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18 건 검색)
- “미래 농업기술은 어떤 모습일까?”…대구 엑스코서 ‘2024 국제 농기계자재 박람회’
- 2024. 10. 30 10:35지역
- ... 국제 농기계자재 박람회(KIEMSTA 2024)’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이 박람회는 국내·외 농기계자재 분야별 최신 기술과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전문 전시회이다. 올해는 국내·외 25개국의...
- 대구엑스코농기계자재박람회
- ‘농기계 사고 사망’ 농민 5일에 1명꼴
- 2024. 10. 02 20:52사회
- ... 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에서 농기계 사고로 398명이 숨졌다. 5년간 평균 닷새에 한 명꼴로 농기계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같은 기간 농촌에서 발생한 농기계 사고는 모두 5907건에 이른다....
- 사고농기계사망
- 농민들 ‘닷새에 한 명’ 꼴 사망 왜?…농기계 사고 사상자 5년간 4593명
- 2024. 10. 02 11:56사회
- ... 평균 닷새에 한 명꼴로 농기계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기간 농촌에서 발생한 농기계 사고는 모두 5907건에 이른다. 농기계 사고는 매년 1000건 이상씩 발생하고 있는데 2018년 1057건,...
- 사고농기계사망
- 추석 맞아 고향 농사일 돕던 20대 여성, 농기계에 깔려 참변
- 2024. 09. 17 17:57사회
- ...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은 20대 여성이 농사일을 돕다 농기계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뉴스1은 17일 경북소방본부와 경찰을 인용해 전날 오후 4시19분쯤 청송군 안덕면 한 과수원에서 농약...
스포츠경향(총 7 건 검색)
- 강기정 광주시장, 농기계 글로벌 1위 ‘존디어’사와 협력 논의
- 2023. 08. 30 21:24 생활
- 광주시 제공 강기정 광주시장이 농기계 시장 점유율 세계 1위 기업인 미국 ‘존디어(John Deere)’사 부사장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강 시장은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무쿨 바르시니(Mukul Varshney) 존디어사 아시아태평양지역 부사장을 만났다. 강기정 시장과 바르시니 부사장의 면담은 이날 국제 인공지능(AI) 전시회 ‘AI 테크 플러스(TECH+) 2023’ 개막식에 앞서 이뤄졌다. 이들은 인공지능 중심 도시 광주시와 자율주행 트랙터 등 인공지능 첨단 기술을 가진 존디어의 자율주행산업 발전과 협력 방안 등을 협의했다. 바르시니 부사장은 “존디어는 생산성과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은 물론 환경의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며 “광주시와 의미 있는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인도 기술센터와 미국 본사를 언제든 방문해달라”고 말했다. 강 시장은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서 인공지능 기반 농업 플랫폼이 절실하다”며 “국가 데이터센터, 기업 실증 지원 등을 통해 한국형 인공지능 밸리로 도약하는 과정에 존디어와 함께하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190여년 전 세계 최초로 쟁기를 만들었던 존디어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최초 자율주행 농기계 트랙터 전시, CES 최우수혁신상 수상 등을 했다. 강기정 시장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 기조연설에 참석해 존디어의 변화와 혁신성에 주목하고 인연을 맺게 됐다.
- [간밤TV]‘자연스럽게’ 금손 전인화×농촌 대통령 허재, 35kg 농기계부터 도리깨 풀 스윙까지 ‘수확 배틀’
- 2019. 11. 26 08:43 연예
- 현천마을 이웃들과 각종 아이템을 장착하고 늦가을 수확에 나서다 ‘자연스럽게’. MBN 제공결실의 계절 늦가을을 맞아, 구례 현천마을 이웃들이 각종 아이템을 장착하고 본격 ‘수확 배틀’에 나섰다. 25일(월) 방송된 MBN ‘자연스럽게’에서 전인화와 소유진, 은지원, 김종민, 허재 등은 현천마을 이웃들이 귀로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해 본 적은 없는 콩 타작, 키질, 밀 파종, 감 따기 등 늦가을 노동에 나섰다. 아침부터 동생들을 위한 아침 식사 준비에 나선 허재는 정성이 가득한 3단 토스트를 들고 ‘놈팽이’ 명렬 아저씨와 함께 은지원, 황제성이 자고 있는 워니미니 하우스로 향했다. 토스트를 잘 먹는 동생들에게 한없는 애정을 보이며 “맛있다”는 찬사에 흐뭇해 한 허재는 “다 먹었으면 이제 감 따러 가자”라며 감 수확을 제안했고, 황제성은 “그래서 먹이신 거예요?”라며 당황했다. 감 농장에 도착한 네 사람은 고무장화와 모자를 장착하고 올바르게 감 따는 법을 전수받았지만, 색깔 구별이 쉽지 않아 난항을 겪었다. 작업 반장님은 “가지 하나 부러뜨리면 일당 없습니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허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지를 부러뜨렸고 벌(?)로 떫은 감을 먹어야 했다. 감 따기가 끝나고 난 뒤 은지원과 황제성은 감 포장 조가 돼 상대적으로 편한 일을 했지만, 허재는 35kg에 달하는 파종 기계를 장착하고 종자 뿌리기에 나섰다. 무거운 파종 기계를 등에 멘 ‘농촌 대통령’ 허재는 “세상에 쉬운 일이 없네. 옛날에 손으로 다 하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며 헉헉댔다. 일을 마친 이들은 친환경 감을 일당으로 받았다. 이들은 “감과 사과를 같이 넣어두면 감이 빨리 홍시가 된다”는 ‘꿀팁’을 전수받고 놀라워했다. 이날 밤 은지원 김종민 황제성은 허재를 불러내 3개월간 숙성시킨 매실주를 개봉하고, 함께 술자리를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은지원과 김종민, 허재는 수확한 고구마와 감을 포장해 지인들에게 택배로 보냈다. 허재는 둘째 아들 허훈에게 전화를 걸어 “고구마랑 감 보내 줄 테니 주소 찍어라”라고 말했고, 허훈은 “맛있어? 오케바리”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100포기 김장’의 후유증을 소유진 표 스트레칭과 아침 필라테스로 푼 전인화는 “덕분에 몸이 제대로 풀렸다”라며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이어 전인화와 소유진은 정기 아저씨, 부녀회장님과 함께 산수유 따기에 나섰다. 정기 아저씨는 “예전에는 산수유를 전부 손으로 땄지만, 지금은 일손이 없어서 기계로 한다”며 “딴 뒤에는 1차 건조하고 씨를 빼서 완전 건조해야 팔 수 있다”라고 손이 많이 가는 수확 과정을 설명했다. 산수유를 따던 중 소유진이 ‘쌍둥이’ 산수유를 잘 먹자 전인화는 “너 혹시 쌍둥이…?”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고, 소유진은 “혹시… 아니겠지? 아이가 다섯?”이라고 답하며 함께 폭소했다. 힘든 수확을 마치고 산수유 잼을 바른 토스트를 먹던 전인화는 남편 유동근에게 전화를 걸었고, 유동근은 “다시 오세요. 맛있는 것 해 드릴게”라는 부녀회장님에게 “다시 가야죠”라며 재방문을 약속했다. 두 사람의 이날 ‘수확행’은 산수유로 끝이 아니었다. 텃밭에 심었던 콩을 수확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낫으로 콩을 베고 마당에서 화자 할머니의 시범 속에 도리깨질을 시도했지만, 화자 할머니와 달리 콩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에 화자 할머니는 초보 일꾼들을 위해 방망이를 꺼냈고, 이들은 콩 줄기를 내리치며 ‘스트레스 해소’에 나섰다. 전인화는 남편을 생각하며 “왜 완벽하려고 애를 쓰냐고, 이제 편하게 살아도 된다고”라며 상황극을 펼쳤고, 소유진 역시 “완벽주의자 얄미워”라고 맞장구를 쳐 웃음을 자아냈다. 다음으로는 콩을 껍질과 분리하는 키질을 할 차례였다. ‘금손’ 전인화는 초보임에도 완벽한 키질로 ‘에이스’에 등극했다. 소유진은 은지원과 김종민에게 수확한 콩을 갖다 주며 ‘백종원 레시피로 콩자반 만들기’를 미션으로 제안, 워니미니표 콩자반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냈다. 늦가을 ‘수확행’에 이어, 월동 준비에 들어갈 구례 현천마을 이웃들의 시골 라이프가 그려질 MBN 소확행 힐링 예능 ‘자연스럽게’는 매주 월요일 밤 11시에 방송된다.
- 간밤TV
- ‘모심는’ 자율주행 농기계 등장
- 2019. 05. 15 10:48 생활
- SK텔레콤이 국내 1위 농기계 제조사인 대동공업과 자율주행 이앙기를 개발해 상용화했다고 15일 밝혔다. 자율주행 이앙기는 농부가 별도로 기계를 조작하지 않아도 못자리를 정확하게 따라가며 모판의 모를 논에 옮겨 심는다. 직진 유지, 모 간격 유지, 정밀 비료 살포 등 3가지 기능을 탑재해 이앙작업 숙련도가 떨어지더라도 전문가 수준의 작업이 가능하다고 SK텔레콤은 설명했다. 농부는 이앙기가 자율주행 하는 동안 모판 운반 등 다른 작업이 가능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수확량을 늘릴 수 있다.이 기계에는 이동통신 기반의 실시간 이동 측위 기술(RTK)이 들어갔다. 기존 위치 측정 솔루션은 장비 가격이 높아 농기계 적용이 어려웠지만, SK텔레콤은 RTK 기술을 통해 가격을 100만원대로 낮췄다.
- “자동차·농기계 연비 늘려 미세먼지 잡는다” 중부에코시즌, 7일 문경서 대규모 시연행사
- 2018. 07. 07 09:43 생활
- 친환경자동차부품기업 중부에코시즌이 7일 경북 문경에서 대규모 시연행사를 연다. 이날 10시부터 문경시 산북면 산북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자동차·농기계의 연비향상 효과와 함께 매연억제 기능으로 인한 미세먼지 절감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퀀텀에너지시스템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공개시연행사다. 중부에코시즌의 퀀텀에너지시스템은 엔진오일첨가제인 퀀텀에너지오일과 냉각수 첨가제 퀀텀에너지워터, 활성촉매인 퀀텀에너지활성화바디 등 총 3가지 기술로 구성된 자동차·농기계용 친환경기술이다 80cc오토바이에 퀀텀에너지시스템을 장착한 뒤 매연을 분석한 결과. 장착 전(오른쪽) 0.57%에 달했던 일산화탄소는 30분 뒤 0.32%까지 대폭 감소했다. 연소가 잘 됐음을 의미하는 이산화탄소는 61.5%에서 64.3%로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중부에코시즌 제공먼저 퀀텀에너지 오일(엔진오일첨가제)은 엔진 내부의 찌꺼기 세정은 물론 초밀도 에너지 코팅 막을 형성해 출력과 연비를 향상시키는 반면 매연은 저감시키는 기술. 퀀텀에너지워터(냉각수)는 부식방지와 침전물생성억제 작용으로 엔진과열을 방지하는 동시에 출력과 연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핵심기술인 퀀텀에너지 활성화바디(양자에너지 활성 촉매)는 냉각수와 오일에 함유돼있는 양자에너지의 성능을 보존하는 컨트롤타워역할을 하는 기술로 양자에너지가 활성화되면 연료의 완전연소가 이뤄져 높은 연비향상 효과와 매연 절감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해 평창군은 퀀텀에너지시스템을 군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임대용 농업기계에 장착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조정연 중부에코시즌 대표는 “최근 미세먼지 등으로 국가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한편 매연을 저감시킬 수 있는 퀀텀에너지시스템을 통해 후손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는데 일조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중부에코시즌은 이 같은 기술을 통한 매연절감과 연비향상 효과, 환경보호를 위한 공헌을 인정받아 지난 2월 한농연경기도연합회와 특수판매계약을 맺는가 하면 지난해 신문기자협회와 언론인엽합협의회가 주관하는 ‘2017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 산업발전공로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JB에코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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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테크노 컬처 연대기](8) 농기계 소리 메아리치는 농촌(2016. 02. 23 14:08)
- 2016. 02. 23 14:08 사회
- 경운기는 호주에서 시작되어 미국과 유럽, 이어서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새로운 기술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이동하며 때로는 모습을 바꾸고, 반대로 그 사회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다. 인류가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농업에 의존하기 시작한 이래 경작은 품이 많이 드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농사 짓는 일에서 어느 하나 힘들지 않은 작업이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논밭을 가는 작업(한자로는 起耕, 영어로는 tilling이라고 한다)이 으뜸이 아니었을까? 논밭갈이는 흙을 긁어내어 뒤집어 줌으로써 잡초를 제거하고 지력을 보충해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곧 대형 가축(말 또는 소)의 힘을 이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10세기 무렵이 되면 중세 유럽에서는 철제 쟁기날이 등장했고, 가축의 목이 아니라 가슴에 힘을 받도록 만든 새로운 형태의 멍에가 개발되어 농업 생산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이렇듯 논밭갈이는 힘들고도 중요한 작업이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부터 기계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자 기계를 이용해 땅을 갈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세기 들어 트랙터, 콤바인, 탈곡기, 제초기 등 여러 농기계가 나와 세계 각지 농촌의 풍경을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계를 이용한 영농은 작물의 종류, 지역 환경의 특성, 농촌사회의 구조 등에 따라 각기 상이한 모습으로 발전했다. 미국처럼 대규모 영농을 하는 곳은 대형 트랙터와 콤바인을 사용하고, 심지어 경비행기를 이용해 제초제를 뿌리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반면 한국의 경우 농촌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농기계가 바로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며 느릿한 속도로 농로를 오가는 경운기(耕耘機)였다. 아서 클리포드 하워드는 경운기의 초기 모델을 개발한 호주의 발명가였다. 하워드가 1930년대에 새로 고안한 경운기를 시험해 보고 있다. 1930년 후반 한반도에 들어온 경운기 경운기는 20세기 초 호주의 발명가가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서 클리포드 하워드(Arthur Clifford Howard)는 뉴사우스웨일즈의 가족 농장에서 일을 돕다가 기계 동력을 이용해 밭을 갈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하워드는 여러 시험을 거듭한 끝인 1920년 마침내 ‘회전식 쟁기(rotary hoe)’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장치는 여러 개의 L자형 쟁기날을 원반 주변에 달아 퍼올린 흙이 옆으로 쌓이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하워드가 처음에 만들었던 경운기는 한 사람이 손쉽게 작동할 수 있는 소형 모델이었지만, 곧 호주의 대규모 농장에 보다 적합한 4.5m 너비의 대형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워드의 경운기는 1920~30년대를 거치면서 유럽 및 미국으로 서서히 퍼져 나갔다. 당시 미국에서는 비맨(Beeman)과 유틸리타(Utilitar), 스위스의 SIMAR(Societe Industrielle de Machines Agricoles Rotatives) 등의 업체들이 ‘가든 트랙터’라는 이름으로 소형 경운기를 제조했다. 한반도에 경운기가 처음 소개된 때는1930년대 후반 무렵이었다. 1938년 는 일본에서 ‘획기적 자동경운기’가 개발되었음을 보도하며 “농지 경운상의 일대 혁명을 초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경운기는 일본의 발명가 히로세 요키치(廣瀨與吉)가 1936년부터 제조하기 시작한 ‘히로세 S’ 모델이었다. 서양 경운기들은 대개 텃밭이나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무논 농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SIMAR 경운기는 논농사에 사용하면 회전식 쟁기날에 지푸라기가 감겨 꼼짝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진흙을 제대로 뒤집어 주지 못해 경작의 효과가 적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히로세는 서양에서 도입한 경운기를 지역 환경의 특성에 적합하게 개량했다. 1.5마력 엔진을 장착한 히로세 S 경운기는 당시 돈으로 560원에 판매되었다. 1966년 대동공업에서 시판한 동력경운기. 아마도 석유용 6마력 H6E-CT83 모델일 가능성이 높다. ( 1966. 6. 20.)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은 연합군 점령 하에 놓이게 되었다. 패전국이었던 일본은 모든 무기 생산이 금지되었다. 전쟁 중에 무기를 만들던 기계공장들은 민간용 제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군수기계 업체의 상당수가 전후 농기계시장에 뛰어들었다. 미쓰비시중공업, 쿠보타 등이 이들이었다. 이들은 높은 기술력을 활용해 보다 쓸모있는 경운기에 대한 개발작업을 시작했다. 개발의 목표는 중량을 줄여 작업을 편리하게 하고, 논밭갈기 외에 다양한 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농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대기업의 기술력으로 개선된 경운기는 195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맞아 빠르게 보급되어 1960년대 초가 되면 이미 100만대를 넘어섰다. ‘경운기 붐’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대동공업과 한국형 소형 동력경운기 한국에서는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농업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농기계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한국 농기계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던 회사가 대동공업이었다. 1947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농기구를 제작하던 철공소에서 출발했던 대동공업은 1962년부터 동력경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쓰비시중공업과의 기술제휴를 통해서였다. 대동공업의 창업주 김삼만 회장은 1961년 유럽의 농촌을 시찰한 후 그들의 “트랙터, 콤바인 등은 무척 부러운 것이지만 경지정리가 안 되고 영세한 한국 농촌에서 널리 쓸 형편은 못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따라서 당시 한국의 상황에서는 소형 동력경운기가 가장 적합한 농기계였고, 한국과 농업 형태가 비교적 유사한 일본의 경운기를 도입하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았던 것이다. 대동공업은 1962년 12월에 미쓰비시와 국산 생산 협약을 체결해 기술을 들여왔고, 이후 수년 안에 모든 부품을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듬해 1월에 6마력 석유용 경운기 H6E-CT83 모델을 시판했다. 초기 경운기는 영농작업 이외의 일에 쓰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경운기의 시내 주행은 불법이었지만, 짐을 한가득 실은 경운기가 시내에 나타났고, 언론은 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 1970. 2. 2.) 정부에서도 1960년대를 거치면서 경운기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전후 배상으로 받게 된 청구권 자금의 일부로 일본으로부터 동력경운기 5000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일본에서 경운기 부속품을 들여와 대동공업을 비롯한 국내 업체에서 조립하고, 이를 농협을 통해 비교적 값싸게 판매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경운기의 가격이었다. 정부 보조금으로 가격을 낮춘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대당 10만원이 넘는 거액을 부담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1966년에 1차로 공급한 경운기 2000대 중 겨우 450대밖에 팔리지 않았다. 당시 대동공업에서 판매하고 있었던 최저 사양인 CT83 모델의 가격은 무려 22만원에 달했다. 이 무렵 한국에 보급된 경운기는 1970년까지 1만2512대, 1972년까지 2만4786대에 불과해 일본의 330만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경운기 보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자금지원이 필요한 실정이었다. “수리시설이 완전한 논밭에서 ‘트랙터’·동력경운기로 농사를 짓고 ‘콤바인’ 시설에 의한 자동 예취(刈取) 탈곡기로 수확물을 거둔다. 각 농가마다 2정보의 경지에서 연간 150만원의 순수입을 얻고 개간이 잘된 야산지대에는 젖소 양 등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1969년 9월 19일) 1960년대 후반 농협중앙회에서는 1990년대 미래 농촌의 모습을 위와 같이 상상했다. 이렇듯 1970년 전후 한국에서 농촌근대화란 다름 아닌 ‘기계소리 메아리 치는 농촌’을 만드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부터 ‘농업기계화 5개년계획’을 수립해 농기계 보급에 더욱 열을 올렸다. 당시 확산되고 있던 새마을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1973년 경제기획원이 제출한 ‘농업기계화 계획’에 따르면 국민투자기금 300억원을 기계화에 투입한다고 되어 있었다. 이 자금은 농협에 대하금(貸下金) 형식으로 전해진 후 일부는 생산자금 융자로 제조업체(말하자면 대동공업)에, 일부는 구입자금 융자로 농민들에게 제공되었다. 정부에서 저리의 융자금을 제공하여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을 쓴 것이다. 이를 통해 1976년까지 경운기 1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농업기계화 계획’(1973)에서는 ‘동력경운기 중심의 기계화’를 선언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과 북한의 경제체제, 토지제도, 농민의 위치를 분석했다. 여러 용도로 쓰인 경운기의 다양한 모습 1970년대 정부 정책의 방향은 명확히 ‘동력경운기 중심의 기계화’였다. 정부는 한국, 일본, 대만이 공통적으로 경운기를 ‘중추기계’로 선정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유경제 체제인 이들 나라에서 자유농민들은 자신이 소유한 경운기로 영농활동을 했다. 반면, 대규모 국유농장을 운영하는 통제경제체제인 북한에서는 ‘농노(農奴)적 위치’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통계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북한은 트랙터를 4만1000대 보유하고 있을 뿐 경운기는 한 대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경운기라는 테크놀로지가 영세한 농촌의 현실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경제체제를 반영하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따라 경운기의 보급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늘었다. 다만 경운기가 농촌에서 제대로 자리잡게 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67년 6월 1일자 에는 시내에서 연탄을 나르는 경운기 사진이 실렸다. 이러한 모습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보급된 경운기가 원래의 목적인 농사일에 쓰이지 않고 엉뚱하게 용달차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76년에 이르자 농수산부는 영농 목적 이외에 사용되는 동력경운기를 철저하게 단속해 처벌하겠다고 발표해야 할 정도였다. 정부의 장려금 정책이 낳은 풍속도이기도 했지만, 새마을운동으로 농지정리 및 농로 설치가 충분해질 때까지 경운기를 영농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꾸준히 늘어나던 농기계 보급은 2000년 이후 줄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강력한 보조금 정책이 끝나고 농촌인구도 급격히 감소하면서 소형 동력경운기에 대한 수요는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운기의 다양한 모습은 테크놀로지가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개량되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새로운 기술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이동하며 때로는 모습을 바꾸고, 반대로 그 사회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다. 경운기는 호주에서 시작되어 미국과 유럽, 이어서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이동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미 1960년대부터 대동공업은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경운기를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중국에 진출하고 미얀마에 농기계를 수출하고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은 2015년에 인도 마힌드라(Mahindra) 그룹과 제휴하여 미쓰비시-마힌드라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쿠보타 역시 세계 곳곳에 네트워크를 구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그 환경에 적합한 농기계를 만들어낼 것이며, 그곳 농촌의 풍경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 한국 테크노 컬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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