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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57 건 검색)

[포토뉴스] “이주 돌봄노동자 권리 보장”
2024. 09. 26 21:28 사회
...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연대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모든 이주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돌봄노동 = 경력’ 성동구가 불러온 나비효과
2024. 09. 19 21:19 지역
... 움직임은 확산되고 있다. 경기·전남·세종 등 광역자치단체를 포함한 총 20개 지자체가 여성의 돌봄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경기 수원·안양·군포시는 경력인정서를 발급하는 내용도...
[현장 화보] 돌봄노동자들은 공공돌봄 일터의 회복을 꿈꾼다.
2024. 08. 20 10:58 사회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으로 발생한 집단실업 사태와 관련해 서울시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4.8.20....
현장 화보돌봄노동서사원서울시사회서비스원해산
[경향포토] 돌봄노동자 집단실업사태, 서울시는 대책마련하라.
2024. 08. 20 10:41 사회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으로 발생한 집단실업사태와 관련해 서울시의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4.8.20....
경향포토

주간경향(총 2 건 검색)

[꼬다리]깻잎만도 못한 돌봄노동(2022. 10. 28 11:00)
2022. 10. 28 11:00 사회
‘돌보는 이를 착취해 사회를 지탱하자’는 제안이 공개적으로 나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9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고도 했다. 지난 10월 19일 방송 인터뷰(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선 한술 더 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굉장히 임금이 높은 수준”이라며 출신 국가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7월 1일 서울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쪽방촌 지원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그는 이미 2011년에 ‘먹는 일’(학교 무상급식)을 등지면서 큰 실책을 했다. 이번에는 ‘돌보는 일’에 등을 돌렸음을 선언하는 중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문제와 저출생 시대의 육아 문제를 논하려면 멀리 싱가포르까지 찾아갈 이유가 없다. 앞을, 옆을, 뒤를 보면 된다.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 여성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깻잎을 딴다. 화장실도 못 가 자루에 변을 봐가며 온종일 딴다. 아이는 누가 돌보는가? 할머니들이 돌본다. 허리가 휘고 연골이 닳아가며 돌본다. 이주민 노동의 값을 지금보다 싸게 치를 방법이 있을까. 연구자 우춘희의 르포 <깻잎 투쟁기>엔 이주민의 노동 실태가 세세하게 나와 있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돈을 떼였다고 신고한 사람은 2020년에만 3만1998명, 체불 금액이 1287억원이다. 고립돼 신고할 생각조차 못 한 노동자를 포함하면 액수는 훨씬 커질 것이다. 이미 최소 1300억원어치 노동을 싼값에 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오 시장이 좋아하는 ‘시장논리’를 들이대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예컨대 수확철의 깻잎 밭에선 사람을 못 구해 난리가 난다. 일이 너무 고돼 내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웃돈을 줘도 데려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깻잎을 전에는 누가 땄는가. 할머니들이 땄다. <깻잎 투쟁기>에는 깻잎 밭을 하는 김미자씨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에서 살다 농촌으로 시집온 그는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나가 엉엉 울며 일을 했다. 그런 그도 60대 후반이 됐다. 이제는 20대 이주 여성들을 고용해 깻잎을 딴다. 할머니들 출퇴근 시키랴, 입에 맞는 점심을 챙겨주랴 바빴던 그는 이제 “정말로 얘네들 덕분에 너무 편해졌다”고 말하며 미등록 이주 여성을 어르고 달래 붙잡아둔다. 깻잎을 따는 단순노동도 이처럼 복잡하게 굴러간다. 육아노동의 값을 깎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깻잎보다 다루기 쉽기 때문인가? 아이돌보미, 요양보호사, 간병인들은 열악한 처우 속에서도 누군가의 삶을 낫게 한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돌봄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지금,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돌보는 이에게도 이 일이 ‘좋은 노동’이 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일을 ‘싸게’ 대체하면 그만인가? 오 시장은 외국인 육아도우미 제안을 내놓으면서 “경제적 이유나 도우미의 공급 부족 때문에 고용을 꺼려왔던 분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것”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에겐 표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온몸을 갈아넣어 시스템을 떠받쳐온 돌봄노동자들도 투표권이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꼬다리
[오늘을 생각한다]나의 돌봄노동은 가치가 있는가(2021. 08. 13 14:57)
2021. 08. 13 14:57 오피니언
저녁 아홉시 넘어 제주에 사는 이모한테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하나야!” 하고 울부짖는 것이었다. 순간 “이~모!” 하고 외치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 엄마가 나와 같은 세상에 계신지 아닌지도 모르는 그 찰나, 엄마 소식이 궁금하면서도 이어지는 말을 듣기가 무서워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시간을 멈출 수 없기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유월 초 어느 날 밤의 일이다. 다음날 첫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와 두달 넘게 지내고 있다. 뇌동맥류 파열이라는 사망률 높은 질환에 굴하지 않고 엄마는 지금 내 곁에 있다. 크나큰 행운이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셨던 2주 동안은 혹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올까 전화가 울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바퀴벌레 다음으로 싫은 엄마 잔소리를 한 번만 더 듣고 싶다고 바다에 빌었다. 7주 만에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홀어머니에 외딸, 우리 가족은 참으로 단출했다.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에게는 나, 나에게는 엄마가 온 세상과 같았다. 내 나이 일곱 살, 우리 엄마 서른일곱에 엄마는 가진 것 하나 없이 혼자 힘으로 나를 키우겠다 결심하셨다. 엄마는 일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면 살아오셨고, 그 최대수혜자가 바로 나였다. 나는 그런 엄마가 늘 고마웠지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다짐하기도 했다. 엄마라는 이유로 등골 빠지게 일하는 모습이 대신 억울했다. 아마 내가 ‘엄마’를 소수자로 규정하고 ‘엄마’의 정치세력화를 제안한 데는 우리 엄마를 위한 억울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효도와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불효의 아이콘이라고 느낀다. 엄마의 하나뿐인 딸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참거나 양보한 적이 딱 한 번 빼고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한 번뿐인 인생을 누굴 위해 희생하지 않으리라 각오가 단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 외로운 엄마를 더욱더 외롭게 만들었다. 이제 엄마 곁에는 내가 24시간 있어야 한다. 일곱 살 딸과 오래 떨어져 지내다 보니 내 마음이 너무 황폐해져 결국 남편과 딸도 제주로 왔다. 지난 25년 동안 혼자 살던 엄마가 이제는 복작복작 네식구랑 산다. 엄마는 가게에서 쓰러졌는데 다시 일하시기는 어렵다. 남편도 급한 대로 휴직을 했지만, 복직이 쉽지 않다. 나는 근무시간을 절반으로 줄여 재택근무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 벌이로는 부족하다. 한숨 돌리고 나면 돌봄의 정치를 말할 수 있을까? 딸이 일곱 살이 되자 혼자 머리도 감는다. 자기 입으로 다 컸다고 말하기도 한다. 딸은 어느새 돌봄이 필요 없는 사람이 돼가고 있다. 이제 나는 엄마 머리를 감겨 드려야 하고, 어딜 가든 엄마 손을 잡고 다닌다. 그렇게 매일매일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는데 나의 돌봄노동에는 가치가 없다. 엄마를 잘 돌보고 싶은데 이런 생활은 지속가능성이 없다.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래서 정치를 했던 건데 요즘은 정치할 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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