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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39 건 검색)

“살아남은 기지촌 여성들과 그 후손들은 아직 정의를 찾고 있다” [플랫]
2024. 11. 19 10:38사회
... 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그 자체로 또 다른 폭력이라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기지촌이 ‘수치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껏 정부가 국가폭력을 인정해오지 않던 기조와...
플랫
“생존 기지촌 여성과 그 후손들 위해”···국가폭력 기억해야 하는 이유
2024. 11. 18 06:00사회
... 직시해야 하는 이유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23세 때 조현병을 겪던 어머니가 미국 이민 전 한국의 기지촌에서 일하며 아버지를 만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조 교수는 “어머니가 자신의 삶에 대해...
[정희진의 낯선 사이]의정부시의 ‘기지촌’에 대한 인식
2024. 04. 30 20:55오피니언
... 치유되고 회복된다는 염원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두레방이 있기에 기지촌의 역사를 바로 알고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간다”는 방문자들이 남기고 간 소감들은, 그동안 두레방이 내담자...
정희진의 낯선 사이정희진
[사설] ‘미군 기지촌 성매매’ 국가 책임 인정한 대법원 판결
2022. 09. 30 11:31오피니언
...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여성 122명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운영하면서 성매매를 조장해 피해를 입었다며 각각 1000만원씩 지급할 것을...
대법원기지촌국가 책임성매매

스포츠경향(총 1 건 검색)

기지촌 다룬 '거미의 땅', 야마가타 영화제 진출
2013. 06. 24 17:53 연예
기지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거미의 땅>이 제13회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이 영화 제작·배급사인 시네마 달은 24일 이 같이 밝히고, 국내 다큐멘터리 중 이 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은 <거미의 땅>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김동령·박경태 감독이 공동 연출한 <거미의 땅>은 ‘바비엄마’, ‘박인순’, ‘안정사’ 등 경기 북부의 미군 기지촌에서 살아가는 세 여성의 기억을 통해 ‘기지촌’의 의미를 그리고 있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격년마다 열리며 야마가타 출신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오가와 신스케를 기념한 ‘오가와 신스케상’을 시상한다. 김동령 감독은 2009년 전작 <아메리칸 앨리>로 이 상을 받았다. 올해 영화제는 10월10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내 인생의 노래]김민기의 살면서 놓친 ‘반음’들 복원 어려워(2019. 06. 21 15:15)
2019. 06. 21 15:15 문화/과학
서산마루에 시들어지는 지쳐버린 황혼이 창에 드리운 낡은 커튼 위에 희미하게 넘실거리네 어두움에 취해버린 작은 방안에 무슨 불을 밝혀둘까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뵈질 않네 1986년 수배자가 됐을 때, 강원도 춘천을 간 적이 있었다. 기차역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산책을 하다 공지천을 건넜는데, 때마침 mbc 근처에서 야외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던 무렵의 밤, 호숫가에서의 문화 공연, ‘도바리’ 처지로는 난데없는 호사였다. 그 때 한 가수(한영애로 기억된다)가 기타 반주로 이 노래를 불렀다. 읊조리는 김민기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그의 노래와 함께 밤은 깊어갔고, 돌아오는 길에 동행한 이와의 팔짱은 쌀쌀한 날씨가 아니어도 자연스러웠다. 이 노래는 너무 서정적이다. 국가의 관리 아래 외국 군대를 위안하던 곳, 한·미동맹의 중력장에 의해 뒤틀려버린 공간을 배경으로 한 노래치고는. 그럼에도 70년대 검열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기지촌에 세상의 관심이 모이는 걸 두려워한 것이리라. 심의를 통과하느라 제목과 가사가 바뀌었으나, 대학가에서는 원곡 그대로 불렸다. 군가풍의 투쟁가들이 학생운동의 문화가 되어 가던 때,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진 비감과 불안한 정서를 위로하는 노래였다. 하지만 이 노래는 부르기가 쉽지 않다. 선배들 입을 따라 배운 탓도 있으나 소절마다 나오는 반음을 살리기가 어렵다. 반음을 제대로 쳐야 노래의 맛이 사는데, 흥얼거리다보면 넘치거나 모자라기 십상이다. 우리의 세상살이도 그런 면이 있다. 누군가와의 관계, 어떤 일에서 ‘반음’을 쳐야 하는 순간에, 그걸 놓쳐 관계나 일이 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래는 다시 부르면 되지만, 살면서 놓친 ‘반음’은 복원이 잘 안 된다. 난 황혼이 넘실거리는 창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내 살던 곳의 창밖은 늘 다른 집의 벽이었다. 어쩌다 앞이 트인 창을 가져도 바깥 풍경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낡은 창문은 들어오는 햇빛도 낡게 만든다. 그 안의 모든 것을 낡게 한다. 낡은 비키니장, 낡은 이불과 냄비 그리고 낡은 몸. 가사 1절의 시각적 이미지가 내 살던 공간의 분위기 그대로인 듯해 젊은 시절부터 자주 이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았나 싶다. 80년대 말, 비밀조직의 일원으로 울산에 가게 됐다. 노동자들이 많이 살던 병영이란 곳에 방을 얻었다. 커다란 화물차부터 경운기까지 오르내리던 길가에 붙은 창고를 개조한 방이었는데, 길가로 난 창을 따라 먼지가 뿌옇게 들어왔다. 장님의 노래도, 짙은 화장으로 서성대는 젊은 여인도 없었지만, 방 분위기만은 노래 그대로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10여분 걸어 올라야 하는 길을 5분씩은 더 걸려 집에 돌아오곤 했다. 혹시 미행이 있을까, 이 골목으로 돌고 저 골목으로 빠져 뒤를 확인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던 때였기에. 그 어둑한 골목길을 걸을 때면 이 노래가 두서없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때 나를 울산으로 보낸 이가 노회찬 선배였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서산에 해가 아직 높은데 그리 서둘러 가시니, 그와의 만남에서 내가 놓친 반음들이 떠올라 미안하고 그립다. 영면하는 이에게도 꿈이 찾아오면, 오늘밤 그는 무슨 꿈을 꿀까.
내 인생의 노래
[르포]그 곳 기지촌 여성은 ‘외인부대’(2006. 04. 11)
2006. 04. 11 사회
한국 여인 대신한 동남아 여인의 삶… ‘아메리칸 드림’ 허상 버리고 ‘돈벌어 귀향’ 소망 동두천 기지촌에는 한국 여성들을 거의 볼 수 없다. 그 빈 자리는 대부분 동남아 여성들이 메웠다. 1988년 올림픽 이후 한국 여성들의 ‘몸값’이 오르면서 생긴 현상이다. 한때 조선족 여인들, 러시안 걸들이 상당 수 유입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필리피노’가 대부분이다. 요즘 페루비안(페루인)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도 두드러진 변화다. 값싼 노동력을 찾는 자본의 논리가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동두촌 기지촌의 어지러운 성문화는 이제 과거사가 됐다. 한때 공식 통계로만 6000명에 달하던 이곳 기지촌 여성들의 숫자는 500명으로 줄었다. 대부분 외국인이고 철저하게 미군들만 상대하기 때문에 동두천의 상징으로 ‘기지촌 여인’들을 연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성병을 예방하기 위한 시 당국의 관리도 철저하다. 한 달 200만원 벌어 80만원 저축 기지촌 여성들이 줄어든 이유는 9·11테러,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미군의 자체 통제가 심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두천 제2사단의 여군 비율이 40% 정도로 늘었기 때문이라는 ‘이색적인’ 분석도 있다. 군 내부 커플이 증가해 상대적으로 성의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지촌 미군 클럽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들의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열악하다. 동두촌 보산동에서 만난 필리피노 제이미(19)는 고국에 세 살 난 아들을 하나 둔 어머니다. 필리핀의 조혼 풍습 때문에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성이 이곳엔 많다. 제이미는 “2만 달러를 벌어 고국에 돌아가 아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제 2년 정도만 고생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 “절대 임신하지 않고, 미국 병사에게 사사로운 정을 주지 않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다. 왜냐하면 고향에 그를 기다리는 아들과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미군 병사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들을 배신하는 행위로 생각한다. 미군 병사와 결혼해 ‘아메리칸 드림’을 소망했던 과거 한국 여성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곳 클럽에는 1명의 매니저가 10명 정도의 여성들을 관리한다. 한 달 기본급은 40만 원. 그 다음부터는 그들의 능력에 달렸다. 가능한 한 비싼 술을 많이 팔아야 하고 자신을 원하는 병사들과 외박을 나가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한 달 수입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제이미의 경우 200만 원 정도가 평균이다. 아끼고 아껴 이제는 매달 70만~80만 원을 저축한다. 비참한 처지를 생각하면 한이 없다. 그런 생각은 단칼에 끊어버려야 고향에 가는 길을 단축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고귀하게만 살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 됐다. “고귀한 자는 고귀하고 비루한 자는 비루하다, 그래서?(Noble is noble, humble is humble. So what?)”라고 그녀는 반문한다. 많은 경우 고귀한 자들은 비루한 자들의 피와 땀으로 살아간다. 인간 각성 종용하는 ‘하나의 성지’ 미 제2사단에는 여군들의 비중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대폭 증가했다. 과거 동두천의 한국 여성들은 위대한 일을 해냈다. 그들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렸다. 오직 자신의 몸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형제 자매를 가르쳤다. 1967년 보산동 26개 미군 전용 클럽이 벌어들인 돈은 40만 달러였고 그해 우리나라의 수출 총액은 4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과거 동두촌 경제의 활황도 사실은 그들에게 빚진 측면이 많다. 그들이 먹고 입고 마셨던 소비의 총량이 이곳 경제를 지탱했다. 이곳 보산동의 페루 여성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기 아이를 데려 온다. 아이를 고향에 두고 오는 필리핀 여성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들 역시 미군과의 사랑을 통한 ‘아메리칸 드림’보다 아이를 키우고 돈을 모으는 데 더 열성이다. 이런 여인들을 경멸하고 욕하려면 굉장한 근면과 양심이 필요한데 그런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보산동에서 ‘다비타 공동체’를 운영하는 전우섭 목사(47)는 그런 역설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밍크 코트를 두른 귀부인과 기지촌 여성들이 전혀 다르지 않다.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평등한 인간’일 뿐이다. “왜 우리가 이런 더러운 자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왜냐하면 그 더러움을 우리 모두가 만들었기 때문이오.” 기지촌의 홍등은 우리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은 인간의 욕망이기도 하고 자본의 농간이기도 하며, 무력을 키우기 위해 젊은이들을 한데 모아 닦달하는 어리석음이기도 하다. “그것이 이 세계의 실상이라면 그 실상에 대해 책임 없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그는 묻는다. 기지촌 여성들에게 느끼는 착잡함은 이런 종교적 인식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을 찾기까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일상적 진리 앞에 전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희생을 치르는 자에게 휴식을 권하자고 주장한다. “성매매여성은 그 사회가 낳은 희생자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니 한번 사창가에 발을 들여놓으면 평생 빠져나갈 수 없다. 술과 마약, 포주의 폭행으로 심신이 붕괴된 여성이 재활할 수 있는 쉼터를 만들어야 한다.” 성매매는 하루 아침에 근절할 수 없다. 한 지역을 단속하면 다른 지역으로 흘러간다. 한강 이북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한강 이남 주둔지 인근에서 성매매가 늘어나게 돼 있다. 그가 전국 단위의 쉼터운동을 조직하고 있는 것도 성매매 근절이 법률적 강제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기지촌의 여성들의 존재는 많은 이들에게 도덕적, 정치적 각성의 기회를 부여해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혼혈아 문제, AIDS 문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 유린의 문제, 주한미군 주둔의 정당성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제기되곤 했다. 동두천은 그런 의미에서 기지촌이 아니라 인간의 각성을 종용하는 하나의 성지로 기억될지 모른다. 동두천/글·사진 한기홍 〈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BOOK]기지촌 여성들 ‘세상 밖으로’(2005. 07. 05)
2005. 07. 05 문화/과학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 해방되기 이태 전 여인은 만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어린시절은 특히 불우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그는 초등학교 때 친척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한번 몸이 ‘훼손’되면 시집을 못 간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 더욱이 어린 나이에, 아는 사람에게 당한 성폭행이 여인에게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가 되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여인은 자학했습니다. 그러나 홀어머니와 자신의 입에 풀칠할 수 있는 별다른 수단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라남도 끝자락인 여수에서 서울로 갔습니다. 여자 몸으로 구두닦이, 책 외판원 등을 전전했지만 신통치 않았습니다. 1960년대 초반 서울에는 ‘부녀보호소’라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로 매춘부들을 모아놓고 미용기술 같은 것을 가르치던 곳입니다.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보니 그곳은 기술을 배우는 곳이라기보다는 수용소에 가까웠습니다. 그곳을 나와 갈 곳은 이제 동두천의 기지촌밖에 없었습니다. 동두천을 시작으로 송탄의 기지촌, 군산의 ‘아메리카 타운’ 등을 전전했습니다. 기지촌 생활에 빠져든 여인에게 “리어카라도 끌지 그랬냐?”는 동창의 말은 한가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천성적으로 목소리가 큰 그는 기지촌 내 여성들의 모임인 ‘자매회’나 ‘꿀벌자치회’ 등을 이끌며 기지촌 내의 부정부패 고발에 앞장섰습니다. 물론 그도 한때 자포자기 상태까지 가보았고 술 먹고 넋두리하는 것이 습관인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매춘’(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을 그만두고 여인은 신학공부를 시작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남은 생을 바치려 합니다.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쉼터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열심인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지촌 환경을 더 살 만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기지촌에 뿌리내린 여자들, 혼혈아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구제하는 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성심성의껏 일하겠다고 단단히 각오합니다. 그 큰 목소리로 기지촌 여성들, 혼혈아들, 자기 자신을 위해 악을 씁니다. 그의 이름은 김연자입니다. 환갑을 넘긴 여인이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은 책을 냈습니다. 이 책에서 기지촌의 삶과 매매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길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말하는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아픔을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바깥세상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특히 ‘바깥세상과 만나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습니다. 끝내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남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 여인을 만나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20세기 미술 한눈에 훑어보기 최초의 현대 화가들 현대 미술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저것도 그림이야?” “저것도 예술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오래 전의 그림과 조각처럼 보는 순간부터 이해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는 작품이 흔치 않다. 현대 미술을 감상하기가 버거운 사람들은 먼저 ‘개념의 이해’를 중심에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첫인상과 느낌보다는 그림이 과연 무엇을 그린 것인지, 작가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 대표적인 현대 화가 12명이 있다. 독일 표현주의의 대가인 에밀 놀데, 20세기 조각의 선구자이자 “조각가들은 절대진리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미래파 조각 선언’을 한 움베르토 보초니, 형이상학적 회화의 대가 조르조 데 키리코,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 저자가 현대 화가 12명의 맨 앞자리에 폴 세잔을 두었다는 점은 특이하다. 20세기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19세기 화가를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세잔을 “새로운 미술을 연 최초의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잔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오늘날 화가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다. 이밖에 스스로 “나에게 계시는 항상 동방에서 찾아온다”고 말할 정도로 동방의 평면적 회화에 큰 영향을 받은 ‘야수파’의 거두 앙리 마티스(야수파의 핵심이 바로 평면적 회화다), 추상조각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어느 누구보다 ‘본질’을 포착하려 애쓴 콘스탄틴 브란쿠시(저자는 그를 ‘철저한 사실주의자’로 봤다) 등 저자는 20세기의 대표적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것들을 알고 나면 현대 미술의 윤곽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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