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974 건 검색)
- 헌재,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땐 주심 공개 이번엔 비공개 이유는?
- 2024. 12. 16 16:33사회
- ... 말했다. 헌재에서 주심은 내부적으로 평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역할을 한다. 헌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때 모두 주심 재판관을 공개했다. 노...
- 윤석열 탄핵 정국
- 국방장관 “윤 대통령, 군 골프장서 골프는 사실…노무현도 거의 매주 운동”…야당 ‘발끈’
- 2024. 11. 28 16:53정치
- ... 그래서 운동하신 것인데,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나”라고 말했다. 김 장관이 해명하는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해 야당의 항의를 받았다. 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님 거의 매주 운동하시지...
- 영상
- 윤 대통령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다” 공천개입 정황 육성…노무현 땐 탄핵소추
- 2024. 10. 31 09:47정치
- ...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천개입 승인·공모만으로도 기소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사한 혐의로 탄핵소추를 당하기도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발언 시점 기준에선...
- 尹-명태균 통화 내용 파장
- 남은 건 고난도 연금정치…17년 전 ‘노무현 협치’ 보면 답이 보인다
- 2024. 09. 14 09:00정치
- ... 이사장)은 지난해 유튜브 방송에서 기초연금 도입의 ‘결정적 장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첫해에 얼마 드는데?’ 물어보시더라고요. (중략) 기획예산처 장관님한테 ‘보건복지부...
스포츠경향(총 278 건 검색)
- 설채현, 탄핵 정국 속 故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방문
- 2024. 12. 12 17:38 연예
- 설채현 수의사 SNS 수의사 겸 동물 훈련사 설채현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11일 설채현 수의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그냥…너무 생각났어요. 죄송해요. 이럴 때만 찾아서”라는 문구와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에는 김해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비가 담겼다. 해당 묘소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시선을 끌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오후 10시 20분께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나 약 3시간 만에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며 비상계엄 선포가 해제됐다. 이후 많은 국민들은 전국적으로 윤 대통령의 탄핵 촉구를 위한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설채현 역시 탄핵 정국 속 혼란스러운 심경을 느끼고 이같은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설채현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TV 동물농장’, ‘고양이를 부탁해’등 다양한 동물 프로그램에서 활약했으며, 유튜브 채널로도 반려동물 보호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 김동연 지사, 31일 봉화마을서 노무현재단 초청 특별대담
- 2024. 08. 28 20:53 생활
- 경기도 제공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오는 31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재단 초청 특별대담에 참여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다. 28일 도에 따르면 김 지사는 31일 오후 2시 노무현재단이 봉하마을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 개관 2주년을 기념해 마련하는 특별대담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미래를 준비한 대통령’에 참여한다. 김동연 지사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정책 실무자로서 경험한 두 대통령과 관련된 일화 등을 전할 예정이다. 2022년 9월 정식 개관한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전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과 꿈, 민주주의 가치를 확산하고자 김해시가 건립했으며, 노무현재단이 수탁 운영하고 있다. 김 지사는 특별대담에 앞서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대담 이후인 오후 3시 30분부터는 권양숙 여사를 예방해 만찬도 함께 한다. 감동연 지사는 오후 6시에는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 잔디동산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제14회 봉하음악회를 관람한 뒤 수원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 ‘노무현과 바보들’ 서거 15주기 맞아 ‘못다한 이야기’ 예고편 공개
- 2024. 05. 07 09:22 연예
-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못다한 이야기’ 포스터. 배급사 제공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맞아 개봉하는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못다한 이야기’ 예고편이 공개됐다. 배급사 라이크콘텐츠는 ‘노무현과 바보들: 못다한 이야기’ 30초 예고편을 7일 공개했다. 이번 예고편은 “작은 바보들이 큰 바보가 나타나니까 거기를 따라간 것 같다”고 회상하는 ‘바보 대통령’ 노무현을 회고하는 한 시민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네 번이나 낙선한 ‘이상한 정치인’이지만 그가 전하는 진심과 인간적인 면모에 이끌려 만년 꼴찌 후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이끌었던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찬란한 순간이 없었다”라며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을 담아내 과연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있을지 궁금증을 모은다. 모두를 슬픔에 잠기게 했던 2009년 서거 당시의 장면에 “이 나라에 원칙이 승리하는 시대를 만들고 싶습니다”라며 우직하고 쓸쓸하게 울리는 노무현의 목소리를 담아내 돈도 빽도 없이 한평생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그를 떠올리게 만들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와 함께 울고 웃었던 시민들의 모습이 이어서 교차되며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시민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어 ‘노무현과 바보들: 못다한 이야기’의 이야기에 대해 기대감이 고조된다. 개봉일인 5월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로, 서거 15주기를 맞이해 개봉 확정 소식을 전했다.
- ‘노무현과 바보들’ 서거 15주년 영화 5월 개봉확정
- 2024. 04. 24 08:46 연예
-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포스터. 바보들·라이크콘텐츠 제공 ‘노무현과 바보들: 못다한 이야기’가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맞아 오는 5월 개봉을 확정하고 메인 포스터를 공개했다. ‘노무현과 바보들: 못다한 이야기’는 지난 2019년 서거 10주기를 맞아 개봉한 <노무현과 바보들>에서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와 묵직한 여운을 더하며 다시 한번 ‘바보 대통령’ 노무현을 회고한다. 돈도, 빽도, 줄도 없이 ‘지역주의 타파’와 ‘동서 화합’을 외치며 홀로 외롭게 싸워온 ‘이상한 정치인’이지만 가슴을 울리는 뜨거운 진심을 통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지지와 응원을 끌어냈던 노무현에 대한 수많은 사람의 기억과 추억을 빌려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특히, 유명 정치인이나 정치학자가 보는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가까이서 또 멀리서 그를 응원하며 함께 울고 웃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품을 풍성하게 채웠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에 오는 5월, 서거 15주기를 앞두고 못다한 이야기를 가지고 관객을 찾을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개봉 확정 소식과 함께 공개된 ‘노무현과 바보들: 못다한 이야기’의 메인 포스터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노무현의 모습이 담겨 있어 단번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네 번이나 낙선해 ‘바보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우직함을 닮아 힘 있게 쓰인 타이틀 캘리그라피는 깊은 울림을 예고한다. 또한, ‘언제나 당신이 그립습니다’라는 카피가 더해져 어느새 서거 15주기를 맞았음에도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진심들로 채워진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5주기 추모작 ‘노무현과 바보들: 못다한 이야기’는 5월 극장 개봉 예정이다.
주간경향(총 101 건 검색)
- 연금정치 복원? 17년 전 노무현, 한나라·민노당에서 배워라(2024. 09. 16 06:00)
- 2024. 09. 16 06:00 정치
- 그간 정부 입장 부재로 개혁 실패…이번에도 공방만 하다간 같은 길 세대별 차등 인상 등 쟁점에 17년 전처럼 고난도의 정치력 발휘해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9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올해 수준인 42%로 유지하는 내용을 담은 ‘연금개혁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정부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은퇴 전 소득 대비 연금액을 뜻하는 소득대체율은 올해 수준인 42%로 유지하는 개혁안을 지난 9월 4일 내놨다. 중장년일수록 보험료가 빠르게 오르도록 보험료율 인상 속도에 세대별 차등을 뒀고, 가입자들의 기대 여명과 가입자 수 증감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 장치를 2036년 이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정부가 구체적인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2003년 이후 21년 만이다. 국민연금의 재정을 전망하고 보험료 등을 조정하기 위한 국민연금법상의 ‘재정계산’은 2003년 처음 했는데 2047년에 기금이 소진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참여정부는 이 계산 결과를 토대로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위해 ‘더 내고 덜 받는’, 즉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낮추는 법안을 국회에 2003년 10월 제출했다. 이후 3년 8개월간의 진통 끝에 2007년 개혁이 이뤄져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기존 소득대체율 60%를 2008년 50%로 낮춘 뒤 해마다 조금씩 떨어져 2028년 40%에 도달하도록 설계) 체제가 만들어졌다.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기초노령연금)도 이때 도입됐다. 이후 17년간 국민연금 개혁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두 번째 재정계산이 있었지만 이때는 ‘9%-40% 체제’의 안착이 주된 과제였고, 세 번째 재정계산이 이뤄진 박근혜 정부에선 기초연금-국민연금 연계 논란이 벌어져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네 번째 재정계산이 이뤄진 2018년엔 개혁 기대감이 높았으나, 문재인 정부는 4개의 개편안을 병렬적으로 발표한 후 쟁점 논의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넘겼다. 그러나 경사노위 역시 단일안을 내지 못하고 3개의 개편안을 발표한 뒤 활동을 종료했다. 그간의 개혁 실패 사례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것은 정부의 ‘입장 부재’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에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을 비롯한 구체적인 정부안을 21년 만에 내놓았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충족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국민연금 개혁은 미래세대에게 지나친 짐을 지우지 않도록 세대 간 형평을 기하면서 적절한 노후소득 보장이란 애초의 제도 취지도 놓쳐선 안 되는 고난도의 정치 과정이다. 그런데도 정치 역량을 보여줬어야 할 국회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수년간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은 채 사회적 대화나 전문가 합의만을 강조해왔다. 정치권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선 소득대체율 인상론과 재정안정론이 부딪쳐 접점 없이 논쟁만 되풀이됐다. 국민연금은 안 그래도 복잡한 제도인데, 양측 대립이 격해지면서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노인빈곤 개선에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등의 기초적인 사실관계마저 ‘합의’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안이 마련됨으로써 개혁 논의의 출발선은 그어졌지만, 각 정당이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정부안을 둘러싼 전문가 공방만 이어지다가 개혁의 불씨는 사그라들 것이다. 국회 의안과에 법안 서류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어떻게 해야 연금정치가 ‘가동’될까. 2007년 마지막으로 이뤄진 국민연금 개혁 과정이 한국형 연금정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야당들은 정부안에 격렬히 반대하면서 정부안의 취약점을 보완할 대안을 각자 가져왔고, 정부는 이 대안들을 토대로 타협안(기초노령연금 도입)을 제시함으로써 돌파구를 만들었다. 이때 개혁에 실패했다면 국민연금 소진 시점은 여전히 2047년이었을 것이고(지난해 다섯 번째 재정계산에서는 소진 시점이 2055년으로 나타났다), 노인빈곤율을 낮췄다고 평가받는 기초연금제도는 지금 없었을 것이다. 2007년 연금개혁 과정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연금정치의 ‘조건’을 살펴보자. ■2007년 개혁은 어떻게 가능했나 참여정부 시기 연금개혁 논의가 처음부터 불붙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6월 국민연금의 첫 번째 재정계산 결과를 토대로 정부는 보험료율을 15.9%(당시 보험료율 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당시 소득대체율 60%)로 낮추는 법안을 그해 10월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여야는 국민연금에 대해 별 논의를 하지 못한 채로 이듬해(2004년) 총선 국면을 맞았다. 이어 16대 국회 임기 만료로 정부의 법안은 폐기됐다. 당시 참여정부는 개혁 이전에 ‘제도 불신’부터 극복해야 했다. 2004년 여름 인터넷상에선 사실과 다른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글이 확산했고 ‘안티 국민연금’ 운동이 벌어졌다. 정부는 ‘국민연금 비밀 바로알기’ 자료를 배포하고 가입자 불만을 사항을 제도 개선에 반영하면서 ‘안티 사태’를 진화한 뒤 국민연금 개혁 법안을 2004년 10월 다시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의 법안에 대해 야당들과 시민단체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보험료 인상에 대한 반박도 있었지만, 국민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당시의 수많은 고령자 즉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때 야당인 박근혜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은 비판에 그치지 않고 가장 먼저 정책 대안을 마련했다. 64세 이상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의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기초연금의 소득대체율은 9%로 시작해 2028년까지 20%로 높이기로 하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60%에서 20%로 크게 낮추자는 내용이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기존(9%)보다 낮은 7%를 제시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정부안을 수정한 대안을 마련했는데 소득대체율은 정부가 제시한 대로 낮추고(60%→50%), 보험료율 조정은 4년 뒤로 미루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양당은 1년여 동안 각자의 안을 고집하며 대립했다.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일과 가정이 함께하는 기업환경 조성보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유시민 당시 복지부 장관 / 연합뉴스 지루한 대치 국면을 깨뜨린 것은 2006년 2월 새로 취임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이때 복지부는 두 차례에 걸친 내부 토론회를 통해 한나라당이 주장한 기초연금을 받아들여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가장 큰 걸림돌인 재원은 국무조정실,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와의 회의를 통해 증세 없이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 감면·축소 등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복지 확대에 늘 부정적인 경제부처를 움직인 것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었다. 유시민 당시 복지부 장관(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유튜브 방송에서 기초연금 도입의 ‘결정적 장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첫해에 얼마 드는데?’ 물어보시더라고요. (중략) 기획예산처 장관님한테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렇게 한다니까 잘 얘기해서 도와주시오’ 전화하셔서 내부적으로 추진하기로 됐어요. 그 후 국회에서 대상을 늘려라 해서 ‘돈 더 주셔야 되겠는데요’ 했더니…. (중략) ‘아니 뭐 싫으시면 말고요. 어르신들 노무현이가 잘 모신다고 해놓고 잘 모신 것도 없지 않습니까’ 했더니 (대통령이) ‘알았어’ 하시더라고요.” 이상이 2006년까지의 얘기다. 이때까지는 정부 개혁안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타당한 대안(기초연금)을 내세웠던 한나라당과 그 대안을 받아들인 정부의 ‘플레이’가 돋보였다면 2007년 마무리에선 ‘캐스팅보트’ 민주노동당의 활약이 컸다. 2006년 보건복지부가 각 신문에 실은 국민연금 개혁 광고 / 출처: 참여정부 정책보고서 2-23 국민연금 ■캐스팅보트 ‘민노당’의 활약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담은 정부 법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된 이후 개혁 논의는 급물살을 탔지만, 야당들은 여전히 정부안에 회의적이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정부안에 맞서 국민연금·기초연금 단일안을 만들었다. 이 단일안은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노동당의 색이 강했다. 기초연금을 도입하면서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크게 약화하지는 않도록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을 설득해낸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정당과 진보적인 정당이 손을 잡고 정책대안을 만들어낸,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였다. 다만 ‘결전’이 이뤄진 2007년 4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선 또 한 번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나라당-민주노동당의 기초연금·국민연금 법안과 정부의 국민연금 법안이 모두 부결되고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법안만 통과됐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만든 법안에 투표하지 않았다. 정부로서도 난감한 결과였다. “국민연금법 개정이 입에 쓰기에 기초노령연금법안을 사탕과 같이 올려놨는데, 약사발은 엎고 사탕만 먹었다”(유시민 전 장관)는 말이 나왔다. 기초연금만 도입하고 국민연금 개혁에는 실패했다는 비판 여론 속에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최종 협상을 이어갔다. 그리고 양당의 협상 결과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앞선 단일안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낮추지만(60%→40%) 기초연금을 도입함으로써 노후소득 보장은 약화시키지 않는 법안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을 설득해 만든 연금 단일안이 없었다면 거대 양당의 협상 결과는 퍽 달랐을 것이다. ■타협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지난 9월 4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으로 다시 돌아오자. 2007년의 기초연금과 같은 타협점이 이번에도 나올 수 있을까. 일단 ‘전선’은 보험료율 인상 세대별 차등 적용을 둘러싸고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자동조정장치가 급여 삭감으로 이어진다는 논란이 있지만, 정부는 한발 앞서 2036년·2049년·2054년 도입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충분한 논의와 세밀한 검토를 거쳐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중장기 과제’로 설정했다. 정부가 제시한 소득대체율(42%) 역시 민주당과 시민단체에서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지난 9월 12일 국민의힘이 “42%와 45% 사이에서 국회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김상훈 정책위의장)며 협상할 공간을 만들었다. 앞서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보험료율 13%에는 합의했으나 소득대체율에선 43%(국민의힘), 45%(민주당)로 입장이 갈렸고,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힘이 수정 제시한 44%를 수용하겠다고 했으나 국민의힘이 구조개혁도 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련의 ‘줄다리기’가 보여주는 것은 소득대체율 역시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세대별 인상 차등을 두고 여야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민주당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제도”가 저소득 중장년에게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가입이력이 짧아 과거 후한 소득대체율의 혜택을 못 누린 중장년에게 청년보다 빠른 보험료율 인상은 부당할 수 있으므로 이들을 위한 감면 특례 등의 보완 등을 모색하자”(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는 제안도 있다. 사실 절충과 타협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것은 무엇보다 ‘개혁 의지’다. 오 정책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경우 정부안을 제시한 후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현 정부가 낸 정부안은 지난 2년 동안 안 내다가 떠밀려 낸 성격이 강해 앞으로 얼만큼의 추진력을 보여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들이 정책 정당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줄지도 미지수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2007년 국민연금 개혁 성공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주목해야 할 사람이 기초연금을 제안한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민주당이 연금개혁에 의지가 있다면, 비판만 하지 말고 박근혜처럼 역제안을 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기성정당에선 볼 수 없던 정책적 역량으로 거대 양당에 자극제가 됐던 민주노동당 같은 ‘캐스팅보트’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개혁신당(3석)이 국민연금의 구연금·신연금 분리 대안을 내며 개혁 논의에 참여할 의지를 보이지만, 의석구조상(민주당 계열 175석·국민의힘 계열 108석·조국혁신당 12석) 영향력을 가지기 힘들다.
- [박주연의 메타뷰](3) “꾹 다문 노무현의 입술, 타살 아님을 확신했죠”(2022. 02. 18 13:57)
- 2022. 02. 18 13:57 사회
- ㆍ불법체류노동자부터 6명의 전직 대통령까지 마지막 길 배웅한 ‘염장이’ 유재철씨 유재철씨(63)는 매일 아침 6시 서울 은평구 사무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작은 불상 앞에 촛불 3개를 켜고 향초를 피운 후 기도를 한다. 그가 배웅한 고인들의 극락왕생을 위한 기도다. 그는 스스로를 ‘염장이’라 부른다. 염장이는 ‘염습(殮襲)’을 하는 사람이며, 염습은 고인을 마지막으로 목욕시키고 깨끗한 옷을 입혀 관에 모시는 일이다. 유씨는 염습 외에도 장례지도사로서 매장이나 화장, 묘소 조성, 봉안 등 장례 전반의 일을 진행한다. 유재철씨가 지난 2월 15일 서울 은평구 사무실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포함해 자신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고인들의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지난 29년 동안 그의 위로를 받으며 떠난 고인은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 머물던 불법체류노동자·무연고자부터 최고 권력 또는 재력가에 이르기까지 수천명에 달한다. 최규하·노무현·김대중·김영삼·노태우·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 여섯명도 포함된다. 그에게 ‘대통령의 염장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일붕·법정·숭산·법전·무진장 등 큰스님들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의 마지막 길도 그가 배웅했다. 유씨는 최근 에세이 <대통령의 염장이>(김영사)를 펴냈다.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그가 곱게 단장해 이승을 떠나보낸 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2월 15일 유씨를 인터뷰했다. -전직 대통령 여섯분의 장례를 잇따라 맡게 된 첫 단추가 최규하 전 대통령 서거였다지요. “염장이로 일하면서 동국대 대학원 장례문화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았어요. 2005년 ‘한국의 단체장(葬)’으로 석사 논문을 쓰고 싶어 행정안전부 의정팀에 연락했죠. 대통령 장례식 자료가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대통령기록물은 30년간 공개할 수 없다고 해요. 대신 육영수 여사 기록물은 막 비밀해제가 됐다면서 주더라고요. 별 도움이 안 됐어요. 이듬해 10월 새벽 1시에 TV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속보로 떴어요. 장례식장으로 무작정 달려갔죠.” -부르지도 않았는데요. “그랬죠(웃음). 가보니 비서진들은 뭘 먼저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더라고요. 명함을 주며 돕겠다고 했어요. 당시 저는 대학원생인 동시에 강의도 맡고 있어 명함에 장례문화학과 외래교수로 찍혀 있었거든요(웃음). 비서진들이 아침에 보자고 해요. 다음날 아침 종묘사직의 제사를 맡고 계신 인간문화재 이건웅 선생님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의 왕실 장례를 진행한 이홍경 선생님을 모시고 다시 갔어요. 비서에게 두분을 소개했더니, 마침 잘됐다며 최 전 대통령의 유지가 적힌 파일을 꺼내 보이더라고요.” -유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습니까. “최 전 대통령은 돌아가시기 전 직접 자신의 장례와 제사 방식을 정리해 놓으셨어요. 이건웅·이홍경 선생님은 격을 높여 왕실 장례 방식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유족은 흔쾌히 동의했고, 염은 제게 맡기셨죠. 마침 장례식장에 온 한 스님이 저를 알아보고는 제가 이전에 수만명이 모여든 큰스님들의 다비식을 진행한 사실을 유족에게 알렸거든요. 직후 박정희·윤보선 전 대통령 장례식 자료 복사본도 행안부 의정팀으로부터 받았어요. 전직 대통령 장례를 왕실 방식으로 치른 건 그때가 유일했어요.” 유재철씨는 매일 아침 6시면 작은 불상 앞에 촛불 3개를 켜고 향을 피운 후 자신과 인연을 맺은 고인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기도한다. 29년째 하는 일이다. / 우철훈 선임기자 -왕실 방식의 염습은 일반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돌아가신 분의 수의 겉옷을 입혀드릴 때는 보통 두가지 방법이 있어요. 다리를 들고 엉덩이 밑으로 겉옷을 넣어 입히는 게 한 방법이에요. 또 다른 방법은 환자복을 입히듯 어깨와 허리를 옆으로 세워서 반쯤 말아놓은 겉옷을 넣은 다음, 다시 몸을 반대로 돌려 겉옷을 펴고 팔을 끼워 입히는 방법이죠. 왕실에서는 하의를 입히고 여러 사람이 고인을 공중으로 들어올린 다음, 시상대에 펼쳐놓은 겉옷에 고인을 내려 양팔을 끼워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총탄에 의해 서거했어요. 염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었나요. “아쉽게도 없었어요. 박정희·윤보선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장례는 교보문고와 종로2가 사이에 있던 종로장의사라는 곳에서 진행했어요. 장의업을 하던 분이 돌아가시고 후손들도 가업을 잇지 않으면서 문을 닫았죠.”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은 ‘다행히 깨끗하셨다’고 책에 기술했어요. 표정은 어땠습니까. “두 눈은 감겨 있고 입술은 꾹 다물고 계셨어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싸고 일부에서 타살 의혹을 제기했지만 저는 타살이 아님을 확신했어요. 타살일 경우 얼굴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겁먹거나 놀란 표정 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에요. 노 전 대통령은 피는 많이 흘렸지만, 외관상으로는 훼손된 부위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손과 발뒤꿈치 등 몇군데 외에는 꿰매드린 부위가 거의 없었어요.”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후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지낸 운구행렬이 숭례문 앞을 지나고 있다. 2000개의 만장이 펄럭였다. / 김기남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엠바밍(emba- lming·시신 부패 방지를 위해 몸속에 약품을 넣으면서 피를 빼내는 작업)을 했지요. “냉방 장치가 열악한 봉하마을 마을회관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7일장을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2009년 5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에 사용된 만장 2000개를 준비하는 과정은 ‘기적’에 가까웠다. 불과 이틀 만에 만장에 글씨를 쓸 서예가를 섭외하고 만장 깃대인 대나무도 그만큼 구해야 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조계사에 연락했고,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지관스님이 만장을 쓰시는 모습이 방송을 타자 전국의 서예가들이 몰려들어 하루 반 만에 만장 1200장에 글씨를 써줬다”고 했다. 남은 800장은 서예과 교수들과 학생들이 썼다. 이후 행안부는 “이유는 묻지 말라”며 어렵게 구한 대나무 대신 PVC 파이프로 만장 깃대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나중에 언론보도를 통해 만장에 쓴 대나무가 죽창이 돼 청와대로 향하게 될 위험 때문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염습도 직접 했습니까. “유일하게 제가 염습을 안 해드린 분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에요. 고인의 비서실장을 했던 박지원 당시 의원(현 국가정보원 원장)이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측에 사전에 맡겼거든요. 하지만 다른 대통령의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빈소와 시신 안치, 분향소 운영과 관리, 영결식 후 운구 행렬 등 장래 전반의 진행은 제가 맡았어요.”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습니까. “두 분 모두 못 알아보겠더라고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병석에 계셔서 많이 수척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얼굴이 몹시 초췌하셨어요. 그런데 전 전 대통령은 만져보니 젊은이 못지않게 다리 근육이 정말 단단했어요. 운동을 열심히 하신 것 같았어요. 두 분 모두 고인이 누울 관 바닥을 한반도 모양의 꽃장식으로 해드렸어요. 두분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물을 것이고, 저는 염장이로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다해 고인을 잘 보내드리고 싶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는 영정에 두르는 검은 띠를 없앴지요.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 때는 상주가 왼팔에 차던 완장을 없애고 베로 만든 상장을 왼쪽 가슴에 달게 했고요. 운구병들이 착용하던 마스크와 장갑도 벗게 했고요. “모두 우리 전통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왼팔에 두르는 검은 띠는 일제의 잔재이고, 운구병들의 마스크와 장갑은 군사문화의 하나예요.” 2015년 11월 23일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입관식에서 손명순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 김영삼 전 대통령 유가족 제공 그는 경기도 광주 태생이다. 다섯 살 때 가족이 서울 천호동으로 이사했고, 그의 아버지는 항아리 장사와 쌀집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는 전문대학 졸업 후 군에서 제대한 다음, 부자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크게 벌렸다가 큰돈을 날렸다. 당시 아파트 3채 값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한강에 뛰어들 생각을 할 만큼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위해 안암동 고려대 뒤쪽 개운사에 가서 기도를 드렸다. 그게 인연이 돼 스님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힘을 얻었다. 이후 학원 운영도 하고, 형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에서도 일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쩌다 염장이가 된 건가요. “어머니 따라 절에 가서 공부하니까 재미있더라고요. 법륜스님, 암도스님도 뵀고요. 자연스럽게 대한불교청년회에 가입했죠. 그러다 1994년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전국불교청년대회에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청년회원 2명이 상조회사를 만들어 3년 만에 큰돈을 벌었다는 거예요. 초기자금이 없어도 된다면서, 나도 배워보라고 권했어요. 이후 가족에게조차 비밀로 하고 주말마다 광주로 내려갔어요.” -시신을 만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우리 집은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가족이 손수 염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시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어요. 만으로 서른다섯 살에 처음 염습을 배우러 간 날부터 그랬어요. 그날 고인은 할머니였어요. 여자 염사가 염을 주관했고, 저는 옆에서 그분을 따라 했어요. 몸을 닦아드릴 때 할머니의 찬 피부가 손에 닿을 때마다 왠지 애틋하게 느껴졌어요. 이 일을 시작한 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특히 유족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실 때 큰 보람을 느껴요.” 염습 / 유재철 제공 불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시작된 염장이 인생. 그는 1996년 6월 25일 일붕스님이 입적한 날, 처음으로 큰 장례를 맡았다. 7일장에 수많은 조문객이 몰렸다. 염습하는 내내 스님들로부터 “왜 발을 들어서 등 뒤로 장삼을 올리느냐?” “옷고름도 못 매느냐?” “왜 그렇게 승복을 입히느냐?”는 타박을 들어야 했다. 허둥대고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후 큰스님들이 입적할 때마다 그는 단골로 불려갔다. -투병생활로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 길상사에서 입적한 법정 스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기술이 인상적이더군요. 잠깐 잠드신 것처럼 보여 흔들어 깨울 뻔했다고요. “표정이 몹시 편안해 보였어요. 법정스님은 수의 대신 평소 즐겨 입던 승복을 입히고 관도 준비하지 말고 사리도 찾지 말라고 유지를 남기셨어요. 하지만 고민이 됐어요. 3월 초여서 송광사 다비장까지 가는 길이 꽁꽁 언데다 경사로여서 남자 걸음으로도 30분은 걸리거든요. 그런 길을 관 없이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결국 묘수를 냈죠. 법정스님이 오대산 암자에서 책을 읽거나 명상하실 때 쓰던 대나무 평상을 서울로 가져오게 했어요. 거기에 법정스님을 누이고 혹시 운구 중에 법체가 미끄러지면 안 되니까 광목으로 평상에 스님을 살짝 묶은 후 옮겼어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 등의 장례도 진행했는데, 유명인의 장례만 맡습니까. “아니에요. 오래전에는 불법체류하다 사고로 숨을 거둔 이주노동자들이나 무연고자의 염습도 많이 했어요. 안타까운 건 상당수 한국인 고용주들이 노동자가 사망해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면 고인의 신원이 불분명하니까 2~3℃ 상태인 시립병원 안치실에 그냥 방치되면서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요. 뒤늦게라도 가족이 알게 돼 본국 송환을 요청하면 엠바밍을 해야 하는데, 부패가 많이 진행돼 있어 약품을 투입할 혈관조차 찾기 어려워요. 그러니 고인을 온전한 모습으로 가족에게 보내드릴 수 없어요.” 법정스님이 입적한 후 서울에서 송광사 다비장으로 법체를 이동할 때 관 대신 법정스님이 오대산 암자에서 사용하던 평상을 이용했다. / 유재철 제공 -끝내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는 무연고 사망자는 어떻게 하나요. “스님이 말씀하셔서 무료로 해드렸어요. 무연고자 염습을 정성껏 해드리고 나면 이상하게 일이 갑자기 많이 들어오는 등 보답이 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없어요. 정부가 무연고자 장례 입찰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가격을 가장 낮게 적어낸 장례업체가 선정되다 보니 병원 시트에 고인을 싸서 염습도 안 한 채 관에 넣어 화장장으로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에요.”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장례협회도 있고, 염습을 비롯해 봉사하고자 하는 일반인도 많이 계세요. 수의·관 등 장례에 꼭 필요한 실비 70여만원만 정부가 제공하면 무연고자라고 해도 고인의 마지막을 잘 보내드릴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저는 법이 바뀌면 좋겠어요.” -삶처럼 죽음에도 계급·계층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돈의 유무에 따라 장례식 규모나 장례용품의 수준 차이는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제게 모든 이의 죽음은 다르지 않아요. 저마다의 삶과 죽음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가 있기 때문이에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기마놀이하다 떨어졌을 때도, 2015년 고속도로에서 고라니가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을 때도 유체이탈 경험을 했어요. 2015년 교통사고 때는 전복된 자동차의 열린 창문으로 겨우 빠져나와 살았는데, 그때 제 힘으로 빠져나온 것 같지 않았어요. 누군가 저를 창밖으로 확 빼낸 느낌이었죠. 저와 인연을 맺은 영가(영혼)들이 도와준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 외에도 신기한 경험이 몇 번 더 있었어요.” ‘국가장’으로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의 장례문화의 획일성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는 “장례식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인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기획을 통해 노래나 춤, 시 낭송 혹은 생전 고인의 영상 관람 등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 문화로 바뀌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을 자신이 직접 기억하고 준비한다면 인생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29년 동안 수천명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면서 얻게 된 지혜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죠. 오늘을 열심히 살고, 지금 내가 만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 닥칠지 모르니까요.”
- 박주연의 메타뷰
- [편집실에서]노무현이 만난 링컨(2021. 07. 27 16:34)
- 2021. 07. 27 16:34 오피니언
- 제가 처음 완독을 한 정치인의 책은 <노무현이 만난 링컨>입니다. 대선을 앞둔 2002년, 정치부 초년 기자 때였습니다. 기자실에서 굴러다니던 이 책을 봤을 때 처음에는 위대한 대통령, 링컨의 이름 빌려 적당히 자신과 버무린, 그렇고 그런 정치인 책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장 넘겨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서문 10여쪽을 제외하고는 전부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링컨의 일생을 따라가 보면서 정치인 노무현이 가고 싶은 길을 투사시켜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당대 수많은 공격을 당하고 계속된 실패를 겪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뚜렷한 가치기준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 링컨에 노 후보는 매료가 됐다고 서문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를 추구한 사람이었다고 링컨을 평가했습니다. 돌아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라크파병, 항만노조 개혁, 방폐장 부지선정 등의 난제와 맞닥뜨렸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에는 링컨이 많은 영향을 미쳤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정치인이 쓴 책에는 그가 누구인지 엿볼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살아온 길, 가족관계, 정치철학, 미래비전 등이 긴 글 속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제는 있습니다. 제대로 쓴 책이어야 합니다. 출마를 위해 자신을 과도하게 미화했거나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논객들이 책을 팔기 위해 쓴 평전이라면 안 읽어보느니만 못할 수 있습니다. 올해 정치인들이 쓴 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내 계보는 옅어졌고,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절대강자가 없는 선거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알려야 합니다. 게다가 검찰개혁 과정에서 조국백서와 조국흑서가 이슈가 되면서 정치서적시장은 예열이 된 상태였습니다. 주간경향 1438호는 최근 뜨거운 정치인들의 책에 주목했습니다. 유튜브,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영상물에 밀려났던 책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체가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책은 언론매체와 달리 정치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유권자에게 맘껏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 때문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습니다. 과거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에서 언급했던 돼지흥분제 얘기가 뒤늦게 논란이 돼 낭패를 겪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성공과 좌절> 등 많은 책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매 여름휴가를 앞두고는 추천도서를 공개하면서 독서바람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저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멋진 대통령이었습니다.
- 편집실에서
- “노무현 정신 계승” 단 부동산은 빼고(2021. 05. 28 11:32)
- 2021. 05. 28 11:32 정치
- ㆍ말로만 노무현 찾고 보유세 등 부동산 정책은 반대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들과 지도부가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위해 봉하마을에 모였다. 이날 봉하마을에 모인 여권 인사들은 모두가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약속했다. 친문·친노 정치인의 SNS에는 한동안 ‘노무현’이 넘쳐났다. 매년 5월 반복되는 풍경이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야외전시장에 시민들이 전시물을 감상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노무현 정신은 무엇일까. 부동산 분야에서 노 전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를 보인 정책은 보유세 강화다. 노 전 대통령은 공식 취임 전 인수위원회 시기부터 보유세 강화 정책을 준비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낮은 지지율 국면에서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조세 저항과 함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세금폭탄론’과 맞물려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보유세 강화 장기 로드맵에 따라 정책을 시행했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 효과가 나타난 2008년, GDP 대비 보유세 비율은 역대 최고치(0.95%)를 기록했다. ‘노무현의 적자’도 보유세는 완화 보유세를 비롯한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정책은 보수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무력화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보수의 보유세 강화 정책 폐기를 비판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도 언론을 통해 보유세 강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공약에는 반영되지 않았고, 정권 출범 이후에는 오히려 보유세 인상과 선을 그었다. “부동산가격 안정화 대책으로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공평과세, 소득재분배 또는 추가적인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정부도 검토할 수 있을 것.”(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2018년 9·13대책을 통해 보유세 인상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인상폭이 낮았다. 지난해 종부세율 인상이 이뤄졌지만, 고지서가 나오기 전부터 여당에서는 보유세 완화론이 나오고 있다. 이미 국회에는 민주당 의원발 보유세 완화 법안이 올라와 있다. 민주당의 부동산정책에서 ‘노무현’은 사라졌다. ‘친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추도식 자리에서 대선 출마 의지를 공식 표명했다. 이 의원 자신이 노무현의 적자임을 강조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은 최근 자신의 정책 비전을 담은 책 <노무현이 옳았다>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소신과 철학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 의원은 책을 통해 세대와 정치, 기술, 교육, 부, 글로벌 시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했는데 여기에는 부동산 분야가 빠져 있다. 이 의원은 “한국은 자산이 부유층에 쏠리는 자산 불평등 현상이 심각하다. 상위 1%에 부자들이 국민 전체 자산의 25%를 소유한다. 소수의 사람이 자산을 독식해 다수의 사람이 고통받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해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서술은 지역 균형발전의 당위와 혁신도시 2.0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친다. ‘노무현 부동산’의 핵심인 보유세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의원은 보유세 완화론자다. 지난 4월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 1% 안에 매겼던 세금이 종부세”라며 “(과세기준)을 현재 9억원에서 대폭 상향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종부세는 과세 대상이 상위 1%에 한정된 세금이니 현행 종부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이 의원의 1% 종부세 발언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고 사실도 아니다”라며 “앞에서는 노무현 정신을 내세우면서 어떻게 노무현 정부를 상징하는 정책을 부정할 수 있나. 종부세 과세 대상이 전체 부동산 소유자의 4%에 달한 시기도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2004년 12월 과세기준 9억원으로 책정해 국회에 통과한 종부세 대상을 다음해 8·31 대책을 통해 6억원으로 강화한 바 있다. 2005년 8·31 대책 발표 당시 정부는 이번 부동산 대책의 대상은 ‘국민의 2%’임을 강조했다. 참여정부가 언급한 ‘1%’는 보유세 강화 장기 로드맵에서 제시한 보유세 실효세율 달성 목표(2017년)뿐이다.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 김진표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부동산특위·서울시 구청장 정책현안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 사진기자단 민주당 소속 7개 구청장도 완화 요구 보유세 완화를 주장하는 이 의원의 견해는 당내 소수의견이 아니다. 서울시 민주당 소속 7개구(강남·강동·노원·송파·양천·영등포·은평) 구청장들도 보유세를 낮출 것을 당에 요구하고 있다. 조세 저항과 민심 이반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보유세 완화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국회 정무위 간사인 김병욱 민주당 의원(성남 분당을)은 지난달 종합부동산세 공제액 기준을 공시가격 합산 현행 6억원에서 7억원으로 상향하고, 1가구 1주택은 종부세 적용 기준을 공시가격 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종부세법 개정안과 재산세율을 낮추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을 비롯해 노웅래, 정청래, 안규백, 김영주 의원 등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수도권 지역 의원들은 보유세 완화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친노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마포을)도 1주택자 보유세, 2주택자 양도소득세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지방세·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표 부동산정책의 다른 한 축인 ‘공공임대주택’도 비슷한 처지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장기공공임대주택 보급 확대를 추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참여정부에서 공급한 국민임대는 47만호(사업 승인 기준)에 달한다.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문재인 정부도 공공임대주택 개발을 추진한다.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서울시는 ‘서울권역 등 수도권에 대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부지와 서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 등 공공부지에 13만200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규 아파트 물량의 상당 부분은 공공임대주택으로 할당했다. 공공임대주택도 반대에 부딪쳐 정부 계획이 발표되자 민주당 소속 김종천 과천시장은 즉각 반대 성명을 내고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김 시장은 “정부과천청사 부지와 청사 유휴지에 또다시 4000여호의 대규모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과천시민과 과천시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도시발전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과천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지역구에 서부면허시험장이 있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도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에 즉각 반발했다. 정 의원은 SNS를 통해 “제가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을 반대할 리 있겠냐”면서도 “상암동은 이미 임대비율이 47%인데 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느냐. 지역구 국회의원과 사전협의 없이 추진하는 방식은 찬성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의 발언을 두고 임대주택 거주자를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언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정 의원의 언행은 노무현 정신이 아니라 본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공공임대 주거권보다 표를 중시한 발언인데, 노무현 정신을 내세우고 싶다면 적어도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지역에는 반대’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4·7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부동산정책에서 민주당의 ‘노무현’ 지우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비문’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규제 완화론자’ 김진표 민주당 의원을 내정했을 때부터 예견된 흐름이다. 송 대표는 5월 26일 집중 민심 경청 주간으로 마련된 ‘찾아가는 민주당’ 행사에서 “집값 상승 우려에 그렇게 마음 놓고 하진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규제) 완화하려고 논의하고 있다”며 “집값의 10%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는 ‘누구나 집 프로젝트’도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재산세 감면과 대출규제를 확정지은 민주당 부동산 특위는 다음 단계로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완화를 놓고 고심 중이다. 민주당의 행보를 두고 시민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참여연대는 일련의 부동산 규제 완화를 ‘퇴행적인 주거 부동산정책’을 규정하고 민주당의 규제 완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1주택자 기준으로 전국에 종합부동산세 대상 주택이 3.7%에 불과하다. 종부세 완화는 부자 감세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대출 규제 완화는 집값을 낮추라는 국민적 요구에 전혀 맞지 않는 ‘빚내서 집 사라’식의 엉뚱한 해법”이라고 비판했다. 전강수 교수는 “민주당 정책에서 ‘개혁’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민주당이 진보 정당은 아니더라도 그동안 개혁 정당을 표방해온 정당인데 이제는 개혁 어젠다도 사라진 것”이라며 “노무현 정신의 핵심이 부동산인데 지금 민주당은 말로만 노무현을 말하고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펼쳤던 정책을 살리는 것이 노무현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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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 '간소하게'···유튜브 생중계
- 2020. 05. 22 13:03 화제
-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2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시민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공식 추도식이 23일 오전 11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엄수된다. 올해 추도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활 속 거리 두기 실천 차원에서 유족과 노무현재단 임원, 정당 대표 등 100여명만 참석하는 작은 추도식으로 치러진다. 공식 초청 대상이 아니면 추도식장에 입장할 수 없다. 참배를 희망하는 일반 추모객은 오후 1시 30분, 3시, 4시 등 세 번에 걸쳐 공동 참배에 참여할 수 있다. 서거 11주기 추도식 주제는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이다. 박혜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되며 추도사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낭독한다. 추도식은 국민의례, 추도사, 특별 영상 상영, 이사장 감사인사, 상록수 특별 영상 상영, 참배 순으로 진행되며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된다. 노무현재단은 5월 한 달 동안 온라인 추모 전시회와 추모 방송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 생중계온라인문재인노무현재단
- 고 노무현 전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와의 인연 그리고…
- 2010. 01. 04 16:39 화제
-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제2부속실장 지낸 이은희 마포교육문화센터 소장 2009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을 가장 뒤흔든 뉴스는 단연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대미문의 사건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될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파격과 도전, 온몸을 던지는 정치적 승부사로 새로운 정치 ‘아이콘’이 됐지만 충격적인 서거로 그의 정치 실험은 미완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서거 이후 ‘깨어 있는 시민이 역사를 만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유지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마포교육문화센터 소장으로 지역운동을 하고 있는 이은희씨는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잇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녀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으로 노 대통령 내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 중 한 명이다. 권양숙 여사가 ‘청와대 입성 3주년’을 맞아 본지와 인터뷰할 때, 이은희 소장은 당시 제2부속실장으로 실무를 담당했다. 기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권양숙 여사 보좌하며 신뢰 쌓아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인연이다. 이은희 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권양숙 여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1988년 제가 연세대 총여학생회장으로 활동할 때 5공 청문회 스타였던 노무현 국회의원을 처음 뵈었어요. 그 후로 그분의 정치 역정이나 지방자치실무연구소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1998년 지방선거 때도 뵈었죠.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 초 전대협동우회 초청 토론회에서 만나 금강캠프의 여성특보로 일하면서부터예요. 권양숙 여사는 2001년 겨울에 처음 만났습니다.” 금강캠프에서 이은희 소장은 여성 조직을 관리하고 권양숙 여사의 활동을 보좌하는 활동을 주로 했다. 그러나 그 일의 시작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시 이 소장은, 홀로 여성 행사와 당원 행사에 참석해 노무현 후보를 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후보 부인 없이 참모가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나서는 걸 싫어하던 권 여사가 “정치는 남편이 하는 겁니다. 나는 정치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조용히 내조하겠습니다”며 외부 활동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이은희 소장은 권 여사를 설득하기 위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였던 혜화동 집으로 출퇴근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쯤 여사님과 함께 지내며 현재 캠프 사무실 현황이나 다른 후보 부인들의 활동에 대해 알려드렸어요. 그리고 ‘수십 명의 참모가 있다 해도 후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후보 부인뿐입니다. 최선을 다해 여사님을 보좌하겠습니다’라며 권 여사를 설득했어요.” 그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 권양숙 여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힘들 것 같았지만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진정성을 갖고 진심으로 뛰어들자 서로 신뢰감이 쌓여갔다. 대통령의 아내 사랑과 권 여사의 남편에 대한 믿음 이은희 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와 짧은 시간에 깊은 신뢰를 쌓은 배경에는 개인적인 공감대도 한몫했다. 이은희 소장은 노 대통령이 부산상고 출신으로 어렵사리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를 거쳐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이나, 권 여사가 가난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아픔을 깊이 공감했다. 이 소장 역시 서울여상을 졸업한 후 대학에 가기 위해 주경야독하던 힘든 시절이 있었다. 이런 개인적인 역경이 서로의 마음에 닿은 듯했다. “제가 보기에 두 분의 성격은 다른 듯하지만 서로를 보완해주었고 닮은 부분도 많았어요. 대통령도, 여사님도 낙관적인 분이세요. 여사님께서는 가정주부로만 지냈기 때문에 자칫 소심하고 사회적 감각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본 여사님은 누구보다 사회적 감각이 탁월한 분이세요. 가족이 말하는 여사님 별명이 ‘뉴스 마니아’예요. 아침 6시부터 라디오 뉴스를 틀어놓고 식사 준비를 하셨어요. 그리고 3, 4종류의 신문과 저녁 9시 뉴스를 꼭 챙겨 보십니다. 나중에 여쭤보니 남편이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하시더군요.” 신문과 책을 읽으며 쌓인 권양숙 여사의 내공은 위기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휘되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이은희 소장이 지난 2001년부터 청와대 시절까지 옆에서 보좌하며 제일 힘들었던 두 번의 상황도 권 여사는 담담하게 이겨냈다. “민주당 국민경선 기간 중에 경쟁 후보가 권 여사의 부친 이야기를 꺼냈어요. 선거 캠프에서 지금 당장 사실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전화가 빗발쳤지요. 하지만 이동하는 차 안에서 여사님은 몇 시간 동안이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그러면서 충격을 이겨내고 계신 것 같았어요. ‘아무 대응도 하지 말라’는 한 말씀만 하시더군요. 그때는 두 분 모두 힘드셨을 거예요. 당시 노 후보께서는 장인의 좌익 경력을 공격받자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아내를 버려야 한다면 차라리 후보직을 버리겠습니다’라며 국민의 심금을 울리셨죠. 잔인한 정치 현실이었지만 두 분의 사랑과 감동으로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셨습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대통령 탄핵 사건이었다. 그날도 예정대로 지방 일정을 소화하고 여성 모임 오찬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탄핵 가결’ 소식을 들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20분 후의 오찬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권 여사는 눈물을 닦고 감정을 추스른 후 오찬에 참석했고 연설 원고도 없이 단호하게 당신의 소신을 밝혔다. “여사님께서는 ‘국민의 판단을 겸허히 받겠습니다. 대통령께서 언행에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작은 언행 실수는 있어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생각과 신념, 철학에 큰 잘못은 없습니다. 국민의 판단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심적으로 무척 힘드셨는데도 그날의 일정을 다 마친 후에야 서울로 올라오셨죠.” 2개월가량의 대통령 탄핵 기간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는 책을 읽고 산책을 하며 관저에서만 지냈다. 그나마 마침 백일이 지난 첫 손녀딸이 있었기에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공공도서관 사업이 가장 큰 보람 권양숙 여사는 정치인의 아내로 활동하는 것보다 가족과 오순도순 어울려서 조용히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권 여사는 남편의 정치활동을 조용히 내조하면서 정치와 사회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고 지역주민의 일상적인 생활과 여론을 주의 깊게 살폈다. 또 남편의 신념을 믿고 어려운 정치 행보의 선택을 지지해왔다. 평소에도 권 여사는 정치인의 아내로서 한발 앞서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게 내조하려 했다. 또 영부인으로서 해외 순방과 국빈 접견, 문화 행사 참석을 통해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외교사절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국내적으로는 교육, 문화, 복지 분야에서 여성과 장애인, 소외계층을 대변하고 국민 여론과 현장을 살피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에서도 영부인이 관심과 애정을 많이 기울였던 분야가 공공도서관 활성화 사업. 이은희 소장은 당시 공공도서관 정책 관련 업무를 하면서 실무를 책임지고 있었다. “여사님의 어릴 적 꿈은 서점 주인이 되는 것이었어요.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으시고 손녀딸에게도 틈틈이 책을 읽어주셨죠. 해외 방문시에도 각국의 도서관을 시찰하시며 우리나라도 도서관이 지식정보문화의 산실이 되기를 기대하셨죠. 지역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에 특히 관심이 많으셨어요.” 몇 해 전 MBC-TV의 ‘기적의 도서관’ 건립운동, 지금은 많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작은 도서관운동’, 언론의 도서 캠페인 등 책과 도서관운동은 영부인의 관심과 함께 사회적 운동으로 번져나갔다. 특히 세계도서관대회 유치,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행사 지원, 대통령 직속 도서관위원회 설립 등은 ‘책과 도서관’에 대한 영부인의 관심으로 이루어낸 성과들이다. 봉하마을에서 무척이나 행복했던 대통령 내외 이은희 소장은 지난 2006년 6월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을 퇴직했다. 만 5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던 청와대 생활이었지만 해외 순방과 교육, 문화, 복지 분야의 행정 경험을 충분히 익혔던 매우 귀한 시간들이었다. 퇴직 후에도 영부인의 활동 등을 정리하느라 틈틈이 찾아가 인사하곤 했다. “참모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봉하마을로 내려가겠다는 뜻이 확고하셨어요. 말씀을 하시는데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설렘과 기대감에 가득 찬 듯 보이셨죠. 저는 봉하마을이 워낙 시골이라 여사님이 살기에는 불편하실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두 분은 행복해 보이셨어요.” 퇴임하는 날, 이은희 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의 귀향길에 동행했다. 그날 봉하마을에 도착해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야, 기분 좋다. 고향에 오니 정말 좋습니다”라며 기쁨에 가득 차 있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식목일 전후로 봉하마을에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하니, ‘할 일이 많으니 내려올 때는 작업복에 운동화 신고 오세요’ 하시더군요. 왠지 마을에 활력이 넘쳤어요. 여사님은 새신부처럼 얼굴에 분홍빛이 가득하고 대통령은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그대로 시골 농부였습니다. 오찬 때는 봉하마을에서 생산한 산딸기주 자랑을 많이 하셨어요. 한 잔 두 잔 꽤 드셨는데 봉하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인사할 시간이 다 되었죠. 얼굴이 붉어져서 다들 걱정하고 있는데 노 전 대통령께서 나가시더니 ‘아, 오늘 서울에서 미인들이 한꺼번에 오는 바람에, 제가 부끄러워 얼굴이 발갛게 됐습니다. 이해해주세요’라고 하시더군요.” 1 당시 노무현 후보가 2002년 국민 경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후 비서실 가족들과 함께 북한산 등반 기념촬영. 2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였던 미국 LA의 토요한글학교를 방문한 권양숙 여사와 함께. 3 부산 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시민과 해운대를 산책하는 대통령 내외와 함께. 4 2008년 (주)중소기업유통센터 상임감사 재직시 중국 중소기업박람회에서. 5 2004년 11월 청와대 직원들을 위한 김장 담그기 행사에서 주방 아주머니들과 함께. 이은희 소장은 봉하마을에서 무척 행복해하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부엉이바위의 유래, 화포천을 되살려 생태습지를 복원할 계획, 우리 몸에 좋은 장군차 재배법, 우렁이농법과 오리농법으로 친환경 쌀을 재배하는 과정 등 곳곳의 나무와 환경, 습지 등을 설명하면서 흥미로운 시골 농부의 이야기와 생활을 이야기하던 대통령. 전직 대통령이 고향으로 귀향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충격적 서거와 봉하마을 지키고 있는 권양숙 여사 하지만 한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가 행복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활은 길지 않았다. 2008년 연말부터 노 전 대통령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향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었다. 끝내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은희 소장은 이때,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 가슴에 통한으로 남는다고 한다. “차마 그런 일은 상상조차 못했어요. 너무나 죄송해서 가슴에 사무칩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지요. 우리는 충격 속에서도 대통령 장례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권양숙 여사는 쓰러져 있고 건호씨와 정연씨 내외는 탈진 상태였다. 권 여사는 며칠 동안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한 채, 걷지도 못했다. 3일 후 입관식 때 휠체어에 의지해 내려온 여사님을 본 조문객들은 모두 울음을 터트렸다. 건호씨와 정연씨는 입관식을 마친 후부터 국민장을 치를 때까지 의연하게 상주 역할을 다했다. “당시 봉하마을의 장례위원회는 마치 예전의 청와대를 옮겨놓은 듯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일들을 일사분란하게 처리했죠.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모두가 최선을 다했어요. 마을 분들과 수많은 자원봉사자 모두 한마음이었습니다.” 권 여사는 지난 7월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를 마치고, 참모진들과 함께 대통령 묘역 관리와 생가 복원 사업, 노 전 대통령이 하던 일들을 다시 추스르며 봉하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은 건호씨가 여사님과 함께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하지만, 젊은 건호씨의 장래나 얼굴이 너무 알려진 손녀딸을 걱정하는 여사님의 간곡한 뜻으로 지금은 회사에 복귀해서 미국에 나가 있습니다. 건호씨는 요즘도 매일 여사님께 안부전화를 드린다고 합니다.” 2008년 2월 노 대통령의 퇴임 직전 봉은사를 찾아 새벽 예불을 마치고 명진 스님과 차담을 하는 권 여사와 함께(사진 위). 2005년 청와대 직원 가족 초청 행사에서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와 함께. 요즘은 권양숙 여사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하던 일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화포천 습지 관리나 친환경 봉하쌀 재배와 농작물 관리까지. 최근에는 지난 12월 16일 서강대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인 「진보의 미래」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했다. 더 많은 ‘시민 노무현’과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를 만들겠다 이은희 소장은 최근 인터넷 블로그(future2002/tistory/com)를 만들었다. 이는 월드컵 4강 신화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어낸 2002년의 국민 에너지를 더욱 키우겠다는 뜻으로 만든 공간이다. 이 소장은 이곳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그분의 유지를 이어받아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을 키워 나가겠다고 한다. “출판기념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육성과 동영상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의 장래를 고민하는 대통령을 다시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힘없는 보통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자신과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던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목소리가 되살아나 펑펑 울었어요. 하지만 이제 다시는 울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시민주권의 시대를 열자, 깨어 있는 시민이 되자’는 뜻을 자신의 삶의 현장인 마포에서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태도와 삶의 자세로, 대통령비서실의 행정 경험을 살려 마포의 지방행정을 새롭게 실현하고자 한다. 더 많은 ‘시민 노무현’과 함께 참여하고 소통, 연대하는 새로운 지방자치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 이은희 소장의 꿈이다. 이은희 소장이 전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에피소드 베스트 5 ■ 대통령의 빠른 걸음걸이 때문에 의전에 어려움 겪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걸음이 빠른 편이었다. 때문에 국빈 방문 등 부부 동반 일정에서는 두 분의 보폭을 맞추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대통령 차량이 현장에 도착하면 운전석 뒷자리에 앉은 권 여사께서 차의 후미를 돌아 대통령 옆에 서기도 전에 먼저 발걸음을 떼시곤 하셨다. 그렇게 세 발자국 정도 가신 후에야 부인을 찾으셨다. 때문에 대통령께서 앞서 걷지 않도록 의전상 매우 조심해야 했다. 처음엔 무척 힘들어하셨는데 점차 익숙해지셨다.” ■ 발가락 양말에 얽힌 사연 “대통령 후보 부인 초청 토론회에서 어떤 대학생이 권양숙 여사께 ‘대통령 후보께서 보좌진의 만류에도 발가락 양말만을 고집한다고 하던데…. 고집이 너무 센 것 아닌지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권 여사는 ‘그분이 발가락 양말을 고집하는 것은 군대에서 생긴 무좀 때문입니다. 그것은 건강의 문제지 신념이나 고집의 문제는 아닙니다’고 대답하셔서 폭소가 터졌다.” ■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숙면을 취했던 노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께서는 피가 마르는 순간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휴식하셨다. 사법고시 합격자 발표날에도,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 당락이 결정될 때에도 투표장에 다녀온 후에는 깊은 잠을 주무셨다고 한다. 또 후보 단일화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날, 대통령 선거 당일에도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친 후 서울의 모처에서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하셨다.” ■ 참여정부 시절 간식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 그리고 무, 당근, 오이 “노 전 대통령 내외분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좋아하셨다. 청와대에 계실 때도 간식으로 제일 맛있다며 즐겨 찾곤 하셨다. 여름에는 무와 당근, 오이 등을 길게 썰어놓고 수시로 드셨다. 무척 맛있게 드시기에 아주 특별한 과일인 줄 알았다.” ■ 대통령 해외 순방의 필수품은 라면 “노 전 대통령께서는 해외 순방이나 입맛이 없을 땐 가끔 라면을 맛있게 드셨다. 권 여사께서는 가끔 오찬으로 보좌진들이 사온 떡볶이, 어묵, 김밥, 치킨 등으로 편안한 식사를 즐기셨다. 두 분 모두 입맛이 소탈하셨다.” 이은희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은 1983년 서울여상 졸업, 대한재보험 주식회사 근무. 1985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입학. 1988년 연세대학교 제1대 총여학생회장 지냄. 1991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졸업. 1995년 연세대학교 여성연구소 상임간사. 2000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지방자치 전공) 졸업. 논문 「한국 여성의 정치 참여에 관한 연구」 발표. 2001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의 여성 특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비서실 정무비서. 2003년 대통령 인수위원회 비서실 정무비서. 2003년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 선임행정관. 2006년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비서관) 퇴직. 2007년 (주)중소기업유통센터 상임감사 역임. 현재 마포교육문화센터 소장. ■글 / 경영오 기자 ■사진&제공 / 민영주, 이은희 ■장소 협찬 / 서울가든호텔 바 스콜피오(02-7107-264/5)
-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당선인 선거포스터 사진 찍은 박상훈
- 2008. 02. 15 화제
- 지난 선거는 이미지 전쟁이었다. 누가 좀 더 마음에 와닿는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감성을 붙잡는지가 승부의 관건이 됐다. 미디어의 발달로 영상 광고와 UCC까지 등장했지만 그래도 후보의 이미지를 압축해 단번에 보여주는 것으로는 포스터 사진만 한 것이 없다. 당선자의 후보 사진은 누가, 어떤 고민을 거쳐 만들어낸 것일까. 박상훈 사진작가가 들려주는 사진 촬영 뒷이야기, 그리고 그의 사진 이야기. 당선됐다는 즐거운 생각이 만든 편안한 표정 12명이나 되는 후보자가 나오는 바람에 여느 때보다 치열했던 17대 대통령 선거는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진열된 벽보 전쟁으로도 유명했다. 이명박 당선인의 포스터 사진을 촬영한 박상훈(55) 사진작가는 환하게 웃는 이 당선인의 사진을 찍고 나서 지난 대선의 승리를 예감했다고 한다. ‘웃는 표정’이 아니라 진짜 ‘웃고 있는’ 이 당선인의 얼굴을 프레임 속에 잡아냈기 때문이다. 보통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놓고 서로 비교해가면서 가장 나은 것을 고르는데,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더 볼 것도 없이 딱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솔직히 이 당선인이 사진 촬영하기에 만만한 스타일이 아니라 촬영 전에 걱정이 있었죠. 좀 딱딱해 보이기도 하고 포토제닉한 느낌도 없고(웃음). 제가 고민했던 건 과장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어떻게 하면 부드럽고 친근감 있게 표현할까’였어요. 최종 결정된 이 사진은 억지로 만들지 않은 자연스러운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죠.”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게 마련인 모델에게서 연출이 아닌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바쁜 선거 일정에 치인 탓인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선 이 당선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시라고 한 가지 주문을 했죠. 지금 후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당선 축하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라고 했어요. ‘지금 제가 청와대에서 대통령 사진을 찍고 있는 겁니다’라고 했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시던데요.” 이 ‘즐거운 상상’은 이 후보의 얼굴에 편안함뿐 아니라 자신감을 새겨 넣으며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후보 느낌이 역력한 다른 후보 포스터들에 비해 이 당선인은 실제로 대통령이 된 것 같은 당당함이 배어나와 유권자들에게 더욱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당선인은 처음에 “내가 눈이 작아서 웃으면 눈이 안 보이는데…”라며 신경을 많이 썼는데, 촬영한 사진을 본 후에는 웃는 모습이 시원스럽게 나왔다고 만족해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 얼굴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사진이 나오면 그것만 주의 깊게 봐요. 하지만 매력적인 웃음을 보면 거기에 끌리는 거지 누가 눈만 들여다보나요. 저는 눈이 이 당선인보다 더 작은데도 이렇게 활짝 잘 웃잖아요(웃음). 콤플렉스를 의식하지 않게 하는 것도 사진가가 할 일이죠.” 그렇다면 사진에 대한 확신만큼 이명박 후보의 당선도 예감했을까. 박 작가는 이 당선인에게서 당당한 힘을 느꼈다고 했다. ‘내가 사진을 찍어줬으니까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 촬영을 하며 “아직 멀었느냐”고 보채는 편인데 이 당선인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하는 모습에 모델로서의 점수도 높게 주었단다. 이번 대선은 워낙 출마 후보가 많았던 탓에 각 후보 진영마다 포스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쏟았다. 심지어는 사진을 찍고도 시간을 쪼개 두 번이나 재촬영을 감행한 후보가 있을 정도. 다른 후보들 사진이 신경 쓰일 법도 하지만 박상훈 작가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전·현직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요즘 그를 두고 항간에서는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2년 대선 때 ‘부르튼 입술’의 노무현 대통령 포스터 사진을 찍은 이도 그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사진 또한 그의 작품이니 대통령과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이명박 당선인도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 포스터를 찍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았다고 한다. “노 대통령과는 포스터 촬영 전에 두어 번 만났죠. 「노무현 죽이기」라는 책이 있는데 그 표지를 제가 촬영했거든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께서 오슬로 기념관에 걸 사진을 새로 찍으려고 작가를 물색하다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낙점해서 만나게 됐구요. 평화상을 수상하러 여사님이 함께 오슬로에 가셨다가 역대 수상자들 사진을 보니까 다들 멋있는데 남편 사진만 어색하고 이상하니까 속상하셨던 거죠.” 3대에 걸쳐 대통령들과 인연을 만들어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다. 촬영에 비교적 의욕적이었던 노 대통령, 이 당선인과 달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진 찍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전날 있었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 결과가 나빴던 탓에 얼굴이 더욱 굳어 있었다. 기분을 풀어보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특별한 인연을 찾아냈다. 김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한 프로그램에서 남대문 상인이 되어 ‘골라골라’를 외치며 좌판을 벌였던 적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 담당 PD가 박 작가 동생의 부인이었던 것. 지금도 가끔 이야기할 정도로 그 경험이 재밌었다는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이 화사해진 건 당연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의 연륜과 무게감을 담은 사진이 탄생할 수 있었다. 노르웨이 기념관에 걸려 있는 그 사진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보게 될 소중한 작품이다. 노무현 대통령 포스터 사진은 당시로선 새로운 시도였다.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 부르튼 입술이 적나라한 노 대통령의 모습은 ‘포샵질’ 한번 거치지 않고 담벼락에 그대로 나붙었다. 흰머리 한 올,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한 타 후보와 달리 피부결이 거칠게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투박한 질그릇’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뚝배기같이 친근하지만 단단하다는 느낌. 그분이 가진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이 바로 유권자들이 그분에게 바라는 모습이라 생각했고 그 모습을 좋아할 것 같더라구요.” 배경으로 썼던 태극기도 낯선 것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태극기는 고리타분하고 강건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때가 바로 2002 월드컵으로 태극기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던 때였어요. 디자인적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태극기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의미도 있으니까 대통령 후보 포스터 배경으로 적당하다 싶어서 썼죠. 그땐 우리 포스터에만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태극기가 많이 나왔더라구요.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연출했는데 나중에 남들이 그걸 쫓아오는 재미가 사진을 하는 큰 즐거움이 돼요.” 포스터 사진을 찍으며 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이 사람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다. 당시 여론 조사 결과가 상당히 열세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감 있는 ‘환한’ 모습에 어떤 직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설득력이 굉장히 뛰어난, 논리적인 분이었어요. 촬영 중간 장난도 잘 치시고, 어렵지 않고 솔직한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대통령 되실 것 같다. 청와대에서 만나자’라고 말씀드렸죠. 사람의 기운이라는 게 있나 봐요.”분야를 넘나드는 편안한 그의 이야기 포스터 사진으로 또 한번 관심이 높아졌지만 원래 그는 풍경 사진, 광고 사진 등으로 이름을 떨쳐온 작가다. 특히 뉴욕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금상, 칸 국제광고제 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의 스튜디오는 유명 스타들의 사진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도 “아, 이거!”라고 할 만큼 알려진 그 사진들은 하나같이 담백하고 편안하다. “저는 꾸미는 게 싫어요. 속에 있는 것을 건드려 내면을 끌어내려고 하죠. 사람들은 결국 ‘진짜’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제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은 양념 맛이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고픈 분들이에요.” 수많은 스타들의 사진을 찍으며 그들이 가진 뒷모습을 발견해온 그다. 그중에서도 ‘주름이 만든 카리스마’라는 컨셉트로 찍은 안성기와 ‘눈물이 빛나는’ 김희애의 사진이 마음에 남는다고. 본인들도 그 사진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할 정도로 특별했던 작품. 특히 김희애의 남편은 그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자랑할 정도 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스타나 상품 사진을 잘 찍는 ‘상업적인’ 작가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십 년 넘게 새벽 사진을 찍어온 그는 여명의 오묘함을 담아낸 ‘새벽 시리즈’로 풍경 사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같이 똑같은 일출, 산세 풍경 대신 흐트러진 일상의 시작에 주목했던 것이다. “풍경 사진은 어떤 면에서는 많이 고통스러워요. 생각해보세요.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추울 때 나가기가 얼마나 싫겠어요. 기다리고 참고 고통을 즐길 수 있어야 좋은 풍경을 내 눈에 안을 수 있죠. 하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함도 느끼고 자연 속에서 나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되죠. 자연과 나, 나와 타인. ‘관계’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해요.” 풍경, 인물, 광고 사진까지. 아직도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목마른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흐름은 바로 ‘소통’이다. 사람과 제품과 자연에 끊임없이 말을 걸고 생각을 나눌 때 그는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그 소통의 결과를 책으로, 전시로 내놓으며 또 다른 소통의 길을 만드는 것이 흥미롭다. “한때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나를 옭아맨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알았어요. 이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어요. 완벽하려는 노력 대신 사진을 좋아하는 열정을 거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사람을 알아가는 게 좋아요. 아마 죽을 때까지 사람을 찍고 있을 겁니다.” 박상훈 작가는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작업의 결과물들을 선보일 사진전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현대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내’가 들어 있는 이 도심 속의 사람들에 집중하고 있다. “목표는 거창하지 않아요. 그저 좋은 작가,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제 바람이에요. 나름 이런저런 결과물을 내놓았고 좋은 평가도 받았지만 아직 나는 ‘좋은’ 작가가 되지 못했어요. 운 좋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고 타고난 예술적 기질이 조금은 있다는 데 감사해요. 그런 열정을 원천으로 삼아 더 많이 노력할 겁니다.” 그에게 사진이란 무엇일까.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지만 그때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고. 그만큼 사진이 가진 다양한 힘에 매료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어쩌면 물방울 같은 것이 아닐까요. 물방울은 하나의 작은 방울이지만 독립된 게 아니라 그릇을 이루고 바다가 되면서 의미를 만들잖아요. 세상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죠. 사진도 한 컷 그 자체만으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다양한 의미를 갖는 거예요. 소통의 매개가 되는 거죠.”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선인인 이명박도 그랬고, 그의 카메라 앞에 섰던 이들은 모두 “잘 찍어줘서 정말 고맙다”라는 인사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잘 나왔다’고 생각되는 그 모습은 모델 본인이 가진 원래의 모습 중 한 단면이다. “저는 그 모습을 잘 찾아낸 것뿐이죠”라는 박상훈 작가. 억지로 애쓰지 않고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편안한 그의 사진이 정말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민영주
- [재테크 가이드]노무현 대통령도 ‘펀드’에 가입했다는데...
- 2005. 09. 01 재테크
- ‘펀드’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은행권의 예금 이율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다. 그리고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과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부동산에 대한 불안감마저 생겨 재테크의 대안으로 펀드가 떠오르고 있는 것. 익숙한 듯하면서도 생소한 펀드의 매력과 장점을 알아본다. 재테크 수단, 부동산에서 펀드로 이동? 지난 7월 22일, 일간지 경제면에 일제히 노무현 대통령의 펀드 가입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인 예금 8천만원을 코스닥 편입 비중이 큰 펀드에 나눠 투자했다’는 소식이다. 이에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른 ‘펀드’의 궁금증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요즘 라디오 광고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가지가 ‘대리운전’과 ‘적립식 펀드’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펀드는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단어가 됐다. 펀드란 여러 투자자가 자금을 모아 만든 대규모의 기금(Fund)을 말한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부족한 정보와 전문 지식을 갖춘 펀드매니저가 이 기금을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 주식시장의 개미투자자처럼 직접 투자가 아닌 간접 투자를 하는 것이 바로 펀드다. 펀드매니저는 주식, 채권, 유동자산 등 다양한 대상에 투자해서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준다. 펀드매니저와 운영회사는 이익금의 일정 부분을 보수로 받는 것이다. 펀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직접 투자를 할 때보다 신경 쓸 일이 적어지고, 투자의 위험(리스크)이 줄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는 대규모의 자금으로 다양한 종목에 분산투자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인다. 대부분의 펀드매니저는 우량종목에 투자함으로써 손실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저금리 시대’이기 때문. 1억을 은행에 예치했을 때 이자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다. 이런 저금리 기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인건비가 상승하고, 가계부채가 많은 상태에서 은행 이자를 올린다는 것은 서민과 기업의 부담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테크의 모든 것이라고 여겨지던 부동산 시장도 예전만큼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또 정부의 규제와 인구의 감소로 부동산 시장이 예전처럼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리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펀드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생겨난 재테크 방법이다. 대통령이 펀드에 투자한 것은 부동산 시장에 몰려 있는 시중 자금의 흐름을 금융과 자본시장 쪽으로 돌리기 위한 ‘제스처’라고 말하고 있다. 펀드의 매력 4가지… 소액투자, 전문가 운영, 분산투자, 다양한 상품 펀드의 종류에는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주식펀드, 장기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펀드, 단기채권에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MMF)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리고 영화펀드, 선박펀드, 해외펀드 등 ‘틈새펀드’까지 선보이고 있다. 펀드는 은행예금과 달리 금융기관 파산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정부에서 금융기관을 대신해 5천만원까지 원리금을 지급하는 ‘예금보호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펀드 가입으로 인한 손실은 투자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 펀드는 미래의 수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펀드는 증권사와 은행 그리고 보험사(현재는 보험회사 상품만 팔 수 있다)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모든 금융기관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품의 경쟁력을 엿볼 수 있다. 펀드의 매력은 소액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려면 수백만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주식의 경우에도 우량주는 한 주당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채권은 적어도 1백억원 이상이 있어야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가 직접 사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펀드는 1만원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펀드에 가입하여 돈을 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자금이 모인다. 펀드로 모인 자금이라면 여러 종류의 채권이나 주식을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펀드는 개인이 아닌 전문가가 대신 운영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에는 1천7백여 개에 달하는 종목이 있고, 8천여 개의 채권 종목이 거래되고 있다. 개인투자자가 이 모든 것을 알고 투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정보와 전문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펀드를 통해 모인 대규모 자금은 경제분석가, 기업분석가, 펀드매니저를 다수 확보해 자금을 전문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전문가들이 얼마나 자질을 갖췄고, 운영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면 된다. 펀드는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복잡한 경제 환경 속에서 펀드의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분산투자가 필수다.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것은 한 기업이 나쁘더라도 다른 종목들의 수익률이 건재하기 때문에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개인투자자는 소액자금이고,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량한 종목들의 분산투자로 위험을 낮춘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펀드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다양한 상품이다. ‘펀드는 주식펀드를 말한다’ ‘펀드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펀드 상품이 7천여 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놀랄 것이다. 은행권의 정기예금이나 적금의 상품도 이렇게 다양하지 않다. 7천여 개의 상품 유형은 대략 30종 이상으로 본다. 쉽게 말해서 개인투자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은 펀드에 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투자자들은 본인의 생각에 따라 펀드를 잘 고르기만 하면 된다. 펀드의 유형은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채권펀드, 주식펀드, 채권혼합형 펀드, 주식혼합형 펀드, 머니마켓펀드로 나눈다. 채권펀드는 채권과 같이 안정적인 자산에만 투자하는 펀드다. 채권은 정부, 지방 공공단체나 사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빌릴 때 발행하는 유가증권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채권펀드는 채권에 60% 이상을 투자하고, 나머지 40% 이하를 현금성 자산(팔아서 당장 현금으로 돌려받는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채권펀드는 어떤 채권을 사느냐에 따라 국공채펀드(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원리금 지급을 보증하는 채권으로 신용도와 안정성이 높다)와 회사채펀드로 나눈다. 회사채펀드는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주식펀드는 자산의 60% 이상을 주식으로 운영하는 펀드를 말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고, 대부분의 펀드라고 이해하면 된다. 적립식 펀드 붐이 주식형 펀드의 꾸준한 증가를 가져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혼합형 펀드는 주식과 채권을 섞어서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혼합형 펀드는 다시 주식혼합형(주식 50%이상 60% 이하 투자)과 채권혼합형(주식 0~50% 투자)으로 구분한다. 특히 채권혼합형 펀드는 주식이 50%까지 들어갈 수 있는 펀드이므로 채권펀드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채권펀드 중에서 최단기로 자금을 입·출금할 수 있는 상품을 머니마켓펀드라고 한다. 주로 만기가 짧은 단기채권이나 기업어음, 양도성 예금증서 등과 같은 현금성 자산(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다. 이 펀드는 단기채권에 투자하기 때문에 수익률은 낮지만 위험성도 매우 낮다는 것이 장점이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이 혼동하는 것이 채권펀드가 확정금리를 주는 상품이라는 인식이다. 채권펀드 역시 실적 배당 상품이다. 또 투자 방법에 따라 적립식 펀드와 거치식 펀드로 나뉜다. 적립식 펀드는 저축을 하듯이 월별로 일정액을 펀드에 투입하는 것이고, 거치식 펀드는 목돈을 일시금으로 투입해 운영하는 것이다. 거치식 펀드보다는 적립식 펀드가 대세다. 펀드는 다양한 종류의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다 펀드는 투자자에게 모집한 자금으로 여러 유가증권에 투자해서 얻은 수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사전에 일정한 수익률을 돌려준다는 약속을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펀드의 다양한 상품 종류처럼, 펀드의 수익구조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자수익은 펀드에서 보유한 채권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말한다. 주식펀드와 같이 주식에만 투자하는 일부 펀드 외에 대다수 펀드가 회사채, 국공채와 같은 채권으로 수익을 발생시킨다. 채권이자는 일반적으로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결산한다. 중간에 환매하는 고객도 전혀 불이익이 없도록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배당수익은 주식이 결산을 맞아 배당을 주면 얻는 수익이다. 배당수익은 1년에 한 번씩 들어오는데, 지금까지는 기업의 낮은 배당정책으로 인해 상당히 저조한 수익률을 보여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배당수익률이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배당수익을 중요시하는 투자 관행이 정착되고 있다. 주식펀드가 요즘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주식과 채권을 매수한 뒤 가격이 올랐을 때 매도하면 매매차익이 발생한다. 물론 가격이 하락한 뒤에는 매매 손실이 발생한다. 매매이익이나 매매손실은 이미 펀드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수익률로 반영되어 있다. 매매 이후에 추가적으로 반영되는 이익과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다. 펀드는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을 매일 정확하게 평가한다. 평가 결과를 ‘기준가격’이라는 방식으로 매일 투자자에게 공시한다. 펀드는 운용 성과를 대개 1년에 한 번씩 결산해서 투자자에게 ‘결산분배금’ 형식으로 분배한다. 만일 투자자가 결산분배금을 찾아가지 않으면 이미 가입해 있는 펀드에 자동적으로 재투자된다. 펀드 중 만기상환일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상환일에 펀드를 청산해 상환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대부분의 펀드는 처음 펀드에 가입한 이후 너무 일찍 투자자금을 찾아가면 벌금인 ‘환매수수료’를 물리고 있다. 펀드에서 빠져나가는 투자자 수익에서 일부를 떼어내어 펀드에 돌려주는 것이다. 환매하는 투자자에게 이익금의 30~70%를 벌금으로 부과하는데, 이익이 나지 않았다면 부과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펀드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손실의 책임이 투자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원금을 보전해주는 펀드는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투자자가 펀드의 종류와 운영방식 등을 꼼꼼히 살펴서 선택해야 한다. 펀드의 대세는 적립식 주식펀드 적립식 주식펀드는 매달 조금씩 주식을 사서 평균 매입단가를 낮춰 리스크를 줄이는 상품이다. 매달 1백만원씩 적립식 주식펀드에 가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첫 달에 1백 주를 샀는데, 두번째 달 주가의 하락으로 1백50주를 살 수 있었다. 세번째 달에는 주가의 하락이 심해져 3백 주를 샀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평균 1백80여 주를 산 것이 된다. 자신이 투자한 자금에 손실이 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주식을 더 많이 샀다고 생각하면 적립식 주식펀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인 상품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상품이다. 공격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상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적립식 주식펀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7월 말 시중은행 8곳의 적립식 펀드 잔액이 4조원을 돌파했다. 2004년 말 1조6천억원에서 무려 130% 이상이 급증한 수치다. 잔액뿐만 아니라 최근의 주가 상승 덕분에 수익률 역시 고공 행진중이다. 지난 7월 29일, 주식펀드의 수익률이 지난 3년 평균 총 76.1%라는 놀라운 수익률이었다. 주식투자로 연평균 10% 내외의 수익을 올린다고 보면 주식펀드의 수익률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주식펀드로 수익을 올리려면 투자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식펀드는 장기투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 주가지수 1천 포인트가 새로운 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식시장이 장기적인 상승세인 만큼 몇 개월 보유하고 환매하는 방식보다는 장기 보유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주식시장에도 사이클이 있습니다. 떨어질 때가 있고, 오를 때가 있다는 거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10년 이상의 긴 안목으로 보면 우량주들은 상승했습니다. 삼성전자나 포스코, 신세계, 농심 등 우량주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85년과 95년 그리고 2005년의 주식평가액을 비교해보면 우량주들은 대부분 상승했습니다. 주식펀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지, 단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실패할 확률이 큽니다.”(ING생명 재무상담사 김현욱) 만일 향후 주식시장을 불투명하게 보는 투자자라면 환매를 하더라도 가입 금액을 일정 부분 분할 환매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품에 따라 우량주나 저평가된 가치주, 코스닥주 등 각양각색으로 펀드를 운영한다. 따라서 수익률 역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주가상승률에 일희일비하는 자세로는 적립식 주식펀드의 장점을 간과하기 쉽다. 그리고 저금리·고령화 시대에 단순한 예금과 적금으로는 노후 설계를 할 수 없다. 주식이 저축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투자 자세가 필요하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컨설팅 / 한국펀드평가(www.kfr.co.kr) 노무현 대통령이 가입했다는 코스닥펀드는? 노무현 대통령은 코스닥 편입 비중이 큰 펀드에 나눠서 투자했다고 한다. 펀드 운영 포트폴리오에 코스닥의 비중이 큰 펀드에 가입했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코스닥펀드에 가입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코스닥펀드를 이해하려면 장외주식형 펀드를 알아야 한다. 장외주식형 펀드란 거래소 상장 기업 외에 코스닥 등록기업이나 비상장 비등록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장외주식형 펀드는 코스닥 등록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코스닥펀드와 비상장 비등록기업에 투자하는 프리코스닥펀드 등이 있다. 코스닥 시장이 좋았을 때는 각광받았지만, 요즘은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펀드들이다. 장외주식형 펀드는 일반 주식형 펀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장외주식형 펀드는 장외주식을 집중적으로 편입하는 펀드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코스닥이나 비상장 주식투자 비율이 약관상 60% 이하, 30% 이하, 20% 이하 등으로 정한 것이 많다. 장외주식형 펀드면서 장외주식을 한 주도 편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코스닥 시장은 일반적으로 거래소 시장에 비해 주가 변화가 크다. 코스닥에 주로 투자하는 장외주식형 펀드 역시 리스크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위험이 큰 만큼 높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때문에 펀드의 약관을 보면 장외주식의 편입 비율이 각 회사마다 천양지차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담당 펀드매니저나 투자신탁설명서를 통해 약관상 장외주식 편입 비율과 실제 장외주식 편입 계획을 꼼꼼히 비교해야 한다. 장외주식형 펀드는 고위험 펀드인 만큼 분산투자 차원에서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펀드 리스트 ● 주식펀드 3년 성과 상위 20개 펀드 펀드명 운용사 설정일 미래에셋디스커버리주식형 미래에셋(자) 2002년 04월 02일 미래에셋인디펜던스주식형 미래에셋(자) 2001년 02월 14일 세이고배당주식형 SEI에셋 2001년 07월 06일 PCA업종일등주식D-1 PCA 2002년 04월 18일 신영마라톤주식 신영 2002년 03월 30일 PCA베스트그로쓰주식A-1 PCA 2002년 01월 29일 BEST모아모아적립식주식1 조흥 1999년 01월 11일 미래에셋솔로몬성장주식1 미래에셋(투) 2001년 04월 02일 한국부자아빠인덱스파생상품 한국운용 2002년 04월 10일 온국민뜻모아주식1 동양 2002년 01월 22일 온국민파이팅!코리아 KB 2002년 06월 03일 골드플랜연금주식A-1 한국운용 2001년 10월 08일 삼성인덱스프리미엄파생상품 삼성 1999년 03월 06일 프런티어뉴인덱스플러스파생상품αF-1 우리 2001년 01월 31일 Pru나폴레옹FREE주식1 푸르덴셜 2002년 01월 11일 유리인덱스200주식파생상품 유리 2001년 09월 11일 TempletonGrowth주식5 템플턴 2001년 03월 06일 삼성팀파워90주식형 삼성 2002년 03월 08일 Big&Safe인덱스주식03-1 CJ 2002년 02월 05일 Pru나폴레옹주식2-1 푸르덴셜 2001년 04월 03일 ※2005.8.16 영업점 기준가 기준. 주식 고편입 공모펀드 중 설정액 50억원 이상, 운용기간 3년 이상 경과된 펀드에 한함. Mini Interview ING생명 재무상담사 김현욱 Q 펀드가 뜨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부동산 시장 역시 인구의 감소와 부동산 정책에 따라 지금처럼 큰 이익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그리고 은행의 예·적금은 저금리 때문에 재테크 수단으로 큰 매력이 없다. 앞으로도 저금리 기조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시중에 묶여 있는 자금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펀드에 몰리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Q 펀드의 매력은 무엇인가? 다양한 상품이 있다는 것이다. 펀드 상품만 4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투자자들의 성향과 목표 수익률에 맞출 수 있는 상품이 다양하다는 것이 매력이다. Q 적립식 펀드에 대한 인기가 높다. 이유가 무엇인가? 매달 일정액을 불입한다는 측면에서는 적금과 비슷하다. 하지만 적립식 펀드의 수익률이 적금의 이자보다 높다는 것이 매력이다. 특히 노후 대책과 퇴직 이후의 생활을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 적립식 펀드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투자해야 하는 상품이다. 단기적으로 목돈을 만들려면 적금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김현욱이 제안하는 펀드 투자시 유의해야 할 사항 1 펀드는 퇴직이나 노후 준비 등 장기적인 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큰 수익에는 큰 위험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야 손실을 줄이고, 이익을 얻을 수 있다. 2 펀드의 수익은 펀드매니저에게 맡겨야 한다. 그날그날의 주가지수 등에 부화뇌동하면 이익보다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다. 3 펀드 상품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다. 현재 7천여 개의 펀드가 존재한다. 이 펀드를 유형으로 나눠봐도 30종 이상이다. 각종 펀드 정보를 정확하게 숙지하고 가입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손실을 볼 수 있다. 4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이 져야 한다. 투자자는 각종 경제, 투자에 대한 지속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 5 장기투자는 매입 시점보다는 환매 시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6 펀드 가입시 가능한 검증이 된 펀드나 수탁고가 많은 펀드를 고르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각종 펀드 평가 사이트를 통해서 펀드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것이 좋다. 7 펀드 투자시 자신의 재무상태와 자신의 투자 성향을 파악한 후 적합한 펀드 투자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8 펀드 투자시에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양한 종류의 펀드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다.
- 재테크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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