 것에 만족해야 할 처지다. “임정 100주년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한완상 전 통일부 장관이다. 지난 삼일절에 한 위원장에게 기념조형물은 관심 밖이니 서두르라고 했다. 기념물은 뭘 어떻게 만드느냐는 국민적 컨센서스(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 생각이지만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은 충무로 로터리로 옮기고, 거기에 100주년 기념물을 세워야 한다.” 건국절로 상징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인물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득세하면서 항일·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와 선양사업은 크게 위축됐다. 이 위원장은 “지금 뉴라이트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승만 대통령의 제헌의회 모든 기록에 대한민국은 기미년부터 시작했다고 돼 있다”면서 “이승만이 지하에서 ‘이런 괘씸한 놈들, 나를 팔아도 이렇게 파냐’고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또 당시 독립선언 어디에도 스스로 식민지로 인정한 대목이 없다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게 ‘타락한 인간들’이라고 혹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뉴라이트, 식민지 근대화론자를 중용한 것은 부친의 친일사실을 숨기려 했기 때문 아닐까. “이건 내가 실제로 겪은 것으로 1967~68년 중앙정보부에 ‘<광복군>(저자 박영박) 책을 모두 거둬들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어렵게 책을 수거해 봤더니 ‘박정희가 광복군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이 그것을 읽고 ‘이런 거짓말을 해선 안된다. 해방 후 김학규 광복군 3지대장이 만주에 있던 한국 국적 군인을 모았다. 그때 잠시 구대장으로 사병을 모아 훈련시킨 적이 있다. 이것은 해방 이후로 내가 장준하나 김준엽처럼 일제때 독립군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책을 거두어들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종찬 임정기념관건립위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정희가 직접 그런 지시를 했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그렇다며 나에게 직접 지시했다. 그래서 내가 그 책 수거작업을 했다.” -박정희도 역사왜곡은 하려 하지 않았다는 증언이다. 부친의 이런 사실을 박근혜 대통령이 알았다면 뉴라이트 세력을 옆에 두고 역사왜곡을 안 했을 것이다. “박정희도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고, 그 대목에서는 정직했다. 박근혜는 아버지를 몰랐던 것이다. 이승만 양자인 인수씨도 잘 모른다. 이승만의 뜻도 요즘 뉴라이트의 주장이 아니다.” 이 위원장은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이고 종조부 역시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부통령 이시영이다. 그는 10세 때 해방을 맞아 김구 등 임정 어른과 귀국해 경기중·고와 육사(16기)를 나왔다. 중앙정보부로 자리를 옮겨 영국대사관 참사관, 중정 기조실장을 거쳐 1980년 전두환 정권의 민주정의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후 제11~14대 4선 국회의원을 지내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맞섰다. 1997년 김대중 정부에서 안기부를 개편한 초대 국가정보원장이 됐다. 따라서 그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몇 안되는 인물이다. 이승만·박정희 다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역사의식이 궁금했다. 민정당 창당 주역, DJ정권 국정원장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두환 집안은 일제강점기 먹을 게 없어 만주에서 살다 왔다. 전두환은 싫은 얘기라도 경청하는 장점이 있다. 민정당 창당할 때 내가 ‘정권의 정당성을 담보하려면 독립운동 세력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말했고, 전두환이 승낙했다. 그래서 집 없이 떠돌던 유석현 선생(그는 폭탄과 권총을 국내에 반입하는 영화 <밀정>의 실제 인물이다)을 찾아 ‘모시러 왔다’고 했다. 그때 유 선생의 첫마디가 ‘나는 일제 때도 요시찰 인물이었고, 이승만·박정희 때도 요시찰 인물이었는데, 뭐하러 찾아왔나’라고 하더라. 내가 그분을 민정당 창당주비위원장으로 모셨다. 그리고 송지영(독립운동가 겸 언론인)·윤길중(진보당 간사장) 등 진보적 인사를 정계에 진출시켰다.” 그는 3당 합당할 때 노태우 대통령에게 “그래도 독립운동가를 기반으로 세운 민정당인데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고 덤볐다. 나중에 YS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맞붙었지만 전당대회 연설 기회조차 주지 않는 불공정 경선에 분노해 탈당했다. 그는 YS정권 내내 고난의 길을 걷다 아들이 있는 영국에 갔다가 마침 영국에 있던 DJ를 만나 의기투합했다. 그는 “DJ가 1995년 조순을 서울시장에, 나를 경기지사에 출마시키려 했는데 이기택 총재가 견제해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면서 “결국 DJ가 화가 나 신당(새정치국민회의)을 창당했다”고 말했다. 1996년 그는 DJ 공천으로 종로에서 다시 도전했다. 그는 “그때 YS는 나를 낙선시키기 위해 이명박을 공천했다”면서 “노무현 후보와 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둘 다 낙선해 이명박이 국회의원이 됐다”고 말했다. 이후 이명박 의원은 비서의 금권선거 폭로로 의원직을 잃고, 재선거에서 노무현이 국회의원이 된다. 종로에서 맞붙었던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대통령이 됐다. 참 교묘하게 얽히고 설키는 것이 정치다. 그는 “건국절을 처음 얘기한 사람이 바로 이명박”이라며 “노골적으로 임시정부를 폄훼한 사람은 이명박·박근혜밖에 없었다. 전두환·박정희도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을 폄훼한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감옥에 가는 현실을 보면서 ‘역사는 현재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우정이야기]독립기념관 개관 30주년 우표(2017. 08. 08 10:04)
2017. 08. 08 10:04 경제
그날은 우리 민족 해방의 꿈이 실현된 날이다. 36년 동안 일본에 강탈당했던 대한제국을 찾은 감격스런 날이다. 어느덧 나라를 잃고 살았던 시간의 두 배가 흘렀다. 올해로 광복 72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그 감격을 마음껏 즐길 수 없다. 남북 분단의 상처는 더욱 깊어가고 있다. 또다시 동족을 겨냥한 총구에서 피어나던 연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에 벌어진 세계 정치질서 재편과정에서 ‘얻어진 독립’이 빚은 결과다. 일본의 패망이 대한제국의 완전한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세계 패권국가에 의해 나라가 두 동강 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광복절을 맞는 올해의 아픔은 더욱 크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마치 72년 전에 보았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 공자의 말처럼 ‘절문근사(切問近思·스스로에게 던진 절절한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는 노력을 하다)’해야 한다. 그는 왜 엄혹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손가락을 자르며 독립을 맹세했는지를, 그는 왜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차디찬 감옥에서 죽어가면서까지 찢어진 태극기를 흔들었는지를, 그들 형제는 왜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독립운동가 지원에 썼는지를 우리는 다시 물어봐야 한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8월 1일 독립기념관 개관 30주년, ‘흑성산에서 바라본 독립기념관의 일출 풍경’과 ‘불굴의 한국인상’을 소재로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우표 디자인도 다른 우표에는 사용된 적이 없는 다층 엠보싱 특수인쇄기법을 적용해 조각의 올록볼록한 느낌을 주어 한층 입체감이 돋보이도록 했다. 이에 대한 진지한 답변을 찾기 원한다면 독립기념관 방문을 권한다. 독립기념관은 독립 쟁취를 위해 희생한 선조들의 흔적을 모아놓은 곳이다. 그렇다. 독립기념관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과정을 담은 자료를 볼 수 있다.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독립기념관은 아픈 기억을 통해 영광된 미래를 여는 ‘마음 교육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독립기념관 건립과정은 ‘자주독립’의 의미를 되뇌게 한다. 1980년 초반 일본 교과서 왜곡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문부성이 교과서를 검증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일본의 죄악을 부정했다. 우리 민족에게 강요했던 창씨개명, 신사참배, 징용 등이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수정했다. 심지어 ‘우리 민족이 일본 식민지를 반겼다’,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는 기술도 있었다. 우리 국민은 저항했다. 성금을 모아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1987년 8월 15일 광복의 날, 충남 천안시 목천읍에 우리 민족문화의 정체성과 국난극복사와 독립운동사, 그리고 국가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독립기념관이 개관됐다.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는다.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여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지속된 독립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는 2017년 개관 30주년 특별 야외사진전을 열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지난달 1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겨레의 큰마당 야외 넝쿨터널에서 ‘사진으로 보는 독립전쟁의 역사’라는 주제로 야외 특별 사진전을 개최한다. 또 독립기념관은 제4전시실에 있던 ‘3·1정신상’을 독립기념관 입구 회전교차로로 이전했다. 우정사업본부도 지난 8월 1일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기념우표 2종 총 60만장을 발행했다. 김기덕 우정사업본부장은 “이번 우표 발행으로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조상들의 나라 사랑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표박물관도 8월 1일부터 31일까지 애국선열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위대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소개와 주요 사건과 업적, 그리고 독립운동가를 기념하는 우표를 소개하는 특별 전시회를 열고 있다.
우정이야기
[사진공모전]악기로 담은 전쟁기념관(2012. 11. 20 13:39)
2012. 11. 20 13:39 사회
악기로 담은 전쟁기념관입니다. 커다란 수자폰 뒤로 왜곡되어 반영된 전쟁기념관 모습입니다. 이보다 좋은 렌즈가 있을까요._이주빈 이달의 최우수작 선정평 사진공모전 이달의 최우수작에는 998호에 게재된 정백호님의 ‘어색하지 않은 거리’가 선정되었습니다. 지나치기 쉬운 앵글을 찾아내어 안정된 구도로 촬영한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정백호님께는 니콘이미징코리아에서 제공하는 디카를 상품으로 전달해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응모 요령 소재나 주제 제한이 없습니다. 다만 과도한 보정은 사양합니다. 합성한 사진도 곤란합니다. 촬영 장소와 시간을 밝혀 주시고, 짧은 글도 덧붙여 주십시오. 사진사이즈를 2mb 이상으로 올려주세요. ■응모 방법 wkhphoto@kyunghyang.com으로 사진과 글,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를 보내 주세요. ■상품 매월 ‘이달의 최우수작’ 수상자에게 니콘 쿨픽스 S3100 1대 수여.(기종은 추후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제세공과금은 당첨자 부담입니다. ■발표 및 게재 매주 지면. 월별 최우수작은 다음달 첫째주. 후원 : 니콘이미징코리아
사진공모전
[사회]미국대사가 백범기념관에 간 까닭은(2009. 01. 15)
2009. 01. 15 사회
현직 대사 최초 방문에 ‘임시정부 정통성 논란’과 맞물려 해석 분분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백범기념관에 2006년 10월 개관 이후 처음으로 현직 주한 미국대사가 방문했다. 1월 3일 캐슬린 스티븐스 미국대사는 대학생 아들 제임스와 함께 기념관을 찾았고, 김신 관장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로 인사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여기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내가 방문한 이유다”라며 “거의 2년을 기다려왔고, 오늘 이뤄져 기쁘다”고 말했다. 특히 2007년 4월 모교인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개최한 ‘김구 포럼’에 참석했을 때 김구 선생 가족에게서 받은 영문본을 직접 들고 나와 “잘 읽었다”는 인사말도 전했다. 김신 관장은 답례로 를 사진으로 촬영해 책자로 만든 영인본과 김구 선생이 서거한 해인 1949년 1월 1일 쓴 ‘한미친선 평등호조(韓美親善 平等互助)’ 친필 휘호 사본을 액자로 만들어 선물했다. 이 휘호는 김구 선생이 당시 지인이던 주한 미대사관 직원 그레고리 핸더슨에게 써준 것인데, 핸더슨의 부인이 2002년 백범기념관에 기증한 것이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날 김 관장의 안내를 받으면서 1시간 30여 분 동안 전시실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대사관 측 “개인적으로 방문한 것” 스티븐스 미국대사가 백범기념관을 방문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현직 미국대사의 첫 방문이기 때문이다. 스티븐스 대사 이전에 미국대사가 백범기념관을 찾은 사례는 있다. 2002년과 2006년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 미국대사였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 방문했다. 그리고 관심은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에 대한 평가를 놓고 진보 진영과 뉴라이트 진영 사이에서 많은 논란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현직 미대사가 백범기념관을 방문했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주년’ 행사를 역사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치렀고, 역사교사와 역사학자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를 개정했다. 지난해 12월 19일 작가 이외수는 수정교과서에 대해 “김구 선생을 테러분자라고 가르치는 세상이 왔으니 머지 않아 이순신 장군을 살인마라고 가르치는 세상도 오겠네”라는 신랄한 논평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바 있다. 특히 김구 선생의 암살에 미군정이 배후로 지목되기도 한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의 ‘백범김구선생암살진상 조사보고서’에는 “안두희는 경무부장 조병옥과 수도청장 장택상 등의 소개로 OSS(미국 CIA의 전신)의 한국 책임자 모 중령 등을 소개받았고, 미군 OSS 한국담당 장교와 안두희의 서북청년단은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미군 장교는 백범을 제거해야 할 ‘블랙 타이거(Black Tiger)’라고 부르며 백범 암살의 필요성을 암시했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진보와 뉴라이트 평가 사뭇 달라 미국대사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에 대해 주한미국대사관 측도 “대사가 아들과 함께 휴일을 맞아 개인적 차원에서 간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스티븐스 대사 역시 기자의 질문에 대해 “한국 역사에는 항상 많은 논쟁과 토론이 있지만 최근의 일은 잘 모른다”면서 “한국 역사를 배우는 것은 매일 해야 할 과제지만, 나는 아직 깊은 지식이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기념관 측의 한 관계자는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관련한 논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스티븐스 미국대사의 백범기념관 방문이 주목받는 일이었다. 스티븐스 미국대사의 백범기념관 방문은 한국을 잘 알고 있는 ‘지한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다. 스티븐스 미국대사는 1975년부터 1977년까지 평화봉사단 단원으로 한국에 파견됐고, 원어민 교사로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후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주한미대사관 정무팀장,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부산 영사관에서 일하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스티븐스 대사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의 활동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스 미국대사의 이번 행보에 대해 진보 진영과 뉴라이트 진영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한국에서 역사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알 텐데, 기념관을 방문한 것은 정치적인 제스처가 아니겠나”라고 평가했다. 또 그는 “올해 현대사박물관 착공 등 역사전쟁이 격화될 텐데, 그럴 경우 미국의 의도와 달리 반미 정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스티븐스 대사가 그것을 미리 방어하는 성격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한국현대사) 역시 “임시정부가 비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거기 간 것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행동일 것이다”면서 “미국대사의 뉴스를 접했을 때 뉴라이트 진영이 무척 싫어하겠네라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대사의 행보를 확대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는 “그렇다고 미국대사가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면서 “뉴라이트 진영이 이념전쟁을 벌이는 것은 내놓을 카드가 별로 없기 때문에 벌이는 고도적인 행동으로 그들은 이념전쟁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변은진 팀장 역시 “미국대사가 한국 정부에 압력을 주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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