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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47 건 검색)

민변 “독선과 오만 담화문···내란수괴 윤석열 직무정지 절실”
민변 “독선과 오만 담화문···내란수괴 윤석열 직무정지 절실”
2024. 12. 12 14:51사회
... 담화는 탄핵이 될 때까지 자진 퇴진하지 않고 내란범으로서 대통령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독선과 오만에서 나온 것이고 민주주의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들을 다시 한 번 분노케 하는 것”이라고...
탄핵, 국내외 영향
“오만과 독선이 민주·경제·평화 말살”···전북서 ‘윤 정권 퇴진’ 목청
“오만과 독선이 민주·경제·평화 말살”···전북서 ‘윤 정권 퇴진’ 목청
2024. 11. 18 14:34사회
... 사거리에서 대규모 전북도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들은 “윤석열 정권의 오만과 독선, 무지와 폭력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국민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고 있다”며 “나라의 평화와 국민의...
퇴진전북윤석열
소신과 독선 사이…윤 대통령 지지율 다시 급락
소신과 독선 사이…윤 대통령 지지율 다시 급락
2024. 09. 01 13:01정치
...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각 분야에서 나타난 국정운영 불변 기조가 소신보다는 독선에 가까운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의정 갈등 해법을 두고 대통령실과 여당...
“불통, 독선, 오기”…야권, 윤 대통령 국정브리핑 맹비난
“불통, 독선, 오기”…야권, 윤 대통령 국정브리핑 맹비난
2024. 08. 29 15:01정치
...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29일 윤석열 대통령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 대해 “불통과 독선, 오기만 재확인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스포츠경향(총 8 건 검색)

허정무 “23일 재선거 결정은 독선과 오만”···후보자간 협의 없이 권한없는 선거운영위 날짜 결정에 반발
허정무 “23일 재선거 결정은 독선과 오만”···후보자간 협의 없이 권한없는 선거운영위 날짜 결정에 반발
2025. 01. 10 10:19 축구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허정무 후보가 3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준비한 발표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 선거운영위원회가 법원 가처분 인용 결정으로 미뤄진 회장 선거를 23일 치르기로 한 데 대해 허정무 후보가 비판에 나섰다. 선거운영위원회가 선거일을 결정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며 반발했다. 허정무 후보는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축구협회 ‘회장선거관리규정’이 정한 선거운영위원회의 업무에 ‘선거일’ 결정 권한은 없다”면서 “23일로 선거 일정을 결정한 것은 운영위와 후보자들 간 협의도 정면으로 무시한 오만과 독선”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정몽규 회장이 축구협회를 어떻게 운영해왔는지 적나라게 보여준다”라면서 “정 후보가 회장이 되면 안되는지 보여주는 역설적 증거”라고 소리를 높였다. 앞서 대한축구협회 선거운영위는 9일 보도자료를 내고 “제55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선거는 오는 23일 실시하기로 하였으며, 선거인 명부 작성을 위한 선거인단 재추첨을 12일 실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축구협회는 8일 회장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선거를 하루 앞두고 허 후보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인용 결정이 나면서 선거가 연기됐다. 법원은 가처분 인용 결정을 하면서 후보자들이 선거인단 추첨이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확인할 수 없었던 점, 추첨에 앞서 대상자들로부터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지 않은 점, 그리고 이 때문에 21명이 선거인단에서 제외된 점 등이 선거의 공정을 현저히 침해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허정무 후보가 3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축구협회 선거운영위는 추첨 업무 전문 외부 업체가 진행하는 추첨을 각 후보자 대리인이 참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추첨을 통해 ‘3배수’로 예비 명단을 추려 이들을 대상으로 개인정보 동의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허정무 후보는 이 같은 협회 발표에 독단적인 날짜 발표는 후보자들 간의 협의사항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날 권한도 없는 선거운영위원회가 선거 날짜를 다시 잡은 게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 후보는 “이렇게 급하게 선거를 치르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면서 “1월 말 이전에 선거를 마무리해 정몽규 후보가 (문체부의 특정감사에 대한) 중징계를 회피하려는 꼼수”라고 밝혔다.
한국PD연합회, ‘그알’ 김성재편 방송금지 결정에 “사법부 오만과 독선 드러나…제작진에 위로”
한국PD연합회, ‘그알’ 김성재편 방송금지 결정에 “사법부 오만과 독선 드러나…제작진에 위로”
2019. 12. 23 09:20 연예
‘그것이알고싶다’ 김성재편이 재판부의 판단으로 방송 금지 처분이 내려지자 PD연합체가 비판에 나섰다. SBS 방송 화면PD 연합단체인 한국PD연합회가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고 김성재 편의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재판부를 “제 식구 감싸기”라며 재차 비판했다. 한국PD연합회는 23일 성명을 내고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의 합당한 노력에 똑같은 판사가 똑같은 판결과 응답한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며 “재판부는 안일하게 방송금지가처분 결정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김성재 사망사건의 재심 가능성을 검토해야 정의로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공공 관심사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했고 재판부와 제작진이 상반된 입장을 밝히는 상황에서 정작 시청자들은 판단의 기회를 잃은 채 소외됐다”며 “재판부의 판단대로라면 공공 관심이 집중된 미제사건을 취재해 방송하는 것을 시청자가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한 단체는 “재판부는 SBS와 제작진을 부당하게 모욕했다.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표현은 제작진에게 깊은 좌절과 모멸감을 안겼다”며 “궁예의 독심술처럼 제작진의 ‘진정성’을 자의적으로 규정한 것은 사법부의 오만과 독선을 표현한 경솔한 표현으로 제작진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성재 사망사건은 △초동수사가 부실했고 △전관예우 의혹이 파다했다”며 “‘그것이 알고싶다’가 방송될 경우 사법부의 떳떳지 못한 구석이 다시 거론되는 것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뿐 아니라 “추가 보강 취재에 이어 SBS의 자체 심의 기구도 엄연히 활동하고 있다. 자체 검증 시스템을 무시한 채 똑같은 판사가 똑같은 이유로 방송금지를 되풀이한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재판부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못하고 진실 은폐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단체는 “사법부의 권위는 이성과 양심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회적 신뢰를 획득해야만 비로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며 “재판부도 사람이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수 있고 그 오류 때문에 정의가 실종됐다면 문제제기를 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언론의 당연한 임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배정훈PD를 비롯해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진실을 향한 PD들의 노력이 정의로운 사법부의 판단을 만나 훌륭한 결실이 맺는 날이 오리라는 신념을 간직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 반정우 부장판사는 앞서 고 김성재의 전 연인 ㄱ씨가 제기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 일부를 20일 인용했다. 이에 따라 21일 방송이 예정됐던 ‘그것이 알고싶다’ 김성재 사망사건 편은 방송금지가 확정됐다. 고 김성재 의문의 죽음 뒤에 ㄱ씨가 있다고 보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해당 편은 지난 8월 3일에도 방송을 앞두고 ㄱ씨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방영이 불발됐다. 당시 결정을 내린 판사와 이번 가처분을 인용한 판사는 같은 판사다.
퓰리처상 두 번 수상한 바바라 터크먼, ‘독선과 아집의 역사’ 출간…아집과 독선으로 권력욕 불태우다 무덤 판 통치 사례 생생히 전달
퓰리처상 두 번 수상한 바바라 터크먼, ‘독선과 아집의 역사’ 출간…아집과 독선으로 권력욕 불태우다 무덤 판 통치 사례 생생히 전달
2019. 09. 30 21:13 생활
아집과 독선으로 지나친 권력욕을 불태우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만 숱한 통치 사례를 세계 역사의 주요 사건을 토대로 생생히 보여주는 책 ‘독선과 아집의 역사’(자작나무)가 출간됐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바바라 터크먼은 ‘독선과 아집의 역사’를 통해 권력에 눈먼 통치자들이 한 나라를 어떻게 망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파헤쳤다. 바바라 터크먼은 첫 번째는 1962년에 발행된 제 1차 세계대전 연구서인‘8월의 총성’(The Guns of August)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후 1971년에 발행된 제 2차 세계대전 중 중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스틸웰 장군의 이야기를 다룬 ‘Stillwell and the American Experience in China’로 두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독선과 아집의 역사‘독선과 아집의 역사’는 기원전 930년경 솔로몬왕의 아들로 태어나 이스라엘 민족을 갈갈이 찢은 레호보암을 비롯해 역사의 시계를 멈추려 했던 프랑스 샤를 10세 등 권력에 눈이 먼 오만한 통치자들을 살피고 이같이 이어온 3000년 아집의 역사를 기술했다. 이 외에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유괴한 것이 발단이 된 트로이 전쟁에서 국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구한 트로 이 목마사건, 개혁보다 타락을 선택한 르네상스 시대 교황들, 지나친 독선으로 미국을 잃어버린 대영제국, 대통령이 무려 다섯 번이 바뀔 동안 베트남에서 악전고투를 계속했던 미국 정부의 독선까지 정치인들의 뿌리 깊은 독선의 역사를 자세히 살폈다.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우리의 눈길을 분명하게 잡아끄는 현상이 있다. 각국 정부가 국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인류는 모든 영역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통치술만은 다른 영역에 비해 별다른 발전 없이 정체된 느낌을 준다. ‘독선과 아집의 역사’는 지혜란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통치의 영역에서는 그러한 지혜와 상식과 유용한 정보 따위가 정당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꺾여버리는 사례를 생생히 전달한다. 1912년 1월 30일 뉴욕에서 태어난 바바라는 아버지는 은행가이자 출판업자였다. 자선가로 미국유대인협회의 회장이기도 했고 그녀의 할머니는 주 터키 미국대사를 지냈으며 숙부는 루스벨트 대통령 밑에서 재무상을 지냈던 집안의 딸이다. 그녀는 1933년 월든 학교(Walden School)를 졸업한 다음 래드클리프 대학(Radcliffe College)을 졸업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The Nation 잡지에서 일했고 스페인 내전을 보도하기 위해 마드리드에 가기도 했으며 다른 잡지를 위해 여러 다른 사건들을 보도하기도 했다. 1939년 결혼해서 세 딸을 두었다. 터크먼의 저서로는 ‘The Lost British Policy(사라진 영국 정책: 1700년부터 영국과 스페인)’(1938), 영국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다룬 ‘Bible and the Sword’(1956), 1917년 미국의 참전으로 세계의 역사를 바꾸게 만든 짐머만 외상의 전보를 다룬 ‘The Zim mermann Telegram(짐머만의 전보)’(1958), 제 1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그 배경을 연구한 ‘The Guns of August(8월의 총성)’(1962), 제 1차 세계대전 발생 25년 전을 그린 ‘The Proud Tower(자만의 탑: 1890-1914 전쟁 전의 세계상)’(1966), 스틸웰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Stillwell and the American Experience in China, 1911-1945(스틸웰과 미국의 중국 경험, 1911-45)’(1971), 중국 여행기인 ‘Notes From China’(1972), 14세기를 그린 ‘A Distant Mirror(희미한 거울: 비운의 14세기)’(1978), 짧은 이야기 모음집인 ‘Practicing History’(1981), 역사적인 오류를 그린 ‘The March of Folly: From Troy to Vietnam(바보 행진: 트로이에서 베트남까지)’(1984), 미국혁명을 다룬 ‘The First Salute(최초의 경례)’(1988) 등 11권에 이른다. 터크먼은 “작가의 의무는 독자의 관심을 붙잡는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페이지를 넘기면서 끝까지 책을 읽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1988년 2월 6일에 코네티컷에서 세상을 떠난 그녀는 역사를 즐거운 읽을거리로 만들어냈다.
화제의 책|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야 진리로 나아간다
화제의 책|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야 진리로 나아간다
2019. 08. 18 14:19 생활
박동환(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은 한국의 주변자적 체험을 철학적으로 이론화하는 데서 출발해 인간의 보편적 존재양식과 생명의 역사까지 포괄하는 존재론으로 나아간 철학자다. 연세대 재직 시절 그의 강의는 학생들의 필수수강 과목으로 꼽힐 만큼 깊은 통찰과 충격을 주는 내용으로 이름이 높았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40여 년간 그는 타자와 주변자의 특성을 대표하는 ‘우연’ ‘차이’ ‘다양성’ 등의 개념에 주목함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보편적 논리에 도달하는 사유의 길을 보여줬고, 마침내 ‘x의 존재론’이라는 독특한 철학적 입장을 완성했다. ‘x의 존재론’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의 존재양식을 동일성 또는 통일성으로 환원하는 서구철학과 중국철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우연과 부정의 사태를 동일성만큼이나 존재의 필수적 계기로 이해하는 철학이다. 2017년 출간된 ‘x의 존재론’이 이 사유를 종합한 결정판이라면 ‘진리의 패권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박동환 지음 / 사월의책)는 그것을 역사철학·개체존재론·신학·사회학 분야에 적용한 각론이라 할 수 있다. 동서양 6000년의 철학이 자의적으로 세운 인간중심주의 철학의 한계를 넘어 연속성과 파격으로 이뤄진 존재세계의 실상에 접근하는 철학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철학자가 책상 위에서 철학사의 오랜 문제들과 씨름해 얻은 이론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역사의 주변부에서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한 철학자가 시대와 그 자신의 실존적 삶에 대해 철학이 무엇을 답할 수 있는지 고통스럽게 질문해 온 과정을 담고 있다. 핵심은 ‘허구적인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야 진리의 차원에 한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말미에서 역사철학, 존재론, 신학, 사회학과 유사한 주제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책들을 뽑아 일종의 참고도서로 소개한다. 인간과 자연계가 보여주는 존재의 논리에 대해 답변을 제시한 전문가들을 향한 저자 나름의 서평이자 비판이다.

주간경향(총 2 건 검색)

[신간]독선사회外
[신간]독선사회外(2015. 08. 10 16:33)
2015. 08. 10 16:33 문화/과학
독선사회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1만5000원 지은이는 한국 사회를 독선사회라고 말한다. 자신의 똑똑함을 과신해 다른 사람의 견해는 무시하고 자신만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인간의 이성은 감정적·습관적 판단에 취약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확신에 대한 한계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끈질긴 삶터 달동네 김은형 지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다양한 관점에서 인천의 역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인천은 ‘근대의 관문’으로 도시가 형성됐고, 이후 성장과정에서 다양한 문화가 유입돼 독특한 지역문화를 형성하게 됐다.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하지현 지음·푸른숲·1만3000원 지은이는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들이 ‘엄청 특이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보지 말고 ‘평범한 불행이 내 인생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이덕일 지음·만권당·1만8000원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북아 역사지도에 신라와 백제가 빠져 있었던 사건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고조선사와 독도 영유권 주장에 회의적이었던 교수들이 한민족사의 시간과 공간을 폄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도를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신간
[신동호가 만난 사람] “45% 득표율은 정권 독선에 대한 견제”
[신동호가 만난 사람] “45% 득표율은 정권 독선에 대한 견제”(2010. 06. 23 15:21)
2010. 06. 23 15:21 사회
ㆍ부산에서 6번째 연속 낙선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축하합니다.” 선거에서 진 사람한테 이렇게 첫 인사를 건넸다. 뺨 맞을 짓이다. 단 한 표 차이라도 승자와 패자의 처지가 천당과 지옥마냥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 선거판이다. 그 지옥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선거에서 져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기 어렵다. 말을 뱉고 난 뒤에야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난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뜻밖에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아귀에 힘이 느껴졌다. “이거 원, 선거에서 떨어지고 축하를 받고 다니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순간적으로 안도감이 스쳤다. 낙선을 축하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뺨이 무사할 수 있다. 6·2 지방선거에 부산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김 전 장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적어도 20년에 걸친 정치사와 그의 개인사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1990년 3당 합당 후 부산에서 여섯 번 출마해 여섯 번 모두 낙선했다. 20년에 걸쳐 연속으로 여섯 번 낙선한 사연이 간단치 않다. 내친 김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낙선자 인터뷰만큼 김 빠지는 게 있을까. 독자도 별 관심이 없겠지만 당사자도 흥이 나지 않을 터다. 이런 상식을 뒤집은 게 이번 부산시장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졌지만 이겼다’라거나 ‘작은 패배, 큰 승리’와 같은 모순 어법이 어색하지 않다. 인터뷰는 이틀 뒤인 6월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로비라운지에서 이뤄졌다. 이번 선거를 치른 소감이 어떻습니까. “20년을 지역주의와 싸우다가 이번에 또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여느 선거와 달리 떨어지고도 축하를 받았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고이는데 입으로는 웃어야 되는 제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어떤 네티즌은 떨어지고 나서 뭐가 좋다고 웃고 다니느냐고 글을 올렸더라고요. 자기는 화가 나서 죽겠는데 말이죠. 떨어졌지만 축하하는 것도, 떨어져서 화가 나는 것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 전 장관이 축하를 받는 주된 이유는 이번 선거에서 얻은 44.6%의 득표율에 있다. 한나라당의 안방인 부산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잘해야 30%대였다. 1995년 6·27 지방선거에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한 득표율이 36.7%였다. 40%는 부산 선거에서 민주당이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견고한 지역주의의 벽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여 주었어요. 선거 전보다 후의 분위기가 오히려 더 좋습니다. 저를 찍은 사람들은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한나라당을 찍은 사람들도 ‘아, 이번에 당신 찍어 줬으면 됐을 건데’라며 아쉬워 하더라고요. 저를 지지하면서도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더 애석해 하고요. 2012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 때는 부산의 정치 지형이 많이 바뀌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40%의 벽을 훌쩍 넘어 40%대 중반의 득표율을 올린 데에는 어떤 표심이 작용했다고 봅니까. “45% 가까운 득표율은 제가 좋아서 찍은 표도 있겠지만 더 많은 부분이 이명박 정권의 독주와 독선에 대한 견제 심리와 허남식 시장의 6년 동안 실정에 대해 변화를 바라는 심리가 합쳐진 표라고 봐요. 그리고 제가 시민네트워크와 야5당(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의 단일후보가 된 게 컸습니다.” 45% 정도 득표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습니까. “처음부터 떨어질 걸 알고 나갔는데 저도 사람인 이상 마지막에 욕심이 생기더군요. 선거 당일에는 40%는 넘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출구조사 결과 발표 전에 43%라는 걸 알았어요. 방송 카메라가 와서 저는 환하게 웃고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를 하라는 거예요. 하는 수 없이 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진 나온 걸 보니까 모양은 웃는 건데 찡그린 상이더라고요.”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6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나는 김정길은 좋아하는데 민주당은 싫다’고 하면서 이번에 한나라당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안 찍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데 투표장에 가서 혹시 마음이 변할지 모르니까 투표용지를 받으면 당을 손으로 가리고 찍겠다고 그래요. 그 정도로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요.”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처럼 무소속으로 출마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당선을 목적으로 하면 그래야 되겠죠. 그동안에도 당선에 비중을 두었으면 서울로 가지 왜 부산에서 계속 국회의원에 출마했겠어요. DJ(김대중 전 대통령) 때 민주당 하면 누가 표를 찍어 줍니까. 지역주의를 깬다는 명분으로 이제까지 민주당을 해 왔는데 시장이 되는 데 수월하다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건 정치적 명분이 없습니다.” 잘나가던 재선 국회의원이던 김 전 장관은 1990년 3당 합당 합류를 거부하면서 낙선의 가시밭길에 들어섰다. 1992년 14대 총선(부산 영도), 1993년 4·23 보선(부산 사하), 1996년 15대 총선(부산 중·동구), 2000년 16대 총선(영도), 2004년 17대 총선(영도), 그리고 이번 6·2 지방선거까지. 수도권으로 지역구를 옮기거나 전국구(또는 비례대표)를 통해 배지를 달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부산을 고집했다.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요, 어김없이 추락할 운명의 시시포스의 바위를 굴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1993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지역구를 영도에서 사하로 옮겼잖습니까. 낙선할 게 뻔하고 가뜩이나 취약한 정치적 기반마저 잃는 길을 왜 선택했습니까.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고 두 달도 안 돼 실시된 보궐선거였어요. 대통령 인기가 97%던 때죠. 부산 동래와 사하, 경기 광명에 보궐선거가 있었는데 당시 이기택 총재가 독배나 다름없는 사하 출마를 권유하기에 얘기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광명에 공천하는 조건으로 제가 사하에 나가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 총재가 노 전 대통령은 광명에 공천하지 않고 저만 사하에 공천한 거예요. 언론에서는 제가 떨어질 걸 뻔히 알면서 십자가를 메고 나간다고 동정하는데 지역에서는 안 그래요. 국회의원 욕심에 지역구까지 옮겨서 나왔다고 손가락질을 해요. 그래서 허 참… 광명에 노 전 대통령이나 제가 나갔으면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그때 정계 진입을 못했을 겁니다.” 그 뒤에도 떨어지는 선거에만 계속 나갔잖습니까. 수도권 출마나 전국구도 가능했을 텐데요. “15대 총선 때는 다시 영도로 돌아가야 되는데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해 통합민주당을 깼잖아요. 김 전 대통령이 저보고 서울에 원하는 지역구나 비례대표(당시 전국구)를 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했어요. 전 고향 선배인 김영삼 전 대통령도 명분이 없다고 따라가지 않았는데 당을 깨는 것은 명분이 없다며 거절했어요. 그때 저와 함께 ‘꼬마민주당’에 남은 노 전 대통령이 지역구를 서울로 옮기고 싶어 했어요. 저는 영도로 돌아가야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의 지역구인 중·동구로 갔죠. 서울에 갈 명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죠. 노 전 대통령은 돌아가셨지만 저한테 세 가지 빚이 남아 있어요.(웃음)”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1990년 이후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걸었다. 3당 합당 거부, 꼬마민주당 잔류, 부산에서의 거듭된 낙선 등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살신성인의 걸음이었다. “1993년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간다며 저더러 도와 달라고 했어요. 저는 이기택계의 2인자인 데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김대중 후보 지원 연설을 했기 때문에 동교동계 지지도 받고 있었어요. 모든 후보가 저하고 제휴하기를 원했고, 언론에서도 제가 1등을 할 거라고 전망했죠. 4명씩 찍는 선거니까 저는 ‘노무현 의원도 고생을 했으니까 한 표 찍어 주소’라며 건방을 떨며 돌아다녔죠.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최고위원이 되고 저는 1등으로 떨어졌어요. 노 전 대통령이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에도 썼어요. 김정길의 낙선을 딛고 자기가 당선됐다고….” 두 번째 빚은 노 전 대통령이 1995년 6·27 지방선거에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할 때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이기택계 후보와 경선에서 그는 계보를 배신(?)하고 반란표를 규합해 노 전 대통령의 신승을 끌어냈다. 세 번째 빚은 노 전 대통령의 서울 종로 출마 명분을 위해 중·동구로 지역구를 옮긴 것이다. 김 전 장관은 그 다음 선거(16대)부터 원래의 지역구인 영도에서 출마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고향도 같고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적 지향도 같았지만 정치적 뜻을 크게 펼칠 기회는 갖지 못했다. 낙선의 상처가 치유될 만하면 또다시 그의 앞에 ‘독배’가 주어졌다. 그가 임명직을 지낸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행자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부다. 노무현 정부 때 맡은 대한체육회장은 선출직이다. 그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임기 9개월이 남은 대한체육회장을 사임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베이징대 동북아연구소에 머물렀다. 최근 정치와 거리를 둔 것처럼 보였는데 어떻게 해서 또 ‘독배’를 들게 됐습니까. “나오려고 해서 나온 게 아니죠. 국회의원 선거도 몇 년을 준비하는데 시·도지사 선거는 적어도 2년은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10여 년 정치적 공백도 있고요. 가족들과도 정치는 안 한다고 약속했어요.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자꾸 하라고 하니까….” 구체적으로 언제 이야기입니까. “사실 지난해 서울에 다니러 나왔는데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잖아요. 그날 저녁에 곧바로 봉하마을에 갔더니 사람들이 저보고 부산시장에 나와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남의 상가에 와서 선거 얘기를 하는 법이 어딨냐고 하니까 억울해서 복수하러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노 전 대통령과 제가 똑같이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같은 길을 걸었으니까 제가 나가야 되고 또 될 수도 있다는 거였어요.” 그게 씨앗이 돼 출마로 이어졌군요. “친노그룹, 부산시당, 나중에는 정세균 대표까지 와서 강권했어요. 또 떨어지는 선거를 하라고 하느냐고 했더니 명색이 수권 정당이 나라의 4분의 1인 영남에서 제대로 된 후보 하나 못 내서 되겠느냐는 거예요. 집사람은 선거를 하려면 이혼장에 도장 찍어 놓고 하라고 하는데 당인으로서 당이 저렇게 필요로 하는데 끝내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한 거죠. 그게 선거 두 달 전인 3월 30일의 일이었어요.” 그렇다면 준비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른 것이군요. “그것도 아니에요. 제가 출마 의사를 밝힌 뒤에 김민석 최고위원이 나오겠다는 거예요. 당이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40일을 끌었어요. 제가 경선을 받겠다고 해서 5월 9일 경선을 하고 13일 등록을 한 겁니다. 그 때문에 제가 출마하면 구청장에 나오겠다는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갔어요. 손발도 없이 공중전을 한 거죠.” 그런 상황에서 45% 가까이 득표한 데서 이번 선거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민주당을 불임정당이라고 하는데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중앙정부 공무원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해요. 집권이 가능하다는 거죠.” 6·2 지방선거는 지방자치를 위한 선거지만 차기 대권 주자의 등장 무대로서의 의미도 있다. 야권의 경우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와 더불어 비록 낙선했지만 선전한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 등이 이번 선거를 통해 잠재적 대권 후보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PK(부산·경남·울산) 지역의 정치 지형 변화가 다음 대선에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봅니까. “어차피 호남은 무너져도 70~80%가 (야권으로) 올 것입니다. PK는 전에는 30% 정도면 됐는데 저쪽(호남)도 좀 무너져서 이제는 40~45%를 (야권이) 확보하지 않으면 어렵게 됐습니다. PK표는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 수도권에도 있어요. 그 부분까지 합쳐서 40% 이상을 가져오려면 PK 후보가 아니면 어렵지 않겠느냐고 보는 사람이 많아요.”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에 복귀한 셈인데, 8월 전당대회 역할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당 대표나 최고위원에 출마하라는 얘긴데 그건 안 하려고 해요.” 어차피 정치판으로 다시 나왔으니까 정치 활동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골치 아파.(웃음) 엉성스러워. (종업원을 향해) 여기 물 좀 주세요! 민주당으로서는 영남 쪽에 사람이 없으니까 제가 나섰으면 하겠죠. 참 힘들고 어려운 일이죠. 제가 경남 밀양에다 텃밭을 하나 사서 조그마한 집 지어 농사를 지으려고 집 설계까지 다 했다고.” 45% 받은 걸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서 행보가 참 어려운데…. 주변에서는 이번에 떨어지기를 잘했다, 더 큰 그림을 그려라, 이런 여러 가지 얘기가 있습니다만….” 6·2 선거를 계기로, 그리고 부산에서 마의 40% 벽을 돌파한 것을 계기로 김 전 장관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치권에 선명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틀림없이 그에게 또 한 번 ‘피할 수 없는 잔’이 주어질 것이다. 그것이 독배일지 성배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의 정치적 미래를 가불해서라도 미리 한마디 축하의 말을 해 줘도 좋을 듯하다. 그것이 ‘낙선 축하’의 숨은 의미가 아닐까.
신동호가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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