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500 건 검색)
- 김종인, 김두관 만나는 이재명…중도층 겨냥 행보?
- 2024. 09. 10 16:15정치
- ...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외연 확장의 정도”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8·18 전당대회 경쟁자였던 김두관 전 의원과 추석 전후로 만날 예정이다. 여기에 이 대표 측근이자 ‘정책 멘토’로 불리는 이한주...
- 이재명, 김종인과 12일 회동... 김두관과도 만남 조율
- 2024. 09. 09 17:02정치
- ... 만나 ‘의료 대란’ 문제 등 향후 정국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경쟁했던 김두관 전 의원과도 회동을 조율하고 있다. 9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 대표는 대표 취임 인사를 겸해 김 전...
- 15% 벽 못 넘은 김두관···“‘개딸’ 섬 갇히면 정권 탈환 멀어져”
- 2024. 08. 18 18:58정치
- ...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인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추모식에 김두관·이재명 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참석해 있다. 한수빈 기자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18일...
- 김두관 “쉬쉬하지만 9~10월 이재명 재판 결과 엄중...걱정 많아”
- 2024. 08. 17 12:38정치
-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6일 서울 양천구 SBS 목동스튜디오에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 방송토론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하고 있다. 2024.08.06 국회사진기자단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대표...
스포츠경향(총 12 건 검색)
- 민주 김두관 양산을 재도전…허성무 전 시장은 창원 성산 출마
- 2024. 01. 29 21:45 생활
- 김두관 의원실 제공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국회의원(양산을)과 허성무 전 경남 창원시장, 제윤경 전 국회의원이 29일 22대 총선 출마를 잇달아 밝혔다. 김두관 의원은 이날 양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양산을 재선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4년 전 갑작스럽게 김포에서 양산으로 지역구를 옮겨 죽을 각오로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며 “제 정치생명은 양산시민들이 만들어 주셨고 다시 양산시민의 대표로 선출되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김두관 “지역 숙원사업이던 부산∼양산∼울산 광역철도를 제4차 국가철도망계획 우선 반영으로 이끌어내고, 정부 선도사업으로 사실상 1순위 지역 철도사업으로 만들었다”며 “예타가 끝나고 설계가 완료되는 대로 예산 확보에 주력해 조기 완공이 되도록 사력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또 “웅상 지하철 역세권에 공공택지를 조성해 인구 유입을 늘리고, 편의시설을 유치해 지역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 웅상인구 20만 시대가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두관 의원은 21대 총선 당시 경기 김포시갑에서 양산을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이 됐다. 김 의원은 재선 남해군수와 제34대 경남도지사,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허성무 전 창원시장은 이날 창원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창원 성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허 전 시장은 “윤석열 정권 심판과 더 새로운 창원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받들어 22대 총선에서 창원 성산에 출마하고자 한다”며 “범민주 진보세력 단일화로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헝성무 전 시장은 “세계 1등 첨단 제조업 도시 창원을 만들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국제도시 창원을 설계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쏟겠다”며 “노후화된 주거지역을 새롭게 하는 도시 재구조화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전 시장은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비서관, 경남도 정무부지사 등을 지냈다. 제윤경 전 국회의원도 이날 남해군청 브리핑룸에서 사천·남해·하동 출마 의사를 밝혔다. 제 전 의원은 “한려해상국립공원과 지리산국립공원, 와룡산, 남해금산, 섬진강을 품은 아름다운 지역의 주민들이 각종 오염시설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며 “행사에 얼굴만 비추는 국회의원이 아닌 고통받는 주민 곁을 지키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밝혔다. 제 전 의원은 그러면서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이유로 당 공천에만 혈안이 돼 지역주민들을 소외시켜온 정치를 심판하겠다”며 “우주항공도시의 비상을 준비하는 사천, 10만 생태관광 도시를 준비하는 남해, 귀농귀촌의 메카 하동을 견인하기 위한 적임자는 바로 저”라고 덧붙였다. 지난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제윤경 전 의원은 민주당 사천·남해·하동 지역위원장과 대변인 등을 맡은 바 있다.
- 양문석 경남지사 출마선언 “김두관 열고 김경수가 닦은 길, 거침없이 달리겠다”
- 2022. 05. 02 21:07 생활
- 2일 경남도청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전 경남도당 부위원장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도지사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전 경남도당 부위원장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양 전 부위원장은 2일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두관이 열고 김경수가 닦은 길 위에서 거침없이 달리겠다”고 말했다. 양문석 전 부위원장은 “도지사가 할 일은 노사가 합심한 기업이 위기를 벗어나고 기회를 잡도록 지원하는 참모역이지 주역이 아니다”며 “양문석이 기업의 도우미, 대변인, 영업사원이 되겠다”고 밝혔다. 또 “인구 숫자만 경기, 서울, 부산에 이어 전국 4위가 아니라 삶의 질도 최소 전국 4강에 들 수 있는 강한 경남을 거침없이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청년, 4050, 어르신 세대를 두루 포용하는 정책을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부·울·경 메가시티로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고 동서남북을 아울러 경남지역 균형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면서 정의당에 공동정부 건설을 위한 ‘후보 단일화 논의’를 제안했다. 양문석 전 부위원장은 “다당제가 아닌 도민 삶의 질 향상이 최고의 가치”라며 “민주당과 정의당이 함께 해서 국민의힘의 낡은 시대정신을 꺾고 제대로 된 시대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두관 의원 “영화산업 무너지지 않도록 영화발전기금 버팀목 되어야”…영화산업 위기진단 토론회, 영진위와 공동개최
- 2021. 11. 09 22:22 연예
- 김두관 의원. 의원실 제공9일 김두관 의원(경남 양산을)이 영화진흥위원회와 공동주최로 ‘한국 영화산업 위기진단, 다음 30년 어떻게 만들 것인가?’토론회를 열었다.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한국 영화 중흥에 혁혁한 역할을 해온 영화진흥기금이 극장 관람객 부담금 급감으로 고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한국 영화 위상 강화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에서는 영화발전기금 고갈에 대한 대응으로 기획재정부가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예수금을 빌려주는 형식의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한 것에 대한 참석자들의 비판이 두드러졌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조희영 중앙대 교수는 “한국 영화 점유율이 36.3%로 내려앉고 관객수와 매출액이 줄고 있으며, 한국영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종로?서울극장이 문을 닫는 지금은 한국 영화를 살릴 골든타임의 막바지”라고 진단한 뒤, “지금은 영화발전기금이 더욱 공격적으로 한국영화가 극장으로 나올 수 있는 부양책을 만들어 할 소중한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현재 극장 수익과 연동된 영화발전기금은 영상물 소비 패턴 변화로 인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예전과 같은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자기금(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예수금으로 빌려주는 기재부의 방안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영화발전을 위해 정부가 예산으로 해야 할 일을 영화발전기금이 다 하고 있다는 면에서 기금 고갈 분을 재정에서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김도학 전 엠앤이(M&E) 산업연구소 소장은 “영화발전기금으로부터 마련되는 한 해 영화 제작비 1천억 원이 감소되면, 실제 영화 현장에서는 2천~3천 억원의 투자가 사라진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뒤, “고갈 위기의 영화발전기금은 국고에서 충당하고, 이후 OTT와 IPTV까지 포함하는 기금 마련책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는 “영화 현장에서 보면 한국 영화는 위기가 아니라 이미 침몰했다”고 단언한 뒤, “영화는 모든 문화예술 분야가 결합하는 총체적 산업이며, 전 세계에 한국을 홍보하는 세일즈의 첨병이라는 점을 정부와 정치권이 진심으로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 대표는 코로나 정국에도 극장에 교통유발부담금을 걷어왔다는 사실을 꼬집기도 했다. 마지막 토론자 황승흠 법학부 교수는 “극장은 예산 형태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입장권 부과 방식으로는 예전과 같은 기금 재원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뒤, “현 정부가 내놓은 것은 대출금 형태로 영화발전기금의 부족함에 더욱 큰 위기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김두관 의원은 “코로나 팬데믹과 OTT 플랫폼의 비약적 발전은 20년간 한국 영화를 기적적으로 발전시켜왔던 제도적 틀과 산업구주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변화를 만드는 기간 동안 영화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영화발전기금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창서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오늘 토론회에는 김상희 국회부의장이 현장 축사를 했고, 황희 문화부장관, 박정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영상 축사를 보냈다.
- 김두관
- 영화 ‘변호인’ 감독, ‘리틀 노무현’ 김두관 만났다
- 2021. 06. 09 18:22 연예
- 김두관 의원실 제공더불어민주당 김두관 국회의원(경남 양산을)의 자서전 ‘꽃길은 없었다’의 서울 출판기념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고 의원실이 9일 전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영화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양우석 감독은 김두관 의원과 직접 만나 축하 인사를 건넸고 김 의원도 반갑게 맞이했다. 양우석 감독의 참석은 험지로 여겨지는 영남 지역에서 정치적 도전을 마다하지 않아 ‘리틀 노무현’이라 불리는 김두관 의원의 정치 인생을 돌아보는 자리에 직접 발걸음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는 평이다. 양우석 감독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림 사건의 변호인으로 나선 뒤 본격적으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변호인’으로 한국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데뷔작인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각인됐으며 이후 ‘강철비’시리즈를 통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 김두관
주간경향(총 7 건 검색)
- [리얼미터의 여론돋보기]김두관 출마선언 후 대선주자 최소지지율 5%벽 넘어(2012. 07. 17 19:24)
- 2012. 07. 17 19:24 정치
- 민주통합당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지난 7월 8일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김 전 지사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평등이 새로운 발전의 동력이 되는 평등국가를 만들겠다”며 “이장, 군수, 장관, 도지사를 거치면서 국민을 화나게 하는 모든 기득권과 불평등한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 저의 일관된 철학이었다”고 말했다. 김두관 전 지사의 출마선언이 대선후보 지지율에도 반영됐다. 일종의 컨벤션 효과인 셈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대표 이택수)의 7월 9∼10일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다자대결) 결과, 김 전 지사는 7월 6일보다 2.8%포인트 상승한 5.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대선주자로서 최소한의 지지율이라 할 수 있는 5%벽을 넘은 것이다. 그는 또한 민주통합당에서 손학규 전 대표(2.6%)를 제치고 문재인 상임고문(16.8%)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7월 8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하지만 김 전 지사가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이택수 대표는 “김두관 전 지사가 출마선언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며 “김 전 지사의 추가 상승은 문재인 고문 이외의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을 얼마나 빼앗아 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다자대결에서는 여전히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이 고공비행을 했다. 7월 10일 출마선언을 한 박 전 위원장은 0.9%포인트 상승한 41.8%를 기록, 14주 연속 40%대를 유지했다. 반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2.8%포인트 하락한 17.8%를 나타냈다. 안 원장은 지난 부산대 강연 후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지율이 빠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3위는 문재인 고문으로 1.2%포인트 상승하면서 16.8%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김두관 전 지사가 5.5%, 손학규 전 대표가 2.6%, 김문수 경기지사가 2.5%를 기록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대표와 김태호 의원이 각각 1.6%, 1.5%를 나타냈다. 박근혜 전 위원장과 안철수 원장의 양자대결에서는 박 전 위원장이 2.9%포인트 상승한 48.7%를 기록했고, 안 원장은 3.6%포인트 하락한 43.6%를 나타냈다. 박근혜 전 위원장과 문재인 고문 간의 양자대결에서는 박 전 위원장이 53.6%, 문 고문이 36.3%를 기록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구속으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하락했다. 지난 7월 6일 조사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6.1%로 전주보다 4.4%포인트 떨어졌다. 이 같은 수치는 7월 10일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일 정보보호협정 추진 논란과 측근 비리로, 4·11 총선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5년 전인 2007년 7월 첫째주의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24.8%)에 거의 근접한 수치다.
- 리얼미터의 여론돋보기
- [표지이야기]김두관 “나는 한국의 룰라가 되고 싶다”(2012. 05. 15 20:43)
- 2012. 05. 15 20:43 정치
- “2012년 12월 19일(대통령 선거일)은 ‘시작’이지 ‘목표’가 아니다. …(중략)… 성공한 대통령의 책무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임기 5년 동안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유지하며 국정을 주도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5년을 책임질 미래권력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상 대권 도전을 선언한 김두관 경상남도 지사의 ‘집권 구상’이 드러났다. 은 이런 내용이 담긴 김두관 지사의 자서전 초고를 단독 입수했다.5월 말 공개될 예정인 이 자서전은 ‘리더십’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리더십’은 최종적으로 국가경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사실상 대선 출사표다. 책은 김 지사의 자전적 내용과 함께 DJ·노무현 ‘민주정부’ 집권 10년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어떤 내용을 혁신할 것인지에 맞춰져 있다. 책의 서두에서 김 지사는 민주통합당에 입당하면서 제시했던 화두를 다시 상기시켰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노무현 어게인’이 아니라 ‘노무현 비욘드’다.” 방점은 ‘계승’을 넘어 ‘혁신’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총 2부 8장으로 이뤄진 김 지사의 자서전 1부의 가제는 “‘리틀 노무현’에서 ‘한국의 룰라’로”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집권 경험에서 배우겠다는 선언이다. 자서전에서 김 지사는 자신이 어떻게 룰라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자서전 출간을 계기로 본격 대권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김두관 지사. 사진은 지난 2010년 인터뷰 당시 김두관 경상남도 지사. | 김석구 기자 “‘성공한 개혁가’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에게서 희망의 단서를 찾았다. 2008년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이후 나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인생을 돌아보았고, 국정의 일익을 담당했던 참여정부를 포함해 민주정부 10년의 공과를 반추해보았다. 그리고 좌절과 방황, 성찰과 모색으로 보낸 이 시기에 룰라를 만났다.” ‘노무현 어게인’ 아닌 ‘노무현 비욘드’ 비록 한국과는 맥락상 차이가 있지만 브라질 노동자당(PT)을 이끌던 룰라가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처한 상황은 과거 한국에서 정권교체기(1997~1998)와 재창출(2002~2003) 때 보수세력의 일각에서 “진보개혁이 정권을 잡을 경우 벌어질 상황”이라며 놓은 비토와 유사한 면이 있다. 김 지사가 정리한 룰라 집권 후 상황은 다음과 같다.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해외 자본 중 일부가 브라질을 떠났고, 모건스탠리나 메릴린치 등이 신규투자를 중단하면서 브라질 경제는 휘청거렸다. 브라질 인구의 4분의 1이 빈곤과 실업에 허덕이고 있었고 국가부채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룰라의 정치적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세력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뉘어 분열을 거듭했다. 룰라는 기득권층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보우사 파밀리아(Bolisa-Familia)’라는 공공부조 프로그램을 전격 시행했다. 월소득 120헤알(약 7만1500원) 미만의 가구에 소득의 절반 이상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결국 브라질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절대빈곤층에게 그 혜택은 골고루 돌아갔고 중산층 확대라는 결과를 낳았다. 물가도 안정되었고, GDP도 늘었다.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주최국이 되었다. 김 지사는 룰라에 대한 학습이 자신에게 주변 사람들이 ‘큰일’을 준비하라고 한 2011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2011년 봄부터 나에게 큰일을 할 준비를 하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룰라에 대한 공부가 나의 정치 역정을 정리하고 미래의 비전을 세워보는 과정에서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국민과 함께 손잡고 시대적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룰라의 리더십은 수많은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 한국에도 매우 유용한 롤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집권을 계획하며 사표로 삼은 정치인이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만델라의 자서전 (두레출판사)을 자신의 이름으로 번역해 내놓았다. 대권 도전 2년 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1년 전 (도서출판 학고재)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김 지사는 “장기간 투옥, 대통령 당선, 화해와 용서, 노벨평화상 수상 등에서 알 수 있듯 김대중과 만델라는 많이 닮았으며, 노무현과 링컨 역시 낮은 학력, 변호사, 여러 차례의 낙선, 비극적 최후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이 닮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김 지사가 보기에는 두 전직 대통령이 위의 두 정치가 위인(偉人)을 선택한 것은 다분히 소극적이다. ‘나도 알고 보면 과격한 사람이 아니라 부드러운 남자’, ‘정의로운 사람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다소 수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패러다임은 ‘소극적 수비’가 아니라 ‘적극적 공격’이다. 선거에서 일단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다. ‘지지세력’도 배신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적’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과 핵심’을 분명히 지키고 세우면서 ‘단계와 외연’을 높이고 넓혀가야 한다. ‘국민 다수의 절대적 지지’를 기반으로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한 과제’를 확실하고 빈틈없이 해결해야 한다. ‘절대적 지지’와 ‘절박한 과제’의 선순환 구조를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한다. 나는 ‘성공한 개혁가’ 룰라에게서 그 희망의 단서를 찾았다.” 그런데 김 지사는 룰라에 대한 종전 ‘조중동식 해석’에 반대한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에 나온 ‘조중동식 해석’을 김 지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조중동 등 국내의 보수언론은 룰라의 이런 변신에 초점을 맞춘 보도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이것을 활용해 노무현 정부의 ‘우클릭’을 압박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이 보도한 기사 내용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아니 그것은 도리어 룰라가 자신이 꿈꿔 왔던 정치철학과 핵심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선택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타협 중의 일부에 불과했다.” 김 지사의 룰라 해석에서 핵심은 ‘지지세력도 배신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적도 만들지 않는 것’과 ‘기본과 중심을 바탕으로 단계와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김 지사는 이 잣대를 갖고 노무현 정부를 평가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스스로 정치적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오류를 범했다. 돌아보건대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해 나온 것은 단견에 기반한 결정이었다. ‘호남에 기반한 정당의 영남 대선후보론’의 바탕에는 영호남 민주세력의 정치적 연합이라는 약속과 신뢰가 깔려 있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대연정 제안도 현실성이 없는 무리한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연대세력과의 신뢰를 깨트리는 약속 파기였다.”, “참여정부의 당청 분리는 지지그룹마저 차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준비와 전략 없이 당청 분리를 추진했다가 도리어 관료집단에 휘둘리는 결과만 초래했다.” 김 지사는 “참여정부가 4대 권력기관인 국정원, 국세청, 검찰, 경찰의 사유화를 거부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분명한 전제가 있었어야 한다”며 “그 전제는 권력기관이 군림하지 않고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지사실에 걸어놓은 자신의 좌우명을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논어에 나오는 구절을 재조합한 말로 ‘백성은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한다’는 뜻)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회양극화 문제에 있어서는 DJ·노무현 10년 정권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일각의 비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을 교체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아마도 이것이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깊은 상처를 입은, 그래서 굳게 닫혀버린 민심의 문을 열어보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성공한 서민정부’의 모델을 보여준 룰라에게 길을 물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룰라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자신이 노동자, 즉 서민 출신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6월 북 콘서트로 대선행보 ‘시작’ 군데군데 기술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 역시 이번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김 지사는 “자신에게 따라붙은 별명, ‘리틀 노무현’ 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빅 김두관’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노 전 대통령은 여택수 비서를 통해 김 지사와 약속을 잡는다. 약속시간에 15분 늦게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의 첫마디는 “김 군수님, 청와대에 들어와서 나 좀 도와주세요”였다. 하지만 김 지사는 거절했다. 그 자초지종을 김 지사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노무현 사단의 일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선자는 나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내심 생각해둔 것이 있었던 터라 곧바로 나의 의사를 솔직히 밝혔다. ‘청와대는 못 가겠습니다.’ 나의 즉답에 당선자가 놀란 것 같았다. ‘못 가겠다고요?’ ‘예.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필하려면 기획력과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저는 그런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저는 현장을 뛰어다니는 야전 체질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내각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행자부 장관을 맡게 되었을 때는 김 지사와 김병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 원혜영 의원이 서로 추천했었다는 일화도 들어 있다. 유년시절의 꿈이 ‘스포츠 해설가’라고 여러 대목에서 밝히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꿈이 나중에 정치가로 바뀌었는데 “‘큰 벼슬’을 의미하는 이름(斗官)도 일정하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스스로 풀이하고 있다. 책에서 김 지사는 명시적으로 언제 도지사직을 그만둘지, 대권 도전을 선언할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김 지사는 대권 도전을 ‘권력의지’라고 우회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대통령은 민심과 천심이 만들어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권력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공익과 공공선에 대한 뚜렷한 소명의식이 있다고.” 책이 정식 출판된 뒤 김 지사는 전국을 순회하는 북 콘서트의 형태로 5월 말부터 사실상의 대권행보를 시작할 것으로 주변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김 지사 측 정치권 인사는 “김 지사 주변에서 자서전 발간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자전적인 내용과 도정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담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책 출간 일정이나 북 콘서트 등 이후 계획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현재까지 없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신동호가 만난 사람]도지사가 된 이장 김두관 경남지사(2010. 10. 13 14:58)
- 2010. 10. 13 14:58 정치
- ㆍ“4대강 반대 지사라 해서 특별한 문제 없다고 본다” 김두관 경남지사를 만나는 순간 약간 놀랐다. ‘리틀 노무현’ 같지가 않아서다. 외모나 언행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만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고향이 비슷하고 사투리를 좀 쓰는 정도라고 할까. 그 때문이라면 대한민국에 ‘리틀 노무현’이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집무실 벽에 걸린 ‘대한민국 번영 1번지 경남!’이라는 도정 슬로건도 이상하다. 왠지 노 전 대통령 코드가 아닌 것 같다. 개발시대 냄새가 난다. 이장에서 출발해 도지사에 오른 드라마틱한 이력, 무모하게 지역주의에 도전한 강단,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당찬 반대 소신 등 그의 ‘노무현스러움’에 너무 지나친 기대를 걸었던 탓일까. 물론 개인적인 미망이다. 잠시 빠져 있던 엉뚱한 생각에서 깨어났다. 반전이 시작됐다. ‘정치인 노무현’을 벗어나서 ‘도지사 김두관’으로 돌아오면 그의 출발은 힘찬 모습이다. 4대강 사업 반대, 대북 쌀 지원 앞장, 기업형 슈퍼마켓(SSM) 개점 제동, 행정다이어트제 시행, ‘보호자 없는 병원’ 운영 등 100여일밖에 안된 기간임에도 인상적인 도정을 보여주고 있다. 좀 이르긴 하지만 ‘역시 김두관이다’ ‘경남도가 확 달라졌다’는 평가도 들린다. 이렇게 생각을 추스르자 집무실 벽의 도정 슬로건 옆에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라고 쓴 액자와 ‘자연 사람 그리고 미래’라는 문구가 담긴 포스터까지 눈에 확 들어온다. ‘불환빈 환불균’은 김 지사의 좌우명 아닙니까. 요즘 유행하는 ‘공정사회’와 딱 들어맞는군요. “송나라 유학자 육상산의 말인데 ‘백성은 가난한 것에 분노하기보다 불공정한 것에 화낸다’고 제가 해석하죠. 고등학교 2학년 때 라는 잡지에서 보고 필(feel)이 꽂혔다고 할까, 그렇게 해서 제 좌우명처럼 됐어요. 논어 계씨편에 나오는 구절(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정치를 함에 있어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백성이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고, 백성이 가난한 것보다는 백성이 안정되지 않은 것을 걱정하라는 뜻)과는 좀 달라요.” 18개 시·군 순방을 다 마쳤죠? 느낌이 남달랐겠습니다. “예, 다 마쳤는데, 제가 지역을 잘 알기는 하지만 도지사 자격으로 다니는 것과 도민으로서 다니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현장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이해당사자의 얘기를 들으면 딱 느낌이 오는 게 있거든요. 이를테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할 부분 같은 게 보이는 거죠.” 기초자치단체장을 해봤기 때문에 시장·군수를 대하는 것도 좀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은 시·군과 도의 관계가 수직적 상하관계라기보다 수평적 협력관계로 패러다임이 바뀐 상황이거든요. 사실 주민 입장에서는 도정이나 국정보다는 시·군정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 시대가 됐어요. 저는 시장·군수가 내 밑에 있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잘 안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지도 않고요.” 김 지사는 기초자치단체나 광역자치단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중앙정부, 기초지방정부, 광역지방정부라고 부른다. “이미 시·군 자체가 작은 지방정부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라고 할 정도로 권한이 안 가 있긴 하지만 저는 워낙 균형발전, 지방분권 하는 사람이라서 기초지방정부, 광역지방정부, 중앙정부 이렇게 표현합니다. 중앙정부에 있는 사람은 기초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라고 해서 중앙정부가 많이 돌봐주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을 하죠. 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죠.” 가장 다양한 지방자치 경력을 쌓았는데, 어떻게 해서 지방자치와 그런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인연이 그렇게 됐는데… 자치분권전국연대 활동이나 지역운동, 농민운동을 할 때는 물론 만들 때도 풀뿌리자치, 지방분권, 균형발전, 이런 데 관심이 참 많았거든요.” 3개월 정도밖에 안 됐지만 도지사를 해보니까 어떻습니까. “남해군수라는 건 풀뿌리자치를 하는 것이고, 행정자치부 장관은 중앙부처의 조율을 통해서 지방정부를 지원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시·도지사가 다른 것은 자기 완결성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국방·외교·사법만 빼고 스스로 기획하고 집행하고 마무리하는 것이니까요 도민들에게 무한책임을 느낍니다.” 군수·장관 경험이 아무래도 도정을 펴는 데 큰 도움이 되겠군요. “남해군수 할 때 ‘이런 건 많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행자부 장관 하면서는 3대 특별입법(국가균형발전특별법·지방분권특별법·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제가 짧은 7개월 만에 다 했어요. 제 자랑 같습니다만 일을 좀 많이 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도정의 중심을 잡아가는 데 많이 도움이 됩니다.” 행자부 장관을 7개월밖에 안 했는데 굉장히 오래 한 것처럼 기억됩니다. “취임 때부터 물러날 때까지 워낙 시끄러웠으니까요. 물러날 때 노 대통령이 저를 부르더군요. ‘김 장관, 내가 해양수산부 장관을 얼마 한 것 같아요’라고 묻더라고요. 제가 ‘1년 남짓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더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8개월밖에 못했어요’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저는 7개월에서 하루 빠지는 6개월 29일을 했거든요.” 도의회가 여소야대이고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진 것이 도정을 펴는 데 어려움을 주지 않습니까.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도지사라고 해서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청와대가 기획재정부라든가 농림수산식품부라든가 국토해양부에 경남 예산을 깎으라는 오더를 내릴 수도 없잖아요. 정말 내려주면 저는 영웅 되죠.(웃음) 내릴 리도 없고 내릴 수도 없는 문제인데도 도민 가운데는 4대강 국책사업에 대해서 김두관 도지사가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남도가 손해를 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은연중에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쪽도 좀 있는 것 같고요.” 도정 목표인 ‘대한민국 번영 1번지’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경제적인 성장·발전의 뜻도 내포하고 있지만 교육·복지·환경·문화 부문에 더 많은 준비와 투자를 해서 도민 전체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1번지라는 의미죠. 번영은 좁은 의미의 성장·발전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경남은 기계·조선·항공·전자 등의 산업 기반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김 지사가 말하는 번영은 이런 기반 위에 교육·복지·환경·문화 부문을 강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노무현적 가치’가 묻어난다. 집무실에 있는 또 하나의 포스터에 담긴 ‘자연 사람 그리고 미래’라는 글귀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후손을 낳아 기르는 것, 즉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다. 김 지사의 4대강 사업 반대 논리 등을 보면 생태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은 것 같습니다. “제가 환경이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더 신뢰하고 믿을 만한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해 ‘아니다’라고 얘기하기 때문이죠. 그게 제 생각과 일치하니까 정리를 해서 그런 견해를 갖는 겁니다.” 경남을 ‘신재생에너지 산업 수도’로 만들겠다고도 하지 않았습니까.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라든지 브라질의 쿠리치바 같은 도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도시에 아직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친환경적이고 신재생에너지가 잘 돼 있어서 주민의 삶의 질도 높아지고 일자리도 생긴 거거든요. 경남은 일조량이 많고 태양의 질도 좋아 태양광 발전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산청·밀양 등은 풍질이 좋아 현재 조사를 하고 있고요. 사천·남해 등 조력발전을 하기 좋은 데도 있습니다. 태양광·풍력·조력·연료전지 등을 잘 융합해서 대한민국, 나아가서 전 세계의 신재생에너지 산업 수도로 만들고 싶어요. 최근 의미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태양광 발전 세계 1위인 미국 MEMC사와 400MW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를 경남에 조성하는 협약을 맺었습니다.” 다른 지역과 갈등 요인이 되는 동남권 신공항 유치, LH공사 이전, 남강댐 물 부산 공급 문제 등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입니까. “남강댐 물 문제와 동남권 신공항 입지 문제로 부산과 경남이 갈등을 빚는 것처럼 보여서 죄송스럽긴 합니다만 경남·부산·울산은 원래 한 도였습니다. 행정구역으로 나눠져 있을 뿐 생활권은 하나거든요. 그런 바탕 위에 공동 번영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요. LH 본사 이전 문제를 놓고서는 전주혁신도시와 갈등 중이죠. 진주혁신도시는 LH 본사가 안 오면 기능을 40~50%밖에 못 해요. 전주혁신도시에서는 토지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8%인가밖에 안 됩니다. 진주로 다 이전해주고 전주에는 토지공사가 못 가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약간 인센티브를 주면 해결될 문젠데, 자꾸 국토부에서 나누라고 하면서 정리를 안 해주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겁니다.” 총리에 내정됐다 인준을 못 받은 김태호 전임 지사를 후임자로서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잘못한 건 잘 모르기도 하지만 총리에 내정됐다 낙마한 사람에게 뭐라고 하기 그렇고… 잘한 것이라면 남해안 프로젝트가 처음에는 슬로건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국가사업으로 잘 진행해 놓으신 것이고, 또 하나는 내년이 고려대장경 판각 1000년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대장경천년문화축전을 내년에 하거든요. 이런 것들은 전임 지사의 업적이죠.” 김 지사를 ‘리틀 노무현’이라고 하잖습니까. 노 전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과분한 사랑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지금에 와서 되돌아볼 때 아쉬운 점이나 후회되는 부분은 없습니까. “고민을 좀 해봐야 되겠는데요.(웃음) 아직까지는 평가하기가 이른 것 같아요. 보통 한 정부의 여러 가지 주요 국정 운영에 대해서 10년 정도는 지나야 평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노무현 정부에서 12대 주요 국정과제 가운데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담당했던 주무부처 장관을 한 사람으로서 그 부분만 평가를 해본다면 솔직히 좀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죠.”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경찰자치제를 비롯해서 권한과 예산을 지방정부로 많이 이양해야 하거든요. 우리가 형식적으로는 지방자치제가 완비됐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2할 자치’ ‘3할 자치’라고 하잖아요. 참여정부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12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삼고 이를 추진한 이상 5할, 6할 자치로 끌어올렸어야 하는데 2할 자치를 3할 자치로 올린 수준에 머물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과제로 남아 있는 거죠.” 노 전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 미완의 과제로 남았으니 뒤집어 보면 김 지사의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저 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이 대한민국에 많지 않을 겁니다. 제 특수한 경험에 기초해서 얘기를 하면 지방정부에 많은 권한을 주는 게 좋습니다. 경제 규모가 세계 20위 안에 드는 나라에서 우리가 중앙집권도가 가장 높다고 해요. 국방·외교·사법, 이런 큰 국가 발전 전략은 중앙이 그림을 그리고 나머지는 시·도로 권한을 넘겨줘야 해요. 구체적으로는 노동청이나 중소기업청과 같은 중앙정부의 특별행정기관이 경남에도 많아요. 이런 중앙정부의 특별행정기관을 넘기고, 그리고 경찰자치와 교육자치도 함께 해서 내용적으로 6할, 7할 자치가 되게끔 하는 겁니다. 지금 시·도가 갖고 있는 권한도 주민과 직접 부딪치는 시·군으로 많이 넘겨줄 필요가 있고요.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하는 게 훨씬 더 대한민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듭니다. 지방정부의 특수한 조건과 상황을 고려한 298개 시·군지방정부의 경쟁력, 16개 시·도지방정부의 경쟁력, 이 총합이 국가경쟁력이 되거든요. 어디 쉽겠습니까만… 제 바람이죠.” 야권의 차세대 주자로 거론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장, 군수, 도지사, 장관까지 했으니 다음에 할 건 대통령밖에 없잖습니까. “도지사 하다 말고 서울 올라갈까요?(웃음) 지역주의가 강하게 지배하는 곳에서 제가 야권 무소속으로 당선된 것 때문에 제 역량에 비해서 과도하게 평가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물망에 오른다는 게 기분 나쁠 일은 아닌데, 지금은 제가 도정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 정책으로, 일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저는 글을 잘 쓰거나 이슈 파이팅을 잘하거나 순발력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은근 끈기를 가지고 일을 죽 하고 그 일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인정받는 스타일이죠. 도정을 열심히 잘하는 게 도민들한테 좋고 제 정치적 장래를 열어가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대교체 얘기가 자꾸 나오고, 그때마다 김 지사를 포함한 이른바 486세대가 주목을 받지 않습니까. “제가 도지사에 당선되기 전에 선거운동을 하면서 동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 있어요. 도지사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도지사 당선되고 도정을 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요. 같잖은 얘기잖아요. 도지사 되는 걸 고민해야 할 사람이 된 이후를 걱정하고 있으니까…(웃음) 저는 군수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남해라는 작은 군에서도 군수 되기 쉽지 않아요. 군수 된다고 끝납니까. 군수 되는 건 1차고, 2차적 과제가 중요한 거죠.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저도 ‘준비된 도지사’라고 얘기했지만 많이 미흡했거든요. 그런 거 욕심내는 거 좋지 않아요.” 이제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노 전 대통령이 못한 일 가운데 하나를 그가 해냈고, 노 전 대통령이 못 다한 일 또한 그가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의 견고한 벽을 깨고 경남지사에 당선 된 것, 그리고 지방분권·균형발전의 숙제 말이다.
- 신동호가 만난 사람
- [커버스토리]‘친노신당’ 관건은 유시민과 김두관(2009. 07. 16)
- 2009. 07. 16 정치
- 두 사람 참여 여부가 성패 열쇠… 49재 이후 친노 의견수렴 본격화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끝남에 따라 친노(親盧)진영 일부 인사가 신당창당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상중(喪中)’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행보에 대해 침묵해왔지만 49재 이후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노신당’ 창당작업에 본격 들어간 것이다. 이와 관련, ‘노 전 대통령의 상주’를 자처해 온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친노진영 끌어안기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친노진영 인사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내심 10월 재·보선이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내놓은 친노진영 인사들에 대한 유인책은 구미가 당기는 것들이 포함돼 있다. 예를 들면 차기 총선(2012년)에서 국회의원 비례대표 자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영입해서 내년에 시행되는 지방선거에 부산시장 후보로 내보내고, 문 전 실장이 당선되면 좋지만 당선되지 못해도 2012년 총선에서 당선권에 있는 비례대표 순번을 배정하겠다는 것이다. 문 전 실장은 현재 차기 부산 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들과 각축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 5석 정도를 영입인사들에게 할당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윤호중 전략기획위원장은 “49재 이후 친노진영 사람들과 소통 채널을 만들 것”이라며 “친노인사들과 당내 의견수렴을 거쳐서 (복당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부터 논의 ‘친노신당’ 창당 논의는 사실 지난해 6월 촛불집회 때부터 친노그룹 일각에서 꾸준히 논의돼왔다.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민주당 등 기존 정치권은 촛불세력을 견인해 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국민의 직접 민주주의 욕구를 어떻게 수용하고 담아내느냐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아직 일반에게 공개가 되지 않았지만 친노진영에서 신당창당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그룹은 ▲유시민 전 장관이 주도했던 개혁당 ▲17대 열린우리당 의원모임인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참여한 자치분권연대 ▲유시민 전 장관의 팬클럽 ‘시민광장’ 등에서 일부가 참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민광장’ 홈페이지에서는 회원들이 유시민 전 장관과 회원들의 신당참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시민광장’ 박무 대표는 “‘시민광장’ 대표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신당창당에 참여하고 있다”며 “신당참여 문제는 회원들 자유의사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태홍 전 참정연 사무처장 등 창당파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전 날인 지난 5월 22일 속리산에서 워크숍을 갖고 신당 창당의 이념, 일정 등 창당과 관련한 밑그림을 그렸다. 이 자리에는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한 청와대 관계자 등 참여정부 시절 일부 핵심 인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다음날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돌출변수를 만난다. 급작스런 비보를 접한 이들은 창당작업을 잠시 미룬채 봉하마을로 집결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비공개 회의를 갖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도 불구하고 신당창당 계획은 유효하며, 창당작업을 계속할 것을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들은 지난 6월9일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신당창당 추진을 위한 사무소 개소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창당준비모임 핵심인사 뿐 아니라 유시민 전 장관의 팬클럽인 ‘시민광장’ 일부 회원들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장관 등 정치권 인사들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창당파 여의도에 사무실 마련 이들은 49재가 끝나고 7월 중 물밑에서 창당 작업을 마무리짓고 8월에 대국민제안 형태로 신당창당을 선언하고, 9~10월에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며, 늦어도 연말 안에 신당을 정식으로 창당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기준으로 역산해보면 후보 선출과정 등 최소한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당이 창당되면 최소한 10% 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1월 11일 열린우리당 창당대회에서 축하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가장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이른바 ‘친노신당’에 누가 참여할 것이냐다. 창당을 준비하는 모임측도 인물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해찬 전 총리는 신당에 대해 완강히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시민·김두관 전 장관도 이에 대한 확답을 피하고 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유시민·김두관 전 장관의 참여 여부가 신당의 1차적인 성패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 전 장관과 영남에서 상징성이 있는 김 전 장관의 ‘쌍두마차’가 신당을 이끈다면 신당은 전국정당으로서의 기본 면모를 갖추는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역할을 해온 유 전 장관은 1988년 초선의원이던 이해찬 전 총리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TV토론 진행자 등을 맡으며 탁월한 언변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으로 노 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를 맺으며 개혁당 대표·국회의원(재선)·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김두관 전 장관도 노 전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민선 남해군수 출신인 김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출범당시 기초단체장 출신으로는 최초로 행정자치부 장관에 올랐다. 지난 1995년 전국 최연소(37세)로 남해군수에 당선된 그는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권유로 입당해 경남에서 지역주의와 맞서 싸워왔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참정연 출신인 김형주·김태년 전 의원과 지난 대선에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를 도왔던 김영춘 전 의원도 신당 창당관계자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참여의사를 타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과 노 전대통령을 지지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내년 지자체나 차기 총선에 출마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천호선·이호철 등 거취 관심 하지만 이들은 대체로 신당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부산출신 김영춘 전 의원은 “진보개혁진영은 원래 주장이 각각 달라서 분열하기 쉬우며, 그런 작은 차이로 인해서 대동단결해 신당으로 발전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친노진영은 아니지만 개혁성향의 김 전 의원은 “(신당에) 참여의사 타진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중소기업위원장을 맡고있는 김태년 전 의원도 “최근 정국상황이 신당창당 시점은 아니다”며 “민주당도 변화가 필요하며, 민주당이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등과 함께 하자면 재창당에 버금가는 자기혁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주 전 민주당의원은 “현재의 민주당은 과거 열린우리당 때보다는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며 “앞으로 친노진영에서는 민주당과의 관계를 놓고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이호철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전 청와대 인사들의 거취도 신당 창당의 관건이다. 만약 이들이 49재 이후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거쳐 집단적으로 거취를 결정한다면 적잖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49재 이후 민주당이 ▲새로운 국민의 참여흐름을 담아낼 수 있는가 ▲지역주의 극복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가 ▲참여정부의 정책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놓고 집중적으로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천호선 전 대변인은 “우리 쪽에서는 민주당에서 지속적으로 혁신을 모색하고 그런 방향으로 가자는 견해와, 지난 7년 동안 모든 것이 검증된 상황에서 이제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견해가 함께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친노신당’ 이 창당되면 과거 개혁당과 열린우리당의 정당시스템을 대부분 차용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창당 당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정당, 전국정당화 지향, 당내 민주주의 확립 등을 모토로 내걸었다. 구체적으로는 당비를 내는 기간당원을 중심으로 당원들끼리 당협위원장(지구당위원장)과 지방선거 후보자를 상향식으로 선출하고, 국회 의원 후보자도 일부지역에서는 경선을 통해 당원들이 결정토록 했다. 특히 신당은 오프라인 조직을 최소화하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조직을 활성화하며 공직 후보자 선출과정에서 모바일 투표 등 시민참여형 이벤트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전 청와대 인사들 참여도 주목 하지만 정치권 인사들은 ‘친노신당’에 대해 부정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유훈정치’만으로 정당을 이끌기는 힘들 것”이라며 “설령 유시민 전 장관이 신당의 리더가 된다 해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텃밭인 영남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도권의 한 기초의원은 “신당이 탄생하면 영남 뿐 아니라 수도권에서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며 “그러면 수도권에서 야권의 표가 분산되고 민주당과 신당이 같이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북 경주시 민주당 손영섭 지역위원장은 “영남지역에서 신당이 출현하는 것보다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민주세력들이 대연합해야 한나라당에 맞설 수 있다”면서 “친노인사들이 민주당 간판을 걸고 대구 부산 등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신당 창당을 지지하고 나섰다. 정 교수는 “우리 정치에서 지역주의 극복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이 외연을 확대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당 밖에 있는 세력들의 노력을 통해 양쪽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리틀 노무현’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신당문제 동지들 뜻 모아 고민해볼 것” 요즘 어떻게 지내나 “지난해 총선 이후 지역구(경남 남해·하동)에 계속 머물고 있다. 서울 생활은 모두 정리했다. 고향에서 독서 등 공부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고 고향에서 마음을 비우려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지금은 당적이 없는 상태이고 지방자치연대를 같이 했던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늘 대중들하고 함께 해야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 지방선거나 차기 총선에 다시 나올 생각인가 “현재로서는 2012년 차기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에는 농민, 서민층이 대다수인 이 지역에서 주민들이 나를 선택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또한 다음에 다시 나와서 당선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을 버리고 조건 좋은데 가서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동안 고향사람들하고 얘기도 많이 했고 우선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독식을 깨뜨리기 위해 후보자들을 도울 것이다.” 최근 친노진영에서는 신당을 창당하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 정치세력화까지는 먼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팔아먹는다는 비판에 개의치 않고 영남지역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고민하는 것 같다. 정당개혁 등 우리 앞에 여러 과제들이 놓여있으니까 누구인가는 세력화해야 한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행복도시, 혁신도시 등 지방균형발전계획도 후퇴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 분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기서 힘을 보태자는 사람도 있다.” 신당의 간판으로 김 전 장관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은 기본적으로 인물보다는 가치나 정책중심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면면도 중요하다. 기존 정치인들 중에 대중의 관심도가 높은 나와 유시민 전 장관 등이 오르내리는 것 같다. 정치권 밖에 있는 박원순 변호사, 조국 교수 등 그런 분들이 같이 하면 괜찮을 것이다. 신당문제는 동지들의 뜻을 모아 고민해볼 것이다.” 일각에서는 궁극적으로 신당과 민주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영남지역에서 신당이 한나라당과 경쟁체제에 들어가고 다시 신당, 민주당 등이 결합하고 한나라당과 당대당으로 경쟁하는 구도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을 지역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지역에서는 민주개혁진영을 대표하는 당으로 보지 않는다. 호남당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는 경상도당(한나라당)이 있는데 왜 호남당을 찍는가라고 반문한다. 일부지만 한나라당을 ‘우리당 수준을 넘어 내 당’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아무래도 지역패권주의가 밑바닥 정서에 깔려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이 영남에서 왜 그렇게 힘을 못쓰나 “노 전 대통령 서거정국으로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많이 올라 간 것은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을 탈당했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노 전 대통령에 의존한다. 이런 상태라면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후보조차 내기 쉽지 않다. 영남의 민주당 지역위원장들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정세균 대표가 제안한 민주개혁진영 대동단결론에 대해서는 어떻게보나 “민주당으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문제는 민주당이 얼마나 자유롭게 문호를 개방하고 형식과 내용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경남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의 민주당은 지역위원장도 지역에서 결정하지 못하는 구조다. 정당민주화를 위해 민주당은 기득권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 표지 이야기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민주통합당 김두관 대선 예비 후보 부인 채정자 여사
- 2012. 09. 13 16:19 화제
- 김두관 후보의 부인, 채정자 여사는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전해주었는데 뜻밖에도 이혼을 생각했던 힘들었던 가정사까지 거침없이 들려주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내조의 정석’을 실천하고 있는 채정자 여사. 김 후보가 큰 뜻을 품고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렇듯 마음 든든한 내조가 있었다. 여고생 때 만난 더벅머리 총각과 10년 연애결혼 최근 경남도지사를 중도 사퇴하고, 민주통합당의 경선에 도전장을 내민 김두관(55) 후보는 후발주자로 대선 예비 후보 대열에 이름을 올리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런 김 후보 옆에서 더욱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부인 채정자(53) 여사다. 채 여사 역시 최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국민과 소통과 교감을 시도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 와중에 잠시 시간을 낸 채 여사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요즘 오렌지 컬러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걸 알았을까.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오렌지 컬러 재킷을 입은 채정자 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스타일리스트나 헤어, 메이크업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화장과 머리는 물론 의상 선택까지 손수 챙겼다고 하는데, 센스가 대단했다. 이장 출신으로 군수, 행정자치부 장관, 경남도지사, 그리고 대권에 도전하는 김두관 후보의 부인으로서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을 텐데, 김 후보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했다. “저희는 연애결혼을 했어요. 남편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죠. 당시 제가 부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고3때 공무원 시험 공부를 위해 부산으로 왔었거든요. 친척집에서 우연히 남편을 만났는데,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웃음). 보통 여고생의 남자 보는 기준은 멋있고 잘생긴 사람이잖아요. 그때 더벅머리를 한 남편을 보면서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싶어 굉장히 쌀쌀맞게 대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더벅머리 총각은 자신을 쌀쌀맞게 대했던 여고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 그 친척집에 자주 놀러 왔고 자연스럽게 친분이 쌓이면서 ‘오빠’, ‘동생’ 사이로 편안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제게 오빠가 없어서 그랬는지, 편안한 오빠 같은 느낌이 좋았아요. 무슨 이야기를 해도 ‘허허허’ 웃으면서 받아주고, 순박했어요. 자기가 가진 게 없었는데도 늘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요.” 그렇게 1년에 두세 번씩 만나면서 지내다가 채 여사가 스물한 살이 되던 어느 날, 그 더벅머리 오빠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프러포즈였다. “사실 남편은 부산에 내려와도 친구들을 먼저 만나고, 본인 볼 일 다 끝나고 나서야 저를 만나러 와요. 연애를 잘 못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제 마음이 왜 움직였는지 몰라요(웃음). 어느 날 편지 다섯 장을 주더라고요. 제가 자신을 편안하게 해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요. 문제는 남편이 그 당시부터 정치를 할 생각을 품고 있었기에 자신과 결혼하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말했죠. 경제적인 부분까지 다 책임져야 하니 자신과 인생을 함께해달라고 말 못하겠다며,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속으로 결혼하면 별수 없이 가정을 책임질 수밖에 없겠지, 라고 생각했어요.” 프러포즈를 받고도 몇 년이 더 지난 후 만난 지 10년째 되던 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채 여사는 결혼을 하면서 지혜롭게 머리를 굴려서 ‘이 남자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지’라는 야심 찬 포부도 세웠다. 하지만 이런 속셈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채 여사는 기자를 향해 “제가 결혼 후 얼마 만에 남편을 내려놓았을 것 같으세요?”라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기자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3개월이에요”라고 답했다. 첫 번째 사건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 남편의 무단 외박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에 채 여사는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 “결혼 초반에 못된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다고 얼마나 벼르고 있었겠어요. 결혼 3일 만에 무단 외박이라니, 큰 충격을 받았죠. 그런데 남편은 오히려 저에게 일이 있어서 못 들어온 건데 화를 내다니 섭섭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남편은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결혼 3개월 만에 채 여사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내 남자, 안방 문을 열고 나가면 남의 남자’라고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남편에 대한 기대를 모두 접었더니,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고 한다. 결혼 7년 동안 한 번도 생활비 받아본 적 없어 일찌감치 정치에 뜻을 두었던 김 후보는 결혼한 이듬해인 1988년 총선에 출마했다. 아무런 지지 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누가 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승산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그 선거에서 노린 의도는 상대 후보자에게 견제 세력이 있으니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무모했지만 말릴 수가 없었어요. 힘들었다기보다 서럽고 가슴 아픈 선거를 치렀지요. 당시 야당은 ‘빨갱이’라는 질타를 받았거든요. 그때 마음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사이 아이들도 태어났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경제활동은 뒷전이었고, 야권에서 농민운동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채 여사의 부모님들도 상처를 받으며 힘들어했다. 결국 결혼 3년 만에 채 여사는 ‘이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 3년째가 되니까 이제 더 이상 함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저 아이들의 인생이 어떻게 될까 싶은 마음에 ‘내 한 몸 희생해서 세 사람 한번 살려보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어요.” 채 여사는 남편이 남해군수가 될 때까지 결혼 7년 동안 한 번도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시어머니까지 모시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가계를 이끌면서 살아야 했던 채 여사는 안 해본 일이 없다. 남대문과 동대문에서 옷을 떼어다가 옷가게도 직접 운영했고 꽃가게, 북카페, 뼈다귀 해장국집은 물론 해수욕장에서 국수도 팔고 주점도 운영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당시 남편에게 ‘이럴 거면 왜 결혼을 했느냐? 자유롭게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면서 살지!’라고 따졌더니, 그냥 웃으면서 한마디만 하더라고요. ‘우린 운명이야’라고요.” 채 여사는 슬하에 직장생활을 하는 딸(25)과 대학생인 아들(24)을 두었다.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욕심부리지 않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배우게 해줬다. 채 여사도 원래 간호대학을 가거나 미술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여자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대학진학은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너희 인생은 너희들 거니까 인생이 아름답고 즐거울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라고 말하곤 했죠. 학원은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말라고 했고, 대신 학교수업을 철저하게 하라고 했어요. 대신 책이나 신문 읽는 습관을 들이고 뉴스를 꼭 챙겨 보게 했어요.” 채 여사의 교육 방침 중 특이한 건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방식이다. 집안일을 ‘봉사활동’이라고 규정짓고, 재활용쓰레기 버리기, 청소기 돌리기, 설거지하기 등 한 건에 5백원씩 용돈을 준 것. 독서나 예습, 복습 등 공부를 하면 좀 더 많은 용돈을 줬다. 때문에 아이들은 용돈이 많이 필요하면 집안일을 열심히 도와주거나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잖아요. 남편에게도 우리 아이들이 당신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고 있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늘 부재중이던 아버지의 빈자리는 항상 채 여사가 대신했다. 아이들은 너무 바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럴 때 채 여사는 “아빠가 일이 많아서 쉬지 못하시는데, 너희들에게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려고 바쁘신 거란다. 우리가 더 많이 이해해드리자, 라고 말해주곤 했어요. 다행히 아이들이 저와 대화를 많이 하면서 컸기 때문에 큰 불만 없이 잘 자랐어요. 지금은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많이 응원해주죠.”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가 많았기 때문에 채 여사는 늘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고, 나도 즐기면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주문을 외우고 다녔다. 그럼에도 채 여사를 가장 힘들게 했던 일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남편의 선거 패배였다. 지금까지 총 열네 차례 크고 작은 선거들을 치러왔고, 부부는 선거에서 떨어질 때도 훌훌 잘 털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2008년 총선 때는 달랐다. 당시 김 후보는 상대 후보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역 출신의 다른 후보가 다시 공천을 받으면서 그 후보에게 몰표가 쏟아진 것. 50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1백억원대 자산가에게 김 후보는 패배했다. “저희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게 농어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우리 만 한 사람이 없다는 자긍심이었어요. 그런데 농어민들은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 자산가를 선택한 거죠. 당시 남편은 많이 절망했고, 정치를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대한민국 땅을 떠나고 싶다고까지 말했죠. 그런데 며칠 뒤 여기서 그만두고 도망가면 ‘패배자 김두관’으로 남지 않겠느냐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고, 남해에서 다시 새 출발을 했죠.” 채 여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 역시 남편이 선거에 당선됐을 때다. 사실 결혼 7년 만에 처음 남해군수에 당선됐을 때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기에 울면서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채 여사는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 소름이 끼치도록 착잡했다고. “축하는 많이 받았는데 환하게 웃을 수는 없었어요. 그 뒤에 행정자치부 장관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중앙정부에 들어가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죠. 하지만 2010년 경남도지사에 당선되던 날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죠. 경남에서 야권 도지사가 당선된 게 처음이었거든요. 그만큼 굉장히 뿌듯했고, ‘우리가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 김 후보는 아내의 내조에 90점을 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채 여사는 “제 역할이 크지 않다”라며 그 점수도 과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밖에 나가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집안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도록 해주는 것 이외에 한 게 뭐가 있겠느냐는 것. 다만, 아침 밥상은 신경 쓰는데, 그 이유는 “밖에서 인간적으로 존중받고, 대접받을 수 있도록 잘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숱한 경험들로 살림의 달인이 된 채 여사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을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시어머니가 함께 살고 계시기 때문에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난 후 집에 오면 시어머니께 꼭 그 음식을 해드렸다. 또 남편 일의 특성상 손님 접대가 많다 보니 집에는 항상 밑반찬과 채소들이 준비돼 있어 손님이 오면 언제든지 푸짐한 한정식을 차려냈다. “제가 음식 장사를 할 때부터 ‘먹는 음식은 보약’이라고 생각해와서 요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써요.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시어머니, 남편 모두 건강한 편이에요. 남편은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고, 운동도 좋아하죠. 특히 무척 긍정적이라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성격이에요. 만약 그 스트레스를 담고 살아왔다면 아마 폭발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서 이해를 잘하는 것 같아요.” 정치 일정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파 사실 채 여사는 남편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절대 반대’를 외쳤다. 경남도지사 임무를 열심히 잘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인사하고 다녔는데, 도정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나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결혼 25년 만에 처음으로 언성이 높아질 정도로 크게 부부싸움을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도민들에게 배신감을 주면서 중도 사퇴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계속 반대를 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이 자리에 그대로 머물면 역사에 죄인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런 마음으로 도민들에게 어떻게 행복을 줄 수 있겠느냐고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이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이 마음조차 사심일 수 있겠구나, 라고요. 그래서 동의했어요.” 채 여사가 대선 출마를 반대한 이유는 자신의 몸 상태와도 관련이 있었다. 채 여사는 도지사 선거가 끝난 직후 유방암 1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몸의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외부활동을 하는 게 여의치 않았던 것. 하지만 시대가 ‘서민 대통령’을 부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기란 쉽지 않았다. 채 여사는 남편의 가장 큰 장점을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는 욕을 먹더라도 과감히 실천하는 정신’이라고 꼽았다. 김 후보가 이장 시절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욕을 먹으면서 공정한 이익 분배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후보가 국정 운영을 맡아도 그런 부분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것. “제가 많이 준비되어 있지 못해서 아직은 부족합니다. 그래도 남편과 뜻을 같이하는 운명인지라 헌신하는 자세로, 모르는 건 배워서라도 해야겠지요. 약자의 편에 서서 일하겠다는 남편의 그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내조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후보와 채 여사는 정치 일정을 마치고 난 후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여유를 갖고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때문에 고향 후배들이 건네는 막걸리 잔을 마음 편하게 받아 마실 수 있도록 후회 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남편은 늘 공평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어요. 뜨거운 가슴에 가족이 있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과 국민이 있는 사람이죠. 남편의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어요. 이제 그것이 제 꿈이랍니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원상희 ■사진 제공 / 김두관 대선 예비 후보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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