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278 건 검색)
- [속보]‘노상원과 햄버거집 계엄모의’ 전 정보사 대령 구속
- 2024. 12. 21 19:15 정치|사회
- ... 등 민간인이 포함된 별도 수사단을 만드는 방안이 논의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 전 대령은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본부장을 지냈다. 경찰 특별수사단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참여한...
- 정보사 대령, ‘선관위 장악 시도’ 시인…“케이블타이 사용도 검토”
- 2024. 12. 20 11:14 정치|정치
- ...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 대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틀 전인 지난 1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김모 대령 등과...
- 윤석열 탄핵 정국
- 박정훈 대령 “비상계엄 때 급히 피신···진실 드러나고 단죄 있을 것”
- 2024. 12. 06 21:22 사회|정치|정치|사회|사회
- ... 세상에 알리고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박 대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 때 집에 있지 못하고 급히 피신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 탄핵, 국내외 영향
- “박정훈 대령은 존경하는 아들이었습니다…온 국민 박수소리 채 상병에도 전달되길”
- 2024. 12. 04 06:00 사회
- ... 주는 사람은 되지 마라’ ‘남들 억울하게 하지 마라’라는 교육을 가훈처럼 여기게 했다”며 “박 대령의 한마디 한마디를 듣는 순간 엄마의 가르침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씨는 “저희...
스포츠경향(총 26 건 검색)
- 안정환 “아침마다 ♥이혜원에게 홍삼에 빨대 꽂아 대령” (선넘은)
- 2024. 06. 13 10:17 연예
- 채널A ‘선 넘은 패밀리’ 채널A ‘선 넘은 패밀리’ 이혜원이 “아침마다 홍삼을 챙겨준다”라며 은퇴 후 달라진 안정환의 모습을 자랑한다. 14일(금) 방송하는 채널A ‘선 넘은 패밀리’ 38회에서는 안정환, 이혜원, 유세윤, 송진우가 스튜디오에 자리한 가운데, ‘마더스 데이(어머니의 날)’를 맞아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스위스 장주희X루카스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한 인도 바라나시로 선 넘은 K-웨딩 홍보에 나선 네팔 김나희X아시스의 이야기와 미국 여유진X샘 로버츠의 워싱턴 D.C 여행기도 공개된다. 샘 해밍턴, 럭키, 크리스 존슨이 각각 호주, 인도, 미국 대표로 함께한다. 이 가운데 스위스 패밀리는 ‘어머니의 날’을 맞아 부모님과 형제들을 초대, 직접 만든 화덕 피자로 파티를 즐겨 눈길을 끈다. 첫째 아들인 루카스를 비롯해 아들만 여섯인 완전체 가족의 등장에 송진우는 “어떻게 아들을 여섯이나 키우셨나?”라며 깜짝 놀란다. 안정환도 “어머니가 정말 대단하시다”라며 부모로서 존경심을 보인다. 샘 해밍턴은 “아무래도 식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빵 공장을 차린 것 같다”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해 스튜디오를 웃음으로 물들인다. 여섯 형제는 어머니의 날 한정판 딸기 타르트를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공장에 모여 우애 좋게 타르트를 만든다. 알고 보니 이는 부모님 시절부터 이어진 집안의 전통이었는데, 형제들이 다 함께 그 뜻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 이를 본 이혜원은 “우리 집은 가족 여행 때 아이들이 알아서 여행 경비를 쓸 수 있도록 돈 봉투를 챙겨주는 전통이 있다”라고 밝힌다. 그러자 송진우는 안정환을 향해 “아빠!”라고 외쳐 모두를 폭소케 한다. 장주희X루카스 부부는 한국식으로 빨간 카네이션과 홍삼도 선물해 눈길을 끈다. 그런데 꽃다발을 받은 시어머니는 “이거 장례식에서 쓰는 꽃 아니냐?”라고 물어 장주희를 당황케 한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오해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쏠리는 가운데, 안정환은 홍삼 이야기가 나오자 “아침마다 아내를 위해 홍삼에 빨대를 꽂아 대령한다”라며 ‘사랑꾼 면모’를 셀프 어필한다. 이에 이혜원은 “은퇴 전에는 제가 시중 들었는데, 은퇴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라고 덧붙여 웃음을 안긴다. 14일(금) 오후 9시 40분 방송.
- 큰손 송가인 ‘진도 특산품’ 9종 대령 (편스토랑)
- 2023. 08. 11 13:10 연예|연예
- KBS2 제공 송가인이 진도 특산품을 대방출한다. 11일 방송되는 KBS2 ‘신상출시 편스토랑’에는 NEW 편셰프 송가인이 출격한다. 대한민국에 트로트 열풍을 몰고 온 자타공인 트로트 여신 송가인. 그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손맛 DNA로 어마어마한 요리 실력을 공개할 예정이다. VCR 속 송가인은 흡사 이삿짐처럼 양손 바리바리 식재료를 싸 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송가인이 도착한 곳은, 그가 평소 존경하며 따르는 선배 가수 한혜진의 집이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혜진에게 요리를 대접하고 싶던 송가인이 고향 진도에서 올라온 다양한 식재료를 들고 찾아온 것. 한혜진은 환한 미소를 아끼는 후배 송가인을 반겼다. 이어 송가인이 가져온 식재료들이 하나씩 공개됐다. 송가인은 “진도 특산품 식재료들을 가져왔다”며 전복, 미역, 뜸부기, 울금 소금, 멸치, 흑미, 대파, 꽃게, 낙지 등 셀 수 없이 많은 식재료를 꺼내고 또 꺼냈다. 뿐만 아니라 남도의 손맛을 자랑하는 송가인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 마늘고추장, 간장, 된장, 매실액 등도 꺼냈다. 송가인의 화끈한 진도 특산품을 본 스페셜MC 영탁은 “양손 무겁게 온다는 말의 표본, 아이콘이다”고 감탄했다. 송가인은 특산품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좋은 점을 설명했다. 멈추지 않는 진도 특산품 식재료 자랑을 통해 송가인의 남다른 진도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급기야 송가인이 진도의 풍부한 전복 이야기를 하다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비유를 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편스토랑’을 발칵 뒤집은 송가인의 특별한 비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더한다. “이건 보약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송가인 표 진도 향토음식, 송가인의 깜짝 놀랄 요리실력까지 모두 공개되는 KBS2 ‘신상출시 편스토랑’은 11일 오후 9시 10분 방송된다.
- 이찬원, 홍성흔·최준석에 샤부샤부 33인분 대령 (편스토랑)
- 2023. 04. 14 15:16 연예|연예
- KBS2 제공 이찬원이 ‘먹이는’ 즐거움에 푹 빠진다. 14일 방송되는 KBS2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는 이찬원이 대한민국 레전드 야구선수 홍성흔과 최준석을 집으로 초대한다. 야구 마니아로 유명한 이찬원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두 형님을 위해 지금껏 본 적 없는 초대용량 한 상을 준비한다. 이에 두 형님은 경이로운 먹방으로 화답한다. 이날 공개되는 VCR 속 건장한 홍성흔과 최준석이 입장하자 평소보다 이찬원의 집이 좁게 느껴지는 효과에 ‘편스토랑’ 식구들 모두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특히 150kg에 육박하는 최준석의 존재감은 엄청났다고. 거구의 두 형님이 착석하자 이찬원은 언제나 그렇듯 웰컴 드링크 식혜를 시작으로 직접 준비한 음식들을 세팅한다. 평소에도 손님들을 위해 넉넉하게 음식을 내놓는 이찬원이지만, 이날만큼은 상상을 초월하는 양으로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날 된장 샤부샤부를 메뉴로 선택한 이찬원은 채소 2kg와 차돌박이 5kg을 내온다. 이는 무려 33인분에 해당하는 양. 두 형님은 박수갈채로 “역시 찬원이야! 너무 좋아”를 외치며 산더미 고기를 맞이한다. 이찬원은 밥 6인분과 떡사리까지 꺼낸다. 두 사람의 본격적인 먹방이 시작되고, 최준석은 차돌박이 10점을 가지런히 쌓아 한입에 넣는 깔끔 그 자체 진공청소기 먹방으로 감탄을 유발한다. 이어 최준석은 커다란 대접에 고봉처럼 쌓인 밥을 폭풍 흡입한다. 충격적인 것은 최준석이 든 대접이 마치 일반 공깃밥 사이즈로 보인 것. 최준석이 일반 사이즈 공깃밥을 들자, 간장종지처럼 보이는 마법에 모두 빵 터진다고. 이찬원의 센스 있는 코스요리는 계속된다. 통삼겹 구이와 된장샤부샤부 국물에 끓인 칼국수, 만두죽 등 코스가 쉬지 않고 이어진다. 두 형님의 먹방 흐름이 끊길까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인 이찬원은 힘들어하기는커녕 잘 먹는 두 형님의 모습에 “경이롭다”며 뿌듯해한다고. 14일 오후 8시 30분 방송.
- 제이쓴, ♥홍현희 위해 새벽 라면 대령 “이 정도는 당연한 것”
- 2023. 02. 02 17:51 연예|연예
- 유튜브 채널 ‘홍현희 제이쓴의 홍쓴TV’ 캡처 제이쓴이 홍현희를 향한 애정을 과시했다. 최근 유튜브 채널 ‘홍현희 제이쓴의 홍쓴TV’에는 ‘어서와 불닭볶음면은 처음이지 이쓰나?’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날 홍현희는 야심한 밤에 카메라를 켰다. 홍현희는 주방에 서 있는 제이쓴에게 뭘 하고 있는지 물었고, 제이쓴은 “홍현희 씨 라면 셔틀하고 있다”고 답했다. 홍현희는 “울적해서 1차로 단 걸 시켰다. 추로스, 슈크림. 근데 안 가셔지더라. 가끔은 뭐가 먹고 싶을 때 울적하다고 거짓말해 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라면을 제조하는 남편을 보며 홍현희가 감탄하자 제이쓴은 “이런 것도 안 해주면 결혼 왜 해?”라며 당연한 듯 얘기했다. 이어 “내가 배고프다 하면 현희는 그냥 잘 거야?”라고 물었고, 홍현희가 “응”이라 답하자 제이쓴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유튜브 채널 ‘홍현희 제이쓴의 홍쓴TV’ 캡처 특히 제이쓴은 먹어본 적도 없는 불닭볶음면을 끓이고 있었다. 제이쓴은 “난 매운 거 진짜 싫어한다. (매운맛이) 아픔이다”고 말했다. 이후 라면이 완성되고, 제이쓴은 불닭볶음면 첫 시식에 나섰다. 제이쓴은 의외로 “하나도 안 매운데? 생각보다 안 매운데?”라며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반면 홍현희는 매워했다. 제이쓴은 “맛있네... 나 왜 그동안 안 먹었지”라며 홍현희의 라면을 계속 뺏어 먹었다. 매운맛에 콧물까지 나온 홍현희는 “제가 졌네요. 맵찔이한테 졌어”라며 씁쓸한 마무리를 지었다.
주간경향(총 4 건 검색)
- 박정훈 대령 뒷배, 해병대 정신이란 무엇인가(2024. 01. 12 16:15)
- 2024. 01. 12 16:15 사회
- 상명하복보다 정의와 자유가 우선…예비역까지 “진상규명” 촉구 해병대 예비역들이 지난해 11월 5일 서울 용산 국방부청사 부근에서 해병대 군가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전날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에서 출발해 국방부청사까지 50㎞를 행군했다. 행군 도중 시민들로부터 메모지에 지지 서명을 받아 채 해병과 박정훈 대령의 이름을 쓴 펼침막을 만들었다. 김창길기자 이런 전개가 또 있을까. 해병대 장병의 사망 사고가 벌어졌고, 수사책임자는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려 했다. 일단 사건이 있으면 덮기 급급하던 군에서는 못 보던 일이다. 더 놀라운 건 수사책임자가 항명죄로 입건되자 그 부하들이 직을 걸고 상관의 무고함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급기야 전역한 예비역 해병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엔 지난해 전역한 MZ세대 해병 장교도 있고, 28년 전 3개월간 수사책임자와 동고동락한 동기들도 있으며, 군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월남전 참전 노병도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이름은 해병뿐이다. 조사를 둘러싸고 정권 차원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나오는데도, 그 반대편에 선 예비역의 대오는 흔들림이 없다. “진상규명”이라는 요구 아래 사람들을 모으고, 집회 등 행사를 기획하고, 1박2일 행군에 나서는 일은 생업을 가진 이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예비역 해병은 “역시 해병대라는 말을 듣고 싶다(905기 해병 안신현)”고 했다. 세대도, 정치색도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 해병이란, 해병대 정신이란 무엇인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해병대 예비역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티셔츠를 입은 예비역 해병 400여명이 참석했다. 김세훈 기자 “저는 사실 해병대 정신 때문이 아니에요.” 해병대 1158기 정원철 해병은 지난해 8월 중순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했다. 그는 전역 후 전우회 활동을 하거나 ‘해부심(해병대라는 자부심)’을 부리던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해병대 예비역들 모여 있으면 서로 ‘내가 더 힘들었다’ 자랑하는데 내가 당한 악습이 무슨 자랑거리예요. 북한을 덜덜 떨게 하는 게 멋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오픈채팅방을 만든 건 채 상병 때문이다. 정 해병은 늦둥이, 외동아들이다. 수차례 시험관 시술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채 상병의 일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는 “우리 집에 대입해 봤는데, 제가 없다면 우리 집도 초상집이죠. 그 마음이 컸어요”라고 했다. 해병대 예비역을 대표하는 공식단체 해병대전우회가 지난해 8월 낸 성명이 행동에 나서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당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채수근 상병의 사고를 조사하던 박정훈 대령은 수사 자료를 경찰에 이첩했다가 ‘집단항명수괴죄’로 입건됐다. 국방부 장관은 수사 자료를 경찰에 넘기겠다는 내용이 담긴 박 대령의 수사보고서에 사인했다가, 이틀날 돌연 이를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 장관보다도 윗선의 수사 외압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해병대전우회는 “외부개입 없이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군이 명확한 결과를 도출해야만 한다”는 내용의 점잖은 성명을 냈다. 이 성명을 예비역 해병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전우회 홈페이지에 달린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단순히 관망하는 제 3자의 입장문처럼 보인다” “해병대 전 가족들이 분개하고 있는 게 안보이느냐”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정 해병은 “전우회가 밖에 나가서는 봉사활동도 참 많이 하는 가장인데 집 안에 제 자식은 안돌본다”고 느꼈다. 해병대 정신 때문에 나선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얼굴도 모르는 채 상병의 죽음도, 개인적 연이 없는 박 대령의 고난도 제 가족의 일처럼 바라봤다. 정원철 해병이 지난 1월 2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채 상병에 대한 참배를 요구했을 때, 최병태 해병(76)도 그 곁에 있었다. 그사이 정 해병이 개설한 오픈채팅방은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라는 이름의 단체가 됐다. 600여명의 해병이 가입했다. 해병대 부사관 78기로 전역한 지 반세기가 다 돼가는 최 해병도 그 중 한명이었다. 인천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최 해병은 채 상병의 생일이던 이날 가게 문을 닫고 대전을 찾았다. 그는 “우리 후배가 억울하게 사망한 일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날 정원철 해병의 참배 요구에 한동훈 위원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 해병은 “한 위원장이 그날 거기 오는 줄도 몰랐다. 기왕 왔으면 몇 발짝만 가면 되는데 못 들은 체하고 가더라. 채 해병 사건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최 해병은 1970년대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파병돼 분대장으로서 대원들과 몇차례 전투를 수행했다. 그는 “자기 부하를 부모 같은 마음으로 아끼고, 대원 잘못도 책임지는 게 해병 지휘관이다. 아랫사람 책임으로 미룬다면 지휘관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이번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에는 채 상병 소속 부대의 최고 책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소장)이 있다. 박 대령은 당초 임 사단장 등 지휘관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있다고 봤다. 그를 보직해임하고 이 사건을 재조사한 국방부는 그러나 임 사단장의 이름을 빼고 대대장 2명의 혐의만을 적시한 수사기록을 경찰에 넘겼다. 외압이 있었다면, 그 목적은 ‘임성근 구하기’였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에 입건된 대대장은 채 상병 사고의 원인인 수중수색이 임 사단장의 지시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임 사단장은 ‘수중수색 중인 걸 알지도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해병 장교로 전역한 20대 A해병은 임성근 당시 1사단장 휘하에서 군 생활을 했다. 그는 지난해 7월 해병대 1사단이 경북 예천의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경북 예천에는 육군 부대가 이미 주둔하고 있는 데다, 해병대 1사단이 있는 포항에서 예천까지의 거리도 그리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관은 ‘지난해 1사단이 성공적으로 작전을 했기에 그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대민지원을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2022년 태풍으로 인해 포항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기는 일이 발생하자, 해병대 1사단은 상륙장갑차를 투입해 성공적으로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상륙장갑차가 포항에서 예천까지 이동했지만, 급류로 인해 작전에 투입되지도 못했다. A 해병은 “사단장 지시 없이 부대가 타 도시로 이동해서 대민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대대장들 잘못도 있겠지만 부대가 예천에 투입되게 한 사단장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해 9월 4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해임 집행정지 신청 첫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박 대령의 해병대 사관 81기 동기들도 이날 동행해 박 대령을 응원했다. 연합뉴스 해병대는 군기가 강한 부대다. 전역 후에도 기수로 선후배를 가린다. 군기의 핵심을 상명하복이라 할 때, 박 대령은 상부 지시를 불이행한 군인이라 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해병들은 하나 같이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를 얘기했다. 이 문구는 금색 닻 위에 은빛 독수리가 앉아 있는 해병대 마크에도 담긴 문구로, 해병대가 존재하는 목적을 의미한다. 정원철 해병은 해병대 예비역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구전되는 부마항쟁 진압작전 이야기를 꺼냈다. 1979년 부마항쟁 당시 시위진압을 위해 부산에 투입된 박구일 해병대 7연대장은 대원들에게 ‘시민들이 때려도 맞아라. 총기만 빼앗기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 해병은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지시 불이행이거든요. 그렇지만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라는 해병대 정신에 부합하는 거죠. 잘못된 지시는 따르지 않는 게 상식이죠”라고 했다. 김태성 해병대 사관 81기 동기회장(50)은 “윗사람의 잘못을 덮으라는 명령을 따르라는 건 해병대 정신이 아니다. 해병대 정신은 정의와 자유를 위한 정신이지, 맹목적 충성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 대령과는 해병대 사관 동기인 김태성 회장은 해병대 예비역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도록 가슴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지난해 8월11일 박정훈 대령이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할 때 동행해 우산을 받쳐준 것을 시작으로 이 일에 발을 들였다. 이후 동기들과 함께 성명서를 내고,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박정훈 대령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받기 위해 군사법정에 출석할 때는 동기들과 함께 찾아가 해병대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불렀고, 지난해 11월에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박2일간 50km를 행군했다. 박 대령과는 별 친분도 없었다. 1996년 3개월간 훈련을 같이 받은게 인연의 전부다. 그 스스로 말하듯 처음엔 단순히 “오지랖” 때문이었다. 그러나 속속 밝혀지는 사실관계는 박 대령이 잘못한게 없다는 확신을 줬다. 박 대령 휘하의 중앙수사대장(중령), 1광역수사대장(중령), 수사지도관(준위) 등은 모두 군검찰 조사에서 ‘임성근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외압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김태성 회장은 “잘못되면 군생활이 끝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증언을 했다. 자기 목을 건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다. 여론조사에서 이 사건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3%가 나왔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이 상식선을 넘어서 있기에 국민들이 화가 난 것이다”라고 했다. 전국연대에서 각종 행사의 물품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905기 안신현 해병(44)은 21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기 전에 채 상병 사건에 대한 특검법이 통과되길 원한다. 군 장병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 회사일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전국연대 집행부 회의를 이어가야 하는 그로서는 “얼른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도 있다. 그는 “해병대의 명예가 무너져 가는 게 싫어 나서기도 했지만, 제 자식이 가야하는 군대일 수 있다는 생각도 컸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선 안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태성 회장은 장기전을 준비 중이다. 오랫동안 문제가 풀리지 않더라도 시민들이 잊지 않도록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예정이다. 올해에는 해병대 2사단이 있는 김포 애기봉에서 출발해 대전 현충원과 예천 사고 지점을 거쳐 포항까지 가는 행군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에 1박2일 행군을 진행한다면, 약 2년만에 포항에 닿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예비역 해병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의 폭도 넓힐 계획이다. 그는 “해병대의 모토는 ‘안 되면 될 때까지’다. 전시에 총알이 빗발치는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해병대는 무모한 도전이 그 근간에 깔려 있다. 이 사건이 올바르게 끝날 때까지 행군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동기들에게 연신 미안해하는 박정훈 대령에게 김태성 회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다소 오글거리고 촌스러울 수 있지만, 예비역 해병들을 움직인 것은 이런 마음일 수도 있다. “너만 해병이냐, 나도 해병이다.”
- 특집
- [시사 2판4판]박 대령 항명 수사의 ‘뒷배’는…(2023. 09. 08 11:23)
- 2023. 09. 08 11:23 정치
- 시사 2판4판
- [취재 후]박 대령의 말이 사실로 밝혀진다면(2023. 09. 01 10:55)
- 2023. 09. 01 10:55 정치
- 정부를 상대로 싸운다는 건 힘겨운 일이다. 조직은 거대하고 그 힘은 막강하다. 사건을 만들 수도, 지울 수도 있을 만큼. “집단 린치에 가까운”(군인권센터) 조치로 상대를 옥죄며, ‘진실’이라는 창과 방패도 무력화할 수 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최근 해병대원의 사망 원인을 조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국방부를 상대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박 대령은 조사 결과를 축소하라는 취지의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방부는 전면 부인한다. 국방부 검찰단은 외려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수사 중이다. 지난 8월 30일에는 박 대령의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외압과 항명 사이에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이 존재한다. 진실을 가릴 수 있는 핵심 인물이다. 박 대령은 “김 사령관과 함께 국방부의 외압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했다”는 입장이다. 박 대령은 당시 상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 대통령실이 개입한 구체적인 정황도 김 사령관이 언급했다고 박 대령은 주장한다. 그러나 김 사령관은 이를 부인하며 국방부 쪽에 서 있는 모습이다. 박 대령과 국방부, 한쪽은 완벽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핵심적인 사실관계를 두고 양쪽이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접점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박 대령이 주장하는 사흘간의 긴박했던 ‘서사’를 단순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무리라는 평가가 많다. 개연성 등 짜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심증의 영역에서도 한 가지 짚을 점이 있다. 박 대령이 이처럼 대통령실까지 연루된 ‘거대한 거짓’을 지어냄으로써 어떤 이득을 보려는 것일까. 그럴 이유가 있을까. 박 대령은 지난 8월 11일 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 항명 혐의를 부인하며 육군사관학교에 재직 중인 자기 아들 얘기도 꺼냈다. 본인의 결백에 아들의 명예까지 건 셈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박 대령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국방부는 잃을 게 많다. 국방부를 넘어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다. 이 점만은 분명하다.
- 취재 후
- [주목! 이 사람]사회공포증 자조모임 이끄는 심리상담가 박대령씨…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일깨워(2015. 04. 14 11:28)
- 2015. 04. 14 11:28 사회
- 세월호 법정기록을 읽었다. 4월 16일 오전, 배 안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슬로비디오처럼 그려진다. 아비규환의 지옥도도 잠시. 너무나 평온해서 슬픈 조용한 바닷속. 그리고 현실의 거리.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돌아가는 일상. 지난 1년간 문득문득 떠오르는 울컥거림이다. 17살 다윤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했던 7살 혁규는. 기자뿐 아니다. 세월호 사건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온 국민의 가슴에 남은 ‘트라우마’다. “심리치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누군가 함께 있어준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같이 아파하고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심리상담사 박대령씨(39)의 말이다. 그는 광화문에서 세월호 천막을 지켜온 사람들이 “일종의 ‘확대된 심리상담’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고립감과 소외감입니다. 같이 공감하고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는 국민들이 그나마 있었다는 것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큰 도움이었을 것입니다. 국민들도 그런 ‘연대’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 것입니다. 결코 정치적인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인간애로 손을 잡는 것이니 그 과정은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씨는 2007년부터 사회공포증, 회피성 성격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자조모임을 이끌어 왔다. 모임의 이름은 . 다음에 모임의 공식 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자조모임이라는 것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자발적 모임을 말한다. 영화 의 주인공 한정석이 참여하고 있던 강박증 모임을 생각하면 된다. 사회공포증을 겪고 있는 사람의 범위는 넓다. 흔히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아예 집밖을 나오지 않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가벼운 사회공포증을 겪는 사람도 있다. 박씨 자신도 남들 앞에 서면 덜덜 떠는 가벼운 사회공포증을 겪고 난 다음 자기 스스로를 구제하고자 모임도 만들고 박사논문도 썼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의 연대’가 자조모임의 핵심이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주변과 상호작용이 되지 않으면 고립되고 마침내 시들고 만다. “자조모임이 갖고 있는 치유 도구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모임에 나와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사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면 다 멀쩡해 보이거든요. 자신만 이상한 것 같아 미치도록 힘든 겁니다. 그러다 모임에 나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털어놓게 되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힘들어 하는구나’라고 깨닫는 겁니다. 전까지 나는 정신병자야, 못난 사람이야,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이야 하고 자학하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가 되는 것이죠.” 박씨가 요즘 고민하는 것은 건강한 생태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에 기고했던 인도의 생태공동체 사다나 포레스트에서 체득한 삶의 원리이기도 하다. “사다나 포레스트에서는 공짜로 주고 배우는 것이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즉석으로 워크숍이 일과 후에 만들어져요. 그렇게 요가도 배우고, 아프리카 댄스도 배우고, 마사지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또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요. 그런 공동체를 우리나라에서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10년 넘게 걸리더라도요.”
- 주목!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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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헬기 사고 희생자 고(故) 박형진 대령의 미망인 신난수씨
- 2008. 04. 11 화제
- 지난 3일 네팔 산악 지대에서 추락한 유엔 네팔임무단(UNMIN) 헬기(MI-8) 탑승자 박형진 대령의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반드시 생존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온 국민의 바람은 이제 슬픔이 되어 울먹이고 있다. 사고가 난 지 보름째, 그가 남긴 빈자리는 너무 크다.2003년도 미국 군수교관시절 찍었던 가족사진 믿을 수 없는 소식 “아직 믿겨지지가 않아요. 그냥 저와는 상관없는 무슨 행사에 참석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에요. 남편이 평소에 몸이 아팠다든지 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으면 이렇게 힘들진 않을 텐데…. DNA 검사할 때 병원에 갔던 흔적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검사하기가 쉽대요. 그런데 병원 한번 간 적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건강하셨거든요.” 이번 고(故) 박형진 대령(50, 육사 38기)의 파견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그루지야에서 1년 반 동안 정전감시단 근무를 마치고 2006년 9월 귀국한 박 대령은 곧바로 유엔 네팔임무단 파견 제의를 받았다. 보통 해외 근무를 마치면 1년 동안 국내 근무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네팔로 처음 임무단을 파견하는 유엔은 경력자를 요청해왔다. 그루지야에서 돌아온 지 6개월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보내던 오붓한 시간은 다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가지 않겠다고 하면 안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루지야에서도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온지라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저를 설득하더라구요. 나는 이미 당신하고 결혼하기 전에 국가와 결혼했다고, 자신은 국가가 부르면 모든 사리사욕을 버리고 언제든지 가야 할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 뜻을 꺾을 수가 없었어요.”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혹은 개인적인 일로 가겠다고 했으면 천 번 만 번 말렸을 거다. 하지만 신난수(48)씨는 남편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붙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떠난 남편은 귀국을 4개월 앞두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며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이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2003년도에 남편이 군수 교관이 되면서 가족 모두 미국에 갔어요. 아이들은 그곳에서 대학을 다녔죠. 저와 남편은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에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거든요. 아이들은 계속 공부를 해야 하니까. 특히 딸아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오자마자 아빠가 그루지야로 파견이 됐고, 그루지야에 다녀오자마자 다시 네팔로 파견돼서 아빠와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너무나 할 말이 많았는데 이제 다시는 할 수 없게 됐다며 가슴 아파해요.” 여러 해외 근무로 가족과 떨어져 있던 시간이 많았지만 고(故) 박형진 대령은 표현을 잘하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멀리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고, 혹여 자신의 빈자리에 아이들이 외롭진 않을까 항상 메일과 전화로 세심하게 챙겼다. “우리나라가 더 잘 살기 위해 아빠가 멀리 와 있는 거라며 이해해달라고. 누군가의 희생은 필요한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항상 아이들을 다독였어요. 아이들도 그런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구요. 다정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라 사랑 고(故) 박형진 대령은 어딜 가든 나라 사랑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군수 교관으로 미국에 있을 때는 이웃집 낙엽 청소까지 도맡아 할 정도였다. 그에게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됐다. “군수 교관으로 미국에 있을 때 각 나라에서 온 대표들이 한동네에 모여 살았어요. 옆집에 프랑스, 영국 대표가 살았는데, 남편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옆집 청소까지 다 하는 거예요. 버지니아는 가을에 낙엽이 많거든요.” 그렇게 온 동네 청소를 다 하다 보니 아침마다 마당에 낙엽 모은 봉지만 20~30개였다.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낙엽 주우러 나왔다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이미 다 청소가 돼 있으니까. 한국 사람이 이렇게 부지런하고 성실한지 처음 알았다고 하더라구요.” 남편은 그렇게 항상 사소한 것, 조그만 일에 좋은 인상을 주었을 때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도 언제나 함께였다. 미국에 군수 교관으로 있을 때에는 각 나라에서 온 장교들 중 우수 장교로 뽑히기도 했다.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이었다. 사령관이 남편에게 한국과 미국 군수 외교에 큰 힘이 됐다며 보답하는 의미에서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개인적인 부탁을 할 줄 알았던 남편은 사령관의 한국 군사학교 방문을 요청했다. “제대하고 나면 뭐를 해달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한국 군사학교를 방문해달라고 요청하니까 사령관이 깜짝 놀란 거예요. 직접 오셔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평가해달라고, 그래서 서로 더 좋은 군수물자를 교환하는 데 도와주셔야 할 부분들을 눈으로 확인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결국 사령관은 약속을 지켜 한국을 방문했고 그 일로 인해 우리나라의 군수 교환에 가속도가 붙었다. 남편은 사령관이 방문했을 때 계획 장교로 통역과 번역을 도맡아 했다. 표창장도 받았다. 그때가 2004년이었다. 조그만 일부터 큰일까지 고(故) 박형진 대령은 언제나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군수에 대해 전문가였잖아요. 물자나 지원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강대국에 비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절감한 것 같아요. 자신이 열심히 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좀 더 앞서 갈 수 있지 않을까, 시간만 나면 영어 공부를 하셨어요. 특히 군사용어는 전문용어잖아요. 말 한마디에 엄청난 물자가 왔다 갔다 하니까 잠잘 시간도 아껴가며 철저하게 공부하셨어요.”엄마, 나 이제 아빠가 없는 거야? 자상했던 남편은 네팔에 근무하면서도 수시로 메일을 보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이 사는 막사, 네팔의 시장, 사람들까지 메일을 통해 그곳의 모습을 전해왔다. 멀리 떨어져 불안해할 가족들을 위한 배려였다. 때문에 신난수씨는 네팔에 가지 않아도 남편이 오늘은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곁에 있는 사람처럼 알 수 있었다. “지난 남편 생일에 전화가 왔더라구요.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저는 미역국 못 끓여줘서 미안하다고 했죠.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구요. 생일날 혼자, 허름한 막사에서 지낼 남편을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죠. 그런데 남편이 자기네 집에 누가 방문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하고 같이 있었대요. 제가 너무 반가워서 ‘누군데?’라고 물으니 도마뱀이라는 거예요. 네팔은 유엔이 처음 파견된 곳이라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막사 천막에서 먹고 자는데, 도마뱀이랑 같이 생일을 보냈다는 얘기를 듣고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네팔에 가지 않고 한국 연합사에 근무했으면 집에서 아이들과 편하게 있었을 텐데,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생일 밥 먹으며 오붓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저렇게 고생을 하는구나 싶어 그때도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며칠 후 남편으로부터 도마뱀 사진이 담긴 메일이 도착했다. ‘도마뱀 시리즈.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내일 캠톤먼트 부대를 위해 준비하는 중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서…도마뱀은 이제 일상적으로 방 혹은 거실에서 같이 지내고 있는데 내 여행 가방 안에서 도마뱀 가족이 단체로 발견됐습니다. 네 마리 새끼 중 한 마리는 죽어 있었고 세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어서. 위의 두 사진은 새끼들 사진이고 아래는 부모.’ 자신의 막사에 들어온 도마뱀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남편의 모습에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 남편이 보내온 메일을 보여주며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곳에서 도마뱀이랑 살면서 너무너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게 남편이 있던 곳이에요. 이렇게 허름한 막사에서 흙바닥에서 밥 해먹으며 지냈어요. 한번은 전화가 왔는데 설사를 했대요. 물이 안 맞아서.” 하지만 그런 열악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고(故) 박형진 대령은 불평 한번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근검절약하며 아이들에게도 무엇이든 아껴 쓰라고 당부했다. “어쩌다 한국에 오면 전에는 외식도 나가고 그랬는데, 거기서는 한 끼 먹는 게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 밥 남기지 말라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하라고 항상 아이들에게 당부했어요.” 아버지의 당부대로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아이들은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수업이 끝나면 학교 식당에서 일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옷이나 운동화도 항상 제일 싼 것으로 살 정도로 아버지 말씀을 잘 따랐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언제나 큰 산이 되어 가족을 지켜주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아이들에게 크나큰 상처로 남았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아빠가 길러줬어요. 그런 아빠가 이제 없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엊그제는 딸아이가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엄마, 나 이제 아빠가 없는 거야?’하고 묻더라구요. 그렇게 떨어져 있어도 한 번도 아빠가 안 계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딸아이도 이제 실감을 하나 봐요. 한참을 울었어요.”남편의 선물 신난수씨가 남편을 만난 것은 남편이 생도 3학년 때였다. 육군사관학교 축제 때 파트너가 되어 만남을 이어오다 남편이 졸업하던 날 학교 잔디밭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남편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자를 위해 기도를 했대요. 그 배우자가 저라는 거예요. 만약에 자기가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분명히 이혼할 거라고, 당신이 바로 하느님이 보내준 사람이라고 결혼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때부터였다.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 것이. 그렇게 두 사람은 졸업하는 날 약혼을 하고 7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군인의 아내로 스무 번이 넘게 이사를 다니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남편과 결혼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이제까지 결혼 생활하면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외국에 있어도 항상 전화로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꽃다발이나 목걸이, 향수 같이 작은 선물이라도 꼭 챙겼어요.” 남편에게 받은 선물 중에 몇 년 전에 받은 편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군인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역할에 충실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6장의 편지지에 빽빽하게 담겨 있었다. “비싼 선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감동이 오더라구요. 그거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전 항상 그랬어요.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만날 거라고.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구요.” 남편이 나라를 사랑했던 만큼 가정도 사랑했기에 나라 일에 바쁠 때에도 그의 빈자리가 크지 않았다. 함께 있지 않아도 그 마음이 충분히 와 닿을 정도로 자상하고, 또 사랑을 표현하던 남편이었다. 남편의 부재는 아직까지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슬픔이다. “어제 사망신고 하고 집에 왔는데 이제 정말 남편이 없구나, 실감이 나는 거예요. 며칠 동안 전화가 없으니까, 그게 제일 커요. 매일은 아니었지만 남편과 통화하는 시간대가 있었거든요. 네팔 카트만두는 하루에 12시간이 정전이에요. 국제 전화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서 통화를 했어요. 그 시간대가 되면 저도 다른 일을 하다가 전화를 기다리곤 했죠. 항상 자상하게 전화해주고 메일 보내주고 그랬는데 이제 전화도 없고 메일도 없으니까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저께는 집에 있는데 남편과 항상 통화하던 시간에 전화가 온 거예요. 전 그 사람이 죽었다는 걸 순간 잊어버리고, 그 사람 전화인 줄 알고 안방에서 뛰어나와 ‘여보, 당신이야?’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더라구요.” 혹시나 하고 메일도 확인해봤지만 더 이상 남편에게 온 새로운 메일은 없었다. 항상 곁에 있던 남편의 소식이 이젠 더 이상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슬픔이 밀려왔다. 지금쯤 하늘에 있을 고(故) 박형진 대령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전 매일 남편하고 얘기해요. 워낙 둘이 얘기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아무 일도 아닌 이야기로 밤새도록 이야기하곤 했어요.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기도하며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은 누구를 만나는지 다 얘기했어요. 그리고 부탁했어요.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천국에서 우리를 잘 지켜봐달라고.” 신난수씨의 미소는 굵은 눈물이 되어 손등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제 남편 대신 국민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남편이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보면서 얼마나 나라가 소중한지 느꼈습니다. 남편은 이제 없지만 우리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군인이 무엇인지, 충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평화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듯이 남편의 죽음도 많을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어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이뤄가며 나라를 위한 마음을 조금씩만 가져주셨으면 해요. 그게 바로 남편이 바라던 바였으니까요.” 고(故) 박형진 대령은 훌륭한 군인이자 자상한 남편, 다정한 아버지였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만, 또다시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남긴 많은 것들로 인해 우리는 또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눈물을 멈추기 전에, 다시 힘을 내기 전에 한 번 더, 고(故) 박형진 대령의 명복을 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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