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7 건 검색)
- “한 줄이라도 더”···‘선 긋기’ 멈추고 눈감은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 2023. 10. 15 17:30 문화
- ... 연필과 유채로 그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단색화’는 박서보와 동의어다. 1970년대부터 단색화의 기수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여왔다. 1967년 시작한 묘법 작업은 연필로 끊임없이 선을 긋는...
- 박서보단색화
- 긋고 또 긋고···‘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 별세
- 2023. 10. 14 11:24 문화
- ... 92세···올초 폐암 3기 투병 알려져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 연합뉴스 ‘단색화의 거장’이자 국내외적으로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쳐온 박서보 화백이 별세했다. 향년 92세. 박 화백은 올 초...
- ‘단색화 1세대’ 조용익 화백 별세
- 2023. 07. 03 21:59 인물
- 단색화 1세대로 평가받는 화가 조용익씨가 2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4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 1926년 악튀엘전 등에 출품했다. 이후...
- 암 투병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 2023. 02. 23 22:52 문화
- ... 열정에 가득 차 있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박서보 화백.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단색화의 거장’이자 국내외적으로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쳐온 박서보 화백(92)이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 박서보단색화폐암묘법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 [문화내시경]기이한 ‘단색화’ 열풍(2015. 05. 12 10:32)
- 2015. 05. 12 10:32 문화/과학
- 70년대 한국 미술계를 주름잡았던 ‘단색화’(한국 모노크롬)가 꾸준히 상한가를 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국내외적으로 굵직한 전시회가 연이어 개최되고 있는가 하면, 미술시장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현상으로만 보자면 그야말로 단색화 바람이 한국 미술계를 휩쓸고 있는 게 아닌지 착각할 정도다. 그러나 열풍에 버금가는 현상과 달리 단색화에 대한 미술사적 정의와 미학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아직 명료하지 못하다. 한국의 단색화는 중간색을 통한 자연과 전통의 합일이라거나, 모더니즘 회화이념과 동양 정신의 접목이라는 주장이 한 축이라면 50년대 서구의 앵포르멜과 60년대 추상표현주의의 아류라는 주장이 상충하고 있다. 독자성을 말하지만 한국 단색화의 시작이 몇몇 일본 관계자들의 ‘취향’과 ‘정치’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때문에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모노크롬’이라 부르던 것이 현재에 이르러 ‘단색화(Dansaekhwa)’로 표기되는 것부터가 성급했다는 시선도 있다. 박서보, Ecriture no. 89-79-82-83(1983),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단색화’ 출품작, 팔라쪼 콘타리니 폴리냑, 베니스. 문제는 이처럼 정체성에 대한 명징한 거푸집과 학술적 연구가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품에 대한 가치가 지나칠 만큼 환금성에 치중되는 현상에 있다. 이는 예술 태동과 역사적 맥락,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성찰적 태도는 배척한 채 휘발성 강한 상업전략에 맥없이 소비되는, 가볍고 얇은 한국 미술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읽게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아전인수식 해석들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단색화 바람의 선두에 있는 일부 작가들은 단색화의 요체가 ‘자기 행위의 극심한 반복적 부정’에 있다면서도 “내가 최고”라는 수식어는 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뿐이랴, 혹자는 단색화에 대해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세상 속의 그들은 적지 않은 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단색화는 ‘금욕’이자 ‘끝없이 비우는 것’이라 말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많은 것을 긁어모았고 비우지 못했다. 아니, 비우기는 고사하고 ‘단색화’ 자체를 권력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시대인식과의 괴리도 비판의 대상이다. 얼마 전 이우환은 당대 정치적 현실에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이유로 눈총받던 단색화 작가들에 대해 “침묵의 저항이었다”고 두둔해 논란을 불러왔다. 그의 발언은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 피를 흘리며 현장에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한 예술가들에겐 이현령비현령식 해석이었고, 수십년간 조용히 있다가 세상이 주목하니 뜬금없는 저항 코드를 내세워 한 줌의 가치마저 인정받으려는 과욕의 다른 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단색화 바람에 관여한(하고 있는) 소수의 화랑과 비평가들을 제외하곤 단색화 작가들이 내놓은 긍정적 해석의 다수는 자신들 스스로 만들어 내뱉은 것이지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 공감, 공유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선비 같은 자기 수양의 도구가 저잣거리에 걸리는 신세로 전락했음에도 그 많은 말들을 쏟아내는 이들 중 누구 하나 항거는커녕 반론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역시 ‘침묵의 저항’인지 모르지만 일련의 단색화 관련 양태를 보고 있노라면 바람은 바람인데 이래저래 참 기이한 바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 문화내시경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