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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475 건 검색)

북한, 이달 말 노동당 전원회의 개최 예고…대남·대미 메시지 주목
북한, 이달 말 노동당 전원회의 개최 예고…대남·대미 메시지 주목
2024. 12. 03 11:08정치
...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개최되고 있다며 회의 사진을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이달 말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원회의에서 한국과 미국을...
김정은, 노동당 창건 79주년 맞아 “인민 대중 제일주의 정치”
김정은, 노동당 창건 79주년 맞아 “인민 대중 제일주의 정치”
2024. 10. 11 08:33정치
... 데서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간부들이 기강을 다잡고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도 했다. 노동당 창건 79주년을 맞아 공산주의 혁명 정신을 강조하며 내부 결속과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영국 노동당 새 총리, 총리실서 대처 초상화 내려···보수당 “소인배”
영국 노동당 새 총리, 총리실서 대처 초상화 내려···보수당 “소인배”
2024. 08. 30 22:42국제
... 지금은 다른 곳에 걸려 있다고 BBC는 전했다. 데일리메일은 이 초상화가 당초 스타머 총리와 같은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전 총리(2007∼2010) 의뢰에 따라 왕실 초상화가 리처드 스톤이 그린 것이라고...
“성장 브레이크 풀겠다”…영국 노동당 정부 천명
“성장 브레이크 풀겠다”…영국 노동당 정부 천명
2024. 07. 18 21:25국제
... 쉬운 해답보다 단호하고 인내심 있는 진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 활성화는 노동당 정부의 성공 여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그간 노동당은 영국 경제 상황이 악화한 원인을 14년간의...
노동당영국킹스스피치키어스타머

스포츠경향(총 19 건 검색)

[남북정상회담] 첫 회담 남측 서훈·정의용, 북측 김영철·김여정 배석···평양 노동당 청사서 진행
[남북정상회담] 첫 회담 남측 서훈·정의용, 북측 김영철·김여정 배석···평양 노동당 청사서 진행
2018. 09. 18 19:20 생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18일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 남측에선 문 대통령이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측에선 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정처와대는 정상회담이 오후 5시45분 종료됐다고 밝혔다. 이는 애초 예상보다 30분 가량 늘어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훈 국정원장,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 김 국무위원장,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노동당 본부청사 현관 밖으로 나와 맞았다. 문 대통령은 건물 1층 로비에서 김영철, 최룡해, 박광호, 리수용, 김평해, 오수용, 안정수, 최휘 등 8명의 노동당 부위원장단과 악수를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에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서명과 함께 “평화와 번영으로 겨레의 마음은 하나”라고 적었다. 정상회담 후에는 북한 고위 간부와 외국 주요인사 전용 면회장 목란관에서 공식수행원, 특별수행원, 일반수행원이 참석하는 환영만찬을 하게 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만찬은 이날 오후 9시쯤 끝날 예정이지만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를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에 앞서 남긴 방명록.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문재인 대통령
노동당·녹색당 등 진보정당 “노회찬 의원 비보, 큰 충격과 슬픔”
노동당·녹색당 등 진보정당 “노회찬 의원 비보, 큰 충격과 슬픔”
2018. 07. 23 15:32 생활
정의당 노회찬 원대대표의 사망에 진보·혁신계 정당들이 고인에 대한 애도의 뜻을 타나냈다. 노동당 류증희 대변인은 23일 “참으로 안타깝고 비통한 일이다. 당적을 떠나 진보정당운동을 함께 일궈왔던 이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노동당은 노회찬 의원의 비보에 당원과 함께 정중한 애도를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류증희 대변인은 또 “일찍이 청소년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생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의 길을 걸어온 고인의 행적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갑작스럽게 전해진 비보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노동당은 다시 한 번 고인의 비보에 깊은 애도를 표하는 바”라고 덧붙였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사망이 알려진 23일 국회 의원회관 노회찬 의원의 사무실 문에 그를 추모하는 꽃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녹색당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도 이날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에 헌신한 고 노회찬 의원이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습니다”며 “큰 충격과 슬픔을 그 어떤 말로도 다하기 어렵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김주온 공동위원장은 또 “우리 사회에 진보정치가 이만큼 뿌리내리고, 시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으며, 노동자의 기본권과 약자의 인권이 증진하는 데에 그의 공로를 누구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귀한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이어가는 것이 정치를 업으로 하는 모든 이의 사명”이라고 덧붙였다. 민중당은 “대표단 회의를 잠시 중단할 정도로 충격에 휩싸였다. 당원들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민중당은 “고인은 오래도록 진보정치의 산증인이자 핍박받는 민중의 대변자였으며 민중당의 정치적 동지였다. 지난 총선에서 민중당 당원들은 창원성산선거구에서 노회찬 후보로 단일화하여 당선을 돕기도 했다”며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며 추모했다.
노회찬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트럼프에게 김정은 친서 전달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트럼프에게 김정은 친서 전달
2018. 06. 02 15:56 생활
백악관은 1일(현지시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모습의 사진을 공개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가져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은 뒤 읽어보지도 않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에 대해 “매우 좋고 흥미로운 편지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 내용을 캐묻는 기자들의 말에 “그 편지는 매우 좋은 편지였다”면서 “여러분이 그 편지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 직접 보고 싶으냐? 얼마나 보고 싶으냐? 얼마나 보고 싶어?”라고 농담을 건넸다. 트럼프 대통령은 몇 분이 지난 뒤에 웃으면서 그 친서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일부러 그 편지를 뜯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내가 그 국장(김영철 전 정찰총국장) 앞에서 편지를 열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그에게 ‘편지를 뜯어보기를 바라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나중에 읽어보셔도 된다’고 답하더라”고 친서를 두고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보기에 그 친서에 엄청나게 놀라운 것(big surprise)이 들어 있을 수 있다”고 농담조로 말하며 환하게 다시 웃었다.
트럼프
북 김정은, 노동당 지방조직에 자필편지…‘제2의 고난행군 없다’
북 김정은, 노동당 지방조직에 자필편지…‘제2의 고난행군 없다’
2018. 05. 06 09:59 생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2월7일 노동당 지방 조직에 “제2의 고난의 행군은 없다”는 내용의 자필 편지를 보냈다고 6일 일본 아사히신문이 복수의 북한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편지에 “조선 인민에 제2의 고난의 행군은 없다. 머지않아 세계에 자랑할 승리를 경축하는 조선 인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편지를 보낸 시기는 북한이 특사단을 평창 동계올림픽에 보내기 직전이다. 북한은 이틀 후인 2월 9일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등을 특사단으로 한국에 파견했다. 소식통들은 김 위원장이 자필 편지를 보낸 것은 중국의 경제 제재 조치에 따른 동요에 대한 타개책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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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11 건 검색)

[원희복의 인물탐구]의사·노동당 부대표 임석영-앞서기보다 뒤서기 좋아하는 혁명가(2018. 04. 23 14:45)
2018. 04. 23 14:45 사회
유사 이래 최고의 직업을 꼽으라면 의사와 법률가다. 인공지능시대 사라질 직업이 많지만 이 두 직업은 어떤 조건에서도 건재할 것이다. 그 중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거의 독보적 존재다. 아파 본 사람은 알지만 의사의 말을 거역할 사람은 별로 없다. 아마 의사는 영원한 ‘갑’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런 의사들이 요즘 화가 단단히 났다. 파업을 공언했던 대한의사협회는 4월 27일 집단휴진을 결의했다(의협은 후에 이를 유보했다). 의사들은 이른바 ‘문재인케어’라는 의료보험 확대에 불만을 나타냈다. 마침 최대집 의협회장 당선자는 지난 촛불과정에서 ‘자유통일 해방군’이라는 극우단체를 이끈 ‘태극기부대’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국민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 때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이승만·박정희를 찬양한 ‘행동하는 의사’다. 일산현대요양병원 가정의학과 임석영 원장(45)도 최 회장 못지않은 ‘행동하는 의사’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최 회장과 방향이 180도 다르다. 임 원장은 의료봉사단체인 ‘행동하는 의사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오래 이끌었고, 현재 감사로 있다. 게다가 ‘태극기 부대’와 정반대인 진보정당, 그것도 상당히 ‘급진적’인 노동당 부대표다. 공교롭게 임 원장과 최 회장은 대학교(서울대 의예과) 91학번 동기다. 같은 학교를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의사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의협 선거에서 최 회장에게 표를 주지 않았음은 분명할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웃으며 “동기동창이지만 서로 개인적 인연은 없다”고 말했다. 먼저 이번 의협의 진료거부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봉사단체인 ‘행동하는 의사회’ 이끌어 “이는 2000년 의약분업부터 연관된 얘기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사도 (진료거부를)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행동에는 목표와 수단이 적절해야 한다. 진료거부는 환자의 입장에서 매우 큰 불안을 초래하는 행위이고, 의료인의 본질과 첨예하게 부딪치기 때문에 정말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의사는 신중해야 한다. 실제 (진료거부에) 현실성이 있을까? 하더라도 일부 의료인이 상징적으로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문재인케어에 부족한 점도 있지만 진일보한 점도 있다”면서 “특히 국민의 의료보장성을 확대하는 측면에서 전적으로 지지하고,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협 집행부가 얼마나 신중한 과정을 거쳐 진료거부를 결정했는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문재인케어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은 노골적으로 말하면 수입이 줄기 때문 아닌가. 의사들이 그렇게 먹고 살기 어려운가. “상대적이겠지만 의사도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 사회가 극소수 재벌을 제외한 대다수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빈곤층은 급격한 속도로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촛불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는데, 서울대병원 백모 교수는 끝까지 ‘병사’라고 우겼다. 레지던트는 사망진단서를 말도 안되는 기준으로 기재하고 도망갔다. 또 한 의대 교수는 백남기 농민이 ‘빨간 우의를 입은 인물의 가격에 의한 뇌진탕’이라며 시신 안치실까지 침입했다. 요즘 의사들, 왜 그런가. “그렇다. … 의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사망진단서 문제만 하더라도 서울대병원 내 많은 의사들이 ‘잘못됐다’는 목소리를 냈다. 중요한 것은 의사들이 우리 사회에서 소금이 되고 필요한 직업이라는 인식을 받는 것이다. 의사들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지금까지 의사는 그런 사회적 존경을 받지 않았나. 그런 사회적 대우에 걸맞은 책임을 못하니 비난 받는 것 아닌가.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문제도 후배 의대생들이 ‘선배들에게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대자보로 선배를 질타하지 않았는가. “맞다….” 요즘 의사들의 행위에 기자의 화풀이성, 혹은 따지는 인터뷰가 되는 분위기다. 정작 임 원장은 그런 비난의 대상인 의사와 거리가 멀다. 그런 면에서 임 원장은 기자의 이런 질타성 질문에 매우 억울할 것이다. 그는 95년 경인지역 의과대학생회협의회(치과·간호학과 학생회 연대) 활동을 하다 2001년 ‘행동하는 의사회’를 창립했다. 2003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행동하는 의사회의 강령 전문에는 “한국 의료 50년, 의사들이 전문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라는 반성문을 걸었다. 그는 “전공의 파업에 고민하는 청년의사들이 모여 저소득층에 봉사도 하고, 자기반성과 의료계 전체의 변화를 모색해 보자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원 수입의 10%가 회비, 회비의 50% 기부 행동하는 의사회는 회원 수입의 10%를 회비로 납부하고, 그 회비의 50%는 기부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정회원과 학생회원을 합해 100여명의 회원이 서울·대구·부산·인천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2003년 당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중증장애인 요양병원 설립을 구상했고, 2009년에는 중국 한센인마을 진료사업도 했다. 그는 “부산에는 장애인 치과를 열어 8년째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최근에 장애인 주치의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행동하는 의사회는 의료봉사활동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에서 영리병원 반대투쟁도 하고,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 등 의료정책에 대해 ‘행동’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도 의료를 산업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문재인케어는 공급(의사)은 민간에 맡기고, 재정(비용)은 건강보험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 정책이 한계에 왔다고 본다. 2004년에 비해 2014년 국민의 의료비 지출은 2.5배, 건강보험 재정도 2배 늘었다. 그런데 의료보험 보장성은 63~65%대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의료는 공급 쪽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급영역을 손보지 않으면 의료보험이든 세금이든 재정적으로 힘들어질 것이다. 의료보험 보장성이 70~80%인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공급측면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라가 책임지는 국가·공공병원이 많아야 한다. 현재 공공의료 비중이 10%도 안 되는데 최소한 30%만 돼도 민간의료를 긍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그는 1973년 제주도에서 가난한 회사원 아버지의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공부는 잘했지만 의대는커녕 대학 그것도, 서울에 유학할 형편이 안됐다. 그는 “중학교 때 수학여행조차 갈 수 없던 형편이었지만 선생님이 도와줘 갈 수 있었고, 의대도 주변에서 장학금을 챙겨줘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91년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했지만 그해 강경대 치사사건(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전경의 구타로 숨진 사건)을 보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2년간 ‘어떻게 살 것인가’, 심지어 ‘의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임석영 의사·노동당 부대표가 병원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04년 진보정당인 사회당 입당 그는 대학시절 의료봉사 모임을 확대, ‘행동하는 의사회’를 만들고 2004년 진보정당인 사회당 당원이 됐다. 진보정당 이합집산에 따라 사회당은 진보신당을 거쳐 지금 노동당이 됐고, 2016년 10월 그는 부대표에 선출됐다. 노동당은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 1만1000명으로 기초의원 3명을 보유한 ‘미니정당’이다. -의대생들은 시국문제에 관심 없고 데모도 잘 안하잖나. “(하~하~). 모두 그러지는 않는다. 정당에 가입한 의사도 많다. 무엇보다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가 중요하지 않나. 과거 운동권 학생도 변신한 사람이 많고. 과거 운동권이 아닌 사람도 지금 진보운동하는 사람 많다. 나는 행동하는 의사회 활동을 10년 넘게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헌신하면서 사는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밑바닥 사회에 있는 사람들이 바뀌어야 우리 사회가 바뀐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선입관인지 모르지만 의사 출신 보수정치인은 있지만 진보정당 활동하는 의사는 많지 않다. “가끔 ‘어? 내가 왜 여기 서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하~하~) 나는 여러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공부했다.(이 대목에서 그는 약간 눈시울을 붉혔다) 대학 와서 보니 ‘사회가 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정당활동을 한 것이다. 우리는 더 잘살 수 있고 특히 공동체 모두가 더 잘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우리 정치가 진보정치를 하기 힘든 환경이다. “나는 정치관계법이 다양한 시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기성 정당 틀에 맞춰져 있다. 정치관계법이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어 새로운 정치, 신생정당은 밀릴 수밖에 없다. 기초의원 선거구를 2인에서 4인으로 바꾸라는 시민적 요구를 오히려 개악했다.” -노동당의 특징은 뭔가. “나는 레토릭에 의한 진보정치도 미래가 없다, 정치도 실사구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 비전을 보여야 한다. 노동당은 다수인 노동자의 입장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정당이라고 본다. 나는 노동당이 좀 더 환경·탈핵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반영했으면 하고, 당에서도 그런 쪽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는 ‘공평하게 시민의 기본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했다. 시민의 기본권리는 바로 먹고사는 문제로, 의료를 포함해 교통·통신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특히 의료의 경우 국가가 30% 이상 책임지는 사회를 꿈꾼다. 그가 꿈꾸는 이 ‘소박한’ 사회는 힘든 과제다. 그도 “솔직히 말해 힘들고 가끔은 그만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가 힘든 것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사회(국민)가 알아주지 않는 것(지지율 저조)에 대한 낙담이다. 언론도 노동당을 거의 다뤄주지 않는다. -쿠바 혁명의 주역 체 게바라가 의사 출신이다, 그와 같은 혁명을 꿈꾸나? “학생 때는 가끔 생각했다. (하~하~) 체 게바라가 살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이 시대 혁명가는 뭔가? 혼자 선명하게 드러나 각광 받는 사람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사회를 바꾸는 것을 꿈꾸고 그 계획에 맞춰 자신의 일상을 조직하면 그가 이 시대의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 진정한 혁명가는 지금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을 개인이 아닌 진보적 운동과 시민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닥터 노먼 베순을 더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노먼 베순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나중에 찾아보니 노먼 베순은 캐나다 출신 흉부외과 의사로 중국 혁명에 가담한 인물이다. 그는 1930년대 홍군 군의관으로 마오쩌둥과 함께 장정에 참여했다. 부상당한 홍군에게 자신의 피를 뽑아 수혈할 정도로 헌신적인 노력을 하다 1939년 환자 치료 중 숨졌다. 마오는 그의 추도문을 직접 썼고 현재 중국혁명열사릉에 묻혀 있다. 중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의과대학과 병원이 3개나 있다. 의사 임석영은 앞장선 혁명가보다 뒤에 선 혁명가가 되기를 원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원희복의 인물탐구]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진보는 반성과 성찰, 그리고 통합하라”(2016. 12. 13 15:24)
2016. 12. 13 15:24 사회
그는 최근 지리산에서 내려와 오랜만에 서울에 왔다. 그리고 12월 3일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 앞을 걸었다. 그는 효자동을 지나며 ‘제2의 4·19혁명과 같은 유혈사태(경찰의 총격)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명예로운 국민혁명이 돼야 하고, 또 그리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다. 그가 불편한 몸에도 촛불시위에 나선 것은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는 이 역사적 현장에 잠깐만이라도 있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사의 현장에 서고 싶었다는 심경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천생 ‘기자’다. 하지만 그는 총이 국민을 향해 겨누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1980년 광주의 경험도 있지만 군인이나 경찰이 그때보다 훨씬 성숙해 있기 때문이다. “총이 국민 겨누는 사태 일어나지 않을 것” 그는 또 이 민중혁명의 현장에서 “JTBC 손석희가 처음 ‘삼성 쪽 언론사로 갈 수 있느냐’는 말도 있었지만 이번 박근혜 하야 정국을 통해 역사를 바꾸는 이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2013년 정치일선에서 떠난 그는 ‘실체적 고통’과 맞서 싸웠다. 그는 고열과 함께 온몸에 물집이 생기며 내장기관 기능이 떨어지는 희귀한 천포창에 시달렸다. 시점은 박근혜 정권의 종북몰이가 절정에 이를 때였다. 아마 박 정권의 만행을 그의 오장육부가 격렬히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공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자락에 들어가 깨끗한 음식을 먹으며 요양했다. 말기암 환자들 틈에서 신문도, 방송도 없이 살았다. 박근혜 정권이 흔들리자 그의 병도 나아갔다. ‘우주의 기운’ 덕일까. 아니다. 촛불의 힘 덕일 것이다. 그는 식사 때 반주 한두 잔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 그는 촛불의 힘에 대해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에 위임했던 자신의 권력이 농락당했다는 것에 분노하고, 국가의 품격이 떨어지는 국제적 망신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권 전 대표는 이 상황에서 9일 국회의 탄핵결의 이후 진보진영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지켜보겠다고 하는 것은 속된 말로 ‘갈 데까지 가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 바로 퇴진시켜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국회의 탄핵결의는 실체적으로 새로운 시작이다. 구체적이고, 강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그 중 진보정당은 박근혜가 버틸 때 솔직한 민심의 이정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민주노총도 이 상황에서 중심적 단체로 역할을 할 능력이 있고, 또 그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이 상황에서 이른바 대권주자라는 사람들은 실체적으로 뭘 하느냐로 검증될 것이다. 탄핵 이후 촛불을 들고 최선봉에 서야 할 것이다.” 그는 지금 하야시국이 가지는 의미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에 대해 선거의 여왕, 콘크리트 지지율 운운하지만 실제는 ‘박정희의 딸’에서 나온 지지”라며 “지금 이 순간은 그 견고한 박정희 신화가 깨지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지금의 경제발전을 박정희가 이룩했다는 잘못된 신화에서 저임금을 감내한 노동자들의 희생의 결과로 교정하는 것으로, 한국 사회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1987년 6·10 시민혁명은 그해 1월 남영동에서 ‘탁치니 억하고 죽은’ 서울대 박종철에서 시작해, 화이트칼라의 이른바 넥타이부대가 가세하고, 6월 연세대 앞에서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면서 ‘완성’됐다. 여기에 종교인·해직교수·해직기자 등이 함께한, 소위 ‘배운자들’, 즉 ‘시민혁명’이었다. 이후 시국은 7~8월 노조 결성이 이어진 노동자대투쟁 국면을 거쳐 1994년 선명하고 새로운 전국노동조합 조직 민주노총으로 이어졌다. 권 전 대표는 이 국면에서 기자에서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초대 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초대위원장이 됐다. 그는 1996년 당시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에 대항하는 총파업을 주도, 법 재개정을 이끌어냈다. 파리특파원 거쳐 언론노동운동가로 그렇게 축적된 노동조합 역량은 이번 2016년 11월 민중총궐기에서 주요 추동세력이 됐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도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민중총궐기’ 국면에서 발생했다. 민주노총과 전농은 이번 탄핵 주말시위 지도부의 주요 일원이다. 그런 면에서 87년 6·10혁명이 대학생과 화이트칼라가 주도한 혁명이었다면, 지금은 블루칼라가 앞섰고, 시민단체가 뒤따른 국민·민중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으로서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이해가 과거보다 높아진 분위기다. 총연맹 차원에서 노동조합의 정치파업은 정당하고 중요하다. 특히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은 국가에서 노조의 정치파업은 당연하다.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노동운동이 그렇다. 심지어 전두환 정권 때 김대중 사형선고에 반대해 영국과 호주 노조가 파업을 결의했다. 노조가 외국의 정치문제에까지 개입한 것이다.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은 노조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권 전 대표는 1941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징용 간 부모님은 막노동을 했다. 해방 후 귀국한 가족은 경남 산청에 정착했다.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설립한 그의 부친은 좌우익 갈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가족은 부산으로 이주했고, 그는 경남중·고와 서울대 농학과를 나와 신문기자가 됐다. 전두환 군부정권에서 보도지침에 길들여진 우리 언론은 6·10항쟁을 통해 노조 설립을 통한 언론민주화투쟁을 전개했다. 파리특파원을 7년 하며 ‘잘 나가던’ 권 기자는 1987년 귀국해 회사 내 노동조합을 만들고 위원장이 됐다. 후배들과 밤새 술 먹기를 좋아했던 권 기자는 언론노동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1988년 전국의 언론사 노조를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으로 엮고 위원장이 됐다. 그는 언론노련 위원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다. 6·10항쟁으로 커진 전국의 노조역량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거쳐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으로 이어졌고, 그는 이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1996년 창립된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이 됐다. ‘어용’이 판치던 노조풍토에 당당한 전국적 선명노조를 만든 것이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국민승리21을 만들어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 진보진영 후보로 출마했다. 비록 30여만표, 1.2%의 득표율이었지만 정당체계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진보정치의 씨앗을 뿌리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창당해 2002년 16대 대선에선 100만표(3.9%)에 가까운 득표를 했다. 2007년 대선 역시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했다. 그가 대통령선거에 세 번이나 도전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네 번 도전에 이어 두 번째 대기록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대선 출마를 무모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정당 후보의 대선 출마가 ‘대권 욕심’이라면 그의 대선 출마는 ‘진보정치 확장’이었다. 그는 척박한 이 땅에 진보노동운동의 씨를 뿌리고, 진보정치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뿌린 진보정치의 씨앗은 순조롭게 결실을 맺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4월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해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그 자신도 2008년 18대 총선에서 지역에서 당선돼 지역구 재선의원이 됐다. 진보세력을 통합한 통합진보당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원내 13석을 획득해 원내 제3당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2013년 그렇게 어렵게 만든 통합 진보정당이 쪼개지는 것을 보며 그는 정치를 떠났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 있는 언론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28년 전 전국언론노조 창립을 주도하던 당시 사진 앞에서 후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새언론포럼 제공 이 하야시국에서 진보진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보정당, 진보세력, 진보정치인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과 성찰, 그리고 혁신이다.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진보진영 대선후보였던 나부터 국민에게 사죄한다. 진보정당이 제 역할 했으면 나라가 이렇게 참담한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정당은 분열되고 국민의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제 역할을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성찰하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추구했던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등 국민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진보정당은 적어도 보육·교육·의료·주거·노후대책 등을 책임지는 정책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진보의 오랜 문제인 분파와 분열을 어떻게 극복하나. “나는 아프기 전부터 진보대통합을 외쳤다. 초기 민주노동당으로 되돌아가면 된다. 어느 세력, 누구 세력, 어떤 노선을 따져선 안 된다. 소위 NL(민족해방)이나 PD(민중민주) 등도 화학적으로 결합을 해야 한다. 노선을 뛰어넘어 결합한 과거 민주노동당 정신으로 다시 합쳐야 한다.” 최근 민주노총 주도로 진보정치를 통합하는 ‘민중의 꿈’을 추진하고 있다.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울산에서 무소속 국회의원 2명을 당선시켜 여의도로 보냈다. 박근혜 정부의 집요한 종북세력 매도공세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진보에 기대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통합해야 한다.” 결국 권 전 대표가 이 하야시국에서 진보진영에 요구하는 것은 ‘(분열에) 반성하고, (민생정책을) 성찰하고, (소아를 버리고) 통합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느 세력, 어떤 노선 따져선 안 된다” 그는 아직도 주소지를 창원에 두고 있다. 국회의원을 지낸 대부분의 사람들, 지역 토박이라도 한 번 서울(여의도) 물을 먹으면 대부분 지역을 떠나지만 그는 그러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을 지지했던 지역 유권자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 오히려 요즘 아파트에서 동네 사람을 만나면 주민들이 ‘함께 있어줘 고마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창원에 내려갔다가 연말·연초 일본에 간다. 일본 온천에 가서 마지막 남은 병 찌꺼기를 말끔히 씻고 올 계획이다. 잠깐 서울에 온 사이 후배들의 식사 초대가 이어졌지만 시간이 없어 일일이 응하지도 못했다. 이 인터뷰도 식사시간을 어렵게 짬을 내 이뤄졌다. 하지만 권 전 위원장은 바쁜 서울 일정에도 자신이 만든 광화문 프레스센터의 언론노조 사무실에 들러 후배들을 격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삶은 언론민주화 운동사이고, 진보노동 운동사이며, 또 근래 진보정당 역사이기도 하다. 이는 척박한 이 땅을 따뜻한 인간애가 흐르는 땅으로 바꾸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다. 기자의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쓸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지 않아도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후배들이 구술을 받아야 한다고 찾아왔다”면서 “이제 몸이 괜찮으니 내가 직접 쓰겠다”고 말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노동당 새 대표로 선출된 나경채 “노동당·정의당 ‘진보 결집’이 답이다”(2015. 02. 10 16:05)
2015. 02. 10 16:05 정치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은 따로따로 참패했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치면 무려 9%다. 무엇보다 지지율을 나눠 갖고 있는 지금의 조건과 환경을 우리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 권력을 잡아본 정치세력은 안다. 자신들의 의지대로 한 사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게 얼마나 특별한 힘인지 말이다. 그래서 민심의 향방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2월 1일 새누리당의 새 원내대표로 유승민 의원이 선출됐다. 경쟁 후보였던 이주영 의원을 19표차로 따돌렸다. 예상보다 큰 표차다. 추락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과 선을 긋지 않고는 다음 총·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절박감이 묻어 있는 결과였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취임 일성은 ‘증세’였다. 새누리당의 성역과도 같았던 부자증세, 법인세 인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또다시 대변신이다.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복지를 내세우며 반전을 만들었던 2012년을 떠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 총선도 새누리당의 승리가 될 것 같다는 전망이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앞장서서 복지와 증세를 이야기했던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없다. 그들은 가장 먼저 민심을 읽었지만, 권력을 통해 이를 정책으로 관철시키는 데 실패했다. 실패했을 뿐더러 뿔뿔이 흩어지기까지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 청산’처럼 진보정당의 ‘진보 결집’도 몇 년째 반복돼 이미 유권자들에게는 피로한 이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진보 결집’의 첫 단추를 꿰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 1월 30일 노동당 새 대표로 나경채 후보가 당선됐다. 나 대표는 공약으로 정의당과의 통합, 국민모임 합류를 내세웠다. 나 대표의 당선으로 진보 결집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4일 나경채 노동당 대표를 만났다. 당대표 선거의 유일한 쟁점이 ‘진보 결집’이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은 따로따로 참패했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치면 무려 9%다. 사실 놀라운 숫자다. 지난 수년 사이 진보정당들이 유권자들에게 박수받을 만한 정치적 성과나 정책적 성과를 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다. 진보정당이 어떤 좋은 계기를 만나 유권자들에게 박수받을 만한 성과를 내면 지지율이 훨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숫자다. 무엇보다 지지율을 나눠 갖고 있는 지금의 조건과 환경을 우리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 유권자들이 진보정당들에 요구하는 것은 결집이라고 생각한다. 진보 결집은 다음 총선을 치르기 전에 따놓아야 할 자격증 같은 거다. 지금처럼 나눠진 상태로 다음 총선을 맞는다는 것은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에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 결집을 위해 민주적인 절차를 거르거나 우회하지 않고 최대한 당원들을 설득해갈 것이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 전 의원, 조승수 전 대표가 2011년 진보대통합 당시 당원들의 뜻과 상관없이 진보신당을 떠나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 그때 상처가 노동당원들에게 남아 있을 것 같다. “상처는 우리 스스로 극복할 것이다. 이제 그만 상처를 잊어버리자고 해서, 혹은 당을 떠났던 사람들을 비판한다고 해서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회찬 전 의원, 심상정 의원, 조승수 전 대표 모두 진보정치를 키워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대단한 사람들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보 재편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어려운 조건에서 민주주의 원칙과 절차를 지켜가면서 진보정치의 대의에 복무하는 선택을 기어이 성공시킨다면, 그때 노동당에 유권자들이 보내는 박수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노회찬, 심상정도 못해낸 것을 쟤네가 해내는구나’라고 유권자들이 느꼈을 때, 그때 리더십이 형성되고 정치적 상처도 극복될 것이다. 그렇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넘어설 것이다.” 단순히 ‘진보니까 합치자’는 식이라면 아니지 않나.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가치와 비전을 중심으로 분명하게 노선을 정하고 각 세력이 거기에 동의할 수 있는지를 계속 물어야 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합류가 진보 결집의 대중적 측면에서 중요한 호기일 수 있지만 인물 중심으로 가서는 안 된다. 국민모임 계파, 노동당 계파, 정의당 계파가 그냥 합쳐져서 하나의 당을 만들겠다는 식은 곤란하다. 그렇게 하면 유권자들도 설득할 수 없다. 진보정당 초창기에는 진보정당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시도였다. 그 당이 하는 모든 것이 새로움이었다. 지금은 그런 초기 효과에 기댈 수 없다. 새로운 문제의식, 혁신하는 노력이 없으면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진보정당들이 유권자들에게 ‘참 잘했다, 쟤들이 집권은 아직 못했지만 저 말은 참 맞다’며 감동과 위안을 주는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진행하는 진보 결집은 반성문의 성격이 크다.” ‘진보 결집’의 대상에 통합진보당도 포함되는가. “통합진보당이 강제해산되고 의원직 상실까지 이어진 과정이 매우 부당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정당 해산 이전부터 통합진보당이 북한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고,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자는 것인지에 대해 국민들이 의구심을 가지고 봐왔었다. 국민들이 한 정당에 이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질문에 통합진보당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다’고 대답하고 말아버렸다. 책임 있는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또 하나는 타 진보세력에 대한 패권적인 태도다. 그 문제에 대해서도 성찰이나 사과가 없었다. 통합진보당이 이 두 가지에 대해 신뢰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면 대화가 진행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노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진보 결집’의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는 무엇인가. “제1야당 교체가 시대적 요구라고 생각한다. 노동당이 비록 작은 야당이지만 이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해도 집권여당은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고 바꿀 의지도 안 보인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여기에 저항해 변화를 추동해낼 능력이 안 된다. 계파정치의 수렁에서 당분간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국민적인 불행이다. 지금 노동당이 제1야당이 되겠다고 하면 다 웃을 것이다. 그럼 필요한 건 지금 있는 진보정당끼리 결집하고 혁신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에게도 더 이상 새정치연합에 미련을 두지 말고 진보정당에 본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왜소한 세력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진보 결집과 내적 혁신을 통해 도달할 구체적인 목표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내놨던 의제들, 복지나 증세를 이제 새누리당이 이야기하고 있다. “복지냐, 아니냐에서 ‘증세와 함께 가는 복지’냐, ‘증세를 말하지 않는 복지냐’로 대립각이 달라졌다. 발전하고 있는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누구한테 세금을 거둘 거냐’가 될 것이다. 이 질문을 진보정당이 제대로 던질 수 있으면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도 증세, 진보정당도 증세라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누구한테 거둘 거냐’를 끊임없이 물어본다면 꼭 새누리당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법인세 인상은 아무리 유승민 원내대표라고 해도 새누리당 내에서 쉽게 추진하지 못할 것이다. 증세에 대한 원칙과 소신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진보정당 간은 물론이고, 한 진보정당 내부에서도 이념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많다. 다수의 유권자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이념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 정도가 진보정당의 이념적 지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를 어떤 방식으로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고 어떤 정책적 대안으로 표현할 것이냐다. 진보정당이 이념 경도성이 크다는 말은 그만큼 지금 세력이 없고, 앙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능력, 연구능력, 네트워크가 풍부한 상태에서는 지금처럼 무슨무슨 주의가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 다양한 현실의 언어들, 정책으로 나온다. 지금 진보정당이 불필요한 이념논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진보정당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진보 결집 과정에서도 과도한 이념논쟁 이전에 정책이나 대안,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HOT피플]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현충원에 안장 外
[HOT피플]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현충원에 안장 外(2010. 10. 20 15:01)
2010. 10. 20 15:01 사회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현충원에 안장 10월 10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의 검안 결과 타살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10월 14일 5일장을 마치고 고인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이날 영결식장에는 유족과 탈북자, 북한인권단체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유해는 영결식을 마치고, 대전 현충원 국가 사회공헌자 묘역에 묻혔다. 장례위원회 관계자는 “나중에 통일이 되면 고인이 원하던 대로 북녘 고향으로 옮길 것”이라고 전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김문수 지사에 발끈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골프장 인·허가를 둘러싸고 김문수 경기지사와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10월 13일 국회 국토해양위 국정감사에서 김문수 지사는 경기도 내 골프장 증가 이유에 대해 “손(학규) 대표가 지사 시절 인·허가를 했고 나는 도장만 찍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손학규 대표는 공개적 발언은 자제했지만, 주변 인사에게 “(김 지사 발언은) 부도덕하다”며 불쾌함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영 국방장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10월 15일 국회 법사위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 사태에 대한 책임 추궁에 대해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지만 국방부 업무라는 것이 그냥 떠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렇지만 자리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10월 안에 천안함 관련 조사를 종결하고 사법적인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슈퍼스타K 2’ 존박, 화제의 중심에 서다 케이블 TV 사상 최초로 시청률 10%를 넘나들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슈퍼스타K 2‘의 최종 우승자 결정이 다가오면서 존박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10월 15일 방송에서 온라인 투표 4주째 1위를 차지했던 장재인을 제치고 처음으로 존박이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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