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경향신문(총 1,238 건 검색)

헌혈 봉사하던 30대 청년, 장기기증으로 5명 구하고 하늘라나로
2024. 12. 13 13:30사회
... 30세 청년이 뇌사 상태에 빠진 후 장기를 기증해 5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한영광씨(30)가 지난 5월 순천향대 부천병원에서 뇌사로 심장, 폐장, 간장, 좌우 신장을...
한강, 노벨 박물관에 찻잔 기증한 이유는
2024. 12. 06 21:06문화
...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고 마무리했다. 그는 이날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찻잔을 기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내게 굉장히 친밀하면서 소중하고 단순한 것을 건네고 싶었다”면서 “그...
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
장애 어린이 휠체어 탑승 편안하게…차량·카시트 기증
2024. 11. 27 20:06 보도자료
... 스타리아 휠체어 리프트, 스타리아 킨더 차량 2대와 어린이 카시트 기증식을 열었다. 이번 기증은 현대차가 이동 약자의 이동권 증진을 목표로 맞춤형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회공헌활동 ‘H...
현대자동차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
2024. 11. 16 14:23문화
... 종교에 활용해 ‘신의 인플루언서’라고도 불렸던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의 유해 일부가 한국에 기증됐다. 그가 교황청으로부터 오는 2025년 성인으로 시성되면 MZ세대 첫 성인이 된다. ‘신의...

스포츠경향(총 366 건 검색)

사유리, 정자 기증→젠 출산 “일본에서는 혼자 키운다 하면 죄송하다고” (꽃중년)
2024. 10. 15 10:27 연예
채널A ‘아빠는 꽃중년’ ‘자발적 비혼모’ 방송인 사유리가 ‘아빠는 꽃중년’에 전격 합류,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4세 아들 젠과 함께하는 ‘체력방전’ 하루를 공개한다. 17일 방송하는 채널A ‘아빠는 꽃중년’ 25회에서는 일본인 출신 방송인이자 ‘45세 꽃엄빠’ 사유리가 새 식구로 합류해 ‘꽃대디’들의 환영을 받는 모습이 펼쳐진다. 우선 사유리는 “몇 년 전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됐는데, 당시 마흔 살이 코앞인 상황이라 가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려운 결정 끝에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 젠을 출산하게 됐다”고 ‘자발적 비혼모’가 된 사연을 밝힌다. 이어 “한국에서는 내 사정을 다 알고 있다 보니 싱글맘의 삶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데, 일본에서는 ‘혼자 키우고 있다’고 말을 하면 ‘죄송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앞으로 그런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방송 출연 계기를 밝힌 뒤, (출산) 결정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전한다. 채널A ‘아빠는 꽃중년’ 잠시 후, 사유리와 아들 젠의 하루가 펼쳐진다. 새벽 6시, 젠의 울음소리로 기상한 사유리는 아침부터 한우를 정성스럽게 구운 뒤, “엄마는 오로지 외국산만 먹는다”며 자식을 위해 뭐든 최고로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젠의 육아에 대해서는 엄격한 면모를 보인다. 젠이 식탁에 발을 올리자 “젠틀맨은 식탁 위에 다리를 안 올려”라고 단호하게 지적하는가 하면, 젠이 밥을 먹지 않고 거실을 돌아다니자 ‘10초 카운트’를 세며 젠을 자리로 부르는 것. 엄마가 숫자를 세자 울면서 자리로 돌아오는 젠의 모습에 대해, 사유리는 “카운트를 셀 때까지 오지 않으면 ‘진실의 방’에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설명한다. 식사를 마친 사유리는 젠을 자신의 자전거 뒷자리에 태워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뒤, 동네 ‘부동산’으로 직행한다. 사유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부동산 사장님은 사유리를 보자마자 김치와 의문의 재료들을 꺼낸다. 알고 보니 사장님은 사유리와 종종 점심을 함께 먹는 친한 사이라고. 이날도 사유리는 사장님이 준비한 감자수제비를 맛있게 나눠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특히 사유리는 “부동산의 ‘김부장님’이 젠의 ‘아빠 수업’에도 참여해줘서 고마웠다”고 털어놔 ‘꽃대디’들을 놀라게 한다. 젠의 아빠 역할을 도와준 부동산 김부장님의 정체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식사를 마친 사유리는 “젠에게 아빠가 없어서, 강하게 놀 수 없는 게 나의 콤플렉스”라며 체력 증진을 위한 운동에 돌입한다. 사유리가 요즘 하는 운동은 무술과 체조, 무용이 결합된 ‘마샬아츠 트릭킹’으로, 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강도 운동을 너끈히 소화한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젠이 하원하자, 사유리는 극강의 에너지를 뿜어내 아들 때문에 이내 체력이 바닥나 ‘녹다운’ 상태가 된다. ‘철인 싱글맘’이자 ‘45세 꽃엄빠’ 사유리의 ‘독박 육아’ 일상과 남모를 고충은 17일 오후 9시 30분 방송하는 채널A ‘아빠는 꽃중년’ 25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종합] 사유리, 정자 기증받은 이유 “가정 꾸리기 싫은데 아이 원해” (4인용 식탁)
2024. 09. 17 08:35 연예
채널A ‘4인용 식탁’ 방송인 사유리가 정자 기증을 받은 과정을 이야기했다. 16일 방송된 채널A ‘4인용 식탁’에서는 사유리가 자택으로 강남, 정인, 한그루를 초대했다. 이날 사유리는 “너무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헤어졌다. 럭비를 좋아하는 변호사였다. 나는 진짜로 사랑했다. 나는 계속 결혼하고 싶다고 했는데 남자가 그러면 도망갔다. 우리 엄마가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이건 폭력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그래서 바이바이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들은 강남이 “차인 거 아니었냐”고 묻자 사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남은 “왜 본인이 바이바이한 것처럼 이야기하냐. 차여서 힘들어하지 않았냐. 누가 보면 찬 줄 알겠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사유리는 “헤어지자마자 소개팅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못하겠더라. 후회할 것 같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 가정을 꾸리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빨리 아이를 갖고 싶었다. 이미 나이가 37살, 38살이었을 때 생리가 불규칙하게 오기 시작했다. 산부인과 가서 피검사를 했더니 수치가 너무 안 좋아서 바로 아이를 가지지 않으면 어려울 수도 있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전화로 들었다. 그때 터널에 들어간 것처럼 깜깜해졌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아이를 그렇게 원하면서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신경을 안 썼다. 나는 언제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를 못 가질 확률이 높다고 들어서 시험관을 빨리했다. 나는 (정자기증을) 일본에서 할 수 있는지 몰라서 처음에는 하와이나 미국에 가서 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일본에서 가능한 병원을 찾아줬다. 그래서 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채널A ‘4인용 식탁’ 그러자 한그루는 “정자를 선택할 수 있는 거냐”라고 궁금증을 드러냈다. 강남 역시 “그분 얼굴을 봤냐”라고 물었다. 사유리는 “(정자 기증자의) 어릴 때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예상을 못한다. 그런데 그 남자분 머리가 고동색이었고 눈이 갈색이었다. (젠은) 나랑 섞였고 서양아이들이 어릴 때 금발이었다 나이 먹고 갈색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정자 기증 비용에 대해선 “사람들이 다 잘생기고 똑똑한 사람의 정자는 비싸다고 생각한다. 다 똑같다. 왜냐면 이걸 금액 차이를 두면 인간매매가 된다. 모든 기증정자는 소중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리고 너무 신기한 게 잘생기고 똑똑한 사람이 인기 있는 게 아니라 정자가 건강한 게 더 중요하다. 이런 사람이 더 인기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때 코로나19가 시작한 김에 국가 이동이 쉽지 않았다. 시험관 한 번 실패하면 몇 년 동안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성공했다. 의사 선생님이 다섯 번 하면 성공할 수 있는데 한 번에는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런데 한 번에 됐다”라고 뿌듯하게 말했다. 한편, 사유리는 지난 2020년 11월 일본의 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들 젠을 출산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기 기증자 발굴과 기증 문화 확산 기여
2024. 09. 10 11:44 축구
한국프로축구연맹,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전략사업팀 소속 정성 프로가 9일 열린 제7회 생명나눔 주간 기념식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표창은 장기 등 기증자 발굴과 기증 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수여됐다. 프로축구연맹은 2016년부터 ‘K리그와 함께하는 희망의 씨앗, 생명나눔 캠페인’을 진행, K리그 전 구성원의 장기기증 서약 동참을 독려해왔다. 2020년부터 이 업무를 맡은 정 프로는 축구를 통해 장기·조직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우리 사회에 생명나눔 문화를 정착하고자 힘써왔다고 연맹은 전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K리그 선수단·구성원 대상 생명나눔 교육, 연중 K리그 경기와 연계한 생명나눔 오프라인 캠페인, 생명나눔 주간 K리그 경기장 그린라이트 캠페인 참여, 선수단 생명나눔 유니폼·머플러 착용 등이 있다.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표창을 받은 프로축구연맹은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국민들이 K리그에 보내준 관심과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고, 공동체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AI로 고령 신장 기증자 위험 예측해 이식 결정한다”
2024. 09. 01 07:19 생활
중앙대병원 조은아 교수, 고령 신장기증자 신기능 손실 예측 AI 모델 개발 조은아 교수, 국제외과저널 논문 발표…‘한국을 빛낸 사람들’ 논문 사진 왼쪽부터 중앙대학교병원 혈괸외과 조은아 교수,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민상일 교수 신장 이식은 말기 신장 질환 환자가 건강한 새 삶을 살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이지만, 기증자는 이식 수술에 따른 위험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건강 문제 또한 고려해 이식을 결정해야 한다. 특히 최근 들어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고령의 신장 기증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고령 기증자들은 나이에 따른 수술 위험 부담뿐만 아니라 신장기증 후 고혈압, 단백뇨 발생 위험이 높고, 장기 신기능 손실로 만성 신장 질환까지 이어질 수 있는 우려가 있어 수술 전 위험에 대해 신중한 평가 후 이식을 해야 한다. 신장 기증자의 신기능 손실을 예측하는데 신장의 피질이 실질적인 신기능을 하는 부위로 보고되어, 신장 피질 부피 측정 지표가 신기능 손실을 예측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동안 컴퓨터 단층(CT) 영상촬영을 통한 신장 피질 부피의 측정방법은 번거롭고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중앙대학교병원(병원장 권정택) 혈관외과 조은아 교수와 서울대병원 민상일 교수 연구팀은 최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장 피질 부피를 측정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해 연구논문(The Role of Artificial Intelligence Measured Preoperative Kidney Volume in Predicting Kidney Function Loss in Elderly Kidney Donors: a Multicenter Cohort Study)을 발표했다. 조은아 교수 연구팀은 컴퓨터 단층촬영(CT) 이미지를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신장 피질 부피를 측정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했다. 이 자동화 모델은 CT 이미지만 올리면 자동으로 신장 피질을 찾아서 분할시켜 부피를 측정해 준다. 연구팀은 인공지능(AI) 모델을 활용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신장을 기증한 생체 기증자 1074명의 수술 전 CT로 신장 피질 부피를 측정하고, 이식 후 남게 될 신장의 부피가 기증 후에 신기능 손실 정도를 예측하는지에 대한 평가를 시행했다. 그 결과, 고령의 신장 기증자들의 신장 피질 부피는 젊은 기증자들에 비해 노화로 인해 감소함에 따라 신장 기능의 급격한 감소를 경험해 신장 기능 저하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특히 이식 후 3년까지는 젊은 기증자들에 비해 고령 기증자들의 신장 기능 저하 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의 신장 기증자들은 젊은 기증자들에 비해 기증 후 신장 기능의 지표로 나타나는 신장이 1분 동안 걸러주는 혈액량인 사구체 여과율(eGFR)이 더 많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수술 전 더 큰 신장 피질 부피를 가진 기증자들은 신장 피질 부피가 작은 기증자보다 사구체 여과율(eGFR)의 감소가 유의하게 적어 상대적으로 신장 기능 감소가 덜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고령이라도 신장 피질 부피가 클수록 이식 후 신기능 저하가 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대병원 혈관외과 조은아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인공 지능을 활용하여 신장 기증자의 수술 전 신장 부피 측정이 기증 후 신장 기능 손실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며, “이를 실제 기증자 평가에 적용함으로써 고령의 신장 기증자에 있어 보다 안전한 기증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술적 진보를 이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민상일 교수는 “인공기능 기술을 활용하여 기존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어려웠던 분석이나 측정을 정밀하고 빠르게 했다”며, “이번 신장 피질 부피 측정 모델이 신장 기증자의 선별과 평가 과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조은아 교수 연구팀의 이번 연구는 외과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 ‘국제외과학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Surgery, IF=15.3)’ 최신호에 게재됐으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 BRIC) ‘한국을 빛낸 사람들(한빛사)’ 논문으로 등재됐다.

주간경향(총 6 건 검색)

[포커스]장기기증 줄고, 그마저 철회까지(2018. 01. 09 10:38)
2018. 01. 09 10:38 사회
ㆍ이식 대기자는 평균 3년 이상 기다려… 시신 예우 소홀 사례로 번복 증가 2016년 한 해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는 3만1923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가 통계를 잡기 시작한 2000년 5343명에 비해 6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의 수는 매년 늘고 있다. 의학기술 발달로 과거에는 이식수술이 불가능했거나 이식을 받아도 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식만 받으면 살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뇌사자로부터 이식받은 신장이나 췌장과 같은 장기는 한 번 이식 받으면 11년까지 생존할 확률이 각각 85.79%, 86.81%로 높은 수준이다. 심장을 이식 받은 환자도 67.62%가 11년 이상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아있는 사람의 신장을 이식 받은 환자의 91.2%가 이식 11년째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2016년 기준). 장기이식만 받으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늘어가지만 문제는 장기이식을 희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유교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때 장기기증 희망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이내 열풍은 사그라졌다. 기증희망이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지 않다. 당사자가 생전에 등록을 취소하거나, 유족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장기기증은 할 수 없다. 2016년 장기이식 대기자는 3만1923명에 달했지만 장기기증으로 이어진 사례는 2700여건에 불과하다. 각 장기별로 나눠도 최대 4000여명만이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네이버TV 웹드라마 화면 캡처 이식대기 중 사망자 지난 5년간 7766명 장기이식관리센터 통계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이식대기 등록을 한 날로부터 이식수술을 받기까지 평균 대기시간은 2016년에 1196일이다. 3년 이상을 기다려야 장기이식이 가능한 셈이다. 그나마 폐는 평균 116일을 기다리면 장기이식이 가능하다. 신장은 1934일 즉, 5.2년을 기다려야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장기이식 평균 대기시간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사람보다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평균 1146일을 기다려야 했다면 2015년에는 평균 1185일을 기다려야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하루 평균 4명의 환자가 끝내 장기이식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한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기이식을 받지 못해 숨진 사람은 2013년 161명을 기록했고, 지난해 말까지 5년간 7766명(누적)이 이식대기 등록 중 사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10월 한 언론에서 병원이 장기기증한 20대 환자의 시신을 제대로 예우해주지 않고 유가족에게 시신처리를 시켰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불신은 더 높아졌다. 실제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해당 보도 이후 기증을 철회하려는 문의가 늘었고, 실제 기증의사를 철회한 건수도 평소 대비 9배 증가했다. 월평균 취소자는 150명 내외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보도 직후 해명자료를 내놓고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업무협약을 맺은 병원은 기증원이 장례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타 병원은 매뉴얼을 만들어 장례지원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아들의 생전 기증의사에 따라 장기기증을 했다가 제대로 된 예우도 받지 못한 사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별도의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는 “해당 병원은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협약을 맺지 않고 별도로 뇌사판정 대상자 관리를 하는 전문기관 병원”이라고 선을 그으며 “다만 운구과정에서 기증자 예우가 다소 소홀했다”고 밝혔다. 장기이식관리센터는 지난해 12월 장기이식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KBS와 ‘컨버전스티비’가 공동제작한 <뜻밖의 히어로즈>라는 10부작 드라마를 제작지원하기도 했다. 살인사건 현장을 조사 중이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조사팀 수석연구원이 의문의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진 뒤 3명의 고교생에게 장기를 이식해주고, 그들은 특별한 힘을 갖고 범인을 찾아낸다는 내용의 웹드라마다. 다양한 홍보를 통해 인식을 개선하는 것도 좋지만 문제는 당장 장기기증을 희망한 사람들이 기증의사를 번복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뇌사자를 위해 고별기도를 하고, 유가족의 장례절차를 함께 도우며 매년 추모행사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병원마다 장기기증자에 대한 예우는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소위 ‘나쁜 사례’가 나오면 장기기증 취소자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웹드라마로 홍보, 인식전환은 ‘글쎄’ 장기기증 독려 차원에서 만들어진 웹드라마 역시 청춘드라마 이상의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웹드라마 속에는 뇌사상태에 빠진 수석연구원의 장기가 적출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의사의 최종 뇌사판정 뒤에도 다시 한 차례 뇌사확인 및 뇌파검사를 하고, 뇌사판정위원회를 열어 장기기증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또 한 가족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하자 “식물인간은 자가호흡이 가능하고, 약간의 움직임도 있기 때문에 뇌사자와 달리 장기이식이 안 된다”는 정보도 제공한다. 그러나 이야기 전반이 세 고교생의 삼각관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좋은 뜻으로 장기기증을 희망했다가 취소하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줄 만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한연자씨(54)는 “아이들과도 여러 차례에 걸쳐 상의한 끝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지만 취소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2015년 남편과 함께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다. 한씨는 “(기증자 시신을 함부로 다뤘다는) 보도도 봤고, 주변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신장만 떼간다더니 폐도 가져갔다더라’ ‘시신을 아무렇게나 꿰매서 나중에 유가족이 수습해 보면 시신이 너덜너덜하다더라’ 등의 말을 계속 했다”며 “비록 죽으면 고통도 없다고는 하지만 께름칙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기증이 안 된다고는 하지만 굳이 아이들 귀찮게 하지 않고 내 선에서 취소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장기이식관리센터는 “향후 모든 병원에서 동일한 장례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표준화를 추진할 예정이며, 기증자 유가족분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집
[우정(郵政)이야기]‘행복한 기증’ 배달한 집배원(2015. 01. 27 15:16)
2015. 01. 27 15:16 경제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 간다고 한다. 도움을 주기보다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세상을 조금이나마 살 만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차갑고 각박한 세상에 온기를 전하는 사람이 있어 어쩌면 이 세상이 따뜻한 인간미를 잃지 않고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정사업본부 충주우체국 김웅기 집배원(31)도 세상에 온기를 전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 8일 혈액암으로 투병 중인 20대 환자에게 골수(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골수 기증이 가능한 확률은 부모와는 5%, 형제와는 25%, 타인과는 2만분의 1이다. 김 집배원은 수도경비사령부에서 군복무 중이던 2007년 골수 이식 서약을 했다. 하지만 7년 동안 골수 이식을 해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2만분의 1의 확률은 그만큼 낮았다. 지난해 11월 김 집배원은 드디어 자신의 골수와 유전자가 99%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지만 꺼져가는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골수 기증에 나섰다. 김 집배원은 “백혈병 판정을 받고 오직 골수 이식이라는 희망의 끈을 잡고 하루하루 죽음과 싸우는 환자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장애도 있었다. 가족이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부모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 골수 기증 등록자 중 일치자가 나타난 1만7455명 중 절반 이상(1만155명·58.2%)이 기부의사를 번복했다. 가족의 반대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20대 혈액암 환자에게 골수를 기증한 충북 충주우체국 김웅기 집배원이 근무지에서 포즈를 취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하지만 부모도 사람을 살리겠다는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는 “조혈모세포 채취과정을 꼭 기사로 알려주길 바란다”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골수 기증을 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혈모세포 채취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헌혈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3일 정도 약물투여를 통해 조혈모세포를 뼈 속에서 혈관으로 모으는 과정이 하나 더 있을 뿐이다. 혈액에서 조혈모세포를 뽑은 뒤 혈액은 다시 기증자 정맥으로 돌려보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과거처럼 엉치뼈나 척추뼈에 구멍을 뚫고 골수 채취를 하지 않는다. 기증된 골수는 백혈병, 혈액암, 재생불량성 빈혈 등 난치병 환자에겐 생명수와 같은 것이다. 업무에 복귀한 김 집배원은 “마치 내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라면서 “새로운 삶을 얻은 듯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를 보면 토마스 람게가 에서 말한 ‘2-1=3 법칙’이 떠오른다. ‘2-1=3’은 하나를 나누면 하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더 늘어난다는 ‘행복의 법칙’이다. 다시 말하면 장기기증, 기부, 봉사 등은 나눌수록 커질 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큰 행복을 맛본다는 의미다. 사실 ‘2-1=3의 법칙’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 미국 미시간대는 최근 지난 10년 동안 27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람의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봉사하는 사람들이 더 큰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미국 하버드 의대도 지난 1998년 장기기증, 봉사활동 등 선한 일을 하거나 심지어 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면역항체가 급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테레사 효과’라고 한다. ‘테레사 효과’는 김 집배원이 주위 사람들에게 배달해준 가장 귀한 사랑의 선물이 아닐까.
우정이야기
[민선5기 단체장에게 듣는다]“명사 기증 도서로 도서관 만들겠다”(2010. 06. 23 15:07)
2010. 06. 23 15:07 정치
ㆍ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 당선자, 도서관 부흥운동 적극 추진 “관악구를 한국 최고의 지식문화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 당선자(민주당)의 구정 목표는 간단 명료하다. 관악구를 문화와 지식의 전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략적 목표가 지식문화 도시라면 내용은 ‘도서관 부흥운동’이다. 그는 ▲명사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인 ‘리빙 라이브러리’ 운영 ▲다중 이용시설 내 작은 도서관 설치 ▲책과 함께 생활하자는 취지의 ‘북스타트와 북피니시 운동’ 전개 ▲서울대와 연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 실시 등을 공약했다. 이들 공약이 관통하는 의미는 도서관을 지적문화 활동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서관은 국가의 부 창출하는 공간” 유 당선자는 228개 선거구에 출마한 기초단체장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도서관 사업을 공약 전면에 내세웠다. 역대 선거에서도 없는 일이다. 사실 유 당선자를 도운 선거 참모들조차 도서관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도서관 공약의 득표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당선자는 아예 개발과 교통 관련 공약을 선거공보물에서 제외시켰다. 유 당선자는 “질 높은 도서관에 대한 구민의 요구가 높다는 확신이 있었다”면서 “도시개발 사업공약을 안했을 따름이지 (사업을) 안하겠다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지역개발 사업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다. 관악구에는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인적·사회적 특성이 있다. 1인 가구 비중이 46%(서울 평균 35%)나 된다. 게다가 사회 초년생에 해당하는 25~29세, 영육아가 있는 연령대인 30대 비중이 높다. 상대적으로 소득도 낮다. 가구소득 100만~200만원대는 서울시가 13.7%이지만 관악구는 19.1%에 이른다.  그만큼 복지와 교육의 수요가 큰 셈이다. 유 당선자는 “이런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게 바로 도서관 부흥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의 도서관은 책 읽는 공간을 넘어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공장”이라고 전제하고 “주민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도서관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 일차적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선 도서관 예산을 3배로 늘릴 계획이다. 6월 말 현재 공공도서관과 평생교육 관련 교육 예산은 41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일반회계의 2%에 불과하다. 그는 관악주민이 자랑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명사들이 만드는 도서관’을 염두에 두고 있다. 유 당선자는 “작가를 포함한 저명인사가 기증한 도서로 만드는 도서관을 관악산에 만들고 싶다”면서 “도서를 기증한 명사들의 개인 기념관을 겸한 도서관이 되면 그 자체로 도서관의 가치를 높이고 일반인의 이용도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는 박원순 변호사의 아이디어다. 박 변호사도 이러한 도서관을 만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다 내놓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유 당선자가 ‘도서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국회 도서관장으로 있으면서부터다. 그는 스스로를 “도서관 입장에서 보면 ‘창밖의 남자’였다”라면서 “세계 유수의 도서관을 여행하면서 지식문화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지식과 정보가 돈이 되는 지식정보 시대의 핵이 바로 도서관이라는 얘기다. 관악구의 사회적 환경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무엇보다 서울대라는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유 당선자는 “서울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곧 관악구 발전의 관건”이라면서 “그동안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관악구를 위해 서울대 두뇌를 활용하는 관악밸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미국 벤처기업의 메카라는 실리콘밸리도 스탠퍼드 대학과 버클리 대학이라는 지역적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관악밸리’의 구체적인 성안을 위해 3명의 서울대 교수를 ‘관악구청 인수위원’으로 위촉했다. 유 당선자의 전도가 양양한 것만은 아니다. 난곡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유도고속차량(GRT) 사업이 대표적이다. 관악구가 10년 전부터 이 사업에 2800억원을 투입해 93%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가 올해 갑자기 이 사업의 백지화를 천명했다. 경전철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서울시 교부금이 구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독자적 마무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유 당선자는 “‘오세훈 정치자금법’이 없었다면 나는 (돈이 없어) 출마도 못할 사람”이라면서 “문화 중심 행정이라는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는 만큼 이 문제도 잘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악구청장은 사실 유 당선자의 오랜 꿈이다. 그는 민주당 최장수 대변인(4년 10개월)으로 활동하면서 ‘명대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사실 그의 꿈은 중앙정치가 아니다. 유 당선자는 “구청장을 못해서 중앙정치를 한 것이지…”라면서 “조직과 예산을 책임지고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실사구시적 정치를 하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지난 1995년 관악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999년에는 구청장 경선에 나섰다가 패배하는 바람에 뜻을 펴지 못했다. 그 대가로 얻은 정당 생활, 청와대 비서관, 중앙부처 국장, 정부 산하 단체 대표 등 많은 경험을 통해 일관된 철학과 비전으로 창조적인 구정을 펼쳐 나가겠다는 다짐이 더 우렁차다. 유종필과 도서관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 당선자는 “도서관은 나에게 하나의 인연이자 운명”이라고 말한다. 인연은 인위적이든 우연이든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 인연에 구차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운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유 당선자에게 도서관은 이런 인연이다. 그는 청와대 정무비서관, 한국 최장수 대변인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 중에서도 국회 도서관장에 애정과 애착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유 당선자와 도서관의 인연은 고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 당선자는 “고등학교 때는 도서관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고교 시절에 읽은 책들이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서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한 것도 책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연이 운명처럼 느껴진 것은 사서 출신인 부인과의 결혼 때문이다. 그의 부인은 사서계에서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관악도서관·아태재단도서관에서 일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인 일산 서재를 정리했다. 그 이전에 두 사람은 한계레신문 창간 멤버로 함께 일했다. 그 당시 부인은 조사부 기자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꽃핀 것도 역시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더욱 뚜렷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가 ‘뜻하지 않게’ 국회 도서관장을 맡게 되면서부터다. 유 당선자는 국회 도서관장 당시 “우리 집엔 도서관의 3대 인적 요소(관장-자신, 사서-부인, 이용객-자녀)를 다 갖추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국회 도서관장으로서 자부심의 표현이다. 자부심은 열정과 창의를 부른다. 그의 재임 기간에 ▲평일 밤 10시까지 야간 개관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음성자동변환(TTS) 시스템 구축 ▲지체장애인을 위한 원스톱 대출서비스 제공 ▲인터넷 열람 공개 데이터베이스(DB) 확대 ▲국정 현안 관련 정보책자 팩트북 ▲리빙 라이버리 운동 ▲국회 전자도서관 독도분관 개장 등 많은 일을 했다. 일관되게 ‘열린 도서관 만들기’를 추진해 왔다. 그는 세계 유수의 40여 개 도서관 기행을 하고 난 뒤 <세계 도서관 기행>(웅진 지식하우스)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도서관 문화 창달을 통해 ‘관악지식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게 된 것이다.
민선5기 단체장에게 듣는다
[사회]기증한 땅이 제3자에게 팔린 까닭은(2009. 11. 26 10:36)
2009. 11. 26 10:36 사회
ㆍ경주 71세 할머니, 1만3천평 목장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에 기부 후 말썽 경주시 평동의 과거 고정화 할머니 소유의 땅. 김진홍 목사는 증여와 매매 형식으로 이 땅의 지분을 받아 자신들의 투자비용을 회수하고자 2007년에 제3자에게 매매했다. 땅을 기부한 사람의 의사와 상관없이 투자비용을 회수하고자 기부받은 땅을 제3자에게 매매하는 것은 정당할까. “억울하다”며 하소연하고 나선 이는 고정화 할머니(71·경북 경주시 평동)다. 그리고 기부받은 땅을 제3자에게 팔아넘긴 쪽은 김진홍 목사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이끌었고 이명박 정권 탄생에 혁혁한 기여를 한 바로 그 김진홍 두레교회 목사다. 할머니는 지금도 그 땅에 살고 있다. 졸지에 자신이 살던 땅의 주인이 바뀌어 쫓겨날 처지가 된 것이다. 기자는 경북 경주로 할머니를 찾아가 사연을 들어 봤다. 인터뷰 말미에 고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입장을 번복했다. 김 목사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이가 목사를 속여 땅을 가로챈 거에요. 내가 목사를 만나 차분히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면 김 목사는 땅을 돌려줄 것입니다.” 법무법인 공증 기부… 합의서 실종 땅이 ‘제3자’에게 넘어간 후 할머니는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할머니의 지인들에 따르면 20년 전만 하더라도 젖소를 키우며 1만3000평의 목장을 운영하던 ‘여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폐허로 편한 첩첩산중의 산골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쓸쓸이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고 할머니와 김 목사의 관계를 증언하는 한 장의 사진이 남아 있다. ‘두레마을’이라는 간판을 배경으로 김 목사 부부와 고 할머니, 그리고 당시 파견나온 이 모 전도사(현재 목사, 미국 거주) 등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남에게 넘어간 한때 고 할머니 소유의 목장 내 건물 앞에서 찍은 것이다. “1998년에 TV를 보다가 처음으로 김 목사가 설교하는 것을 봤어요. 생면부지였지만 그날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고 참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 할머니는 협동조합장의 추천서를 들고 김 목사를 무작정 찾아갔다. 1999년에 고정화 할머니와 김진홍 목사, 김 목사의 친동생 김철웅씨는 서울의 유명 법무법인에서 그 땅과 관련한 ‘기부 및 합의서’를 작성해 공증했다. 그러나 이 서류는 현재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법무법인은 관련 규정에 따라 3년 후 폐기했고, 고 할머니는 사진과 함께 이 공증서류의 표지만 갖고 있다. 김 목사 측도 “관리가 되지 않아 이 서류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라고 밝혔다. 고 할머니가 기억하는 공증 내용은 ‘(고 할머니는) 토지 및 건물의 2/3을 기증한다. 김 목사는 할머니의 부채를 해결해 주는 한편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급한다. 고 할머니는 사망 후 나머지 지분을 완전히 기부한다’는 등이었다. 김 목사 측이 기억하는 계약 내용도 대동소이했다. 고 할머니는 자신은 기증서약을 망설였지만 자리에 배석한 김철웅씨가 ‘김 목사님은 언론을 민감하게 생각한다. 문제가 있으면 언론에 알리면 되지 않냐’고 자신을 안심시켰다고 주장했다. 2000년 10월 고 할머니와 김씨가 나머지 지분을 전부 넘기는 계약을 체결한다. 그런데 매매계약이다. 서류를 보면 1500만원에 땅과 건물 지분 전부를 넘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세월이 흘렀지만 비정상적인 가격이다. 김 목사 측은 “그 거래로 이익을 본 사람은 고 할머니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여세 등을 내야 하지만 가격을 낮춰 신고했기 때문에 세금을 덜 낸 것은 고 할머니가 아니냐는 반론이다. 고 할머니는 “김 목사 측이 잔밥처리장을 만드는데 등기를 다 넘겨주면 30억원 가량의 융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융자를 받아 땅값을 치러주겠다고 약속했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법적 소유권은 완전히 김 목사 측으로 넘어가게 된다. 고 할머니는 그후 이곳 건물(사진 참조)에 산후조리원을 열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 경주 두레마을 설립 계획 당시의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진홍 목사,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건강할 당시의 고정화 할머니다.법적 소유가 김 목사 측이므로 ‘무상임대’ 형식으로 서류를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명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사가 중단되고,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갈등은 커졌다. 가압류가 들어왔지만 이미 고 할머니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가압류당한 이는 김철웅씨였다. 부채에 대한 이자 등에 더하여 급기야 경매로 땅이 넘어가기 직전 상태까지 이르렀다. 고 할머니는 ‘현금 영수확인 확약서’를 쓰고 1000만원을 받아 이자를 납부함으로써 경매 상태를 해제했다. 이 서류는 현재 남아 있다. 김 목사 측은 “마치 밑 빠진 독과 같았다. 요구하는 것이 하도 많아 결국 본인이 돈을 받았다는 확인서까지 남긴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후 김철웅 명의로 된 부채의 이자는 고 할머니가 납부했다. 고 할머니에겐 서류에선 확인되지 않는 믿음이 있었다.  김 목사로부터 지원받은 돈을 돌려주면 땅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김 목사 측은 현금영수확인 및 확약서에 첨부한 ‘지출내역’을 근거로 그동안 ‘투자비용’을 반환하지 않으면 ‘자구책’을 쓰겠다는 내용증명을 2006년 고 할머니 앞으로 발송했다. 그러나 이 내용증명엔 그 자구책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 2007년 2월에 김철웅은 정○○(경주시 거주)와 1억2000만원에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서류상으로는 1억2000만원으로 되어 있지만 양측 모두 실제 판매금액은 4억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중 계약이었다. 게다가 김씨도 정씨도 땅의 진짜 주인이 아니다. 김씨는 김 목사의 동생, 정씨는 고 할머니가 사는 동네주민 김○○씨의 친인척이다. 정씨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친인척인 김씨가 자신의 명의를 빌린 것”이라고 인정했다. 고 할머니는 허탈해 하며 말했다. “어느 날 누가 찾아와 주인이 바뀌었다면서 명도하고 나가라고 합디다. 기가 막혔습니다.” 이중계약 뒤 제3자 명의로 둔갑 김진홍 목사 측 입장은 어떨까. “겪어보지 않고서 그 할머니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돌려줄 돈도 없으면서 김 목사 사택에까지 찾아와 땅을 돌려달라고 어거지를 부린 사람이다.” 조후영 두레공동체운동본부 감사·개발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사택 난입사태’ 후 김 목사의 대리인으로 사태 해결에 나섰다.  제3자인 김○○씨에게 재매각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의 행정 업무는 당시 사무국장인 김현조씨가 맡았다고 조 위원장은 말했다. 결국 매매한 땅을 재매매했으므로 김씨와 정씨의 거래에 고 할머니는 법적으로는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셈이 된다. 기부 관련 단체에서는 어떻게 볼까. 한 기부단체 관계자는 “전후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뭐라 단언할 수 없지만 설령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윤리적으로는 김 목사 측의 행위가 상당한 문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유철형 변호사는 “매매든 증여든 당초 계약 위반이 있다면 해제됐을 때 서로 원상 회복하는 단계인데 부동산이 이미 제3자에게 매매됐다면 부동산 가액을 할머니에게 줘야 한다”면서 “다만 할머니도 돌려줘야 할 돈이 있는 만큼 서로 청구하는 관계이므로 상계 처리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목사 주변에서는 “두레교회를 운영하면서 김 목사의 이름을 판 숱한 사기사건에 휘말리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그 책임을 떠안고 만다”고 평가한다. 조 위원장은 “우리가 그 땅을 취해 어떤 이득을 본 것도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반대했다. 우리가 정보가 없어 실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 쪽은 김 목사가 그 땅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경매 처분이 되어 땅주인이 바뀌었다는 입장이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김 목사는 자신의 투자비용을 회수했고, 할머니는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자기 소유의 땅을 잃었다는 것이다.

레이디경향(총 15 건 검색)

의사 꿈꾸던 12세 소년…5명에 장기기증 후 하늘로
2022. 05. 02 11:35 화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김상현 군. 한국장기조직 기증원 제공의사를 꿈꿨던 12살 소년이 생명 나눔을 실천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김성현 군이 심장, 신장, 간장, 폐장 등을 또래 5명에게 기증하고 숨졌다고 밝혔다. 김 군은 지난 4월 6일 두통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김 군의 부모는 의료진의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점차 나빠지는 아이의 상태를 보며 “착한 아이였으니 좋은 일 하면서 보내주자”며 기증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2남 중 첫째로 태어난 김 군은 조용하고 진중한 성격으로 “목이 아픈 엄마를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마음씀씀이가 깊었다고 한다. 김 군의 아버지는 “장기를 기증 받은 친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성인이 돼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건강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수 코디네이터는 “어리고 착한 아이가 떠난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도 힘든 일인데,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기증 동의해주신 보호자에게 감사하다”며 “아들이 다른 이의 몸속에서라도 다시 살아 숨쉬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현 군이 좋은 일을 하고 가길 바라셨다”고 전했다.
장기기증
인체 조직 기증받아 골육종 극복한 황연옥씨의 새 삶
2014. 02. 27 16:47 화제
골육종은 뼈에 악성종양이 생기는 희귀병으로 뼈암의 일종이다. 하지만 초기에 종양을 제거하고 치료를 받는다면 생명에 지장이 없다. 들어낸 부위가 크면 뼈를 비롯한 조직 이식이 필요하다. 10대에 발병해 30대에 뼈 이식수술을 받은 황연옥씨의 다리는 누군가의 생명을 이어받은 결과지만 움직이고 일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뼈와 혈관, 피부 등의 인체 조직을 사후 기증하면 최대 1백 명을 살릴 수 있다.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기대주였던 노진규 선수는 통증을 참으며 훈련하다 왼쪽 팔꿈치와 어깨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제야 골육종으로 인해 약해진 뼈가 충격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서울원자력병원에서 왼쪽 어깨 부위에 생긴 악성종양과 뼈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노진규는 앞으로 6개월 이상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완치 확률은 60~70% 정도라고 한다. 한 국가대표의 올림픽 출전의 꿈을 가로채고, 황연옥씨(33)의 10대를 투병으로 보내게 한 골육종은 뼈에 생기는 악성종양이다. 뼈의 성장이 왕성한 사춘기에 가장 빨리 자라는 다리나 팔에 잘 생긴다. 발생률은 여자보다 남자가 2배 많은데, 통증을 성장통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1백만 명당 10~15명 정도 걸릴 만큼 드문 병이다. 암의 전이가 가장 흔한 곳은 폐인데, 다리에 발병한 경우 생존율이 더 높다. 성장기에 맞닥뜨린 골육종이라는 병 황연옥씨는 열두 살 때 골육종 판정을 받았다. 당시 왼쪽 다리의 종양을 떼어 내고 이를 대체하는 인공관절을 이식했고, 20년간 무릎 뼈가 다 펴지지 않는 불편에도 늘 미소 띤 얼굴이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수술비를 대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을 위해 일찍이 취업전선에 나섰고, 7년 전에 남편 김정현씨를 만나 결혼도 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 바삐 사느라 불편한 것도 잊고 있던 황연옥씨에게 다시 고통이 찾아온 것은 지난 2012년. 20년 동안 큰 탈 없이 지냈지만 인공관절을 덧댄 다리가 부러진 걸 모르고 몇 달이나 방치한 것이 화근이었다. 인공관절을 다시 넣어야 했는데, 문제는 20년 전의 인공관절 부품을 구할 수 없다는 것. 게다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수술해줄 의사를 찾았지만, 워낙 힘든 수술이라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마지막으로 찾아간 서울원자력병원에서 뼈 이식수술을 담당할 전대근 과장을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 전 과장은 20년 전 황연옥씨의 수술을 집도했으며, 이후 수많은 골육종 환자들의 수술을 집도한 베테랑 의사다.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두 달 뒤 다시 걷게 된 순간은 기적 그 자체였지만 그러기까지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견뎌내고 불편한 다리와 더불어 살아야 했다. 뼈 이식수술 후 병원에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황연옥씨. 아직 어린 골육종 환자들에게 평범한 가정을 이룬 그녀의 존재는 희망과도 같다. “다리가 쑤시고 아팠는데 성장통인 줄 알았어요. 종양 부위가 약해지는 바람에 뛰다가 넘어져서 금이 갔죠. 병명을 몰라서 여러 병원을 떠돌다가 결국 전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어요.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못 갔고, 중학생 때는 깁스처럼 생긴 보조기를 차야 해서 교복 치마를 못 입고 바지를 맞춰 입었어요. 사춘기라 남들 시선도 많이 의식해 더 힘들었어요. 한번은 방과 후 친구들과 놀러 가려고 정류장에 서 있는데 버스가 그냥 지나쳐버리는 거예요. 친구들은 뛰어가서 버스를 잡아타는데 전 못 뛰잖아요. 저만 남겨놓고 버스가 출발했어요.” 뒤늦게 알아차린 친구들이 돌아와줬지만 그때의 속상함은 쉬 가시지 않았다. 다리를 구부리지 못하는 그녀에게 재래식 변기가 있는 학교 화장실은 내내 불편했다. 입원 치료 중에는 독한 약물 때문에 구토가 일상이다시피 했다. 당시는 완치율도 지금보다 훨씬 낮을 때(지금은 70%가 넘지만 당시엔 절반 정도였다고 한다)라 같은 병실에서 회복 중이던 또래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것도 지켜봐야 했다. 의연한 황연옥씨는 ‘다시 건강해진다면 정말 날아다닐 텐데’라고 되뇌면서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넘길 수 있었다. 타고난 몸이 워낙 건강하기도 했고, 묵묵히 병실 뒷바라지를 하며 힘든 티를 내지 않았던 가족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지금까지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요. 특성화고교 졸업 후 취업을 했고 무사히 결혼도 했어요. 아이를 낳아보니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더 사무쳐요. 만약 내 자식이 아프다면 저도 그렇게 희생할 것 같아요. 지금도 언니랑 동생에게는 많이 미안해요. 제 병원비 때문에 부모님이 공부를 많이 시키지 못하셨거든요. 부모님께 보상이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밥도 많이 사드리고 선물도 해드리는데, 그걸 바라지 않으세요. 제가 애 낳고 이렇게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요.” 2007년에 결혼해 얻은 여섯 살 태산이는 청소도 돕고 잔심부름도 할 만큼 기특하다. 엄마가 수술하고 나서 잘 못 걸을 때는 엄청 걱정됐는지 이불도 깔아주고 빨래도 척척 개는 모습을 보면 부쩍 철이 든 것 같다. 가족 덕분에 되찾은 평범한 행복 황연옥씨의 치료비가 20년 전 기준으로 1억원을 넘길 정도였다니 얼마나 큰돈인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버는 족족 병원비로 들어가 저축해둔 돈도 없어 형편이 빤한데, 작년에 다시 큰 수술을 치르면서 여러모로 마음고생도 치렀다. 인공관절의 수명이 10년 정도로 영구적이지 않아서 재수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황연옥씨는 아예 뼈를 이식하기로 결정한 뒤 비로소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20년 동안 인공관절의 신세를 졌지만 다리뼈를 이식받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만큼 의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온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지금껏 전신마취만 예닐곱 번을 한 그녀는 이번에는 한결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치료도 예전보다 많이 쉬워졌고, 수술 과정에서도 환자를 위한 배려를 느낄 수 있어 수술실에 들어갈 때의 무거운 마음도 덜했다고. “서울원자력병원 전대근 과장님이 집도하셨어요. 어렸을 땐 깐깐한 인상이었는데 인자한 느낌으로 바뀌셨더라고요. 격려도 많이 해주셨고요. ‘걸으려고 수술하는 거잖아. 한번 (수술)해보지 뭐’ 하시는데 눈물이 쏟아졌어요. 이 분야에서 명의로 알려진 분이고 제겐 은인이자 부모님만큼 감사한 분이죠. 수술 전에 상담하면서 이식할 뼈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수술 후 시간이 지나면 뼈끼리 흡수를 한대요. 그걸 보고 수술을 결심했는데 지금도 엑스레이를 보면 제 다리인데도 정말 신기해요. 뼈뿐만 아니라 혈관이나 피부 조직도 이식해서 사람을 살리는 걸 보면 이식 기술이 대단한 것 같아요.” 인공관절을 제거하고, 이식받은 뼈를 넣어서 묶고, 왼다리 길이를 늘이는 장치까지 넣는 대수술이었다. 그 영광의 흉터가 발목부터 무릎 위쪽까지 길게 남아 있다. 다리 전체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엄마가 낯설어 아이들은 뒷걸음을 칠 정도였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날이 흐리면 다리가 쑤시고 아파서 근처에도 못 오게 했을 텐데 재활 치료까지 끝난 지금은 아이들에게 다리를 주물러달라고 할 만큼 이물감이나 고통이 사라졌다. 태산이는 의사가 돼 엄마의 다리 흉터를 없애준다고 큰소리를 치고, 둘째 태연이도 이에 질세라 간호사가 되겠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대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아이들이 다리를 주물러주기에 제가 ‘아이고, 시원하다’ 했더니 ‘울 엄마, 다 나았네’ 해서 한참 웃었어요.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조심하라고 했잖아. 다리 다치면 큰일 나’ 그래요. 제가 조심하지 않아서 다친 줄 알아요(웃음). 겉보기에 크게 불편한 건 아니지만 목욕탕을 같이 가면 흉터가 보이니까 걱정되나 봐요.” 골육종 환자들은 완치 후에도 약물 치료의 영향으로 불임의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원체 건강한 덕에 두 아이도 선물받고, 아내가 다시 사회생활을 하게 된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며 도와주는 남편을 만난 것도 큰 복이다. 황연옥씨가 다섯 시간이나 걸린 대수술을 끝내고 나왔을 때, 마취 때문에 흐릿한 기억속에서도 단 하나 또렷한 장면은 남편이 엉엉 우는 모습이었다고. 난치병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뼈 이식수술로 한결 걸음걸이가 자연스러워진 황연옥씨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조직 기증에 대해 알게 됐다. 골육종은 제때 치료하고 이식을 받지 않으면 성장기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병이기 때문에 사후 뼈 기증자가 꼭 필요하다. 또 「지선아 사랑해」의 이지선씨처럼 심각한 전신 3도 화상을 입었을 경우 신속한 피부 기증과 이식이 생사를 좌우한다고 한다. 심한 화상으로 손실된 피부를 통해 체내 수분이 급속히 빠져나가기 때문에 자신의 피부나 기증받은 타인의 피부를 이식해야 한다. 아직은 기증되는 조직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입해오는 비율이 높지만 이식하는 조직의 질병 유무, 조직 적합성을 고려하면 당연히 국내에서 검증 시스템을 거쳐 기증받는 조직이 월등히 안전하다. “저도 남편하고 같이 조직 기증 서약을 했어요. 간병을 도와준 여동생도 서약했고요. 저처럼 아픈 사람의 다리가 돼줄 순 없겠지만 건강한 눈과 다른 조직은 줄 수 있잖아요. 제게 도움을 주신 분은 지금 세상에 안 계시지만 그래도 꼭 보답하고 싶었어요. 20년 동안 힘든 시간을 지나온 만큼 힘들게 투병하고 있는 어린 골육종·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도 싶고요. 소아암을 앓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병실로 찾아오셔서 치료는 어떻게 했는지, 출산은 잘 했는지 물으시더라고요. 그만큼 주변의 관심이 많고 어린 친구들한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제가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면 점점 치료도 쉬워지고 고통도 줄어들 거예요.” 뼈를 이식하기까지 적합한 조직이 없어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뼈 이식도 보험은 가능하지만 수술비가 만만찮아 걱정이었는데, 모금 덕도 보고 병원에서 상당한 비용을 지원받았으니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어차피 나중에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면 생전에 가졌던 것을 하나도 누릴 수 없으니 사는 동안 많은 것을 나누고 살아야 할 텐데, 그중 가장 고귀한 것이 몸의 일부를 타인을 위해 내어놓는 일이 아닐까. 티 없이 맑은 황연옥씨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뒤 기꺼이 기증자가 됐듯이 수혜자가 곧 기증자가 되는 작은 기적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리라 기대해본다. Tip 인체 조직 기증, 어떻게 할까 어떤 인체 조직을 기증할 수 있나? 뼈, 피부와 근막, 연골, 양막, 인대, 심장판막, 혈관 등을 기증할 수 있다. 뇌사(심장은 박동하지만 뇌는 정지된 상태) 상태에서 가능한 장기 기증보다 기증할 수 있는 시기와 범위가 넓고 면역 거부 반응이 없다. 기증 절차와 방법은? 19세 이상 성인이면 기증 서약을 할 수 있다. 실제 사망 후에 유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기증이 이뤄지므로 서약 후에도 철회가 가능하다. 평소 가족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좋다. 사망 후 유가족이나 의료진을 통해 기증 의사를 밝히면 코디네이터가 파견돼 상담과 적합성 평가를 거쳐 조직 기증이 진행된다. 시신은 복원 절차를 거쳐 유가족에게 인도되는데 대략 15시간 걸린다. 조직 기증 외에 다른 방법이 있나? 자동이체와 카드 결제를 통한 정기 후원 및 일시 후원, 네이버 해피빈 모금함을 통해 환자들을 도울 수 있으며, 고보습제를 매일 발라야 하는 화상 환자를 위해 만들어진 스킨푸드의 ‘로열허니 착한 수분크림’은 1개 구매할 때마다 화상 환자에게 1개가 기부된다. 사고나 질병으로 조직 기증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연간 3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한 사람의 기증 서약은 최대 1백 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는 국내 유일의 인체 조직 기증 전문 홍보 기관으로 개인 및 기업 후원을 통해 ‘천사의 선물’ 기금을 마련하고, 화상과 골육종 환자 등 인체 조직 기증이 시급한 환자들을 지원하는 한편, 기증 서약을 접수한다. 문의 1544-0606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김영길 ■사진 제공 /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참고 서적 /「생명을 나눠요 생각을 나눠요(한국인체조직기증본부, 맥스미디어)」>
CJ그룹 안주인 김희재씨가 밝히는 결혼생활과 남편에게 신장 기증한 사연
2013. 09. 26 17:25 화제
지난 7월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횡령과 배임·탈세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 기소됐다. 말기 신부전증을 앓고 있던 이 회장은 병세가 악화되면서 구속 집행 정지 상태로 지난 8월 28일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 회장에게 신장을 공여해준 사람은 바로 그의 부인 김희재씨였다. 남편에게 신장을 떼어주기까지, 그 심경을 「레이디경향」이 들어봤다. 김희재씨의 젊은 시절 모습(왼쪽). 외손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희재씨. ‘두 남자’를 위한 신장이식 부인 김희재씨(53)로부터 기증받은 신장으로 남편 이재현(53) 회장이 신장이식 수술받은 지 2주가 지났다. “전체적으로 잘됐다”라는 주치의의 의견도 들었다. 본인 역시 워낙 건강 체질이라 그런지 많이 회복된 느낌이다. 김희재씨는 남편에게 신장이식을 해준 부분에 대해 “세상 어떤 아내라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라며 담담히 소회를 밝혔다. “저만 남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인연이 깊은 두 남자를 위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녀의 ‘두 남자’란 이재현 회장과 아들 이선호씨(23)를 말한다. 가족 중 신장이식 적합도가 가장 높게 나온 아들을 대신해 그녀가 수술대에 누웠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신부전증의 원인인 사구체염은 가족력이 있기 쉬운 질병이라 아들의 향후 건강을 예측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난해 8월 남편이 신장이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어요. 물론 그 전부터 신장 기능이 계속 떨어져 저염식 등 식이요법에 의존해왔죠. 막상 일이 닥치니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주치의 선생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던 거예요. 처가 4촌 이내의 친족 가운데 신장 기증자가 없을 경우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해야 하는데, 평균 대기 기간이 5년이나 된다고 하더군요.”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 셋 중에 한 명이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까지 부탁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이들은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서로 자기가 기증하겠다고 말하더군요. 검사 결과 선호가 가장 적합하고, 두 번째는 저였죠. 의사선생님은 선호를 기증자로 염두에 두고 올해 4월까지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수술은 이 회장의 바쁜 일정으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누구보다 망설인 사람은 이 회장이었다. 아들의 신장을 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신혼 초 부부의 모습(왼쪽). 1984년 막 결혼 후, 신혼여행에서. “저 혼자 ‘드라마처럼 신장 기증자가 누군지 모르게 수술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남편과 아들이 반대할 것 같아서 말이죠. 그러다 지난 5월 21일 남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어요. 이후 급격하게 신장 수치가 악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죠. 결국 외부에 남편의 건강 상태를 알리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수술하게 해달라’라고 의사선생님께 부탁한 거예요.” 나중에 이 회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는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이식수술을 할 수 있었다. 현재 부부 모두 특별한 이상 징후 없이 회복 중이다. 이식 수술은 수술뿐 아니라 회복 과정도 중요하다. 급성 거부반응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의학적으로 보면 남이니 남편은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은 것이고, 이 때문에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아직 안심할 수 없습니다. 특히 면역억제제를 계속 투입하고 있는 터라 폐렴과 같은 질병에 감염될까 두려워요. 모두 주의를 기울이며 남편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재현&김희재 부부의 이름으로 이 회장과 김희재씨는 대학교 때 연인으로 만나 결혼을 했다. 여느 재벌가의 혼인과는 달리 평범하고 순수한 결실이었다. 그래서 더 애틋했고 어려운 상황에서 앞뒤 가라지않고 서로를 도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남편과의 연애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연말이었어요. 저는 대학교 2학년(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 남편은 재수를 해서 1학년(고려대 법대)이었죠. 우연히 제 친구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따라갔는데, 그곳에 남편이 있었어요. 항간에는 제가 남편이 재벌 2세라는 걸 모르고 만났다고 알려졌지만 저는 당시 남편이 누군지 알고 있었어요. 모를 리가 없죠(웃음).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청바지와 야구모자 패션이 유행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참 점잖은 복장을 하고 왔더라고요. 완전히 아저씨였어요(웃음).” 이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모임을 통해 만남을 이어갔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을 향한 이 회장의 호감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김희재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회사를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에 두 사람만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첫 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을 안고 있는 이 회장. “1년간은 거의 매일 만나서 데이트를 했어요. 제 집이 있는 과천과 남편이 살고 있는 장충동은 거리가 꽤 됐는데 데이트가 끝나면 포니2를 직접 운전해 집까지 데려다준 기억이 많이 나요. 그때 함께 들었던 음악도 아직 귓가에 생생하고요.” 무엇보다 남편의 청혼을 잊을 수 없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그녀에게 던진 한마디. “미국 가지 마라.” 그것이 이 회장의 프러포즈였다. 김희재씨는 결혼과 함께 삼성가의 장손 며느리가 됐다. 시조모와 시부모를 모시며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장손 며느리로 크게 힘든 고비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어른들을 모시다 보니 매일 식사를 함께해 늘 조심스러웠어요. 게다가 남편은 바쁜 회사일로 매일 밤 12시에나 집에 들어왔죠. 아마 딸 경후는 아빠와 함께 외식 한번 제대로 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을 거예요. 그러다 둘째 선호가 태어나고 차츰 가족만의 시간을 갖게 됐어요.” 드라마 속 재벌가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혹독한 시어머니가 그려지게 마련인데, 김희재씨는 오히려 시어머니(손복남 CJ그룹 고문)는 늘 큰 힘이 돼줬다고 말한다. “시어머님께서는 삼성가 맏며느리로서 선대 회장님을 비롯해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으신 분이죠. 저에게는 그런 대물림을 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배려해주셨어요. 한마디로 ‘제가 애처럼 살 수 있게 해주신 분’이에요.” 당시 이 회장의 아버지 이맹희 회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과의 불화로 외국을 떠돌던 상황이었다. 김희재씨는 결혼 후 장충동 본가에서 시조부를 모셨고, 1987년 선대 회장이 별세한 이후에는 시조모인 박두을 여사를 2000년 타계할 때까지 모셨다. 자녀들이 어린 시절, 그네를 태워주는 아버지 이 회장의 모습. 고통을 함께 나눈 가족 이야기 어른들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1남 1녀의 아이들 모두 바르고 평탄하게 성장했다. 큰딸 이경후씨(28)와 아들 이선호씨는 모두 미국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했다. 이경후씨는 CJ그룹 계열사인 CJ에듀케이션즈에 근무하고 있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연애를 거쳐 2008년 결혼했다. 이선호씨는 올해 신입사원으로 그룹에 입사해 연수를 받고 있다. “자식 자랑하기 쑥스럽지만 딸과 아들 모두 타고난 성격이 좋아요. 둘 다 저에게 대들거나 볼멘소리 한 번 낸 적이 없어요. 경후는 서너 살 때 고집을 부려 제가 몇 번 소리친 기억이 전부예요. 학교도 무난히 잘 다니고 어른들이 원하는 만큼 공부도 잘해줬어요. 남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하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래요.” 그녀의 자녀교육은 자식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에 기본을 두고 있다. 자라온 환경이 남의 이목을 받기 쉽지만 최대한 평범하게 자라주길 바랐다. “ ‘내가 누구다’라는 특권의식을 갖지 않도록 신경 썼어요. 그리고 최대한 존중해줬죠. 예컨대 어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아이들이 하는 질문을 무시하지 않았어요. 꼭 아이에게 반응해줬지요. 제가 아이들에게 잘해준 거라고는 대답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애들 스스로 해준 거예요. 고마울 따름이죠.” 부부가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만큼 효과가 좋은 가정교육은 없을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 가족의 힘은 더욱 견고해진다. 이제 이 회장의 회복만이 남았다. “남편은 수술 후 매일 제게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해요. 그러면 저는 분위기를 바꾸려 ‘내 신장이 다른 몸에 가서 일한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다’라며 호들갑을 떨어요. 지금 무엇보다 남편이 하루라도 빨리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저의 가장 소중한 바람입니다.” “남편은 수술 후 매일 제게 ‘미안하고 고맙다’라고 해요. 남편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됐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저의 가장 소중한 바람입니다” “부부가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만큼 효과가 좋은 가정교육은 없을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 가족의 힘은 더욱 견고해진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제공 / 김희재>
장기기증 서약한 아름다운 그녀, 이지애 아나운서
2012. 02. 03 17:41 연예
ㆍ“생명의 탄생만큼이나 값진 생명 나눔, 더불어 사는 기쁨 누리세요” 따뜻한 말솜씨와 사랑스러운 미소로 언제나 기분 좋은 진행을 해온 KBS 이지애 아나운서가 지난해 말 장기기증 서약을 통해 생명나눔운동에 동참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한마디 한마디가 무엇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그녀의 진심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 7년 차, 어느덧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아름다운 그녀를 만났다. 생명 나눔 마음먹게 한 어느 장기기증 부부의 사연 “안녕하세요.” 밝은 인사와 함께 이지애 아나운서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기분 좋은 목소리, 반갑게 미소 짓는 얼굴. TV에서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직접 마주하고 나니 모니터로 채 전해지지 못한 온기가 느껴졌다. 유행어를 살짝 보태자면, 형광등 100개가 아니라 난로 100개를 켜놓은 듯한 훈훈함이라고 할까. 얼어 있던 실내 분위기가 일순 따뜻하게 녹아든 건 비단 아나운서 특유의 친화력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와, 삼청동에 이런 카페가 있었네요. 한적한 오후의 카페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짧은 감탄사가 섞인 간단한 소감만으로도 주위를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방송국 밖에서 그녀를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는 지난 연말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친선대사 위촉식에서였다. 그녀는 지난해 말 장기기증 서약을 통해 생명나눔운동에 동참하며 누구보다 뜻 깊은 2011년을 보냈다. 진행자로 나섰던 KBS 연중 기획 ‘생명을 나눕시다’가 계기가 됐다. “KBS에서 연중 기획으로 진행했던 ‘생명을 나눕시다’ 특집 생방송의 MC를 봤어요. 진행자로서 시청자들께 ‘장기기증 서명하세요’ ‘문의주세요’라는 말씀을 드리면서도 제가 선뜻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신체발부수지부모라고, 부모님 생각에 늘 망설이기만 했는데 방송에 출연한 어느 장기기증 부부의 사연을 듣고 마음을 먹게 됐어요.” 장기기증으로 건강을 되찾은 남편과 그 일로 장기기증 서약을 하게 된 아내의 이야기였다. “장기기증 서약을 한 후에 아내분의 건강이 나빠지셨대요. 그런데 서약을 취소하기는커녕 건강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몸이 안 좋은 분들도 이렇게 의지를 가지고 계신데 건강한 제가 피하기만 했다는 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장기기증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고 오해하고 있거나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골수기증 같은 경우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알고들 계시잖아요. 예전에는 척수에 구멍을 뚫는 방법으로 힘들게 했는데 요즘에는 헌혈과 비슷한 방법으로 간편하게 할 수 있어요. 가까운 헌혈의 집에서 서약하실 수 있고 시술 비용도 전액 무료예요. 방송을 하는 저도 이런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일반인들은 더 모르시겠다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기고 나니 무척 좋아요. 그동안 괜히 겁먹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장기기증을 할 때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본인이 서약을 했더라도 장기기증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무효화되기 때문에 서약 전 가족과의 상의는 꼭 거쳐야 할 과정이다. 남편인 MBC 김정근 아나운서의 반응을 어땠을까? “사실 서약식을 하는 날 남편도 같이 가서 하려다가 녹화가 있어서 못 갔어요. 제가 장기기증 서약을 하겠다고 하니 본인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두 사람 모두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관심도 많아요.” 잃어가던 초심 일깨워준 동반자, 김정근 아나운서 아동심리치료사인 언니를 따라 학창 시절부터 발달장애 아이들을 만나온 그녀는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다. 아나운서의 꿈을 갖게 된 것도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이들의 목소리들을 세상에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언니의 영향도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은 피하고 무서워할 대상이 아니라 다가가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부모님의 교육을 받고 자랐어요. 언니를 따라 봉사활동을 다니며 각자의 삶이 너무 바빠 그들이 관심받지 못한다면 누군가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확성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나운서에 지원하게 된 거예요.” 면접관의 눈에 들기 위한 번지르르한 공언이 아니었다. 진심 어린 그녀의 소망은 2006년 KBS 공채 아나운서에 합격하며 열매를 맺을 기회를 얻었다. 한창 아나운서들의 예능활동이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상상플러스’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랑받으며 그야말로 정신없이 달려오던 어느 날,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의도하지 않게 화려한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KBS에는 다양한 채널이 있고 KBS 제3라디오 같은 경우 장애인 방송도 있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나운서의 입장에서 그런 방송을 맡기가 쉽지 않았어요. 아나운서로서 시청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은 분명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만 자꾸만 처음 마음과 멀어져간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죠.”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보이는 게 전부인 직업이기도 했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에 가십성으로 다뤄지기도 했고 마음을 담지 않으면 남의 이야기를 가식적으로 전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초심을 잃어간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런 그녀의 고민에 길을 터준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인 김정근 아나운서였다. “저의 이런 고민을 알고 있던 남편이 어느 날 ‘지애야, MBC 아나운서들이 봉사활동을 다녔던 단체가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을래?’ 하고 제의를 해왔어요. 그러면서, 그곳에는 몸은 어른인데 생각은 아이인 사람들이 있다며 혹시 그들이 몸을 만지거나 불편하게 하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옆에 있어주겠다면서요.” 그녀 역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의 말대로 해맑은 얼굴의 지체장애인들이 다가와 몸을 만지고 손을 잡으려 했고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를 만지는데 어떤 남자가 기분이 좋겠어요. 보통 남자라면 당장 달려와 손을 쳐냈을 텐데 그 사람은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볼 뿐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어요. 잠시 조용히 지켜보다 웃는 얼굴로 다가와 ‘저랑 2층 가서 놀까요?’ 하며 그분의 어깨를 감싸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아, 이 남자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작은 마음으로 내 여자, 내 여자친구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다. 여자친구의 인격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인격을 보듬는 그의 행동에 참 성숙한 사람이구나 싶었다고. 완전히 믿어도 좋은 사람이라는, 강한 믿음이 생긴 게 바로 그때였다. “제가 늘 하던 말이 ‘얼굴에 화장하는 남자와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을 거야’였어요. 그분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저랑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보이는 데 치중하는 직업은 스스로 정말 애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기 쉬워요. 남편은 오히려 제가 잃어버리고 있던 부분을 찾아주고 길을 열어준 사람이에요.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죠.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이어서 제가 장기기증 서약을 한다고 했을 때 흔쾌히 동의해줬어요. 사실 저보다 좋은 일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마치 큰일을 한 것처럼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요.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홍보도 열심히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력해야죠.” 7년 차 아나운서, 도전에 맞서다 KBS 신입 아나운서로 시청자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입사 7년 차,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선배’가 됐다. 비결을 물으니 쑥스러운 듯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편안함 아닐까요? 너무 예쁘면 질투 나고 또 너무 잘나면 얄밉잖아요. 사실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며 나의 장점은 무엇일까, 늘 고민했었어요. 특별히 발음이 좋다거나 글을 잘 쓰는 건 아닌데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열게 하는 데는 자신 있었어요. 10분이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는 친화력이 아나운서로서 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그녀는 사람들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만한 충분한 요소를 갖추었다. 한번 보면 또 보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얼굴에(단지 예쁜 얼굴과는 다른) 주위를 밝히는 밝은 미소, 말솜씨는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성격까지 좋으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한데 절대 미워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아마도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서일 거다. “엄마가 저를 가지셨을 때 아들인 줄 아셨대요. 어렸을 때부터 선머슴으로 자랐어요. 여자친구들보다 남자친구들이 더 많았고요. 군인을 꿈꿨을 정도로 터프하고 씩씩한 성격이었는데 아나운서를 준비하며 사람들이 아나운서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분위기, 가령 여성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됐죠. 방송을 하면서도 이게 과연 내 본모습인가,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나, 고민도 많았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예쁘게, 더 멋지게 보이려 애쓰는 방송국에서 그녀는 본래 자신의 모습보다 더 예쁘거나 멋지게 보일까 걱정했다. 포장된 모습으로는 진심이 전해지는 방송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입사 5년 차 때 ‘이야기쇼 락’이라는 토크쇼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대스타들을 만나는 심야 프로그램이었는데 MC의 섹시한 모습을 요구하시더라고요. 당황했죠. 전 살면서 한 번도 섹시해본 적이 없거든요. 낯선 헤어스타일, 처음 접하는 의상을 입고 방송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중에는 제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하고 갔어요. 역시 제 모습 그대로일 때가 제일 예쁘다는 반응이었어요. 방송도 더 잘됐고요.” 이런 그녀에게 지난해 진행했던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는 커다란 도전이었다. 방송사 입사 이후, 줄곧 편안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시청자를 만나온 그녀가 록 밴드들만큼이나 파격적인 패션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인터넷이 들썩거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주위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편안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는데 너무 파격적이다, 아나운서로서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도 있었다. “록 밴드들의 서바이벌 무대라니, 진행자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적어도 그 분위기와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에 도전해보기로 한 거예요.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언제 이런 무대에 서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점점 즐기게 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1FM(클래식 채널)만 듣는 사람이었어요. 그 이후로 록 음악도 듣게 됐어요. 편식하자 말자, 음식도 방송도. ‘TOP 밴드’를 하며 얻은 교훈이에요.” 2012년 새해가 밝은 지 한 달, 부지런한 그녀는 이미 새로운 도전에 한창이다. 지난해 말부터 벨리댄스를 배우기 시작했고 2년 동안 써왔던 글을 모아 봄쯤엔 에세이도 출간할 예정이다. “글쓰는 걸 좋아해요. 어느 순간부터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게 좋아요. 스스로를 다림질하는 느낌이랄까.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을 수도 있고요. 아나운서가 말을 하는 직업이지만 말을 정말 아껴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거든요. 그동안 아껴두었던 저만의 이야기를 담을 생각이에요. 도전하고 실패하고 방황했던, 화장 안 한 이지애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많은 분들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연말쯤에는 예쁜 아이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수줍은 새해 소망도 내놓았다. 이름도 벌써 지어놓았다며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에는 엄마를 꿈꾸는 여인의 행복과 설렘이 가득했다. “요즘 생명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저의 나눔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만큼이나 값지고 아름다운 일이잖아요. 올 한 해 많은 분들이 생명나눔운동에 동참하셔서 나누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장소 협찬 / CAFE FOUR M(02-722-444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